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때 본인은 제주도로 2박 3일 가족 여행을 다녀 왔다. 이로써 본인은 지금까지 제주도를 딱 세 번 방문했다.
맨 처음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인데, 너무 오래 돼서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로는 4년 전에 회사 워크숍으로 역시 2박 3일간 다녀 왔다. 그 뒤 이게 세 번째이다.
이번에 간 건 버스를 타고 가이드를 따라다닌 단체·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숙소만 잡고 차를 렌트한 뒤 가족 단위로 자유롭게 돌아다닌 여행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여행과 차이가 있다. 글을 둘로 나눌까 하다가 귀찮아서~ 또 글 분량 대비 사진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어서 그냥 한 포스트에 전체 일정을 몽땅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의 지명으로서 '제주'라는 고유명사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 제주특별자치도: 행정구역으로서의 명칭이다. 이때 접미사 '도'는 경기도, 경상도 할 때의 그 도이다. 그러고 보니 한자는 의외로 그냥 '길'을 뜻하는 道였다. 都 같은 다른 글자가 아니구나.
- 제주도: 섬으로서의 명칭이다. 이 '도'의 한자는 당연히 島. 한라산이 있으며 대한민국 영토 중에 가장 넓은 그 섬을 가리킨다. 제주특별자치도라는 행정구역은 바로 제주도와 그 주변에 있는 우도· 마라도 등의 마이너 섬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 제주시: 다시 행정구역 명칭이다. 제주도를 정확하게 남북으로 이등분해서 북반구 영역(주변 섬들 포함)은 제주시에 속하며, 남반구 영역은 서귀포시에 속한다. 우도는 제주시 소속이지만 마라도는 서귀포시 소속이다.
이런 제주도와는 달리, 울릉도는 도 단위의 고유한 행정구역이 할당돼 있지 아니하다. 그냥 본토의 '경상북도' 소속이고 그 하위 범주로서 '울릉군'이라는 주소를 가진 형태이다. 뭐, 얘는 위도로만 따지면 강원도 소속이어도 할 말이 없는 위치이긴 하지만 말이다.
면적으로만 따지면 전국에 울릉도보다 더 넓은 섬은 거제도, 강화도, 진도처럼 몇 개 더 있다. 인천 공항의 건설을 위해 간척으로 합쳐 놓은 영종+용유도도 울릉도보다 약간 더 넓다. 그러나 이들은 본토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편이며 아예 다리도 놓였기 때문에 섬이라는 느낌이 덜 든다.
울릉도는 본토와 다리로 연결되지 않은 섬 중에서는 아마 제주도 다음으로 가장 넓지 싶다. 제주도 만만찮게, 아니 그 이상으로 본토와는 100km가 넘게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강원도에 준하는 급의 위도에도 불구하고 6· 25 전쟁의 포화조차도 비껴 갔을 정도이다. (공산당에게 점령 당했거나, 수복을 위해 군대가 상륙하고 전투가 치러진 내력이 없음)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도 단위의 구역을 독립시키기에는 울릉도는 너무 좁고 인구가 적다. 다리가 없고 공항도 없으니 자동차와 비행기 모두 아웃. 왕래하는 교통수단은 오로지 배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에 반해 제주도는 면적과 거리가 모두 독보적인 원탑이며, 고대엔 아예 탐라국이라는 별개의 국가를 이루기도 했을 정도로 단절성이 뛰어나기에 저렇게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이지 싶다. 서울이 특별시인 것만큼이나 우리나라의 섬들 중에 행정구역상으로 '특별'이라는 말이 붙은 곳은 제주도밖에 없다.
과거에는 제주도는 행정구역 명칭도 '특별자치'라는 단어가 없이 똑같이 '제주도'였다. 그래서 개념을 더욱 혼동하기 쉬웠다. 똑같은 단어인데 넓은 범위에서의 의미와 좁은 범위에서의 의미가 달라서 헷갈리기 쉬운 게 세상엔 많이 있다. ('이름', IME 등등..)
제주도와 울릉도에 비하면 쓰시마 섬(대마도)은 외국 영토치고 이례적으로 굉장히 가까이 있는 섬이다. 하지만 얘는 근대에 일제가 강탈한 게 아니고 역사적으로 굉장히 오래 전부터 일본인들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소유주가 진작부터 지금처럼 굳어졌다.
이런 걸 생각하면 섬과 행정구역 사이의 경계를 생각하는 게 의외로 재미있으면서 한편으로 골치 아픈 문제인 것 같다.
사회 지리 얘기는 제끼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비행기는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아니니, 어딜 가든 비행기를 탈 기회가 찾아오면 이것만으로도 나의 신경이 바짝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 본 현대 자동차 남양 연구소이다. 지상에서 뭔가 익숙한 지형지물이 보이니 반가웠다.
뿌옇게 형상만 보이던 사진을 콘트라스트 올리는 보정을 하니 부득이하게 흑백 사진처럼 바뀜. 주행 트랙에서 저 둥그런 위쪽 끝과 아래쪽 끝 사이의 거리는 나름 거의 2km에 달한다.
저게 나타나기 불과 몇십 초 전엔 '자동차 안전 연구원'의 주행 트랙도 봤다. 두 기관의 거리를 알고 있으니 시간차를 통해 이 비행기의 주행 속도를 얼추 계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광주 부근에서는 광주 공항도 볼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내가 착륙하지 않는 다른 공항도 내려다보는 건 아무래도 자주 경험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제주도에 도착한 뒤엔.. 공항에서 렌터카 사무실은 어떻게 찾아갈지, 공항 주변은 분명 자동차들로 교통지옥일 텐데 어떻게 빠져나갈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공항 주변 도로의 혼잡을 완화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부터 렌터카 업체들은 다 공항 바깥 외곽으로 이주했으며, 그 대신 업체들이 연합하여 승객과 렌터카 허브를 왕래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조치인 것 같다.
공항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이호 테우 해수욕장을 들렀다. 가족 중에 나만 유일하게 물놀이 준비를 하고 여행을 떠났으며, 나 혼자 바닷물에 들어가서 물과 흙을 묻히며 재미있게 놀았다. 물에 들어가는 건 언제나 웰컴. 이로써 올해 본인은
서해, 동해에 이어 남해 바닷물까지 모두 경험하게 됐다.
일행이 있으니, 혼자 달랑 해수욕장에 갔을 때와는 달리 소지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이렇게 물에 들어간 내 모습을 사진 찍어 줄 사람도 있고 말이다.
이 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좀 끈적거리는 게 동해보다는 서해 바닷물에 더 가까워 보였다. 단, 제주도답게 검은 모래도 있고, 바닥이 울퉁불퉁한 곳이 많아서 편하게 돌아다니기는 어려웠다.
해수욕장의 이름이 좀 특이한데, '테우'는 제주도 고유의 모양을 한 소형 어선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물놀이를 딱 마치고 나니까 날씨가 급격히 흐려지고 비까지 내려져서 타이밍이 절묘했다.
제주 시내를 벗어나 남부의 서귀포시로 갔다. 제주도 남부를 횡단하는 동안 이런 산길을 굉장히 길게 지났다. 여기는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곳도 신호등 교차로가 아니라 로터리 형태로 된 게 많았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제주도의 동남쪽 끝에 있는 성산 일출봉을 올랐다. 높이가 해발 180m 남짓 된다. 처음엔 초원과 오솔길로 시작하지만 정상 부근의 바위는 나름 가파른 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 관계상 한라산 등산은 하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 아쉬운 대로 등산 흉내를 냈다.
식사와 이동 시간을 빼니 첫째 날의 일과는 이 정도로 마치게 됐다. 산과 바다를 제각각 구경했다.
둘째 날 아침엔 천지연 폭포를 구경했다. 사진을 따로 첨부하진 않지만 여기까지 가는 길도 울창한 숲과 호수? 개천이 아주 잘 꾸며져 있어서 경치가 좋았다.
또한, 저 사진엔 용케 안 들어갔지만 현장 주변은 아침부터 온갖 관광객들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구도가 잘 나오는 바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려면 한창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유사품인 천제연 폭포와 혼동하지 말 것...;; 사실, 둘 다 비슷하게 경치가 아주 아름답다.
그 뒤 천지연보다는 작고 덜 유명한 '원앙 폭포'라는 곳에 들렀다. 차를 세운 뒤 계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했는데..
여기는 천지연과는 달리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물은 해수욕장보다 훨씬 더 맑고 차갑고 깨끗하고 좋았는데...! 어제 같은 물놀이 준비를 하지 않고 나온 게 너무 후회됐다. 발만 담그고 돌아가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주상절리(柱狀節理)라고 용암이 바닷물과 닿아서 식으면서 생긴 기묘한 지형이라는데, 중문 대포 해안에 있는 걸 봤다. 인간이 돌을 일부러 저렇게 깎은 게 아닌데 자연적으로 어떻게 저런 모양이 생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용암 아니랄까봐, 바위가 뭔가 흐르는 듯한 모양에 구멍이 숭숭 난 채 시꺼멓게 굳은 걸 보니, 선지 생각도 났다.
이로써 둘째 날 오후가 됐고 여행의 전체 일정은 후반부로 들어섰다.
지금까지는 보다시피 공무원들이 관리하는 자연 명소들을 주로 들렀다. 자연 명소라는 특성상 관광 장소는 100% 실외이고, 외지 관광객의 입장료가 2000원가량이었다.
이제 후반부부터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설 박물관들을 들렀다. 이런 곳은 입장료도 9천원~1만원대로 훨씬 더 비싸진다.
4년 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는 첫째 날은 한라산 등산으로 하루를 보냈고 둘째 날 자연 관광은 송악산과 마라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셋째 날은 서울 도착을 오후 2시쯤에 했을 정도로 식사와 이동 말고 딱히 활동한 게 없었다.
소인국 테마파크는 우리나라 포함 세계 각국의 온갖 유적· 유물과 유명 건물들을 적게는 1/3, 많게는 1/25급으로 축소한 구조물들을 넓은 실외에 전시해 놓았다. 만리장성, 자금성, 에펠 탑, 미국 국회의사당이던가 백악관, 이집트와 멕시코의 피라미드, 우리나라의 청와대, 경복궁, 옛 서울 역, 피사의 사탑, 자유의 여신상 등 볼것이 아주 많다.
여기 말고 누나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고 싶어했던 박물관으로는 오설록 녹차 박물관과 그 근처에 있는 제주 유리의 성이었다. 하지만 이 두 곳은 내가 4년 전에 갔던 곳이기 때문에 또 가지 않았다.
돌아다니면서 세계 자동차 박물관을 종종 지나쳤는데 여기에도 못 갔으며, '제주 아쿠아플라넷'도 후보지에는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들르지 못했다.
둘째 날에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박물관은 살아 있다'라는 실내 응용 미술(?) 박물관이었다. 이런 식으로 2D와 3D 착시를 일으키는 벽화에 쏙 포즈를 취해서 자기가 그림 속의 주인공이고 높은 곳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거나 사지가 잘린 것처럼(!) 흉내를 내고, 그걸 다른 일행이 사진 찍어 주는 곳이다. 걸어다니면서 조용히 눈팅만 하는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손수 퍼포먼스를 좀 하면서 추억을 남겨야 한다.
저건 내가 표정 연기를 잘했다고 가족들이 다들 좋아했다. 밑에 부대찌개 그림이 있는 줄은 현장에 있을 때 미처 몰랐다. 제기랄. =_=;;
지금까지 다녀갔던 곳들은 자연 관광지는 대체로 어머니께서 제안하셨고, 맛집 식당과 박물관들은 누나의 제안으로 들렀다.
그 반면 셋째 날에는 한림 공원과 넥슨 컴퓨터 박물관을 들렀는데, 이것들은 내가 제안한 장소였다. 컴퓨터 박물관은 4년 전 당시에도 없다가 새로 생긴 곳이고, 반대로 한림 공원은 먼 옛날 수학여행 때 들른 곳이긴 하지만 다시 구경하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둘째 날에는 주요 짐들을 호텔에다 놔 두고 편하게 다녔지만, 마지막 날은 다시 숙소로 돌아오지 않으니 체크아웃 후 첫째 날처럼 다시 모든 짐을 차에 싣고 다녔다.
한림 공원은 그야말로
식물원, 동물원, 동굴, 수석 전시관, 민속촌이 몽땅 합쳐진 멀티테마 공원이었다. 원래 있던 자연 지형을 토대로 조성된 국립공원이 절대 아님. 개인 사업가가 깡촌 황무지에다가 흙 깔고 외국에서 사 온 식물 종자들을 어렵게 심어서 일군 사립 공원이다. 어지간한 박물관들이 다 둘러보는 데 1시간 남짓한 시간을 잡지만, 여기는 1시간 반~2시간은 족히 잡아야 했다. 그러고도 입장료가 딱히 더 비싼 것도 아니었다.
맑고 하늘이 파랄 때 갔으면 경치가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서귀포 외곽이 아니라 제주 시내에 있었다. 이 때문에 여기는 동선을 고려하여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림 공원을 다니던 중에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하필 오후에 컴퓨터 박물관을 관람할 때부터는 딱 그쳤고 하늘이 맑아졌다. 날씨를 감안하면 올실내인 컴퓨터 박물관을 오전에 관람하고, 오후에 한림 공원에 가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컴퓨터 박물관은 전반적으로 저런 곳이었다. 컴퓨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옛날 컴퓨터 기계들이 즐비하고 특별히 고전 게임을 할 수 있는 옛날 컴퓨터, 그리고 일부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는 부스가 있었다.
하지만 나처럼 하드웨어 덕후가 아닌 평범한 프로그래머가 보기에도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컨텐츠 면에서 좀 2%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있어 보였다. 옛날 게임 소프트웨어 자체는 오늘날의 컴퓨터에서도 인터넷으로 구해서 에뮬로 얼마든지 띄울 수 있으니 희소성이 부족하다. 컨텐츠를 보강해서 아예 비디오 게임 전용 테마 박물관으로 가든지, 아니면 컴퓨터 박물관이면 에니악이나 우리나라 최초의 슈퍼컴 같은 학술적인 역사 자료까지 잔뜩 더 보강해서 개성을 강화했으면 어떨까 싶다. 두 이념을 좀 어중간하게 빈약하게 추구한 것 같다.
전반적인 규모도 다른 테마 박물관보다 작기 때문에 관람은 서둘러서 하면 한 3, 40분이면 다 할 수 있다. 다만,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으니 어린애들을 풀어놓고 시간 보내기에는 좋다. 실제로 우리가 갔을 때도 여기는 아이들 천지였다.
지하 1층은 카페 + 무료 고전게임 오락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코인 제약도 없다 보니 한 사람이나 가정이 자리를 너무 오래 차지하고 있는 걸 방지하는 수단이 없는 건 아쉬웠다.
굳이 사진을 첨부하지는 않지만.. "그 날이 오면 3" 게임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비치돼 있던데, 출시일이 웬 1990년으로 기재돼 있었다. 1편이나 2편의 출시일과 혼동한 듯. 3편은 1993년작이다.
한메 타자 교사도 있어서 본인은 세벌식으로 바꿔서 베네치아 게임을 해 봤는데.. 키보드의 감이 생소하고 또 최종이 아닌 390 배열로 하느라 버벅대서 8단계 2만 점대 초반에서 죽었다.
그런데, 이 점수로도 순위권에 아슬아슬하게 들지 못했다. 이미 하고 간 사람들 중에 타자 고수가 많았다. 이 사람들은 다 두벌식으로 쳤을 텐데.. 이 모바일 시대에도 컴퓨터 키보드 타자 고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하다.
공공장소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난 뒤엔 민주 시민답게 설정을 다시 두벌식으로 되돌려 놓는 것을 본인은 잊지 않았다. -_-;;
박물관 관람을 다 마친 뒤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은 걸 확인한 뒤엔 흑돼지 삼겹살을 먹었다. 제주도에서 한 마지막 식사가 제일 비싼 식사였다.
시간이 빠듯하지 않을까 서둘렀는데 그래도 시간이 1시간 남짓 있었기 때문에.. 공항 근처에 있는 자연 유적지인 용두암을 추가로 구경했다. 여기는 딱히 입장료가 들지는 않았다. 바위 사진보다도 비행기 사진에 더 눈길이 갔다.
그 뒤 제 시간에 무사히 자동차를 반납하고 공항 수속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는데..
연휴 마지막 날엔 엄청난 트래픽을 감당치 못하고 비행기들이 줄줄이 지연을 먹고 있었다. 면세 구역은 돗자리까지 깔고 몇 시간째 탑승을 기다리는 인파들로 가득했고 마치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이거 김포 공항의 통금에 걸려서 인천 공항에서 돌아와야 하는 건 아닌가 우려도 했지만 다행히 통금 시각은 밤 10시가 아닌 11시였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그 전에 서울에 도착함. 돌아오는 비행기는 광동체인 보잉 777이어서 마치 국제선을 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는 참 매력적인 교통수단이다.
이륙할 때 엔진이 최고 출력으로 가동되어 온몸으로 공기를 내뿜는 그 소리(청각)는 선로 위 전동차의 VVVF 구동음에 필적하는 청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소리가 너무 크고 우렁차기 때문에 어설픈 장비로는 녹음을 제대로 할 수도 없다.
또한, 급격한 가속 때문에 뒤로 쏠리는 그 가속도는 다른 대형 대중 교통수단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비행기 말고 뭔가 스릴있고 짜릿하다는 놀이기구들도 근본 원리는 다 사람에게 G의 왜곡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터, 바이킹 등.
착륙할 때 점점 고도가 낮아지고, 바퀴가 땅에 닿으면서 '쿵!' 착지 충격이 느껴질 때도 즐겁다.
서양 일부 문화권에서는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승객들이 박수를 친다던데.. 뭔가 사람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반영해서 생긴 문화 같다.
착륙 직후 플랩이 펼쳐지고 뭔가 저항이 걸리는 듯한 큰 소리가 나는 건 전동차로 치면 회생 제동이 걸리는 소리와 비슷하며, 자동차에서 엔진 브레이크가 걸리는 소리와 비슷한 것 같다.
이렇듯, 조종사에게는 제일 힘들고 긴장되는 순간이(이착륙) 승객에게는 제일 즐거운 순간이다.
모든 게 훌륭하다. 단, 딱 하나, 비행기에는 과거 새마을호 열차처럼 Looking for you 같은 "음악"이 없었을 뿐이다.
이것이 내게는 항덕과 철덕 사이의 운명을 갈랐다.
아, 글을 맺기 전에 아이템 하나 추가함.
제주도의 풍경 상징이라 하면 딱 연상되는 건 (1) 본토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야자수, 그리고 (2) 이 돌하르방이다.
돌하르방은 그저 장승의 제주도 바리에이션이기라도 한 건지, 처음에 누가 언제 왜 무슨 용도로 만든 물건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정말로 옛날에 만들어진 물건보다는, 근현대에 유명해지고 나서 관광 마케팅 목적으로 일부러 따라 만들어진 모조품 돌하르방이 월등히 더 많다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_=;; '돌하르방'이라는 이름 자체도 '참치'만큼이나 근현대에 와서야 정립된 명칭이다.
돌하르방은 생각보다 크기가 다양하며, 사소하게는 저렇게 왼손과 오른손 중 위에 놓는 손의 위치도 통일돼 있지 않고 케바케이다.
제주도에 가면 "모처에 있는 요것이 현존하는 제일 오래 된 원조 돌하르방이다!" 이런 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난 돌하르방은 여러 모로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과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해 왔다.
저 모아이 석상 사진은 소인국 테마파크에 있는 걸 촬영한 것이다. 모아이도 원래는 돌하르방처럼 모자도 쓰고 있고 심지어 눈알도 붙어 있으나, 오늘날은 소실되고 없는 석상이 훨씬 더 많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