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 차원에서의 역린, 트라우마

- 우리나라는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강렬한 선례가 있었다 보니 부정선거에 아주 민감하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유권자에게 조금이라도 향응을 주는 걸 엄격하게 단속하고 단칼에 처벌한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른 채 향응 접대를 덥석 받은 쪽에도 어떤 형태로든 불이익이 가해진다.

- 잦은 북괴 도발 때문에 반국가단체 내지 범죄 집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우리나라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은 처벌이 이례적으로 꽤 엄하게 규정되어 있다. 이론적으로는 조폭을 결성한 우두머리는 뭔가 실제로 강도, 절도, 폭행 등의 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그렇게 조직을 만든 것만으로도 최고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제4조1항)

- 비행기 납치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다. 창랑호와 YS-11기 납북 사건.. 이 때문에 미국에서 9· 11을 겪은 뒤에야 적용된 보안 정책이(기장실 절대 봉인) 우리나라에서는 훨씬 더 일찌감치 적용된 경우가 있었다.

- 뭐, 북괴뿐만 아니라 반일 트라우마도 있다. 우리나라는 출입국관리법 차원에서 일제강점기(1910~1945) 때 일본 편에 서서 반인륜 행위에 부역했던 외국인은 입국을 금지시키고 있다. 물론 지금은 사실상 사문이 됐다.

- 대구 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때문에 민간 차원에서는 교통수단 승무원에 대한 불신 트라우마도 쪼금 생겨 있다. 하지만 다른 교통수단은 몰라도 비행기는 정말로 미우나 고우나 승무원 말을 무조건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이런 우리나라 말고 일본은...? 쟤들은 전쟁 때 적군이 땅끄 몰고 쳐들어온다거나(6 25), 적들이 새까맣게 배 타고 상륙하는(임진왜란) 걸 경험한 적이 민족 차원에서 전무하다.
그 대신 쟤들은 도쿄 대공습 때 폭격기들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면서 폭탄 떨군 것, 즉 공습에 대한 트라우마가 진심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만드는 만화영화에도 괴물이 폭격 공습을 퍼붓는 묘사가 많다.

- 중국은 아편전쟁 이래로 마약에 진절머리 트라우마가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천안문 사태'를 입에 담는 걸 불편해한다. 하다못해 중국에서 개발한 언어 AI조차도 이 주제는 절대 함구한다.
중국은 20세기 초에 서구 열강과 일본한테 좀 짓밟혔던 역사가 있는지라 아직도 "다시는 우리 중국을 무시하지 마라, 우리도 한다면 한다" 이런 자격지심이 있다.

- 독일과 이스라엘은 나치에 극심한 트라우마가 있다. 팔 하나 잘못 뻗치는 것만으로도 린치 당하거나 경찰에게 잡혀 갈 수 있다.

- 미국은 워낙 강대국이다 보니 울나라처럼 특정 나라· 민족에 대한 지엽적인(?) 트라우마는 사실상 없는 것 같다. 뭐 굳이 찾자면 9· 11 테러에 대한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는 정도.. 그래서 항공 보안 쪽은 여전히 아주 깐깐· 까칠하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2. 약했던 나라와 강했던 나라

- 한국은 힘이 없는 상태에서 내전이나 치르면서 어렵게 어렵게 독립을 얻었다 보니, 군대에 안 가면 안 되는 나라가 됐다. (징병제)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하고 세계를 상대로 너무 큰 사고를 쳤다 보니, 군대를 보유하면 안 되는 나라가 됐다. (자위대) 서로 처지가 완전히 극과 극이다.

- 20세기 초에 한국은 일제 통치의 부당함과 조선 독립을 국제 사회에 호소했지만 무시당했다.
일본은 자기도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니, 서구 열강과 대등한 대우를 받고 떡고물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국제 사회에 호소했지만(해군 전함 배수량 TO 같은..).. 무시당했다. 이것도 서로 처지가 완전히 극과 극이긴 했다.

- 우리나라는 그냥 광복절이라고 기린다. 일제로부터 해방됐으니 기쁘다는 관점이다. 그리고 현충일은 북괴와 맞서 싸우든, 일제와 맞서 싸우든 어쨌든 오로지 자국을 위해서 목숨 바친 분들을 기리는 날이다.
그 반면, 미국은 VJ.. 태평양 전쟁 때 자력으로 싸워서 일본을 꺾고 쟤들로부터 항복을 받아 낸 날을 기린다. 그리고 미국 ‘재향군인의 날’은 그야말로 세계 각지에서 파병 가서 세계 평화를 위해 싸운 자국 군인들을 기린다. 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등등.. 스케일이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3. 한미일의 교통 문화

(1) 미국이야 1920~30년대에 이미 초고층 마천루라는 걸 만들어냈고 대도시엔 자동차들 때문에 극심한 교통체증이라는 게 있었다.
일본 도쿄는 저 시절에 동아시아답지 않게 엄청나게 번화한 대도시이긴 했다. 증기 기관차가 고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기도 했고.. 다만, 자동차가 미국처럼 보급되지는 못했으니 인력거는 일본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 반면, 한반도는 일제 시대까지는 경성 한복판에서도 아스팔트 포장이나 차선, 중앙선, 신호등 같은 게 아직 전혀 없었다.

(2) 1960년대 말에 우리나라는 시속 100km짜리 경부 고속도로 하나를 국가 차원에서 겨우 만들어서 낑낑댔던 반면..
일본은 그때 시속 200km짜리 고속철 신칸센을 100% 자체 기술과 자본으로 만들어냈고.. 미국은 그때 이미 인간을 달에 보내고 있었다. 이것도 참 전설적인 예화이다.
일제가 1930년대에 경부선 단선에서 증기 기관차로 달성했던 최고 속도(아카츠키, 서울-부산 6시간 반)를 우리나라는 1960년쯤 돼서야 디젤 기관차(특급 무궁화호)로 겨우 따라잡기도 했었다.

(3) 미국은 의료비가 비싸고,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고, 한국은 식비가 비싸다고 여겨진다(우유, 소고기 등등..). 허나, 일본도 식당 밥값이 너무 비싸서 직장인들이 돈 아끼려고 도시락 혼밥하는 게 유행이 됐다고는 하던데..

우리나라는 근대화 산업화 타이밍이 열강들에 비해서는 한 박자 늦었다. 그래서 고속도로나 철도의 건설은 국가 주도로 하는 게 너무 당연시됐고, 2000년대가 다 돼서야 민자 고속도로가 찔끔 등장한 정도이다.
그 반면, 미국과 일본은 철도는 일찌감치 민영 사철이 발달했다. 이 때문에 운임이 왕창 비싸고 운영 시스템의 파편화가 심하지만.. 열차가 엄청 빠르고 서비스가 좋은 면모도 있다.

4. 전통의 계승과 단절

(1) 한국은 20세기에 조선에서 일제 시대, 일제 시대에서 대한민국으로 넘어가던 시기가 그야말로 극심한 넘사벽 대격변기였다. 일례로, ‘국악’이라는 건 1910년 일제 시대 이전까지의 고전 음악을 다루며, 그 이후부터는 현대 음악으로 간주한다.
중국은 청나라가 멸망한 1911년 신해혁명을 엄청난 대격변기로 보니 한국과 사정이 비슷하다. 그 뒤에 중공과 대만이 갈라져나간 것도 비슷하다.

한편,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과 1947년 일본국 리뉴얼이 격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급으로 헌정 체제가 근본적으로 싹 바뀐 시기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2) 우리나라는 화폐개혁은 1962년에 한 게 마지막이고, 개헌은 1987년이 마지막이다. 맞춤법의 개정은 1988년이 마지막이고 로마자 표기법이 2000년에 개정됐었다. (요 근래까지 계속 추가되고 업데이트되고 있는 건 표준어이지, 맞춤법이 아님)
중공은 1956년에 간체자가 제정되고 1958년에 한어병음이 제정되어 어문 규정이 크게 바뀌었다. 글자를 바꾸지 않고 주음부호를 계속 쓰고 있는 대만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됐다.

일본은 패전 후 1949년에 신자체가 제정됐고 1946~47년 사이에 새 헌법이 제정됐으니 이런 것도 한국이나 중국을 앞섰다. 그리고 일본은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화폐개혁이나 개헌은 전혀 없었다.

(3) 미국 역시 지난 2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대통령의 암살은 있었을지언정 쿠데타나 헌정 체제의 단절적인 변화가 전혀 없었다. 어쩌다 보니 FDR 루스벨트만이 대공황부터 2차 세계 대전까지 4선 집권을 하긴 했지만 이조차도 불법적인 장기 집권은 아니었다. (후대부터 3선 이상 연임 금지가 법으로 명시)
미국 달러는 화폐개혁도 20세기 이후로 전혀 없었다. 아니, 있으면 안 될 것이다.;;

(4) 한국은 1953년 이후로 전쟁이 무기한 휴전 상태이며, 20세기 중후반에 수십 년 동안 군사정권을 경험했었다.
대만은 신기하게도 1949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38년 동안이나 계엄이 내려져 있었다고 한다.

(5)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는 모병제로 전환한다거나, “통일을 지향한다” 같은 문구가 헌법에서 삭제될지도 모르겠다. 남한과 북한 간에 영구분단을 인정한다면 말이다.
우리나라가 통일 지향 이념을 부정할 정도라면 일본도 자위대를 아예 정식 군대로 승격시켜 버리려나? 하지만 무려 100년 가까이 한 번도 개정한 적 없었던 헌법을 겨우 저걸 위해서 고친다? (평화헌법) 국민 정서와 법 정서상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와일드 서부 개척 시대의 흔적인 민병대나 총기 소지 관련 법을 고치려나 모르겠는데.. 이것도 220V 승압만큼이나 매우 매우 힘들고 어렵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5/08/08 19:35 2025/08/0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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