지난 9월 12일을 낀 주말에 본인은 수인선의 전구간 복선전철 부활을 기념하고 경축하기 위해 답사 여행을 떠났다. 기왕 수원· 화성· 안산까지 가는 김에, 딱 수인선 열차만 타는 게 아니라 주변의 지역들까지 포함해서 아예 2박 2일짜리 경기도 서남부 종합 여행을 다녀왔다.
한 달 전에 다녀온 3박 4일짜리 여행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이번에도 짧은 시간 동안 철도와 관련된 많은 장소들을 답사하면서 좋은 경험과 추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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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퇴근한 당일 밤에 곧장 여행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안양의 수리산 기슭에 있는 병목안 산림욕장이었다. 여기 한구석에 짱박혀서 텐트 치고 잠들었다.
조용하고 한적하고 시원하고, 계곡에 물도 졸졸 흐르고.. 여기는 정말 최고의 숙소였다. 나 말고도 큼직한 차 끌고 와서는 뒷문 열어 놓고 자는 아재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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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잘 자고 새벽에 눈을 떴다. 다음으로는 산림욕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병목안 시민 공원'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경치가 워낙 좋으니 이른 아침부터 산책과 운동을 하는 인근 주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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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과거에 채석장이었다고 한다. 서울로 치면 용마산 채석장을 리모델링한 용마 폭포 공원 같은 곳이다.
여기서 채집한 돌이 경부선 복선화 및 수인선의 건설 공사에서 쓰였으며, 옛날에는 돌을 수월하게 나르라고 경부선 안양 역에서 여기까지 아예 철길도 깔려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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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채석장이었던 곳답게 넓은 풀밭과 거대한 바위 언덕이 일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인공 폭포도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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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부에는 채석장 시절에 쓰였던 쬐끄만 선로와 협궤 화차 레플리카가 한구석에 전시돼 있었다. 오오~~ 표준궤와 협궤가 모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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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흔적이 있는 공원이라니 대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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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병목안'은 여기 지형의 특성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병목 현상' 할 때의 병목과 동일한 의미의 단어이다.
여기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광명에는 폐광산을 공원화한 광명 동굴이 있는데.. 채석장도 뭔가 심상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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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아래에도 경치 좋은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었다. 집 근처에 이런 공원이 있으면 무척 좋겠다.
여기서 특별히 소개하지는 않지만 공원과 산림욕장 사이에는 캠핑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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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목안 공원 다음으로는 안양에 있는 다른 공원인 '삼덕 공원'을 찾아갔다. 얘는 도심에 가까이 있는 자그마한 근린공원이다. (공원도 많이 돌아다녀 보니 급의 차이가 있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바로 옆에 공영주차장이 있기도 해서 자가용 접근성은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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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 공원은 삼덕 제지라는 기업을 운영하던 업주가 지난 2003년에 은퇴하면서 공장 부지를 안양시에다 통째로 기부한 덕분에 조성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이런 훈훈한 미담만 전해지지만.. 그 이면에는 씁쓸한 사연이 전해진다.
업주는 말도 안 되는 요구와 음해· 파업을 남발하는 악성 노조의 갑질 횡포에 이골이 난 나머지, 거의 40년을 경영했던 공장을 에라이 싹 처분해 버리고 이민 간 거라고 한다..;; 덕분에 배은망덕한 종업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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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한쪽 구석에는 창업주의 흉상,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공장 굴뚝의 축소 레플리카가 남아 있다. 이 사람도 당연히 흙수저 개룡남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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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원의 옆으로는 수암천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올여름에는 비가 많이 와서 가뭄 걱정 없고 개천마다 물이 졸졸 흐르고 있는 건 참 보기 좋았다.
얘는 먼저 봤던 수리산 병목안 계곡에서 발원해서 안양 역 건너편까지 흐른 뒤, 안양천으로 합류한다. 원래 시내에서는 대부분의 구간이 복개되었는데, 요 근래에 다시 뚜껑을 걷어내고 복원을 많이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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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남산의 남쪽으로 용산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지막한 언덕이 하나 있다. '둔지산'이라고 이름도 당당히 붙어 있지만, 그다지 높지 않고 전지역이 미군 기지로 점령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은 인지도가 대단히 낮다.

그런데 안양에도 존재감이 서울의 둔지산 같은 산이 있다. 바로 수리산의 북쪽, 서독산의 남쪽에 있는 일명 박달산이다. 얘는 언덕 전체가 예비군 훈련장을 포함한 군부대들로 꽉 차 있다. 그러니 여기 주변엔 산책로나 등산로 따위는 일체 존재하지 않고 그냥 차량 진입로 한 곳만 있다.
서울 근교에서 예비군 훈련장이 있는 산을 따져 보자면 서북부에는 노고산, 동남부에는 인능산이 있는데.. 서남부에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산이 바로 이 산인 셈이다.

뭐, 얘도 그냥 수리산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수리산의 유명 봉우리는 저기서 멀리 떨어져 있다. 북악산과 북한산이 다른 산인 것처럼, 그리고 관악산과 삼성산이 다른 산인 것처럼 여기도 뭔가 다른 산으로 취급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본인은 수리산은 오른 적이 아직 한 번도 없다.;;

여기까지 온 김에 본인은 인터넷 지도 로드뷰로 볼 수 없는 풍경도 좀 염탐을 했다.
안양 구경은 오전에 이 정도로 한 뒤, 본인은 시흥을 거쳐서 더 남쪽 안산으로 내려갔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27 08:36 2020/09/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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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철도의 변화 추이

1. 수인분당선

지난 9월 12일에는 우리나라 철도 역사에 길이 기록될 이벤트가 하나 발생했다. 바로 수인선이 전구간 복선 전철(시설)로 완공되었으며, 곧장 분당선과 연결되어 수인분당선이라는 이름의 수도권 광역전철(운행 계통) 형태로 부활했기 때문이다.

이는 경의중앙선의 사례와 비슷하다.
원래 용산-성북 국철이라고 불리던 1호선 짜끄레기 지선(?)이 중앙선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색깔이 옥색으로 바뀌고 덕소, 팔당, 국수.. 지금은 양평을 넘어 용문까지 정말 엄청나게 길어졌는데.. 그게 2009년부터 DMC/서울 역까지만 개통해 있던 경의선과도 연결됐기 때문이다. 2014년에 용산선 구간이 모두 지하로 재개통한 덕분이다.
그래서 경의중앙선은 문산(임진강)-용문(지평)이라는 어마어마한 길이를 자랑하는 옥색 광역전철이 되었다.

그러면 수인분당선은 어땠는가?
1994년 9월, 철도 불모지이던 서울 동남부에 수서-오리 분당선이 개통했다. 얘는 색깔도 확 튀는 노란색인 데다, 철도청이 건설하는 철도 중에는 그 당시에 기존 철도와 만나는 게 전혀 없이 단절돼 있던 유일한 철도였다. 2009년 용인-서울 고속도로(171)가 건설 당시에 기존 고속도로와 만나는 분기점이 전혀 없이 단절된 고속도로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랬는데 분당선은 남북으로 쭉쭉 길어져서 왕십리와 수원을 잇는 거대한 전철 노선이 됐고.. 급기야는 이제 수인선과 연결돼 버렸다. 그래서 역 수가 60개가 넘는 왕십리-(수원 경유)-인천이라는 초월적인 노선으로 거듭났다. (참고로 1호선의 무려 소요산-천안이 역 수가 얼추 60개;; )

다만, 수인-분당선은 구간별로 성격과 수요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상당수의 열차는 여전히 과거의 분당선 아니면 오이도 이북의(시흥-인천) 수인선 구간만 다닐 예정이다. 여느 방사형 노선들은 서울로부터 멀어지는 말단 외곽이 수요가 적지만.. 수인선은 반대로 양 말단인 인천과 분당· 서울 쪽이 수요가 많고 중간의 화성· 안산 쪽은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기존 안산선 구간인 오이도-한대앞을 포함해서 이번에 새로 개통한 사리-야목-고색 등의 구간을 다니는 열차는 왕십리부터 인천까지 전구간 풀코스를 다니는 열차만으로 국한된다. 이런 열차는 1시간에 2~3대꼴로만 운행된다.

그러므로 오이도 역은 동쪽에서는 4호선의 종착역이기도 하면서, 서쪽에서는 수인선의 중간 종착역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하게 된다.
사실은 한대앞-오이도는 애초에 안산선이 기존 수인선의 선형을 따라 건설된 것이었다. 그걸 수인선 복선전철이 나중에 되찾았을 뿐.. 여기는 2복선 같은 것 없이 한 선로에서 안산선과 수인선 열차가 모두 오가게 된다. 같은 선형이지만 선로는 복층으로 다른 경의선 & 공항 철도의 서울 시내 용산선 구간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 수인선이 개통하면서, 과거에 분당선 수원 행에 대응하던 운행 계통은 종점이 수원이 아니라 서쪽으로 한 정거장 더 진행한 고색으로 바뀌었다.
과거에 1호선 수원 행 계통이 2003년부터 병점으로 바뀐 것과 비슷한 현상 같다. 어쩐지 그래서 고색 역은 시종착역 역할을 하기 위해 지하에서 이례적으로 쌍섬식으로 건설돼 있었다.

그래서 수원 역은 1호선도, 수인분당선도 모두 중간 종착역 역할을 하지 않게 됐는데, 이것은 두 노선의 중간 종착역 역할을 꾸역꾸역 수행하고 있는 오이도 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본인은 9월 12일이 낀 주말에 답사 여행도 다녀왔다. 여행기는 글과 사진을 정리하는 대로 이 블로그에다 공개할 예정이다.

아울러, 이렇게 철도에 거대한 수도권 순환선이 추가된 2020년 9월부터.. 고속도로에서는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100)의 명칭이 수도권 제1순환 고속도로라고 개명되었다. 뭔가 의미심장한 변화인 것 같다.
저 동네가 서울 외곽 변두리 짜끄레기라는 부정적인 어감을 걷어내고, 또 더 큰 제2순환선(400)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을 반영한 개명이다.

2. 급행 전동차의 변화

지난 2019년 말~2020년 초 사이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경부선 급행열차 체계가 꽤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용산-구로 사이의 급행 선로는 동인천 급행만이 사용하는 경인선 전용 선로로 바뀌었고, 천안 급행은 내선(급행 및 일반열차 선로)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군포와 의왕 같은 몇몇 역에다가 대피선 추가)

이 때문에 경부선 급행은 안양-수원 구간에서 내선을 주행하던 과거에 비해 속도빨이 조금 감소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경부선 급행을 더 많이 투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용산에서 끊어지는 게 아니라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까지 더 길게 운행 가능해졌다. 환승역인 금정 역에 정차할 수 있게 된 건 덤이다.

어째 운영 시스템을 이렇게 개편할 생각을 했는지?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나 모르겠다.
이런 조치 덕분에 이제는 서울 지하철 9호선뿐만 아니라 1호선의 지하철 구간에서도 이따금씩 ‘천안 급행’이라는 어색한 열차 행선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코레일에서는 요런 완행 기반의 경부선 급행을 늘린 대신에, 하루 세 번 있는 기존의 서울-천안 급행을 슬쩍 폐지했는데.. 그건 승객들의 반발에 부딪혀 곧 무산됐다.
이제 하루 세 번 있는 이 열차만이 안양-수원에서 일반열차 선로를 주행하는 유일한 전동차이다. 누리로도, 급행 체계 대개편도 1981년 경부선 서울-수원 복복선 개통과 함께 등장한 이 40년 짬밥의 전동차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3. 고속버스(고속도로) 대비 철도의 변화

우리나라에 좌석에 종아리 받침대가 있는 고급 육상 교통수단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이다.
1991년인가 92년 사이에 등장한 우등 고속버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등장한 새마을호 장대형 객차.
열차와 버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의 영향을 받은 건 분명한데.. 어느 게 어느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는 본인도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다.

좌석 자체가 더 두툼 큼직하고 푹신한 것은 우등 고속버스이다. 특히 팔걸이의 폭 말이다. 하지만 앞뒤 간격이 훨씬 더 넉넉하고 전반적인 승차감이 더 좋은 것은 열차이다.

그리고 저 때 이후 2010년대부터 고속버스와 열차는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고속버스는 기존 우등보다도 더 비싸고 좌석이 더 안락한 프리미엄 우등이란 게 나와서 일부 노선에서 운행 중이다.
그러나 열차의 경우, 저 새마을호가 한국 철도 12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크고 안락한 좌석을 보유한 차량이었고 그것으로 끝났다. 지금은 KTX 특실 좌석에도 종아리 받침대 따윈 없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열차는 인테리어만 한없이 더 고급화하는 게 아니라, 속도가 더 빨라지는 쪽으로 일면 바람직하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요즘 제트 여객기가 과거의 비행선이나 대륙 횡단 여객선처럼 내장재를 신경쓰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나라도 KTX가 없고 열차의 증속에 한계가 있던 시절엔, 내장재와 정차역만으로 상위 등급 열차를 운용해야 했다. 새마을호의 크고 안락한 좌석은 그 시절이 만들어 냈던 유물인 것이다.

물론 기존 인프라만 갖고 노오력을 쥐어 짜내서 서울-부산을 4시간 10분까지 단축시켰으며(1985년), 더 장기적으로 3시간 반 정도까지 단축시키려는 계획은 있었다. 하지만 그거 갖고 철도가 갈수록 늘어나는 고속도로와 자가용, 고속버스의 경쟁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고속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나라에 훨씬 더 절실히 필요했던 사업이었다. 김포 공항을 대체하는 인천 공항만큼이나 말이다.

같은 논리를 적용해 보면 고속버스가.. 우등이라고 해서 카레이서 출신의 엘리트 기사가 대형 버스로 고속도로를 시속 150~200으로 밟으면서 '초고속버스' 같은 운전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내장재만 고급화한 버스를 운용하는 것이다.

서울-부산을 1시간 만에 가는 여객기, 2시간 반 만에 가는 열차가 있는 와중에.. 도로 교통수단이 시간 메리트가 없다면, 고속 와이파이는 물론, 최소한 좌석마다 개별 영상 서비스와 콘센트가 달린 버스 정도는 요즘 세상에 정말로 나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4. 서빙 카트

오늘날 승무원이 먹을것을 실은 카트를 끌고 복도를 왕래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은 열차와 여객기 정도인 듯하다.

참고로 고속버스에도 안내양이 있던 1960~80년대 먼 옛날에는 안내양이 버스 안에서 스튜어디스와 비슷한 일을 했다. 탑승 전 검표, 안전벨트 착용 안내뿐만 아니라 무슨 관광버스처럼 지금 차량이 지나고 있는 지역의 특산물 소개 같은 방송도 하고 주기적으로 음료 서빙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이런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시대의 변화 때문이겠지만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도 안내양이 없어지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여객기나 과거의 고속버스 같은 건 승차권 가격에 포함된 정식 서비스를 모든 승객에게 동등하게 제공하기 위해서 승무원이 카트를 끌고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열차는 별도로 판매되는 간식류들이 실려 있다는 점에서 카트의 성격이 좀 다르다. 다른 교통수단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오~

철도청 시절에는 이런 일을 홍익회라는 유착(?) 법인에서 전담했지만 공사화 이후에는 이런 풍경을 거의 볼 수 없어졌다. 그나마 KTX 같은 고급 고속열차에서는 코레일네트웍스 같은 자회사 소속 직원이 카트를 끌고 다닐 뿐.. 수익이 적은 새마을/무궁화호 열차를 시발역에서 타면 "우리 열차는 차내 영업사원이 탑승하지 않습니다. 식사는 탑승 전에 해결하시거나 차내 카페객차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가 자주 나왔었다.

5. 토목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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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장소는 서울 지하철 9호선 고속터미널(일명 고텀) 역의 환승 통로이며, 9호선 승강장의 위층에 있는 거대한 공터이다. 직접 본 적이 있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높은 천장을 뚫고 딱 15cm만 위로 올라가면 지하철 3호선 선로가 나온다.
9호선 고텀 역은 그 무거운 전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는 3호선과 7호선의 바로 위와 옆으로 아슬아슬 아찔하게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만들어졌다. 이들 역이 동시에 건설된 것도 아님을 주목하라. 신기하지 않은가?

불과 30년 남짓 전에 2호선이 처음 건설됐던 시절엔.. 복잡한 영등포 역 아래를 그렇게 뚫고 내려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선로 밑으로 땅 잘못 파면 선로가 내려앉아서 1993년의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같은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그때는 한적한 곳까지 비껴 가서 신도림역을 환승용으로 따로 만들어야 했다.

이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고텀 역의 경우, 옛날 3호선은 그냥 개착식, 7호선은 NATM(발파..), 9호선은 CAM(cellular arch) 공법으로.. 적용 알고리즘이 모두 다르다.

우리나라의 '삼부토건'이라는 건설사는 자기 회사를 소개할 때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여의나루 한강 하저 터널을 건설했던 이력을 반드시 자랑으로 내세운다. 그건 1990년대 초에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했던 장거리 하저 터널이기 때문이다.
광나루-천호도 하저 터널이지만, 그건 댐을 쌓아서 강물을 다 걷어내고 개착식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크게 새롭지는 않다.

서울 지하철 7호선 남성-숭실대입구역 구간의 경우, 시공사는 기억이 안 난다만 아무튼 중간에 길을 벗어나서 관악 현대 아파트의 아래를 대놓고 관통한다.
물론 공사는 20여 년 전에 그 위에서 살았던 아파트 입주민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스텔스로 잘 끝났다.

이런 게 21세기 토목 기술의 힘이다. 이미 부산 시내를 몽땅 지하로 관통하는 경부고속선이 완공됐고, 이제는 서울에서 평택까지 전부 지하로 가는 SRT, 그리고 고심도 광역 급행 전철까지 만들어지는 중이다.

참고로 지하 시설이라는 건 공간만 냈다고 장땡이 아니다. 내부에 계속해서 환기를 해 줘야 하며, 지형에 따라서는 지하수를 빼내는 펌프를 24시간 내내 가동해야 한다. 안 그러면 햇볕도 안 들어오는 탁한 지하 공간에서 사람이 지낼 수가 없어진다.
이런 최소한의 토목 디테일을 알면 북괴의 초장거리(?) 남침 땅굴 굴착설 같은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괴담임을 간파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17 08:34 2020/09/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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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나라들의 지하철

1. 영국 런던

  • 세계 최초의 지하철.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벌어지던 시절에!) 흠좀무이지만 증기 기관차가 다니기도 했던 지하철
  • 전차선이 땅바닥에 있고, 터널의 단면이 차량의 단면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왕창 좁음. 튜브의 원조
  • 실제 위치와 거리가 아니라 역들의 관계만을 간략하게 나타낸 노선도 디자인의 원조
  •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지하철 역명판용 고유 서체(폰트)
  • 매년 성탄절엔 올스톱.. (대중교통이 몽땅..)

2. 프랑스 파리

  • 고무 타이어
  • 한때 우리나라에서 수입해서 썼던 삼발이 개집표기와 마분지 승차권 시스템의 원조
  • 이름 대신 n호선이라는 명칭을 도입한 원조

3. 미국 뉴욕

  • 24시간 운행
  • 롱시트가 아닌 전방 좌석형 구간도.. (과거 우리나라의 CDC 통근열차와 비슷)
  • 더럽고 냄새 나고 쥐가 돌아다니고, 그래피티 낙서가 가득하고.. 밤에 혼자 다니면 위험하고.. >_<

4. 미국 LA

  • 노선을 이름도, 번호도 아닌 그냥 색깔로 식별함. 각 노선들이 올지하 아니면 올지상인 식임. 안내방송은 영어와 스페인어로..
  • 역 내부에 딱히 개집표기와 개표 영역(paid area) 구분이 없었던 걸로 기억함.

5. 일본 도쿄

  •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통한 지하철. 그런데 본인은 일본 철도는 신칸센, 아니면 지상에서 달리는 게이큐 쾌특 급행 전철 같은 것만 알지, 정작 도쿄 지하철에 대해서는 배경지식이나 선입견 따위가 형성된 게 없다.;;
  • 최초로 개통된 긴자와 마루노우치만 표준궤에 제3궤조이고, 후대의 것들은 모두 협궤에 가공전차선 방식이다. 집전 방식을 바꾼 건 잘한 것 같지만, 궤간은 처음에 표준궤로 시작했던 것을 왜 줄여 버렸는지가 의문이다.
  • 긴자 선이 1927년에 개통한 뒤에 그 다음 마루노우치 선은 무려 27년 가까이 뒤인 1954년에야 개통했다. 이렇게 긴 간극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두가 짐작 가능하다시피 오랫동안 전쟁 때문에 지하철을 더 만들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6. 중국 베이징

  • 나름 1970년대에 최초로 개통했지만,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노선이 꼴랑 1호선과 2호선 둘밖에 없었다. 이 역시 기술 지원을 해 주던 소련과의 사이가 틀어진 데다, 대약진운동 병크 등으로 인해 지하철을 더 만들 여력이 한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도쿄와는 다른 형태의 사연이 있었던 셈..
  • 그러다가 2000년대가 돼서야 뒤늦게 그야말로 미친 듯이 10여 개의 노선을 한꺼번에 건설하면서 지금 같은 대규모 지하철 네트워크가 완성됐다. 이런 것도 대륙의 기상이 좀 느껴진다.
  • 이것 말고는 역시 별다른 느낌이나 선입견 없음..

7. 한국 서울

  • 싸고 깨끗하고 환승 할인 잘 되고 와이파이 잘 터지고.. 여러 모로 서비스 좋음
  • 수백 개에 달하는 역들에 2010년대 동안 스크린도어가 몽땅 설치돼 버린 것도 좀 사기에 가까움.
  • 도쿄와 베이징의 지하철은 나름 10호선이 넘는 노선이 존재하는 반면, 서울 지하철은 광역전철이나 경전철이 아닌 중전철 도시철도는 9호선이 진짜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일본이 전쟁 딜레이, 중국이 문화혁명 딜레이가 있었다면 한국은 뭐 그런 정치적인 딜레이가 없었음. 하지만 서울 수도권 이후에 타 지방의 광역전철 개통이 40년 가까이 늦었다. (부산 동해선 광역전철)

8. 북한 평양

  • 최초 개통 자체는 서울 지하철보다 명목상 1년 더 이름.
  • 왕창 깊고 구소련 지하철과 비슷한 인테리어. (뭐, 러시아 지하철에 대해서는 본인은 아는 것 전무함.)
  • 1970년대에 2호선까지 만들어진 건 베이징 지하철과 비슷하나, 평양은 중국과 달리 2020년대까지 그 노선 그대로 변함없이 얼어붙어 버림. =_= 지하철이 다니는 나라들 중에서는 제일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의 지하철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17 08:34 2020/08/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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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버스 이야기 외

1. 좌석버스

버스라는 대중교통을 더 세부적으로 분류해 보면 좌석버스라는 등급이 있다. 이게 생각보다 흥미로운 물건이다.
얘는 입석형 도시형 시내버스에 비해 말 그대로 좌석이 많고 더 장거리를 달리며 요금도 약간 더 비싸다. 일부 구간은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오랫동안 씽씽 달리기도 한다. 완행 입석 시내버스와 달리 전기나 CNG 차량, 저상 버스가 눈에 띄지 않고 그냥 고상+디젤 일색이다.

하지만 얘는 전용 터미널에서만 타는 장거리 시외/고속버스 같은 급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느 버스 정류장에서 쉽게 탑승 가능하며 다음과 같은 점도 시외/고속버스와 차이가 있다.

  • 앞문이 간지나는(?) 슬라이딩 방식이 아니라 여전히 시내버스 같은 폴딩 방식이다.
  • 여전히 하차 전용 중문을 갖추고 있다. 다만, 좀 더 급행/광역에 특화된 좌석버스 중에는 중문이 없는 것도 있다.
  • 큼직한 우등형은 있을 리가 만무하고.. 좌석에 안전벨트가 있긴 하지만 거의 유명무실 상태이다.
  • 타이어에 휠캡이 달려 있지 않다. 옛날에는 이 휠캡이 뭔가 왕관과도 같은 고속버스의 상징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2000년대 이후부터는 고속버스도 휠캡을 잘 장착하지 않는 것 같다.
  • 객실 아래의 짐칸 같은 게 쓰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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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고속버스 휠캡. 출처는 한국 버스 연구회)

그러니 좌석버스는 위상이 여러 모로 시내와 시외의 중간인 셈이다. 좌석이 많다는 관점에서 좌석버스라고 불리는 게 보통이지만, 급행· 직행이나 광역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여기서 직행이라는 건 시외버스에서의 '직행'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얘들은 관할 범위가 완벽하게 특정 지역구 내부에 한정된 게 아니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전국구도 아니다 보니, 종류가 다양하고 버스들의 도색도 다양한 편이다. 서울/수도권 기준으로 이런 버스들이 존재한다.

  • 서울시 관할의 직행 좌석: GRYB 중에서 R에 해당하는 그 물건이다. 번호는 9로 시작하는 네 자리이다. 허나, 지금은 Y와 마찬가지로 많이 몰락해서 4권역(9403, 9401, 9408 등)과 7권역(9703 등..)에 소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 경기도 관할의 직행 좌석: 하남 9301, 구리 1650 같은 게 떠오른다. 차량의 외형은 지역마다 케바케이지만 대체로 서울과 비슷하게 빨강인 편이다. 단, 서울 버스는 온통 빨강 단일색인 반면, 경기도 버스는 위쪽만 붉고 아래쪽은 희다.
  • 광역급행: 중앙 정부인 국토교통부에서 노선을 고시한 좌석버스로, 번호는 M으로 시작하는 네 자리수이다. 기존 좌석버스들보다 더 직선화 고속화를 추구해서 더 빨리 간다. 차량은 파란 도색이며 중문이 없다.
  • 경기도 급행: 경기도에서 자체적으로 신설한 노선으로, 광역급행의 경기도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번호는 G로 시작하는 네 자리수이다. 파랑-초록-노랑의 꽤 알록달록한 도색이며, 2층 버스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G라는 이니셜을 이용해서 '굿모닝 버스'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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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서울시는 환경 보호를 위해 이미 들어오려는 외부 차량들을 억제시키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니 경기도나 중앙 정부 말고 서울시에서 관할하는 광역 좌석버스가 근본적으로 많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버스 업계와 달리, 철도에는 롱시트 통근형 입석형 전동차를 쓰는 도시철도· 광역전철이 아니면 그냥 일반열차 운임 체계 기반인 무궁화호 이상의 장거리 열차이다. 운영 방식이 좀 경직돼 있다.
그 중간 단계를 표방하는 누리로 전동차라는 게 도입되긴 했지만 현실에서는 그냥 무궁화호와 별 차이 없어 보인다.

신분당선은 코레일 계열이 아닌 광역전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 뒤 앞으로는 고심도 급행 전철인 GTX가 저 광역급행 버스의 고속철 역할을 감당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롱시트가 아닌 좌석형이면서 고상홈에서 타고 내리고, 정차역이 적고 빠르고, 운임은 기존 시내버스· 지하철과 환승 할인이 되는.. 그런 광역전철이 좀 필요해 보인다.

2. 버스와 트럭의 주행 관련 규제

자그마한 5인승 자가용 승용차만 운전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감할 일이 없겠지만, 이보다 덩치가 약간만 더 큰 차들에는 (1) 속도 제한 장치가 의무적으로 달려 있다.
먼저 사람이 많이 타는 승합차 계열부터 살펴보면, 지난 2013년 여름부터 11인승 이상 승합차에 110km/h 이상으로는 아무리 밟아도 가속이 되지 않는 리미터가 강제 장착되기 시작했다. 이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승합차는 자동차세가 월등히 저렴해서 좋다. 승용차와는 달리 자가용도 영업용과 동일하게 배기량과 무관한 낮은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합차는 고속도로에서 추월 하나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차가 고자가 되니 단점이 장점을 묻어 버렸다. 리미터가 달리지 않은 기존 중고차의 가격이 더 오른다거나, 그냥 9인승 SUV/밴에 수요가 몰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트럭은 3.5톤 이상부터는 아예 90km/h 리미터가 강제 장착된다. 이건 승합차보다 더 전부터 있었던 규제인 것 같다.
하지만 한 탕이라도 더 뛰어야 먹고 살 수 있고 바빠 죽겠는데, 엔진 속 컴퓨터를 해킹해서 속도 제한 장치를 불법으로 무력화시키고 질주하는 승합차나 트럭이 심심찮게 보인다. 아이폰 탈옥과 개념적으로 비슷해 보인다만..

하긴, 대형 트럭은 디젤 엔진 기반이다 보니 속도 규제뿐만 아니라 (2) 환경 규제도 꽤 까다롭게 걸려 있다.
유로4 이상의 규제를 만족시키기 위해 DPF라고 미세먼지 저감 장치의 장착과 가동이 의무화돼 있는데, 이것도 검사받고 혜택을 받을 때만 장착 인증을 하고서는, 실제 운행할 때는 불법으로 끄거나 떼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얘는 작동 과정에서 엔진 성능과 연비를 일부 깎아먹으며, 괜히 차량의 유지 비용만 증가시키는 잉여 계륵 같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DPF에 SCR 등 온갖 배기가스 정화 장치를 돌려 놨다 해도 도를 넘는 막장 과적 앞에서는 답이 없다.
디젤 엔진이 제일 더티해지는 때는 바로 저회전 상태에서 큰 토크가 필요한 첫 출발 가속 시점이다. 이때 연료가 제대로 연소하지 못해서 시커먼 매연이 제대로 뿜어져 나오는데, 차가 설계 한도 이상으로 너무 무거운 상태이면 이런 상태의 지속 시간이 길어진다.
연료를 왕창 집어넣었는데 엔진이 빠릿빠릿 못 돌고 있으면 정화 장치들도 감당을 못 하고 매연이 더욱 심해진다.

과적은 도로 파손, 차량에 과부하, 제동과 조향 안정성 저해 같은 여러 악영향을 끼치는데, 환경 측면에서도 덤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이 와중에 속도 리미터와 DPF를 다 떼어 버리고 과적· 과속을 일삼다가 적발되면 도로교통법보다는 자동차관리법을 왕창 어겨서 과태료를 많이 물게 될 것이다.

그래서 4.5톤 이상의 트럭은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도 (3) 과적 여부 검사를 병행할 수 있는 화물차 전용 진입로로
들어가야 한다. 하이패스를 달았다고 해서 승용차처럼 싹 무정차 통과를 할 수 없다.

버스건 트럭이건 대형차들은 생각보다 많은 규제가 걸린 채로 운행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런 차들을 생계 수단으로 삼고 운전하려면 통상적인 운전 면허를 딴 이후에도 각각 화물 운송 자격증, 버스 운전 자격증 같은 자격증을 추가로 따야 하기도 한다. 자가용이라면 해당 사항이 없겠지만, 거대한 트럭과 버스를 자가용으로 굴리는 경우는 사실상 없을 테니 말이다.

이걸로도 모자라서 졸음 운전 대형 사고가 몇 건 터진 뒤에는 운전사의 휴식 시간 보장을 위해 4시간 주기로 강제 휴식이니, 운행 기록 장치 장착 의무화 같은 제도가 생겼는데 제대로 시행되고 효과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요 근래에는 드디어 노후 경유차의 서울 시내 주행 금지라는 더 강력한 규제가 시행되었다. 이건 뭐 굳이 대형 상용차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저격 대상이 사실상 그런 부류들밖에 없는 지경이다.

다른 규제라면 몰라도 이 글에서 맨 먼저 언급했던 속도 규제는 개인적으로 좀 회의적인 소신이다.
운동 에너지라는 게 물체의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서 급격히 커진다는 걸 본인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본인은 그냥 적기 조례마냥 규제 만능 찍어 누르기 식의 조치를 매우 싫어한다.

고속버스 졸음 운전 사고가 몇 건 났다고 해서 전국의 고속버스들 주행 속도를 90km/h로 몽땅 낮출 생각인가? 안 그래도 시내에서 개나 소나 속도 제한이 60도 아니고 50km/h로 더 낮아지고, 단속 카메라도 요즘 너무 많이 생겨서 싫은데..

이런 건 운전자의 재량을 존중하여 좀 상향 조정하고, 고속도로에서 130~140 정도는 완전히 합법화를 했으면 좋겠다. 터널이나 교량에서 차로 변경도 정식으로 허용하고 말이다.
그 대신 꼬리물기나 1차로 저속 주행이나 단속해서 칼치기를 할 일이 없게 만들면 도로가 훨씬 더 안전해질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7/26 08:36 2020/07/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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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와 철도의 터널과 교량

1. 자동차용 터널과 교량

도로나 철도를 만들다가 산 같은 장애물을 정면돌파 하려면 터널을 뚫게 되고, 기존 도로를 입체 교차하거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교량을 건설하게 된다. 이런 시설들은 구불구불 우회해서 가야 할 경로를 굉장히 곧게 해 준다.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요즘은 옛날에 상상하기 어려웠던 매우 크고 길고 넓은 터널과 교량이 많다.
산 하나를 통째로 관통하는 건 일도 아니고 도시 시가지를 통째로 지하로 통과한다. 2차로를 넘어 4차로 광폭 터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제한적이나마 바다를 건너는 터널(아래로)이나 교량(위로..)도 있다. 아무래도 고가(교량)보다는 지하도(터널..)가 만들기 더 어려운 것이 주지의 사실인데, 하저· 해저터널 같은 건 참 경이롭다.

다만, 이런 곳을 자동차로 운전해서 갈 때는 좀 주의해야 한다. 터널을 드나들 때는 주변의 밝기가 갑자기 변하기 때문에 운전자의 시야가 교란될 수 있으며, 교량은 바람이나 온도가 일반 평지와는 달라서 길이 미끄러울 수 있다.
그리고 둘은 형태는 다르지만 길 밖으로 벗어날 곳이 딱히 없기 때문에 비상 대피나 탈출이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터널은 화재라도 났다간 질식의 위험까지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터널이나 교량에서는 한 치의 예외 없이 차선들이 실선으로 그어졌으며, 차로 변경과 추월이 금지돼 왔다.
하지만 모든 교통사고가 오로지 과속과 추월 때문에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 저건 현실과 안 맞는 너무 규제 위주의 악법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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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시종일관 한 차로로만 달리기에는 너무 길고 큼직한 터널도 많다. 그리고 강을 건너는 교량 말고 강과 수 km째 나란히 가는 교량도 많은데 거기도 차로를 몽땅 실선으로 틀어막아야 하는지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있다.

국도 20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북건천 분기점은 긴 건천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분기점이 뿅 나타난다. 경주에서 20을 이용해서 달리다가 저기서 4로 갈아타서 영천? 대구 방면으로 가려면 아예 터널에 진입하기 전부터, 한참 전부터 맨 오른쪽 n차로로 차로를 바꿔야 한다. 터널 안에서 차로를 바꾸는 건 실선 차로와 각종 차단봉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형태로 새로 만들어지는 터널에 한해서 터널 안도 점선 차선이 그어지고 차로 변경을 허용하는 추세이다. 교량 쪽은 소식을 못 들었다만, 거기도 좀 더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쪽으로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2. 철도용 터널과 교량

자동차가 다니는 터널과 교량은 그렇고.. 그럼 이제부터는 철도의 터널과 교량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하겠다.
요즘 만들어지는 큼직한 터널은 도로용이나 철도용이 외관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옛날 초창기에, 특히 철도가 다들 단선 비전철 위주이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철도 차량은 레일 근처 하부의 폭과 중상부의 폭이 차이가 많이 나는 교통수단이다. 이는 제한된 레일 궤간에서 최대한 큼직한 차량을 굴리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그래서 한국의 경우, 법적 차량 한계가 1250mm 이하의 낮은 부위와 그 이상 높은 부위의 폭이 서로 다르게 명시돼 있다.

철도 차량은 자동차와 달리 레일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정밀 정확하게 다니니.. 터널도 그야말로 차량 한계가 허용하는 한계치까지 작게 만드는 게 가능하다. 그래서 터널의 단면조차 차량의 단면과 비슷하게 하부가 상부보다 더 작으며, 단면이 말발굽 모양처럼 돼 있다. 이것은 철도 터널이 자동차용 터널과 결정적으로 다른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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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언제까지나 옛날에 그랬다는 것이다. 요즘은 한 터널 안에 복선 선로를 집어넣고 위에 전차선도 집어넣고.. 또 고속 주행을 위해 공기가 드나들 틈을 더 내기도 하니 철도 터널도 옛날보다야 더 큼직하게 만든다.

그리고 철도는 교량도 좀 특이했다.
옛날에는 철교의 상부에 딱히 난간이나 트러스 같은 게 없었고 생긴 게 참 단촐(?) 소박했다. 뭐, 어차피 레일이 있으니 단순히 통과 차량의 안전을 위한 난간이나 가드레일 따위는 없어도 될 것이다.

과거의 단선 비전철 철길은 선로의 좌우에 아무 인공물이 보이지 않아서 좌우의 창 밖을 보면 자동차를 탈 때보다 자연의 정취랄까 그게 더 강하게 느껴졌다. 반대편 선로라는 것도 없고 전차선 전봇대도 없고.. 침목과 레일이 놓인 자갈밭이 끝인데 그건 양 옆의 시야로는 어차피 보이지 않는다. 열차가 교량을 통과할 때면 그냥 강물 위로 공중에 떠 있기라도 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교량은 딱히 ‘도상’이란 게 없어서, 레일 밑에 깔린 침목 아래로 곧장 강물이 출렁출렁 내려다보였다. 자갈밭조차 없었다는 뜻이다. 옛 수인선의 소래철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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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날은 이런 식으로 철교를 만들지 않는다. 레일 밑에 아무 지반이 없으면 열차가 지나갈 때 소음과 진동이 주변에 너무 크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궤도 아래에 침목과 자갈 같은 걸 괜히 만드는 게 아니다. 물론 요즘은 나무 침목이나 자갈조차도 안 쓰고 싹 다 콘크리트 땜빵이지만..
자동차 도로도 고속도로 같은 건 옛날처럼 아스팔트를 안 쓰고 이제 시멘트 포장을 하니, 철길 노반과 도로 노반이 생긴 모습이 다 허옇게 비슷해졌다.

내 기분상 도로 교량보다는 철도 교량이 상부에 이렇게 철골 구조물이 치렁치렁 솟아 있는 경우가 많다. 삼각형 그물 모양의 뼈대 구조이다 보니 무슨 3차원 그래픽 와이어프레임을 보는 것 같은데..
단순히 잉여 미관 때문이 아니라 교량을 안정적으로 지탱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 넣은 거라고 한다. 한강 최초의 교량인 한강 철교도 이런 형태로 만들어졌었다. 110여 년 전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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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0/07/03 08:35 2020/07/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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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속도로 톨비

우리가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 늘 지불하는 통행료, 일명 톨비라는 건 생각보다 다양한 변수를 감안해서 복잡한 방식으로 산출된다.
가장 간단하게는 “기본 요금 + 주행 거리 * 임률”이며, 임률이 경차 포함 6종의 차종별로 차이가 있는 것까지는 다들 아실 것이다. 민자 고속도로는 여기에 부가세가 추가되어서 살짝 더 비싸진다.

그런데 이 표준 임률은 4차로(편도 2차로)짜리 고속도로 기준이다. 2차로 고속도로에서는 임률이 절반(50%)으로 할인되고, 반대로 6차로 이상의 넓은 고속도로에서는 20% 할증이 붙는다. 이런 제도도 있었다니.. 과거에 열악하던 88 올림픽 고속도로가 통행료를 반값만 받았던 건 단순 예외적인 특례가 아니라 매뉴얼 상의 규정이었다.

물론 오늘날은 2차로 고속도로는 모두들 확장되고 개량되어 사실상 전멸했으며, 1992년 이래로 국내에 새로 건설하는 고속도로는 무조건 4차로 이상의 규모로 만들고 있다.
그러니 2차로 고속도로의 50% 할인 규정은 마치 삼륜차 운전 면허처럼 비현실적인 사문이 됐다. 오늘날 실질적으로 50% 할인을 받고 있는 건 경차이다. 6종 경차의 임률은 1종 소형차의 절반이기 때문이다.

톨비는 여기에다가..

  1. 1~3종 차량(초대형 차량만 아니면 다~)에 한해서 출퇴근 시간대 할인,
  2. 사업용 화물차는 반대로 심야 시간대 할인이 적용된다. 대형 트럭 기사들이 톨비를 할인받으려고 무리해서 밤 시간대를 골라서 다니는 게 이 때문이다.
  3. 소형차는 주말과 공휴일에는 또 반대로 소폭이나마 할증되기도 한다.
  4. 끝으로, 차량이 아니라 사람을 근거로 할인해 주는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 할인도 있다. 이 분야로 등급이 높으면 톨비가 아예 완전히 면제되기도 한다.

지난 2014년인가 15년부터는 설과 추석 연휴 3일 동안은 아예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에서 모든 운전자를 대상으로 톨비가 면제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 무슨 임시 공휴일 때도 잠깐 면제된 적이 있었지만 그건 일회성 이벤트였고, 명절 면제는 관행이 됐다.

생각보다 변수가 굉장히 많지 않은가?
아 참, 폐쇄식 말고 개방식 구간도 있다는 걸 깜빡했다. 개방식은 차들의 실제 주행 구간을 알 수가 없는데 그럼 전국의 모든 개방식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차종별로 고정된 액수의 통행료를 징수하는지?
자동차 내비에서 경로 계산과 동시에 예상 톨비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건 매우 까다로우며, 도로 공사로부터 공인 API/SDK 같은 거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하철의 운임이 비현실적으로 환승을 자주 하더라도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단 거리를 가정하고 산정되듯, 고속도로 톨비도 출발 IC와 도착 IC 사이에 여러 경로가 존재 가능하다면 이론적으로 가능한 가장 저렴한 구간을 가정하고 톨비가 산정될 것이다.

2. 수도권 대중교통 통합 요금제

오늘날 서울과 수도권에서 시외버스 아래 등급의 버스들, 그리고 일반열차 아래 등급의 광역전철과 지하철들은 통합 환승 할인 요금제를 적용받고 있다. 승객은 이용한 교통수단들 중 가장 비싼 것의 기본요금(마을버스 < 시내버스 < 지하철 < 좌석버스 < 광역버스..)부터 시작해서 나머지 추가 요금을 내게 되는데, 추가 요금은 이용한 거리에 비례한다.

대부분의 경우 10km 거리까지가 기본 요금이고, 그 뒤 5km당 100원씩 올라가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전철에는 버스에 없는 다음과 같은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 총 이용거리가 50km (기본 10km + 40km, 800원 추가)를 초과하면 이후 거리부터는 8km당 100원으로 임률이 저렴해진다.
  • 단, 서울· 인천· 경기도 구간과 그 바깥 구간을 연속해서 이용하는 경우, 전자의 구간에 대해서만 위의 임률이 적용된다. 충청도(경부선 천안..)나 강원도(경춘선 춘천..) 구간은 무조건 4km당 100원으로 비싸게 계산된다.
  • 공항 철도는 역시 영종대교를 건너는 구간이 제일 비싸다. 10km까지는 900원 고정이지만 그 뒤부터는 1km당 130원으로 폭증한다.
  • 용인과 의정부에 있는 경전철들은 기본요금이 2, 300원 남짓 추가되는 것 말고 임률이 바뀌는 건 없다. 추가 요금이 발생하는 방식이 기존 기본요금 + alpha인지, 아니면 max(기존 기본요금, 경전철 기본요금)인지는 잘 모르겠다.
  • 신분당선은 1차 개통 구간인 강남-정자, 2차 개통 구간인 정자-광교로 구분해서 둘중 한 구간만 이용하면 기본요금 1000원 추가, 모두 이용하면 1300원 추가이다. 물론 거리비례 요금은 별도로.. 2차 구간이 개통했던 직후에는 요금 계산 방식이 더 복잡했고 서울-경기도 경계 구분을 했었지 싶은데.. 저건 그나마 간소화된 형태이다.
  • 경춘선 ITX 청춘, 공항철도 직통열차는 동일 승강장에서 운임 체계가 다른 별도의 좌석형 일반열차를 굴리는 예이다. 누리로는 동일 승강장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좀 애매하고..

고속도로와 철도 모두 민자 구간이 등장하면서 요금을 따로 정산할 필요가 생겨서 시스템이 이렇게 복잡해져 있다.

  • 버스/전철 공통 적용: 조조할인
  • 버스: 아무리 장거리여도 추가요금이 기본요금보다 더 많이 발생하지는 않게 보정, 1회 비환승은 기본요금으로만(서울 한정), 다인승
  • 전철: 최단거리 이용 추정 원칙, 운영구간별 요금 정산, 노인 무임

3. 제한 시간

고속도로는 통행료만 지불한다고 다가 아니고.. 회당 체류 시간이 제한돼 있다.
서울 지하철이 5시간 제한이 있듯이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제한 시간은 24시간이다. 즉, 진입한 지 하루 안으로는 출구 IC로 나가 줘야 한다. 시간이 경과되면 고속도로에서 도대체 뭘 했는지를 의심받을 수 있고 추가 요금을 내게 된다.

솔직히 이 좁은 땅에서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이동한다 해도 자동차로 24시간이 넘게 걸릴 일은 없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건 차로 여러 사람들이 휴게소에서 모인 뒤, 자기 차를 거기에 두고 한두 차량에만 다 모여서 타고 놀러 가서는 며칠 있다가 돌아오는 상황이다. 그러면 그 차들은 고속도로 내부에서 24시간이 넘게 세워져 있게 된다.

글쎄, 이렇게 세워진 차들이 많다면 휴게소에 장기 주차된 차들 때문에 다른 차들이 못 들어와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장기 주차가 가능하다고 정식으로 지정된 휴게소에서 추가 요금이라도 내는 조건으로 이런 걸 허용한다면 운전자와 도로 공사들이 모두 윈윈 하는 전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화장실과 편의점 정도만 달랑 있는 '주차장' 휴게소도 있으니 말이다. (졸음 쉼터보다 크고 정규 휴게소보다는 작은..)

쉽게 말해 이런 식으로 장기 주차를 양성화 합법화하는 것이다. 주차 요금이 그 차들이 모두 움직일 때 드는 기름값과 톨비와 타지의 주차 비용보다 더 비쌀 리는 절대 없을 테니..
안 그래도 요즘은 하이패스 기술이 발전하고 휴게소도 중간 회차를 굳이 금지하지 않는 형태로 만들어지는 추세이지 않은가? 휴게소에다가 차를 장기 주차했다가 중간 회차하는 것은 마치 휴게소를 고속버스 중간 환승지로 이용하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활용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0/06/23 08:36 2020/06/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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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부선의 전철화

우리나라 최대의 간선 철도인 경부선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전철화가 됐다.

(1)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과 직통으로 수도권 전철 운행을 하기 위해 서울-수원 구간이 가장 먼저 전철화됐다. 하지만 이때 이후로 거의 30년 동안 추가적인 전철화는 전무했다. 뭐, 여기 대신 경부고속선을 따로 만들긴 했지만..

(2) 2003년 4월 30일, 수원에서 딱 두 정거장 더 남하한 수원-병점 구간이 전철화된 동시에 선형 개량과 2복선화도 같이 진행됐다. 원래 있던 선로 방향에는 병점 차량기지가 만들어졌으며, 회차를 위한 입체교차 선로도 같이 만들어졌다.

(3) 2004년 4월 1일, KTX의 운행을 위해 대전-옥천, 대구-부산 구간이 전철화됐다. 전용 고속선이 없기 때문에 기존선의 전철화부터 먼저 한 것이다.
옛날에 중앙선이 전구간 복선화를 할 여력이 도저히 안 되니 신호장이라도 늘리고 단선 전철화부터 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하겠다. 거기는 힘이 더 좋은 전기 기관차를 투입하는 것만으로도 화물의 수송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4) 2005년 1월 20일, 병점-천안 구간이 전철화 및 2복선화됐다. 이제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수원과 오산, 평택을 넘어 천안까지 가게 되었다. 병점은 수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다 차량기지와 입체교차 시설 때문에 중요도가 높아서 2년 먼저 미리 개통했던 것이다.

(5) 2005년 3월 30일, 전철화된 근처의 충북선과 서울 방면의 연계 강화를 위해 천안-조치원 구간이 전철화됐다.

(6) 2005년 7월 1일, 충북선과 대전 방면의 연계 강화를 위해 조치원-대전 구간도 전철화됐다. 대전-제천 무궁화호에 전기 기관차를 투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렇게 2005년에 천안 이남에서 전철화 과업은 앞의 광역전철이나 고속철처럼 여객의 관점에서 변화를 야기한 것이 없다 보니.. 존재감이 매우 미미하다. 잘 알려지거나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인터넷에서 관련 언론 보도를 거의 찾을 수 없다.

(7) 그리고 2006년 12월 7일, 대구-옥천이 산악 구간의 선형 개량과 함께 전철화됨으로써 경부선 441km 전구간이 전철화가 완료되었다. 선형 개량을 하면서 길이도 좀 짧아졌을 텐데 얼마나 개선됐는지는 딱히 자료를 못 찾겠다.
경부선의 전구간 전철화는 상징성이 크니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알리고 보도했었다. 이제야 중앙선뿐만 아니라 경부선 일반열차에서도 전기 기관차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오늘날 새마을호의 후신인 ITX-새마을 전동차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경부선의 전구간 전철화 완료 이후 1주일 남짓 뒤인 12월 15일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의 북쪽이 의정부북부에서 소요산까지 연장됐다는 것도 추가로 알아두면 좋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2년 뒤인 2008년 12월 15일엔 남쪽 끝이 천안에서 또 연장되어 장항선의 신창까지 가게 됐다. 2009년 여름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누리로 전동차가 등장한다.

그 사이의 2008년 1월에 장항선과 군산선이 새 선로로 연결되었다. 거기 일대에 있는 세풍제지선이 한때 철덕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없어졌다. 그게 그 시절 그 지역의 주요 철도 역사이다.

2. 고속선의 개통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기에는 좀 짧으니, 기존선 말고 고속선도 살펴보면 이렇다.

  • 2004년 4월 1일, 서울-대전-대구 (1차)
  • 2010년 11월 1일, 대구-부산 (2차)
  • 2015년 8월 1일, 대전과 대구 도심 구간까지

경부선 쪽은 이런 순서대로 완공됐다.
호남 고속철은 2015년 4월 2일에야 오송-광주송정 구간이 완공되어 1차 개통했으며, 광주송정에서 목포까지는 여전히 호남선 기존선 기반이다. 경부고속선이 대구까지만 개통했던 과거 시절과 상황이 비슷하다. 잔여 구간은 현재까지도 고속화 공사가 진행 중이며 앞으로 몇 년은 더 있어야 완료될 것 같다.

이제는 시속 300까지 밟지는 못해도 그래도 200 정도는 밟을 수 있는 준고속선이라는 개념도 생겨 있다. 경강선 내지, 개량된 전라선처럼 말이다.
참, 포항 쪽도 준고속선이 완공되어 호남선 개통과 같은 날에 KTX가 개통했다. 그쪽은 기존 동해남부선이 완전히 걷히고 기존 경주 역이 신경주 역으로 완전히 대체될 날만 남았다. 아울러 대구선과 중앙선 복선 전철화가 진행 중이다.

3. 2020년 상반기의 철도계 동향

(1) 경의선 수도권 전철화 구간이 문산을 넘어 드디어 임진강까지 연장됐다(3월 28일). 그 사이에 있던 임시승강장인 운천 역은 폐쇄되고 정식 역사가 지어지고 있으며, 문산-도라산 사이는 하루 4번 셔틀 열차만 왕래하고 있다.
이는 중앙선 끝의 지평 역에도 하루 단 4회만 열차가 운행되는 것과 처지가 같지는 않지만 비슷해 보인다. 경의중앙선의 양 끝에는 열차가 하루에 4회만 다니는 셈이다.

내년에는 도라산 역까지도 전철화가 되고 경원선도 소요산 이북의 연천까지 수도권 전철이 연장될 예정이니 더욱 기대된다. 그런데 단선 전철이라니..
경남 양산에서 건설 중인 경전철이 전국 최초의 단선 도시철도가 될 예정인데.. 경원선은 전국 최초의 단선 '중전철' 광역전철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게 되겠다.

(2) 지난 4월 1일부터 서울 지하철들의 새벽 1시 운행이 중단되고 막차 시간대가 자정으로 당겨졌다.
기억하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이건 2002년, 이 명박 서울 시장 시절부터 행해진 것이다. 그 1시간 연장 운행 관행이 거의 18년 만에 무기한 중단되고 원래대로 돌아간 셈이다.

자동차에다가 비유하자면.. 일반인이 시속 200까지 밟을 일이라고는 현실에서 거의 없다. 그래도 시속 200까지 내는 고성능 차를 몰면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120쯤은 아주 가볍고 여유롭고 가뿐하게 달릴 수 있다.
그것처럼 열차가 막차가 1시이면 그 전의 자정 시간대엔 중간 주박역에서 끊어지지 않고 종점까지 쭉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다. 열차의 막차 시각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4. 참고: 철도역과 고속도로 나들목의 위상

어떤 지역에서 그 지역명을 그대로 딴 대표 철도역은 대체로 그 지역의 대표 행정기관(시청· 군청)과도 별 차이 없을 정도로 완전 시내 도심 중심부에 있는 편이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부산과 인천이야 항구와 더 가까이 있지만, 그래도 수도 서울이나 대구 정도만 해도 시청과 철도역이 꽤 가까이 있다.

그 이유는 뭐.. 다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가장 단순하게는.. 철도가 개통하던 시절에는 전국 어디건 시가지의 크기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기준으로는 철도가 좀 변두리 외곽에 만들어진 것인데도 나중에는 그 철길 주변도 역세권 버프를 받고 온통 개발되어, 결과적으로 도시의 중심부처럼 바뀌었을 수 있다. 서울 남산이 지금은 남쪽 끝의 산이 전혀 아니라 그냥 서울 중심부의 산으로 바뀌었듯이 말이다.

더구나 옛날에는 자동차가 지금처럼 보급돼 있지 않았으며, 승객을 철도역까지 연계하는 보조 대중교통이 충분치 못했다. 그러니 철도의 혜택을 입으려면 닥치고 최대한 역에 가까이 붙어서 살아야만 했다. 철도역이 도시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철도역과 달리, 고속도로 나들목은 이용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넘사벽 급의 수송력을 자랑하는 자동차이다. 여기는 애초에 일반 도로와 자동차 전용 도로를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속도로 나들목은 태생적으로 도시의 외곽 변두리 끄트머리에 있는 게 자연스럽다. 고속도로 나들목 주변까지 온통 개발되고 건물로 뒤덮힌 경우는 수원 IC처럼 매우 드물다. 경인이나 외곽순환 고속도로 나들목 주변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이런 개념조차 생소했다. 그래서 도시의 시장이라는 사람이 XXX 나들목을 자기 관할인 XXX 시의 도심 안으로 유치하겠다고 떼를 쓰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새로 만들어지거나 이설되는 철도역들도 마치 고속도로 나들목처럼 온통 외곽 변두리에 자리잡는 추세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선로의 선형을 최대한 직선으로 만들려다 보니 기존 도심지를 경유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굳이 간선 철도가 시가지를 대놓고 통과하지 않더라도 시가지와 철도를 연계해 주는 다른 교통수단이 충분하다는 것.

결국은 철도는 당장 역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도 고속화와 직선화로 대량 간선 수송에 충실하고, 단거리 연계는 다른 교통수단이나 도시철도가 담당하는 것이 시스템 전체의 교통 효율에 좋다는 것이다. 그러니 요즘 철도역들이 20세기의 철도역처럼 시내 깊숙히 들어와 있지 않고 외곽으로 멀어지는 것을 마냥 나쁘게만 보지 말고, 그 트렌드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0/04/22 08:35 2020/04/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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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찬가

1.
내 개인적으로는 진정한 철덕이라면 일단 자기 팔이나 다리를 어느 정도 벌린 폭이 1435mm 표준궤인지 자 없어도 감을 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폭과 무게와 차륜 크기가 동일한 사륜자전거를 타고 같은 힘으로 페달을 밟을 때,
철 바퀴로 레일을 달릴 때가 고무 바퀴로 아스팔트를 달릴 때보다 얼마나 더 매끄럽게 오랫동안 잘 나아가는지를 직감적으로 체득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거야말로 철도의 존재 이유와 당위성을 설명하는 본질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철도가 바퀴의 마찰을 줄여서 효율을 올렸다면, 미래의 궤도 교통수단은 자기 부상 방식으로 전기 저항과 마찰을 더 줄이고, 더 나아가서는 전용 터널에서 공기 저항까지 극복해서 극도의 효율과 속도를 실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
체코의 드보르작뿐만 아니라 프랑스에도 아르튀르 오네게르라고 아주 열혈 철덕 작곡가가 있었다.
아아.. 프랑스는 100년 전 20세기 초에도 “퍼시픽 231”이라고 증기로 이미 시속 120km를 찍었던 고속열차를 개발한 바 있다. 그리고 저 사람은 그 열차에 감탄해서 동명의 교향곡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달렸던 ‘파시’ 증기 기관차하고는 태평양이라는 이름의 어원만 동일할 뿐, 기술적으로는 관계 없다.

“나는 언제나 기관차를 정열적으로 사랑하였다. 나에게 있어 기관차는 살아있는 것이나 같은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여자나 말을 사랑하듯 나는 기관차를 사랑하였다.
이 곡에서 내가 나타내려고 한 것은 단순하게 기관차 소음의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가시적인 인상과 하나의 육체적인 희열을 음악적으로 구성, 번역하려고 한 것이다.”
-- 아르튀르 오네게르


드보르작은 자기가 인생을 다시 살아서 증기 기관차의 제작자가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음악 커리어와 교향곡쯤은 몽땅 포기할 의향이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저 사람도 만만찮다~!!

3.
철도가 없던 시절의 역사 암기는 정말 고문이 따로 없다. 국사 시험 도대체 어떻게 치냐..?? ㅠㅠㅠ
근현대 이전의 역사는 역사가 아닌 것 같다. -_-;;

태정태세 문단세 이런 건 죽어라고 안 외워지지만.
1899년 9월 18일 제물포-노량진 경인선, 1905년 1월 1일 경부선, 1908년 4월 경의선, 1914년 호남선, ...
1946년 해방자호, 1955년 통일호, 1960년 무궁화호, 1969년 관광호, 1974년 새마을호와 서울 지하철 1호선,
1981년 경부선 서울-수원 2복선, 1980~1984년 서울 지하철 2호선, 부산 지하철 1호선 등등등등등...은
머리 뇌세포에 오일이 발라지기라도 했는지 날짜와 연표가 그냥 술술술 외워진다.

이게 바로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Looking for you의 기적이다.
오늘도 철도님 사랑합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4/15 08:36 2020/04/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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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 이모저모

철도는 빼박 육상 교통수단이지만, 우리말 한정으로 천문 우주와도 일말의 접점이 있다. 바로.. ‘궤도 軌道’가 railway도 되고 orbit도 되기 때문이다.
용어 복습을 하자면, rail 궤조 ⊂ railway 궤도 ⊂ track 선로이다.

  • 모노레일은 궤도가 단 하나의 궤조로만 구성된 교통수단이고, 전차선이 바닥의 양 궤조 사이에 같이 깔려 있으면 그 선을 제3궤조라고 부른다.
  • 궤도가 상하행별로 2개로 구성된 철길은 복선 선로 double track이라고 부른다.
  • 끝으로, 시설에 구애받지 않은 통합 집합적인 명칭이 the railroad 철도이다.

물론 천체의 궤도는 지상 열차의 궤도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0의 개수가 차이가 날 정도로 길고 방대하다.
우리나라 철도의 커브는 극악의 급커브인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종각이 반경 140m짜리이고 최상의 퀄리티인 경부고속선의 급커브가 7000m인 반면..
우주로 가면, 지구의 인공위성만 해도 지구의 평균 반지름 6400km에다가 저궤도 300~500km를 더하면 얼추 7000km가 나온다. 7000m가 아니라 그 1000배인 7000km가 된다~!

하물며 지구가 아닌 태양을 공전하는 궤도는 뭐.. 반경이 수억~수십억 km에 달하니, 이건 그냥 직선이나 마찬가지이다. 철길이 이런 경로대로 깔려 있다면 열차는 그냥 엔진이 과열돼서 터질 때까지 밟아도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문득 테이큰 영화 대사가 떠오른다. "Do you have any idea what it costs just to change the angle of the lens on a satellite orbiting 200 miles above the Earth?" 테이큰은 악당들 때려잡는 액션만 있는 게 아니라 work out, personal 같은 성경 용어도 나오고, 더 나아가 우주에 대한 통찰까지 제공하는 영화인 셈이다~!

그래서 본인은 인공위성에 대해서 문득 관심이 생겼다. 철도, 항공 다음으로는 우주이구나.. ㅎㅎ
인공위성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인류의 역사상 최초로 "실물 사진"으로 입증해 준 존재이다. 더 나아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생중계, 유선 전화선이 연결되지 않은 곳에서의 국제 전화(남극이나 망망대해 선박..), 그리고 지구 어디서든지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GPS까지.. 다 인공위성 덕분에 가능해진 것들이다. 우리가 매일 너무 당연하게 얻는 일기예보와 각종 구름 사진, 미세먼지 사진도 인공위성을 통해 얻는 정보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또한, 인공위성 중에는 지구 관측뿐만 아니라 천문 관측용도 있다. 지구에서도 천문대는 산꼭대기 같은 최대한 높은 곳에 만들려고 애쓰는 편인데, 대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우주를 우주에서 관측 가능한 것은 치트키 급의 엄청난 혁신을 천문학계에 선사했다. 허블 우주 망원경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엄청난 인공위성에 대해서.. 스푸트니크부터 시작해서 미주알고주알 모든 것까지는 다루자면 시간과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내가 저 분야를 전공한 것도 아니니.. 이 글에서는 (1) 궤도 그리고 (2) 우리나라의 인공위성 개발 내력 정도만 얘기하도록 하겠다.

1. 궤도

일반적인 비행기야 대류권과 성층권 사이 보통 10km대의 고도에서 날며, 전투기 같은 특수한 고성능 비행기도 20km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걔네들은 주변 공기를 이용해서 엔진을 상시 가동해야 하는 물건이다.

그러나 인공위성은 공기가 없는 곳에서 한번 왕창 빠르게 주어진 속도만으로 지구를 뱅글뱅글 반영구적으로 돌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못해도 160km 이상의 열권~외기권 영역에서 활동한다.
여기부터 2000km 정도까지는 그냥 '저궤도'라고 불린다. 고도가 낮아야 위성이 지표면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겠지만, 고도가 너무 낮으면 그만치 빠르게 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공기와의 마찰도 커져서 고도의 유지가 어렵다.

아폴로 우주선은 약 190km대의 일명 parking orbit에서 지구를 1시간 28분 16초 만에 한 바퀴 도는 속도로 두세 시간 남짓 있다가 3단 엔진을 켜서 달로 갔다. 그 정도로 아주 잠깐만 있다가 자리를 뜬 것이니 그런 낮은 고도만 유지해도 괜찮은 것이었다.

인공위성들 중 유일하게 '유인'인 국제 우주 정거장은 320~345km대의 고도를 유지하는 중이라고 한다. 사람이 수시로 드나들기도 해야 하니 막 한없이 높은 곳에 있지는 않다.
테이큰에서 브라이언이 200마일 고도 드립과 함께 뻥카를 쳤던 첩보 위성도 당연히 이와 비슷한 저궤도인 셈이다.
허블 우주 망원경의 공식 고도는 559km로, 지구 관측용 위성보다야 당연히 더 높다.

지구에서 서울-부산 거리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를 수평이 아니라 정확하게 수직 이동만 해도 우주가 나온다는 게 흥미롭지만.. 그 거리를 수평 이동하는 것과 수직 이동하는 것은 난이도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이다.
1500km대의 고도는 저궤도의 끝물 정도에 해당한다. 이쯤 되면 공기와의 마찰 걱정은 덜하지만, 자기장이 강한 밴 앨런 대에 속해 있어서 전자기기들이 교란 받고 제대로 동작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다가 대략 2000km 이상부터 36000km까지는 중궤도라고 일컬어진다. 여기는 지표면을 세부적으로 관찰하고 촬영하는 것보다는, 넓은 영역으로부터 신호를 주고받는 게 더 중요한 통신 위성이 들어가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그 이름도 유명한 GPS 위성이 약 20000km대 고도에 있다. 마치 지도가 대축척(좁은 영역, 많은 디테일)과 소축척(넓은 영역, 적은 디테일) 버전이 모두 쓰이듯, 인공위성도 용도별로 궤도의 고도가 차이가 나는 셈이다.

중고도의 한계치인 대략 36000km를 정지 궤도라고 한다. 여기는 인공위성이 지구의 자전 속도와 동일한 속도로 도는 게 가능한 지점으로, 지표면에서는 계속해서 동일 지점 상공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정지 궤도라고 불린다.
왜 저 지점이냐 하면.. GMm/r = 1/2 * mv^2 이라는 식에서 만유인력 상수 G (6.673*10^-11 …), 지구의 질량 M (5.9*10^24 kg), 적도 지점에서 지구의 자전 속도 v (초속 463m/s)를 집어넣으면 나오는 r 값이기 때문이다.

위성의 질량 m은 서로 약분되기 때문에 계산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만유인력 상수의 단위 차원은 길이^3, 질량^-1, 시간^-2. 다시 말해 속력의 제곱에다가 길이/질량을 추가로 곱한 것과 같다. 고등학교 물리를 다시 복습하게 되네..;; 까마득한 그 옛날에 생각보다 심오하고 대단한 걸 배웠었다.

정지궤도 위성의 자전 속도는 지구의 자전 속도보다야 훨씬 빠른 초속 2.6 ~ 3km대이지만, 아무래도 저궤도 위성보다는 대략 1/3에 가까운 느린 속도이다. 그리고 그 특성상 아무 지점이 아니라 적도의 상공에서만 정지해 있을 수 있는지라, 극지방에 가까운 고위도 지방에서는 정지궤도 위성의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이건 한없이 추락하면서 정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정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지표면에서 보기에 정지가 아닌) 지구의 인력, 달의 인력, 태양의 인력 등등이 모두 평형을 이뤄서 추락하지 않을 수 있는 지점은 거기보다 훨씬 더 멀리 나가야 도달할 수 있다. 지구와 달만 생각하면 거의 9:1에 가까운 지점인데, 지구 정지 궤도는 그 반대인 1:9에 가까운 지점이다(라그랑주 점). 이건 애초에 인공위성의 능력을 벗어난 영역일 것이다.

저궤도와 중궤도를 넘어 고궤도는.. 이런 게 있다는 것 정도만 알면 될 것 같다. 그 정도로 멀고 높은 곳에서 돌고 있는 위성이 있긴 한지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공위성 중에는 타원 궤도를 도는 놈도 있다. 한 초점인 지구에 근접했을 때는 거의 중-저궤도 급이지만 다른 먼 초점으로 갔을 때는 지구에서 4만 km 가까이 떨어지기도 하니, 이건 저궤도와 고궤도의 특성을 모두 갖춰다고도 볼 수 있겠다.
요런 타원 궤도를 잘 설계하면 인공위성이 집중적으로 탐사해야 하는 지점에서는 천천히 돌다가, 별 필요가 없는 곳에서는 빨리 통과하게 할 수도 있다. 요건 소련-러시아가 연구를 많이 해서 '몰니야 궤도'라고 불린다.

달은 지구의 자연위성이며, 모행성에 비해 이례적으로 비정상적으로 큰 천체임이 주지의 사실이다. 지구로부터의 거리도 38만 km가 넘으니 고궤도의 갑이라 하겠다. 1년에 수 cm 남짓 지구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것도 관측을 통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성은 일반적으로는 속도를 잃고 모행성과 가까워지는 게 자연스러운데, 관성 이상으로 자체적인 운동 에너지라도 있는지 모행성과 점점 멀어지는 건 역학적으로 어떻게 가능한 현상인지 모르겠다.

저에서 고까지 고도의 크기를 살펴봤으니 그럼 저궤도 위성 얘기를 좀 더 하고 이 주제를 맺도록 하겠다.
저궤도 위성은 지표면을 관찰하기 위한 용도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지구의 모든 지점을 두루 다닐 수 있는 궤도가 바람직하다. 그래서 적도만 수평으로 도는 게 아니라 남북극 수직으로, 아니면 하다못해 비스듬한 궤도를 선택한다.

아폴로 같은 우주선이야 지구의 자전 원심력과 공전 속도로부터 뽕을 최대한 뽑는 게 목적이다. "내가 parking orbit에서 잠시 머무른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이니 닥치고 적도 수평 궤도만 잠깐 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인공위성은 지구만 두루 살펴보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운용 방식이 살짝 달라지는 셈이다.

이런 저궤도의 바리에이션으로 '태양 동기 궤도'라는 것도 있다. 지구의 태양 공전면을 위에서 아래로(북극 쪽을) 내려다봤을 때, 인공위성의 공전 궤적이 지구-태양의 직선 경로와 늘 일직선이 되게 하는 궤도를 말한다.
계산이 까다롭겠지만 궤도를 이렇게 잘 동기화 시키면 위성이 매일 같은 지점을 지날 수 있으며, 인공위성이 태양열에 노출되는 빈도도 1년 내내 균형이 잡히기 때문에 기계의 수명 관리에 도움이 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인간이 만든 기계들 중에 태양광 발전의 덕을 진작부터 제일 많이 보고 있는 물건이 바로 인공위성이기도 하다.

2. 우리나라의 인공위성 개발 이력

자국 인공위성이 없는 나라에서는 인공위성으로부터 얻는 정보나 서비스를 인공위성 보유국으로부터 매번 구입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중계방송 같은 것뿐만 아니라 일기예보 데이터도 말이다. 물론 당장은 그렇게 구입하는 게 원천기술 개발보다 비용이 저렴하겠지만, 고급 서비스를 기반 기술 없이 무작정 다 수입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8월에 발사된 '우리별 1호'가 일단 최초의 자국 국적 인공위성이다. 하지만 발사체는 말할 것도 없고 위성의 실질적인 설계와 제작까지 사실상 외국 업체였다(특히 위성의 제작은 영국). 우리나라는 아직 어깨 너머로 보고 기술을 배워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다가 1993년 9월의 우리별 2호가 국내에서 개발· 제작되어 인공위성계의 포니와 비슷한 물건이 되었다. 아직까지는 뭔가 통신· 방송 기능을 하는 위성이 아니라, 기술 습득 자체가 목적인 프로토타입 수준이었다.

자동차, 컴퓨터, 원자력에 이어 인공위성은 1990년대는 돼서야 국산이 나온 것이다.
우리별 브랜드는 1999년 5월에 발사된 3호를 끝으로 더 쓰이지 않게 되었다. 2003년 9월에 발사된 우리별 4호부터는 '과학기술위성'이라는 평범한 브랜드가 붙었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을 맨땅에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한동안 이윤 없이 기초 연구 투자를 많이 해야 하며, 결과물도 무슨 자동차처럼 엔드 유저가 바로 사용 가능한 형태가 아니다. 이거 연구 개발을 사기업이 몽땅 담당하는 건 곤란하니 국방 과학 연구소 같은 국책 연구소가 따로 만들어졌다. 그게 바로 '인공위성 연구 센터'이다. 요즘은 '항공 우주 연구원'(KARI 항우연)도 인공위성의 개발에 관여하긴 하지만, 발사체 로켓이랑 인공위성은 아무래도 목적과 성격이 다르니 연구소를 분리하는 게 이치에 맞겠다.

인공위성 연구 센터는 무려 카이스트 대전 캠퍼스의 내부에 있다~!
어이쿠, 대강당과 동문 사이의 길목에 자리잡고 있었구나.. 정말 까맣게 몰랐다. 사실, 난 항우연도 카이스트 북서쪽의 학부 기숙사 철조망 너머 바로 근처에 있다는 걸 모르는 채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항우연이 거기에 있다는 것도 나로 호 때문에 유명세를 타니까 따로 찾아봐서 알게 된 것이다.

우리별 시리즈 이후로 이 인공위성 센터에서 만든 위성은 과학기술위성 시리즈이다.
얘의 2호가 바로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하게 자국 우주 센터의 나로 로켓으로 발사된 덕분에 '나로 과학위성'이라고 따로 명명되었다. 다만, 발사 실패로 멀쩡한 위성을 두 번이나 깨먹었던지라.. 같은 위성을 수차례 다시 만들어야 했다.
그 뒤 과학기술위성 3호는 2013년 11월에 발사됐으며, 현재까지도 관측용으로 운용 중이다.

우리별 말고 '아리랑' 위성 시리즈는 인공위성 센터가 아니라 항우연에서 개발한 저궤도 관측 위성이다. 1호가 1999년 12월에 발사됐다. 이 바닥도 마치 서울 메트로와 도철 같은 양대 산맥 계보가 있는 것 같다.

'무궁화' 위성 시리즈는 국산 기술 개발이 아니라, 그냥 자국 방송과 통신 서비스 목적으로 KT에서 외국 기업에 외주를 줘서 제작하고 발사한 위성이다. 궤도도 정지궤도로 훨씬 더 높다. 1995년 8월에 1호가 첫 발사됐으며, 얘가 우리나라 최초의 자국 국적 통신 위성이다.

한편, 지난 2010년 6월에는 '천리안'이라고 항우연에서 개발한 최초의 국산 정지궤도 위성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얘는 우리나라의 일기예보에도 쓰인다. 1호의 수명이 다하는 것에 대비하여 후속 2호도 이미 개발되었으며 발사를 앞두고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의 인공위성 기술이 발전하고, 인공위성 서비스가 국산화돼 왔다.
다만, 우리나라는 인공위성에 비해 그걸 지구 궤도에 얹어 주는 발사체 기술이 취약하고 부실하다. 뭐, 발사체 기술은 핵무기를 쏘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과 거의 똑같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규제를 받아서 개발을 못 한 것도 있다. 나로 호 한번 쏜 지도 벌써 5년이 넘게 훌쩍 지났구나..

이런 남한에 비해, 북괴는 뭐 국제 협약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한방 크게 해먹는 비대칭 무기에 목숨 걸면서 발사체에 나름 노하우를 갖춘 것 같다.
남한의 종북 빨갱이 정권에서는 기를 쓰고 정체를 은폐하면서 미상의 바르사체, 불쌍의 발사체라고 둘러 말하는데.. 뭐긴 뭐야 그냥 미사일이지..

솔직히 일본의 어느 또라이 극우가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헛소리 갈긴다고 해서 지금 멀쩡한 독도가 일본땅으로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만에 하나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한다고 해서 무슨 1940년대 같은 태평양 전쟁 시즌 2를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그럴 필요도 없다.
일본이 저 뻘짓을 하는 것보다 바로 윗동네에서 계속해서 군사 훈련을 하고 바르사체를 쏘는 게 훨씬 더 위협인데.. 친중종북을 조장하기 위한 반일 반미 선동을 나는 도저히 그냥 봐 줄 수 없다.

아이고, 정치 얘기가 나와 버렸구나. 아무튼 이런 내력으로 인해 남한은 인공위성, 북괴는 발사체가 발달했다. 두 기술이 사이 좋게 융합이 됐으면 좋겠지만 그건 희망사항이고 현재로서는 가능하지 않다.

3. 우주 쓰레기, 우주 공간에서의 충돌 문제

나로 호의 발사 실패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로켓을 발사시켜서 인공위성을 띄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고도가 충분히 높지 않은 인공위성은 공기와의 마찰이 누적되면서 속도를 잃기 때문에 아주 조금씩 지구로 도로 끌려와서 떨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그런 위성들은 기계류의 수명과는 별개로 반영구적으로 운용될 수 없으며, 궤도 유지를 위한 연료가 고갈되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궤도 수명보다 기계 기능 수명이 먼저 끝나서 지구와 교신도 안 되고 고철덩어리가 된 인공위성은.. 딱 곱게 곧장 끌어내릴 수도 없고 굉장한 골칫거리이다. 이런 것들을 일명 우주 쓰레기라고 한다.
우주 쓰레기들은 자신을 실은 채 지구에서 발사되었던 그 로켓의 운동 에너지를 저렇게 그대로 간직해 있다. 태평양 한복판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여 가듯, 지구 저궤도에는 우주 쓰레기 조각들이 쌓여서 주변의 우주 발사체들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먼저 우주가 아닌 비행기 얘기를 잠시 꺼내도록 하겠다.
지난 2001년 1월 31일에는 일본 스루가 만 상공에서 같은 일본항공 소속 여객기(907, 958편) 2대가 관제 착오로 인해 고작 10~20미터 남짓한 거리까지 근접한 채로 교차 통과한 '니어미스' 사고가 났었다.

승객을 몇백 명이나 태운 MD-10 및 보잉 747급 대형 여객기가 3만 피트가 넘는 순항 고도에서 시속 900~1000km로 공중충돌을 할 뻔한 것이다.
그렇게 됐으면 일본은 JAL123 추락 사고(1985)와 테네리페 활주로 참사(1979)를 능가하는 초대형 항공 사고 기록을 보유하게 됐을 것이고 일본항공의 파산은 수 년 이상 당겨졌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양 여객기는 엄청난 후폭풍에 휘말려서 들썩이고 요동쳤으며, 특히 음료 서빙 중이던 907편은 회피 급기동을 하느라 기내가 뒤엎어지고 완전히 난장판이 돼서 100여 명에 달하는 부상자가 발생하고 회항하게 됐다. 거의 자유 낙하에 가까운 급강하라도 했는지, 서빙 카트가 붕 떠서 여객기의 위로 천장을 뚫고 내팽개쳐졌을 정도였다.
이건 준사고가 아닌 사고로 기록됐다. 정신없는 격무에 시달리다가 관제를 잘못한 관제사는 유죄 판결을 받고 해고됐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해프닝 내지 사고가 인공위성끼리도 있었다.
지난 2008년 9월 25일에는 한국에서 2003년에 발사했던 과학기술위성 1호(구 명칭 우리별 4호)가 거의 650km 상공에서 미국의 모 군사위성과 431m 거리를 두고 간신히 비껴간 적이 있었다. 뭐 10m보다는 넉넉한 거리이고 인공위성이 여객기보다는 훨씬 작고 가볍겠지만.. 문제는 속도다.

순항 중인 아음속 여객기가 초속 300m 정도라면 쟤는 초속 7~8km... 수십 배의 차이가 나며 쨉이 안 된다. 초속 7~8km짜리한테 430m 거리는.. 정말 옷깃이 닿은 거나 마찬가지인 초근접인데 다행히 이때는 충돌 사고까지는 안 났다고 한다. 공기가 없다시피하니 후폭풍도 없었을 테고..

하지만 2009년 2월 10일에는 실제로 외국 국적의 인공위성끼리 충돌한 사고도 있었다(미국 이리듐 통신위성 vs 러시아 퇴물 인공위성). 산산조각난 두 인공위성의 파편이 널부러지면서 우주 쓰레기의 양은 더욱 늘어나고 무질서도가 올라가게 되었다..;;

물론 지구 위의 하늘은 매우 광활하고 넓으며, 저런 극단적인 일이 자주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가능성이 확실한 0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인공위성 하나 띄우기 위해 돈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닌데, 비행기의 조류 충돌도 아니고 우주 쓰레기 충돌 때문에 애써 만든 인공위성이 박살이 난다면.. 이는 매우 비극적인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은 비용 문제 때문에 딱히 없는 걸로 난 알고 있다.

이런 비행체에 비해 고속철은 최고 초속이 겨우 8~90m가량인데.. 상하행 열차가 서로 후폭풍 없이 안전하게 교행하기 위해서 양 선로의 간격을 얼마로 두는지, 그 공기역학적 근거가 무엇인지도 문득 궁금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0/03/24 08:35 2020/03/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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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분석

1. 철도 차량의 3무

철도 차량은..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 운전석에 steering 핸들이 없고
  • 좌석에 안전벨트가 없고,
  • 차축에는 차동기어가 없다.

이것이 철도 차량의 3無이다.
자동차는 커브를 돌 때 한 엔진이 생성한 동력을 차동기어를 통해 양 바퀴에다 달리 배분하고, 비행기나 탱크는 아예 좌우의 엔진 출력을 달리해서 속도 차를 만든다.
그에 비해 철도 차량은 바퀴 자체가 완벽한 원기둥이 아닌 살짝 원뿔대처럼 만들어져 있고, 커브를 틀면 레일이 접촉하는 부위의 직경 차이로 인해 양 바퀴의 회전 속도가 차이가 나게 한다.

그리고 철도는 개인 자가용이 전무하다시피한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 선박이야 초대형 선박들도 선주의 신분을 따지면 전부 private 일색이다. 서양에서 사략선이란 게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그 비싼 비행기도 미국처럼 땅 넓고 잘사는 나라로 가면 자가용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지만.. 철도는 자가용으로 굴리기에는 너무 꽉꽉 조여지고 통제되는 시스템이니 private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자가용은커녕 대중교통 운영사 자체가 사기업인 경우도 우리나라는 매우 드물며, 사철도 일부 공장, 발전소 등에 극도로 제한적으로 있는 형편이다.

2. 철도의 경사와 커브

교통 내지 항공 업계에서는 경사를 나타낼 때 각도가 아니라 수평 이동 대비 수직 이동 비율인 기울기, 탄젠트를 사용한다. 우리나라 철도에 규정된 오르막의 한계는 35퍼밀, 즉 3.5%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이미 거의 극악에 가까운 한계이며, 현실에서는 2%대만 돼도 철도 차량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급경사이다.
자동차 도로는 좀 가파른 곳에 5%, 10% 경사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저런 경사 표지판이 있음).. 철도 차량은 등판능력이 부족한 셈이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급경사를 자랑하던 곳은 강원도에 태백선· 함백선이 병행하는 구간이다. 하지만 서울에도 경의선 용산-효창 사이의 지상-지하 구간은 기존 건축물들을 피해서 부족한 공간만으로 수직 이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법을 겨우 간신히 어기지 않는 수준으로 거의 35퍼밀에 근접하는 경사가 생겼다.

서울에서건 용산에서건 경의선이 서쪽으로 방향을 확 트는 건 자연스럽지 않고 부담스러운 급커브인데.. 지하화하면서 급경사까지 생긴 셈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시청-종각에서 급커브를 트는 건 동쪽이고.. =_=)
이와 비슷한 예로, 분당선 서울숲-왕십리 역시 그 깊은 하저터널 이후로 곧장 지상으로 올라오느라 꽤 부담스러운 급경사가 생겨 있다.

이 분야의 끝판왕 구간은 2016년에 개통한 인천 지하철 2호선의 아시아드경기장-검바위이다. 여기도 지상과 지하가 바뀌는데, 여기는 전국의 궤도 교통수단을 통틀어서 가장 가파른 무려 55퍼밀짜리 경사가 있다.
이건 법을 어긴 게 아니라 고무차륜이어서 접지력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반 철차륜 철도라면 가능하지 않다.

3. 철도가 잘못 만들어지는 경우

철도는 사람들의 정치적인 개입으로 인해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잘못 만들어질 수 있다.

  • 님비: 시끄럽다고 철도 건설을 무작정 반대하고 비현실적인 이설 내지 지하화를 요구한다. 요즘 철도는 안 그래도 선형 직선화라는 명목으로 구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만들어지는 편인데 이런 일까지 벌어지면 철도의 접근성과 도로 대비 경쟁력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 핌비: 이번엔 무조건 자기 지역을 경유하라고, 혹은 생판 뜬금없는 곳에 역을 만들라고 요구한다. 선로에 곡선을 만들고 열차의 표정속도까지 떨어뜨려 가면서, 정작 자기들은 열차를 충분히 많이 이용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철도 시설은 여느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한번 만들고 나면 고치기가 극도로 어렵다. 전쟁이나 지진 때문에 다 파괴되어서 몽땅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도를 한번 잘못 만들어서 발생한 손해와 비효율은 후손들이 두고두고 뒤집어쓰게 된다.

핌비 성향으로 인해 철도가 이상하게 만들어져서 철덕들에게 두고두고 까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 오송: 이 분야의 가히 전설을 넘어 레전드라고 불린다. 개인적으로 충북 지역에 아무 연고도 없고 감정도 없지만.. 주민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과 전투력으로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호남 고속철의 선형이 매우 괴상해졌음은 물론, 승객 수요도 못 살린 최악의 자충수를 두게 됐다.
  • 총신대입구: 열차 운영 자체와 관련된 사항은 아니지만.. 총신대는 자신과 그리 가까이 있지도 않은 지하철역의 역명에 왜 그리도 이상한 집착을 했나 모르겠다. 7호선 남성의 부역명에나 총신대를 집어넣고, 4호선과 7호선 환승역은 '이수' 정도로 바꿨어야 했다.
  • 강남리 마을 전철: 광역전철인 분당선에 무슨 농간이 있었는지.. 서울 강남구 구간에 1km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역이 너무 많이 만들어졌다. 이건 두고두고 시간적인 비효율과 금전적인 비효율을 야기하게 됐다(텅 빈 채 왕창 깊기까지 한 여러 잉여역들을 관리하는 비용)

4. 철도 차량의 번호판

철도 차량에는 자동차처럼 간편하게 탈착할 수 있는 번호판 같은 건 없다.
그 대신, 기관차의 경우 앞면에 차량 등록번호 4자리가 새겨져 있다. 현재 7xxx대는 대형 디젤 기관차, 8xxx대는 전기 기관차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는 마치 비행기의 식별 번호와 비슷하다. 한국을 뜻하는 HL로 시작하는 4자리 숫자가 있는데, 맨 앞자리는 그 비행기의 엔진 형태를 나타낸다. 7xxx, 8xxx는 제트기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객기가 해당되고, 그보다 작은 번호는 헬리콥터나 프로펠러기, 피스톤 경비행기에 할당되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KTX도 앞부분을 잘 보면 2~3자리짜리 일련번호가 붙어 있다. 옛날에 새마을호 디젤 동차의 표면에는 그런 걸 딱히 못 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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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행기와 철도의 유사점

(1) 비행기가 광활한 하늘에서 정말 높고 빠르게 날다가 고도와 속도를 줄이고 줄여서 딱 정확하게 활주로의 시작 지점에 맞춰 착지하여 착륙하는 건 참 경이롭다. 지하철 전동차가 빠르게 달리다가 딱 정지선에 맞춰 칼같이 정차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2) 착륙을 최대한 부드럽게 한다고 해도 비행기의 랜딩기어가 착지하는 순간에는 객실에도 진동이 전해지게 된다. 이건 철도 차량으로 치면 레일 이음매를 고속으로 통과할 때 전해지는 진동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물론 요즘 철도는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음매 없이 쭉 매끄러운 레일을 놓는 게 대세이며, 비행기 역시 조종 기술과 랜딩기어의 서스펜션의 발전을 통해 착륙 진동을 줄이고 있다.
덜컹거림이 없는 철도라니, 마치 켜질 때 깜빡거리지 않는 형광등을 보는 느낌이다.

(3) 비행기에는 동체의 균형을 잡고 방향을 조절하기 위해서 꼬리날개(미익)라는 게 달려 있다. 최소한의 조작만으로 최대의 회전력을 내려면 미익은 동체의 무게중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게 바람직하다. (시소처럼)
미익은 최대한 멀리 떨어진 뒤쪽에 장착되는 부품이라는 점에서 전기 철도 차량의 팬터그래프와 비슷한 존재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0/03/09 08:35 2020/03/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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