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박의 추억

살다 보면 집 밖에서 숙박을 하는 건, 흔하지는 않아도 아주 없지는 않은 색다른 경험이다. 업무상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지인 집에서 자거나 지인이 머무르는 숙소에서 같이 자는 것도 외박에 속할 수 있다.

본인은 일단 두 차례의 미국 여행 때 호텔 투숙의 기억이 있다. 10년 사이에 호텔의 방 열쇠는 1회용 카드 키로--잃어버리거나 심지어 투숙객이 가져가 버려도 아무 상관 없는-- 다 바뀌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학원 생활하면서 앞으로 또 이런 데 갈 일이 생겨야 할 텐데. =_=;;

그리고 철도 여행을 떠나서 타지에서 외박을 한 적이 있다. 찜질방은 꽤 저렴한 비용으로 개운하게 목욕이 가능하고 수면까지 덩달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외박 장소이다. 그러나 찜질방 수면실은 공공장소인 만큼 개인 공간이 보장되지 않으며, 상대방의 코 고는 소리와 타인의 알람 소리 때문에 쾌적한 수면이 어렵다.

침대에서 푹신하게 제대로 자고 전자 기기를 안심하고 충전하고 컴퓨터 작업까지 하려면, 좀더 비용이 들더라도 개인 공간이 제공되는 숙박 장소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본인은 내일로 티켓 여행 같은 걸 할 때 대도시에서는 찜질방을, 중소 도시나 시골에서는 여관을 이용해 왔다.

2006년에 장항 역 인근에서, 그리고 2007년에 제천 역 인근의 여관에서 투숙한 적이 있다. 2009년 말엔 지인과 또 정동진 여행을 떠나서는 여관에서 서로 침대 위에서 노트북 코딩을 하며-_- 즐거운 밤을 보내..... 려고 했지만, 둘 다 너무 피곤해서 심하게 일찍 잠들어 버렸었다.

2008년 여름엔 카이스트를 방문해서... 이건 외박도 아니고 사실상 노숙을 한 적까지 있다. 강의동 안에서 뒹굴뒹굴 빈둥거리다가(방학이니까 사람 별로 없음) 휴게실 소파에서 누워 자기도 하고, 나중엔 아예 촉촉한 여름 가랑비를 맞으며 바깥 벤치에서 엎드려 자기도 했다. 그 당시엔 '내가 지금 무슨 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재미있는 추억이다. 그때 왜 다른 지인들 방에서 잘 생각을 안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타지에서의 외박보다 어찌 보면 더 흥미로운 것은, 지인 따라 "집 근처 외박"이다.
2005년, 본인은 아직 카이스트 기숙사에서 서식하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아는 분이 대전에 볼일이 있다고 찾아오셔서 본인 역시 그분 따라 유성 온천 일대의 모 여관에서 간만에 외박을 했다. 기숙사에서 3km 남짓밖에 안 떨어진 곳에서 그것도 여관 외박이라니? 이런? ㅋㅋ

이건 정확하게 외박이라 할 순 없지만, 학부 졸업을 앞둔 마지막 여름방학 때 어머니께서 오셔서 기숙사 방에서 본인과 같이 잔 적이 있었다. 기숙사에 외부인의 숙박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지 싶은데, 슬쩍 그렇게 했다.
방학이어서 룸메이트도 없고 캠퍼스 전체가 황량하지, 각종 물건들은 이미 다 치워서 방도 썰렁함 그 자체, 게다가 그 날 따라 밖에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정말로 어디 오지에 야영 간 느낌이었다. 외박은 아니지만 정말 외박 체험이나 다름없었는데, 참고로 말하자면 비슷한 경험을 추석 때 고향 안 가고 기숙사에 남아 있어도 할 수 있다.

서울 안에서는 어느 행사에 초대를 받아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묵은 적이 있다. 광진구 광장동에 쉐라톤 워커힐 호텔이란 게 있다는 걸 본인이 알게 된 건 겨우 1년 남짓 전. 예비군-_- 훈련 때문에 남양주까지 갔다가 하루는 지리도 좀 익힐 겸 전철 대신 버스를 타고 귀가했는데, 구리에서 서울 광진구 시내로 막 진입하는 지점에서 커다란 호텔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서 너무 멀지 않고 적당히 외곽이면서 한강도 내려다보이니, 위치가 무척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실제로 투숙할 기회를 얻다니! 호텔 침대는 심하게 푹신해서, 그냥 파묻힌 채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 아마 하루 투숙비만 해도 가히 억소리 나는 비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천 송도 신도시에 있는 송도파크 호텔에서 투숙한 적도 있다. 인천대입구 역 인근은 크고 아름다운 도로와 건물들로 가득하지만, 아직은 사람들이 많이 입주하지 않아 약간의 황량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성경이 말하는 하늘나라, 새 예루살렘에서의 생활이 대략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같은 곳에서 살면서 고통, 고생이란 게 없고, 일상 생활이 행사와 축제로 가득한 곳?
성경에는 거기에 진주로 된 문에다가 황금으로 된 도로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런 곳에 새마을호 같은 열차가 다녀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본인은 병특 시절에 내일로 티켓 내지 회사 복지 카드를 이용하여 순수하게 열차만 타고 온 적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퇴근 후 바로 서울/용산 역으로 가서 부산/광주까지 간 후(새벽 3~4시 도착), 곧바로 새벽에 출발하는 상행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도착한 후 바로 다시 출근... 당연히 그 날 하루는 피곤해서 직싸게 고생했다. -_-;;
기차를 타고 집으로 퇴근한 게 아니라, 기차라는 장소가 퇴근 목적지였던 것이다...;;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묻는다면 본인의 대답은.. "이렇게라도 새마을호 타고 싶어서.."
이것도 열차 안에서 일종의 외박을 한 셈 되겠다. 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10/22 18:20 2010/10/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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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0/10/23 09:09 # M/D Reply Permalink

    1. 인천대 입구역에 한 1년 반 가까이 매일 내리다 보니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또 그들이 이르기를, 황폐하던 이 땅이 에덴의 동산같이 되었으며 피폐하고 황폐하고 폐허가 된 도시들에 사람들이 담을 두르고 거주한다, 하리니"
    (겔 36:35)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처음에는 길 한 쪽 가로등도 없었더랍니다.), 점점 뭔가가 늘어납니다.

    1. 사무엘 2010/10/23 19:16 # M/D Permalink

      네, 1년 전엔 제가 보기에도 주변이 많이 황량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사람이 늘고 이것저것 건물이 들어서면서 발전하겠죠. ^^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강남 구간에 아무것도 없었고 지하철 역을 뭐 그렇게 크게 만들었냐고 비판이 많았으나 지금은...?? 더 설명이 필요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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