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계의 파편화

본인은 지금까지 많은 글들을 통해 밝혔던 바와 같이, 조금 마이너하고 특수한 교회를 다니고 있다.

  •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믿고 주장한다. 이게 단순히 가장 우수한 번역본인 정도를 넘어서 무오한 최종 권위라고 생각한다. 영어라는 언어에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고 믿는다.
  • 재침례: 세례를 부정하고(특히 유아 세례는 더욱) 침례교를 표방하지만, 교단을 형성하고 있는 여느 침례교는 아니다. 그렇다고 KAC인지 뭔지, 속세를 떠나 사는 듯한 아나뱁티스트 같은 교단/단체하고도 아무 관계 없다.
  • 분리· 근본주의: 여느 기성 교회들보다는 옛날 스타일을 표방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는 무조건 긴 치마, 강단에 설 때는 무조건 정장, "형제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무조건 목사님이라고".. 그 정도까지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하나 더.. 본인의 반공 우파 성향은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으며, 신앙 노선과는 별개이고 무관함을 밝힌다. 구국 애국 운동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개인이 각자 따로 할 일이지, 지역 교회가 교회 간판을 걸고서 할 일이 아니다.
이건 심지어 일제 시대에 크리스천이 3· 1 운동에 참가할지의 여부를 판단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잣대이다.

본인은 좌독은 국가관 역사관 말고 다른 분야의 교리나 행실이 그나마 건전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일말의 일관성과 논리와 신념이 있기라도 하면.. 동의는 안 해도 인정은 해 주는 등급이다. 나와 간극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만큼이나 한 분야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 정도로 간주한다. 그게 아니면 단순 반골기질 쩌는 여느 철없고 분별력 부족한 육신적인 신자, 구원받고도 술· 담배 못 끊고 있는 신자 급일 뿐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만날 때나 형제라고 대하고 존중해 주지, 전쟁터 내지 빨갱이들 폭동을 진압하는 내전 현장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내가 살기 위해 그에게 부득이하게 총질을 할 수밖에 없다. 마치, "나는 인간으로서 개인적으로는 피고를 동정하지만 나의 직분인 판사로서는 법에 따라 피고에게 합당한 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처럼 말이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튼 정치 얘기는 그렇다 치고 종교 분야만으로 관점을 좁히더라도,
본인의 신앙 노선은 참 안타깝게도 대외적으로 긍정적인 게 별로 없다. 본인도 이에 대해 아주 잘 인지하고 있다.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가 이단시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세대주의, 영혼몸 삼분법, 구원의 영원한 보장, 재창조 간극까지 어쩜 이렇게 인지도가 좋지 않은지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놀랄 놀 짜였다. 내가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였다.

기독교계는 왜 이렇게 교리 교파가 찢어져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왜 지금과 같은 노선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성경이라는 책은 어디까지가 그냥 묻지 말고 일단 믿어야 하는 공리, 즉, 합법적으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에 속하고 어디부터가 그로부터 파생되는 논리와 일관성인지..
하나님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두 속성이나 진술을 어떤 원칙과 체계에 따라 종합하고 조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따지면서 봐야 한다. 본인의 신앙관은 이 원칙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개나 소나 하나님에 대해서 한 면모를 적당히 좋게만 포장해서 말하면 전부 "와 그런가 보다" 하고 한쪽에 자기 꿀리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예정과 섭리를 더 좋아하는 파벌, 선행을 더 좋아하는 파벌, 거룩과 공의를 좋아하는 파벌, 힐링힐링을 더 좋아하는 파벌 등등으로 말이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가 벌어진다. 기독교계가 온통 파편화돼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하자면.. 기독교계는 절대로 깔끔 깨끗한 동네가 아니다.
일반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성경과 교리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신학계까지도 말이다.

수학· 과학 같은 곳은 진짜 닥치고 머리 좋은 사람이 이기는 곳이고, 승부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스포츠로 치면 양궁 같은 곳이다. 화살이 과녁 중심에서 시각적으로 얼마나 가까이 꽂혔는지만을 판정하는 일에 개인 주관이나 믿음이나 신념이나 양심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선수 간의 몸싸움· 반칙이나 판정 조작도 있을 수 없다.

가~끔 뭐 자기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네, 4색 정리를 더 간단하게 증명했네, 리만 가설이나 P/NP 문제를 증명· 반증했네, 영구기관을 발명했네, 지구가 평면이네 등의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긴 하지만 다 걸러진다. 거기는 철저한 관찰과 상호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류 다수의 주장이 대체로 옳다고 생각하면 안전하다.

누군가가 실적과 돈 때문에 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논문을 표절하고 연구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 적발된다. 사람이 아무리 악하고 마음 속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한다고 해도, 수학적인 엄밀함까지 판별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수학 말고 관찰이 수반되는 과학 쪽도.. 지금이 옛날처럼 과학과 철학의 경계가 없고 플로지스톤이나 자연발생설이 지지받던 시절은 아니니, 지금까지의 물리 법칙이나 과학 발견이 예측 가능한 미래에 뿌리째 싹 뒤집힐 일은.. 0은 아니어도 거~의 없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악의적인 원인 때문은 아니다.

허나, 신학 쪽은 사정이 저렇지 않다.
신앙은 주관적이고 증명 불가능한 믿음을 수반하며, 성경 역시 무슨 수학· 과학 논문처럼 접근 가능한 책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추잡한 본성이 똥고집까지 가미되어서 자기가 꼴리는 대로 믿으면서 그야말로 별 희한한 이단 교리, 궤변, 온갖 지적 사기들이 마음껏 횡행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기는 역설적으로 다수 주류만 따른다고 해서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바르게 믿고 행하던 교회나 신학교조차도 다수 주류가 되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순수성을 잃고 배도하고 변질되고 타락한다. 그러니 뜻있는 사람들 일부가 분리되어 나와서 자기 조직을 또 세우고 그러다 거기마저도 타락하여 분리가 발생한다.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이 우물을 파고 또 파듯이 말이다.

이게 이 바닥이 흘러가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 큰 그림, 패턴을 모르니까 성경도 그냥 여느 고전 텍스트처럼 학자들이 알아서 더 나은 번역을 만들어 주고 잘 개정해 주는 줄로만 알고.. 사람들이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에 대해서 이상한 오해를 하고 이단시하는 것이다.

이 바닥이 정말 X나게 더럽고 지저분하고 파편화된 바닥인 건 사실이다. 창조 연대기에 대해서도, 사형 제도에 대해서도.. 뭐 하나 일치하는 걸 찾기가 몹시 어렵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여기가 조화가 아닌 생화가 있고 정말 거물급 보물이 있기 때문에 벌레들이 들끓는 것이다. 골치아프고 진입로가 더럽다고 해서 진리를 찾는 걸 포기해 버리고 때려치우면, 그것도 게임에서 지는 거다.

뭐, 다수 주류만 따라가면 최소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진짜 정신나간 막장 사이비 정도는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수준이 딱 거기서 끝이다. 그냥 철도교 믿는 수준의 종교 생활까지만 가능하지, 최상의 금덩어리(?)까지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대한 성경으로 성경을 풀이하고, 교리 간에 논리적으로 연결 고리가 생기는지, 나한테 당장 육신적인 탐욕 대신 영적 만족을 채워 주는지, 모든 사람이 나처럼 믿고 행했을 때 교회나 사회가 제대로 유지되겠는지 이런 것들을 따지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을 공부하면.. 정말 어지간해서는 이상한 결론으로 빠질 일이 없다. 어린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우면서도, 한편으로 박사에 교수라도 삼천포로 훅 갈 수 있는 게 이 바닥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그러니 기독교 교리 논쟁을 할 때만큼은 "니만 맞고 나머지 많은 신자들은 다 틀렸다는 거냐?" 이런 소리는 좀 안 나왔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듣기 싫은 소리이다. 그럼 애초에 예수는 왜 믿기 시작했는지 난 그것부터가 너무 궁금하다. 불신자들도 완전히 똑같은 질문과 불평을 하는데 말이다.
난 이런 상황을 정말 많이 겪어 봤다. 이 논리가 기독교 vs 비기독교뿐만 아니라 기독교계 내부에서도 동일하게 "재귀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이 홈페이지의 주인장인 내가 종교관이 완강하고 고집 세다고 느껴진다면.. 99%는 그렇게 느끼는 그 당사자도 완전히 동급으로 완강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다. 이는 마치 작용-반작용 법칙과도 같다.
그 사람도 남이 말하는 근거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얘기만 밀어붙이고 싶은 상태이다. 그리고 성경 구절이나 논리로 반박을 못 하면 그 다음엔 말투가 어떻네 교만하네 고집이 세네 사랑이 없네 하면서 주변의 태도나 인성 운운하며 다른 트집을 잡기 시작하는 게 사람의 심성이다. 그런 자세로는 남과 논쟁을 하고 남을 설득할 수 없다.

학교에서 애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쳐서 무신론 우생학을 주입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대안이라는 그 좋은 창조 연대기에 대한 견해가 자기들끼리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나 노아의 방주 흔적, 그랜드 캐니언을 찾아 다니기 전에 성경이 말하는 이전 세상 개념부터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경에 대해 더 잘 알고 성경을 성경으로 바르게 풀이하는 안목을 기르고,
성경의 난해 구절들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라고 신학을 하는 건데..
성경 따로 신학 따로는 마치 믿음 따로 행위 따로만큼이나 서로 굉장히 안 어울리는 모습이다.

* 추신: 내부 분열

이렇게 양심과 신념상의 이유로 인해 대세를 따르지 않는 좁은 길 마이너한 진영이 생기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 치는데, 그럼 마이너한 걸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잘 뭉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안 그래도 작고 좁은 진영 내부에서도 별 희한한 걸 갖고 반목이 발생해서 더 갈라지고 찢어지곤 한다.

이건 굳이 기독교계의 킹 제임스 진영만 그런 게 아니다. 안 그래도 1%도 채 안 되는 세벌식 글자판 진영이라든가, 정치 이념 쪽의 우파 애국 보수 진영이라든가.. 내가 관심을 가져 본 마이너한 진영들에서 한 치의 예외 없이 발견되더라.

교회 내에서 성경 해석의 차이 때문에 갈라지는 것이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치는데.. 이거 뭐 영어나 히브리어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한국어 호칭 사용이 자기 스타일이 아니고 마음에 안 든다고.. 안 그래도 좁은 진영에서 이 정도 퀄리티를 갖춘 교회를 애써 찾아왔다가 저게 그렇게 휙 돌아서고 떠날 정도의 사유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완전히 세상적인 이념 진영인 유명 우파 논객들 간의 팀킬 싸움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본인은 의사는 환자를 강압적이고 거칠게 대하더라도 돌팔이가 아니라 환자 치료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방망이 깎던 노인" 스타일을 존경하고 인정한다. 기본적인 말투가 싸가지 없고 행실이 거칠더라도, 그 껄렁껄렁한 전투력과 팩트폭력이 좌빨들을 까고 공격할 때 일관되게 발휘만 된다면 그 실력을 존중해 준다. 박 근혜, 황 교안 같은 인물에 대한 생각이나 땅굴· 5 18에 대한 생각이 나와 살짝 다르더라도 그건 아무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본인처럼 판단하지는 않던가 보다.

난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같은 편인데 우리 좀 싸우지 맙시다"만 붙들고 있을 생각도 없다. 내부 분열은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면모도 있다.
얘들은 개돼지 좀비 레밍 들쥐가 아니고, 교활한 기회주의 웰빙 타입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자기 개성과 고집이 아주 분명하고 뚜렷한 사람들인데 어찌 좌빨 홍위병 같은 급의 무식한 개떼 단결과 결집이 가능하겠는가? 한 단점이 없는 대신 다른 쪽에 한계와 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반목과 갈등이 생겨서 평소에는 각자 찢어져서 제 갈 길 가더라도, 그래도 더 큰 공통의 적을 맞닥뜨리게 됐을 때만은 잠시 동안이라도 같이 손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에게 너무 많이 바라다가 실망하지도 말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12 08:35 2019/12/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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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근황, 해 본 일들

1. 국대 떡볶이, 태극기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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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떡볶이와 순대는 그냥 이름 없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는 음식이지, 이런 번듯한 식당에서 먹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분야를 개척한 식당 브랜드가 있고, 또 창업주가 사상이 올바르고 굉장히 건전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곧장 친구들까지 데리고 여기를 들러서 음식을 마음껏 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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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개천절 오후에는 광화문에서 가히 역대 최다 인파가 결집한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레카 탄핵 반대"라는 중대한 이슈가 있었던 2017년 삼일절 때의 초창기 태극기 집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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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정치의 정 짜에도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이렇게 많이 모인 이유는 우파 진영이 이쁜 짓을 했기 때문이 아니며, 특히 할 일 없는 늙은 꼰대들이 일당을 두둑히 받았기 때문은 더욱 절대 아니다.
정치색과 무관하게 대통령이 하는 짓과, 그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작자의 조적조 조로남불 꼬라지, 이놈들의 해도 너무한 가식과 위선과 궤변과 변명이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딴 이유는 없다. 그 현실을, 그 팩트를 좌좀 대깨문 나팔문 문슬람들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 이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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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화장을 또 찾아가 봤는데 이젠 또 내년까지 공사랜다. 도대체 2년, 3년째 날짜를 고쳐 가며 공사만 계속하고, 정식 개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사 핑계로 무기한 방치하는 것인지 합리적인 의심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3. 용마산 등산

그리고 날씨가 좋을 때 용마산을 오랜만에 다시 올라서 정상까지 가 봤다.
첫 개척이 아니고 야영을 한 것도 아니니, 중요도가 별도의 글로 올릴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러니 그냥 근황 소식에다가만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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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은 서울 시내에서 접근성이 아주 좋으며, 심하게 높지 않으면서 돌산이어서 내부 경치가 좋다.
그리고 등산하는 동안 대부분의 구간에서 산 바깥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특히 동부 간선 도로 구간이 몽땅 내려다보인다. 세상에 이런 산은 흔치 않다.
산을 오르면서 저 아래의 팔각정을 거쳐 갔는데, 산행을 계속하니 그 팔각정도 이렇게 내려다보는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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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풍경은 대략 이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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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에서는 근처의 배봉산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사실 본인은 배봉산에서도 언젠가 저기 용마산을 다시 올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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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 정상에는 예나 지금이나 표지석과 옛 측량 시설, 그리고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태극기 깃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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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아차산 정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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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 파고든 저 마을이 바로 아치울 마을이다. 본인은 아차산을 답사하면서 저리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마을 가까이 있는 희고 둥근 모양의 교량은 구리암사대교이다.

4. 노들섬

서울 한강대교는 중앙에 노들섬이라는 하중도를 지난다. 거기는 먼 옛날엔 사유지이다가 국가에서 거금을 주고 매입한 뒤, 해마다 항공 사진 모습이 바뀔 정도로 뭔가를 열심히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오페라 하우스(??)가 만들어져서 지난 9월 말에 개장했다. 그래서 본인도 이에 흥미를 느끼고 노들섬을 다녀왔다.

노들섬의 자가용 접근성은 남산과 동일하다. 한강대교에서 노들섬 내부로 들어가는 차도와 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공간이 비좁은 관계로 등록된 업무 차량만 드나들 수 있다. 일반 방문객이 차를 저기에다 댈 수는 없다.
한강대교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주차장은 이촌 한강 공원에서 제일 서쪽의 제4 주차장이다. 거기는 풀밭이나 편의점 등 공원 본연의 시설과는 멀리 떨어져서 접근성이 안 좋지만, 한강대교와의 접근성은 제일 좋다. 거기서 한강대교를 근성으로 5~10분 내지 걸으면 노들섬에 갈 수 있다.

심야나 이른 새벽.. 그리고 5~10분 정도 잠깐 정차하는 거라면 한강대교의 길가에다 잠깐 차를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리 권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근처 중앙선의 안전지대에도 차를 세울 수 있지만, 이 역시 원래는 불법이고 다른 대형 트럭이나 견인차가 세워져 있기도 하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 못 된다.
그냥 지하철 9호선 노들(강남) 내지 4· 6호선 삼각지 역(강북)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게 제일 속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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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직 공사가 덜 끝난 부분이 많고 생각만치 볼 건 없었다. 무슨 선유도 정도의 퀄리티는 아니다. (풀밭, 산책로..)
특히 교량의 동쪽 말고 건너편 서쪽은 아직 풀숲 밀림(...)인데 거기도 뭘 더 만들 생각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원등 상사 동상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하다.

더 욕심을 내자면, 서강대교의 밤섬도 이렇게 개방됐으면 좋겠다. 믿어지지 않지만 옛날에는 거기에 아예 사람이 살고 마을까지 있었다니 말이다. (교량 따위 없으니 본토와는 나룻배로 드나들었고..;; ㄷㄷ)

Posted by 사무엘

2019/12/09 08:36 2019/12/0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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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지금과 같은 고속도로 번호 체계는 2001년에 전면 개편되어 그 해 8월 2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체계는 무식하게 개통된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는 게 아니라, 숫자의 번호만 보고도 이 도로가 횡축인지(0부터 시작하는 짝수) 종축(5부터 시작하는 홀수)인지, 대략 어느 위치를 지나는지(대소 비교), 간선인지 지선인지(2~3자리), 지역 순환선인지 같은 것을 얼추 알 수 있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체계는 첫 도입됐던 당시에는 굉장히 참신하고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치 2004년 버스 노선 개편처럼 말이다. 홀짝으로 종축· 횡축을 구분하는 것은 기존 국도의 번호 체계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이제 고속도로의 번호도 그런 관행을 더 깔끔하게 따르게 되었다. 고속도로도 앞으로 국도처럼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많이 깔릴 것을 미리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체계의 큰 특징은 개통 시기나 사업 주체가 다르더라도 같은 선형이면 동일한 도로라고 보고 동일한 번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산-천안 고속도로는 혼자 따로 노는 민자이지만 기존 호남 고속도로와 동일하게 25번이며, 부산-대구 민자 고속도로도 기존 중앙 고속도로와 동일하게 55번이다.

이때 서울-안산 고속도로가 서해안 고속도로(15)로 편입됐으며, 반대로 처음에 서해안 고속도로 소속이던 안산-신갈 구간은 깔끔하게 영동 고속도로(50)의 서쪽 구간으로 넘겨서 각각 종축과 횡축으로 선형을 일치시켰다.

이는 마치 서울 지하철 4호선에다가 코레일 과천선과 안산선을 몽땅 하늘색으로 엮어서 '수도권 전철 4호선'이라고 표기한 것과 비슷한 통합이다. 어차피 열차들이 직통 운행을 하니까 말이다. 지하철과 국철의 구분을 없애고,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지하철 고유색인 빨강이 사라진 게 2000년 4월부터이다.

그리고 철도계 역시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동일선상의 직결 운행이 예정된 전철들은 같은 색깔로 표기하고 있다. 경의선과 중앙선이 대표적인 예이고, 지금 수인선도 분당선과 동일하게 노란색으로 표기하고 있다.
김포 경전철의 경우, 비록 시스템적으로 서울 지하철 9호선과 직결 운행을 할 수는 없지만 개념적으로 9호선의 연장선상이라고 보고 9호선과 동일한 금색/커피색을 내세우는 중이다.

시스템이 그런 식으로 바뀌었는데..
고속도로의 경우 요즘 하도 많이 생기고 있어서 정신이 없다. 옛날의 경부라든가 서해안, 중앙, 중부내륙처럼 장거리 간선들을 작정하고 바둑판 형태로 만들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그 대신 여기저기 찔끔찔끔, 복잡한 선형으로 개통하는 게 많은지라, 번호를 어떻게 부여하면 좋을지 직관적으로 예상이 안 되는 게 늘었다. 가령, 15 서해안으로도 모자라서 151(서천-공주)에다 17(평택-파주), 171(용인-서울) 등등..
전라선 철도의 고속도로 버전인 순천-완주는 27이고, 구리-포천은 29..

사실, 제2중부 고속도로도 지금 같은 컨벤션이라면 37보다는 351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결코 짧지 않은 영천-상주조차 301이 됐는데 말이다. 그리고 두 자리 수 번호 중에 x1, x3은 앞으로 쓰일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기왕 이 번호 체계가 깔끔하게 유지되려면 미래에 건설될 고속도로들의 전체 큰 그림에 대한 굉장한 선견지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프로그래밍에다 비유하면, 미래에 구현될 기능까지 다 염두에 두고 부모 클래스와 가상 함수들을 미리 세밀하게 설계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끝으로, 고속도로의 이름은 기점과 종점 도시를 연결하는 형태로 지어지곤 하는데, 어디가 기점이고 어디가 종점일까? 철도만 해도 역의 번호를 부여하는 순서가(상· 하행) 노선별로 굉장히 케바케 뒤죽박죽인데, 비슷한 문제가 고속도로의 작명 방식에도 존재한다.
가나다 순서인지, 서울에서 가까운 순서인지, 바다에서 가까운 순서인지.. 301은 공식 명칭이 영천-상주가 아니라 상주-영천인 걸 보면.. 도대체 원칙이 무엇인지 난 잘 모르겠다.

옛날에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 생겼던 시절에는 '간'이라는 단어까지 있어서 '서울-부산간 고속도로'였는데, 그게 '경부 고속도로'라고 축약되었고, 이후의 고속도로들은 다시 도시 이름을 full로 붙이는 게 유행이 됐다.
가령, 60번 고속도로는 잠시 '경춘 고속도로'라고 불린 적이 있었지만 더 연장된 뒤부터는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됐다.

사실, 한국 도로 공사에서는 궁극적으로는 고속도로에도 이름을 없애고 국도처럼 번호만으로 모든 것을 식별하려 하고 있다. 물론 예전의 오랜 관습이라든가 사업 구간의 차이에 따른 구분 때문에 이름이 가까운 미래에 완전히 없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뿐만 아니라 재래식 톨게이트도 없애는 게 궁극적인 장기 계획이니.. 우리나라의 교통 시스템은 이것저것 바뀌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이름 다음에는 '고속도로'라는 칭호를 붙이고, 번호 다음에는 '고속국도'를 붙이는 게 어떨까 싶다. 예를 들어 "호남 고속도로와 논산천안 고속도로는 모두 고속국도 25호선(또는 25번 고속국도)에 속한 구간이다" 같은 식이다.

한편, 도로 말고 서울의 한강 교량들은 처음에는 개통 순서대로 "제n 한강교"라고 이름을 붙여 왔다. 그러다가 다리의 수가 늘어나고 번호가 뒤죽박죽 꼬여 가자, 번호만 상류에서 하류 순으로 오름차순 리넘버링하는 식으로 개편하지 않았다. 번호 자체를 없애고 마포, 반포, 한남처럼 교량마다 고유한 이름을 붙이게 됐다. 1980년대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을 시작하면서 취한 조치이다.

교량이야 도로처럼 선이 아니라 강의 특정 지점이라는 점에 가까운 개념이니, 고유한 이름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도 나들목들까지 이름을 싹 없애고 번호만 붙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다만, 나들목도 외국인이 알아보기 쉽게 번호를 병기하자는 의견도 소수나마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07 08:33 2019/12/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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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활절, 이스터, 유월절 / 주일, 안식일

이전에도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지만..
킹 제임스 성경은 지구상의 성경 역본들 중, 행 12:4에서 유월절 대신 '이스터'라는 단어를 사용한 유일한 역본이다.

이건 성경 역본 문제에서 자주 다뤄지는 원문· 본문 계열이 아니라, 번역 단계에서의 문제이다. 말이 통째로 변개되거나 삭제된 건 아니고 똑같이 그리스어 '파스카'인데, 그냥 평범하게 유월절이냐, 아니면 이스터이냐로 번역이 갈린 것이기 때문이다.

KJV의 '이스터'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타 이교도들이 지키던 이스터가.. 어쩌다 보니 날짜만 좀 가까울 뿐 본질은 서로 무관한 별개의 사건임을 알려주는 "신의 한수"가 가미된 탁월한 번역이다! 내가 이런 성경을 알게 된 건 감사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봄의 여신이니, 니므롯-세미라미스 패밀리니 뭐니 하면서 놀던 pagan 이스터가 주님의 부활하고 어찌 같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수인선의 복선전철 부활을 기념하는 철도교 신자이고, 아직 구원받은 크리스천은 아니라고 치자. 그런데 나중에 예수를 믿게 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수님의 부활이랑, 폐선됐던 수인선 협궤 열차의 복선전철 부활이 개념적으로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수인선이 개통한 날짜 근처의 주일을 부활주일로 설정하고 부활 찬송 부르면서 예배 드리고.. 이스터 에그 대신 열차 장난감을 나눠 준다고 생각해 보자.

예수님의 부활을 기리는 거니 막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뭔가 짬뽕이 되고 앞뒤가 안 맞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팍팍 들 것이다. 약간 어거지 같은 비유를 동원했지만 부활절이란 게 위상과 의미가 딱 저렇다는 것이다.

사실 신약 크리스천들은 굳이 이스터니 부활절 따위가 없어도 예수님의 부활 기념은 암묵적으로 늘 해 오고 있다. 매주 첫째 날 일요일에 교회에 모이는 것 자체가 주님의 부활한 요일을 기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일/일요일이 유대인의 안식일과도 개념적으로 다른 날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안식일이 끝나고 주의 첫날이 밝아오기 시작할 때에..." (마 28:1; 막 16:2, 눅 24:1, 요 20:1도 참고)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다.

KJV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나와는 당연히 반대로 주장한다. KJV에만 들어있는 단어들은 원문에 없다가 후대에 추가된 것이고, '이스터'는 오역이라는 식으로 반박한다. 마음대로 생각하시길..
성경에 따르면 베드로는 무교절 기간에 체포됐는데(행 12:3), 무교절은 유월절이 끝난 뒤의 이벤트이다. 그런데 유월절이 끝난 뒤에 베드로를 끌어내는 건.. 그럼 그건 설마 내년 유월절인 걸까? 이것도 생각할 점이다.

종교 개혁자의 신앙을 계승한다면서 정작 종교 개혁자가 전해 준 계열의 성경을 이단시하고, 차이가 나는 내용은 후대에 첨가된 것일 뿐이라고 우기는 건.. 뭐랄까 할배와 원조가카의 공은 다 누리고 편하게 살면서 그 사람들이 못한 것만 욕하는 것과 비슷하고, 고기는 좋아하면서 도축업자들은 천시하는 것과 비슷한 앞뒤가 안 맞는 모습이다.

2. 미스터리와 씨크릿 (신비 vs 비밀)

미스터리란..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로 이해가 안 되는 엄청나게 대단한 불가사의, 미제 사건 같은 걸 가리킨다. 해결되고 풀리는 건 대체로 좋은 현상이다.
그 반면, 씨크릿은.. 그냥 아무나 알 수 없고 특정 계층만이 접근 가능한 정보를 가리킨다. (1) 몰랐을 때는 답답해서 환장하겠지만 알고 나면 별것 아님, (2) 잘못 누설되고 발설되면 누군가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뉘앙스가 좀 담겨 있다.

물론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둘이 별 구분 없이 섞여 쓰이기도 한다.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라든가 "생명 영원한 신비"라는 TV 프로가 있었고,
한편으로 대전 엑스포 주제가 "그 날은"의 2절 가사에는 "우주 안에 감추어진 비밀을 차근차근 벗겨 가 보면"이라는 문구도 있다.

"달 뒷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달 뒷면의 XX" 안에는 비밀도 들어가고 신비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비밀은 인간의 입장에서 무진장 궁금하다는 관점에서, 그리고 신비는 달이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경이로운 장소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성서 초등학교 개구리 소년 5명이 정확하게 어떻게 죽은 걸까, 영등포 노들길 살인 사건의 범인은 누굴까?",
이런 건 미스터리라고 하지 비밀 사건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내 컴퓨터의 로그인 패스워드를 갖고 신비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성경에는 '경건의 신비'(예수님의 성육신, 딤전 3:16), '불법의 신비'(살후 2:7), 이스라엘의 신비(롬 11:25), 큰 음녀 바빌론의 신비(계 17:5-6) 등의 여러 미스터리들이 언급돼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경들은 이 단어가 신비 대신 비밀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저런 것들을 미스터리라고 읽는 사람과 씨크릿이라고 읽는 사람은 이런 어감의 차이가 쌓이면서 성경관이나 신학 노선이 달라지게 될 것 같다. 몇 가지 예를 더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은 명백하게 hell이지, 스올, 하데스, 무덤 등등의 이상한 곳이 아니다.
  • 성경이 말하는 악한 마귀는 demon이 아니라 devil이다. 흥미롭게도 월트 디즈니 포카혼타스에서는 Savage 노래에 두 단어가 모두 나오더라. 원주민들은 dirty stinking devil, 백인은 pale-faced demon이라고..;;
  • 성경을 호러물처럼 읽는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성경에는 귀신이나 유령 같은 건 없고(마 14:26, 욥 4:15), 그냥 영이 있을 뿐이다. 한편으로 영과 혼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이걸 모르면 영적인 영역과, 단순히 정신적인 영역을 구분하기도 어려워진다!
  • 성경에서 단순히 피고용자(employee), 부하, 하인을 가리킬 때 사용한 용어는 노예가 아니라 그냥 종(servant)이다. 엡 6:5, 골 3:22, 딛 2:9 같은 구절 말이다.
  • 끝으로, 성경이 말하는 사색 방법론은 묵상이지, 명상이 아니다. 뉴에이지 같은 데에 너무 심취해 있으면, 창 24:63에서 이삭이 저녁에 무슨 요가나 파룬궁 수행이라도 하러 들판에 나간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_-;;

송명희 "그 이름"에서 가사가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이라고 쓰여진 것도 이 용어의 번역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3. 나열과 인과 관계

  • "고통을 늘리고 수태를 늘리고"이다. (창 3:16)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 "물에서 나고 성령에서 나서 총 두 번 태어나고"이다. (요 3:5)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 예수 믿으면 네가 구원받고, 그 뒤에 복음화가 진행되면 네 집안 사람들도 뒤이어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다. (행 16:31) thou shalt be saved, and thy house

수태의 고통을 늘린다는 얘기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건 '합집합'이지, 이런 교집합이 아님)
물과 성령을 동시에 동원해서 태어난다는 얘기가 아니고,
네가 구원받는 덕분에 네 집도 덩달아 자동으로 싸잡아 구원받는다는 얘기도 아니다.
둘을 따로따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

4. 휴거 몸 부활 관련 찬송

찬송가 책을 아무거나 펴서 분류별 차례를 보면, 끄트머리에는 가사가 미래 시제인 것들.. 즉, 재림, 천국, 내세를 다룬 곡들이 꼭 있다.
사실, 다른 카테고리에 속하는 찬송가 중에서도 '마지막 절'은 그런 미래를 다루는 가사가 써져 있기도 하다.

가령,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는.. 전반적으로야 명백하게 지금 현재의 '위로와 평안'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마지막 4절은 "공중 나팔 소리" 운운하면서 예수님 재림을 다룬다. 그러면서 그때도 나는 평안할 거라고 노래한다.
이런 식으로 가사가 총 n절 있는 찬송가라면, 1~n-1절은 평범한 내용이다가 마지막 n절은 그렇게 미래 시제이거나, 혹은 불신자에게 구원을 초청하는 패턴인 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런 찬송가 가사들이 다루는 미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내가 죽어서 곧장 셋째 하늘로 가서 주님을 뵙는 것 (키워드: 새 예루살렘, 진주 문, 황금 길 등등~)
(2) 아니면 나는 관심 대상이 아니고 예수님이 그냥 공중이든 지상이든 뭉뚱그려 재림하시는 것 (키워드: 천년왕국, 다스림, 심판)

(1)은 그 특성상 기독교식 장례식 때도 즐겨 불린다. 다만, 가사가 묘사하는 장면은 계시록 21장 이후 천년왕국이 다 끝난 영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마디로 먼 미래다. 그 장면이 비주얼이 뽀대가 나기 때문이며, 안식과 소망을 노래하는데 그 전 단계인 그리스도의 심판석 같은 걸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에 속한 곡은 비교적 가까운 미래를 다루지만 가사가 교리적으로 맞는지 잘 분간할 필요가 있다. 가령, "오랫동안 고대하던 천년왕국 이를 때"는 시간 순서가 거꾸로 배열돼 있다. (교회는 천년왕국보다 훨씬 전에 먼저 들려 올라가는데??)

이런 것에 비해.. 살전 4와 고전 15를 근거로 (3) 성도의 몸의 부활(예수님의 부활 말고), 휴거, 예수님의 공중 재림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곡은 드문 편이다. (키워드: 부활, 깨어남, 몸의 변화, 일어남, 나팔 소리, 공중..)

하긴, 잘못된 종말론 미혹이 야기한 각종 병크 때문에 요즘은 종말 자체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기독교계에서 매우 무뎌져 있다. 그리고 교회 시대 전체를 통틀어서 살아서 몸의 변화와 휴거를 직접 경험할 사람의 비율은 마치 예수님 동시대의 사람만큼이나 매우 미미하기도 할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본인은 지난 여름에 청년부 특송 때 특별히 (3)에 속하는 곡을 엮어서 불러 보기도 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 "부활 아침 돌아오면" + "금빛 찬란한 아침에"의 순으로.
혼이 구원받아서 하늘로 간다는 것에 비해, 미래에 "몸도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고 변화된다" + "특히 죽음을 아예 맛보지 않고 들려 올라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까지 늘 염두에 두는 신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04 08:35 2019/12/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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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부 고속도로 금토 JC

용인-서울 고속도로(171)가 개통한 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2009년 7월이니 서울 지하철 9호선의 1차 개통일과 아주 비슷하다.

근처의 경부 고속도로는 수원 이북으로 서울 TG를 넘어 판교 부근까지 10km가 넘게 곧은 직선이다. (다만, 오르내리막 기복은 이따금씩 있음) 한때 비상 활주로를 표방했을 정도로 직선이며, 게다가 지리적으로도 경도의 변화가 거의 없이 위도만 변하는 그 직선이다.
그에 비해 서쪽의 용인-서울 고속도로는 서수지-서분당 등의 구간도 적당히 구불구불한 곡선인 것이 인상적이다.

또한, 얘는 길이가 어중간하게 짧아서 휴게소가 전무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분기점이 전혀 없는 것도 이례적이었다. 허나 바로 작년 말에 경부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금토 분기점이 개통되면서 이 역시 옛말이 됐다.

두 고속도로는 X자 모양으로 교차한다. 경부 하행에서 용인 하행으로 갈아탈 수 있고, 반대로 용인 상행에서 경부 상행으로 갈아탈 수 있다. 다시 말해, 헌릉 IC를 거치지 않고도 용인 고속도로를 드나들 수 있게 해 준다.
금토 JC는 이 두 길목만 존재하는 아주 자그마한 분기점이다. 하행이 더 만들기 쉬워서 작년 여름에 먼저 개통하고, 상행은 산을 깎고서 270도 꼬부랑 턴을 해야 하는 관계로 어려워서 반 년 남짓 늦게 개통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머지 방향이야.. 뭐 상행과 하행을 전환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용인 하행에서 경부 하행으로 간다거나, 경부 상행에서 용인 상행의 헌릉IC 방면으로 가는 길목도.. 딱히 가성비가 맞지 않다고 여겨져서 만들지 않았다. 정말 최소한의 조치만 취한 셈이다.

금토 JC는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교차하는 판교 JC를 제치고, 경부 고속도로의 최북단에 있는 분기점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뭐, 판교 JC는 X가 아닌 +형이며, 경부에서는 상행만이 저쪽으로 갈아탈 수 있고, 외곽순환에서는 경부의 하행으로만 갈아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2. 톨게이트가 이원화된 IC

폐쇄식 고속도로에는 고속도로와 일반 도로를 연결하는 IC(나들목)가 있고, 그 길목에는 톨게이트(요금소)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1IC 1TG가 원칙(?)이며, 고속도로에 진입한 차량은 톨게이트를 통과한 뒤에 상· 하행 방향을 선택하여 분기하게 된다.

그런데 드물게 톨게이트가 둘 달린 IC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한 지역에서 동서남북 접두사가 붙은 IC가 여럿 흩어져 있는 것 말고, 한 IC에 대한 톨게이트가 복수인 것 말이다.
경부 고속도로 수원신갈 IC의 경우.. 교통량의 증가를 감당치 못해서 원래 있던 비스듬한 IC는 고속도로 진입 전용으로 바꾸고, 더 남쪽에 시내 진출 전용 IC를 추가로 만들게 됐다. 즉, 수원신갈 TG 쌍은 각 방향별 일방통행 형태로 바뀌었다. 2010년대의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중앙 고속도로 제천 IC도 톨게이트가 둘인데, 여기에는 좀 더 기괴한 사연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렵지만, 처음에 중앙 고속도로의 그쪽 구간은 왕복 2차로에다가 '개방식' 요금제 형태로 건설되고 있었다. 장거리 간선 고속도로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만들기 시작했나 모르겠다. 중앙 고속도로가 최초로 만들어지던 모습을 보는 건 마치 스타크래프트나 Doom의 먼 개발 초기 알파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과 비슷하지 싶다.

그러다가 한창 건설을 하던 중에 감사원의 지적으로 인해 법이 바뀌었다. 1992년 4월엔 앞으로 모든 고속도로는 처음부터 최소한 4차로 이상의 형태로 만들 것이고 지금 당장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고속도로에도 이 원칙을 소급 적용한다는 건설부의 방침이 내려왔다. 그래서 중앙 역시 지금처럼 폐쇄식 4차로라는 정상적인 형태로 뒤늦게 뜯어고치게 됐다.

원래 중앙 고속도로(수직)의 제천 IC 밑으로는 국도 5호선(수평)이 지났으며, 이들은 별다른 톨게이트 없이 평범하게(?) 입체 교차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뒤늦게 확장하고 폐쇄식으로 고치면서, 고속도로와 교차하던 국도의 양 옆에 톨게이트가 설치됐다.

이미 입체교차로 자체는 건재하고 있으니 방향별로 단일 톨게이트로 안내하는 길을 따로 또 만드는 수고를 하지는 않은 것이다. 국도의 일부 구간이 톨게이트로 가로막혀 버렸기 때문에 국도 5호선의 기존 구간은 장평천 이남으로 살짝 이설되었다.

뭐, 당연한 말이지만 서쪽과 동쪽의 어느 톨게이트로 진입하더라도 중앙 고속도로의 상· 하행 아무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진출 역시 상· 하행 어느 쪽에서도 동쪽과 서쪽 아무 톨게이트 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다.
지도를 보면 인터체인지가 사통팔달 통하는 전형적인 클로버형인데, 서남쪽만(3사분면..;; ) 장평천 때문에 공간이 부족해서인지.. 고속도로 하행에서 국도 동쪽으로 진출하는 연결선의 선형이 좀 다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듯, 교통량 증가 때문이든, 출생의 비밀 때문이든 톨게이트가 2개 이상이 된 고속도로 나들목이 또 있는지 궁금하다.

  • 중부(35): 꽤 옛날에 만들어졌지만 서울· 수도권과 가까운 위치 덕분에 2차로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애초부터 4차로로 만들어졌다. 다만, 이것마저도 너무 비좁아져서 제2중부(37)를 또 만들게 됐을 뿐이다.
  • 중부내륙(45)/통영대전(35)/서해안(15): 역시 처음부터 4차로로 만들어졌거나, 타이밍의 특성상 도중 설계 변경의 타격을 별로 입지 않은 듯하다.
  • 옛 88 올림픽(12): 전구간 2차로로 당당히 만들어졌으며, 알다시피 도로의 저퀄리티와 높은 사고율 때문에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큰 악명을 떨쳤다. 영동 고속도로도 마찬가지였지만 얘는 88보다는 훨씬 일찍 새 도로로 대체됐다.
  • 중앙(55): 얘만 타이밍이 영 좋지 않았는지 거의 혼자 독박 쓰고 낭패를 본 듯하다. 1990년대 초까지 2차로로 길을 한창 닦고 있던 중에 대판 뜯어고쳐야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 처음부터 6, 8차로급으로 지어진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드문 것 같다.
경부 고속도로 서울-수원 구간은 4차로이다가 6을 거치지 않고 곧장 8차로로 확장되고 그 뒤에 서울 구간은 10차로로까지 확장되긴 했지만, 오리지널은 4였다.

외곽순환 고속도로도 지금이야 전구간이 8차로이고 동남쪽의 중부 고속도로와 만나는 일부 구간은 10차로이기까지 하다만.. 먼 옛날에 판교-구리 고속도로 형태로 처음 만들어질 때는 당시 대한뉴스 화면을 보면 역시나 4차로(...)였다. 그나마 용인-서울은 비교적 최근에 그것도 수도권에 건설된 덕분에 처음부터 6차로였다.
철도를 처음부터 복복선으로 부설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만큼이나.. 기존 도로를 연장· 확장하는 게 아닌 이상 처음부터 왕창 거대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닌 듯하다.

다만, 요즘 세상에 어지간한 오지가 아닌 이상이야 고속도로를 겨우 2차로로 만드는 건, 요즘 세상에 철도를 꼴랑 단선으로 만드는 것과도 같은 소탐대실 단견일 것이다.
가령,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대교'라는 이름이 붙었으면서 왕복 2차로인 교량으로 내가 아는 건, 민통선 안의 교동도를 연결하는 교동대교가 유일하다. 그 정도라면 교통 수요 대비 원가 절감을 위해 2차로로 만든 걸 납득하겠다.;;

3. 천안에 있는 휴게소와 나들목

천안은 철도에서는 장항선이 분기하는 곳이며, 고속도로에서는 호남 방면의 논산천안 고속도로가 분기하는 곳이다.
그리고 북부의 북천안 IC 인근은 수원-신갈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비상 활주로 공용 구간이었기 때문에 도로가 곧은 직선이기도 하다.

경부 고속도로의 행정구역상 천안 구간에는 북쪽에서 남쪽 순으로 나열했을 때 입장, 망향, 천안삼거리, 천안이라는 4개의 휴게소가 있다.
그런데 얘들은 그 순서대로 각각 상행, 하행, 상행, 하행에만 있다. 양방향에 모두 존재하는 휴게소는 없다.
또한, 각 휴게소들 사이에 입장-(북천안)-망향-(천안)-천안삼거리-(목천)-천안의 순으로 IC(나들목)가 등장한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입장 휴게소는 자가용보다는 대형 화물차의 운전자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서 주차 공간이 넉넉하며, 주변의 다른 휴게소들보다 인지도가 낮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덜 혼잡하다는 장점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건물과 주차장이 도로와 일렬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곤 한데, 얘는 휴게소 부지가 도로와는 수직으로 확보되어 있다. 휴게 시설들이 고속도로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망향 휴게소는 인근에 '망향의 동산'이라는 일종의 국립묘지가 있어서 이름이 저렇게 붙었다. 저기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묘지일 뿐, 현충원은 아니기 때문에 꼭 국가유공자나 군· 경만 묻혀 있는 건 아니다. 그 대신 타지에서 죽은 재외 동포가 묻히는데, 이런 이유로 인해 1983년 대한 항공 007편 격추 사고 희생자 위령비도 저기 안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양재 시민의 숲에 있는 건 1987년의 858편 폭발 사고 희생자 위령비)

천안삼거리 휴게소는 이름은 많이 들어 봤지만 다른 특이점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저기가 무슨 계기로 언제부터 호두과자로 유명해졌나 모르겠다.

경부 고속도로 천안 북부 구간은 마치 수원-신갈-죽전 일대처럼 도로가 북쪽으로 곧게 쫙 뻗어 있어서 과거에 비상 활주로로도 쓰이던 구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고속도로를 활주로로 공용하던 관행이 없어졌으며, 거기에는 북천안 IC까지 생겼기 때문에 비행기가 뜨고 내릴 가능성은 더 확실하게 없어졌다.

끝으로.. 영동 고속도로의 마성 IC가 에버랜드를 위한 IC라면, 남쪽에 있는 목천 IC는 독립 기념관을 위한 IC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마성은 1976년에, 그리고 목천은 1986년에 해당 시설들이 생긴 뒤에 추가로 만들어졌다.

4. 중앙 고속도로 단양 휴게소

지난 추석에 고향을 다녀올 때는 정체 구간을 우회하느라 모처럼 중앙 고속도로를 실제로 달려 보게 됐다.
그 와중에 화장실(급똥...;;ㄲㄲㄲ) 때문에 단양 휴게소를 우연히 들렀는데, 마침 얘도 공교롭게도 평범한 휴게소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본선상에서 휴게소 건물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휴게소 진입로가 무슨 어지간한 나들목/톨게이트의 진입로 같았다. 거의 ? 모양으로 한참을 꼬불꼬불 올라간 뒤에야 휴게소 건물이 나타났다.
휴게소를 언덕을 깎아서 옆에 가까이 만든 게 아니라, 그냥 언덕 위에다 만들었다. 그래서 본선과의 높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진출입로가 불가피하게 길어진 것이다. 이런 휴게소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휴게소를 굳이 그런 형태로 힘들게 만든 이유는? 여기 일대는 주변이 온통 산이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상행과 하행이 서로 7km에 가깝게 떨어져 있으며, 둘 다 형태가 저렇다.;; (특히 경부 고속도로 입장 휴게소처럼 휴게소 건물이 고속도로와는 수직으로 배치) 이럴 거면 얘도 상· 하행 통합으로 큼직한 놈 하나만 만들지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단양 휴게소는 접근하기가 조금 힘든 대신, 다른 여느 휴게소에는 없는 유니크템을 보유하고 있다.
하행 방면의 경우, 건물 뒤에 넓은 풀밭과 '힐링 테마 공원'이라는 게 있다. 자그마한 야외 민속 박물관 컨셉으로 물레방아, 절구, 장승, 각종 뚝배기 같은 게 꾸며져 있어서 쉬어 가기 좋다.

그리고 상행은.. 아예 인근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국보 제198호 "단양 신라 적성비"에 다녀올 수 있다. 휴게소 내부에 저렇게 언덕을 오르는 길과 안내판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한때 신라가 여기까지 영토를 확장했었다는 땅밟기 인증 표식이다.
경부 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 고속도로 개통 관련 기념비와 위령비를 답사할 수 있다면, 이 휴게소에서는 저런 걸 잠시 보고 올 수 있다는 게 매우 흥미롭다. 공교롭게도 이 휴게소에는 중앙 고속도로 개통 기념비도 있다!
본인은 동선과 스케줄 때문에 깜깜한 밤에야 여기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주변 풍경은 다른 블로그의 링크로 대체하도록 하겠다.

이렇듯.. 중앙 고속도로는 단순 아우토반 이상으로 재미있는 사연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험준한 산악 지형이라 하면 영동 고속도로가 떠오르는 편이지만, 영동 고속도로에서 진짜 영동 산악 지형은 동쪽 끝에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나머지 경기도 구간에서는 넓은 평지가 더 많다.
하지만 중앙 고속도로야말로 온통 산이다. 오르막엔 저속 차량용 전용 차로가, 내리막엔 구간 단속 카메라가 도대체 몇 개가 나오나 모른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01 08:38 2019/12/0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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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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