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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드웨이 다음으로 "남자들의 야마토"(2005) 영화를 보니 뭔가 참 짠하다.
야마토 급 전함은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군이 운용했던 초대형 군함으로, 항공모함이 아니라 함포만 쏘는 전함 중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배였다. 거의 타이타닉의 군함 버전과 비슷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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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미드웨이 시절엔 일본군도 항공모함들을 운용하면서 비행기 날리고 미군을 굉장히 악랄하게 괴롭혔었다. 그러나 미드웨이, 과달카날, 레이테 만 등의 전투에서 연달아 패하면서 그들은 그 병력을 다 날려먹었다.

1945년 4월, 야마토는 아군을 지원하러 오키나와로 가던 중, 아군 비행기 한 대 없이 기관총과 함포나 찍찍 갈기면서 100여 기나 되는 미군 날파리 비행기들을 힘겹게 상대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다가 어뢰와 폭탄을 잔뜩 맞고 장렬하게 박살나 버림으로써 인류의 전쟁사 전체를 통틀어 불멸의 안습한 이름을 남겼다.

미드웨이 시절에는 미국 어뢰가 불발 불량이 많았었던 반면.. 야마토 때는 그렇지 않고 펑펑 잘도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어떤 문제가 있으면 바로 시정하고 수학· 과학을 동원해서 시스템을 개선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저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은 물자 생산량이 늘고 공장 근로자와 병력의 숙련도가 올라갔다. 그 반면, 일본은 국가 인프라가 망가지고 사람과 물건의 질이 떨어지고, 전쟁을 더 지속할 수 없는 막장 상황으로 치달았다.

2.
사실, 야마토의 마지막 임무는 애초에 아무 승산 없고 꿈도 희망도 없는 개죽음 임무였다.
하지만 천황 폐하께서 "그럼 이제 군함은 더 없는 건가?"라고 물으시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는 개뿔, 야마토도 남김없이 옥쇄시켜야 해군 수뇌부들의 가오가 선다. 그래서 "오키나와에 가서 뼈를 묻으라" 명목으로 출격한 것이었다.

미군의 정찰기와 잠수함들은 야마토가 움직이는 걸 곧장 다 파악해 버렸다. 야마토 운전실에서조차 "이제 뭐 경로를 훼이크 칠 필요도 없겠군. 오키나와로 직선 거리로 가도록 한다. 변침 실시~" (정찰기한테 발포한 뒤) 이렇게 대응했다.

그 뒤 전투 과정에서 기적 같은 건 없었다. 야마토는 목적지에는 당연히 못 가고 격침됐다.
야마토에서 3천여 명(전체 승조원의 90% 이상), 호위하던 아군 구축함과 경순양함의 승조원까지 포함해서 4200명에 달하는 자국 군인들이 전사했다.
그 동안 야마토가 총포 쏴서 필사적으로 떨군 미군 비행기는 딱 13대요, 미군의 전사· 실종도 딱 13명이었대나 어쨌대나.. 우금치 전투를 조선 동학뿐만 아니라 일본 해군도 치른 거나 마찬가지였다.

3.
이 야마토는 타이타닉보다 더 큰 덩치에(약간만 더 큼) 당시 일본 국가 예산의 무려 2%를 소모해서 만든 미친 물건이었다.
(참고로 1960년대에 미국이 인간을 어떻게든 쏘비에트보다 먼저 달에 보내려고 NASA에다가 매년 꼬라박았던 돈지랄이 자기네 정부 예산의 1~3% 그랬었음)

야마토는 자국의 최고 과학 기술에, 돈지랄에, 자존심이 몽땅 동원된 최고의 기함이었다. 일반 촌뜨기들이 보기엔 가히 SF 급의 기계가 아니었을지? 승조원은 무려 3천 명을 넘었으며, 때문에 이 승조원들에 대한 복리후생도 단연 최고였다.
1940년대엔 자국 국민들이 배급이 부족해서 쪼들리고, 동남아로 간 육군 땅개들이 쫄쫄 굶으면서 개고생 하고 괴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야마토에서는 그 와중에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쌀밥에 고기 통조림과 과일이 배급됐다.

얘는 배 크기에 걸맞게 함포도 거대했다. 1.5톤짜리 포탄을 쏜 주포의 사정거리가 무려 40km에 달했다. 포의 구경이랑 장갑의 두께가 다 비슷하게 400mm대였다는 게 흥미롭다. 참고로 나치 독일의 구스타프 열차포는 구경이 800mm..;; 비슷하게 정신나간 괴물이었다.

허나, 야마토는 배를 너무 크게 만든 게 계륵이 돼 버렸다.;; 한창 싸워야 할 때는 전투력 보존 차원에서 야마토 호텔짓을 너무 오래 하다가.. 나중에 지원 유닛을 다 잃은 뒤에야 너무 늦게 투입되었다.
그리고 승조원들 복지는 최고였지만, 급탄이나 조준 등 전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설비는 미국 군함 대비 많이 낙후하고 기술이 딸렸던 듯하다.

야마토는 건조되던 당시부터 전함으로 만들지 항공모함으로 만들지가 해군 수뇌부의 고민거리였다고 한다. 이때도 실용적인 이유보다는 높으신 분들의 간지 체면 명분이 개입해서 전함이 선택됐던 듯하다. 그 시절에 전함이냐 항모냐 하는 고민은 IT 업계에서 웹이냐 모바일이냐, 무슨 플랫폼이 뜨냐 하는 고민의 20세기 초중반 군대 버전이었지 싶다.

4.
타이타닉 호가 동형함/자매함으로 브리타닉과 올림픽이 있었듯, 야마토도 1호인 야마토 이후로 '시나노'와 '무사시'라는 이름의 자매함이 있었다.

나중에 건조된 '무사시'는 1944년 가을의 레이테 만 해전에서 직싸게 얻어터지고 원조 '야마토'보다 먼저 격침 당해 없어졌다. 그래도 이 배는 물이 새면서 곱게(?) 침몰했으며, 승무원들도 전투 후에 모두 갑판 위에 모인 채로 곱게(?) 퇴함하고 구조될 수 있었다. 비록 전투 중에는 주변이 생지옥이었더라도 말이다.

그 반면, 야마토는 끝까지 남겨져 있다가 더 외롭고 더 처참하게 부서졌다. 침수 때문에 곱게 침몰한 게 아니라 배가 옆으로 완전히 자빠졌으며, 이때의 충격 때문인지 탄약고까지 유폭해 버렸다.
그야말로 천지가 다 울리는 굉음과 불기둥이 발생하면서 야마토는 무슨 타이타닉처럼 둘로 쪼개져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상당수의 승조원들은 자기 위치에서 퇴함 명령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채 몰살 당했다. 오죽했으면 그 대폭발 후폭풍에 휘말려서 삐끗거리고 추락한 미군 함재기도 있었을 정도이니.. 마지막 순간까지 적과 동귀어진을 하긴 했다. -_-;;

참고로, 야마토 급 전함 중에서 딱 하나 '시나노'는 전함으로 만들던 중에 유일하게 항공모함으로 설계가 변경되었다. 하지만 1944년 11월, 취역한 지 겨우 9일 뒤에 구레 기지로 이동하던 중에 미군 잠수함 겨우 한 척으로부터 어뢰 4발을 맞고 격침당해 버렸다. 수많은 함재기들로부터 다구리 당한 것도 아닌데, 제대로 비행기 하나 못 띄워 보고 생을 마감했다.

얼마나 돈 많이 쓰고 고생해서 그 큰 배를 만들었을 텐데, 최후가 다들 이랬다. 그나마 '무사시'가 제일 평범한 최후인 것 같고 '시나노'는 너무 황당하고 허무하다. 제일 마지막에 제일 처절하게 죽은 '야마토'가 제일 주목받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어 보인다.
(여담이지만, 타이타닉과 야마토는 해저 탐사를 통해 잔해가 발견된 시기도 1985년 7~9월대로 비슷하다. ㄲㄲㄲㄲㄲㄲ)

5.
이런 사연이 있으니, 일본에서는 영원한 자기들 국뽕인 러일 전쟁 쓰시마 해전 영화뿐만 아니라 반대로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해전 영화도 만들었구나 싶다. 그것도 2005년, 종전 60주년 기념 명목으로 말이다. 오늘날은 그런 큰 전함을 만들 일 자체가 없어졌으니 더욱 추억 돋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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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현 구레 시에 있는 해사 역사 과학관에는 야마토 전함의 1/10 크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야마토~! 왕년에 자기들이 만들었던 왕창 큰 전함을 잊을 수가 없다.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만도 하다.
그래서 쟤들은 창작물에 은하철도 999만 있는 게 아니라 우주전함 야마토도 있다. 전쟁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정서적으로 도저히 상상이 안 될 것이다.

쉽게 말해 일본인에게 야마토는 한국인에게 거북선과도 같은 존재이다. ㅡ,.ㅡ;;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도 "우주전함 야마토"를 따라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1979)이라는 애니를 만들다는 걸 생각해 보자. 서로 자기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군함인 것이다.;;

또한, 일본 해군은 육군과 달리, 조선인 강제 징용이라든가 현지 민간인 학살 같은 전쟁 범죄와 접점이 (거의) 없다. 바다에서 미군 함재기들을 상대한 일본 해군 수병 중에 조선인이 있었다거나 한 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울나라의 손 원일이니 심지어 신 성모니.. 하는 사람들도 다 그냥 상선사관 출신이지, 일본 해군 출신.. 이딴 커리어 전혀 없다. 아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야마토를 그리워하는 것 자체를 뭐 군국주의 전쟁 범죄 미화 급으로 불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 봤자, 나라 등골을 짜내서 만든 배가 저렇게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사라졌구만.. 그거 만들고 운영할 돈으로 차라리 다른 경제 발전이나 도로· 철도 건설, 자국민들 복지를 하는 게 결과적으로 더 나았을 것이다.. -_-;;;
쓸데없이 남의 나라 침략하고, 그걸 저지하는 강대국들한테 개기느라 더 손해 보고 쪽박 찼다.

영화는 나름 고증 훌륭하고 그 시절 재현을 객관적으로 잘한 것 같다. 심지어 정신주입봉으로 후임들 줘 패는 씬도 들어가 있다. 적인 미군 쪽은 그저 비행기로 야마토를 때리기만 할 뿐, 딱히 사람 출연이나 대사가 없는 것 같다.

※ 관련 무기 발전사 여담

(1) 해군
전근대 시절엔 해군· 수군이라는 건 아주 위험한 보직으로 여겨지고 엄청난 기피 대상이었다. 군인과 뱃사람의 믹스인데 일이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땅도 아니고 바다에서 죽어서 가라앉으면 시체도 못 찾는다. 그러니 험악하고 질 낮은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해군만 그 정도로 독보적으로 열악한 건 아니다. 열악하고 시체 못 찾는다는 독보적인 특징은 일반 배가 아니라 잠수함 정도로 넘어간 듯하다.
어느 나라건 해군은 육군과 다른 흰색 아니면 남색(네이비색)의 뽀대 나는 전투복을 입고, 문화와 관습이 뭔가 다른 게 있다. 일단 육지 야전에 맞춰진 위장을 전혀 할 필요 없으니, 전투복 색깔이 완전히 다르긴 하겠다. ㄲㄲㄲㄲ

단, 요즘은 해군이 배 타고 있는 중에는 저녁에 쉴 때도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는 점이 육· 공군 대비 큰 단점이 돼서 병 복무를 기피할 지경이 됐다고 한다. 우와 이건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 했네..;;

(2) 거함거포주의
야마토 전함은 '거함거포주의'에 종지부를 찍은 예시라고 역덕 밀덕들한테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까지는 해전이란 게 배끼리 총포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러일 전쟁이나 1차 대전). 그러니 배를 크게 만들어서 멀리 항해하고, 포도 강하고 사정거리 길게 하는 게 장땡이었다.

그러나 포를 아득히 능가하는 병기인 비행기와 미사일이 발명되면서 배는 민간 상선과 군함을 불문하고 예전보다 작아지게 됐다. 타이타닉 같은 대형 장거리 여객선이 없어졌고, 군사에서도 대형 전함이 퇴출된 것이다. 이건 마치 PC통신이 인터넷에 밀려 없어진 것만큼이나, 재래식 갑옷이 총 앞에서 퇴출된 것만큼이나, 재래식 공성전이 퇴출된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배가 비행기를 직접 품든지. 떠 다니는 공항인 항공모함만이 왕창 거대하다. 그리고 얘는 잠수함이나 상륙함처럼 군 전용이다.
일본은 항공모함이고 레이더고간에.. 처음엔 자기들이 먼저 도입해 놓고는 그걸 제대로 끝까지 활용을 못 했다.

(3) 공작함
옛날 2차 세계 대전 시절에는 공작함이라는 게 있어서 전투 중 손상을 입은 군함을 현지에서 즉석 수리를 했다. 의무병의 선박 버전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일본이 태평양 전쟁 당시에 딱 한 대 운용했던 아카시 공작함은 배에다가 간이 제철소 조선소를 얹은 수준이었다. 얘는 멀리 나가 있던 자기네 군함들을 현지에서 수리함으로써 전투력 유지에 큰 도움을 줬다.

그러나 오늘날은 미사일 한 방 제대로 맞기만 하면 그대로 수리 불가 격침이다. 그렇잖아도 배가 예전처럼 크지도 않으니..
이 때문에 공작함이라는 것도 유행이 지나고 퇴출됐다. 기존 군수지원함에다가 아주 경미한 파손이나 수선하고 부품을 교체하는 정도이지, 제철소 조선소 마이너 버전 급의 전용 공작함을 운용하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전근대 시절엔 무기가 화력이 약했기 때문에 바다에서도 사람끼리만 총질 칼질이지, 배는 그냥 나포했었는데 말이다. 참 격세지감이다. 배에 불이 나면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까지도 나서서 불 끄는 걸 거들었다. 나포해야 할 적선이 통째로 사라지면 자기들도 손해니까..

아까 얘기했던 저 아카시 공작함은 미군의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제거 대상이었다. 1944년 3월에 진작에 격침 당했으며, 얘가 없어진 뒤부터 일본 해군의 전투력은 실제로 유의미하게 하락했다.

(4) 항공모함
핵무기와 미사일, 제트기가 2차 세계 대전 말미에 첫 등장했다면, 항공모함이라는 건 1차 대전 말미에 첫 등장해서 전간기 때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복엽기가 배 위에서 뜨고 내리는 광경이 극히 드물게나마 있긴 했다는 뜻이다.
그때는 이 분야가 최초로 개척되고 있었으니 반은 전함 포탑이고 반은 활주로인 '항공전함'이라는 것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할이 어중간한 짬뽕이니 그런 건 폐기되고 역할이 세분화 전문화됐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잠수함에다가 항공모함의 기능을 얹을 생각을 했었다. 허나, 인류의 과학 기술로는 그런 건 영 무리.. 이제 잠수함은 비행기가 아니라 미사일이나 쏘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 작은 드론, 무인기 정도 날리는 항공모함은 잠수함 버전이 있을 수도 있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3/10/25 08:35 2023/10/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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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년의 병맛 영화

2015년엔 꽤 인상적인 병맛 독립영화가 국내외에 여럿 만들어졌던 것 같다.

(1) 쿵 퓨리 Kung Fury (스웨덴)
얘는 뭐 더 말하면 입만 아플 약 빤 명작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간이 꽤 많이 지났는데 2편은 왜 소식이 없나 모르겠다. 흐지부지된 건가?

(2) 무서운집 (한국!!!)
쿵 퓨리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일부러 못 만든 병맛 괴작'을 추구한 영화이다. 무려 오프라인 극장 개봉까지 했다.
물론 듣보잡 취급 받으며 관객 수도 1천 명 남짓한 처참한 수준이었지만-_-.. 얘는 전체 제작비가 100만원이 채 넘지 않은 극초저예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작 그 관객으로도 제작비의 몇 배 이상을 뽑으며 흑자-_-를 냈다고 한다.;;
개미가 자기 체중의 몇 배 이상을 거뜬히 들어 나르고, 벼룩이 자기 키의 수 배 이상 높이를 점프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ㄲㄲㄲㄲㄲㄲ

그리고..
(3) Modern Educayshun (호주) (☞ 보기)
7분 남짓한 분량이니 영화라기보다는 요즘 인기 많은 '너덜트' 스타일의 꽁트 영상에 가깝다.
요즘 별 걸 갖고 차별이네 프레임을 씌우는 이상한 PC(정치적 올바름.. -_-)질을 굉장히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직접 보면 안다. 댓글을 보면 "정말 참신한 사이다 같은 풍자다~ 시대를 앞서갔다~ 이런 미래 예언물이 무려 2015년에 만들어졌었다니!!!" 같은 감탄 일색이다.

2. 컴퓨터 기반의 통신을 소재로 한 영화

1997년쯤이었나.. '접속'이라는 국산 멜로 명작 영화가 크게 히트를 쳤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비슷한 시기에 Contact라는 제목으로 우주 관측을 소재로 하는 외국 SF 영화도 개봉하긴 했지만 그거랑은 소재· 장르가 완전히 다르고...ㄲㄲㄲ '접속'은 PC 통신 채팅으로 남녀가 만나는 얘기이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PC 통신은 인터넷으로 바뀌었고 스마트폰과 SNS가 등장하고, 네트워크 속도는 정말 미친 듯이 빨라졌고, 사진으로 모자라서 동영상까지 초고화질로 실시간으로 주고 받는 시대가 됐는데..
훗날 통신을 소재로 한 영화로는 '소셜포비아'(한국, 2015),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일본, 2023)처럼 그닥 밝고 긍정적인 소재가 아니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접속'과 무척 비교되는 것 같다.

곤지암(2018)은 저 작품들처럼 대놓고 범죄를 다루는 건 아니지만, 기괴한 컨텐츠를 갖고 시청률 조회수에 목숨 거는 인터넷 방송? 유튜버의 어두운 면모를 다루고 있다.

3. 1967년작, 흥부와 놀부

옛날 국산 영화들을 뒤져 보다가 정말 놀라운 작품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1967년작 “흥부와 놀부” 인형극이다. 얘는 그 시절에 흔치 않게 올컬러인 데다, 손이나 실로 조종하는 흔한 인형극 촬영이 아니다. 무려.. 스톱모션 애니이다. ㄷㄷㄷㄷㄷㄷ (☞ 보기)

1967년, “빨간 마후라”, “소령 강 재구”와 거의 같은 옛날에 울나라에서 이런 애니메이션을 만든 적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CG도 없고 전자 음향도 없던 시절이니 크레딧 화면은 전부 손글씨와 실물 그림을 촬영한 것이다. 게다가 인형들의 저 정교한 움직임을 생각하면? 근성 면에서는 머털도사, 흙꼭두장군 이런 것보다 더 고퀄 같다.

60년대 아니랄까 봐, 구렁이를 때려죽이는 걸 피까지 철철 흐르면서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잔인하게 묘사한 것 같다. ㅜㅜ 애들 보는 인형극이라면 그냥 쫓아내서 없애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이는데.
그리고 뒷부분에서 놀부의 박에서 튀어나오는 괴물과 귀신도.. 어지간한 공포물 수준이다. =_=;;

내가 울나라 옛날 영상물들을 여럿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어 간다.
이 바닥은 1960년대에 뭔가 잊혀진 중흥기 같은 게 있었다. 1960년대를 만만하게 보지 말라.
오히려 5공 3S니 뭐니 하던 1980년대가 암흑기 침체기였다.

옛날에 KBS에서 왕자와 거지, 아라비안 나이트 이런 거 갖고 인형극을 방영했던 것 같다. 추억 돋네.. 그건 아래쪽에 철사가 연결된 조종 방식이었다.
요즘이야 실사 인형 같은 CG 애니메이션이 있을 뿐이지, 구닥다리 인형극 같은 건 안 만들 것이다.

4. 생명보험사의 첨단 CG CF들

지난 2021년 여름엔 신한 라이프의 CF에서 가상 인플루엔서 ‘로지’가 격렬한 댄스를 선보였다. 기억하는 분 계신가? (☞ 보기)
이게 실존 인물 무명 신인이 아니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시청자들이 적지 않게 놀랐다. 1990년대 말의 사이버 가수 아담 시절에 비하면 CG가 정말 장족의 발전을 한 게 느껴진다.

그 뒤 2023년 초엔 KB 라이프의 CF에서 배우 윤 여정 씨가 50여 년 전 20대 시절의 자기 모습과 조우하는 모습이 나왔다.
이건 대역 배우가 동원되기는 했지만, 거기에다가 AI를 접목하여 합성 보정을 거친 영상이다. 대역 배우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됐다. (☞ 보기) 신한 다음에는 KB가.. ㅡ,.ㅡ;;

햐~ 1990년대 중후반엔 환경 보호 공익광고에서 “그 맑은 물이 그립습니다” 이러면서 신 윤복의 풍속화가 애니메이션으로 바뀌던 게 당대 최첨단 CG 기술이었었다.
조선 시대 그림풍으로 물이 실제로 졸졸 흐르고 아낙네가 진짜로 머리를 감고 씻었다.;; 아니면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가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간다거나..

거기에다 초보적인 에이징/디에이징 기술을 동원해서 경북대 무슨 교수 연구팀이 용역 받아서 “실종된 성서 초등학교 개구리 소년 5인,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이런 얼굴일 것임” 정도나 깨작거리며 만들었다. 지금 기술에 비하면 정말 어설픈 수준이었다.

옛날에는 아담 정도의 CG만 해도 최하 워크스테이션 급 컴에서 X뺑이 치면서 며칠씩 렌더링 시켜야 했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 CG는 어지간한 그래픽 카드만 장착된 PC라면 게임 실시간 렌더링으로 나올 것이다.
실존하지 않는 눈발이나 불꽃, 머리카락, 물결을 재연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통째로 재현하고 나이 속이는 기술이 정말 눈부시게 발전했음을 느낀다. 아까 저 1960년대 인형극 영화와 비교하면 기술 배경이 그야말로 극과 극 상전벽해 그 자체이다.

그나저나 윤 여정의 진짜 20대 시절 작품인 1971년도 영화 "화녀"가 있다.
1960년엔 그렇게도 명작이라던 국산 흑백 영화 "하녀"가 있었는데.. 화녀도 있군..!!
KB 라이프의 CF를 제작한 사람들이 이 영화도 응당 참고했을 것이다. (☞ 보기)

Posted by 사무엘

2023/09/22 08:35 2023/09/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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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도

192~30년대에 일본 도쿄 시내 모습을 보면.. 1920년대의 뉴욕처럼 벌써부터 마천루에다 자동차가 길거리를 가득 메운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단하다. 빽빽한 건물들에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노면전차들이 다니고 인력거들이 분주히 오간다.

그런데 그 중에서 본인이 보고 굉장히 놀란 광경은 바로.. 그때 이미 도시 한복판을 고가로 지나는 철도가 있었고 그 위로 증기 기관차가 칙칙폭폭 다니더라는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일제 시대 전체를 통틀어 경성에서도 철길이 고가로 입체교차 하며 다니는 구간이 만들어진 적은 전혀 없었으니 매우 신기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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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풍경은 아닌데.. 교량 말고, 시내에서 증기 기관차가 고가 위를 달리는 것 말이다)

증기 기관차가 다니는 시절이라면 다른 철도 시설도 단선 비전철화에 평면교차가 당연시될 텐데, 쟤들은 증기 기관차로도 열차를 벌써부터 저렇게 빡세게 굴렸는가 보다.
그러니 1930년대에 경부선 서울-부산을 증기 기관차만으로 무려 6시간 40분을 찍었던 것이다. 그것도 단선으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저 정도 철도 시설은 해방 이후 할배를 넘어 박통 때에나 구경할 수 있었는데, 박통 시절에 일본은 아예 신칸센을..;;; 뭐 그랬다.

2. 기업

일본에는 도요타, SONY, 미쓰비시, 히타치, 혼다, 이스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 게임기, 철도 쪽 기업이 있다. 이들만치 유명하지는 않지만 본인이 들어 본 적이 있는 특이한 기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일본전산: 모터 제작 전문이라고 한다. 선풍기, 세탁기, 심지어 교통수단 안에 들어가는 큼직한 녀석뿐만 아니라 하드디스크를 동작시키는 모터, 휴대전화에서 진동 모드를 구현하는 모터처럼 엄청 섬세하고 작은 것까지도 만든다.
얘는 창립 초창기부터 직원 채용 방식과 경영 방침이 아주 독특한 걸로 유명했다. 지원자들에게 아무 예고 없이 도시락을 달랑 준 뒤, 밥을 제일 빨리 먹은 사람을 합격시켰다거나, 목소리 큰 사람, 오래달리기 깡다구가 있는 사람을 뽑기도 했다.

어설프게 시험 점수 좋은 거 하나만 믿고 고자세인 사람이 아니라, 당장 좀 어눌해도 자기를 뽑아 준 회사에 고마워하고 끈기와 집념이 있고 충성할 줄 아는 사람을 뽑았다. 그 뒤 회사에서 필요할 때는 물론 "안 되면 되게 하라" 불굴의 공밀레 근성으로 직원을 갈아넣을 땐 갈아넣더라도, 그들에게 최고의 복지와 종신 고용을 보장했다. 그렇게 해서 세계의 정밀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모터들을 석권했다고 한다.

(2) 화낙(FANUC): 얘는 공작 기계, 산업용 로봇.. 다시 말해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물건을 만드는 로봇을 만드는 회사이며, 역시 이 바닥에서 독보적인 기술과 시장 점유율을 자랑한다. 일본 제조업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기술에 목숨 걸면서 보안에 극도로 민감해서 본사와 공장은 외진 후지 산 숲속에다 같이 꿍쳐 놨다. 추가적인 공장도 외국에는 절대로 만들지 않고 사내 통신도 종이와 팩시밀리에 의존한다고 한다.

위의 두 회사 모두 1970년대에 창립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가 무슨 기계류를 자체 개발하려 하는데 "n% 이내의 핵심 부품과 무슨무슨 공정을 국산화하지 못해서 아직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말이 있다면.. 그게 바로 일본의 이런 회사가 주인공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고 보니 이름이 참 강렬해서 기억에 남아 있는데, 나치..!! (3) 나치-후지코시라는 일본 회사도 산업용 로봇, 공작 기계 제조이니 화낙이랑 업종이 비슷한 것 같다. NAZI..는 아니고 NACHI인데, 이름이 일본어로 무슨 뜻인지, 아니면 다른 단어의 이니셜인지는 잘 모르겠다. =_=;
하긴, 일본은 1930년대에 나치 독일 청소년들과 친교 맺으면서 "반자이~ 힛토라 유겐토~~ 반자이 나치스!!" 이런 가사의 노래도 만들어서 불렀던 나라이다. 끼리 끼리 논다고~;;

3. 삼청교육대의 학교 버전

세계 어디에서나 옛날에는 지금보다 닥치고 근성, 정신력, 끈기, 의지를 강요하고.. 좀 나쁘게 말하면 약육강식에 무식한 똥군기와 까라면 까, 폭력적인 생명 경시 성향이 사회 분위기에 짙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그 정도가 세계 평균보다 더했던 것 같다.

그게 지금의 일류 선진국 일본을 만드는 저력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그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골병 들게 만들기도 했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까지는 공중도덕 미덕인데, 그게 지나쳐서 남과 다르면 그냥 곧바로 비국민 왕따 이지메..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도 그런 일본을 벤치마킹 하면서 단기간에 성장했으니, 순기능과 역기능이 둘 다 일본의 7~80%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5공 시절에 삼청교육대가 있었다지만 일본은 10대 애들이 다니는 교육기관이 삼청교육대 같은 곳이 있었다. =_=;;
대표적인 예가 쌍팔년도 시절의 '닛세이가쿠엔' 고등학교..;; 여기는 다른 학교에서 감당이 안 되는 양아치들을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일체의 자유 시간이 없고 라디오· TV· 신문 금지.. 남자애들은 거의 삭발 수준으로 머리 밀고 입학.

사소한 규율을 어기면 혹독한 체벌에다 걸핏하면 단체 기합..
특히 압권인 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전교생이 청소 명목으로 고래고래 고함 지르면서 걸레질을 미친 듯이 하고, 심지어 변기를 맨손으로 닦아야 했다. 자세한 건 이런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하시길..

교장이 "인간은 생활 방식을 개조해야만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땀흘리며 일해야지 인생의 참맛 의미를 알 수 있다.." 이런 신념의 추종자였다고 하는데.. 내가 알기로 캄보디아의 인간 백정 폴 포트도 거의 똑같은 소리를 지껄이면서 생사람을 잡았다.;;;;
심지어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는 "Arbeit Macht Frei 로동이 자유를 선사한다"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지 않던가..?? 다들 근로· 노동의 의미를 심각하게 모욕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저기서 못 견디고 탈출하거나 자살하는 애도 있었다. 그리고 애들 저렇게 굴려 봤자 어차피 학업 성적이나 대학 진학률은 개판이었다.
저긴 정말 삼청교육대나 소년원이나.. 아니면 옛날 PC통신 소설 "구타교실"에 나오던 M고 같은 학교였다만..
1980년대 말, 설립자가 죽고 일본 천황이 바뀌었을 즈음엔 저기도 그래도 평범한 일반 사립 고등학교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토츠카 요트 스쿨'이라는 곳도 요트 선수 교육을 빙자해서 문제아를 줘 패면서 더 잡는 시설로 악명을 떨쳤다. 여기도 요트 선수 출신인 설립자가 "애새끼는 닥치고 빡세게 굴려야 잡생각 하지 않고 나태해지지 않고 강하게 큰다" 이런 사고방식을.. 교육생 중에 사망· 부상· 실종자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굽히지 않았다.;;;

Posted by 사무엘

2023/09/06 08:35 2023/09/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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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라의 김 유신은 부정한 아기를 갖게 됐다는 이유로 여동생 문희를 불태워 죽이는 시늉을 벌였다.
야곱의 아들 유다는 부정한 아기를 갖게 됐다는 이유로 며느리 다말을 불태워 죽이려 했다. (창 38:24)

2. 신라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술 마시고 흥청망청 놀다가 후백제군에게 완전히 털리고 박살 나고 치욕스럽게 죽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바빌론 벨사살 왕은 손가락 경고를 본 뒤에도 흥청망청 놀다가 페르시아에게 완전히 털리고 치욕스럽게 죽었다.

3. 백제의 의자왕, 고구려의 보장왕은 나라 멸망 후 당나라로 끌려갔고 편하게 못 죽었다.
남유다 왕국 시드기야 왕도 나라 멸망 후 바빌론으로 끌려가서 편하게 못 죽었다. 어설프게 이집트와 손잡고 바빌론에 깔짝깔짝 대항하다가 더 험한 꼴을 당했다.

4. 이건 드라마 각색이긴 하다만.. 후백제 견훤의 참모였던 최 승우는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줄 거면 매정하지만 형들을 모두 숙청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들만 잃지만, 지금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아들도 잃고 나라도 잃게 된다"라고 왕에게 조언했다.
그러나 왕이 그 말을 차마 이행하지 않자 최 승우는 이제 국운이 다 끝났음을 직감하고 낙향해서 인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백제의 운명은 최 승우의 예측대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성경에서도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마치 견훤의 아들 신검처럼 쿠데타를 일으켰다!
나중에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략을 듣지 않고 후새의 멍청한 계략을 듣자.. 아히도벨 역시 이제 다 끝났다는 걸 직감하고 낙향해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여기서도 아히도벨의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단, 태조 왕 건에서는 계략가가 왕의 편이었던 반면, 성경에서는 계략가가 반란군 아들의 편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 견훤은 자기가 세웠던 나라를 자기가 도로 무너뜨리고.. 심지어 적국에 귀순해서 아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했던 비운의 군주였다. 세계사를 통틀어도 보기 드문 인물이다.

* 백제는 삼국 중에서 동물과 사람이 넘나드는 식의 거창한 건국 설화가 없고 시작이 좀 평범한 나라였다. 그러나 신라는 시작부터 끝까지 독특한 점이 꽤 많은 나라였다.

  • 실존했던 천년왕국..;; 특히, 그 긴 기간 동안 도읍이 옮겨진 적도 없었다.
  • 김씨와 박씨가 번갈아가며 통치했다.
  • 신분 제도가 그 악명 높았던 조선의 양반 쌍놈보다도 더 복잡했다고 그러는데..
  • 그래도 여성 인권이 괜찮았는지 전근대 시절에 유일하게 여왕도 존재했다. 심지어 화랑 제도도 전신은 남자가 아니라 미녀를 뽑는 제도에서 시작했었다.
  • 김 유신은 정치 권력이 없는 순수 군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후에 왕으로 추존되기까지 했다(흥무대왕). 지금 우리나라 군에다 비유하자면.. 명예 상징으로만 존재하는 오성장군 원수로 추존된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예도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했다.

신라가 괜히 삼국 통일을 이루고 1000년 가까이 간 게 아니었던 것 같다. 100% 신라 자력이 아니라 나당 연합군을 끌어들인 것 때문에 이걸 폄하하는 시각도 있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어 보인다. (그럼 나중에 임진왜란 때는 왜를 격파하는 데 조선과 명이 각각 얼마나 기여한 건지 궁금해진다.)
신라는 북쪽의 대륙으로 뻗어 가지 않은 대신, 그 시절에 남쪽의 먼 바다로 진출해서 먼 외국과 교류했다. '발해를 꿈꾸며'도 좋지만, 장 보고가 얼마나 큰일을 이뤘는지, 그 사람이 허망하게 죽지 않았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그건 그렇고, 다음으로..

* 신라는 망하기도 정말 적절하게 최고로 잘 망했다.
마지막 경순왕은 궁예나 견훤, 왕 건 같은 무예의 달인이 아니었으며, 그저 견훤에 의해 대타로 세워진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망국의 마지막 군주로서 그 여건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정을 베풀었다.

줄을 잘 서서 후백제에게는 대항하면서, 적절한 타이밍 때 고려로 딱 깔끔하게 귀순했다.
덕분에 백성들도 살고, 자기도 고려로부터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
귀순 후에도 반세기에 가까운 천수를 누리고 고려의 5대 왕이 즉위하는 것까지 보면서 죽었고.. '김부왕'이 아니라 경순왕이라는 시호까지 받았다.

이건 남극점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귀환해서 모든 대원들을 생환시킨 어니스트 섀클턴과 비슷하다. 또 북한의 귀순 파일럿 1호인 노 금석이 그 뒤로 미국 가서 평생을 떵떵거리며 산 것과도 맞먹는다. 망국 군주가 이렇게 잘 살고, 백성들로부터도 칭송 받다가 간 건 우리나라 역사상 다른 유례가 없을 것이다. (고종 순종은 칭송 받는 사람은 아님..-_-)

이런 거 생각하면 인생 한번 참 타이밍이다.
그에 반해, 고려 말기의 문 익점은 고려냐 조선이냐, 원이냐 명이냐.. 그 격변의 시기에 매번 파괴왕 급으로 줄 잘못 서서 피 봤었다. -_-;; 그래도 정치색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역적으로 몰려 목이 달아나지는 않고 관직에서 짤리고 잠시 귀양만 가는 수준으로 끝났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25 08:35 2023/08/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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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 스토리 매체들

본인은 권선징악 이야기를 좋아한다.
악의 무리들이 더 큰 힘에게 참교육 당하고 보복과 응징 당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성경도 궁극적으로 그런 구조이기 때문에 본인이 좋아한다.
옛날 영화 테이큰이나 아저씨 같은 부류를 아주 좋아한다. 마르코를 전기 고문하고 만석· 종석 형제를 통쾌하게 골로 보내 버리는 연출을 좋아한다. I spit on your grave라든가 "악마를 보았다" 같은 작품도 좋아한다.

쓸데없이 열린 결말이나 무슨 입체적인 면모, 이중간첩 반전, 가해자가 된 피해자, “쟤도 처음부터 저렇지는 않았어” 같은 건? ‘역사의 풍운아’ 급으로 스토리를 기막히게 탄탄하게 잘 짠 게 아니면 막 좋아하지 않는다. "복수는 나의 것"이나 "킬 빌"은 막 권선징악 정의 구현이라고 보기는 좀 애매하지..??? ㄲㄲㄲ

글쎄, 이런 단순한 장르에 대한 수요가 있는지.. 요즘은 웹툰이나 유튜브로도 내 취향을 저격한 소재의 작품이 좀 눈에 띈다.
가장 먼저 웹툰 <참교육>이다. 2020년 말부터 거의 2년 동안 110화를 연재하더니 2022년 말에 시즌 1이 끝났다. 본인은 이걸 재미있게 구독했으며, 상당수의 회차는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서 유료 구독까지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에는 그냥 학교 폭력만 다루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섬노예와 사이비 종교, 불법 도박까지 그야말로 학생이 얽힌 전반적인 시사 사회 고발물이 됐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좀 오글거리고 유치한 연출도 적지 않지만, 이런 게 본인의 취향과 잘 맞는다.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본인은 성악설을 지지하고 필요악의 존재를 인정한다. 체벌이나 사형 제도를 쌍수 들고 적극 찬성하며 그게 성경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본다. 저런 게 없으면 인간이 인간이 될 수 없고 인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오늘날의 사법 체계는 형벌이 너무 약하다.

오 은영 교수/의사/박사라고 아동 교육 전문가를 표방하며 온갖 TV 방송과 광고에 얼굴을 비추고 있는 유명인사가 있다. 난 개인적으로는 저분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자기도 교인이라면서 자녀를 의로 훈육해야 된다는 말은 일체 없이, 극단적인 막장 문제 부모들 예만 들면서 오로지 “문제 아동이 아니라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 얘기밖에 안 한다. 그건 편파적이고 문제 있는 관점으로 보인다.

솔직히 엄마가 아니라 아빠라면.. 어린 자녀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작살난다, 내 생명이 위협을 받는다” 정도의 권위와 위엄, 두려움이 있기는 해야 한다.
선악을 아직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애는 아예 죽어 버린다면 무조건 구원이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판단 유예 기간 동안, 지옥불에 떨어지지는 않는 대신 신체의 아픔이라도 느끼면서 지옥에 가지 않는 생활 습관이 훈련되고 몸에 배여야 할 것이다.

물론 “큰 권한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법칙은 부모에게야말로 매우 절실히 적용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내리는 상과 벌, 당근과 채찍에는 “원칙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녀가 부모와는 아예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고 소통을 포기해 버리고 삐딱서니 타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뭐,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절대 아닐 것이고 본인은 처자식조차 없는 미혼이니-_- 이 주제에 대해 더 오지랖을 늘어놓지는 않겠다. ㄲㄲ

얘기가 좀 밖으로 샜다만..
<참교육> 정도면 약간의 현실적이고 진지한 메시지가 들어있는 작품인데..
그냥 단순히 악인을 가학적으로 응징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작품도 있다.

국내 웹툰 중에서는.. 이미 수 년 전에 완결되기는 했지만 <뉴 바이블>이 있다. ㅡ,.ㅡ;;
무슨 헐크처럼 생긴 ‘제이’(J!!!!!)가 정의의 사도이다. 십자검을 휘두르면서 일진 양아치나 성범죄자의 사지를 자르고 목을 뎅겅 쳐 버린다. <킬 빌> 같은 병맛 연출 일색인데, 계속 보면 재미는 있다. -_-
참교육과 뉴 바이블 모두 실제 범죄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서 에피소드를 구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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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만기 출소 후, 안산에서 살고 있는 그 유명 범죄자를 저격한..)

그 다음으로 본인이 유튜브를 방황하다가 발견한 걸출한 물건은.. 일본 만화/영상툰인 “휴먼버그 대학교”이다.
피츠버그 대학교를 흉내 낸 명칭 같은데, 명목상으로는 “인간의 두뇌가 버그를 일으켰을 때”를 표방하는 거라고 한다.

인터넷에 나도는 온갖 엽기 기괴 사건들을 짤막한 만화 형태로 각색하길래 흥미롭게 봤다. 그 정의상, 다윈 상을 받을 만한 일화도 훌륭한 소재가 된다.
여러 에피소드들 중, 불사신 직장인인 사토 히로부미, 그리고 세계를 떠도는 괴식 헌터 키토 죠지는 고정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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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중에서 압권은.. 소믈리에라는 칭호를 자처하는 고문 기술자 ‘이쥬인 시게오’ 시리즈이다.
어떤 악당이 흉악 범죄를 저지르고도 일말의 반성도 없다. 심지어 돈과 빽을 동원해서 대타를 대신 체포되게 만들고, 진범은 처벌조차 받지 않는다.
피해자가 이 사실을 알고는 이쥬인 시게오에게 의뢰를 넣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원한을 풀어 달라고 읍소한다. 그리고.. 스토리는 늘 이런 패턴이다.;;

“내 이름은 OOO. 법의 처벌을 받지 않은 인간쓰레기를 수거하는 뒷세계의 청소부이지.” ㅋㅋㅋㅋ
“피해자의 눈물을 이렇게라도 닦아 주는 것. 이것이 고문 소믈리에의 사명이다.” ㅋㅋㅋㅋㅋㅋ


이런 소재만 갖고 이런 재미있는 만화 시리즈를 만들다니.. 역시 열도의 기상이다.
주인공은 명탐정, 대도, 고독한 암살자 해결사 같은 컨셉이고,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건 “심야식당”이라든가 스피드왜건,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3기 7화 전반부의 “Mr. 마스다” 같은 느낌이다.

그 뒤에 학습만화 스타일의 쓸데없이 고퀄 TMI인 각종 고문 디테일 설명충 기질은 “도이치의 과학력은 세계제이이이일!” 같은 느낌.. ㄲㄲㄲㄲㄲ
이런 게 일본 애니의 세계이구나 싶다!! 감동 받아서 개인적으로 일본 글자라도 독학하며 외우게 됐다.

그러게 진작에 이런 걸 만들 것이지,
뭐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이라든가 “감각의 제국”, “쇼군의 새디즘”처럼 꿈도 희망도 없이 피해자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얘기들은 재미가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고문 소믈리에 시리즈에서는.. 필리핀에서 무려 가톨릭 신부로 활동하면서 고문 기술자를 겸직-_-;하고 있는 이쥬인 시게오의 친구가 이름이 JJ이다. 뉴 바이블의 '제이'와 비슷한 명칭 되시겠다.

이상이다. 뜬금없이 정치 얘기를 좀 늘어놓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이쥬인 시게오 같은 사람이 현실에 존재해서 음주운전 교통사고 유족이라든가.. 더 나아가 서해 피살 공무원 유족이라든가, 동료 탈북자가 저 사람을 찾아가서 피눈물 쏟으며 의뢰를 하는 상황을 잠시 상상해 봤다.
멀쩡한 자기 아버지를 월북 빨갱이로 몰아붙인 그놈, 내 친구를 흉악범 살인자로 몰아서 북한으로 되돌려보낸 저 불구대천의 원수를 같이 지옥으로 떨어뜨려 달라고 말이다.

이건 받을 가치가 있는 의뢰이겠지만, 목표물이 무려 전직 대통령이니 빡센 경호를 뚫고 몰래 납치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_-

나는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이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동안에도 그 사람이 해외 순방 중에 비행기가 추락해서 뒤지기를 기원한 적은 전혀 없다.
그렇게 죽어 버리면 놈은 직무 중 순직으로 처리돼서 사후에도 온갖 영예와 예우가 뒤따라오고, 후세들이 놈의 악행을 파헤치기가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전땅끄도 1983년 아웅산 테러 때 무려 북괴의 공작에 의해 순직했어 봐라.. 절대로 지금 같은 정도로 욕먹는 처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뭐, 아예 역사가 송두리째 달라졌겠지..)

그저 놈이 법의 심판을 받고 사형장이나 국립호텔에서 죄수복 차림으로 여생을 보내기를 예나 지금이나 간절히 기원할 뿐이다. 만약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 이쥬인 시게오 같은 사람이라도 처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뭐, 종북 빨갱이들이 현 대통령이 하루빨리 뒤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그 심정은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지금 대통령을 정말 잘 뽑았다는 걸 그놈들이 웅변으로 증명해 주고 있는 거다.
그러나 그런 놈들이 종교인 성직자, 교사, 법조인 같은 직업은 제발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23 08:35 2023/07/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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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 프랑스 대혁명

단두대는 무기나 흉기가 아니라 사형 집행만을 위해 개발된 인체공학(?) 기계로서는 인류 역사상 거의 최초이지 싶다.
교수대는 사형 집행 장치이긴 하지만 기계라고 보기는 좀 어려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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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는 프랑스 대혁명 시국 때 개발되어서 1792년에 처음으로 사형 집행에 사용되었다.
세계에 단 두 대밖에 없는 희귀한 기계라는 건 썰렁 아재개그이고.. 실제로는 세계 각국에 수출되고 보급되었다.;;

사람 목을 짜르는 기계라니 섬뜩하게 들리지만, 그래도 얘는 "사람은 왕족 귀족이든 평민이든 누구든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라는 이념 하에서 발명되었다.

"그러니 사형도 집행자의 체력과 컨디션과 감정에 좌우됨이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최대한 신속하게 사형수의 명줄을 끊어서 고통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사형 집행을 위한 전용 기계가 도입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인권을 향상시키는 길이다"


우왓~ 이 정도면 과연 합리주의 계몽주의의 나라 프랑스답다.;;

게다가 마침 프랑스에서 공포 정치 하에서 그야말로 사람들을 개나 소나 마구 처형하게 되자, 이런 기계에 대한 수요와 정당성도 더욱 커졌다.

단두대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한 길로틴인지 기요탱인지 그 해부학 교수는 전적으로 필요악 차원에서 이런 걸 만들었을 뿐이었다.
왜, 19세기에 기관총을 발명한 기술자도 기관총이 위력이 너무 강해서 얘 덕분에 역설적으로 세계에서 전쟁란 게 종식될 거라고 낙관하지 않았던가?
그것처럼 기요탱 아저씨도 사형 제도가 없어지는 날을 꿈꾸면서 역설적으로 단두대를 설계했다고 한다. 에휴.. 사형 제도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흉악 범죄가 없어져야지?

아무튼 기요탱 박사는 단두대에 하필 자기 이름이 붙어서 보통명사화해 버린 걸 매우 언짢아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이미 이 방면으로 너무 유명해져 버렸다.

게다가 단두대는 외형이 공개되자 돌풍을 일으키며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단두대 축소판 모양을 한 작두 장난감이 불티나게 팔렸다. 어린애들이 사마귀나 쥐, 작은 새 같은 동물을 그걸로 짤라서 죽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긴, 이런 장난감은 잘못 다루면 자기 손가락 정도도 그냥 날아갈 수 있었다. 미친.;;

진위 여부가 매우 의심된다만.. 그 시절 아가씨 아지매들은 단두대 모양의 액세서리가 달린 목걸이나 귀걸이를 차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그 시절엔 단두대가 거의 SF 수준으로 시대를 앞선 문물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전근대 시절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잔혹한 법이 아니라 "과잉 보복을 하지 말라"라는 자비로운 법이었듯... 단두대는 화형이나 능지 같은 훨씬 더 잔혹한 형벌에 비하면 아주 자비로운 도구였다. 정말 파격적이고 시대를 앞서간 발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단두대를 이용한 최초의 공개 처형을 본 군중들의 반응은.. "스펙타클한 볼거리가 없이 너무 금방 집행이 끝나 버리네..?? 싱겁다, 시시하다, 별로다, 흉악범을 이렇게 단칼에 보내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였다.

이때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유튜브, 영화, 드라마, 게임, 스포츠 같은 유흥거리가 전혀 없다시피했다. 맨날 땡볕에 농사 짓고 수확물의 그나마 상당수를 세금으로 빼앗기며 힘들게 사는데.. 공개 처형이라도 구경하는 게 일종의 공짜 문화 생활이었던 것이다. =_=;;

단두대의 발명자조차 단두대에서 뎅겅 당했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저 사람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다만, 루이 16세 국왕이 칼과 열쇠 같은 금속 공작 쪽 덕후였다. 단두대의 모형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칼날을 반월 대신 빗금 모양으로 만들면 목이 더 잘릴 것 같은데??" 라고 매우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현지지도를 해 주시였다~!!!

그 디자인이 오늘날의 단두대에 반영되어 전해진다. 그리고 루이 16세는 훗날 대혁명 때 그런 모양을 한 단두대에서 참수를 당했다.;;;

오늘날은 루이 16세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나 모두 국고 탕진 낭비벽이 좀 있었을지언정, 단두대 형을 당할 정도의 반역자 싸이코패스는 절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프랑스 대혁명이 광기에 빠진 채 너무 폭력적으로 진행된 감이 좀 있었다.

낭비벽이야 겨우 그거 갖고 사형이면 주변 귀족들 관료들 상당수가 같이 뒈져야 했을 것이다. "빵이 없다고? 그럼 과자/고기를 먹으면 되지?" 드립도 후대에 의한 악의적인 주작이라고 반박되어 있다.

옛날 백년 전쟁 시절에 영국에서는 잔 다르크를 하다 하다 안 되니까 "남장죄"(= 동성애 예비음모)를 덮어씌우려 했었다. 이와 비슷하게, 마리 앙투아네트도 사형에 처할 만한 중죄가 도통 안 나오자 '요망한 썅년' 프레임이 시도됐다. 이름하여 "아들(정신지체 장애)과 근친상간죄"...;; 이건 마리 앙투아네트를 미워하던 사람들조차도 일부는 "이건 아니지, 선 넘지.. 검사 저 병X새X.."라고 하며 고개를 저었다.

다만, 저 왕비는 세상 물정 모르고 철딱서니가 없긴 했다. 혁명이 일어나자 외국으로 튀려다가 걸리는 바람에 여론이 더욱 악화되었고, 그게 왕과 왕비의 명줄을 재촉하게 됐다.
변장하고 몸만 쏙 빠져나가도 시원찮을 와중에,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마차에다 자기 귀중품 장신구 따위를 모두 챙겨 싣고 '왕비의 품위'를 지키며 거창하게 나가려 했다. 이 때문에 얼마 못 가 들키고 말았다. -_-;;

그나마 루이 16세는 단두대로 가는 순간까지도 정장 차림에 왕실 마차를 타고 육군 병력의 호위를 받으면서 국왕답게 그럭저럭 품위(?) 있게 죽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품위에 목숨 걸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나중에 강제 삭발 당한 채 허름한 옷차림에 죄수 호송 수레에 실려서 품위 따위 못 지키고 죽었다.
어라? 프랑스에서는 훗날 나치 부역 여성들한테도 삭발로 망신 주고 응징했었다. 그러니 이것도 뭔가 프랑스만의 관행처럼 각인되어 있다. -_-;;

* 여담

(1) 이렇듯, 프랑스도 나치 독일처럼 전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넣는 사고를 친 적이 있었고 (나폴레옹),
스탈린 치하의 소련처럼 자국민을 개나 소나 다 정치범으로 몰아 죽이는 광기어린 숙청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대혁명, 파리 코뮌)

(2) 훗날 나치 독일은 단두대와 관련하여 프랑스에서도 안 하던 응용을 했는데.. 바로 자동차에다가 싣고 다닌 이동식 소형 단두대=_=, 그리고 일부 악질 죄수들에 대해서는 땅을 보고 엎드린 게 아니라 하늘을 보고 누운 자세로 참수를 시켰다. 즉, 자기 목으로 칼날이 떨어지는 걸 볼 수 있게 했다.;;

(3) 프랑스에서는 1977년에 마지막으로 단두대 사형이 집행됐다.;; 그 뒤 단두대는 프랑스에서 사형 제도가 1981년에 폐지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차 대전 후에도 무슨 이슬람/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서유럽 선진국에서도 생각보다 늦게까지 단두대 참수형이 존재했다는 게 의외인데.. 공개 처형은 1939년이 마지막이었다.

(4) 본인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강경한 사형 제도 찬성론자이다. 불필요하게 잔인하게 죽일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죽일 놈은 죽여야 된다. 육식과 결혼 제도가 성경적인 것과 동급으로 사형 제도도 성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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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2 19:36 2023/07/1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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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1년, 9· 11 테러

(1) 미국 세계 무역 센터 9· 11 테러가 벌써 20년도 더 전 옛날 일이 됐다.
이때는 테러리스트에게 장악 당한 미국 국내선 여객기 두 기가 각각 제1 WTC와 제2 WTC 쌍둥이 건물에 충돌했었다.
세계 각국이 테러에 대처하는 방식이 협상 따위 없이 강경해지자, 테러를 저지르는 방식도 그냥 닥치고 너 죽고 나 죽는 쪽으로 더 흉포해지고 광기가 더욱 커진 것 같다.

테러범들은 나름 동부 끝에서 서부 끝까지 제일 멀리 가는(= 연료도 제일 많이 실려 있는) 국내선 비행기를 골랐으며, 건물에 주는 대미지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충돌 직전에 기체를 45도 roll을 줘서 비트는 기동까지 취했다.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얘들은 단순무식한 광신도 이상으로 머리를 꽤 굴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형 여객기의 조종술을 익히는 머리에다가 무력으로 조종실을 점거하는 담력까지.. 그 지능과 멘탈로 다른 좋은 일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아무튼, 나중에 피격된 제2가 먼저 무너졌고, 제1은 좀 더 버티다가 피격으로부터 1시간 40분 남짓 뒤에 와르르 붕괴됐다.
아마 제1의 충돌 지점이 제2의 충돌 지점보다 더 고층이어서 더 오래 버틴 것이지 싶다.

(2) 이 사건은 너무 엽기· 충격적이고 황당무계할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한 건물이 너무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무너진 것 때문에 자작극 음모론이 많이 나돌았다.
그러나 테러를 알아채지 못한 것은 미국이 점차 군기가 빠지고 보안 의식이 문란해져 갔던 것으로 웃프지만 설명이 된다.
건물이 차곡차곡 무너진 것도 우연이 전혀 아니며 얼마든지 설명 가능하다.

하부에서는 그 어떤 추가적인 폭음 같은 게 들리지 않았고 건물은 조용히 주저앉았다. 철근과 각종 구조물들이 1000도를 훌쩍 넘는 항공유 불길에 1시간 반이 넘게 활활 타고 익으면서 강성이 약해지고, 그게 발파 해체와 거의 같은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인간이 만든 거대한 건물, 구조물은 지구의 중력가속도 급의 충격에도 대단히 취약하다. 발목 하나 싹 날려서 윗부분이 주저앉기 시작하면 연쇄 붕괴를 막을 수 없다. 건물의 발파 해체도 딱 그 역할만 한다. 무슨 미사일처럼 파편을 날려서 목표물을 파괴하는 게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 삼풍 백화점은 옥상이 바로 아래의 5층으로 폭삭 주저앉은 충격량만으로도 그 아래의 층들이 지하까지 연쇄적으로 차곡차곡 잘도 붕괴됐다.
금속덩어리인 군함도 어뢰를 맞거나 유폭이 발생해서 폭압 때문에 잠시 붕 떴다가 해수면으로 떨어지면.. 그 충격 때문에 더 박살 나고 너덜너덜해진다. 이런 급의 구조물엔 강체라는 개념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3) 제1 WTC의 경우, 93층부터 99층까지가 여객기의 타격을 받았다.
제2 WTC와는 달리 탈출 계단이 몽땅 끊어지고 막히는 바람에 이 층과 그 윗층 사람들은 단 한 명도 탈출하거나 생존하지 못하고 그대로 화재, 건물 붕괴, 추락 등의 방식으로 희생됐다.

특히 딱 93층부터 100층에는 Marsh & McLennan 컴퍼니즈라는.. 무슨 위험관리 보험중개 회사가 입주해 있었는데.. 100% 제대로 직격타를 맞았다.
근무 중이던 직원 295명과 보조 관리인 63명, 358명 전원이 몰살 당하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재산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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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보험을 중개하는 일을 하더니 자기가 보험 보상금을 받아야 하게 생겼는데.. 그래도 회사 자체는 망하지는 않고 지금도 건재해 있다.
회사 홈페이지에서는 연혁을 소개하면서 저 때가 “가장 암울했던 시절”이라고 언급한다.

2. 2019년, 일본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 테러

(1) 그리고 지난 2019년 7월경에 일본에서는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라는 만화영화 제작사에서 외부인에 의해 전대미문의 방화 테러가 발생했다.
오덕들 세계의 일이어서 대대적으로 보도가 안 됐었나? 난 그 당시엔 이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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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치광이가 멀쩡히 돌아가고 있던 작업실에 작정하고 침입해서 기름 끼얹고 불을 질렀다. 이 때문에 건물 하나가 통째로 불타면서 젊은 2~30대 직원이 36명이나 사망하고 33명이 부상 당했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전체 직원의 무려 40% 가까이가 죽거나 다쳤고, 작업 데이터도 많이 날렸다고 한다.;;

목조건물이었다고는 하지만,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건물 방화 하나 갖고 이런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니..
우리나라로 치면 20여 년 전의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같은 느낌이다.
아, 더 최근인 2022년 6월엔 같은 대구에서 민사 소송에 패소했던 어떤 사람이 앙심을 품고 상대편 변호사 사무실을 불질러 버리는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이때는 범인을 포함해 7명이 목숨을 잃었다.

(2) 칼 들고 피해자와 직접 맞닥뜨리는 강도나 살인마는 범행 과정에서 거의 반드시 자신도 자기 흉기에 다친다.
피해자는 살고 싶어서 맹렬히 저항하는데, 저 정도로 끔찍한 범행이라는 게 가해자의 입장에서도 평소에 늘 하는 익숙한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 신체 부위별로 칼을 푹 꽂았을 때 들어가는 느낌이 어떤지, 찔렀던 칼날이 잘 빠져나오는지 같은 감을 아는 일반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프로 조폭이나 칼잡이 킬러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방화범도 매우 높은 확률로 어디든지 화상을 입는다.
끼얹은 휘발유를 따라 불길이 퍼지는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불꽃이 주변의 유증기만으로도 얼마나 급격히 퍼지는지 같은 것도 일반인이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저 교애니 스튜디오 방화범은 물론이고,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방화범도 불을 지른 직후에 자기도 꽤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냥 불에 덴 정도가 아니라 불이 자기 옷에 옮겨 붙기까지 했다.
둘 다 처음에는 피해자 행세를 하며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행적이 미심쩍고 뜬금없는 화상에다 기름 냄새까지..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니 결국은 잡혔다.

(3) 새까맣게 타서 얼굴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고 지문 채취나 DNA 채취도 할 수 없는 시신의 경우, 그나마 형체가 남아 있는 치아 상태를 확인하고 치과 치료 내역을 조회해서 신원을 확인하곤 한다.
이 일을 도와 달라고 경찰이 요청을 하면 인근의 치과 의사들이 무슨 배심원 소환되어 가듯이 외근을 가는가 보다. 치과 의사는 살아 있는 사람의 입 안만 들여다보는 게 아니다.;;

먼 옛날에 히틀러의 신원도 저런 방식으로 확인되지 않았던가?
그 양반도.. 죽어서 능멸 당하지 않으려고 자기 시체를 깡그리 불태워서 신원 확인이 안 되게 해 달라고 당부를 했는데.. 화장 현장에까지 포탄이 떨어지는 지경이니 부하들이 화장을 제대로 못 했다.
그 뒤 완전히 타지 않은 치열 대조를 통해 이 시꺼먼 시신이 히틀러라는 게 공식적으로는 확인됐다고 한다.

하긴, 사람이 평생 잘 변하지 않고 개인을 유일하게 식별할 수 있는 유의미한 스냅샷을 자기 입 안에다가도 둔다는 게 흥미롭다.
이 사실은 휴먼버그 대학교 실화 에피소드에서 다뤄졌었다. (☞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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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08:35 2023/07/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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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

1400년대 초 프랑스의 전설적인 성녀 영웅이라고 일컬어지는 '잔 다르크' 말이다.
비록 불순한 의도로 띄워지고 치켜세워진 사례가 적지 않아서 지금이야 좀 식상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음이 사실이다.
위인전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화하기에도 너무 좋은 소재이니 지금까지 한두 개 만들어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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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에 대해서는 진짜 딱 이 두 장면만이 너무 강렬하다. 허나 이것 말고도 말이다.

자기 이름 정도밖에 못 쓰는 문맹이었음에도 탁월한 전략으로 남자 병사들로 구성된 군대를 잘 이끌었고, 성직자 신학자들 수십 명을 상대로 신학 논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되나..?? 무슨 나폴레옹과 루터를 합쳐 놓은 사람도 아니고. ㄷㄷ
게다가 진짜 무슨 신통력을 발휘해서 얼굴 본 적 없는 진짜 국왕이 변장하고 숨은 걸 알아챈 걸까?
잔 다르크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 사건 등이 유사 사례로 떠오른다.

1. 1760년대, 제보당의 괴수

시기는 좀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프랑스 출신-_-인 거,
각각 믿어지지 않는 전설적인 행적을 남긴 사람과 동물인 거,
사진 없고, 직접 보고 그린 그림 초상화(잔) 내지 박제(괴수)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는 거.. 신비주의와 관련해서는 꽤 비슷하다. 프랑스가 참 신비로운 동네인 것 같다. '미녀와 야수' 설화가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_-;;

그러나 이런 사람, 이런 괴수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그 옛날부터 너무나 분명하게 기록이 남아 있다. 심지어 이웃 외국이나 적국에서 남긴 기록과도 진술이 일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존재 자체는 절대로 주작이 아닌 팩트이다.

2. 성경의 다윗

잔 다르크에 대해서 "아부지 뭐 하시노?"에 대한 답이 딱 정확하게 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촌뜨기 양치기의 딸이었다는 말이 있고 실제로 "양치기 소녀 잔 다르크"를 묘사한 옛날 그림도 몇 점 있다. (갑옷 입고 백마 탄 여기사뿐만 아니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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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촌에서 양 치다가 10대의 나이로 소명을 받아서 나라를 구한 거.. 나중에 자기 군주한테 밉보인 거는 다윗의 어린 시절과 비슷하다. -_-;;; 샤를 7세가 사울 같은 왕이었나?
물론 잔 다르크는 돌팔매질보다는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전투를 이끌었다. 그리고 훗날 왕이 되지는 못하고 일찍 죽었다. =_=;;

3. 우리나라 유 관순

처형 vs 옥사 차이는 있지만 나이 20도 못 돼서 아주 비슷한 나이에 죽은 거, 애국심 투철하고 종교적으로도 독실한 소녀였다는 게 비슷하다. 실제로 잔 다르크의 생년 몰년에다가 490을 더하면 유 관순의 생년 몰년과 거의 일치한다. 얼추 500년 텀..
유 관순이 살았던 때가 잔 다르크 위인전이 이제 막 한반도에 번역되고 소개되던 시기였다. 유 관순은 잔 다르크의 생애에 굉장히 영향을 받았고 자기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어린 나이에 결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포루투갈 파티마 성모 발현 사건

10대 소녀가 시골 깡촌에서 갑자기 무아지경을 경험하면서 누구누구 뭐시기로부터 신의 계시를 받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게 비슷하다.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중세는 그렇다 치지만, 파티마 저 사건은 그래도 무려 1917년에 있었던 일이다.

저 때 예언이 세 가지가 계시되었다고 한다. 그 중 둘은 곧 공개됐는데, 마지막 예언은 당시 교황 성하께서 표정이 급변하면서 공개 불가 봉인 처리해 버렸다.
이 때문에 이게 온갖 세기말 음모론 떡밥으로 쓰였었다. 심지어 예언 내용을 공개하라고 떼 쓰는 테러 범죄도 저질러질 정도였다.

지난 2000년에 내용이 공개되긴 했지만 정말 막연하고 밍밍하고 별 의미 없는 메시지일 뿐이었다. 이게 어딜 봐서 그 시절에 무려 교황이 멘붕을 일으키면서 공개 불가 처리한 예언이란 건지?
일부 호사가들은 "이건 진짜 마지막 예언이 아니다~ 어딜 속여?"라고 반발했다. 이에 교황청에서는 이게 진짜 맞다고 공식 성명을 내며 반박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

덧..

(1) 잔 다르크에 대한 재판 심문 기록을 읽어보니 뭔가 챗GPT가 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챗GPT로 신학 논쟁이 가능하게 학습을 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ㄲㄲㄲㄲ

(2) 노아의 아내의 이름이 '잔/요안나'라는 개드립이 있다. arc가 ark(방주)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상 캐스터 중엔 '오 요안나'가 있군.
잔 다르크라는 이름은 원래 '아르크 출신의 잔'이라는 뜻이다. 무슨 아르크 자체가 성인 게 아니다. '나사렛 예수', '막달라 마리아'와 비슷한 용례이며, 영화 테이큰에서 Marko from Tropoja도 비슷한 맥락이다.

(3) 지금은 노스트라다무스니, 파티마니, 에드가 케이시니.. 수많은 세기말 예언들이 다 빗나가고 무려 2023년에 도달해 있다. 저런 자극적인 계시보다는 요한계시록 같은 진짜 검증된 예언 계시에만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다들 아직 전혀 이뤄지지 않은 예언이어서 지금 당장 와닿지 않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국제 정세에 어설프게 끼워맞출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03 08:35 2023/07/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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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혼자 올라가서 텐트 치고 자는 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요런 이야기들은 밤에 혼자 캠핑 중에 진지하게 읽어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ㅎㅎ

1. 1959년 2월, 소련 디아틀로프 사건

같은 대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20대 초반의 청년 10명(남8 여2)이 한겨울에 얼추 2주 일정으로(1/28~2/12) 우랄 산맥 종단 산행을 떠났다. 이 사건의 이름 '디아틀로프'는 이 산악팀의 리더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들은 스키도 챙기고 아주 화기애애하게 출발하려 했는데.. 일행 중 딱 한 명이 출발 직전에 감기에 걸렸는지 두통과 고열 증세를 보여서 팀에서 빠졌다. 그 상태로 혹한기 산행을 강행했다간 몸을 더 망칠 우려가 있으니 아쉽지만 출발지에 남았다.

산행 5일차이던 2월 1일, 예정 경로인 산 쪽에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낙오된 그 사람(유리 유딘)은 등산 중인 친구들에게 안부 무전을 날려 봤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텐트 치고 휴식 중이다. 아무 이상 없음"이라는 답을 받았다.
그러나 2월 1일자 무전이 마지막 연락이 되고 말았다. 바로 다음날부터 이들과는 연락이 영원히 끊어졌으며, 그들은 2월 12일 이후에도 귀환하지 않았다.

결국 실종 신고가 들어갔고 20일부터는 거기 일대로 수색이 시작되었다. 사태가 심각하니 군· 경 합동에 항공기까지 동원해서 필사적으로 수색했다.
기록에 따르면 2월 26일이 돼서야 찢겨지고 손상된 채 버려진 텐트가 발견됐고, 그로부터 반경 1.5km나 떨어진 다양한 지점에서 멤버들의 시신 5구가 발견됐다. 나머지 4명은 그로부터 2개월이 넘게 지난 5월이 돼서야 더 멀리 떨어진 계곡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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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텐트가 외부로부터 공격받거나 파괴된 정황이 딱히 없이, 안에 있던 사람들이 텐트를 먼저 찢고 허겁지겁 밖으로 탈출해 나갔다. (왜??) 옷도 장비도 제대로 못 챙긴 채로 정말 황급히.. 그러다가 밖에서 다들 동사했다.
  • -20~-30도의 혹한 속에서 시신들이 다들 속옷 바람 탈의 상태였다. 나중에 발견된 4명이 먼저 죽은 5명의 옷을 더 걸치고 있기도 했다.
  • 리더인 디아틀로프는 밖에 나갔다가 이렇게 버티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텐트로 되돌아가서 옷과 장비를 더 가져오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텐트로 가던 길목에서 저체온증 때문인지 쓰러져서 숨을 거뒀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텐트를 버리고 긴급히 탈출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 뒤에 왜 저렇게 괴이한 최후를 맞이했는지가 도무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글을 쓰다 보니 이거 메리 셀러스트 호 사건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 사건도 선원들이 멀쩡한 배를 도대체 왜 버리고 탈출했는지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이니까 말이다.

소련 정부의 핵 실험이니 인근 원주민의 공격 같은 너무 극단적인 추측을 제끼면, 현재로서는 사건의 주범은 레알이건 낚시건 '눈사태'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람들은 당시에 정체불명의 웅웅웅웅~ 기괴한 소음과 진동을 감지하고는 눈사태가 나는 줄 알고 한밤중에 겁먹고 뛰쳐나갔다가 변을 당한 게 아닌가 추측된다. 물론 이것도 100% 납득되는 설명은 아니고 아쉬운 점이 있지만 말이다.

건강 악화 때문에 산행을 아예 못 하고 낙오됐던 멤버 1명만이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가 됐다. "그 날 밤에 내 동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신에게 질문할 기회가 있다면 이건 정말 꼭 묻고 싶습니다.." 그는 평생 이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2013년에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1989년 7월, 일본 SOS 조난 사건

일본 홋카이도에 소재한 다이쎄스 산의 능선 평원에서 누군가가 자작나무 여러 그루를 베고 쌓아서 굉장히 큼직하게(글자 하나당 폭과 높이가 3~5 미터!!) SOS 문자 표시를 만들어 놓은 게 순찰 헬기에 의해 발견됐다.
그 헬기는 공교롭게도 근처에서 조난 당한 사람을 발견해서 무사히 구조는 했는데, 그 사람은 SOS 문자 표시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며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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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화면 캡처여서 화질이 별로..)
게다가 알고 보니 그 SOS 표식은 더 이전인 1987년에 촬영한 항공 사진에서도 아주 희미하게나마 찍혀 있었다. 이걸 만든 사람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표식 근처를 수색하자 1984년쯤에 조난 당했던 한 20대 남성 회사원의 유골과 유류품이 발견됐다. 유류품 중에는 “도와달라. 나는 지금 벼랑 위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라는 다급한 음성이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도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유류품은 남자의 것인데 유골은 여자의 것이었고.. 비슷한 장소에서 84년에 죽은 사람의 흔적과 83년에 죽은 사람의 흔적이 서로 엇갈렸다느니 제3의 인물까지 거론되면서 온갖 괴담 미스터리가 나돌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것 없고 유골 검사에 착오가 있었으며 조난 당한 사람은 남성 1명이 전부라는 반론도 있다.

정황상 어떤 불운한 남성이 산을 잘못 내려가다가 그만.. 한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수 없는 급경사 아래에 고립돼 버린 것 같다. 그는 쓰러진 자작나무들을 이용해서 며칠에 걸쳐 SOS 표식을 혼자서 굉장히 힘겹게 만들고, 도와달라는 음성 메시지를 녹음도 했다. 그러나 그는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탈진해서 산에서 뼈를 묻게 됐다. 여기까지는 확실하다.

그런데 저기 주변에는 자작나무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것도 확실한 반박이 있는지? SOS 표식이 있는 곳은 진짜로 자력으로 빠져나가기 극도로 어려운 고립된 지형인 건지?
유품과 유골에 두세 명의 흔적이 뒤섞였다는 건 루머였다고 하더라도,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는다. 산에서 고립된 게 무슨 바닷가 테트라포드 아래에 떨어졌거나 무슨 무인도에서 조난 당한 것 같은 느낌이다.

참고로, 1970년에 발생했던 후쿠오카 대학 반더포겔부 불곰 습격 사건이 이 다이쎄스 산의 바로 아래쪽 지역에서 발생한 거라고 한다. 이런 산은 급경사 절벽, 눈과 혹한, 거기에다 곰까지 위험 요소가 확실히 많기는 한가 보다.

3. 2014년 4월, 네덜란드 여대생 리잔-크리스 사망 사건
(정보의 출처에 따라서 리잔-크리스라고 이름을 쓰는 곳도 있고 프론-크레머르스라고 성을 쓰는 곳도 있음)

네덜란드 국적의 20대 여대생 두 명(리잔 프론, 크리스 크레머르스)이 머나먼 파나마로 졸업 여행을 떠나서는 4월 1일, 단둘이서 바루 화산 주변의 숲을 걸으며 당일치기 산행을 시작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능선이나 탐방로를 걷는 하이킹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은 당일 오후와 저녁부터 연락이 뚝 끊기고 실종되어 버렸다. 검증되지 않은 루머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민박집 강아지도 같이 데리고 갔는데.. 저녁에 강아지만 혼자 돌아왔다고 한다. ㄷㄷㄷㄷ
4월 3일에 곧장 실종 신고가 접수됐고 현지 주민들을 동원한 수색이 시작됐다. 울창한 숲 속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은 얼마 이동하지도 못했을 텐데 이 아가씨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실종된 지 10주..(2달 반!)가 지나서야 일행 중 한 명인 리잔의 배낭이 발견됐다. 산책로가 아니라 아예 인근 원주민의 텃밭 부근에서 발견됐다. 이걸 발견한 주민은 그 전날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는 배낭 같은 게 없었다고 경찰에게 증언했다.;;
배낭 안에는 리잔의 핸드폰과 현금, 심지어 여권까지 포함해 유품이 단정하게 정리된 상태로 들어있었다..!! 참, 핸드폰은 신기하게도 리잔뿐만 아니라 크리스의 것까지 같이 들어있었다.

전화기에는 하이킹을 시작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곧장 112(네덜란드의 119에 해당하는 번호)와 911에 연락하려는 시도가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전파가 잘 안 터져서 실제 교신은 실패... 이들은 생각보다 일찍 길을 잃거나 사고를 당한 것 같다. 전화기는 그 뒤로도 며칠 더 쓰이다가 각각 5일과 11일에 배터리가 나가서 꺼졌다.

카메라에는 출발 당일인 4월 1일에 평범한 셀카와 경치 사진이 들어있다가.. 4월 8일 새벽에...!! 별로 좋은 구도나 풍경이 아닌데, 의미나 의도를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숲길 사진이 갑자기 90여 장이나 아무렇게나 무더기로 찍혀 있었다. 플래시까지 터뜨리면서 이런 사진이 찍힌 이유가 뭘까..?? 이것도 사건의 괴이함을 크게 증폭시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은 배낭이 발견된 곳에서 수km 떨어진 곳에서 크리스의 청반바지가 곱게 잘 개어진 채로 있는 걸 발견했을 뿐, 이때는 수색 성과가 더 없었다. 이건 본인이 놔 둔 건지, 아니면 타인의 소행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또 2개월 가까이 지난 6월 19일, 또 배낭 근처 지점에서 이번엔 신원 미상의 골반뼈와 부츠가 신겨진 발이 발견됐다.;; 그리고 강둑을 따라 뼛조각 30여 점이 발견됐다. DNA 감식을 해 보니 이건 역시나 리잔과 크리스의 일행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이렇게 유해로 발견되었다.;; (아까 디아틀로프 사건도 추가 유해는 2개월쯤 뒤에 발견됐네..)

이들은 어쩌다 조난을 당했는지, 살아 있는 동안 산 속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짐승에게 당했거나 사람에게 범죄를 당했는지..?? 4월 8일의 괴이한 사진이 찍힌 배경은 뭔지, 그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그들의 유품을 건드린 사람이 더 있었는지 같은 건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이런 걸 생각하면 첩첩산중에서도 망망대해 만만찮게 사람이 감쪽같이 실종되고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야산들은 아주 아주 안전한 축에 속한다.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3/06/12 08:35 2023/06/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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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영화 이야기

1. 후속편 암시

요즘 영화는 악당이 확실하게 죽고 속편이 나올 여지가 도저히 없을 정도로 결말을 맺어 버리기보다는..
악당이 완전히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와 떡밥을 여기저기 남겨 두는 경향이 옛날보다 더 짙어진 것 같다.

철도 건설에다 비유하자면.. 추후에 연장 공사가 가능하게 복선 노반을 미리 확보해 둔다거나, 심지어 환승역을 미리 건설해 놓는 것과 같다.
예정에 없던 환승 계획이 잡혀서 환승역을 부랴부랴 만들게 되면 힘들게 복구했던 땅을 또 파헤치면서 고생할 뿐만 아니라, 환승 거리도 엄청난 막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처럼 예정에 없던 후속작을 만들다 보면 기존 작품의 설정을 건드려야 하고, 없는 개연성을 억지로 만들어 넣느라 스토리가 삐끗하게 된다.
가령, 페르시아의 왕자 1편의 엔딩은 "악당 쟈파가 완전히 죽었고 왕자와 공주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였는데, 2편의 시작은 "악당이 완전히 죽지 않았고, 왕자와 공주는 딱 11일 동안만 행복하게 살았다"로 바뀌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후속편 떡밥을 던져 놓기만 하고는 후속편이 나오지 못하는 것 말이다.
1700? 1800년대 프랑스가 배경인 안젤리크(2013), 현대 첩보물인 모멘텀(2015)은 둘 다 미국이 아닌 유럽 영화이고 예쁜 여주인공이 나오고, 스토리가 완결되지 않아서 2편이 나와야만 하는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결국 후속편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 유명한 쿵 퓨리(2015)는 일단은 히틀러를 제압한 것 같지만 놈이 완전히 죽지 않은 듯이 끝났다. 얘 역시 속편을 염두에는 두고 있지만 결국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속편이 나오지 않으면 황 인호라든가 성 기훈이 뿌린 떡밥을 수습할 수가 없다. 결국 2편의 제작이 확정됐다고는 한다.
범죄도시는 2편이 잘 만들어져서 후속편이 흥행에도 성공했다.

2. 반전

솔트(2010), 모멘텀(2015), 아토믹 블론드(2017).
다들 여성 요원이 구르고 고생하는 액션 첩보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솔트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만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이중간첩 보내면서 엄청 대립하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솔트도 사건이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고 후속작 떡밥 좀 날리면서 끝나는 것 같았다만..??

아토믹 블론드는 1980년대 말 베를린에서 어쩌구 하는 게 <출국>(2018)이랑 비슷한 배경이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모멘텀은 소련이나 공산당 얘기는 없이 더 판타지 스럽고..

저 영화들의 공통점으로 느끼는 건 피아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반전이 많다는 것이다.
"이건 내가 실수로 잡힌 게 아니라 일부러 잡혀 준 거다", "진짜 배후는 따로 있다",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 동료는 알고 보니 적에게 매수당한 상태였다"
이런 게 현실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스토리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아 그러고 보니 테이큰 3도 이런 구성을 어중간하게 흉내 냈던 것 같다. 러시아 악당이 나오는 것도 똑같고..

3. 군대에서 금녀의 벽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인간 흉기급 여성이 특수 요원이 아니라 군대 특수부대에서 차별과 편견을 견뎌내며 어쩌구저쩌구 하는 줄거리인 영화가 몇 편 있었다.
옛날에 데미 무어가 머리 밀고 출연했던 "G.I. 제인" (1997)..
그리고 "잠망경을 올려라" (1996)는 여군이 무려 잠수원 승조원으로 들어가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거의 존재감 없이 망한 듯하지만 "대한민국 1%" (2010)라는 영화가 있었다. 해병대에 여군 하사가 간부로 들어가는 내용이다.
"잠망경을 올려라"를 소개한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있는데 옆에 관련 동영상으로 "대한민국 1%"가 같이 뜰 정도이니.. 유튜브의 AI는 사람의 마음과 컨텐츠의 의미를 다 파악하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 틀림없다.

대한민국 1%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여배우는 '이 아이'인데.. 뭔가 아이유 IU처럼 EI라고 표기 가능한 참 특이한 이름이다. 현재는 활동을 중단한 듯하다.

아무리 군대에서 짬 찬 병이 초짜 간부를 골탕먹이고 심지어 하극상까지 저지른다 해도.. 저 정도는 영화적 허용일 뿐, 현실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긴, 어떤 국산 영화 중엔 남자 교도관이 여자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말이다.

현실에서는 특전사에도 당연히 여군이 있고 유튜버 '은하캠핑'처럼 베어 그릴스의 한국 버전이요, 툼 레이더, 킬 빌, 악녀, 언니, 임 한림 등등등의 실사판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다.
국군의 날 기념식 때 도복 입고 무술과 격파 시범 보이는 특전사 요원들 중에 가끔 뒷머리 묶은 여군들도 보이는데 다 그런 사람들이다.

4. 오징어 게임과 타 영화 장면의 유사점

<오징어 게임>이 대히트를 친 게 벌써 2년 가까이 전 일이 됐다.
데쓰 게임이라는 게 막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니, 감독이 이걸 만드는 과정에서 "배틀로얄"과 "라이어 게임", "도박 묵시록 카이지"라는 기존 작품을 많이 참고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었다.
그런 플롯이나 스토리 말고 내 개인적으로 그냥 '느낌상'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지는 관련 작품은 다음과 같다.

(1) "라이터를 켜라"(2002)의 어리버리 봉구 허 봉구
극초반부에서 주인공 성 기훈이 그 나이 되도록 부모 돈이나 손대는 상찌질이인 것, 그래도 근본 성품은 착한 것=_=;; ,
어느날 일이 드럽게 안 풀려서 의기소침하다가 극적인 사건을 겪는 것, 결말부에서 뭔가 목표를 극적으로 이뤄내는 것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 외에도,

  • 성 기훈은 소매치기랑 부딪혀서 돈다발을 털리고, 허 봉구는 야비군 훈련장에서 양 철곤과 부딪혀서 점심 우동 그릇을 엎지른다. 이거 비슷하고..
  • "내 돈 내놔!!!" (기훈이 새벽에게, 철곤이 용갑 국회의원에게)도 비슷하고... =_=
  • 처음과 끝이 반복되는 것도 비슷하다..!! 오겜은 딱지치기 게임이지만, 라이터...는 동창회다.. ^^

(2) "자토이치"(2003)에서 최종 반전 흑막이던 술집 종업원 노인
오 일남이 인상 좋은 동네 할아버지가 아니라 돈이 썩어빠지는 오징어 게임 기획자였던 것과 아주 비슷한 심상이다~!!
마지막 화에서 "당신의 깐부로부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처음 볼 때부터 난 자토이치 결말부가 같이 떠올랐다.

(3) "복수는 나의 것"(2001)
오징어 게임처럼 돈 때문에 범죄 저지르는 불우이웃에다, 밑도 끝도 없이 피칠갑 살인이 이어진다는 게 비슷하다.
그리고 오겜에서 강 새벽이 덕수를 극딜할 때 '혁명적인 개XX'라는 명대사가 튀어나왔는데..
"복수는.."에는 혁명적인 무정부주의 동맹-_-이란 게 있다.

결말부에서 여주인공인 영미가 동진에게 전기 고문을 당한 끝에 죽는다. 그런데 영미는 일제 시대로 치면 무슨 사회주의 성향 항일 운동 단체 같은 이상한 단체의 멤버였다. 영미가 살해당하자 거기 동무들이 또 동진에게 칼빵을 놔서 보복한다. 게다가 "네놈을 사형에 처한다"라고 판결문까지 만들어서 가슴팍에 칼과 함께 꽂아 준다.. =_=;;
두 영화는 혁명적인 게 있다는 정말 병맛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고 보니 강 새벽을 배 두나가 연기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3/05/22 08:35 2023/05/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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