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창 피아노 CF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 영창 피아노)
영창 피아노는 어째 군대의 징계 시설과 이름이 같은 바람에 이상한 개드립에 동원되기도 하는 브랜드이지만, 한 30년쯤 전부터 CM송 하나를 기막히게 만들어 퍼뜨린 덕분에 경쟁사인 삼익 피아노에는 없는 독자적인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1989~90년대 그 옛날에 소리와 영상으로 온몸으로 '자연의 소리' 컨셉을 CF에다 담으려고 참 애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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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 피아노는 한때는 무려 빈 소년 합창단을 초빙해서 CF를 찍기도 했다.
미국 NASA가 상업 우주 여행을 주선하지 않은 것만큼이나(러시아와는 달리. 하지만 앞으로는 NASA도 조만간 할 예정이라 함) 빈 소년 합창단도 원래는 상업 광고 따위에는 협조를 안 하는 고매한 단체이다. 하지만 그 당시 영창에서 피아노를 기증해 주기도 하고 어째 거래가 잘 성사되어서 자국도 아닌 동아시아 메이커 피아노의 CF에 출연하게 됐다.

원조 CF에서 피아노를 치는 소녀는 본인과 비슷한 또래의 '염 선희'라는 아이인데, 프로필과 스펙이 꽤 엄청난 사람이다. 저 나이 때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해서 CF 모델로 뽑혔다. 그리고 아마 집도 꽤 잘사는 듯.
원래 음대에 가서 피아노까지 전공하고 싶었지만 손목 건강 문제 때문에 꿈을 접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는.. 웬 뜬금없는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타지에서 부모 간섭에서 벗어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스타크래프트에 파묻혀서 온게임넷 게임 자키를 하더니 숫제 한국으로 돌아와 여성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다. 한때는 같은 여자이고 특별히 미녀 게이머라고 이름을 날리던 서 지수와도 대결을 했을 정도였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처음엔 음대를 지망했다가 미국으로 대학 학부 유학(대학원 유학도 아니고)을 가고, 그 뒤에도 진로를 저렇게 뜬금없이 마구 바꾸는 건 집안이 경제적으로 받쳐 주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손목 부상 때문에 피아노를 접었으면서 왜 피아노 이상으로 손목을 혹사시키는 직업인 프로게어머를 선택했는지는 궁금한 점이다. 외국어도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다 구사하는 엄친딸이라는데 어문 쪽 진로를 선택해도 됐을걸.
그녀는 프로게이머를 오래 하지는 못하고 2년 남짓 있다가 2005년경에 역시 손목 건강 문제 때문에 은퇴했다. 그 뒤로 이 "영창 피아노 CF 출신의 프로게이머"는 온라인 상으로 근황이 전해지는 게 없다. 아무튼 특이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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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창 CF 얘기로 돌아온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저 CF에서 염 선희는 피아노를 치는 컨셉 연기만 했다는 점이다. 노래까지 저 애 목소리인 건 물론 아니며,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은 립싱크라는 걸 화면을 조금만 보면 알 수 있다. 좀 앳된 느낌이 있지만 저 목소리는 진짜 아동이 아니라 성우나 전문 가수의 목소리이다.

영창 CF 노래를 부른 사람은 '신 해옥' 씨라고 수백, 수천 곡에 달하는 CM송과 만화 주제가를 부른 경력이 있는 '얼굴 없는’ 가수이다.
얼굴 없는 가수라 하니까 딱 그 직업을 배경으로 다루는 <미녀는 괴로워> 영화라든가 풀빵닷컴 박분자도 생각나네.
이분의 대표작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건 1990년대 MBC <그림 명작동화> (꿈길에 들었던 꿈길에 놀았던..)의 주제가이다. 영창 피아노 노래와는 달리 저건 꽤 가요풍으로 불렀다.

2. 사이버 가수

아담, 류시아, 사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8~20년 가까이 전, 본인이 중딩~고딩이던 시절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던 '사이버 아이돌' 가수 캐릭터이다. (☞ 링크 1, 링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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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세계 최초의 사이버 가수라는 '다테 쿄코'를 데뷔시킨 것에 착안해서, 그리고 또 그 당시에 <툼 레이더> 게임과 함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가 전세계에서 초대박을 친 것에 영향을 받아서 국내에서도 사이버 캐릭터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1990년대 후반엔 그게 트렌드였다.

<세상엔 없는 사람>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내가 어째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나 옛날 기억을 더 추적해 보니..
아, 그 시절에 정품을 구입했던 거원 제트오디오 CD에 아담의 탄생, 주제곡 등 주요 뮤비 동영상 파일들이 들어있었다. 난 그걸 여러 번 감상했었다.

'아담'을 개발한 '아담소프트'는 3차원 CG 분야에서는 나름 잔뼈 굵고 기술 있는 IT기업이었다. 창업자가 카이스트 출신이었던가..?
당시에는 <마이크로소프트웨어>와 더불어 <프로그램세계>라는 프로그래밍 관련 잡지가 발간되고 있었는데, 본인은 거기서 아담소프트 소속의 엔지니어가 칼럼을 기고한 것을 본 적도 있다. 글쓴이의 이메일이 도메인이 adamsoft.com이었다.

아담 말고 여성인 류시아와 사이다는 제각기 다른 회사에서 개발한 모델이다. 류시아는 루시퍼+메시야의 합성어를 의도하기도 했다니 거 참..;;
왜 한 회사에서 여러 명을 만든 게 아니냐 하면, 일개 벤처/스타트업 기업으로서 모델 하나만 감당하기에도 자본과 기술이 벅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사이버 가수는 처음 등장했을 때는 워낙 신기하니까 언론으로부터 주목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이게 오래 흥행하지는 못했다.
일단 CG 기술이 실사를 따라가기에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캐릭터가 그렇게 충분히 잘생기거나 예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 캐릭터가 무슨 영화나 게임 캐릭터처럼 액션도 없이 예능만으로 팬심을 사는 건 한계가 있었다.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그나마 성공한 사이버 캐릭터인 라라 크로프트의 경우도, 말총머리 + 핫팬츠 + 쌍권총 같은 외형 특징을 본따서 홍보대사(?)를 모델 겸 체조 선수 출신의 실존 인물로 몇 기째 뽑아 왔을 정도이다. 영화도 당연히 안젤리나 졸리 같은 걸출한 실존 인물이 연기했고. (그나마도 리부트작이 나온 뒤부터는 기존 컨셉을 싹 갈아엎었다.) 어쨌든 오늘날까지도 어떤 형태로든 실존 인물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게다가, 1990년대 말 그 시절엔 CG를 만드는 것도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었다고 한다. 시간과 비용이 억소리나게, 그냥 유명 실존 가수를 부르는 것 만만찮게 많이 들었다. 그냥 모션 캡처만 간단히 하면 장땡이 아니었던 듯하다.
어디 쇼 프로에 가상으로 출연시키려 해도 로봇 같은 엉성하고 경직된 모션을 보일 수는 없으니 1시간 분량의 동작과 입술 움직임을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가히 억대의 돈이 깨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이버 연예인이 음반 판매나 CF 촬영을 통해 그 이상으로 끊임없이 돈을 벌어 줄 능력이 있었느냐? 물론 그렇지 못했다.

아담소프트는 현란한 3D 그래픽 기술로 차라리 온라인 게임을 만드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리니지야말로 그 시절에 만들어진 게임인데 아직까지도 '린저씨'가 있을 정도이며, 개발사인 NC소프트 역시 건재하니까 말이다.

이 사이버 가수의 노래를 실제로 불러 주는 사람은.. 설마 보이스웨어-_-를 쓰는 건 아니고 역시나 얼굴 없는 가수를 고용한다. 사이버 가수의 신비주의를 책임지는 중요한 사람인 만큼 계약 기간 동안 자기 정체를 절~~~~~대로 대외적으로 까발려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약속을 한다.
하지만 사이버 가수의 개발사들이 이미 10몇 년 전에 망하고 다~ 지나간 일이 되니, 이제는 그 가수가 당당히 정체를 드러내는 지경까지 됐다. 다 지나고 보니 허무하기도 하다.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출처는 모르겠다만,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문구가 있다. 물론 자동차 운전사 같은 업종도 있으니 라디오가 싹 망하고 비디오에 몽땅 흡수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지간한 매체에서 비주얼을 이길 장사는 별로 없으며, 영화/드라마 배우와는 달리 성우나 연극 배우는 대우가 한 등급 낮은 게 현실이다. (재연 배우는 얼굴도 있고 엑스트라 단역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처지가 좀 안습하다만..)

가수 업계에서는 CM 송, 만화 주제가 같은 걸 부르는 '얼굴 없는 가수'가 바로 그런 2류 등급에 속하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로 결코 작지 않지만 아무래도 대우가 인기 걸그룹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나저나 요즘은 걸그룹 트렌드에 밀려서 옛날과는 달리 여성 솔로조차도 찾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그 와중에 웬 트로트 <백세인생>(못 간다고 전해라...)의 갑작스러운 히트와 대박은 <참아 주세요>(뱀이다~ 개구리다~)에 이어 참 신선하고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중· 노년이 돼서야 인생에 리즈 시절이 뒤늦게 시작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4/06 08:33 2016/04/0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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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쟁이쟁이 2016/04/20 15:39 # M/D Reply Permalink

    ㅎㅎ 블로그는 꾸준히 보고 있는데 간만에(거의 처음으로..??!) 한마디 할 수 있는 주제네요. 광고홍보학과 교수님 한 분이 저 영창피아노 CF를 만드신 분이셨죠. 사실 제 세대만 하더라도 이 CF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지라 같이 개론 수업 듣던 14학번 새내기들은 영창피아노 자체도 모르지만... 이렇게 종종 회자되는 글을 보면 충분히 자부심 가지실만한 작품이긴 했나봅니다. 참고로 '꼭 가고싶습니다'를 필두로 박카스 CF도 오래 하신 분이시라 수강평가에는 -박카스박카스박카스 영창피아노영창피아노...'가 도배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들어보니 그러하더군요. 남는게 박카스와 영창피아노..^^ 피아노 치는 소녀의 생애는 찬란하네요. 언제 한번 굴렁쇠소년처럼 추억의 스타로 나와줬으면 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1. 사무엘 2016/04/20 20:02 # M/D Permalink

      이곳을 꾸준히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
      광고홍보학 전공이라면 더 옛날에 쓴 CF 열전 이야기도 공감이 가실 듯합니다. http://moogi.new21.org/tc/1191
      그리고 검색을 해 보니 그 교수님은 성함 이니셜이 ㄱㅇㅊ이어 보이는데 맞나요? 박카스와 영창 피아노가 그분의 특종 운이 들어간 작품인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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