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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대사 토막 상식

* 난 우리나라 역사라 하면 알다시피 철도 또는 안보· 이념과 관계가 있는 근현대사 얘기만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고대사 얘기를 좀 꺼내고자 한다. 아, 그렇다고 근현대사도 전혀 안 나오는 건 아니다.

1. 멸망 방식

한반도와 그 주변 나라들을 보면, 단순히 전쟁에서 지거나 내부 혁명과 쿠데타가 발생하는 평범한 시나리오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망한 나라들이 역사적으로 좀 있다.

  • 신라: 왕이 백성들 이끌고 스스로 제 발로 고려로 항복· 귀순함
  • 후백제: 태조가 아들에게 밀려서 피난 간 뒤, 고려로 귀순하여 자기가 세운 나라를 스스로 침공... 꽤 독특하다.
  • 조선 또는 대한제국: 전쟁 하나 없이 야금야금 일제에게 조금씩 단계별로 각종 권리를 뺏기며 열불나는 방식으로 굴욕적으로 멸망
  • 그리고 저 훗날 일제의 괴뢰국이던 만주국: 마치 선장이 비상사태에서 배를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하듯이, 황제가 피난길에 국가 셧다운 선언하고 자진 해산함

신라의 경우, 저런 이유로 인해 마지막 경순왕의 무덤은 다른 신라 왕릉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경주가 아니라 연천군 저 북쪽 끝의 민통선 안에 있다. 38도 위도에 정말 근접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남한이 수복한 지역이며, DMZ 신세도 면했다. 신라의 수도 근처가 아니라 고려의 수도 근처에 묻힌 것이다.

난 경주 출신이기도 한지라 신라 왕릉이 웬 생뚱맞은 저런 곳에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 굉장히 독특하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훗날 고려는 이 성계의 위화도 회군 쿠데타에 의해 비교적 평범한(?) 방법으로 멸망했다. 그리고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은 무덤이 아예 고양시와 삼척시에 2개로 나뉘어 있으니 신라의 마지막 왕의 경우보다 더 특이하다. (둘 중 하나는 허묘)

우리나라의 경우 6·25 전쟁 당시에 판문점과 송악산, 배수진 지형 등 여러 이유로 인해 개성시 일대를 더 점령하지 못하고 빼앗겼다. 이것 때문에 고려의 존재감이 남조선 땅에서 더욱 없어지고, 반대급부로 '조선'스러운(?) 정서가 더 강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 오늘날의 서울도 지리적으로 조선의 한양을 계승했으니 말이다.

그 대신 그 '고려'라는 이미지는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쓰고 있다. 고려항공, 고려연방제처럼.
물론, 그래도 남조선의 경우 수도를 조선의 도읍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고, 북조선의 경우 나라 공식 명칭에 여전히 '조선'이 들어가 있긴 하다.

2. 도읍의 위치

말이 나왔으니 수도 얘기도 해 보자.
일단 신라는 경주(금성), 조선은 서울(한성)로 확고한 붙박이이다. 이들은 안 그래도 당대에 역사가 매우 길었던 왕조로 여겨지는데 천도의 내력 역시 전무하다. 신라의 경우 멸망 직전에는 세력이 경주 시내로 극도로 쪼그라들긴 했지만 그래도 왕궁이 딴 데로 옮겨진 적은 없었다.

덕분에 여기는 각종 문화재 유물도 꽤 많이 남아 있다. 서울이야 시기적으로 제일 가까운 왕조의 수도여서 그렇다 치지만 신라는 서기 1000년도 채 되지 않아 멸망한 엄청 옛날 왕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과장 좀 보태면 온통 땅만 좀 파면 유물이 나올 지경이어서 도시형 국립공원까지 조성될 정도인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한편, 고려는 전반적으로 개성(개경)이긴 했지만 중간에 몽골로부터 침략을 받았을 때 강화도로 딱 한 번 천도를 한 적이 있다. 강화도는 내륙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닌데 몽골은 골수 내륙국이다 보니 해군이나 해병대가 없어서 저기로는 못 쳐들어갔던 모양이다.

후대의 조선은 임진왜란 때 왕이 피난을 갔고, 또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 행궁으로 도읍을 옮겼다. 스타로 치면 본진이 옮겨진 격이다.
대한민국 역시 잘 알다시피 6· 25 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수도를 잠시 옮긴 적이 있었다.

고구려의 수도는 지금의 평양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건국 직후 한동안은 더 북쪽으로 지금의 중국 땅(졸본, 국내성)에 도읍이 있었다. 하긴, 광개토왕릉비도 괜히 중국에 있는 게 아니다.
리즈 시절 이후와 멸망 때까지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가 평양이었다. 남북이 통일이 되고 나면, 정확히 말해서 북괴 정권이 사라지고 나면 도읍이 이북 땅에 있었던 옛날 한반도 왕조들의 흔적을 찾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백제는 한국사에 등장하는 메이저 왕조들 중에 수도에 대한 존재감이 제일 없는 것 같다. 일단 지금으로 치면 서울· 하남 일대였던 시즌 1과,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더 친근한 충남 공주· 부여 일대의 시즌 2로 나뉜다. 이렇게 초점이 분산된 데다 시즌 1 도읍은 흔적이 전해지는 게 별로 없으니 존재감이 더욱 감소한다.

그래도 삼국 시대에 오늘날의 서울과 가장 가까운 곳에 도읍을 뒀던 적이 있는 왕조는 백제이다. 그렇다고 조선 같은 북악산 기슭의 사대문 안이 아니라 한강 이남의 몽촌토성· 풍납토성 뭐 이런 지대이다. 일단 하남, 위례신도시 이런 명칭들이 다 백제의 도읍에서 유래된 것들이라니 신기한 일이다.

가야나 발해 같은 마이너한(?) 나라들의 역사도 갑자기 궁금해지긴 하는데, 고대로 갈수록 사료 자체가 너무 빈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태양계 행성도 천왕성과 해왕성은 표면 사진 자체가 보이저 2호가 찍은 것밖에 없어서 빈약한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22 08:39 2017/07/2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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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텔레비전이 1983년에 정전(휴전) 30주년 기념으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방영해서 우리나라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남겼다면, MBC는 창사 30주년 기념으로 1991~92년 사이에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를 만든 게 그야말로 불멸의 명작으로 남았지 싶다.

원래 KBS는 예전부터 역사 대하드라마를 쭉 만들어 오고 있었고 1990년을 전후해서는 <역사는 흐른다>, <여명의 그 날>처럼 일제강점기 내지 해방 초기를 다룬 드라마가 나간 적이 있다.
그에 반해 MBC는 전통적으로 역사+정치 장르인 "제N공화국"을 방영했으며, 90년경엔 제2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그랬는데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루는 동명의 소설을 극화한 <여명의 눈동자>는 MBC에서 야심차게 중국과 필리핀 현지 촬영과 더불어 전체 분량의 1/3가까이를 사전제작+후시녹음한 퀄리티로 만들어서 초대박을 쳤다. 그것도 중국과 정식 수교를 하기도 전에 말이다.
비슷한 시기(1990년 즈음)에 비슷한 시기(일제~해방 초)를 다룬 타 KBS 드라마들은 지금 흔적조차 찾기 어렵지만 여명의 눈동자만 아직까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으며, 특히 주제가 음악을 너무 잘 만든 것도 작품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현재도 유튜브에서 "여명의 눈동자" 검색하면 오프닝곡 피아노 연주 동영상이 많이 굴러다닌다.
그리고 2017년 지금 오프닝곡 들어 보면 전율이.. 작곡자분이 무슨 약을 빨고 이런 선율을 만들어 냈나 싶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무슨 영상음악 공모전 같은 데서 입상은 당연히 하지 않을까..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필름 역회전" 음주운전 공익광고도 국제 공모전 입상을 했는데.

휴대폰, 초고속 인터넷, HD 디지털, 유튜브가 없던 시절에 이런 영상물과 이런 음악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고, 그래도 저게 방영되었던 시절이 내가 초딩 수준으로나마 기억과 의식이 있던 시기였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전체 분량의 1/3을 사전제작하고 시작했다지만 마지막 회는 결국 방영 전날에 촬영을 다 마치고, 방영 10분 전에야 편집까지 간신히 다 끝냈다고 한다. 옛날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식 3시간 전에 차선 도색을 간신히 다 마쳤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천하의 <여명의 눈동자>도 같은 MBC에서 거의 동일한 시기에 같이 방영했던 <사랑이 뭐길래> 드라마에 팀킬 당해서 전체 시청률은 2위였다고 한다. 그때 MBC 드라마가 정말 잘나갔었네..!!
너무 진지하고 슬픈 분위기인 <여명..>과는 달리 <사랑이...>는 완전 반대의 유쾌 컨셉의 가정 드라마였으니 서로 참 강렬하게 비교된다. <사랑이...>는 그 인기에 힘입어 '-기에' 대신, 그 당시 비표준어이던 '-길래'라는 연결어미를 전국에 대대적으로 퍼뜨리는 효과도 냈다. (지금이야 2011년부터 복수 표준어가 돼 있음)

본인 역시 저걸 본 기억이 있으며, 특히 오프닝곡은 멜로디를 다 기억하고 있다. '대발이'가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었구나. 오프닝곡 말고 <타타타>라는 가사 있는 OST도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그건 기억이 안 난다.

오프닝은 그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로 만든 듯하다. 실사 사진에다가 만화 애니메이션 합성은 쉽지 않았을 텐데. (who framed Roger rabbit이 1989년작이던가?)
그 시절에는 저렇게 정교한 손글씨 디지털 서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명조 고딕 둥근고딕 일색..) 타이틀과 배우 이름은... 일일이 다 손으로 쓴 캘리그래피이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한 지붕 세 가족> 같은 다른 TV프로의 오프닝을 봐도 그땐 그게 관행이었다. 1990년대 초였으니 광고 목록은 무려 세로쓰기로 나오고 말이다.

다음으로, 음악 역시 드라마의 성격을 대변할 만한 명랑한 분위기로 참 잘 만들었다. 지금 다시 들어 보니 음색이 정말 대놓고 미디스럽다~~!! 저 때는 저런 미디 기반의 전자음향이 최신 기술이었을 것이다.
톡톡~ 치는 전자드럼이나 '훡~'(쿠이카) 요런 효과음, 호루라기 소리.. 다 미디에 정의돼 있는 타악기들이다. 모스크바 관현악단에서 직접 연주했다는 <여명의 눈동자> OST (오프닝곡 포함)와는 완전 대조적이다.

주선율을 연주한 악기는 무려 '팬 플룻'이다.
물론 저건 미디가 합성해 준 팬 플룻이니, <킬 빌>의 The Lonely Shepherd 같은 곡에서 나오는 레알 팬 플룻의 퀄리티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건 뭐랄까, 레알 육개장과 라면 스프로 재연한 육개장의 차이와 비슷한 듯하다.

시간만 좀 있으면 저 오프닝곡을 미디로 채보해 보고 싶을 정도다.
그 시절에는 제대로 된 미디 신시사이저 반주를 듣는 방법이 노래방에 가는 것밖에 없었지만 2000년대부터는 PC로도 얼마든지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원로 여성 배우 중에 김 혜자야 최 불암 시리즈에도 나오고 워낙 유명하니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데..
옛날에 농심 라면 CF에서 "허허허허~ 라면의 맛은 스프에 있습니다"라고 맨날 단골로 출연했던 아줌마가 강 부자였구나.. 2017년이 돼서야 처음 알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14 08:33 2017/07/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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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등 상사 동상

한강대교는 한강철교와 더불어 한강의 교량들 중 제일 먼저 생긴 축에 드는 다리이다. 중간에 노들섬을 지나며, 북단에서 남단으로 가는 쪽의 도로 길가에는 이 원등 상사(1935-1966)의 동상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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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우리나라에서 그 옛날 1960년대에 미국까지 다녀오면서 양성된 특전사 소속 스카이다이버였고 낙하산의 전문가였다.
그런데 서울 한강 상공에서 공수 훈련 중에, 한 동료? 후임? 부하?가 낙하산이 제대로 펴지지 않아 추락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신속하게 그에게 접근해서 낙하산을 전개시켜 주기까지는 했는데...

일단 갑작스럽게 펴지는 동료의 그 커다란 낙하산에 맞아서 자기가 팔을 크게 다쳤다. 자동차에서 펼쳐지는 에어백에 맞아서 다치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더 큰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저분은 자기 낙하산을 펼치고 감속할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한강 얼음판에 추락사로 순직했다. 1966년 2월, 엄청 옛날 일이다.

공수 훈련 중에 남의 낙하산을 펴 주는 건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을 지상에 고정된 로프 없이 수영만으로 구해 오는 것 이상으로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자유 낙하하는 사람에게 접근해야 하니 무엇보다 자기도 낙하산을 펴지 않고 일정 구간 자유 낙하하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슨 우주선 도킹도 아니고.. 게다가 주어진 시간도 초 단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그냥 둘 다 죽기 십상인데 저분은 그래도 동료를 구하고 장렬히 산화했다.

이분은 강 재구 소령과 비슷한 연배의 군인이고 순직 타이밍도(1965) 별로 차이가 안 나지만, 육사 출신 장교가 아니어서 그런지, 동상이 비록 다리 위나마 엄연히 서울 중심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 소령에 비해서는 훨씬 알려져 있지 않다.

동상이 하늘을 향해 엄지를 척 세우고 있는 포즈인 게 굉장히 인상적이다. 저것도 말소리로 소통이 안 되는 그쪽 업계에서 통용되는 제스처 은어라고 한다.
그리고 밑에는 고인이 다른 전우의 낙하산을 펴 주는 상황을 상상해서 그린 양각 부조 동판도 만들어져 있다.

연휴가 아니면 낮에 한강대교 건널 일이 좀체 없었을 테니, 본인은 잠시 차를 세우고 내려서 사진을 남겼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01 08:34 2017/07/0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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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생각

1. 첫인상

우리나라의 바다 건너 이웃에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예로부터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고 불리고 있다. 무작정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고, 존재감을 무시할 수도 없는 그런 복잡한 나라이다. 정치적으로 하도 민감한 주제이다 보니 "일본은 없다" "일본은 있다" 이런 책이 나온 것도 벌써 20년 가까이 전의 일이다. 본인이 블로그에서 이 나라 자체에 대해서 심층 취재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럼 비정치적인 얘기부터 가볍고 부담 없게 먼저 시작하겠다. 본인은 일본이라 하면 떠오르는 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무순)

  • 벚꽃이 만발한 오사카 성
  • 후지 산 아래로 달리는 신칸센
  • 지멘스 옥타브를 울리면서 달리는 게이큐 쾌특 전철
  • 앞발 들고 있는 복고양이
  • 게다짝, 기모노, 일본도, 정수리를 민 그 특이한 헤어스타일의 사무라이 (조선 선비들은 머리를 기르는 편이었는데 여기는 정반대)
  • 어두운 복장에 표창 던지는 닌자 (뭐, 후대에 만들어진 컨셉에 가까우며, 정작 옛날에 일본엔 저런 차림의 자객이 없었다고 하던데)
  • 스시, 일본 돈까스와 라멘, 심야식당
  • 학교 수영복 (저기에는 공립 학교에 수영장도 있으니)
  • 도라에몽, 슈퍼마리오, 짱구는 못 말려, 드래곤볼 캐릭터와 그와 비슷한 화풍의 일본 애니들
  •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킬 빌, 자토이치 같은 평범하거나 병맛· 개그스러운 영상물. 토스트 소녀-_- 게임
  • 파이널 판타지 같은 너무 심오하고 도무지 배경이고 스토리고 설정을 이해할 수 없는 안드로메다 영상물
  • 감각의 제국, 쇼군의 사디즘 같은 개막장 영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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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난 일본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고, 일본어는 열차 안내방송 외운 것밖에 모른다. 글자만이라도 작정하고 읽는 법을 틈틈이 외워 놓고 싶지만, 잘 안 된다.

하긴, 작년에 브라질 올림픽 폐막식 때 그 유명한 2020 도쿄 올림픽 홍보 영상이 상영되었는데 그거 정말 강렬했다. 반도에서 병맛스러운 김치 전사 내지 허접한 평창 동계 올림픽 홍보 영상이나 만들던 동안, 재패니메이션의 원조인 저 동네에서는 제한된 시간 동안 자기 나라의 발전된 면모를 저렇게 쭉 소개하면서 아베 총리까지 슈퍼마리오로 변장시켜서 찬조 출연시켰다니.. 쟤네들의 저력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교통

일본은 근대화 산업화가 아시아에서 가장 앞섰으며 경제, 산업, 과학· 기술, 예능 등 거의 모든 분야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고, 현대 사회의 각종 시행착오들도 먼저 겪은 선진국이다. 그 중 교통 분야만 살펴보더라도, 일본은 세계구급 자동차 제조사를 보유한 자동차 왕국인 동시에 신칸센 고속철까지 개발한 철도 왕국이다.

그런데 얘들은 자동차와 철도뿐만 아니라 '자전거 왕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륜차는 보행자와 자동차 사이에 껴서 만년 콩나물 신세를 면치 못하는 중인 반면, 일본은 이륜차를 더 많이 볼 수 있으며 도로나 주차 시설이 자전거를 더욱 배려하는 형태로 갖춰져 있다.

이건 일면 수긍이 가는 얘기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소득 높고 잘 사는 국력· 경제력에 '비해서' 서민이 자동차 굴리기는 훨씬 더 힘들게 돼 있다. 고배기량에 덩치 큰 차는 더욱 제약이 심하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배려와 혜택을 받는 경차의 배기량이 1000cc 이하로 정해져 있지만 저기는 800도 아니고 겨우 660cc이다. 그것도 21세기에..;; 일본도 한국 만만찮게 산과 험지가 많은 동네인데 저건 세계 자동차들 평균 덩치를 생각해도 너무 가혹한 제약이 아닌가 싶다.

또한 저기는 불법주차 단속이 이곳 반도보다 넘사벽급으로 더 자비심이 없으며, 애초에 1960년대에 마이카 시대가 시작되던 시절부터 차고지 증명제가 딱 시행되어 잘 정착된 걸로 유명하다. 차고든 유료 공영 주차장이든 주차 공간이 법적으로 확보돼 있지 않으면 자가용 구입을 아예 못 한다.
마치 컴퓨터에서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돈 주고 사야 하며, 눈에 보이는 원자재뿐만 아니라 무형의 기술 지원과 서비스에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듯.. 차를 샀으면 굴리는 것뿐만 아니라 세워 놓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도 주거비만큼이나 돈이 든다는 관념이 박힌 것이다.

우리나라야 지금처럼 건물과 주차장들이 완공돼 버린 와중에 차고지 증명제를 도입하기에는 대략 곤란한 지경이 됐다. 자동차의 판매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이니 자동차 회사 영업 사원들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미국으로 치면 총기 규제 정책 vs 총기 제작사들의 로비와도 얼추 비슷한 구도처럼 됐다.
할 거면 1980년대에부터 했어야지. 옛날 석유 파동 때 외화 아끼려고 차량의 배기량과 엔진 기통수에다는 온갖 규제를 걸었으면서, 정작 차고지 확보 관련 규제는 시행을 왜 안 했나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전기는 1970년대부터 승압을 잘 끝낸 반면에 자동차 쪽으로는 정치인들이 상대적으로 선견지명 안목이 없었던 셈이다. 반대로 일본은 철도 궤간과 전기 규격은 낭패 봤지만 자동차 주차 문화는 잘 정착시킨 경우에 속한다.

아무튼 일본은 경제력 대비 한국이나 미국보다 차 굴리기가 더 비싸고 빡센 나라이다.
그럼 자가용 말고 대중교통은? 대도시엔 물론 잘 구축돼 있고 속도 빠르고 정시성도 높다.

일본은 철도 왕국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지하철 역마다 온통 스크린도어들이 갖춰져 있지는 않다. 허나, 누군가가 선로에 투신 자살이라도 하면 고인이 불특정 다수에게 심한 민폐를 끼쳤다고 국가에서 유족에게 도리어 벌금을 매긴다. "자살을 하게 만든 사회 탓 국가 탓? 힐링힐링?" 그런 거 없다.
과거에 중국에서는 총살형을 집행하고 나서 총알값을 사형수 유족에게서 받아 챙기기까지 했는데, 마치 그와 비슷한 급으로 잔인하다면 잔인한 조치 같기도 하다.

허나 일본은 국민성이 민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이며, 거기는 철도 업계가 분초 단위로 열차 정시성에 목숨을 걸고 기관사까지 죽도록 갈구고 압박하는 곳이다. 평범한 전철도 몇 분 지연되면 역 직원들이 지연 증명서를 알아서 뿌리면서 승객들에게 너무 죄송하다고 굽신거린다. 그런 와중에 누가 자살해서 열차가 줄줄이 지연을 먹었다면 이거 얼마나 큰 민폐이고 피해인지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5년 4월에 JR서일본 관할의 후쿠치야마 선에서 전철이 과속 탈선 사고가 나서 기관사 포함 107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는데, JR서일본에서는 그로부터 무려 1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홈페이지 첫 화면에 그 날 사고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해 놓고 있다. 그걸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다시는 그런 사고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게 정상적인 추모이고 이성적인 재발 방지 다짐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세월호 노란 리본 타령은 가해자 당사자의 사죄도 아니고 시스템적인 안전 개선과도 상관 없이 그저 감성팔이 반정부 광기 폭동일 뿐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일본의 대중교통은 서비스 좋고 시간 관념도 투철하고 다 좋은데.. 비싸다.
우리나라 식 운임과 임률을 생각했다가는 놀라서 턱 빠질 거다. 정말 왕창 비싸며, 사철 간에 통합 환승 할인 같은 것도 없다. 하물며 장거리 간선인 신칸센 운임은 국내선 비행기보다도 더 비쌀 정도이다.

그러니 일본이 비록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나라는 아니겠지만 미국 같은 나라도 아니니, 가까운 거리는 그냥 걷거나 자전거 타는 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북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일본도 자전거는 등록하고 번호를 받아야 될 정도라고 한다. 굉장히 뜻밖이다. 물론 북한처럼 주민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질서 유지가 필요할 정도로 자전거가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저기서는 학생들, 특히 여자애들도 등하교나 알바 하러 출퇴근 할 때 자전거 많이 타는 거 같다.
어쩐지 일본의 사건사고 같은 이야기들을 봐도 가해자나 피해자들이 그 당시나 직전에 자전거 탔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극단적인 예로는 콘크리트 살인 사건(1989)에서도 그렇다.
또한 철권 시리즈에 나오는 '카자마 아스카'자전거 끌고 다니는 여고생 컨셉이다.
이제야 그 바닥 문화가 좀 이해가 되고 퍼즐 조각이 짜맞춰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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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권위주의

그럼 이제 민감한 주제들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조금씩 논해 보겠다.
일본에는 덴노라는 국가 상징 겸 정치· 종교 복합체 중심 구심점이 있으며, 여기 한국보다 뭔가 전체주의스러운 분위기가 더 강하다. 일제의 패망 후에야 덴노가 인간 선언을 하고 젊은 세대들이 많이 자유분방 개인주의스러워졌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일본의 다른 분야는 몰라도 정치계나 법조계는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보다 권위주의가 훨씬 더 심하고 경직돼 있다. 실수나 잘못· 착오가 생겨도, 누굴 억울하게 누명 씌워서 몇십 년 옥살이 시키고 나서도 그걸 시인해서 직접적인 표현으로 사죄 따위는 거의 안 하다시피한다.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면 자기 권위와 위신이 깎인다고 생각한다. '엔자이'(원죄) 사건이라고 검색해 보면 이런 예가 여럿 나온다.

사고방식이 원래부터 저렇고 '자국민'한테조차 저러는데, 하물며 쟤들이 자기보다 (엄밀히 말해) 국력이 딸리는 외국을 상대로 위안부 피해 문제 같은 거는 절대로 대놓고 사죄할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만치 간접적으로나마 유감 표현했고 돈 이만치 줬고, 이 주제 얘기 더 안 꺼내기로 지도자들끼리 서로 퉁쳤으면 나름 "걔네 입장"에서는 많이 양보하고 챙겨 준 것에 가깝다. -_-;;

뭐, 일본이 저 따구로 나오는 건 이스라엘 앞에서 가히 '도게자' 급으로 굽신굽신 사죄하는 독일과는 참 비교되는 모습이며 본인이라고 해서 보기 좋을 리 없다. 그럼 쟤네들은 원래 저런 놈들인가 보다 하고 우리로서는 과학 기술과 경제와 힘으로 극일을 이루는 것밖에 현실적인 답이 없다. 그 신사적인 독일조차도 이스라엘 급의 국력과 국제 위상이 있는 나라 앞에서나 굽신굽신이지, 다른 듣보잡 소수 민족이 나치에게 피해를 입은 건 상대적으로 모르쇠인 걸로 비판받는 건 변함없다.

이런 넓은 맥락에서의 이해 없이 그저 소녀상에다 반일 반일거리고, 일본하고는 뭘 하고 오든지간에 무조건 굴욕 매국 협상이라고 헛소리 하는 애들.. 정말 지겹다. 백 날 그렇게 설쳐 봐라, 일본의 태도가 바뀌는 게 있겠나?
그리고 또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북괴와 중국한테 그만치 부당하게 당해 온 걸 반의 반만치라도 따지고서 일본에 집착하는 거라면 또 내가 말도 안 한다. 북괴 김 정은이 6· 25 전쟁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 남조선을 향해 사죄를 할 것 같아 보이냐? 그와 똑같은 맥락이다.

4. 그나마 중국· 북한보다는 더 가까이해야 할 대상

동북아시아 한중일 CJK 국가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로서는 일본은 비교적 가까운 과거사의 앙금 트라우마 때문에, 중국은 지금 당장 국가 프레임과 이념 차이 때문에 현실에서는 서로 마냥 손잡고 친하게 뭉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북괴? 걔들은 국가 프레임· 이념 차이를 넘어서 그냥 묻지 마 남조선을 체제 전복+적화시키려고 눈에 시뻘겋게 불 켠 쌩 양아치에 광신도+노예 집단일 뿐이고. 통상적인 경제력 군사력으로는 그걸 이룰 수 없으니 역사왜곡, 간첩질, 사이버전 선동질 등 방법도 갈수록 교묘하고 추잡해지고 있다.

통일 후에도 김돼지 동상이랑 주체사상 같이 껴안고 살 게 아니라면, 화해네 경제 협력이네 하는 개수작에 절대 응하지 말고 그냥 왕따 고립만이 답이고 진리이다. 굳이 먼저 북폭 하고 쳐들어갈 필요도 없으니, 굶겨 죽이기만 하면 된다.
일부 미사일 발사체 기술이나 소프트웨어 기술이 우리보다 앞서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예외를 빼면 배울 것 선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동북아 이웃 나라들 중에 남조선이 제일 가깝고 친하게 지내야 하는 상대는.. 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이다.
그리고 제일 본받고 배워야 할 상대를 꼽자면 그건 친하게 지낼 대상보다도 더욱 단호하게 일본이다.

물론 구 일본군의 흉악한 전쟁 범죄라든가 그 스타일의 병신 같은 조직 문화와 똥군기 따위를 본받자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걔네들은 그런 지랄맞은 시스템 하에서도, 우리의 입장에서는 척결해야 할 소위 '일제 잔재'라는 것들의 본거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내 관심 분야도 보태자면 한자 같은 불편한 문자를 쓰고도 어쨌든 근대화를 이루고 과학 기술 강국 선진국이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그렇게도 컴플랙스를 갖고 있는 과학 분야 노벨 상도 도대체 몇 개를 탔냐 말이다.

일본이 겉으로는 화해 유감 사죄 운운하면서 한편으로는 윗선에서는 모르는 척 망언 씨부리고 독도는 일본땅이다 교육을 해?
괘씸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래 봤자 군사적으로 같은 친미 동맹이고 동일한 자유 진영 이념 프레임을 공유하는 국가끼리 대놓고 군사 충돌이 일어날 확률은 중국· 북한보다야 훨씬 낮다.

저 정도 앙금과 마찰이 있으면 우리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얻어낼 거 얻어내면서 한편으로는 "일부" 극렬 민간단체를 모르는 척 묵인하면서 소녀상 한두 개쯤 놓고 시위든 하면서 맞불 놓으면 된다.
딱 그 정도까지만. 그건 나도 전략상 인정한다. 뭐 아무 티 안 내고 묵묵히 실력만으로.. 현대차· 삼성 전자가 일본 기업들 쳐발랐던 것 같은 방식으로 일본 이기는 게 제일 좋고 이상적이겠지만, 그럴 수만은 없고 현실에서는 감정상의 카타르시스도 약간은 필요하지.

필요 이상으로 반일 반일 거리는 애들이 진짜로 애국심? 민족 정기? 그런 순진한 이유로 일본 비판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매우 드물다. 오로지 자국 비하와 북괴의 범죄 물타기라는 매우 불순한 목적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런 비굴한 사고방식으로 일제의 식민사관 내지 조센징 엽전 비하는 어째 비판하고, 무장 항일 독립투사는 어째 칭송할 수 있는지 내 판단력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전국 방방곡곡에 무슨 몇백 개씩 소녀상 세우자고 유세를 떨거나, 특히 아직까지도 우리나라가 친일 청산을 못 했네 웃기는 소리 하는 애들은 우리나라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된다. 누구 때문에 왜 친일 부역자 군경을 활용해야 했는지만이라도 정확하게 가르치면 아무 문제될 거 없고 거짓을 팩트로 격퇴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5~20년 전부터 본인을 봐 온 분들은 잘 알 거다. 난 예나 지금이나 주된 연구 개발 분야가 한글 입력이고, 전통적으로 얼마나 열혈 반일 민족주의자였는지를 말이다.
그랬는데 내가 이렇게 돌아섰을 정도면, 저쪽에 있는 애들이 정말 일관성 없고 주적 구분을 못 하고 필요악과 절대악을 분간 못 하는 거다. 나이가 들수록 "어 저건 아닌데..;; 왜 중국 북한에다가는 단 한 마디도 말이 없지?" 하는 거부감이 들면서 갈라서게 됐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구든 일본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7/05/13 08:34 2017/05/1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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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정희 대통령의 자녀들

1. 박 근혜(1952)

* 주의: 오늘은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오랜만에 정치 얘기 좀 꺼낼 것이고 글 중간에 필터링하지 않은 진지한 욕설도 늘어놓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미리 양해 구함.
나하고 정치 성향이 맞지 않고 북괴는 같은 '우리민족'이니 남조선의 존립에 전혀 위협이나 해가 되지 않는다고 태평스럽게 생각하는 분, 내 글을 팩트와 논리로 반박· 저격할 의향이 없는 분은 박 근혜 얘기는 그냥 건너뛰기 바란다. 난 분명히 미리 주의를 줬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나름 이공계 출신이고, 잘 알다시피 그냥 독신이다.
이 사람은 바로 얼마 전까지 제18대 대통령을 역임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 과반 당선 등의 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헌법을 고치면서 18년씩이나 대통령을 한 부친과는 달리, 딸은 예정되었던 임기도 못 마치고 탄핵 인용 파면으로 대통령 생활을 마감했다. 하긴, 만기 퇴임을 못 한 건 부녀가 동일하네..;;

글쎄, 내 소신을 말하자면 본인은 박통이 재임했던 4년 동안 약간이나마 행복했다. 지금은 그 행복이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어 마음이 착잡할 따름이다.
박통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의견에 대해서야 개인 자유이며 내가 더 시비를 걸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이 무능했다거나,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에는 본인이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한 게 없긴 왜 없냐?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라.

  • 통합진보당 해산
  • 전교조 법외노조화
  • 한미 연합사 전시작전권 전환 무기연기, 전쟁 위협 시 선제 타격 가능
  • UN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
  • 개성공단 폐쇄 및 대북지원 (명목상) 0원

야당 후보가 죽었다 깨어도 절대로 안 하거나 못 할 일을 얼마나 많이 해냈냐? 박 근혜는 애초부터 DO보다 BE의 업적이 더 뛰어난 대통령이었다. 우리나라 적화통일을 한 4년쯤 늦춰서 최소한 시간은 벌어 줬다.

이 정도로 퍼 주고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이제는 북괴에 대해서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주민들 해치지 마라"가 아니라
네일건 쏘면서 "두 번 협상은 없어. 한 시간 내로 핵무기 포기해" 이래도 모자랄 판 아닌가?
전쟁? 얼어죽을 북폭 선제공격 같은 건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모든 돈줄을 차단하고 가만히 내버려두기만 해도 된다. 급한 건 북괴이지 우리가 아니다. 모든 정황이 우리에게 유리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대화나 협력으로 북핵을 해결하자 나불대는 인간말종 개새끼들은 정말 대놓고 종북 개빨갱이들 아닌가? (너무 화가 치밀어서 욕설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Let's make North Korea great again이다.
꼭 저러는 놈들이 일제에게 비굴하게 평화를 구걸했던 구한말 매국노 친일파는 같은 입으로 어째 저렇게 욕을 해 대나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박통 레카는 행적이 분명히 있다. 단지 종북좌빨들이 좋아하는 행적이 아니었을 뿐이다. 레카가 훌륭한 대통령이었던 이유는.. 적들의 평가가 말해 준다. 이 이상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로동신문 2016년 3월 16일자라고 함. 그로부터 딱 1년 뒤에 북괴의 "꿈은 이루어졌다."

바보 멍청이들이 꼭 "위수김동 장군님 만세"만 외쳐야 종북인 줄 알어.. 사탄 마귀가 빛의 천사로 나타나지 그럼 반공 포스터에 그려진 것처럼 뿔 달리고 꼬리 달린 흉측한 괴물로 나타날 줄 아냐?

박 근혜가 아들이 비리 저지른 전직 대통령, 부인이 뇌물 받은 전직 대통령 등 온갖 친인척 비리가 얽히고 설켜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청렴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저런 거 다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지금의 뇌물 수사네 구속이네 하는 거.. 정말 정의를 위해서 하는 건 1도 아니라는 것쯤은 진영논리로 양심과 지능이 마비되지 않은 한 삼척동자라도 알지 싶다. 개돼지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기억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학습효과가 있는 사람을 속이고 선동할 순 없지!

레카가 탄핵돼야 하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 거의 전부가 탄핵까지 당할 잘못도 아니고 그냥 지가 닭그네가 싫은 이유들(= 좀 심하게 말하면 적화통일에 걸림돌이 되니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더라.

  • "북괴한테 물어 보는 건 괜찮고 최 순실한테 물어 보는 것만 그렇게까지 죽을 죄냐?" (다른 비정치적인 주제도 아니고 인권 결의안 같은 아주 크리티컬한 것을)
  • "지금이 어느 시댄데 빨갱이 타령이냐고? 그럼 더 오래된 친일파· 위안부 타령은 뭐냐?"
  • "그 무개념녀는 그래도 허접하게나마 승마 단체전 메달이라도 땄지, 수많은 고시낭인 취준생들을 농락하고 아무 스펙 없이 특혜만으로 공기업 합격부터 한 뒤에, 대충 쓴 이력서 달랑 제출한 누구 아들은 그럼 뭐냐? 게다가 뭐 저런 놈이 서민 타령이냐?"

등, 저격할 아이템들은 한도 끝도 없다.

판결문 어딘가에 있던 문장인데..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고? 나 참 기도 안 차서.. 외국까지 나가서 북핵 열심히 옹호하고 실드 치던 모 대통령의 짓거리는 씨발 그럼 자국 헌법 수호 의지가 있는 행동이더냐? 사람들이 진짜 큰 위험한 죄가 뭔지 우선순위 분간을 못 한다.
자 그럼.. 흥분은 가라앉히고, 다음 얘기로..

2. 박 근령(1954)

이분은 박 근영, 박 서영을 거쳐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을 어찌 된 일인지 두 번이나 했다. 서울대 음대 나왔으며, 그 이름도 유명한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새마을 노래'의 실질적인 작곡자로 알려져 있다.

이 글을 쓰는 본인은 1980년대생으로 박통은커녕 전대갈 시절을 경험한 기억조차 없다. 서울 올림픽 이전 시기는 직접체험의 기억이 없는 선사시대의 영역이다. 민주화 운동 같은 것도 모름.
허나, 새마을 노래를 동요 테이프에서 들은 적이 있고 엄청 옛날 음악 교과서에서 악보를 보기도 했다.

새마을 노래는 가사 내용대로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기 좋게", 노동요처럼 참 흥겨운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기서 싸우는 건 같은 편끼리 치고 받고 싸우는 게 아니라 적군(=북괴)과 싸운다는 얘기다. 성경에서 느헤미야서에 완벽한 예시가 있다. (느 4:15-18)

이 새마을 노래는 공식적으로 박 정희 대통령의 작사 작곡으로 등재되어 있다.
일단 작사는 아랫사람을 시킨 뒤 대통령 이름만 올린 게 아니라 정말로 박통 당사자가 한 것으로 보인다. 저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교사와 장교를 모두 역임했고 그림과 글씨, 음악 등 예체능에도 두루 조예가 깊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작곡에 대해서는 사실은 세월 간격을 두고 조금 상이한 증언이 존재한다. 2004년경 굿데이 인터뷰에서는 작곡을 딸이 다 했다고 나오지만 더 최근 인터뷰에서는 작곡까지 아버지가 했는데 딸은 그걸 악보로 받아 적고 편곡만 한 것으로 나온다(2008년 11월자 인터뷰, 그 뒤 2015년에도). 어떤 형태로든 그 당시 대통령의 영애가 개입을 했다.

박 근령은 훗날 1982년에 대기업 회장 가문 아들과 결혼했으나 6개월 만에 이혼하고 오랫동안 언니처럼 솔로로 지냈다. 그러다 그로부터 30년이 넘은 2007년에 50이 넘은 나이로 무려 13살 연하의 전문대 교수와 재혼했다. 자녀는 없음.

3. 박 지만(1958)

육사까지 나오긴 했지만 잘 알다시피 젊은 시절에 방황 많이 했고, 40대 중반 나이가 된 2004년에야 16살 연하의 변호사와 결혼했다. 그 이듬해에 득남했다가 2014년에 9살 터울의 둘째 아들을 얻었고, 그 다음 2015년에는 쌍둥이 아들을 얻어서 자식은 아들만 넷이다. 부인이 젊다지만, 그래도 58세의 나이에 얻은 아들이니 정말 엄청난 늦둥이이다. 박 정희가 1917년생인데 증손자도 아닌 막내 손자가 2015년생이라니...

박 지만이 학교에 들어가던 1970년대 초중반엔 이제 막 고등학교 평준화가 시행되었으며, 학교 배당에 컴퓨터 추첨이 동원되었다.
KIST가 정부로부터 이거 뺑뺑이를 의뢰받아서 실시했는데, "추첨을 살짝 조작해서 대통령의 아들인 박 지만 군을 그래도 명문 K고에다가 배정하라"라는 외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KIST 전산실 실장이던 성 기수 박사가 이에 소신껏 응하지 않고 아무 조작 없이 추첨을 돌려서 그는 J고에 진학하게 됐다... 고 성 박사의 회고록이 전해진다. K와 J가 어디인지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이렇듯, 이쪽 가문은 결혼 여부와 시기, 자녀 유무나 시기 같은 가정사가 다들 평범하지 않아 보인다.
사실은 박 정희는 어렸을 때 억지로 떠밀려서 결혼한 전 부인 김 호남에게서 얻은 딸도 하나 있다. 박 재옥(1937)이라고 박 근혜 전대통령의 입장에서는 15살이나 더 많은 이복 언니이다. 이분은 그나마 평범하게 산 듯하며, 친부에게서 그렇게 아주 버림받지는 않고 특혜도 종종 받으며 지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5/04 08:30 2017/05/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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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진왜란과 관련된 조선 기생들

임진왜란 때 활동한 기생이라 하면, 경남의 진주성 촉석루에서 적장을 껴안고 장렬히 산화한 논개가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승부 게임을 할 때 나의 가장 약한 말을 상대방의 가장 강한 말과 자폭시켜서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전술을 '논개 전술'이라고 한다.

그런데 3· 1 운동 때 수원의 유 관순이라고 불리는 다른 여성 열사(이 선경)도 있었듯이, 임진왜란 때도 평양의 논개라고 불리는 '계월향'이라는 다른 기생이 있었다. 일본군 장수에게 겁탈당하자 이왕 버린 몸인데 그를 꾀어서 신임을 얻고, 아군 군사를 몰래 잠입시켜서 그 적장을 참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거사를 치른 뒤 두 사람이 다같이 탈출은 할 수 없어지자..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그 아군에게 "나는 어차피 더럽혀진 처지이니 날 죽이고 가 주세요. 님 혼자라도 살아서 나라를 구해야죠" 이렇게 부탁하고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진주, 평양 다음으로는 강원도 고성에 월이(WALL-E? 개드립 -_-;;;)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얘는 전쟁 중은 아니고 전쟁 전에 염탐을 위해 미리 침투했던 일본의 어느 첩자와 정분이 났다. 그리고 첩자가 그려 놓은 지도를 몰래 엉뚱하게 바꿔 놔서 훗날 왜군을 대거 엿먹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건 딱 봐도 현실성이 낮으며 공로를 검증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러니 실존 인물이 아니라 마치 윌리엄 텔 같은 주작 구전 설화일 뿐이라고 반박해도 할 말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설화도 아무 근거 없이 무작정 생긴 건 아닐 텐데 그 시절에 고성에서 진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제가 임진왜란에 앞서서, 그리고 한일 병합 전에 경부선 철도 부설을 위해서 자국 첩자를 보내서 한반도를 무단으로 막 측량해 갔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조선 자국의 지리 연구가인 김 정호에 대해서는 옥사설을 꾸민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2. 벨기에의 폭군

세계사에 악명을 떨친 인간 백정 학살자로는 김 일성, 이디 아민, 폴 포트, 마오 쩌둥, 히틀러, 스탈린 같은 유명한 인물이 있다. 그런데 딱 한 명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저기서 4위)는 악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생소하다. 본인은 최근에야 알게 됐다.

골수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에서.. 도둑질 하다 걸린 사람의 손목을 자른다는 얘기는 들어 봤다만,
이 미친놈은 피식민지 아프리카(콩고) 흑인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시켜서.. 고무 생산 할당량을 못 채우면 멀쩡한 사람 손목을 잘랐다.
다음에도 못 채우면 팔을 통째로 자르고, 3차 미달 때는 사형.

무슨 내전 지대에서 지뢰 밟아서 다리를 잃은 사람들도 아니고, 저렇게 손목· 팔이 잘린 흑인들 사진이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ㅠㅠㅠ

사진 보기 (약혐 주의)

아니, 그냥 평범한 채찍질이나 태형으로 벌 주는 것도 아니고, 손· 팔을 잘라 버리면 로동을 할 수가 없어지는데 그럼 1차 미달 이후부터는 바로 죽으라는 소리였나 싶은 의문이 들기도..

지금 북한에서 사람들이 지위를 막론하고 탈북하는 이유도 뭔가?
저렇게 미치도록 일해서 채워야 하는 할당량을 생각하니 답이 안 나와서 목숨 걸고 탈출하는 거다. 저렇게 목숨을 저당잡힌 채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그저 한숨만..;
그 당시 영국도 식민지 착취와 아프리카 로동자 인권 유린으로 치면 딱히 할 말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국주의 가해국들이 보기에도 벨기에는 너무 막장이어서 진상 조사를 벌이고 인권 개선을 촉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식민지 지배를 처음 해 보는 후발주자 나라들이.. 경험과 노하우도 없고 그저 피지배자들 기선제압을 하는 걸 목표로 극악무도한 공포 폭력 통치를 시행하곤 했다.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도 괜히 무단 통치로 시작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일제의 입장에서.. 조선은.. 그렇게도 악랄하게 수탈 착취한 것에 비해서 솔까말 그리 막 가성비 맞는 식민지도 아니었다. 한반도가 무슨 산유국도 아니고 저렇게 땅 넓고 식량이나 지하자원 넘쳐나는 곳도 아니잖아.. 뭔 뽕을 뽑겠냐? 걍 만만하게 합병해서 덩치 키우고, 특히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좋으니까 정한론이 나왔던 거다.

그나저나.. 매국노 이 완용이 1909년에 뜬금없이 바로 저 레오폴드 2세의 서거(?) 추도식에 참석하러 명동 성당에 가 있다가 이 재명 의사에게서 칼빵을 맞았다. 우리나라와는 이렇게도 인연이 연결된다.

3. 이 승만 대통령이 내린 칭호들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 이 승만이 후세에게 남긴 행적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뿐만 아니라 각종 이름에서도 은근히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이 박사 대통령 각하께서 XXX라는 이름을 하사해 주시였습니다~~"

  • 무궁화호: 지금 같은 완행 간선 열차 말고 1960년 2월에 등장한 디젤 기관차 기반의 경부선 특급 열차였는데, 그 시절에 서울-부산을 6시간 40분 만에 달리는 호화 열차는 지금으로 치면 KTX나 다름없는 포스를 자랑했다. 이 열차의 이름을 대통령이 직접 지어서 붙인 거라고 대한뉴스가 인증했다. 열차 이름 다음으로는 아무래도 군사 분야의 명칭이 많다.
  • 연무대: 논산 육군 훈련소의 별칭. 1952년에 역시 대통령 각하가 붙인 이름이다. 광주의 '상무대'는 어떤가 모르겠다.
  • 을지: 양구에 있는 을지 전망대 내지 을지 대대. '을지문덕' 장군에서 착안해서 대통령이 붙였다. 하긴, 서울에는 '을지로'라는 길이 있는데 그건 이 대통령의 전부터 존재했던 명칭이다. 강원도 여행을 갔다 오면서 알게 됐다.
  • 파로호: 출처는 역시 동일한 강원도 여행이다. 북괴 멧도적 '오랑캐를 격파하다'라는 뜻으로 대통령이 붙인 이름이다.

한때는 이 승만 아래의 어느 아부꾼 부하가 서울특별시의 이름까지 각하의 호를 딴 '우남시'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저 할배는 대통령 이상으로 왕처럼 행세하는 걸 좋아했으며, 커다란 자기 동상과 자기 얼굴 들어간 지폐까지도 만들긴 했다. 하지만 "우남시"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오글거렸는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야 그럼 내가 북괴 김 일성이랑 뭐가 다르게 되냐"라는 식으로 반문했다고 한다. =_=;;;

그 대신 "우남로"라는 도로명은 전쟁 후 1950년대 중반에 닦인 성남시 한 구석의 어느 도로에 붙어 있다.
저 할배는 과시욕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큼직한 자기 동상을 세우고, 자기 생일을 국경일 급으로 기념하고, 지폐에다가 자기 얼굴 사진을 그려 넣었다. 그런 부심은 있었지만 그래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도를 넘어서는 수준의 개인 우상화와 숭배 강요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건국 거의 직후부터 성탄절을 빨간날로 지정했으며, 군대에 군종 병과를 별도로 꼭꼭 챙겨서 장병들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 (황군을 표방하는 일본군엔 그런 거 당연히 전무했음)

저런 이름들과는 달리, 대통령의 관저의 명칭이 경무대이다가 이 승만 이후에 지금의 '청와대'로 바뀌었는데, 이건 박 정희가 아니라 그 전인 윤 보선 때 그렇게 된 거다. 그리고 박 정희는 이름을 지은 것보다는 현판이나 돌에다 글씨를 쓴 게 더 많이 전해지는 것 같다. 숙정문 현판, 옛 광화문 현판, 국기태권도,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등.

4. 영예로운 유물과 그렇지 않은 유물

우리나라에는 현충원만 있는 게 아니라 파주 적성면에 적군 묘지가 있다. 남한 영토에서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북한군 및 중공군의 유해들을 최소한의 예우만 해서 매장해 놓은 것이다.
조선의 임금 중에 세종대왕 영릉은 멀리 여주의 최고의 명당에 거대한 규모로 조성돼 있다. 성군이 죽으면 무덤을 가장 으리으리하게 꾸며 주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한 전통이며, 성경에도 나온다(대하 32:33).

그에 반해 연산군은 조/종 칭호를 못 받았으며 무덤도 '능(릉)'이 아닌 그냥 '묘'가 서울 북부 한구석에 초라하게 놓인 게 전부이다. 사람이 유한한 일생 동안 남긴 행적을 바탕으로 후세들로부터의 평판이 영원히 달라지는 건 내세· 종교관과 관련해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예전에도 한번 얘기했듯이 6· 25 전쟁 중에 우리 국군이 이룬 최초의 승전은 대한해협 해전이다. 육군이 아닌 해군의 몫이다. 그 전투의 주역이었던 백두산함 자체는 진작에 퇴역했지만 그 군함의 돛대는 해군 사관학교던가 어디에 고이 보존돼 있다. 역사적인 유물이니까 말이다.

그에 반해 천안의 독립 기념관에는 honor가 아닌 dishonor와 관련된 유물이 기념관 한구석에 실외 전시돼 있다. 바로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면서 남은 일부 건물 잔해들로, 특별히 첨탑도 여기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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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하되, 별다른 설명도 없고 울타리 같은 보호 장비도 전혀 안 두른 채로 내팽개쳐 놨다. 땡볕과 눈비를 고스란히 맞을 뿐만 아니라 관람객이 침 뱉고 심지어 오줌을 싸건 상관 없게 방치했다. 첨탑은 공터의 중앙의 제일 "낮은" 구덩이 비슷한 곳에다가 놔 뒀다. 참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전시해 놨다. 일부러 깨 부수고 파괴할 필요는 없지만, 애지중지 고이 모셔 두지도 않은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독립 기념관에 언제 직접 찾아가서 저걸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함의 마스트와 조선총독부 청사 첨탑은 이렇게 후세로부터 극과극 정반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북괴 정권이 붕괴하고 통일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나면 북한 관련, 김돼지 우상화 유물들도 99% 이상은 흔적도 없이 폐기하고 극소수 상징적인 유물만 이렇게 놔둬서 기록 겸 반공 교육 자료로 활용해야 하지 않나 싶다.

5. 탈북자가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방식

탈북자들 중에는 강 철환, 주 성하 기자처럼 현직 언론에 종사하면서 북한 쪽 소식통을 모니터링하고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사람이 있다. 최근에는 신문뿐만 아니라 박 진희 씨처럼 TV에 얼굴이 노출되는 방송사 기자도 등장했다.
언론 기자 입장에서 북한 내부 소식은 너무 극단적이고 엄청난 일이 많은데 검증은 어렵고 제보자의 신변도 보장할 수 없는지라, 취급하기 굉장히 꺼려지는 분야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처럼 제도권 언론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혼자 강연을 뛰고 책을 쓰고 기자회견을 열면서 상대적으로 음지에서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탈북자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몸을 덜 사리면서 개인적인 탈북 과정이나 수용소 경험담 같은 참혹한 얘기를 막 거론하는 편이다. 남자만 있는 게 아니라 영어 공부해서 TED에까지 강연을 한 걸로 유명해진 이 현서, 그리고 박 연미 같은 젊은 여성도 등장했다. 이렇게 public형과 private형 두 그룹을 나눠서 생각할 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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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북한의 인권 사정은 매우 참혹하며 탈북자는 인도적으로 대해야 하긴 한다. 그러나 이들 중에도 위장 탈북자, 안보 장사 사기꾼이 있다. 심지어 탈북자 커뮤니티를 이간질하기 위해 북괴가 의도적으로 제3국을 거쳐 보낸 간첩도 있다. 그러니 탈북자의 증언을 교차검증하여 팩트를 걸러 내는 문제가 쉽지 않다. 당장 검증이 안 되는 주장도 마냥 무시하고 버릴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31 08:23 2017/01/3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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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지금까지 수집했던 것들을 나열해 보니 글 한 편 분량이 되는구나.

1. 이 순신과 이 완용

이 순신 장군이 동명이인이 있는 것처럼 친일파 이 완용도 "행적까지 비슷한" 동명이인이 있구나. 굉장히 대조적이다.
무의공 이 순신(1553-1611)은 충무공 이 순신(1545-1598)과 동시대를 살았던 무관 정도를 넘어서 아예 충무공의 부하, 부사수 겸 사적인 절친이었다. 기막힌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전사했을 때 응당 이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단, 두 이 순신은 이름에 한자는 완전히 다르다.

한편,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그랜드슬램을 모두 달성한 관료 출신의 매국노 1858년생 이 완용 말고, 1872년생 조선 황족 이 완용도 있다. 이 사람은 악행의 레벨이 비록 오리지널 이 완용보다는 못하지만, 역시나 일제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고 일제 강점기 내내 갑부로 왕창 잘 살았다. 친일 인명 사전 등 이 분야 문헌들에는 몽땅 논란의 여지 없이 이름이 수록됐다.
저 두 이 완용도 한자는 '용' 한 글자가 차이가 있다.

참고로, 내가 이 순신이라는 이름에 저런 동명이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건 철도 덕분이다. 지도를 펴서 KTX 광명 역 주변 지리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인근의 서독산에 '무의공 이 순신의 묘'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명 역 내지 이케아 광명점 바로 근처이다.

2. 1870년대 중반생의 유명인사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 승만과, 아프리카의 성자라 불리는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생년과 몰년이 완전히 같은 동시대 사람이다. (1875-1965)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나이만 이 승만· 슈바이처보다 딱 한 살 더 많고(1874) 몰년은 동일하다.
이스라엘의 건국 대통령 겸 과학자인 하임 바이츠만은 1874년생이고, 김 구는 1876년생이다. 다 그렇게 동시대를 산 듯하다.

처칠과 슈바이처는 잘 알다시피 노벨 상 수상자이다. 그런데 나이가 1년 어린 슈바이처가 1952년에 평화상을 먼저 받았고, 처칠은 그 이듬해인 1953년에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이 흥미롭다. 처칠은 "내가 노벨 상 당첨이라고? 난 2차 세계 대전을 승전으로 이끈 공도 있으니 그럼 평화상이겠지?"이라고 물었는데 "아니요, 문학상이랩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좀 섭섭해(?)했다고 전해진다.

3. 이 희승과 이 병도

일석 이 희승은 우리나라의 저명한 국어학자이며, 특히 우리에게는 중등학교의 국어 교과서에 실린 수필 <딸깍발이>로 잘 알려져 있다. 호의 의미가 ‘아인슈타인’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한편, 두계 이 병도는 우리나라의 저명한 역사학자(특별히 국사학자)이다.

국어학과 역사학은 비록 인문계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다루는 내용이 서로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굳이 공통분모를 접목하자면 역사 언어학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날 것 같다. 그런데 위의 내가 보기에 두 분은 느껴지는 이미지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게 많다.

일단 저 두 분은 생년과 몰년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동시대 사람이다. 똑같이 1896~1989이다. 그리고 모두 일본 유학 경험이 있으며 서울대 라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각각 자기 분야에서 일부 계층--특히 서울대라든가 우리나라 기득권층을 싫어하고, 친일파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은--으로부터 친일 어용학자라는 비판을 좀 집요하게 받고 있다는 것까지도 일치한다. 본인은 그런 비판이 왜 있는지 배경은 이해하지만 그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4. 1936년이 뭔 일이 있었나

1936년이라 하면 손 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받은 게 이때이다.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마지막으로 열렸던 올림픽이요, 개최 주체가 나치 독일인 덕분에 한국인이 히틀러를 구경할 수 있었던 매우 드문 기회였다.
학계에서는 이 해에 우 장춘이 종의 합성 논문으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게다가 같은 해에 공 병우도 안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이는 다들 다르다.

서양으로 가면 영국의 앨런 튜링이 손 기정과 동갑인 1912년생이고 바로 저 때에 계산 가능한 문제와 튜링 기계라는 개념을 제안한 안드로메다급의 논문을 썼다.
한편, 찰리 채플린이 리즈 시절 작품인 '모던 타임즈'를 발표한 때도 1936년이다.
채플린은 1889년 4월생으로, 히틀러와 생일이 나흘밖에 차이가 안 나는 완전 동갑내기였다. 채플린은 그 콧수염 붙여서 히틀러를 풍자하는 연기를 하기도 했다.

하나 더.. 손 기정과 비슷한 연배인 우리나라의 문학가로는 황 순원과 서 정주가 있다. 두 분 다 공교롭게도 동일하게 1915년생, 2000년몰이다. 전공 실력에서는 둘 다 위대한 문인으로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황 순원은 일제와 독재를 거부한 깨끗한 이력 덕분에 더욱 칭송받는 반면, 서 정주는.. 그야말로 도를 넘어서고 실드 가능한 수준을 넘는 기회주의적인 행적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서 서로 좋은 대조를 이룬다.

5. 비행기 관련 인물들

1901년이 역사에서 뭐가 특별한 계기가 있기라도 했는지, 한반도에 비행기 조종사들이 대거 이때 태어났다.

  • 안 창남(1901-1930, 남자, 항일): 1921년에 일본에서 최초로 치러진 비행사 자격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 일단 한반도 땅에서 최초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닌 최초의 한국인이다.
    훗날 중국으로 망명해서 항일 조직을 결성하고 독립 운동도 했는데 1930년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 단명했다.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권 기옥(1901-1988, 여자, 항일): 1925년에 중국에서 비행사 면허를 따서 중국 공군에서 복무했다. 3·1 운동 참가로 인한 체포, 임시정부 요원 활동 등, 안창남보다도 더 열혈 독립운동을 했다. 천수를 누렸으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 신 용욱(1901-1961, 남자, 친일): 예전 글에서 소개한 바 있다. 사업을 하려고 일제 부역은 좀 했음. 자살로 생을 마감함.
  • 박 경원(1901-1933, 여자, 친일): 권 기옥과는 달리 민간 라인에서 비행사 면허를 딴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다. 하지만 신사 참배, 황군 위문 비행 등 유명인사 민간인으로서 친일 행위 저지를 건 다 저질렀기 때문에 오늘날의 평가는 다소 박하다.

박 경원의 경우 생애가 영화 <청연>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실존 인물의 친일 행적 때문에 이미지를 말아먹어서 영화는 작품성에 비해 별로 흥행을 못 했다. 그 옛날에 그것도 여자가 비행기를 몰고 하늘을 날았다는 건 요즘으로 치면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 소연 박사에 맞먹는 쇼킹 뉴스였을 텐데, 그런 급의 엘리트 유명인사가 전국을 돌면서 대동아 공영권 징병 권유 강연을 하고 얼굴마담 역할을 한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 박 경원도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해 안 창남과 비슷하게 단명했다. 근데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참 전에 죽었는데 막 심하게 친일 할 거리가 있긴 했나? 그건 좀 의문이다.

6. 허 현회와 김 기종

허 현회 씨는 현대 의학, 백신 등에 대해 병적인 수준의 불신과 음모론을 제기하고 검증되지 않은 자연 치료를 고집하면서 책도 쓰고 많이 유명해졌던 사람이다. 그러던 와중에 '헬쓰 카레' 같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서 더욱 비웃음을 사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 여름에 자기가 걸린 병을 못 고치고 결국 중년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김 기종 씨는 개량 한복+수염 차림으로 종북 성향 통일 운동을 많이 벌이다가 결정타로 주한 미국 대사에게 살인미수 테러를 저질러서 중형을 선고받은 범죄자이다.
진작부터 사상과는 별개로 성질· 인격도 이상해서 동일한 좌파 성향의 다른 사람들하고도 못 어울렸으며, 그렇다고 변변한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굉장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은 성균관 대학교 법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이도 비슷하고(각각 1961, 1959년생?) 80년대 초반이라는 학번도 비슷하다. 그 시절에 저 학교에서 무슨 마가 씌이기라도 해서 비슷한 시기에 갑자기 저런 동문이 배출됐는지는 모르겠다.

7. 임 백준과 최 백준

우리나라에 임 백준이라는 분은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취업해서 잘나가면서 IT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책도 썼고.
그리고 최 백준이라는 분은 국내에서 코딩· 알고리즘 및 정보 올림피아드 계열 강의를 뛰면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후자의 관심사가 알고리즘 설계, 최적해, 문제 풀이 같은 좁은 분야라면, 전자의 관심사는 컴터 업계의 변화 동향 빨리 빨리 받아들이고 예측하기,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 익히기, 좋은 직장 들어가서 몸값 비싼 개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기계발 같은 더 넓은 분야이다.

8.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

우리나라는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 후에 후폭풍 없이 좋게 곱게 잘 지내는 경우가 잘 없었다. 군인 출신으로서 퇴임 후에 (형식적으로나마) 사형 선고 받고 교도소까지 갔다 온 전직 대통령도 있고, 결국은 비리 수사 받다가 돌연 자살을 선택한 전직 대통령도 있다. 현직인 박 근혜 대통령은 퇴임 후 어찌 될지 모르겠다. 아니, 퇴임 후는커녕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도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 됐구나.
정치 문화가 성숙하지 못해서 비리 없이는 도저히 지지 기반을 모으고 정치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이런 풍조는 그저 정치인 욕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무식하지만 “그럼 니가 직접 해 보든가” 논리가 아직은 통용되는 분야인 것 같다.

현재 전직 대통령들 중에 살아 있는 사람은 전 두환과 노 태우, 이 명박이다. 그런데 전과 노는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돼서 경호만 받고 있으며, 노는 특히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라고 전해진다. 그러니 100% 완전한 예우를 받고 있는 사람은 후자 한 명뿐이다.
전땅크만큼이나 2MB 아저씨도.. 이념과는 별개로 좀 대기업 경영자 출신답게 좋게 말하면 노련하고, 나쁘게 말하면 교활한 구석이 있다. 재임 중에 광우뻥 촛불 때문에 고생 많았고 좌좀들이 선동하는 것만치 나라 망치고 나쁜 통치를 한 건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막 잘한 것도 아니다. 진짜 청렴하고 순진해 빠진 후임 여성 대통령을 접해 보니 저 특성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청렴하기만 한 건 안타깝지만 무능을 수반할 가능성도 높으니 말이다.

전직 대통령이 후임에 의해서 뭔가 문전박대 당한 사례가 있다. 이 승만이야 한번 하와이로 요양 갔다가 박 정희로부터 국민 정서상 입국을 냉정하게 거부 당하는 바람에 타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자기가 천신만고 끝에 세워 놓은 나라 땅에서 죽지를 못했다.
한편, 전 두환은 자기 때 올림픽 유치를 다 시켜 놨지만 정작 올림픽 개막식 때는 역시 국민 정서상 노 태우 정부로부터 입장을 거부 당해서 개막식을 자택에서 TV로만 봐야 하는 신세가 됐다. 물론 그 뒤로도 백담사로 피신하는 일도 벌어졌으니 육사 후배이자 부사수인 노 태우와 사이는 더욱 불편해졌다. 대머리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는 후배가 자기를 기대한 것만치 못 챙겨 주고 내팽개친 셈이니까. 헐~ 이런 일도 있었다.

9. 유럽의 공무원 출신의 과학자

뉴턴, 라부아지에, 아인슈타인은 전· 현직 공무원 출신의 과학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째 영· 프· 독일계가 나란히 한데 모였네.
뉴턴은 조폐국에서 근무하면서 자기 과학 지식을 동원하여 위폐를 판별하고, 화폐 위배범을 잡아서 사형 시키는 걸 즐겼다.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서 근무하면서 개인 시간에 연구를 계속한 끝에 노벨 상까지 받게 됐다. 과학자로서의 명성과 공무원으로서의 안정성을 둘 다 잡은 똑똑하고 부러운 사람 되겠다.

라부아지에는 세리로 있으면서 돈깨나 모아서 다이아몬드를 태워 보는 실험까지 했으나.. 프랑스 대혁명 때 인민의 적 브루주아 계급으로 찍혀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저런 유능한 과학자를 죽게 해서는 안 된다고 국제적으로 구명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광기를 막지는 못했다. 실제로 이 사람은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관리로서는 좀 부정축재도 한 사람이었다.

10. 예능인 출신의 발명가

공무원이 아니라 예체능 분야에 종사하면서 과학..이라기보다는 발명을 한 공학자가 있었다. 물론, 이공계 출신 중에도 음악 같은 예체능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인 사람이 있긴 한데 그보다는 예체능이 더 주업인 경우 말이다.

헤디 라마르(1914-2000)라는 여인은 배우인데 2차 세계 대전 중에 자국 미국의 전쟁 승리를 위해 통신 기술을 연구하던 중에 오늘날 패킷 기반 무선 통신 기술인 CDMA(코드 분할 다중 접속)의 근간 기술을 개발했다. 그 어려운 전자공학은 또 언제 공부하셨나..;; 남편이 이공계였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냥 작곡가였다니 더욱 경이롭다.

그리고 요제프 호프만(1876-1957)이라는 사람은 피아니스트인데 실용적인 자동차 와이퍼를 발명했다. 주기적으로 왔다갔다 움직이는 메트로놈의 동작에 착안해서 발명했댄다.. 피아노 실력도 괴수급이었다는데 완전 천재다.. ㅠㅠㅠ

Posted by 사무엘

2017/01/14 08:32 2017/01/1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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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다소 민망한 주제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열하고자 한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이 주제와 관련된 글을 1년에 하나씩은 쓴 적이 있었는데.. 관심 있으신 분은 '투신'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 보면 나온다.

1.
2012년과 2013년에는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깔려 죽는 사고가 한 건씩 있었다. 물론 피해자만 죽은 건 아니고 가해자도 나란히 사망. 자동차 위에라도 떨어졌으면 보통은 살던데 겨우 사람은 자신이 충격을 받고 깔렸다고 해서 투신 자살 가해자를 살릴 정도로 실드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동일한 패턴의 사고가 그로부터 3년쯤 뒤인 2016년에 또 반복됐다.
5월 31일 저녁, 광주 북구 오치동에서는 퇴근한 남편, 부인, 6살짜리 아들 이렇게 일가족이 아파트 단지 입구로 들어가는 중이었는데, 처지를 비관하여 동일 아파트의 20층에서 뛰어내린 한 20대 청년이 세 명 중 가장인 남편을 덮쳤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뛰어내린 그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깔린 40대 남성은 치명상을 입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약 3시간 만에 숨졌다고 한다.

누군가가 투신 자살한 것은 '사건'이지만, 투신 자살자에게 다른 사람이 깔려 죽은 건 '사고'이다.
안타까운 음주· 졸음운전 교통사고가 해마다 반복되는 것처럼, 이런 사고도 교통사고만치 잦지는 않지만 어째 이렇게 반복되나 모르겠다.

가해자는 공시를 준비 중인 공무원 지망생이었다고 한다. 허나, 잘 알다시피 살인적인 경쟁률을 자랑하는 그 시험에서 호락호락 좋은 결과가 나올 리는 없었을 것이고, 이 때문에 열등감, 무력감, 비관의식 등에 사로잡혀 극단적인 선택을 했으리라 여겨진다. 자살 말고 다른 극단적인 선택을 한 어떤 사람은 아예 정부 청사에 침입해 들어가서 어설프게 성적을 조작하려 하기도 했다. 어느 경우든 다 멘탈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그런데 저 사람의 경우, 자기가 죽으면서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워너비에 속하는 다른 '공무원'을 같이 죽게 했으니 이 아이러니를 말로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가장은 전남 소재의 어느 도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집은 광주). 부인 되시는 분은 그냥 남편도 아니고 최고로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던 남편을 하루아침에 잃은 충격과 대미지가 차마 감당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둘째 아이를 임신까지 한 상태였는데! 그 자살자 때문에 저 가정도 완전히 파탄 나고 말았다.

2.
이제 좀 옛날 이야기를 하겠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아직 어수선한 미군정 시절이던 1947년 5월 1일, 에블린 맥헤일(Evelyn McHale)이라는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여느 아파트도 아니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무려 86층, 거의 300m에 달하는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1940년대 당시엔 그 건물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이 사람은 무슨 모델이나 연예인, 유명인사도 아니고, 정말 평범하게 월급쟁이 직장인 생활을 하다가 평범하게 남친 사귀고 약혼까지 하고.. 정황상 자살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머릿속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단지, 약간 성깔 부리는 완벽주의자 성향은 좀 있었던 것 같으며, 유서를 보면 그런 기질이 더욱 느껴진다. (☞ 이 사건에 대한 더 자세한 정황 설명)

그녀는 운명의 그 날엔 별안간 집을 나와서 "남친에게서 결혼 프러포즈를 받았지만 난 좋은 아내가 될 자신이 없다. 난 어떤 남자에게도 좋은 아내가 못 될 것 같다. 그이는 내가 없으면 더 잘 살 것이다. 나는 가족· 타인을 불문하고 아무에게도 내 모습, 내 존재를 더는 노출하고 싶지 않다. 내가 죽더라도 제발 장례식 같은 거 치르지 말고 시신을 화장해서 완전히 없애 달라" 라는 요지의 꽤 염세적인 논조의 유서를 썼다. 그러고 나서 그 높은 곳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건물 아래는 사람과 차들로 가득한 뉴욕 시내 한복판이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닌 어느 리무진 승용차 위에 떨어졌다.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자동차는 굉음을 내며 박살이 났지만, 차가 그렇게 충격을 받아 주고도 그녀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즉사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단,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서 완전히 지우고 없애고 싶었던 그녀의 바람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오히려 나 같은 사람조차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 정도인 유명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떨어진 직후의 모습 때문이다. 시신은 마치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300m 미터 높이에서 투신 자살한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양호하고 평온했다.

마침 현장 근처를 지나던 어느 사진학도가 굉음을 듣고 투신 지점으로 달려왔는데.. 이거 보통 모습이 아님을 직감하고 현장 보존 상태에서 사진을 남겼다. 이건 인위로 연출한 장면이 아니며.. 섬뜩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살"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에블린 맥헤일의 투신 모습 보기

비록 겉으로는 저렇게 평온해 보여도 신체 내부는 다발성 골절, 장기부전, 폐출혈 등으로 다 망가졌을 것이다.
아무리 자동차가 충격을 흡수해 주고 공기 저항까지 있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수십 kg에 달하는 '인간'이 낙하산도 없이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졌으니..

하물며 그냥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면 300미터보다 훨씬 더 낮은 곳에서 투신해도 시신은 절대로 온전히 남아나지 못한다. 피 튀고 뼈 꺾이고 심하면 머리가 깨져서 뇌수가 새어나오기도 한다. 즉사할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졌다면 그 어떤 자세로 떨어지더라도 결국은 머리에까지 어떤 형태로든 충격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은 절대로 저런 우아한 자세로 죽지 못하며, 시신 수습하고 청소하는 사람들한테 큰 민폐만 끼친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에블린은 무슨 실연을 비관해서 자살한 게 절대 아니니 오해 없기 바란다. 오히려 멀쩡히 약혼/청혼까지 다 성사된 상태에서 자살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자기가 반대로 남친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남긴 꼴이 됐다. 그녀는 몇 개월 안으로 임박한 결혼이 자기 인생을 완전히 얽어매고 속박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죽기 직전까지는 아무것도 튀는 게 없는 삶을 살았는데 도대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사건 이후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는 자살 방지를 위해 쇠로 얽히고 섥힌 난간이 설치되었다.

3-1.
공교롭게도 에블린 맥헤일 이전에도 죽은 모습이 칭송의 대상이 된 여인이 또 더 있었다.
1880년대 말, 프랑스 센(Seine) 강에서 어떤 소녀가 익사한 채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옛날이어서 그녀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신원이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함. 외관상의 상처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실족사가 아니면 자살로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죽은 것치고는 얼굴이 아름답고 표정도 굉장히 평온하고 순수하고 행복해 보였던지라 이 시신을 검시한 어떤 사람은 즉시 데스마스크를 만들어 시신의 형상을 남겼다. 예술가들도 감탄했을 정도라고 한다. 저 소녀는 자기가 죽고 나서 몸이 저렇게 칭송받고 데스마스크가 만들어질 걸 과연 예상했을까 싶다.

L'Inconnue de la Seine

3-2.
한편, 에블린 맥헤일은 같은 미국에서 의문의 참혹한 죽음을 당한 엘리자베스 쇼트(Elizabeth Short), 일명 '블랙 달리아'라는 아가씨와 거의 동갑내기이다. 둘 다 1923~1924년생이고, 엘리자베스의 시신이 발견된 때는 1947년 1월 15일로 같은 1947년이다.

저 사람은 본격적인 할리우드 배우 지망생이었다. 시신이 발견되기 약 1주일 전부터 연락이 두절된 실종 상태였는데 이때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 길이 없다고. 하지만 이 사람이 옷이 다 벗겨지고 전신 피멍에 허리가 두 동강 나고 혈액과 장기 적출로도 모자라 입이 양쪽으로 귀까지 찢어진 정말 끔찍하고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어야만 할 정도로..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정황은 전혀 없었다. 금전 쪽으로든 치정 쪽으로든. 사람 입이 찢겼다는 얘기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 승복 이후로 처음 듣는다.. ㄷㄷㄷㄷㄷ

범행 용의자는 영국의 잭 더 리퍼처럼 신체 해부와 외과 수술에도 식견이 있는 어느 싸이코패스일 거라고밖에 볼 수 없는데 이건 결국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21세기도 아니고 1940년대에 워낙 엽기적인 사건이다 보니, 오히려 자기가 블랙 달리아를 죽인 범인이라고 뜬금없는 거짓 자수를 한 관심병 미친놈들만 몇십 명이나 나와서 수사에 혼선을 끼쳤다고 한다. 고문이나 강압 수사도 없었는데 웬 허위 자백이냐..;;

4.
투신 자살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사례는 일본의 '오카다 유키코'(1967-1986)이다.
검색을 통해 사진과 프로필을 보면..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다 잘하는 엄친아 연예인 지망생 그 자체. 데뷔 후엔 실제로 인기가 아주 좋아서 1980년대 중반을 풍미한 일본 아이돌계의 떠오르는 샛별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이 아가씨도 너무 완벽주의자였던 것 같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스케줄 강행군을 소화하면서 연예인 활동을 했는데.. 치정 스캔들 때문인지, 악성 루머 때문인지, 소속사와의 불화 때문인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인생에 회의를 느꼈는지, 아무튼 하나로 딱 떨어지는 원인이나 정황 없이 그녀는 1986년 4월 8일, 별안간 소속사 건물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림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아, 당일엔 투신 자살에 앞서 가스를 피워서 자살을 시도하다가 저지당하기도 했다.

오카다 유키코는 배를 땅으로 향하는 자세로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고인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죽은 모습이 미국의 에블린 맥헤일의 경우와는 달리, 저질 옐로우 저널리즘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렸다. 일본의 찌라시들은 겨우 고삐리 연예인이 죽은 모습을 바닥에 튄 핏자국까지 그대로 모자이크 처리 하나 없이 사진으로 찍고 내보냈기 때문이다. (겉으로 욕하면서도 결국은 다 사서 보거든 ㄲㄲㄲㄲㄲ)

이런 선정적인 보도 때문인지, 이 아이돌의 자살로 인해 당시 일본 내부에서는 그야말로 수십~수백 명에 달하는 팬들이 같이 자살했다고 하니 더욱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 유명해지고 나면 자기 혼자 곱게 세상에서 뿅 없어지는 것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 그러니 정말 입과 몸을 사리면서 행동해야 할 것 같다. 자살 이것도 정말 어지간한 멘탈로 가능한 게 아닐 텐데..! ㅠㅠ

* 아 진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별도의 번호까지 또 할당해서 소개하기는 좀 뭣하다만.. 2011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40대 여성이 25층에서 투신 자살했는데 하필..;; 맨홀 뚜껑을 정확하게 강타하고 그 구멍 아래로 떨어져 숨지기도 했다. 다른 인명이나 차량 피해가 없는 것은 다행스러운 점이다만, 이건 뭐 멀쩡히 길거리를 가던 행인이 땅이 쑥 꺼지고 맨홀로 빠진 것만큼이나 황당한 소식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27 08:34 2016/11/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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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상륙 작전 (영화)

영화 인천 상륙 작전, 혹은 오퍼레이션 크로마이트.
일부러 날짜를 맞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6· 25 전쟁의 휴전이 타결된 날인 7월 27일에 개봉했다.
보는 내내.. 감독이 표현하고자 한 사상이 본인의 내면과 잘 통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반대로 좌빨 매체에서 별 이유 같지도 않은 궤변 늘어놓으면서 이 영화를 왜 저렇게 못 물어뜯어서 야단인지가 적극 이해되었다. 북괴 치하에서 벌어지던 잔학한 공포통치, 세뇌, 인민재판, 숙청을 저렇게 적나라하게 그려 놨으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유는 막론하고 전쟁은 그저 참혹한 거고(그 전쟁을 먼저 일으킨 쪽이 누군데?), 공산당도 알고 보면 사실 착한놈이고 미군 국군도 민간인 왕창 학살했어(민간인 위장해서 치사하고 비열하게 도발한 놈 얘기는 절~대로 없이), 동족상잔의 비극은 남북 모두 책임이네 식의 메시지를 본인은 거의 부모 모독 패드립과 같은 급으로 정말 온몸으로 혐오한다. 저건 정말 천하에 듣기 싫은 불순하고 사악하고 마귀적인 사상이다.

이 영화는 요즘 각종 다른 매체들이 그러는 것처럼 이미 다 검증돼 있는 선악 구도를 괜히 비비 꼬고 비틀고 재해석(?)하고 절대악과 필요악을 교란하는 식의 전개가 없다. 그래서 참 건전하다.
스토리의 표현이나 묘사가 옛날 영화처럼 좀 진부한 건 일단 사상이 건전한 것에 비해서야 그리 큰 흠이 아니라고 본다.

특공대가 기차를 타고 적진으로 침투하는 건 김 재현 기관사(미군 딘 소장 구출 작전)의 이야기를 다룬 <미카 129>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건 1950년 7월에 있었던 일이니 시기적으로 인천 상륙 작전보다 2개월 전, 이제 막 대전을 빼앗겼던 시절의 얘기다. 그 시절엔 열차 객차들이 다들 저렇게 목재에 직각 의자로 돼 있었나 보다.

그리고 대원들이 흩어지기 직전에 서로 손목시계의 시각을 동기화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래야 시간 약속에 맞춰 정확하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엔 그 정도로 소형화된 손목시계는 굉장한 사치 고가품이었기 때문에 아무나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한반도의 해방 직후에 소련군이 들어와서는 민간인에게 행패와 약탈을 일삼았으며, 특별히 약탈한 손목시계들을 한 팔목에다 주렁주렁 차고 다녔다는 걸 생각해 보시라.
그로부터 20여 년 전에 윤 봉길 의사가 김 구와 교환한 시계는 손목시계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회중시계였다는 점도 같이 생각해 보자.

본론으로 돌아오면, 이 영화에서 맥아더 장군 역을 맡은 배우는 잘 알다시피 그 이름도 유명한 리암 니슨이다. 테이큰에서 내가 완전 반해 버린 그 아저씨가 '군산, 원산, 인천' 등 한국의 지명을 발음하면서 맥아더 연기를 하다니 무진장 기쁘고 고맙다. 잘생겼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 호의적이고 개인적인 품행과 사상이 건전한 배우인 것 같아 더욱 믿음직스럽고 호감이 간다. 아주 건전하고 뜻깊은 역사물 영화를 만든대서 여느 할리우드 영화를 찍을 때보다 훨씬 더 저렴한 출연료만 받고 선뜻 출연해 줬다고 한다.

이 사람이 전화통 붙들고 김 일성과 "난 니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전쟁을 멈추고 철수하지 않으면 난 군대를 보내서 널 찾아내고 널 죽여 버릴 것이다." / "풋~ 잘해 보라우" 설마 이런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영화엔 더 감격스러운 장면이 있었다.
팔미도 등대가 점등되었을 때, 그리고 선발대로부터 조명탄이 성공적으로 발사됐을 때.. 어둠 속에서 '빛'이 쫙~ 비친다. 맥아더도 이걸 보고는 감격한다. 작전 성공을 이렇게 묘사한 게 단순히 적진을 다 때리부순 장면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었다. 성경에서도 빛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심상이고 어둠은 절대적으로 부정적이고 나쁜 심상이다.

  • 어머니를 지켜 주고 싶어 군대에 자원한 이 정재 vs 이념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이 범수
  • 부하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이 정재 vs 홧김에 부하를 쏴 죽이는 이 범수
  • 대통령 하고 싶어서 인천 상륙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은 반대 세력 vs 나라를 지킬 총과 탄약을 더 달라는 소년병의 군인정신에 감동해 반드시 이 전쟁을 이기겠다고 다짐한 군인 맥아더
  • 인민군 내부에서조차 림 계진과 박 남철은 서로 감시 vs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 신뢰하는 맥아더와 장 학수

어느 게 선이고 어느 게 악인지, 어느 게 빛이고 어느 게 어둠인지를 이 영화는 단순하게 잘 대조해서 보여 줬다.
또한 러시아어를 읊조리는 북한군 애들은 "신이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보이기나 해?" 이러지만 맥아더 포함 미군 장성들은 수시로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이러는 것 역시 좋은 대조를 이룬다.
간호사로 출연한 진 세연은 여기서도 항거 대상이 일제에서 북괴로 바뀌었을 뿐, 각시탈의 오목단과 비슷한 역할을 한 것 같다.

결말부로 가면 드디어 인천 시내에 시뻘건 저주받을 선전 구호들이 철거되고 시내가 태극기 물결로 바뀐다. 이건 그야말로 8· 15 해방과 동급의 기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걸 아미타불로 바꾼 원흉이 중공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미제 분단 식민지로 들어갈 게 아니라 김 구와 함께 김 일성 밑에서 무혈 통일 이뤄서 우리 민족끼리 행복하게 살았어야 했다" 요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인천 상륙 작전>은 감동적이면 감동적이지 불편할 내용은 하등 존재하지 않는다. 괜히 표현이 식상하고 진부하네 이런 거 불평하기에 앞서 난 이런 역사를 다룬 귀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일단 고맙고 기쁘다.

이 영화에서는 일명 "맥아더 장군을 감동시킨 소년병" 씬이 흑백 과거 회상 형태로 잠깐 들어갔다. 이건 문헌에 따라서 날짜와 대사가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한데.. 6월 27일 or 29일, 서울 영등포 or 흑석동.. 어쨌든 개전 초기 서울을 빼앗기기 직전 또는 직후에 서울 한강 이남 전선을 시찰하던 맥아더 장군이 통역 장교를 대동하여 어느 앳된 병사와 실제로 나눈 대화이다.

"후퇴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싸울 것입니다."
"원하는 건.. 딴 건 필요 없고 단지 총과 실탄을 좀 더 주십시오."


본인은 저 일화를 먼 옛날 시스템클럽 글을 통해서 진작부터 접했었다. 거기 운영자분이 맥아더를 굉장히 좋아하시기 때문에.

훗날 박 정희 대통령이 무슨 미국 무기 회사 임원과 청와대에서 몰래 거래를 하면서 "님이 내게 준 개인 비자금 100만 달러를 도로 님에게 줄 테니 이 가격만치 M16 소총을 더 주시오" 뭐 이랬다는 일화(?)도 전해 내려온다. 그런데 그건 솔직히 출처와 정확도를 확신을 못 하겠다. 그것과는 달리 맥아더 + 소년병 일화는 국내외 여러 군 관계자의 회고록에도 수록돼 있으며, 주작이 절대로 아니다.

일제 강점기를 생각해 보자. 비록 당장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무모한 짓으로 보여도, 계속 항쟁과 의거가 벌어지니까 외국에서도 "조선은 정말로 일제와 한 뿌리가 아니며 독립을 원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됐다. 윤 봉길 의사가 폭탄 투척을 했을 때 장 제스가 얼마나 감탄했던가?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이니 1940년대의 국제 여론은 구한말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일제를 쫓아낸 뒤 조선을 독립시키자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조선은 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일제 식민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카이로 선언에서 독립 보장이 명시되는 감격의 성과가 나타났다.
그리고 바로 그것처럼.. 당장 자국민부터가 적과 맞서 싸우겠다는 확연한 의지를 드러내니 그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맥아더 장군의 심리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역사를 바꾸게 됐다.

개전 초기에 국군은 전열이 무너지고 지휘 체계가 황폐화되는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허둥대다 1개월쯤 뒤부터는 희대의 막장 조치인 즉결처분조차 시행할 정도로 암울한 지경에 도달했다. (군기가 얼마나 개판이었으면 상관의 '까라면 까' 명령에 불응하는 부하를 현장에서 재판 없이 바로 사살 허용..;; 부하란 굳이 병뿐만 아니라 초급 장교들도 포함이다. license to kill -_-)
게다가 맥아더는 채 병덕 같은 남한의 X맨 급인 무능한 수뇌부에 이골이 나 있기도 했다. (유 재흥은 전투 패배 후에 밴 플리트 장군에게 까였고, 채 병덕은 개전 초기부터 맥아더에게..)

그랬는데 그 타이밍에 마침 저런 모범 병사를 만난 것이다. 맥아더가 포레스트 검프에서 "이런 씨발. 내가 지금까지 들은 가장 훌륭한 대답이다. 귀관은 IQ가 한 160쯤 되는 천재임이 틀림없다!" 거의 이런 급으로 감탄했을지도 모르겠다.

66년 전에 거기에 있었던 그 소년병 당사자(고 신 동수 옹. 2013년에 작고)의 부인 되시는 분<인천 상륙 작전> 영화를 관람하고는 감격에 눈시울이 젖었다고 한다! "우리 남편이 살아서 같이 봤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런데 기자 양반, 혹시 이 영화 비디오로 하나 살 수 없을까? 남편 얼굴이 가뭇가뭇할 때마다 보고 싶어서 말이야." 가슴 뭉클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분의 인터뷰가 보도되고 나자 주연 배우인 이 정재 씨가 직접 비디오 테이프와 꽃다발을 들고 그분을 찾아뵈었으며, 리암 니슨도 직접 이분을 칭송하고 격려하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인천 상륙 작전은 평론가 평점 3점대 테러나 당할 작품은 절대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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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시 2:2-4라든가 계시록에서 여러 민족들이 한데 뭉쳐서 특정 한 민족을 대적하는 사건을 언급한다. 이것은 영적으로 명백하게 좋은 현상이 아니며, 사실은 UN조차도 앞으로 그런 악역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런 트렌드와는 반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들이 한데 뭉쳐 한 나라를 도왔던 6· 25 전쟁은 거의 전무후무한 사례이고 예외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미국이 개입했던 전쟁들 중 정당성 명분이 톱급으로 가장 큰 전쟁이었다.

뭐 괜히 쓸데없이 김치, 된장, 한복 이런 것보다야 차라리 한글이라든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시대를 너무 앞서 간 엄친아 괴수요 국제 정세의 달인인 어느 할배에 의해 미국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건국됐고, 저렇게 드라마틱하게 지켜져 왔다는 사실에나 좀 자부심 가졌으면 좋겠다. 과장 보태면 그런 건 좀 국뽕에 취해도 되겠구만, 왜 저런 정말 중요한 아이템엔 사람들이 관심이 별로 없나 하는 생각이 든다.

6· 25 개전 초기에 남한 정부의 우왕좌왕 실책과 병크가 나온 것을 비판할 건 비판하더라도... 국내 관료들과 미국 정치인들이 그 할배의 선견지명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받아들였다면 애초에 그 전쟁 자체가 벌어지지 않고 피해가 훨씬 줄어들 수도 있었다는 걸 먼저 감안해야 될 것이다.

그에 반해 김 구는 '그 할배' 같은 선악 관념이 없이, 남북 분단을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하며 어떻게든 중재하고 막으려 했다. 이 사람이 덜컥 암살 당해 버리는 바람에 중재자가 없어졌고 남북 관계는 더욱 싸늘하게 식으면서 전쟁이 났다는 식의 해석도 있는데.. 그건 김 일성을 너무 착하고 순진하게 본 어리석은 생각이다.

김 구는 암살 당하지 않았고 계속 살았다면 최악의 경우 피아 구분을 못 한 채 적화통일 꼭둑각시로 이용당하면서 이 승만의 4· 19 부정선거 하야보다도 대한민국의 미래에 더 악영향을 끼치고 더 추하게 몰락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잘해 봐야 그냥 전쟁 타이밍의 시간만 약간 더 버는 역할밖에 못 했을 것이다. 악한 힘은 더 강한 힘으로 찍어 누르고 견제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이런 북한이 <인천 상륙 작전> 영화를 좋게 평가했을 리는 만무하다. 대남 종북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신랄하게 디스했다. 지난 7월 29일자 보도를 보면 "남조선 괴뢰들이 지난 27일 그 무슨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에 대한 시사회 놀음을 벌리였다. 불가능한 작전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작전이니, 죽음을 불사한 이야기니 뭐니 하는 희떠운(분에 넘치며 버릇이 없는) 수작들을 늘어놓고 있다."고 비난했었다.

이걸 보니 북한에서는 '희떱다'라는 단어를 지금도 즐겨 쓰는 게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에 배웠던 채 만식의 소설 <왕치와 소새와 개미와> 이후로 20몇 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보는 단어이다. -_-;;
아무쪼록 이 시간 나에게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새 기능을 코딩할 자유를 지킨 호국영령들의 은혜를 잠시 생각하며 감사한다. 이상.

Posted by 사무엘

2016/08/23 08:33 2016/08/2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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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처럼, 좋게 말하면 심오하고 나쁘게 말하면 '그래서 뭐 어쨌다고?' 병맛스러운 저 말을 한 사람은 20세기 초에 영국의 유명한 산악인인 조지 맬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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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저 말이 나온 주변 맥락과 뉘앙스는 그렇게 고상하지 않았다.
"왜 산을 오르시는지?" / "(아 씨바, 날파리 같은 기자들한테 같은 대답 90번만 더 하면 100번이네...) 왜긴,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르는 거지 딴 이유가 있겠어요?" 이런 성가신 상황이었다. -_-;;
실제로 저 사람은 성격이 꽤 저돌· 괴팍·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이었다. 괄호 안의 말은 내가 아무 근거 없이 상상만으로 윤색해 넣은 게 아니다.

난 이말년 씨리즈 <아낌없이 아끼는 사나이> 편에서 저 말을 난생 처음으로 접했다. 거기서는 "내가 아끼는 이유는 아낄 것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라고 패러디됐다. 아 이말년은 교양과 상식을 더해 주는 유익한 만화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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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드립은 나라도 치겠다. "내가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자꾸 버전업 하는 이유는 코딩할 게 거기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1924년에 해발 고도가 8848m에 달하는 에베레스트 산을 올랐다. 정상을 불과 몇백 m (높이) 정도만 남긴 제6캠프에서 마지막 일꾼 및 셰르파 가이드들과 작별한 뒤, 제7 캠프를 만들 재료들을 들고 뿌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이제 산소통 운반을 도와 주는 앤드루 어빈이라는 파트너하고만 동행했다. 그 시절엔 산소통이 지금보다 더 크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목적지와 가까워질수록 보급을 담당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이탈한다는 점에서는 마치 연료통을 하나 둘 떼어내면서 상승하는 우주선 로켓과도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제7 캠프를 넘어선 뒤, 악천후 속에서 그대로 실종되어 버렸고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나중에 그가 빙벽에다 꽂은 피켈이 발견되었지만, 올라가는 중에 박은 건지 아니면 하산 중에 박은 건지 판별할 수 없었다. 즉, 그가 사고로 죽긴 했지만 에베레스트 정상을 실제로 정복했느냐 안 했느냐는 산악계의 긴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영국은 10여 년 전에 남극점과 북극점의 최초 정복도 대영제국 소속이 아닌 사람에게 뺏긴 적이 있던지라, 에베레스트 산의 최초 정복만은 기필코 자국인이 이뤄 내길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공식적으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최초로 정복한 걸로 인정되는 사람은 뉴질랜드 출신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셰르파) 듀엣이다. 시기는 1953년. 에휴, 그래도 뉴질랜드 정도만 해도 영연방의 범주에는 들지 않나.

만약 맬러리가 이들보다도 30년 가까이 먼저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밟았다면 이는 엄청난 일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당시의 날씨와 열악한 장비를 감안하건대 그건 불가능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하산 중이 아닌 등산 중에 죽었을 거다)
수학으로 치면 페르마의 대정리는 1990년대에 상상을 초월하게 복잡한 현대 수학 이론을 총동원해서야 겨우 증명이 완결됐는데, 설마 1600년대 사람인 페르마가 수학적으로 아무 오류 없이 그 명제를 완벽하게 증명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추정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고인의 유품 중에 정상 인증샷을 찍은 카메라 필름이라도 있었으면 정상 정복 여부 논란이 확실하게 종결됐을 텐데 그게 발견되지 못했던가 아니면 시간이 너무 오래 되어 필름이 다 망가졌던가.. 아무튼 그 방법으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힐러리/텐징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달했을 때에도 주변에는 깃발이라든가 인간이 닿은 흔적 같은 건 주변에 전혀 없었고 말이다.

1924년으로부터 무려 75년이 지난 1999년 5월에는 국제적으로 조직된 수색단의 수색에 의해 조지 맬러리의 시신이 드디어 발견되었다. 타이타닉 호도 1912년에 침몰했고 잠수정에 의해 침몰 잔해가 최초로 발견된 게 1985년인가 1986년이니, 시간 간격(74년)이 서로 비슷하다.

시신 사진 보기

등산복은 상당 부분 삭아 없어졌지만 추운 날씨 덕에 고인을 알아볼 수는 있는 형태였다. 시신은 앞으로 엎드린 자세였고, 동선을 재구성해 보니 산소도 부족하고 너무 숨가쁘고 힘든 상황에서 아마 추락사를 했을 거라는 결론이 도출됐다고 한다.
실제로 저런 고산 지대에 폐활량 훈련을 따로 받지 않은 일반인이 내던져지면, 한 발자국만 내디뎌도 숨이 너무 차서 견딜 수가 없어진댄다. 이거 무슨 우주 비행사나 전투기 조종사가 받는 G 견디기 훈련도 아니고..

맬러리는 저렇게 시신이라도 발견된 반면, 파트너인 앤드루 어빈은 여전히 아무 흔적조차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한 증발 상태이다. 에베레스트 산은 히말라야 산맥의 산들 중에 워낙 유명하고 등산로도 다 개척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일부 운 나쁜 산악인들은 등반을 시도했다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공동묘지라는 타이틀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고 한다.

페르시아의 왕자나 툼 레이더 같은 게임이야 분위기 내는 차원에서 던전 한쪽 구석에 해골이 놓여 있는 반면, 저기는 해골이 실사판으로 존재한다. 지나가는 등산가들은 그걸 "그저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보고 넘어간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한편, 맬러리 이후에 에베레스트 산을 확실하게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는 서로 정말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정상을 몇 발자국 앞두고 서로 "니가 먼저 가라" 그랬을 정도로. 의 좋은 형제 그 자체였다.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서유기 -- 여행의 끝>과는 정말 대조되는 장면이다.

정상 인증샷에는 온통 텐징의 사진만 있고 힐러리의 사진은 없는데.. 원주민인 텐징이 카메라를 다루는 방법을 몰라서 힐러리가 찍은 사진만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딱히 남에게 카메라 사용법을 가르칠 만한 상황은 못 됐다"는 게 그의 공식적인 답변이다. 그땐 카메라가 더 크고 무겁고 복잡했으며, 요즘처럼 스마트폰에 셀카봉이 있던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내려갈 거 왜 산을 오릅니까?"라고만 생각하면 등산만치 삽질스러운 짓도 별로 없을 거다. 딱히 운동이나 경치 감상, 탐험에 애착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삽니까?" 정도의 어리석은 질문으로 치부하는 산악인들은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난 그 정도로 거창한 이념은 없고, 그냥 운동과 경치 감상, 탐험을 목적으로 요 근래에 등산을 좀 시작하고 있다. 높이가 에베레스트의 10%도 채 안 되는 산들이만. ^^

Posted by 사무엘

2016/05/03 19:37 2016/05/0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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