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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사도라 던컨 (1877-1927)

'이사도라 던컨(혹은 덩컨?)'은 그리스 여신 코스프레에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무용 세계를 개척한 전설적인 무용가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발레 일색이던 서양의 기존 무용계에 혁신을 일으켰다고 한다.
뭔가 우리나라 최 승희와 비슷한 위치의 사람인 것 같으나, 시간과 장소를 감안하자면 물론 그 반대의 관계가 맞을 것이다. 이사도라가 최 승희를 닮은 게 아니라, 최 승희가 이사도라를 닮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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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이사도라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었지만, 개인적인 가정사는 기복이 심했으며 몹시 불행했다. 그게 금사빠 기질로 이어졌는지 훗날 러시아-소련 사람인 엄청난 연하의 시인과 결혼(정확히는 재혼)했는데.. 아무리 시인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거 무슨 남자가 여자보다도 더 유리멘탈 감성파였던 것 같다.
급기야는 남자가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을 겪다가 겨우 30 남짓한 나이에 자살을 해 버렸다.

그녀는 최후를 맞이한 방식도 굉장히 특이했다.
그녀는 그 당시 잘 나가던 경주용 자동차인 '부가티 Type 35'를 자가용으로 굴렸다. 얘는 뚜껑이 없는 2인승 오픈카였다.
하루는 그녀는 차가 움직일 때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간지나게 뒤로 휙 날렸는데.. 그게 뒷바퀴에 말려 들어갔다!

이 때문에 목이 졸렸는지 몸이 통째로 차 밖으로 떨어졌는지.. 어쨌든 그녀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5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죽은 방식을 보면 1970년대 이후의 비교적 최근 인물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1972년이 아니라 1927년에 저런 형태의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게 가능하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저건 워낙 어처구니없는 사고인지라, 그녀의 행적과 마지막 말을 생각해 보면 정말 사고사인지 아니면 사고를 가장한 자살인지조차 헷갈릴 지경이라고 한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안녕, 여러분. 전 영광을 향해 갑니다"였다는데.. 이건 정말 영락없이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 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밈처럼 들린다. ㄲㄲ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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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어령 (1933~2022)

이 달 초에 돌아가신 유명인사이다.

  • 1950년대, 20대 나이에 ‘우상의 파괴’라는 명목으로 그 당시 기성 소설가와 시인들을 신랄하게 까는 평론을 씀.
  • 그냥 난해한 싸이코 취급이나 받던 이 상의 작품을 재조명함.
  • ‘갓길’이라는 말을 처음 만듦.
  •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 컨텐츠를 기획함.

‘손에 손 잡고’ 노래의 가사야 김 문환 교수(2018년 작고)가 작사했지만, 거기에도 들어가는 캐치프레이즈인 ‘벽을 넘어서’는 이 어령이 고안했다. (식상한 ‘화합과 전진’ 이런 식의 문구가 아니라)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문화바탕, 문화돋움 같은.. 우리나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앙 정부에서 추진해서 개발한 한글 서체가 이 시절에 만들어졌다. (서울남산체/한강체 같은 건 지방 정부임)

다만, 딱 이 시절에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어 버렸다(1991). 이 어령 장관은 나름 제외를 반대하고 저지하려 ‘노력’은 했다지만, 자기 직위나 손모가지(..)까지 걸고 강하게 노력하지는 않은 듯. 그래서 한글 운동 단체들로부터 흑역사라고 두고두고 비판받고 있다.

2010년대쯤에는 갑자기 기독교에 공개적으로 귀의한 것 때문에 화제를 일으켰다. 장녀가 무려 미국 변호사를 역임하다가 목사가 됐는데.. 병 때문에 먼저 세상을 떠나기도 한 게 유명하다.
그래서 이분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썼다. 20여 년 전에 핵 물리학자 정 근모 박사가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내고 나서 "나는 위대한 과학자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고 싶다"라는 책을 썼던 게 생각난다. 진짜 천재이긴 했던 분 같다.

3. 캐리 멀리스 (194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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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PCR -- 종합 효소 연쇄 반응이라는 캐사기급의 DNA 증폭 기술,
더 쉽게 말해 그 코 쑤시는 검사라는 걸 1983년에 최초로 발명한 생물학자이다. UC 버클리 박사(1973) 출신이고.. 이거 발명한 걸로 노벨 상을 받았다(1993, 화학).

전자공학에서는 아주 약한 신호를 깨끗하게 검출해서 증폭하는 게 획기적인 기술일 것이다.
그것처럼 생명공학에서는 검출을 원하는 유전 정보 물질만 원하는 대로 증폭하는 게 획기적인 기술이다.
1950년대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발견된 뒤, 이 기술 덕분에 분자생물학이라든가 유전공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단, 이 사람은 우한 폐렴의 창궐로 인한 PCR 검사의 보편화를 목격하지 못하고, 1년쯤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 사람은 게으른 천재 히피 성향이었는지..? 평생 학계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리즈 시절 이후엔 직업을 수시로 바꾸고, 이혼과 결혼도 여러 번 하고.. 진짜 자유로운 영혼에 충실하게 살았다.
하긴, 저 양반의 모교부터가 196, 70년대에 아주 리버럴한 성향을 자랑하는 곳이긴 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저기 컴공 쪽은 해커들의 요람이기도 했지 않던가?

압권인 건.. Cetus라는 기업에서 근무하던 중에.. LSD 빨면서 약에 취해 있다가 삘 받아서 PCR을 발명했다는 믿지 못할 일화까지 전해진다. 이건 음모론이나 가짜 뉴스가 아니라 자기 말과 동료들 증언이 일치하는 팩트이다.

LSD는 금단 증세는 타 마약보다 덜하지만, 일단 각성한 동안 나타나는 환각은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도대체 뭘 경험하는 걸까??
흔히 말도 안 되는 최적화 기술을 개발한 건 농반진반으로 외계인을 고문했다고 그러고, 심하게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나온 건 약 빨고 한 생각이라고 그러는데.. 현실에서 그 '약'의 범주에 그나마 가장 잘 부합하는 건 대마나 필로폰 따위가 아니라 LSD라고 한다.

사실, 그 시절에 저 사람 같은 약쟁이 공돌이· 예술가가 드문 케이스는 아니었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조차 LSD가 자기 업무 생산성과 창의적인 영감에 직접적인 도움을 줬다고 회고했다. 비틀즈 같은 뮤지션들이야 두 말할 나위도 없고..;;
하지만, 인간들이 창작을 할 때만 약을 한 건 아니었다. 찰스 맨슨 같은 범죄자들이 죄책감 없이 흉악 범죄를 저지를 때도 LSD 빨고 몽롱한 상태에서 했다. (1969년에 여배우 샤론 테이트 등을 죽인 것 포함..) 마약이 괜히 금지되는 게 아니다. 아무튼..

PCR에 대해서 음모론, 불신풍조 낭설들이 나도는 게 있다. 다른 멀쩡한 물질 집어넣어도 개나 소나 양성 나온다고..
마치.. 갓 죽은 동물 시체나 아주 최근에 생긴 물질을 연대 측정(탄소 원소? 방사성?)을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오래된 연대가 나왔다~~~ 이런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창조과학 쪽에서 좋아하는 얘기..
얘기 자체가 가짜 뉴스가 아니라면, 실험에 좀 착오가 있었지 싶다. ㅎㅎ

4. 뤽 몽타니에 (1932-2022)

이 사람은 1983년에 파스퇴르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중에 HIV, AIDS라고 불리는 그 병의 바이러스 원천을 최초로 정확하게 관측하고 발견해서 2008년에 노벨 상을 받은 위대한 생리학자/의학자이다.

그 전까지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괴질에 대해서 현업 의사들도 아는 게 없으니 극도의 공포에 떨고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 인류가 신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가 보다”, “주로 게이들이 이런 병에 걸린다고? 신의 섭리를 어기다니 천벌을 받았군 이놈!!”... 그러니 20세기에도 무슨 중세 흑사병 시절 같은 원시적인 낭설이 나돌았다. 그러다가 얘도 최소한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다. (아 물론 동성애는 신의 섭리를 어기는 짓이라는 말 자체는 맞다. -_-)

그런데 그는 리즈 시절을 찍은 뒤, 늘그막인 2010년대부터는 행보가 점점 이상해지면서 주류 의학계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정확한 근거 없이 "항생제를 오랫동안 복용하면 자폐증을 치료할 수 있다", "DNA가 전자기복사를 방출한다" 등.. 무슨 소리과학자, 물은 해답을 알고 있다 같은 주장을 하기 시작하더니..

그 정점으로 "우한 폐렴은 (HIV를 변조해서) 실험실에서 인위로 만들어진 바이러스이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 변이 바이러스가 증가한다, (심지어) 부스터샷을 접종하면 HIV에 감염된다" 같은 말까지 하면서 물의를 빚은 것이다.
"뭐 근거가 부족하다고? 나 이래뵈어도 노벨 상 받은 남자야! 날 뭘로 보고??"가 끝이었다. 그러다가 2022년 2월경 사망..

이 사람은 이 어령 전 장관과 출생· 사망 시기가 거의 같은 동시대 사람일 뿐만 아니라, 영국의 위대한 수학자 마이클 아티야(1929-2019)와도 수명이 정확하게 일치한다(생년 몰년이 딱 정확하게 3년 차이).
마이클 아티야는 왕년에 필즈 상에 아벨 상을 받은 천재 괴수였다. 1966년에 우리나라 홍 성대 씨가 20대 후~30대 초의 팔팔한 나이로 정석을 집필해서 떼돈을 벌었다면, 저 아저씨는 1966년에 필즈 상을 받았다. ㄲㄲㄲㄲㄲㄲㄲㄲㄲ

그런데 늘그막에 멘탈이 좀 나갔는지 그는 2018년 가을엔 리만 가설 증명 문제를 풀었다고 공개 기자 회견을 불쑥 열고는 얼렁뚱땅 횡설수설을 늘어놓으며 자폭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몇 달 뒤에 사망..

수학계에서는 이 사건을 불문에 부치고 노코멘트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늘 같던 거장 대선배님께서 말년에 어쩌다 이렇게 되셨나~~ ㅠㅠㅠㅠㅠ 하루아침에 이렇게 망신 당해서는 절대 안 될 분인데..?? 이놈의 리만 가설이 또 멀쩡하던 사람 한 명을 골로 보냈구나.."

수학 쪽이야.. 리만 가설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고 그게 자기 실생활에 끼치는 영향도 없으니 저렇게 조용히 넘어간다.
하지만 의학자는.. 당장 사람 건강이 걸려 있고 우한 폐렴과 걸린 연구를 하면 그 여파가 어마어마하니, 조금이라도 충격적인 주장이 나오면 온갖 음모론들에 힘이 실리게 된다.

참고로, 본인은 몽타니에 할배 쪽이든, 반대하는 백신 옹호(?) 학계 쪽이든 이 분야를 학술적으로 판단할 지식이나 경험이나 능력은 전혀 없음을 밝힌다.
단지 몽타니에가 단순히 우한 폐렴에 대해서 튀는 주장을 한 것 하나만으로 아싸가 된 게 아니고, 그 전부터 여러 방면에서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서 논란을 일으켰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사람이 명철과 분별력이란 게 평생 가지는 못할 수 있는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04 08:35 2022/05/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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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킬도저 사건

세상에서 벌어지는 범죄들의 동기를 살펴보면 그냥 돈 때문에, 혹은 주변 누군가가 미워서, 그냥 나쁜짓 하는 것에 쾌락을 느끼게 돼서, 세상 살기 싫고 다 같이 죽여 버리고 동귀어진하고 싶어서 등 다양하다.
그런데 드물게 공권력에 의해 부당· 불공평한 침해를 당한 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화풀이하는 유형도 있다. 각종 행정 처분이라든가, 민사 재판에서의 패소 말이다. 물론 실제로는 부당한 침해가 아닌 자업자득일 뿐인데 당사자만 망상에 빠져 혼자 잘못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난 2008년 2월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숭례문 방화 사건을 기억하시는가? 어떤 정신 이상한 60대 후반의 노인네가 토지 보상 비용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짓이었다. 보상비가 너무 저렴해서 억울하다고 청와대에 민원을 넣고 언론에다 제보도 해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는 여기에 앙심을 품고 2006년엔 창경궁에다 불을 지르다 걸려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랬는데 집행유예 기간 중에 그 다음으로는 숭례문까지 불지르는 대형 사고를 쳤다.

5년 전, 노 무현 대통령의 취임 직전에는 어느 늙은 미치광이 때문에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벌어지더니, 공교롭게도 딱 5년 뒤에 이 명박 대통령의 취임 직전에는 저런 화재가 벌어진 것이다. 숭례문 방화범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2012년 9월에는 진주시에서 주차 단속(... 설마 겨우 이것 때문..??)에 앙심을 품은 어느 40대 중장비 기사가 술 한 잔 거하게 마신 뒤, 포크레인을 몰고 파출소로 난입해서 거의 40분 가까이 난동을 부렸다. 자기 중장비로 건물 외벽과 주차장, 가로수, 가로등, 버스 정류장 등을 부쉈으며, 집게로 순찰차를 들었다가 지구대 입구로 내던지며 찌그러뜨렸다. 난동은 가해자가 경찰이 발사한 권총 실탄을 허벅지에 맞고 제압당한 뒤에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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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이미 주폭 등의 전과 3범이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됐고, 징역 3년에다 6900만 원이 넘는 물피 배상을 청구받게 됐다. 굴삭기 몰고 난동이라니.. 이건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꽤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천조국은 이런 식의 분풀이 범죄도 스케일이 반도를 아득히 능가한다. 2004년 6월, 콜로라도 주에서는 일명 '킬도저' 사건이란 게 벌어졌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자기 가게 인근에 입주할 예정인 시멘트 공장 때문에 자기 가게로 진입하는 경로가 막히고 자기 생계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고 공장장과 시청에게 여러 번 탄원 청원을 넣었다. 뭐 이런 형태의 분쟁 자체는 세계적으로 드문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요청은 석연찮은 이유로 인해 줄곧 묵살됐으며, 이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이 자기 사유지에서 다른 사소한 법을 어긴 게 드러나서 과태료를 먹었다.

이 사람도 다 잘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 포크레인 난동꾼보다는 빡치는 사유가 훨씬 더 정당했다.
수 년 간 노력했던 합법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그는 개인의 권리가 국가에 의해 부당하게 침해당한 것에 앙심을 품게 됐다. 그렇잖아도 처자식 없는 미혼에다 부모님도 돌아가신 홀몸이다 보니, 오늘만 살고 더 잃을 게 없는 복수귀로 완전히 돌변해 버렸다.

그는 전재산을 털어 불도저를 한 대 구입하고는 불법 개조(?)를 시행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차체에다 총알을 방어하는 두꺼운 철판· 콘크리트 장갑을 둘렀다. 유리창 대신 자그마한 비디오 카메라를 달았으며, 카메라 렌즈 주변도 강화 투명 플라스틱을 씌워서 보호했다. 이 애마의 이름은 졸지에 불도저에서 킬도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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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그는 2004년 6월 4일에 킬도저를 몰고 나가서 시멘트 공장 사장, 시청, 경찰서 서장, 판사 등 원한 관계인 사람들의 집을 들이받고 밀어 버렸다. 지방 경찰과 SWAT 특공대가 출동했지만 소총이나 수류탄 수준의 개인 화기로는 킬도저를 도저히 제압할 수 없었다. 난동은 거의 2시간이나 계속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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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우리나라 포크레인 난동꾼처럼 술 거하게 마시고 우발적으로 깽판 친 게 아니었다. 양덕후 공돌이 기질을 발휘하여 오랫동안 차근차근 진지하게 복수의 칼을 갈다가.. 훨씬 더 대규모로 사고를 친 것이었다.

하긴, 건설기계 중에서는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무한궤도도 달려 있고 탱크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긴 하다. 전땅크 할배 같은 사람이 이런 걸 타고 다닌다면 어울릴 것 같다.. =_=;;
한편으로 기계 대신 대형 동물에다 비유하자면.. 1994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폭발해서 결국 사람을 죽이고 난동을 부리다가 사살된 코끼리 '타이크' 같은 생각도 든다.

물론 킬도저도 천하무적 만능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중엔 반격을 받아서 라디에이터가 망가졌다. 냉각수가 증발해서 증기 기관차마냥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왔으며, 엔진도 방열이 안 되어 과열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킬도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깽판을 쳤다.
나중에는 어쩌다 삐끗해서 이동 능력을 상실하고 무장 경찰들에 포위되고 말았는데.. 그러자 킬도저를 운전하던 가해자 아재는 차내에서 권총 자살로 깨끗이 50대 중반의 인생을 마감했다.

킬도저는 한번 탑승하고 무장한 뒤에는 입구가 완전히 밀봉돼 버리는지라, 안에서 문을 열고 내릴 수 없는 구조였다고 한다. 무슨 일본 카미카제도 아니고.. ㄷㄷㄷ
경찰이 떡장갑을 절단하고 가해자 시신을 꺼내는 데는 2시간도 아니고 무려 12시간이나 걸렸다고 전해진다.

이 난동 때문에 10여 채가 넘는 건물이 파괴되면서 700만 달러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났다. 하지만 이 사람은 아무 친지 없이, 재산도 킬도저를 제조하느라 대부분 탕진한 빈털터리 상태로 죽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나 가해자 유족을 족쳐서 피해 배상금을 뜯어낼 수도 없었다. 700만 달러이면 아까 그 7천여만 원의 거의 100배에 달하는 규모이지 않은가? -_-;;

그래도 이 사람은 완전히 선을 넘고 싶지는 않았는지, 원한이 없는 주변 주민들에게는 이 날 멀리 대피하라고 언질을 줬다. 덕분에 이 사건은 엄청난 피해 규모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인명 피해는 전무했다.
즉, 말만 '킬도저'이지 이 기계가 실제로 킬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이게 여느 총기 난사 사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하지만 킬도저는 누군가에 의해 또 조립되어 사고를 치지 못하게 잘게 분할 해체되어 고철로 매각됐다.

이렇게 싸제 장갑차까지 만들어서 난동을 부리는 건 천조국 스케일이니까 가능한 것 같다. 그 경제력에다 그 개인주의 의식 덕분에 말이다. 하긴, 천조국은 옛날에 자기들끼리의 내전인 남북전쟁을 벌이던 시절부터 싸우는 스타일과 방식이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있었다. (1860년대에 이미 철도에 저격수에 초보적인 잠수함까지 등장했을 정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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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이성적인 사람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있다" ㄷㄷㄷㄷ
이건 윤 봉길 의사, 그리고 나치 독일 시절에 히틀러 암살을 추진했던 그 상이 군인도 거의 똑같은 말을 했지 싶은데.

북한에서는 옛날에 이 웅평 씨가 바닷가에 떠내려 온 남조선 라면 봉지에 쓰여 있는 "유통 과정에서 변질된 제품은 구입처에서 무료로 교환해 드립니다" 이런 너무 당연한 권리 안내 문구만 보고도 큰 현타를 경험하고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지 않는가..??
천조국은 그런 식으로 개인의 권익에 대한 관념, 그리고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같은 의식이 더욱 투철한 것 같다.

그러니 신념에 따라 저지른 범죄는 다른 범죄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물론 무식 멍청한 사람이 맹목적인 신념을 갖게 되면 엄청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지만 말이다.
저 사람은 신념에 따라 장갑 달린 불도저를 몰았지만.. 반대로 신념에 따라 불도저를 가로막고 서서 시위를 벌이다가 불도저에 치여 죽은 사람도 있었다. 2003년 3월, '레이첼 코리'라는 가녀린 인권 운동가.;;  2004년 기준으로는 얼마 되지도 않은 가까운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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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런 게 아니라 그저 "마스크 써라", "담배 피우지 마라" 이런 말 듣고 자기가 무시 당한다고 생각해서 남의 가게를 찾아가서 해코지 하고 멀쩡한 직원에게 행패 부리는 건.. 신념하고는 1도 관계 없으며 그냥 분노 조절 장애에 막돼먹은 짓일 뿐일 것이다.
킬도저 사건 하나 갖고도 인생사에 대해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2/04/12 08:35 2022/04/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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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와 피난

작년 8월 여름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고, 나라 전체가 탈레반 집단에게 점령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50여 년 전, 남베트남이 망할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저 나라는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해방된 뒤에도 역사가 참 파란만장했다. 한때는 여기에 웬 소련 공산당 빨갱이들이 들어와서 1980년 무렵엔 전쟁이 벌어졌었다. 그러고 보니 미국 등의 자유 진영에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대거 보이콧 했던 이유가 이 전쟁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엔 여기는 이슬람 꼴통들 천지로 전락했다.
1970년대에 나라가 잘 살고 여성도 자유로운 복장으로 길거리를 활보했는데, 2010년대가 되니 옛날에 건물이 있던 곳은 폐허가 되고 여성은 부르카인지 히잡인지를 뒤집어쓴 답답한 복장으로 바뀌어서 혼자 함부로 길거리를 다니지도 못하게 됐다. 둘을 비교한 사진을 보신 분이 있을 것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약소국 신생 독립국들이 2차 대전 이후로 무작정 강대국으로부터 해방만 되는 게 장땡이 아니었겠다 싶다. 그럼 이제 식민지 착취나 인종 차별 같은 건 없겠지만, 그 뒤로도 내전이 벌어져서 동족끼리 지지고 볶고 싸우고, 식민 통치보다 더 악랄한 싸이코 폭군이 등장해서 나라 말아먹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당장 이북이 저 지경이 돼 있다. 그 반면 우리나라의 건국과 역사 흐름은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제아무리 천하의 미국 천조국이 쬐끄만 자유 진영 국가를 지원하고 도와준다 해도.. 그 지원 대상 국가가 도를 넘게 부패해 있고 자기들 스스로 자기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의사가 없다면 아무 소용 없다. 무기를 지원해 봤자 그 무기가 빼돌려지거나 심지어 적에게 넘어간다면 미국이라도 미쳤다고 그 나라를 도와주겠는가.

이 패턴은 우리나라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6 25의 극초반에는 군기가 잔뜩 빠져서 허겁지겁 후퇴만 하는 오합지졸 국군을 보고는 미국의 반응은 “이 자식들 노답~~”이었다. 후퇴 금지 즉결처분이라든가 제주도 망명 정부 계획이 최후의 수단 차원에서 괜히 나왔던 게 아니었다.

그랬는데 서울 한강 이남에서는 어느 무명 용사가 “저는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이 자리를 절대 뜨지 않고 지킬 것입니다. 부디 탄약을 더 주십시오”라는 명대사로 맥아더 장군을 감동시켰다. 다음으로 낙동강 전선에서는 무려 사단장이라는 백 선엽 장군이 야전에서 직접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날 쏴 죽여도 좋다”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미국도 다시 적극적으로 한국을 도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고, 얘기가 또 옆길로 많이 샜다. 다시 아프가니스탄 얘기로 돌아오면..
알고 보니 저 나라는 영해라는 게 없는 내륙국이더라. 어쩐지 그래서 탈출하는 사람들이 배가 아니라 수송기를 타려고 난리를 쳤던 것이었다.

그런데 비행기는 빠르기는 하지만 선박보다 수송 능력이 훨씬 부족하다.
그런 데다, 비행기는 타 교통수단과 달리 외벽 같은 데에 껴서/붙어서/몰래 짱박혀서 탑승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조건은 피난민에게는 굉장한 악재이다. 그래서 어디 못사는 나라에서는 어떻게 몰래 탔는지 “여객기의 랜딩기어 수납 공간에 어느 밀입국자가 숨진 채 발견” 이런 사건이 보도될 때가 있다.

그런데 하물며 비행기의 외벽에 끼어 탔다가 비행 중에 떨어져서 죽는 건.. 정말 희대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건.. 9 11 테러 때 창 밖으로 뛰어내린 희생자 이후로 거의 20년 만에 처음 봤다.

2.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 화물기 추락 사고

지금 저 동네의 정치 시국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일이긴 하지만..
9년 전, 2013년 4월에는 무거운 미군 장갑차를 싣고 아프가니스탄 소재의 미 공군 기지를 이륙했던 보잉 747-400 개조 화물기가 갑자기 추락하는 대형 사고가 났었다. (내셔널 항공 102편 추락 사고) 원인은 화물 적재 불량이었다. (☞ 사고 영상)

육상 교통수단은 짐을 제대로 묶지 않으면 가다가 짐이 떨어지는 바람에 “주변 차”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나 선박은 엄청 무거운 짐을 제대로 묶지 않으면 비행/항해 중에 짐이 한쪽으로 쏠리고 기울어져서 자기가 추락이나 침몰 같은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저 사고의 경우, 비행기가 이륙해서 기수가 살짝 위로 들렸을 때.. 화물칸 장갑차의 결박이 풀려 버렸다.
15톤이 넘는 무거운 장갑차는 뒤로 굴러가서 벌크헤드를 쳐 버렸고, 이 때문에 비행기의 미익을 조종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무게중심이 기체의 뒤쪽으로 급격히 쏠리면서 기체의 받음각이 치솟고, 이로 인한 항력도 엔진의 출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올라갔다.
이 때문에 그 화물기는 이륙한 지 얼마 되지도 못해서 실속에 빠진 채 지상으로 힘없이 추락했다. 승무원 7인 전원 사망.

추락하지 않았더라도 조종을 못 하니 1985년의 JAL123편 같은 꼴 나서 언젠가는 자세가 어긋나고 추락했지 싶다.
에.. 자동차에다 비유하자면 몇십 톤짜리 강철 코일을 실은 트레일러가 겁도 없이 교차로에서 고속 급선회를 하다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강철 코일 따라 차량이 통째로 옆으로 뒤집힌(전도) 걸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자동차는 그냥 뒤집히는 걸로 끝나지만, 비행기는 양력을 잃고 추락한 것이다.
이제 앞으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군용기 또는 미군에서 외주 준 민항기가 뜰 일은 없어지는 건가..?? 문득 저 사고 생각이 났다.

3. 전투기의 호위

지난 2018년에는 6· 25 사변 장진호 전투 현장에서 발견된 국군 전사자들 유해를 하와이에까지 가져가서 신원 확인 후, 다시 우리나라로 송환한 일이 있었다.
유해를 실은 수송기가 우리나라 영공에 진입하자 우리나라에서는 그에 맞춰 전투기들을 무슨 보디가드처럼 출격시켜 수송기의 양쪽을 엄호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수송기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이렇게 인사했다.

“오랜 시간 먼 길 거쳐 오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 영상)

이게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가 아니라 현실이었다니..

태양의 후예에서 “성공한 인질 구출 작전에 무슨 책임을 지겠다는 말씀입니까? 정치와 외교는 제 책임입니다. 우리 국민을 무사히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사처럼 사이다이고..
현충원에 있는 할배 묘지에 새겨져 있는 헌시 “민족의 독립을 되찾아 우리를 나라 있는 백성 되게 하시고”처럼 감동적이다. 그리고 2013년 레카 시절 국군의 날 기념식 영상처럼 뭉클하다.

지난 8월에 모종의 계기로 홍 범도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올 때에도 전투기들이 똑같이 수송기를 호위했다. 이때는 3년 전에는 안 했던 섬광탄까지 폭죽처럼 쏴 줬다. (☞ 영상)
홍 범도는 독립군 활동을 하다가 자유시 참변을 겪고, 그 뒤엔 소련 인민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헤이그 밀사 중 하나였던 이 위종처럼 말이다. 소련으로 가긴 했지만 딱히 한국에서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이나 북한의 건국과 연루된 것은 없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독립운동가나 6· 25 참전 용사의 유해가 귀환할 때 전투기 호위를 했는데, 지난 도쿄 올림픽 때 대만에서는 선수들이 귀국할 때 이런 이벤트를 시행했었다.
대륙을 꺾고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너무 기특하다면서, 귀국하는 선수들이 탄 여객기의 주위에 미라주2000 전투기를 네 대 띄워서 호위해 준 것이다. 총통 각하가 특별 지시를 내린 거라고 한다. 공군이 이런 의전에도 동원될 때가 있는 셈이다.

4. 세계에서 제일 큰 비행기의 최후

인류가 만들어 낸 역대 가장 거대한 비행체야 나치 독일 시절의 힌덴부르크 비행선이다. 허나, 부력이 아닌 양력으로 날면서 가장 많은 payload를 싣고 이륙 가능한 세계 최대 비행기는 바로.. 구소련에서 지난 1988년에 개발했던 An-225였다. 여객기가 아니라 화물기 겸 군 수송기 용도로 만들어졌다.

얘는 그 큰 보잉 747은 말할 것도 없고, A380보다도 더 컸다. 요즘은 저런 4발(엔진 수) 비행기조차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단종되는 추세이지만 An-225는 무려 6발이었다. 그리고 예비용 자매기가 구소련의 붕괴 시국으로 인해 끝내 만들어지지 못한지라, 얘는 동형의 다른 기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유일 유니크 아이템이었다.

워낙 덩치가 큰 덕분에 부란 우주왕복선도 실어 나르고 다른 여객기의 벌크헤드 같은 대형 부품도 수송하고..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도 있었다.
30년 넘은 낡은 비행기이다 보니 내부 기기들이 지금 관점에서는 낙후했으며, 조종을 위한 승무원이 좀 많이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세계의 항덕들이 주목해 온 이 역사적인 비행기가 그만 소실되었다. 다른 사고도 아니고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수리 불가능한 손상을 입고 대파 당했다. 비행 중 격추는 아니고, 공항 격납고에 가만히 주기 중이었는데 공습을 받아 같이 박살 난 것이다. 전쟁이 야기한 참으로 안타까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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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나라 내부에서의 최대 항공 사고

그나저나.. 우리나라 국적의 여객기가 옛날에 겪었던 네임드급 사건· 사고로는 북괴가 저지른 대한항공 858편 폭파(1987), 소련에 의한 007편 격추(1983), 괌에서 801편 착륙 실패 추락(1997) 등 여럿 있다. 이것들은 사고 장소는 다들 외국이었다.
정작 대한민국 내부에서 벌어진 역대 최대 규모 항공 사고는.. 의외로 국적기의 사고가 아니어서 인지도가 별로 높지 않다. 바로 2002년 4월 15일에 악천후 속에서 부산 김해 공항에 착륙하려다 실패하고 인근 야산에 추락한 중국 국제항공 129편 사고이다.

이 사고로 승객 155+승무원 11명 중에 130명이 사망하고 36명만 살아남았다. 승객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이건 1993년에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 733편 추락보다 더 큰 사고였다(68명 사망, 48명 생존).
이 두 사고는 지형 때문에 착륙 난이도가 높은 공항에다, 악천후와 조종사 과실까지.. 발생 원인이 서로 좀 비슷하다. 하지만 아시아나 733은 추락 후에 다행히 화재와 폭발이 없었던 반면, 저건 그렇지 않아서 더 처참한 사고가 되었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여객기 한 대의 추락만으로 무려 500명이 넘는 사람이 몰살 당했다거나..=_=, 천조국처럼 여객기가 납치 당해서 고층 건물과 충돌하는 엽기적인 일을 자국 내부에서 당한 적은 없다.
본인조차도 2002년 5월 25일, 대만의 중화항공 611편 공중분해 추락 사고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작 저 사고는 한참 뒤 나중에야 뒷북으로 접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부산에서는 김해 공항을 대체할 더 크고 안전한 동남권 공항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었다. 게다가 김해는 군 공용이기까지 한 관계로, 민항기의 운용에 제약이 더 크다.
굉장히 오랫동안 진통이 많았는데 결국은 가덕도에 신공항의 건설이 확정되었는가 보다.
서울에 공항이 여의도-김포-인천의 순으로 확장되었다면, 부산은 공항이 수영-김해-가덕도의 순으로 확장되는 모양새이다.

한편, 우리나라 국적기에서 사망자가 수십 명 이상 발생한 심각한 대형 사고는 저 801편 사고 이후로 현재까지 20년이 넘게 전무하다.
메롱 상태인 나라 말고, 세계를 통틀어 나름 선진국의 플래그십 항공사가 낸 '마지막' 대형 사고 기록은 현재로서는 2009년 에어 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가 차지하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3/16 08:35 2022/03/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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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본인은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 같은 것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랬는데.. 요즘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보이는 족족 못 잡아서 안달인 웬 멧돼지한테 귀여움과 연민과 애정을 잔뜩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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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어느 야생 멧돼지 농장에서 여성 농장주가 자기 멧돼지와 키스하는 모습.. 2013년경 모습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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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이 사람 별명이 무려... 남산 멧돼지, 남산 숯불구이, 날으는 돈까스, 공포의 삼겹살이었댄다(1925-1979). ㅋㅋㅋㅋㅋㅋㅋㅋ
개인적으로는 나도 저런 별명을 갖고 싶은데.. 그럴려면 지금보다 더 뚱뚱해져야 하려나?
후덕하게 생겼어도 저 사람은 나름 중정, 안기부, 국정원을 통틀어서 대한민국 역사상 첩보기관의 수장을 제~~일 오래 역임했던 사람이다. 뭐 그건 그렇고...

유튜브를 뒤져보니 "세상에 이런 일이" 부류의 TV 프로에서 멧돼지와 교감하는 부러운 사람들 얘기가 생각보다 많이 방영됐던 것 같다. 비교적 최근까지도(2010년대 후반) 말이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링크를 몇 개 소개한다. 꿀꿀~!

(1) 어느 자동차 정비소 직원들이 새끼 멧돼지를 어디서 주워 와서 키우고 있는데.. 쟤도 사람을 알아보고 특정 인물만 죽어라고 쫓아다닌다. (☞ 링크) 42~44초.. 꾸엑 꽥 소리가 완전 귀엽다.. ㅋㅋㅋㅋ
사람의 다리 길이에 비해 저 새끼 멧돼지의 다리 길이는 서로 쨉이 안 되는데.. 달려가는 속도 한번 보소~~ 이러니 어지간한 네 발 달린 짐승은 사람보다 훨씬 더 빠를 수밖에 없다.
사람의 다리는 롱 스트로크 저 rpm의 트럭/버스용 디젤 엔진이고, 멧돼지는 숏 스트로크초고 rpm의 오토바이 엔진뻘 되겠다.

(2) 산에서 다리를 다쳐 있는 새끼 멧돼지를 구조하고 치료해 줬더니 걔가 커서도 주인을 계속 따라다닌댄다.. (☞ 링크) 몇 번 강제로 방생시켜도 또 돌아온다고..
1분 33초 부근, 진흙목욕 하는 부분도 너무 귀엽다. 결국 우리를 만들어서 이 멧돼지를 집에서 키우기 시작했는가 보다. 이미 키우고 있는 암캐 누렁이와도 사이가 좋은 듯.. ^^ 너무 훈훈한 이야기이다.

(3) 경남 해인사 주변에는 멧돼지가 수 년째 작정하고 어슬렁거리는 듯하다. (☞ 링크)
이미 수 년 전부터 매스컴을 탔던 것 같다. 나도 저기 가서 멧돼지 밥 좀 주고 와야겠다~~~

(4) 이건 무려 2004년, 좀 옛날 영상이다만.. 멧돼지 세 마리를 훈련시켜서 겨울에 썰매를 끌고 수레를 끌게 하는 사람이 국내에 있었다~! 심지어 멧돼지로 밭도 간다~!!!! 무슨 소처럼.. ㅠㅠㅠㅠㅠ (☞ 링크)
얘들도 앞의 (2)처럼 새끼 삼형제(어미를 잃은 듯..??)를 길에서 발견해서 키웠는데 나중엔 방생시켜도 자꾸 집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가축 겸 애완동물로 받아들인 거라고 한다~!

 
이렇듯, 멧돼지는 사람을 무작정 해쳐대는 무슨 흉포한 괴수 괴물이 절대 아니다. 어지간한 개보다도 결코 더 위험하지 않다. "저 동물은 해로운 동물이다" 취급하면서 무작정 쏴 죽이기만 하지 말고, 저렇게 밭 갈고 썰매 끄는 것처럼 인간과 상생하고 윈윈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ㅠㅠㅠㅠㅠㅠ

그래도 개체수가 너무 많아졌는데 호랑이한테 잡아먹힐 일이 없으니 결국 사람에게 포획되는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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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쟤들도 얼마나 배가 고플까..?? 이런 멧돼지에 비하면.. 비좁은 공장식 축사에서 식용으로 꾸역꾸역 사육되는 집돼지들의 처지는 그렇게까지 가혹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걔들은 야생을 방황하다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죽을 일은 없으니 말이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거다.

그나저나 (1) 그 척박한 산에서 그래도 뭘 꾸준히 쳐먹어서 멧돼지들이 저렇게 큰 덩치와 무게를 갖추고 새끼도 듬뿍 낳는지, (2) 돼지코만 제외하면 저게 어딜 봐서 집돼지와 닮았다고 집돼지와 멧돼지가 교잡도 가능한 친척뻘인지..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호박이 크고 납작하고 주름진 그 청둥/맷돌호박뿐만 아니라 작은 단호박도 있고 가지처럼 생긴 주커니도 있듯이, 멧돼지도 외형이 생각보다 다양한 편이다.
곰처럼 생긴 놈도 있고, 털이 뒤룩뒤룩한 게 염소나 양처럼 생긴 놈도 있고, 집돼지하고 별 차이 없게 생긴 놈도 있고, 라이온 킹 품바처럼 생긴 놈도 있다. 아랫니 가시가 있는 놈도 있고 없는 놈도 있고, 털 색깔도 다양하고..

그래서 내가 오랜 이미지 구글링과 덕질, 학습을 통해 정립한 '한국형 표준 멧돼지'의 권장 외형은 다음과 같다.

  • 전반적인 털 색깔은 검정/고동색 계열의 어두운 색
  • 길고 뾰족한 주둥이, 그리고 주둥이의 주변만 동그랗게 약간 흰 털
  • 귀는 각지고 쫑긋 솟아 있음 (집돼지는 귀가 그렇지 않고 접힌 모양인 편)
  • 엄니는 살짝 돌출된 정도인 게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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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참고용 사진의 멧돼지가 표준에 가장 부합하고 내가 가장 호감을 느끼는 모범 외형이다. 혹시 업무상 멧돼지를 삽화· 일러스트 형태로 그리게 될 분이 계신다면 가능한 한 이 고증에 충실하게 그려 주시면 좋겠다. ^___^

이런 멧돼지가 새끼일 때는 줄무늬가 있는 게 다람쥐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게 인상적이다. 얼굴이랑 꼬리는 다르지만 몸통은 줄무늬와 색깔이 꽤 닮았다~!! 아래의 사진을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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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본인은 멧돼지라는 동물 종을 좋아하지, 특정 멧돼지 개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멧돼지가 수가 너무 늘어나서 민가에 내려와 밭을 망가뜨리는 것까지 실드 치면서 "우리 멧돼지는 안 물어요"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다거나 무작정 "멧돼지 포획 반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에 호랑이 같은 맹수는 거의 구한말~일제 시대 때 전멸하고 씨가 말랐다. 하지만 국내의 멧돼지 급증 문제는 그로부터 훨씬 뒤에나 불거지기 시작했다. 포식자의 부재가 문제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언덕이고 산이고 다 깎아내고 건물을 올리는 바람에 서식지가 감소하면서 인간과의 충돌이 잦아진 것이지 싶다.

농장에서 사육하는 집돼지는 털이 없고 딱히 공격성이 느껴지지 않는 둔한 동물인 반면, 종 차원에서 동일한 멧돼지는 검은 털이 나 있고 아랫니에 가시까지 박혀 있다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애초에 돼지라는 동물 자체가 생각보다 떡대 있고 공격성도 있는 놈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성경에도 밭을 망가뜨리는 부정적인 야생동물로 한 번 등장하기는 한다. ㅋㅋㅋ (시 80:13)

돼지 하면 떠오르는 '꿀꿀'은 굉장히 많이 보정되고 미화된 의성어이다. 실제 집돼지나 멧돼지가 내는 소리는 "꾸에엑, 꽥, 끼히히힝"에 가까워 보인다. ㅎㅎ 돼지는 고양이의 '냐아옹'이나 개의 '멍멍, 워워' 같은 인상적인 울음 소리나 포효가 존재하지는 않은 듯하다.

멧돼지는 무겁고 뚱뚱해 둔해 보여도 네 발 달린 짐승들이 그렇듯이 달리기 속도가 꽤 빠르며, 성체 기준으로 1m가 넘는 높이의 담장을 훌쩍 타넘을 수도 있다.
시력이 좀 나쁜 대신에 개 이상으로 냄새를 왕창 엄청나게 잘 맡으며, 지능도 생각보다 높고 무엇보다 물에 떠서 헤엄도 굉장히 잘 친다~!

멧돼지라고 해서 산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 먹이를 찾으러 코를 킁킁거리며 헤엄만으로 수 km를 이동하면서 바다 건너 섬까지 상륙한댄다.
하긴, 두더지도 흙만 파는 평소 습성과 달리, 물에 들어가면 헤엄을 아주 잘 친다고 예전에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단행본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 2013년쯤에는 전남 완도 청산도에 웬 멧돼지들이 상륙해서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마 지금쯤이면 다 토벌됐지 싶다.
  • 2019년 11월 14일에는 멧돼지 한 마리가 서울 북한산이 아니라 한강 성산대교 인근에서 헤엄치며 이동 중인 게 발견되어서.. 사살됐다.
  • 그로부터 얼마 전 2019년 10월 30일엔 얕고 썰물이 있는 황해도 아니고 동해..! 영덕 앞바다에서 도대체 출처를 알 수 없는 멧돼지 한 마리가 헤엄 중인 게 발견되어서 이 역시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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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번식력은 다행히 나 같은 사람이 걱정 안 해도 될 정도이고 육지에서 밭을 망가뜨리는 걸 실드 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렇게 헤엄 치느라 아무런 공격도 못 하는 취약한 상태의 녀석을 꼭 잡아 죽여야 했나 하는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좀 든다. 여름도 아니고 11월에 저렇게 차가운 물에 들어갔을 정도인데.. ㅠㅠㅠ

한편, 요즘은 심지어 북미 지역에서도 텍사스 같은 곳은 주인 없는 멧돼지 떼가 끼치는 민폐 때문에 여간 골치를 썩는 게 아니라고 한다.
거기는 원래 멧돼지 같은 게 존재하지도 않았던 동네인데.. 식용과 수렵용으로 바다 건너 수입된 녀석이 기존 집돼지와 어째 잡종 후손을 생산하면서 덩치가 엄청 커져 버렸다. hogzilla라고 찾아보면 합성이 아닌 엄청 거대한 멧돼지가 포획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단, 그 미국 멧돼지는 덩치만 크지 외형은 여전히 집돼지에 더 가까워 보인다.

호주는 역사적으로 에뮤나 토끼 같은 동물을 잘못 관리했다가 난리를 겪었던 동네이다만.. 그래도 멧돼지는 없는가 보다.
이 시점에서 본인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용감한 꼬마 재봉사"라고.. 오글거리는 허세 착각 영웅물 장르의 동화가 떠올랐다. 그.. "한 방에 7 kill" 드립 말이다.

얘는 독일 '그림' 동화에 수록된 이야기 중 하나인데,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에 모국어로 접한 적이 없이 영어 교재를 통해 먼저 접한 얼마 안 되는 동화였다. "룸펠슈틸츠헨"도 마찬가지이고(요정의 이름..).
"헨젤과 그레텔"이라든가 "브레멘의 음악대"는 한국어 동화책으로 먼저 읽은 반면, 쟤들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작중에서 주인공은 거인을 무려 세 명이나 제압하고, 추가로 맹수를 두 마리나 포획했다.
처음 만난 거인 한 명은 힘겨루기만으로 꽁무니를 빼게 만들었고, 다른 두 명은 자기들끼리 팀킬을 붙여서 자폭시켰다.

거인이 아닌 맹수를 잡을 때는.. 장애물을 등지고 서 있다가 맹수가 바로 앞까지 돌진해 왔을 때 샥 피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맹수라고 해서 무슨 늑대나 불곰이나 사자나 호랑이나 심지어 드래곤....을 잡은 건 아니고 꽤 특이하다.
하나는 유니콘(!!)이고, 다른 하나는 멧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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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갑자기 이 동화 얘기가 떠오른 이유는 일단 멧돼지가 나와서 반가웠기 때문이고,
그리고 다음으로 이 동화에서 등장하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성경 번역 내지 표현과도 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거인'이 자주 나온다. 바산 왕의 '옥'(신 3:11)이라든가 골리앗처럼 키가 3미터를 넘나드는 네임드급 거인이 있었지만, 사실은 그 전에 창 6:4에서 타락한 천사들과 인간이 교잡해서 거인이 튀어나왔다.
킹 제임스 성경은 그냥 giant라고 번역했지만 타 성경은 네피림, 르바임 족속 등으로 음역된 경우가 많아서 거인이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킹 제임스 성경에는 '유니콘'이 나온다. 유니콘의 힘처럼 세다는 말은 아주 강력하다는 뜻이다(민 23:22). 유니콘은 가축화도 좀체 안 되는 와일드한 동물이다(욥 39:9). 유니콘의 뿔도 그냥 크고 아름답고 거시기..하다. (시 92:10) 얘 외의 성경 역본들은 다 유니콘이 아니라 그냥 들소 wild ox라고 돼 있다.

글쎄, 유니콘이라고 해서 굳이 길쭉한 뿔 달린 가녀린 백마까지는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잿빛의 떡대 좋은 코뿔소도 유니콘의 범주에 드는 게 아닐까? 그게 멧돼지하고도 잘 대응하니 말이다.

이 자리에서 번역의 옳고 그름을 논하지는 않으련다. 그냥 이렇게 내용과 표현이 다르다는 걸 얘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한 동화에서 멧돼지가 이런 거인, 유니콘과 동급의 강려크한 몬스터로 같이 등장했다니 매우 반갑다~~

  • 그나저나 못된 송아지는 엉덩이에 뿔이 난다니.. 거 참 무서운 소리이다.;;
  • 재봉사가 이런저런 몬스터들을 처지하고 공주님을 차지하는 건..
  • 성경에서 다윗이 적국 블레셋 사람 200명 목을 따 와서 사울 왕의 딸 '미갈'을 차지한 것하고 비슷하게 보인다.;; 왕은 100명을 죽여 오라고 명령했는데 공주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두 배를 이행한 것이었다.
  • Seven IN one blow인지, Seven AT one blow인지.. 저 문맥에서 전치사는 의외로 좀 뒤섞여 쓰이는 것 같다.
  • 재봉사가 거인과 함께 누가 돌을 더 멀리 던지나 내기를 할 때 말이다. “나는 돌이 영원히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지!” 이러면서.. 새를 날려보내는 게 아니라, 돌을 초속 8km 이상의 제1 우주 속도로 날려보내서 지구 공전 궤도로 띄우는 걸 생각.. 아 아니다. ㄲ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2/03/04 08:34 2022/03/0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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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한 동물들 -- 조류 위주

생물 중에는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현재는 멸종해서 없어진 품종이 있다.
무슨 고생대의 아노말로카리스나 중생대의 공룡, 신생대의 매머드처럼 너무 옛날 생물 말고, 인류와도 공존하던 중에 멸종한 놈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신대륙에서 날지 못하는 조류(새)의 멸종 사례들이 굉장히 인상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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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아: 타조보다도 덩치가 더 큰 새였으며, 유럽 백인들이 멸종시킨 건 아니라는 것(마오리 원주민들이 훨씬 더 전인 16세기쯤에 멸종시킴..??), 무슨 봉황 정도로 까마득한 판타지 같은 새가 아니면서 문명인이 실물을 본 적이 없다는 것 때문에 심상이 무척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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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도: 날지 못하고 알도 하나씩밖에 못 낳는 주제에 습성도 인간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순진했다. 이 때문에 백인 개척자들의 남획과 생태계 교란, 서식지 파괴의 직격타를 받아 18세기(1700년대) 말쯤에 싹 멸종했다. 이때는 안타깝지만 지금 같은 자연 보호 동물 보호 같은 관념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뱃사람은 특히 더욱 억세고 험악한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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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큰바다쇠오리: 시꺼먼 색깔에 눈 주위에 허연 무늬가 있는 건 범고래를 닮았는데.. 도도와 비슷한 처지로 인해 19세기인 1840년대에 사실상 멸종했다.
원래 '펭귄'이라는 단어는 얘를 가리키는 단어였는데 정작 얘는 멸종해 버리고, 비슷하게 생긴 다른 개체가 남극에서 발견되면서 쟤들이 '펭귄'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았다. 개인적으로 제일 불쌍하고 안타까운 멸종 사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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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행비둘기: 얘는 위의 새들과는 달리 비행 가능한 놈이다. 한때 북미 대륙에서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을 정도로 엄청난 개체수를 자랑했고 돌멩이를 아무 데나 던져도 잡을 수 있던 녀석들이지만.. 이를 능가하는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기어이 멸종하고 말았다. 소수가 된 뒤부터는 번식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물원에서 마지막 개체가 번식에 실패하고 죽었기 때문에 정확한 멸종 일시와(1914년 9월 1일) 박제 기록이 전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19 08:34 2022/02/1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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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영화 "검사와 여선생"

<검사와 여선생>은 1948년 6월에 개봉· 상영됐다는 국산 무성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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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를 지나 40년대의 끝물이었던 저 때는.. 세계는 물론 국내에서도 무성영화는 진작에 유행 지나고 한물 간 상태였다. 하지만 얘는 감독이 무성영화 변사 출신이기도 해서 무성에 애착이 있던지라, 일부러 옛날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필름이 남아 있어서 영상이 전해지는 제일 오래된 국산 영화로는 일제 시대 1930년대 작품인 <미몽>(1936), <청춘의 십자로>(1934) 같은 게 알려져 있다. 이런 골동품 필름은 낡은 극장이 폐업해서 내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창고에 처박힌 게 발견되기도 하고, 심지어 외국에서 상영되다가 말았던 게 정말 우연히 극적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엔 나라가 몹시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독립 운동과 해방을 소재로 한 영화가 여럿 만들어졌다. <자유만세>(1946)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때는 열차 이름조차 ‘해방자호(liberator)’라고 붙였던 시절이니 그때의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된다. 그리고 윤 봉춘 감독은 1947년에 곧장 유 관순 열사와 윤 봉길 의사 전기 영화를 나란히 만들었다.

자.. 이 와중에 <검사와 여선생>은 우리나라 최후의 무성영화이면서 해방 직후에 정치· 시사와 무관한 소재(멜로 드라마 신파)를 채용하여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미군이나 외국인 선교사가 아니라 한국인이 1947년쯤, 대한민국도 아니고 미군정 시절에 노면 전차가 가득하던 서울 시내를 촬영한 장면이 남아 있다. 대한뉴스 기록조차 없는 시기의 기록이니 역사적 가치가 아주 높을 수밖에 없다.

영화 필름이라는 게 무슨 지질 시대 화석이라든가 몇백 년 전 조선 시대 도자기나 실록, 어진보다야 훨씬 더 최근에 만들어진 물건일 텐데? 소실된 게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물가가 너무 비싸고 물자가 귀해서 기존 영상이 요즘처럼 영구 보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내려가고 자기 용도를 다한 영화 필름은 곧장 다른 용도로 재활용돼야 했다. 무슨 전쟁, 화재, 자연재해로 인해 소실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 시대의 유명한 영화 제작자였던 나 운규의 <아리랑>(1926)도 무성 영화이다. 하지만 얘는 현재 필름이 전해지지 않아서 영상이 소실된 상태이다.

무성영화는 배우가 직접 대사를 말하지 않고 변사가 배경을 설명하는 형태이다 보니 무슨 다큐멘터리 같다. 그래도 변사는 무슨 국어책 읽듯이 무미건조하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온갖 감정을 실어서 연기 하듯이 맛깔나게 나레이션과 배우 대사를 처리한다.
뭔가 판소리 같고 북과 장구가 곁들어져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서양에서 무성영화가 상영되던 극장엔 BGM 연주를 위한 피아노인가 오르간까지 갖춰져 있었다고 한다.

자, 본인은 이런 점을 감안하고 검사와 여선생 영화를 유튜브로 신기하게 감상해 보았다.
얘는 역사적 가치 말고 문학 예술적 가치랄까 그런 건 지금의 관점에서는 캐 민망한 수준이다. 정말 유치하고 오글거리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신파극이다.

집이 가난하고 끼니를 너무 많이 굶어서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픽 졸도까지 한 불쌍한 학생(주인공. 이름은 ‘장손’)을 묘사하면서 변사는 “아~ 하나님이시여, 나는 왜 어찌하야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시는 것입니까 어흐흐흐흥 ㅠㅠㅠㅠ” 이러는 식이다.. ㅠㅠㅠ
이런 아이를 담임 선생이 사적으로 잘 챙기고 보살펴 준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 년 뒤, 형무소를 탈옥한 어느 범죄자가 참 우연히도 그 선생의 집으로 숨어 들어오고.. 선생은 그 사람의 사정을 듣고는 불쌍히 여겨서 그를 숨겨 준다.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붙잡힌 사람인지는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런데 우연히도 선생의 남편은 자기 아내가 낯선 남자와 바람 피우는 걸로 오해하게 된다.

이 때문에 부부싸움이 벌어지고, 남편이 자기가 휘두른 칼에 자기가 급소를 실수로 찔려 픽 죽어 버린다. 선생은 과실치사도 아닌 살인죄로 기소되는데..
이게 웬걸.. 그 선생이 옛날에 보살폈던 그 가난한 학생이 그새 고등고시를 통과하여 검사가 돼 있다(사법시험은 1960년대에 등장).

그래서 그 검사가 이 피고인은 나의 옛 스승이었고 이랬던 인품의 소지자이고 정황상 어쩌구저쩌구.. 그래서 선생의 무죄를 이끌어 낸다.
법정을 나와서는 그 검사와 선생은 부둥켜안고 운다. 그 아이는 검사가 돼서 얼마나 성공하고 출세했는지 1940~50년대의 시점에서 무려 자가용을 굴리고 있다. 그는 석방된 선생님을 태우고 자기 집에 모셔서 극진히 대접하고 자기 부인도 소개해 준다.

아, 정말 내 예상보다도 심하게 더 유치찬란하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저 제자는 검사가 아니라 변호사여야 하지 않나 싶다. 검사가 변호사보다 더 간지가 나니까 무리해서 저런 설정을 만든 걸까? ㄲㄲㄲㄲㄲㄲㄲ
그래도 이건 1948년작이고, 당시에 평이 좋았고 “흥행 성공”했던 작품이란 걸 감안하도록 하자. 필름이 괜히 보존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그 어렵고 못살던 시절엔 사람들이 이런 걸 최신 문화 생활 겸 복고풍 무성영화라고 받아들이면서 관람했다. 그러면서 결초보은 같은 심리적인 공감과 대리 만족을 얻으며 눈물 콧물 짰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야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접해서 뻔한 복선과 클리셰와 반전, 어설픈 CG 따위엔 식상해 버릴 정도로 눈이 높아졌지만.. 저 때는 시대 배경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옛날에 소파 방 정환도 환등기 갖고 덕질과 변사 코스프레를 즐기던 천부적인 이야기꾼이었다. 동화 구연을 시작하면 애들이고 어른이고, 심지어 감시하던 일본 경찰 형사까지도 웃다가 울면서 난리가 났다는데.. 물론 그가 이야기를 실감나게 잘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의 청중들은 우리 같은 여가 문화생활이란 게 없어서 신파극에 훨씬 더 잘 반응하기도 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저 변사 녹음은 언제 된 것인지 매우 궁금했는데.. 검색을 해 보니 신 출(본명 신 병균)이라는 분이 우리나라를 통틀어 혼자 남은 마지막 변사였고 2010년쯤에 ‘검사와 여선생’ 연기를 하셨던 것 같다. 이분은 85세의 나이로 지난 2015년 2월에 작고했다. 살아 생전에 그 1920년대 ‘아리랑’ 무성영화의 변사 연기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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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비교적 최근에 녹음한 것이었군.. 어쩐지 52분 31초 지점에.. 엥? ‘초등학교’라는 말이 나오더라. 신을 부를 때 사용하는 명칭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꼬박꼬박 말한다.
변사라는 건 인간문화재 급의 극도로 좁은 고인물 업종일 수밖에 없는데.. 뭔가 서커스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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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절엔 꼭 사관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학생을 다 ‘생도’라고 부르는 걸 알 수 있다. 옛날 한글 개역성경에서 직역하면 ‘대언자들의 아들들(왕하 2 등)’.. 엘리사의 제자 문하생뻘 되는 사람들을 ‘생도’라고 부른 것에서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개역개정판에서는 ‘제자’라고 바뀌었다.

<검사와 여선생>은 훗날 1966년에 흑백 유성영화로 리메이크작이 나오기도 했다. 이때는 제목이 <민 검사와 여선생>이라고 약간 바뀌어서 주인공의 성씨가 앞에 삽입되었다. 그리고 설정을 좀 더 현실화해서 검사였던 제자가 옛 스승을 구하기 위해 변호사로 전업하는 것까지 들어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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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동락 국민학교 김 재옥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영화가 나오기도 했는데, 얘는 제목이 <전쟁과 여교사>(1966)였다..!
무슨 영어로 치면 teacheress 같은 단어가 있기라도 한지.. 그때는 여선생, 여교사라고 꼭 ‘여’짜를 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검사와 여선생>의 앞부분을 보면 노면전차가 다니는 서울 종로 시내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워낙 옛날이니 자동차는 아무래도 196, 70년대보다 훨씬 적게 다닌다.
그런데 <워커힐에서 만납시다>(1966)는 서울 시내에서 현역으로 다니는 노면전차의 모습을 ‘컬러’로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극히 드문 영상물이다. 물론 1966년이니 이때는 노면전차가 폐지되기 거의 직전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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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여선생에 나오는 전차와 비교해 보자. 차량이 바뀌기는 한 거 같다.. ㅡ,.ㅡ;;)

아무튼.. <검사와 여선생> 하나 갖고 옛날 영화와 관련된 온갖 썰들을 풀 수 있었다.
그나저나 1966년이 무슨 날이었나? <소령 강 재구>도 1966년작이고.. 언급된 영화들이 전부 이 해에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옛날에는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지금 같은 청록색이 아니라 녹슬지 않은 갈색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 전의 주변 풍경 모습이나 책의 상태도 지금처럼 누렇게 낡거나 바래지 않았을 것이다. 흑백도 아니고 당연히 컬러였을 것이고..
본인은 옛날 모습을 옛날 그 시절 모습 그대로 보는 것에 관심이 있는데, 옛날 영화가 그 의문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여 흥미를 느낀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26 08:36 2022/01/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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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의 역대급 흑역사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전국 곳곳에서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참사· 재해를 겪곤 했다. 그런데 사고 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만들어졌던 김 영삼 말고, 김 대중 시절에 특별히 정말 가슴 아픈 비극이 벌어진 게 있었다. 바로 1999년 6월 30일,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이다.

이건 본인이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그때 현장에서 구조됐던 유치원생이 지금은 20대 후반의 성인 사회인이 됐을 정도이니, 세월이 많이 지났다.
작년 12월 9일엔 SBS 꼬꼬무에서 이 사건을 다뤘었다. (☞ 링크)
이야기꾼이던 장 도연 씨는.. 그 당시에 새까맣게 타고 녹은 숯덩이 시신만으로도 부모가 자기 아이를 바로 알아봤다는 말을 하다가, 자기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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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이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방송을 탔다..)

씨랜드 참사는 보면 볼수록 어쩜 이렇게 최악에 최악의 상황만 골라서 일이 터진 건지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 소망 유치원에서는 하필 며칠 전에 서울 강동 교육청 주관의 "여름방학 생활 지도를 위한 원장 회의"에서 유아 숙박 수련 활동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놓고 무시하고 캠핑을 보냈다.
  • 그런데 캠핑 보낸 곳은 하필 온갖 불법과 비리를 감행해서 용도 변경하고, 싸구려로 허술하게 지어지고 화재에도 엄청 취약한 수련원이었다.
  • 그 많고 많은 방 중에서 하필 그 유치원생들이 자고 있던 3층 방 301호에서 화재가 났다.
  • 그리고 하필 그 방에만 화재 발생 당시에 인솔 교사가 전혀 없었다.
  • 하필 그때 화재경보기도, 소화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초기 진화가 안 됐다.
  • 하필 그 수련원은 교통도 엄청 불편한 곳에 있어서 소방차가 오는 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다.

그 (가)건물은 온통 가연성 단열재로 둘러져 있었기 때문에 화재는 기름에 불 붙은 듯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건물은 어지간한 목조건물 이상으로 정말 활활 잘 타서 깡그리 잿더미로 변했다. 목조건물보다 훨씬 더 짙은 유독가스를 내뿜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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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씨랜드 수련원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인솔 교사들이 무려 544명이나 있었다. 그 중 소망 유치원은 방 두 개를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인 301호에서 자던 유치원생 18명은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하고 울부짖다가 전원 몰살 당했다.
거기에다 2층에서는 부천에 소재한 어느 유치원 여자애 한 명만 유일하게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했고, 애들을 구조하다가 순직한 교사와 강사가 4명까지 추가로 총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2. 화재의 원인

그런데 정작 이 처참한 화재가 최초로 발생한 원인은 의외로 썩 명확하게 규명돼 있지 않다. CCTV 기록이나 목격자 같은 것도 없다.
국과수의 공식적인 조사 결과는 모기향 불이 실수로 번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피해자 유족을 비롯해 씨랜드 건물의 구조를 불신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며, 아마 누전 합선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모기향설은 화재 책임 면피를 위한 구실일 뿐이라고 말이다.

불이 복도 같은 엄한 데가 아니라 애들이 자던 301호 안에서 시작됐다는 건 명백한 팩트이다. 이게 성립하는 한, 본인은 전기설도 무작정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 거기서 추워서 전열기라도 가동했거나 더워서 에어컨을 틀었거나 뭔가 전기를 써야 누전 화재가 발생할 수 있지 않겠느냐 말이다.

그런 저렴한 가건물에 에어컨이 있었을 리는 없고, 전등이나 선풍기 하나 남김없이 다 끄고 잤을 테고.. 요즘처럼 개인 스마트폰을 충전할 것도 없던 시절에 그 방에서 전기 화재가 발생할 껀덕지가 내가 보기엔 별로 없다.
실제로 그 애들은 갯벌 체험에 물놀이 등 하루 종일 노느라 정신없었고, 숙소에 들어가서는 덥네 춥네 따질 것도 없이 곧장 몽땅 기절했다고 한다. 쟤들은 중고딩이나 초딩도 아니고 겨우 6~7살짜리 유치원생임을 기억하자. 야영 캠프 수련회 같은 건 아무리 못해도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는 된 뒤에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 반면, 촛불이나 모기향이 재수 없어서 밤중에 곁의 가연성 물질에다 엎어지기라도 하면 대형 화재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씨랜드의 경우도 불이 난 것 자체보다는 건물 자체가 가연성 자재로 뒤덮여 있었던 게 더 문제였을 뿐이다.
그러니 국과수나 법원에서 있지도 않던 모기향을 대놓고 주작한 게 아니라면, 이건 국가 기관의 공신력 있는 기록을 심하게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것도 무슨 한강 의대생이 실족사 했냐, 아니면 타살 당했냐 같은 문제처럼 보인다...

………라고 썼는데, 사진을 다시 찾아보니 저 수련원의 방마다 에어컨 실외기처럼 보이는 물건이 있긴 하다. 평양 아파트에도 없다는 물건이 그래도 저 씨랜드 수련원 컨테이너 가건물에는 있었던가 보다. 그걸 가동하고 있었다면 진짜 전기 화재였을 수도 있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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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동하지 않은 소화기

그리고 그 당시 뉴스 보도 영상을 보니..
씨랜드 수련원 현장에서 나뒹굴던 소화기는 그래도 압력 게이지가 달려 있는 신형 축압식 소화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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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 가압식 소화기는 폭발 위험 문제로 인해 1997년 무렵부터 국내에서 판매와 유통이 금지됐다. 축압식 소화기는 더 안전하고, 스프레이처럼 손잡이를 쥐고 있는 동안만 소화액을 끊어서 분사할 수 있으며, 분출력이 고갈되어 고장 났으니 교환해야 된다는 걸 게이지를 통해 바로 알 수 있어서 여러 모로 좋다.

씨랜드 수련원은 1998년에 개업했다고 한다. 그러니 쟤들도 나름 폐급이 아니라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신형 소화기를 갖추긴 했던 것이다. 무슨 10년 묵은 쌍팔년도 폐급 가압식 소화기도 아닌데 왜 저것마저 불량이어서 동작하지 않았는지는 개인적으로 좀 이해가 안 된다.
설마 실제로 동작하는 소화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인테리어 가짜 소품을 갖다놨던 걸까..??

즉, 이 건물은 용도 변경 부실 시공이 문제이지, 시설의 노후화가 문제일 여지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소화기도 그렇고 전기 시설도 그렇고.. 그래서 본인은 화재의 원인에 대해서도 무슨 피복 벗겨진 전선이 떠오르는 전기설을 선뜻 공감하지 않는 것이다.
관례적으로는 원인 불명의 화재는 몽땅 전기 때문으로 적당히 얼렁뚱땅 때우고 조사를 끝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긴가민가한 원인을 조사하느라 미관에 좋지도 않은 현장을 마냥 세월아 네월아 보존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모기향이라는 다른 원인을 굳이 찾아낸 게 조사를 더 꼼꼼히 한 것에 가깝다.
이 시체가 소사· 익사를 한 건지, 아니면 먼저 죽고 나서 물불에 던져진 건지를 판별할 수 있듯, 전선도 여기서 직접 불이 난 건지 아니면 다른 화염에 휩싸여서 불탄 건지 정도는 육안 판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진짜로 누전 때문에 발생한 화재는 통계 수치보다 드물다.

4. 관련 인물의 처분과 근황

소망 유치원은 사고가 매스컴을 탄 당일 곧바로 허가가 취소되고 폐쇄됐다. 30대 중반이던 유치원 원장은 1심에서 금고 5년이 선고됐지만, 훗날 감형되어 2년 반만 복역하고 2001년 말에 출소했다.
이 사람의 잘못은 교육청의 지침을 무시하고 수련원 입소를 강행한 게 작고, 화재 때 애들을 제대로 구조하지 않고 먼저 대피한 게 크다고 하겠다. (직무상 긴급피난 불허)

사고 10주기인 2009년경엔 이 사람의 근황 인터뷰가 월간조선에 실렸다. 유아교육 쪽 일은 완전히 연을 끊은 채, 딸 키우는 주부로 잠적하며 살고 있댄다. (☞ 링크)

그 사건에 대해서는 지금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차라리 그때 자기도 화재 현장에서 죽거나 화상이라도 입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때 교사들은 301호의 바로 맞은편 314호에 있었고 불이 났다는 걸 정말로 몰랐을 뿐이라며.. 특히 밖에서 삼겹살과 쏘주 회식 중이었던 건 절대 아니라고 여전히 강하게 부인했다. 본인 포함 교사들은 다 교회 다니는 신자여서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면서..

물론 건물을 이탈하지 않았다고 해도 애들을 구조하지 않고 혼자 빠져나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형사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저 주장은 본인이 보기에도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그냥 "이디 아민이 개싸이코 망나니 폭군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식인까지 한 건 절대 아니다~"(요리사의 증언) / "내가 보기로 타이타닉 호는 침몰 후 두 동강이 난 건 절대 아니었다"(사고 후 청문회에 불려간 모 승무원의 증언) 이런 부류의 실드처럼 들린다.

다음으로, 이 따위 건물을 갖고 영업을 한 씨랜드 수련원 사장은 죄가 당연히 더 무거우니 더 큰 벌을 받았는데.. 보도 자료에 따르면 처음엔 금고 5년에다 징역 2년 6월.. 도합 7년 6월이 선고되긴 했다. 금고와 징역을 조합할 수도 있는 건가?
기간으로만 따지면 삼풍 백화점 이 준 회장의 형량과 동일하지만, 이것도 나중에는 5년 정도로 감형됐다.

삼풍 그룹 회장이야 만기 출소 후에 얼마 못 가 죽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출소 후에도 같은 부지를 갖고 어떻게든 편법으로 돈 벌려고 난리를 치다가 지금은 거기 바로 근처에다 제주도 컨셉의 '야자수 카페'를 만든 것 같다. 이거 경영자가 씨랜드 사장과 동일 인물이라는 게 정황상 거의 확실해 보여서 뒤늦게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동일 이름, 동일 나이, 동일 지역!!

하긴, 그 사람이 씨랜드와 무관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씨랜드와 전혀 무관합니다. 악의적인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엄정 대응하겠습니다"라고 공지를 진작에 당당히 했을 것이다.
전재산을 피해자 보상금으로 뜯겨서 파산· 몰락하고 타지에서 조용히 찌그러져 귀양살이를 하는 게 아니라.. 멀쩡히 재기해서 같은 곳에서 희생자 위령비 하나 없이 다른 장사나 하고 있는 건.. 파렴치가 선을 넘는 것 같다. 이 사실이 꼬꼬무의 보도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버렸으니 이제는 저기도 사업에 애로사항이 꽃피지 싶다.

5. 씁쓸한 결말

요컨대 씨랜드 참사의 주범은 (1) 건물주, (2) 건물주와 결탁하고 뇌물 받아서 건축과 사업 허가를 내 준 부패 공무원, (3) 구조 조치 제대로 안 한 교사 정도의 세 그룹으로 나뉜다. 1과 3의 처벌도 너무 가볍거니와 2는 처벌이 없다시피했던 게 울화통이 터진다. 그나마 2를 구속이라도 시키는 데 일조한 어느 양심선언 공익제보 공무원은 눈총을 견디다 못해 이듬해에 퇴직을 하게 됐다. 이게 암담한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열나게 노력해서 보릿고개는 탈출했어도 사회 관행은 8, 90년대가 되도록 여전히 미개했다. 법과 원칙과 안전 의식이 없고 온갖 적당히 편법이 만연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게 아니라, 공무원들을 접대하고 기름칠 하면 되게 만들 수 있다. 남들은 다 그렇게 하는데 혼자 안 하고 있으면 자기만 바보가 된다. 법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는데, 보안 취약점을 이용해서 해킹해서 악성 코드를 주입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합숙 캠프에 보내지 말라는 교육청 지침도 딱히 교통사고나 화재 가능성까지 내다보는 선견지명 차원에서 만들어진 건 아니었을 것이고, 그 정도는 꼬우면 생깔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 차가 전혀 없는데 빨간불 신호 기다리는 게 귀찮아서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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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애들을 화장해서 서해안의 씨(sea)랜드 수련원과는 정반대 방향의 강원도 동해 바다에다 뼛가루를 뿌리고, "OO야, 하늘나라에서 꼭 만나자~~"라고 부모가 울부짖는 걸 보니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고 보니 301호는 제일 끝이고 탈출 계단도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어서 탈출하기 제일 쉬운 위치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저렇게 됐던 걸까! 이걸 생각하니 나도 괜히 또 열받는다.. >_<

서울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시절에 메달을 땄던 유명 아이스하키 선수 아주머니가 이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그 뒤의 조치로 인해 더 상처를 입고 나라에 대한 애정이 싹 사라져 버렸으며, 이 때문에 메달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 간 게 매스컴을 탔다.
미개한 관행은 집권 여당이 누군지하고는 별 관계 없는 총체적인 문화, 의식, 분위기, 풍조 문제였다. 긴 시간 동안 많은 수업료와 진통을 치르면서 차차 개선되었을 뿐이다. 그동안 달라진 게 없는 건 아니다.

확실히.. 옛날엔 세월호보다 더 처절하고 더 큰 사건 사고가 벌어졌어도 2010년대 같은 미친 유언비어 정치 선동과 반정부 시위 폭동 따위는 없었던 것 같다. 이건 지금이 옛날보다 더 퇴보한 게 명백한 사항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20 08:35 2022/01/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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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엔.. "조선/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망하지 않고 왕정인지 입헌군주제인지가 20세기 후반까지 유지됐다면?" 같은 낭만적인 상상을 배경으로 소설이나 드라마가 만들어진 게 좀 있다.

뭐, 현실에서는 조선이 그때 일제한테 안 먹혔으면 러시안스키들한테 먹혔겠지.. 이게 훨씬 더 가능성이 높았고 상황이 여전히 암울했겠지만 말이다. 러시아 제국은 한반도에 그렇게까지 큰 욕심이 없었던 것 같지만 후신인 소련 공산당은 자비심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됐으면 이 위종이나 홍 범도 같은 애국자 독립투사가 소련으로 귀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친일 성향의 구한말 개화파들의 노선이 1900년대 이후까지 더 오래 지속됐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솔직히 "만약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기고 일본이 졌다면?" 이건 현실적으로도 굉~~장히 설득력 있고 그럴싸한 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재로 한 대체역사물이 있다는 얘기는 난 딱히 못 들었다.

주 타겟이던 한반도가 세계적으로 별로 존재감이 없고 별로 장사가 안 되는 소재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리고 그 당시엔 러시아가 이기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일본이 이기는 게 훨씬 더 극적이고 이례적인 일이었다. 즉, 현실이 픽션보다 더 픽션 같았으니 굳이 대체역사물이 또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2차 세계 대전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에서 워낙 드라마틱한 전투 승리 내지 초인적인 인간 승리 스토리가 많이 만들어졌다. 덕분에 스토리에 창작 각색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전기/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전쟁 영화도 지금까지 한두 편 만들어진 게 아니다. 가령, 미드웨이 해전이나 진주만 같은 건, 진작에 영화가 만들어졌다가 후대에 각종 CG를 곁들여서 리메이크작이 또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뻔히 다 아는 스토리만 곧이곧대로 차용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은 밀덕 역덕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가 워낙 많기 때문에 "만약 역사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면? 조금만 핀트가 어긋났다면?" 이렇게 생각할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자면 "만약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때 전땅크 대통령이 제 시각에 도착하는 바람에 그때 현장에 있었다면? 그때 폭발에 휘말려 순직해 버렸다면 세상이 지금과는 어떻게 달라지게 됐을까..??" 이런 것 말이다.

그래서.. 발상을 달리하여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대신 추축국 진영이 승리했다면? 혹은 추축국이 일부라도 그렇게 흑화하지 않고 연합국과 잘 지냈다면?"을 상상한 대체역사물이 좀 있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것 일부만을 소개한다.

1. 비명(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찾아서 (1987) 복 거일 .. 독일만 망함

영어 공용화 논란 및 우파 진영 논객으로 유명세를 탔던 복 거일 씨가 소싯적에 발표한 소설이다. 나름 국내에서 만들어진 고퀄의 대체역사물이다. 얘랑 비슷한 스토리 전개로 예전에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대체역사물 영화가 한일 공동 제작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이 작품에서는 안 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실패"해서.. 이토 상은 부상만 입을 뿐, 1920년대까지 생존하며 장기 집권한다. 덕분에 일제 식민 통치나 대외 외교가 좀 더 젠틀하게 나간다.
정말 상상이 안 되지만 일본은 미국·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북 아시아를 무난히 접수한다. 2차 세계대전은 유럽 서부 전선 위주로만 벌어졌으며, 핵폭탄은 일본이 아니라 독일에 떨어진다. =_=;; (브레멘 & 드레스덴 ㄷㄷㄷㄷㄷ)

이로 인해 무려 국제연맹이 20세기 후반까지 존속하며, 한반도 역시 영원히 독립되지 못하고 대만이나 류쿠, 오키나와 같은 일본 식민지로 남는다.
일본은 미국, 소련에 이은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한반도에서 태어난 어느 2등 신민 조선인이 출생의 비밀을 뒤늦게 알게 되고서 어찌어찌 한다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2. 높은 성의 사나이 (1962) 필립 K. 딕 .. 추축국이 몽땅 승리 (☞ 영화 소개)

이 장르의 거의 원조인 것 같은데.. 얘는 제일 비관적인 설정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프랭크 루스벨트 대통령이 암살 당해서 대통령이 못 되고, 뉴딜 정책이 시행되지 않고, 무기 대여법이 시행되지 않아서 2차 대전 유럽 연합국들이 빌빌대고.. 진주만 공습 때 미국의 함대가 몽땅 박살 난다.
결국 영국이 항복하고 미국도 독일· 일본의 합동 공격을 버티다 못해 조건부로 항복한다. 소련도 미국의 지원을 제대로 못 받으면서 독소 전쟁에서 패배해서 중세 시대로 되돌아간다.

유럽은 나치 독일 천지가 되고, 미국조차 서부는 일본, 동부는 독일이 접수하고 중부는 무법천지인 막장 상태로 전락한다.
전세계에 종교는 금지되고 히틀러 숭배만 허용된다. 독일의 과학력은 세계 제이이이이이이이이일!!! 이 현실이 된다.
독일과 일본이 세계를 지배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둘도 사이가 마냥 좋지는 않은 견제 관계가 된다. 마치 현실에서 중공 VS 소련처럼..??

3. 당신들의 조국 (1992) 로버트 해리스 .. 일본만 망함 (☞ 영화 소개)

이 작품에서는 나치 독일이 우연한 계기로 에니그마 암호의 해독 체계를 바꿔 버리며, 이 때문에 연합국이 더는 맵핵을 쓰지 못하게 된다. 독일은 유보트로 세계의 제해권을 장악한 뒤 영국과 소련을 봉쇄시키고, 미국에 V2니 V3이니 로켓까지 날려보낸다.

결국 미국이 독일과는 강화 조약을 맺고, 독일은 세계 최강 패권국이 된다. 이 세계관에서는 일본만 핵폭탄을 맞고 그대로 항복한다.
뭐 이런 설정 말고는 얘는 30년 전 전의 "높은 성의 사나이"와의 변별성을 잘 모르겠다.

아, 참고로, 2번 "높은 성의 사나이"의 경우 굉장히 참신한 게.. 이 소설 내부에 또 가상의 소설이 있다고 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세상이 이렇게 되지 않고 만약 연합국이 승리했다면..??" 이렇게 뇌피셜을 펼치는데,

여기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무사히 집권한 뒤 3선 이상 연임을 하지 않고 물러나며, 히틀러는 패전 후 자살에 실패하고 체포되어 전범 재판을 받고 처형된다.
그 뒤,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벌여서 소련이 작살나고 영· 미에 의해 분할된다. 그런데 그 뒤엔 영국과 미국도 서로 대립하게 된다. 흠..

흥미롭지 않은가? 대체역사물도 이런 식으로 상상하고 만들기 나름인 것 같다.
옛날 독일 영화인 '롤라 런'을 보면, 주인공이 집을 뛰쳐나갈 때 누구랑 부딪히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이 나비 효과마냥 완전 극과 극으로 달라진다.

하물며 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전쟁터라면 그런 간발의 타이밍 차이로 전황이 달라진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지 싶다. 그러니 이미 다 지난 일이긴 하지만 그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다면..?? 이런 걸 소재로 영화나 소설을 만드는 건 충분히 흥미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현실에서 벌어졌던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과 한반도 광복은.. 그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이고 굳이 또 픽션으로 각색할 필요가 없는 기적적인 사건에 가깝다.
옛날에 어지간한 지식인들이 괜히 변절했던 게 아니다. 이제 항일 독립 운동이란 씨가 말라 버렸으며 일체의 희망이란 없고, 이놈의 일제가 망할 가능성이란 없다고 다들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 상태로 세대가 바뀌게 생겼으니 신세대들은 태극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지경이고.. "일제가 이렇게 갑자기 망할 줄 몰랐으니까"는 절대로 궁색한 변명이 아니었다. 이렇게 일제 시대가 1950년대 이후까지 계속됐으면, 독립 운동 대신 그냥 2등 신민 조선인의 차별 철폐, 인권 개선, 참정권 보장 따위를 요구하는 투쟁이나 벌어지게 됐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한테는 정서적으로 참 꺼림칙하겠지만, "조선이 영원히 해방되지 못했다면?" 이런 대체역사물이 "조선이 일제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에 왕정이 계속 유지됐다면?"보다는 당연히 훨씬 더 더 현실적인 대체역사물인 셈이다.
심 훈의 "그날이 오면"은 우리 민족의 염원을 표현한 시일 뿐, 무슨 대체역사 소설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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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7 08:34 2021/12/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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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수 김 신혜 사건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에서 다리의 장애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어느 50대 남성이 차도에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처음엔 흔한 뺑소니 교통사고로 여겨졌으나, 약간의 수사 끝에 그의 딸인 김 신혜가 보험금을 노리고 부친을 사고로 위장 살해한 용의자로 검거되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죄를 순순히 자백하는 듯했으며 모든 정황도 착착 맞아떨어졌다. 그녀는 존속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그런데 2심 이후부터는 그녀는 갑자기 말을 바꿔서 자기는 범인이 아니라며 결백을 지금까지 줄곧 주장해 왔다. 이전의 자백은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고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여 년 전에 경찰이 매우 유리한 정황 속에서도 증거를 제대로 보전 못 하고 강압 수사를 한 건 명백한 병크이다. 이 때문에 지금 재심을 하면.. 저 사람은 법적으로는 증거불충분으로 진짜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저 여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다 동의하기에는 그 전의 행적들이 의심스러운 게 너무 많다. 직업, 이성관계, 사건 당일의 동선과 알리바이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석연찮다.
개인적으로 이 블로그 글이 제법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서 링크를 소개하고자 한다. (☞ 링크)

그녀의 주장을 곰곰이 따져 보면, 제일 기본적인 자백의 동기부터도 말이 이랬다 저랬다 바뀌는 것 같다. 동생의 죄를 대신 좀 뒤집어쓰라는 친인척의 권유로 자백한 걸까, 아니면 전적으로 경찰의 강압 때문에 허위 자백한 걸까?

전자라면 가족을 감싸 주려는 갸륵한(?) 마음이 중간에 왜 바뀐 것이며, 동생이 애비를 죽인 동기는 무엇인가? 그건 어떻게 입증 가능한가? 그리고 후자라면 애초에 동생을 끌어들일 이유가 전무하다.
설마 둘 다 합쳐서 동생 실드 자체가 경찰의 강압으로 인한 허위 자백이라면 이건 뭐.. 현실성과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는 소설이 된다.

안 그래도 사건 발생 당시의 동선과 알리바이가 불분명한데, 하필 비슷한 시기에 생명 보험들을 잔뜩 들어 놓은 건 도저히 우연이라고 볼 수 없고 변명들이 말이 안 된다. (보험들을 비교해 보려고 일일이 보험에 직접 가입했다는 게 헐..??) 한쪽에서는 자기가 보험잘알이라고 진술했는데 실제 행적은 보험알못이다.;;
정황이 자기에게 불리해지니 보험 가입 서류가 경찰에 의해 조작된 거라는 주장도 제기하나 본데.. 그런 주장은 좀 일찍 했어야 통하지 10수 년을 감방에 있다가 인제 들고 나오면 어떡하냐..

고인은 자살한 것도(혼자서 그 멀리까지 나갈 수 없..), 교통사고 뺑소니를 당한 것도(외상이 없음) 전혀 아니며 음독에 의한 타살 100%이다(독극물 검출).
그 상태로 시체가 차로 멀리 옮겨지기까지 했으니.. 면식이 없는 묻지 마 범죄가 이런 식으로 저질러질 가능성은 전무하다. 범인은 근처의 가까운 인물이어야 한다.

허나, 남동생이나 고모부, 숙부 등 다른 가족· 친척 중에 애비를 굳이 이런 식으로 죽일 만한 사람이 없다. 집이 잘 사는 것도 전혀 아니고 알리바이도 다 있고.. 이 사람을 통한 금전적인 이득은 정말 보험금 수령밖에 없다.

이건 무슨 외계인이 UFO를 타고 날아와서 애비를 약 먹여서 죽이고 시체를 도로에다 내팽개치고 뿅 사라진 게 아닌 한.. 현실적으로 진범은 미안하지만 저 여자일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인다.
애비가 술 마시면 개가 되어서 주변 가족이 피할 정도였다는 말도 자기 입으로 나왔구만..

2018년쯤엔가 재심이 결정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죄수복이 아닌 사복 차림으로 당당히 매스컴도 몇 차례 탔다.
허나, 그 뒤엔 당사자는 또 석연찮은 핑계를 대며 재판을 계속 거부하고 있으며,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한 2019년말 이후로 근황이 더 검색되는 게 없다. 이 정도면 마냥 저 여자 편만 들기가 좀 곤란한 지경이다. 애초부터 우리나라 법조계의 판단이 그렇게 무리수 억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튜브 동영상을 보니 그녀는 국가에서 자기를 감옥에 쳐넣고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놓고는 자기더러 뭘 더 거창하게 증명하라는 거냐며 매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회의론자 역시 그녀에게 뭘 거창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앞서 제기되었던 의문들은.. 자기 언행에 거짓이 없다면 아주 기본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으며 해명하는 게 어렵지 않다.

비슷한 느낌이 드는 관련 사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 1995년의 치과 의사 살인 사건: 결국 무죄 판결은 받았지만 범인도 없는 사건이 돼 버림. 남편의 비디오 대여 이력은 너무 너무 의심스럽긴 한데(동일한 살인 수법 묘사, 허위 진술 들통), 이것도 심증에 불과하니 원..
  • 2005년 530GP 사건: 대공 용의점 따윈 없고 그냥 김 일병인가 그 사람이 범인 맞음. 이 사람은 무기수가 아니라 사형수..
  • 옛날 영국의 A6 도로 살인 사건: 범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결백과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DNA를 통해 진범으로 밝혀짐. 감성팔이 인권팔이 호소의 위험성을 일깨워 준다.

많은 사람들이 김 신혜가 국가에 의해 엔자이를 당한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고 본인도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만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허나, 이런 회의적인 관점도 "흠 그럴 수도 있겠네, 일리가 있네.. 양쪽 말을 다 들어 봐야.." 라는 범주에 드는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고 이의 제기이다.

그런데 원문에 왜 이렇게 이상한 악플들이 많이 달리고 글쓴이가 욕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이의 제기가 논리적으로 마음에 안 들면 그것도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될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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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2 08:35 2021/12/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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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노래, 작곡가 이야기

1. 오 브레넬리 (스위스 민요? ☞ 듣기)

본인은 음악 취향이 굉장히 단순한 편이다. 뭔가 꽂혀서 좋아하는 노래 내지 음악은 찬송가/CCM 아니면 Looking for you 철도 BGM 이 두 장르에 대부분이 쏠려 있다. 여기에 속하지 않는 동요, 가곡, 방송 BGM 중에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드물다.

그런데 이런 노래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멜로디가 특이하게 아름답고 우아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것 중 하나는 일명 ‘오 브레넬리’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그 노래이다. 세상 어느 노래가 후렴이 저런 발랄한 “야~호, 오 트랄랄라~~” 형태이겠는가..;;

원래 스위스 민요라고 하는데 완전히 요들송 스타일은 아닌 거 같고, 결정적으로 정작 그 본가에서는 저 노래가 별 존재감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멜로디에 비해 가사는 출처가 불명확하고 정말 별 것 없어서 각 나라별로 로컬라이즈된 가사 바리에이션이 많다. 심지어 일본어 가사가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옛날 8비트 MSX 시절에 “요술나무”라는 게임이 이 노래를 BGM으로 썼었다.
그러고 보니 “남극탐험”의 BGM은 스케이터 왈츠이고, “덱스더(테그저)”는 게임 오버 때 월광 소나타..

이렇듯, 1980년대의 일본 게임들은 자작곡 대신 서양 클래식 음악을 BGM으로 쓴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로 서양 문물을 온몸으로 갈망하고 탐닉했던 나라이니 저런 것도 수긍이 간다.
1980년대 제미니 자동차 CF에서도 라데츠키 행진곡과 ‘오 샹들리제’ 같은 곡이 흘러나왔고, 배틀로얄 병맛 영화에서도 방송 때 뜬금없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나 베르디 레퀴엠(!!) 같은 클래식 BGM이 연주돼 나왔었다.;; 그래, 일본은 그런 걸 좋아하는 나라이다~!

2. 모든 분수가 흐르면 (Wenn alle Br[ue]nnlein fließen 독일 민요 ☞ 듣기)

본인은 1990년대 중반쯤에 고려 페인트 CF를 TV에서 본방으로 본 이래로, 25년이 넘게 저거 BGM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 CF는 고려 페인트 특유의 도미노 CF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었는데.. 뭔가 화사함,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BGM 노래의 정체를 오랫동안 알 길이 없었다.
수 년 뒤에 독일어를 접하면서 저 노래도 처음에 '데얼, 베얼' 이러고 끝에 '엔, 젠' 거리길래.. 가사가 독일어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

그랬는데.. 유튜브 동영상에 올라온 댓글을 통해 드디어 곡명을 알게 됐다. 이제 속이 다 후련하다~!!!
검색을 해 보니 악보도 잔뜩 튀어나온다. 악보를 읽어보니 내가 기억하는 그 멜로디가 맞다.
하지만 저 CF와 같은 Ab 장조 악보는 하나도 없다. 악보들은 저것보다는 조가 더 낮다. 아마 저 음원은 빈/리베라 같은 소년 합창단에서 부른 게 아닐까 생각된다.

고려 페인트는 한 90년 92년? 그때부터 저런 도미노 쓰러뜨리기 시리즈 CF를 선보였다.
그 당시의 신문 보도에 따르면.. 최소한 첫 작품은 1만 개가 넘는 도미노 블록을 직접 세팅하고 실제로 원큐에 쓰러뜨리면서 CF를 찍었다고 한다. 즉, CG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에 도미노로 실사 사진까지 재연한 건 아무래도 CG였지 싶다.

끝으로, fließen이라는 동사를 보니 이 미륵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ßt)가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독일어라 하니까 선천적 얼간이들에서 작가가 어느 취객으로부터 히틀러 연설을 들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St[ae]rke liegt nicht in der Verteidigung sondern im Angriff (국력은 방어가 아니라 공격으로부터 나온다) 이거 말이다. ㅋㅋㅋㅋ
일개 웹툰이 이 문구를 국내에 많이 퍼뜨려 줬었다.

3. 손에 손 잡고 (☞ 듣기)

그리고 1988년 우리나라 서울 올림픽의 주제가였던 이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약 빤 노래를 상영하면서 올림픽을 치른 적이 있었단 말인가..??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이 정도면 국뽕에 취해도 합법일 것 같다.

이 노래는 작사자와 작곡자가 서로 다른 외국인이고, 한국어 가사를 작사한 사람은 또 따로 있다(서울대 미학과 김 문환 교수.. 지금은 이미 작고). 노래를 부른 사람은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교포였다. 스케일이 여러 모로 국제적이다.
심지어 영어 노래를 부른 남자는 따로 있었다고 작곡자인 모로더가 2013년엔가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기도 했는데.. 대회가 끝난 지 워낙 긴 시간이 지난 뒤였으니 별다른 파장은 없었다.

내가 바로 떠오르는 비슷한 사례는 영화 아저씨에서 "I got it. I don't know. He looks different" 같은 람로완의 짤막한 영어 대사를 말한 사람도 저 배우 본인이 아니라 별도의 성우라는 것 정도이다. 게다가 "손에 손 잡고"의 경우, 내가 느끼기엔 영어 목소리도 한국어 목소리와 음색이 거의 차이가 안 나는데 말이다.
영어권에서 오래 산 교포면 영어도 잘 할 텐데 왜 굳이 다른 성우를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현대 자동차 포니를 설계한 디자이너, 그리고 "손에 손 잡고"의 작곡자는 모두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고, 의도적으로 세계화 국제화를 염두에 둔 작품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작곡자 조르지오 모로더는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선율을 만들기 위해 한국 민요와 유행가들을 수백, 수천 곡 들으면서 연구했다고 한다. 나는 Looking for you만 3천 번을 들었는데 저런 프로 거장들은 이보다 더한 노력을 한 셈이다.

단, 일반인이 "손에 손 잡고"를 노래방에서 부르려면 음원의 원래 조인 Eb로는 어림도 없으니 거의 반토막에 가까운 A조, Bb조 급으로 조를 낮춰야 할 것이다.
이 정도면 느낌이 완전히 다른 노래가 돼 버리겠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조로 불렀다가는 후렴에서 무려 높은 Bb 음과 맞닥뜨리게 될 테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올림픽과 엑스포 모두 너무 고퀄의 선례를 남겨 버렸다. 원래 올림픽은 개최국 해당 지역의 지방 정부가 관여해서 생각보다 조촐하게 치르는 편이었는데.. 갈수록 지방 정부가 아니라 중앙 정부의 개입 비중이 커지고 개회· 폐회 행사도 거창해졌다.
미국이 "1960년대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라"에 미쳐 있었다면, 우리나라는 "1980년대 안으로 올림픽을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하라" 이게 각자 그 여건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역작이었던 듯하다.

서울 올림픽은 9~10월 가을에 개최된 마지막 올림픽이다. 그 뒤의 올림픽들은 '하계'라는 취지에 더 맞게 지금처럼 7~8월 여름에 개최되고 있는데.. 운동 경기가 열리기엔 이때는 너무 덥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리고 한편으로 서울 올림픽은 폐막 직후에 같은 도시에서 장애인 올림픽(패럴림픽)이 곧장 개최되는 첫 선례를 남긴 대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호돌이에 비해 곰두리는 존재감이 훨씬 없어 보이긴 한다.;;

4. 기억에 남는 작곡자들

(1) 찬송가 "어서 돌아오오"와 "눈을 들어 하늘 보라"(믿는 자여! 어이할꼬~~)에서 멜로디의 작곡자.
"지금까지 지내 온 것"에다 그.. "복의 근원 강림하사"(D장조) 멜로디 말고, 뭔가 흥겨운 느낌이 나는 '솔솔 도도 레도레 미~도~' 그 멜로디의 작곡자.
동요에서는 "송이송이 눈꽃송이", "펄펄 눈이 옵니다", "모두 모두 자란다",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어머님 은혜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멜로디의 작곡자.

그 엄청난 주인공은 박 재훈(1922-2021)이라는 목사 겸 작곡가이다. 이분은 지난 8월 초에 캐나다에서 소천했다. (☞ 관련 소식)
세상 언론에서는 이분을 동요 작곡자라고 소개한 반면, 기독교계 언론에서는 찬송가 작곡자라고 소개했다.

이분은 우리나라가 해방된 뒤에는 왜색 없이 우리 아이들을 위한 동요가 있어야 된다면서, 주변에서 동시집을 구해 와서 마구 곡을 붙여 발표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경의 사실상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서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으로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셔요"가 떠오른다고 회고했었다.
본인은 저 노래는 본인의 어린 시절에 동네마다 있었던 이동식 목마 트럭의 BGM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에서 접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2)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MBC "경찰청 사람들"의 오프닝 주제곡을 작곡한 사람이..
"여명의 눈동자"의 그 오프닝 주제곡도 작곡했었구나..! 최 경식.. 세상은 넓고 음악 쪽도 천재가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국민의례와 의전 BGM을 작곡한 이 교숙, 그리고 반도체 박사로서 영상 음악 작곡 쪽도 미친 존재감을 발휘했던 안 지홍(M, 제3~5공화국, 베스트극장 등)과 더불어 잊을 수 없는 분 같다.

(3) MBC 창작 동요제의 1983년 첫 대회에서 금상 우승을 차지한 작품은 잘 아시다시피 '새싹들이다'였는데..
이 곡을 현장에서 불렀던 이 수지 양은 그 뒤 1988년(고1!!), 1994년(대학생), 2002년(성인..)에도 몇 차례 출연해서 이 바닥 대선배로서의 역량을 뽐냈다고 한다. 오오~~
나이가 든 뒤에는 음역이 변했는지 조를 약간 낮춰서 '새싹들이다'를 부르곤 했다. (F장조에서 Eb 장조)

그 뒤에는 결혼해서 애도 낳고 평범하게 살고 있어서 근황이 더 검색되지 않는다. 이 노래를 작곡하고 지도했던 교사도 진작에 정년 퇴임했다.
저분은 1972년생으로, 서울 올림픽 개회식 매스게임에 동원됐던 고등학생들(1987년 고1, 1988년 고2)보다 딱 1년 어린 연배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04 08:36 2021/11/0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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