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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고향 주변의 공원 풍경

1. 청담 도로 공원

서울의 올림픽대로에서 한강과 탄천이 딱 합류하는 구간.. 그렇다고 강변은 아니고 상행과 하행 도로의 사이 공간에는 '청담 도로 공원'이라는 자그마한 정원과 산책로가 있다.
이게 운전자들에게는 휴게소 역할을 한다. 차가 없더라도 인근 주민은 굴다리를 통해 여기로 드나들 수 있다.
단, 올림픽대로에서는 종합운동장 방면에서만 진출입 가능하고 김포공항 방면에서는 접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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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있는 정자의 2층으로 올라가서 찍은 풍경임)

이 공원은 1980년대 5공 시절에 진행되었던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의 완료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내부에는 이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본인은 대한뉴스 영상을 보다가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우연히 발견하고는 개인적으로 찾아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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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종합 개발 사업은 의외로 위키에 단독 항목이 개설돼 있지 않고 인지도나 존재감이 별로 없다.
새마을 운동이나 경부 고속도로가 박통의 상징이라면, 전대갈 시절 토목 공사의 상징은 이거나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이전의 박통 때는 한강에서 각종 섬이 메워지고(난지도, 뚝섬..?), 교량들이 잔뜩 건설되고 팔당댐이 만들어지고 잠실 쪽의 선형이 바뀌는 등, 치수 사업과 강남권의 개발을 염두에 둔 개발이 진행됐다.
그 뒤 전대갈에 와서는 한강 바닥을 더 파서 수심을 더 올리고 주변에 시멘트 제방을 쌓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 고수부지 내지 둔치라고 불린 한강 공원이라는 것을 곳곳에 조성했다.

또한 강변북로의 남쪽 버전 명목으로, 서쪽의 김포 공항과 동쪽의 잠실 경기장을 직선으로 잇는 자동차 전용 도로인 올림픽대로를 건설했다. 이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쉽게 말해 지금 우리가 아는 한강의 모습이 이때 얼추 완성됐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전에는 한강 강변도 무슨 바닷가처럼 온통 모래 뻘밭이고 홍수가 나면 수시로 범람하고.. 선형이 더 무질서하고 제멋대로이고 지금보다 자잘한 하중도도 더 많이 있었다. 먼 과거에는 사람들이 별 부담 없이 한강물에 뛰어들어 물놀이도 했지만 가까운 과거에는 지금보다 물이 훨씬 더 더러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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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다.
전대갈 각하... 나쁜놈이기만 한 줄 알았는데 세상엔 전대갈보다 훨씬 더 나쁜놈들도 많아서 돈과 권력을 쥐고 떵떵거리고 있음을 실감하며 지낸다. 내가 오죽했으면 몇 년 사이에 생각이 이렇게 바뀌었다.
그러니 전대갈 각하 정도면 만수무강하시면서 그런 나쁜 간첩 반역자들을 계속해서 도발하고 어그로를 끌어 줬으면 좋겠다.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안 해 놓고 말이야" 라고 조롱도 좀 해 주시고..

"아이가 살면 너도 살고 아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담화에다가.. 살인 없이 강간 재범 누범만으로 가정파괴범 명목으로 사형 집행을 해서 사회 정의를 실현했던 그 강렬한 포스를 나는 두고두고 기억하고 칭송할 것이다. 이런 건 서 정주 시인이 지은 오글거리는 송시에도 언급돼 있지 않은 것 같다.;;

2. 이촌 한강 공원

현재 한강 공원에는 4월부터 10월까지,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부 구간에 한해 풀밭에서 텐트를 치고 놀 수 있다. 이건 2019년 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정책이다.
아마 2010년도 중반인가 텐트가 처음 허용됐을 때는 밤 9시까지 허용이었고, 11월부터 3월 기간에도 저녁 6시까지는 텐트를 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규제가 더 강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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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를 예방한다는 구실로 4월까지도 계속해서 텐트가 금지되어서 개인적으로 답답했다.
그러다가 5월이 돼서야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이 완화되고 텐트도 허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본인도 2020년 이래로 처음으로 한강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오랜만에 ‘한강면’도 시식하며 지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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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봄비가 내리다가 그친 상태였다. 아직 하늘이 흐리지만 선선하고 나들이 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그나저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강면은 은박지 그릇에 담겨 나왔다. 뜨겁기 때문에 다른 마분지 같은 걸 덧대어서 쥐어야 했는데 요즘은 방열 방수 성능이 뛰어난 동그란 종이 그릇으로 바뀌었다. 이런 것 기술도 발달하는 게 느껴진다.

3. 포항 송도 해수욕장

5월 황금연휴 때 고향을 방문해서는 포항 죽도시장을 찾아가서 회를 먹고, 근처의 송도 해수욕장을 방문했다. 단, 이 날도 하필 흐리고 비가 내려서 맑은 풍경은 구경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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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라는 이름의 해수욕장이 부산뿐만 아니라 포항에도 있다.
포항 송도 해수욕장은 과거에 피서지로 굉장한 인기를 누렸지만 수질 악화와 모래 유실 문제로 인해 2007년부터 사람의 입수가 금지되고 그냥 산책용 해변 공원으로 전락했던 이력도 있다. 그러다가 복원 공사를 거쳐서 2012년부터 재개장 했다고 한다.

송도 해수욕장에서는 저 멀리 포항제철 공장이라고 해야 하나 부두가 보인다.
여기 말고 또 포항 시가지에서 비교적 가까운 해수욕장으로는 더 북쪽의 ‘영일대’ 해수욕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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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해수욕장의 중앙 입구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평화의 여신상”이라는 석고상이 세워져 있다. 처음 봤을 땐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검색해 보니 이건 무려 1968년 7월부터 건립되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누가 왜 무슨 사연이 있어서 무엇을 모티브로 따서 이런 걸 만들었는지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게다가 원래 있던 동상은 너무 낡아서 폐기 처분했고, 지금 것은 2015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저 여인은 나체..는 아니고, 수영복이나 레오타드를 걸친 모습인 듯하다. 옛날 사진을 보면 한때는 저 월계수 가지가 사라지고 없던 적도 있었다.

4. 경주 황성 공원

작년 가을 추석 때 풍경 사진을 올린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재탕한다. 여기는 경주 최고의 쉼터인 것 같다. 딱히 신라 시대 유물과 관계가 없고 산이나 강변도 아닌 넓은 부지가 어떻게 숲과 공원으로 조성되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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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짱박힐 곳이 많다. 개인적으로 여기 으슥한 곳에 들어가서 돗자리 깔고 침낭 덮고 노숙을 해 봤다. 이곳은 이른 새벽부터 산책과 운동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즐비하니, 노숙을 할 거면 눈에 안 띄게 잘 짱박혀야 한다.

서울의 청계천, 중랑천, 한강 공원만큼이나 여기도 북천과 형산강을 따라 자전거 도로와 넓은 풀밭(고수부지? 둔치?)가 만들어져 있다. 특히 형산강 둔치의 풀밭은 정말 넓고 주차도 걱정 없어서.. 본인이 언젠가 저기서 텐트 치고 야영을 할 거라고 단단히 작정을 한 상태이다.

이상. 공원 답사만으로 또 긴 글이 완성됐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25 19:33 2020/05/2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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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운길산의 정상에 도달했다.
이 산은 국립공원이나 각종 둘레길 같은 브랜드가 없고, 딱히 군사 시설이나 역사적인 사연도 없는 아주 평범한 산이었다. 구조도 흙산이어서 정상 부근에 거대한 바위 같은 것 역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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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어쩐 일인지 넓은 전망대가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본인 말고도 다른 등산객 일행이 서너 명가량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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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본인이 세팅한 숙소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의 중간쯤에 헬리패드와 함께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공터의 주변에 고맙게도 이런 평상이 3개 정도 있었던 덕분에 거기에다 간편하게 텐트를 칠 수 있었다. 텐트를 지고 힘들게 산을 오른 보람이 있었다.

본인은 여기서 저녁을 먹고 하룻밤 묵었다. 예빈산, 갑산 새재고개에 이어 운길산까지.. 남양주 남부에 있는 산의 정상이나 능선에서 야영 기록을 연달아 남기게 됐다.
이불만 덮으니 밖은 전혀 춥지 않고 지낼 만했다.

4. 국도 45호선과 대성리 유원지

한숨 잘 자고 나서 텐트를 걷고 산을 내려갔다. 이른 아침에 국도 45호선을 타고 북한강을 따라 북쪽 가평 방면으로 이동했다. 안개가 자욱히 껴 있는 시원하고 한적한 시골길을 주행하는 기분은.. 정말 끝내주게 좋았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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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의 첫 목적지는 대성리 역 근처에 있는 북한강변의 넓은 풀밭이었다. (그 전에 대성리 역 화장실의 도움을 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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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전반적으로 흐리고 우중충한 잿빛으로 찍혔지만 지내기는 이때가 덥지 않고 무척 좋았다. 주변엔 저 멀리 자전거 타거나 산책하는 사람만 가끔 지나가고, 이 공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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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여기서 돗자리 깔고 있으면서 폰과 노트북의 남은 배터리를 모두 소모했다.
아직 일반적인 식당이나 카페가 문을 열기에는 좀 이른 오전이었지만, 그래도 아침 9~10시쯤 되니 민간 카페(?) 말고 브랜드 체인점 카페는 문을 연 게 있었다. 거기서 또 2시간이 넘게 있으면서 음료와 전기를 보충하고 인터넷 확인도 했다.

5. 청평댐과 지방도 391호선

아침이 지나고 낮이 가까워지자 해가 뜨고 날이 급격히 더워졌다. 그리고 도로에는 이전보다 차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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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을 받은 뒤엔 이제 어디에 갈지가 고민됐는데.. 마침 신청평대교 아래의 강변에 아주 넓은 풀밭과 함께 한낮부터 텐트들이 잔뜩 보였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저 멀리 댐 같은 것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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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본인은 옳다구나 하고 그리로 내려갔다. 낮에는 또 여기서 텐트를 치고 지냈다.
자세한 내역을 적지는 않지만 이 날 카페와 텐트 안에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코딩 작업도 많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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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일과를 진행하니 오후 3시쯤이 됐다.
이제 가평 쪽으로 탐험을 더 계속할지, 아니면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끝에.. 이번 여행의 공세종말점(?)을 감안했을 때 신 청평대교를 건너서 유턴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강 건너편의 지방도 391호선 강변 구간도 어차피 몽땅 미지의 영역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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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점심을 먹고, 어느 근사한 카페에서 전자기기들을 추가로 충전하며 마지막 보급을 받았다.
391번 지방도는 마냥 평지에서 강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가끔 경사와 커브가 아주 급한 산길 형태로 돌변하기도 했다. 운전이 꽤 다이나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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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날이 슬슬 저물고 있다. 여기는 아마 양평과 가평 경계의 어느 카페촌이었지 싶다.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지도를 펴서 정확한 위치를 추적할 수도 있겠지만.. 귀찮아서 생략한다.
이 당시 서종대교 위로 60번 고속도로는 차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상· 하행 어디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6. 강변 오토캠핑

그리고 저녁 6시 반쯤, 가평을 벗어나 양평 서종면 구간에서 드디어 텐트들이 즐비한 넓은 캠핑장을 발견했다. 캠핑장은 보통 '수상레저'라는 상호가 붙은 곳에 같이 있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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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텐트... 취미 성향이 이런 쪽인 남자사람이라면 높은 확률로 낚시에도 재미를 붙일 법하지만.. 그러고 보니 본인은 어제와 오늘 동안 자덕들은 많이 봤어도 낚시꾼은 거의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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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물 바로 코앞에다 텐트를 치고 강 구경 하면서 밤을 보내니 이것도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산에서 보냈던 어젯밤과도 비교되고 말이다. 한강 공원이나 팔당호 주변의 강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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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를 친 모든 사람들이 야영을 하지는 않았다. 해가 떨어지니 상당수는 돌아가고 텐트는 몇 개 남지 않았다. 그래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어제는 등산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지 눈을 감자마자 곧장 기절했지만, 이 날 밤은 덜 피곤하고 마음이 들떠서 그런지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면서 몸이 시동이 쉽게 꺼지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게 컴퓨터 작업과 독서를 반복하다가 그제서야 잠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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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어제와 거의 같았다. 어제와 비슷하게 아침 드라이브를 즐기며 귀가했다. 길거리 사진은 이것 하나만 올리지만, 여기 도로 주변 풍경이 전반적으로 다 이런 식이었다.

남한강 합류 지점이 가까워지자 강폭이 커지고 주변에 갑자기 울타리와 철조망이 둘러지면서 “상수원 보호 구역” 표지판이 곳곳에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걸 보니 여행이 끝났다는 게 벌써부터 느껴졌다.
이렇게 휴가 여행을 마쳤다. 그러고 보니 경기도조차 벗어나지 않은 단거리 투어가 됐지만.. 새로운 장소들을 개척하면서 자연인· 자유인 체험을 잘 하고 왔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0/05/11 08:34 2020/05/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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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4월 말부터 5월 초 사이에 석가탄신일, 근로자의 날, 주말, 어린이날이 거의 일렬로 쭉 이어지는 황금 연휴가 있는 편이다. 일본은 4월 29일이 쇼와의 날이라고 해서 자기네 리즈 시절이었던 히로히토 일왕을 기리는 공휴일인데.. 한국은 석가탄신일이 얼추 비슷한 시기에 공휴일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성탄절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1970년대에야 추가된 종교 공휴일이 나름 봄철의 연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이 기간 동안 너도 나도 외국으로 나가느라 인천 공항은 터져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더러 외국으로만 나가지 말고 내수 경제도 좀 살려 달라고 나라에서 고속도로 톨비도 면제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것 없다. 천재지변 급의 재앙 때문에 하늘길이 꽁꽁 묶여 버렸다. 인천 공항은 재작년에 평창 올림픽에 맞춰서 제2 여객터미널까지 당당히 개장했는데 지금 이게 무슨 꼴이냐..;; 안습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국내는 다행히 전염병이 기세가 많이 꺾였으며,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도 완화되었다. 그러니 본인은 이 연휴 기간 동안 하계 휴가에 준하는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컨셉은 "2020년 춘계 황금연휴를 이용한 자연인 체험 -- 북한강변을 중심으로"가 됐다.

생각했던 것만치 멀리 나가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답사했던 적이 없는 장소를 다니면서 자연을 즐기고 왔다. 특히 "하루는 산에서 자고 하루는 강가에서 자기"를 목표로 설정하여 잘 달성했다.
딱 하나 미스는 처음에 떠나는 길에 시간대를 잘못 선택해서 극심한 교통 체증에 시달린 것이었다. 역시 이 시국에 나만 여행을 가는 게 아니었다..;; 평범한 아침 시간대가 아니라 새벽 같은 다른 시간대를 선택했어야 했다.

사고 하나 없이 오로지 차량과 분기점 병목만으로 길이 이 정도로 막히는 건 굉장히 오랜만에 봤다.;; 팔당대교 진입로에는 2~3km에 달하는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명절 귀향· 귀경길이 아닌 상황에서 차 내비 화면에 "2시간 연속 주행하셨습니다. 좀 쉬었다 가세요"가 뜨는 걸 보니 자괴감이 들었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건 마치 우주 로켓이 1단 엔진을 가동해서 지구 대기권을 빠져나가는 것과 같았으며,
서울 교외에서 남양주든 양평이든 가평이든 어디든 가는 건 지구 저궤도에서 3단 엔진을 가속해서 달이든 화성이든 가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서울-남양주가 2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일단 서울을 벗어난 뒤부터는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1. 중앙선 구 능내 역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는 바로 남양주 조안면에 소재한 중앙선 능내 역이었다. 이 역은 중앙선 복선 전철화와 선형 개량(=대대적인 선로 이설)으로 인해 2008년 말에 폐역했지만, 역 주변이 통째로 공원 내지 관광지로 보존 처리되었다.
본인은 다산 유원지는 두 번이나 다녀왔지만, 저기는 지금까지 가 본 적이 없었다. 다산 유원지와 이 정도로 가까이 있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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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내부와 승강장은 지난 2월에 답사했던 화랑대 철도 공원과 여러 모로 비슷한 분위기였다.
단, 여기는 "자덕들의 성지"라는 점에서 화랑대 철도 공원과는 차이가 있었다. 반포 한강 공원이 자덕의 성지인 것처럼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앙선과 경춘선은 모두 복선 전철로 개량되면서 많은 구간이 이설됐는데, 기존 구선로 구간, 특히 강을 따라 달리는 구간은 상당수 자전거길로 리모델링 됐기 때문이다. 능내 역은 이 과정에서 특혜를 입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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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철도 공원이 그렇듯이, 저기 보이는 객차 안에도 카페가 있다. 하지만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역시 코로나 크리 때문에 영업이 중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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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에서 역 건물을 바라본 모습이다. 이 시선의 후방으로는 자전거 도로가 나란히 놓여서 자전거들이 씽씽 지나갔으며, 근처에는 자전거 대여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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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의 근처에는 선로와 자전거 도로, 주차장이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2. 물의 정원

능내 역을 답사한 뒤, 다음으로 본인은 북한강을 따라 가평 방면으로 올라가다가 '물의 정원'이라는 강변 공원을 발견하여 거기를 들렀다.
팔당 물안개 공원 같은 곳이 남양주의 북한강 구간에도 있었구나. 다만, 규모는 이게 훨씬 더 작다. 그리고 여기가 팔당 물안개보다는 먼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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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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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좋고.. 아무 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근사한 풍경화가 나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넓은 풀밭을 자유롭게 거닐다가 벤치에 앉아 쉬거나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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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부에는 이렇게 섬 같은 곳을 드나드는 다리가 있었다. 섬 안이나 밖이나 면적은 비슷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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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 장면 남긴다. 본인은 여기서 2시간 남짓 머물면서 신선놀음을 하다가 다음 장소로 이동해서 등산을 시작했다.

3. 운길산

등산 대상은 큰 고민 없이 의외로 금방 정해졌다.
운길산은 본인의 여행 경로와 가까이 있고 산 중턱의 수종사 부근까지 차를 몰고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상 근처에 평상까지 준비돼 있으니 가히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본인은 첫째 날은 여기서 텐트 치고 잤다.

마침 이 날이 석가탄신일이기도 해서 수종사 주변의 주차장 공터엔 불자들이 등산객 이상으로 아주 많았다. 절과 운길산 역을 오가는 셔틀버스(소형 승합차..)도 다닐 정도였다.
산을 올라간 다음에는 다음날 아침에 내려올 예정이니 본인은 여기서 오늘의 마지막 보급을 받았다. 음료수를 보충하고 전자기기들을 충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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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를 지나고 나니 주변에는 절 방문객이 아닌 등산객만 남고 주변이 썰렁해졌다.
거기서 정상까지 명목상 이동 거리는 800m 남짓에 불과했지만, 고도는 거의 300m 가까이 상승해야 했다. 즉, 등산로가 꽤 가파르고 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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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물의 정원' 쪽을 내려다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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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과 저 멀리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모습이다. 산에서는 이런 넓은 전망을 볼 수 있으니 좋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08 08:33 2020/05/0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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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멀쩡한 사람을 모함하고 누명 씌워서 제거하는 방법이 정치 분야의 역적, 아니면 종교 분야의 이단/이교도(특히 서양에서) 만들기 정도가 있었다.
오늘날은 그때보다 사회 구조가 복잡해졌다 보니, 사람을 유죄 추정의 원칙에 근거하여 매장하는 방법이 분야별로 더 다양해져 있다.
  • 이 반도 땅 한정으로 친일파 내지 빨갱이: 그런데 '진짜 빨갱이'는 멀쩡히 판치면서 돈과 권력을 쥐고 나라를 마음껏 말아먹고 허물어뜨리고 있는 반면, 당장 외환죄 급으로 나라 존립을 위협하는 친일파 따위는 실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성추행범: 판단 잣대가 그야말로 옛날의 막걸리 반공법 뺨칠 정도로 엿장수 마음대로이다. 그 반면, 무고죄 저지른 허언증년에 대한 응징은 솜방망이급에 불과하다. 신분증 위조해서 술 산 애새끼는 아무 일 없는데 가게만 벌받는 것처럼 말이다.

  • 탈세범: 나랏님 마음에 안 드는 기업인 경제인을 조지는 특효약이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 내지 혼자 잘나가는 프리랜서가 제일 만만한 호구이다. 법의 허점을 완벽하게 피해 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위증 무고죄 허언증 거짓말이야말로 한번 입 잘못 놀렸다가는 저 정도로 매장되고 X되고 훅 간다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할 텐데.. 천조국처럼 말이다.

하지만 남을 거짓말쟁이라고 누명 씌우고 매도한다거나, 반대로 그런 누명을 썼을 때 당사자가 빨갱이· 친일파 이상으로 엄청나게 화내고 기분 나빠하고 결투 신청이나 심지어 자결(?)로라도 명예를 회복하려는 관행은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나라는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짓말에 너무 관대한 것이 사회악 망국병 수준인 게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실제 성추행범과 탈세범, 종북 빨갱이는 지금도 당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들이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은 나쁜놈들인 건 변함없다. 소수의 예외적인 사례 때문에 문제의 본질을 놓치지는 말아야 한다.

요 근래에 본인의 멘탈에 굉장히 큰 상처를 입힌 바깥 소식은 세 가지이다.

  • 멀쩡한 월성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난도질과 해체 (고리도 아니고 월성이더군!)
  • 멀쩡한 탈북자를 범죄자 딱지와 함께 북송 (여기에 대해 침묵할 거면 지금까지 인권팔이 하던 자식들 당장 다 닥버 자폭해라)
  • 그 미친놈을 그나마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는 끌어내렸지만.. 수십억대의 갑부 주제에 뭐? 구속되면 가족 생계가 막막하다고 변명을 해..?
    (지금은 신 정아 시즌 2를 찍으면서 국제적으로까지 망신살이 잘 하고 있더라. 그러고 있으면서 정 유라의 과제 대리수행 욕을 같이 늘어놓는 건.. 거의 다중인격 정신분열 중증 말기가 아닌가 싶다.)

저 X끼가 운동권 주사파 출신 법조인이 아니라 그냥 대기업 재벌 2세 3세였어 봐라, 여론이 어찌 됐을까? 우와..
이 세 가지는 정말 자다가도 썅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나서 개XX 소XX 쌍욕을 퍼붓고 멱살 잡고 뒤집어엎고 다 때려부수고 쳐죽여 버리고 싶은 사항이다.

킹 제임스 성경이 원어· 원문(originals)보다 더 나은 이유 중의 하나로 "후자는 아예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 이런 논리가 있다.
본인은 이와 정확히 동급으로 "종북이 친일보다 더 나쁜 이유"도 "후자는 아예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 일본이 핵무기·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고 온갖 비열한 도발로 한국 군인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을 뿐더러, 그걸 옹호하거나 일본에게 평화 운운하면서 막 퍼주자고 주장하는 미친놈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거 분별할 능력도 없는 애새끼들한테 투표권 줘서 뭐 어쩌겠다고?
투표권은 자동차 운전까지 가능하고 납세와 병역이라는 의무를 이행하는 시늉이라도 한 사람에게만 줘도 충분하다.
지금은 사법 책임을 질 수 있는 최소 연령, 목욕탕의 이성탕에 입장 가능한 최대 연령 같은 거나 더 낮춰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07 08:35 2020/01/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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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근황, 해 본 일들

1. 국대 떡볶이, 태극기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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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떡볶이와 순대는 그냥 이름 없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는 음식이지, 이런 번듯한 식당에서 먹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분야를 개척한 식당 브랜드가 있고, 또 창업주가 사상이 올바르고 굉장히 건전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곧장 친구들까지 데리고 여기를 들러서 음식을 마음껏 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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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개천절 오후에는 광화문에서 가히 역대 최다 인파가 결집한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레카 탄핵 반대"라는 중대한 이슈가 있었던 2017년 삼일절 때의 초창기 태극기 집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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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정치의 정 짜에도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이렇게 많이 모인 이유는 우파 진영이 이쁜 짓을 했기 때문이 아니며, 특히 할 일 없는 늙은 꼰대들이 일당을 두둑히 받았기 때문은 더욱 절대 아니다.
정치색과 무관하게 대통령이 하는 짓과, 그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작자의 조적조 조로남불 꼬라지, 이놈들의 해도 너무한 가식과 위선과 궤변과 변명이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딴 이유는 없다. 그 현실을, 그 팩트를 좌좀 대깨문 나팔문 문슬람들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 이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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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화장을 또 찾아가 봤는데 이젠 또 내년까지 공사랜다. 도대체 2년, 3년째 날짜를 고쳐 가며 공사만 계속하고, 정식 개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사 핑계로 무기한 방치하는 것인지 합리적인 의심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3. 용마산 등산

그리고 날씨가 좋을 때 용마산을 오랜만에 다시 올라서 정상까지 가 봤다.
첫 개척이 아니고 야영을 한 것도 아니니, 중요도가 별도의 글로 올릴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러니 그냥 근황 소식에다가만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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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은 서울 시내에서 접근성이 아주 좋으며, 심하게 높지 않으면서 돌산이어서 내부 경치가 좋다.
그리고 등산하는 동안 대부분의 구간에서 산 바깥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특히 동부 간선 도로 구간이 몽땅 내려다보인다. 세상에 이런 산은 흔치 않다.
산을 오르면서 저 아래의 팔각정을 거쳐 갔는데, 산행을 계속하니 그 팔각정도 이렇게 내려다보는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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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풍경은 대략 이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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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에서는 근처의 배봉산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사실 본인은 배봉산에서도 언젠가 저기 용마산을 다시 올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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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 정상에는 예나 지금이나 표지석과 옛 측량 시설, 그리고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태극기 깃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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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아차산 정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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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 파고든 저 마을이 바로 아치울 마을이다. 본인은 아차산을 답사하면서 저리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마을 가까이 있는 희고 둥근 모양의 교량은 구리암사대교이다.

4. 노들섬

서울 한강대교는 중앙에 노들섬이라는 하중도를 지난다. 거기는 먼 옛날엔 사유지이다가 국가에서 거금을 주고 매입한 뒤, 해마다 항공 사진 모습이 바뀔 정도로 뭔가를 열심히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오페라 하우스(??)가 만들어져서 지난 9월 말에 개장했다. 그래서 본인도 이에 흥미를 느끼고 노들섬을 다녀왔다.

노들섬의 자가용 접근성은 남산과 동일하다. 한강대교에서 노들섬 내부로 들어가는 차도와 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공간이 비좁은 관계로 등록된 업무 차량만 드나들 수 있다. 일반 방문객이 차를 저기에다 댈 수는 없다.
한강대교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주차장은 이촌 한강 공원에서 제일 서쪽의 제4 주차장이다. 거기는 풀밭이나 편의점 등 공원 본연의 시설과는 멀리 떨어져서 접근성이 안 좋지만, 한강대교와의 접근성은 제일 좋다. 거기서 한강대교를 근성으로 5~10분 내지 걸으면 노들섬에 갈 수 있다.

심야나 이른 새벽.. 그리고 5~10분 정도 잠깐 정차하는 거라면 한강대교의 길가에다 잠깐 차를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리 권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근처 중앙선의 안전지대에도 차를 세울 수 있지만, 이 역시 원래는 불법이고 다른 대형 트럭이나 견인차가 세워져 있기도 하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 못 된다.
그냥 지하철 9호선 노들(강남) 내지 4· 6호선 삼각지 역(강북)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게 제일 속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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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직 공사가 덜 끝난 부분이 많고 생각만치 볼 건 없었다. 무슨 선유도 정도의 퀄리티는 아니다. (풀밭, 산책로..)
특히 교량의 동쪽 말고 건너편 서쪽은 아직 풀숲 밀림(...)인데 거기도 뭘 더 만들 생각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원등 상사 동상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하다.

더 욕심을 내자면, 서강대교의 밤섬도 이렇게 개방됐으면 좋겠다. 믿어지지 않지만 옛날에는 거기에 아예 사람이 살고 마을까지 있었다니 말이다. (교량 따위 없으니 본토와는 나룻배로 드나들었고..;; ㄷㄷ)

Posted by 사무엘

2019/12/09 08:36 2019/12/0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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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수락산 #2

본인은 올해 가을엔 어쩌다 보니 등산 야영을 시리즈로 계속하게 됐다. (1) 예빈산(남양주), (2) 청계산 국사봉+발화산(의왕+성남) 다음으로는 (3) 수락산을 다시 찾아갔다. 한강 근처의 예빈산· 예봉산 일대도 남양주이고 서울 북동부의 수락산 근처도 남양주라니.. 실감이 잘 가지 않았다. 세부 행정구역이 별내면과 와부읍으로 서로 다르긴 하다만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3년쯤 전, 겨울에 장암 역 근처에서 수락산을 올라서 주봉 정상에 도달한 뒤, 남양주의 청학리 수락산 유원지 방면으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산을 서에서 동으로 횡단한 것이다. 이번에는 차를 가져가서 수락산 유원지에서 등산을 시작한 뒤, 하산도 동일 지점으로 했다.

그러니 등산 경로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산행은 새로운 산이나 등산로를 개척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3년에 가깝게 지나니 기존 경로도 충분히 새롭게 느껴졌으며, 수락산은 재방문만으로도 예빈산이나 청계산과는 사뭇 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암반이 많은 돌산이며,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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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등산로는 꽤 높은 곳까지 자동차 접근성이 좋았으며, 이렇게 차를 댈 만한 곳도 곳곳에 있었다. 내가 굳이 이 경로를 택한 주 이유 중 하나 역시 이것이었다.

경치 좋은 계곡의 주변 공간을 어디선가 무단 점유하고는 방문객에게 바가지 요금을 물리는 식당들의 불법 영업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랬는데 올해는 이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경기도에서 주도적으로 칼을 뽑고 나섰다. 언제까지나 생계형 범죄랍시고 오냐 오냐 봐 주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도 식당들이 상당수 박살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한강 공원들만 해도 텐트와 야식 광고 찌라시, 쓰레기 때문에 몸살을 앓다가 지금은 질서를 많이 되찾았듯이.. 저것도 공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금방 바로잡을 수 있었던 일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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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올라간 뒤에야 드디어 차도가 끝나고 사람만이 접근 가능한 돌계단과 비좁은 등산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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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금류 폭포'이며, 요런 게 바로 여느 흙산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흙바닥이 아닌 바위 위로 물이 줄줄..
이렇게 높은 곳에서도 아주 가늘게나마 물이 흐르는 산은 본인은 지금까지 수락산밖에 못 봤다. 이 정도면 물을 그냥 인위로 끌어올리기라도 한 건가 궁금해진다. 수락산 계곡에서 발원한 이 물은 평지에서 청학천으로 이어진다.

금류 폭포의 바로 옆엔 산장이라고 해야 하나 휴게소라고 해야 하나 자그마한 간이 식당까지 있었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지만, 여기는 국립공원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민간 산장이 들어서는 게 가능하다. 북한산 같은 곳이라면 등산로를 벗어난 계곡 근처는 몽땅 울타리가 쳐지고, 무단 침입 시 과태료가 부과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정상을 향해 더 올라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내원암'이라는 바위와 함께 절인지 암자인지가 있다. 차량이 들어올 수 없는 높고 험한 곳치고는 건물과 마당을 포함한 부지가 꽤 넓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해우소'라고 불리는 공중 화장실도 있었다. 실제로 이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생긴 형태는 마치 수돗물이 여기까지 들어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세식이었다.

하긴, 나중에 집에서 지도를 확인해 보니 금류 폭포와 내원암 정도는 해발 고도가 아직 300~350m밖에 안 되었다.
지금까지 올랐던 200여 m 고도는 경사가 여전히 굉장히 완만한 편이었고, 내원함 이후부터가 급격히 가팔라졌다. 실제로 빽빽한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 곳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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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정상이 보일 기미가 안 보이는데 날은 계속해서 어두워져 갔다. 하긴, 오늘은 등산 자체를 오후 5시가 돼서야 시작했다.
정상에 거의 다 와서야 그 이름도 유명한 '수락 산장'과 함께 약수터도 등장했다. 1리터짜리 통을 다 채우는 데 내 기억으로 거의 1분 가까이 걸릴 정도로 수압이 낮았지만, 그래도 이 높이에서 맑은 물이 나오는 것만으로 어디냐.. 마시는 용도와 씻는 용도로 모두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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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가 다 떨어진 뒤에야 주봉 정상에 도착했다. 1시간 반쯤 걸렸다.
수락산엔 여기 말고도 능선에 온갖 이름의 기암괴석 봉우리들이 더 있고 다른 등산로도 있는데, 거기는 아직 가 보지 못한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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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반석 위에 지은 집'에서 착안하여 '반석 위에 친 텐트' 정도 되겠다. ㄲㄲㄲㄲㄲ
따뜻한 간이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도시락을 먹었다.
산을 오를 때까지만 해도 힘들어서 옷이 땀으로 흠뻑 젖고 물을 다 마실 정도였지만, 날씨는 이내 급격히 추워지고 땀이 식었으며, 바람도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전에 예영을 했던 산들은 한밤중에 정말 아무도 없었지만 이 산은 달랐다. 새벽 1시쯤에 야간 산행을 하는 일행이 수락산 정상에 왔다가 갔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산 정상 근처 바위에 텐트가 덩그러니 놓여 있으니 그 사람들도 좀 놀랐을 것 같다. =_=;;
"웬 텐트? 허걱~" 하는 소리를 본인도 듣긴 했지만.. 서로 마주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실은 아까 전에 저녁을 먹고 있던 중에 텐트 문을 열었을 때는 근처에 웬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치기도 했다.
옛날에 인왕산 정상 부근과 북한산 정상에서도 고양이를 봤던 기억이 있다. 야생일 텐데 어디서 어떻게 먹고 사는지 모르겠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고 시끄러워서 결국은 숙소를 정상 아래의 숲 속 공터로 옮겼다. 여기가 훨씬 더 조용하고 자기 편했다.
달빛이 밝았던 덕분에 주변도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암흑천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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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감았다 뜨니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처음에 텐트를 쳤던 곳의 낮과 밤 풍경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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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정상 주변 풍경은 몹시 멋졌다. 근처의 불암산도 수락산보다 약간 더 낮고 작은 축소판일 뿐, 내부 제원(?)은 수락산의 판박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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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깜깜할 때 지나갔던 길이 낮에는 이런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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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고 차가 세워진 공터로 돌아오니, 이제야 여기에 차를 몰고 와서 주차 자리를 찾는 등산객들 일행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본인은 여기 올 때는 용마 터널과 구리-포천 고속도로(29) 같은 유료 도로를 적극 활용해서 갔지만, 귀가할 때는 그냥 순화궁로, 덕릉로, 동부 간선 도로 등의 기존 종축 도로만 타고 갔다. 글쎄, 서울 동쪽의 구리와 남양주 쪽으로는 유료 도로와 관련 진출입로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것 같다.

  • 산을 관통하는 유료 터널: 용마(아차산), 별내(불암산)
  • 서울-양양 고속도로(60): 남양주*, 덕소삼패
  • 외곽순환 고속도로(100): 구리남양주, 불암산, 토평
  • 구리(세종)-포천 고속도로(29): 갈매동구릉*, 남별내
  • 수석-호평 도시고속화도로: 이패

서울의 남쪽이야 서해안(서서울), 경부(서울), 중부(동서울)라는 3대 '종축' 간선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요금소가 있으며, 좀 더 생각하면 관악산 아래를 지나는 유료 도로인 남부순환로, 그리고 유료 터널인 우면산 터널 정도가 떠오른다.

그런데 서울의 동쪽에는 서울-춘천-양양이라는 '횡축' 간선 고속도로가 시작된다. 남양주는 마치 경부의 서울, 서해안의 서서울처럼 폐쇄식과 개방식을 전환하는 톨게이트이다. 그리고 덕소삼패는 남양주보다 전인 개방식 구간에 있지만 경부의 판교 톨게이트처럼 고정된 요금을 징수하는 톨게이트이다.

그리고 서울의 북동쪽으로는 구리(세종)-포천이라는 '종축' 간선 고속도로가 시작된다. 공식 명칭은 세종이지만 과연 그 길고 먼 구간이 모두 개통하는 때는 과연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얘는 갈매동구릉 톨게이트가 폐쇄식과 개방식이 전환되는 곳이며, 여기 근처에서는 북중랑 톨게이트를 통해 고속도로를 드나들 수 있다.
폐쇄식 요금소와 개방식 요금소가 뒤섞여 있으니 구조가 더욱 복잡하게 느껴진다. 폐쇄식과 개방식 요금제는 열차로 치면 지정석과 자유석의 관계와도 비슷해 보인다.

서울 북쪽 외곽의 노고산,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은 모두 터널이 뚫려 있다. 그 중 수락산 아래를 지나는 덕릉 터널만이 무료이고, 나머지는 다들 유료 터널이거나 유료 도로인 외곽순환 고속도로 구간에 포함돼 있다.
이에 덧붙여 수석-호평 고속화도로는 고속도로도, 터널도 아닌 마치 제3 경인 고속화도로와 비슷한 급의 유료 도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11/04 08:32 2019/11/0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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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의 예빈산과 더불어 본인이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등산 코스는 청계산에서 아직 미개척(?) 지역으로 남아 있는 남쪽 구간이었다. 거기는 상수도 보호 구역은 아니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온통 개발 제한 구역이다. 그래서 경치가 좋으며 뭔가 오지 탐험을 한다는 느낌이 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남양주와 성남 중 어디부터 먼저 갈지도 꽤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둘 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의식의 흐름에 따라 예빈산을 먼저 가게 됐고, 청계산은 그 다음 주에 찾아갔다.
처음에는 성남시 금토동에 있는 완만한 등산로(능안골)를 생각했다. 그러나 청계산을 갔다가 근처 길 건너편 남쪽의 발화산도 오랜만에 다시 가 보기 위해.. 계획을 변경했다.

남북으로는 청계산과 발화산 사이에, 그리고 동서로는 성남과 의왕 사이에는 외곽순환 고속도로,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생긴 제2경인 고속도로의 연장 구간(안양-성남 고속도로.. 터널로 지나니 밖에서는 보이지 않음), 지방도 57호선이 지난다. 이것들 말고 아마 가장 먼저 처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길은 '하오개로'라고 불리는 2차로짜리 꼬불꼬불 산길이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을 지나서 계속 서쪽으로 달리면 자연스럽게 이 길로 진입할 수 있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은 속세와 기막히게 단절된 곳에 자리잡은 것 같다. 여기서 더 동쪽으로 가면 학교 주변에 들어선 온갖 식당들과, 그리고 서판교의 으리으리한 고급 아파트 단지 때문에 전원적인 느낌은 없어진다.
본인이야 전공이 다르니 딱히 인연이 없지만, 한국학 중앙 연구원은 나름 인문계의 카이스트 같은 급의 국립 특성화 연구소 겸 대학원대학교이다. 학부 과정이 없고 석· 박사 대학원만 있는데, 카이스트도 1970년대에 처음 설립됐을 때는 학부 과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본인은 바로 저 길을 따라 '하오 고개'의 꼭대기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성남과 광주 사이에 이배재 고개가 있다면, 성남과 의왕 사이에는 하오 고개라는 게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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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중앙 연구원을 지나서 고개를 오르는 길이다. 단, 담장의 방향을 보면 알 수 있듯, 이건 고개 쪽이 아닌 연구원 쪽을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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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곧고 넓게 잘 뚫린 고속도로나 57번 지방도와는 너무 대조되는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그 대신 차량 통행이 매우 뜸하며, 종종 갓길 공터가 나오기 때문에 중간에 차를 세우는 것에도 여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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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 고개의 정상에는 이렇게 발화산과 청계산을 잇는 육교가 설치돼 있다. 이 육교를 통해 보행자는 하오개로와 지방도와 고속도로를 몽땅 횡단하여 두 산을 왕래할 수 있다.
이배재 고개의 정상에도 망덕산과 고불산(+영장산)을 잇는 육교가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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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를 올라서 청계산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금토동 등산로보다 수평 이동이 적기 때문에 등산로가 가파를 거라는 각오는 하고 있었다.

길은 좁은 편이지만 성남 누비길 구간이다 보니 울타리로 안내가 잘 돼 있었다. 여기는 안양 시민 묘지의 근처이기도 하기 때문에 무덤도 종종 보였다. 그리고 송전선 철탑과 두 번 마주쳤다.
산은 역시 잎이 초록색일 때 오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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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오른 끝에 현 산등성이의 능선에 도달했다. 약간 넓은 공터와 의자가 있었는데, 여기서 국사봉으로 가려면 약간 하강해서 산등성이를 옮겨야 했다. 하지만 수직 이동이 막 심한 삽질 수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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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이런 좁은 길 아니면 울타리 계단의 순으로 계속되었으며, 정상과 가까워지니까 바위도 슬슬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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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정상에 거의 다 오니 갈림길이 있었다. 그 갈림길에서 국사봉이 아닌 쪽의 바위를 오르니 이렇게 자그마한 바위 꼭대기가 나왔다.
여기는 아무 표지석이 없고 바깥 전망도 썩 좋지 않았지만.. 의외로 건너편 발화산의 능선 바깥이 어렴풋이 보였다. 나름 민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시설의 산 속 잔디밭 부지가 눈에 들어오니 놀랍고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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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사봉 정상에도 도달했다. 여기도 막 썩 경치 좋은 전망대가 있는 건 아니어서 고속도로 말고는 딱히 내려다볼 만한 게 없었다.
성남시 운중동 주변에는 보안 시설이 의외로 좀 있기 때문이다. 괜히 개발 제한 구역인 게 아니다. 아까 그 모종의 바위 꼭대기에서 봤던 것들은 이 정상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이로써 본인은 청계산의 망경대, 서울(성남?) 매봉, 과천 매봉, 이수봉에 이어서 국사봉까지 정상을 모두 올라 보게 됐다.

예봉산이야 주변의 예빈산, 운길산, 갑산 따위가 몽땅 깔끔하게 남양주 소속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청계산은 지역 파편화가 꽤 심한 산에 속한다. 시계에 걸친 산들도 기껏해야 서울-구리(아차산), 성남-광주 같은 둘 정도가 보통인 반면, 청계산은 뭐 각 사분면별로 서울-과천-성남-의왕 4개로 찢어졌으니까..
경부 고속도로가 관할 구간이 달라지고(양재 IC 이남 이북으로 도로 공사 vs 서울시), 지하철의 관할 구간(서울역-청량리 서울 메트로 vs 코레일)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개념이 산에도 존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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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후에는 운종 저수지 근처의 어느 경치 좋은 카페에서 음료와 전기 보급을 받으며 쉬고 컴퓨터 작업을 했다. 그 뒤, 오후에는 다시 육교로 돌아와서 발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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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에서는 이렇게 57번 지방도(왼쪽), 하오개로(오른쪽), 그리고 외곽순환 고속도로까지(저 앞쪽.. 청계 톨게이트 근처) 세 도로를 한데 내려다볼 수 있었다. 매우 흥미로운 경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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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 왔던 육교를 내려다 본 모습이다. 이제는 육교의 저쪽 건너편이 청계산이다.
이 발화산도 성남 누비길 구간이다. 하지만 표지판을 보니 발화산이 아닌 '태봉산' 구간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이 언덕은 사실 발화산 정상의 주봉이 아니며, 발화산 정상은 행정구역상 성남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누비길은 더 동남쪽으로 응달산을 거쳐서 태봉산 쪽으로 이어진다. 그쪽은 본인이 예전에 가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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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비좁고 가파르며 딱히 볼 것이 없었다. 다 이런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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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다 올라서 능선에 도달하니 드디어 재작년에 봤던 그 송신탑이 나왔다.
재작년에는 여기보다 더 서쪽인 청계 톨게이트 쪽에서 길 없는 곳에 잘못 들어가서 밀림을 헤치면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어째 이쪽으로 합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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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탑을 지나가면 약간의 내리막이 이런 식으로 펼쳐지며.. 길을 따라 더 진행하면 코렁탕 제조 시설, 응달산, 대장동 등으로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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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하오고개 쪽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한없이 더 진행하지는 않았다. 중간 길목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고 돌아왔다. 여기는 청계산보다는 덜 유명하고 교통 불편한 곳이다 보니 사람 한 명 얼씬하지 않아서 좋았다.

깜깜한 밤에 높은 산 깊은 숲 속에 혼자 있으면 일면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디라도 텐트를 치고 안에 들어가면.. 이 얇고 연약한 텐트가 나를 바깥과 격리시켜 주고 추위와 바람과 각종 야생 벌레들을 차단해 준다. 넓은 산 속에 나를 위한 호텔 방이 짠~ 생기는 듯한 느낌?

그냥 돗자리나 침낭만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 느낌이 너무 좋아서 이제는 텐트까지 들고 이동하는 수고를 감내하고라도 등산에다 야영을 겸하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9/10/21 08:35 2019/10/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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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예빈산 견우봉

지난 9월 중순엔 전반적으로 날씨가 너무 좋았다. 이렇게 날이 맑고 단풍도 들기 전에 꼭 등산을 가서 산 정상에서 야영도 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진작부터 했다. 지난 5월의 이성산 이후로 등산이란 걸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해 보게 됐다.

어느 산부터 갈지 고민하다가 남양주 예봉산 옆의 예빈산을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예봉산은 예전에 두 번이나 가 봤고, 요즘 양 예빈 선수가 우리나라 육상의 에이스로 뜨고 있기도 하니까.. 미리 봐 뒀던 예봉 산장 근처에다 차를 세우고, 팔당 유원지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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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장비를 추가로 들고 오르느라 안 그래도 힘든데 이 등산로는 웬걸, 굉장히 가파르고 험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온몸이 흠뻑 젖었다.
뭐 그렇다고 서울의 북한산, 관악산처럼 로프를 잡고 바위를 오른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고.. 내려갈 때 스틱이나 주변 나무를 붙잡아야 되는 정도.. 그냥 흙산인 것치고는 가파르다.

그런 데다 최소한의 좁은 길 흔적만 있지 울타리나 이정표 같은 안내 시설이 아무것도 없다시피했다. 종종 등장하는 벤치나 평상도 없고, 정말 일체의 인공물이란 게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
얼마나 더 올라야 하는지 아무 기약이 없으니 심리적으로 힘든 정도를 더욱 가중시켰다. 온통 숲과 나무에 가려서 경치가 보이는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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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양 예빈 선수와 달리 저질 체력을 자랑하는 관계로..-_-;; 너무 덥고 숨 차고 힘들어서 몇 번씩 돗자리 깔고 한참을 쉬다 가야 했다. 오르는 동안 1리터에 가까운 음료수를 다 마셔 버렸으며 이걸로도 부족했다. 그래도 나뭇잎들이 아직 싱싱한 초록색이어서 자연의 정취가 살아 있고, 하늘도 맑고 적당히 더우니 이런 날이 등산 자체는 하기 아주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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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가까이 한참을 오르고 또 오른 뒤에야 견우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있는 것은 이렇게 아주 좁은 공터에다 돌무더기와 간단한 이정표가 전부였다.
예빈산은 주봉이 견우봉과 직녀봉 둘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직녀봉(588m)이 견우봉(581m)보다 미세하게 더 높고, 인터넷 사진으로 본 '예빈산 정상' 표지석도 직녀봉에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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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해서는 저 앞의 직녀봉도 가 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체력은 둘째치고 물이 고갈된 관계로.. 산을 한참 내려갔다가 또 오르면서 땀을 빼는 동작을 더 추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7미터만 더 오르면 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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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예봉산 정상에 건축된 기상 관측 레이더를 이렇게 멀리서 보게 될 줄이야.. 몇 년째 공사하던 게 드디어 다 완공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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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정상 자체에는 별로 볼 게 없었지만 주변을 조금만 살펴보니 팔당호.. 즉 한강과 남한강, 북한강, 경안천, 양평 두물머리와 남양주 다산 유원지가 다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정말 일품이었다. 힘들게 예빈산 견우봉 정상까지 올라간 것에 대한 보상을 이제야 받을 수 있었다. 예봉산에서는 이런 걸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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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각각 두물머리와 다산 유원지 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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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검단산 기슭의 배알미 마을 쪽으로 확대한 모습이다. 수돗물 취수? 정수장이 있는 거기 말이다.
경치 좋기로 소문난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류 지점을 이렇게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예빈산 견우봉의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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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망대를 앞두고 바닥이 비교적 평평한 곳이 있어서 거기에다 텐트를 치고 밤을 보냈다.
5시가 넘어가니 슬슬 어두워지고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했으며, 7시쯤부터는 주변이 암흑천지가 됐다. 춥고 어둡고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는 산 정상에서 혼자 야영을 하니 아늑하고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밖은 추워도 텐트와 침낭 안은 따뜻했다. 새벽엔 텐트 안도 꽤 쌀쌀해졌지만 텐트 밖은 바람까지 불고 더 추웠다.

하산은 이튿날 아침 6시쯤부터 시작했다.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이었지만 어둠이 적당히 걷혀서 앞을 보고 길을 찾을 수는 있었다.
처음에는 추워서 침낭을 점퍼처럼 두른 채 산을 내려갔다. 하지만 이게 웬걸, 길이 험해서 그런지 하산도 생각보다 꽤 길고 힘들었으며, 덕분에 체감상의 추위도 금방 없어졌다. 기온이 20도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아침에도 여전히 더워서 땀을 잔뜩 흘렸다.

내가 어제는 이런 험한 길을 도대체 어떻게 올라왔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이 길이 정말 맞나 의문도 종종 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길을 전혀 잃지 않았으며, 어제 올랐던 경로를 정확히 역순으로 거쳐서 차를 세워 뒀던 곳으로 잘 하산했다.
그리고 어제 산기슭에서 마주쳤던 계곡에서 세수를 하고 땀을 씻어내고, 물을 받아서 마시기까지 했다. 계곡물이 있으니 정말 좋았으며, 이렇게라도 하니 살 것 같았다.

예빈산에서 이렇게 좋은 추억을 하나 추가한 뒤, 집에는 딱 아침 8시 무렵에 잘 도착했다. 정작 이때는 선선하고 시원했는데 아까 산에 있을 때만 유난히 덥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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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8 08:34 2019/10/1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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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풍경

오늘은 지난 추석 때의 고향 풍경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비가 한바탕 내린 뒤부터 전국이 날씨 하나는 참 기막히게 좋았던 것 같다. 낮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더운 수준이며, 하늘은 아주 맑고 파랬다. 밤에는 기온이 20도 초반까지 내려가면서 환절기 기분이 났다.

1. 황성 공원

경주 시내에는 형산강이라는 강이 세로로 지난다. 강 서쪽에는 동국 대학교 경주 캠퍼스와 김 유신 장군 묘 등이 있고, 시가지는 동쪽에 발달해 있다.
그런데 그 동쪽에는 북천, 혹은 알천이라고 지금은 물이 거의 말라 버린 가느다란 개천도 흐르다가 형산강으로 합류한다. 교차하는 각도는 +라기보다는 X에 더 가깝다만..

이 북천 이남과 이북이 경주에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얼추 가른다고 볼 수 있는데, 북천 이북으로 형산강 합류 지점 근처의 넓은 공간에는 황성 공원이라는 인공 소나무숲을 비롯해 운동장 경기장, 체육관, 궁도장 등 별별 시설이 다 있다. 인근 주민들의 아침 산책과 운동 코스로 사랑받는 건 두 말할 나위도 없고, 각종 행사나 콘서트, 축제 같은 게 열리기도 딱 좋다.
그야말로 거대한 복합 여가 문화 테마 공간처럼 됐다. 심지어 시립 도서관 내지 주민센터도 이 영역 끝자락에 자리잡아 있다.

황성 공원 자체가 생긴 건 1975년이라고 한다. 여기도 무슨 군부대가 있다가 이전하기라도 한 건지, 신라 시대 유물과 관계가 없는 공원이 어떤 계기로 들어서게 되었나 모르겠다. 자그마한 광명시가 광명 동굴 하나로 유명해졌듯, 황성 공원은 경주시의 명물임이 틀림없다.
이 글에서는 숲길 풍경 사진만 좀 소개하도록 하겠다. 흐리고 어둡고 비가 오기 직전이던 때에 찍어서 분위기가 좀 우중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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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에는 유명 문학인의 시비도 있고, 현충 시설도 여기저기 들어서 있다.

요렇게 생긴 충혼탑이 대표적인 예이고.. 무공 수훈자 전공비라는 것도 있다. 본인은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시립 도서관 근처에는 참전자 명예선양비라는 것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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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명예선양비는 6· 25 버전만 자그맣게 있었는데, 지난 2017년에는 월남전 버전까지 추가하고 참전용사의 동상까지 만들어서 컨텐츠를 대폭 보강(?)했다. 들고 있는 총이 각각 카빈과 M16으로.. 이런 고증까지 신경 썼다.
이거 뭐 누가 보면 경주가 양구· 인제· 철원 같은 전방 도시인 줄 알겠다.;; 여기는 공산군에게 점령 당한 적도 없는 후방 지역인걸, 시장이 강한 애국 보수 성향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2. 금장대와 암각화, 주변

형산강과 중앙선 철길을 끼고 있는 동국 대학교 캠퍼스 내지 병원의 모습이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날씨가 좋고 경치가 워낙 좋아서 사진을 찍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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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문호

유원지와 호텔들이 밀집해 있는 보문 관광 단지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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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가뭄이 심해서 보문호가 바닥이 드러나 보일 정도까지 갔지만.. 지금은 다시 물이 출렁거리고 있으니 보기 좋았다.
다 말라 가는 와중에 "수심이 깊어 위험하오니 들어가지 마시오" 표지판이 덩그러니 놓인 모습도 어디선가 봤는데.. 마치 잔뜩 막히고 있는 고속도로에서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 과속 단속 카메라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말로만 들은 드라켄 익스프레스가 돌아가는 모습을 이렇게 멀리서나마 봤다.

4. 감포 해수욕장

그리고.. 오랜만에 감포 나정 해수욕장에 들러서 바다 바로 코앞에 텐트를 치고 파도와 바닷바람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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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행정구역만으로 따지자면 엄연히 바다와 접하고 항구와 해수욕장이 있는 도시이다. 하지만 해안이 산으로 가로막혀 있고 대외 이미지가 완전히 내륙 관광 도시이다 보니, 바다의 존재감이 덜 느껴지는 것이다. 경주는 불국사, 석굴암, 보문 관광 단지가 유명하지, 감포 해수욕장이 무슨 해운대나 대천이나 송지호처럼 유명하지는 않다.

한때는 경주 시내에서 감포로 가려면 꼬불꼬불 산길을 타야 했지만 이것도 이젠 옛말이다. 산을 정면 관통하는 토함산 터널을 따라 국도 4호선이 아주 넓고 길고 곧게 잘 뚫렸기 때문이다. (2014년 말)
더 남쪽에는 더 긴 양북1터널도 역시 토함산을 정면 돌파한다. 얘는 더 나중에 생겼으며(2016년) 훨씬 더 길다. 얘는 65번 동해 고속도로 구간이다.

경주의 해수욕장은 경주의 신라 유적지만치 유명하지는 않다. 나정 해수욕장도 위키 같은 데에 항목이 별도로 개설돼 있지도 않을 정도로 인지도가 듣보잡인 것 같다.
그래도 본인이 찾아갔던 당시에는 물은 아주 맑고 깨끗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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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감포 해수욕장은 바다와 육지가 접하는 바닥이 모래가 아니라 온통 자갈인 게 특징이다. 본인은 동해· 서해의 타 해수욕장들 중에서 이런 자갈 바닥인 곳을 딱히 접해 보지 못했다.
덕분에 맨발로 다니기는 좀 애로사항이 있지만, 그래도 흙이 덕지덕지 묻지 않아서 깔끔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여기는 동해의 해수욕장치고는 바닥의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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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도 있긴 하지만 퀄리티가 아무래도 해운대나 대천 같은 전국구 해수욕장에 비할 바는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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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피서철이 끝나고 해수욕장이 공식적으로는 폐장했지만 바닷가에서 텐트 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보였다. 이런 데서 고기가 잡히기는 하는지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고, 드물게 물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감포 해수욕장 근처에는 소나무숲과 함께 전문적인 캠핑장도 있는데, 거기도 텐트 친 사람들이 드글드글했다. 바닷가라는 곳을 굳이 한여름에만 가는 곳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본인은.. 폐장한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금지시키고 위반 시 과태료까지 물게 하는 건 과도한 규제라고 생각하고 반대한다.
아예 처음부터 수질이나 지형 문제로 인해서 1년 내내 물놀이 금지인 곳이라면 그렇게 해도 된다. 하지만 원래 물놀이가 가능한 곳인데 단순히 기간상으로 해수욕장이 폐장해서 안전요원이 상주하지 않는 거라면, "사고가 나도 100% 들어간 사람 책임. 알아서 하셈"이라는 조건으로 방문객이 전신을 물에 담그는 것 정도는 법을 어기는 일 없이 언제든지 얼마든지 가능해야 한다.

계곡에서도 가능한 물놀이를 바다에서 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더구나 바닷물은 계곡물보다 수온이 훨씬 더 높고 따뜻하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9월, 심지어 10월 초까지도 한낮에 물놀이가 가능할 정도이다. 그걸 그냥 못 하게 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 만능 행정 편의주의로 여겨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9/10/15 08:36 2019/10/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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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의 복원

(1) 옛날에.. A장조에 가사가 아무 내용 없고 애들이 '아에이오우'만 반복하는 좀 이상한?? 노래를 들은 적이 있었다. 모음 삼각도에 입각한 발음 연습용 동요인지? 저건 공교롭게도 라틴 알파벳의 모음 5개에 순서대로 대응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 정도쯤이야 검색만 하면 출처가 곧바로 나온다. 예민(김 태업)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첫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더라. 발표 시기도 1990년으로 생각보다 오래됐다. 뭔가 '파란 나라'나 '어른들은 몰라요' 같은 느낌의 동요 같다. 들어 보면 알겠지만 주선율에 온통 당김음· 엇박자가 이어지는 게 특징이다.

저렇게.. 사람이 부르는 가사가 있긴 하나 언어적인 의미가 없는 글자 나열에 불과한 노래가 드물게나마 있다. 과거에 MBC 베스트극장 주제가인 "바라밥 바라밥 빠라 바라바라밥.."처럼 말이다.

아카펠라야 든든든 두두두 팝팝 팅팅~ 유후 같은 말소리로 악기 비트를 흉내 내는 게 일종의 테크닉인데.. 악기 반주가 따로 있으면서 가사도 의성어인 건? 바라바라밥 말고 나나나 라라라도 있고.. 이것도 몇 가지 패턴이 있는 것 같다. 아~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 담'도 있었다! ㅋㅋㅋ 사람들이 이런 데서도 참신함을 느끼기 때문에 옛날에 뚫훍쏭 같은 외국곡도 인기를 끌었던 것이지 싶다..

예민 저분은 아에이오우 이후에도 자연이 어떻고 하면서 성인용 동요 풍의 노래를 계속해서 작곡하며 지내 온 듯하다.

(2) 그리고 또 옛날에.. C장조 3박자 계열이고 어떤 남자가 꽤 느끼한 목소리로 "oh my love... for/fall" 이런 가사 정도를 부른 영화 주제가 같은 노래가 있었다.
오디오 CD라든가 비디오 테이프에서 깔끔한 음질을 홍보할 때 샘플로 이 노래가 꼭 나왔던 것 같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가사가 매우 소수여서 찾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되었으나.. 우리의 구글신은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읽어냈다. 무슨 '우아한 형제들'도 아니고 '의로운 형제들' Righteous brothers라는 그룹에서 부른 Unchained melody였다..;; 이건 1965년작으로 내 생각보다도 굉장히 오래됐다..

(3) Dolly Parton의 Nine to Five.
나 초딩 시절 진~~짜 왕창 옛날에 '모나리자'라고 웬 화장지 상표가 있었다.
티슈형 화장지 CF에서 배경음악으로 들었던 게 기억으로 남고 나서 그 뒤로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접할 일이 없었는데... 최근에 우연히 곡의 정확한 출처를 알게 됐다.

1980년대 어느 미드의 주제곡이었던 듯??
"빰빰빰빰 빰빰빰빰" 이렇게 시작하는 리듬이 강렬해서 장기 기억에 금방 각인된 것 같다.

리스닝이 전혀 안 되다 보니 가사 내용은 알 길이 없었는데..
그냥 전형적인 커리어우먼 직딩의 일상을 노래한 가사이구나.
Gb (또는 F#) 장조에 속하는 곡이 하나 더 추가됐다.

옛날에 "곰을 잡으러 갑시다 좋아 좋아서 / 땡큐" 이건 모나리자 상표의 두루마리 화장지 CF였다.;;
"찾아보자 스모프, 숲 속으로 들판으로, 날아보자 스모프, 맛있는 양념통닭"이랑 비슷한 타이밍이 아니었나 싶다.

2. 노래로 듣는 아프리카 언어

라이온 킹 맨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나~주평야! 발발이 치와와..."라고 무슨 판소리 같은 도입부 말이다.
이건 무의미한 음향효과 성대모사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였구나.. 2019년에 "처음"으로 알게 됐다. 아이고~~ ㅋㅋㅋㅋㅋㅋ

아프리카어의 양대 산맥인 스와힐리어 다음으로.. '줄루' 어라고 한다.
저 노래에서는 "잉오야마 ..." 어쩌구 저쩌구가 굉장히 자주 반복되는데.. '잉오야마' 이게.. 사자라는 뜻이랜다.
주인공의 이름인 '심바'는 스와힐리어로 '사자'이니.. 라이온 킹은 두 언어를 골고루 사용한 셈이다.

Nants ingonyama bagithi Baba
"아빠, 여기 사자가 와요~" Here comes a lion, Father
Sithi uhm ingonyama
"ㅇㅇ 그래 사자 맞네" Oh yes, it's a lion


아빠라고 말하는 부분 부근이 '치와와'처럼 들렸구나. -_-;;
진짜.. 별것 아닌 내용이고 "새가 날아든다, 왠갖 잡새가 날아든다" 새타령 대신 아프리카 버전으로 사자타령이나 마찬가지인데
모르고 들을 때와 25년 만에 알고 들을 때의 느낌 차이가 장난이 아니다...!! ㅋㅋㅋ

(1) 옛날에 최 덕신의 CCM 앨범 <갈망>(1998)의 1번 트랙 "오 놀라워라"가... 라이온 킹 같은 시도를 했는지.. 시작과 끝에 "니아자부 사나~~ 뭄부 무움바~~" 하이튼 뜻은 기억 안 나는 스와힐리어 챈트를 넣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느낌이 좀 어설펐다.

(2) 1997년,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던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에서는 첫째 날 3번 문제가.. 독충 '이숑고로로'의 움직임을 소재로 집어넣은 내용이었는데.. 저것도 줄루 어로 노래기 벌레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자나 독충이나 다 i 모음으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네.. 진짜 그런 뜻인지는 모르겠다.

(3) 한편, 이집트의 왕자 When you believe 중간에 나오던 어린애들 코러스는.. 히브리어였다. "아쉬라 알 아도나이 어쩌구" (주께 노래하리라) 이런다. 이집트에서 이제 막 해방되어 빠져나가는 장면이지만 가사 모티브는 홍해까지 건넌 뒤에 부른 노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얘들이 사자음어를 눈으로만 보고, 읽기는 다 그냥 '주'라고 읽었다는 걸 알 수 있다.

3. 큰 악기

집도 큰 거, 차도 큰 거, 총도 큰 것... 같은 논리로 악기도 큰 것에 갑자기 마음이 끌린다.
채로 켜는 현악기 중에서 제일 큰놈은 더블베이스 또는 콘트라베이스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바이올린처럼 들고 목에 얹을 수 없으며 그냥 아래에다 받쳐 놓고 켜야 한다. 그 크기와 이름에 걸맞게 음역은 매우 낮다.

한편, 금관악기 중에서 제일 큰놈은 튜바의 파생형인 '수자폰'이다. 관이 무슨 나팔꽃처럼 연주자의 몸통을 둥글게 감싸 올라가며 나팔 부위가 머리 위로 커다랗게 돌출돼 있다. 간지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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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폰은 선 채로, 심지어 실외에서 걸으면서도 불기 편한 형태로 고안되었기 때문에 아주 군대 친화적이다. 이 악기를 발명한 존 필립 수자는 미군에서 오늘날까지 불리는 행진곡들의 상당수를 태반을 작곡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자폰은 군악대에서 엄청 많이 볼 수 있으며, 반대로 연주자에게 의자가 다 구비돼 있는 실내 오케스트라에서는 볼 일이 없다.

공교롭게도 이렇게 큼직한 두 악기만 갖고 공연을 하는 2인조 악사가 외국에 있다. 검색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됐다. 위의 사진도 거기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 링크)

4. 찬양곡 중에 비슷한 곡들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과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은 가사의 주제(성경)와 멜로디 구성(6/8박자 G장조), 분위기가 굉장히 비슷하다. 이어서 부르기 좋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 청년부 특송 때 말씀 찬송 메들리로 써먹기도 했다.
아니나다를까 이 두 곡은 Philip P. Bliss이라는 동일 인물이 1870년대의 비슷한 시기에 작사· 작곡한 찬송가이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와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는 왠지 좀 비슷하게 흥겨운 느낌이 나고 동일 한국인의 곡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감이 맞다.
작곡자는 지금도 김천에 개원해 있는 정신과 의사 겸 교회 장로이다(최 영택).

최근에는 "하나님이시여 나의 모든 죄를"(시 51)이라는 곡을 접해서 처음으로 들어 봤는데..
한 박 쉬고 시작하는 것, 전반적인 박자라든가 뒷부분에 조옮김이 일어나는 구성이 "나의 영혼이 잠잠히"와 비슷하게 들렸다.
둘 다 이 유정 작곡이다. 좋은 씨앗이라는 CCM 밴드를 만들어서 음반을 냈고 지금은 목사까지 된 분이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그 찬양을 작곡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여러 곡을 작곡하다 보면 결국은 비슷한 스타일이 묻어 나기는 하는 것 같다. 난 그 정도로 작곡을 한 경험도, 그럴 능력도 없어서 잘 모르겠다만..

Posted by 사무엘

2019/10/12 08:35 2019/10/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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