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답사기: 북한산 비봉

본인은 2010년대에 북한산을 두 번 올랐다.
처음엔 정릉 유원지에서 등산을 시작해서 최고봉인 백운대 정상을 지난 뒤, 우이동으로 하산했다.
그 다음으로는 국민대에서 등산을 시작해서 대성문과 대남문을 지난 뒤, 구기동 방면으로 하산했다.

본인은 그로부터 거의 1년 뒤에 북한산의 더 서쪽을 탐험하러 떠났다. 북한산은 워낙 넓고 크고 봉우리가 많기 때문에 개척할 곳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또한 도심에서 가깝고 작고 공원 느낌이 나는 산보다는, 힘들더라도 좀 더 규모가 있는 산을 종종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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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이북5도청을 직접 가서 구경했다. 황해도, 평안남· 북도, 함경남· 북도..;; 저기는 비록 대한민국 정부의 통치가 닿지 못하는 미수복 영토이지만, 통일을 지향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이들 지역에 대한 관청을 만들어 놓고 대북· 통일 관련 업무를 본다고 한다.
설립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저기는 개막장 급의 낙하산 인사로 사람을 뽑아서는 하는 일 대비 과도한 급여와 특혜를 주는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했다고 맹렬한 비판을 받기도 하나 보다.

여기까지 가는 데는 7212번 버스를 이용했다. 북악산· 북한산· 인왕산으로 가는 버스는 다들 광화문 역 2번 출구에서 탑승 가능했다.
7212는 이북5도청까지 가서는 유턴해서 도로 밖으로 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가 버스의 종점인 건 아니고, 교통 편의 제공 차원에서 한번 경유만 하는 것이다(종점은 은평 공영 차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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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버스에서 내린 뒤, 산을 향해 계속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드디어 비봉 탐방 지원 센터가 나타났다.
한때(대략 10수 년 남짓 전)는 여기에 다 매표소가 있었지만, 국립공원들이 모두 무료로 풀리면서 이 오두막은 관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 직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장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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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답게 처음에는 '등산로가 아닌 곳은 출입금지' 경고문이 붙은 울타리와 함께 넓은 흙길이 나왔다. 하지만 등산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거 없이 가파른 돌계단 형태로 바뀌었다.
절이나 약간의 등산로 시설 자체(울타리, 밧줄, 계단..?) 말고는 벤치, 정자, 옛날 유적, 군사 시설(!!) 등 그 어떤 인공물도 없었으며 아래 경치를 볼 만한 곳도 없었다. 비봉 능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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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산등성이에 올랐는데... 완전 딴판의 광경이 펼쳐졌다. 여기에는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었다. 그리고 아주 차가운 바람이 불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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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긴 아마 향로봉? 내가 가려는 길과는 다른 쪽에 있어서 저기로 가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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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60m, 비봉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등산로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진짜 정상으로 가려면 근처의 거대한 암반을 올라야 하는데, 이건 별도의 등반 장비를 이용해서 오를 수 있으며 지금은 위험하다고 길이 폐쇄되어 있었다. 하긴, 눈까지 내려 있는데 위험할 만도 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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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길을 갔다. 그늘진 곳은 눈이 장난 아니게 쌓여 있었다. 벌써부터 내려가는 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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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에 '기차 바위'가 있다면, 북한산 비봉 일대에는 '사모 바위'가 있는 모양이다. 역시 네임드급 산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모 바위 부근에는 꽤 넓은 공터와 전망대가 놓여 있었다. 북한산성도 아니고, 북한산에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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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68년 일명 1· 21 사태 때,  청와대 근처로 침투했던 북괴 무장공비 수십 명이 바로 이 사모 바위 아래의 틈새 동굴에서 집단 숙영을 했다고 한다. 저 먼 거리를 걸어서 이동했다니 그 근성 한번 대단하다. 게다가 쟤들은 공작 활동에 필요한 온갖 물건들을 갖고서 무거운 상태로 평지도 아닌 산길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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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래에 들어가 보니까 찬바람이 전혀 들어오지 않고 따뜻하고 지낼 만하긴 했다. 짱박혀서 캠핑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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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광이긴 하다만 사모 바위만 따로 사진을 찍었다. 북한산은 어떻게 형성됐길래 이런 바위가 떡 놓여 있는지 궁금하다. 여느 흔한 흙산들과는 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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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찍고 보니 색감과 분위기가 왠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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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이 바위를 건너 저 앞쪽으로 진행하는 걸로 하산 경로를 잡았다. 그런데 바위 위에 눈이 얼어붙어 있어서 하산길에 애로사항이 사정없이 꽃폈다. 본인은 아이젠이나 스틱 같은 장비를 전혀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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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과 수락산을 오르면서 도봉 차량 기지를 내려다본 적은 있었지만 지축 차량 기지를 내려다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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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가는 건 계속 이런 식이었다. 잘 가다가 또 빙판 바위를 만나면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엄청난 모험과 스트레스가 돼 버려서 진행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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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산이 구름에 뒤덮였는지, 싸락눈이 휘몰아치고 주변이 온통 하얘져서 아래가 하나도 안 보이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한참을 내려간 뒤에야 드디어 바위가 다 끝나고, 나무가 가득한 숲길 흙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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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 탐방 지원 센터로 가는 게 계획이었지만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었는지 그리로 못 가고, 진관사 방면으로 착륙했다.
여기도 나름 인서울이다. 진관동은 서울의 북서쪽 외곽의 마지노 선으로, 뭔가 서울 같지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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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를 지나자 여기에는 웬 은평 한옥 마을이 있었다. 이런 게 언제 무슨 취지로 생겼는지 모르겠다. 건물들을 보니 지어진 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위의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진 배경의 뒤쪽으로는 말로만 듣던 '하나 고등학교'가 있었다. 하나 은행 계열의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이다.

큰길을 따라 여기보다 더 북쪽으로 가면 드디어 행정구역이 서울을 벗어나서 고양시로 바뀌고, 주변에 각종 예비군 훈련장들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삭막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 북한산성을 더 가까이 낀 북한산 등산로도 나온다.

여기에서 서울 시내로 가는 노선 버스로는 파란 간선 버스 704가 있어서 북한산 등산객들이 즐겨 이용한다. 하지만 이거 말고도 7211도 있다(아까 탔던 건 7212). 704는 서울 역 환승 센터로 가는 반면, 7211은 구기 터널, 국민대, 길음 역, 고려대, 신설동 등 북쪽 선형을 쭉 유지한다는 차이가 있다.

본인은 갈 때와 올 때 모두 초록색 버스를 이용하며 등산을 마쳤다. 이번 산행에서는 예전의 두 차례 산행과는 달리 북한산성은 전혀 구경하지 못한 대신, 1· 21 무장공비의 동선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뜻하지 않게 얻을 수 있었다. 나머지 북한산의 메리트는 암반과 크기와 경치로 정리될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26 08:13 2018/02/2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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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인왕산

본인은 이번엔 2년 전 등산 초창기 시절에 별 기록을 안 남기고 올랐던 인왕산을 다시 찾아갔다. 찾아가는 거리, 산의 높이와 규모, 등산 시간은 이 정도가 다시 생각해 봐도 입문용으로 딱 적당하긴 하다.

산행을 하던 당시엔 날씨도 아주 맑고 한편으로는 추워서 등산에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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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은 주 능선과 정상이 한양도성 성곽으로 쫙 이어져 있다. 이 길만 따라가면 정상을 지나서 창의문 방면으로 하산하게 되며, 창의문에서 북악산 등산을 계속 진행할 수 있다.
본인은 2년 전에는 지하철 3호선 독립문 역에서 내려서 인왕산 아이파크 아파트 뒤쪽으로 인왕사를 거쳐서 성곽길로 나중에 합류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저렇게 성곽길과 함께 정식 등산로 입구가 따로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리로 갔다.

등산로 입구 근처엔 '한국 사회 과학 자료원'이라는 난생 처음 듣는 기관이 있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종로 05 마을 버스가 입구 바로 코앞까지 가 줬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서대문 일대 나들이도 했는데, 얘는 마침 5호선 서대문 역 3번 출구에서 출발한 뒤 독립문 역에서 골목 비탈길로 들어가는 단방향 순환 버스였다.
서울 종로구는 지하철이 다니고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도심 종로와, 그 북쪽의 산기슭 종로가 그야말로 완전히 따로 노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지역이다. 그래서 도심과 산기슭을 오가는 역할을 이런 마을 버스들이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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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번 산행은 이렇게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오른쪽 계단이 순간 철길처럼 보이긴 한다만.. (계단이 침목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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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철조망이 보이시는가?
행정 내지 보안 측면에서 보자면, 인왕산은 무슨 국립공원 같은 감투는 없다. 북악산처럼 입산을 위해 신분증 까고 목걸이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경복궁과 청와대가 옆에서 딱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정상을 포함한 주요 전망대에는 경찰 소속의 보안 요원이 2명 1조로 등산객을 감시한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은 입산이 금지된다.

이건 전국의 산들 중에서 인왕산에만 존재하는 특징이지 싶다. 정작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에서도 청와대는 거의 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감지덕지이지, 먼 옛날에는 인왕산 정도면 산 전체가 그냥 민간인 출입 금지였었다. 그러던 것이 1993년 2월 말, 김 영삼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인왕산이 해금되고 거기 주요 등산로가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인왕산은 주요 봉우리들 꼭대기에 군부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느 산들의 꼭대기에 있는 군부대처럼 공군 소속의 방공 부대가 아니라 육군 소속이다. 여기는 청와대와 아주 가까우며 애초에 엄격한 비행 금지 구역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이 정도로 군부대가 많이 있는 산치고 인왕산에는 헬리패드가 없다. 적어도 주 등산로 근처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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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보안 요원 초소를 지나고 계속 산을 오르는 중이다.
2년 전에 갔을 때는 이런 전망대들마다 "청와대 방면으로 사진 촬영 금지" 이런 경고문 표지판이 대놓고 놓여 있었는데.. 시대가 바뀌었는지 지금은 그런 표지판을 없앤 모양이다.
표지판은 없지만 보안 요원은 여전히 상주하고 있다. 뭐,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진다" 심리를 조장하지 않으려고 없앤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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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등산은 상당수가 그냥 성곽 따라 고개를 오르는 것이다. 남한산과 비슷하다. 성벽이라는 게 그 특성상 산의 가장 높은 부위를 따라 만들어지니까 말이다.
물론 그 아래에도 생태 공원이 있고 약수터도 있긴 하지만, 본인은 거기는 이번에도 못 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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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몇 장 찍지도 않았는데 슬금슬금 걷다 보니 정상에 이내 도달했다. 정상 표지석은 없고, 바닥에 서대문구· 종로구 경계 표시와 위치 측량 인증이 놓인 게 전부이다.
정상은 정규 등산로에 놓인 게 아니라 거기서 벗어난 곳에 일종의 '지선'처럼 놓여 있다. 내 기억으로 북악산도 그랬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 지점에서 더 진행은 할 수 없고 앞이 막혀 있다. 왔던 곳으로 잠시 되돌아가야 산행을 계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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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내려와 하산하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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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서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삐죽 솟은 다른 봉우리인 '기차바위'로 건너갈 수 있고, 아니면 지금 가던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서 그냥 창의문· 북악산 방면으로 하산할 수 있다. 위의 사진은 건너편 기차바위의 모습이다.

인왕산을 최대한 경험하려면 기차바위로 가서 부암동 내지 상명대 방면으로 하산하는 게 좋다. 본인은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성곽 같은 거 없이 평범한 산행이 시작됐다.
본인은 2년 전에도 기차바위 쪽으로 갔었다. 그랬는데 일부 기억이 소실되어서 정상에서 기차바위가 바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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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은 아주 작은 산이다. 기차바위에도 단 몇 분 만에 정말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는 청와대는 딱히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여기에도 보안 요원이 있었다. 이게 이번 산행에서 만난 마지막 보안 요원 일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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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산에서 구경할 건 다 봤으며, 산을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인왕산은 별로 높지도 않은데 보다시피 정말 철저하게 돌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곽을 벗어난 뒤에도 흙을 밟을 일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어지간한 나무들이 다 낙엽이 지다못해 잎이 다 떨어진 추운 계절인데도, 산의 나무가 소나무 같은 침엽· 상록수 위주인 덕분에 초록색이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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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의 최북단에 있는 마지막 군부대를 지났다. 이정표에 그냥 "이쪽은 군부대. 등산로 더 없음"이라는 안내가 돼 있어서 홍지문· 상명대 방면만 선택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인왕산에서 내부순환로를 타넘어 그 이북에 속하는 구간에 도달했다. 이제 산이 얼마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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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말로만 들어 온 상명 대학교가 드디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소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이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이 종로가 그 종로는 아니다. 캠퍼스가 어지간히도 가파른 산기슭에 있구나..;;
옛날에는 저기가 여대였다고 그러던데 본인은 그에 대해 듣거나 아는 바가 없다.
전방에는 한양도성도, 북한산성도 아닌 이상한 성벽이 나타났다. 상명대 쪽으로 더 가면 북한산 구간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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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을 완료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홍지문 및 탕춘대성'이라는 완전 처음 듣는 유물이었다. 경주의 '동궁과 월지'처럼 둘을 한 명칭으로 묶어서 부르는 듯하다.
그리고 '세검정'이라는 정자도 여기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난 상명대만 기대하고 왔는데 뜻밖의 구경을 더 하게 됐다. 등산 과정에서 이런 역사· 지리 지식을 늘리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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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 대학교는 뒤에는 산이고 앞에는 홍제천이 지나는 친자연적인 곳에 있구나.
로고가 내 한글 입력기의 아이콘처럼 한글 자모를 세로로 풀어쓴 형태인 것이 예전부터 인상적이었다. 물론 날개셋의 아이콘은 본인이 상명 대학교를 모르던 시절에 만든 것이니 둘은 형태가 그냥 우연히 일치하는 것이다.

창의문, 자하문, 북소문이 전부 같은 문을 가리킨다는 게 개인적으로 무척 헷갈렸다. 실물 근처에서는 다들 '창의문'이라고 부르는데, 정작 근처의 터널은 '자하문 터널'이고 도로명도 '자하문로'이니까 다른 문이 또 있는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산행을 마치고 귀가할 때는 역시 경복궁 역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으며, 창의문과 최 규식 경무관 동상을 지나쳐 갔다. 그런데 차창 밖을 보니, 어둡고 칙칙한 갈색이던 동상이 번쩍이는 황토색/구리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 내가 뭘 잘못 봤나?

검색을 해 보니 역시나 내가 몰랐던 이벤트가 있었다. 세워진 지 반세기가 다 돼 가던 낡은 동상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한 뒤, 바로 작년 가을(2017년 10월 20일경)에 경찰 관계자들과 고인 유족을 초청한 제막식까지 열었다고 한다. 이것도 인왕산 등산을 안 했으면 알지 못했을 일이다.
요 근래 들어 경찰에서는 자기네 순직자들을 기리는 일에 열심인 것 같다. 서대문 소공원을 경찰 기념 공원으로 개조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번에도 이렇게 산행 한번 하면서 좋은 경치 구경하고 여러 정보들을 업데이트 하고 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23 08:33 2018/02/2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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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올해 2018년은 지난 1936년과 어쩜 이렇게 닮았나 모르겠다. 공통점이 무려 두 가지나 존재한다.

  • 운동 경기를 빙자하여 사악한 진영에 의한 불순한 정치 프로파간다 선전 무대가 열렸음. 순수 아리안 혈통 vs 백두혈통? ㄲㄲ
  • 거기에서 누구는 태극기를 못 달고 나가는 설움을 감내해야 함

젠장.
강원도 평창에 북한 빨갱이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던 동안, 본인은 그쪽으로는 정말 오줌도 누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올림픽이 개최됐으니 뭔가 상징적인 기념 이벤트는 있어야겠고.. 그래서 결심했다.

상쾌한 토요일 어느 아침, 강원도 평창 대신 서울 평창동을 답사하면서 북한 사람 대신 북한산이나 잠시 접견하고 왔다. 공산당이 싫다고 콩사탕까지 싫어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시흥과 양평도 서울의 동 이름과 경기도의 시 이름이 겹치긴 한다.

평창동은 북악산의 뒤쪽, 북한산 기슭에 자리잡은 고지대 마을로, 부자들의 저택 단지 겸 서민들에게는 자리값 약간 비싼 데이트 코스와 카페, 드라마 촬영지 등으로 알려진 곳이다. 똑같이 내부순환로 이북의 산기슭이어도 근처의 구기동, 정릉동과는 분위기가 묘하게 다르다.

무슨 교통편으로 이동할까 고민하던 끝에 자가용을 선택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저기는 뚜벅이로 갈 곳이 못 됐다. 지도나 심지어 로드뷰만 봐서는 실제 현장에 가서 경험하게 되는 엄청난 고저 차이의 압박을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
딱 하나, 종로 06이라는 마을버스가 평창동 산길을 구석구석 한 바퀴 돌긴 하지만, 배차 간격이 무려 30분이어서 무효였다..;;

늘 얘기하듯이.. 차를 가져가면 당장 이동은 편하지만, 그 뒤에 산행 동선에 큰 제약이 걸리며(되돌아와야 하므로), 그리고 주차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저기도 꼬불꼬불 좁은 산길에 어디 차 세울 데가 있으려나 일면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것도 로드뷰를 보면서 미리 다 잘 알아보고 갔다. 최종 목적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외부인도 차를 세울 만한 공터가 용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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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의 압박이 엄청나다. 사진을 찍은 방향의 뒤쪽으로도 계속 계단이 있다.
이렇게 산지에 계단식으로 집들이 늘어서 있는 걸 부산에서 봤는데 나름 서울에서도 구경하게 됐다.
그리고 여기는 보다시피 평지 시내와는 달리 눈이 내린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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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평창동 마을의 흔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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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다를까 여기도 계곡이 있었다(평창 계곡). 본인이 방문했던 당시에는 물이 마르지 않고 남아 있긴 했으나, 몽땅 얼어붙어 버린 관계로 물이 흐르는 걸 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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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어느 집 입구에 태극기가 게양되어 펄럭이는 걸 발견했다.
이 날은 국경일도 아니고 국기를 달 아무 이유가 없는 날이었는데.. 여기 집 주인분도 태극기 없는 친종북 반역 평양 체육대회를 규탄하는 애국 보수 시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문득 반가웠다.
태극기가 최대한 넓은 면이 노출된 순간을 노려서 사진을 한 컷 찍었다.

드라큘라가 마늘이나 십자가를 싫어하듯이, 북한 공산 괴뢰 집단은 '한국(韓)', '태극기' 이런 말이나 물건을 아주 싫어한다. 그러니 걔네들이 싫어하는 말을 즐겨 쓰면서 악의 무리들을 멀리하고 퇴치하면 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용어의 차이에 대해서도 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라는 명칭에는 북한이라는 정권의 특성과 정체성과 일치하는 단어가 단 하나도 없다. 민주주의? 공화국? 개뿔..

하지만 '북한 공산 괴뢰 집단'은 구구절절 정확한 명칭이다! 한반도의 북쪽에 자리잡았다고 해서 북한, 사유재산이 없으니 공산, 예나 지금이나 소련 내지 중국의 꼭둑각시이니 괴뢰.. 우리 헌법 FM대로라면 애초에 국가도 아닌 반국가단체일 뿐이니 집단.. 참으로 절묘하다. 우리는 terminology에서도 놈들에게 양보하거나 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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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주변 구경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북한산 등산로 출입구를 발견했다. 여기 명칭은 '평창 공원 지킴터'이다. 참고로 동쪽으로 북악 터널을 지나 국민대 근처에 있는 등산로 출입구는 '북악 공원 지킴터'이다.
나름 찾는 사람이 많은 유명한 등산로여서 그런지, 주변에는 외부인의 불법 주차를 절대 금지한다는 경고 현수막이 잔뜩 붙어 있었다.

북한산은 전체가 국립공원이다 보니 역시나 경비 초소와 공중 화장실 같은 게 마련돼 있었으며, 여기 말고 다른 데서 산을 무단으로 오를 수 없게 일부 구간은 높은 울타리와 철조망까지 둘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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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어디 봉우리 정상까지는 안 가고 30분 남짓 산책만 하다가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왔다. 진지한 북한산 산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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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국가보안법 제6조)

으하하하.
그런데 왜 '점'도 아니고 '정'이라고 써 놨나 모르겠다. 저건 무슨 의존명사인지 한자인지, '정보'의 약자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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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는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말고, 서울 둘레길 루프의 일부로서 산의 능선만 타는 산길이 있다. 그래서 북악 터널 위쪽을 도보로 건너서 국민 대학교 내지 정릉 방면으로 갈 수도 있다. 본인은 그런 길이 있는 걸 지도를 통해서만 확인했지 직접 가 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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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창동 답사와 북한산 등산로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평창동은 '평창문화로'라고 내부순환로보다 미묘하게 더 북쪽을 지나는 큰 도로에서 북쪽 방향으로 방향을 꺾어서 평창25길, 평창30길, 평창36길 같은 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1차 진입로는 폭은 보다시피 왕복 2차로 이상급으로 넉넉한 편이지만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1단 엔진 브레이크를 걸고도 엔진 rpm과 함께 속도가 계속 붙어서 주기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정도였다. 눈이라도 오면 다니기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20 08:36 2018/02/2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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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대모산+구룡산

대모산과 구룡산은 서울의 동남부에 있는 최대 높이 300m대의 산으로, 산중턱에 서울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산 남쪽 건너편도 여전히 미묘하게 인서울이기 때문에 등산로가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나들지는 않는다. 아차산이나 인릉산· 우면산 같은 산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얘기다.
하지만 남쪽에 울타리로 둘러진 헌인릉과 코렁 시설이 있기 때문에 산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것은 좌우 말단의 일부 등산로를 빼면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이 이 산과 관련된 역사· 군사상 특이 사항의 전부이다.

본인은 서울· 수도권 일대의 산들을 운동 삼아 틈틈이 답사하기로 마음먹은 게 2015년 초의 일이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그 많은 산들 중에 제일 먼저 찾아갔던 산이 바로 이 산이었다. 지금처럼 미주알고주알 사진 기록을 남겨서 여행기를 블로그에다가 올리기 시작하기 전이었지만, 그래도 말로만 듣던 타워팰리스를 이렇게 산에서 내려다보는 게 무척 신기했다.

그때는 대모산입구 역에서 내려서 일원 터널 근처에서 산을 오른 뒤, 대모산과 구룡산의 정상을 구경하고 구룡 마을 방면으로 하산했다. 그로부터 거의 3년 가까이 뒤, 지금은 산을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완전히 횡단했다. 수서 역 6번 출구에서부터 시작해서 아예 KOTRA, 현대· 기아 사옥, 양재 IC 근처까지 도달했다. 과거에는 가장 돋보였던 고층 건물이 타워팰리스였지만 지금은 단연 롯데 타워이다.

대모산· 구룡산은 진지한 등산용 산보다는 낮고, 그냥 공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좀 높아 보인다. 역사 유물 같은 거 없고(헌릉은 등산로에서 구경할 수는 없으니) 사실상 북부밖에 접근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곳곳에 이정표와 쉬어 가는 의자 같은 게 잘 만들어져 있어서 사용자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는 인상이 좋았다.
그럼 구체적인 여행 기록을 늘어놓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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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 역 6번 출구는 아마 등산로와 가장 가까이 연결돼 있는 지하철역 출입구가 아닌가 싶다. 뭐, 처음에는 서울 둘레길로 시작하다가 '산 정상으로 계속 올라가기 vs 이쪽 지대만 둘레길 계속 걷기'라고 갈림길이 나오긴 한다.

단순히 대모산 정상까지 더 빨리 가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먼 수서에서 시작할 필요 없이 옆에 있는 일원 역 일대의 아파트 뒤쪽에서 산을 올라도 된다. 하지만 대모· 구룡산은 안 그래도 작은 산인데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대신, 정상까지 최장거리인 산책로 내지 등산로를 선택해 걷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

산 속 풍경은 뭐 저렇게 흔한 가을 숲 속 모습과 별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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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가까이 걷고 또 걷고 나니, 공터와 함께 이 산에서 유일한 듯한 지붕 달린 정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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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의 정상을 앞두고 드디어 산을 남북으로 분단시키는 철망 울타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헌릉 영역을 구분하는 경계이다.
대모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LH 강남 힐스테이트 아파트라든가 헌릉 근처의 비닐하우스 농장도 형체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무들에 가려져서 전망이 썩 좋지 않기 때문에 사진을 남기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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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 알림 표지가 관할 행정구역 표시와 함께 저런 식으로 만들어진 산은 대모산 말고는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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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 암반으로 이뤄지지 않은 흙산의 경우, 정상 지점이 공터 겸 헬리패드인 편이다. 하지만 이 산은 그렇지 않고 헬리패드가 정상 근처에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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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패드 근처에서는 이렇게 산 아래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도 산 높이가 정말 낮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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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헌인릉의 철망과 코렁 시설의 철망이 동시에 등장하고 바뀌는 지점이다. 후자 철망은 잿빛이며, 약간 더 높고 꼭대기에 날카로운 철조망도 달려 있어서 더 위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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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에서 구룡산으로 가는 길은 철망을 따라서 계속 이어졌다. 중간에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수직 이동도 많았다. 비록 낮은 산이긴 해도 무슨 '껌' 수준으로 만만하지는 않고, 다리의 압박이 적당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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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산의 정상에는 딱히 돌출된 표지석이 없고 이렇게 바닥에 발판 형태로 정상 안내가 돼 있었다. 그리고 헬리패드와 전망대가 같이 놓여 있었다.
본인이 산을 오를 때부터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이 흐린 상태였다. 본인이 대모산을 넘어 구룡산의 정상으로 접근하고 있을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정상에 도달한 뒤부터는 우산이나 비옷이 필요할 정도로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했다. 산에서 비를 만난 건 2016년의 용마산· 망우산을 오를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럴 때 아까처럼 지붕 달린 정자라도 하나 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비를 피할 만한 시설은 아쉽게도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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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과정에서 날씨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 수 있는 풍경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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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산 정상을 지난 지점부터 철조망은 드디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강남구와 서초구 경계 이정표가 나타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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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이 정상 인근에 헬리패드와 보조 전망대(?)가 있던 것처럼, 구룡산은 정상 근처에 '국수봉'이라는 또 다른 작은 산봉우리와 전망대가 있었다. 본인의 방문 당시에는 비가 오고 안개도 뿌옇게 껴서 경치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 하산하는 길은 평범한 산행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본인도 비를 피해 허겁지겁 내려가느라 정신 없었기 때문에 사진을 딱히 소개하지 않겠다. 철조망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군사 시설 보호 구역' 팻말은 산 속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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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에서 출발해서 산행 도보만으로 무려 여기까지 도달하다니.. 나름 성공적인 산행을 했다. 청계산· 인릉산 등산 후에 4432 버스를 타고 여기 일대를 지난 적이 있었는데 여기를 내 발로 걸어다닌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17 08:32 2018/02/1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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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 일대 나들이

서울 서대문 새문안로 일대는 중구와 종로구의 경계이면서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지나며, 한양 겸 경성의 중심지로서 근현대 역사 유물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도 일본인들은 여기보다 더 남쪽으로 남산· 남대문 일대에 많이 살았고, 조선인은 서대문 부근에 살았다고 한다.

지난번엔 각종 고궁과 서울 역사 박물관을 구경했는데, 알고 보니 거기 주변에 각종 박물관을 포함해 볼거리가 많다는 것을 추가로 발견했다. 그래서 본인은 하루 시간을 내어 순회 답사를 했다.

1. 경찰 박물관

<청년경찰>, <범죄도시> 같은 영화만 볼 게 아니라 이런 곳도 가 보면 좋을 것 같다.
경희궁의 동쪽으로는(광화문 역 방면) 서울 역사 박물관이 있고, 서쪽으로는 경찰 박물관이 있다(서대문 역 방면). 서로 아주 가까이 붙어 있으며, 도심 접근성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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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박물관은 다층 건물 형태이다. 들어간 뒤에는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6층으로 간 뒤, 한 층씩 내려가면서 방을 관람한다. 중간에 3층인가는 예외적으로 직원 사무 공간이기 때문에 관람객이 입장할 수 없고, 건너뛰어야 한다.

입장료가 없으며 무료이다. 경찰이 뭘 하는 사람인지 소개하고 경찰 코스프레· 경찰 체험 코너가 있는 건 아무래도 애들 눈높이에 맞춰진 컨텐츠이지만, 맨 처음 관람하는 꼭대기 층에 마련된 한국 경찰의 역사 코너는 유일하게 애들한테 좀 어려운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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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로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태극 무공 훈장이 추서된 최 규식 경무관에 대해서는 당연히 큰 비중을 두고 소개했으며, 그 외에도 순직한 경찰들 소개와 묵념 공간이 마련돼 있다.
하긴, 6· 25 전쟁 중에 최전방에서 조금이라도 더 북진하고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서 북괴와 직접적으로 싸운 사람들은 군인이지만.. 남한 영토 내부에서 북괴 빨치산과 간첩들을 소탕한 사람은 경찰이었을 것이다.

내 머리에 편견으로 형성돼 있는 경찰에 대한 외형적인 이미지는..

  1. 평소에 교통정리와 범죄 “예방” 업무를 하면서 구역을 순찰하는 제복 차림의 경찰. 이건 일상생활에서 제일 자주 본다. 내근직도 제복 차림이긴 하지만 일반인이 경찰서를 방문할 일은 별로 없으니..
  2. 강력 범죄가 터져서 사복 차림으로 현장에서 잠복하고 피의자를 격투 끝에 검거하는 경찰. ‘형사’라고 종종 불리며, 이건 영화 같은 매체에서 제일 자주 본다.
  3. 투명한 방패와 검은 방망이 들고 있는 전경들. 시위· 집회 현장에서만 본다.

이렇게 생각해 왔는데.. 이게 근거 없는 분류가 아닌 것 같다.
나 초딩 시절 286 AT에서 재미있게 했던 블루스 형제 게임에서도 세 캐릭터가 딱 정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ㅋ (물론 주인공을 죽이는 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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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경찰을 컴퓨터에다 비유하면, 정규 경찰 공무원들이 CPU라면 전경들은 GPU뻘 되겠다고 본인은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GPU는 전문성과 범용성이 정식 CPU만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픽 연산이라는 특정 작업만을 압도적인 코어 수로 보조해 주니까..

어느 나라건 경찰과 군대, 첩보기관은 서로 사이가 좋은 적이 별로 없었다. (실적 다툼 때문..?) 심지어 이들과 검사도 사이가 안 좋다.
원래는 이들은 서로 전문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이다. 일개 조폭을 넘어서는 군벌, 테러리스트와 싸워야 할 정도로 나라 사정이 막장이라면 특수부대나 아예 정규군의 도움이 필요하다.

용공사범, 마약이나 산업 스파이처럼 심각하고 교묘한 범죄를 정확한 증거를 잡아내서 겨우 말단 조직원이 아닌 근원지까지 일망타진하려면, 위장 침투가 전문인 첩보기관으로부터 첩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영화 아저씨..!!)

군대가 아예 전문적인 대형 DBMS이고, 첩보기관이 심벌과 임의 정밀도 연산까지 지원하는 수학 패키지라면, 경찰은 그 중간에 속하는 엑셀 같은 스프레드시트가 아닐까 한다. 일반인이 컴퓨터에서 이 셋 중 가장 즐겨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단연 엑셀이기도 하니 말이다.

얘네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는다거나, 정치와 야합해서 나라에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의 가장 비열 사악한 본성을 자극하면서 세력을 키우는 공산주의는 정말 불가피하게 경찰, 군대, 첩보기관에 대한 필요· 수요를 자꾸 만들어 내고 그쪽이 타락할 빌미를 주기도 했다는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하늘에서 정의가 빗발친다, 야 이 짭새야!”
청년경찰 각본 쓴 사람이 오버워치를 좋아하는 취향이었군.. ㅡ,.ㅡ;;

2. 경교장

경찰 얘기가 갑자기 좀 길어졌네..
경찰 박물관에서 더 서쪽으로 걸으면 강북 삼성 병원이 나온다. 그런데 그 안에 그 이름도 유명한 경교장이라는 근대 유적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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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은 원래 1938년에 지어진 부잣집 건물인데, 백범 김 구가 여기서 몇 년간 지냈고 임시정부 요원들이 여기서 회의를 열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장소로 유명해졌다. 잘 알다시피 김 구는 아예 여기서 안 두희의 흉탄에 맞아 암살당하기도 했다.
이 건물은 비교적 최근인 2013년에 1· 2층과 지하를 원형대로 복원해서 전시관으로 공개되었다...고 입구의 안내판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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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가구로 응접실과 집무실이 있는 건 부산에서 본 임시수도 청사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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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는 마치 애니매트릭스의 첫 에피소드(오시리스 최후의 비행)에서 테디우스와 주에가 칼싸움을 한 장소와 비슷하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 사진은 생략하지만 김 구가 암살당하던 당시의 2층 집무실 방, 그리고 고인이 입고 있던 피로 물든 겉옷도 어떻게 복원과 보존을 했는지 전시되어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역사가 실제로 이 장소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김 구를 암살한 안 두희는 먼 훗날 1996년, 박 기서 씨에게 몽둥이로 난타 당해 죽었다. 그 당시 박 씨가 버스 기사였던 관계로, 안 두희가 버스를 타다가 잘못 걸려서 죽었다는 식의 낭설이 전해지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박 씨는 인천에 소재한 안 두희의 집 주소를 알아내어 거기로 직접 찾아간 뒤, 문이 열릴 때까지 오랫동안 잠복했다. 내연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녀부터 포박해서 제압한 뒤, 집으로 침입해 들어가서 안 두희를 살해했다. 그 뒤에는 곧장 고해성사를 받고 경찰서에 자수했다.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할 고의적 살인범이기 때문에 그는 일단 구속되고 징역형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이렇게까지 전국적으로 칭송받은 살인범은 없었을 것이다. 그를 변호하겠다는 변호인이 줄을 섰고, 전국 각지에서 박 기서의 집으로 익명 성금과 지원 물자가 도달했댄다. 그의 아들이 다니던 태권도장에서는 관장 선생이 수업료를 면제해 줬다. 김 구가 먼 옛날에 일본인 민간인 상인을 죽인 것보다, 차라리 박 기서가 김 구의 암살범을 죽인 게 더 훌륭한 일처럼 보일 정도이다.

본인은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독립 운동가 겸 건국의 주역으로서는 김 구보다는 미국물 먹은 할배를 훨씬 더 존경한다. 이화장도 복원해서 재개장할 거라고 소식을 들었는데, 완공된다면 거기도 당연히 0순위로 가 볼 것이다.

3. 4· 19 혁명 기념 도서관

북한산 기슭에 4· 19 묘지가 있는 건 본인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만.., 경교장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엔 4· 19 혁명 기념 도서관이라는 것도 있다. 저건 도대체 뭐지?
(사실, 상암동에 있는 박 정희 기념관도 정확한 명칭은 '박 정희 기념 도서관', 더 세부적으로는 '기념관 및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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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여기는 자유당 시절에 잘나가던 이 기붕· 박 마리아 부부의 자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그들은 가족 전체가 동반 자살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래서 주인을 잃은 집과 부지를 국가가 환수하여 꽤 오래 전부터 4· 19 혁명 도서관이 이 자리에 조성됐다고 한다. 경교장과는 달리, 집 건물 자체는 문화재로 보존할 가치가 없으니 철거하고 도서관 형태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이건 마치 프랑스의 유명한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를 보는 것 같다. 기독교를 맹렬히 증오해서 "성경 같은 쓰레기는 앞으로 100년 안으로 세상에서 완전히 사멸해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랬는데.. 그가 죽고 나서는 그의 생가 부지에 성경 인쇄소가 들어섰다나 어쨌다나..

잠시 들어가 봤는데, 역시나 4· 19 혁명 관련 자료의 보관과 열람에 특화된 도서관인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4· 19까지는 인정하지만, 5· 18은.. 너무 이상하게 왜곡되고 있는 것 같다. 폄하하는 쪽, 맹목적으로 신성시하는 쪽 모두 마음에 안 든다. 저건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재평가한다 해도 쌍방과실일 뿐이고 여파가 4· 19만치 크지도 않았으며, 지금 해 주는 것만치 그렇게 예우할 급도 못 된다.

사실은 4· 19조차도 대통령이 자격지심에 과오를 저질렀을지언정, 한편으로는 너무 착했고 진작부터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쳤기 때문에 저런 항거가 일어나고 성공한 것이다. 진짜 악질적인 독재자 치하였으면 민중 항거· 항쟁으로 정권 교체? 택도 없는 일이다. (북괴 내부의 8월 종파 사건, 황해 제철소 사건 등..)

4. 농업 박물관, 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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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도 지나서 계속 서쪽으로 걸어가면 서대문 역이 나온다. 그 뒤 길 건너편 서대문 역 5· 6번 출구 방향을 보면 농협 은행 본점과 함께 농업 박물관과 쌀 박물관 이렇게 박물관이 두 곳 있다. 여기도 무료 입장 가능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도시와는 정반대 심상의 박물관이 있는 게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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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봉길 의사는 폭탄 의거를 벌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생전에는 농촌 계몽 운동에도 크게 앞장선 이력이 있다.
지금처럼 국제 교역이 활발해진 시대에 농업 내지 식량 자급자족이라는 이념을 옛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만치 목숨 걸고 붙들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6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여전히 땅에서 나는 소산물에 의존해서 명줄을 유지하고 있는 건 변함없다. 식량은 공산품이 아니다. 또한, 하늘의 기상 현상에 의존하지 않고는 땅의 소산물을 제대로 생산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항공업계는 20세기에 비행기의 발명으로 인해 등장한 최첨단 산업이지만.. 역시 하늘 날씨에 영향을 많이 봤고 심지어 새들을 쫓아야 하는 게 어찌 보면 그 원시적인(?) 농업과 비슷하다.

시간과 지면 관계상 더 자세한 사진 첨부는 생략하겠다.
인간이 농사를 지어 온 역사, 그리고 각종 논밭 개간 기술의 개발, 이앙법, 직파법 이런 얘기들이 나와 있다. 다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우 장춘 박사가 이룩한 영농 과학화 얘기는 전혀 없는 게 아쉽다.

박물관의 1층과 2층은 저런 농업 얘기이고, 지하에는 농협 자체에 대한 소개가 들어있더라.

5. 서대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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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사대문 중 동대문(흥인지문), 남대문(숭례문), 북대문(북악산 숙정문)과 달리 서대문(돈의문)만이 유일하게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되었으며, 그 뒤 재건· 복원되지 못했다. 그래서 신길온천 역 주변에 온천이 없듯이 서대문 역 주변에 실제로 서대문이 있지는 않다.
여기는 주변에 이미 건물들이 많이 지어져 버린 관계로, 서대문의 부지 확보와 재건 복원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여기 근처에 있는 경희궁도 사정이 비슷한지라, 인제 와서 원형 복원은 난감한 상태이다.

참고로, 한양도성에는 사 '대문'(동 흥인지, 서 돈의, 남 숭례, 북 숙정) 말고, 사 '소문'도 있다. 창의문 또는 자하문은 북소문에 속한다.
동소문에 속하는 혜화문, 그리고 남소문에 속하는 광희문은 복원된 것이 남아 있긴 하지만 원래 있던 곳에 있지는 않다. 이미 도로나 건물이 자리를 차지해 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북소문만이 유일하게 원형이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있다.

그리고 서소문에 해당하는 소의문은 흔적도 없이 완전히 소실되어 있다. 대문과 소문 모두 '서'쪽만이 현재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소· 지명에만 '서대문, 서소문'이 전해질 뿐이다.

6. 경찰 기념 공원과 서대문 역 터

여기 근처에는 서대문이라는 조선 시대 유적 말고, 서대문이라는 이름의 '철도역'도 있었다. 경부선이 만들어졌던 초창기에는 지금 있는 서울 역은 '남대문 역'이었으며, 살짝 더(지하철 한두 정거장 남짓) 북쪽으로 가서 '서대문 역'이 실질적인 경성 역이요 경부선의 북쪽 종점이었다.

그랬는데.. 1920년대 초에 서대문 역은 폐지되고, 남대문 역에서 경의선으로 분기하는 신촌· 가좌 방면 드리프트 선로가 부설됐다. 어차피 일본인들이 주로 사는 곳은 남대문 쪽이었으니, 철길이 그쪽까지만 있어도 충분했던 모양이다.

서대문 역 6번 출구로 나와서 경찰청이 마주 보이는 정도까지 좀 걸어가면.. 인도 옆으로 아주 작은 풀밭 공원이 있으며, 거기에 "옛날에 이 자리에 옛 경성, 서대문 역이 있었음"이라는 표지석이 놓여 있었다. 유 관순 열사가 다녔던 이화 학당도 바로 이 근처(현재의 이화여고)이니, 그 학교는 가히 엎어지면 코앞인 역세권이었던 셈이다.

지난 2016년 여름에는 그 소공원이 '경찰 기념 공원'으로 리모델링됐다. 안 그래도 경찰청이 코앞이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경찰 박물관도 있으니, 내친 김에 순직 경찰을 기리는 공간을 더 만든 듯하다. 경복궁 역 근처에서 학교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 보던 건물은 경찰청 본청이고, 여기서 보는 건 서울 '지방 경찰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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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과정에서 이 자리에 있던 서대문 역 표지석 역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나름 경찰청장 출신이 코레일 사장을 역임한 적도 있는데(허 준영).. 너무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렇게 서대문 역 일대에서 여러 뜻깊은 장소들을 잘 구경하고 돌아왔다.
표지석은 너무 아쉬웠던지라 집에서 검색을 좀 더 해 봤는데, 사진들의 구도를 보니 소공원에 있던 그 표지석은 이화여고 정문 바로 옆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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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8/02/14 08:35 2018/02/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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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셋 한글 입력기 9.3

0. 들어가는 말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약 4개월 간의 작업 끝에 9.1에서 또 9.3이 완성되어 나왔다.
내부적으로 4200줄에 달하는 코드가 추가되었다. 먼 옛날에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던 2.0이나 3.0 같은 시절 이후로, 지난 10여 년간 한 버전 단계에서 이렇게 많은 분량의 코드가 추가된 적은 없었다. 물론 요즘은 예전처럼 리팩터링을 하지 않고 외형적인 새 기능이 계속 추가되고 있으니, 새로운 클래스와 리소스 심벌 같은 비실행문도 많이 추가되고 그 덕분에 코드의 증가폭이 예전보다 더 커지기도 했다.

원래는 3월쯤에 새 버전을 내놓을 생각이었으나, 입력 도구의 작업이 완료된 것까지만 일단 공개해 버리기로 했다.
비록 원래 만들려던 기능들을 다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날개셋 개발이 늘 그래 왔듯이 예기치 못했던 다른 기능이나 개선 사항이 대신 추가된 것도 적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프로그램은 버전을 0.2 정도는 충분히 올릴 자격이 된다. 짧게는 수 개월, 길게는 무려 수 년 동안 내 머릿속에만 나뒹굴던 아이디어들이 깔끔한 클래스 형태로 구현되고, 사용자들이 직접 써 볼 수도 있는 기능이 됐다니 참 감개무량하다.;

1.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이번 9.3 버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연 입력 도구이다. '수식 계산 기록', '내부 입력 상태' 같은 것은 지난번 개발 근황글에서 이미 소개된 바 있으며,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도구도 이때 같이 다뤄졌다.
마지막으로 '조합 안에 조합 생성'은 근황글을 쓰던 당시에는 아직 미완성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개념 설명만 늘어놓는 걸로 그쳤다.

하지만 사실은 이거야말로 제일 획기적인 물건이다. 입력 도구가 고유한 문자 조합을 생성해서 응용 프로그램으로 보내는 것은 진작부터 구현돼 있었으나.. 더 나아가 응용 프로그램이 받는 그 조합 결과를 입력 도구가 가로채서 변조하는 것은 지금까지 선뜻 떠올릴 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술적인 통로를 마련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것도 편집기, 외부 모듈, 입력 패드까지 세 군데 모두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걸 하고 나니 한글 입력과 관련하여 구조적으로 난감하던 문제를 굉장히 쉽게 해결할 수 있었으며, 이를 이용한 굉장히 창의적인 활용을 할 수 있었다.
이 입력 도구는 사용자가 입력한 문자열을 어떤 방식으로 변환할지를 자체적인 설정을 통해 지정할 수 있다.

(1) 먼저, 한글 독음을 단어 단위로 한자로 변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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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존 문자 생성기도 단어 단위 한자 변환을 지원한다. 하지만 그 기능은 매번 번거롭게 '한자' 글쇠를 눌러야만 호출할 수 있으며, 지금 변환을 몇 글자 단위로 할지를 단일 목록에서 유동적으로 고를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편집기 내지 TSF를 온전히 지원하는 환경이 아닌 곳에서는 기능이 동작하지 않으니 그냥 반쪽짜리이다.

이때 '조합 안에 조합 생성' 도구와 이 변환기를 동원하면, 마치 중국어 IME로 병음을 입력해서 변환하듯이 번호만 찍으면서 붙여 쓴 긴 한자어 합성어를 차근차근 한자로 아주 빠르고 편하게 변환할 수 있다.
아무 구현체에서나 동일하게 동작한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조합창을 띄우는 걸 운영체제에 맡기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독자적으로 처리해 버리고, 운영체제에다가는 완성된 문자열만 보내는 식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 다음으로, 한자를 한글 새김을 통해 입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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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입력 방식은 타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정작 한자는 한 글자씩밖에 입력하지 못하니 불편하다. 하지만 훈이 같은 한자들, 다시 말해 뜻이 유사한 한자들을 한 목록에서 뽑을 수 있기 때문에 일면 대단히 편리하고 유용한 기능이 될 수도 있다. '마을, 나라, 새, 빛, 어조사' 같은 걸로 한자를 찾아보면 아마 놀랄 것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이 훈이 체언(+조사)인지 용언(+어미)인지를 구분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돌'이라고 찾으면 stone이 걸릴 수도 있고 '돌다'라는 뜻의 글자가 걸릴 수도 있다. '새'는 '새 이름으로 저장' 개드립에서도 알 수 있듯이 bird와 new가 모두 걸린다. 그래도 이 정도 모호성쯤은 새김으로 한자 입력 기능의 효용성을 본질적으로 폄하하지 못한다.

(3) 그리고 끝으로, 한글이 아닌 영문을 대상으로 T9 변환 입력 방식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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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키패드의 부족한 글쇠만으로 라틴 알파벳을 입력하려면 한 글쇠에 필연적으로 2개 이상의 알파벳이 중첩 배당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 글쇠 그룹에 속한 알파벳은 그 글쇠를 여러 번 눌러서(다중타) 선택하곤 한다.

그런데 후순위에 속한 알파벳을 일일이 여러 번 눌러서 입력하는 건 참 불편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중타 없이 그냥 그 글쇠를 쭉 입력하더라도, 글자가 아닌 단어 레벨로 가면 별다른 중의성 없이 빠른 입력이 가능하다.
한자를 변환할 때도 '단', '어', 같은 글자 단위로 일일이 하면 느릴 뿐만 아니라 후보 수도 엄청 많지만, '단어'라고 검색하면 '單語'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듯이 말이다.

요런 입력 방식을 T9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당장 위의 예제 그림을 보면 {ADZ}, {TUY}, {OP}, {ILJ}, {EWQ}라는 조합 중에서 실제로 유의미한 단어를 구성하는 건 DUPLE(X) 이런 것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에도 일부 버튼식 전화기에는 숫자 밑에 알파벳이 ABC, DEF, GHI... 이런 식으로 배당돼 있는 게 있었다. 단, Q와 Z가 PQRS, WXYZ 이렇게 붙은 8키 버전이 있는가 하면 QZ가 따로 분리된 9키 버전도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 제공되는 T9 변환기는 또 고유한 환경설정 기능이 있어서 이런 알파벳 그룹을 사용자가 지정할 수 있다. 전통적인 T9 구성뿐만 아니라, 알파벳을 얼추 빈도수를 고려하면서(자주 등장하는 글자를 적은 다중타로 곧바로) PC Qwerty 배열과도 얼추 일치시킨 나름 창의적인 layout인 모비언스의 SmallQwerty도 내장값으로 제공한다. 얘는 9.1에서 추가된 '휴대전화 입력기'의 영문 모드로 이미 제공되고 있으니 곧장 연계 사용 가능하다.

T9을 '휴대전화 입력기' 말고 키보드로 써 보기 위해서는 해당 입력 스키마가 빈 입력 스키마 계열이 아니어야 한다. ('빈 입력 스키마와 호환되게 옵션도 포함') 그도 그럴 것이 글쇠를 날개셋으로 보내지 않고 응용 프로그램으로 줘 버리면 이 입력 도구가 글쇠를 받아서 동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자판을 그런 입력 스키마로 바꾸면 조합이 취소되며 이 입력 도구가 동작할 수 없다고 이렇게 에러 메시지가 나올 것이다. 이번 기회에 '입력 도구'들이 내는 에러 메시지 창도 키보드 포커스를 침범하지 않는 형태로 깔끔하게 다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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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9을 구현하기 위해.. 먼 옛날에 본인이 컴퓨터용 Scrabble 게임을 개발할 때 쓰였던 단어 DB 엔진이 동원되었다. 정확히는 현재 버전이 아니라 차기 버전에서 도입할 새 엔진이었으나, 그 게임 프로그램은 3.x대에서 더 버전업이 되지 못하고 현재 개발이 중단됐다. 현재 탑재된 DB도 게임용 사전인지라, 고유명사나 대문자 이니셜 없고 오로지 전체 대문자 또는 전체 소문자인 일반적인 단어들만 있다.

그리고 스크래블이 타일 수가 7개이다 보니.. 단어가 길어야 9~10글자짜리만 있고 막 긴 단어들이 있지는 않다. T9이란 이런 거구나 맛보기 시연을 보이는 정도로만 있다. 영문 입력이나 DB 구축이 내 프로그램의 주된 개발 대상이 아니니 현재 버전에서는 이 정도로만 넣었다.
사실, 버튼 배치의 제약이 없는 스마트폰에서는 어지간히 작은 화면에서도 T9 대신 그냥 Qwerty 배열을 통째로 집어넣는 게 대세이긴 하다. 영미 문화권에서 기어이 Qwerty 키보드를 버튼 형태로 주렁주렁 집어넣은 블랙베리 스마트폰이 괜히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게 아니니 말이다.

아무튼,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와 변환기가 도입된 덕분에 지금까지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문자 단위의 기본 글쇠배열만 제공하던 것에다가 뭔가 더 유의미한 변환 기능이 덧붙을 수 있게 됐다. 이것까지 지원하는 건 아니지만 일본어 글쇠배열에다가 실제로 한자 변환 기능이 들어갈 수 있으며, 한글 발음이나 영문 병음으로 실제 중국어를 입력할 수도 있다. 이것이 이번 9.3 버전의 가장 큰 의의이다.

'조합 안에 조합 생성' 도구와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도구는 서로 좋은 상호보완 관계 겸 대조군을 형성한다. 동작하는 관점이 서로 다르다. 동시에 사용할 수도 있지만 목록 창이 뜨는 위치가 비슷하고, 둘 다 화살표 같은 글쇠를 사용하기 때문에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시기 바란다.

전자는 언제나 키보드를 사용하지만 후자는 키보드 사용이 옵션이다. 전자는 1~9 숫자로 목록을 바로 고르는 기능이 있지만 후자는 없다. 전자는 실제 후보 변환을 표방하는 기능이지만 후자는 개발툴이나 웹브라우저 입력란에서 제공하는 자동 완성 기능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2. 제어판 시스템 계층의 개편 + 입력 도구의 자동 구동 기능

이번 9.3에서는 '한글 표현 방식' 탭에 이어(작년 12월에 공개) 그 상위의 '시스템 계층' 탭도 외형이 크게 바뀌었다.
가장 먼저, 즐겨 사용하는 입력 도구는 구현체 프로그램(편집기, 외부 모듈, 입력 패드)이 실행될 때 자동으로 같이 뜨게 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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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능이 가장 유용하게 쓰일 구현체는 외부 모듈이다. 외부 모듈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구동하는 프로그램의 스레드 단위로 전부 제각각 따로 돌기 때문에 한 곳에서 입력 도구를 띄운 게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전혀 동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쇠배열 이름 표시' 같은 건 이렇게 자동으로 뜨게 해 놓으면 앞으로 새로 실행되는(이미 실행된 건 말고) 모든 프로그램에서 '글쇠배열 이름 표시' 기능이 동작하게 되므로 매우 편리할 것이다.

물론 이건 입력 도구들을 띄워 주기만 할 뿐, 각 프로그램에서 돌아가던 입력 도구들의 내부 설정과 창 위치, 크기 같은 걸 한데 동기화까지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띄워 주는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할 것이다.

입력 도구 목록을 집어넣을 큰 공간이 필요해진 관계로.. 지금까지 널널하던 시스템 계층 탭은 각종 UI 컨트롤들의 배치가 조밀해졌다.
공간을 잔뜩 차지하던 각종 설명문과 안내문들을 다 뺐다. 가령, 시스템 계층의 설정은 파일에 저장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지금까지 상단에 있었는데, 이건 시스템 계층 내지 그 하위 탭에서 '가져오기/내보내기'를 실제로 시도했을 때 한 번만 별도의 메시지 박스로 안내를 하게 동작 방식을 바꿨다.

다음으로, 글꼴 본뜨기에 대한 긴 설명도 그냥 도움말 링크로 대체했다.
이미 한자 글립이 존재하고 글꼴 본뜨기가 돼 있으면 본뜨기를 "다시" 수행한다고만 말이 나온다. 하지만 한자 글립이 없고 본뜨기를 한 적이 없다면 본뜨기를 "반드시" 해야 된다고 강한 어조로 말이 나오며, '글꼴 본뜨기'라는 버튼의 글자도 더 진해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글꼴 본뜨기 스크립트를 바로 불러와서 편집하는 기능은 없었는데 이것도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절차 편집'이라고 추가했다.

UI가 굉장히 그럴싸하게 잘 바뀐 것 같다.
참고로, 타자연습이야 입력 도구를 전혀 운용하지 않는 프로그램인 관계로, 거기서 제어판을 열어서 시스템 계층으로 들어가면 입력 도구 목록 부분은 전부 공란으로 대체되고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서 체크 list box라는 GUI 컨트롤이 쓰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게 사실은 Internet Explorer 4도 아니고 3에서부터 도입된 물건이긴 한데(공용 컨트롤 버전 4.70), IE가 없거나 1~2인 초짜 Windows 95에서는 GUI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역시 이 목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3. 데이터: 글꼴

'한컴타자'라는 16픽셀 한글 조합형 글꼴을 추가했다. 다음과 같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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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한컴 타자연습'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프로그램은 내력이 생각보다 굉장히 긴 프로그램이다.
얘는 '한(아래아)글타자'라는 이름으로 1995년경에 도스용으로 최초로 개발되었다. 이때는 프로그램이 아래아한글 3.0 Windows용이 사용하던 기본 글꼴(일명 시스템, 9포인트)과 비슷한 모양의 글꼴을 사용했는데, 이번에 날개셋에 추가된 글꼴은 바로 이것이다.

도스용 mshbios가 사용하는 글꼴이 Windows의 바탕체 원판과 완전히 동일한 형태는 아니고 약간 열화된 버전이듯이, 이 글꼴도 아래아한글 글꼴 원판과 동일하지는 않다. 일부 글자가 미묘하게 엉성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도저히 사용하지 못할 퀄리티는 아니다. 고유한 조합 로직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냥 도깨비 8*4*4벌인지라 추출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지금 다시 보니 '가는돋움'이라는 기존 서체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거보다야 더 홀쭉하고 획이 둥글기 때문에 충분히 서로 다른 느낌이 난다.
1996년 무렵부터는 '한글타자'는 '한컴타자'로 이름이 바뀌고 본문의 글꼴도 평범한 명조로 바뀌어서 이 독특한 글꼴은 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200x년대, 아래아한글 워디안과 2002 시절에 드디어 그래픽이 일신한 Windows용 버전이 나왔으며, 한번 만들어졌던 게 별다른 개선 없이 아래아한글 2007까지 갔다. 도스용은 회색 배경에다 단조로운 텍스트 위주 구조였는데 이 버전은 배경이 나무 재질로 바뀐 게 인상적이었다.

그 뒤 아래아한글 201x 타이밍에 와서야 한컴타자는 완전히 다시 개발되었으며, 이번에는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온라인 타자 대련 기능까지 추가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온라인 연계는 날개셋 타자연습에 대해서도 게임의 3D화와 더불어 본인이 갖고 있는 희망사항이지만.. 혼자 감당할 여력이 안 되니 희망사항으로만 머무르고 있다.

아무튼 날개셋 편집기라는 한글 비트맵 글꼴 박물관에 역사적인 작품이 하나 추가됐으니 관심 있는 분은 사용해 보시기 바란다.

4. 기타

(1) 이 밖에 '세벌식 12키'라는 입력 유형을 예제로 추가했다. 그 좁은 12키에다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초중종성을 배치하고, 중앙 하단의 0은 가획 글쇠를 배당했다. 글쇠 수가 부족한 관계로 두벌식보다 평균적인 타수가 늘어나는 건 불가피하지만 그래도 음절 경계 모호성이니 도깨비불이니 하는 문제는 일체 없다. 12키용 세벌식도 이 정도 실험적인 시도는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것도 물론 '휴대전화 입력기' 입력 도구에다가 가져와서 써 볼 수 있다.

입력 방식을 설계할 때 아까 영문 T9도 그렇고 다중타를 가능한 한 기피하는 게 추세인 것 같다. 안드로이드용 세벌식 입력기로 유명한 '세나'도 12키보다는 글쇠 수를 더 늘리고, 중첩 배당된 낱자는 다중타가 아니라 한 버튼을 클릭 후 '사방으로 드래그'하는 방식을 채택해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좀 불편하긴 하다.

(2) 타자연습은 지난 3.8 이후로 변화 사항이 없지만, 이번 대대적인 입력기 개발로 인해 바이너리 호환성이 깨졌다. 그래서 같은 버전을 다시 올렸다.
이미 타자연습을 잘 쓰고 계신 분은 프로그램을 굳이 다시 설치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입력기의 커널과 타자연습의 커널이 서로 다르면 타자연습에서 '고급 입력 스키마나 고급 입력기' 같은 걸 사용할 수 없어지기 때문에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 좋다.
딱~ 하나, 프로그램 main 화면에서 Alt+1~6을 눌러서 탭을 바로 오가는 기능만이 추가됐다.

참고로 타자연습은 '입력 도구'를 구동하는 기능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은 구현체이다. 키보드 연습만 하지 전문적인 텍스트 입력을 표방하지는 않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9.3에서 새로 추가된 각종 입력 도구 기능들을 만나 볼 수 없으며, 거기서는 날개셋 제어판을 띄우더라도 시스템 계층에 '입력 도구 자동 실행' 같은 옵션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3) 요즘 알다시피 보안을 빌미로 검열이 강화되고 있는 관계로, 웹에서 exe든 msi든 네이티브 바이너리를 덥석 배포하는 게 갈수록 껄끄러워지고 까다로워지고 있다. 이 와중에 내 프로그램은 디지털 서명이 없고, 내 웹사이트는 인증서(https..) 같은 것도 없다 보니 이 난관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다.

본인은 바이러스 백신, 보안 프로그램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의 개입으로 인해 날개셋이 설치되지 않거나 차단되는 문의에 대해서는 어찌 대처해야 할지 아는 게 전혀 없다. 요즘 그런 문의가 계속해서 와서 내가 그런 건 도와 줄 수 없다고 다운로드 페이지에다가 미리 양해를 구해 놨다.

글쎄 내 프로그램까지 굳이 찾아서 쓸 정도의 사용자라면 컴퓨터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초짜도 아닐 것이고, 이렇게만 써 놔도 이해는 할 것이다. 하지만 좀 궁색해 보이니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긴 해야 할 것이다.

5. 맺는 말

지난 2016년 말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본인의 날개셋 개발 관심사는 '복합 낱자 입력 로직 생성기'였다.
두벌식(세벌식이 아니라), 옛한글(현대 한글이 아니라), 모바일(PC가 아니라), 일부 글자만 입력(전체가 아니라) 같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도 원하는 글쇠배열과 결합 규칙에 따라 세부 한글 입력 로직을 전부 자동으로 구성해 주고 중간에 낱자와 글자 경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충돌이나 모호성을 다 감지하고 회피해 주는 입력 로직 설계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걸로 논문도 썼다.

이 과업을 마무리 지은 뒤 2017년 봄~여름 사이에는 편집기의 에디팅 엔진에도 손을 봐서 화면 스크롤 관련 10몇 년 묵었던 고질병 버그를 하나 잡기도 했다.
그리고 150% 이상의 고배율 화면에서는 16 대신 24픽셀 글꼴 표시 기능을 오랜 작업 끝에 도입하여, 1.0 이래로 16픽셀에 묶여 있던 한계를 거의 16년 만에 극복했다.

그 뒤 2017년 하반기부터.. 9.x 버전에서 지금까지 본인이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분야는 '입력 도구' UI들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바닥도 알고 보니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노다지이더라. 공통 인터페이스 하나만 잘 뚫어 놓으면 그걸 토대로 클래스 상속 받아서 사용자의 문자 입력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능들을 잔뜩 추가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화면 키보드, 문자표 같은 밍숭맹숭한 기능들만 있었지만, 입력 도구들이 문자 입력 상태나 현재 cursor 위치 같은 걸 세밀하게 모니터링 해서 조합 및 후보 변환 자동 안내 내지, 한글을 다른 문자를 입력하는 메타문자로 사용하는 변환 도구를 다 구현해 냈다.

예정에 없던 작업들이 계속 추가되는 바람에 몇 년째 늦춰지고 또 늦춰졌지만,
이제 9.3 다음으로 올해는 진짜로 세벌식이 타자기에서나 빠르지 PC에서는 두벌식과 별로 차이 안 난다는 말을 완전히 반박할 수 있는 동시치기 관련 기능을 넣고, 이걸로 입력기의 큰 기능 줄기 연구는 접으려 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연구한 걸로 발표논문 정도는 하나 더 써서 2016년 때처럼 학회 갈 생각이다.

등산으로 치면 지금은 몇천 m 짜리 거대한 산의 정상을 저 멀리 앞두고, 정상 다음으로 제일 높은 둘째 봉우리에 도달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정상으로 가려면 능선 타고 가서 마지막 암반 봉우리를 오르는 것만 남았다.
석사 졸업 이후로 지금까지 연구했던 것 쫙~ 종합하고 살 붙이고, 추가 실험 결과 넣고.. 그러면 뭐 논문 나오겠지? 졸업은.. 30대 넘기기 전까지만 하면 될 듯.

전에도 말한 적 있듯이, 그냥 한글이라는 문자가 있고 컴퓨터라는 기계가 있으면 입력과 관련하여 이론적으로 할 수 있는 오덕질이 몽땅 가능한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목표이다. 한글 갖고 어떤 형태로든 응용을 해 보려면 내 프로그램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구도를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11 08:36 2018/02/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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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불암산

산 세 군데를 연거푸 오른 뒤 본인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서울 불암산이었다. 2016년 초에도 여기를 정상까지 오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때와는 세부 등산 경로와 당일 날씨 같은 게 모두 달랐기 때문에 느낌이 새로웠다.
이번에는 하산할 때 주 능선을 타면서 작년에 들르지 못했던 불암산성 부근을 구경했으며, 남양주가 아닌 서울 중계본동 쪽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더 남쪽 끝까지 진행했으면 2017년초에 들렀던 태릉과 한전 연수원, 삼육 대학교 근처까지 도달하게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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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4호선 상계 역에서 내려서 정암사 방면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는 국립공원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지만 나름 등산로 안내가 잘 돼 있었다. 본인이 선택한 경로는 거기 안내도 상으로는 제5 등산로라고 기재돼 있었다.
여기는 지하철 선로가 개천을 복개한 형태이더니만, 등산로를 따라 자그마한 계곡이 있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물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계곡 따라 물 구경은 내 등산 패턴의 특성상 보통은 하산 과정에서 하는 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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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까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포장된 비탈길은 정암사까지만 나 있었고, 그 뒤부터는 좁은 등산로가 이어졌다. 사실, 완전히 정암사 부지까지 가는 게 아니라 도중에 등산로로 진로를 바꿔야 한다.
등산로는 대부분 온통 돌계단 형태로 닦여 있었으며, 이 상태로 산의 종축 능선인 깔딱고개까지 올라갔다. 산길은 깔딱고개가 가까워질수록 가팔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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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을 한참을 낑낑대며 오른 뒤에야 깔딱고개에 도착했다. 여기는 자동차 교차로처럼 길이 사방으로 뚫려 있었다. 본인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올라온 셈인데, 더 동쪽으로 진행하면 남양주로 빠져 버린다.
북쪽으로 더 가면 산의 정상 방향이며, 남쪽으로 가면 불암산성, 공릉동, 중· 하계동이 나온다. 본인은 정상에 갔다가 여기로 되돌아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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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딱고개에서 정상 방면을 향하자 산의 최종 보스인 암반이 곧장 나타났다. 이정표 상으로는 정상까지 몇백 미터밖에 안 남았다고 나오지만, 지금까지 설렁설렁 걷던 오솔길로 몇백 미터가 아니다. 그러니 저 거리는 북한산 정상 근처의 이정표만큼이나 낚시이다.
일부 정말로 길이 없고 위험한 암반에는 계단이 설치돼 있었지만 일부 구간은 발뿐만 아니라 손도 써서 로프를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올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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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정상의 암반을 오를 때가 돼서야 산 아래의 경치가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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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은 확실히 돌산이긴 하다.
예전에 갔을 때는 국기와 지리 표시 마크를 보고 사진을 찍었지만, 정상 표지석은 못 보고 지나쳤다. 산을 올라온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지 싶다.

그나저나 성남에 있는 산(영장, 망덕, 청계, 인릉 등~)들은 위치를 막론하고 딱히 돌산이 없었던 것 같다. 산이 많긴 하지만 높이도 막 높지 않고 그저 그런 흙산일 뿐이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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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개 역, 그리고 불암산의 정상보다는 낮지만 또 다른 산봉우리가 내려다보인다.
사실, 수락산과 불암산 사이로 지하철 4호선 선로를 가로막고 있는 저 산봉우리를 타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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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서울이 아닌 남양주 쪽도 내려다본다. 아파트들이 빽빽히 들어선 서울과 달리 저기는 훨씬 한적해 보였다.
단, 아직 아침 시간대였던 관계로, 동쪽인 남양주는 역광이 심해서 좋은 풍경 사진을 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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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구경은 이 정도로 한 뒤, 본인은 다시 깔딱고개 쪽으로 내려가서 남쪽으로 능선을 타고 걷기 시작했다. 길이 전반적으로 이렇게 곱게 난 편이었지만, 이정표 없이 갈림길도 종종 나와서 헷갈렸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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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불암산에서 아마 정상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라 여겨지는 장소가 나왔다.
아까 같은 오솔길이 아니라 꽤 넓고 큰 광장이 펼쳐졌으며, 그 광장의 위에는 아마 불암산 유일의 헬리패드가 놓여 있었다.
인릉산은 정상이 이렇게 공터+헬리패드로 꾸며져 있는 반면, 불암산은 제일 높은 정상은 암반에 따로 있고 헬리패드가 이렇게 딴 곳에 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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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에 아차산성이 있다면 불암산은 불암산성이 있다.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불암산성의 일부 성벽은 알고 보니 이 광장 등산로의 아래를 받치고 있었다. 그러니 가까이 접근해서 살펴보기가 곤란했다.
형태가 좀 더 온전히 남아 있으면 더 급이 높은 문화재로 승격됐을 것이고, 기록이라도 더 상세히 남아 있으면 복원 재건하네 마네 했겠지만 달랑 저 황량한 돌무더기 폐허만으로는 뭔가 거창한 유적지 관광지를 조성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황룡사처럼 아예 흔적도 없이 부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지(址)'자가 붙을 정도는 아니다.
아차산과 불암산 모두 서울에서 너무 흔해 빠진 조선이 아니라 그 이전 시대의 흔적을 아쉬운 대로 간직하고 있는 흥미로운 산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위치도 서울의 동북부로 비슷한 편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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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가는 길은 무작정 평지밖에 없는 게 아니라 작게나마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부분도 있었다.
학도암까지 지나자 역시 이 산에서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은 커다란 팔각정이 나타났는데, 여기는 방문 당시 웬 단체 등산객들이 잔뜩 점령해 있어서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본인은 중계본동과 공릉동의 경계에 있는 백사 마을 쪽으로 하산하려 마음먹었다. 위의 사진은 착륙 예정지를 내려다본 모습이다. 이름은 뱀이나 모래가 아니라, 유래는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숫자 104를 뜻한다고 한다. 마치 시인 '이 육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쪽으로 가까워질수록 등산로는 아주 좁고 험해지고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제대로 추적할 수가 없어졌다. 지난번에 인릉산에 다녀왔을 때도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에 거의 다 내려와 놓고는 길을 못 찾아서 한참 헤맸는데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백사 마을로 진입하지는 못하고, 거기서 북쪽으로 몇백 m 정도 비껴서 중계 현대 5차 아파트 부근에 착륙하게 됐다. 남쪽으로는 도저히 더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기서 약간만 더 걸어가면 백사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할 수는 있었다. 참고로 저기는 서울 강남의 '구룡 마을'처럼 서울 강북에 거의 최후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달동네라고 한다. 몇 년 안으로 주민들을 다 이주시키고 철거· 재개발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평소의 내 등산 스타일과는 달리, 서울 시내를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등산을 마쳤다.
그런데, 귀갓길 버스 차창 밖으로 '한글비석로'라는 도로명 주소가 보여서 "저건 뜬금없이 뭐야?" 생각이 들어 폰을 꺼내 검색을 해 봤다.

오오.. '서울 이 영탁 한글 영비'라고 무려 1500년대에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쓴 묘비가 여기 근처에 있다고 한다.
내용 자체는 "이 비석을 훼손하면 방법 한다. 방법 하면 손발리 오그라진다. 이 사실을 한문을 모르는 후세에게도 분명하게 알리는 바이다"급의 아주 단순무식 원초적..(!) 경고문에 불과하지만, 그야말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순한글 묘비문이기 때문에 국어사와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얘는 '보물'로 지정돼 있으며, 남한산성보다 당연히 격이 더 높다.

아이고, 나도 이런 게 있는 걸 진작에 알았으면 여기까지 온 김에 당장 찾아가서 구경하는 건데... 지금 당장 그러지는 못했다. 그래도 불암산 등산 덕분에 이제라도 덤으로 알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08 08:31 2018/02/0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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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남한산

요즘 등산 답사기가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일 뿐만 아니라 등산의 계절이기도 한 것 같다.
날씨가 너무 덥지 않고 숲의 나뭇잎도 몽땅 칙칙한 갈색으로 바뀌거나 떨어지기 전에 적당히 단풍이 들어서 경치가 아주 좋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날씨는 더 서늘하고 추웠으면 좋겠지만, 나뭇잎은 초록색이 더 유지됐으면 좋겠다. 그러니 두 함수의 교점인 시기를 찾으면 10~11월경으로 귀착되며, 본인은 이 시기에는 개인 일과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가면서까지 일부러 등산을 집중적으로 많이 갔다. 내가 평소에는 아무 이유 없이 쓸데없이 몸 움직이고 운동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지만, 오지 탐험과 경치 감상 같은 동기가 생기면 그럭저럭 움직이기 때문이다.

성남의 오지들 다음으로 본인은 오랜만에 남한산성을 선택했다. 예전에 두 번이나 남한산성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둘 다 산성의 북쪽(하남 춘궁동)과 남쪽(검단산)으로 곧장 나가 버렸고 정작 성길 자체를 둘러보는 산행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동명의 영화까지 개봉했으니 시기적으로 더욱 적절했다.
아무튼, 이번에는 남한산성의 동쪽을 구경하고, 청량산 말고 성이 실질적으로 자리잡은 산인 남한산 일대를 답사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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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성까지는 저번처럼 일단 버스로 간 뒤, 산성의 북문인 전승문 근처에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문 밖으로 나가지는 말고, 성 안에서 문 주변을 보면 등산로 진입로가 보인다. 그리고 진입로 옆에는 남한산성 전체의 지도가 걸려 있는데, 이건 별도로 갖고 있지 않다면 사진을 찍어 두는 것이 초행 등산객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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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이렇게 쭉 이어졌다. 사실, 성 내부에도 다른 등산로 탐방로 산책로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근 주민이 아닌 본인 같은 외지인은 아무래도 성곽길에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대도시를 처음 방문하면 굵직하게 노선 파악이 쉬운 지하철을 버스보다 즐겨 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남한산성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여기는 문화재 때문에 도립공원인 것이고, 군포의 수리산은 내가 알기로 북한산처럼 그냥 자연 환경 때문에 도립공원이다. 경기도 수도권에 도립공원은 이 둘이 전부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수리산도 가 보고 싶은데.. 저기는 안산 일대에 차 끌고 놀러갈 일 있을 때 한번 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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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하남시 춘궁동 및 상· 하사창동 마을을 오랜만에 다시 산에서 내려다보게 됐다. 본인은 초창기엔 남한산성에서 저 마을 방면으로 곧장 하산한 적도 있다. 그 뒤, 이번에는 산을 타고 성곽을 따라 저 마을의 오른쪽으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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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암문이라고 해서 공원 같은 넓은 공간에 쉼터가 있었다. 여기에는 성 안팎을 드나드는 길과 내부 탐방로를 오가는 길도 있었다. 그리고 여기 이후에는 꽤 가파른 오르막이 나와서 내 종아리와 발목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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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의 성곽길이란 게 원래 고도가 가변적이지만 여기는 지금까지 걸어온 구간 중에서는 제일 높은 곳 같았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고 해서 ‘동장대 터’라는 게 근처에 있고, 여기도 성 안팎을 드나드는 문이 있었다. ‘남한산성 여장’이라고 안내문이 있긴 했지만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는 두 종류의 성벽이 만나는 곳이었다. 지금까지 따라왔던 성곽길은 방향을 바꿔서 봉우리 아래로 고도가 하강했다.
성의 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했다. 남한산의 정상이 정확하게 어딘지는 아직 감이 안 잡히지만, 벌봉이니 한봉이니 ‘외동장대 터’ 이런 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리로 가려면 아무래도 이 성벽의 밖으로 나가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서 진로를 변경하여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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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성벽이 한데 만난다는 게 이런 뜻이다. 사진에는 흰 성벽의 문만 나왔지만, 이쪽으로 가기 위해서 기존 회색 성벽의 문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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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새로 난 길을 따라 벌봉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성벽의 보존 상태가 열악한지라, 성벽이 훼손되고 무너진 구간, 잡초가 무성히 뒤덮인 구간이 부지기수였다. 길도 그냥 흙길이지, 돌 같은 거 없다. 그래서 이곳 역시 장기적으로 복원 계획이 잡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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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의 흔적 + 높은 곳"을 쫓아 한 20분을 뺑뺑이 치니 외동장대 터가 나왔고 꽤 극적으로 정상 표지석을 발견했다. 남한산의 정상은 성 안이 아니라 성곽길 상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 안이 성벽 그 자체보다 고도가 높을 리가 없으니까.

남한산은 여느 산들 같은 정상 표지석이 없었다. 1970년대에 나라에서 높이 측정을 했다는 인증 돌판만이 바닥에 새겨져 있었는데, 생각보다 최근에 모 산악회에서 "여기가 남한산에서 제일 높은 곳이오~"라고 표지석도 그 옆에다 설치해 놓았다. 다만, 너무 아담한 크기이다 보니 누가 이걸 가져가거나 훼손하거나 심지어 다른 곳에다 옮겨 버리면 어쩌나 우려되기도 한다.

여기 부근을 돌면서 벌봉, 봉암성, 봉암신성 병인비 같은 바위들도 발견했으니 이번 산행의 목표는 어지간히 달성한 것 같았다. 이제 북쪽으로 나가는 길을 찾아서  ‘객산’이라는 산을 거쳐서 하산할 수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본인은 남쪽의 한봉과 한봉성 정도는 더 구경하려고 성벽을 따라 남쪽으로 갔다.
거기만 답사하고 나면 남한산성은 남옹성이 있는 남부와 좌익문 일대만 빼면 다 구경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본인은 남한산성의 사대문도 저 동문(좌익문)만 아직 못 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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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따라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졌다.
한봉성(남한산성 성곽에서 특정 구간의 이름)이 먼저 나왔으며, 계속 더 걸어가자 다시 낮은 봉우리를 하나 오르는 게 나오고 성벽의 선형이 오른쪽으로(남쪽이던 것이 서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내 여기가 한봉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복원이 덜 됐는지 아니면 원래 그랬는지 성벽은 여기에서 끝났으며, 주변에 딱히 볼 건 없어서 사진은 생략하였다.

성벽은 끝났지만 등산로는 계속 이어져 있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남동쪽 광주시로 가는 차도와도 합류하게 되는 듯했다.
본인은 그 정도로 남쪽으로 가지는 않고, 여기보다 더 북쪽에서 성곽길을 적당히 이탈하여 산의 동쪽으로만 하산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봉성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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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본인이 남한산성을 완전히 빠져나온 출입구이다. 전방에는 저런 비탈길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 이정표도 울타리도 계단도 없었지만, 낙엽들로 뒤덮인 바닥을 살펴보면 적당히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되겠다 싶은 정도의 흔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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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끝났다. 내 기억으로 15분 남짓밖에 안 걸렸다. 이내 민가와 함께 잘 정돈된 길이 나타났다. 본인은 광주와 하남의 경계에 있는 ‘광주시 엄미리’ 방면으로 하산했다.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계곡을 따라 형성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나중에 알고 보니 ‘엄미 농원’이라는 사유지의 내부였다. 이제 등산은 끝나고 후속 미션인 오지 탐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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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건물과 차도가 등장했지만, 그래도 여기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면 거의 2.5km 가까이 걸어야 했다. 이곳은 소형 마을 버스 같은 게 다니는 게 없으며, 마을을 완전히 빠져나가서 큰길까지 가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
차가 없는 안타까움을 절감하면서 터덜터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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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주변 가을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여긴 나름 계곡을 따라 형성된 유원지인데, 언제부턴가 엄미천이라는 개울도 발원해서 졸졸 흐르고 있었다.
여기보다 살짝 북쪽의 하남시 상산곡동 일대도 비슷한 분위기의 마을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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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43호선상의 서울 방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아차산 동쪽의 구리에서 서울로 가는 도로도 같은 번호였는데..? 그 국도의 디자인 컨셉이 그런가 보다.

국도와 엄미마을 진입로가 교차하는 곳 주변은 "안녕히 가십시오(광주)"와 "어서 오십시오(하남)" 표지판이 보이고, 한편으로 저렇게 중부 고속도로와 제2중부 고속도로 고가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탈 수 있는 유일한 시내버스는 13번이었는데, 하남 시내를 거쳐서 최종적으로는 천호, 강변 역까지 가지만 그 전에 서울 명일동 일대 주거 지역을 들쑤시고 다녔기 때문에 그 동네 구경도 덤으로 할 수 있었다.

이번 산행의 결론을 내리자면, 남한산은 군사 시설이라고는 그 흔한 헬리패드조차 하나 없이 모처럼 문화 유적 관람에만 충실한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성남에서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구간은 하남과 광주에 속했기 때문에 ‘성남 누비길’이 어떻고 하는 것도 전혀 없는 게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05 08:39 2018/02/0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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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발화산+응달산

청계산의 동쪽으로는 경부 고속도로를 건너서 인릉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청계산의 남쪽으로는 외곽순환 고속도로를 건너서 또 다른 산들이 존재한다. 이 산들 자체가 막 높고 유명한 건 아니지만, 이 영역에 속한 운중동, 석운동, 대장동은 성남시에서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손꼽히는 오지이다. (뭐, 현재까지는 그런 편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또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여기는 자연의 정취가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밝히기엔 약간 므흣한 국가 기밀 시설도 있어서(단순 군부대가 아님) 신비로움을 더욱 부추긴다. 그래서 본인은 다음 산행지를 여기 일대로 선택했다. 여기는 등산보다도 땅밟기 탐험의 성격이 더 강했다. 이번 산행, 아니 탐험은 입산 경로부터가 꽤 독특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배경 설명이 먼저 길게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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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청계 톨게이트(요금소)에 도착했다. 이런 곳을 자가용으로 스쳐 지나는 게 아니라 대중교통으로 방문하게 될 줄이야..
1650번 좌석버스는 송파 IC에서 고속도로로 진행해서는 가천대 정류장에 한 번만 정차한 뒤 곧장 여기에 도착했다. 성남 요금소에서 청계 요금소까지는 막히지만 않자 꽤 금방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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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순환 고속도로가 이렇게 광역 좌석버스 정류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하긴, 경부 고속도로에도 곳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지만 그건 요즘은 망하고 졸음 쉼터로 용도가 바뀌는 추세이다.

청계 요금소 주변에는 ‘청계 휴게소’라는 작은 휴게소도 있던데,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느 장거리 고속도로 휴게소라기보다는 그냥 경부 고속도로의 어귀에 있는 만남의 광장 내지 하이패스 센터 같아 보이는 아담한 외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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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빠져나가면 곧장 아무나 무료로 이용 가능한 주차 공터가 나타난다. My precious!! 안 그래도 오지 탐험인데 본인 역시 여기엔 차를 가져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산행 경로를 편도로 짰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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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서 반대 방향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서, 혹은 지금 본인의 경우 등산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고속도로를 횡단해서 반대편으로 가야 했다. 그렇다고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주로 하이패스 관련 처리 착오 때문에 운전자나 요금소 직원이 차에서 내려서 고속도로 횡단을 시도하다가 차에 치이는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전해지곤 한다. 하이패스를 겨우 시속 30km로 통과하는 고지식한 FM 운전자는 요즘 세상엔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특히 길가에 다 왔다고 해도 절대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4.5톤 초과의 대형 트럭 하이패스 차량들이 길가의 게이트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행자의 고속도로 횡단을 위해서 위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터널이 도로 아래에 마련돼 있다. 단, 이 터널은 길고 가파른 상구배(오르막)이며, 우회 경로가 너무 길고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애로사항이었다.

청계 톨게이트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아무튼 고속도로를 횡단한 거의 직후부터 흙길이 나오고 산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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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맨 처음으로 발을 디딘 산의 이름은 ‘발화산’이다. 순우리말인지 한자어인지(특히 ‘發火’!!) 그 남쪽으로 이어지는 네임드급 산인 ‘바라산’과는 어원이 어떤 관계인지, 그런 건 알지 못한다.

이 산은 남쪽 바라산 방향으로 흙길을 올라가면 무슨 묘지가 나오는 모양이다. 거기서 계속 남쪽으로 가서 완전히 바라산으로 가거나, 아니면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산의 능선을 타고 응달산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듯하다.
본인도 원래는 그걸 의도했는데.. 묘지까지 가지 않고도 고속도로가 보이는(그리고 그 대신 산의 고개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도 길이 나 있는 듯해서 호기심에 그 길을 가 봤다.

그리고 그건 고난의 시작이었다.
뭔가 중장비가 지나간 흔적이 있고, 흙길이 없는 건 분명 아니었다. 좀 무리하면 지나가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진짜 공인된 정규 등산로를 만날 때까지 약 1km쯤 되는 이 길은 울타리, 이정표 등 그 어떤 등산 시설도 없었으며, 수십~1백 m 남짓 주기로 또 사람 키만치 자라 있는 수풀이 앞길을 막았다. 한때 개방돼 있었지만 버려지고 폐쇄된 지 몇 년쯤 된 옛 등산· 산책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풀을 발로 밟아 쓰러뜨리고, 커다란 거미가 앉아 있기까지 한 거미줄을 몇십 개쯤 헤치고, 손등과 팔목에 생채기가 몇 군데 나고 옷과 백팩이 흙투성이가 되고 바지엔 이름 모를 시꺼먼 식물 씨앗 같은 게 달라붙어서 일일이 떼내고, 집채만 한 나무로 둘러싸인 좁은 샛길을 통과하기 위해 양팔을 들거나 머리를 숙이기도 하고..

가끔 고속도로 아래로 바깥 경치, 그리고 무슨 수십 년간 보존된 DMZ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웅장한 가을 자연 경관이 펼쳐진 것에는 감탄했지만, 이거 "빠져나가는 건 가능한가? 무장공비도 아니고 아침부터 나 혼자 이거 웬 생쑈를 하는 건가? 지금은 간신히 나아가고 있지만 길이 도중에 진짜로 끊겨 버리면 어떡하지? 이러다 고개 건너편은 구경도 못 하고 능선만 따라 산이 끝나 버리면 어떡하지? 지금까지 온 게 얼마인데? (...)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별 잡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여기를 빠져나가는 동안 다른 등산객을 마주친 건 당연히 전무했다. 낫이나 정글도라도 하나 좀 챙겨 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험한 산행을 했지만, 그래도 이 넓은 산지가 전부 내 것 같았고, 여기서 잠을 자든 혼자 무슨 짓을 하든 티가 안 날 것 같긴 했다. 위의 사진은 그나마 덜 험준한 곳의 모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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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심겨져 있는 식물과 나무의 종류가 바뀌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울타리와 나무 계단이 쳐진 정규 등산로가 결국 나타났다. 드디어 고생이 끝났다. 이 부근에 고속도로 위로 청계산과 발화산을 횡단하는 육교(청계육교 + 하오고개)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등산로를 따라 드디어 고개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었다. 꼭대기에서는 무슨 KBS 송신탑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철탑이 등산객을 반겨 주었다. 바라산 방면에서도 이쪽으로 오는 길이 있었는데, 내가 능선을 따라 이런 삽질을 안 했으면 그 길을 따라 여기에 도달하게 됐을 것이다.

이 지점이 아마 발화산에서 가장 높은 정상으로 추정되었다. 작고 낮은 듣보잡 산이어서 그런지 인근의 다른 산과는 달리 정상 표지 같은 것도 없다. 이제야 등산이 원래의 계획 궤도에 진입했으며, 본인은 동쪽의 운중· 석운동 방면으로 하산을 선택했다. 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하산하는 길은 그 이름도 유명한 성남 누비길 구간에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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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산의 정상에서 본인이 입산을 시작한 청계 톨게이트를 내려다봤다.

산 내려가는 장면은 별로 볼 것 없는 흙길과 숲길뿐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사진은 생략한다. 여기는 주변 지역 탐험이 아니면, 산 자체는 멀리서 원정까지 와서 갈 만한 곳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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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어느 정도 내려가자 철조망이 나타났다. 정말 그 어떤 경고문이나 팻말도 없이 그냥 철조망뿐이었다.
사실, 발화산의 고개 너머 남쪽에는 거대한 코렁시설이 있다. 그쪽으로는 나무도 정말 빽빽하게 심겨져 있어서 위에서는 아래에 뭐가 있는지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다.

이유는 안알랴줌이고 어귀 딱 한 군데에만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달랑 안내된 게 마치 청계산 상적동 구간 근처에 있는 군부대 입구를 보는 느낌이었다. 뭐 그래 봤자 여기는 그 코렁시설의 정말 북동쪽 변두리 외곽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기 주변만 아무리 어슬렁거리며 들여다본다 해도 뭔가 대단한 걸 염탐할 수는 없다.

옛날에 경찰대가 용인에 있던 시절엔 학생들이 운동 차원에서 법화산 산길을 구보했을 텐데, 여기서 근무하거나 연수를 받는 ‘그분’들은 이 산 산길을 달리면서 체력 단련을 하지 싶다. 아무튼, 여기에 착륙하는 걸로 발화산은 답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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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 코스인 응달산을 찾아갔다.
발화산과 응달산 사이는 나름 높은 산중턱 고지대이지만, 비교적 넓은 평지와 함께 차도와 건물도 있어서 시골 마을 느낌이 났다.
응달산 등산로는 북쪽으로 차도를 따라 한 300m쯤 걸으니 나타났다. 중간에 오른쪽으로 꺾어서 자동차까지 진입 가능한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거기로 가지 말고 더 직진해야 한다. 거기는 한전 관할의 비밀 기지(송전? 변압?)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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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산도 높이 250m가 될까 말까인 낮고 작은 동네 뒷산 급이어서인지, 산속엔 딱히 볼거리는 없었다. 다만, 등산로는 전반적으로 아주 크고 넓게 잘 닦인 편이었다. 산악 자전거가 다녀도 될 정도였다.
그나저나 ‘다음’ 지도는 2018년 2월 기준으로 응달산을 혼자 ‘옹달산’으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 오타를 고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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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응달산 중턱에 있는 한전 비밀 기지이다. 언뜻 보면 무슨 철도 차량 기지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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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정표는 부실하게 마련되어 있어서 언제부턴가 살짝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본인은 계속 동남쪽으로 가서 대장동 시골 마을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다. 예전에 태봉산에서 내려다보았던 그곳 말이다. 하지만 어떤 방향은 동북쪽으로 가서 산운마을 아파트 단지로 가는 것 같았다.

거기를 피해서 동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언제부턴가 묘지와 차도가 나오고 산이 끝나긴 했다. 하지만 마을로 가려면 한참을 더 걸어 내려가야 했다. 내 발 밑으로 용인-서울 고속도로가 터널로 지나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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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대는 역시 분위기가 판교· 분당 신도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한적한 논밭, 한편으로는 형형색색의 빌라와 단독주택이 인상적이었다. 차가 없어서 두루 둘러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

하지만 대장동도 이제 막 재개발 붐이 일고 있어서 곳곳에 굴착기와 덤프 트럭이 돌아다니면서 공사 중이었다. 사진에 나온 저 건물들도 대다수는 이미 주민들이 빠져나가고 철거 예정이었다. 내가 지금 본 광경을 불과 몇 년 뒤, 3~5년 안으로는 못 보게 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그러니 지금의 오지 탐험이 더욱 뜻깊은 답사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 오지에서 거의 유일한 대중교통은 대략 15~20분 간격으로 다니는 마을버스 32번이다. 주변에 버스 정류장 표식은 전혀 없지만, ‘두밀로’와 ‘모두마니로’라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여기서 버스를 타고 무사히 귀가했다. 중간에 거친 동원동 일대와 낙생 저수지의 풍경도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02 08:30 2018/02/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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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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