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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들 중에는 주인공이 극단적인 사고 또는 범죄를 당해서 특이한 위험한 장소에 갇히고 거기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형태인 것이 몇 가지 있다.
이런 장르는 촬영 영역이 아주 좁고 등장 인물도 적은 특성상, 대작을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굉장한 저예산으로도 작품을 너끈히 만들 수 있으며, 잘 만들면 스케일 대비 소재와 설정이 참신하다고, 작품성이 훌륭하다는 칭찬도 들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는 (1) <베리드(Buried)>(2010)이다. 주인공은 생매장-_-을 당해서 지하의 관짝 안에 있으며, 영화는 온종일 이 좁은 관 안에서만 진행되니 촬영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단순하고 쉬웠을 것 같다. 관을 구성하는 직육면체 옆면 네 개 중에서 하나는 촬영을 위해서 뜯어냈을 것이고..

주인공은 유일한 희망인 휴대전화로 전화 통화를 하면서 외부 사람에게 자기 위치를 알려주고 구조 받으려 애쓰지만.. 거기 지역이 지역인지라 일이 영 쉽지 않다. 영화 자체는 공식적으로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주인공은 사실상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은 명을 단축하는 그 어떤 치명상도 입은 게 없다. 하지만 저렇게 좁은 관 안에서 누운 채 꼼짝달싹 못 하는 채로 목마르고 굶주리며 아주 서서히 죽는 건 단칼에 푹찍악 해서 죽는 것 만만찮은 비참한 죽음인 게 틀림없다. 당장 화장실도 못 가고 변을 그 자리에서 배출해야 한다는 걸 생각해 보자..;;

사람은 가만히만 있어도 언젠가는 죽는다. 허나, 아무리 사람이 물리적으로 연약하다 해도 그 명줄이란 게 호락호락 쉽게 금방 끊어지지는 않는다. 좀 민망한 얘기이다만,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더 빨리 죽으려고 굳이 목을 매달거나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번개탄을 피우는 등의 수고를 괜히 하는 게 아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조선에서는 사도세자가 관은 아니고 뒤주에 갇혀서 저렇게 죽었다.
<킬 빌 2>(2004)에서는 잘 알다시피 버드가 주인공 키도를 제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여 주겠다면서 생매장을 해 버리는데, 이건 나름 머리를 쓴 조치였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생매장 씬이 10여 개에 달하는 전체 스토리 중 극히 일부 에피소드만을 구성할 뿐이며, 결정적으로 주인공이 비현실적인 인간 흉기인 관계로... 정권으로 관을 때려부수고 무덤을 탈출한다는 차이가 있다.

<베리드>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이것 말고 (2) <화씨 247도>(2011)는 주인공 남녀 일행이 뜨거운 사우나 안에 갇혀 버리는 내용이다. 문의 자그마한 유리창을 주먹으로 쳐서 깬 덕분에 최소한의 환기와 냉각은 가능해졌지만, 사우나는 어차피 온도에 따라 화력이 자동으로 조절되고 있으며 세 명이나 되는 사람이 얼굴을 거기로 들이민 채로 잠을 잔다거나 할 수는 없다. 나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데, 결말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결국 죽는다..;;

(3) <12피트>(2017)는 자매지간인 아가씨 두 명이 커다란 수영장 내부에 갇히는 내용이다. 수영장의 수면 위로 덮개가 쳐지는 바람에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기가 극도로 어려워졌다. 이 상태로 수영장 관리자는 퇴근을 해 버리고, 그대로 불금 주말이 시작된다..;; 주인공들은 점점 지쳐 가고 체온이 떨어지는데..
다행히 수영장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긴 하지만, 관객들 열불나게 하는 짓을 벌이면서 주인공들을 호락호락 구해 주지 않는다.

<화씨 247>은 짐작하다시피 사우나의 내부 온도를 나타내며(섭씨 거의 120도), <12피트>는 수영장의 깊이를 나타낸다(3.7미터). 둘 다 주인공들이 처한 극한 상황의 특성을 제목으로 뽑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런 장르의 영화 소재를 앞으로 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가령,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는 건... 설마 했는데 (4) <데블>(2010)이라는 작품이 있다. 5명이 타고 있던 고층 건물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고장 나는데, 무척 인위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이긴 하다만 불이 잠시 나갈 때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한 명씩 다치거나 죽는다.;;

밀실에서 범인이야 뻔한 노릇인데, 저 탑승자를 뒷조사 해 보니 저마다 사기꾼, 폭력 전과 등등 경력이 화려하다.
현실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충분히, 너무 안전하게 만들어져 나오기 때문에 고증을 많이 무시하지 않고서는 저런 식의 영화화가 곤란할 듯하다.

끝으로, 좀 옛날 영화인 (5) <폰 부스>(2002)는 사건 전개 장소가 시내 한복판이니, 사우나나 수영장 같은 통상적인 감금의 범주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빌딩숲 어딘가에 숨어 있는 저격수를 설정해서 "그 전화를 끊는 순간 네놈 목숨도 끊어질 줄 알아라"로 주인공의 발을 꼼짝달싹 못 하게 묶어 놓는 게 흥미로운 설정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19 08:34 2019/03/1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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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항거 외

1. 영화

올해는 3· 1 운동 발발 100주년인 해답게 이 타이밍에 맞춰 유 관순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적절하게 개봉했다. 말모이에 이어 또 일제 시대 배경 영화이긴 하다만, 이것도 명분이 충분하기 때문에 본인은 관람을 하고 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영화는 안 그래도 3· 1 운동 자체가 아니라 유 관순의 투옥 이후 시점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실제로 구경하고 나면 영화의 공간 배경을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점을 가장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그러니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분은 사전에 저기부터 가 보시기 바란다.

본인은 9년 전, 이 블로그가 처음 생겼던 2010년 초에 가 봤다. 일반 감방뿐만 아니라 유 관순이 말년에 실제로 격리 수용됐던 지하 독방까지 직접 볼 수 있다.

  • 유 관순은 서대문(경성) 형무소에서 옥사
  • 강 우규 의사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 (유 관순이 투옥된 시기에 서울 역 광장에서 사이토 총독의 암살을 시도했던 노인)
  • 훗날 조선어 학회 사건 연루자 두 분은 함흥 형무소에서 옥사
  • 주 기철 목사는 평양 형무소에서 옥사

지역이 이렇게 대응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흔치 않은 흑백 영화라는 것도 미리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킬 빌처럼 일부 주요 장면만 흑백인 것도 아니다(녹엽정 전투..).
현실의 형무소 장면은 죄다 흑백이고, 일부 과거 회상 장면이 컬러이다. 보통은 그 반대인 것 같은데 이례적이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항일 운동을 소재로 한 "자전차왕 엄 복동"도 개봉했다.
하지만 스포츠로 한국이 일본을 이긴 얘기를 극화하고 싶으면 차라리 손 기정 내지 홍 덕영 골키퍼 (해방 이후 월드컵 예선 한일전!)같은 사람이나 재조명할 것이지, 참신한 소재를 찾는답시고 자전거 도둑질도 전문이었던 사람을 소재로 삼은 게 논란이 됐다. 그 사람이 하다못해 친일파· 일본놈들만 상대로 의적(?)질을 한 것도 아니다.

소재부터가 삐걱거리는데 영화 자체도 그리 잘 만든 게 아니었고, 더 고퀄인 "항거"에게 팀킬 당하니 엄 복동 얘기는 예전의 "대장 김 창수"의 말로를 가면서 대차게 망했다. 뭐, 자전거 도벽은 아예 친일 변절이나 강도살인보다는 죄질이 상대적으로 가볍긴 하다만, 저 양반이 훔친 액수도 단순 생계형으로 실드 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2. 3· 1 운동

그럼, 영화를 벗어나 3· 1운동 자체에 대해서도 얘기를 좀 해 보자.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솔직히 그까짓 만세 부른다고 해서 일제가 "아 그러셨어요~? ^^"물러가고 독립이 찾아올 리는 만무하다. 더구나 3· 1 운동은 주요 배경, 명분, 동기에 핀트가 근본적으로 안 맞는 게 있었다.

(1) 1910년대 일제 무단 통치에 대한 반감과 민생고(흉년, 물가 상승)는 그렇다 치지만 (2) 고종 독살 의혹은.. 글쎄, 고종이 무슨 세종대왕 급으로 추모 받을 성군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3) 민족 자결주의는 1차 대전 승전국인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 적용되는 내용이 아니었다.

유 관순도 그 기백이 정말 대단하긴 하지만, 너무 무모하게 매를 벌지 말고, 1년 반 정도만 빵에서 살다가 나와서 공부 더 하고 더 오래 살았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만세 시위 때 자기 부모를 왜놈들한테 잃고 완전히 꼭지가 돌아 버렸을 테니, 그 뒤로 왜놈을 가족과 민족의 철천지 원수로 여기고 저놈들한테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고 고집 부린 그 악바리와 깡과 근성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영화에서 유 관순의 감방 동료로 나오는 권 애라와 김 향화(배우 이름이 아닌 배역 이름)는 실존 인물이다. 특히 김 향화는 수원에서 활동한 기생이다. 이 시절에 기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야시꾸리한 직업 종사자가 아니라, 요즘으로 치면 스튜어디스 급은 되는.. 단순 서비스 접대 이상으로 지와 미와 예능을 갖춘 사람이었다.

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선에서는 미국이 일본놈들한테 학을 떼면서 뭐 저런 상또라이들이 있나(반자이 어택, 카미카제..) 경악했었다. 하지만 더 옛날에는 일본도 조센징들을 보곤 뭐 저렇게 지독하게 말을 안 듣는 독종 또라이들이 있나 멘탈 대미지(반자이 트라우마..)를 입고 충격을 먹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1920년대에는 문화 통치 유화책이 나오게 되었다.

흔히 호남 지역을 비하하면서 저기가 3· 1 운동 참가자 내지 투옥자가 제일 적었다는 통계를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거기는 3· 1 운동 이전에 1890년대의 동학 운동과 1900년대의 의병 때문에 항일 인사들이 몽땅 토벌되고 씨가 마른 상태이기도 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통계 자체에 대한 조작과 왜곡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았을 때 말이다.

3.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이 영화와 배경 내용에 대해서 말할 거리는 이 외에도 더 있지만, 일단 기독교 신앙이 의외로 꽤 자주 언급되는 게 인상적이고 좋았다. 유 관순은 실제로 교인이기도 했으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시험을 면하게는 하지 않아도 이길 힘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음", "예수님은 바보여서 저렇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줄 아냐" 무려 이 정도 분량이 대사에 포함돼 있다.

신앙 쪽으로 왜곡 없는 중립· 긍정적인 묘사 덕분에 본인은 처음엔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슬슬 올라갔다. 그러나 결말부를 보고는 기분이 완전히 잡쳐 버렸다.
정작 유 관순이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은 너무 얼렁뚱땅 대충 자막으로 때워 버리고는, 그 뒤에 어설프게 또 이상한 친일파 드립과 반일 프레임 엮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군.. ㅉㅉ" 싶었다.

정 춘영인지 누군지 출신과 생몰 시기도 모르는 웬 듣보잡 조선인 헌병이 있어서 유 관순을 내내 괴롭혔다고 한다.
이놈은 친일 부역 행적이 탄로나서 해방 후 반민특위에 의해 기소되었으나, 그 이름도 찬란한 모 할배의 특별 배려(!)로 사면되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걸 말이라고 자막을 떡 걸어 놨으니 나도 꼭지가 돌아 버리겠다. 하지만 실상은 유 관순이 교인이었던 것만큼이나 할배도 교파까지 같은(감리교) 교인이었으며, 유 관순이 독립 운동가인 것만큼이나 반민특위를 불가피하게 해체한 배후 인물(애산 이 인)도 똑같이 항일 독립 운동가였다.

어디 '정춘영 유관순 고문'이라고 검색을 해 보아라. 정확한 기록 같은 건 없고, 같이 걸려 나오는 건 유 관순이 무슨 미꾸라지 고문을 당하고 코가 잘리고 머리 가죽이 벗겨졌다는 얘기, 아니 도시전설 괴담밖에 없다.
그렇게도 친일 부역자 조선인 헌병을 개새끼로 만들고 싶으면 영화에다가도 미꾸라지 고문 씬을 넣지 그랬냐? 일본 제국주의 악마들이 겨우 손톱 뽑기 내지 캐비닛 안에 선 채로 며칠 감금 정도만 했을 것 같은가?

그리고 크레딧 롤이 올라가는 동안이나 작품 결말부에서 주인공이 죽기 전에.. 그 이름도 유명한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은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출처불명의 비장한 유언도 좀 나왔어야지? 안 그런가?

삼일 운동 그 자체가 조국의 독립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이 항거는 외국에까지 소개되어서 조선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됐다는둥, 그 정신이 지금 우리나라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는둥, 유 관순 말고 다른 여학생· 기생의 의거도 많이 벌어졌다는둥.. 클로징 멘트로 다른 좋은 말을 얼마든지 골라 넣을 수 있었을 텐데.. 마무리를 의도적으로 저 따구로 지은 저의가 뭐냐!? 매우 유감스럽고 씁쓸했다.

4. 3· 1 운동 때 투옥된 뒤에도 천수를 누린 다른 여성

옛날에 우리나라엔 '추계 최 은희(1904-1984)'라고 무려 1920년대에 조선일보에 입사해서 여성으로서는 거의 국내 최초로 기자라는 직업에 종사한 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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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유 관순보다 약간 어릴 뿐 거의 같은 연배이다. 3· 1 운동에 가담하다가 붙잡혀서 세 주 남짓 옥고를 치르면서 험한 꼴을 봤지만, 그 뒤엔 풀려나서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기자도 됐다. 덕분에 방송을 타고 비행기도 타 보는 등, 일제 시대 조선 여자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진귀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참고로 3· 1 운동 당시의 소속이 유 관순은 이화학당, 저분은 경성여고보)

이분의 호인 '추계'는 추계 예술 대학교의 설립자하고는 관계 없다. 그 추계는 황 신덕(1898-1983)이라는 다른 사람의 아호인데, 저분 역시 최 은희와 동시대를 살았던 신여성이며, 3· 1 운동에 가담했고 기자 커리어까지 있는 것이 서로 굉장히 비슷하긴 하다. 아마 서로 아는 사이였지 않을까?

호 다음으로 '최 은희'라는 이름은 국내에서는 영화 배우의 이름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두 단어를 합친 '추계 최 은희'라는 사람은 인지도가 낮으며, 언론 쪽 종사자가 아니면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언론인 출신 최 은희가 영화 배우 최 은희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하고 위대한 인물이다. 추계 최 은희는 대학을 설립한 게 아니라 자기 이름을 딴 '최은희 여기자상'이라는 것을 제정했다.

저분은 결혼 후에는 기자 커리어가 중단되었다. 허나, 1남 2녀를 낳아서 세 명 모두 박사까지 공부 시키고 유학도 보내고 전부 대학 교수로 키웠다.;; 그 중 막내딸은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한 이 혜순으로, 2000년대 중반에 정년 퇴임했다.

본인은 먼 옛날에 "유쾌한 구두쇠들"(1994)이라는 책을 통해 저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공 병우 박사, 남 기심 교수, 이 혜순 교수(두 교수 다 국문과이구나.. 세부 전공은 다르지만) 등 17명의 유명인사가 공동 집필한 책인데, 다들 비범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도 엄청 많이 번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일상생활은 서민들 이상으로 정말 둘도 없이 검소하게 효율적으로 하면서, 옳은 일 큰 일에 아낌없이 돈을 쾌척한 얘기들이 실려 있다. 지금은 시대에 맞게 저 책 내용이 웹툰으로 각색되어서 연재되면 어떨까 싶다.
다만, 저자 중에 지금은 완전히 몰락한 방송인 서 세원 씨까지 포함돼 있는 게 참 묘하다.

이 혜순 교수는 저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게 지나고 나이 70을 바라보는 명예교수가 된 뒤에도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변함없이 자기 어머니라고 회고했다. (☞ 관련 링크)
뭐, 인생 한번 짧고 굵게 살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유 관순 같은 인물이 형무소를 살아서 출소해서 공부 더 하고 후세도 남겼으면 인생이 최 은희와 비슷해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11 08:36 2019/03/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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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음악 관련 에피소드

1. 로베르트 슈만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라고 19세기를 살았던 독일의 음악가가 있다.
이공계 석박사급 전문가 중에도 취미로 하는 음악이 연주건 작곡이건 (준)프로급인 괴수가 일부 있긴 하다만.. 슈만은 그렇지 않고 순수 문과.. 즉, 문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감성파 쪽 천재였다.

그는 20대 초반 나이 때 피아노에 완전 미쳐 있었는데.. 욕심을 내서 연습을 너무 무리해서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원래 지망했던 피아니스트의 길을 갈 수 없게 됐다. 결국 작곡, 지휘, 교육에다 문학 기질을 살린 음악 평론 분야로 전업했다.

나 초등학교 시절에 봤던 피아노 교본 앞부분에 슈만의 초상화와 함께 일대기 소개가 있었다. 다른 부분은 다 잊어버렸지만 “지나친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쳐..”라는 문구는 지금까지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지나치다’라는 국어 용언의 형용사 용법을 이때 거의 처음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excessive.. 동사는 그냥 pass by일 테고)

이게 단순히 손과 손가락이 쥐가 나거나 삐거나 피 좀 흘린 정도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부러지거나 영구적으로 마비되기라도 한 듯한 모양이다. 맨손으로 피아노를 죽어라고 치기만 했다고 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피아노가 자체가 손을 으스러뜨릴 수 있는 무슨 공작 기계이기라도 하지 않은 이상 말이다.

아, 생각해 보니 피아노 뚜껑을 덮다가 손가락이 끼이고 깔려서 다칠 수는 있겠다. ㅡ,.ㅡ;; 하지만 슈만이 그런 사고를 당한 건 물론 아니었다. 원하는 손가락 움직임을 강제로 구현하려고 손가락에 특이한 기구를 끼우고 평범하지 않은 상태로 연습하다가 탈이 난 것이었다. 1832년의 일이다.

장애가 생긴 부위는 오른손 약지였다. 참고로 안 중근 의사는 맹세를 할 때 왼손 약지의 첫 마디를 끊었다.
넷째 손가락이 손가락들 중에 그나마 가장 덜 중요한 부위라고는 하지만, 악기를 연주할 때는 안 쓰이는 손가락 부위가 없을 것이고, 아무 손가락이라도 그렇게 결손이 있으면 군대도 현역으로 안/못 간다.

그래도 얼마나 피아노에 미쳤으면 연습을 저런 식으로까지.. 하는 생각이 들고 그 열정 하나는 존경스럽다.
하농 교본만 봐도.. 끝에 보면 “피아니스트로서 손의 감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이 60곡 전곡을 치라는 주문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닐 것입니다” 이런 문구와 함께 끝났었다. 물론 프로 전공자 한정이겠지만 말이다.;;

이 슈만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연애에도 불같이 미쳤었다. 인생 한번 참 정열적이다.
자기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스승의 어린 딸.. 정확히는 자기보다 9살 어린 10대 아가씨(클라라)에게 완전 꽂혀 버렸으며, 그쪽의 마음도 얻었다! 그래서 없으면 서로 못 사는 사이가 됐다.

그 스승이라는 양반은 당연히 노발대발했다. 아무리 자기 제자라지만, 가난하고 미래 불투명하고 손도 다친 9살 연상의 작곡가 아저씨한테 내 딸 절대 못 준다고 맞섰고 치열하게 민사 소송까지 갔다. 허나, 결국 스승이 졌다.

둘은 1840년에 결혼해서 그래도 금슬 좋게 자녀도 여섯 명이나 낳고 잘 살았다. 부인은 남편이 못 이룬 피아니스트의 길을 계속 갔고 말이다. 이 정도면 뭐 승리한 인생 아니겠나.; (스승과도 나중에 화해했다고 함)
뭐, 빌 게이츠도 9살 연하의 자사 여직원과 결혼했다지만, 슈만은 빌 같은 처지가 아니었지...ㄲㄲ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철덕 작곡가로 유명했던 안톤 드보르작(1841-1904)도 슬하에 딸을 뒀으며, 자신의 어느 제자(요제프 수크)로부터 “스승님의 딸을 제게 주십시오!”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유럽 그 시절의 음악계엔 저런 관행이 드물지 않았던가 보다.

그 제자는 자신의 스승 겸 미래의 장인의 취향을 잘 알았기 때문에, 자기가 여기 올 때 무슨무슨 번호의 열차를 탔고 열차의 움직임이 이랬다고 의기양양하게 보고를 했는데.. 드보르작은 표정이 썩으면서 그 시간대에 그 열차가 다닐 수 없다고 거짓말을 알아챘던가, 아니면 네가 차량 번호와 운행 스케줄 번호를 헷갈렸다고 쿠사리-_-를 먹였다고 한다. 그래도 결혼을 허락은 해 줬다.;;

2. 괴음악 "검은/우울한 일요일"

본인은 먼 옛날 중딩 시절에, 표지부터가 악마의 얼굴 모양으로 뭉게뭉게 치솟고 있는 화재 현장 연기 사진인..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도시전설 괴담 모음집 책을 본 적이 있었다.
"링컨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의 공통점"부터 시작해, 요런 얘기가 그 책에 있었다.

"검은 일요일"이라고.. 프랑스의 루란스 차르스라는 사람이 1932년에 작곡한 음악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암울하고 구슬픈 곡이었는지, 이걸 듣고서 유럽과 미국에서 1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극도의 멘탈붕괴를 체험하고 연달아 자살했다고 한다. 유서에다간 문제의 곡을 당당히 언급하면서 말이다.

"이 곡을 들으니 삶의 의욕이 송두리째 사라지네요. 찢어지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서 저는 이 생을 마감하렵니다. ㅠㅠㅠ 이게 다 검은 일요일 때문입니다. 제 장례식 때 이 곡을 연주해 주세요~" (헐, 조문객들까지 자살하게 만들려고?? =_=;;)
세계의 날고 기는 음악가와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이 이 곡에 무슨 마가 끼였는지를 학문적으로 분석하려 시도했지만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곡과 작곡자의 정체에 대해서 오늘날 검증 가능한 건 물론 하나도 없다. 결정적으로 그 곡은 세계 각국의 방송국에서 연주 금지 처분을 받고, 1945년경에 전세계에서 악보가 회수되고 폐기· 소실됨으로써 이제 더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ㅡ,.ㅡ;;

그나마 저 이야기에 근접한 진실, 팩트는 이렇다.
1933년에 헝가리의 '셰레시 레죄'라는 사람이 우울한 단조풍으로 가사 없는 피아노 연주곡을 하나 작곡했다. 그 뒤 1935년에 다른 사람이 멜로디에 걸맞은 우울한 다른 가사와 제목을 붙여서 Gloomy Sunday라는 노래가 완성됐다.

지금은 저 곡을 유튜브에서 곧장 검색해서 들을 수 있다. (☞ 링크 46초 이후부터 곡이 시작됨) 주선율이 도도도~ b미미미 솔솔솔 도도도~ 로 시작하며, 다시 말하지만 장송곡 같은 우울하고 구슬픈 느낌이긴 하다. "봄봄봄봄(도 미 솔 도) 봄이 왔어요"(이 정선, 봄)와는 정반대 심상이다.
하지만 이 정도 곡을 멀쩡한 일반인이 듣는 것만으로 멘탈이 붕괴해서 머리를 쥐어뜯고 무슨 마 8:32의 돼지처럼 뛰쳐나가 자살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프랑스 사람이 작곡한 검은 일요일(??)은 헝가리 사람이 작곡한 우울한 일요일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저 실존하는 곡조차도 대외적으로는 "Hungarian Suicide Song"이라는 섬뜩한 별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저 곡이 발표되었던 당시에 헝가리 내부에서, 저 곡 듣고서 자살한 게 아닌가 의심되는 사람이 10여 명 정도 있기는 했다고 한다. 그래서 헝가리에서 이 곡이 금지곡으로 찍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곡이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증명되고 검증된 바가 물론 없다. 안 그래도 극심한 가난과 질병, 인생 실패 등을 비관해서 자살할까 말까 고민 중이던 몇몇 소수의 사람이 왕창 우울한 곡을 듣고는 이판사판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권총 헤드샷을 날렸을 수는 있겠다. 루머도 아무 근거 없이 생기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별 상관 없는 얘기이다만.. 1932(33)~45년 사이이면 공교롭게도 전쟁광으로 흑화하던 일본, 나치 독일, 루스벨트 대통령의 집권과 거의 일치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사람을 100수십 명씩이나 연쇄자살로 내몬 악마의 음악이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지만, 단 한 명이라도 사람을 골수 중증 철덕으로 개조시킨 마법 마성의 음악은 지구상에 분명 존재하며, 그 증인 당사자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음악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에는 음악 자체뿐만 아니라 음악이 연주되던 당시의 분위기와 맥락, 청취자의 심리도 기여하는 게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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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19:29 2019/02/0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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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수

작년에는 백 선엽 예비역 대장이 무려 99세 생일을 맞이했다. (☞ 관련 기사)
1920년생이라니, 20세기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모조리 겪은 거장이요, 국내 톱급의 장수 고령자이지 않을까.. 특히 시골 깡촌 장수촌에서 평생 농사만 지은 노인 할머니 말고,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한 남성 유명인사 중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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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60세가 아니요, 결혼한 지 60주년도 아니고, 대장 달고 예편한(1960) 지가 60년이 돼 가는.. 거의 미친 연배와 경력의 소유자이다. 게다가 부인도 아직 살아 있는 모양이다~!
참고로 송 해 씨가 1927년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26년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출신이어서 몸 관리 잘해서 그런지 늙어서까지 쌩쌩 팔팔하고 건강한 걸 보면 굉장히 부럽다.
전사자를 끝까지 찾아내고 노병을 깍듯이 예우하는 미군도 부럽고.
사실, 저 사람은 한국보다도 미국에서 훨씬 더 알아주고 존경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에 취임하면 백 장군을 찾아 깍듯하게 ‘전입신고’를 하는 게 관례일 정도이니..

2. 다산

이 끔찍한 "먹고 살기 힘들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 속에서 우리나라에 현재 자녀를 제일 많이 낳은 집안은.. 구미에 살면서 무려 13명의 자녀를 둔 김 석태· 엄 계숙 부부이다. 이미 여러 번 매스컴 탔다. 이분에 대해서 내가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서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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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근황
2016년 근황

목사 집안인 것, 그리고 자녀들 이름을 모두 순우리말로 지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셋째인 '김 다드림' 군은 지난 2010년에 순우리말 운동 단체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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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로 정말 어마어마하게 애국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셈인데.. 2016년 근황에 따르면 장녀는 이미 대기업에 취업했고 서열 끄트머리뻘인 애들은 이제 고등학생이라고 한다.
모든 아이들이 대학에 가지는 못할 것이다. 일부는 곧장 취업하거나 방통대 독학사나 사관학교 같은 저렴한 방법으로 대졸 학력을 따야 할 것이다.

예외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집안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를 많이 낳는 경향이 있다. 가령, 안 철수 집안은 그야말로 부부가 다함께 돈을 빗자루로 긁어모은 수준의 억만장자이지만, 서로 자기 전문직 종사하느라 바빠서 자녀는 그냥 외동딸 하나가 전부이지 않던가..;;

자녀 계획이야 그건 하나님도 존중해 줄 정도로 전적으로 각 부부들의 재량 영역이다. 그런데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이 정도로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니 자녀 계획도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음이 느껴진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차와 돈과 집은 죽은 뒤에 절대로 못 들고 올라가지만, 자녀만은 그 뒤에도 영원히 같이 보며 지낼 수 있다. 물론 제대로 잘 키워서 구원받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아주 어렸을 때 병이나 사고로 잃은 자녀에 한해서 말이다.

3. 만학

지역 언론에는 잊을 법하면 한 번씩 시골 만학도 노인 얘기가 매스컴을 타는 것 같다.
그냥 4, 50대 나이에 방통대나 대학원에 다시 들어오는 정도로는 희소성(?)이 부족하다. 대학 교수나 의사· 변호사가 본업 은퇴 후에 또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서 늘그막에 방통대 같은 다른 학교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그래도 고등교육 등급의 만학이고 성격이 다르다.

아예 초등 교육 수준에서.. 한글도 제대로 못 깨우친 채 시골에서 평생을 보냈다가 이제야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새로 또는 다시 특별전형으로 입학하는 할머니들 소식이 종종 보도되곤 한다.

2007년 1월자, 전북 김제
2018년 11월자, 강원 평창

세계 톱클래스의 교육열을 자랑하고 무려 중학교까지 의무 교육이 된 지가 10년이 넘은 이 대한민국의 한구석에, 아직도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이 실감이 잘 안 간다. 세월이 흐르고 일제 시대나 6· 25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 죽고 세대가 바뀌고 나면, 이 정도로 극단적인 만학도는 아마 찾을 수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하긴, 일제 시대에만 해도 의무 교육이란 게 없었다. 초등학교(그 시절 용어로는 소학교)도 시험 치고 돈 내고 들어가고, 심하게 사고 치면 얼마든지 짤릴 수 있었다. 특히 1940년대에 창씨개명 같은 거 거부하면 당연히 짤렸다. 그러니 북괴 김 일성의 최종 학력인 중졸도 그때는 아무나 보유 가능한 학력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건국되자마자 그 가난한 여건에서 국가 단위로 교과서를 대량으로 찍어내고 초등학교 의무 교육을 시행하려 한 건 굉장한 재력이 필요한 과업이었으며, 보통일이 아니었다. 문맹이란 게 얼마나 서러운 건지는.. 당사자가 되어 겪어 보지 않고서는 아마 실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걸 시행했던 남쪽의 수장 할배는 뭐.. 차원이 다르다. 프린스턴 박사는 지금의 잣대로도 어마어마한 학벌 학력인데, 그걸 100년도 더 전에 배 타고 미국 가서 영어로 논문 쓰고 취득했으니 가히 넘사벽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할배나, 할배의 박사 지도교수(우드로 윌슨)나 모두 자기 나라의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자기 나라의 역대 대통령들 중 명예박사가 아닌 진짜 박사 학위를 소지한 유일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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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7 08:35 2019/01/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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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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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실제 모델 인물인 오 길남은 월북한 뒤 재독 한인을 포섭하는 공작원 명목으로 독일로 파견됐는데.. 북한 정권의 실체를 깨달은 뒤엔 거기서 자수하고 남한으로 귀순했다.

어색한 억지 감동 유도라든가, 좀 식상하고 허무한 듯한 결말이 아쉬운 점으로 남지만, 중간 전개는 역시 찢어 죽일 종북좌빨들이 충분히 불편해하고 싫어할 만한 팩트 위주이다.
그러니 북괴의 정체와 흉악한 수작이 까발려지는 걸 원치 않는 놈들은 블랙리스트니 화이트리스트니 나발이니 딴 거 갖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영화계 전체 그림을 객관적으로 보자면 지금 솔직히 우보다는 좌편향이 훨씬 더 심하지 않은가?

북괴가 역사적으로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악 중 하나는.. 단순히 사람을 죽인 걸 넘어서 가족을 저렇게 하루아침에 산 채로 찢어 놓은 것이다.
6·25 이산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먼 옛날엔 여객기 납치로도 단란하던 가정을 많이 파탄냈다.

또한, 저런 젊은 학자들을 속여서 북한으로 보내서 그 가족들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 악마가 지금 청와대 수장에게는 민족을 사랑하는 평화통일 운동가로 보이는가 보다. 정말 같은 부류의 악마이며, 쳐죽일 반민족 반역자임이 틀림없다. 한 번 속는 건 실수이지만 두 번 속는 건 공범이다.
이런 영화가 많이 알려지고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2.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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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사각오, God’s not dead, 신이 보낸 사람 등 국내외의 다양한 장르의 기독교 영화를 봤지만.. 얘가 성경 고증과 작품성, 비주얼 등을 고려했을 때 제일 뛰어난 작품인 것 같다. 정말 잘 보고 왔다.
북미에서는 이스터(..)에 맞춰서 지난 봄에 개봉했지만, 국내에서는 종교 개혁 기념일에 맞춰서 10월 말에 개봉했다.

14년 전의 Passion of Christ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음침 암울하고 오로지 예수님이 잔혹하게 채찍질 당하는 장면 말고는 남는 게 별로 없어서 인상이 안 좋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 특유의 교묘한 심상 왜곡이랄까, 그런 게 별로 없었다. 내가 느끼기엔 말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 사울의 회심 등 주요 장면들 다 나온다. 대사 중에 성경 말씀 인용이 굉장히 자주 나와서 아주 마음에 든다.
사울이 회심 후에 무슨 물고문 당하듯이 물에 얼굴까지 첨벙 잠겼다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이게 침례를 의도한 장면이었다면, 난 평가 점수를 더욱 올려 줄 생각이다. 물 뿌리는 세례는 고증 오류이다.

그리고 촛불과 온갖 신들 형상(마리아 형상도 포함) 앞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긍정적인 심상으로 그려지지만 여기서는 로마인들의 잡신이라는 부정적인 심상으로 그려진다. 이것도 구도를 아주 잘 잡았다.

그러면서 허구 각색도 어색하지 않게 가미된다. 사랑하는 교회 동지가 어이없게 억울하게 살해당하자, 남자 청년들 일부가 극도로 흥분하고 분노해서 우리도 칼 들고 쳐들어가서 로마를 상대로 보복하자고 날뛴다.
바울은 회심 전에 자기가 죽이면서 눈 마주쳤던 크리스천들이 때때로 꿈에 나와서 트라우마를 안긴다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호소하기도 한다.

누가는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교도소장인 로마 군인의 딸의 병을 극적으로 고쳐 준다. 무슨 오글거리는 기도 한 방으로 신앙 치료를 성공한 게 아니라, 자기 의술로 해낸다. 바울 역시 “자기는 소문과는 달리 아무 능력 없으며, 자기가 약함을 보일수록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셨다”라고 증언한다. 요런 식의 개연성 있고 자연스러운 허구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 횃불 될 사람은 되고, 사자밥이 될 사람은 그렇게 되면서 순교 행렬이 이어진다. 네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바울은 딤후 4:6-8의 유언을 남긴 뒤 예정대로 참수당한다. 그래도 교도소장은 바울과 누가의 인품에 충분히 감화됐기 때문에, 마치 옛날에 안 중근 의사를 존경하게 된 뤼순 감옥 간수처럼..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바울을 "잘 가시오" 이렇게 공손하게 댄디하게 대해 준다.

바울은 그나마 로마 시민인 덕분에 화형 같은 더 끔찍한 방법으로 죽지는 않고 저렇게 일반적인(?) 방법으로 처형된 거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바울과 네로는 모두 AD 60년대 중후반에 죽은 꽤 옛날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때는 로마 제국에 콜로세움 경기장이란 건 아직 없던 시절이었다. (약간 뒤인 AD 70년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부터 등장)

네로 시절에 크리스천들이 로마 대화재의 주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박해받고 처형당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원형 경기장에 우루루 풀려나가서 사자밥이 되어 순교하는 것과 "네로 황제"하고는 엄밀히 말해서 시기적인 연결 고리가 없다.
그러니 영화의 묘사는 엄밀히 말하면 고증 오류이다. 하지만 뭐 심각한 오류는 아니다. 60년대건 70년대건 시기가 그렇게 심하게 차이가 나지는 않으며, 콜로세움 안이건 아니건 크리스천들이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건 변함없으니 말이다.

신약 기독교라는 게 생겼던 당시에, 예수쟁이들은 불신자들이 보기에 도저히.. 뭐라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고 정체를 알 수 없고,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도대체 무슨 이익을 노리고 왜 저런 식으로 사는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이상한 집단이었다.
남들이 다같이 믿는 신을 안 믿고, 황제를 반신반인으로 숭배하지 않으며, '예수'라는 웬 듣보잡 목수 출신 유대인이 죽었다가 뿅 부활했다는 황당한 악성 루머를 퍼뜨린다는 점에서는 분명 미친놈 왕따 아싸 반동분자 그 자체였다.

그런데 대놓고 국가 권력에 반역하고 싸우려 드는 여느 독립투사나 정치범 사상범 같지는 않고, 이웃으로서 개인 단위로 만나 보면 행실도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무슨 마술사 초능력자도 아닌데.. 자기들의 세속적인 통념과 계산으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 11:38이 말하는 것처럼 서로가 상대방을 감당할 수 없었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자들은 지금처럼 아무나 “우리 교회로 오세요,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는 개뿔.. 언제 잡혀가서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 같은 처지였다.
모르는 사람이 교회 회원으로 가입하겠다고 하면 얘가 진짜 동지 형제인지, 아니면 우리를 밀고할 가짜 끄나풀 첩자인지 판별하는 게 급선무였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능력이 없으니.. 이럴 때 판별을 빨리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믿을 만한 이웃 교회 지도자의 ‘추천서, 보증서’였다. “우리가 보내는 이 형제는 스파이가 아니고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잘 대해 주세요~”
우리나라에서 옛날 건군 초기에 숙군 작업을 할 때도 “이 사람은 빨갱이가 아님을 내가 보증합니다”가 아주 유효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쪼록 이 영화를 보면 신약 교회가 이렇게 시작됐고 신약 성경의 대부분은 저런 여건 속에서 기록되고 필사됐다는 것을 얼추 실감할 수 있다. 복음은 뭔가 GPL 라이선스 오픈소스 같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종이와 펜이 귀하던 시절에 감옥에 갇힌 채로 찬송가를 부르려면 가사를 평소에 다 외운 상태여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클래식 교과서적인 명작 영화는 옛날에 벤허 같은 것 말고는 이제 자본주의 논리 앞에서 완전히 멸종하지 않았나 싶은데, 아직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긴 한다. 생각을 바꿔도 될 것 같다.
그리스도 안의 지체로서 바울은 꼭 볼 가치가 있음을 추천하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12/04 08:36 2018/12/0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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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라는 그룹이 부른 <칵테일 사랑>은 1994년 즈음에 국내 가요계에서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쳤던 명곡이다.
그때 본인은 초딩이었다. 신세대 X세대 이러고 있었고 PC 통신이 아직 활발하게 돌아갔으며, 개인용 PC는 486이다 펜티엄이다 멀티미디어다 이러던 시절이었다.

칵테일 사랑은 몽환적인 반주와 적당히 아름다운 멜로디, 서정적인 가사, 그리고 뭔가 하늘의 목소리 같은 노랫소리가 어우러져서 가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 당시 음반에는 동일곡의 아카펠라 버전도 수록돼 있었다. 마치 붉은국과 맑은국, 후라이드와 양념 차이 같은데, 반주를 뺀 노래 음원에서는 '~팝 ~팝 ~드드드 두두' 이러는 비트박스(?)도 더 실감나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명곡을 만들어 냈으니 음반이 몇 장 팔리고 요즘 같으면 유튜브 조횟수가 얼마가 나오고, 작사· 작곡자와 가수는 떼돈을 벌기라도 했을 것 같은데 의외로 그런 소식은 별로 들리는 게 없다. 그룹 마로니에와 가요 칵테일 사랑은 관계자들이 얽힌 내력이 참 복잡하기 그지없다.

마로니에는 멤버들의 세대 교체가 잦았다. 칵테일 사랑은 초창기 창립 멤버들의 작품으로, 김 선민 작사· 작곡이고 최 선원· 신 윤미 노래이다. 우리가 아는 원곡의 녹음은 1993년 초에 행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곡이 훗날 이 정도로 대히트를 칠 줄은 노래를 만든 사람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녹음을 마친 뒤 가수 구성원이 공중분해돼 버렸다. 최 선원은 소속사를 변경하고 떠났으며, 신 윤미는 더 큰 물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며 미국으로 유학도 아니고 아예 이민을 떠났다.

그러니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인 김 선민은 다른 멤버를 뽑아서 칵테일 사랑의 얼굴마담 역할을 시켰다. 백 종우(남성)와 김 민경· 김 정은(여성). 이 트리오가 TV 출연도 하고 뮤직비디오 녹화도 했다.
곡의 퀄리티에 비해 굉장히 뜬금없고 촌스러운 티가 나는 그 동해 바닷가 뮤비 말이다. 그냥 가사 내용대로 그대로 길거리와 카페를 배경으로 넣기만 해도 저것보다는 나은 작품이 나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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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영상에서 유난히 예쁜 미인이다 싶은 사람이 김 민경이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CF 모델 출신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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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람이 바뀌었는데, 여기서 마로니에는 도덕적으로 좀 지탄 받을 짓을 했다.
립싱크야 아직 그때까지는 관행이었고 신규 대체 멤버들 역시 실력이 전혀 없는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음반의 노래와 얼굴마담들 라이브가 퀄리티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리고 출처 명시 없이 기존 신 윤미의 결말부 코러스 부분까지도 막 도용해서 내보냈다. 조가 G에서 Ab로 올라가고 "마음~ 울적할 때에~~ 거리를 걸어 보고 취해도 보고~~ 우우우~ 으아아아~~" 그 클라이막스 말이다.
그러니 진짜 가수인 최 선원· 신 윤미가 자기 정체를 다시 밝히고 저작권 소송을 걸어서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룹 마로니에는 '칵테일 사랑'만을 남긴 채, 큰 주목을 못 받으면서 대중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6~07년쯤엔.. 마로니에의 초창기 멤버들은 어찌 됐는지 모르겠고, 백 종우(마로)가 한 타이밍 더 나중에 들어왔던 여성 멤버인 김 지영(파라)를 주축으로 해서 '마로니에 걸즈'라는 여성 듀엣 그룹을 결성했다. 백 종우는 기획· 프로듀싱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다른 여성 가수를 하나 더 충원해서 말이다.

그리고 2011년, 마로와 파라는 오랜 교제 끝에 결혼했다. 칵테일 사랑을 리메이크 해서는 부부가 같이 종종 매스컴에 출연해서 불렀는가 보다. 보기 좋은 커플이긴 하지만 이와 별개로, 리메이크한 곡이 원곡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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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 윤미 씨도 미국 간 지 10수 년 만이던 2005년,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해서 자기가 직접 칵테일 사랑을 다시 부른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도 원판 목소리가 어딜 가지는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결말부의 힘찬 코러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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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여곡절로 인해, 칵테일 사랑은 처음 노래를 부른 여자, 원곡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여자, 그리고 지금 마로니에의 후예를 자처하는 그룹의 여자 멤버가 모두 다른 인물인 노래가 됐다. 근본적으로는 오리지날 가수가 노래에 대한 권리를 확실하게 챙기지 않고 일찍 잠적해 버려서 벌어진 해프닝이라 하겠다. 그랬는데 곡이 너무 대박을 쳐 버리고, 이게 아직 국내 가요계의 후진적인 관행이던 저작권 의식이나 립싱크하고도 얽혀서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칵테일 사랑과 비슷한 시기에(1993~94) 히트 쳤던 국산 명작 게임인 미리내 소프트 "그 날이 오면 3"이 20년 뒤에 "드래곤 포스"라는 모바일 게임으로 리메이크된 걸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아울러, 드라마 모래시계라든가 더 클래식 '마법의 성'도 비슷한 시기에 히트 쳤던 작품들이며 추억거리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19 19:35 2018/06/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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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m 게임의 몬스터 내분 외

예전에는 고전 게임들 중에 페르시아의 왕자 얘기를 종종 늘어놓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둠/퀘이크로 관심사가 바뀌어 있다. 그 시절엔 PC급에서 실시간 3D 렌더링를 구현한 최첨단 게임이었는데 그것도 벌써 20년도 넘은 게임이 돼 버렸구나.

Doom 계열 게임은 몬스터들끼리의 내분(infighting)이 존재하는 걸로 유명하다. 여타 액션· 아케이드 게임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특징이다.
사실은 몬스터가 주인공과 동일하게 게임상의 트랩에 걸릴 수 있고 몬스터끼리 팀킬이 존재하는 게임도 흔치 않다. Doom에서도 몬스터는 용암· 독극물 같은 바닥 트랩에는 면역이며, 주인공과 달리 체력을 잃지 않는다. 이건 몬스터가 총알이 무한대(!)이고 스타 1의 AI에서 컴퓨터는 플레이어 위치를 내부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밸런스 차원에서 사람과 컴퓨터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차이점이다.

단, Doom 몬스터도 위에서 짓누르는 crushing ceiling 트랩에 의한 압사는 동일하게 가능하다. 플레이어의 무기 공격 이외의 방법으로 몬스터가 죽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방법 중 하나인데, 그런 것처럼 Doom은 몬스터끼리 팀킬이 가능한 걸 넘어, 자기들끼리 적극적으로 싸움박질까지 가능하다는 뜻이다.

솔직히 말해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는 킹왕짱 주인공 한 명이 적들이 우글거리는 본거지나 던전 같은 데에 들어가서 깽판을 치고 다니는 일이 도저히 있을 수 없다. 현실에서는 주인공 보정 같은 게 전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군들도 절대로 혼자 놀지 않는다. 침입자가 감지되면 던전 전체에 경보가 걸리고 모든 적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힘을 합쳐서 침입자의 퇴로를 차단하고 화력을 집중해서 잡아낸다.

그러니 협력은 고사하고 몬스터 자기들끼리 싸운다니.. 이건 솔직히 말해 매우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하지만 현실을 곧이곧대로 반영했다가는 FPS는 너무 어렵고 재미가 없어지고, 심지어 잠입 액션 게임 같은 장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얻으려고 게임을 하는데 게임이 쓸데없는 데에 너무 고증에 충실할 필요도 없다.

Doom의 몬스터는 처음에는 주인공을 향해서 공격하지만 다른 몬스터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도 있고, 또 누구든지 자기를 공격한 놈을 무조건 공격한다. 각각의 몬스터들이 그야말로 자기밖에 모르는 아주 이기적인 놈이라는 설정이 붙어 있어서 그런데, 이건 역으로 플레이어 주인공에게는 유리한 면모가 된다. 듀크 뉴켐 3D 같은 유사 3D FPS에는 이런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몬스터간 내분은 단순한 꼼수 테크닉 차원을 넘어서 Doom의 제작사에서 정식으로 홍보를 했으며, 레벨들 자체도 저걸 반드시 활용하는 걸 가정하고 설계하기도 했다.
Doom 2의 경우 오리지널 버전에서 최종 보스였던 스파이더 마스터마인드(이하 스마마)와 사이버데몬이 이제는 에피소드가 바뀔 무렵에 종종 등장하는 중간 보스로 위상이 바뀌었는데, 사이버데몬이 있는 곳엔 어지간하면 무적 아이템이라든가 다른 몬스터도 있다. 그래서 걔네들끼리 싸움을 붙이면 편하게 격파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level 20 Gotcha!의 도입부이다.

다만, 개나 소나 다 서로 싸우게 만들 수 있지는 않다.
일단 총알은 눈이 안 달렸다 보니 우리 주인공, 좀비맨, shotgun guy, chaingunner, 심지어 스마마까지 동족· 이족을 불문하고 다 싸움을 시킬 수 있다.
그러나 괴물이 발사한 뭔가 초월적인 형태의 파이어볼들끼리는 서로 내성이 있다. 가령, 임프나 카코데몬, hell knight, baron of hell, mancubus 같은 놈들은 동족이 발사한 파이어볼에 맞아도 체력이 깎이지 않으며 서로 싸우지도 않는다.

물론 서로 다른 종족끼리는 얄짤없다. 임프 vs 카코데몬, 레버넌트 vs hell night 이런 식으로는 싸움을 얼마든지 붙일 수 있다.
그럼 동족끼리는 싸움을 붙이는 게 절대 전혀 불가능한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이게 또 Doom 엔진의 아주 오묘한 면모이다. 바로, 폭발하는 드럼통의 스플래시 대미지를 이용한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가능하다.

드럼통은 내부적으로 소량의 hit point를 갖고 있으며, 얘가 공격을 받아서 HP가 0 이하가 되면 터진다. 그런데 동족 몬스터 A, B가 있고 B가 A의 공격을 받아 터진 드럼통의 근처에서 대미지를 입으면 B는 A가 자신을 공격했다고 간주하게 된다.

이건 아무데서나 가능한 게 아니고 컨트롤도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Doom 엔진 하에서 파이어볼 쏘는 괴물끼리 서로 싸우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은 하다는 뜻이다. 이를 시연하는 동영상들도 유튜브에 많이 있다.
동영상을 보면, 드럼통이 맨 먼저 A의 공격을 받고 당장 터지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B가 그 드럼통의 근처에 왔을 때 플레이어가 최종적으로 터뜨려서 B에게 대미지를 입혀도 되는 듯하다. 이게 사실 더 쉽긴 하다.

이 일이 벌어지면 B는 A에게 파이어볼을 쏘면서 다가간다. 그래도 파이어볼은 대미지나 공격으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A는 B의 원거리 공격을 무시하고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B가 A를 직접 할퀴고 때리는 식으로 근접 공격을 시작하면 그건 비로소 대미지로 인식되기 때문에 A와 B는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싸우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그러다 둘 중 하나가 죽는다..;;

몬스터들 중에 demon은 물어뜯는 근접 공격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몬스터에게 먼저 피해를 주는 건 불가능하다. 언제나 자기가 먼저 얻어맞고 시작하게 된다.
pain elemental도 먼저 피해를 줄 능력이 없는 놈이다. 그런데 반격을 하는 방법이 자기가 무슨 파이어볼을 발사하는 게 아니라 가해자를 공격하는 lost soul을 소환하는 것이다. 참고로 lost soul은 돌격하다가 자기들끼리 부딪치면 내분을 잘 일으킨다.

스마마는 인간이 아닌 괴물이고 게다가 보스급임에도 불구하고 괴물 특유의 파이어볼을 발사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기관총 탄환을 발사한다.
Doom 2의 level 28 Spirit world에서는 전레벨을 통틀어 유일하게 한 레벨에서 스마마가 두 마리나 나오는데, 스마마끼리 내분을 붙일 수 있다. 아까 level 20에서는 사이버데몬 vs 스마마였는데 이제는 동족끼리 팀킬인 것이다.

Doom의 몬스터들은 대체로 요리조리 갈짓자걸음으로 얼쩡거리다가 일정 주기로 공격을 하는 편인데, 스마마의 경우 플레이어를 발견하면 그냥 자신이 경직되거나 플레이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닥치고 다발총을 갈겨댄다. 이런 공격을 하는 몬스터가 오리지널 Doom에서는 최종 보스이던 스마마밖에 없었지만, 둠 2에서는 잡몹급에서도 더 늘었다. chaingunner (heavy weapon dude), 아라크노트론(둠 2에서 추가된 거미 축소 양산판)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Doom 2의 시크릿 레벨에 존재하는 나치 SS 군인도 이런 식으로 공격한다. 그런데 얘들은 인간이지만 동료의 총알에 맞아서 대미지를 입더라도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고 오로지 플레이어만 공격한다. 즉, 팀킬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몬스터 내분에서 예외이다. (.... 라고 처음에 썼는데, 그건 아니고.. 스프라이트의 출처가 옛날 울펜슈타인이다 보니, 공격하는 모습은 언제나 플레이어를 향한 정면 각도 것밖에 없어서 겉보기로만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한다. ㄲㄲㄲ)

참고로 보스급 몬스터는 (1) 로켓 런처의 스플래시 대미지를 맞지 않고 오직 직타 대미지만 입으며, (2) 죽더라도 아크바일이 소생시키지 못하고, (3) 얘들이 플레이어를 발견하는 소리와 죽는 소리가 플레이어가 어디에 있던 맵 전체에서 들린다는 특징이 있다. (4)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삐걱삐걱 소리가 들리는 건 보스가 아닌 아라크노트론도 가진 특징이므로 유니크함이 덜하고.

Doom 2에서 이런 보스를 오마주한 듯한 작은 양산형(?) 스케일 몬스터가 추가됐다. 사이버데몬은 mancubus (노란색 계열, 3콤보 공격)이고, 스마마는 아라크노트론이다.
mancubus는 근접 공격이 없고 원거리만 있기 때문에 그럼 동족끼리 싸움이 붙으면 싸움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오로지 총알만 종족 불문 통용인지, 사이버데몬의 로켓과 아라크노트론의 플라즈마건은 플레이어도 동일하게 소유한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동족간 몬스터 내분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긴, 사이버데몬은 일반적인 Doom 맵에서는 두 마리 이상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몬스터 내분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기도 하다.

Doom은 안 그래도 몬스터 개떼들이 몰려드는 물량전이 많은데 플레이어가 지형 장애물에만 가려지지 않고 있으면 다들 닥치고 공격부터 한다. 그래서 몬스터 내분이 굉장히 잘 일어나는 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후속작인 Quake에서는 AI가 수정되었다. 앞에 지형 장애물뿐만 아니라 동· 이족을 불문하고 자신과 플레이어 사이의 직선 경로에 다른 몬스터가 있으면 공격을 하지 않게 되었다. 둠을 하다가 퀘이크를 해 보면 곧장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퀘이크는 둠만치 몬스터 내분이 금방 곧장 발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플레이어를 조금만 컨트롤하면 여전히 내분을 어렵지 않게 일으킬 수 있다. 멍청해서 수류탄을 맵의 온 곳에다 뿌리는 Ogre 아저씨가 몬스터 내분의 가해자가 되기 제일 만만하고 쉽다.

Ogre는 같은 Ogre의 수류탄에 맞아도 동족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의외로 대미지를 전혀 안 입는 건 아니고 아주 조금씩은 입는다. 내 경험상 동족 내지 심지어 자기 자신이 발사한 수류탄을 수십~백여 번 가까이 맞으면 죽긴 하더라.

Doom에서는 몬스터끼리 싸우다가도 죽을 때는 언제나 플레이어를 보는 방향으로 쓰러지는 게 다소 어색한데(죽는 스프라이트는 플레이어를 보는 시점 하나뿐이므로) 퀘이크는 폴리곤 기반 풀 3D이기 때문에 죽는 모션의 시점도 자연스럽게 개선되어 좋다. 몬스터 내분을 구경할 맛이 난다.

이를 더 확장해서 보면, Doom 게임을 몬스터의 시점에서 본다거나, 주인공의 움직임을 다른 곳에서 3인칭 시점에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를 가정한 유튜브 동영상도 있다. 몬스터가 보기에 플레이어는 크기는 생쥐처럼 작은 게 무엇보다도 이동이 겁나게 빨라 보이겠다. alert sound도 없고 pain chance(공격 당해서 일정 확률로 움찔하는 것) 같은 것도 없다. 몬스터가 물량에서 유리한 반면 플레이어는 압도적인 민첩성이 유리하겠다.

FPS의 유행이 퀘이크 3 아레나를 거쳐서 밀리터리 + 온라인 팀플 스타일로 바뀌는가 싶더니 요즘은 오버워치와 LOL처럼 다시 옛날 같은 초현실적인 스타일이 뜨는 듯하다. 이런 트렌드의 차이가 둠 3과 둠 4의 성향 차이를 만들기도 했다. 이건 2010년대 이후에 병맛이 전세계적으로 재조명 받은 둠 코믹스의 영향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군대에서 실제로 총을 쏴 보면 알 수 있듯, 현실의 총질과 하이퍼/고전 FPS의 총질은 느낌이 영 다를 수밖에 없다. 현실의 총기는 반동과 재장전이라는 게 존재하고 총소리도 서로 다르다. 현대의 군인이 쓰는 돌격소총은 둠의 권총, 샷건, 체인건 중 어느 부류에도 정확하게 딱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총을 100% 현실처럼 반영해 버리면 치명상 내지 즉사가 너무 쉬워져서 게임의 재미가 크게 줄어든다. 그러니 현실적인 군사 FPS는 그런 걸 일부러 추구하는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장르로 가야 한다.

이 와중에도 Doom은 C언어 소스 코드가 공개된 이후로 엔진이 양덕후들에 의해 그야말로 뼈와 골수 속까지 몽땅 다 분석됐다. 온갖 변태적인 포팅판, 개조· 변형판, 맵이 나와서 플레이 동영상들이 돌아다닌다. 페르시아의 왕자의 경우 소스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더 오래 된 단순한 게임인 덕분에 오로지 역공학 분석을 통해 맵 에디터가 나돌긴 하는데.. 둠의 경우는 더 재미있고 소스까지 공개되지 않았던가? 활용의 스케일이 더하다.
(뭐, 엄밀히 말하면 페르시아 왕자도 조던 메크너가 초 구닥다리 애플 2 어셈블리어로 짰던 원판 소스가 수 년 전 공개되긴 했지만 그건 과연 분석과 포팅이 가능할지? ㅡ,.ㅡ;;)

그 중 초월이식 마개조의 끝판왕으로 뜨고 있는 건, 이미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2013년경부터 개발된 Brutal Doom(브루탈 둠)이다. 오리지널 둠의 무기가 더 밀리터리 FPS스럽게 바뀌고 듀크 뉴켐과 모탈 컴뱃스러운 마초이즘이 가미되었다. 그리고 그래픽이 온통 피가 튀는 형태로 잔혹해졌다.

1990년대 중반에 둠/퀘이크의 경쟁작이던 듀크 뉴켐 3D는 high resolution pack이라고 해서 몬스터들을 완전히 폴리곤으로 개조까지 한 리메이크작이 있는데 둠은 모르겠다. 브루탈 둠도 스프라이트 자체를 3D화한 건 아니니 말이다.

추신 1. 찰진 무기들

이상, Doom의 몬스터 내분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많은 얘기가 나왔다. 둠 2는 단순 따발총이나 로켓 런처 같은 평범한(?) 무기 말고도, (1) 버서크(berserk) 파워업이 가능한 주먹, (2) 그야말로 범용성 가성비가 최강인 슈퍼샷건, (3) 이후의 그 어떤 FPS에서도 찾을 수 없는 캐사기 BFG.
이렇게 무기들도 분야별로 개성 넘치며, "찢고 죽이는"(rip and tear)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게 정말 잘 만든 것 같다. 울펜슈타인 바로 다음으로 어떻게 저런 것들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내 총은 반동이 없지만 총을 맞은 적은 팍팍 과장되게 뒤로 밀려나는 것도 쾌감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그리고 BFG의 경우 단일 파이어볼의 위력이 넘사벽이고 주변의 잡몹들을 싹 정리하는 용도로도 최강이지만, 한편으로 파이어볼이 터질 때 나 자신 역시 적에게 노출하고 적들을 똑바로 보고 있어야만 위력이 제대로 발휘된다는 함정도 있다.

다시 말해 BFG는 다 좋은 대신, 쏘고 튀거나 엄폐물에 숨는 식으로 운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고 소스 코드가 공개될 때까지는 정확한 동작 방식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던 설정이나, 이런 창의적인 무기를 게임용으로 생각해 내고 구현했다는 것 자체가 심히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추신 2. 스타크래프트와의 접목

엉뚱한 잡생각이긴 하다만,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에서 Doom 2 몬스터를 유닛으로 뽑을 수 있으면 어떨까 상상을 해 봤다. 종족은 인간형, 사이보그형, 외계인형(프로토스?), 그냥 괴물형(저그?) 같은 식으로 나뉠 거고..

좀비맨, 샷건가이 같은 인간형 몬스터는 테란 바락(배럭스)에서 생산될 것이고 헤비 웨펀 듀드는 공격력이 탁월한 상위 유닛이니 아카데미 같은 건물이 추가로 필요하다. 뭐, 그래도 인간형은 전반적으로 너무 약하니 밸런스 보정이 좀 필요하다.
임프나 데몬도 괴물형 중에서는 당연히 저가형 기본 유닛에 속한다. 기획을 어찌 하느냐에 따라 데몬에다가 클록킹을 개발해서 스펙터로 일시적으로 변하거나, 아니면 영구 클록킹 형태로 스펙터를 따로 넣을 수 있다.

아크 바일은 정규 공격이 아니라 프로토스로 치면 다크 아칸 급의 고급 마법형 유닛이 될 것이다. 화염 공격이나 죽은 유닛 소생 둘 중 하나는 건물에서 리서치를 해야 가능하며, 스킬 사용 시에 마나가 필요하다. 카코데몬은 당연히 공중 유닛이고, 페인 엘리멘탈은 캐리어가 인터셉터 생산하고 리버가 스캐럽 날리듯이 내부적으로 로스트 쏘울을 생산해서 날리는 공중 유닛이 될 것이다~! (응???)
사이버데몬이나 스파이더 마스터마인드는 테크트리 최종 단계의 유닛이 될 것이다.

2D 스프라이트가 3D 폴리곤보다 좋은 점은.. 아무래도 컴터에서 처리하기 가볍고 처리 속도가 월등하다 보니 수백, 심지어 수천 마리 물량 개떼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둠과 스타 모두 '마린 vs 질럿, 캐리어 vs 배틀'처럼 '사이버데몬 vs 스마마, 아라크트론 vs 맨큐버스' 이렇게 개떼 대결이 많이 나돌기도 한다.

"노업 레버넌트 한 부대 뽑아서 사거리 업한 카코데몬 한 부대 잡기"...;;; 비록 FPS와 RTS라고 장르는 다르지만 발상을 바꿔서 이런 교배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Doom 몬스터들을 그저 슈퍼 샷건이나 BFG, 버서크 주먹으로 내가 학살하거나, 몬스터 내분 붙여서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생산해서 부대 지정해서 다른 몬스터들을 공격하라고 어택 땅 시켜 보고 싶기도 해서 말이다.

추신 3. 언어 이슈

mancubus 몬스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언어 관련 얘기만 추가하고서 글을 맺겠다.
외국 동영상을 보니 mancubus의 복수형을 mancubi라고 부르더라. 신기했다.
대학 시절에 강의 계획서라고 많이 들어 봤을 syllabus도 복수형은 원래는 syllabi라고 한다. 라틴어 어원의 단어가 복수형이 좀 기괴한 경우가 있는데 저 단어도 저런 듯..

matrix, index, vertex처럼 -(e)x로 끝나는 단어의 복수형이 -(i)cies로 바뀌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자동차 bus는 omnibus에서 끝부분만 떼어 온 라틴어 어원의 단어이지 싶은데 그냥 buses라고 잘 정착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7/10/06 08:30 2017/10/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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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교숙 (1924-): 우리나라의 상징 BGM들

이런 엄청난 분이 계신다는 것을 최근에야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요즘 인터넷은 정말 대단하긴 하다. 지금 존재하는 모든 유· 무형의 사물들에 대해 그 창조주(?)와 기원과 내력에 대해 알 수 있다.
에디슨 같은 질문덕후가 21세기를 살았으면 무슨 짓을 하며 살다가 뭐가 됐을지 궁금해진다.

아무튼, 저분은 우리나라 국민의례 BGM을 있게 한 분이다. 해군 군악대장 출신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경례 BGM을 작곡했으며 “빰빠라 빰빠라 밤~”으로 시작하는 그 장성 경례곡도 작곡했다. 그게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 2007년에 국기에 대한 맹세 본문이 약간 수정된 바 있지만 BGM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고칠 필요가 없으니까.

확인은 못 해 봤지만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BGM도 정황상 저분 작품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이 묵념은 국민의례를 완전 진지하게 full scale로 할 때만 실시하기 때문에 BGM 역시 자주 들을 수 있지는 않다. 우리나라 근현대 수난기의 양대 비극이 각각 일제 강점기와 북괴(특히 6· 25)이니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은 각각 전자와 후자를 대표하는 셈이다.

아무튼. 저분이 아직 살아 계신다면 90이 넘은 고령인데, 최근 근황은 잘 모르겠다. 다만, 먼 옛날에 저분에게서 직접 음악을 배운 적이 있는 분의 회고록이 전해진다.

곁다리: 짤막한 멜로디

2~3분 이상 길이에 기승전결(?) 형식을 갖춘 노래나 악곡이 아니라 ‘딩동댕!’ 같은 짤막한 멜로디 말이다. “만나면 좋은 친구” 방송국 시그널송이나 초인종 벨소리.
글에다 비유하면 산문이나 운문도 아니고 짤막한 포스터 표어와 비슷한 위상일 것이다. 그림에다 비유하면 커다란 그림이 아니라 16*16, 32*32 크기의 아이콘 정도.

이렇게 극도로 제한된 시공간에다가 최대한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곡을 쓰는 건 보통일이 아닐 것 같다.
장성 경례곡을 좀 만들어 달라/보라는 의뢰를 받았거나 학교 수업 과제를 받았다면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는가? 길어야 30초 남짓한 시간 동안 무슨 심상을 표현하도록 콩나물을 오선지에다 그려 넣을까?

더 나아가 초인종 BGM은 어쩌다가 하필 “엘리제를 위하여”로 온통 물갈이가 됐을까? 그 곡이 초인종 BGM으로서 도대체 무엇이 좋아서? 장성 경례곡을 듣다 보니 이런 의문도 강하게 든다.

단, 저것들 말고 군대 기상 나팔 BGM은 딱히 작곡자가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외국 군대에서도 오래 전부터 나돌던 멜로디가 적당히 변형되었다.

2. 김 희조 (1920-2001): 국민체조

이분은 육군 군악대장 출신이다. MBC 기자 출신인 여자분과는 당연히 동명이인.
지금은 학교에서 자취를 감췄다지만 "국민체조" BGM과 “잘 살아 보세”가 바로 이분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자매품인 “국군 도수체조” BGM도 같은 출처이지 싶다.

본인은 먼 옛날에 잉여짓 차원에서 국민체조 BGM의 주선율을 오선지에 받아써 본 적이 있다. 진작부터 머릿속 장기 기억에 영구보존된 곡이니 검색해서 다시 안 들어도 얼마든지 채보 가능하다.
기본에 충실한 박자이면서도 최소한의 기교는 다 동원된 것 같았다. 음표는 2분에서 16분음표까지 다 나오고 점 4, 8분음표도 쓰인다. 임시 조표도 나오고 당김음(등배 운동), 스타카토(당연히 뜀뛰기에서), 셋잇단음표(전주에서)도 한 번씩 나온다.

템포 변화가 잦은 편이다. 가령, 전주에서는 ♩=108가량이지만, 체조가 시작되고부터는 ♩=88 정도로 느려진다. 뜀뛰기에서는 ♩=112~120 정도로 평소보다 25% 이상 템포가 빨라지다가, 마지막 숨쉬기에서는 ♩=60~70대까지 떨어진다.
모든 체조를 한 번씩만 했을 때(뜀뛰기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팔다리 운동으로 진입) 전주에서부터 숨쉬기 끝까지 음악의 러닝 타임은 우연의 일치인지 딱 2분 30초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것도 다 계산해서 작곡한 건지? 처음으로 한번 되돌아가서 풀 세트로 하면 4분 50초 정도 걸린다.

참고로, 국민체조의 BGM 말고 체조 동작 자체를 고안하고 구령을 녹음한 사람은 당연히 음악인이 아닌 체육인이다. 전 경희대 교수인 유 근림 씨로 알려져 있다.

3. MBC 창작 동요제

이제 분위기를 바꿔서 오랜만에 동요 얘기를 좀 꺼내 보겠다.
<새싹들이다>. 1983년 제1회 MBC 창작 동요제 대상 수상작인 것, 작사 작곡자가 '좌'씨인 건 알고 있었는데, 제주도민의 작품인 건 처음 알았다. 전문적인 음악가가 아니라 현직 교사의 작품이다.
저 애도 참 목소리 예쁘고 노래 잘 부른다. 1972년생 정도일 텐데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저거랑 제일 비슷한 풍의 다른 곡은 <어린이 노래>(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 같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거보다 더 나중에 작곡된 <새싹들이다>가 더 훨씬 더 밝고 명랑한 분위기이다.
미디, 신시사이저, 컴퓨터 반주 같은 일체의 디지털스러운 흔적 없이, 완전 클래식으로 오케스트라 꾸며서 반주하는 것도 지금 보니 굉~장히 인상적이다. 영상에다 비유하면 CG 없는 아날로그 특수효과만으로 구성됐다는 뜻이다.

이거 다음 1984년도 대상 수상작인 <노을>은... 나 초딩 시절, 컴퓨터 학원에서 GWBASIC 배우던 시절에 들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매주 금요일은 학원에서 다른 수업이 없고 그냥 원장님이 만든 음악 재생 프로그램을 있는 그대로 쳐서 실행되는 거 검사만 받고 나면 오락(게임)을 할 수 있었다.
그때 입력해서 들었던 곡 두 개가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게 하나는 MBC 드라마 <질투> 오프닝이랑, 알고 보니 노을이었다.
다시 말해 난 저 두 곡은 텔레비전에서 처음 들은 게 아니라 PLAY문 코드를 통해서 PC 스피커로 난생 처음으로 들었다.

MBC 창작 동요제는 의외로 오래, 2010년 20몇 회차까지 계속되긴 했다. 그러나 얘는 그 성격상 순수성이 오래 유지되기가 도저히 어려웠다.
21세기부터는 출품되는 곡이 점점 더 동요답지 않게 기교가 심해지고 가요풍으로 바뀌고, 출연하는 애들의 의상만 쓸데없이 고퀄로 올라가고, 후원 협찬 줄어드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폐지됐다. 어찌 보면 미스코리아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위상이 추락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7/10/01 08:32 2017/10/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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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자동차

현대 자동차는 뭐 내수용와 수출용 제품 차별 폭리, 부품 불량(에어백 미전개나 급발진?) 같은 일부 불미스러운 일로 인한 비판을 받을지언정 그래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재벌 자동차 회사이며, 나라에 막대한 부를, 개인에게는 꿈의 직장을 제공하고 있는 대단한 기업이다.

대졸 신입사원으로만 들어가도 연봉이 이미 삼성 전자를 능가하는 까마득한 액수인 건 잘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고졸 생산직으로 취업해도 효자에 그 지역 일등 신랑감 소리를 들을 정도이다. 낮은 직급도 워낙 복리후생이 좋으니 연줄과 빽 없이는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하더라.
삼성은 무노조라지만 현대는 그렇지도 않아서 파업이 종종 발생하며, 오히려 귀족 노조의 추태가 협력업체들의 열악한 복리후생과 비교되어 비판받을 정도이다.

자동차 정비소로 시작해서 오늘날의 현대 자동차의 기반을 일군 일등공신은 잘 알다시피 왕회장이다(1915-2001).
오늘날 뱃대지가 불러서 추태를 보이고 있는 건 별개로 욕 먹을 사항이겠지만, 현대차가 옛날엔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악전고투한 끝에 '안 되면 되게 하라' 식으로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살펴보는 건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현대 자동차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던 순간에 외국 기업으로부터 회유를 두 번 받은 적이 있었다.
먼저 고유모델 승용차인 포니를 개발하고 제3세계 위주로 수출까지 한 지 얼마 안 되었던 1977년 5월의 일이다. 주한 미국 대사(그 당시, 리처드 스나이더)가 왕회장을 조선호텔 스위트룸으로 정중히 초청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님 이제 와서 밑바닥에서 자동차 자체개발 해 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지 경제성 면에서 승산 있겠습니까? 님이 지금이라도 (1) 고유모델의 개발을 포기한다면(포니 2 같은 거 만들 생각 하지 말고) 저희 나라에서 현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우리 차 원하는 대로 커스텀 조립 생산할 수 있게 도와 드리죠."

그러나 왕회장은 당장 안정되고 편안한 조립 생산 셔틀 제의를 거부하고 고난의 길을 자처했다. (출처: 정 주영 일화집 "이봐, 해봤어?", 프리이코노미북스)
포니는 이탈리아 사람이 디자인하고 일본에서 개발한 엔진과 파워트레인을 얹은 물건이지만, 어쨌든 한국 땅에서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던 승용차를 밑바닥부터 최초로 창조해 낸 사례였다. 코티나나 그라나다처럼 미국차 로컬라이즈 + 면허 조립 생산이 아니라 말이다. 나라에서 요구한 비율만큼 부품 국산화도 달성한 건 덤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 뒤, 현대차는 알파 엔진이라는 승용차용 엔진을 맨땅에서부터 자체 개발 시작했다. 그 당시 현대로부터 막대한 로얄티를 받으면서 기술 지원을 찔끔 해 주던 일본 미쓰비시는 택도 없는 무모한 시도라고 현대를 마음껏 비웃었다.
그러나 용인 마북리 연구소를 쉬엄쉬엄 방문했던 구보 회장은 개발 중이던 엔진에 고슴도치 가시처럼 꽂혀 있던 240여 개에 달하는 온도계를 보고는 느긋하던 태도가 싹 바뀌었다. "현대차에 독종이 한 명 들어와 있구나(이 현순 박사). 이 자식 안 되겠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그래서 1989년, 1990년 몇 차례 한국으로 날아와 왕회장에게 (2) 엔진의 독자 개발을 포기하라고.. 만들어 봤자 또 최신 기술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개발비 회수도 못 할 거라고 집요하게 로비와 회유를 거듭했다. "개발팀 해체하면 우리가 지금 받는 로얄티를 절반으로 깎아 드리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당시 로얄티 무지막지하게 비쌌었다. 차 한 대 팔면 매출의 거의 4~50%가 로얄티로 날아갈 정도였다.

이거 무슨 북괴에다 핵 개발 포기를 종용하는 것도 아니고..
이때에도 왕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을 했다. 쟤들이 저렇게 큰 당근을 제시하며 회유할 정도인 걸 보니 반대로 엔진 독자 개발은 반드시 꼭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처: "내 안에 잠든 엔진을 깨워라", 김영사)

이 (1)과 (2)의 결정 덕분에 현대차는 포드 수입 자동차를 겨우 조립 생산만 하던 처지를 벗어나 고유모델을 만들어 냈으며,
2밸브 카뷰레터 엔진이나 겨우 조립하다가 자체기술 터보 엔진까지 만들게 됐다.
자체 개발 엔진은 안 그래도 그 당시에 제일 과감한 실험적인 모델이던 스쿠프에 맨 처음으로 탑재됐으며, 1500cc 3밸브 SOHC 터보 엔진이 장착된 스쿠프 터보는 국산 승용차 최초로 최대 시속 200을 돌파하고 제로백 10초 이내도 달성했다.

이걸로도 모자라 현대와 미쓰비시 사이의 기술 주종 관계는 몇 년 못 가 반대로 역전되어 버렸다. 그리고 현대는 스쿠프 - 티뷰론 - 투스카니에 이어 지금은 제로백이 5~6초대인 제네시스 쿠페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 시절에 왕회장 같은 경영자와 이 박사 같은 엔지니어가 같이 있던 것은 국가적인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정도 행적은 있어야 '반일, 극일, 일자리 창출' 같은 걸 논할 자격이 갖춰지지 않나 싶다.

2. 삼성 전자

지금까지 현대차 위주로 얘기를 했는데, 삼성 전자도 그 시절에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도박· 모험을 했다. 백색가전이나 근근이 수입 부품 조립으로 만들다가 1983년 2월에 반도체를 맨땅에서 만들겠다고 경영진이 전격 선언하고 공장을 짓고 개발에 들어간 것이다. 오일 쇼크에, 선진국들의 장벽 등 1980년대의 여러 정황을 보아하니, 반도체 자체 개발이 아니면 기업과 나라를 먹여 살릴 길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1983년 가을에 64K디램의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연구원들은 그야말로 월화수목금금금 갈려 들어갔다고 한다. 외국으로 연수 가서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우고 오려다가 거기 직원들한테 저지 당하고 문전박대 당한 건 우주 발사체나 고속철 개발 같은 다른 분야와 다를 바 없었다. 하다못해 팀원이 "저 다음주에 결혼합니다. 휴가 좀.." 이러자 팀장이 "야 임마 왜 하필 이런 바쁜 때에 결혼을 쳐 해!" 이렇게 버럭 했을 정도였댄다. 그 당시 팀장이 훗날 신화 창조의 비밀 비스무리한 TV 프로에 출연해서 지금 생각하면 그 부하 직원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회고한 걸 본인은 유튜브 동영상으로 봤다..;;

그것 말고 삼성 전자의 반도체 개발과 관련된 다른 에피소드는 잘 모르겠다.
메모리 반도체보다 가치가 더 높은 비메모리 반도체까지 잡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 당시로서는 메모리 하나 잡은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고 감지덕지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이야 삼성은 전자 기기, 현대는 자동차 이렇게 업종이 다르니 서로 맞닥뜨리거나 대립할 일이 없다고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금 하이닉스 반도체의 전신이 현대 전자였으며, 현대 전자에서도 전화기, 컴퓨터 같은 걸 만들었다.
이 건희 회장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현대는 우리 삼성이 다루는 업종의 제품을 다 만들 수 있는데 우리는 왜 현대처럼 자동차를 못 만들지?" 이렇게 위기 의식을 가졌다. 그래서 기어이 1990년대 중반에 자동차 회사를 세웠지만 잘 알다시피 별 재미를 못 봤다.

우리나라에서 2, 30년 전과는 달리 "과소비를 추방합시다, 국산품을 이용합시다" 이런 가난한 구호가 쏙 들어간 이유가 뭘까?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커피나 석유 같은 원자재를 그냥 물 쓰듯이 펑펑 쓰고, 각종 외제품 외제차, 외국산 영화를 마음껏 보는데도 나라가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일차적으로는 세계 각국이 자본주의 경제 논리 실용주의에 입각해서 시장을 적극 개방했기 때문이지만, 그 다음으로는 우리 쪽에서도 그렇게 수입을 마구 해도 될 정도로 국내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상품들을 잔뜩 수출해서 외화 벌고 세금도 많이 내 주기 때문이다. 기업을 욕하기에 앞서 반기업 정서는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 오던 부의 상향평준화까지 저해하며, 부자가 망할 정도이면 서민들은 완전 거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3. 안랩

지난 19대 대선 때 출마했던 대선 후보들의 프로필을 보면, 신고한 재산 액수가 혼자서 타 후보들의 평균 액수보다 0이 두 개쯤 더 붙은 독보적인 사람이 있었다. 의사, 프로그래머, 기업가, 교수를 거쳐서 대통령 자리까지 넘보게 된 그 사람 말이다.

남들은 사짜 직업을 하나만 얻고도 그걸로 평생 안주하고 떵떵거리며 사는데, 그걸로 모자라서 1980년대 말에 이미.. 자료도 구하기 어렵던 시절에 어셈블리어를 공부해서 컴퓨터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그걸로 모자라서 기업까지 차렸으니, 능력과 정신이 모두 존경스러운 인물인 건 사실이다. 빌 게이츠도 평범하게 공부만 해도 변호사나 교수 정도는 그냥 됐을 지능의 소유자인데, 굳이 불안정하고 위험한 창업을 감행해서 세상을 바꿔 놓고 변호사· 교수보다 훨씬 더 부자가 되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 사람도 나름 왕 회장의 일화 같은 일화가 전해지는 게 있다. 1997년, 미국 유학 중에 맥아피 사로부터 자기 기업 인수 제의를 받았지만 애국심 애사심(!!) 차원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이건 그 당시 TV 인생 다큐에서 각색되어 방영되었고, 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다고 한다.

비록 저게 완전히 황당무계한 주작은 아니었겠지만 액수가 정말 그 정도로 엄청났었나, 그리고 개인 능력에 대해서, 또 부인까지 동반된 교수 채용 등 일부 절차나 특혜가 과장이나 거품이 있지는 않았나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게 조금은 있다. 마치 신뢰도가 백범일지의 치하포 사건(고증 오류 + 국모 원수 갚는 것과는 별 상관 없는 단순 일본 민간인 살해)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 말이다.

V3은 국산 소프트웨어로서 1990년대에 수많은 컴퓨터들을 도스용 악성 코드로부터 구한 고마운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그게 현대차만치 세계적으로 많이 수출되어서 쓰여서 외화를 막 벌어 왔고, 미국의 안티바이러스 솔루션을 진지하게 위협할 정도로 그만치 뛰어난 세계구급 제품이었는지도 좀 의문이다.
(물론, 밖에서 막 적극적으로 벌어 오지는 못해도 안에서 외화 유출을 막는 데는 충분히 기여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아래아한글 때문에 MS 워드가 가격을 왕창 낮추고 저자세로 마케팅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효과도 무시 못 함.)

뭐 기록에 좀 과장· 오류가 있더라도 김 구 역시 큰 그림을 봤을 때 애국자인 건 변함없고 안 철수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우리는 10여 년 전에 황 우석 사태도 겪었고 맹목적인 애국심 마케팅의 폐해와 황당무계한 주작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러니 어떤 인물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좀 더 비판적인 안목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다.

각 분야의 전문직들을 깊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다 경험해 봤고, 돈은 이제 평생 써도 다 못 쓸 정도로 벌었고 자식도 하나밖에 없으니.. 이제 안 철수 같은 사람이 다음으로 노릴 만한 건 정말 권력밖에 없긴 했겠다.
과거에 현대 왕회장 역시 1992년도 대선에 출마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바다 건너 트럼프도 그냥 편안한 노후만 보내면 됐을 것을, 자기 사택보다도 더 누추한 장소일 백악관에 그것도 그 나이에 괜히 들어간 게 아닐 것이다. 사실, 경제인 기업가가 돈만 댓다리 많고 권력이 없으면 솔직히 정치 자금 삥이나 뜯기는 셔틀로 전락하기도 쉬울 테니.. (정경유착을 욕만 할 처지가 아님)

대선 후보로서 안 철수는 이념은 대놓고 불순하지는 않은 듯했지만 정치라는 게 본인 당사자의 역량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현 대통령 당선자와 안 씨의 이념 차이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차이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뭐 19대 대선은 이미 지난 일이 됐다만, 저분 설마 다음에 또 출마하려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17 08:34 2017/08/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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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대사 토막 상식

* 난 우리나라 역사라 하면 알다시피 철도 또는 안보· 이념과 관계가 있는 근현대사 얘기만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고대사 얘기를 좀 꺼내고자 한다. 아, 그렇다고 근현대사도 전혀 안 나오는 건 아니다.

1. 멸망 방식

한반도와 그 주변 나라들을 보면, 단순히 전쟁에서 지거나 내부 혁명과 쿠데타가 발생하는 평범한 시나리오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망한 나라들이 역사적으로 좀 있다.

  • 신라: 왕이 백성들 이끌고 스스로 제 발로 고려로 항복· 귀순함
  • 후백제: 태조가 아들에게 밀려서 피난 간 뒤, 고려로 귀순하여 자기가 세운 나라를 스스로 침공... 꽤 독특하다.
  • 조선 또는 대한제국: 전쟁 하나 없이 야금야금 일제에게 조금씩 단계별로 각종 권리를 뺏기며 열불나는 방식으로 굴욕적으로 멸망
  • 그리고 저 훗날 일제의 괴뢰국이던 만주국: 마치 선장이 비상사태에서 배를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하듯이, 황제가 피난길에 국가 셧다운 선언하고 자진 해산함

신라의 경우, 저런 이유로 인해 마지막 경순왕의 무덤은 다른 신라 왕릉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경주가 아니라 연천군 저 북쪽 끝의 민통선 안에 있다. 38도 위도에 정말 근접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남한이 수복한 지역이며, DMZ 신세도 면했다. 신라의 수도 근처가 아니라 고려의 수도 근처에 묻힌 것이다.

난 경주 출신이기도 한지라 신라 왕릉이 웬 생뚱맞은 저런 곳에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 굉장히 독특하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훗날 고려는 이 성계의 위화도 회군 쿠데타에 의해 비교적 평범한(?) 방법으로 멸망했다. 그리고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은 무덤이 아예 고양시와 삼척시에 2개로 나뉘어 있으니 신라의 마지막 왕의 경우보다 더 특이하다. (둘 중 하나는 허묘)

우리나라의 경우 6·25 전쟁 당시에 판문점과 송악산, 배수진 지형 등 여러 이유로 인해 개성시 일대를 더 점령하지 못하고 빼앗겼다. 이것 때문에 고려의 존재감이 남조선 땅에서 더욱 없어지고, 반대급부로 '조선'스러운(?) 정서가 더 강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 오늘날의 서울도 지리적으로 조선의 한양을 계승했으니 말이다.

그 대신 그 '고려'라는 이미지는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쓰고 있다. 고려항공, 고려연방제처럼.
물론, 그래도 남조선의 경우 수도를 조선의 도읍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고, 북조선의 경우 나라 공식 명칭에 여전히 '조선'이 들어가 있긴 하다.

2. 도읍의 위치

말이 나왔으니 수도 얘기도 해 보자.
일단 신라는 경주(금성), 조선은 서울(한성)로 확고한 붙박이이다. 이들은 안 그래도 당대에 역사가 매우 길었던 왕조로 여겨지는데 천도의 내력 역시 전무하다. 신라의 경우 멸망 직전에는 세력이 경주 시내로 극도로 쪼그라들긴 했지만 그래도 왕궁이 딴 데로 옮겨진 적은 없었다.

덕분에 여기는 각종 문화재 유물도 꽤 많이 남아 있다. 서울이야 시기적으로 제일 가까운 왕조의 수도여서 그렇다 치지만 신라는 서기 1000년도 채 되지 않아 멸망한 엄청 옛날 왕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과장 좀 보태면 온통 땅만 좀 파면 유물이 나올 지경이어서 도시형 국립공원까지 조성될 정도인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한편, 고려는 전반적으로 개성(개경)이긴 했지만 중간에 몽골로부터 침략을 받았을 때 강화도로 딱 한 번 천도를 한 적이 있다. 강화도는 내륙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닌데 몽골은 골수 내륙국이다 보니 해군이나 해병대가 없어서 저기로는 못 쳐들어갔던 모양이다.

후대의 조선은 임진왜란 때 왕이 피난을 갔고, 또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 행궁으로 도읍을 옮겼다. 스타로 치면 본진이 옮겨진 격이다.
대한민국 역시 잘 알다시피 6· 25 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수도를 잠시 옮긴 적이 있었다.

고구려의 수도는 지금의 평양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건국 직후 한동안은 더 북쪽으로 지금의 중국 땅(졸본, 국내성)에 도읍이 있었다. 하긴, 광개토왕릉비도 괜히 중국에 있는 게 아니다.
리즈 시절 이후와 멸망 때까지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가 평양이었다. 남북이 통일이 되고 나면, 정확히 말해서 북괴 정권이 사라지고 나면 도읍이 이북 땅에 있었던 옛날 한반도 왕조들의 흔적을 찾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백제는 한국사에 등장하는 메이저 왕조들 중에 수도에 대한 존재감이 제일 없는 것 같다. 일단 지금으로 치면 서울· 하남 일대였던 시즌 1과,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더 친근한 충남 공주· 부여 일대의 시즌 2로 나뉜다. 이렇게 초점이 분산된 데다 시즌 1 도읍은 흔적이 전해지는 게 별로 없으니 존재감이 더욱 감소한다.

그래도 삼국 시대에 오늘날의 서울과 가장 가까운 곳에 도읍을 뒀던 적이 있는 왕조는 백제이다. 그렇다고 조선 같은 북악산 기슭의 사대문 안이 아니라 한강 이남의 몽촌토성· 풍납토성 뭐 이런 지대이다. 일단 하남, 위례신도시 이런 명칭들이 다 백제의 도읍에서 유래된 것들이라니 신기한 일이다.

가야나 발해 같은 마이너한(?) 나라들의 역사도 갑자기 궁금해지긴 하는데, 고대로 갈수록 사료 자체가 너무 빈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태양계 행성도 천왕성과 해왕성은 표면 사진 자체가 보이저 2호가 찍은 것밖에 없어서 빈약한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22 08:39 2017/07/2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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