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차량의 회송 방식

사람이 타는 교통수단이라는 건 형태와 처지에 따라 "(1) 화물 < (2) 이동 수단 < (3) 주거 공간" 사이에서 가변적인 위상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간단한 이륜차는 (3)의 특성은 거의 없으며 화물과 이동 수단 사이에 해당한다. 접을 수 있는 자전거는 승용차에도 실을 수 있게 (1)을 더 강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륜차 말고도 모든 교통수단들은 엄연히 공장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이며, 공장에서 갓 생산된 뒤 개인이나 운수 회사 같은 고객이 있는 곳으로 인도될 때까지는 거대한 화물과 동일하게 간주된다. 예외적으로 배야 거주성이 가장 강한 놈이며 팍팍 같은 모델을 반복해서 찍어내는 생산이라기보다는 건축· 건조에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자동차 정도만 돼도 법적으로는 거의 '준부동산'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차량 안은 여느 건물 내부와 마찬가지로 주거침입죄가 적용되는 배경이 될 수 있다.

상품이 교통수단 그 자체이니 그 물건을 목적지까지 그대로 굴려서 전달할 수도 있다. 육상이 아닌 다른 교통수단부터 생각해 보자면, 비행기는 그것 말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잉 사 공장에서 생산된 여객기는 그걸 구매한 항공사까지 자가비행으로 인도된다. 그 거대한 비행기를 분해해서 육로· 해상 수송을 할 수는 없으며 다른 비행기에다 실어서 수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배 역시 동력도 없고 카누, 요트, 보트로나 불리는 자그마한 레저용 양산 장난감 급이 아니라.. ship이라 불리고 등기 등록을 하고 이름까지 붙은 거대한 물건이라면 조선소에서 항구까지 당연히 자력으로 가야 한다. 단, 그것만 있는 건 아니고 선박에는 예인선이라는 게 있어서 엔진이 퍼진 배를 견인하거나, 아니면 법을 어긴 배를 나포하기도 한다.

그럼 철도 차량은 사정이 어떨까? 다음과 같은 세 경우가 모두 존재한다.

  • 자력회송: 선로 위에서 자기 동력으로 주행하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로 치면 소비자에게 아직 정식으로 판매되지 않아서 임시 번호판을 달고 자력 주행하는 차량과 같다.
  • 갑종회송: 선로 위에서 자기 바퀴로 구르긴 하지만 자기 동력이 아니라 다른 기관차에 끌려다니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로 치면 바퀴의 일부를 땅에 댄 채 견인되어 가는 것과 같다.
  • 을종회송: 차량이 통째로 트레일러나 화물선 같은 타 교통수단에 실려서 운송되는 것을 가리킨다. 자동차로 치면 승용차 여러 대를 한꺼번에 수송하는 대형 트레일러를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철도 차량이 트레일러로 수송되는 경우, 각 객차들은 당연히 분리되어야 한다.

자력회송은 신차 출고보다는 이미 운행에 투입된 차량이 스케줄의 소화를 마치고 차고지로 들어가는 상황에서(혹은 반대 경우도 포함) 더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시운전'도 이런 자력회송과 비슷한 운행이다. 차량을 베타테스트한 후 차고지로 들어가는 게 목적이니까.. 다만 평범한 회송의 경우 차고지로 들어가는 게 목적인 반면, 시운전은 움직이는 것을 테스트하는 것 자체가 주 목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각각 결과와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 관점이 서로 다르다.

물론, 기관사가 아닌 승객의 입장에서는 회송이건 시운전이건 이런 열차들은 승강장으로 들어오긴 하지만 승객을 태우지는 않고 불 끄고 무정차 통과하는 기분 나쁜 열차일 뿐일 것이다.

신차를 회송할 때는 자력보다는 갑종회송이 더 즐겨 쓰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한 것이.. 신차를 고객에게 인계하는데 이동 과정에서 이미 차량의 동력원을 가동해 버려서 차량을 조금이나마 닳게(wear out) 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바퀴까지 통째로 다른 차량 위에다 얹기에는 크기와 무게가 너무 부담 되고 번거롭기도 하니까.

지하철 차량의 경우 전기 규격의 차이(직류 vs 교류) 때문에 일반열차의 선로에서는 자력회송을 하고 싶어도 어차피 못 한다. 하지만 궤간은 일반열차와 동일한 표준궤이니 선로 위에서 디젤 기관차로 견인해서 수송하는 갑종회송이 가능하며, 지하철 차량의 반입은 갑종회송 방식이 많이 쓰였다.
지난 2012년 6월 3일엔 KTX-산천 열차가 웬 영동선으로 얼굴마담 나들이를 가서 그 당시에 아직 잔존하던 스위치백 구간까지 통과했었는데.. 이 역시 자력회송은 아니고 디젤 기관차에 끌려가는 갑종회송이었다.

자력회송이 '시운전'과 관련이 있다면, 갑종회송은 '구원운전'과 관련이 있다. 한 차량이 동력 계통에 문제가 생겨서 선로 중간에 퍼져 버리면 다른 기관차가 와서 그 열차를 견인해서 끌고 가는 것 말이다.

40여 년 전, 수도권 전철이 첫 개통하던 시절과는 달리 요즘은 육로 수송 인프라가 크게 발달했고 기존 철도와 직결하지 않는 노선과 차량 형태로 철도가 많이 개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차를 반입할 때 을종수송의 비중이 늘어나는 게 요즘 추세이다. 예전에는 엄청 많이 우회하더라도 최대한 기존 일반열차 선로와 지하철 선로를 거쳐서 차량을 반입했지만, 지금은 그냥 트레일러에 싣는다는 뜻이다.

경전철은 말 그대로 차량의 크기와 편성수도 적으니 트레일러 수송에 대한 부담이 중전철보다 덜하다.
공항 철도 열차는 선로가 다 완성되고 경의선과의 연결선이 개통하지도 않았을 때 차량이 반입됐다 보니, 인천 바닷가까지는 기관차 갑종회송을 했지만 영종도의 용유 차량 기지까지는 배와 트레일러를 이용해서 차량을 을종회송 방식으로 반입했다.
단, 2010년의 2차 개통 때 추가로 도입된 차량들은 철길만 거쳐서 반입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역시 일반열차 선로와 연결되는 구간이 아직 전혀 없던 관계로 트레일러로 차량을 반입했다. 하지만 앞으로 공항 철도와의 직통 운행이 시작되면 자연히 공항 철도를 거쳐서 경의선으로도 가는 길이 연결되므로, 추가 차량은 그쪽으로 갑종회송 방식으로 반입되지 않겠나 싶다. 9호선은 끔찍한 혼잡을 호소하고 있는데 언제쯤 차량이 더 반입되려나 모르겠다.

이상. 철도 차량의 회송과 신차 반입에 대해서는 몇 년 전에도 한번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갑/을종/자력'이라는 용어를 동원해서 또 한데 정리해 보게 됐다.
차량 시운전이라고 하면 본인은 성경의 눅 14:19 말씀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사서 그것들을 시험하러 가니 원하건대 나를 용서하라, 하며" (식사 초대를 거절하면서 대는 핑계)

요즘으로 치면 자가용을 뽑았기 때문에 시승하러 가는 것과 비슷한 심상이지 않은가? -_-

Posted by 사무엘

2016/11/09 08:35 2016/11/09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92

어떤 강 위에 교량(다리)을 건설한다고 하면 우리는 강의 양쪽 건너편을 잇는 통상적인 형태의 다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리가 꼭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아니라 강을 따라 그냥 물 위를 지나는 다리도 드물지만 있다. 쉽게 말해 강과 수직이 아니라 평행인 다리 말이다.

작은 개천의 경우 물줄기를 따라 그 위에다 길을 놓아서 개천을 완전히 덮어 버린 '복개 고가 도로'가 있긴 하다. 과거에 서울의 청계천도 그 위에 고가 도로가 닦여 있었지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철거된 걸로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일개 도로만으로 복개가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폭이 큰 하천에도 남단이나 북단을 나란히 지나는 교량이 있다.

그런 교량은 아무 이유 없이 만드는 건 아니고.. 강을 따라 닦였던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건설되곤 한다. 차선수를 늘려야 되는데 한쪽은 강이고 다른쪽은 바위산이거나 이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확장의 여지가 없을 때 말이다. 그럼 다리를 놓음으로써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강을 건너는 다리라면 남단과 북단을 최단거리로 연결하기 위해 당연히 직선 형태로 만들어지는 반면, 강을 따라 지나는 다리는 교량 주제에 커브가 존재하기도 한다.

한강의 서울 시내 구간에서는 북단의 강변북로와 남단의 올림픽대로에 이런 다리가 모두 존재한다.
강변북로는 1970년대에 먼저 4차선이라는 초라한 규모로 건설됐다. 이거 건설과 확장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한때는 용산-왕십리 방면의 경원선 철길을 없애 버리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제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 철도 관계자가 이를 필사적으로 만류한 덕분에 그렇게 되지 않았으며, 경원선은 오히려 용산-성북 복선전철로 거듭났다.
그리고 강변북로의 기존 도로는 서쪽 방면 전용이 되고, 동쪽 방면 도로는 일부 구간이 교량 형태로 새로 만들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편, 올림픽대로는 1980년대의 5공 시절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서울 올림픽의 유치에 성공한 그 당시 분위기를 반영하여 평범한 '강변남로' 대신 저런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하긴 이 도로는 김포 공항과 서울 올림픽 경기장을 직통으로 쭉 잇기도 하니 이름이 88 올림픽 '고속도로'보다는 훨씬 더 타당성과 개연성을 갖추고 있다.

올림픽대로는 노량진동과 동작동 사이의 2km 남짓한 구간이 '노량대교'라고 불리는 교량이다. 강변북로와는 달리 처음 만들어진 1986년 당시부터 상· 하행이 모두 교량이다. 다만, 30년 전 처음부터 지금 같은 광활한 10차선은 아니었으니, 지금 여기를 달려 보면 다리가 덕지덕지 작은 구획으로 나뉘었다가 확장되고 합쳐진 흔적을 볼 수 있다. 교량의 폭을 확장하는 건 터널의 폭을 확장하는 것만큼이나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량대교는 엄연히 이름이 붙어 있는 교량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대로 내부엔 교량 구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어떤 표지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다리는 한강을 '건너는' 다른 교량들을 아래로 지나서 입체 교차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운전자가 노량대교의 존재를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어느 샌가 교량에 진입했다가 어느 샌가 빠져나가 버린다.

다음으로, 서울을 빠져나가서 국도 6호선을 타고 양평 쪽으로 가 보면.. 병풍처럼 펼쳐진 산의 아래로 강이 유유히 흐르는 게 경치가 대단히 아름답다.
원래 거기는 험준한 지형 때문에 좁고 구불구불한 2차선짜리 도로였지만 1990년대에 공사를 통해 4차선으로 확장됐다. 남한강이 북한강과 합류하기 직전 지점(중앙선 철도로 치면 양수-신원 사이 구간)에서는 땅에서 도로를 확장하기가 여의찮은 관계로, 동쪽 방면 도로는 강변북로처럼 강 위에 교량을 나란히 설치하는 방식으로 부설했다. 이 다리는 이름이 '용담대교'이며 지난 1996년에 개통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담대교는 나름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이다. 이 사진보다 색감이 더 아름다운 사진도 있는데 그건 다 가로 크기가 500픽셀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서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남)한강은 서울 시내 구간과는 달리 상수도 보호 구역이라는 것이다. 수질 오염을 야기할 수 있는 일체의 개발· 건축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양평이 괜히 경치가 좋은 게 아니다. 강가는 온통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도 6호선의 교량은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굉장히 특수한 공법을 동원해서 건설됐다고 한다.

끝으로, 유사한 사례가 아니라 대조군을 소개하고서 글을 맺겠다.
경부선 철도는 잘 알다시피 밀양의 삼랑진 역 이남부터 낙동강을 나란히 따라 달린다. 그런데 거기도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노반 확보를 어찌 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한쪽은 그냥 강이고, 다른 한쪽은 바위산이었던 것이다.

경부선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교량을 만드느니 차라리 산에다 불가피하게 터널을 뚫는 걸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삼랑진-원동-물금 일대엔 상행은 그냥 평지인데 하행만 터널을 지나는 기묘한 구간이 몇 군데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음 지도 캡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철도는 좌측통행인 건 다들 아실 테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경부선은 상행 방면이 먼저 생겼고 복선화 공사 때는 오른쪽에다 하행 선로를 '나중에' 추가했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터널까지 뚫지는 않아도 되는 쉬운 곳에다가 선로를 먼저 만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상. 본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 교량 중에는 강을 수직으로 건너는 놈만 있는 게 강을 나란히 따라가는 놈도 제한적이나마 있다.
  2. 그런 교량은 대체로 산과 강 사이에 낀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지곤 한다.
  3. 다만, 경부선 철도의 경우 낙동강 구간에서 그 흔적이 편도 교량이 아니라 편도 터널로 남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20 08:28 2016/10/20 08:28
, ,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85

경강선(성남여주선) 개통

나나나 나나나나나.. 널 좋아한다고
나나나 나나나나나.. 널 사랑한다고 ♪

즐거운 소식은 마음까지 적셔 준다.
몸 속으로 보내는 은빛 메시지
내 혼과 함께 달리는 철도. 성남여주선.

성남여주선(경강선)이 드디어 개통했다.
얘의 성격을 살펴보자면, 여느 지역의 지하철 내지 도시철도가 아니다. 다른 지하철 노선과 연장 직통 운행하지도 않는다. 신분당선이나 서울 지하철 9호선, 공항 철도나 수도권 고속철처럼 코레일의 자회사라든가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회사가 운영하는 게 아니며, 순수하게 코레일 본가의 관할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미 있는 철도를 복선전철화하거나 리모델링· 고속화한 것도 아니고 없는 길을 완전히 새로 낸 것이다. 이건 1970년대의 태백선 이후로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뭐, 경강선의 부분집합 전신에 근접하는 놈이 수려선이라고 먼 옛날에 있긴 했다. 협궤인 데다, 폐선되고 없어진 것도 1970년대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수려선은 수원-용인-이천-여주 순으로 길이 나 있었다. 용인 경전철은 얘의 선형을 아주 약간만 계승했지만, 근본적으로 경전철이라는 한계가 있으니 장거리 교통수단 역할은 못 한다.
그러나 이번에 개통한 경강선의 성남-여주 구간은 중전철에다 일반열차가 다니는 것까지 염두에 둔 full scale 철도이다. 그리고 수원· 용인까지는 가지 않고 광주-이천-여주의 순으로 길을 쫙 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당선과 신분당선은 다 빨강· 노랑 계열의 노선색인데.. 완전 딴판인 보색인 파란색으로 '이매'라는 역명판이 당당히 등장한 걸 보니 처음엔 적응이 안 됐다. 내가 갑자기 색맹이 되기라도 한 건지, 일종의 문화 충격마저 느껴졌다. 경강선의 이매 역엔 '성남 아트 센터'라는 부역명이 병기돼 있지 않다.

판교야 처음부터 건물 부지의 정중앙에(교차로 중앙이 아님), 마치 여의도 역(5호선+9호선)처럼 신분당선+경강선과의 환승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지만.. 이매는 분당선 것조차도 처음엔 존재하지 않다가 지하를 뒤늦게 파내서 꽤 힘들게 중간 추가한 역이다. 위치의 특성상 인근의 야탑과 서현에 비해 한적하고 2006년 10월 현재 아직까지 스크린도어조차 없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고 투자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렸던 역이었는데, 이젠 졸지에 환승역으로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은 스크린도어가 없는 역을 찾기가 더 어려운 지경이구만 저기는 아직..;;
열차가 가까이 진입하는 걸 직접 보니 스크린도어 없던 시절엔 겁 나서 지하철을 어떻게 이용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가까운 미래에 이제 이 역에도 스크린도어가 생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칭찬할 만한 점이 하나 더 있으니, 판교와 이매 모두 경강선과의 환승이 괜찮은 편이다. 고저 차가 크지 않았으며, 계단만 오르내리니 곧장 타 노선 승강장이 나왔다. 막장환승이 아니어서 첫인상이 좋았다.
판교뿐만 아니라 이매에서도 환승을 위해서는 비록 운임이 추가로 붙지는 않지만 게이트에 카드를 일단 찍긴 해야 하더라. 완전히 동일한 회사(코레일) 구간끼리인데도 환승 게이트가 존재하는 게 이례적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코레일은 안내 전광판의 타이포그래피에 심하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굴림체를..;;
또한 열차 위치를 안내하는 꼬마열차 그림도 표시가 그리 정확하지가 않았다. 굼벵이처럼 찔끔찔끔 움직이다가 갑자기 확.. 이건 아쉬운 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판교와 이매를 제외하고 경강선의 나머지 역들은 기본적으로 지상 고가이다. 하지만 중간에 산을 가로지르는 터널을 엄청나게 많이 지나며, 초월 역은 역사 건물은 지상이고 선로는 반지하였던 걸로 기억한다.
광주까지 벗어나서 이천· 여주 정도 가면 대부분의 구간이 지상으로 바뀌고 논밭까지 슬슬 나오기 시작하더라.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야 터널 같은 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긴 경부선 철도도 천안 이남 대전 근처는 가야 처음으로 터널이 등장한다. 그에 비해 21세기에 만들어진 경강선은 대놓고 얼마나 험준하게 건설됐는지를 알 수 있다. 경부선이 지금 같은 근성으로 건설됐으면 서울-부산을 그냥 최단거리로 잇기 위해 대전 따위는 안중에 없이 충주 상주를 곧장 경유해서 만들어졌지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흔들렸지만 초록색이 알록달록하게 찍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곤지암 역은 쌍섬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이름을 자동차 고속도로 IC 이름뿐만 아니라 철도역 이름으로도 접하게 되니 기쁘다. 얘가 경춘선으로 치면 평내호평처럼.. 광역철도와 일반 장거리 간선철도의 경계를 이루는 구간이 아닌가 싶다.
현재 경강선 전철은 4량 1편성으로 개통했으며, 일반 시간대에 1시간에 3대꼴로 운행되고 있다. 위상이나 배차간격은 여러 모로 경춘선과 아주 비슷하다.

경춘선 일대는 북한강이 지나가며, 한강 상수원 보호를 위한 개발 제한이 걸려 있다. 거기는 천상 레저· 관광 철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광주시 일대는 그냥 산 같은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서울이나 성남으로 가는 교통이 불편했을 뿐이다. 그 걸림돌이 해소되고 교통만 편리해지면 거기도 아파트가 잔뜩 지어지고 앞으로 인구가 증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니 이천· 여주까지는 몰라도 광주 곤지암 정도까지만 가는 열차는 앞으로 더 자주 운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편성당 차량도 적어도 6량급으로는 증결하고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강선을 달리는 전동차는 좌석에 난생 처음 보는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차창 밖으로 벼가 익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마을이 하루아침에 광역전철 역세권이 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특히 경강선은 영릉이라고 불리는 '세종대왕릉'을 철도로 접근 가능하게 해서 소위 한글 운동 진영으로부터도 큰 주목을 받게 됐다. 본인도 유일하게 이 역에서는 내려서 주변 지역을 살펴봤다.
역의 내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내용이 벽에 걸려 있고, 역의 일부 외벽에도 한글 자모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다만, 역에서 영릉까지 걸어서 가는 것 역시 여전히 무리다. 서울대입구 역에서 서울대를 가는 것보다도 더 멀고, 오이도 역에서 실제 오이도까지 가는 것과 비슷하다. 3~4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버스 같은 추가 교통수단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9월 말 현재, 역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이제 막 인근 도로의 확장 공사가 한창이더라.

원래 역명도 간단하게 '영릉'이라고 붙이려 했으나, 한글 단체에서 정말 끈질기게 태클을 걸어서 끝내 '세종대왕릉'이라고 이름을 바꾼 거라고 한다.
내가 알기로 역대 조선 왕들의 무덤은 그냥 인서울 내지, 좀 멀리 있으면 남양주쯤에 있는 게 전부인데.. 세종대왕은 워낙 넘사벽급의 성군이었던지라 멀찍이 떨어진 명당에 엄청 크고 화려하게 무덤을 꾸민 듯하다.

사실, 영릉을 찾아가는 데는 이 세종대왕릉 역보다도 다음 종점인 '여주' 역이 차라리 더 나을 정도라고 한다. 거기가 더 번화가이고 버스도 더 많이 다니기 때문.
여주 역은 장암이나 소요산 역처럼 그냥 단선 승강장 형태였다. 열차는 특별히 인상선을 타지 않고 들어온 형태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갔다(오리카에시). 과거의 수려선 여주 역과는 당연히 동일 위치가 아니며, 더 남쪽 외곽에 있다.

세종대왕릉과 부발 역 사이에는 철길이 또 하나 가로질러 갔는데, 이건 차량기지 겸 중부내륙선으로 가는 선로라고 한다(양 진로로 추가 분기함). 경강선 전동차는 이 기지에서는 경정비를 받고, 중정비는 여전히 죽전 인근의 분당 차량기지에서 같이 받는다.

이렇게 답사를 마친 뒤, 본인은 여기까지 온 김에 지금까지 가 보지 못한 신분당선 정자 이남 연장 구간도 시승하고 돌아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분당선도 종점인 광교(경기대) 역 근처에서는 유일하게 지상으로 나온다.
얘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전방이 보이기 때문에 어린애들도 몹시 신기해하는 게 보였다. 신분당선이 미래의 철덕 꿈나무를 양성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으면 좋겠다.

또한, 경강선은 이렇게 공사가 착착 진행되어 영동 고속도로와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대체하는 철도가 어서 생겼으면 좋겠다.
비단 경기도만이 아니다. 부산-울산 광역전철도 개통이 임박했다. 11월 중순쯤 개통해서 올해 하반기에 드디어 수도권이 아닌 지방 광역시 권역에 중전철 형태의 통근형 궤도 교통수단이 등장할 예정이다.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11 08:30 2016/10/11 08:30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82

부산행 (영화)

<부산행> 재미있게 잘 봤다.
새마을호가 나온 <라이터를 켜라>, 서울 지하철이 나온 <튜브>에 이어 KTX가 주 배경인 영화가 나왔다. 영화 스크린에서 서울 역, KTX, 무궁화호, 디젤 기관차 등등을 보니까 참 사랑스럽고 정겹고 훈훈했다.
난 좀비나 출연 배우나 심지어 스토리까지도 하나도 관심이 없다시피하고, 오로지 철도 구경하러 <부산행>을 봤다. 전국에 나처럼 생각한 철덕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열차의 운행 번호(406. 짝수는 하행이 아니라 서울 방면 상행 번호임. 400대는 경부선 부산행이 아니라 경전선 경유 마산행!)라든가 실물과는 다른 차량 외부 행선지 LED 같은 건 너무 사소한 아이템이니 따로 거론하지 않겠다.
꼭 남기고 싶은 소감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촬영의 편의를 위해 그냥 깜깜한 밤을 설정하고 만들었던 <라이터를 켜라>와는 달리,
배경이 낮이고 긴 터널 통과라는 설정으로 명암 조절을 한 것은 굉장히 훌륭한 점이다. 높게 평가한다.
대전-동대구 사이는 실제로도 긴 터널이 많은 구간인데, 그때 남자 주인공들의 객차 이동과 좀비 격투가 등장하는 건 각본을 탄탄하게 잘 짰다고 볼 수 있다.

한 터널이 통과 시간이 2분인가 3분이었는데, 열차가 시속 300km로 정상적으로 전속력으로 달린다면 대전-대구 구간에 통과하는 데 3분씩이나 걸리는 긴 터널이 있지는 않다. 그래도 황학 터널이 거의 10km에 달하며, 비상 상황에서 열차가 약간만 감속을 했다는 걸 감안하면 저런 설정은 설득력을 충분히 얻는다.

2.
철도 차량의 진행 방향과 등화의 색깔을 헷갈리는 건 철도 등장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고증 오류이다. <튜브>에서 본 적이 있는데, <부산행>도 초반에 그런 옥에티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철도 차량은 그 특성상 자동차로 치면 깜빡이(방향지시등)에 해당하는 등화는 없다. 그 대신 전방으로는 백색등, 후방으로는 적색등을 켠다. 국정원 연재 추리 퀴즈 중에 이 특성을 이용해서 용의자의 논리 오류를 논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전기 철도 차량과 관련하여 나올 만한 고증 오류는 팬터그래프의 배치 방향이다. 팬터그래프는 진행 방향 기준 최대한 후방에 있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부산행>의 경우, 열차가 달리는 모습을 외부에서 클로즈업 한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아서 팬터그래프 같은 건 확인할 수 없었다.
<라이터를 켜라>는 장면이 바뀔 때 열차의 외부 클로즈업이 종종 나오기도 했는데 이와 대조적이다. 애초에 쟤는 새마을호 디젤 동차가 배경이어서 전철과는 무관한 설정이기도 했다만..(그래서 주인공이 천장 위를 기어가는 스턴트를 하는 것도 가능했고!)

3.
동대구에서 디젤 기관차에 수십 명의 좀비가 달라붙자 기관차 바퀴에 불꽃이 튀고 힘이 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나온다. 이건 두 말할 나위 없이 연출이며 과장이다.
7000호대 디젤 (전기) 기관차는 무려 수천 마력에 달하는 출력을 자랑하며, 몇십 톤짜리 객차를 몇 개씩 견인하는 차력사이다. 얘 혼자 무게만 120톤을 넘으니, 지상의 도로를 달리는 대형 트레일러의 트랙터조차도 기관차 앞에서는 어설픈 풋 사과로 전락한다.

속도만 느리지 토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그깟 좀비들이 좀 달라붙어 봤자 차량의 주행에는 아무 영향 없다.

4.
저런 것들을 제치고 내 눈에 제일 확실하게 들어온 비현실적 고증 오류는 바로..
대전 역에서 수십 명의 군인 좀비들이 유리창을 깨고 아래의 선로로, KTX 열차 위로 후두둑 떨어졌는데 어떻게 전차선에 닿아서 감전돼서 타 버린 좀비가 한 놈도 없느냐는 것이다. 요거 간파한 분이 계신가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차선에서 펑~펑! 불꽃이 튀고 일부 좀비는 시꺼먼 통구이가 돼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면 관객과 주인공들을 더 멘붕시키고 더 공포감을 조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당장 제작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고, 또 끈질긴 불사신으로 묘사되는 좀비의 이미지와도 맞지 않는 연출이 될 테니 그런 고증까지는 제낀 듯하다.

이 영화는 좀비로 변한 주인공을 제외하면 좀비가 죽는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끝날 때가 다 돼서 그나마 안전한 부산에 주둔한 군인을 제외하면, 군인들도 소총 하나 없이 중대급 병력이 몽땅 좀비에게 무기력하게 쳐발려서 죽거나 자기도 좀비가 되는 모습으로 나온다.
특히 대전은.. 차라리 경비 인력을 처음부터 전경으로만 설정하지 왜 군인을 집어넣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나중에 상화(마 동석)가 승강장에서 사용한 도구도 전경 방패와 방망이이고 말이다.

위험물 관리를 잘못해서 수많은 국민들을 좀비로 전락시키고 나라를 내전 급의 파탄으로 몰아넣은 바이오 기업이 실제로 있다면, 저건 뭐 삼풍 백화점이나 세월호 따위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큰 사고를 친 것이다. 혼란이 다 수습된 뒤엔 그 기업은 공중분해돼야 할 것이고 대표와 핵심 간부들은 사형· 무기징역급의 중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_=;;
그리고 승객 중에서 악역이라면 악역인 영석(김 의성)은 정말 <라이터를 켜라>에서 국회의원 박 용갑, 그리고 <테이큰>에서 장 끌로드, <13구역>에서 국방부 장관 크루거(13구역 몰살 계획이 탄로나서 짤리는..), <타이타닉>에서 '칼' 같은 비열한 캐릭터라 여겨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01 08:37 2016/10/01 08:37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78

경부선 철도의 선로 이설 내력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런 글을 발견했다. 경부선 철도가 1905년 첫 개통한 이래로 선로가 이설되고 선형이 바뀌어 온 대략의 내력이다.
우와! 이렇게 사진과 함께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거 완전 좋다. 딱 내 스타일이다. 저기 사진을 같이 펴 놓고 이 글을 보시기 바란다.

1.
지난 2010년엔 경부선 병점 역 이남으로 분기하는 지선 서동탄 역이 개통했다. 그런데 2000년 초까지만 해도 경부선은 원래 서동탄 방면의 병점기지선이 본선 구간이었다는 거 아시는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수원-천안 2복선 확장+선형개량+전철화 공사 과정에서 병점-오산대 구간 선로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이설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커브도 약간 줄어서 열차가 더 고속으로 달릴 수 있게 됐다. 기존 선로는 차량 기지 입출고용으로 자연스럽게 용도가 변경되었다. 적절하다. 저렇게 재활용을 할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그나저나 구 선로는 지금의 서동탄 역 이남 구간에서 상· 하행 선로가 실제로 저렇게 쩍~ 벌어져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2.
무슨 강이 지나는 것도 아닌데 두정-천안 사이 서쪽에 천안 축구 센터를 감싸는 둥그런 커브가 생긴 건.. 역시나 지금은 이설· 폐선되고 없는 철도의 흔적이었구나. 부산 방면 경부선 하행 선로가 저 궤적을 타고 장항선으로 갈아탔었다.
저 선로 대신 지금은 더 북쪽+동쪽에 공간을 덜 차지하는 입체교차 선로가 새로 생겼다. 이 역시 수원-천안 2복선 공사와 함께 이설되어 새로 생겼지 싶다..

3.
대전 부근은 지형이 험하기도 하고 경부고속선과의 연결 문제도 있고 해서 추가적인 선형 개량이 종종 있었다. 예전에는 고속선이 옥천에서 너무 일찍 끊어지는 바람에 KTX가 연결선을 타고 재래식 경부선으로 허겁지겁 내려와야 했으나, 2015년 8월에 대전과 대구의 도심 구간이 다 개통한 뒤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대전남연결선은 이제 더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그냥 철거해 버려도 할 말이 없으며, 해당 지역에서는 그걸 원하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번 힘들게 만들어 놓은 건축 구조물을 굳이 일부러 부숴 버릴 이유가 없다. 아까 경부선 구선로를 병점 차량 기지 입출고선으로 활용하듯이 이것도 뭔가 다른 활용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천-신동 사이에 있는 대구북연결선도 현재 비슷한 처지이다.

4.
그 다음으로 경부선에서 주목할 만한 이설은 엄청 옛날인 일제 강점기, 그것도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대구 역과 김천 역은 1905년 1월, 경부선 개통과 동시에 개업했다. 하지만 그 사이의 구미 역은 개업일이 1916년 11월 1일이다. 그 이유는 경부선이 첫 개통 당시엔 지금의 구미 시내 구간을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지금의 경부고속선 내지 국도 4호선과 비슷한 선형으로 금오산을 관통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선로를 만들었더니 그 시절의 증기 기관차가 그 정도 오르막도 제대로 못 오르고 헉헉거렸다. 중간에 보조 기관차를 연결해 줘야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경부선 개통 후 10년 남짓 뒤엔, 영업거리가 더 길어지는 걸 감수하고라도 구미 시내 우회 경로로 선로를 대거 이설하게 됐다. 구미 역이 바로 이때 생겼으며, 곧 있으면 개통 100주년을 맞이한다. 반대로 옛 선로에는 '금오산 역'이라고 기관차의 관리를 위한 간이역이 있었으나, 그건 선로 이설과 함께 폐역됐다.

잘 알다시피 박 정희가 1917년 구미 출생인데, 마침 그 즈음에 거기로 경부선 철길이 지나게 된 것은 뭔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상록수 최 용신 선생이 활동하던 당시에 수인선 철도가 건설된 것처럼 말이다.
이건, 훗날 1930년대에 행해진 복선화 공사 때문에 왜관철교 일대가 이설된 것과도 별개의 이야기이다.

5.
다시 우리나라 얘기로 돌아온다. 대구선 이설과 경부고속선 대구 이남 구간의 건설의 영향을 받아서 그쪽에 경부선 본선이 살짝 이설된 건 제끼고..

청도군 소재의 남성현 역 일대는 이미 유명하다. 험준한 산악으로 인한 경사+커브 때문에 건설하기도 힘들고 열차가 다니기도 힘든 구간이다. 성현 터널이 완공되기 전에는 무려 8단계 스위치백 선로를 임시 부설해서 건설 자재를 나르면서 경부선 철길을 깔았으며, 터널이 완공된 뒤엔 임시 선로는 철거됐다.
그런데 기껏 뚫은 성현 터널도 약 30여 년 뒤인 1937년에는 경부선 복선화 공사 과정에서 선로가 또 통째로 딴 데로 이설되면서 폐쇄됐다. 지금 성현 터널은 '청도 와인터널'이라는 관광지로 재활용 중이다.

6.
밀양으로 내려가면, 상동 역 이북으로 산을 직통으로 뚫고 가는 직선 터널들은 역시나 경부선 개통 처음부터 그랬던 건 절대 아니었다. 원래는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꼬불꼬불 굽이치던 선형이었다.
단선도 아닌 복선 공용 터널이 일제 강점기 때 있었을 리가 절대 없지. 단순히 일제 강점기 시절의 복선화가 아니라, 경부선 KTX 1차 개통을 앞두고 대구-부산 기존선의 전철화 과정에서 선형 개량을 한 거지 싶다.

또한, 지금 선로는 추화산을 서쪽 끝 밀양 시내 근처에서 터널로 직선으로 쌩 통과하는 반면, 옛날에는 동쪽 능선으로 빙 둘러 갔다.
우회 구간에는 짤막한 단선 터널이 있다. 바로 이것. 단면은 아래쪽이 다시 좁아지는 말발굽 모양이다.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하고 자동차용이 아닌 철도 터널이었다는 증거다. 옛날에는 경부선이 여기를 지났음을 말해 준다.

7.
이제 부산으로 간다.
부산 북부 구간도 1990년대 말, 화명 신도시의 개발로 인해 선로가 내륙이 아닌 강쪽으로, 그 대신 더 곧게 이설되었다. 구포 바로 이북의 화명 역이 1999년에 이 과정에서 새로 생겼으며, 1993년에 구포 무궁화호 전복 참사가 난 곳도 지금은 이설되고 없는 구간상의 지점이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는 구포보다는 화명 역에 더 가까이 있었다.

예전에는 경부선 선로가 지금의 부산 지하철 2호선과 비슷한 선형으로 시가지를 꽤 깊게 지났다. 어쩐지 지금 경부선 부산 북부 구간은 선로가 평지에 있지 않고 다들 높은 고가이던데, 다 나중에 그렇게 바뀐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제 강점기 때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님.

옛날에는 경부선이 지금의 서울 역(남대문)보다 더 북쪽까지 이어졌었고(서대문), 지금의 부산 역(초량)보다 더 남쪽까지 더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간 구간에도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다.
1908년의 경의선 직결+부산 개통, 1916년의 구미 시내 구간 개통은 일제 강점기의 일이고, 1930년대 이후 경부선 복선화도 큰 이벤트이다.
해방 후에는 주로 경부고속철 내지 수원-천안 2복선화로 인한 이설이 많았던 걸으로 요약된다.
다들 나의 정신을 살찌우는 소중한 철도 역사 지식이다. 머리에 몽땅 집어넣고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25 19:35 2016/09/25 19: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76

우리나라 대도시들의 경전철

서울시는 지난 2009년에 첫 개통한 지하철 9호선을 마지막으로, 중전철 형태로 건설하는 도시철도 지하철은 이제 없을 예정이다. 요즘 서울 주변에 중전철로 건설되는 도시철도들은 엄밀히 말하면 다 광역전철로, 건설 주체가 서울시가 아니다. (성남여주, 원시소사, 신분당, 신안산 등)

한편, 서울 바깥의 사정을 살펴보면, 2005년에 개통한 부산 지하철 3호선은 건설될 때부터 모든 역들에 스크린도어가 같이 설치된 최초의 지하철이다. (스크린도어 없이 완공된 마지막 지하철은 2004년의 광주 지하철) 대구 지하철 2호선은 같은 2005년에 부산보다 아주 약간 일찍 개통했지만 스크린도어 규격이 갖춰지지는 않았다.

그 이듬해인 2006년에 대전 지하철 1호선이 개통했다. 2005년을 전후하여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부산3, 대전, 광주 지하철은 모두 한국형 표준 중(重)전철의 '중(中)형 전동차' 모델을 그대로 도입한 형태의 차량을 운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량의 외형이 다들 비슷하다. (서울은 대형 전동차)

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중형 전동차 기반의 중전철이 개통한 것은 현재로서는 2006년 대전 지하철 1호선이 마지막이며, 이거 이후로 우리나라에 그런 체급의 지하철 내지 도시철도가 개통한 건 지금까지 없다(기존 노선의 연장은 제외). 2000년대 후반부터 개통하고 있는 전철들은 다 '경전철'이다. 통상적인 중전철보다 체급이 더 작고 수송력이 더 적고 건설· 운용 비용도 덜 드는 물건이다.

중전철은 1435mm 표준궤 쇠바퀴에다가 전기 규격도 직류는 1500V, 교류는 25000V로 딱 통일이 돼 있지만 경전철은 그런 표준이 정해진 게 없어서 규격의 파편화가 굉장히 심했다. 그나마 오늘날은 "철제 차륜은 1435mm 표준궤, 고무 차륜은 1700mm 광궤" 정도의 규격은 통일이 됐다.

참고로 경전철이라고 해서 무슨 협궤를 쓴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옛날 수인선 협궤 디젤 동차는 열차 덩치나 수송량으로 보면 영락없는 경전철 급이지만 걔는 애초에 동력원부터가 전철이 아니었고.. 오늘날의 우리나라 철도는 협궤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인연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제 인천 지하철까지 2호선이 개통했으니 오늘은 전국의 경전철들에 대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쭉 정리해 보겠다.

1. 개통 시기
한때는 수도권에서 의정부 경전철과 용인 경전철이 국내 최초의 경전철이 될 뻔했다. 하지만 다 수익성과 관련된 어른들의 사정이 너무 복잡해서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으며, 이 때문에 경전철 최초 개통의 영광은 수도권이 아닌 부산이 뺏어 가 버렸다. 한때 3호선의 지선으로 계획했던 4호선, 그리고 김해 경전철이 모두 2011년 봄과 가을에 차례로 개통했기 때문이다.
그 뒤 의정부 경전철이 2012년 7월에 부랴부랴 개통했고 용인 경전철은 2013년 4월이 돼서야 개통했다. 대구 3호선과 인천 2호선은 각각 2015년 4월과 2016년 7월에 뒤를 이었다.

2. 궤간
철차륜을 쓰는 용인, 김해, 인천 2호선은 표준궤를 쓰고 있다. 부산 4호선은 고무차륜인 관계로 1700mm 광궤 기반. 의정부 경전철은 고무차륜인데, 1700 표준이 제정되기 전에 건설된 관계로 1620mm 궤간을 혼자 쓰는 처지가 되었다. 고무차륜 경전철은 레일도 철이 아니라 콘크리트이다.
대구 3호선은 잘 알다시피 국내 경전철 중 최초로 도입된 모노레일이다. (궤조가 아래 중앙에..) 모노레일이지만 차체의 폭은 중전철 중형 전동차에 뒤지지 않는다.

3. 전원
경전철답게 중전철 직류의 절반인 직류 750V를 쓰며, 전부 제3궤조 집전식이다. 즉, 모든 경전철들은 중전철과는 달리, 공중에 전차선이 주렁주렁 달린 게 없으며 직교류 겸용 전동차 같은 것도 없다. 기존 일반 전기철도와 직통 운행하는 것은 물론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대구 3호선 모노레일은 어찌 된 일인지 전기 규격이 중전철 지하철과 같은 규모인 직류 1500V라고 한다.

4. 영업거리
다들 10~20km대이다. 하지만 김해 경전철(23.4km)은 부산과 김해를 연결하고 공항까지 연계하는 만큼 거리가 제법 되며, 대구 3호선(23.9km)과 인천 2호선(29.2km)도 상당히 긴 편이다.

5. 지상/지하 분포
모든 경전철이 반드시 지상으로만 다니는 건 아니다. 부산 4호선과 인천 2호선은 지상과 지하 구간이 공존한다. 인천 2호선의 경우, 종점 부근과 인천 아라뱃길을 횡단하는 구간만 지상이고 나머지는 다 지하이다. 지상에서 지하를 오르내리는 선로의 경사가 일반 중전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한 걸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두 노선을 제외한 나머지 경전철들은 전구간 지상 고가이다. 하지만 서울에 건설되는 경전철들 중에는 전구간 지하도 있을 예정이다. 자세한 것은 후술 예정.

6. 차량 편성
"표준궤 철차륜 2량 1편성" 요게 뭔가 표준 레퍼런스인 것 같다. 김해와 인천 2호선이 이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의정부는 고무차륜 2량이며, 대구 3호선 모노레일은 3량이다.
좀 특이한 예외는 용인 경전철로, 무슨 버스처럼 1량 1편성인데 폭은 오히려 중전철 대형 전동차보다도 더 크다. 경전철 도입 초기에 혼자 독자적인 선형 유도 모터 기반의 봄바르디에 차량을 수입해서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산 4호선도 예외적인데, 3호선(4량)보다도 더 많은 6량 1편성을 하고 있어서 경전철 중에 차량 편성이 가장 길다.

7. 운전 형태
2인 승무 이런 건 경전철 세계에서는 완전 사치일 뿐이다.
중전철에서는 현재 신분당선만이 무인 운전을 하고 있지만 경전철들은 전부 무인 운전이 기본이다. 차량 안에서 전방과 후방을 볼 수 있다.
김해와 대구 3호선 같은 일부 노선에서는 그나마 안전 요원이 동승하긴 하지만, 신분당선처럼 전기 철도 운전 면허가 있는 정식 기관사가 아니라 그냥 알바 수준의 저렴한 인력이라고 한다.
용인 경전철의 경우 승강장에 스크린도어조차도 없다. 누가 선로에 떨어지면 즉시 비상 정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또 돈 들여서 마련하지 않은 거라고 한다.

이렇듯, 경전철과 중전철은 외형이나 내부 규격이 많이 다르다. 다만, 이 두 철도 시스템을 법적으로 가르는 근본 기준은 전기 규격이나 궤간 같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무게, 즉, 축중 하중이라고 한다.

참고로, 서울시도 중전철 지하철만이 건설을 마쳤을 뿐이지 내부에 경전철을 또 만들고 있다.
신설동-우이동선은 서울 지하철 12호선의 후신이기도 한데, 인구 대비 지하철이 4호선밖에 안 지나는 그쪽 동네의 교통난 해소에 도움이 되리라 예상된다. 2량 1편성에 표준궤로, 전구간 지하이고 차량 기지까지도 지하에 있다. 차량 덩치만 작은 평범한 지하철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 복잡한 서울에서 지상/고가 도시철도를 만든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니까.
왕십리까지 갔으면 좋겠지만 거기가 이미 철도 노선이 4개나 지나고 지상과 지하 구조가 너무 복잡한 동네여서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만들어지고 있는 곳은 남부의 일명 신림선인데, 얘는 의외로 규격이 3량 1편성짜리 고무차륜으로, 규격이 우이동선과는 다르다. 아무쪼록 서울시에서 경전철을 구경하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을 종합하면, 서울-부산-대구의 순으로 개통해 온 기존 중전철 지하철과는 달리, 경전철은 어째 부산-수도권-서울의 순으로 역순으로 개통해 왔다.
그래도 코레일이 운영할 예정인 부산-울산 동해선 광역전철은 경전철이 아니며, 수도권과 마찬가지로 중전철에 그것도 대형 전동차이다. 수도권에 광역전철이 개통한 게 1970년대인데.. 무려 40년이 넘도록 지방에서는 뭘 하고 있었나 모르겠다. 시기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그리고 경전철의 규격에 대해서는 "750V 제3궤조, 무인 운전, 철 또는 고무 차륜, 2량 또는 이에 준하는 수의 편성"을 생각하고 있되, 종류에 따라서는 바리에이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 되겠다. 비록 개통은 선수를 빼앗겼지만 아주 초창기에 추진을 했던 의정부와 용인은 규격면에서 혼자 독특한 면모가 좀 있었다. 허나, 그 뒤에 만들어진 경전철들은 차츰 획일화가 진행되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04 08:29 2016/09/04 08:29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68

요즘 여름 밤엔 저녁에도 집에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더웠다. 저 멀리 강원도에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데 시간 관계상 아직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그 대신 동부 간선 도로를 타고 내 마음의 고향인 교외선 일대로 홀연히 떠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흥 역은 송추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뒤 얼마 안 지나서 장흥 유원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그런데 폐역 상태이다 보니 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아무 표지판도 없었다. 그래서 다 와 놓고도 역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선뜻 찾을 수 없었다.

열차가 다니지 않고 인적도 끊긴 간이역 근처의 으슥한 골목에다 차를 세워 놓은 뒤, 저녁을 먹고 컴퓨터 작업을 하고 책을 읽다가(가로등 불빛) 이동식 텐트 안에서 잠들었다. 새벽이 되니까 살짝 한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원하던 경험이 바로 이것이었다. 차를 아무 데나 세워도 될 정도의 한적하고 으슥한 시골에서 혼자 이렇게 자 보는 거. 정말 꿀잼이었다. 그것도 철도역 근처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인가? 물론 위의 사진들은 이튿날 새벽에 동이 튼 뒤에 찍은 것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코레일체가 아니라 HY울릉도라는 간판 서체 자체가 여기는 1990년~2000년대 이후로 시간이 정지했음을 말해 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는 장흥의 서쪽 다음 역이며 교외선에서 그나마 가장 크고 최후까지 역무원이 상주했던 곳인 일영 역의 승강장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영 역은 밖의 마당(?)에 지붕만 있는 실외 광장 대합실이 있었다. 다른 철도역에서는 보지 못한 독특한 시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으로 찾은 송추 역은 건물 모양과 마당, 그리고 광장 대합실이 있는 것이 모두 일영 역과 비슷한 형태였다. 하지만 일찌감치 영업이 중단되고 거의 폐역처럼 된 상태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추 역의 앞마당에 있는 광장 대합실.
요약하자면 일영과 송추는 형태가 비슷하고 장흥만 임시 승강장만 달랑 놓인 좀 간이역스러운 스타일이었다.
장흥이 아니라 송추나 일영의 저 앞마당에다가 차를 세워 놓고 거기서 밤을 보냈으면 또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날은 일단 교외선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왔지만, 가까운 미래엔 중앙선(양평)과 경춘선(가평)의 한적한 전철역 근처에도 가서 캠핑을 하고 싶다.
그리고 바다로도 가고 싶다. 강원도 동해, 그리고 김포-강화 쪽의 서해 모두. 언젠가 꼭 갔다 와서 여기에 사진과 여행기를 올릴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16 08:30 2016/08/16 08:30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61

자동차나 비행기, 열차 같은 모든 교통수단들은 진행 방향이 다른 교통수단과 한 지점에서 교차할 위험이 있는 곳에서는 신호 시설의 통제를 받으며 움직여야 한다. 비행기는 이륙이야 그냥 관제탑으로부터 허가가 날 때까지 활주로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지만 착륙은.. 신호 대기를 할 수 없고 상시 선회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트래픽 대비 활주로가 부족한 혼잡한 공항에 착륙하는 게 다소 난감한 일이다.

그런데 동일 경로의 공유와 교차가 같은 종류의 교통수단끼리만 발생하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옛날에 이종간의 하이브리드를 시도한 교통수단들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교통수단들간의 이색적인 교차 양상에 대해 살펴보겠다.

1. 사람 vs 자동차

이건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가장 먼저 생긴 갈등(?)일 것이다. 이 때문에 일단 횡단보도가 만들어졌으며, 아주 혼잡한 곳에서는 사람과 자동차를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서 육교와 지하도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높이의 변화는 노약자, 혹은 짐이 많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악재이기 때문에, 귀차니즘에 충실한 보행자의 무단횡단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고 있다.

사람들과 차들이 터져 나가는 교차로에서는 그냥 단순무식하게 일정 시간 주기로 빨간불과 파란불을 반복하면 되지만 한적한 시간과 장소에서는 점멸 신호 내지 주문형(보행자가 버튼을 눌러서 요청을 했을 때에만 잠시 후 파란불이 되는) 신호등이 운용되기도 한다.

2. 육상 vs 철도

육상 교통수단들 중 진행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놈은 단연 철도 차량이다. 차량이 무겁고 수송량이 압도적이며, 무엇보다도 너무 둔하고 지면 마찰도 작아서 가감속을 날렵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얘가 일단 속도가 붙어 버렸으면 아무도 감당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의 차와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인 교통사고가 나면 무단횡단에 굉장히 관대하고 오로지 운전자에게만 과실을 뒤집어 씌우는 관행이 심하지만, 그래도 철길 주변 보행이나 철길 건널목 교통사고에서까지 보행자에게 무한 관대하지는 않다.

철길 건널목 사고가 나면 철도 당국은 여러 모로 골치아파진다. 2002년 5월에 어느 전라선 상행 새마을호에서 발생했던 3연속 건널목 사고는 요런 사고의 아주 극단적인 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지금까지 꾸준히 전국의 수백, 수천 곳에 달하는 건널목들을 야금야금 모조리 정책적으로 입체화해 왔다. "열차를 급정거시킬 수 없다면 애초에 급정거해야 할 상황 자체를 봉쇄하자"라는 발상에 따른 것이다. 이런 조치 덕분에 오늘날 철도 건널목 사고는 3, 40년 전에 비해서 굉장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이 아닌 서울에도 일부 건널목이 있다. 물론 무려 3복선이 된 경부선이나 2복선짜리 경인선 구간에 건널목이 있는 건 아니며, 그 이북의 경의선과 경원선, 특히 경원선 구간에 한정되어 있다.

먼저 서빙고 역에서 한남 역 방면으로 400미터쯤 전방 반포대교 근처를 보면 건널목이 있다(서울 용산구 서빙고로62길). 새마을· 무궁화 같은 열차도 아니고 전동차가 지상에서 차들이 기다리고 있는 건널목을 통과해 간다니 참 상상이 안 된다.
서빙고 역 인근에는 자동차 도로를 예각으로 가로질러서 미군 기지로 들어가는 단선 철도도 이따금씩 쓰이는가 보다. 이거 유명한 사진이다. 차단기도 없이 이거 정말 안습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으로, 회기 역에서 외대앞 방면으로 얼마 안 간 곳에도 건널목이 있으며(서울 동대문구 휘경로12길), 이웃 외대앞 역은 역 출입구에 대놓고 선로 횡단 건널목이 있다. 육교와 지하도로 대체 경로도 있으니 코레일에서는 여기를 못 없애서 난리이나, 인근 주민과 상인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서 건널목을 완전히 못 없앤 상태이다.

심지어 육교에다가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까지 다 놔 줘도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한다. 아무리 최첨단 액세서리 기능들로 무장한 안경이나 휠체어가 있어도, 그런 게 애초에 필요하지 않은 건강한 눈과 건강한 다리보다 나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그런가 보다.
경원선 구간은 일반열차가 다니기도 하고 게다가 이렇게 건널목까지 있으니 전동차(운행 계통상으로는 경의중앙선)의 배차간격을 지금보다 더 줄이는 건 도저히 무리일 것이다.

경원선보다 상태가 더 안습한 건널목은 바로 서울 역 이북 경의선 구간에 있는 '서소문 건널목'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는 수색 기지에서 서울· 용산 역으로 입출고하는 KTX 포함 모든 일반열차들이 이 선로를 지나기 때문에 그야말로 크리티컬 중의 크리티컬이다. 그야말로 몇 분이 멀다 하고 차단기가 내려온다. 애초에 경의선 서울-신촌 통근열차/전동차가 1시간에 1대꼴밖에 못 다니고 지금도 경의중앙선의 지선으로 전락한 이유도 이런 열차들의 트래픽 때문이다.

그러니 이 건널목으로 정상적인 차량 통행은 곤란하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완전히 틀어막고 건널목을 없애기에는 지상의 자동차 트래픽도 무시 못 하며(밤에는 열차 운행도 뜸해지거나 중단되니), 이 건널목은 입체화를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로 위로는 서소문 고가차도가 있고, 지하로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지나기 때문이다(시청-충정로 사이. 서울 도시 구간에는 2호선이 별로 깊지도 않음). 여러 모로 진퇴양난이다.

3. 육상 vs 배

배는 물 위를 다니는 교통수단이며, 자동차는 수륙양용이 아닌 이상 다리가 놓여 있어야 물 위를 건널 수 있다. 그러니 자동차와 선박이 교차 가능한 상황이란 단 한 가지 경우뿐이다. 바로 다리가 도개교(bascule, 跳開橋) 형태인 것이다. 이게 철도로 치면 차단기가 내려오는 것과 개념적으로 동일하다.

요즘은 건축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애초에 다리를 지을 때 어지간히 큰 선박도 아래로 지나갈 수 있게 왕창 높고 크고 기둥 간격도 넓게 만들곤 한다. 선박의 통과를 위해 다리를 통째로 들어올리게 되면 그 동안 자동차들의 통행이 막히는 큰 불편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요즘은 길거리에 자동차들이 좀 많나..;; 그러니 도개교는 노면 전차만큼이나 좀 과거의 유물이고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돼 있다.
우리나라에는 도개교가 전국을 통틀어 딱 한 군데 있다. 바로 부산의 영도대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는 일제 강점기인 1934년에 도개교 형태로 오리지널이 완공됐다. 부산은 일본과 가까운 항구 도시로서 그 시절부터 대도시였으며, 나룻배만으로 영도와 본토 사이를 오가기에는 트래픽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다리가 생기긴 했지만 그때엔 선박의 트래픽도 여전히 만만찮은 수준이어서 리즈 시절엔 다리 도개를 하루에 무려 7번이나 했다고 한다. 매회 도개 시간은 약 20분.

이렇게 자동차와 선박 사이의 평면교차가 이뤄졌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영도대교의 도개는 15분씩 하루 2회로 줄었다. 게다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50년 전인 1966년 9월에는 다리 아래로 상수도관을 매달면서 도개가 중단되어 버렸다. 노면 전차(1968) 내지 증기 기관차(1967)와 비슷한 시기에 도개교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게 흥미롭다.
뭐, 도개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다리를 근 60년 가까이 잘 쓰면서 지냈는데.. 마침 1994년 가을,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터졌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는 혹시 성수대교 시즌 2가 벌어질 여지는 없는지 전국의 유명 교량들을 부랴부랴 긴급 점검했다. 이때 서울에서는 지하철 2호선이 다니는 당산철교가 시범 케이스로 제대로 걸렸다. 그야말로 "성수대교가 안 무너졌으면 얘가 무너졌을 것이다. 달리던 지하철이 다리와 함께 나란히 강으로 추락해서 초특급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급의 막장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산철교는 전면 철거 후 새로 만들어졌는데..

부산에서는 지은 지 너무 오래 된 영도대교가 '대대적인 긴급 보수, 혹은 아예 철거 후 재시공 필요' 판정을 받았다. 간이역 건물만큼이나 역사적인 가치가 크고 안전을 위해 여러 번 땜빵도 했지만, 넘쳐나는 교통량을 감당하고 근본적인 안전이라는 토끼까지 둘 다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지금 다리는 철거해 버리고 다리를 더 큰 규모로 다시 놓을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됐다. 그래도 새 다리는 오리지널 영도대교와 최대한 같은 외형으로 만들고, 먼 옛날에 봉인되어 버렸던 도개 기능도 상징적인 차원에서 다시 부활시켰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영도대교는 지난 2013년 11월에 개통했다. 하루 한 번(오후 2시) 다리를 15분 동안 들어올린다.
그러고 보니 민방위 대피 훈련도 매달 15일의 이 시간대에 20분 동안 진행한다. 다리를 들어올리는 건 출퇴근 시간대를 피해서 벌건 대낮에 하는 게 아무래도 운전자들에게 민폐가 덜하기 때문일 것이다.

4. 육상+철도의 특수한 경우

음, 그러고 보니 전라남도 무안과 영암 사이에는 호남선의 지선인 대불선이라는 화물 철도가 있다.
얘도 종점 인근에 자동차 도로와 만나는 건널목이 있는데, 여기는 서울처럼 열차나 차량 통행량 자체가 너무 많아서 입체화가 필요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과는 전혀 다른 문제가 건널목에 존재한다.

대불선은 전철화가 돼 있다. 그런데 이게 고성능 전기 기관차를 운용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는 호재이지만, 화물 수송 능률면에서는 큰 악재이기도 하다.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린 전차선 때문에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화차에다 선뜻 실을 수가 없으며, 게다가 전차선의 높이보다 더 높게 화물을 쌓은 트레일러가 건널목을 지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즉, 교량 때문에 높은 배가 통과할 수 없어 지는 것과 비슷한 양상의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여기 건널목에는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됐고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동식 전차선이 존재한다. 마치 배가 지나가게 다리를 들어올리듯, 아슬아슬 간당간당한 대형 트레일러가 건널목을 통과할 때는 건널목 위를 지나는 전차선을 잠시 치울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치 주문식 횡단보도 신호기처럼.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

5. 육상 vs 비행기

자동차가 비행기의 항로를 침범한다는 건 불가능-_-한 일이고, 그 대신, 과거에 일부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가 비상시에 군용기의 활주로로 쓰이는 경우는 있었다.
경부 고속도로에 신갈, 천안을 비롯해 몇몇 구간이 이상하리만치 곧고 길게 잘 뻗었으며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붙박이 중앙분리대가 없이 페이크 이동식 중앙분리대만 있었다. 그런 곳이 바로 활주로 공용 구간이었다.

옛날에는 물론 자주는 아니었겠지만 공군이 가끔씩 경부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틀어막고 실제로 훈련을 했다.
동아일보 1988년 3월 30일자를 보면, "팀 스피리트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의 하나인 비상 활주로 이착륙 훈련이 30일 경부 고속도로 판교-신갈 구간에서 전투기 F4, F5, F15, F16, 대형 수송기 C123, 폭격기 B52 등이 참가한 가운데 실시됐다." 같은 보도가 있다. TV 뉴스도 마찬가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날엔 지금 8차선, 10차선으로 확장되고 있고 24시간 차들로 터져 나가는 그 경부 고속도로의 일부를 틀어막고, 거기서 전투기 이착륙 훈련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이야 그런 비상 활주로들은 다른 한산한 도로로 옮겨지고 해제되고 있다. 특히 활주로 구간의 중간에 분기점이나 나들목을 만들다 보면 활주로 기능이 자동으로 상실되었다. 성환 활주로에 생긴 북천안 IC처럼 말이다.

그런데, 활주로+고속도로 공용보다 더 엽기적인 사례가 있다.
스페인의 남부에 있는 영국 속령인 '지브롤터'라는 지역에는 지브롤터 국제 공항이 있는데, 얘는 전세계의 공항들 중 유일하게 공항 활주로가 일반 도로와 수직으로 평면교차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행기가 이착륙 예정일 때는 마치 철도 건널목처럼 차단기가 내려오며, 운전자들은 눈앞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걸 저렇게 빤히 지켜보게 된다.
활주로에는 이물질 하나 있어서는 안 된다. 일례로 2000년 7월에 발생한 에어프랑스 4590편 콩코드 여객기 추락 사고는 바로 전에 먼저 이륙한 비행기에서 떨어진 부품을 밟는 바람에 발생한 사고였다.

그런 와중에 여객기 활주로가 자동차 도로와 평면교차한다는 건 안전이나 보안 면에서 굉장히 아찔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활주로를 포함하는 공항 담장 외벽에 철조망이 괜히 쳐진 게 아닌데.;;
캄보디아의 씨엠 립 국제공항은 비행기 착륙 후에 여객 터미널까지 승객이 활주로 바닥을 걸어서 이동하며, 제주 국제공항에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X자 모양으로 평면교차하는 두 활주로를 바꿔 가며 운용하긴 한다. 일본의 나리타 국제공항은 지역 주민들의 알박기 때문에 반쯤 고자처럼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지브롤터 국제 공항은 그런 공항들보다 더 엽기적이다. 비보호 좌회전+평면교차가 있던 옛 88 올림픽 고속도로의 남장수 IC의 공항 버전이라 하겠다.
활주로는 지형과 역사적인 사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만들어졌으며, 딱히 더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01 08:39 2016/08/01 08:39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56

여러가지 철도/도로 뒷북 이야기

1.
국내 고속도로계에서 독보적으로 낙후한 이단아이던 88 올림픽 고속도로는 지난 2015년 말에 드디어, 드디어 전구간이 4차선으로 확장되었으며 이름도 '광주대구 고속도로'라고 바뀌었다. 솔직히 이 도로는 착공· 건설 시기가(개통 시기가 아님.)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시기와 비슷할지 몰라도, 지리적으로는 올림픽과 정말 아무 상관도 없었으니까..

중앙분리대조차 없이 2차선이던 이 고속도로는 설계 최대 속도도 100이 아닌 80km/h이었으며, 중앙선을 침범하여 앞차를 추월하다가 마주 오던 차와 정면 충돌하는 사고가 잦아서 교통사고 발생 빈도 내지 사고 사망률이 여타 고속도로들보다 몇 배로 더 높았다. 백괴사전에서는 "44(死死) 내림픽 저속도로"라고 개드립을 치면서 깠을 정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행 여건이 다른 고속도로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히 리모델링된 국도보다도 열악했던 관계로, 한국 도로 공사는 여기 구간의 통행료는 여타 고속도로의 반값 정도로만 징수했다. 서울 지하철이 '최소 거리 이용 추정의 원칙'에 의거하여 요금을 측정하듯, 고속도로 톨비 역시 비록 진입과 최종 진출 나들목 자체가 88 내부의 나들목이 아니더라도 경로상으로 88을 이용했을 만한 위치라면 그걸 감안하여 산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가 이 도로도 찔끔찔끔 선형 개선과 확장, 이설 공사를 되풀이했으며, 그게 드디어 작년 말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오랫동안 존속해 온 통행료 특별 할인도 폐지됐다.

전국의 고속도로 나들목들 중 유일하게 평면교차+비보호 좌회전(고속도로에서!)이라는 엽기적인 형태로 남아 있던 '남장수 IC'는 해당 구간이 대거 이설되면서 없어졌다. 이를 대체하는 동남원 IC가 생기긴 했지만 저기서 서쪽으로 수 km 떨어진 곳이다. 남장수 IC가 없어진 건 철도로 치면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스위치백이라든가 통표 폐색 구간이 없어진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옛날에는 이 88 말고 다른 고속도로도 이름만 고속도로이지 2차선에 평면교차 같은 막장 시설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호남 고속도로, 영동 고속도로 따위도 처음엔 그랬다.
심지어 1990년대에 대구와 원주를 잇는 중앙 고속도로조차도 처음엔 2차선으로 건설되고 있었는데 감사원에서 이를 잡아 냈다. "이렇게 만들었다간 99.9% 나중에 또 확장하느라 더 고생하고 돈과 시간을 더 낭비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설계를 갈아엎고 다시 만들어라. 그리고 이를 선례로 삼아 앞으로 새로 만드는 모든 고속도로들은 처음부터 반드시 4차선 이상 크기로 건설해라."라는 현명한 지시를 내려서 개선이 됐다.

저렇게 1990년대에도 2차선으로 건설될 뻔한 고속도로가 있었는데 1960년대 말 그 옛날에 처음부터 전구간 4차선으로 시작을 했던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 과정이 문득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다만 그 시절에 박통이 이미 "내가 야당이 하도 반대해 대서 일단은 4차선으로만 건설하지만 경부 고속도로는 얼마 못 가 분명히 비좁아질 거다. 확장을 하게 될 테니 도로 주변에 건물 건설 허가를 내지 말고 준비를 해 둬라" 이런 예고까지 했다고 한다.

경부 고속도로가 유지 보수 비용이 결국 건설 비용만큼이나 더 들었다고 회자되긴 한다만, 그건 다른 고속도로들도 훗날 꾸준히 개선되어 온 건 대동소이했다. 허나 88은 박통도 아니고 나름 5공 시절인 1980년대에 건설된 주제에 오랫동안 개선되질 못해서 까임거리가 된 것이다. 영호남 화합? 실질적인 수요보다는 정치 논리에 따라 건설됐다 보니 리모델링의 우선순위도 뒷전으로 밀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것도 이제 다 지나간 일이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88 올림픽 고속도로에 이어, 철도 경전선도 올해는 대대적인 선형 개량 공사가 끝나서 여러 구간이 이설되고 여러 간이역들이 없어질 예정이다.
자, 다음부터는 철도 얘기를 주로 늘어놓도록 하겠다.

2.
과거에 20세기 말에 우리나라의 최하등급 열차는 비둘기호였다. 정선선에서 운행하다가 2000년 11월 14일을 끝으로 퇴역했다.
객차형 비둘기호는 너무 싸서 수지맞지 않은 운임 체계, 너무 낡고 노후화한 객차 같은 여러 이유로 인해(비산식 화장실, 수동 출입문, 별도의 발전차 없이 객차가 차축 연결해서 소규모 자가발전-_-, 에어컨도 없음..) 21세기에까지 존속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긴 했다.

그 다음으로 통일호도 객차형은 차량이 비둘기호 만만찮게 열악했던지라 2004년 3월 31일, KTX 개통을 앞두고는 모두 퇴역했다. 근성열차라고 불리던 청량리-부전 통일호가 이때 사라졌고 경춘선도 통일호가 모두 무궁화호로 바뀌면서 사실상 운임이 강제로 일괄 인상된 효과도 났다.

나머지 디젤 동차형 통일호는 '통근열차'라고 이름이 바뀌었는데, 얘들은 진해선, 동해남부선, 군산선 등에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차근차근 무궁화호로 교체되면서 명줄이 위태로워졌다. 기관차-객차형처럼 차량이 완전히 다른 무궁화호 말고, CDC 객차 자체가 일명 RDC 무궁화호로 개조되기도 했다.

현재 통근열차의 최후의 보루는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는 경의선과 경원선밖에 안 남았다. 허나 경의선에서는 이미 진작에 전철에 밀려 퇴출되었으며, 현재 전국에서 오리지널 CDC가 다니는 곳은 이제 소요산 이북의 경원선이 유일하다! 과거에 정선선 비둘기호와 비슷한 꼴이 된 셈이다. 비둘기호:정선선 = 통근열차:경원선 정도의 비례식임.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9~2020년쯤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약 빨고 더 연장되어 연천까지 가 버리면 이제 CDC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더 북쪽의 잔여 구간은 지금 경의선이 그런 것처럼 안보 관광 열차가 대신 맡을 것이고.

물론 경원선 연장 구간은 전철이 들어간다고 해도 일단은 복선 노반만 확보해 놓은 '단선 전철' 형태로 운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복선 구간 운행이 너무 당연시되는 지하철 통근형 전동차가 갑자기 단선 구간에서 상하행 교행을 한다니 그것도 참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될 것 같다. 하긴, 천하의 KTX도 과거에 광주 역을 드나들 때는 꼬불꼬불 단선 구간을 다니긴 했다.

3.
21세기 이래로 경기화학선, 세풍제지선, 화순선 등 여러 산업· 화물 철도들이 소리소문 없이 열차 운행과 관리가 중단되고 사실상 폐선 테크를 타 왔다.
하지만 화물 분야에서 철도가 마냥 몰락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라, 지난 2010년 말에는 부산신항선이라는 걸출한 화물 철도가 개통했다. 그것도 복선으로. 여객이 아니고 항구 화물 전용 철도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쯤 뒤, 작년에는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평택에서 평택항으로 향하는 화물 철도가 또 신규 개통했다. 이름하여 평택선. 경부선과 연결하는 삼각선도 상하행으로 모두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무 방향으로나 통한다.

경부선 전철에서 성환-평택은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이기도 하고 역간거리가 무려 9km가 넘는다. 공항 철도를 제외하면 수도권 전철에서 역간거리가 가장 긴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사이엔 온통 들판에 소규모 마을밖에 없기 때문에 역이 만들어질 여지가 별로 없다.

평택 다음 성환 역에도 사이에 웬 지선 철도가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뻗어 나간다. 이건 하행 방향으로만 있고 서울 상행 방향은 없는데, 다름아닌 성환읍 학정리의 야산 하나를 몽땅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군부대로 향하는 비밀 철도이다. 서빙고 역에서 미군 기지로 들어가는 그 철도, 그리고 호남선에서 논산 육군 훈련소 방면으로 가는 강경선 같은 걸 떠올리면 되겠다.

관련 신문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그 군부대는 탄약창인가 보다. 탄약은 굳이 사방으로 파편이 날리는 수류탄 같은 부류가 아니더라도, 내부에 다 화약이 들어있는 위험물이다. 한 탄약고가 공격을 받아 폭발하면 인근의 다른 탄약고까지 연달아 재귀적으로-_- 폭발하면서 Doom 2의 레벨 23 Barrels o' fun이 실사판으로 재연되는 참극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스플래시 대미지를 예방하기 위해 탄약창은 최대한 넓게 띄엄띄엄 지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탄약창의 부지가 굉장히 크다. 다만 여기에 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눈꼽만 한 보상밖에 못 받고 오랫동안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서 꽤 고달프게 지냈다고 한다.

4.
그 밖에 작년에 있었던 의미 있는 사건으로 또 떠오르는 건.. 서울 역과 노량진 역에 정식 환승 통로가 개통했다는 것이다.
버스와는 달리 지하철은 내렸다가(=집표 구역 밖으로 나감) 다시 탔을 때 환승 할인이 없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 9호선이 개통한 뒤에도 노량진 역에는 물리적인 환승 통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공항 철도와 경의선도 기존 지하철 1· 4호선 서울 역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거기는 수도권 전철 전체를 통틀어 예외적으로 철도끼리 내렸다가 30분 이내에 다시 타도 환승 할인이 인정되게 되었다. 일명 소프트 환승이다.

사실, 지금은 찍고 나간 동일 게이트에 5분 이내에 다시 들어가도 1회에 한해 기본 운임 재징수 면제라는 예외까지도 추가돼 있다. 이런 것들도 다 소프트웨어로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다 구현 가능한 건데 굳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으니 막아 놓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5년도 더 전에 환승 통로가 개통했지만, 2010년 이전엔 '국철/중앙선' 청량리 역과 서울 지하철 청량리(1호선) 역도 마치 경의선 신촌과 지하철 신촌(2호선)만큼이나 환승이되지 않았고 별개의 역으로 취급되곤 했다. 또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갓 개통했을 때에도 신당 역은 2호선과의 환승 통로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몇 달간을 환승이 안 되는 역으로 영업을 했었다. 이때엔 소프트 환승 같은 건 없었다.

서울 역의 경우 지하철과 공항 철도가 정말 도를 지나칠 정도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관계로, 수직 이동 삽질을 줄이고 수평 이동도 무빙워크로 도와 줄 환승 토로가 정말 절실했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환승 통로 만들어 주세요" 급이었다. 그래서 작년 3월에 먼저 개통했다.
한편, 노량진은 민자역사의 건설과 맞물려서 환승 통로의 개통이 한없이 늦어졌다. 이건 마치 분당선 야탑 역과 인근 버스 터미널과의 통로 개통과도 비슷한 문제였던 것 같다. 둘 다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일이 늦어졌고 그 동안 승객들만 불편을 겪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래도 작년 10월 말에 환승 통로가 생기긴 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물리적인 환승 통로가 뚫린 덕분에,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두 역에만 존재하던 소프트 환승 예외 로직은 폐지되었다. 마치 88 올림픽 고속도로가 리모델링이 완료되면서 반값 통행료 제도가 없어진 것과 같은 이치다.

단, 서울 역에 있는 4개 전철 노선 중 경의선은 여전히 여타 노선들과 단절되어 있으며, 여기는 수도권 전철에서 유일하게 소프트 환승 예외가 계속 유지된다. 1시간에 1대밖에 안 다니는 마이너 지선에까지 굳이 환승 통로를 뚫을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신촌은 아주 유니크한 구간으로 그렇게 명맥이 유지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4/20 08:38 2016/04/20 08:38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17

서울 지하철 1호선의 역사

* 꽤 오래 전인 블로그 개설 초창기에 썼던 글을 리메이크 한 것이다.

1. 개통식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인 8월 15일에 맞춰서 정부 수립을 했다. 그런데 이 8월 15일은 우리나라의 철도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날이다. 1974년 8월 15일은 서울 지하철 1호선 "겸" 수도권 광역전철이 같이 개통한 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의 최고급 열차이던 관광호가 새마을호로 이름을 바꿔 첫 운행을 시작하기도 했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두 사진을 보자. 이 둘은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겉으로는 흑백 사진이지만, 철덕이라면 전동차의 색깔이 저절로 컬러로 복원돼서 뇌에 비쳐질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당시의 동선과 스케줄을 보면, '서울 지하철 1호선'(종로선)의 개통식이 먼저 청량리 역 승강장에서 열렸다. 마침 친절하게도 당시 시각까지 사진에 담겨 있다. 아침 11시 15분경.
지하철 개통식 때는 서울 지하철 공사(현 서울 메트로) 소속의 흰 배경에 창틀 부분만 빨강 도색인 전동차가 사진에 담겼다.

이 사람들은 저 열차를 마치 자가용처럼 시승하고 다녔다. 그 당시 종합 사령실이 종로5가 역에 있었던 관계로 그 역에서 내려서 사령실도 잠시 들른 뒤, 서울 역도 지나 남쪽으로 쭈욱 내려갔다.

그렇게 지하철 개통식 팀이 도착한 뒤에야 수원, 인천, 성북 방면의 지상 '수도권 전철'의 개통식이 바로 구로 역 승강장에서 아침 11시 50분쯤에 열렸다. 이번에는 철도청 소속의 파란 배경에 창틀 부분만 흰 도색 전동차가 얼굴마담 역할을 했다. 물론 '초저항'이라고 불리는 저 식빵 모양의 일제 전동차 자체는 철도청 것이든 서지공 것이든 완전히 동일하다.

서울에서 수원이나 인천을 가려면 예전에는 털털거리는 디젤 동차를 타야 했는데 그게 모두 깔끔한 전철로 바뀌었고, 그 전철이 서울 종로에 있는 지하철 구간과 직통 운행까지 한다는 것이 이 지하철· 전철 개통의 의의였다.

가끔 코레일이나 서울 메트로 전동차를 타고서 안에서 철도의 역사 관련 동영상이 나오는 걸 살펴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자기 회사에 해당하는 얘기만 한다. 서울 메트로에서는 지하철 개통 얘기만 하고, 코레일에서는 수도권 광역전철 개통 얘기만 한다. 우리는 두 사건이 모두 순차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알면 되겠다.

지하철· 전철 직통 시스템의 개통식은 원래는 대통령도 참석하고 아주 웅장· 성대하게 치러졌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알다시피... 아침 10시부터 장충동 국립 극장에서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광복절 기념식이 있었는데 거기서 영부인인 육 영수 여사가 괴한에게 총격을 당했기 때문이다(10시 23분).

지하철 개통식 사진에 찍힌 11시 15분은 그 대형 사고가 터진 지 50분 남짓밖에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러니 저 사진에 나온 사람들은 마냥 기쁜 표정만 지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그 당시 양 택식 서울 시장이 아주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과업이었으며, 원래대로라면 개통식은 그의 인생 최고의 날이 돼야만 했다. 하지만 하필 그 날 대통령의 영부인이 세상을 떠나는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그는 사건의 책임을 지고 시장 자리에서 경질되고 말았다.

그의 후임인 구 자춘 시장은 양 택식의 지하철 건설 계획을 거의 다 갈아엎었다. 하지만 저 사람도 선임 뺨치는 불도저였으며, 다음 노선인 2호선이 거대한 순환선으로 만들어진 건 그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2. 발전 내력

서울 지하철 1호선 겸 수도권 전철은 처음에는 한 편성당 6량으로 개통했지만 이미 1980년 12월에 8량으로 증설되었고, 1984년에는 10량으로 증설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 당시 열차를 타고 있는 동안은 "객실에서는 금연입니다. 출입문은 30초 동안 열려 있습니다(일반열차보다 훨씬 더 빨리 닫히고 금방 출발하므로). 지하철 전동차 안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라고, 난생 처음으로 일반열차가 아닌 지하철을 타는 사람을 대상으로 초보적인 안내 방송도 일일이 육성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 개통했을 때 "이 도로에는 사람이나 손수레, 자전거 따위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라고 한참 홍보를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1974년 첫 개통 당시의 운행 계통과 운행 시격은 다음과 같았다.

  • 청량리-성북(지금의 광운대 역): 40분
  • 서울역-청량리: 10분 (R/H 땐 5분)
  • 서울-구로: 10분
  • 구로-인천: 20분
  • 구로-수원: 40분

즉 남쪽으로는 10분 간격으로 구로, 인천, 수원, 인천 행이 번갈아가며 왔다고 생각하면 되고 북쪽으로는 4대 중 1대 꼴로 성북 행이고 나머지는 청량리까지만 간 셈이다.
인천까지 가는 전철이 급행도 없고 배차간격이 지금의 중앙선과 비슷한 수준이요, 수원 가는 전철은 지금의 소요산 행 열차보다 배차간격이 더 길었다는 얘기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경부, 경인선 모두 그냥 복선이었고 특히 경부선 전동차는 지금 급행 전동차가 그런 것처럼 일반열차의 틈새를 이용해서 운행되었으니, 열차를 많이 투입할 수 없었음이 자명하다.
1981년 12월 23일에는 경부선 수원-영등포 구간이 2복선으로 확장되면서 경부선 전동차를 더욱 증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일반열차 눈치 볼 필요 없이 전동차만의 선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 상대식 승강장을 하고 있던 역은 자연스레 쌍섬식 승강장이 됐다.

2복선화 공사는 그때 이미 구로 이남은 방향별 복복선으로, 서울 시내 구간은 공사가 쉽지 않아 선로별 복복선으로 정착한 것 같다. 방향별 복복선은 기존 복선 선로의 양 끝에 선로를 하나씩 추가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예전부터 있던 내선은 일반열차가 계속 쓰고 신설된 외선으로 전동차가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수원 이남으로도 계속 달리는 일반열차와는 달리, 수원에서 북쪽으로 회차해야 하는 전동차는 선로를 바꾸는 회차 과정에서 일반열차 내선을 침범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회차할 때만은 여전히 일반열차 눈치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2복선의 선로 용량에 걸맞게 전동차를 증차하기가 어려웠다.
이 고질적인 문제는 먼 훗날인 2003년, 병점 역이 개통하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차량기지와 함께 회차 전용 입체 교차로가 신설된 것이다. 병점뿐만 아니라 천안에도 전동차 회차 및 장항선 분기가 모두 입체 교차로로 잘 구비돼 있다.

90년대에 들어서서는 경인선도 2복선화가 추진됐다. 거기는 일반열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 타당성 조사는 진작에 다 통과했기 때문에 일이 성사됐다. 그리고 경부선과 경인선이 합류하는 구로-영등포 간은 아예 3복선화도 진행되었다. 1991년 11월 23일은 경인선 2복선화 기공식과 경부선 해당 구간 3복선화의 개통식이 거행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경인선 2복선화는 부평-주안-동인천의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구일 같은 역은 이를 계기로 형태가 크게 바뀌기도 했다.

사실 그 해 5월 25일에는 공사 때문에 1박 2일 남짓한 시간 동안 전동차가 잠시 단축 운행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 경부 고속철 2차 공사 구간에서 경부 고속도로 위를 타넘는 언양 고가 공사와 비슷한 맥락이라 보면 되겠다. 첨단 공법을 동원한 덕분에 공사의 대부분은 차량 통행을 막지 않고 그대로 진행할 수 있지만 아치의 기초를 놓는 한나절 남짓한 시간은 고속도로를 잠시 막아야 했다고 한다.

경인선과 더불어 경부선 수도권 전철도 수원이 아닌 무려 천안까지 남하하는 공사가 1996년부터 추진되었다. 그 시절에 경부선 일반열차를 타면서 아직 완공되지 않은 전철역 승강장이 휙휙 지나가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경부선은 이제 천안 이북은 2복선 전철이 되었지만 일반열차 때문에 경인선처럼 충분하게 급행 전동차를 운행하지는 못한다.

서울 서남쪽이 그렇게 변화를 겪고 있는 동안, 북쪽 종점인 성북 일대에서는 1호선 전동차의 병목을 야기하고 선로 용량을 깎아먹던 '평면교차'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진행됐다.
1978년 12월에는 경원선 용산-성북 구간에도 전동차가 투입되어 종전의 디젤 동차를 대체하고 1호선의 지선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이놈은 선로 합류와 회차 과정에서 유감스럽게도 1호선 전동차와의 평면교차를 야기하고 있었다.

얘는 2005년에 광역전철 중앙선으로 분리해 나감으로써 문제가 해결됐다. 용산-성북이 아니라 용산-덕소가 됐다. 마치 안산선 열차가 처음엔 1호선 경부선의 지선으로 운행되다가 훗날 4호선으로 완전히 독립해 나간 것과 같은 방식이다.
또한 경춘선 무궁화호가 야기하던 평면교차도 경춘선 복선 전철이 다른 선로로 이설되면서 사라졌다. 다만 이런 조치로 인해 반대로 말하면 성북(지금의 광운대) 역이 그 덩치에 비해서 경춘선도 못 타고 중앙선도 못 타고 오로지 1호선 전동차밖에 못 타는 역으로 역할이 줄기도 했다.

다만, 처음에는 이 수도권 전철의 북쪽 종점은 계속해서 올라가서 한동안 의정부북부에 머물러 있다가 이제는 동두천과 양주를 거쳐 소요산까지 올라갔고, 장기적으로는 무려 연천까지 갈 거라고 한다. 경원선 자체는 아예 민통선 안의 월정리와 철원까지 복원할 계획이 잡혀 있고.. 정말 40년 동안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룬 셈이다.

그나저나 먼 옛날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의 내부 인테리어가 온통 빨강이었다는 것이 본인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로마자 표기법이 바뀐 게 반영되고 국철과 지하철 구분 없이 색깔을 남색으로 획일화한 모습만 직접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옛날 사진을 보면.. 오히려 "내가 착각을 하고 있나, 색맹이 됐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사무엘

2016/03/20 08:31 2016/03/20 08:31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05

« Previous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 27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1/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1698912
Today:
33
Yesterday:
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