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교회에서 에스겔서 16장을 읽다가..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나서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6절, 명령어 Live를 “너는 살라”가 아니라 곧이곧대로 “살아라~~”라고 번역한 역본을 읽으니 ‘어 이거 무슨 애니 대사랑 비슷한데.. 뭐더라?’ 싶다가.. 출처를 곧 떠올린 것이다. 성경과 지브리 애니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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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표현만 약간 비슷할 뿐, 저 말이 나온 상황과 맥락은 서로 완전히 다르고 접점이 거의 없다.
성경에서 “살아라”라고 말하는 상황은 애니에서처럼 니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남주 ‘아시타카’가 간지나게 일깨워 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부모로부터 버려진 여주 ‘산’을 갓난아기 때 거둬들이고 키워 준 들개의 신 ‘모로’가 했을 법한 말이다.

그 뒤로도.. 성경이 말하는 건 그렇게 불우한 처지였던 네년을 먹이고 어르고 달래면서 키워 줬더니 음행이나 저지르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상태가 딱 그 여자와 같다는 식의 얘기 일색이다.
모노노케 히메하고는 1도 관계 없는 흐름으로 간다. 지브리 애니는 자연 파괴가 어떻고 재앙신, 사슴신이 어떻고 하는 세계관일 뿐, 우상숭배니 음행이니 따위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니까.

버려진 여아를 제3자가 거둬들여 키웠다는 맨 앞의 초창기 설정, 그리고 그놈의 “살아라” 대사 때문에 의식이 잠시 이쪽으로 흘렀다~!

이렇게 하나님과 애증(?)의 관계로 묘사되는 이스라엘 백성, 일명 유대인 말이다.
저 사람들은 저래 뵈어도 성경이 역사적으로 문자적으로 사실이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걸 물증에 가까운 수준으로 입증하고 있는 민족이다. 예수를 배척하고 안 믿었으면서 정작 하나님과는 저런 관계인 게 참 특이하다.

쟤들은 하나님과 특별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타 민족들 대비 특혜와 보호 버프를 더 받았고, 그 대신에 죄 짓고 타락할 때 위약금 명목의 징벌도 더 빡세게 받았던 민족이다. 딱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하나 더.. 쟤들은 비록 혹독한 징벌을 받더라도, 어떤 경우에도 민족 정체성을 잃고 완전히 멸망해 버리지는 않는다는 거.. 이거 하나는 보장됐다. 그건 하나님 차원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성경에 언뜻 보기에 신약 크리스천의 교리 행실과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뜬구름 잡는 구약 예언의 비중이 왜 이리 큰지?
그 예언들이 다들 심판 일색에 부정적이고 절망적이고 암울해 보이지만, 최종 결말은 왜 한결같이 "회복"인지를 생각해 보시라!
일반적인 크리스천은 저 나라, 민족에 대해서 이렇게 인식하고 처신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겠다.

1. 현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예언을 다 이룬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대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에 건국됐으니, 이 세대가 다 가기 전에 예수님 다시 오실 거임" 이러는 '반쯤' 시한부 종말론스러운 이야기를 들어 보신 분이 있을 것이다.
난 그 사건에다가 성경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적용을 해도 되는지.. 성경 본문에서 그 세대라는 단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세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지.. 그건 좀 조심스럽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 극단으로 가서 저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유대인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도 명백히 오류일 것이다.
그럼 거슬러 올라가서 나치와 히틀러는 유대인을 미워하고 죽인 게 아니었나? 진짜 유대인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혼자 뻘짓 한 거냐? 이스라엘의 사관학교 생도들은 유대인도 아니면서 맨날 맛사다 요새를 잊지 말자고 생쑈 하냐..?? 그건 그것대로 여러 모순과 문제점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2. "저것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저주받을 종자들이다~"

....;; 이건 진짜 최악의 멍청한 발상이니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지어다! 심지어 옛날의 걸출한 개신교 종교개혁자 중에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미안하지만 명백한 오류이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지 않았으면 비유대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리지 못했다. 어디 너님의 죄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기여한 게 없는 줄 아냐??? 이 주제에 관한 한은 '양비론'이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성립한다고 봐야 한다.

3. 막연한 반유대주의 선동에는 가담하지 않는 게 옳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간 과정은 마치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처럼 혼란한 와중에 현실적인 이유나 강대국들의 농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혈이 발생한 것도 적지 않다.
언론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학살하는 것만 보도하지만 실제로는 적들도 민간인 위장 총질 같은 비열한 짓을 많이 했다. 이런 건 한쪽 편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쟤들이 쏘는 로켓 대비 그걸 요격하는 이스라엘 측의 방어 시스템은 유지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서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중동의 왈가닥 미친개처럼 처신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비록 쟤들은 신약 성경이나 예수 이런 것에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슬림 광신도처럼 히잡이나 "알라후 아크바르!" 같은 짓거리를 벌이지도 않는다.
이스라엘은 나름 친서방 자유 진영에 속하면서 6 25 때 저 멀리 대한민국을 도와줬었고, 연평도 포격 때 북괴 규탄도 제일 강력하게 했었다.

4. 그렇다고 쟤들이 정말 선 넘고 범죄 저지르고 깽판 치는 것까지.. 무작정 다 옹호할 필요는 없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가령, 예수상 훼손과 조롱 인증샷.. 이거는 진짜 정신나간 짓이던데?? (개인적으로 물론 예수상 별로 안 좋아하는 소신이지만 이와 별개로) 괜히 총리까지 나서서 사과하고 수습한 게 아니더라.

5.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심판의 도구를 그리스도인이 "자처"하지는 말아야 한다

너 말고도 이스라엘 싫어하고 가혹하게 대해 줄 사람은 주변에 넘쳐나니까 너는 그런 일에 가담하지 마라.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남았냐, 걔네들을 심판자 명목으로 침략하고 학살했던 주변 민족이 살아남았냐?
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다른 정상적인 소명 부르심에나 응답하고 따르시길 바란다. 육신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어라.

6. 교회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매우 중요한 사항이니 밑줄 치시라. 교회는 교회이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다. 서로 신분과 처지가 다른 집단이다.
로마서 9~11장을 읽어보아라.
막~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쟤들과는 완전히 손절이다" 뉘앙스가 절대 아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못 알아보고 그 일시적으로 눈먼 것까지도 하나님이 다른 기회로 활용해서 이방인 교회 시대 경륜을 열었다"로 딱 요약되지 않는가?

오히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생긴 기회가 이 정도인데, 하물며 걔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면 세상이 얼마나 더 살기 좋아졌겠냐" 이런다. 유대인을 세상을 향한 축복의 통로 정도로 본다.
이게 어딜 봐서 유대인이 교회로 대체됐다는 의미이겠는가? 유대인이 구원받고 개종하면 그냥 유대인 크리스천 교회 성도가 될 뿐이다. 우리는 돼지고기도 못 먹는 유대인이 아니라,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감사하면 된다.

아 물론 본인도.. 이 2000년대가 다 돼서 유대인들 혈통과 지파는 어떻게 다시 따질 것이며, 저 완강한 인간들이 도대체 언제 짠~ 예수님을 다시 알아보고 설마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회복되겠는지,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디테일"을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는 건 있다.
그러나 유대인과 교회를 구분하면 뭐 세대주의가 어떻고 시한부 종말론이 어떻고 프레임 씌우는 건 논점 일탈이어 보인다. 뭐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최대한 그대로 믿어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이상이다.
우리나라 국군이 북괴의 무력 도발에 대해 처음부터 이스라엘처럼 대처했다면.. 아마 진작에 북한으로 전투기고 공작원이고 잔뜩 보내서 핵 시설 같은 건 바로 폭격했을 것이고, 연평해전?? 천안함?? 그냥 몇 배로 보복했지 싶다.
물론 그만큼 젊은이들 군생활은 더 빡세졌겠지만, 이렇게 처음에 짧고 굵게 기선제압을 확실하게 해 놓는 게 나라의 미래 관점에서는 차라리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 여담: 아시리아와 바빌론

그러고 보니 유대인들의 옛날 역사와 관련하여 인상적인 게 하나 있다.
옛날, 기원전 600~500년 무렵에 있었던 신바빌론, 일명 칼데아 왕국은 남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용도로 정말 잠깐 왕성했다가 신기루처럼 싹 사라져 버린 정말 특이한 나라이다.
100년도 채 유지되지 못하고 망했다는 점에서 원나라와 비슷한 것 같다. 그 전의 아시리아, 그 후의 페르시아에 비해 존재감이 없으며, 세계사에서는 별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사실, 바빌론 자체가 처음에는 아시리아의 관할에 있는 나와바리 중 하나에 불과했는데 갑자기 세력이 커져서 주종 관계가 바뀐 거라고 한다.
심지어 아시아라는 대륙 이름이 바로 아시리아 - 앗수르에서 유래된 거라고 하네.. 참고로 아시리아는 시리아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이니 혼동하지 말자.;;; 굉장히 헷갈리기 쉬운 사항이다.

아시리아는 이스라엘 북왕국을 멸망시켰으며, 바빌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접수했었다. 그러나 딱 하나 남왕국 예루살렘만은 정복하지 못했었다. (히스기야 왕 시절을 생각해 볼 것) 그리고 아시리아 이후의 바빌론이 남왕국을 접수한 것이다.

그 뒤,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 있던 그 기원전 5xx년 기간 동안 인도에서 불교, 중국에서 유교가 태동하고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활동했었다. 동양에도 나름 그리스 철학자들 뺨치는 인문학 르네상스 같은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신바빌론은 여러 모로 신기한 나라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22 08:35 2026/06/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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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에 대해서

먼 옛날, 성경의 이스라엘 시대에는 예루살렘 땅에 성전이라는 특별한 건물이 있었다.
이건 출애굽 모세 시절에 있었던 '성막'의 후신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각종 동물 제물(헌물)을 바치는 곳이었다. 그리고 언약궤라든가 만나 샘플, 아론의 싹 난 지팡이처럼 출애굽 시절에 득템했던 아주 홀리한 아이템들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성전은 그야말로 국뽕의 원천이요, 오늘날 가톨릭의 교황청이나 무슬림의 메카를 능가하는 종교 구심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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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은 솔로몬 왕 시절에 지어진 버전 1이 최초였다. 코드네임은 그대로 '솔로몬'.
현존하지 않는 건물이지만 성경은 이 첫 성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많은 분량을 할애해 기록해 놓았다. 건설 과정이라든가 내부 구조와 치수 말이다.

다만, 그 기록이 무슨 조선의 '화성 성역 의궤' 수준으로 자세하고 구체적인 건 아니다.
성막은 출애굽기 기록을 통해서 정확하게 도면을 만들 수 있고 내부 구조를 재현할 수 있는 반면, 성전은 그렇지 않다. 성경의 스펙만 봐서는 유일한 형상이 딱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람마다 도면이 제각각으로 나온다. 상상과 창작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성전 1.0은 이스라엘, 더 정확히는 남유대 왕국이 바빌론의 침략으로 완전히 멸망할 때 싹 다 파괴되어 없어졌다. 홀리 아이템들도 남아나질 못하고 이때 모두 파괴 또는 소실됐다.
감히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셨다는 집이 왜, 어쩌다 저런 처참한 결말을 맞이했을까? 그 이유는 역대기하 끝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뒤 성전 버전 2는 바빌론 포로 귀환 후에 '스룹바벨'이라는 코드네임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다만, 나라가 최전성기 리즈 시절일 때 만들어졌던 1.0 솔로몬에 비해, 2.0은 아무래도 초라할 수밖에 없었다.
구약 성경 '학개'서는 이 성전 2.0이 건축이 중단된 것을 속행하라고 독려하는 내용이다.

이 2.0은 중간에 이방 민족에 의해 일부 훼손과 복구를 겪었다. 요한복음 10:22에 나오는 하누카, 수장절이 바로 이 성전의 수복? 복원을 기념하는 민족 절기이다.

그리고 이 성전은 로마 제국 헤롯에 의해 아주 거대하게 증축됐다. 이때는 외세가 피지배 민족인 유대인들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성전을 이례적으로 증축을 해 준 것이다.
그래도 이건 버전 3까지는 아니고 2.5로 페이스리프트에 가까웠다. 바로 이 성전이 예수님 시절에 존재했던 성전이다.

허나, 성전 2.x는 예수님의 승천 후, 반세기가 채 지나기 전에 티투스인지 타이투스인지 그 로마 장군의 명령으로 싹~~ 파괴되어 없어져 버렸다. 그때 이래로 지금까지, 서기 2025년 현재에도 예루살렘엔 유대교 성전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은 성전이 성전 구실을 전혀 못 하고, 없는 게 차라리 더 나은 지경이 됐을 때는 저런 처참한 파괴를 얼마든지 허용하셨기 때문이다.

성전 1.0 시절에는 유대인들이 자기 민족의 신인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등 우상 숭배 죄를 저질렀다. 성전은 파괴됐고,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기원전 4xx~5xx년 이러던 때의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 유대인들의 종교와 경전이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필 이 시기에 불교와 유교가 생기고 중국 대륙에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출현한 것이 유대인 포로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럼 그로부터 500년쯤 뒤, 성전 2.x가 파괴됐을 때의 상황은 어땠나?
이제 유대인들은 대놓고 우상 숭배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종교관이 다른 극단 쪽으로 이상해지고 뒤틀렸다. 율법을 영혼 없이 외형적으로 따르는 것에만 목숨을 걸면서 정작 구약 성경이 마르고 닳도록 가리키고 있는 예수님을 거부해 버렸다. 심지어 예수의 피가 자기와 자기 후손들에게 얼마든지 돌아오라고 저주 맹세를 하면서 자기 무덤을 파 버렸다!

성전 2.x가 파괴됐을 때는 유대인들이 그냥 전세계로 디아스포라 급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러면서 그 뒤로 2천 년에 가까운 신약 교회 시대가 시작됐고, 인류는 자동차와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비행기를 발명하는 지경에까지 도달했다. 세상에..

생각을 해 보시라. 사도행전에서 바울을 집요하게 죽이려고 난동 부리고 안달 났던 그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버젓이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에도, 성전 휘장이 쫙 찢긴 뒤에도 계속해서 딴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성전에서 어린양을 죽여서 바쳤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우리 인간도 누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했던 말을 또 하게 만들면 짜증이 날 것이다.
성경을 찾아보면 하나님도 굉장히 싫어하시는 게.. 하나님께서 다 이뤄 놓으신 단일 역사 이벤트를 정면으로 부정하거나 또 하라고 부추기는 짓거리이다.

카인과 아벨 시절에 아벨이 어린양을 죽여서 바친 것은 잘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도 예수님을 생까고 어린양을 죽여서 그것도 성전에서 바치는 건 차라리 바알 숭배가 더 낫다 싶을 정도의 미친짓이었다.

모세가 단 한번.. 별로 심각해 보이지도 않는 실수 때문에(반석을 또 때린 거. 그 반석이 누구/무엇의 예표이더라?) 징계 받아서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된 거,
감히 십자가 사건이 자기네 집회 때마다 매번 반복된다고 말하는 어느 종교 의식,
쟤들은 이런 것과 동급의 죄를 짓고 있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저런 극악무도한 짓이 벌어지는 본거지 따윈 100번은 없애고 싶지 않으셨겠느냐 말이다.
1.0 시절과 2.x 시절은 이 정도로 서로 극과 극으로 차원이 다른 상황이었다.

세상 역사가들은 유대인들이 자꾸 로마 제국에다가 반란 일으키고 개겨서~ 징벌 차원에서 성전까지 묵사발 참교육 당함.
이런 식으로 겉으로 보이는 객관적인 현상만 논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영적인 배경을 논하자면 저런 듯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 자체만큼이나 하나님의 역사 경륜을 알 수 있는 지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 시대 크리스천이라도 최소한의 관심을 두고 알아둘 필요가 있다. 현존하지도 않는 건축물에 구약 성경이 그리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제 성전 3.0을 만들겠다고 벼르는 사람들이 있다.
허나, 예루살렘의 저 위치는 이슬람 진영에서도 진작부터 알박기를 해 놨기 때문에 부지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다. =_= 누군가에 의해 3.0이 만들어지기나 한다면 대환란 시절의 임시적인 성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성경에 기록된 "이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싹 무너질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예언도 진짜 정확하게는 2.x가 아니라 가상의 3.0 얘기가 아닐까 싶다.
2.x는 그래도 서쪽 벽은 완전히 파괴되지 않아서 통곡의 벽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 않느냐 말이다. 붕괴는 됐지만 진짜 그 정도로 처절하게 다 박살난 건 아니어 보인다. 마치 창세기 22:8도 실제로 현장에서 준비된 것은 어린양이 아니라 숫양이었으니, 이건 거시적으로 예수님 예언이듯이 말이다.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끝으로.. 에스겔서 4x장에서 길게 기록하고 있는 그 성전은 예수님의 재림 후에 만들어질 버전 4, 마지막 성전이 되지 싶다.
이때는 성전이 왕궁의 역할까지 겸하면서 그야말로 정치 종교 복합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제단이 있기는 하지만 속죄 번제 기능은 없이 화목제만 있는 등.. 시스템이 구약 시절과 비슷하지만 일부 요소가 수정될 것이다.

* 아이고, 두 주 동안 글이 또 끊겨 버렸다.;;;
이 달 중으로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와 타자연습 새 버전을 꼭 내려고 발버둥 쳤지만, 어려울 것 같다. ㅠㅠㅠㅠ

Posted by 사무엘

2025/08/26 08:35 2025/08/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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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사람 요셉

성경에서 요셉 이야기는 창세기의 끝부분을 장식하는 매우 드라마틱한 에피소드이다. 본인은 먼 옛날에 이집트의 왕자 만화영화와 같이 모세 얘기는 한 적이 있었는데.. 모세 만만찮게 흥미진진한 요셉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블로그에다 진지하게 늘어놓은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예표 인물이 여럿 있다. 하나님 앞에서 개기다가 고래에게 잡아먹히고 죽다 살아 나온 선지자(대언자) 요나조차도 예수님의 위대한 예표이다. 그런데 요셉은 예수님과 무려 100~150가지가 닮았다고.. 무슨 피타고라스 정리의 증명법만큼이나 많은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옛날에 한국 컨티넨탈 싱어즈에서 "꿈의 사람 요셉"이라는 뮤지컬 음반을 내놓은 적이 있고, 드림웍스에서도 이집트의 왕자 다음으로 2000년에 요셉 이야기를 애니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스토리상 속편이 전혀 아닌 작품도 그냥 2라고 붙이는 걸 좋아해서.. 옹박 2, 이집트의 왕자 2 이런 식의 작명을 거쳐서 개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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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세상 물정 모르는 색동옷 차림의 늦둥이 막내아들 철부지 꿈쟁이였다. 그러나 형들로부터 시기를 받아 인신매매를 당하고 하루아침에 밑바닥 노예로 전락해서 인실X을 혹독하게 체험하게 됐다..;;

그 뒤 이집트에서 겨우 기반을 잡는가 했는데 이번엔 성폭행 흉악범 누명을 쓰고 감방에 갇히고 말았다. 석방되는 동료 죄수의 꿈을 해몽해 줬지만, 그 동료의 무관심으로 인해 2년을 감방에서 더 썩었다. 요즘 현대인들의 정신 상태였다면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에 억울하고 원통해서 몇 번이고 자살했을 법도 한 상황이었다.

요셉은 성경에 인생 흑역사나 결점이 기록된 게 전혀에 가깝게 없으며, 특히 이성의 유혹을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FM대로 제일 모범적으로 잘 대처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대가로 당장 돌아온 게 저 지경이었다.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성경에 자세히 적혀 있지는 않지만... 보디발의 아내 겁탈 누명의 경우, 보디발도 이건 요셉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 싶다. 요셉이 아니라 자기 마눌에게 바람기가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했을 것이다.
일개 노예가 감히 주인의 아내를 범한 건 최악의 파렴치 중범죄이며, 이건 투옥이 아니라 그냥 즉결 사형감이다. 만약 요셉이 진짜 범인이라면 그 역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요셉을 완전히 무죄방면해 버리면 자기들의 입장이 심히 난처해진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으니, 절충안으로 요셉을 죽이지는 않고 그냥 감옥에 격리시키는 것으로 일을 덮은 게 아닐까? 요셉이 투옥된 뒤 보디발 집안에서는 대판 부부싸움이 벌어졌지 싶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뒤, 요셉은 "해석이란 건 {주}께 속해 있지 않습니까?"라는 명대사와 함께 파라오가 꾼 뒤숭숭한 꿈을 정확하게 해석해 냈다. 덕분에 그는 이집트에서 의전 서열이 파라오의 바로 다음 2위인 총리로 순식간에 신분이 바뀌었다.

그리고 꿈에서 계시되었던 바와 같이, 7년 풍년 이후에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흉년 기근이 창궐했다. 이에 대한 대비가 철저히 된 나라는 이집트밖에 없었다. 그러니 요셉의 형들도 곡식을 사러 이집트까지 찾아와서 요셉을 대면하게 됐다. 자, 그럼 요셉은 형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이건 요셉이 지혜를 발휘해서 거의 하나님 급으로 공의와 사랑을 적절히 보이며 처신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마냥 "오 어째 이런 우연이~! 형님들 잘 오셨습니다~ 난 이집트 총리가 됐답니다~ 멋있쪙?" 할 수도 없고, "오냐, 옛날에 날 노예로 팔아넘겼던 네놈들이 제 발로 찾아왔군. 이제 내가 보복할 차례다. 한번 제대로 엿먹어 봐라" 이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처음에는 까칠하게 굴면서 형들이 자기 정체와 과거의 죄를 제 발로 털어놓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장 생존은 가능하게 기본적인 곡식을 무료로 챙겨 주긴 했다. (받았던 곡식값을 자루에다 같이 반환함)
형들이 과거의 죄를 완전히 회개했고, 막내동생 베냐민을 위해서는 필살의 형제애를 발휘하여 차라리 자기들이 대신 노예로 잡혀 있겠다고 호소하는 걸 확인하고서야 요셉도 드디어 엄격 진지 근엄 모드를 풀고 자기 정체를 밝혔다.

성경에서 요셉은 울었다는 장면이 유난히 자주 기록돼 있다.
어린 시절에 형들이 갑자기 자기를 매정하게 생까면서 노예상에게 팔아넘길 때, 억만 리 타지에 끌려가서 노예 취급 받을 때도 당연히 멘붕 해서 "아빠~ 보고 싶어어헝헝" 식으로 엄청나게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엔 그런 건 적혀 있지 않고 더 고차원적인 이유로 운 장면만 기록됐다.

특히 저렇게 형들에게 커밍아웃 하기 직전엔 요셉은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모두 물러가라"부터 시전했다. 그 뒤엔 궁궐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으허허허헝엉엉~!" 하며 울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방영했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같은 분위기를 생각하면 된다.

나중에 부친인 야곱이 죽고 장례까지 치르자, 형들은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요셉이 드디어 본심을 드러내고 우리를 해코지 하면 어떡하지?" 이런 심정으로 요셉에게 자비를 호소하는 애원 간청을 했다. 성경에 따르면 요셉은 이때 마지막으로 또 울었다. 형들이 아직도 믿음이 부족하고 자기 진심을 몰라 준다고.. 이건 요 11에 기록된 예수님의 울음 장면과 매우 비슷한 분위기라고 보면 되겠다.

이것이 성경의 스토리이다.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요셉이 형들과 이렇게 밀고 당기는 동안, 형뿐만 아니라 아버지 야곱의 믿음도 시험대에 올라서 야곱 모드와 이스라엘 모드를 오락가락했다. 야곱 모드일 때는 멘붕 자포자기 해서 "아이고~ 오래 살아 봤자 험한 꼴밖에 안 보고.. 난 어서 뒈져야지ㅠㅠㅠ" 내지 "요셉으로도 모자라서 베냐민까지? 절대 못 보내~" 같은 육신적이고 꼰대스러운 고집을 시전했었다.

요셉의 일생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유다와 며느리 다말 개족보 이야기(38장), 그리고 하몰-세겜 지역 보복 학살극(34장) 사건도 삽입장으로 들어가서 철도 노선으로 치면 간선에서 짧게 뻗어 나간 지선 역할을 한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1/02/16 19:34 2021/02/1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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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회복>

※ 요약
 
1월 17일 오전 예배 때 우리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소개 받은 독립영화 <회복>(김종철 감독)을 그 날 저녁에 청년부 명의로 단체 관람을 했다. (뭐 그래 봤자 본인 포함해 총 5인이었지만..)
 
정말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내용이었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런 기독교 컨텐츠가 외국물 번역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정말 믿어지지 않으며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일제 강점기 교회 수난사라든가 북한/조선족 지하 교회 이야기처럼 민족주의 정서(?)가 전혀 없이도 이렇게 감명 깊은 영상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이스라엘의 문자적 회복을 믿고 예수님의 전천년 재림을 사모하는 바이블 빌리버라면 누구라도 볼 가치가 있음을 본인의 이름을 걸고 추천하는 바이다.
 
이 정도의 감격은, 본인이 KJV 초창기에 읽은 바 있는 <에큐메니즘의 이상과 우상>(구영재 저) 이래로 처음인 것 같다. 이것도 번역서가 아닌 국내 저서라는 게 믿기 어려운 수준인 책인데, 그 책이 다루는 분야는 유럽의 종교 역사 내지 국제 정세인 반면, 저 영화는 이스라엘이라는 점이 차이이다.
 
※ 첫인상
 
목사님께서 처음에 이 영화에 대해 언급하셨을 때 본인은,
뭐 또 할리우드에서 쉰들러리스트라든가 아니면 비슷한 급의 시사/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나.. 유대인 관련 음모론은 다루나.. 그 정도로 짐작만 했을 뿐, 정보가 없었다.
 
제목이 '회복'이라고 하기에, 주찬양 선교단 극렬 매니아인 본인의 머리에 바로 뜨는 인덱싱 결과는, 그저 10집 앨범 <회복>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고, 이 <회복>은 놀랍게도 국내에서 제작된 독립영화이다. 감독은 수십 회의 이스라엘 방문 경력을 지닌 이스라엘 전문가였다.
관람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크리스천들이고 교회에서 추천을 받아서 보거나 아니면 아예 단체 관람을 하는 경우였다.
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면 영화 상영 전에 거의 10~15분은 온갖 광고들이 나오는데 역시 독립 영화이다 보니 그런 게 전혀 없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본인은 예전엔 영화관의 내부 모습이 철도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항과 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상영 도중에 일부 사람들이 나가거나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정차역). 들어갈 때 사람이 표를 검사한다는 것, 처음에 비상시 대처 요령이 방송된다는 것 등이 공항 내지 비행기 여행과 매우 비슷하다. ^^ 역시 경험이 안목을 키우는 것 같다.
 
※ 영화 내용
 
예수님을 믿는 어느 유대인 가정이 괴한으로부터 폭탄 테러를 당하는 얘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런 짓은 90% 이상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치부하기 쉬운데 놀랍게도 그렇지 않았다.
폭발 현장을 분석한 결과 이것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를 전역한 사람의 소행으로 판명된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사방이 적국으로 둘러싸여 있다. 여자까지 군대로 징집해야 할 정도로 국방이 위태롭다.
그런데 서로 그렇게도 사이가 나쁜 이스라엘과 인근 팔레스타인 국가들은 그래도 일말의 공통분모를 공유하는 게 있다. 바로 예수님을 안 믿으며, 기독교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진정한 우군인 크리스천들에 대해서 온갖 나쁜 감정을 갖고 있고 오히려 적군과 그런 사이라니!
마치 빌라도와 헤롯이 전에는 원수였다가 예수님으로 인해 친구가 되었듯이(눅 23:12), 이들 사이의 불의한 동맹은 적그리스도에게 낚여서 그를 메시야로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대다수의 불신자들이 천주교와 기독교를 분간할 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천주교니 개신교 나부랭이 따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저 구교 신교 할 것 없이 자신들을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고 정죄하고 괴롭히고, 십자가 내밀면서 못살게 군 코쟁이 원수일 뿐이다. 까놓고 말해 그들은 히틀러도 기독교의 교리대로 유대인들을 학살했다고 믿는다. 그러니 기독교 얼마나 싫어하겠는가?
 
이스라엘 내부에서 정통 유대교는 국교로 강제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그렇게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정통 율법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그들 중 일부가 그렇다는 거지, 이스라엘 내부에도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자유주의자 등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나라 법에 의해서 박해 내지 벌을 받는 건 아니다. 단지 왕따가 되고 그런 유대교 신봉자들로부터 사회적 배척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배척하는 짓이 너무 오버이다 싶으면 이스라엘 경찰이 출동해서 제지도 하긴 하지만.. 그들도 이런 일에서는 좀 손 떼고 싶어한다.
 
배척을 어느 정도 받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 얼굴을 사진 찍어 간 후 전단지를 마을에다 뿌린다. 이 사람은 요주의 인물이고 '당신들을 설득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불순분자이니 조심하라는 내용으로 말이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집 앞에서 농성도 하고, "2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자", "당신네 종교 때문에 히틀러는 지금도 외롭지 않을 거다" 같은 폭언 악담도 한다.
심지어는 교회 앞에서 죽치고 앉아 농성을 하거나 예배 진행을 못 하게 난동을 부리고, 예배당을 드나드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려고 1인 시위, 침묵 시위 별 걸 다 하더라. 그 중에 엄청 과격한 사람들은 아까처럼 폭탄 배달까지..
 
사람이 인간의 육신을 자극하는 종교 하나에 심취하면 저렇게 된다는 걸 느꼈다.
새까만 정장과 모자에 긴 턱수염을 한 랍비 아저씨가 평소에는 그래도 일말의 멋이 있어 보였는데.. 저러는 모습을 보니까 싸이코처럼 보였다. -_-;;
유대교 회당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는데, 거기는 오히려 천주교 성당과 분위기가 비슷해 보였다. 기도문 암송하고, 남녀 할 것 없이 머리에 면사포 뒤집어쓰고..
 
그들은 진짜로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냥 2천 년 전에 죽은 사람 내지, 기존 유대교 체계에 반발하여 새로운 종교를 만든 이단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기네 나름대로 메시야의 조건을 규정해 놓고 있는데, 지금까지 몇몇 랍비는 그 조건 중의 일부만을 충족한 경우가 있으나 완전한 메시야는 아직 안 왔다는 식이다.
신약 성경도 내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았다. 유대인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도구는 구약 성경뿐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독교와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유대교 환경에서, 그것도 2, 30년 전만 해도 전국에서 정말 몇백 명에 불과하던 "메시야닉 쥬" --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인 -- 가 지금은 1만 4천여 명 수준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로마서 11장 내용이 진짜 자기네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유대인의 인터뷰를 보게 될 줄이야! 이런 사람들의 영향으로 대환란 때 14만 4천 명의 유대인 환란 성도가 준비되지 않을까 싶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전도지 나눠 주고, 도로변에 현수막을 펼치면서 정말 과감하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방해도 많이 받았다. 예수님의 승천 후, 복음은 지금까지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온 거라 한다.
유럽은 이제 교회에 노인들밖에 안 남았고 오히려 아시아에서 역선교를 해 온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던 한국도 100년 전의 평양 대부흥은 이제 안드로메다로 갔고, 크리스천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는 중에 정작 예수님을 배척했던 이스라엘이 꿈틀꿈틀 각성 중이다. 정말 이제 이방인 경륜은 끝이 얼마 안 남았다!
 
유대인의 실족과 실패만으로도 이방인들에게 얼마나 큰 유익을 끼쳤는데, 하물며 이들이 나서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으로부터 받은 복을 세상으로 나눈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밝아지고 그들은 일등 선민 노릇을 하게 될까? (롬 11:12)
메시야닉 쥬들은.. 자기 동족이 지금까지 이방인들로부터 당한 설움을 이제 자기들한테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며 동족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은 자기를 박해하는 게 신명기 13장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는 신명기 13장이 아니라 신명기 18:15가 적용된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역시 유대인들은 지금도 표적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민족인가 보다. 예수님을 좀 보여달라고 했더니 꿈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체험으로 표적을 보고 곧장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영화 중에 줄을 잇는다. 영화 앞부분에서 폭탄 테러를 당한 그 사람도 정말 기적적으로 치유를 받았다.
물론 이들이 다 바르게 믿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영화에서 언급되지는 않지만, 예수 믿고 구원은 받았는데 아직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여전히 사도행전 15장처럼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예수님을 배출하였으나 수천 년을 예수님 없이 지내 온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새로운 흐름!
모세오경을 골수로 암기하면서 자란 그들이 스스로 홍해가 갈라진 기적이나 여리고 성이 무너진 기적보다 더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유대인의 덕을 본 이방인 중 하나로서, 본인에게 큰 도전과 유익이 되는 다큐멘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국민 대다수가 영어 무진장 잘 한다는 건 엄청 부러웠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이냐 하는 말싸움까지 유창한 영어로... =_=;;
영화 중에는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데, 원래 오리지널 구절은 이렇다.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 너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 122:6)

이상 이것으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20 09:44 2010/01/2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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