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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근황

1. 2021년 상반기, 교통 분야의 변화

여의대로와 경인로 사이엔 길 중앙을 틀어막고 공사가 몇 년째 벌어지고 있었는데.. 공사가 끝난 깔끔한 모습을 본인은 며칠 전에야 드디어 처음으로 목격했다.
신안산선이나 GTX 같은 지하철 공사인가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여의도-신월 지하 유료 도로. 여의도와 경인 고속도로가 이렇게 곧장 연결되었다니 신기한 노릇이다.

그건 반가운 소식이지만, 정말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난무하는 변태 같은 시속 50, 50, 50, 50 소리 때문에 미치겠다. 시속 80~100은 밟아도 될 것 같은 멀쩡한 6~8차로 도로에서 이게 무슨 개짓거리냐?? 저 신월-여의 지하 도로 출입구에도 시속 50 단속 카메라가 붙어 있더라.

작년에 재난지원금 뿌려서 재정이 부족한 걸 이딴 식으로 회수하려 든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정상적인 애매한 자동차들 속도를 찍어누르지 말고 악성 무단횡단자나 엄하게 처벌하면 도로가 훨씬 더 안전해질 것 같은데 말이다.
멀쩡한 대만 유학생을 죽게 한 음주운전 가해자놈한테는 솜방망이 처벌로 나라 망신이나 시키고.. 사법 분야는 영 마음에 안 든다.

뭐 그건 그렇고, 자동차뿐만 아니라 도시철도 쪽도..
서울 지하철 5호선의 동쪽 종점이 상일동에서 무려 몇십 년 만에 하남 검단산으로 바뀌었다.
공교롭게도 6호선은 봉화산, 7호선은 도봉산 이렇게 종점 근처에 산이 있었는데 5호선도 그 관행을 따르게 된 듯하다.

그 검단산 근처에 성남시에도 영장산과 망덕산 사이에 '검단산'이 있긴 하다. 하지만 성남 검단산은 두 산 사이에 끼여 있고 정상에 군부대도 있어서 접근성과 존재감이 하남 검단산보다는 훨씬 떨어진다. 굳이 '하남'을 붙일 필요는 없는데 왜 저렇게 작명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안 그래도 외국 여행을 못 가서 국내 여행과 등산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각광 받고 있다는데, 나도 등산 다시 가 보고 싶네..
앞으로 신분당선 강남-신사 구간, 그리고 서울 동부의 29번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한강 교량, 400번 제2순환 고속도로,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 경기도 GTX 등이 기대된다.

2. 프로그램 개발

보통 프로그램 개발 근황은 날개셋 카테고리에다가 올리는 편인데 이번에는 분량이 짧고 별 컨텐츠가 없기 때문에 여기에다가도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지난달에 나온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2는 외부 모듈의 동작 안정성과 프로그램 호환성이 크게 개선되었음을 당당하게 내세운 버전이었다. 실제로 한글과 비한글(조합과 비조합)을 섞어 가며 입력할 때 프로그램별로 자잘하게 발생하는 문제들은 이제 확실하게 해결됐다.

그래서 정말 답이 없는 Windows Terminal 요놈에 대한 인위 보정만 제외하면 나머지 수동 보정 옵션은 없어졌다.
사실은 MS IME조차도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일종의 보정을 해서 동작하고 있다(타 프로그램일 때와는 기능 수행 순서가 정반대). 무슨 기준으로 보정하는지를 알 길이 없어서 내 프로그램에서는 불가피하게 수동 보정으로 남겨 놨을 뿐이다.

하지만 크롬 브라우저에서는 여전히 그것도 버전업 될 때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한글을 입력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조합이 마우스 클릭 등 외부에 의해 강제 종료됐을 때의 처리가 영 원활하지 않다.
그리고 심지어 조합이 종료됐을 때 이전에 입력됐던 글자들이 무더기로 삽입되는 현상까지도 본인이 발견은 했지만.. 정확한 재연 조건을 도무지 모르겠다. 크롬과의 악연은 2년쯤 전인 201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어휴~~ㅠㅠㅠ

그것 말고도 제어판 대화상자를 DPI 설정이 다른 모니터로 옮겼을 때 내부 컨트롤 배치가 확 깨지는 문제를 버그 신고를 통해 발견해서 해결했고, 입력 도구와 대화상자 UI 곳곳에서 버그를 고치고 외형이나 동작을 자잘하게 고쳤다.
다음 버전은 일단은 6월애 내놓으려 하는데, 10.3이 될 수 있을지 그 이상이나 이하가 될지 잘 모르겠다.

3. 캠핑 노숙

요즘처럼 날씨가 좋을 땐 본인은 밤에 집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
금요일 밤엔 자전거만 몰고 갈 수 있는 곳에 가고, 토요일 밤에는 차로 좀 가야 하는 곳에서 텐트를 친다. 이튿날 아침에 곧장 교회에 가기 위해 운전을 또 하니까 이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차로 간 곳은 충분히 외져서 인적이 전혀 없고 보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자전거로 간 곳은 속세와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은 단순 공원 안에서 짱박힌 수준.. 그래서 한밤중이나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는 주변 사람들 눈에 가끔 띌 수도 있었다.
프로그래머로서 이런 건 hash값의 충돌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텐트 근처까지 누군가가 데리고 오는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곤 한다. 물론 텐트는 창과 문을 다 닫았으니 보이지는 않고..
텐트 주변에 시시하게 겨우 개가 아니라 야생 멧돼지가 다가오는 날은 언제쯤 도래할지 모르겠다.

자연 속의 환상적인 내 개인 연구실 겸 침실을 놔두고.. 더워서 선풍기를 틀어야 하는 갑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도대체 왜 자리요? 그건 무술 연마 없이 그냥 총 쏴서 사람을 제압하는 것과 같고, 등산 없이 그냥 헬기나 케이블카 타고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내게 집은 주민등록 근거지와 수도 전기의 보급, 씻기 등의 개인정비=_=, 책과 옷 등을 보관하는 창고 정도의 역할을 한다. 먹고 자는 곳은 아님. 처자식 없이 혼자 사는 동안 당분간은 계속 그럴 것 같다.
쓰레기 버리고 오존층 파괴하고 이산화탄소 농도 늘리는 것만 자연에 대한 비매너인 게 아니다. 이런 날 자연 속에서 밤을 보내지 않는 것도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한겨울은 엄청나게 춥다.
나야 추운 것 자체는 아주 땡큐이지만.. 이 때문에 추가 담요와 잠바 같은 방한 보온 장비가 많이 필요해져서 보행 시의 무게 부담(payload)이 증가하며, 이동 반경이 감소한다.
그리고 -10도 밑으로 내려가면 전자기기들도 잘 못 버틴다. 폰의 배터리가 일시적으로 곤두박질치거나 차의 스마트키가 버벅거릴 정도로..

여름이 되면 짐은 한결 가벼워진다. 더 멀리 이동 가능하고 간편하게 텐트 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낮이 길고 이동에 부담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산이나 공원 내부의 더 깊숙한 곳까지 이른 시간부터 접근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안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기온이 올라가면 야생에서는 벌레도 증가한다. 더워서 텐트 창문도 열어야 할 판인데 도대체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모기 떼들이 5분 안으로 창문 방충망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이런 장단점을 감안하면..
적당히 추워서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간단하게 보온이 되고, 산에 조금씩 초록색이 늘어 가고, 아직 모기도 들끓지 않는 지금이야말로 텐트 캠핑 노숙에 입문하기 최적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4/21 19:36 2021/04/2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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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근황과 잡설

0.
지난 2월은 직장을 옮긴 것, 요 근래에 누적된 야근· 초과 근무 수당, 그리고 연말정산 환급이 더해져서 급여가 평소보다 꽤 많이 나왔다.
마치 여객기가.. 전투기처럼 상시 초음속 비행은 못 하지만, 제트 기류 뒷바람을 잘 탄 거나 하강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져서 일시적으로 초음속 비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 정말 잘나가는 능력자들은 2월 뽀록이 났을 때가 아니라 평소에 이만치, 아니 그 이상도 더 벌 것이다. 특히 올해는 넥슨과 넷마블에서 전사원 연봉을 크게 인상한 것이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우한 폐렴 타격 따위 없이 일거리가 넘쳐나는 이 정도 직장이 있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노릇이다.

난 15년쯤 전에 병특을 하면서 앞으로 게임 업계엔 절대로 종사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_-을 했었다;;
회사의 근무 여건이나 복리후생이 불만족스러워서가 아니라, 내가 온라인 게임을 즐기거나 만드는 쪽 적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게임은 이제 나올 거 다 나왔고 혁신이란 게 거의 끝났다고 생각해서 더욱 발길이 꺼려졌다. 블리자드, id, SEGA 같은 전설적인 개발사들이 과거의 명성을 다 날려먹고 괜히 삽질· 몰락하는 게 아니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도 나의 단견일 뿐이고 NC 같은 곳은 리니지 모바일 하나 잘 만들어서 또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고 있다.;;
SI나 정부 과제나 대기업 납품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뭔가 독창적인 걸 만들어서 end user를 상대로 장사를 할 수 있는 분야가 그나마 게임이긴 하다.

어차피 월화수목금금금 갈려 들어가는 건 마찬가지라면, 넥슨이나 넷마블 같은 곳에 들어가면 그래도 월급이라도 많이 받을 수 있다. 그러니 거긴 아무리 판교의 등대, 구로의 등대 운운하더라도 똑똑한 프로그래머들이 몰리는 것 같다.
뭐 그건 그렇고.. 오늘은 2021년 봄을 맞이하며 접한 여러 주변 소식, 그리고 개인적인 근황을 잡생각들을 늘어놓도록 하겠다.

1.
최소 2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중앙선 청량리-부전 심야 열차가 딱 올해 초(2021년 1월 5일)에 폐지돼 없어졌다..;; ㅠㅠㅠㅠㅠㅠㅠ 난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런 열차가 있다는 걸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건 2003년 말, 서울-경주 저녁 6:30 새마을호를 놓쳐서 대체 교통편을 찾던 때였다.
사실 이건 Looking for you를 들을 기회를 한번 날려 버린 치명적인 실수였다. 나의 공식적인 철(도 성)령 강림일이 2004년 1월 31일 제 4타째였는데, 저 새마을호를 안 놓치고 탔으면 철령 강림일이 더 앞당겨질 수도 있었다.

서울 역 대신 청량리 역에서 밤 9시에 출발해서 고향 경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있다고 해서 잘 이용했고, 본인은 그 뒤로도 지난 20여 년 동안 얘를 종종 탔다.
하행보다는 상행을 더 자주 이용했다. 경주에서 0시 무렵에 출발해서 서울에 딱 아침 6시쯤에 도착하는 놈이었다.

너무 북적대는 경부선의 대구-구미-대전-천안이 아니라 영천-의성-안동-영주-제천.. 이름부터가 정겹게 느껴졌다. 얘를 타면 고속도로나 고속철에 비해 뭔가 시간이 정지하고 속세를 떠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시각표 상으로 청량리-경주가 무려 6시간 반이나 걸렸다. 그러다가 중앙선이 복선화와 선형 개량, 증속이 거듭되면서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5시간 반대로 많이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침대차가 진작에 퇴출됐고 심야열차라는 게 없어지는 추세인데, 그나마 최후의 보루로 꿋꿋이 남아 있었던 중앙선 밤차마저 드디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니 아쉽고 허전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기존 경주 역과 서경주 역 자체가 영업을 중단해 버리고, 신경주 역이 일반열차까지 같이 취급하게 될 것이다.

2.
본인은 지난 겨울엔 어느 때보다도 야영 외박을 많이 했다. 산과 강, 각종 오지에 가서 텐트를 쳤을 뿐만 아니라 꽁꽁 얼음 위에서도 몇 번 성공적으로 자고 왔다.

.내 경험상 -10에서 -5도 사이 정도가 침낭과 담요와 패딩 잠바가 제 성능을 발휘하면서 밖에서 자기 좋은 최적의 환경이었던 것 같다.
화학에서 물질의 상평형이던가, 이상기체의 부피던가 머시기 할 때는 온도-압력이라는 변수에 대한 그래프를 그렸던 것 같은데...

사람의 거주 쾌적성을 나타낼 때는 압력은 무슨 멕시코시티 같은 특이한 고지대가 아닌 한 별 관계 없을 것이다. 그냥 온도-습도를 변수로 삼아야 하지 싶다.
무거운 담요와 침낭을 들고 다니느라 불평하는 게 아니라 이 추위를 즐길 수 있을 때 감사하고 즐기는 것이 진정한 야인 자연인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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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지난 설날 때 고향에서 아무도 없는 어느 공원 풀밭에 텐트를 치고 잤던 당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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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음에 이어.. 산 속 군용 벙커에서 하룻밤 자는 데 성공했다~! 밖에 눈이나 비가 왔으면 더 아늑하고 좋았을 텐데. 여기는 텐트를 칠 필요가 없으니 돗자리만 깔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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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그러고 보니 벙커도 외관이 뭔가 비슷하게 생긴 구석이 있었구나~! 돌문만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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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뜰녘에 눈을 떠서 내가 간밤에 머물렀던 곳의 어귀를 내려다보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의 첫날 매우 이른 아침 곧 해 돋을 때에 그들이 돌무덤에 가며 자기들끼리 이르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무덤 입구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고 바라볼 때에 돌이 이미 굴려져 있음을 보았으니 이는 그 돌이 심히 컸기 때문이더라~~" (막 16:2-4)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
2021년에 대한민국 땅에서 이런 등록문화재 실물을 구경하게 될 줄이야..
차주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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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그리 멀지 않은 과거(1~2년쯤 전?)에 각그랜저와 쏘나타 Y2 모델(스텔라 바로 다음의 그 초기형), 그리고 에스페로를 목격한 적이 있었다. 시간 여행이 따로 없었음..
옛날에 SBS 모닝와이드 블랙박스로 본 세상의 어느 에피소드에서는 그 귀하신 각그랜저 하나가 애석하게도 교차로에서 접촉 사고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더라만.. 너무 옛날 차여서 수리하기 꽤 난감했을 것 같다.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다음 버전의 출시 이후 n년까지 mainstream support, 그 다음 n년까지 extended support 같은 생명 주기가 있는 것처럼.. 자동차도 다음 모델의 출시 이후 n년까지 수리용 부품 지원 같은 정책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싶다.
제주도 내지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제무시 트럭 내지 새한 덤프 트럭이 “아직도” 현역인지 그것도 궁금하다.

4.
끝으로,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There's a dear and precious book, Tho' it's worn and faded now, Which recalls the happy days of long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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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쯤인가 친구에게서 선물 받아서 15년이 넘게 애용했던 영어 성경책.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 덕분에 휴대성 하나는 정말 만족스러웠으나..
가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가죽이 몽땅 떨어져 나가고 앞뒤 종이까지 뜯겨지는 매우 안습한 처지가 되었다.

울 교회의 목사님께서 이를 위하야 어엿비 너겨 저거보다는 더 두껍고 크지만 그래도 여전히 휴대성이 나쁘지 않은 다른 성경책을 하사해 주시였다. 감사합니다~!
나는 찬송가 책도 5년 남짓 봤는데 표지와 종이가 이미 10년 넘은 연식처럼 해지고 너덜거린다.
곡 고르느라 매주 굉장히 많이 뒤적이기 때문이다.
Random access를 많이 시키면 하드디스크 수명이 짧아지듯이 종이책도 마찬가지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3/08 08:35 2021/03/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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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로

서울 역 북부에서 시작해서 서대문 역(5)과 독립문 역(3)을 찍고 지하철 3호선의 선형을 따라 고양· 파주 방면으로 가는 도로는 국도 1호선 구간인 한편으로 이름이 '통일로'이다.
이 길 자체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게 고양과 파주까지 4차선 도로로 한데 뚫리고 '통일로'라는 이름까지 붙은 건 1972년 봄의 일이라고 한다. '통일호'라는 열차 이름은 1950년대 할배 때부터 있었지만, '통일로'는 박통이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바로 이 타이밍에 맞춰서 통일로의 종점에 임진각 관광지가 만들어졌으며, 통일촌이라는 민통선 마을도 생겼다. 그로부터 몇 달 뒤인 7월 4일엔 우리가 학교에서도 배우는 7· 4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됐다.
그러니 그때는 온통 통일, 통일 하던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진짜로 남북 통일이 이뤄질 줄 알고 많이 들떴었다.

지금이야 서울에서 파주 임진각 방면으로 갈 때 강변북로에서 이어지는 자동차 전용 도로인 자유로, 혹은 최근에 개통한 서울-문산 고속도로(17)가 즐겨 쓰인다.
자유로는 통일로 이후로 딱 20년이 지난 1992년에 개통했으며,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오두산 통일 전망대가 같이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자유로나 고속도로와 달리, 기존의 통일로는 자동차 전용 도로도 아닌 데다 차로도 너무 좁고 확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그냥 그저 그런 시내 도로 내지 국도 레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임진각으로 가는 도로의 원조는 바로 이 길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통일로의 고양시 북쪽 지점에는 '통일로 휴게소'라고 온갖 기념비들과 공원이 들어서 있고 공릉천이라는 하천도 가까이 있다. 본인은 북극 한파가 전국을 강타했던 새해의 첫 주말에는 거기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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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휴게소라고 해서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바로 근처에 식당이나 가게들이 들어선 건 아니고.. 그냥 공터 광장과 공원 정도만이 꾸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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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이니, 서울 올림픽이니 하는 왕창 옛날 냄새가 진동하는 기념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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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들어가서 올라갈 수 있는 정자 같은 게 아니어서 아쉽다. 자유롭게 개방된 2층 정자라면 올림픽대로에 있는 청담 도로 공원 같은 느낌도 났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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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휴게소'의 길 건너편에는 6· 25 사변 필리핀군 참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기념비에 새겨진 문구에 따르면, 필리핀군은 488명이 참전했으며, 이 기념비는 1974년 10월 2일에 건립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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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군 기념비의 옆에는 고양시 출신 인물 중에 6· 25 참전 용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었다.
작년에 칠곡 왜관에서 봤던 애국 동산이 떠오른다. 거기서도 자기 지역 출신의 6· 25 참전 용사들을 잔뜩 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안보 관광을 많이 다니고 나니, 과거에 비슷한 부류의 기념물을 봤던 것이 서로 연계가 될 지경이다.
이 기념비는 2004년 7월 27일에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가 2011년 1월 4일부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통일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런 볼거리도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통일로라는 이름의 도로는 경상북도 경주에도 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을 남북 통일 염원과도 오마주한다는 취지로 1977년엔 경주 남산의 동쪽 기슭에 통일전이라는 기념비가 건립됐기 때문이다. 통일전 근처의 도로 이름이 통일로이며, 심지어 '통일전 휴게소'도 있다.

내가 보기에 경주시는 박통 시절부터 관광 도시로서 특별 지원 대상으로 지정되어 혜택을 아주 많이 받았다. 1968년 12월에 국립공원 지정, 1974년에 보문 관광단지 개발, 통금에서 진작부터 열외, 호화 귀족 열차이던 새마을호 정차 따위 말이다. 게다가 도시형 국립공원이라는 건 현재까지도 경주시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끝으로.. 통일로라는 길이 닦이던 그 시절에 결의됐던 7· 4 성명이라는 건.. 우리나라가 영원히 으르렁대면서 적대할 것 같던 북괴하고도 그나마 “눈 가리고 아웅으로라도 좀 싸우지 말고 서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모색해 보자~”라는 제스처를 취해 봤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특히 1 21 김 신조 사태 때문에 서로 분위기가 얼마나 험악해져 있었던가?)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고 통일은 개뿔.. 남북 지도자는 애초에 서로 온전히 신뢰 가능한 대상이 아니었다.
전근대 시절 옛날에 유럽에서는 귀족 장교들이 자국 졸병들보다 적국 장교를 더 신뢰할 정도였다고 하더라만(적이지만 최소한 약속을 어기지는 않는다) 20세기 후반의 한반도엔 그런 거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못 가 남한은 통일은커녕 자기 내부에서도 유신 독재(ㅋㅋ)가 시작되었고, 북괴 역시 특히 74년을 기점으로 주체사상과 함께 더욱 흑화하게 됐다. 쟤들도 겉으로는 통일 통일 거리면서 한쪽에서는 땅굴이나 파고, 공작원을 보내 남한 대통령을 암살까지 하려 했다. 그러니 통일은 더욱 물 건너가고 반공 분위기만 더 강해졌다.

2. 캠핑

통일로 휴게소를 방문하던 당시엔 서울의 낮 기온이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강추위가 며칠 동안 전국을 강타하던 중이었다. 오죽했으면 최남단의 제주도까지 한파 경보가 내려졌으며, 한강이 얼고 황해 바다조차 일부 얼어서 양식업(...;; )과 비닐하우스 화훼업(치솟는 난방비)이 큰 피해를 호소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본인은 평범한 산 속이나 물가가 아니라, 이번엔 아예 얼어붙은 강 위에서 텐트 치고 자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 통일로 휴게소 부근부터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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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중앙까지 100% 언 건 아니지만 주변에는 물이 흐르다가 완벽하게 얼어 버린 곳이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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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주차장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텐트 치기 적합한 곳을 발견했다.
이불· 침낭 등 장비가 굉장히 많고 무거운 상태였기 때문에 도보 접근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이것들을 오래 들고 다니니 팔과 허리가 뻐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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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에는 통일로 IC 부근의 상류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는 전구간이 꽁꽁 얼고 위에 눈까지 쌓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공원 같은 것도 없어서 인적이 더욱 없었다. 다만, 나 역시 강물 쪽으로 가기 위해서 갈대더미들을 타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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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세상에 이런 횡재가..
오도독오도독 눈 밟는 소리가 걸을 때가 아니라 누워서 몸 뒤척일 때 나는 그 느낌을 아시겠는가?
-15도도 이제 별 거 아닌 듯..^^ 아 그런데 다 좋은데 발은 좀 시렵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믿음이 부족해서 강 중앙으로 더 가까이 가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뿐이다.

한숨 잘 잔 뒤 집으로 귀환했다.
그 당시엔 폰과 컴퓨터뿐만 아니라 차키의 버튼이 갑자기 먹히지 않기 시작했다. 키가 문제인지 차가 문제인지.. 차 문 못 열고 시동 못 걸면 어떡하나 깜짝 놀랐다. 키를 따뜻한 곳에 두니 다행히 다시 살아났다.

귀환할 때는 동부 간선 도로를 이용해 봤다.
의정부에서 서울 북부 구간이 싹 리모델링 돼서 확장되고 지하화가 된 걸 처음 봤는데.. 이게 딱 올해부터 개통한 거라고 한다.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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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천에서 야영을 한 뒤, 다음날 밤에는 중랑천 모처의 얼음판에서 또 야영을 했다.
여기는 공릉천보다도 얼음이 덜 생겨 있어서 중앙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텐트를 친 곳은 보다시피 명백하게 땅이 아니라 얼음이었다.

산천 어디서든 텐트만 치면 나만의 밀실이 생긴다는 게 좋다. 그리고 밖이 아무리 추워도 장비를 충분히 챙기면 체온 에어포켓으로 버틸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이렇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1/29 08:35 2021/01/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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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초 혹한기의 여행· 캠핑

1. 운종 저수지

본인은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여기서 보냈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 근처의 운종 저수지.
수 년 전에 도보로 등산 다녀왔던 산과 들을 이제 차 끌고 다시 찾아가서 텐트 치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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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엔 차와 사람이 없다시피하고 고요하고 밤 하늘에 별이 보이고.. 적막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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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바깥 기온은 -4도로, 저수지의 물은 얼어 있었다.
개운하게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머리를 내밀어 본 뒤에야 밖이 얼마나 추웠는지를 실감했다.

나는 괜찮은데 전자기기들이 추위에 못 견디더라.
전화기는 배터리가 떨어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컴퓨터도 실제로 배터리가 고갈되지 않았는데도 꺼져 버렸다.
심지어 자동차까지.. 배터리와 점화 플러그를 교체한 지 1년 남짓밖에 안 됐는데도 시동 걸 때 움찔 하는 걸 거의 처음 봤다.

2. 율동 공원

모처럼 분당 근처까지 찾아간 김에 국군 수도 병원, 새마을 연수원, 율동 공원 부근을 다시 들렀다. 4년 전에 영장산 등산을 마치고 이쪽으로 도보로 하산한 적이 있어서 추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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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1) 북쪽의 산책로 위주의 평범한 공터, 그리고 (2) 남쪽의 저수지 순환 산책로 이렇게 두 파트로 나뉜다. 주차장은 관대하게도 3시간까지는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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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부에서 저수지를 도보로 산책할 수 있고, 살짝 외곽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차로 둘러볼 수도 있었다.
나름 운종과 율동, 이렇게 성남에 있는 저수지 두 곳을 비슷한 시기에 둘러보게 됐다.

3. 고랑포 공원

그로부터 한 주 뒤, 새해에도 날씨가 만만찮게 몹시 추웠다.
서울은 상수원 보호 구역을 낀 동부가 서부보다 아무래도 더 깨끗하며, 개발되지 않은 산천이 더 많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혼자 바람 쐬고 싶을 때 양평· 남양주 쪽으로 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파주· 연천 쪽으로 가서 새해를 맞이했다.
먼저 지난 11월에 개통한 서울-문산 고속도로를 전구간(흥도-내포) 150km/h까지 밟으며 시승해 봤다. 수원 내지 광명에서나 보던 17이라는 고속도로 번호를 여기서도 보니 반갑긴 하더라만..

한강 따라 뺑 도는 기존의 자유로에 비해 이 정도 단축되는 거리와 시간만으로 편도 3000원에 달하는 톨비가 justify가 될지는 모르겠다.
이 고속도로가 진짜 경쟁력을 얻으려면 빌어먹을 과속 단속 카메라, 특히 제일 병신 같은 구간 단속 카메라를 몽땅 떼어내고, 여기는 자유로보다도 더 빠르게 밟을 수 있다는 걸 어필해야 할 텐데 말이다. 굳이 카메라를 설치할 거면 리미트 자체를 150 정도로 크게 상향하든가.

사진은 별도로 첨부하지 않지만... 지난 2013년 이후로 무려 7년 만에 임진각에 다시 가 봤는데, 주변 시설이 꽤 바뀐 것 같았다. 거기 내부를 순환하는 관광용 평화열차는 610mm 협궤이며, 이는 남이섬 내부의 유니세프 나눔 열차와 동일한 궤간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천년고도 경주 출신으로서 경순왕릉 부근에도 갔다. 공식 명칭이 30년이 넘게 ‘신라 경순왕릉’이었는데, 지역 부심 내세우려고 2011년 7월부터 ‘연천 경순왕릉’이라고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안압지가 ‘동궁과 월지’라고 공식 명칭이 바뀔 때 같이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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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과 해돋이 구경은 저 왕릉의 바로 근처인 고랑포구 역사 공원에서 했다. 넓은 풀밭에다 바로 옆에 임진강.. 혼자 있기 정말 좋은 장소였고 한편으로 엄청나게 춥기도 했다. ㅎㅎ
반경 300m 이내엔 아무 사람도, 차도 불빛도 없었고.. 밤하늘엔 별이 총총히 보이고 달빛이 주변을 비췄다~

무난방 캠핑의 묘미라는 게.. 밖은 영하의 추위이지만 침낭과 담요 안은 내 체온만으로 따뜻하고 아늑한 에어포켓(?)이 형성되는 것이다.
다만 지난주에 분당에서 -4도를 버텼던 정도의 방한 장비만 다시 챙겼더니, -10~-15도에 달하는 추위를 버티는 건 좀 무리였다. ^^ 새벽에는 에어포켓 안조차도 냉기로 뚫렸으며 특히 발도 시려웠다.

기왕 연천 고랑포구까지 왔는데.. 여건만 된다면 제1땅굴을 관할하는 상승 전망대까지 가 보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것 역시 아쉽다.

4. 북한군 묘지 (구 적군 묘지)

파주와 연천을 잇는 국도 37호선을 달리면서..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적군 묘지라는 곳에 잠시 들러 봤다. 딱히 코렁탕 보안 시설은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자랑하거나 기념할 만한 시설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에 이정표나 표지판으로 안내가 잘 돼 있지는 않다. 파주시 적성면의 답곡 교차로에서 국도의 서쪽 파주 방면으로 진입하면 거의 곧바로 진입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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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묘지는 6· 25 전쟁 중에 수습된 북괴 공산군과 중공군의 유해를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안장해 놓은 곳으로, 1996년 6월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소개되어 있다. 공산군 + 중공군 = 적군이기 때문에 원래 이름은 적군 묘지였다.
그런데 중공군 전사자의 유해는 몇백 구 정도 있던 것을 과거 레카 시절에 모두 중국으로 송환해 줬다. 그래서 여기에는 이제 북한 사람만 묻혀 있기 때문에 이름이 나중에 북한군 묘지로 바뀌었다.

대부분의 일반인에게야 적군 묘지 같은 건 완전히 듣보잡이겠지만..
좋게 말하면 진보 좌파, 나쁘게 말하면 친종북 빨갱이 성향의 단체들에서 저기를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추모제 비스무리한 걸 했다. 그러자 보수 우파 단체에서는 근처에서 규탄 시위를 하며 맞불을 놨다.

병림픽이 벌어질 기미가 보이자 정부에서는 여기에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시켰으며, 국도에서 묘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쇠사슬로 막아 놨다.
그래도 입구 어귀에 차 한두 대 정도는 세워 놓을 공간이 있었으며, 묘지 자체도 울타리가 둘러져서 삼엄한 경비를 받는 상태가 아니었다. 주변 마을 농로를 통해서도 묘지로 얼마든지 접근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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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묘지 사진을 검색해 보면 묘비가 세로로 길쭉한 작대기 모양인 게 많이 뜨는데.. 그건 옛날 풍경인 것 같다. 지금은 그런 거 없고 다 이런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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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언덕을 깎아서 단촐하게 묘지를 만들어 놨더라.
6· 25뿐만 아니라 1· 21 사태 때 사살된 무장공비들도 여기에 묻혀 있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무명이지만 장교나 무장공비는 이름이 기재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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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 묘지에 제일 먼저 묻힌 1호는.. 유해 수습 장소조차 불분명한 6 25 전사자인데 이름은 어째 곽 재천이라고 알려져 있다.
안 그래도 작년 여름에 다부동 전투 기념관을 다녀왔는데, 다부동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무명 적군도 하나 눈에 띄어서 흥미로웠다.

Posted by 사무엘

2021/01/18 08:34 2021/01/1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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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본인은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서울· 수도권에 있는 각종 역사 박물관(서울시, 대한민국, 한양도성..), 박 정희 대통령 기념관, 철도 박물관, 수도 박물관 등을 가 봤지만, 이들과 성격이 사뭇 다른 이색적인 박물관은 비교적 최근에야 가 보게 됐다. 바로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이다.

수 년 전에 학교 뒷산인 ‘안산’(무악산) 등산을 하면서 이정표를 통해 이런 게 있다는 걸 우연히 접했었다.
서울에 있는 25개의 구 중에서 서대문구는 강서구와 더불어 구청이 지하철역 연계가 제일 안 되는 외진 곳에 있다. (‘서’짜가 붙은 구만 왜 이러는지 원.. ㄲㄲㄲ) 그리고 그 서대문 구청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얘는 ‘서대문’이라는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 국립이 아니라 시립이다. 이런 주제의 박물관은 국내에 매우 드물다.
본인은 중고딩 시절 이후로 수십 년 동안 맥이 완전히 끊어졌던 지구과학 시간, 그리고 1995~96년 사이에 매우 재미있게 봤던 “생명 영원한 신비” 다큐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작년 말, 중공 폐렴이 3차 대유행을 일으키기 직전에 각종 공공장소들이 잠시 숨통을 트고 제한적이나마 개관을 했던 시절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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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 보니 공룡만 있는 게 아니더라. 더 흥미로웠다.
박물관은 3층에서 우주와 지구의 역사를 다루고, 2층에서 생물의 역사, 1층에서 자연과 환경을 다루는 구조이다. 1층에는 카페, 도서관, 독서실도 덤으로 갖추고 있었다.
이 블로그에서는 박물관의 모든 전시물을 일일이 소개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인상 깊게 봤고 코멘트 할 만한 아이템만 선별적으로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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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 말고도 큐리오시티(화성), 매리너 10호(금성과 수성), 마젤란(금성), 국제 우주 정거장(지구..;;), 아폴로 11호 LM(달~!)도 이런 식으로 소개돼 있어서 흥미로웠다.

전쟁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니고, 우주 여행도 스타크래프트 레이쓰나 배틀크루저처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혼자서 비행선과 비행기와 로켓 역할을 다 하는 비행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우주선들은 전혀 항공역학적이지 않은 모양으로 생겼다는 것이 핵심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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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현재 정설로 통용되고 있는 대폭발설과 우주 배경 복사가 그림과 동영상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무슨 원동력으로 끊임없이 팽창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주가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어야만 사방의 무수히 많은 별들로부터 날아오는 빛 중에 지구에 절대 도달하지 못하는 빛의 구분이 생기고, 덩달아 지구에 낮과 밤 구분도 실제로 존재 가능해진다.

본인은 우주의 나이 138억 년, 지구의 나이 45억 년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 세상 인류의 연대기는 아담 이래로 6천여 년이라고 생각하고, 이전 세상과 현 세상의 간극을 믿는다.
그리고 대폭발설은 동의하지만, 폭발의 결과로 지구 같은 정교한 행성과 생명체가 아무 지적 설계 없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는 물론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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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의 행성이 소개돼 있다. 외행성 중에 천왕성과 해왕성이야 보이저 2호 이래로 업데이트의 여지가 없지만, 명왕성은.. 아직도 상상도가 뭐냐? 뉴 호라이즌스가 명왕성을 다녀간 지가 벌써 5년 전 일인데.. 업데이트가 너무 안 된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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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 절리, 부정합 같은 단어는 기억에 남아 있지만 '습곡'은 정말 몇십 년 만에 다시 듣는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지층 그림을 보면서 샌드위치 생각이 유난히 많이 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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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들이 참 예쁘다. 중학교 때 이런 거 실물이라도 볼 기회가 좀 있었으면 돌 이름들 암기하는 재미가 더 났을 텐데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벽옥이니 자수정이니 하는 보석 이름들도 직접 보면 이해에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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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미네랄은 자수정에서 모티브를 딴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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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암, 변성암, 퇴적암 삼총사이다.
퇴적암 지층은 요즘 셰일 가스라는 명목으로 석유의 산지로 재조명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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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생물편이다. 트리케라톱스의 거대한 머리뼈가 먼저 날 반겨 주었다.
이 공룡은 Kung Fury 영화 덕분에 내게도 친숙했다. 거기서는 트리케라톱스가 아니라 트리케(세)라캅스가 나오니까~~ ㅋㅋㅋ
트리케라톱스는 초식 공룡 중에 제일 험악하고 호전적으로 생긴 놈으로, 영락없이 코뿔소의 공룡 버전이라 하겠다. 아 뭐, 뿔 자체가 콧등에 달린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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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 보니 삼엽충과 암모나이트가 은근히 구분이 되지 않았었다.
대멸종이 공룡을 멸종시킨 중생대 말기의 그 멸종 말고도, 선캄브리아기인가 고생대 말인가 그때도 한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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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생명 영원한 신비” 화면을 거의 그대로 재구성한 것 같다. 아노말로카리스를 실물 그림으로 구경하게 되다니~!
“생명 영원한 신비”는 生命이라는 한자가 꽝~ 박히는 오프닝 CG가 참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 만들었으니 한자가 나오지, 미국· 유럽 제작이라면 저런 화면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프닝 주제곡좀 개량해서 찬송가 가사 같은 거 붙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해 왔다. “어찌하여야”--후렴에 “하나님께 영광”이 반복해서 나오고 박 종호 같은 성악가가 부르면 딱이겠다 싶은 그 곡.. Andrae Crouch의 My Tribute--와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표절이란 게 아니라 분위기/풍이 비슷하다고 말이다. 두 곡을 모두 아는 분이라면 한번 생각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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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고사우루스는 덩치가 산만 하고 등에 저런 조각들이 많이 달려 있는 한편으로 머리는 엄청나게 작다.;;
여기서 별도로 소개하지는 않지만, 두개골이 아주 두껍고 단단해서 박치기를 즐기는 공룡도 있으며, 이족 보행을 하는 공룡도 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앞발이 너무 작아 보이는데 실생활에서 무슨 쓸모가 있었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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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이 창조이건 진화이건 무관하게, 공룡이라는 동물이 과거에 존재했다는 것 자체는 팩트이다.
신이 옛날에 공룡을 잔뜩 만들어서 인간의 역사 기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굴리고 화석으로도 남겨 놓으신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애들 동심을 자극하기 위해서임이 틀림없다. 꼬마들 중에 공룡 안 좋아하는 애를 내가 지금까지 별로 못 봤다. 나부터도 초딩 시절에 공룡에 환장했던 시절이 있었다. -_-;;

밤 하늘에 겨우 1픽셀짜리 도트 하나 차지하라고 지구보다 훨씬 더 큰 수소 핵융합 가스 덩어리를 셀 수 없이 많이, 그것도 엄청난 옛날부터 까마득히 먼 거리에 배치해 놓지도 않았는가? 하나님의 스케일이라면 공룡도 그런 목적을 위해 이런 식으로 창조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못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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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진술에 따르면, 고래는 이전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았고 현 세상에서 새로 창조된 놈이다(창 1:21). 즉, 이전 세상에서도 있었다가 현 세상에서 다시 창조된 실러캔스하고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래 중에서 대왕고래(흰긴수염)는 지질 시대 전체를 통틀어서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동물이면서 어류가 아닌 포유류이다. 또한 고래는 지능이 매우 높고 종 차원에서 사람과도 이례적으로 친숙한 등의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고래도 진화 계보가 있다는 것은 다른 여느 동물의 내력과 달리 내게는 더 큰 의미를 지닌다. 고생대· 중생대 같은 까마득히 먼 옛날이 아니라 비교적 가까운 신생대가 성경의 진술과 충돌할 여지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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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다음으로 인간도 말이다. 이건 아무래도 신의 인간 창조를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입장 차이가 가장 클 수밖에 없는 분야이다.
내 견해는.. 그냥 똑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전 세상에 살았던 인간 비스무리한.. 그러나 현행 인간과 유전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아무 관계 없는(특히 구원 계획) 휴머노이드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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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물들은 생명이 있어 움직이는 창조물과 땅 위 하늘의 열린 궁창에서 나는 날짐승을 풍성히 내라, 하시고.." (창 1:20)
  •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땅은 살아 있는 창조물을 그것의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그것의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24)

그래서 common designer이냐, common ancestor이냐의 논쟁은 오늘도 끝이 나지 않는다..;;
사실, 생명이 무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하고, 생물이 계속해서 분화하고 종이 바뀌는 것은 서로 별개로 살펴봐야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생명이 탄생한 것하고 그 전에 지구가 이렇게 절묘한 환경을 갖춘 살아 있는 행성으로 짠 만들어진 것도 역시 별개로 살펴봐야 하는 문제이다.
박물관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자 한다. 자연에는 신비로운 것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1/15 08:35 2021/01/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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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근황과 잡설

1. 올해 결산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우한 폐렴의 창궐 때문에 교회 예배가 중단· 축소되고 올림픽이 연기됐으며, 미세먼지가 없는데도 전국민이 무조건 마스크를 쓰고 다니게 됐다. 오죽했으면 거리 설교를 하고 전도지를 뿌릴 때도 마스크를 같이 나눠줄 정도였다. 한편으로 백 선엽 장군과 이 건희 회장의 부고가 전해지기도 했다.

대면 예배가 없는 동안 본인은 올해는 여행을 좀 더 많이 다닐 수 있었다. 블로그에 대대적으로 사진을 올리며 소개한 바와 같이 총 세 번 다녀왔다.

  • 춘계: 동부 남양주 지역 답사. 운길산 등산
  • 하계: 무려 3박 4일 동안 중부와 영남 지방 종합 답사.
  • 추계: 수인선, 서해선, 항동 철길을 두루 살펴본 경기도 서부 철도 종합 답사

2. 텐트 야영

본인은 저렇게 작정하고 여행을 떠나지 않을 때도, 심지어 직장 출근을 하는 평일에도 밤에는 대부분 집 있고 차 있고 노트북 있는 노숙자로 지낸다. ㅎㅎ
좋은 날씨에 야영을 하지 않는 건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아무 야외 오지라도 이 작은 텐트만 펼치면 포근하고 따뜻하고 아늑한 개인 공간 밀실이 만들어진다는 게 내게는 소확행으로 느껴진다.
남들은 캠핑을 가서 또 노는 활동을 하지만, 본인은 캠핑을 간 것 자체가 유흥이다.

내가 밖에서 못 자는 조건은 딱 둘: (1) 열대야 무더위, 그리고 (2) 나쁨 이상 수준의 미세먼지이다. 폭설 폭우 혹한은 정반대 완전 땡큐 조건이다.
침낭을 두 겹으로 걸치니 바닥의 냉기도 거의 느껴지지 않고 발도 안 시렵고 정말 따뜻했다.
핵심은 따로 난방을 전혀 가동하지 않고 밖에서 쾌적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 반면, 내게 집 건물이란..

  • 전기, 가스, 수돗물, 와이파이의 보급처
  • 용변, 샤워, 빨래 공간
  • 주민 등록을 위한 법적 주소 제공지

정도의 의미만을 지니는 듯하다. 딱히 몸 누이고 쉬는 공간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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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울에서 기슭까지 주차 걱정 없이 차로 접근 가능하고, 적당히 으슥하고 각종 법에 대놓고 저촉되지 않는 좋은 산은 매우 드물다.
언제 산에서 멧돼지라도 좀 만났으면 좋겠다. 그럼 반갑게 인사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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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왕숙천 강변이다. 여기도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이 당시엔 아침에 일어나 보니 텐트에 이슬뿐만 아니라 서리까지 내려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 나 같은 텐트족이 한 명 더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밤새도록 낚시를 하다가 잠드신 듯하다. ㅎㅎ

개인적인 로망은.. 강변이 아니라 강 하중도에서 숙박해 보는 것이다.
내가 어촌에서 살았으면 어선 한 척 장만해서 배에서 자거나, 아니면 남해안이면 매일 무인도에 가서 텐트 치고 자고 오지 싶다.
아니면 북한산이나 북악산 중턱에서 김 신조 코스프레를 해 봤으면 싶다. 텐트 다음으로는 비트를 파고 자는 것도 흥미진진할 것이다.

3. 북악산 개방

북악산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훑을 때 대략 "일반 구역 - 북악스카이웨이와 팔각정(자동차 지향) - 철조망 - 한양도성 구간과 정상(보행자) - 철조망 - 청와대"의 형태로 구간이 나뉜다.
그래서 남쪽의 청와대는 철조망에 사실상 이중으로 둘러져 있으며, 한양도성 구간은 남북 양쪽으로부터 격리돼 있다. 여기에 들어가려면 해가 떠 있는 동안 안내소 세 곳(창의문/말바위/숙정문) 중 하나를 반드시 거쳐서 이름과 연락처 까고 명찰 목걸이를 받아야 했다.

1968년 1· 21 김 신조 사태의 트라우마 때문에 청와대 주변 산들은 오랫동안 몽땅 락이 걸렸었다.
그러다가 1993년 김 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무궁화 동산과 인왕산이 개방됐다. 단, 월요일은 입산 금지이고, 주요 포토 라인엔 군경 감시요원이 배치되어 등산객이 청와대 방향으로 사진을 찍는 걸 막았다.

2000년대(07~09)에 와서는 인왕산에 이어 북악산도 북악스카이웨이뿐만 아니라 청와대에 가까이 있는 한양도성 구간이 해금되고 일반 구역에 있는 “김 신조 루트”와  우이령길까지 개방됐다. 비슷한 타이밍에 전국의 국립공원들이 무료화되기도 했다.
단, 북악산의 한양도성 구간은 아침과 낮 시간대에만 명찰 목걸이를 받아서 드나들 수 있다는 제약이 걸렸다. 인근의 북한산은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등산로를 벗어나서는 안 되고 아무데서나 야영을 하면 안 된다는 제약이 있지만, 북악산은 그런 것과 무관하게 그냥 보안 때문에 저런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그러다가 지금 대령통의 집권기인 2018~19년쯤엔 인왕산에 있던 감시요원들이 없어졌다. 그리고 북악산의 목걸이는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개인 정보까지 수집하지는 않고 그냥 드나드는 인원 집계만 하는 출입 태그로 바뀌었다.

이런 단계를 거쳐 지난 2020년 11월부터는.. 산중턱의 북악스카이웨이에서 한양도성 청운대 - 곡장 사이를 오가는 등산로가 추가로 개방됐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실상 단절돼 있던 두 영역에 대한 이질감이 크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한양도성 쪽의 등산로도 성 안쪽과 바깥쪽(북쪽) 양쪽으로 뚫리게 되었다. 등산과 캠핑을 좋아하는 본인 같은 사람에게는 이건 분명 호재이다.

다만, 한양도성과 이들 등산로는 출입증 명찰이 필요한 구역인 건 변함없기 때문에, 청운대와 곡장이라는 안내소가 추가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작은 북악산에 존재하는 안내소는 무려 5개로 늘었다. 이게 국립공원 산으로 치면 출입구에 존재하는 탐방 지원 센터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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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대 안내소는 북악스카이웨이 쪽에 마련돼 있고, 주변에 주차 공간도 좀 있다. 바로 옆에는 군부대가 있으며 원래는 이 안내소가 있던 곳도 군부대 부지였다. 그래서 옛날 로드뷰에서는 이 지점이 온통 흐리게 표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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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곡장 안내소는 한양도성 쪽에 가까이 있으며, 북악스카이웨이 쪽에서는 아주 자그마한 철제 출입문하고만 연계된다. 곡장 안내소로 가는 출입문에서 북악 팔각정까지의 거리는 5~600m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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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대 안내소에서 한양도성까지는 굉장히 가까워서 거의 10분 남짓 계단을 오르면 도달한다. 그렇잖아도 여기는 한양도성과 북악 스카이웨이가 굉장히 가까이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중간에 과거의 군견 훈련장이었다는 부지도 지나게 되는데, 이는 마치 우이령길에서 과거의 유격장 부지를 지나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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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 시장의 자살 사건 이후로 몇 달 만에 북악산이 또 언론에 오르내리게 됐다.
이번 등산로 개방 덕분에 차로 북악산의 백운대 정상까지 가는 게 아주 수월해졌다. 창의문 안내소에서부터 근성으로 한양도성 계단을 오르던 시절과 비교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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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대 안내소에서 출발해서 한양도성 - 곡장 - 곡장 안내소를 찍고 다시 청운대 안내소로 돌아오는 데 3~4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말 무난한 산책이었다. 산 속 나뭇잎들은 단풍이 들어서 울긋불긋하고 경치가 좋았다.
이 정도면 별도의 여행/등산 카테고리의 글로 올릴 분량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근황/잡설 글에다가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관심 있으신 분은 여기 등산 및 산책하러 가 보시기 바란다.

4. 병맛 개그

본인은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이라든가 쿵 퓨리(..;;)같은 B급 병맛 개그를 꽤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은 국내 유튜버들도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패러디와 오마주로 병맛 똘끼 개그물을 많이 만들고 있어서 볼거리들이 넘쳐난다. 정말 천재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그 중에 본인이 주목하는 유튜버는 ‘장삐쭈’와 ‘총몇명’이다.
장삐쭈는 원전에서 소리를 날려 버리고 더빙을 웃기게 하는 반면, 총몇명은 원전에서 영상을 자체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만들고 소리는 남겨 놓는다는 차이가 있다. 접근 방식이 서로 정반대라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총몇명은.. “아버지 뭐 하시노? / 콘덴싱 만들어요! 국가 대표 보일러 경동.. /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이게 정말 인간의 의식의 흐름이라는 게 어느 약 빤 지경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걸작이었다. ㅠㅠㅠ

장삐쭈는.. 여러 주옥 같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일본의 60년대 흑백 애니메이션인 에이트맨을 마개조한 봉팔맨 시리즈를 보고는 그 병맛스러움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 버렸다..;;
“나를 이길 자 그 무엇인가, 자동차보다 빠르고 기차보다 더 빠른 우리의 친구 봉팔맨”은 머릿속에서 자꾸 자동 재생될 지경이다.

제작자 양반은 나이도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던데 도대체 어디서 이런 덕력을 갖췄길래 무슨 1963년작 애니까지 찾아 갖고 이딴 더빙을 만드냔 말이다.. ㅡ,.ㅡ;; (에이트맨)
이 정도의 천재성이라면 전업 유튜브질만으로도 먹고 살 자격이 있어 보인다.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11 08:32 2020/12/1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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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교회 지인과 헤어진 뒤에는 서울로 돌아가면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경기화학선 내지 항동 철길이라 불리는 그 선로를 거의 전구간 농로를 따라 차와 도보로 답사했다. 마음 속 오랜 숙원을 이뤘다.

그 철길은 오류동에서 시작해서 서울 항동과 부천 옥길동을 경유한 뒤 선로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부근의 '경기화학(현재 KG케미칼.. 울산 온산 공단 소재)'이라는 공장으로 가는 걸로 끝나고, 다른 하나는 시흥의 경기 자동차 과학 고등학교 부근까지 더 내려가서 7578부대(육군 3군수지원 사령부)의 뒷문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부천 옥길동 일대가 아파트 건설 부지로 개발되면서 경기화학 공장과 해당 선로는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공장 부지는 대략 2017~18년부터 '부광로'라는 넓은 도로로 바뀌었다. 본인은 도로 공사가 시작되고 있을 때 현장 근처를 간신히 방문했던 적이 있다. (☞ 3년 전 글)

다른 사람들의 과거 답사기들을 검색해서 읽어 보면, 2015~2016년까지만 해도 매주 목요일 아침 또는 심야에 하루 한두 번꼴로 관련 시설(군부대 or 공장??)을 드나드는 열차가 아주 천천히 조심해서 통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젠 그런 거 없고 저 선로는 이미 녹슬고 잡초가 무성하며.. 거의 교외선과 비슷한 준 폐선 상태이다.

그나마 서울 항동 구간은 유명해서 공원 산책로로 바뀌기라도 했지만, 시외 구간은 선로가 언제 철거될지 모른다. 그러니 아직 선로가 남아 있을 때 방문해서 기록을 남겨 두는 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참고로, 여기 말고 인서울에 폐철길이 수백 m 이상의 유의미한 산책로 형태로 꾸며진 곳은 구 경춘선 성북-화랑대 구간밖에 없을 것이다. 용산선 지상 구간도 얼마든지 철길 공원으로 꾸며질 수 있었을 텐데 그리 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그리고 서빙고 역에서도 차도를 가로지르기까지 하면서 인근의 미군부대 내부로 들어가는 지선 철길이 있긴 하지만.. 그건 길이가 너무 짧아 보인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경기화학선은 생각보다 옛날인 1960년대에 만들어져서 꽤 오랫동안 열차가 다녔다고 한다. 서울 밖에서 얘의 선형은 목감천과 얼추 비슷하며, 시흥(과림동)과 광명(노온사동)의 경계나 마찬가지이다.
본인은 광명 능촌교에서 북쪽 노온사교까지 약 1.5km 구간, 그리고 시점(항동..)과 종점(군부대) 부근은 걸어서 왕복 답사했고, 나머지 구간은 차를 몰고 따라가면서 주요 구간만 촬영하는 식으로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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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은 도보 답사를 하며 촬영한 주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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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종점 부근에 와서는 선로가 주변의 도로보다 높이가 약간 더 높아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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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커브를 틀고는 군부대의 뒷문 안으로 들어갔다. 보다시피 종점 근처는 선로의 상태가 저 북쪽보다 더 양호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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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북쪽으로 농로를 따라 차를 몰면서 선로의 궤적을 추적했는데.. 어떤 곳은 위의 사진과 같이 풀숲으로 뒤덮혀서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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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선로가 차도보다 고도가 낮아졌고.. 아예 빗물에 침수되어 있는 안습한 구간도 딱 한 번 등장했다. 여기에 열차가 다시 다니려면 노반 정비를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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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vs 광명이 아니라 부천 구간으로 들어서자 철길의 선형이 차도와는 평행이 아니라 수직으로 따로 놀기 시작했으며, 근처에서 차로 나란히 이동하면서 선로를 추적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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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가 바로 경기화학 공장 방면과 군부대 방면의 선로가 갈라지는 지점이었던 흔적이다. 매우 중요하다. 부천 옥길동 연동로159번길 소재.
이곳은 여행 당시에 미처 들르지 못해서 추후에 재답사하여 풍경 사진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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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울에 도달했으니 이 철길의 항동 구간을 또 답사했다. 5년 전에도 여기를 들른 적이 있었지만(☞ 그 시절 기록), 빌라촌이 끝난 뒤에도 철길이 저렇게 계속 이어지는 것은 그때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오류동 역보다도 7호선 천왕 역에서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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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이렇게 항동이라는 가상의 임시 승강장까지 꾸며 놓았다. 그리고 벤치도 열차 궤도를 둥글게 말아 놓은 기발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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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길은 이어지고.. 이것으로 본인의 여행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안양, 안산, 시흥, 인천, 화성, 수원, 광명, 부천 등..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서울 동부는 상수원 보호 명목으로 산과 강이 발달해 있고, 서남부는 그런 건 좀 덜하지만 동부보다 철도 관련 볼거리가 확실히 더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신도시가 만들어지는 곳에는 어디든 공원도 참 기가 막히게 잘 꾸며 놓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수서 역 주변의 율현 공원을 보고도 무척 놀랐던 적이 있다.
이번 여행 중에도 미처 들르지 못한 공원을 도대체 몇 개를 발견했나 모르겠다. 그만치 세상은 넓으며, 인적 드물고 노숙할 만한 곳도 넘쳐난다는 걸 느꼈다.

끝으로 문득 든 생각인데.. 내 것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차량 내비 지도에는 여느 인터넷 지도와 달리, 철길이 표시돼 있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몹시 불편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역만 나와 있지 역과 역을 잇는 선분이 없다.
애마를 철도 답사 용도로 많이 활용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작지 않은 애로사항이라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0/10/07 08:37 2020/10/0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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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수인분당선은 이제 역이 무려 60개를 넘는다. S자 모양으로 늘어진 노선도가 압박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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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시간대이지만 열차 안엔 나처럼 카메라 들고 기웃거리는 아재들이 제법 있었다. 뻔할 뻔 자.. 철덕은 다른 철덕을 알아본다. ㄲㄲㄲ 심지어 뉴시스이던가 기자양반도 한 명 탑승해서 승객을 인터뷰했다.

  • 이번에 새로 개통한 수인선 구간은 사리-야목-어천-오목천-고색 이렇게 5개역이다.
  • 여기는 행정구역이 대부분 화성이며, 수인선 전체를 통틀어 가장 한적한 구간이다. 괜히 제일 늦게 개통한 게 아니다. 경부선 평택 이남, 중앙선 양평, 경강선 광주-이천, 경춘선 구간과 성격이 비슷하다.
  • 한적한 구간에 걸맞게 거리 대비 역수는 적은 편이며, 선로가 정말 반들반들하고 승차감이 좋았다. 전동차가 전속력 최고 출력으로 밟느라 웅~ 소리가 강하게 날 때는 뭔가 터보프롭 비행기 엔진 소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수원 근처의 오목천과 고색만 지하이고, 나머지는 지상이다. 하지만 지상 구간도 중간에 지하 터널을 잠시 통과하기도 한다.
  • 어천-오목천 사이에는 군부대를 지나고 경부고속선 선로와 만난다.
  • 고색은 지하이지만 분당선 오리처럼 승강장이 쌍섬식이다. 수원을 대신하여 중간 회차· 종착역 역할을 담당시키기 위해 여분 선로를 만든 것이다.
  • 남동인더스파크 역은 화물 취급을 염두에 두고 넓은 부지에다 선로도 여러 개 확보해 놨지만.. 현재로서는 화물 취급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 남동인더스-원인재 사이에 승기천을 건너는 구간에도 달월-소래포구와 마찬가지로 옛 수인선 철교가 인도교 형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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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야목 역에서는 잠시 내려 보기도 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오고 있는 열차들의 위치가 각각 무려 상갈, 야탑, 선릉이다. 배차간격이 얼마나 긴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인천 방면이 아니라 수원-왕십리 방면 안내 표지판에도 오이도 행 열차가 표시돼 있는데, 이건 애시당초 이 역까지 오지 않고 그 전에 끊기는 열차이다. 그래도 어찌된 일인지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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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목 역은 안산선 반월 역과 마찬가지로 출구가 하나만 있었다. 논밭뿐인 반대쪽은 출구가 있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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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차를 타고 인천 역까지 갈 수 있었다.
월미 모노레일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더니 그래도 '바다열차'라는 이름으로 재개통을 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거의 4시간 동안 열차와 역 주변을 머물면서 수인선 열차 시승을 마쳤다. 그 뒤 본인은 차를 몰고 여기 근처에 사는 교회 지인을 만나러 시흥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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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함께 간 곳은 시흥에 있는 갯골 생태 공원이었다. 그렇잖아도 인천에 소래 습지 생태 공원이 있는 걸 알기만 하고 가 보지는 못했는데, 근처에 비슷한 유형의 공원이 더 있으니 반가웠다.
날씨가 우중충했지만 오전부터 공원에 온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가 있는 동안은 비가 더 내리지 않고 밖이 아주 시원했다. 그래서 파란 하늘을 사진으로 남길 수 없어서 아쉬운 것만 빼면 날씨 자체는 야외 산책을 하기에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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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숲길과 넓은 풀밭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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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작동하는 염전과 소금 창고도 있었다.
서울 동부에 있는 팔당 일대의 공원들이 상수원 보호로 인해 보존된 자연을 내세우고 있다면, 서울 서남부의 이 동네는 염전과 갯벌을 내세우고 있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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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건물 형태로 22m 높이의 전망대가 우두커니 세워져 있었다. 바람이 불면 조금씩 들썩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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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공원 풍경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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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목안 공원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협궤 화차가 전시돼 있어서 매우 반가웠다! 뜻밖의 소득이었다. 병목안이 돌이라면 여기는 소금 가마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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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혹시 수인선의 지선이었던 걸까? 그렇다면 수인선과 직통 운행을 했을 법도 해 보이는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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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아주 넓어서 더 돌아다닐 수도 있었지만.. 1시간 남짓 정도만 산책한 뒤 점심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낮이 되니 사람은 더 많아졌고 주차장도 빈 자리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시흥에 있는 소래산 내지 군자봉 등산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것 역시 미래의 다음 답사를 기약하기로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0/10/04 19:37 2020/10/0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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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인은 서해선 전철을 시승했다. 이 전철은..

  • 경기도 서남부의 종축 광역전철이다. 참고로 경강선은 경기도 동남부의 횡축 전철이다. 종축인 동해선 전철도 있긴 하지만 그건 소재지가 부산이다.;;
  • 노선색이 연두색인 게 우이 경전철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 4량 편성이고 경의선과 비슷하게 평일 낮 기준 1시간에 3대(20분..) 간격이다.
  • 원시-소사까지 편도로 다 완주하는 데 딱 30분 정도 걸렸다.
  • 모든 역이 지하이지만 시흥시청-신현 중간에 딱 한 번 마치 8호선 복정-산성처럼 잠시 밖에 나왔다가 들어간다.
  • 코레일 직영이 아니어서 그런지 시종착 때 여느 코레일 전동차와는 다른 희한한 음악이 흘러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특징이 있었다. 특별히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전철 시승을 마친 뒤엔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경치 구경을 계속했다. 여기는 안산선도 수인선을 따라 만들어진 구간이기 때문에, 답사하는 게 넓은 의미에서의 수인선 일대 답사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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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온천 역의 주변은 듣던 대로 온천 개발을 하려다 만 공터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땅이 다른 용도로 개발되지도 않고 역명이 바뀌지도 않고(공단도 초지라고 바뀌었는데~!)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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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향하던 안산선이 오이도 역 부근에서는 갑자기 동북쪽으로 코너를 트는 게 마치 서울 지하철 5호선의 방화 역 부근의 선형 같다. ㄲㄲㄲㄲ
오이도 역의 동쪽은 바로 앞이 야산 언덕이고, 예나 지금이나 한가한 농촌이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이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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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산선을 넘어 수인선 구간에 진입했다. 본인이 찾아간 곳은 구 수인선 협궤가 사용하다가 지금은 인도교로 바뀐 소래 철교였다. (건너편의 교량은 당연히 현재의 수인선 복선전철 교량)
여기 근처를 찾아갈 일 자체는 두어 번 있었지만(부모님 볼일, 사랑 침례교회 방문 등), 다리를 직접 건너 본 적은 없었다. 기왕 수인선 답사를 왔는데 여기는 내 발로 디뎌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칠곡에서 호국의 다리(낙동강)를 건너 봤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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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호국의 다리와 소래 철교 모두 비 내릴 때 우산 쓰면서 다녀 보게 됐다.
다리 아래는 온통 갯벌 뻘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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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쪽에는 '장도포대지'라고 조선 시대에 쓰였던 해안 방어용 대포 터렛도 전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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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각이 오후 4시 무렵이 됐다. 본인은 지하철 4호선의 종점명으로는 맨날 귀가 따갑게 들었던 오이도를 찾아갔다. 총신대입구? 서울대입구? 한대앞? 그 어떤 전철역들도 역명과 실물이 오이도만치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이도는 야산 언덕이 있는 부분만이 실제 섬이었고 나머지 식당과 공장들이 있는 평지는 모두 바다를 메운 간척지이다.;;;
직접 가서 보니 뭔가 포항 죽도시장 어시장 같은 분위기였다. 본인은 밥을 여기서 먹고 갯벌 구경을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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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 전망대'라고.. 해군이 아니라 해양 경찰이 사용하던 퇴역 경비함을 리모델링한 전시관과 전망대가 있었다. 1980년부터 2009년까지 거의 30년을 굴렸던 배이다. 물론 여기도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슬슬 날이 저물어 갔다. 이제 잘 곳을 찾아야 했는데.. 캠핑을 하더라도 최소한 천장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비가 의외로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기 때문이다. 공원은 많지만 비를 피할 정자가 있는 곳은 찾기 쉽지 않았다.
근처에 오이도 선사 유적 공원이 있었는데 왜 거기를 떠올리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사람 없고 한산 썰렁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달월 역 주변도 노숙하기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공장 단지 주변을 배회하다가 옥구 공원 주차장 근처의 어느 풀밭 언덕에 텐트를 치고 잠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엔 오이도 역에다가 차를 세우고 이번 여행의 메인 테마인 수인선 전철을 수원에서 인천까지 드디어 시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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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2 08:35 2020/10/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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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가는 길.. 요게 무슨 시설인지 사진만 보고 아시는 분은 굉장한 용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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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노골적인 힌트를 드리자면, 수 년 전에 저기서 벌어진(벌어졌다는) 일보다 이번 뭉괴뢰 정부에서 저지른 탈북자 북송이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큰 죄악이다. 이건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항이며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요즘은 대통령이 대놓고 종북 발언을 하기가 좀 뭣하니, 통일부 장관을 희대의 빨갱이로 임명해 놓고 그놈을 통해서 자기 심정을 대리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산을 전철이 아닌 차로, 그리고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지방도만 이용해서 가니 무척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이 지역에서 본인이 가장 먼저 답사한 것은 반월-상록수 역 사이에서 KTX가 달리는 경부고속선 선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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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천 다음으로 반월천에도 맑은 물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낮이 되어 살짝 덥기까지 한데.. 옷 벗고 들어가서 물놀이를 하고 싶어졌다.
반월천의 물은 수리산에서 발원해서 저 멀리 시화호 쪽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지금 이 시야에서 바로 옆이 경부고속선이며, 뒤에는 안산선 전철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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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경부고속선 선로와 함께 나란히 반월 호수 부근까지 갔다.
여기까지 간 김에 일직 터널 위의 유명한 열차 촬영 명당도 다시 들러 보고 싶었다.
본인은 무려 7년 전에 가 본 적이 있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삽질만 하다가 재답사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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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터널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남쪽의 다른 산길을 잘못 올랐다. 거기도 어귀는 터널 근처의 산길과 비슷하게 생겼고, 옆으로 철조망이 처진 것까지 동일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맞는 길로 가긴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름길 진입로는 검찰일보인가 어디의 사유지로 바뀌고, 주변이 철망이 쳐지고 CCTV까지 생겨 있었다. 이 때문에 더 들어가 보지 못했다.

나중에 여기 일대의 인터넷 지도를 보니, 터널 주변을 더 크게 우회해서 터널의 위쪽으로 접근하는 다른 길이 있긴 한 듯하다. 하지만 그 길은 7년 전에 갔던 길은 아니며, 그렇게 갔을 때 그 촬영 명당에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지도 직접 답사를 하지 않는 한 모르겠다. 7년 전에는 갈 수 있었던 길이 지금은 막혔다는 것 하나는 사실인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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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인해 KTX 명당에는 못 들렀고, 그 대신 바로 옆의 경치 좋은 반월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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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름 없는 야산의 꼭대기에는 군사 시설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있다. 산의 이름이라든가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궁금해지는데 인터넷 지도에는 딱히 안 나오는 것 같다. 그저 덕고개 당숲 같은 주변 산책 코스만 나올 뿐..
이렇게 정신없이 돌아다닌 뒤, 한적한 반월 역에 들러서 각종 재충전과 보급을 했다. 안산 시내의 공영 주차장들은 3시간까지는 무료여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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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최 용신 기념관 및 묘지를 지난 2005년 이후 무려 15년 만에 다시 찾아갔다.
그 긴 세월 동안 샘골 공원은 싹 리모델링 되었고 최 용신 기념관이 정식으로 지어졌으며 주차장도 생겼다. 주차장엔 샘골 교회에서 굴리는 승합차도 두어 대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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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이렇게 바뀌었을 줄이야.. 길도 다 포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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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는 약혼남이던 김 학준의 약력도 소개돼 있었다. 이분도 조선어 학회 사건 때 투옥된 적이 있었나...? 저건 김 학준의 약력인지 정 태진의 약력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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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첫 답사했던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되게 싹 바뀌었다. 다만, 지금은 코로나19 시국 때문에 기념관 안에는 못 들어갔다.
기념관이 여기 언덕 위에서는 단층 건물인 것 같지만, 언덕 아래쪽으로 층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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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이다.

이제 본인은 수인선의 개통에 앞서 서해선 전철부터 타 보기 위해 남쪽 종점인 원시 역 부근으로 갔다. 본인은 아직 서해선도 전혀 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초지 역 이남은 크고 한적한 도로의 양 옆에 역시 듣던 대로 공장들이 가득했다. 근처의 야산에 웬 전망대 공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지만 시간 관계상 가 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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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시 역 이남으로 도로의 끝은.. 이렇게 시화호로 흘러드는 반월천의 하류가 가로막고 있었다. 강 건너편은 화성시이다.
여기도 나름 공원이 잘 꾸며져 있었으며 강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도 좀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때부터 맑고 푸르고 화창하던 하늘이 흐려지고 어두워졌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29 19:35 2020/09/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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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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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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