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명

1990년대까지만 해도 휘발유로 달리는 어지간한 승용차의 연류 주입구에는 이런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UNLEADED FUEL ONLY”
lead는 ‘지도하다, 거느리다, 지휘’ 같은 뜻이 있지만, 동음이의어로 ‘납’이라는 뜻도 있다. 발음도 [liːd]가 아닌 [led]로 다르다.

그래서 위의 문구는 ‘납이 첨가되지 않은 연료만 쓰세요’, 즉 이 차는 무연휘발유 차량이라는 뜻이다.
영어가 동음이의어인 것처럼 한국어도 좀 혼동의 여지가 있는데 ‘무연’이란 납 성분이 없다는 뜻이지(無鉛), 배기가스가 전혀 안 나온다는(無煙)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웬 납? 자동차 연료에 납을 왜 집어넣는 걸까?

'테트라에틸'이라는 납 성분 첨가제는 내연기관의 노킹(knocking) 현상을 없애기 위해 발명되었다.
4행정 엔진이라면 흡입-압축-폭발-배기가 원활하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폭발 때 연료가 모두 완전히 타서 없어지지 않고 실린더 벽에 일부가 잔류하다가, 예기치 않은 다른 사이클 때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엔진을 푸덜덜~ 털털거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엔진의 효율을 떨어뜨림은 물론이고 자동차의 내구성과 안전까지 위협했다.

유연휘발유는 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함으로써 자동차 기술의 발달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마법과 같던 이 발명은 얼마 못 가 환경 문제로 인해 치명적인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납이 인체에 얼마나 해롭던가? 그런데 자동차의 배기가스에 그런 게 섞여 나왔으니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건강이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었으며, 유연휘발유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부터가 얼마 못 가 손발이 오그라들고마비되고 이상한 병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

오늘날 무연휘발유에는 납 대신 다른 대체 첨가제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유연휘발유는 이미 옛날에 유통이 중단되고 퇴출되었다. 한 2, 30년쯤 전에는 우리나라도 주유소에 ‘휘발유 vs 무연휘발유’가 따로 있었지만, 오늘날은 무연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이 휘발유가 곧 무조건 무연휘발유이다. 요즘 컴퓨터계에서 IBM PC 호환 기종이라는 말을 안 쓰는 것과 같은 맥락임(IBM PC 호환이 아닌 PC가 없으므로.).

디젤 엔진에서 쓰이는 경유가 매연이 심하다고 하여 요즘은 유황의 함량을 줄이고(그 이름도 유명한 아황산가스의 주범!), 매연 저감 장치를 부착하고 시내버스를 천연가스 차량으로 대체하려고 국가에서 노력하듯, 휘발유에 대해서도 훨씬 전에 이런 식의 환경 개선을 위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디젤 엔진에도 노킹 현상 같은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휘발유 엔진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엔진 구조가 서로 완전히 다른 휘발유-경유 사이에 혼유 사고가 났다간 차 엔진이 다 망가지고 차가 개발살이 나지만, 같은 휘발유 사이에도 무연과 유연은 엔진이 서로 호환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쪽에 최적화된 엔진에 별도의 변환 장치 없이 다른 쪽 휘발유를 넣어서도 역시 안 됐었다.

인류에게 거의 수천 년 만에 최초로 말보다 더 빠른 이동 수단을 선사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우리가 너무나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가, 사실은 완전 공해덩어리 물질로 이뤄져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컴퓨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잊을 법하면 무슨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백혈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나오는 것일 테고.

유연휘발유처럼 발명 당시에는 인류 과학 기술의 총아요 마법의 물질이라고 추앙받았지만, 오늘날은 환경 문제 때문에 완전히 천덕꾸러기가 된 대표적인 다른 물질로, 역시나 그 이름도 유명한 프레온 가스라는 상표명으로 잘 알려진 CFC (chlorofluorocarbon)가 있다.

암모니아 냉매에 비해 독성 없고 폭발 안 하고 안전하고 순환식 냉매로서의 성능도 좋고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고... 오존층 파괴만 안 하면 정말 인간이 20세기에 발명해 낸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꿈의 물질로 두고두고 칭송받았을 텐데! 참 안타까운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오죽했으면, CFC를 소개하는 기자회견을 할 때, 프레온 가스를 사람이 훅 빨아들인 뒤 그 입김을 다시 훅 불어서 양초를 끄는 시범을 보였을 정도이니까. 안전성과 불연성을 모두 입증한 셈이다. 만약 그 물질이 가연· 폭발성 유독가스였다면 흠..;;;

오늘날도 비록 CFC가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라고 까일지언정, 냉장고 자체가 마치 자동차의 연료 탱크 마냥 위험한 물건으로 취급된다거나 냉매의 폭발이나 유출 사고로 인해서 일가족이 죽었다는 소식은 전혀 없지 않은가. 이게 CFC 덕분이다.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CFC 대체 물질이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고 국제적으로도 이 물질을 앞으로 완전히 퇴출시키기로 몬트리올 의정서까지 발효되어 있긴 한데, 이제 연구가 어디까지 진척됐나 모르겠다. 대체 물질은 CFC 원판이 내던 그 탁월한 성능까지 재연하기란 쉽지 않았지 싶다.

그런데 정말 기막힌 사실은, 유연휘발유와 CFC를 발명한 사람은 동일 인물이라는 것! 이를 발명한 토머스 미즐리(1889-1944)는 코넬 대학을 나온 미국의 과학자 겸 공학자· 발명가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철저한 환경오염 규제 기준 같은 게 없었다. 오늘날 줄기세포가 어떻고 DNA가 어떻고 하면서 생명공학이 각광을 받듯이 물리와 화학 분야에서 인류의 생활을 바꿔 놓은 발명이 이제 막 터져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때 듀폰 같은 회사의 명성이 어땠던가? 나일론 같은 합성 섬유, 에어컨, 형광등도 20세기의 발명품이다.

미즐리 역시 19~20세기를 움직인 과학 학문인 물리와 화학에 정통하고, 전자공학보다는 기계공학 쪽으로 세계를 움직인 공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러나 대표작 발명품들이 죄다 환경을 치명적으로 해치는 걸로 밝혀져 이것들이 그의 사후 오점이 되었다.

그는 말년에 건강이 안 좋아져서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아마 유연휘발유로 인한 납 중독 때문으로 추정한다. 그는 이때도 공돌이 기질을 발휘하여, 자신이 침대에서 일어나는 걸 보조해 주는 기계를 만들어서 자기 침대에다 장착했다. 그런데 1944년의 어느 날 밤, 신체에 연결된 그 기계가 오동작하는 바람에, 자고 있던 그의 목을 감은 채 압박했고... 그 후 이하 생략. 그는 그렇게 50대 중반의 나이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ㄷㄷㄷ;;

그의 죽음은, 배에서 실종된 후 변사체가 바다에 떠오른 루돌프 디젤만큼이나 허무하고(디젤 엔진의 발명자),
황열병을 연구하다가 자신이 그 병에 걸려 죽은 노구치 히데요만큼이나 어찌 보면 장렬하다.

Trivia:

1. 킹제임스 흠정역의 주번역자는 CFC 대체 물질을 연구하는 공대 교수인 걸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는 목회를 하고 성경을 만드느라 온 정신을 쏟고 있으면서 또 한편으로 동일 기간의 논문 출판 실적을 보면 정말 덜덜덜;;;.

2. 이타이 이타이 병은 카드뮴 중독 때문이고, 미나마타 병은 수은 중독 때문인데... 납 중독과 관련하여 생긴 병명은 모르겠다.

3. 죽은 후에 자기 연구가 디스당한 다른 유명한 사례로는,
명왕성: 1930년대에 미국인인 클라이드 톰보가 발견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유난히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발견자가 1997년에 사망하자마자 천문학계에서는 이 행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2006년에 명왕성은 결국 행성에서 제외되고 왜행성급으로 강등됨. 자기 궤도에서 다른 천체를 완전히 몰아낼 정도로 충분히 중력이 크지 못하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까 전에 언급된 노구치 히데요가 있다. 전자 현미경으로나 관찰할 수 있는 미세한 세균을 그게 발명되기도 전에 자기가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논문으로 발표했는데, 그게 나중에 오류로 드러나 죄다 부정되었다. 악의가 없는 오류에 불과한 건지, 아니면 고의적인 논문 조작인지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사후 위신이 크게 추락하고 말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1/12/21 19:15 2011/12/2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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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1/12/21 19:29 # M/D Reply Permalink

    정 목사님 홈페이지에 한 번 가 본 적이 있었는데, 여러 개의 특허와 3개월마다 꾸준히 하나씩 나오는 논문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대단히 성실하신 분임을 느꼈습니다.

    1. 사무엘 2011/12/22 08:02 # M/D Permalink

      물론, 교수들 세계에서 그분만 그 정도로 학술 경력이 화려한 건 아니지만, 둘을 병행하면서 그렇게 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일의 추진력, 집중력, 자기 관리 능력이 가히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는 분입니다. 성경 안 만들어도 자기 혼자 훨씬 더 돈 많이 벌고 성공하셨을 텐데 말이죠.

  2. 소범준 2011/12/22 00:31 # M/D Reply Permalink

    1. 인간의 발명품 중에는 많은 도움을 준 것들이 많이 있지만, 글에 언급된 바와 같이 유해한 목적으로 악용되거나 발명자의 본래 의도와는 상관없는 결과를 초래한 사례도 적지 않게 있다는 사실 또한 마음이 아프지 싶습니다.

    특별히 토마스 에디슨이 노벨상 수상자 후보에서 '까인' 이유는 사형 집행에 사용될 전기 의자를 발명했다는 이유입니다. 이 전기 의자를 시판하기 전에 실험용으로 쓰인 고양이 등의 동물들이 애꿎게 많이 죽어나갔다는 이유로 노벨 상을 수상하지 못했었죠.

    늘 항상 '발명' 하면 이제 이 말씀이 떠오릅니다.

    보라, 내가 발견한 것은 오직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사람을 곧바르게 만드셨으나 그들이 많은 창안물을 찾아냈다는 것이라.(전7:29)

    '흠좀무' 급이죠.

    2. 정동수 목사님은 인상이 기계공학 쪽이 전공이신 것 같던데, 그게 아니라 화공학 분야의 전공자셨군요.
    보통 사람이라면 어느 한 쪽에만 몰두하기도 힘이 드는데, 양쪽을 다 분담해야 한다면 저로서는 어깻죽지가 축.. 쳐질 것 같네욥..;;('말을 마러'급) 흠진무.

    1. 백성 2011/12/22 00:53 # M/D Permalink

      1. 다윈도 인종우생학-_-이라든지 나치 체제를 만들려고 진화론을 말했다고 보지는 않지요. 하나님을 크게 대적했던 이론이었기에 뿌리부터 잘못되었지만 유태인 대학살 같은 병크까지 '다윈이' 의도하지는 않았습니다.

      2. 뜻밖에도 CFC 대체 물질 연구가이셨군요. 전 정목사님이 뭘 연구하시나 하고 궁금해했었는데, 흥미롭습니다.

      ※범쥬이님께 조언(충고는 아닙니다. 그냥 제안입니다. 흘려들으셔도 됩니다.) : 아무래도 범쥬이님은 좀 말투가 고정되어 있고 좀 빗나간 유머를 많이 하시는 것 같네요. 이 글의 경우 '개발살' '오그라들고' 와 같은 요소가 꽤나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 있지요.
      '~급의' '~드립' 과 같은 관용구도 오래 사용하면 재미 요소가 떨어지고 오히려 사람을 싸게 보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일단 그런 건 적절한 타이밍에 써 주시는 것을 추천해 드리고요,(저야 뭐 타이밍을 아예 못 잡겠으니 생략) 유머도 조금 배우세요. 일단, 김성모 화백 어록부터. ㄲㄲㄲㄲㄲㄲㄲㄲㄲ

    2. 사무엘 2011/12/22 08:02 # M/D Permalink

      소범준: 에디슨은 화려한 발명 업적 뒤에는 전기 의자라든가 특허 도둑질 같은 흑역사도 잘 알려져 있지요.
      테슬라와의 노벨 상 공동 수상을 거부해서 에디슨도 노벨 상을 못 받았다는 말도 있는데, 신빙성은 잘 모르겠습니다.
      물리학에 뉴턴 고전 역학이나 전자기학만 있는 건 아니죠.
      열역학, 열전달, 냉동 공학(실제로 정 목사님이 대학원에서 강의하시는 과목명)은 '공학'이 접목되면 화학하고도 좀 관련이 생기긴 하지만 엄연히 기계공학의 분야가 맞습니다.

      백성: 다윈 자신은 훗날 자신의 이론을 추종하는 사람들만치 기독 안티는 아니었습니다.
      진화론 믿는 사람들 앞에서 '진화론이 영향을 끼치고 파생시킨 공산주의, 인종 우생학 등등' 이런 얘기를 꺼내면 굉장히 기분 나빠하지요. ㄲㄲㄲㄲㄲ 반대로 창조 과학회(단순히 창조론을 믿는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창조론을 믿는 방식이 창조 과학회 방식인 사람) 노선을 가는 분들은 그 방식으로 반대편을 공격하는 걸 아주 좋아하고.

  3. seso 2014/04/18 12:00 # M/D Reply Permalink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

    1. 사무엘 2014/04/18 20:35 # M/D Permalink

      제가 썼던 글을 지금 다시 보니 주제가 왔다갔다 좀 횡설수설하는 것 같습니다만..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기 오신 걸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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