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1933년부터 1945년은 뭐랄까 광란과 암울의 시기였다. 세계적인 경제 호황 황금기였던 1920년대가 대공황이라는 날벼락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때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의 치욕을 갚으려고, 일본은 나락으로 가는 경제를 살리려고 군국주의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국부를 창출할 방법이 없으니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고 빼앗고 식민지를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일본은 딱 저 무렵에 상하이 사변을 일으키고 만주국을 세웠으며..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해군 군축 규제를 생까기 시작했다.
독일은 권력이 나치에게 완전히 넘어갔으며, 히틀러가 총통 자리에 올랐다. 히틀러는 주변 강대국들이 머뭇거리는 동안(1차 대전의 트라우마 때문에..) 체코나 오스트리아 같은 이웃 나라들을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고,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런 폭주가 나중엔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 독소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을 만들어냈다. 얘들은 명분 없는 침략 전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점령지에서 정말 반인륜적이고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고, 그러면서 결국 연합국에게 지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빼박 악의 축으로 전락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딱 정확하게 이 기간 동안 재임했다.

이 시절에 있었던 일들 중에 본인 기억에 인상깊게 남아있는 것을 몇 가지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폴란드, 퀴리 부인
우리나라는 위로는 중국, 아래로는 일본에 치이면서 19세기 말~20세기 초의 현대사가 불운하고 기구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폴란드가 역사적으로 처지가 한국과 매우 비슷했다고 한다.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껴서 19~20세기 사이에 양쪽으로부터 번갈아가며 지배 받고, 걔네들 마음대로 영토가 분할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장 2차 세계 대전부터가 바로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는 걸로 시작됐었다.
오죽했으면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폴란드 땅에 만들어졌다! 독일 본토가 아니다.
그러니 나중에 독일이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고 점령지를 상실했을 때는 거기 수감자들을 점점 더 독일 본토에 가까이 있는 수용소로 이감을 해야 했다.
그랬는데.. 더 옛날 19세기 중후반엔 폴란드가 러시아 제국의 식민지였다.
마리 퀴리(퀴리 부인)가 그 시기에 이 지역 출신이었다.
아마 중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였던가..?? 마리 퀴리의 학창 시절 일화가 실려 있었다.
러시아에서 불시에 학교 시찰을 보내서 수업 중인 선생한테 "이 교실에서 제일 똘똘한 애를 하나 지목하시오. 당신이 학생들을 우리 교육방침대로 잘 가르치고 있나 확인해 보게" 대뜸 이런 요구를 했다.
애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얼어붙어서 'ㄷㄷㄷㄷㄷ 제발 저는 지목하지 마세요!!!ㅠㅠㅠ' 이러던 와중에 넘사벽급 우등생 모범생이던 마리 퀴리가 답정너 지목됐다.
교과 내용 질문뿐만 아니라 국가관 사상 검증 질문까지 모든 답변이 러시아어로 막힘없이 술술..
러시아 장학사인지 누군지는 아주 흡족해하며 떠났다. 허나, 그렇게 위기를 넘긴 뒤에 그 선생과 마리는 부둥켜안고 서럽게 엉엉 울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비슷한 시기의 "마지막 수업" 소설과 비슷한 분위기다.
햐, 러시아에 나치에.. 이런 지경이었으니 훗날 동아시아에서 중-일 전쟁이 터졌던 것과 비슷한 구도로 독-소 전쟁이 터졌나 싶기도 하다.
그 사이에 낑겼던 폴란드는 2차 대전 피해를 극심하게 당했다. 뭐, 마리 퀴리는 프랑스 과학자와 결혼해서 프랑스로 귀화했고, 2차 대전이 터지기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험한 꼴을 보지는 않았다.
마리 퀴리가 그냥 타고난 천재이고 독한 공부기계 괴수였다고만 말하는 건 고인에 대한 모독일 거다.
이 사람은 약소민족 차별과 설움, 학계에서 여자라는 성차별 유리천장, 하루에 사과 하나 빵 한 조각밖에 못 먹을 정도의 가난과 굶주림..
그야말로 신체 장애만 빼고 어지간한 역경과 핸디캡을 다 겪었는데 이걸 오로지 실력과 노력만으로 다 극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방사성 원소 라듐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퀴리 부인의 둘째딸이 "어머니, 아버지, 언니, 내 남편.. 다 노벨 상 받았는데 나만 못 받았으니 나는 가문의 수치입니다" 이런 정신나간(...) 소리를 늘어놓을 정도였는데.. 그런 가문이 저런 배경 속에서 만들어졌다.
마리 퀴리는 독일의 그 유명한 과학자.. 공기로 빵을 만든 과학자, 하지만 동족을 죽이는 독가스의 개발에도 참여했던 과학자 '프리츠 하버'와 생년 몰년이 거의 같은 동갑내기였다. 암모니아를 인공 합성한 거나, 방사성 원소를 처음으로 발견한 거나.. 다 비슷하게 넘사벽이었다.
2. 연설과 선동의 천재
꼭 과학 쪽에만 천재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소파 방 정환 선생은 동화 구연의 천재였다.
이 사람이 감방 안에서도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면 동료 죄수들은 물론, 밖의 간수들도 실실 쪼개거나 눈물 짰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진다.
옛날이 지금보다 오락거리가 없고 신파가 더 잘 통하는 시절이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저건 비범한 능력이었음이 틀림없다.
근데 히틀러는.. 연설· 웅변의 천재였다.
"비겁하게 팩트 따위 들이대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날조와 선동으로 승부하자!! 대중들에게 막연한 공포와 적개심을 팍팍 조장하자!"의 훌륭한 모범을 보였다.
"여러분, 살기 힘드시죠? 우리 위대한 게르만 민족이 국력이 부족해서 전쟁에서 진 게 아닙니다.
우리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거, 알고 보면 이게 다~~~ 노뭏... 아니 유대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배신자 쥐새끼들로부터 비열하게 뒤에서 총질을 당했기 때문에 졌을 뿐입니다!!"
이 말을 눈짓 손짓 총동원해서 고래고래 고함 치듯이 외치니까 다들 입 헤 벌렸다.
히틀러는 쿠데타(뮌헨 맥주홀 폭동)가 실패하고 붙잡혔는데, 재판정에서도 연기까지 가미해서 이렇게 피 끓는 호소를 했댄다.
"이러쿵저러쿵.. 그러니 존경하는 판사님, 제 눈을 똑바로 보십시오. 저에게 죄가 있다면 내 나라 내 민족을 사랑해서 국민의 권리를 지키려고 싸운 죄밖에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말빨이 좋았는지, 저 호소에 법정 방청석에서는 "옳소!"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오고 검사와 판사까지 정신줄을 놔 버렸댄다.
"응..?? 여기서는 우리가 피고인을 심문하고 판결을 내려야 되는데.. 왜 반대로 우리가 피고인한테서 연설을 잔뜩 듣고 있는 거지..???? 병신 같지만 아주 멋있는걸? 우리가 설득 당하겠어?"
그 결과, 히틀러는 내란 정치범으로 금고 5년이 나오긴 했지만.. 책상 있고 침대 있는 넓은 독방에서 외부인 접견도 자유롭게 하면서 진짜 편하게 잘 쉬었다. 최소한의 형식적인 솜방망이 처벌만 받다가 겨우 13개월 만에 석방됐다.
그 동안 담당 간수가 "저 같은 미물이 감히 선생님을 곁에서 모시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이랬다. -_-;; 히틀러는 애국자 VIP 양심수로 예우받으면서 이 전과가 정치 커리어에서 커다란 플러스로 추가됐다.;;
울나라로 치면 안 두희를 살해한 박 기서 씨가 받았던 대우와 비슷했다. 저 사람도 살인죄 5년을 최대한 감경해서 3년형이 나왔지만.. 17개월 남짓 만에 삼일절 특사로 석방됐으니 말이다.
히틀러의 선동 기술은 그야말로 악마의 나팔수였던 괴벨스의 도움이 합쳐져서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냈다.
미국은 나라가 부유하고 잘 살다 보니 1920년대에 이미 중산층 서민들이 자가용을 굴리고 라디오도 갖고 있었다고 하던데.. 독일에서는 국민들을 히틀러 연설로 세뇌시키려고 저가형 '국민라디오'를 저렴하게 찍어내서 뿌렸다. 주파수는 특정 채널로 답정너 고정돼 있었고..
히틀러를 유대인 학살 같은 죄악을 빼고 평범하게 정치인, 군인(패배하긴 했지만)으로서만 생각하면 뽀대나기는 한다.
한자 문화권도 아닌 동네에서 웬 卍짜를 심볼로 쓴 것도 그 당시엔 꽤 참신한 디자인이었을 것이고, 나치 SS 군복이 일본군 군복보다야 비주얼이 멋있는 건 사실이니까. =_=;;;
히틀러의 종교관은 김 일성의 종교관과 비슷한 유형의 떡밥인 것 같다.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결국 개인 숭배로 빠지고 이상한 쪽으로 흑화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히틀러는 영화 배우 찰리 채플린과 생년월일이 겨우 4일밖에 차이 나지 않는 완전 동갑내기였다. 찰리 채플린은 나치 독일을 풍자하는 영화에서 히틀러 역을 맡아서 연기를 했으며, 히틀러 역시 그 영화를 보기도 했다.
Posted by 사무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