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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진포 해수욕장 + 화진포 관광지

주말이 아니라 평일이어서 그런지.. 여기는 크고 유명한 해수욕장임에도 불구하고 해변은 예상 이상으로 사람이 없고 아주 조용하고 황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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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예상 밖의 애로사항으로는.. 이 달밤--이 당시 커다란 보름달이 떴음--에도 바닷가가 하나도 시원하지 않았다. 바다가 지척임에도 불구하고 바람도 전혀 불지 않고 그저 덥기만 했다.
텐트를 세팅하는 동안 땀을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바닷물에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 뒤에 모래와 바닷물을 털어내는 뒷감당이 부담스러운 지경이었기 때문에 못 했을 뿐이다.

새벽에도 이제 땀이나 안 나는 정도이지,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습도가 높았는지, 텐트가 밤에 비 대신 이슬 폭격을 맞아서 다 젖었을 뿐이었다. 기온이 별로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이슬이 이렇게 많이 맺힌 건 습도 탓이겠지..;
개인적으로는 이슬 물기라도 수건에다 적셔서 더위를 식히는 데 활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모래밭은 잔디밭 이상으로 푹신하고, 파도 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려서 좋았다. 이런 건 계곡이나 시냇가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다.
여기는 네임드 메이저 해수욕장이어서 그런지 모래밭에서도 공공 와이파이가 잡혔다. 내일은 벌써 연휴 마지막 날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라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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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쯤에 일어나서 날이 서서히 밝아지는 걸 지켜봤다. 그 뒤, 더 더워지기 전인 아침 7시쯤에 물놀이를 시작했다. 이미 6~7시쯤에 해가 뜨자마자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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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송지호 만만찮게 물이 맑고 얕고 정말 좋았다.
간밤에 너무 더워서 쌓였던 땀과 피로를 속 시원하게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이로써 어제부터 오늘까지 송지호, 명파, 화진포 이렇게 해수욕장 3개를 성공적으로 섭렵했다~~ ^^

8시 무렵이 되자 텐트를 흠뻑 적셨던 이슬은 순식간에 증발하고 없어졌다. 밤에도 별로 시원하지 않았는데 이젠 텐트 안에서 지내는 게 도저히 불가능해졌다.
1시간 남짓한 물놀이를 마친 뒤, 텐트를 철수하고 짐을 쌌다. 짐이 워낙 많아서 한번에 다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침구류 같은 건 화장실에 다녀올 때 조금씩 차에다 미리 옮겨 놓기도 했다.

씻고 옷 갈아입고 텐트와 매트에서 모래를 완전히 털어내는 것도 무척 신경 쓰이고 귀찮았다. ㅠㅠ
물에서 나온 직후에는 한동안 덥지 않고 시원하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뒷정리를 하느라 땡볕 아래에서 오랫동안 있으니 그 보호막이 없어지고, 물놀이 전의 더운 상태로 몸이 되돌아갔다. ㅠㅠㅠㅠ

바다는 계곡에 비해 이런 뒷정리가 참 번거롭긴 하다. 이러니 모래밭 말고 풀밭에 나무 그늘 있는 별도의 바닷가 캠핑장이 장사가 되는 것 같다. 거기는 차와 화장실과 수돗물도 훨씬 더 가까이 있고, 돌아다닐 때 모래 털어낼 걱정도 안 해도 되니까.. 단지, 텐트에서 바다까지의 거리가 더 멀어진다.

아침 9시쯤에 화진포 해수욕장을 빠져나왔다.
본인이 들렀던 해수욕장들은 모두 주차비를 징수한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차단기까지 동작하면서 주차비를 징수한 곳은 화진포 한 곳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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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호와 화진포는 육지 쪽에 호수가 있고 바닷가에 자그마한 바위섬이 있는 게 공통점이다.
그래서 화진포의 성(일명 김 일성 별장) 같은 곳에서 바닷가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고개만 돌리면 호수를 목격할 수 있다.
예로부터 돈과 권력 있는 사람들이 괜히 이 오지까지 찾아가서 별장을 만든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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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호수와 바다 사이의 캠핑장 구간에는 이렇게 숲길이 잘 꾸며져 있었다. 날씨가 더웠지만 이 기회에 여기 산책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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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후에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 내란이 발생할 여지가 없게 해 달라
  • 한반도엔 소련이 개입하지 않고 미국이 단독 진입해야 된다.
  • 북괴는 저렇게 놔 두면 언젠가 반드시 침략해 올 거니까 남한 땅에 제발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력을 남겨놔야 된다. 일본군 무장 해제만이 장땡이 아니다.
  • 우리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공산주의를 빙자한 반역 매국질을 반대하는 거다.
  • "아니, 백범 그 양반은 북한과 대화를 하려면 스탈린을 찾아가야지, 왜 김 일성을 찾아가는가?"

아아~ 건국 대통령 리 승만 할배는 저 정도로 선각자 초인이었다. 단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기 때문에 지상락원 유토피아까지는 못 만들고, 그냥 지지고 볶고 흑역사도 있는 현실 속의 최선, 아니면 끽해야 차선의 국가를 세웠을 뿐이다.
귀가를 앞두고 화진포 리 승만 대통령 별장을 오랜만에 다시 들러서 국뽕을 한 사발 충전했다.

미국이 할배의 말을 안 들어서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도 얼마나 불필요하게 고생하고 삽질을 했나 모른다.
그런데 우리도 가난하고 아무 힘이 없어서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는 처지였으니, 마냥 미국 탓을 할 수는 없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고 한계였으니 말이다.

잠깐만 험악한 막말 좀 하겠다.
리 승만이 분단의 원흉이네, 전쟁 벌여 놓고 튀었네 이 X랄 하는 개새X들,
천안함 함장보고 경계에 실패한 패잔병 씨부리는 씨X놈들. (우리가 군한테 큰 권한을 준 적은 있었냐. 무조건 선빵 맞은 뒤에만 대응 가능하고, 예방 전쟁, 선제공격, 보복 한번 못 한 주제에.. 이건 뭐 군대가 아니라 자위대지..)

그래도 걔들도 인간이니까 먼저 갱생의 기회는 줘야지. 팩트와 정답을 친절히 알려줬는데도 산업화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다 대가리에 총 갈겨서 쏴 X여 버려야 된다.
리 승만 별장에 단체 관광으로 찾아온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좋았다. 이 기붕 별장, 화진포의 성, 화진포 생태 박물관도 다시 들르기는 했는데.. 물론 7년 전 대비 달라진 것도 있지만, 사진 소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상이다.
서울로 돌아갈 때는 7번 국도를 따라 남쪽 속초와 양양까지 갔다. 하조대 해수욕장 구경까지 잠깐 한 뒤 서울-양양(60) 고속도로를 전구간 이용해서 귀가했다.
이 도로는 긴 터널이 정말 많았다. 중부나 외곽순환 같은 익숙한 고속도로를 전혀 경유하지 않고 서울 시내로 진입하니 느낌이 색달랐다.

강원도 북쪽 끝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생각보다 길지 않아서 3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것 같았다. 홍천-춘천 사이에서 차가 많아져서 약간 막혔지만 이 정도는 견딜 만했다. 그러나 남양주에 도달한 서종-화도 사이에서 정말 미칠 것 같은 끔찍한 정체의 헬게이트가 시작됐다.

새로 들어오는 차량들, 공간을 차지하는 일부 고장 차량들, 차로가 줄어드는 구간 등의 요인이 겹쳐서 차들이 나아가질 못했다. 차가 제대로 달리지 못하니 에어컨도 찬바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운전이 더욱 괴로워졌다. 바깥 공기는 뜨거운 한증막 같아서 창문을 열 수도 없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여기는 도로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상습 정체 구간이랜다. 그런데 어차피 주변의 다른 국도들도 왕창 막히고 있기 때문에 딴 데로 우회할 수도 없고.. 도로가 확장이 어려운 고가· 터널 일색인 데다 민자 구간(경춘)도 섞여 있어서 뭘 어찌하기가 난감한 지경이라고 한다.

뭐 이렇게 휴가를 잘 마치고 돌아왔다. 올해 정도면 2018년 폭염보다 더한 걸까? 무더위가 어서 좀 식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후일담으로 일영· 장흥 계곡이나 안양 병목안 계곡도 가 보고 싶다. 그리고 올해 유일하게 폭염경보가 없었다는 평창 대관령 일대도.. 앞으로 여름에 계속 이렇게 더우면 그런 곳도 차차 개척해 볼 생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17 19:35 2023/08/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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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송지호, 명파 해수욕장

텐트 안에서 편안하게 잘 자고 일어났다.
여기도 전날 저녁에는 좀 더웠지만, 새벽이 되자 텐트 창문을 닫아도 될 정도로 시원해졌다. 여기는 저녁에는 뱅이골 공원보다 덜 더웠고, 그 대신 새벽에 시원한 것도 뱅이골 공원보다 덜했다. 온도 변화가 더 작은 것 같다.

아침 8시 무렵이 되자 어김없이 뙤약볕이 내리쬐면서 주변이 몹시 더워졌다. 이제 냇가에서 물놀이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한 뒤, 텐트를 철거하고 고성으로 길을 떠났다. 차창 밖에는 꼬불꼬불 산길과 들판, 개천이 차례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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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고성의 남쪽으로 가서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송지호 해수욕장에 들렀다. 시간은 아침 9시 무렵..
지금까지 계곡과 냇물에서만 물놀이를 하다가 넓은 동해 바다를 접하니 정말 감격스러웠다.
전날 바닷가에서 야영을 했는지 모래밭엔 텐트 몇 개가 이미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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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수욕장이 인기가 많은 이유를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모래밭이 왕창 넓으며, 반대로 동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물이 잔잔하고 얕았다. 거의 100미터 이상 들어가야 내 가슴과 목까지 물이 차더라.
쉽게 말해 황해의 얕음에다 동해의 맑고 시원함이 결합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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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 동안 시원한 바닷물 속을 거닐면서 무더위를 완전히 날려 버렸다.
너무 시원해져서 “이거 뭐 하나도 안 더운데? 피서 괜히 온 거 아냐?” 이런 배부른 생각까지 하다가..
물놀이를 마친 뒤에 열받아서 뜨겁게 달궈져 있는 핸드폰을 만지면서 현타를 체험하는 거.. 이게 개인적으로 최고로 치는 피서 경험이다.

바다는 물의 행동 패턴이나 물놀이 하는 방법이 계곡· 냇물과는 완전히 다르다.
바다는 모래와 소금물 씻어내기라는 후처리가 필요해서 물놀이를 하는 게 다소 번거롭다. 그리고 물놀이를 하는 동안에는 그늘의 혜택을 전혀-_-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피부가 더 타기도 쉽다.
그래도 계곡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넓고, 물 속 바닥 지형이 더 부드러운 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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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소지품의 맨 위에다가 호박 쿠션을 올려 놓으니 멀리서도 눈에 잘 띄고 좋았다~~~ ㅋㅋㅋㅋㅋ
해수면과 모래밭이 이렇게 높이 차이가 나는 건 황해는 절대 해당사항이 없지. 동해 맞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는 근처의 카페(샌드스케치)에서 오전 내내 쉬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옷을 말리고 인터넷을 확인하고, 노트북과 폰과 배터리를 잔뜩 충전하면서 보급을 넉넉히 받았다. 어제 진부령 캠핑장에서는 꽤 오랫동안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 배터리를 또 왕창 소모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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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국도 7을 타고 북쪽으로 한참을 달려서는.. 대한민국 최고위도 최북단에 있는 명파 해수욕장을 찾아갔다.
고성군은 서쪽이 몽땅 산이며 휴전선도 거의 수직으로 쫙 그어져 있다. 그래서 종축 간선 도로인 7번 국도의 좌우로 마을이나 해수욕장이 포도송이처럼 송송 매달려 있는 형태이다.

송지호에서 명파까지는 직선 거리로 25km가 넘었다. 도로는 쌩쌩 달리기 좋긴 하지만 조금 달릴 만하면 교차로 신호에 걸려서 서야 하는 게 애로사항이었다. 아무래도 고속도로가 아니니까.. =_=

송지호 해수욕장 주변은 제법 마을이 있고 으리으리한 호텔도 지어져 있었던 반면, 명파 주변은 자본주의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듯이 낙후한 시골 깡촌이었다. 7번 국도 구도로를 끼고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접근하는 것도 훨씬 더 불편했다. 뭐, 여기는 통일 전망대 검문소가 지척에 있을 정도의 최북단 오지이니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

7년 전에도 여길 가 본 적이 있었는데 이 정도로 차이가 났었나? =_=;; 물론 그때는 해수욕장이 폐장 상태였기 때문에 명파는 해변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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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파는 모래밭과 해변의 크기도 송지호보다 더 작았다. 하지만 낮 시간이고, 또 전국 최북단이라는 인지도가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피서객이 많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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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여기서도 30분이 넘게 2차 물놀이를 하면서 또 시원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수욕장이 규모가 작으니 주차장에서 모래밭까지, 모래밭에서 바닷물까지 거리가 짧고 금방 갈 수 있었다. 이게 의외로 편하고 좋았다. ^^

현장에 있던 당시에는 명파나 송지호나 수질은 비슷하고 명파가 좀 더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명파는 송지호보다 물이 덜 맑은 것처럼 찍혔다. 시간대와 광량, 카메라의 상태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로 그런 수질 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명파에서 물놀이를 마친 뒤에는 고성군에서 중심부에 속하는 간성읍에 갔다. 여기서 개인적인 쇼핑과 잉여질을 하고, 낮잠도 한숨 자면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보급을 받았다.
읍내의 도로에는 의외로 "30분 이상 주차 시 단속"이라는 페널티가 걸려 있었다. 해수욕장 때문인지 양구· 인제보다는 주차 조건이 더 빡빡했다. 그래서 차를 오래 세우려면 골목 같은 더 구석을 찾아 들어가야 했다.

해가 진 뒤, 이번 여행의 종지부를 찍은 곳은 화진포였다. 여기도 7년 전에 들러 보긴 했지만, 그래도 경치가 워낙 좋은 곳이니 또 들를 가치가 있어 보였다.
캠핑도 여기 모래밭에서 했다. 이로써 강가 캠핑과 바닷가 캠핑을 모두 달성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15 08:35 2023/08/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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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후 보급 + 진부령 유원지

이렇게 두타연과 첫 물놀이 미션을 마친 뒤엔 더 동쪽의 인제· 고성으로 향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게 됐는데..
전날 캠핑을 했던 장소인 뱅이골 공원에 다시 들러서 여기서 잠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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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시각은 12시 반. 정말 살인적인 뙤약볕이 내리쬐었지만 이 그늘 아래의 벤치는 생각보다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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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은 쉬거나 캠핑을 하는 장소로 정말 좋은 것 같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완전 한적하고 조용하고 자연의 정취가 느껴지고.. 이런 곳에서 최대한 오래 머물러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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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 인제로 갈 때는 국도 31을 타고 쭉 달렸다. 이 도로로 진입하기 위해서 어제 들렀던 파로호 부근까지 되돌아가야 했다.
이거 말고 다른 길은 지방도 453이 있더라. 얘는 양구 해안면 펀치볼을 경유하는 꼬불꼬불 산길인데.. 경치는 좋을 것 같지만 딱 봐도 경로가 국도 31보다 더 삽질스러워 보여서 그리고 가지 않았다.
하긴, 7년 전에는 제4 땅굴과 을지 전망대를 보러 해안면으로 갔으니 저 길을 지나갔지 싶다.

산을 하나 넘고 긴 터널을 지나니 행정구역이 인제로 바뀌었다. 가는 길에도 시냇물과 계곡을 몇 번이나 마주쳤으며, 거기에도 대낮부터 텐트 치고 캠핑하는 사람이 여럿 보였다.
본인은 인제군 원통리 읍내에서 그야말로 총체적인 보급을 받았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으며, 근처 카페에 들러서 약 2시간 동안 인터넷을 확인하고 노트북과 폰, 보조 배터리를 가득 충전했다. 여기가 정말 오아시스 같았다.

그 다음 인제에서 고성으로 가는 길(국도 46)도 아주 경치 좋은 산길이었으며, 산을 하나 넘으니 계곡을 나란히 따라갔다. 이런 길을 오랫동안 운전하니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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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과 진부령이 나뉘는 갈림길 부근에서는 온통 황태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던데.. 그뿐만 아니라 이런 명물이 있었다.
'매바위 인공 폭포'라고 높이 83미터짜리 폭포라고 한다. 그 많은 물을 어디서 어떻게 저 높은 곳까지 끌어올렸다가 떨어뜨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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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보라와 바람을 쐬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못해 쌀쌀할 정도였다. 여기도 정말 훌륭한 피서지였다.
그리고 저 맑은 물에 바로 뛰어들어서 몸으로 폭포수를 직접 맞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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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 정상에 도달했다가 쭉 내려가는 도중엔 이렇게 졸음 쉼터가 잘 꾸며져 있었다. 지방도 460에 있던 그 해산 전망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제 날도 슬슬 저물고 있는데, 이런 풀밭에 텐트를 치고 자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하지만 여기는 물놀이를 할 곳이 없고 화장실도 없으니.. 원래 캠핑을 하기로 계획한 곳까지 그냥 갔다.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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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이다. 둘째 날 캠핑을 한 곳은 진부령 유원지이다. 이번에는 아무도 없는 오지가 아니라 정식 캠핑장을 찾아갔다.
어쩌다 보니 입장료 지출까지 하게 됐지만, 이게 나름 장점도 있었다. 시냇물이 바로 코앞에 있는 곳에다가 차를 대고 텐트를 칠 수 있었으며, 수돗물과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캠핑장에는 나 말고도 텐트를 친 팀이 3개 정도 더 있었다. 의외로 애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는 아니고 다들 중· 장년 아저씨들이었다. 그래도 캠핑장의 면적에 비해 이 정도면 아주 조용하고 한산하고 공간이 충분히 여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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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은 맑고 시원하고 양도 많았다. 얕아 보여도 깊은 곳은 나름 가슴까지 물이 찼다.
낮에 이어 저녁에도 온몸을 시냇물에 담그니 무더위가 완전히 날아가고 세상 근심 걱정까지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물놀이를 마친 뒤엔 텐트 안에 누워서 글과 코딩 작업을 했다.

이렇게 여행 둘째 날이 저물었다. 지금까지 산과 계곡을 즐기는 여행을 했다면, 다음 날부터는 바다를 즐길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13 08:35 2023/08/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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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타연 + 물놀이

새벽에 뭔가 싸늘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떴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주변은 더워서 땀이 날 정도였는데 지금은 기온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뚝 떨어져 있었다. 텐트 창문을 닫고 심지어 텐트 커버를 덮어야 할 정도였다.

유일한 애로사항이던 무더위가 해소되니 여기는 진정한 지상락원 무릉도원으로 거듭났다. ^^ 먼 길을 달려 피서를 떠난 보람이 있었다. 이 상태로 아침 8시 무렵까지 있으면서 푹 잘 쉬었다.
(스포일을 미리 하자면.. 이게 이번 강원도 여행 전체를 통틀어서 경험했던 가장 시원한 밤이었다. 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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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벌써부터 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텐트가 나무 그늘 아래에 있었던 덕분에 아직까지는 별로 덥지 않았다. 이제 여기서 북쪽으로 몇 km 남짓 더 가서 두타연 관광을 떠났다.

두타연~~!! 평화의 댐 근처에 이런 게 있다고 얘기는 어렴풋이 들어 왔지만, 민통선 안에 있다고 그래서 지금까지 범접하지 못했다. 지금은 1회당 최대 100명씩 하루에 3번만(아침 10, 오후 1, 오후 3) 군인들의 통제 하에서 입장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나야 제일 이른 아침 10시를 선택했다.

저기는 민통선 안이기 때문에 들어가려면 마치 국제선 비행기를 타는 것 같은 보안 검색을 거쳐야 했다. 차 뒷좌석과 트렁크를 군인에게 형식적으로나마 보여줘야 했을 정도이니..
그 뒤 수십 명의 인원이 자기 차를 몰고 일렬로 늘어서서 한꺼번에 입장하고 퇴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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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민통선 입구(안내소)에서부터 두타연 바로 근처의 내부 주차장까지도 수 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그 찻길은 몽땅 비포장이더라. 한번 주행하고 나면 차가 흙먼지를 왕창 뒤집어쓰기 때문에 세차를 해 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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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편한 절차를 감내하고 결국은 두타연 계곡을 보게 되었다. 강물이 한데 고였다가 흐르는 커다란 계곡? 물웅덩이 내지 폭포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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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경치는 듣던 대로 정말 아름답고 한편으로 웅장했다. 하지만 힘들게 찾아갔는데 여기서 물놀이나 캠핑을 할 수 없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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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의 자유도는 단체 패키지 관광보다 약간 나은 정도였다. 그냥 서너 팀 정도로만 갈라져서 군인이 지켜보는 상태로 1시간 남짓 머무르는 게 전부였다. 가이드만 따라다닐 수도 있고, 가이드의 페이스가 답답하면 몇몇 무리에 껴서 이탈할 수 있었다.
(원래는 이 정도까지 통제는 안 했댄다. 허나, 최근의 그 미군 월북 사건을 계기로 보안이 더 강화됐다고.. =_= 아놔 그거랑 이게 뭔 상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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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아래에서 한 컷.. 이런 몇몇 지점에서 계곡 물에 손발을 잠깐 담그는 것까지만 가능하다. 이런 곳에서 제대로  쉬지를 못하고 그냥 눈요기만 하고서 허겁지겁 돌아와야 하다니. ㅠㅠㅠ
모든 관광객들은 목걸이를 받는데, 거기에 GPS가 달려 있다고.. 돌발행동이 감지되면 군인들이 바로 출동한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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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연 소개는 이 정도까지 하련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는 민통선 이북 특유의 자연 경치 하나는 정말 죽여 준다.
그러나 나 정도로 안보 관광에 관심이 있거나 자연 계곡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런 보안 불편을 감수하고까지 꼭~~ 갈 만한 곳이라고는 말을 못 하겠다. 물놀이 텐트질을 할 거면 그냥 여기보다 더 서쪽의 천미 계곡을 한번 더 가는 게 나을 테니까.
여기는 특별한 곳에 한번 와서 이런 비경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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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연 입장 안내소로부터 1.5km 남짓 남쪽에는 다리 아래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는 두타연과 달리 입장에 아무 제약이 없다. 그러니 본인은 여기서 물놀이를 하면서 더위를 식혔다. 시원한 냇물에 온몸을 적시니 낮 기온 35도에 달하는 폭염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오전 시간을 이렇게 보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10 19:36 2023/08/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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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하순부터 두 주 가까이 우리나라엔 살인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아주 가끔씩 국지적인 소나기 정도나 찔끔 내린 것 같지만.. 무더위의 해소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되었다(서울· 수도권 기준). =_=;;
그나마 그 직전에 워낙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지, 이 와중에 가뭄 걱정이 없는 건 다행이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에어컨을 그렇게 많이 틀어댔을 텐데 전기 공급에 트러블이 딱히 없는 것도 다행..

본인은 지난 현충일 연휴로부터 거의 두 달 뒤인 7월 말과 8월 초에 걸쳐서 강원도 동북부에 여행을 다녀왔다. 날씨가 저 지경이니 하계휴가로서는 이때가 정말 최적의 시기였다.
현충일 때 철원과 화천에 갔다면, 이번에는 더 멀리 동쪽까지 가서 양구와 고성을 찍고 바다에 도달했다. 3박 3일 동안 계곡과 바다를 모두 구경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 여행은 7년 전, 2016년에 다녀왔던 여행과 일부 겹치는 구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워낙 옛날이기도 하고, 또 그때는 해수욕장이 폐장한 9월 초에 간 것이었기 때문에 피서 효과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또한, 지난 6월 여행 때는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강원도 북부를 다녔기 때문에 고속도로는 포천-구리(29)밖에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춘천까지 서울-양양(60) 고속도로를 타고 순식간에 이동했다. 강원도에 가는데 영동(50) 고속도로를 전혀 이용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강촌 IC를 앞두고 홍천강을 건널 때, 다리 아래의 풍경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거기 강변엔 유원지와 캠핑장이 있어서 차량과 텐트들이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늘어선 상태였기 때문이다. 오~ 저기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 보고 싶다.

철도와 잠시 비교를 해 보자면.. 영월과 태백을 찍고 강릉으로 올라가는 기존 태백선과 영동선 철도는 고속도로로 치면 40과 비슷할 정도로 너무 남쪽으로 우회한다.
그나마 50과 대등한 강릉 방면 준고속선 철도가 2010년대 말에 평창 동계 올림픽 덕분에 만들어지긴 했다. 그러나 그 무렵엔 고속도로는 50보다 더 올라가는 60이 만들어지면서 격차가 다시 벌어지게 됐다. 과연 60에 대응하는 철도가 만들어지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1. 파로호, 뱅이골 공원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뒤, 춘천 동부 외곽에서 양구까지는 46번 국도를 따라 이동했다. 길은 대체로 2차로이지만, 터널이 많고 곧고 길게 잘 뚫려 있었다.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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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외국어 고등학교, 양구 선사 박물관, 양구 역사 체험관을 거쳐서 파로호 한반도섬 부근에 도달했다. 토요일 오후에 좀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이때는 이미 저녁 6~7시가 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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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뭔가 팔당호에 있는 팔당 물안개 공원 내지 두물머리 공원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는 꼭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1시간 남짓 산책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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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 그늘은 한낮에도 생각보다 시원할 것 같다. 밤에 혼자 이런 곳에 텐트 치고 있어도 무척 아늑하고 시원할 것 같긴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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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다들 이렇게 생겼던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렇게 자그마한 갈대밭 위로 목재 데크 산책로만 있는 지역은 진짜 한반도섬이 아니었다. 저기서도 다리를 건너서 건너편으로 한참을 더 가야 한반도섬이 나왔다.
진짜 한반도섬은 자동차까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정말 큰 육지이고, 안에 온갖 건물과 조형물까지 있더라만.. =_=;;

나는 그냥 넓은 주차장 공터가 있고 한반도섬 이정표가 있는 강변에서 막연히 산책을 시작했는데, 거기는 한반도섬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안내가 거기엔 충분히 돼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난 한반도섬 근처의 갈대밭 습지만 산책하다가 돌아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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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아무 배경지식 없이 갔다가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 뭐냐 하면..
파로호라는 것 자체가 ‘화천 파로호’와 ‘양구 파로호’로 나뉘어 있고, 둘은 사실상 별개의 호수라고 봐야 할 정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7년 전에 화천댐과 함께 전망대, 안보 전시관을 끼고 있던 파로호는 북한강을 낀 전자이다.
그러나 한반도섬이 있는 이 파로호는 양구 서천을 낀 후자이다. 이런~
철원 마현리와 화천 마현리는 그래도 인접해 있기라도 하지만 화천 파호로와 양구 파로호는 그렇지도 않다. 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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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를 떠나서 더 북쪽으로 가니 국도 31을 벗어나 꼬불꼬불한 산길인 지방도 460이 나왔다. 이 길가에 '뱅이골 공원'이라는 게 있어서 본인은 여기 풀밭에다 텐트를 치고 드러누웠다. 이때쯤 되니 시간도 밤 8시를 넘어가고 날이 저물었다. (위의 사진은 이튿날 아침에 찍은 것임 =_=)

여기는 정말 환상적인 장소였다.
푹신한 잔디밭이 넓게 깔려 있으면서 은폐성 좋고 적막하고 주변에 아무도 없고, 주차 공간 넉넉하고 차와 아주 가까이에서 캠핑 가능하고..
정말 지상락원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여기는 다른 벌레가 돌아다닐지언정, 모기도 없는 것 같았다.

단, 날씨가 날씨이다 보니 해가 진 뒤에도 텐트 창문을 열고 물을 적시면서 버텨야 한다는 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었다.
비탈 아래에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하지만 수풀이 너무 무성해서 지금 차림으로는 더 내려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환상적인 캠핑을 즐기다가 곧 잠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08 08:35 2023/08/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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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호박 농사

본인은 올해는 지난 4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약 3개월 동안 호박을 두 곳에서 키웠다.
한 곳은 집 옥상의 화분,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집 근처 강변의 아지트. 후자는 일종의 무단경작이다.

옥상 화분은 뿌리 내릴 공간이 부족해서 그런지, 아니면 작년부터 지금까지 연작을 해서 지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퇴비와 비료, 영양제를 막 넣어 줘도 애들이 자라는 게 영 시원스럽지 않고 작년보다 못한 것 같았다. 잎이 잘 시들어 떨어지고, 씨방이 생기던 것도 암꽃이 피지 못하고 떨어졌다. 다음에 농사 지을 때는 흙을 전면 교체해야 할 것 같다.

얘들보다는 강변의 진짜 땅에서 키우는 호박이 관리를 덜 해 줘도 훨씬 더 크게 잘 자랐다. 그러니 무단경작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상한 쓰레기 전혀 없고 농약 안 쓰고, 주변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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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답고 탐스럽지 않은가? (마지막 사진은 새벽 5시 반쯤에 찍은 것이어서 좀 어둡다 ㄲㄲㄲㄲ)
내 기억이 맞다면 얘들은 6월 초쯤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그 무렵부터 이제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덩굴을 길게 뻗기 시작했다. 줄기가 길어지고 굵어지고 거의 괴물처럼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다. 잎 한 장 길이가 30~40cm에 육박하기 시작했다. 싹이 난 지 거의 45~50일 만에 영양 생장에 완전 재미를 붙인 듯하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 했는데 호박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상상을 초월하게 커졌다. 너무 비좁아져서 내가 지나가지도 못할 정도가 됐다. 아이고, 안 그래도 하천변에 불법 무단경작인데, 꼬리가 너무 길어지면 밟히는걸?? 호박이 너무 잘 자라도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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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덩치가 워낙 커졌으니 잎을 10여 장 정도 따도 티가 안 날 정도였다. 지난 6~7월 동안 본인은 호박잎을 거의 150~200장 가까이 따서 먹었다. 고기나 젓갈과 함께 쌈 싸서 먹기도 하고, 라면이나 매운탕에다가 넣어서 먹기도 했다. 교회 사람들에게도 두 차례에 걸쳐 40~50장 정도 나눠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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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꽃이 수십 송이 핀 뒤, 지난 6월 중순쯤에 한 덩굴에서 드디어 첫 암꽃이 폈다. 수분해 준 것은 성공해서 부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탐스러운 단호박이었다.
암꽃 열매가 4~5개 정도 맺힌 뒤, 7월 초순까지는 암꽃이 좀체 피지 않고 수꽃만 계속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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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작고 색깔 짙은 아이(A, 왼쪽 위)가 바로 내가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가 꽃가루를 직접 묻혀 주고 수분 성공까지 확인한 최초의 단호박 열매이다.
그 반면, 다른 하나(B, 오른쪽 위)는 꿀벌이 수분해 줬다. 저 구석탱이에 쳐박혀서 지금까지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했다.
덩굴 줄기를 밟는 걸 감수하고라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보물찾기 하듯 덩굴을 수색하다가 발견하게 됐다.

단자의 모양을 보아하니 다들 일반호박이 아니고 어여쁜 단호박이었다.
하지만 둘 다... 땅에 닿은 바닥 부위가 물러지고 상하고 있어서 결국 못 먹고 버리게 됐다. ㅠㅠㅠ
어쩐지 A는 표면 색깔이 저렇게 짙어지고 줄무늬까지 선명하게 생긴 와중에 크기가 너무 커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낙과하는 조짐도 전혀 없고, 윗부분은 눌러 봐도 아무 이상이 없어서 그냥 놔 두고 있었는데..
들어올려서 밑바닥 부위를 보고는 기겁했다. 벌레까지 꼬이면서 난장판이 돼 있었다.

B는 표면을 함 보소~ 단호박도 아니고 일반호박도 아니고 참 특이하게 생겼으나~ 발견 자체가 너무 늦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역시 바닥 부위는 난장판.
최대 길이가 12cm에 달할 정도로 잘 자랐고 안에 씨도 형성돼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물렁물렁한 게 식용 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수분 성공한 뒤에도, 식물 본체로부터 낙과 당하지 않더라도 열매가 의외의 방식으로 낙오할 수가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ㅠㅠㅠ
난 이렇게 유산된 아이는 여느 쓰레기로 취급하여 버리지 않는다. 특별히 해로운 병충해를 당한 게 아니면, 원래 자라던 텃밭에다 도로 묻어 주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다른 열매 하나는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도난 당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잎을 뜯어 가면서 얘까지 건드렸는지, 어느 샌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제대로 자란 커다란 열매도 아니고 이런 걸 누가 따 가나 모르겠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아래의 C 하나만이 남았다. 일단 모든 부위에 이상이 없는 걸 확인했고, 얘는 바닥 부위가 썩지 말라고 흙에 닿지 않게 비닐 씌우고 바닥에 다른 깨끗한 받침대까지 깔았다.

그랬는데....
이 호박밭은 지난 7월 14일, 물의 넘침으로 말미암아 멸망했다. ㅠㅠㅠ (벧후 3:6)

서울 시내에 딱 한 번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서 주요 하천들에 둑이 범람했을 때..
한 6~7시간 정도 흙탕물 속에 잠겼더니 호박이 그걸 못 버티고 싸그리 전멸해 버렸다. 줄기가 다 쓰러졌고 다시 소생하지 못했다. 새순이 돋지 않고, 잎과 줄기는 물렁물렁해지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드가 됐다.

내가 그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강 코앞에서 텐트 치고 지켜보다가 호박들의 마지막 순간을 최대한 근처에서 지켜보고 함께하는 것이 전부였다.
농경지 침수 피해를 입은 농민 심정을 약간이나마 알 것 같았다.
옥상 화분에서 키우는 거 말고, 강변에서 무단경작 하고 있던 아이들과는 이렇게 이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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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딜 틈조차 없이 무성하던 호박 덩굴은 모조리 죽어 없어졌는데.. 거기서 호박과 경쟁하며 같이 자라던 잡초들은 불과 며칠 만에 시퍼런 잎을 또 내면서 자라고 있더라. 똑같이 물에 잠겼는데도! 아~~ 이래서 과육 위주로 자라는 식물이랑, 단순히 성장과 번식만 하는 잡초는 서로 차원이 다르구나 싶었다.
환삼덩굴. 얘는 가시박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강변을 접수하고 있는 생태계 교란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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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됐던 강변 호박 잔해를 뒤져서 그나마 아까 그 열매 C만을 건져 와서 쪄서 먹었다. 지름 13cm 남짓한 튼실한 단호박이었다. 혹시 이것 말고 다른 열매가 몰래 맺힌 게 없는지 잔해를 최대한 샅샅이 뒤져 봤지만 일단은 없었다.
잔해 수색을 마치고 복귀하기 전엔 호박밭에다 거수경례를 했다. 지난 3개월간 너희 덕분에 내가 행복했다. ^^

시장에서 파는 단호박은 표면에 아무 냄새도 안 나던데.. 이렇게 직접 키워서 딴 호박은 표면에서 호박 내부 특유의 비누 냄새가 진동을 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니 비누 냄새는 향내가 아니라 뭔가 고약한 지린내에 더 가까워졌다.
이건 도저히 오래 놔 둘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하루만 놔 뒀다가 바로 먹게 됐다. 두 끼 정도 분량이 나왔다. 물에 잠겨서 보존성이 더 나빠진 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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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가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딱 한 군데.. 그나마 물에서 상대적으로 먼 곳에 심겼던 줄기 한 곳에서 싱싱한 새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거라도 애지중지 잘 키워야겠다.

얘는 도대체 어느 덩굴 출신인지 출신을 추적하기가 참 난감했다. 그걸 찾아내야 이 더운 날에 물을 제대로 줄 수 있는데..
뿌리로 추정되는 부위를 발견하긴 했다. 하지만 거기 일대는 이미 다 물러지고 연해져 있던걸? 거기를 통해서 본체에 물과 영양이 공급된다고는 영 믿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얘는 놀랍게도 줄기 한두 군데에서 뿌리가 새로 내려가서 땅 속에 박혀 있었다.
줄기를 딴 방향으로 옮겨서 정리하려고 들어 봤는데 뭔가에 걸려서 반응이 없었다. 이게 단순히 다른 장애물 때문이 아니라 새 뿌리 때문이었다.

스타크에다 비유하자면 본진이 바뀐 거나 마찬가지이다. 원래 심겨졌던 뿌리 부위가 빗물에 몇 시간째 잠겨 질식사했기 때문에 호박이 살려고 저런 몸부림까지 쳤던 듯하다. 이런 광경은 개인적으로 처음 봤다.

이상이다.
직접 키운 호박을 더 구경할 수 없어서 몹시 아쉽지만, 그래도 이제 벌써 8월이다. 앞으로 3~4주쯤 뒤면 갓 수확된 늙은 호박을 돈 주고 살 수라도 있을 테니 기대된다.
동네 반찬· 채소 가게에서도 구경하려면 9~10월은 돼야겠지만, 인터넷이나 도매상 레벨에서는 이미 올라올 테니 말이다.

옛날에 남궁 억 선생이 무궁화 심기 운동을 벌였다고 하는데.. 난 호박 심기 운동을 벌이고 싶다. 전국 방방곡곡의 노는 땅에 호박 덩굴이 가득하기를..
외부인의 침입 걱정 없고 침수 걱정 없는 시골에서 내 손으로 5kg짜리 누런 늙은호박을 직접 키워서 따고 싶은데 말이다.. ^^ 죽어서도 호박밭에 묻히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05 08:36 2023/08/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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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천의 계곡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6~7시쯤부터 이미 햇볕 열기가 느껴지고 추위가 풀리는 듯했다.
여기는 밤과 새벽에는 어제의 한탄강 주변보다 더 추웠고, 아침에는 거기보다 더 빨리 따뜻해진 것 같았다.
이 좋은 곳에서 더 오래 머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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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 주변은 경치가 정말 멋지긴 한데, 7년 전에 가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특별히 사진을 더 찍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한적한 화천-양구 일대에서 월요일 평일 아침을 맞이하다니.. 이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평화의 댐은 국가 기간 시설인 댐, 그것도 위험한 최전방에 있는 댐인 관계로, 주변 아무 데서나 호락호락 캠핑을 할 수는 없댄다. 아래의 강 주변에 오토캠핑장 정도나 있고, 여기에는 사람들이 여럿 이미 캠핑 중이었다.
본인은 거기를 지나서 더 북쪽으로 더 가 봤는데.. 여기서 그만 지상락원을 발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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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천미 계곡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양구라고 한다. 예전에는 민통선 안에 있었는데 피서 관광 수요 때문에 민통선이 더 북으로 물러나는 걸로 개정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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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처럼 맑고 시원한 물, 아니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제일 깊은 웅덩이에는 물이 가슴 정도까지 찼다. 바닥은 진흙이 아니라 깔끔한 자갈이었다.
나름 자동차로 접근하기 좋고, 주변에 깔끔한 화장실도 있어서 1박 정도 하기에도 좋았다.

난 여기서 물놀이를 하고 그늘에서 좀 쉬면서 2시간 정도 머물렀다. 여기에 있으니 정말 행복했다.
그러고 보니 '두타연'이라는 곳이 그렇게도 유명하다는데, 그건 여기보다도 동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 나오는 듯하다. 난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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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다음으로는 서남쪽으로 화천과 춘천 사이에 있는 사창리 마을로 향했다. 거기로 가는 길도 북한강을 따라 호수도 나오면서 경치가 아주 아름다웠다.
7년 전에 지나쳤던 화천댐을 다시 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쪽 파로호 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갔다.
강변 도로를 벗어난 뒤엔 철원-화천-양구 못지않게 굽고 가파른 산길이 이어져서 운전이 아주 재미있었다(국도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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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리에 도착해서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인터넷을 확인하고 노트북을 충전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음식과 취사 도구를 잔뜩 챙겨서 캠핑지에서 밥을 해 먹는데, 나는 그러지 않고 오지 캠핑지에서는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잠만 잤다. 먹고 마시는 보급은 마을에서 한다. ^^

벌써 셋째 날 오후가 됐으니 이제는 포천· 서울 방면으로 발길을 돌렸다(지방도 372).
내비 지도에 나와 있지도 않은 작은 개울이 길 옆으로 계속 지났는데, 아니나다를까 광덕 계곡이라는 게 있었다. 여기도 맑고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고 천미 계곡 만만찮게 환상적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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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난 이런 걸 보면 정말 환장한다. ^^ 지상락원 2인 듯..
내려가서 접근하기가 좀 빡셌지만, 난 그런 건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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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당장 내려가서 물놀이를 하고, 바위에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하며 좀 쉬었다. 아무도 없는 계곡에서 자연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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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 계곡을 지난 뒤에도 계곡 내지 개울물이 길을 따라 계속 이어졌다. 나중에는 백운 계곡이라는 곳도 지났는데, 여기서는 물놀이를 하지는 않고 구경만 하고 넘어갔다. 여기는 주변에 식당도 이미 많이 들어서 있어서 자연을 즐긴다는 느낌이 훨씬 덜 났다.

이렇게 계곡 구경을 실컷 한 뒤, 포천으로 가는 국도 47에서 오랜만에 속도를 냈다. 시속 80 이상을 밟아 보고 신호 대기와 도로 정체를 보는 게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철원이나 화천에 비하면 서울과 많이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집에서 여전히 60km 이상 떨어져 있었다.
5시 반쯤엔 길가의 중국집에서 밥을 사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이게 오늘의 최초이자 유일한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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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보니 포천천이라는 강이 있었다. 차를 세울 수 있고 한적하고 강가에 접근도 어렵지 않아 보이니, 오늘 밤엔 여기서 텐트를 쳤다. 아침에 봤던 맑은 계곡에 비하면 수질이 아쉽지만, 이렇게 외박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해가 지자마자 좀 일찍 잠들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새벽 1시쯤에 눈을 떴다. 텐트를 철거하고 차로 돌아와서 곧장 서울로 귀환했다. 구리-포천 고속도로(29)에서 시속 150 가까이 밟으며 잘 달렸다.

이상이다. 이렇게 중북부 전방 지상락원 여행을 잘 마쳤다.
지난 2021년과 2022년은 우한 괴질 창궐과 몇몇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여름에 장거리 여행을 못 했다. 그냥 양평이나 영종도 정도나 다녀오고 말았는데..
이제 올해는 장거리 여행을 가고 그것도 몇 차례에 나눠서 갈 생각이다. 올 7~8월 사이엔 몇 년 동안 못 갔던 강원도 동해 바다에 다시 가 보련다.

계곡이 너무 아름다워서 은퇴하고 나서는 화천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진지하게 들었다.;; 여기서 호박 농사 짓고 애완용 멧돼지도 키우는 걸로.. ^^

Posted by 사무엘

2023/06/24 08:35 2023/06/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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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았다 뜨니 이튿날 새벽 5시 반이었다. 텐트에서 잘 자긴 했는데, 이 시간엔 날씨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쌀쌀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난 침낭을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텐트 밖으로 나가니 지금이 무슨 10~11월은 된 것 같았다. 그나마 텐트 안은 바깥보다 훨씬 더 따뜻해서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지낼 만했다. 극과 극인 일교차를 다시 실감했고, 시원한 여기까지 찾아간 보람을 느꼈다.

철원에는 한킹을 사용하는 말보회 계열 지역교회가 있더라. 일요일이니 본인은 거기 가서 예배에 참석했다.
언뜻 본 기억으로 온 사람이 20여 명 정도 온 것 같았다. 이 시골에 이런 마이너한 교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목사님 부부를 포함해 교회 사람들이 본인을 아주 반갑게 환영하고 맞이해 주셨다. 목사님 부부는 평일에는 다른 생업이 있으신 듯했으며.. 사모님이 아주 당차고 믿음이 굳건하신 것 같았다. 그리고 아들이 아니라 딸이 있어서 예배 때 플루트를 부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교회에서 오전· 오후 예배에 참석하고 점심을 먹고 노트북 배터리도 든든히 충전했다.
여기 근처에 박 정희 대통령의 군 전역 기념 공원(현재 명칭은 군탄 공원)이 있다고 해서 잠시 들른 뒤, 다음으로 동북쪽 화천 방면으로 길을 떠났다(국도 5).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 이 유명한 말을 한 곳이 여기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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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이렇게 생겼고 넓은 풀밭이 잘 꾸며져 있었다. 국도 43호선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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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쪽 구석에 이렇게 박 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조형물--동상, 기념비, 친필 석판--들이 세워져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박 정희 기념관 방문 같은 체험을 하고 가는구나. ^^.

(그나저나 박 정희도 그렇고 나중에 전 두환도 그렇고.. 이 사람들은 현역 시절에 유의미하게 복무한 계급은 투스타 소장이다. 중장은 몇 달 정도만 달고 있다가 대장으로 진급하고, 그러고 나서 거의 직후에 전역했다. 그래서 최종 계급은 다들 포스타인데..
장군 계급장이 무슨 병 작대기 계급장도 아니고 뭐냐..;; 전역하는 달 내지 당일에 병장 달아 주고 전역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다. -_-;; )

3. 철원-화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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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탄 공원을 둘러본 뒤, 본인은 국도 43호선을 타고 북쪽 끝까지 이동했다. 길은 저렇게 전형적인 좁은 시골길 모양이었다.
9년 전에는 제일 동쪽 끝까지 갔던 게 전선 휴게소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동쪽이다.

그런데 국도 43에서 국도 5로 갈아타는 길목이 민통선으로 막혔고 더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쪽으로 도로 후퇴해서 국도 56을 타고 막힌 구간을 우회한 다음에야 국도 5의 화천 방면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예기치 못한 삽질을 좀 했다.
서쪽의 지방도 464도 일부 구간이 민통선으로 막혀 있는데.. 여기도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이걸로도 모자라서 철원과 화천을 왕래하는 국도 5호선 산길도 통째로 다 민통선 안이다.
하지만 여기는 외지인은 자기 연락처를 알려준 뒤, 임시 통행증을 받아서 단순 통과 정도는 할 수 있었다. 30분 안으로 건너편 초소에 도달해서 통행증을 반납하란다. 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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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근남면 마현리 마을이 바로 이 민통선 안에 있더라. 아아..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조국 강산의 가장 중심된 이 농토가 누구의 피땀으로 가꾸어졌는가를.
울진에서 발생한 태풍 사라의 수재민 66세대가 1960년 4월 7일 (4 19 의거 직전이었군!! 인생 한번 참 타이밍..)
이 땅에 입주하여 고달픈 천막 생활과 허기진 배를 주리며
피땀으로 얼룩진 괭이와 호미로 6· 25 동란 이후 버려졌던 황무지를 옥토로 가꿨던 것이다"

저 때는 울진이 강원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강원도지사의 재량으로 철원 이주가 가능했다.

그랬는데, 일단 저기 가면 지원 많이 해 주겠다는 약속이 정권이 바뀌면서 전부 나가리 났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입주했던 첫 세대들이 새 되고 피똥 싸는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건 기념비 옆에 선 내 모습 사진도 남기고 싶었으나, 동승자도 없고 주변에 다른 사람도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기념비의 뒤에는 실제 입주했던 66세대의 세대주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경부 고속도로 건설 순직자 위령탑도 뒤를 보면 순직자 77인의 명단이 새겨져 있는데, 이와 같은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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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은 이렇게 생겼더라. 마현 초등학교라는 학교가 있기도 했으나, 이건 이미 15년도 더 전에 폐교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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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산을 타기 시작했는데.. 오오, 금성 지구 전투 전적비가 있었다. 저거 6 25 사변 중 최후의 고지전 전투가 아니었던가? (중공은 오늘날까지도 이 전투에서 국군과 UN군을 꺾은 걸 대대적으로 자랑하고 선전한다)

잠깐 차에서 내려서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었다.
옆에 웬 탱크도 하나 전시돼 있어서 둘러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차량 번호 oooo 운전자 김 용묵 선생님이시죠?" / "네 그렇습니다" (왜??? 차 빼달라는 연락도 아니고 뭐지??)
"xx시 xx분경에 yyy초소를 통과하시고 지금 전차 옆에 서 계시죠?" (헉 뭐야)
"CCTV로 보고 말씀드리는 건데요. 정차하고 차에서 내리시면 안 돼서 연락드립니다"
(으악) "아.. 전적비가 하나 있어서 구경 좀 하고 있었는데.. ㅠㅠㅠ 네 알겠습니다."

웬 또랑또랑한 여자 목소리로 이런 얘기가.. 게다가 유선 전화도 아니고 010 개인 핸드폰 번호이던데 말이다.
너무 놀라서 탱크 사진은 찍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차로 돌아갔다. ㄷㄷㄷㄷㄷ
작년쯤에 버스 정류장 안에서 마스크 써 달라는 방송을 듣고 화들짝 놀랐던 거 이래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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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 전적비의 근처에는 이렇게 순직 군장병 위령비? 추모비가 있었다.
지난 1996년 7월 26~27일 사이에 여기 일대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고, 특히 산사태가 병영을 덮쳤던가 보다. 이 때문에 군인이 23명이나 순직했다고 한다. 병뿐만 아니라 간부도 여럿 희생됐다.
직장 사람 중에 공교롭게도 그때 저 지역에서 군복무를 해서 저 사고를 어깨 너머로 직접 들은 사람도 있었다.;;

이 추모비는 저 전화가 오기 전에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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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겪은 뒤, 5시 반쯤에 화천의 산양리 마을에 도착했다.
그 전에 마현리가 너무 길게 계속되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철원 근남면 마현리와 화천 상서면 마현리가 서로 인접해 있다고 한다. ㄲㄲㄲㄲㄲ

동서울 터미널에서 행선지 이름으로만 봤던 '산양리'를 실제로 구경하다니!!
주변엔 식당, 편의점, PC방과 버스 터미널이 있어서 나도 캠핑을 앞두고 음료수와 간식을 샀다. 일요일 저녁이다 보니 휴가 마치고 복귀하는 듯한 군인들이 아주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여기는 곳곳에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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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동쪽으로 가려면 지방도 460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그러려면 남쪽의 읍내까지 가야 했다. 읍내에는 북한강이 거의 중랑천과 비슷한 강폭으로 흐르고 있어서 경치가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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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화천과 양구 사이의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산길.. 그 이름도 유명한 지방도 460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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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과 긴 터널을 지나서 한참을 달린 뒤에야 7년 전에 들른 적이 있는 '해산 전망대' 공터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한구석에 텐트를 치니 시간은 7시 반이 넘어 있었다.
산 속에서 해가 지니 조용하고 적막하고 으스스한 데다 쌀쌀하고 춥기까지 했다. 하지만 텐트 안은 바깥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늑했다.

이 뜻깊은 장소에서 캠핑을 하게 되니 너무 행복했다. 텐트로도 모자라서 침낭까지 뒤집어쓰고 눕는 이 편안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물가와는 달리 여기는 차와 텐트가 가깝고, 이동할 때 수직 이동이 없어서 더 좋았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21 08:35 2023/06/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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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말

본인은 지난 4월 말에 경기도 광주 일대를 다녀온 뒤, 이 달(6월) 초엔 우리나라 중북부 전방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6일 현충일이 화요일이어서 징검다리 연휴가 있었는데, 마침 직장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사람은 전날 월요일에도 자기 연차를 써서 다들 쉬라고 사실상 전사 휴무 조치를 내렸다.

이에 본인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 새 버전이 나온 것도 기념할 겸, 6월 3일 토요일 아침에 집을 출발했다. 가평-춘천-철원-화천-포천의 순으로 동선을 짜서 6월 6일 현충일 아침에 집에 돌아왔다.

원래는 이번 여행에서 연천을 답사하고 싶었다. 태풍 전망대와 함께 횡산리 민통선 마을을 구경하고, 상승 전망대와 함께 제1 땅굴 관련 전시물을 관람하려 했으나.. 저기는 방문하는 게 좀 므흣해 보였다.
단체 안보 관광 패키지가 있지도 않으면서 동승자가 전혀 없는 1인 단독 방문은 번거로워서 그런지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는댔다. 그래서 지금 내 처지로는 방문하기가 좀 난감해서 이번에는 보류하게 됐다.

이번 여행에서는 서쪽 연천 방향 대신, 동쪽 양구 방향으로 더 다녀왔다. 그런데 이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2016년 강원도 여행과 약간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벌써 7년이나 전 일이고 저기는 얼마든지 다시 가 볼 가치가 있었다.
사실, 철원에도 지난 2014년에 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무려 9년 전 일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때와 전혀 겹치지 않는 곳만 들렀다. 이런 식으로 이번 여행은 예전의 여행을 많이 보완하면서 더 즐거운 추억을 내게 남겼다.

1. 가평 남이섬 + 춘천 시내

2010년 직장 워크숍 이후 13년 만에 남이섬에 다시 가 봤다. (그때는 경춘선 전철조차 아직 없던 옛날이었..)
개인적으로는 남양주를 넘어 가평과 춘천까지 열차가 아니라 자가용 운전으로 가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속도로(60) 대신 수석-호평 고속화도로, 국도 46 등 다양한 도로를 타면서 갔다. 이른 아침부터 차가 생각보다 아주 많고 길도 좀 막힌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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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주변의 북한강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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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중앙의 메타세콰이어길과 꼬마열차 철길밖에 본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섬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고 중앙의 숲과 풀밭까지 다시 돌아다니면서 모든 구역을 꼼꼼히 살펴봤다.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2시간 반이 걸렸으니 오전 시간 전체를 여기서 보냈다.
남이섬은 둘레가 4~5km, 면적은 0.46제곱km에 달한댄다. 0.3제곱km 남짓인 마라도보다도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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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하늘이 맑고 파랗고, 더워도 딱 적당하게 기분 좋게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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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다. 숲길, 풀밭, 흙길 등 여러 주제별로 생태 공원을 아주 잘 꾸며 놓아 있었다. 중앙에는 물론 카페와 공연장도 있어서 도떼기시장 같은 곳도 있다.
직접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동 수단도 꼬마열차뿐만 아니라 짚라인, 공중 레일바이크, 자전거, 전기차로 정말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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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왓, 이런 것도 예전부터 하고 있었나? 한쪽 구석에다가는 숙박업까지 시작했는지 아예 투숙객이 하룻밤 자고 가는 용도인 팬션과 호텔 객실도 지어져 있었다. 언젠가 나중에 나도 이용해 보고 싶다. =_=;;
아니면 돗자리 정도라도 가져갔으면 유용하게 썼을 텐데.. 옛날 기억이 너무 오래돼서 섬을 실제 크기보다 너무 작게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아침 9시 무렵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섬이 아주 한산한 편이었다.
그러나 11시쯤 되자 사람이 급격히 늘었다. 본인이 퇴장할 때쯤엔 관광객이 수백 명씩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었으며, 주차장은 관광버스들로 꽉 차 있었다. 역시 아침에 좀 일찍 출발했더니 이후의 모든 일정이 더 순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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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닭갈비가 그렇게 유명해졌나 모르겠다. 마치 마라도가 짜장면이 유명해진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말이다. =_=;;
남이섬에서 춘천 시내로 들어가는 길도 일일이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바깥 경치가 대단히 좋았다. 산과 강, 호수, 댐이 가득했고 길도 고가 교량 아니면 오르막 내리막 언덕 형태였다.

닭갈비는 다 똑같은 닭갈비인 것 같은데 유명 맛집은 그래도 뭐가 다른 것 같았다. 정규 식사 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2~3시에도 주차장에 차들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예약 대기가 넘쳐났다. 이 식당은 낮 시간대 브레이크 타임이라는 게 없겠구나 싶었다.

뜬금없는 얘기이다만, "토평 IC"라는 표지판을 보니까 자꾸 토익 TOEIC이 떠오른다. 이것도 강박관념인가? -_-;;;
그리고 춘천이 호반의 도시가 아니라 호박의 도시라고 기억됐으면 좋겠다. ㅋㅋㅋㅋㅋㅋㅋ

2. 철원에서

이렇게 가평· 춘천을 찍은 뒤,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철원으로 향했다. 포천을 거쳐서 철원으로 가는 길(국도 37, 43)은 큰 특징 없이 평범한 4차선 국도 위주였다.
저녁 5시쯤엔 포천 영중면의 38선 휴게소라는 곳에 도착해서 여기 풀밭에서 돗자리를 깔고 쉬고, 가져온 간식을 좀 먹었다.

그 뒤 날이 슬슬 저물어 가는 시간대에 철원의 남부 지역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고 근처에 한탄강이 지나는 곳을 무작정 찾아서 서쪽으로 갔는데, 교량 아래로 아주 멋진 낚시터 겸 캠핑용 공터가 있었다. 이미 낚시 중이거나 텐트를 친 사람도 몇몇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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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정말 시원스럽게 많이 흐르고 있고 유속이 빨랐다. 모든 것이 좋았지만 물이 흐리고 탁하고 별로 맑지 않았다. 이 때문에 물놀이는 못 하고 그냥 텐트 치고 물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탄강을 제대로 즐기려면 동송읍 방면으로 최소한 고석정 정도 되는 상류를 찾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동선은 그쪽이 아니다 보니 그리로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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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하루 종일 돌아다닌 것 때문에 피곤했는지 금세 잠들었다. 사실, 철원으로 가던 중에도 운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졸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텐트 안도 많이 더웠지만 밤 11시가 넘어가니 이제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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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이런 폭포 비스무리한 것도 있던데..^^
이렇게 첫째 날엔 그 유명한 철원 한탄강 부근에서 숙박을 했다. 좀 더 북쪽 상류로 가서 고석정 근처에서 캠핑을 했으면 경치가 더 좋았을 것 같긴 한데.. 그건 좀 아쉽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18 08:35 2023/06/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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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먹고 키우는 근황

지난 4월 중순쯤에 호박 근황을 올리고서 40일 정도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막간을 이용해 또 짤막하게 본인의 호박 관련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이젠 호박이 내 인생과 내 자아 정체성의 일부가 된 것 같다~~ ^^

1. 6개월 만에 먹은 마지막 호박

집에 비축해 놓고 있던 늙은 호박들을 4월 말~5월 초 사이에 드디어 모조리 먹어치웠다.
늘 보기만 해도 든든하던 큼직한 늙은 호박이 전혀 없으니 허전하고 서운하다. 이제 늙은 호박을 구경하려면 올해의 첫 수확분이 시장에 나올 때까지 3개월 정도는 기다려야 할 듯하다. (8~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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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남겨 놨던 호박은 지름 26cm짜리 큰 놈, 그리고 지름 18cm짜리 약간 작은 놈.. 이렇게 둘이었다.
얘들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작년 10월~11월쯤에 사 놓은 것이었다. 그걸 그냥 실내 상온에다 무려 6개월 가까이 방치하고는 이듬해 4월에야 먹었다.
한 2월쯤에 먹으려 했지만, 그때는 다른 호박들 중에 물러지려는 게 있었다. 그걸 먼저 처분하느라 쟤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은 먹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안팎으로 그 어떤 변질이나 부패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물러지거나 연해지는 부위가 없었고 모든 부위가 탱탱했으며, 과육의 상태도 양호했다. 한 달쯤 더 놔 둬도 됐을 것 같지만.. 이젠 날씨가 워낙 더워지고 있어서 상태를 더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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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시간이 워낙 오래 지나서 그런지 큰놈은 상태가 그때 그 포천 우수 호박보다는 못했다.
속이 건조하고 과육은 단맛이 덜하고, 씨앗들이 곳곳에서 오발아해 있었다. 그래도 꿀 좀 넣어서 죽을 무난하게 쑤어서 먹었다.
작은놈은 덩치는 작아도 속이 꽉 차 있고 씨앗들도 굵고 튼실해서 상태가 더 좋은 편이었다.

세상에 오로지 호박만이 단순히 '삭았다, 익었다'가 아니라 폭삭 늙었다는 영예로운 칭호가 붙는 채소이다.
동글동글 납작납작 쭈글쭈글.. 게다가 세상에 어느 채소가 저렇게 상온에서 반 년을 버티겠는가? 수박? 오이? 같은 호박이라도 제대로 익지 않은 아이는 당연히 저렇게 놔 두지 못한다.

내가 이래서 호박을 사랑한다. 비주얼과 특성이 모두 매력덩어리이기 때문이다. ^^ 올해의 햅호박을 어서 만나고 싶다.

2. 다시 키우는 호박

오징어 게임에서 오 일남 할배는 "게임을 관람만 하는 것보다 직접 참가하는 게 더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호박도 마찬가지다. 사 먹을 뿐만 아니라 직접 키워도 봐야 직성이 풀린다.
4월 초쯤 언제 심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아무튼 호박씨 수십 개를 퇴비와 함께 흙 속에 파묻고 물을 줬다. 그랬더니 그 달 하순엔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싹이 나기 시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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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 맑고 햇볕 나고 더워지니 이제 애들이 좀 제대로 자라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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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 같은 떡잎 딱지를 떼고 그 특유의 허연 힘줄이 그려진 본잎이 쑥쑥 돋아나는 걸 보니 몹시 기쁘다. 씨앗 껍데기는 탯줄의 식물 버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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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다 돼서야 싹이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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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 중· 하순이 되니 이제 잎이 제법 커졌다. 이렇게 되기까지 씨 뿌리고 나서 40~50일 정도 걸린 것 같다.

너무 조밀하게 싹이 많이 난 걸 어찌할지가 좀 고민이다.
몇 개를 옮겨 심어 봤는데, 뿌리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지만 그래도 이게 식물에겐 상처와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것 같다.
내 경험상 옮겨 심지 않은 애들보다 발육이 훨씬 더 늦어져 있다. 자동차로 치면 전속력으로 직진으로 달리다가 한번 커브를 튼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씨앗은 주변에 물기가 좀 있어야 싹이 튼다는 건 초딩 자연 시간에 강낭콩을 갖고 실험을 하며 배웠다.
쌍떡잎식물은 그물맥(대부분의 식물들 같은 넓적한 잎), 외떡잎식물은 나란히맥이라는 건(파처럼 길쭉한 잎) 중딩 과학 시간에 다 배웠던 건데.. 이제 와서야 다시 복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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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다. 다음 근황 때는 더 길어진 덩굴 줄기와 꽃, 심지어 수분된 열매 사진까지 올라오기를 기대한다. ^^

Posted by 사무엘

2023/05/27 08:35 2023/05/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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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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