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엔 예수님의 생애를 주제로 다룬 ‘킹 오브 킹스’라는 만화영화가 개봉하네 마네 했다. 알고 보니 그거는 북미 지역 개봉 기준이었고, 얼마 전인 7월 중순엔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정식 개봉했다.
이 작품에 대해서 아주 재미있게 잘 봤다는 소감도 있고, 뭐든지 문제삼고 꼬투리 잡는 프로불편러 관점의 비판도 있다.
유통사? 제작사가 몰몬 교 신자 소유라느니, 그리고 작품에서 액자 바깥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역사 인물 찰스 디킨스(19세기 영국의 소설가)가 유니테리언 신자라느니.. 그래서 작품에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묘사가 부실하다느니 뭐라나..?
글쎄, 어린애들 눈높이의 만화영화에다가 조직신학 강의를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뭔가 부족한 건 있을지언정, 대놓고 해롭거나 잘못됐거나 반성경적인 메시지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영상물에 대해서는 너도 나도 ‘꼭 봐라 두 번 봐라’ 치켜세울 필요도 없고, 일부러 공포증 수준으로 ‘워이 워이’ 멀리할 필요도 없는 듯하다. 그냥 각자 알아서 보면서 분별하면 되지 않겠냐 말이다.
찰스 디킨스는 나도 지금까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알고 보니 ‘올리버 트위스트’라든가 ‘크리스마스 캐롤’(스크루지 사장님이 나오는)을 지은 영국의 정말 엄청난 대문호이더라. 마술사 ‘데이비트 카퍼필드’도 바로 저 사람이 지은 유명 소설의 주인공 이름에서 딴 예명이다!
하지만 이 사람이 예수 영화에 굳이 왜 등장하는지, 더구나 한국인 감독인 작품에서 왜 들어갔는지는 좀 의문스럽긴 하다.
이 글에서는 킹 오브 킹스를 논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해 왔던 썰을 좀 풀어 보고자 한다. ㄲㄲㄲㄲㄲ
1. 시험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로 이끌려 들어가서 40일을 금식하고 마귀로부터 몇 가지 테스트를 받았다. 물론 그분은 모든 시험에 FM 답안을 내면서 모조리 통과하셨다.
이건 예수님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릅니다”를 제대로 숙지했는지? 하나님의 아들인 인간으로서 개인적인 감정이나 공명심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충실하게 해낼지, 초자연적인 기적 권능을 정말 필요한 일에만 적절히 사용할지를 확인하고 인증받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가령, 배고파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을 빵으로 변환해 보시지? ㅋㅋ”라는 시험을 통과할 역량 정도는 돼야..
훗날 실전에서 “니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면 한번 자력으로 못을 뚝 뽑아내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ㅋㅋ” 이런 도발에 욱하거나 낚이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우와 빵 5조각을 5000개로 불려 놨더니 저 군중들이 좋아서 난리 치는 거 봐라. 이 지지자들을 이끌고 당장 혁명 일으켜서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왕이 돼 봐라~~!” 이런 꼬드김은 어떤가?
마귀가 제안했던 시험 중에도 딱 이런 범주에 드는 게 있었다는 걸 기억하자.
그런데 저런 시험에서 곧장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주 네 하나님만 경배하라 / 그분을 감히 함부로 떠보지 마라” 이런 말씀을 인용해서 답변을 할 정도라면..
예수님은 40일 광야 외박 중에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아주 깊이 묵상했을 것이고 신명기 같은 책은 머리에 몽땅 다 집어넣은 상태였지 싶다.
그럼 성경 말고 잠시 딴 얘기를 꺼내겠다. 1969년, 옛날에 아폴로 10호 미션 때 말이다.
이건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 직전 코앞의 미션이었다. 달 착륙선이 달 상공으로 살짝 하강만 하다가 다시 올라가서 사령선과 합체하고 귀환할 예정이었다.
10호의 달 착륙선에 탔던 승무원 2인은 얼마나 들떴겠는가?
이들 중에 공명심에 들떠서 절제하지 못하고 객기 부리고 일탈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지구 우주센터와 사령선으로부터의 지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달 착륙선을 달에 완전히 내려앉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면.. 후대의 11호 승무원이 아니라 자기들이 인류 역사상 달에 최초로 발을 디딘 사람이 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달에서 지구로 돌아오지는 못하고 달에 뼈를 묻게 됐을 것이다. 10호에는 달 착륙선의 지상 발사 기술은 아직 적용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들만 죽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NASA는 한바탕 뒤집어졌을 것이다.
안 그래도 소련과 경쟁 중이었던 냉전 시국에, 후대의 유인 달 탐사 계획도 줄줄이 꼬였을 것이다.
그래서 극한의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기 감정을 억제하고 공과 사를 구분하며 임무를 충직하게 수행하는 군인 기질이 심지어 성경에서도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물론 “나는 명령에만 따랐을 뿐이다”가 악의 평범성 수준으로 악용돼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하물며 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미션을 수행하던 예수님에게도 저런 자질 검증이 꼭 필요했지 않겠나 싶다!
2. 무술 수련
성경에서 사도행전 9:2는 뭔가 예수 믿는 거를 '길'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말 성경 중에 개역과 한킹은 이 구절의 way를 '도'라고 번역했다. "이 道에 속한 사람들"..
창세기 24:63은 이삭이 저녁에 뭐 요가나 파륜궁이나 영춘권 수련이라도 하러 들로 나간 것 같다. ㄲㄲㄲㄲㄲㄲㄲ
또, 요한복음 3~4장도 있다. 이런 걸 읽어보면 성경도 약간은 동양철학(??)이나 권법서(!!!)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요한과 예수님이 무술 사범이 돼서 제각기 도장을 차렸고, 상대편 제자들을 견제한다.
"요한은 제자들한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친다는데 우리도 좀 가르쳐 주세요!" (눅 11:1) 이건
"싸부님 우리한테도 이런저런 권법 좀 가르쳐 주세요~ 네?" 같다.
마 17:16에서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한 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동네 양아치한테도 얻어터지고 돌아와서 싸부님한테 수련이 부족하다며 혼난 거고.. 뭐 그렇게 대응이 된다ㅋㅋㅋㅋㅋㅋ
내가 어떨 때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에서 카 퍼레이드를 떠올리고, 베드로가 밴을 운전하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자동차가 아니라 무림 버전이 등장했다.
물론 이건 개드립 쪼크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라~!! 예수님을 '주' Lord가 아니라 단순히 스승, 싸부 master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1세기의 현대인이 창 24:63을 읽으면서 저런 느낌이 개인적으로 드는 건 자유이지만.. 아예 성경 번역을 그런 의식의 흐름을 따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성경에 따르면 이때 이삭은 '묵상'하러 나갔다. 시편 19:14 '나의 마음의 묵상이' 할 때의 그 묵상 말이다.
뭐 어디 이상한 데서 말하는 것처럼 '명상, 참선'을 하러 간 게 아니다.
3. 나머지 여러 패턴들
(1) 성경에서 예수님의 행적이 뭔가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온 경우는 다음과 같다.
- 그놈의 안식일 드립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내내 그분을 따라다닌 트집거리였다. 초자연적으로 사람이 살아난 기적을 보고도 “당신 지금 무면허 의료행위 했지? 의료법 위반이야!” 이딴 반응을 보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 “내가 곧 아버지 하나님과 동급”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많이 빡쳤고, 심지어 그분을 죽이려 했다. 요한복음 5~10장이 온~통 이 얘기밖에 없다.
- 당대 종교인들의 위선과 악행을 폭로하고 교리적 오류를 지적하시자 팩폭을 당한 당사자들은 빡돌아서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백성들 눈치를 보느라 당장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 눅 16:14를 보면 성경의 다른 논조와는 사뭇 다른 피드백이 등장하는데,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에 탐욕스러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웃었다’. “허이구~ 지가 가난하니까 괜히 부자들 욕이나 하는 거지? ㅋㅋ” 이런 반응을 보인 것에 가깝다.
(2)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는 책망하고 심지어 분노도 하셨다.
- 제자들의 불신: 특히 변모산 이후 사건 때 제일 크게 실망하신 듯.. 어지간한 중대장 이상이었다.
- 성전 장사꾼들: 두 번이나 크게 분노하셨다!!
- 아까 (1)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악행: “이 독사 같은 xx들아!”라는 폭언까지 나왔다.
(3) 예수님이 제자들을 갈군 패턴은 다음과 같다.
- 왜 이렇게 믿음이 없느냐: 변모산 이후, 부활 직후 엠마오 제자들에게, 물 위를 걷다가 도로 빠진 베드로에게. 제일 흔한 책망이었다.
- 베드로에게는 아예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 요한과 야고보에게는 “니가 지금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모르는구나” 이건 궁예 식으로 말하자면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하다는 급이었다.
요런 것들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분류해서 “주님의 빡침” 같은 설교나 강해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성경의 예수님께서 인간의 어떤 면모에서 가장 실망하고 분노하셨는지에 대한 답이 나오니까 말이다.
(4) 낯선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마귀 쫓는 것에 대해서
-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9장 끝부분에서는 “우리의 적이 아닌 진영은 다 우리의 친구다. 그냥 냅둬라” 라고 반응하셨다.
- 마 7:22-23에서는 그런 행적이 있는 사람이라도 예수님께서 생깔... 수 있다고 경고하셨다.
-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시전하는 사람이 가짜이다 보니 그 사람이 마귀에게 역관광을 당했다. 마귀 왈,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들어 봤다만.. 네놈은 어디서 굴러온 개뼉다귀냐?”
(5) 예수님은 아주 합리적이다. 옳은 것은 누가 말했든지 그대로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 그들의 말만 듣고 따르고, 그놈들의 행동은 본받지 마라 (마 23:2)
- 내가 믿기지 않더라도 내 행적은 믿으라 (요 10:38)
-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에게
- 이것을 하고, 한편으로 저것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본질과 정신 VS 외형. 눅 11:42)
(6) 성경은 일관성 없는 것, 간보고 쟤는 걸 싫어한다.
- 요한은 안 마신다고 X랄이고, 예수님은 마신다고 지X..
- 요한의 침례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인정하면 이렇게 되고, 인정하지 않으면 저렇게 되네..
(7)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꽤 극단적이고 꽤 어려워 보이는 표현이 있다.
- 현 세상에서 100배 보상. (막 10:30)
- 내가 속히 오리라 (계 22:20)
-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들어서 저리로 옮길 것이다
- 저 사람들이 외치지 않으면 이 돌들이 대신 소리지를 것이다 (눅 19:40)
- 돌을 갖고도 인간들 집단을 만들 수 있다 (눅 3:8)
Posted by 사무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