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답사를 마치자 슬슬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밖은 여전히 대단히 추웠고, 비는 그칠 기미가 안 보였다. 내가 춥다고 느낄 정도면 정말 추운 거다.
일단 7호선 시승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자축하면서 차 안에서 아침 식사용 스낵류를 꺼내 먹었다. 그 뒤, 서울과 부천의 경계이며 김포 공항 이착륙 비행기 출사의 명당인 오쇠삼거리로 향했다. 온수에서는 차로 15분 남짓이면 가는 거리이니, 기왕 멀리 여기까지 왔는데 비행기 구경도 좀 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김포 공항의 담장은 철조망이 겹겹이 쳐져 있고, 주변의 황무지(wilderness)들은 '개발 제한 구역' 정도를 넘어서 아예 국유지이기 때문에 무단 접근 및 개발 엄금이라고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린벨트는 사유지에 대한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제도인 반면, 저기는 아예 개인의 부동산 권리고 나발이고가 애당초 없는 국유지라는 뜻.
어차피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비행기의 소음 때문에 여기는 거주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항공 보안상의 이유로도 공항 바로 옆의 땅은 불가피하게 그렇게 놀려야 할 듯하다. 그나마 김포 공항은 군사 보안이 필요하지는 않은 순수 민간 공항인데도 제약이 이 정도이다.
여기는 도로 폭이 좁기 때문에 도로변에 차를 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황무지 안쪽으로 차를 세워 둘 곳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주차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교차로에서 얼마나 가까이, 비행기를 얼마나 잘 볼 수 있는 곳에다 세우는지가 문제이다.
747급의 대형 기종은 아니지만, 비행기는 수 분 간격으로 정말 자주 다녔다. 경부선 3복선 구간 만만찮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부 이륙만 할 뿐, 착륙을 하는 놈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비바람을 감안하여,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의 이착륙 진행 방향을 내가 원하는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지시한 모양이다. 내가 최근에 제주도 행 비행기를 탔을 때는 북쪽이었는데 말이다. 착륙하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놈보다 더 고도가 낮으며, 육지에서 비행기를 더 가까이서 큼직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동일 공항 착발이라 해도,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착륙하는 방향은 공항의 사정에 따라 수시로 바뀌며, 해당 비행기의 항로에도 영향을 꽤 끼치는 요소이다. 그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비행기가 방향을 바꾸려면 회전 반경이 얼마나 커야 하겠는가? 이러니 배가 밤에 등대가 필요하고 대형 선박의 경우 도선사까지 필요하듯이, 비행기에는 관제탑의 안내란 게 반드시 필요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의 제주 공항은 필요에 따라 취사 선택하라고 활주로가 십자까지는 아니지만 X자 모양으로 둘 있기도 하다.
여기서 비행기를 구경하면서 차에서 또 잠시 자기도 했다. 오쇠삼거리 근처에서 두어 시간 정도 머물다가 상암동 박 정희 기념 도서관/박물관으로 갔다. 언젠가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 위치가 지하철역에서 영 멀었던 관계로 선뜻 못 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랬는데 차가 있는 김에 거기까지... 게다가 안 중근의 거사 날짜뿐만 아니라 박 정희 전대통령이 부하의 총격으로 세상을 떠난 날도 10월 26일이니 오늘은 그 다음날이라는 의미도 있다.
건물은 크고 넓었다. 주차 공간도 지상의 마당에 아주 넉넉히 있어서 걱정할 것 없었다. 건물은 3층은 도서관 열람실이고, 2층과 1층이 박물관 내지 기념관인데 2층에서 관람을 시작하여 1층으로 나오는 구조이다.
무슨 내용이 있는지는 내가 굳이 더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난 성경의 용어를 동원하자면 박 정희가 역대기하 26장과 가장 비슷한 업적을 남긴 통치자라고 평가를 내리고자 한다.
치수와 산림 녹화를 하고 농경 선진화를 이루고(대하 26:10), 이공계를 육성하고(대하 26:15) 국방을 강화했다(대하 26:14). 게다가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라는 모토는 느 4:13-18을 꼭 빼닮은 심상이지 않은가? 뭐, 박통이 교만 때문에 파멸에 이른 것까지 똑같은지에 대해서는(대하 26:16 이후) 독자들의 상상과 판단에 맡기겠다.
다른 건 몰라도 전기 얘기는 좀 해야겠다.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조금이라도 흔들었다가는 훅 가 버릴 정도로 정말 혼란스럽고 위태롭게 시작했다. 그랬는데 정부 수립을 앞두고 북한으로부터의 송전 중단은(1948) 당시 나라를 멘붕 상태로 몰아넣었음에 틀림없다. 일제 강점기 때 건설된 전력 공급 인프라의 8~90%가 지하자원이 더 풍부한 이북 땅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가 좀 나라답게 돌아가는 거 같았다가 1950년대 이후에 갑자기 호롱불을 켜는 조선시대 시절로 손발퇴갤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전쟁의 상흔도 있지만 또한 전력 부족 때문이다. (웬지 영화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의 전기 고문 장면이 갑자기 생각나는 건 기분 탓.)
그래서 박통 이전의 이 승만 때부터 필사적으로 전력 공급 안정화를 위해 강원도 산업선 철도를 우선적으로 건설했으며, 무엇보다도 원자력 발전소를 유치하려 애썼다. 그리고 원전 건설은 박통이 실제로 이뤄 냈다. 그 결과 제한 송전 소치는 거의 20년 뒤인 1968년에야 해제됐다.
박물관의 방명록을 보아하니, 박 정희 싫어하는 사람의 눈에는 거의 박통교 신자처럼 보일 내용으로 글을 남긴 사람도 있었다. 포항에서 일부러 찾아와서 관람을 한 일행도 있고, “박 대통령님은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란 요지로 찬사를 남긴 사람도 있었다. 나는 정치색을 떠나서 우리나라의 이런 객관적인 역사는 후세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는 요지로 방명록에 글을 남겼고, 내 이름과 홈페이지 주소도 적어 놓고 왔다.
우리나라는 그 어렵고 열악한 여건 속에서 더구나 북한 같은 악마의 위협 속에서도, 일부 흑역사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해 왔으며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단기간에 정말 잘 이뤄 냈다. 정말 하나(느)님이 보우하셨다. 솔직히 말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게 아니라, 그걸로 그래도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제철소를 만든 대통령이 있다는 걸 크게 감사해야 하지 않는가?
박통에 대한 까임거리는 크게 친일, 인권, 도덕성(?) 같은 분야로 요약되는 듯한데, 결론만 말하면 내가 보기엔 거의 전부가 되도 않은 소리들이거나 당시 어쩔 수 없었던 것들, 지금도 어차피 피장파장인 것들, 아니면 그래도 업적에 비해 미미한 실책들이다.
나라가 없던 시절에 일본군 장교 경력이 좀 있는 것보다, 솔직히 더 기가 막히는 이력을 가진 인간이 대통령 되려고 난리인 게 훨씬 더 문제이고... 특히 인권은 요즘 사형 집행 안 하고, 흉악범에게 너무 가벼운 처벌을 내려서 유린하는 게 옛날보다 훨~씬 더 많다.
이런 식으로 논리를 적용하니, 나는 박통에 대해서 잘못한 건 면죄부가 적용되어 별로 안 보이며, 잘한 게 더 부각되어 보인다. 그래서 난 어쩌다 보니, 전쟁을 겪으신 어르신 및 부모 세대와 비슷한 정치관과 역사관을 갖게 됐다. (교회에서도 김 용묵 형제가 민감한 정치 얘기까지 자신과 잘 통한다는 걸 아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내게 수시로 그 주제로 얘기를 먼저 꺼내실 정도로..;;)
단, 박통 박물관에도 유품 명목으로 타자기가 하나 전시돼 있는데,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네벌식이다. 세벌식 사용자로서 그건 박통 정권의 어쩔 수 없는 흑역사이다. 박통 및 박물관 얘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다시 강변북로를 탔다. 차를 갖고 나갈 때부터 이미 각오했듯, 낮이 되니 역시 도로가 미치도록 막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경험상 강변북로는 경부 고속도로와 마주치는 한남 대교를 중심으로 동쪽은 서쪽 방면 도로가 엄청 막히고, 서쪽은 동쪽 방면 도로가 엄청 막힌다.
그래도 자동차 전용 도로니까 거북이 걸음으로라도 계속 가기라도 하지, 신호까지 받는 일반 시내 도로는 답이 없다. 이는 철도로 치면 복선과 단선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자동차 전용 도로가 막힐 정도이면 전방에 사고가 났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디서 진짜 사고가 나긴 했는지 구급차와 견인차가 사이렌을 울리고 지나갔다.
사실, 어제나 오늘 차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도중에 내비게이션 업데이트도 덩달아 하려고 했다. 혼자 차를 몰면서 약 50분 동안 엔진 시동이 걸려 있어야 할 때 그 미션까지 덩달아 완수하면 정말 보람찬 여행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문제 때문에 그건 못 했다. 결정적으로, 작년에 내비를 업데이트 할 때는 실행 파일이 윈도우 CE용 바이너리였는데 이번에는 내가 어디서 파일을 잘못 받았는지 실행 파일이 ELF로 시작하는 리눅스용이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슬금슬금 강변북로를 주행하고 있었는데 앞엔 한강 철교가 보였다. 새마을호 전후동력형(push-pull) 디젤 동차가 다음 달이면 퇴역인데, 어차피 도로 정체가 심하면 이거나 좀 구경하고 가려고 핸들을 돌려 한강 고수부지로 차를 뺐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미션이 설정되었다.
날씨가 춥고 비까지 내리니 고수부지엔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드디어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어 점심을 먹었으며, 그러면서 한강 철교 근처에서 약 1시간 동안 열차들을 구경했다. 심지어 컴퓨터를 꺼내 인터넷도 했다. 이 황량한 고수부지에도 사용자 신원과 컴퓨터 Mac 주소 확인 후 인터넷을 쏴 주는 무료 WIFI 신호가 미약하게나마 잡혔다.
새마을호 PP가 요즘 고장이 너무 잘 나서 아예 객실 전기만 공급해 주고 기관차가 견인한다는 루머가 나도는 듯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여전히 PP가 스스로 잘 다니고 있는 걸 확인했다. KTX나 일반 기관차 견인형 열차는 워낙 흔하기 때문에 아무 때나 나가서 몇 분만 기다리면 구경할 수 있는 반면, 새마을호 PP는 최하 40분~1시간 이상 간격으로 다니기 때문에 열차 시각표를 보고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오늘은 비행기와 철도를 모두 구경하고 왔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 구간 시승에다가, 여러 의미를 갖는 이벤트들을 한데 엮어서 수행하니 무척 즐거웠다. 여담인데, 동일 장소에서 비행기와 열차를 모두 볼 수 있는 곳은 IT 단지들이 입주해 있는 구로구-금천구의 경부선 철길 일대이다. 거기가 김포 공항 착륙 비행기의 항로와도 비슷한 선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 주민들은 열차와 비행기의 소음 때문에 그리 유쾌하게 지내지는 못할 것 같다.
말 못 하는 기계이지만, 빗줄기를 뚫고 먼 길을 안전하게 잘 달리고 아늑한 야영 텐트 역할까지 해 준 애마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