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답사기: 남한산

요즘 등산 답사기가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일 뿐만 아니라 등산의 계절이기도 한 것 같다.
날씨가 너무 덥지 않고 숲의 나뭇잎도 몽땅 칙칙한 갈색으로 바뀌거나 떨어지기 전에 적당히 단풍이 들어서 경치가 아주 좋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날씨는 더 서늘하고 추웠으면 좋겠지만, 나뭇잎은 초록색이 더 유지됐으면 좋겠다. 그러니 두 함수의 교점인 시기를 찾으면 10~11월경으로 귀착되며, 본인은 이 시기에는 개인 일과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가면서까지 일부러 등산을 집중적으로 많이 갔다. 내가 평소에는 아무 이유 없이 쓸데없이 몸 움직이고 운동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지만, 오지 탐험과 경치 감상 같은 동기가 생기면 그럭저럭 움직이기 때문이다.

성남의 오지들 다음으로 본인은 오랜만에 남한산성을 선택했다. 예전에 두 번이나 남한산성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둘 다 산성의 북쪽(하남 춘궁동)과 남쪽(검단산)으로 곧장 나가 버렸고 정작 성길 자체를 둘러보는 산행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동명의 영화까지 개봉했으니 시기적으로 더욱 적절했다.
아무튼, 이번에는 남한산성의 동쪽을 구경하고, 청량산 말고 성이 실질적으로 자리잡은 산인 남한산 일대를 답사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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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성까지는 저번처럼 일단 버스로 간 뒤, 산성의 북문인 전승문 근처에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문 밖으로 나가지는 말고, 성 안에서 문 주변을 보면 등산로 진입로가 보인다. 그리고 진입로 옆에는 남한산성 전체의 지도가 걸려 있는데, 이건 별도로 갖고 있지 않다면 사진을 찍어 두는 것이 초행 등산객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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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이렇게 쭉 이어졌다. 사실, 성 내부에도 다른 등산로 탐방로 산책로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근 주민이 아닌 본인 같은 외지인은 아무래도 성곽길에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대도시를 처음 방문하면 굵직하게 노선 파악이 쉬운 지하철을 버스보다 즐겨 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남한산성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여기는 문화재 때문에 도립공원인 것이고, 군포의 수리산은 내가 알기로 북한산처럼 그냥 자연 환경 때문에 도립공원이다. 경기도 수도권에 도립공원은 이 둘이 전부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수리산도 가 보고 싶은데.. 저기는 안산 일대에 차 끌고 놀러갈 일 있을 때 한번 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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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하남시 춘궁동 및 상· 하사창동 마을을 오랜만에 다시 산에서 내려다보게 됐다. 본인은 초창기엔 남한산성에서 저 마을 방면으로 곧장 하산한 적도 있다. 그 뒤, 이번에는 산을 타고 성곽을 따라 저 마을의 오른쪽으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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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암문이라고 해서 공원 같은 넓은 공간에 쉼터가 있었다. 여기에는 성 안팎을 드나드는 길과 내부 탐방로를 오가는 길도 있었다. 그리고 여기 이후에는 꽤 가파른 오르막이 나와서 내 종아리와 발목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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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의 성곽길이란 게 원래 고도가 가변적이지만 여기는 지금까지 걸어온 구간 중에서는 제일 높은 곳 같았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고 해서 ‘동장대 터’라는 게 근처에 있고, 여기도 성 안팎을 드나드는 문이 있었다. ‘남한산성 여장’이라고 안내문이 있긴 했지만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는 두 종류의 성벽이 만나는 곳이었다. 지금까지 따라왔던 성곽길은 방향을 바꿔서 봉우리 아래로 고도가 하강했다.
성의 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했다. 남한산의 정상이 정확하게 어딘지는 아직 감이 안 잡히지만, 벌봉이니 한봉이니 ‘외동장대 터’ 이런 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리로 가려면 아무래도 이 성벽의 밖으로 나가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서 진로를 변경하여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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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성벽이 한데 만난다는 게 이런 뜻이다. 사진에는 흰 성벽의 문만 나왔지만, 이쪽으로 가기 위해서 기존 회색 성벽의 문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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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새로 난 길을 따라 벌봉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성벽의 보존 상태가 열악한지라, 성벽이 훼손되고 무너진 구간, 잡초가 무성히 뒤덮인 구간이 부지기수였다. 길도 그냥 흙길이지, 돌 같은 거 없다. 그래서 이곳 역시 장기적으로 복원 계획이 잡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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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의 흔적 + 높은 곳"을 쫓아 한 20분을 뺑뺑이 치니 외동장대 터가 나왔고 꽤 극적으로 정상 표지석을 발견했다. 남한산의 정상은 성 안이 아니라 성곽길 상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 안이 성벽 그 자체보다 고도가 높을 리가 없으니까.

남한산은 여느 산들 같은 정상 표지석이 없었다. 1970년대에 나라에서 높이 측정을 했다는 인증 돌판만이 바닥에 새겨져 있었는데, 생각보다 최근에 모 산악회에서 "여기가 남한산에서 제일 높은 곳이오~"라고 표지석도 그 옆에다 설치해 놓았다. 다만, 너무 아담한 크기이다 보니 누가 이걸 가져가거나 훼손하거나 심지어 다른 곳에다 옮겨 버리면 어쩌나 우려되기도 한다.

여기 부근을 돌면서 벌봉, 봉암성, 봉암신성 병인비 같은 바위들도 발견했으니 이번 산행의 목표는 어지간히 달성한 것 같았다. 이제 북쪽으로 나가는 길을 찾아서  ‘객산’이라는 산을 거쳐서 하산할 수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본인은 남쪽의 한봉과 한봉성 정도는 더 구경하려고 성벽을 따라 남쪽으로 갔다.
거기만 답사하고 나면 남한산성은 남옹성이 있는 남부와 좌익문 일대만 빼면 다 구경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본인은 남한산성의 사대문도 저 동문(좌익문)만 아직 못 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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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따라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졌다.
한봉성(남한산성 성곽에서 특정 구간의 이름)이 먼저 나왔으며, 계속 더 걸어가자 다시 낮은 봉우리를 하나 오르는 게 나오고 성벽의 선형이 오른쪽으로(남쪽이던 것이 서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내 여기가 한봉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복원이 덜 됐는지 아니면 원래 그랬는지 성벽은 여기에서 끝났으며, 주변에 딱히 볼 건 없어서 사진은 생략하였다.

성벽은 끝났지만 등산로는 계속 이어져 있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남동쪽 광주시로 가는 차도와도 합류하게 되는 듯했다.
본인은 그 정도로 남쪽으로 가지는 않고, 여기보다 더 북쪽에서 성곽길을 적당히 이탈하여 산의 동쪽으로만 하산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봉성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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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본인이 남한산성을 완전히 빠져나온 출입구이다. 전방에는 저런 비탈길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 이정표도 울타리도 계단도 없었지만, 낙엽들로 뒤덮인 바닥을 살펴보면 적당히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되겠다 싶은 정도의 흔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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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끝났다. 내 기억으로 15분 남짓밖에 안 걸렸다. 이내 민가와 함께 잘 정돈된 길이 나타났다. 본인은 광주와 하남의 경계에 있는 ‘광주시 엄미리’ 방면으로 하산했다.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계곡을 따라 형성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나중에 알고 보니 ‘엄미 농원’이라는 사유지의 내부였다. 이제 등산은 끝나고 후속 미션인 오지 탐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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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건물과 차도가 등장했지만, 그래도 여기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면 거의 2.5km 가까이 걸어야 했다. 이곳은 소형 마을 버스 같은 게 다니는 게 없으며, 마을을 완전히 빠져나가서 큰길까지 가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
차가 없는 안타까움을 절감하면서 터덜터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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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주변 가을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여긴 나름 계곡을 따라 형성된 유원지인데, 언제부턴가 엄미천이라는 개울도 발원해서 졸졸 흐르고 있었다.
여기보다 살짝 북쪽의 하남시 상산곡동 일대도 비슷한 분위기의 마을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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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43호선상의 서울 방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아차산 동쪽의 구리에서 서울로 가는 도로도 같은 번호였는데..? 그 국도의 디자인 컨셉이 그런가 보다.

국도와 엄미마을 진입로가 교차하는 곳 주변은 "안녕히 가십시오(광주)"와 "어서 오십시오(하남)" 표지판이 보이고, 한편으로 저렇게 중부 고속도로와 제2중부 고속도로 고가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탈 수 있는 유일한 시내버스는 13번이었는데, 하남 시내를 거쳐서 최종적으로는 천호, 강변 역까지 가지만 그 전에 서울 명일동 일대 주거 지역을 들쑤시고 다녔기 때문에 그 동네 구경도 덤으로 할 수 있었다.

이번 산행의 결론을 내리자면, 남한산은 군사 시설이라고는 그 흔한 헬리패드조차 하나 없이 모처럼 문화 유적 관람에만 충실한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성남에서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구간은 하남과 광주에 속했기 때문에 ‘성남 누비길’이 어떻고 하는 것도 전혀 없는 게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05 08:39 2018/02/0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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