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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 스토리 매체들

본인은 권선징악 이야기를 좋아한다.
악의 무리들이 더 큰 힘에게 참교육 당하고 보복과 응징 당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성경도 궁극적으로 그런 구조이기 때문에 본인이 좋아한다.
옛날 영화 테이큰이나 아저씨 같은 부류를 아주 좋아한다. 마르코를 전기 고문하고 만석· 종석 형제를 통쾌하게 골로 보내 버리는 연출을 좋아한다. I spit on your grave라든가 "악마를 보았다" 같은 작품도 좋아한다.

쓸데없이 열린 결말이나 무슨 입체적인 면모, 이중간첩 반전, 가해자가 된 피해자, “쟤도 처음부터 저렇지는 않았어” 같은 건? ‘역사의 풍운아’ 급으로 스토리를 기막히게 탄탄하게 잘 짠 게 아니면 막 좋아하지 않는다. "복수는 나의 것"이나 "킬 빌"은 막 권선징악 정의 구현이라고 보기는 좀 애매하지..??? ㄲㄲㄲ

글쎄, 이런 단순한 장르에 대한 수요가 있는지.. 요즘은 웹툰이나 유튜브로도 내 취향을 저격한 소재의 작품이 좀 눈에 띈다.
가장 먼저 웹툰 <참교육>이다. 2020년 말부터 거의 2년 동안 110화를 연재하더니 2022년 말에 시즌 1이 끝났다. 본인은 이걸 재미있게 구독했으며, 상당수의 회차는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서 유료 구독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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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학교 폭력만 다루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섬노예와 사이비 종교, 불법 도박까지 그야말로 학생이 얽힌 전반적인 시사 사회 고발물이 됐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좀 오글거리고 유치한 연출도 적지 않지만, 이런 게 본인의 취향과 잘 맞는다.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본인은 성악설을 지지하고 필요악의 존재를 인정한다. 체벌이나 사형 제도를 쌍수 들고 적극 찬성하며 그게 성경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본다. 저런 게 없으면 인간이 인간이 될 수 없고 인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오늘날의 사법 체계는 형벌이 너무 약하다.

오 은영 교수/의사/박사라고 아동 교육 전문가를 표방하며 온갖 TV 방송과 광고에 얼굴을 비추고 있는 유명인사가 있다. 난 개인적으로는 저분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자기도 교인이라면서 자녀를 의로 훈육해야 된다는 말은 일체 없이, 극단적인 막장 문제 부모들 예만 들면서 오로지 “문제 아동이 아니라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 얘기밖에 안 한다. 그건 편파적이고 문제 있는 관점으로 보인다.

솔직히 엄마가 아니라 아빠라면.. 어린 자녀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작살난다, 내 생명이 위협을 받는다” 정도의 권위와 위엄, 두려움이 있기는 해야 한다.
선악을 아직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애는 아예 죽어 버린다면 무조건 구원이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판단 유예 기간 동안, 지옥불에 떨어지지는 않는 대신 신체의 아픔이라도 느끼면서 지옥에 가지 않는 생활 습관이 훈련되고 몸에 배여야 할 것이다.

물론 “큰 권한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법칙은 부모에게야말로 매우 절실히 적용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내리는 상과 벌, 당근과 채찍에는 “원칙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녀가 부모와는 아예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고 소통을 포기해 버리고 삐딱서니 타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뭐,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절대 아닐 것이고 본인은 처자식조차 없는 미혼이니-_- 이 주제에 대해 더 오지랖을 늘어놓지는 않겠다. ㄲㄲ

얘기가 좀 밖으로 샜다만..
<참교육> 정도면 약간의 현실적이고 진지한 메시지가 들어있는 작품인데..
그냥 단순히 악인을 가학적으로 응징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작품도 있다.

국내 웹툰 중에서는.. 이미 수 년 전에 완결되기는 했지만 <뉴 바이블>이 있다. ㅡ,.ㅡ;;
무슨 헐크처럼 생긴 ‘제이’(J!!!!!)가 정의의 사도이다. 십자검을 휘두르면서 일진 양아치나 성범죄자의 사지를 자르고 목을 뎅겅 쳐 버린다. <킬 빌> 같은 병맛 연출 일색인데, 계속 보면 재미는 있다. -_-
참교육과 뉴 바이블 모두 실제 범죄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서 에피소드를 구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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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만기 출소 후, 안산에서 살고 있는 그 유명 범죄자를 저격한..)

그 다음으로 본인이 유튜브를 방황하다가 발견한 걸출한 물건은.. 일본 만화/영상툰인 “휴먼버그 대학교”이다.
피츠버그 대학교를 흉내 낸 명칭 같은데, 명목상으로는 “인간의 두뇌가 버그를 일으켰을 때”를 표방하는 거라고 한다.

인터넷에 나도는 온갖 엽기 기괴 사건들을 짤막한 만화 형태로 각색하길래 흥미롭게 봤다. 그 정의상, 다윈 상을 받을 만한 일화도 훌륭한 소재가 된다.
여러 에피소드들 중, 불사신 직장인인 사토 히로부미, 그리고 세계를 떠도는 괴식 헌터 키토 죠지는 고정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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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중에서 압권은.. 소믈리에라는 칭호를 자처하는 고문 기술자 ‘이쥬인 시게오’ 시리즈이다.
어떤 악당이 흉악 범죄를 저지르고도 일말의 반성도 없다. 심지어 돈과 빽을 동원해서 대타를 대신 체포되게 만들고, 진범은 처벌조차 받지 않는다.
피해자가 이 사실을 알고는 이쥬인 시게오에게 의뢰를 넣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원한을 풀어 달라고 읍소한다. 그리고.. 스토리는 늘 이런 패턴이다.;;

“내 이름은 OOO. 법의 처벌을 받지 않은 인간쓰레기를 수거하는 뒷세계의 청소부이지.” ㅋㅋㅋㅋ
“피해자의 눈물을 이렇게라도 닦아 주는 것. 이것이 고문 소믈리에의 사명이다.” ㅋㅋㅋㅋㅋㅋ


이런 소재만 갖고 이런 재미있는 만화 시리즈를 만들다니.. 역시 열도의 기상이다.
주인공은 명탐정, 대도, 고독한 암살자 해결사 같은 컨셉이고,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건 “심야식당”이라든가 스피드왜건,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3기 7화 전반부의 “Mr. 마스다” 같은 느낌이다.

그 뒤에 학습만화 스타일의 쓸데없이 고퀄 TMI인 각종 고문 디테일 설명충 기질은 “도이치의 과학력은 세계제이이이일!” 같은 느낌.. ㄲㄲㄲㄲㄲ
이런 게 일본 애니의 세계이구나 싶다!! 감동 받아서 개인적으로 일본 글자라도 독학하며 외우게 됐다.

그러게 진작에 이런 걸 만들 것이지,
뭐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이라든가 “감각의 제국”, “쇼군의 새디즘”처럼 꿈도 희망도 없이 피해자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얘기들은 재미가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고문 소믈리에 시리즈에서는.. 필리핀에서 무려 가톨릭 신부로 활동하면서 고문 기술자를 겸직-_-;하고 있는 이쥬인 시게오의 친구가 이름이 JJ이다. 뉴 바이블의 '제이'와 비슷한 명칭 되시겠다.

이상이다. 뜬금없이 정치 얘기를 좀 늘어놓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이쥬인 시게오 같은 사람이 현실에 존재해서 음주운전 교통사고 유족이라든가.. 더 나아가 서해 피살 공무원 유족이라든가, 동료 탈북자가 저 사람을 찾아가서 피눈물 쏟으며 의뢰를 하는 상황을 잠시 상상해 봤다.
멀쩡한 자기 아버지를 월북 빨갱이로 몰아붙인 그놈, 내 친구를 흉악범 살인자로 몰아서 북한으로 되돌려보낸 저 불구대천의 원수를 같이 지옥으로 떨어뜨려 달라고 말이다.

이건 받을 가치가 있는 의뢰이겠지만, 목표물이 무려 전직 대통령이니 빡센 경호를 뚫고 몰래 납치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_-

나는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이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동안에도 그 사람이 해외 순방 중에 비행기가 추락해서 뒤지기를 기원한 적은 전혀 없다.
그렇게 죽어 버리면 놈은 직무 중 순직으로 처리돼서 사후에도 온갖 영예와 예우가 뒤따라오고, 후세들이 놈의 악행을 파헤치기가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전땅끄도 1983년 아웅산 테러 때 무려 북괴의 공작에 의해 순직했어 봐라.. 절대로 지금 같은 정도로 욕먹는 처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뭐, 아예 역사가 송두리째 달라졌겠지..)

그저 놈이 법의 심판을 받고 사형장이나 국립호텔에서 죄수복 차림으로 여생을 보내기를 예나 지금이나 간절히 기원할 뿐이다. 만약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 이쥬인 시게오 같은 사람이라도 처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뭐, 종북 빨갱이들이 현 대통령이 하루빨리 뒤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그 심정은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지금 대통령을 정말 잘 뽑았다는 걸 그놈들이 웅변으로 증명해 주고 있는 거다.
그러나 그런 놈들이 종교인 성직자, 교사, 법조인 같은 직업은 제발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23 08:35 2023/07/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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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 프랑스 대혁명

단두대는 무기나 흉기가 아니라 사형 집행만을 위해 개발된 인체공학(?) 기계로서는 인류 역사상 거의 최초이지 싶다.
교수대는 사형 집행 장치이긴 하지만 기계라고 보기는 좀 어려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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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는 프랑스 대혁명 시국 때 개발되어서 1792년에 처음으로 사형 집행에 사용되었다.
세계에 단 두 대밖에 없는 희귀한 기계라는 건 썰렁 아재개그이고.. 실제로는 세계 각국에 수출되고 보급되었다.;;

사람 목을 짜르는 기계라니 섬뜩하게 들리지만, 그래도 얘는 "사람은 왕족 귀족이든 평민이든 누구든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라는 이념 하에서 발명되었다.

"그러니 사형도 집행자의 체력과 컨디션과 감정에 좌우됨이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최대한 신속하게 사형수의 명줄을 끊어서 고통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사형 집행을 위한 전용 기계가 도입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인권을 향상시키는 길이다"


우왓~ 이 정도면 과연 합리주의 계몽주의의 나라 프랑스답다.;;

게다가 마침 프랑스에서 공포 정치 하에서 그야말로 사람들을 개나 소나 마구 처형하게 되자, 이런 기계에 대한 수요와 정당성도 더욱 커졌다.

단두대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한 길로틴인지 기요탱인지 그 해부학 교수는 전적으로 필요악 차원에서 이런 걸 만들었을 뿐이었다.
왜, 19세기에 기관총을 발명한 기술자도 기관총이 위력이 너무 강해서 얘 덕분에 역설적으로 세계에서 전쟁란 게 종식될 거라고 낙관하지 않았던가?
그것처럼 기요탱 아저씨도 사형 제도가 없어지는 날을 꿈꾸면서 역설적으로 단두대를 설계했다고 한다. 에휴.. 사형 제도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흉악 범죄가 없어져야지?

아무튼 기요탱 박사는 단두대에 하필 자기 이름이 붙어서 보통명사화해 버린 걸 매우 언짢아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이미 이 방면으로 너무 유명해져 버렸다.

게다가 단두대는 외형이 공개되자 돌풍을 일으키며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단두대 축소판 모양을 한 작두 장난감이 불티나게 팔렸다. 어린애들이 사마귀나 쥐, 작은 새 같은 동물을 그걸로 짤라서 죽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긴, 이런 장난감은 잘못 다루면 자기 손가락 정도도 그냥 날아갈 수 있었다. 미친.;;

진위 여부가 매우 의심된다만.. 그 시절 아가씨 아지매들은 단두대 모양의 액세서리가 달린 목걸이나 귀걸이를 차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그 시절엔 단두대가 거의 SF 수준으로 시대를 앞선 문물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전근대 시절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잔혹한 법이 아니라 "과잉 보복을 하지 말라"라는 자비로운 법이었듯... 단두대는 화형이나 능지 같은 훨씬 더 잔혹한 형벌에 비하면 아주 자비로운 도구였다. 정말 파격적이고 시대를 앞서간 발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단두대를 이용한 최초의 공개 처형을 본 군중들의 반응은.. "스펙타클한 볼거리가 없이 너무 금방 집행이 끝나 버리네..?? 싱겁다, 시시하다, 별로다, 흉악범을 이렇게 단칼에 보내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였다.

이때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유튜브, 영화, 드라마, 게임, 스포츠 같은 유흥거리가 전혀 없다시피했다. 맨날 땡볕에 농사 짓고 수확물의 그나마 상당수를 세금으로 빼앗기며 힘들게 사는데.. 공개 처형이라도 구경하는 게 일종의 공짜 문화 생활이었던 것이다. =_=;;

단두대의 발명자조차 단두대에서 뎅겅 당했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저 사람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다만, 루이 16세 국왕이 칼과 열쇠 같은 금속 공작 쪽 덕후였다. 단두대의 모형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칼날을 반월 대신 빗금 모양으로 만들면 목이 더 잘릴 것 같은데??" 라고 매우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현지지도를 해 주시였다~!!!

그 디자인이 오늘날의 단두대에 반영되어 전해진다. 그리고 루이 16세는 훗날 대혁명 때 그런 모양을 한 단두대에서 참수를 당했다.;;;

오늘날은 루이 16세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나 모두 국고 탕진 낭비벽이 좀 있었을지언정, 단두대 형을 당할 정도의 반역자 싸이코패스는 절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프랑스 대혁명이 광기에 빠진 채 너무 폭력적으로 진행된 감이 좀 있었다.

낭비벽이야 겨우 그거 갖고 사형이면 주변 귀족들 관료들 상당수가 같이 뒈져야 했을 것이다. "빵이 없다고? 그럼 과자/고기를 먹으면 되지?" 드립도 후대에 의한 악의적인 주작이라고 반박되어 있다.

옛날 백년 전쟁 시절에 영국에서는 잔 다르크를 하다 하다 안 되니까 "남장죄"(= 동성애 예비음모)를 덮어씌우려 했었다. 이와 비슷하게, 마리 앙투아네트도 사형에 처할 만한 중죄가 도통 안 나오자 '요망한 썅년' 프레임이 시도됐다. 이름하여 "아들(정신지체 장애)과 근친상간죄"...;; 이건 마리 앙투아네트를 미워하던 사람들조차도 일부는 "이건 아니지, 선 넘지.. 검사 저 병X새X.."라고 하며 고개를 저었다.

다만, 저 왕비는 세상 물정 모르고 철딱서니가 없긴 했다. 혁명이 일어나자 외국으로 튀려다가 걸리는 바람에 여론이 더욱 악화되었고, 그게 왕과 왕비의 명줄을 재촉하게 됐다.
변장하고 몸만 쏙 빠져나가도 시원찮을 와중에,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마차에다 자기 귀중품 장신구 따위를 모두 챙겨 싣고 '왕비의 품위'를 지키며 거창하게 나가려 했다. 이 때문에 얼마 못 가 들키고 말았다. -_-;;

그나마 루이 16세는 단두대로 가는 순간까지도 정장 차림에 왕실 마차를 타고 육군 병력의 호위를 받으면서 국왕답게 그럭저럭 품위(?) 있게 죽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품위에 목숨 걸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나중에 강제 삭발 당한 채 허름한 옷차림에 죄수 호송 수레에 실려서 품위 따위 못 지키고 죽었다.
어라? 프랑스에서는 훗날 나치 부역 여성들한테도 삭발로 망신 주고 응징했었다. 그러니 이것도 뭔가 프랑스만의 관행처럼 각인되어 있다. -_-;;

* 여담

(1) 이렇듯, 프랑스도 나치 독일처럼 전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넣는 사고를 친 적이 있었고 (나폴레옹),
스탈린 치하의 소련처럼 자국민을 개나 소나 다 정치범으로 몰아 죽이는 광기어린 숙청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대혁명, 파리 코뮌)

(2) 훗날 나치 독일은 단두대와 관련하여 프랑스에서도 안 하던 응용을 했는데.. 바로 자동차에다가 싣고 다닌 이동식 소형 단두대=_=, 그리고 일부 악질 죄수들에 대해서는 땅을 보고 엎드린 게 아니라 하늘을 보고 누운 자세로 참수를 시켰다. 즉, 자기 목으로 칼날이 떨어지는 걸 볼 수 있게 했다.;;

(3) 프랑스에서는 1977년에 마지막으로 단두대 사형이 집행됐다.;; 그 뒤 단두대는 프랑스에서 사형 제도가 1981년에 폐지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차 대전 후에도 무슨 이슬람/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서유럽 선진국에서도 생각보다 늦게까지 단두대 참수형이 존재했다는 게 의외인데.. 공개 처형은 1939년이 마지막이었다.

(4) 본인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강경한 사형 제도 찬성론자이다. 불필요하게 잔인하게 죽일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죽일 놈은 죽여야 된다. 육식과 결혼 제도가 성경적인 것과 동급으로 사형 제도도 성경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12 19:36 2023/07/1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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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1년, 9· 11 테러

(1) 미국 세계 무역 센터 9· 11 테러가 벌써 20년도 더 전 옛날 일이 됐다.
이때는 테러리스트에게 장악 당한 미국 국내선 여객기 두 기가 각각 제1 WTC와 제2 WTC 쌍둥이 건물에 충돌했었다.
세계 각국이 테러에 대처하는 방식이 협상 따위 없이 강경해지자, 테러를 저지르는 방식도 그냥 닥치고 너 죽고 나 죽는 쪽으로 더 흉포해지고 광기가 더욱 커진 것 같다.

테러범들은 나름 동부 끝에서 서부 끝까지 제일 멀리 가는(= 연료도 제일 많이 실려 있는) 국내선 비행기를 골랐으며, 건물에 주는 대미지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충돌 직전에 기체를 45도 roll을 줘서 비트는 기동까지 취했다.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얘들은 단순무식한 광신도 이상으로 머리를 꽤 굴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형 여객기의 조종술을 익히는 머리에다가 무력으로 조종실을 점거하는 담력까지.. 그 지능과 멘탈로 다른 좋은 일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아무튼, 나중에 피격된 제2가 먼저 무너졌고, 제1은 좀 더 버티다가 피격으로부터 1시간 40분 남짓 뒤에 와르르 붕괴됐다.
아마 제1의 충돌 지점이 제2의 충돌 지점보다 더 고층이어서 더 오래 버틴 것이지 싶다.

(2) 이 사건은 너무 엽기· 충격적이고 황당무계할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한 건물이 너무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무너진 것 때문에 자작극 음모론이 많이 나돌았다.
그러나 테러를 알아채지 못한 것은 미국이 점차 군기가 빠지고 보안 의식이 문란해져 갔던 것으로 웃프지만 설명이 된다.
건물이 차곡차곡 무너진 것도 우연이 전혀 아니며 얼마든지 설명 가능하다.

하부에서는 그 어떤 추가적인 폭음 같은 게 들리지 않았고 건물은 조용히 주저앉았다. 철근과 각종 구조물들이 1000도를 훌쩍 넘는 항공유 불길에 1시간 반이 넘게 활활 타고 익으면서 강성이 약해지고, 그게 발파 해체와 거의 같은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인간이 만든 거대한 건물, 구조물은 지구의 중력가속도 급의 충격에도 대단히 취약하다. 발목 하나 싹 날려서 윗부분이 주저앉기 시작하면 연쇄 붕괴를 막을 수 없다. 건물의 발파 해체도 딱 그 역할만 한다. 무슨 미사일처럼 파편을 날려서 목표물을 파괴하는 게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 삼풍 백화점은 옥상이 바로 아래의 5층으로 폭삭 주저앉은 충격량만으로도 그 아래의 층들이 지하까지 연쇄적으로 차곡차곡 잘도 붕괴됐다.
금속덩어리인 군함도 어뢰를 맞거나 유폭이 발생해서 폭압 때문에 잠시 붕 떴다가 해수면으로 떨어지면.. 그 충격 때문에 더 박살 나고 너덜너덜해진다. 이런 급의 구조물엔 강체라는 개념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3) 제1 WTC의 경우, 93층부터 99층까지가 여객기의 타격을 받았다.
제2 WTC와는 달리 탈출 계단이 몽땅 끊어지고 막히는 바람에 이 층과 그 윗층 사람들은 단 한 명도 탈출하거나 생존하지 못하고 그대로 화재, 건물 붕괴, 추락 등의 방식으로 희생됐다.

특히 딱 93층부터 100층에는 Marsh & McLennan 컴퍼니즈라는.. 무슨 위험관리 보험중개 회사가 입주해 있었는데.. 100% 제대로 직격타를 맞았다.
근무 중이던 직원 295명과 보조 관리인 63명, 358명 전원이 몰살 당하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재산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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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보험을 중개하는 일을 하더니 자기가 보험 보상금을 받아야 하게 생겼는데.. 그래도 회사 자체는 망하지는 않고 지금도 건재해 있다.
회사 홈페이지에서는 연혁을 소개하면서 저 때가 “가장 암울했던 시절”이라고 언급한다.

2. 2019년, 일본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 테러

(1) 그리고 지난 2019년 7월경에 일본에서는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라는 만화영화 제작사에서 외부인에 의해 전대미문의 방화 테러가 발생했다.
오덕들 세계의 일이어서 대대적으로 보도가 안 됐었나? 난 그 당시엔 이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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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치광이가 멀쩡히 돌아가고 있던 작업실에 작정하고 침입해서 기름 끼얹고 불을 질렀다. 이 때문에 건물 하나가 통째로 불타면서 젊은 2~30대 직원이 36명이나 사망하고 33명이 부상 당했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전체 직원의 무려 40% 가까이가 죽거나 다쳤고, 작업 데이터도 많이 날렸다고 한다.;;

목조건물이었다고는 하지만,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건물 방화 하나 갖고 이런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니..
우리나라로 치면 20여 년 전의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같은 느낌이다.
아, 더 최근인 2022년 6월엔 같은 대구에서 민사 소송에 패소했던 어떤 사람이 앙심을 품고 상대편 변호사 사무실을 불질러 버리는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이때는 범인을 포함해 7명이 목숨을 잃었다.

(2) 칼 들고 피해자와 직접 맞닥뜨리는 강도나 살인마는 범행 과정에서 거의 반드시 자신도 자기 흉기에 다친다.
피해자는 살고 싶어서 맹렬히 저항하는데, 저 정도로 끔찍한 범행이라는 게 가해자의 입장에서도 평소에 늘 하는 익숙한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 신체 부위별로 칼을 푹 꽂았을 때 들어가는 느낌이 어떤지, 찔렀던 칼날이 잘 빠져나오는지 같은 감을 아는 일반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프로 조폭이나 칼잡이 킬러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방화범도 매우 높은 확률로 어디든지 화상을 입는다.
끼얹은 휘발유를 따라 불길이 퍼지는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불꽃이 주변의 유증기만으로도 얼마나 급격히 퍼지는지 같은 것도 일반인이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저 교애니 스튜디오 방화범은 물론이고,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방화범도 불을 지른 직후에 자기도 꽤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냥 불에 덴 정도가 아니라 불이 자기 옷에 옮겨 붙기까지 했다.
둘 다 처음에는 피해자 행세를 하며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행적이 미심쩍고 뜬금없는 화상에다 기름 냄새까지..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니 결국은 잡혔다.

(3) 새까맣게 타서 얼굴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고 지문 채취나 DNA 채취도 할 수 없는 시신의 경우, 그나마 형체가 남아 있는 치아 상태를 확인하고 치과 치료 내역을 조회해서 신원을 확인하곤 한다.
이 일을 도와 달라고 경찰이 요청을 하면 인근의 치과 의사들이 무슨 배심원 소환되어 가듯이 외근을 가는가 보다. 치과 의사는 살아 있는 사람의 입 안만 들여다보는 게 아니다.;;

먼 옛날에 히틀러의 신원도 저런 방식으로 확인되지 않았던가?
그 양반도.. 죽어서 능멸 당하지 않으려고 자기 시체를 깡그리 불태워서 신원 확인이 안 되게 해 달라고 당부를 했는데.. 화장 현장에까지 포탄이 떨어지는 지경이니 부하들이 화장을 제대로 못 했다.
그 뒤 완전히 타지 않은 치열 대조를 통해 이 시꺼먼 시신이 히틀러라는 게 공식적으로는 확인됐다고 한다.

하긴, 사람이 평생 잘 변하지 않고 개인을 유일하게 식별할 수 있는 유의미한 스냅샷을 자기 입 안에다가도 둔다는 게 흥미롭다.
이 사실은 휴먼버그 대학교 실화 에피소드에서 다뤄졌었다. (☞ 보기)

Posted by 사무엘

2023/07/10 08:35 2023/07/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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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

1400년대 초 프랑스의 전설적인 성녀 영웅이라고 일컬어지는 '잔 다르크' 말이다.
비록 불순한 의도로 띄워지고 치켜세워진 사례가 적지 않아서 지금이야 좀 식상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음이 사실이다.
위인전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화하기에도 너무 좋은 소재이니 지금까지 한두 개 만들어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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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에 대해서는 진짜 딱 이 두 장면만이 너무 강렬하다. 허나 이것 말고도 말이다.

자기 이름 정도밖에 못 쓰는 문맹이었음에도 탁월한 전략으로 남자 병사들로 구성된 군대를 잘 이끌었고, 성직자 신학자들 수십 명을 상대로 신학 논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되나..?? 무슨 나폴레옹과 루터를 합쳐 놓은 사람도 아니고. ㄷㄷ
게다가 진짜 무슨 신통력을 발휘해서 얼굴 본 적 없는 진짜 국왕이 변장하고 숨은 걸 알아챈 걸까?
잔 다르크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 사건 등이 유사 사례로 떠오른다.

1. 1760년대, 제보당의 괴수

시기는 좀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프랑스 출신-_-인 거,
각각 믿어지지 않는 전설적인 행적을 남긴 사람과 동물인 거,
사진 없고, 직접 보고 그린 그림 초상화(잔) 내지 박제(괴수)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는 거.. 신비주의와 관련해서는 꽤 비슷하다. 프랑스가 참 신비로운 동네인 것 같다. '미녀와 야수' 설화가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_-;;

그러나 이런 사람, 이런 괴수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그 옛날부터 너무나 분명하게 기록이 남아 있다. 심지어 이웃 외국이나 적국에서 남긴 기록과도 진술이 일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존재 자체는 절대로 주작이 아닌 팩트이다.

2. 성경의 다윗

잔 다르크에 대해서 "아부지 뭐 하시노?"에 대한 답이 딱 정확하게 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촌뜨기 양치기의 딸이었다는 말이 있고 실제로 "양치기 소녀 잔 다르크"를 묘사한 옛날 그림도 몇 점 있다. (갑옷 입고 백마 탄 여기사뿐만 아니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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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촌에서 양 치다가 10대의 나이로 소명을 받아서 나라를 구한 거.. 나중에 자기 군주한테 밉보인 거는 다윗의 어린 시절과 비슷하다. -_-;;; 샤를 7세가 사울 같은 왕이었나?
물론 잔 다르크는 돌팔매질보다는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전투를 이끌었다. 그리고 훗날 왕이 되지는 못하고 일찍 죽었다. =_=;;

3. 우리나라 유 관순

처형 vs 옥사 차이는 있지만 나이 20도 못 돼서 아주 비슷한 나이에 죽은 거, 애국심 투철하고 종교적으로도 독실한 소녀였다는 게 비슷하다. 실제로 잔 다르크의 생년 몰년에다가 490을 더하면 유관순의 생년 몰년과 거의 일치한다. 얼추 500년 텀..
유 관순이 살았던 때가 잔 다르크 위인전이 이제 막 한반도에 번역되고 소개되던 시기였다. 유 관순은 잔 다르크의 생애에 굉장히 영향을 받았고 자기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어린 나이에 결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포루투갈 파티마 성모 발현 사건

10대 소녀가 시골 깡촌에서 갑자기 무아지경을 경험하면서 누구누구 뭐시기로부터 신의 계시를 받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게 비슷하다.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중세는 그렇다 치지만, 파티마 저 사건은 그래도 무려 1917년에 있었던 일이다.

저 때 예언이 세 가지가 계시되었다고 한다. 그 중 둘은 곧 공개됐는데, 마지막 예언은 당시 교황 성하께서 표정이 급변하면서 공개 불가 봉인 처리해 버렸다.
이 때문에 이게 온갖 세기말 음모론 떡밥으로 쓰였었다. 심지어 예언 내용을 공개하라고 떼 쓰는 테러 범죄도 저질러질 정도였다.

지난 2000년에 내용이 공개되긴 했지만 정말 막연하고 밍밍하고 별 의미 없는 메시지일 뿐이었다. 이게 어딜 봐서 그 시절에 무려 교황이 멘붕을 일으키면서 공개 불가 처리한 예언이란 건지?
일부 호사가들은 "이건 진짜 마지막 예언이 아니다~ 어딜 속여?"라고 반발했다. 이에 교황청에서는 이게 진짜 맞다고 공식 성명을 내며 반박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

덧..

(1) 잔 다르크에 대한 재판 심문 기록을 읽어보니 뭔가 챗GPT가 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챗GPT로 신학 논쟁이 가능하게 학습을 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ㄲㄲㄲㄲ

(2) 노아의 아내의 이름이 '잔/요안나'라는 개드립이 있다. arc가 ark(방주)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상 캐스터 중엔 '오 요안나'가 있군.
잔 다르크라는 이름은 원래 '아르크 출신의 잔'이라는 뜻이다. 무슨 아르크 자체가 성인 게 아니다. '나사렛 예수', '막달라 마리아'와 비슷한 용례이며, 영화 테이큰에서 Marko from Tropoja도 비슷한 맥락이다.

(3) 지금은 노스트라다무스니, 파티마니, 에드가 케이시니.. 수많은 세기말 예언들이 다 빗나가고 무려 2023년에 도달해 있다. 저런 자극적인 계시보다는 요한계시록 같은 진짜 검증된 예언 계시에만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다들 아직 전혀 이뤄지지 않은 예언이어서 지금 당장 와닿지 않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국제 정세에 어설프게 끼워맞출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03 08:35 2023/07/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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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혼자 올라가서 텐트 치고 자는 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요런 이야기들은 밤에 혼자 캠핑 중에 진지하게 읽어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ㅎㅎ

1. 1959년 2월, 소련 디아틀로프 사건

같은 대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20대 초반의 청년 10명(남8 여2)이 한겨울에 얼추 2주 일정으로(1/28~2/12) 우랄 산맥 종단 산행을 떠났다. 이 사건의 이름 '디아틀로프'는 이 산악팀의 리더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들은 스키도 챙기고 아주 화기애애하게 출발하려 했는데.. 일행 중 딱 한 명이 출발 직전에 감기에 걸렸는지 두통과 고열 증세를 보여서 팀에서 빠졌다. 그 상태로 혹한기 산행을 강행했다간 몸을 더 망칠 우려가 있으니 아쉽지만 출발지에 남았다.

산행 5일차이던 2월 1일, 예정 경로인 산 쪽에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낙오된 그 사람(유리 유딘)은 등산 중인 친구들에게 안부 무전을 날려 봤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텐트 치고 휴식 중이다. 아무 이상 없음"이라는 답을 받았다.
그러나 2월 1일자 무전이 마지막 연락이 되고 말았다. 바로 다음날부터 이들과는 연락이 영원히 끊어졌으며, 그들은 2월 12일 이후에도 귀환하지 않았다.

결국 실종 신고가 들어갔고 20일부터는 거기 일대로 수색이 시작되었다. 사태가 심각하니 군· 경 합동에 항공기까지 동원해서 필사적으로 수색했다.
기록에 따르면 2월 26일이 돼서야 찢겨지고 손상된 채 버려진 텐트가 발견됐고, 그로부터 반경 1.5km나 떨어진 다양한 지점에서 멤버들의 시신 5구가 발견됐다. 나머지 4명은 그로부터 2개월이 넘게 지난 5월이 돼서야 더 멀리 떨어진 계곡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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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텐트가 외부로부터 공격받거나 파괴된 정황이 딱히 없이, 안에 있던 사람들이 텐트를 먼저 찢고 허겁지겁 밖으로 탈출해 나갔다. (왜??) 옷도 장비도 제대로 못 챙긴 채로 정말 황급히.. 그러다가 밖에서 다들 동사했다.
  • -20~-30도의 혹한 속에서 시신들이 다들 속옷 바람 탈의 상태였다. 나중에 발견된 4명이 먼저 죽은 5명의 옷을 더 걸치고 있기도 했다.
  • 리더인 디아틀로프는 밖에 나갔다가 이렇게 버티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텐트로 되돌아가서 옷과 장비를 더 가져오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텐트로 가던 길목에서 저체온증 때문인지 쓰러져서 숨을 거뒀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텐트를 버리고 긴급히 탈출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 뒤에 왜 저렇게 괴이한 최후를 맞이했는지가 도무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글을 쓰다 보니 이거 메리 셀러스트 호 사건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 사건도 선원들이 멀쩡한 배를 도대체 왜 버리고 탈출했는지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이니까 말이다.

소련 정부의 핵 실험이니 인근 원주민의 공격 같은 너무 극단적인 추측을 제끼면, 현재로서는 사건의 주범은 레알이건 낚시건 '눈사태'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람들은 당시에 정체불명의 웅웅웅웅~ 기괴한 소음과 진동을 감지하고는 눈사태가 나는 줄 알고 한밤중에 겁먹고 뛰쳐나갔다가 변을 당한 게 아닌가 추측된다. 물론 이것도 100% 납득되는 설명은 아니고 아쉬운 점이 있지만 말이다.

건강 악화 때문에 산행을 아예 못 하고 낙오됐던 멤버 1명만이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가 됐다. "그 날 밤에 내 동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신에게 질문할 기회가 있다면 이건 정말 꼭 묻고 싶습니다.." 그는 평생 이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2013년에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1989년 7월, 일본 SOS 조난 사건

일본 홋카이도에 소재한 다이쎄스 산의 능선 평원에서 누군가가 자작나무 여러 그루를 베고 쌓아서 굉장히 큼직하게(글자 하나당 폭과 높이가 3~5 미터!!) SOS 문자 표시를 만들어 놓은 게 순찰 헬기에 의해 발견됐다.
그 헬기는 공교롭게도 근처에서 조난 당한 사람을 발견해서 무사히 구조는 했는데, 그 사람은 SOS 문자 표시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며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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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화면 캡처여서 화질이 별로..)
게다가 알고 보니 그 SOS 표식은 더 이전인 1987년에 촬영한 항공 사진에서도 아주 희미하게나마 찍혀 있었다. 이걸 만든 사람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표식 근처를 수색하자 1984년쯤에 조난 당했던 한 20대 남성 회사원의 유골과 유류품이 발견됐다. 유류품 중에는 “도와달라. 나는 지금 벼랑 위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라는 다급한 음성이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도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유류품은 남자의 것인데 유골은 여자의 것이었고.. 비슷한 장소에서 84년에 죽은 사람의 흔적과 83년에 죽은 사람의 흔적이 서로 엇갈렸다느니 제3의 인물까지 거론되면서 온갖 괴담 미스터리가 나돌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것 없고 유골 검사에 착오가 있었으며 조난 당한 사람은 남성 1명이 전부라는 반론도 있다.

정황상 어떤 불운한 남성이 산을 잘못 내려가다가 그만.. 한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수 없는 급경사 아래에 고립돼 버린 것 같다. 그는 쓰러진 자작나무들을 이용해서 며칠에 걸쳐 SOS 표식을 혼자서 굉장히 힘겹게 만들고, 도와달라는 음성 메시지를 녹음도 했다. 그러나 그는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탈진해서 산에서 뼈를 묻게 됐다. 여기까지는 확실하다.

그런데 저기 주변에는 자작나무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것도 확실한 반박이 있는지? SOS 표식이 있는 곳은 진짜로 자력으로 빠져나가기 극도로 어려운 고립된 지형인 건지?
유품과 유골에 두세 명의 흔적이 뒤섞였다는 건 루머였다고 하더라도,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는다. 산에서 고립된 게 무슨 바닷가 테트라포드 아래에 떨어졌거나 무슨 무인도에서 조난 당한 것 같은 느낌이다.

참고로, 1970년에 발생했던 후쿠오카 대학 반더포겔부 불곰 습격 사건이 이 다이쎄스 산의 바로 아래쪽 지역에서 발생한 거라고 한다. 이런 산은 급경사 절벽, 눈과 혹한, 거기에다 곰까지 위험 요소가 확실히 많기는 한가 보다.

3. 2014년 4월, 네덜란드 여대생 리잔-크리스 사망 사건
(정보의 출처에 따라서 리잔-크리스라고 이름을 쓰는 곳도 있고 프론-크레머르스라고 성을 쓰는 곳도 있음)

네덜란드 국적의 20대 여대생 두 명(리잔 프론, 크리스 크레머르스)이 머나먼 파나마로 졸업 여행을 떠나서는 4월 1일, 단둘이서 바루 화산 주변의 숲을 걸으며 당일치기 산행을 시작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능선이나 탐방로를 걷는 하이킹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은 당일 오후와 저녁부터 연락이 뚝 끊기고 실종되어 버렸다. 검증되지 않은 루머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민박집 강아지도 같이 데리고 갔는데.. 저녁에 강아지만 혼자 돌아왔다고 한다. ㄷㄷㄷㄷ
4월 3일에 곧장 실종 신고가 접수됐고 현지 주민들을 동원한 수색이 시작됐다. 울창한 숲 속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은 얼마 이동하지도 못했을 텐데 이 아가씨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실종된 지 10주..(2달 반!)가 지나서야 일행 중 한 명인 리잔의 배낭이 발견됐다. 산책로가 아니라 아예 인근 원주민의 텃밭 부근에서 발견됐다. 이걸 발견한 주민은 그 전날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는 배낭 같은 게 없었다고 경찰에게 증언했다.;;
배낭 안에는 리잔의 핸드폰과 현금, 심지어 여권까지 포함해 유품이 단정하게 정리된 상태로 들어있었다..!! 참, 핸드폰은 신기하게도 리잔뿐만 아니라 크리스의 것까지 같이 들어있었다.

전화기에는 하이킹을 시작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곧장 112(네덜란드의 119에 해당하는 번호)와 911에 연락하려는 시도가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전파가 잘 안 터져서 실제 교신은 실패... 이들은 생각보다 일찍 길을 잃거나 사고를 당한 것 같다. 전화기는 그 뒤로도 며칠 더 쓰이다가 각각 5일과 11일에 배터리가 나가서 꺼졌다.

카메라에는 출발 당일인 4월 1일에 평범한 셀카와 경치 사진이 들어있다가.. 4월 8일 새벽에...!! 별로 좋은 구도나 풍경이 아닌데, 의미나 의도를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숲길 사진이 갑자기 90여 장이나 아무렇게나 무더기로 찍혀 있었다. 플래시까지 터뜨리면서 이런 사진이 찍힌 이유가 뭘까..?? 이것도 사건의 괴이함을 크게 증폭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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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배낭이 발견된 곳에서 수km 떨어진 곳에서 크리스의 청반바지가 곱게 잘 개어진 채로 있는 걸 발견했을 뿐, 이때는 수색 성과가 더 없었다. 이건 본인이 놔 둔 건지, 아니면 타인의 소행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또 2개월 가까이 지난 6월 19일, 또 배낭 근처 지점에서 이번엔 신원 미상의 골반뼈와 부츠가 신겨진 발이 발견됐다.;; 그리고 강둑을 따라 뼛조각 30여 점이 발견됐다. DNA 감식을 해 보니 이건 역시나 리잔과 크리스의 일행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이렇게 유해로 발견되었다.;; (아까 디아틀로프 사건도 추가 유해는 2개월쯤 뒤에 발견됐네..)

이들은 어쩌다 조난을 당했는지, 살아 있는 동안 산 속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짐승에게 당했거나 사람에게 범죄를 당했는지..?? 4월 8일의 괴이한 사진이 찍힌 배경은 뭔지, 그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그들의 유품을 건드린 사람이 더 있었는지 같은 건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이런 걸 생각하면 첩첩산중에서도 망망대해 만만찮게 사람이 감쪽같이 실종되고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야산들은 아주 아주 안전한 축에 속한다.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3/06/12 08:35 2023/06/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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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영화 이야기

1. 후속편 암시

요즘 영화는 악당이 확실하게 죽고 속편이 나올 여지가 도저히 없을 정도로 결말을 맺어 버리기보다는..
악당이 완전히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와 떡밥을 여기저기 남겨 두는 경향이 옛날보다 더 짙어진 것 같다.

철도 건설에다 비유하자면.. 추후에 연장 공사가 가능하게 복선 노반을 미리 확보해 둔다거나, 심지어 환승역을 미리 건설해 놓는 것과 같다.
예정에 없던 환승 계획이 잡혀서 환승역을 부랴부랴 만들게 되면 힘들게 복구했던 땅을 또 파헤치면서 고생할 뿐만 아니라, 환승 거리도 엄청난 막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처럼 예정에 없던 후속작을 만들다 보면 기존 작품의 설정을 건드려야 하고, 없는 개연성을 억지로 만들어 넣느라 스토리가 삐끗하게 된다.
가령, 페르시아의 왕자 1편의 엔딩은 "악당 쟈파가 완전히 죽었고 왕자와 공주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였는데, 2편의 시작은 "악당이 완전히 죽지 않았고, 왕자와 공주는 딱 11일 동안만 행복하게 살았다"로 바뀌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후속편 떡밥을 던져 놓기만 하고는 후속편이 나오지 못하는 것 말이다.
1700? 1800년대 프랑스가 배경인 안젤리크(2013), 현대 첩보물인 모멘텀(2015)은 둘 다 미국이 아닌 유럽 영화이고 예쁜 여주인공이 나오고, 스토리가 완결되지 않아서 2편이 나와야만 하는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결국 후속편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 유명한 쿵 퓨리(2015)는 일단은 히틀러를 제압한 것 같지만 놈이 완전히 죽지 않은 듯이 끝났다. 얘 역시 속편을 염두에는 두고 있지만 결국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속편이 나오지 않으면 황 인호라든가 성 기훈이 뿌린 떡밥을 수습할 수가 없다. 결국 2편의 제작이 확정됐다고는 한다.
범죄도시는 2편이 잘 만들어져서 후속편이 흥행에도 성공했다.

2. 반전

솔트(2010), 모멘텀(2015), 아토믹 블론드(2017).
다들 여성 요원이 구르고 고생하는 액션 첩보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솔트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만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이중간첩 보내면서 엄청 대립하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솔트도 사건이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고 후속작 떡밥 좀 날리면서 끝나는 것 같았다만..??

아토믹 블론드는 1980년대 말 베를린에서 어쩌구 하는 게 <출국>(2018)이랑 비슷한 배경이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모멘텀은 소련이나 공산당 얘기는 없이 더 판타지 스럽고..

저 영화들의 공통점으로 느끼는 건 피아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반전이 많다는 것이다.
"이건 내가 실수로 잡힌 게 아니라 일부러 잡혀 준 거다", "진짜 배후는 따로 있다",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 동료는 알고 보니 적에게 매수당한 상태였다"
이런 게 현실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스토리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아 그러고 보니 테이큰 3도 이런 구성을 어중간하게 흉내 냈던 것 같다. 러시아 악당이 나오는 것도 똑같고..

3. 군대에서 금녀의 벽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인간 흉기급 여성이 특수 요원이 아니라 군대 특수부대에서 차별과 편견을 견뎌내며 어쩌구저쩌구 하는 줄거리인 영화가 몇 편 있었다.
옛날에 데미 무어가 머리 밀고 출연했던 "G.I. 제인" (1997)..
그리고 "잠망경을 올려라" (1996)는 여군이 무려 잠수원 승조원으로 들어가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거의 존재감 없이 망한 듯하지만 "대한민국 1%" (2010)라는 영화가 있었다. 해병대에 여군 하사가 간부로 들어가는 내용이다.
"잠망경을 올려라"를 소개한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있는데 옆에 관련 동영상으로 "대한민국 1%"가 같이 뜰 정도이니.. 유튜브의 AI는 사람의 마음과 컨텐츠의 의미를 다 파악하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 틀림없다.

대한민국 1%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여배우는 '이 아이'인데.. 뭔가 아이유 IU처럼 EI라고 표기 가능한 참 특이한 이름이다. 현재는 활동을 중단한 듯하다.

아무리 군대에서 짬 찬 병이 초짜 간부를 골탕먹이고 심지어 하극상까지 저지른다 해도.. 저 정도는 영화적 허용일 뿐, 현실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긴, 어떤 국산 영화 중엔 남자 교도관이 여자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말이다.

현실에서는 특전사에도 당연히 여군이 있고 유튜버 '은하캠핑'처럼 베어 그릴스의 한국 버전이요, 툼 레이더, 킬 빌, 악녀, 언니, 임 한림 등등등의 실사판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다.
국군의 날 기념식 때 도복 입고 무술과 격파 시범 보이는 특전사 요원들 중에 가끔 뒷머리 묶은 여군들도 보이는데 다 그런 사람들이다.

4. 오징어 게임과 타 영화 장면의 유사점

<오징어 게임>이 대히트를 친 게 벌써 2년 가까이 전 일이 됐다.
데쓰 게임이라는 게 막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니, 감독이 이걸 만드는 과정에서 "배틀로얄"과 "라이어 게임", "도박 묵시록 카이지"라는 기존 작품을 많이 참고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었다.
그런 플롯이나 스토리 말고 내 개인적으로 그냥 '느낌상'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지는 관련 작품은 다음과 같다.

(1) "라이터를 켜라"(2002)의 어리버리 봉구 허 봉구
극초반부에서 주인공 성 기훈이 그 나이 되도록 부모 돈이나 손대는 상찌질이인 것, 그래도 근본 성품은 착한 것=_=;; ,
어느날 일이 드럽게 안 풀려서 의기소침하다가 극적인 사건을 겪는 것, 결말부에서 뭔가 목표를 극적으로 이뤄내는 것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 외에도,

  • 성 기훈은 소매치기랑 부딪혀서 돈다발을 털리고, 허 봉구는 야비군 훈련장에서 양 철곤과 부딪혀서 점심 우동 그릇을 엎지른다. 이거 비슷하고..
  • "내 돈 내놔!!!" (기훈이 새벽에게, 철곤이 용갑 국회의원에게)도 비슷하고... =_=
  • 처음과 끝이 반복되는 것도 비슷하다..!! 오겜은 딱지치기 게임이지만, 라이터...는 동창회다.. ^^

(2) "자토이치"(2003)에서 최종 반전 흑막이던 술집 종업원 노인
오 일남이 인상 좋은 동네 할아버지가 아니라 돈이 썩어빠지는 오징어 게임 기획자였던 것과 아주 비슷한 심상이다~!!
마지막 화에서 "당신의 깐부로부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처음 볼 때부터 난 자토이치 결말부가 같이 떠올랐다.

(3) "복수는 나의 것"(2001)
오징어 게임처럼 돈 때문에 범죄 저지르는 불우이웃에다, 밑도 끝도 없이 피칠갑 살인이 이어진다는 게 비슷하다.
그리고 오겜에서 강 새벽이 덕수를 극딜할 때 '혁명적인 개XX'라는 명대사가 튀어나왔는데..
"복수는.."에는 혁명적인 무정부주의 동맹-_-이란 게 있다.

결말부에서 여주인공인 영미가 동진에게 전기 고문을 당한 끝에 죽는다. 그런데 영미는 일제 시대로 치면 무슨 사회주의 성향 항일 운동 단체 같은 이상한 단체의 멤버였다. 영미가 살해당하자 거기 동무들이 또 동진에게 칼빵을 놔서 보복한다. 게다가 "네놈을 사형에 처한다"라고 판결문까지 만들어서 가슴팍에 칼과 함께 꽂아 준다.. =_=;;
두 영화는 혁명적인 게 있다는 정말 병맛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고 보니 강 새벽을 배 두나가 연기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3/05/22 08:35 2023/05/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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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앵남 역

먼 옛날에 우리나라 전라남도 화순군 앵남리에는 ‘앵남’이라는 이름의 경전선 간이역이 있었다. (지난 2008년에 완전히 폐역돼서 지금은 없음)

이 역은 적자가 너무 심해서 이미 쌍팔년도 시절부터 철도청 정직원들이 철수해 버리고 관리와 운영을 포기했다. 그런데 쌍팔년도 즈음에 이 미정 씨라는 26세 여성이 늙은 부친의 권유로 이 역의 관리를 시작했다. 학교 졸업 후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던 중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부친과 오빠 다음으로 이 일을 물려받은 거라나..??

열차가 오는 시간대에 열차 승차권을 위탁 판매하는 게 주 업무이지만.. 역내 접객과 주변 청소 같은 일체의 잡무도 몽땅 담당하게 됐다. 열차가 없는 시간대엔 집안일 돕고 마을 농사일도 거들고..
이분은 젊은 청년을 찾기 힘든 시골 깡촌에서 처녀 역장님이라고 불리며 오랫동안 칭송받았다고 한다.

이 미담은 1989년 10월 18일자 대한뉴스 1771호 “이런 일 저런 일”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통해 전국에 소개되었으며.. (☞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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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듬해 “월간 샘터 제21권 5호(1990년 5월호)”에도 “전남 화순의 앵남역장 이 미정 - 징검다리역 처녀역장”라고 또 자세히 소개되었다.
그렇잖아도 2010년대 초에 코레일에서는 간이역 명예역장이라는 제도를 잠시 시행했었다. 저런 분이야말로 이런 명예역장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물이었을 텐데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것이 참 아쉽다.

그 뒤로 저분이 어찌 됐는지 근황은 전해지는 바가 없다. 남자 잘 만나서 결혼하셨으려나? 저분은 지금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2. 경주 직업 전문학교

자 그리고 지난 2022년 8월 22일엔 KBS 인간극장에서 비슷한 미담이 또 소개됐다. 이번엔 위치가 내 고향과 같은 경주이다.
박 소정 씨. 부친 박 성환 씨는 공돌이로 자수성가해서 정말 좋은 뜻으로 경주 직업 전문학교라는 걸 설립했는데, 그만 2020년 초에 지병으로 쓰러지고 때마침 우한 괴질이 창궐해서 학교 운영이 어려움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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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타지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던 딸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학교 행정 업무뿐만 아니라 수강생들 코치에다, 거기서 가르치는 각종 중장비의 운전 시범까지 일당백을 담당하면서 거기 원래 직원들과 수강생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다. 아버지 간병도 당연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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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력이 좋은 분 같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거 관련 자격증도 이미 4개나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트럭· 버스 운전을 넘어 포크레인· 지게차 운전 같은 분야에도 금녀의 벽 따위는 없는 듯하다. 용접이나 배관 같은 업종은 어떨지 모르겠다.
(☞ 관련 영상 / 관련 보도 1 / 관련 보도 2 )

이 일화는 “외모보다 더 고운 심성을 가진 소정 씨 '참 예쁜 그녀'”라는 타이틀로 한 번이 아니라 시리즈로 꽤 길게 방송을 탔는가 보다. 8월 22일부터 26일까지 5393~5397화.
세상엔 이런 훈훈한, 존경스러운 사람도 있다.

내가 철덕이다 보니 1은 개인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전부터(수 년 이상 전) 알고 있었던 얘기인데.. 비슷한 다른 사례가 또 발견되어 한데 엮어서 언급할 수 있게 됐다. 두 일화 사이에는 30년이 넘는 간극이 존재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3/04/10 08:35 2023/04/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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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지역 특성

1. 경부선 철도 연선의 도시들

우리나라는 경부선 라인에 광역시 대도시들이 콕콕 박혀 있어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이러는 노래도 있다.
일본의 도카이도 신칸센이 도쿄-나고야-오사카-교토를 줄줄이 잇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런데 경부선 라인의 대도시들 중에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대도시인 '-주' 지명이 전혀 없는 게 참 신기하다.

제일 먼저 대전이야.. 원래는 이름에 대놓고 '밭'이 있을 정도로 깡촌이었다. 그랬는데 뜬금없이 철도가 생기고 호남선과 분기까지 되면서 정말 개천에서 용이 나 버렸다.
일제의 입장에서는 철도 건설비를 절약하려고 산을 최대한 피해서 평지를 찾다 보니 상주-충주-용인 대신 이쪽까지 우회한 것이었다.

부산은 우리나라의 직할시/광역시 1호인 데다 서울 다음의 대도시인데도 불구하고 구한말까지는 의외로 굉장한 듣보잡이었다.
일본인들이 드나드는 관문 통로가 아니었으면 그 지역은 절~~대로 지금의 부산 같은 도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까놓고 말해.. 을미사변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민비를 살해한 일본 자객 일행은 인천항으로 들어왔다. 걔들이 중국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고, 조수 간만의 차이를 이용해서 상륙작전을 벌인 것도 아닌데 굳이 인천항을 이용한 이유는.. 한반도에 제대로 된 육로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경부선 철길이 있었으면 걔들도 당연히 부산으로 입국했을 것이다.

부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조선 시대엔 없었고 그냥 중심부만 '초량'이라고 불리는 정도였다.
일제 시대엔 부산 역이 지금의 부산 역보다 더 남쪽 바닷가 근처에 있었고, 열차 시각표에 일본 본토 연락선 셔틀의 시각표도 같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서울-경성 방향이 아니라 부산 방향이 '상행'이었다..!!

끝으로, 대구도...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철도가 없던 시절엔 달구벌이 경주, 상주, 진주보다 더 작았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오히려 중앙선에 경주, 영주, 원주 이렇게 '주'짜 지명이 3개나 있다. 하지만 중앙선은 경부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해 있다.
상주, 충주, 공주.. 이런 곳은 철도 간선에서 열외되면서 대전, 대구에 비해 정말 처참해졌다.

한때는 철도가 침략의 상징이라고 여겨졌지만 조선인들도 자기 지역에 철도가 있어야 하겠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일제 시대에 조선인 스스로 자주적으로 주체적으로(!!) 놓은 거의 유일한 철도는 바로 구 경춘선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1940년대 일제 말기가 다 돼서야 생겼다.

2. 광역시들

우리나라의 6개 광역시 중..
울산은 지하철이 없고 대전은 공항이 없고(그 대신 청주..), 인천은 아직까지는 KTX가 없다.
광주는 타 대도시에 비해 유명 브랜드 쇼핑몰 같은 게 없거나 개수가 빈약하다고 한다.
대구와 부산만이 그런 나사 빠진 게(?) 없는 광역시인 듯하다.

그리고 대전은 전국에서 중전철 도시철도가 마지막으로 건설된 광역시이며(그 이후엔 다들 경전철만),
울산은 우리나라 역사상 마지막으로 광역시로 승격된 도시이다(1997). 그래서 울산은 직할시 시절을 유일하게 겪지 않았다.
울산 이후로 수원이나 고양 같은 대도시는 더 가벼운(?) 특례시라고만 불리며, 여전히 주변의 '도'에 소속되어 있다.

아울러, 6개 광역시는 바다를 접하고 있는 곳(부산 울산 인천)과 그렇지 않은 곳(대구 대전 광주)으로 딱 반반씩 나뉘기도 한다.

3. 서해안의 유일한 명소

  • 우리나라 서쪽의 황해는 동해보다 물이 탁해서 해수욕장으로서의 인기가 아무래도 덜하다. 그래도 황해에서 딱 하나 전국구 급으로 유명한 해수욕장은 아무래도 대천이 유일하다.
  • 동해안이 아니라 서해안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는 영광 한빛이 유일하다.
  • 당진의 왜목마을은 서해안 베이스이지만 동쪽으로 살짝 돌출된 해안선이 있어서 일출과 일몰, 월출까지 볼 수 있는 특이한 곳이다.

4. 외세 침략의 잔재

우리나라에 외세로부터 당한 침략의 상징 내지 흔적으로 남은 시설은.. 철원 로동당사(북괴), 조선총독부 청사 첨탑(일제), 그리고 더 옛날 삼전도비(청-_-) 같은 게 있다.

그런데, 일본과 관련해서는 전국 곳곳에 적산가옥이 아직 남은 게 있고, 또 왜성이라는 것도 있다. 이건 옛날 임진왜란 시절에 왜군이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강가나 바닷가에서 자기 스타일로 성을 쌓고 버텼던 흔적이라고 한다. 오오~
울산, 부산, 양산, 창원, 거제 등.. 여러 지역에 생각보다 널리 분포해 있다.
심지어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자기들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의 왜성을 찾아온다고 한다. 자기네 본토에는 옛날 성곽이 별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건 자랑스러운(?) 문화재가 아니니 일부러 막 띄우고 세금 들여서 복원까지 할 필요는 없다. 허나, 반대로 일부러 부수고 없앨 필요도 없으며, 최소한의 보존과 관리만 하면 될 것 같다.
뭔가 이런 유형의 옛날 유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던 적이 전혀 없는데 신기하다. 청도에서 옛날 경부선 터널을 봤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5. 문화 유적

(1) 경주에서 황룡사의 재건· 복원이 오랜 떡밥이라면, 서울에서는 서대문(돈의문)의 재건· 복원이 오랜 떡밥인 것 같다.
서대문은 주변이 너무 많이 개발돼서 부지를 확보하는 것부터가 문제이다. 황룡사는 주변이 온통 허허벌판이니 부지 걱정은 없는 반면, 건물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과 정보가 부족한 게 애로사항이다.

(2) 지난 2011년, 이 명박 시절에 우리나라에서 문화 유적들의 명칭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던 것 같다.
경주 안압지가 '동궁과 월지'라고 완전히 변경된 게 이때였고, 인서울이던 서울 성곽도 '서울 한양도성'으로, 삼전도비도 '서울 삼전도비'라고 명칭이 정착됐다.

(3) 과거에 리 승만 할배 대통령이 다른 많은 문화 유적들을 놔두고.. 왜 하필 남한산성에 꽂혔었는지는 참 의문이다. 무슨 계기로??
오죽했으면 1950년대 중반에 남한산성 주변에 큰길을 내고 거기에다 자기 호를 이름으로 붙였다(우남로). 그리고 남한산성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허나 우남로라는 도로는 근처의 헌릉로와 합쳐졌으며, 국립공원 시스템도 1960년대에 완전히 재개편됐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 할배의 흔적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남한산성은 국립이 아닌 도립공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29 08:36 2023/03/2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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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출판사의 추억

옛날에 '동아 출판사'는 다방면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국내의 출판 문화를 이끌었다.

1. 전과

초딩용 월간 학습지 '이달 학습'
교학사 '표준 전과'와 더불어 '동아 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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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라는 단어는 대학 시절에는 '전공을 바꿈'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고, 사회인이 된 뒤엔 중범죄 형사 처벌 내력이라는 뜻으로 통용되는데..
초딩 시절에는 이게 전과목 학교 공부 내용을 보충하는 참고서 내지 백과사전이라는 뜻이었다.

교과서에 대해서 교사한테 '교과과정 지침서'라는 매뉴얼이 존재한다면, 학생한테는 전과가 있는 셈이다.;;
초등이기 때문에 두꺼운 책 한 권으로 전과목 커버가 가능한 듯하다. 초등에서는 교사 한 명이 전과목을 가르치는 것처럼 말이다.

중등 정도만 돼도 공부할 거리가 너무 많고 어려워지고 세분화되고, 애들의 진로도 서서히 갈리기 때문에 교육 과정 전체에 대한 1인 1책 몰빵이 곤란하다.
사실은 그 전에 초딩 고학년부터도 내 기억이 맞다면 전과가 두세 권으로 나뉘곤 했다. '국산사자 / 예체능'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물론 지금이야 정보의 바다 인터넷 검색에다 숙제까지 해 주는 네이버 지식인까지 있으니 '전과'라는 게 쌍팔년도 시절에 비해서는 훨~~씬 덜 필요해져 있다. 그래도 요즘도 초딩용 동아 전과가 출간되고는 있는가 보다.

2. 사전

동아 출판사의 설립자(故 김 상문)는 전과뿐만 아니라 사전 덕후였다~! 도서 출판에 뼈를 묻은 경영자로서 책 중의 책, 책들의 왕은 사전이라고 생각했는가 보다. 그래서 애들 학습지에만 만족하지 않고 한국의 브리태니커 같은 걸 만들고 싶어했다.

1980년대 초-중반에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은 정말 위대한 업적이었다. 무려 30권에 달하는 전집이었는데, 나중에 보유편도 두 차례나 만들어서 기존 구매자들에게 개별 전달했다. 1990년대 초까지 '애프터서비스'를 해 준 셈이다.
마지막 2차 보유편에는 그 당시 계획 중이던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수록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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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 지 30년이 훌쩍 지나니.. 본인의 집에 있는 이 책도 겉표지가 다 탈색되고 해지고 종이가 누렇게 바래고 딱 저 꼴이 나고 있다.. ㄲㄲㄲㄲㄲ)

하지만 종이 사전은 서서히 돈 안 되는 사양산업이 돼 갔고.. 동아는 경영난을 좀 겪었는가 보다.
내가 중학생이던 96~97년 사이에 사명이 '두산동아'로 바뀌었고, 이때쯤 설립자가 여전히 '파스칼 대백과 사전'이라는 걸 또 만들려고 투자를 호소하고 애를 많이 썼던 것 같다.

동아는 백과사전뿐만 아니라 어학사전의 편찬에도 관여했다. 기억하시는가? 프라임~!!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동아 프라임 영한사전은 명성과 인지도가 아주 높았고, 컨텐츠가 아래아한글 한컴 사전에 수록되기도 했다. 아래아한글 2.5부터 97까지는 영한사전이 프라임 제3판이다가 워디안/20xx 이후부터 엣센스로 바뀌었다.

ㄲㄲㄲ

(본인이 프라임 영한 사전 종이책을 직접 뒤적였던 3판 시절에는 PRIME이라는 글자가 마치 DOOM 게임 로고타입과 비슷한 서체였는데.. 나중에 4판에서는 좀 더 튀는 꼬부랑 서체로 바뀌었다.)

그리고 1999년엔가 국립 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 국어 대사전의 초판도 동아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그 당시 명칭으로는 국립 국어원이 아니라 '국립 국어 연구원'이고, 동아 출판사가 아니라 '두산동아')
허나, 국어사전은 수지가 맞지 않아 손해를 많이 봤다.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초판의 이후로 표준 국어 대사전은 종이책의 출간이 완전히 중단됐으며, 현재까지 웹을 통해 수시로 업데이트 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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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꼴

옛날에 동아 출판사 진영은 의외로 서체 개발에 관심이 있었다. 쌍팔년도까지만 해도 동아 출판사만의 본문용 서체가 있었다. 명조(바탕)이지만 ㅈ의 ㅅ획이 ㅡ의 우측이 아니라 고딕(돋움)체처럼 중앙에서 시작하는 그 엄근진한 서체.. 동아 출판사 본문체가 훗날 'SM 세명조'와 '문화바탕체'로 나뉘어 계승됐다.

내 기억이 맞다면 쟤들은 1990년대 초에 가서는 휴먼편지, 휴먼모음, 휴먼새내기처럼 당대엔 꽤 참신하던 휴먼 컴퓨터 서체를 즐겨 도입해 썼던 것 같다. 지금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영문-숫자에도 2의 좌측 하단 획을 동그랗게 말았던 특유의 필기체가 있어서 문제집과 학습지에다 사용했었다.

4. 멀티미디어 타이틀

그럼 쟤들이 오로지 종이책밖에 고집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고 시도도 했었다.
오 성식 생활 영어 SOS가 종이책은 1993년에 '고려원'에서 먼저 출간됐지만, 멀티미디어 CD 타이틀은 바로 동아 출판사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졌다.

그리고 1990년대 말에는 2번에서 언급했던 세계 대백과사전을 CD 타이틀로 제작하기도 했다.
본인은 Windows 3.x에서 돌아가던 저 CD 타이틀을 써 본 적 있다. 종이책에는 없는 동영상 화보가 있기도 한 건 신기했지만, 용량의 한계 때문인지 전반적인 컨텐츠는 종이책보다 간소화되고 부족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상이다.
계몽사, 국민서관, 교학사, 지학사는 지금도 살아 있기는 하다. 앞의 둘은 아동용 도서 전집, 뒤의 둘은 뭔가 초-중등용 학습지 문제집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민중서림은 사전 출판으로 유명했는데 지금 살아 있나? 종이책의 지위와 위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져 버렸으니, 이런 업체들도 사업 방식이 아무래도 쌍팔년도 시절과 같지는 못할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금성 출판사도 있구나. 본인의 기억에 얘는 학습지로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지만, 교과서와 사전을 만든 적이 있었다. (뉴에이스!!!) 사전은 마소 Office 한글판에서 맞춤법 검사기인지 뭔지 사전 DB로 쓰였다고 About 대화상자에 꼬박꼬박 언급되어 있었다.
금성은 전자 제품에서는 삼성과 경쟁하더니(지금의 LG), 서적에서는 동아와 경쟁했던가 보다.

이 와중에 동아 출판사는 아동용 도서, 초-중딩 학습서, 그리고 사전까지 모든 영역을 넘봤었다. 생각해 보니 대단하다.
아 그리고.. 하이탑!!! 영어에 성문, 수학에 정석이 있지만 과학은 뭔가 압도적인 개인 브랜드가 없는 듯한데.. 거기는 동아 출판사가 다시 '동아 출판'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접수하고 있었다.

옛날 오리지널 동아 출판사라고 하면 뭔가 옛날 대우 자동차 같은 생각이 든다. ^^ 참고로 동아일보 신문이나 과학동아 잡지는.. 동아 출판사와 무관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10 19:35 2023/03/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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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 원일 전 천안함 함장은 손 원일 제독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해군 병 출신인 부친으로부터 참 부담스러운 이름을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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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원일은 독립운동가 겸 대한민국 초대 해군 참모총장.. 그야말로 해군의 창설자 내지 아버지다. ㄲㄲㄲㄲㄲ 관심 있는 분이라면 저분은 투스타 신분으로 미국 가서 극한의 심리전 흥정 딜을 벌여서 가격을 후려친 끝에 각종 군함과 무장을 똥값 헐값에 도입해 온 에피소드를 아실 것이다.

이런 준비 덕분에 6 25 사변 초기에 울나라가 본토에서 참패와 후퇴가 이어지던 동안, 바다에서는 대한해협 해전에서 대승해서 북괴의 내륙 침투를 저지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전쟁 내내 재해권은 우리 아군이 차지할 수 있었다.


이분은 해군 사관학교를 나와서 저 손 제독처럼 해군 장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우수한 성적과 근무 실적으로 진급도 금방 금방 하면서 아주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2010년의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싹 바뀌게 되었다.

이거 무슨 인디애나폴리스 호 피격의 조선판도 아니고.. 패잔병, 패장, 임무 소홀/실패..?? 함장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제일 나중에 정당하게 구조됐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세월호 선장마냥 혼자 빠져나왔다는 식의 망발.. 정말 말도 안 되는 개 헛소리들을 일일이 상대해야 했다.

그는 이 정신병자 미친놈들을 몽땅 다 소송으로 대응해서 참교육 시켰다. 전우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이 인생 최대의 과제가 돼 버린 것이다.
특히 지난 2021년 6월에 휘문고의 어느 또라이 교사를 데꿀멍 시킨 일화가 유명하다. 저분은 2021년 2월에 대령 진급과 함께 예편했으니, 저건 민간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졌던 일이다.

2.
지난 2002년엔 아폴로 계획 자작극 음모론자이던 어떤 스토커가 무려 11호 승무원 출신인 버즈 올드린(닐 암스트롱 다음으로 달에 발을 디딘..)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면서 어그로를 끌었다. “당신이 달에 진짜로 간 거면 어디 성경책에다 손 얹고 맹세해 봐라~ 용용~ 이 거짓말쟁이 사기꾼놈아!” 이랬다.

허.. 올드린은 11호 착륙 당시에 “저희는 달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지구의 각지에서 이 방송을 듣고 계신 여러분은 하시던 일을 잠시만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을 심사숙고하면서 각자의 방법으로 ‘감사’를 같이 표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말을 했던 사람이었다.

1948년 울나라 제헌국회 때 리 승만 의장이 애드립으로 감사 기도 요청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반 년 전 아폴로 8호 때는 창세기 1장 애드립 낭독이 논란이 돼서 이번엔 종교색을 빼고 ‘각자의 방법으로’라고 표현만 바꿨을 뿐이다. 그는 정말 독실한 신자였기 때문에 달에서 개인적으로 몰래 주의 만찬까지 진행했었다..!! (대외적으로는 성찬식..)

근데 성경에 대고 맹세, 사기꾼? 처음엔 이 사람도 그냥 정신병자 취급하면서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지만 이 새X가 계속 길을 막고 선을 넘으며 모욕적인 도발을 일삼으니 참다못해 70대 나이로도 죽빵을 날리게 됐다.
한국 같으면 폭행죄로 기소됐겠지만, 정당방위를 높게 평가하는 천조국에서는 “이 정도면 아예 폭행을 대놓고 유도한 거나 마찬가지”라면서 기소조차 하지 않고 무혐의 방면됐다.

자, 저 버즈 올드린의 심정과(달 착륙), 손 원일 함장(천안함 폭침)의 심정이 비슷했을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솔직히 이건 타이슨 핵이빨이나 박 찬호 가위차기 같은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참고 더 점잖게 대응한 것이었다.
참고로 버즈 올드린은 아폴로 11호 승무원 3명 중에서 2023년 현재까지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사람이다. 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90대의 나이로.. 한 달쯤 전(2023년 1월)엔 리 승만-프란체스카를 능가하는 연하의 여자와 네 번째 결혼까지 했다~!! ㄷㄷㄷㄷㄷ
그 반면, 가장 유명한 암스트롱은 2012년에, 사령선 조종사인 콜린스는 2021년에 세상을 떠났다.

3.
다음으로, 국내엔 손 원일의 이름을 딴 인물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월북 독립 운동가인 박 헌영의 이름을 딴 인물도 있다. 임 헌영..;; 이 사람은 본명이 따로 있다가 훗날 스스로 개명한 것이다.

이 사람은 교사 출신으로 문학 평론 쪽으로 일하다가 나중엔 민족 문제 연구소, 친일 인명 사전.. 이름만 들어도 성향이 짐작이 되는 진영에서 뼈를 묻으며 지냈다.
군사 정권 시절엔 감방을 들락거리기도 했고 정부로부터 사찰 감시도 받았다고..

행적이 입체적이고 진짜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 시대를 잘못 만난 풍운아, 선친일 후항일이 낫냐 선항일 후친일이 낫냐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물..
그 많고 많은 일제 시대 인물 중에 하필이면 남한과 북한으로부터 모두 버림받았고 재평가 가능성도 없는 최악의 인물의 이름을 땄을까? 취향이 참 이상한 것 같다.

하다못해 손 원일의 부친인 손 정도 목사는 남한의 입장에서도 독립 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부터도.. 김 일성 수령의 옛 스승이었다고 예우받고 인정받는 사람이다. 이건 당연히 현재 북괴의 정치나 이념과도 전혀 무관한 옛날 일이다.

마치 중국에서 ‘쑨 원’이 중공과 대만 모두에게서 인정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도 민족이니 통일이니가 좋으면 차라리 저런 사람이나 재조명할 것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 보니 친일파니 어쩌니 하는 저 바닥에는 독립 기념관 관장을 역임한 김 삼웅이라는 사람도 있고, 광복회 회장을 역임한 김 원웅이라는 사람도 있다. 인상이 좀 비슷하게 느껴지는데 물론 그닥 긍정적인 인상은 아니다. -_-;; 도 넘는 반일 정신병은 이제 좀 그만..

Posted by 사무엘

2023/02/20 08:34 2023/02/2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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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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