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는 말
세상에 덥지 않은 여름이 어디 있겠냐만 그래도 올해는 작년보다는 폭염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견딜 만했던 것 같다. 작년이 워낙 악몽이었으니 말이다.
본인은 올해도 어김없이 하계휴가 여행을 다녀왔다. 광복절 징검다리 연휴에다가 연차를 추가로 써서 말이다. 강원도, 인천에 이어 올해는 중부 지방 내륙 위주로 돌아다녔다.
이번 여행이 예전의 휴가 여행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은 첫째, 날씨다. 이틀 내내 날씨가 '흐리고 비'였기 때문에 이번 여행 사진에는 파란 하늘이 찍힌 게 없다. 하지만 여전히 습하고 더웠기 때문에 땀이 나는 건 마찬가지였으며 냉방이 필요했다.
그리고 둘째, 내륙 위주로 돌아다니느라 이례적으로 바다에는 못 갔다. 바다 물놀이는 그 전 주말에 마침 부산에서 볼일이 생긴 덕분에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겸사겸사 하고 왔다.
3년 전에 학술대회 참석 때문에 10월이 다 돼서야 부산에 들러서 해운대와 광안리 해수욕장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만, 해수욕장이 정식으로 개장해 있는 실제 피서철에 저길 가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역시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는 점, 그리고 잔잔한 호수나 다름없던 서해와 달리(작년 을왕리 기준), 여기는 파도와 수심이 급이 달랐다는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서해는 해변으로부터 최하 100미터 이상은 진입 가능하며 안전 부표도 저 멀리 떨어져 있고, 심지어 썰물 때는 부표가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기도 하지만.. 동해는 그런 거 없다. 부표가 해변에 훨씬 더 가까이 있으며 사실은 모래밭 바닥의 경사부터가 서해보다 훨씬 더 급격하다.
바다에서 사람이 접근 가능한 영역은 매우 좁은데 사람은 많고 바글바글하니.. 해운대에서는 물에 들어간 채 돌아다니기는 어렵고 그냥 제자리에서 파도만 맞다가 나와야 했다. 아무 대비 없이 복부에 맞으면 좀 아플 정도로 파도가 강했으며, 성인 남성인 본인도 신체가 앞으로 떠밀릴 정도였다.
아울러, 해운대는 여느 한적한 시골 해수욕장과는 딴판인 곳인 관계로, 모래밭에서 텐트를 칠 수는 없더라.
뭐, 바다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이번 여행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먼저 (1) 옥천-추풍령 사이에서 경부 고속도로 심층 탐구 답사를 했으며, 그 다음 (2) "군인 없는 양구"라 불리는 영양과 봉화 일대에서 자연과 철도를 즐겼다.
1. 경부 고속도로 옛 구간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뒤, 곧장 옥천으로 갔다. 중간에 용인-서울 고속도로 등 다른 곳도 들르면서 갈까 생각도 했지만 이번 여행 때는 오로지 경부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경부 고속도로는 내년이면 벌써 개통 50주년이 된다. 지금이야 경부 고속도로는 수도권 한정으로 도로 바로 옆까지 아파트가 지어져서 거대한 방음벽이 둘러졌으며, 무려 8~10차로로 확장되고도 차들로 몸살을 앓는 지경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1970년에 갓 개통했던 당시에는 얘는 전구간이 겨우 4차로일 뿐이고 주변은 온통 그냥 논밭이었다. 비상 활주로 공용(신갈, 천안, 김천 어딘가?)이어서 제대로 된 중앙분리대가 없거나, 아니면 그냥 화단 형태로 만들어졌던 구간도 있었다. 거기에다 다니는 차량도 매우 적으니, 인근 주민이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경부 고속도로에서 최초로 6차로 이상으로 확장된 구간은 1987년, 회덕-남이 사이이다. 서울-수원 구간은 6차로를 거치지 않고 1991년에 곧장 8차로로 확장되었고, 2010년대가 돼서야 판교 주변 등 일부 구간은 10차로까지 확장됐다. 여기 말고도 곳곳이 도로를 다시 만드는 수준의 선형 개량과 확장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 경부 고속도로 개통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구간은 거의 찾을 수 없다.
고속도로를 처음 만들 때 열악한 여건 하에서 너무 날림 졸속으로 만든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원조가카도 "내가 야당이 하도 반대해서 일단 4차로만 만들지만.. 얘는 앞으로 너무 비좁아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니 길가에 건축을 허가하지 말고 언제든지 확장 가능하게 대비해 놔라" 이런 예상 정도는 할 줄 알았다.
마치 옛날에 갑작스러운 북괴 남침 때 정부가 너무 허둥거리고 미숙하게 대처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 할배 자신은 "북괴가 곧 반드시 남침할 것"을 알고 미국에다 계속 더 도와 달라고 지원을 요청했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요청이 묵살당했으니 이에 대해서는 일말의 변명의 여지가 있다. 일본이 미국을 침략할 거라는 것까지 예견했던 선각자가 북괴의 침략을 예견하지 못했을 리는 만무하다.
본인은 그렇게 경부 고속도로의 어제와 오늘은 모습 차이가 어떠했을지를 생각하면서 운전했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구간만 좀 막혔지 그 뒤부터는 쌩쌩했다. 그리고..
옥천군 동이면에서 옛날 고속도로가 현재의 고속도로와 나란히 지나는 흔적을 발견했다.
구도로는 한쪽만 재포장 되었고 나머지 구간은 그냥 주차장 공터처럼 쓰이고 있다. 마치 과거에 경의선이 복선이었다가 국토 분단 후에는 단선만 쓰이게 됐던 것과 비슷하다.
과거의 고속도로 구간이었던 '금강2교'이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니 여행이 더욱 운치 있었다.
다리를 건너니 거대한 공터가 나타나 있었다. 캠핑 하기 딱 좋아 보였다.
그렇게 쭉 달렸다. 길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왔다.
수인선 폐선 같은 감흥을 고속도로 폐구간에서 경험하게 될 줄이야..
여기 길바닥 아무데서나 텐트 치고 혼자 고독을 즐기며 밤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이름도 유명한 옥천 터널, '그분'이 임박했다~!
저 촌스러운 한글 글자는 '어설픈 둥근고딕' 계열보다도 더 오래된 197, 80년대 작품임이 틀림없다.
터널의 이름이 처음에는 '당재 터널'이다가 나중에 '옥천 터널'이라고 바뀌었는데...
언제 개명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개명되고 나서 처음 만들어진 표지판이 한 번도 안 바뀌고 저렇게 전해진 것이지 싶다.
밑에 로마자 표기만이 훗날 로마자 표기법의 개정으로 인해 땜질 형태로 바뀌었을 테고 말이다.
아아... 현역 시절의 옛날 사진으로만 보던 그 터널 입구를 직접 보게 되었다.
옥천 터널은 위의 사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행과 하행이 서로 모양과 길이가 다른 짝짝이로 만들어졌다.
얘로 말할 것 같으면 대전-대구 사이의 난공사 구간 중에서도 손꼽히는 가히 최악의, 마의 구간이었다고 한다.
기술과 노하우라고는 쥐뿔도 없던 열악한 시절에 거기는 지형도 참 지랄맞았던 것 같다. 발파를 한번 했다 하면 지반이 무너지고 토사가 흘러내리고 현장이 황폐화되는 현실에 직면했다. 여기서만 공식 통계상 낙반 사고 13건에 9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인부들은 사기가 곤두박질쳤다. 특히 터널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느티나무를 베어 버렸더니 산신령이 노해서 이런 사고가 나는 거라는 낭설이 쫙 퍼졌다. 그도 그럴 것이 느티나무를 베라는 명령을 내렸던 어느 공병 중령 장교조차 그 다음날 교통사고를 당해 다쳐서 병원으로 실려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부들이 너무 겁먹은 나머지 작업 지시를 거부하고 도주할 지경이 됐으며, 일당을 몇 배로 더 올려 준대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간부들이 이들을 달래느라 왕창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의 높으신 분들은 "어렵고 힘든 건 알겠다만, 개통 날짜는 정해져 있고 그때 무려 대통령 각하께서 참석하실 예정이다. 개통식은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어도 연기할 수 없으니 무조건 까라면 까라. Impossible is nothing이야. 못 하면 너네 회사 문 닫을 줄 알아!"라고 시공사인 현대 건설을 무식하게 쪼아 댔다. 어휴.. 그땐 그랬다.
그러니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높으신 관리자들도, 심지어 정 주영 현대 회장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과로를 감내하며 아예 현장에서 죽치고 살아야 했다. 중장비를 조종하던 인부가 도중에 화장실에 갈 여유도 도저히 없어서 참다못해 운전석에 앉은 채로 바지에다 쌌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그나마 현대 건설에서 일반 시멘트보다 만들기 어렵고 훨씬 더 비싸지만(단가가 2배 이상) 수십 배가량 더 빨리 굳는 '조강 시멘트'를 동원하는 묘책을 내서 공기를 단축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영업수지 흑자를 포기하고 말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옥천 터널은 거의 30년 동안 쓰이다가 지난 2003년, 옥천 구간의 선형 개량과 이설로 인해 고속도로 구간에서 제외되었다.
하행 터널만이 2차선 도로로 쓰이고 있고, 상행 터널은 폐쇄되어 김치 저장 창고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와인 저장 창고로 쓰이고 있는 경부선 철도의 옛 성현 터널처럼 말이다.
터널을 나온 뒤에도 계속해서 이런 멋진 길이 이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과거의 경부 고속도로 본선 구간이었다.
그리고 옛 고속도로의 흔적은 옥천의 거의 동쪽 끝에서 구도로가 신도로와 다시 마주치는 듯하면서 끝났다. 현재 고속도로로 치면 '영동1터널'을 동쪽으로 지난 지 얼마 안 된 지점이다.
본인은 다시 옥천 방면으로 돌아와서 여기 일대의 나머지 관광을 시작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