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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셋 한글 입력기 8.2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8.0이 나온 뒤 거의 4개월 만에 8.2로 버전이 올라갔다. 1.0 이래로 개발 10주년을 자축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주년이 됐다. ㄷㄷㄷㄷ 이번에도 여느 버전업 때와 마찬가지로 온갖 부분에서 자잘한 개선과 변경 사항이 생겼다. 이 8.2는

  • 1.0 이래로 개발 15주년 돌파
  • 전체 소스 코드가 7만 줄 돌파
  • 32비트 msi 배포 패키지가 정확히 2MB 돌파
  • 32비트 ngs3.dll 커널 크기가 700KB 돌파

라는 여러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타자연습은 변화 사항이 없지만 API 구조와 폰트 로딩 방식의 변경 때문에 불가피하게 재컴파일 업데이트를 하게 됐다. 입력기는 8.2인데 타자연습은 구버전을 계속 사용한다면, 실행은 되겠지만 이제 글꼴 리스트에 글꼴들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을 것이며, '고급 입력 스키마/입력기'는 로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타자연습도 부득이 같이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1. Windows 10 지원

이번 8.2는 Windows 10에서 정식으로 테스트된 최초의 버전이다.
Metro UI에서는 제어판이나 텍스트 필터처럼 데스크톱 GUI를 사용하는 기능들을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막았다. 이건 뭔가 새로운 기능을 추가한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는 굳이 필요하지 않던 안전 체크 오버헤드만이 추가된 것일 뿐이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Metro UI는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명령 프롬프트에서 한글 입력이 더 진행되지 않던 문제를 고쳤고, 그 상태에서 제어판이 동작하지 않던 문제도 해결했다. (명령 프롬프트는 Metro 앱이 아니기 때문에 제어판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두 문제 모두 Windows 10의 명령 프롬프트는 예전 버전과는 영 다른 방식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발생했었다.

이 정도 보완만 해 주면 되는 듯하나, Edge 브라우저에서 페이스북의 댓글란에 한글 입력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은 기술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문제로 남았다. 도대체 입력 문자를 어떻게 넘겨 줘야 MS IME 와 동일하게 동작할 수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Edge의 버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Windows에서 한글 입력기를 만드는 일은 프로토콜이 IME에서 TSF로 바뀌면서 무질서도와 난관이 한 10배 가까이 뛰고 더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뭔가 static하고 write-only이기만 하던 고정 프로토콜에다가 문자열을 넣어서 메시지만 쏴 주면 됐지만 지금은 스레드 동기화부터 시작해서 온갖 복잡한 COM 객체 관리, 게다가 레거시 프로그램에 대한 호환 유지, 스펙대로 동작하지 않는 프로그램에 대한 보정.. 등 지저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극소수 프로그램에서 드디어 텍스트의 임의 조작이 가능해진 것은 분명 큰 발전이지만, 그것 말고 똥싸 놓은 걸 치워야 하는 것도 많다.

2. 입력 패드에 후보 변환 기능 추가

요 근래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제3의 구현체인 입력 패드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왔다.
7.9에서는 '화면 키보드' 기능에 눌린 글쇠 표시 기능이 추가되었으며, 이 작업을 발전시켜 8.0에서는 입력 패드가 여타 구현체와 대등한 수준으로 키보드 입력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번 8.2에서는 조합 중인 글자 하나에 한해서 한자 후보 변환까지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후보 변환 프로토콜을 전반적으로 재설계· 확장하는 대공사가 선행되었다.

지금까지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프로토콜은 중간에 후보 변환 요청이 있는 경우, 사용자가 무슨 후보로 변환할지 완전히 응답을 해야(취소하는 것도 포함해서) 다음 단계로 진행이 되는.. 일종의 순차· 동기적인 진행만을 지원했다.

이것은 편집기처럼 한자 후보 목록이 별도의 modal 대화상자로 출력되는 구현체에는 곧장 적용 가능한 만한 반면, 외부 모듈처럼 (1) 후보 목록이 뜬 채로 key 입력을 계속 받아들여야 하는 구현체에는 적합하지 않은 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 코드의 중복 같은 지저분한 편법이 필요했다. 그런데 외부 모듈과 비슷하게 동작하는 구현체(= 입력 패드)가 또 추가되고, 적합하지 않은 프로토콜을 여기에 또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기회에 리팩터링을 왕창 하게 되었다.

또한, 기존 프로토콜은 한자 후보 선택을 받은 뒤에 cursor를 이동시키거나 텍스트를 조작할 수만 있었지, (2) 반대 순서의 동작을 시킬 수는 없다는 한계도 지니고 있었다. cursor를 이동시켜서 다른 위치에 있는 글자에 대해 후보 변환을 할 수가 없었다.

아래아한글이나 MS IME에서 '토선생'이라는 단어를 입력해서 '생'을 조합하고 있는 상태로 한자 키를 누르면.. 앞의 '토선'이 선택되고 土船이 후보로 제시된다. 그거 변환을 하고 나면 cursor는 다시 '토선'이 아니라 '생'의 뒤로 딱 되돌아온다.
그러나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cursor 위치는 변함이 없고 뒷부분의 '선생'이 선택되고 先生이 후보로 제시된다. 전자와 같은 동작은 프로토콜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8.2부터는 드디어 이런 한계가 없어졌다. 내 프로그램 역시 MS IME와 완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자유자재로 텍스트를 조작하면서 원하는 때에 후보 변환 UI를 modal 형태든 그렇지 않은 형태든 꺼낼 수 있다. 단, 실제로 MS IME와 동일한 방식으로 동작하는 기능 자체는 당장 반영되지 않았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소스 내부에 #ifdef ... #endif의 형태로 막혀 있다. 일단은 이론적으로 구현 가능해졌다는 것만 입증하고 넘어갔다.

<날개셋> 입력 패드에 후보 변환 기능은 이런 최신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구현되었다. 외부 모듈에 존재하는 후보 선택 UI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을 고려했지만 현실에서의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그렇게 하지 않고 또 자체 구현을 했다. 외부 모듈의 후보 선택 UI는 운영체제의 프로토콜과 맞물려서 패드에는 필요하지 않은 오버헤드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입력 패드의 후보 선택 UI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GUI 엔진이 자체 제공하는 리스트박스 컴포넌트를 이용하여 최대한 간결· 단순하게 구현되었다. 외부 모듈의 것과 거의 동일하지만 확장 모드(tab 키)는 지원되지 않으며, 세로쓰기 모드의 지원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구현을 과감히 생략했다.

그 대신 입력 패드의 후보 리스트는 스크롤 막대를 마우스로 누르거나 끌어 보면, 줄 단위 스크롤이 가능하여 좀 더 직관적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외부 모듈의 그것은 언제나 페이지 단위 스크롤만 된다. 물론 마우스가 아니라 키보드 화살표로 선택막대를 움직이면 페이지 단위로 스크롤된다. 페이지 단위로 이동 후 1~9 숫자를 선택하는 동작도 여전히 고려했기 때문이다.

후보 UI를 구현할 때 같이 구현돼야 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후보 윈도우를 어디에다 표시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cursor 근처 아래에다가 표시해 주는 게 원칙인데, 이걸 hook 프로시저를 통해 알아 와야 한다. 이때는 IME 쪽 인터페이스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오버헤드를 감수하고라도 정확도의 향상을 위해 TSF 인터페이스도 사용한다. 훅킹으로 응용 프로그램에서 TSF edit session까지 요청해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프로그래밍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32비트와 64비트를 구분 없이 모두 잘 지원하는 건 물론이고.

단, 이미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의 IME가 한영 내지 한자 키를 가로채고 있으면 키보드 입력 모드에서도 이 입력 패드가 그 key들을 가로챌 수 없다. 그러므로 입력 패드에서 한자 변환을 하려면 F9 같은 다른 위치에다가 C0|0x82 같은 후보 변환 기능을 배당해 놓고 있어야 한다.

3. 글꼴 쪽의 변화

'한메가는본문'이라고 타자기 자형처럼 생긴 한글 글꼴이 지금까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과 Lucida Console 영문 글꼴이 같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8.2에서는 이것과 같은 계열인 '한메굵은본문'이 추가되었다. 도스용 한메한글이 출력하던 글꼴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한메 계열 글꼴은 초성 5, 중성 2, 종성 3벌로 되어 있어서 도깨비 8*4*4보다 구조가 더 간단하다. 특히 '고'의 ㄱ과 '공'의 ㄱ이 동일해서 더욱 타자기 글꼴 같은 느낌이 나지만, 그렇다고 진짜 샘물이나 타자기 계열만치 과격한 모양은 아니다. 또한, '한솔바탕'과도 좀 비슷해 보이지만 그래도 엄연히 차이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번에 굵은본문을 분석하고 추가하는 과정에서, 기존 가는본문의 조합 규칙이 몇 년째 잘못되어 있던 것도 같이 발견하여 고쳤다. 당장 '메' 자를 보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잘 알다시피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컴퓨터에서 한글을 '입력'하는 모든 아이디어와 기술을 구현하는 기반 시스템이다. 그런데 편집기는 다른 구현체와는 달리 독자적인 한글 글꼴 출력 시스템도 갖추고 있으며, 특별히 과거에 존재했던 다양한 독창적인 비트맵 글꼴들을 몽땅 한데 재현하는 일에도 덤으로 관심을 두고 있다. 아래아한글, Windows 3.x, mshbios 등. 입력 방식뿐만 아니라 글꼴도 보존 가치가 있는 옛날 데이터가 또 발견된다면 얼마든지 채택되고 추가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버전에서는, 겉으로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겠지만 글꼴의 전반적인 로딩 방식을 memory-map 기반으로 바꿨다. 그래서 여러 프로그램에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 외부 모듈을 사용하고 있고 여러 프로그램들이 동일한 한자 글꼴 같은 걸 중복해서 로딩하더라도, 메모리가 제각각 따로 할당되는 게 아니라 1파일 1메모리가 보장되어 더 효율적으로 동작하게 했다. 뭐, 요즘처럼 메모리가 넘치는 환경에서는 겨우 16*16 비트맵 글꼴 나부랭이는 중복 로딩을 한다 해도 별 부담이 되진 않겠지만 말이다.

4. 변수 N의 의미 확장

기본 입력 스키마가 글쇠배열에다 제공하는 변수로는 P (caps lock 여부), N (num lock 여부), T (오토마타의 조합 상태), D~F (입력 중인 한글 자모)가 있다. T, D~F는 정수인 반면 P와 N은 일종의 0 아니면 1의 boolean값이었다.
그런 키보드 램프의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문자를 되돌리고 싶으면 해당 변수 값을 토대로 ? : 조건부 수식을 지정하면 된다. caps lock은 그렇다 치더라도 num lock의 경우, 세벌식 글쇠배열의 숫자 자리를 키패드처럼 바꾸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본인은 이 생각을 아주 오래 전부터 했기 때문에 저건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1.0때부터 있던 기능이었다. 단지 그때는 지금 같은 입력 스키마와 문자 생성기의 계층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그 기능이 입력 스키마의 변수가 아니라 그냥 입력 옵션 중 하나로 제공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버전에서는 옵션을 추가로 줄 경우, N에 num lock (비트 1)뿐만 아니라 scroll lock (비트 2)도 같이 줄 수 있게 했다. 이 옵션이 지정되어 있으면 N은 앞으로 키보드의 상태와 관련된 다른 유의미한 비트 플래그가 도입될 경우 4, 8, 16 같은 식으로 의미가 계속 추가될 것이다.

scroll lock은 사실 굉장한 잉여 램프로 전락해 있으며 caps lock만치 문자 입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별도의 독립된 변수를 할당하지는 않고 기존 N에서 비트만 추가하는 것으로 의미를 정했다.
그래도 기능을 일단 만들어 놓으면 이것도 아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사용자가 분명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옵션을 켠 상태에서 num lock만 인식하려면 글쇠 수식을 N ? A: B 이렇게 작성할 게 아니라 번거롭지만 N&1 ? A: B라고 써 줘야 한다.
세벌식 키패드 수식을 생성해 주는 빠른설정 기능은 여기에 맞춰 &1이 추가되도록 알고리즘이 수정되었다.

5. 키보드 드라이버 보정

이번 버전에서는 입력기나 편집기 계층이 아니라 시스템 계층에서 꽤 참신한 기능이 하나 또 추가되었다. 바로 키보드 드라이버의 글쇠 인식을 인위적으로 변조하는 기능이다.
내 프로그램의 내부에는 Shift+Space를 '한영'으로 바꿔서 인식하는 type-3 키보드의 동작을 도로 무효화하는 보정이 있었다. 그런데 이 로직이 편집기와 외부 모듈과 패드의 구현체에 몽땅 중복으로 존재하며, 이것도 켜거나 끌 수가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별도의 계층으로 빼냈다.

그리고 type-3 보정뿐만 아니라 type-1 보정도 추가했다. 바로, 오른쪽 Ctrl/Alt를 한영/한자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 말이다. 이로써 한국어 키보드에서도 Ctrl/Alt의 좌우 구분이 가능해졌다. 물론, 아무 보정을 하지 않는 것도 가능하고 말이다. 왜 이런 유용한 기능을 진작에 넣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여기서 키보드 드라이버 보정을 한 것은 물론 응용 프로그램이 아니라 <날개셋> 한글 입력기 내부에서만 통용된다. type-1 보정을 했다고 해서 오른쪽 Alt로 응용 프로그램의 메뉴를 바로 열 수 있는 건 아니다.

시스템 계층 설정에는 지금까지 글꼴과 관련된 설정과 기능 몇 가지만 있었는데 '보정 없음, type 1, type 3'이라는 세 항목 중 하나를 선택하는 UI도 추가되었다.
시스템 설정의 내용은 사용자 컴퓨터의 레지스트리에 저장되지, ist/st 같은 파일에는 저장되지는 않는다. '미저장 확인'을 누르면 해당 프로그램이 실행되어 있는 동안만 유효하니, '확인'을 눌러야 레지스트리에까지 저장되어 다음에 프로그램을 재실행할 때도 반영된다.

6. 키패드 글쇠와 키보드 글쇠의 구분 기능

Scroll lock 지원과 키보드 드라이버 보정. 이번 버전엔 어쩌다 보니 키 입력 인식과 관련된 기능이 여럿 추가됐는데, 이것만 들어가기에는 좀 아쉽다.
이번 8.2에서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발 역사상 최초로 일부 글쇠에 대해 키패드 글쇠와 키보드 글쇠를 구분해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대상은 바로 상하좌우 화살표(4) + Home/End/Pg Up/Pg Dn(4) + Ins/Del(2) + 엔터 이렇게 총 11개이다.
단축글쇠 배당 대화상자를 열어서 이들 키를 누르면.. 오른쪽에 종류를 묻는 콤보 상자가 추가로 뜬다. 사용자는 종전처럼 "구분 없이 아무 거나 인식"을 선택해도 되고, 키보드 것만 혹은 키패드 것만 인식하게 설정할 수 있다. 문자 키와 키패드 사이에 따로 몰려 있는 구역도 '키보드' 영역이다.

그리고 고급 입력 스키마에서는 바로 N 변수에서 1(num lock), 2(scroll lock)에 이어 4가 이 글쇠의 변별을 담당한다.
Windows의 키보드 메시지에서 extended key 플래그가 바로 여기에 전달된다. 다른 글쇠들은 키보드 글쇠일 때 플래그가 켜져 있지만, 엔터만 유일하게 키패드 글쇠일 때 플래그가 켜져 있다. 여기에는 사연이 좀 있다.

extended key란 예전의 84/86키 키보드에는 없다가 지금과 같은 101/103키 키보드에서 중첩되어 새로 추가된 key를 나타내는데, 예전에는 키패드에 엔터가 없다가 나중에 키패드에 새로 추가됐기 때문이다.
그 반면, 나머지 home, end 같은 건 원래 키패드에만 있다가 나중에 별도의 구역이 또 추가된 것이기 때문에 '키보드'에 속하는 구역의 글쇠들이 extended이다.

아무튼 이런 옵션과 변수를 통해서 단축글쇠와 고급 입력 스키마에서 모두 키보드와 키패드를 구분해서 글쇠를 인식할 수 있다.

7. 보조 입력 도구

끝으로, 사소한 사항으로는..
보조 입력 도구인 '부수로 한자 입력'에서 부수나 한자를 우클릭했을 때 해당 글자를 클립보드에 복사하는 명령을 추가했다. 지금까지는 이 명령이 문자표에만 있지 부수 한자 입력에는 없었다.

그리고 문자표에는 알다시피 문자를 운영체제의 특정 글꼴로 출력하거나 내장 비트맵 글꼴로 출력하는 옵션이 있는데, 제어판의 시스템 계층에서 설정된 그 후보 출력용 글꼴을 지정하는 옵션도 추가했다. 지금까지 이런 기능이 왜 없었는지 모르겠다.
이들 보조 입력 도구는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5.5x 시절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참 격세지감이다.

위의 신규 기능들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꽤 황당한 버그가 오랫동안 남아 있던 것을 발견했다.
원래 날개셋 제어판을 열었다가 '확인'을 눌러서 닫으면 입력 설정만 저장되는 게 아니라 모든 플러그 인들의 설정도 파일로 저장된다. 텍스트 필터들의 내부 설정들이 여기에 포함되며, 문자표는 사용자가 예전에 선택한 글꼴과 view 모드를 이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는다.
그런데 64비트 에디션은 그런 플러그 인 기능들을 설정을 변경한 뒤 사용하고, 날개셋 제어판을 '확인'을 눌러서 닫았는데도 해당 프로그램(편집기 같은..)을 재실행했을 때 예전 설정이 보존되어 있지 않았다. 파일 오프셋과 관련된 착오가 있는 것을 확인해서 즉시 고쳤다.

Posted by 사무엘

2015/10/27 08:22 2015/10/2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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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Trivia -- 下

0.
이번엔 먼저 난센스 퀴즈 개드립부터 좀 시작하자. 노아(성경에 나오는)의 아내의 이름이 무엇일까?

정답은 잔 다르크.
저 이름은 잘 알다시피 '아르크의 잔/요안'이라는 뜻이며, Arc(아르크)는 ark(궤, 방주)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아 제기랄....;;; 아무리 난센스라지만 그 병맛스러움은 이말년 서유기에서 나타태자가 시전했던 희대의 병맛 퀴즈,
궁예가 몰고 다니는 승용차의 이름은? 애꾸스
지금 인도는 몇 시일까? 인도네시아
귀가 불타면? 타이어. (이건 뭐 그... 거북선, 소방관, 포크레인, 활명수던가.. 그 초병맛 그림 퀴즈의 소재로 써도 되겠다 -_-;;;)

그리고 본격 2차 세계대전 만화에서 롬멜 준장이 시전한 초썰렁 퀴즈
네덜란드에 있는 강력한 방어선은? 암스테르 '담'
이 전차가 왜 '3호 전차'일까? '3호선'이면 일산까지밖에 못 가니까.
영국의 수상은 왜 이름이 '처칠'일까? 부인이 일곱 명이어서

에 필적하는 것 같다. 썰렁하게 해서 죄송~~ ㅡ,.ㅡ;;

1.
성경에는 서로 다른 책 내지 다른 문맥에서 굉장히 놀라울 정도로 유사/동일한 표현이 존재하는 쌍(pair)이 있다. 예를 들어,

  • 아들을 낳고는 죽은 산모 이야기는 아들을 낳고는 죽은 산모: 라헬(창 35:16-18), 그리고 이름도 안 나오는 엘리의 며느리 및 비느하스의 아내(삼상 4:19-21)
  • 동성애자들의 "우리가 그들을 알리라" 드립: 소돔 (창 19:4-5), 그리고 베냐민 지파의 벨리알의 아들들(삿 19:21-22)

이것들은 비록 시기와 장소가 다르지만 심상은 서로 동일하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without form and void는 창 1:2와 렘 4:23이 서로 동일하게 부정적인 심상이다. 시기가 각각 과거와 미래로 다를지라도 말이다.
또한, 창 1:28과 창 9:1의 replenish the earth 역시 "예전에 꽉 차 있다가 비게 된 땅을 다시 채우라"라는 동일한 심상이 존재한다고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

2.
성경에서 완전히 동일한 건 아니지만, 결국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로 seamless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서는 둘이 동일하다고 볼 수도 있는 개념의 쌍이 있다.

  • 무교절과 유월절: 눅 22:1 vs 행 12:3-4. 유월절이 끝난 뒤에 곧바로 무교절이 이어지지만, 가끔은 단일한 명절 series로 취급되기도 한다.
  • 지옥과 불못: 계 20:14. 궁극적으로는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긴 하지만 지옥에 있던 혼들이 다 그대로 불못으로도 가므로 둘은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영원을 보내게 되는 장소"라는 개념 하에서는 하나로 볼 수도 있다.
  •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 마 19:23-24와 막 10:23-24. 두 왕국은 일면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가끔 성경에서 두 용어가 좀 구분 없이 섞여 쓰인 듯한 곳도 있다. 처음에는 구분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는데 유대인의 예수님 거부, 교회 태동, 초림과 재림 사이의 gap으로 인해 더 분명하게 다른 개념이 된 셈이다.

3.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 의지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으신다. 무슨 마인드 컨트롤 해서 로봇처럼 강제 조종을 하지는 않으신다. 하지만 일단 마음을 먹고 방향을 결정한 사람이 일단 나아가기 시작하면 거기에 '가속도'를 불어 넣기는 하신다. 마치 자동차의 파워스티어링처럼 일단 핸들을 살짝 돌리기 시작하면 작은 힘으로도 확 돌아가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단 삐딱서니 타고 반골 기질을 보인 파라오의 마음을 더욱 강퍅하게 만드셨으며, 기타 여러 악인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농락하셨다. 그분은 미혹의 영을 보내서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낚기도 하신다. (살후 2:11; 왕상 22)

그렇게 거짓을 믿게도 하실진대 반대로,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믿도록 우리가 가진 믿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믿었던 예수님의 믿음'을 선물로 주기도 하신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더욱 수긍이 간다. faith of Jesus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예수님의 믿음인 것이다.

4.
우리는 무슨 분야에서든 열심히 노력하면 자기 삶의 질은 '지금'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당연히 더 나아진다. 단지, '남들만치'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을 뿐이다. ㅋㅋㅋ
내가 열심히 코딩을 하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예전 버전보다 더 좋아지고, 한글 입력 기능의 범위가 더 확장되고 내가 자아성취와 정신건강에 증가한다는 건 지당한 이치이다. 단지 이거 만든다고 해서 반드시 무슨 부귀영화가 찾아온다는 보장이 없을 뿐이다. 음 이건 뭐 자가디스인가.. ㅎㅎ
이건 마치 성경 말씀처럼 들린다.

  • 시험을 피할 길을 내서 너희가 능히 시험을 능히 감당 가능하게 해 주겠다고 말했지, 시험을 아예 없애 주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지는 않은 것과 같다. (고전 10:13) 크리스천에게 구원의 영원한 보장만큼이나 확실하게 면제· 바이패스가 보장된 건 '그 대환란'뿐이다.
  • 간구를 잘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평안을 주겠다고 했지, 역경과 고난 자체를 없애고 당장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말하지는 않은 것과 같다. (빌 4:7)
  • 영적으로 복을 주신다고 했고 어찌 보면 크리스천들은 복을 이미 넘치도록 받았다(엡 1:3). 사랑도 받았다. 단지, 구약 시대처럼 당장 땅(부동산!)과 재물의 복을 주겠다고 말하지는 않은 것과 같다.

그렇다고 반대로, 예수쟁이들은 성경대로 살면 365일 24시간 내내 가시밭길뿐이고 오로지 시험과 고난과 박해밖에 없고 배 쫄쫄 굶는 거지가 된다는 얘기도 아니다(북한 같은 예외· 극단적인 곳이 아닌 한!). 하나님은 그렇게 야박하고 잔인한 분이 아니다. 물질적인 복은 그냥 케바케일 뿐이란 뜻임. 요 21:23에서 제자들의 미래 순교 여부가 그냥 랜덤 케바케였던 것처럼 말이다. 구원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덜 중요한 이런 후천적이고 환경적인 요인들이나 가변적인 것이다.

이래저래 겉을 남하고 비교하고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건강에 이로울 게 별로 없다. 비교를 굳이 하려면 "저 사람은 평소에 기도와 성경 읽기를 어떻게 하나?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도대체 어떻게 저 상황에서 기쁨과 감사가 나올까?" 이런 걸 벤치마킹하고 자기에게 도입할 생각을 해야 한다.

5.
(사람을 채용할 때는) "또 그 사람의 '구글다움(googleyness)' 여부를 봅니다." (☞ 관련 기사)

여기서 KJV 신자로서 나의 직업병이 0.1초 만에 하나 발동되는데..
성경에서 우리말로 옮기기 난감한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인 godliness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저것도 이와 방식으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정말 직관적으로 풀이하자면 '신스러운'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부합하는, 하나님다운.. 정도.
우리말 성경에서는 한때 '경건'이라고 옮기곤 했는데 이건 단순 '독실, 엄숙' 같은 뜻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게다가 반의어인 ungodliness로까지 가면..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불경건'을 쓸 수밖에.

한 가지 확실한 건, 구글 직원이라면 구글다워야 하는 것만큼이나
크리스천에게서는 지식과 행실, 머리와 심장에서 모두 하나님답고 하나님의 성품이 잘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종교적인 연기· 위선이나 정신줄 놓은 광신하고 분간이 안 돼서 오해와 편견이 무진장 많다는 게 문제일 뿐.

6.
로보캅...은 아니고 초대 교회 시절에 사도 요한의 제자라고 알려진 '폴리캅'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교회 중에 서마나 교회의 감독이었으며, 80대 중반의 나이로 AD 150~160년경에 순교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이라도 예수 믿지 말고 황제에게 경배하고 제물을 바치면 당신의 나이를 감안해서라도 반역 행위를 없던 걸로 해 주겠다"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그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예수님은 내 인생 80년 평생 동안 한 번도 나를 배반한 적이 없고 늘 신실하셨는데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단 말이오?"

그는 처음에는 맹수들에게 잡아먹히는 방법으로 처형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화형으로 방식이 바뀌었다.
불태웠는데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지도 않았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고 한다. 결국은 칼과 창으로 난도질 당함으로써 순교했는데.. 전승에 따르면 폴리캅이 죽을 때 그의 몸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튀어나왔고, 피가 넘치면서 화형장에 붙어 있던 불을 꺼 버렸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차돈처럼 하얀 피가 나온 건 아니었고.

그 당시 군중들은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딴판으로, "저 개독 예수쟁이 뒈져라!"라고 외치지 않았다. "저 무신론자 뒈져라!"라고 외쳤다! 눈앞에 있는 황제를 숭배하지 않고, 어떤 형상 성물도 없고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다는 개념을 이해를 못 한지라 크리스천들을 숫제 무신론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온갖 성물 형상들로 가득한 종교와는 분위기가 영 딴판이었음이 틀림없다.

7.
유대교 신정국가이던 구약 시대 이스라엘 민족은 지구상의 그 어떤 민족· 부족도 하지 않는 이상한 종교 행위를 해야 했다.
누가 죄를 지었으면 지금 천주교에서 하는 것처럼 고해성사를 하고 죄를 지은 당사자가 자가속죄를 위해 무슨 고행이나 뺑이를 치는 게 아니라, 웬 뜬금없이 흠 없는 불쌍한 가축을 잔인하게 죽이고 피를 쏟고 시체를 불태워야 했다.

구약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해설하는 화이트칼라 먹물 문돌이이기만 한 게 아니라, 반쯤은 동물 잡는 백정 같은 일을 하면서 고된 육체 노동도 해야 했다.
그러니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이런 직분을 맡을 수 없다고 모세오경에 기록된 게 있는데, 이걸 보고는 성경이 무슨 장애인을 차별하고 비하하네 이렇게 이상하게 트집잡는 개독안티도 있다. 별로 상대할 가치 없다.

죄라는 건 겨우 고행이나 얼차려로 대충 말소하거나 다른 어설픈 선행으로 퉁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만 대속이 가능한 심각한 사항이며, 그래서 불쌍한 동물의 죽음이 야기되어야 하고.. 죄의 형벌을 받는 지옥이라는 게 저런 뜨거운 불이 가득한 고통의 장소라는 것을 유대인들은 매일 시청각으로 접하며 지냈다.

요즘 병원이나 제약 연구소의 뒤뜰을 보면 사람을 대신하여 임상실험에 동원됐다가 죽은 동물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있고 연구원들이 1년에 한 번쯤은 거기서 쥐나 토끼가 좋아하는 먹이를 얹어서 고사(?)도 지낸다.
그런 사고방식이라면 구약 성전 뒤뜰에서는 성전 직원(?)들이 1년에 몇 번이고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은 동물들의 고사를 지내 주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사고방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히브리서 9~10장은 죄사함을 위해서는 동물의 피만으로는 오히려 부족하다, 불완전하다는 말만 할 뿐, 동물을 불쌍히 여기는 박애주의(?) 따위와는 억만 리 떨어져 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들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니라.” (히 10:4)

끝으로, 동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다. 상식 차원에서 이미 아는 분도 계실 텐데, 성경은 신구약 66권을 통틀어 고양이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다. 쥐, 개, 여우 같은 주변 동물은 다 등장하는데도. 더구나 성경이 다루는 시기와 지역에 고양이는 분명히 존재했을 텐데 부정한 동물로라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무척 흥미로운 점이다.

8.
구약은 저렇고, 신약 기독교회의 역사에는 피흘린 순교자의 발자취가 있다.
교회가 그냥 세상 정부의 군대 같은 조직이거나 여느 시민 단체와 별 차이가 없었다면, 자기 조직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배들의 영웅적인 행적을 그야말로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정훈 교육 소재로 써먹어야 한다.

당장 한글 학회는 조선어 학회 사건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고 조선어 학회 '수난'(그냥 사건이 아니라)이라고 부른다. 자기네 행사가 있을 때는 국민의례를 하고 나서 그때 고초를 겪은 국어학자들(특히 옥사한 이 윤재· 한 징 선생)에 대한 묵념을 추가적으로 한다.
그런 식이라면 교회 예배당엔 주 기철 목사 동상을 곳곳에 만들고 누구를 기리는 노래를 만들고, 매주 예배 때 믿음의 선진들에 대한 묵념이라도 해야 마땅하다. 기독교회의 현충일 같은 날도 좀 있어야 한다. 그나마 천주교가 이에 근접해서 각종 성인 성자들을 만들어 놓고 별걸 다 기념하긴 한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짐승들의 공로와 마찬가지로 순교자들의 공로 역시, 그게 아무리 크다 해도 예수님의 공로보다 더 위대하다고 여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니 둘은 완전히 근본적으로 다르다. 순교자들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으심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는... 그 많은 순교자들은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기쁘게 만나 볼 사람들이다. 그러니 애초에 영원히 못 볼 사람인양 추모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교훈과 도전을 얻고 예우를 하는 것 이상으로 그들을 우상화할 필요도 없다. 그들 역시 똑같은 인간이었고 우리 역시 이미 그들과 동급의 성도(saint. 성인 성자가 아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개념을 요약하자면 이렇게 된다.

  • 구약 유대교: 죽임당한 동물 위령탑 없음
  • 신약 기독교: 순교자 묵념 없음

아울러, 신약 시대에 교회에 존재하는 유일한 의식 내지 규례는 딱 두 가지, (1) 침례와 (2) 주의 만찬이다. 둘 다 예수님의 재림 이전까지만 유효하며, '상징'일 뿐이지 혼의 구원하고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 에구, 서로 다른 글들을 한데 묶고 편집해서 올리는 것도 고역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15/10/24 08:39 2015/10/24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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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Trivia -- 上

1.
성경은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해서 각각 무어라 말할까?
선민인 유대인에 대해서도 죄를 짓고 계약을 위반했을 때는 역사적으로 정말 많이 심판하고 정말 처참한 꼴을 많이 허락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들은 완전히 뿌리뽑히고 멸망하지는 않고, 잡초처럼 처절하고 끈질기게 살아남고 회복되고 최후의 승자가 될 거라는 보장만 해 주셨을 뿐이다.

한편, 이방인에 대해서는 가장 대표적으로 부정적으로 얘기한 예는 가나안 민족과 소돔이다. 전자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짐승과 어린아이까지 하나도 남기지 말고 싹 죽이라고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셨고 앞뒤 문맥을 모르는 개독안티들이 그걸 트집을 잡을 정도이다. 후자 소돔은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고.

하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이방인에 대해서도 의외로 긍정적으로 나온 게 성경 곳곳에서 발견된다. 비록 유대인 같은 명시적인 율법을 받지 않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들어서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얘들도 기본적으로 알 거 다 알았다. 살인이나 간음죄를 저지르면 안 되고, 그랬다가는 천벌과 인과응보를 받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는 점이 부각된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이방인들은 어떻게 구원받았나?" 같은 질문에 답을 구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 아비멜렉(창 20:4-5)은 간음이 죄라는 것을 뼛속까지 숙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떳떳했다. 26장에 나오는 다른 아비멜렉도 마찬가지.
  • 이방인이던 아하수에로 왕의 측근들은 남편과 아내와 가정의 영적 질서에 대해서 우리처럼 바울 서신을 보지 않고도 잘 알고 있었다(에 1:17,18).
  • 요나와 같은 배를 탔던 이방인들은 살인을 저질렀다가는 자신들이 큰일 난다는 관념이 박혀 있었다(욘 1:14). 요나를 바다에 던지기 전에 얼마나 고뇌하고 있는지를 보라.
  • 바울을 맞이했던 미개한 백성들도 살인을 저지르면 반드시 천벌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행 28:4).

2.
느부갓네살 왕은 유대인 포함 온갖 민족들을 심판한 정복자였으며 어찌 보면 유례를 찾기 힘든 개막장 폭군이었다. 역사상 "꿈 내용이 생각은 안 나는데 어쨌든 니들이 내 기억을 복원해서 해석까지 안 해 주면 몽땅 뒈질 줄 알아라" 이런 짓거리를 한 군주가 있었던가? -_-;;

그런데 그런 막장인 것치고는 이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도 많이 나오고 성경에서의 묘사가 꽤 호탕하고 긍정적이다. 이방인 주제에 하나님께서 "나의 종"(렘 43:10)이라고 불러 주셨다.
게다가 미쳐서 소처럼 됐다가도 다시 왕위를 회복까지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느부갓네살은 출애굽기의 파라오처럼 성경적으로 적그리스도의 예표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개인은 궁극적으로 아마 구원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참 독특한 인물이다.

3.

  • 에스더: 법을 지키는 것, 예전 법을 초월하는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에 대한 개념 차이를 보여 준다. 권위의 영적 의미에 대한 좋은 조명을 준다.
  • 요나: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존중하는 한편으로, 이를 초월한 구원 이념을 가르친다.

4.

  • 미래에 대해서: 이 구절은 아직 성취된 예언이 아니라 더 멀리 재림 때가 돼서야 성취될 사건이다.
  • 과거에 대해서: 이 구절은 노아의 홍수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더 옛날 이전 세상 시점의 일이다.

생물학적인 남녀와 부모· 자녀 관계가 있기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부터 아버지와 아들 개념이 있었고, 남녀간의 사랑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성품에 사랑이 존재했다.
그런 것처럼 지구의 자전으로 인한 24시간짜리 낮과 밤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전우주적인 빛이 있었고 빛과 어둠의 분리로 인한 낮과 밤이 있었다. 6일 창조 중 첫째 날에 나오는 낮과 밤은 넷째 날에 나오는 낮과 밤하고는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다. 성경은 가시적인 만물과 비가시적인 영적 만물이 서로 나란히 대칭을 이룬다는 비례와 예표 원리를 줄곧 가르친다.

5.
성경에는 잘못 해석할 경우 의미와 뉘앙스가 완전히 정반대로 바뀌는 지뢰밭이 몇 군데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먼저 용어부터 살펴보면, '누룩', '불 침례' 같은 건 긍정적인 심상이 절대로 아니다. 마 3과 눅 3에서 나오는 불 침례는 지옥에서 온몸이 불에 활활 타는 걸 얘기한다. 절대로 불 같은 성령의 권능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아마 '불꽃'의 모양처럼 갈라진 혀(행 2:3)랑 헷갈린 것 같은데.. 성경의 묘사는 그게 전부이다. 좌우 문맥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그리고 크리스천 개인의 작지만 소중한 믿음, 희생, 헌신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으면 '겨자씨' 내지 요 12:24에서 모티브를 따서 차라리 '밀알'이라고 표현하는 건 적절하다. 그 반면 누룩은 성경에서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존재이다. 누룩이 들어가서 온 빵이 부풀었다는 비유(마 13:33) 역시 교회의 기형적인 팽창과 부패와 변질을 얘기하는 것이지, 무슨 복음 전파나 하나님 나라 확장 같은 긍정적인 얘기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누룩 선교회'도 있다고 한다. 헐.. -_-;; IT 기업이 "버그 소프트웨어" 내지 "BSOD 시스템즈" 이렇게 상호를 지은 것과 비슷하다.

하긴, 똑같은 겨자도 마 17:20의 '겨자씨만 한 믿음'은 긍정적인 반면, 마 13:31-32에서 '겨자가 나무가 된 이야기'는 부정적인 묘사이니 이것도 참 절묘하다. 그건 누룩과 마찬가지로 변질과 부패를 가리킨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를 정면으로 거스른 현상이며, '공중의 새' 역시 성경적으로 심히 부정적인 심상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모든 부정하고 가증한 새들의 집"(계 18:2)을 떠올린다면 심상이 100% 동일하지는 않아도 얼추 맞게 연결된다.

이런 '누룩'과 동일 선상에서 하나 더 첨언하자면, '썩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썩음'(corruption)은 행 2:27, 행 13:34-37, 롬 1:23, 고전 15:42, 벧전 1:23 등 성경에서 일관되게 매우 부정적인 심상이며 크리스천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요 12:24와, 심지어 고전 15:36도 뿌려진 씨앗은 떨어져서 그냥 '죽는다고' 했지, 죽어서 굳이 썩는다고 얘기하지는 않았다! 크리스천은 단어를 선택할 때도 주의를 매우 기울여야 함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살후 2:7의 막고 있는 자, 계 6:2의 흰 말 탄 자는 적그리스도이지 예수님 같은 좋은 쪽이 아니다. 다니엘서에도 이렇게 주객이 뒤바뀔 여지가 있는 예언이 나오는데 당장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난다.
변개된 성경들은 사 14:12에서 루시퍼의 정체를 감추고 아예 마귀에게 예수님의 칭호를 부여하거나(계 22:16), 혹은 예수님을 저렇게 심판 받는 나쁜놈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6.
성경에서 "어, 왜 이럴까?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잠시 생각을 좀 해야 하는 대목으로 본인은 다음 장면들을 꼽겠다.

  • 히브리 산파의 거짓말(출 1:17-20)과 라합의 거짓말(수 2)
  • 불의한 청지기 비유(눅 16)
  • 일한 시간과 무관하게 같은 보수를 받은 포도원 일꾼 비유(마 20)

상반된 진술이 동시에 나오는 부분으로는

  •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라 vs 대답하지 말라 (잠 26:4,5)
  • "하나님께 묻지 않고 의사들에게 구했더라"(대하 16:12) vs "네 위장을 위해 약 처방을 하라"(딤전 5:23)

이것 말고 예가 더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들은 문맥 분간을 잘하고 잘 "나눠야" 하는 대목들이다.

7.
성경에는 김대기스러운 '적절하게'가 바울 서신에서 두 번이나 나온다. (고전 6:12; 10:23)
그리고 성경에는 "A가 B와 대응하는데 하물며 C와 대응할 D는 어떻겠느냐?" 요런 비례식 논법이 신구약을 통틀어 즐겨 쓰인다 바울도 자주 사용했다. 대표적인 예는 "유대인들의 삽질과 실족만으로도 우리에게 이런 유익을 줬는데 하물며 쟤들이 잘되면 얼마나 복이 크겠는가?"(롬 11:12) 앞으로 성경을 읽을 때 요 표현을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8.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시 12:6)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함과 보존 약속에 대한 근거를 논할 때 KJV 신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구절이다. 순수함이 금속 가공에다 비유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인데, 여기서 은을 try하고 거듭 purify했다는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제련’일까 ‘재련’일까?
우리말에서 ㅐ와 ㅔ의 발음 구분이 문란해지면서 외래어 표기와(데미지/대미지?) 일부 고유어의 스펠링까지(결제/결재? 메다/매다?) 오락가락 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제련/재련도 대표적인 예이다.

답부터 말하자면 시 12:6이 말하는 작업은 ‘제련’이다. 제련은 원석을 용광로에 녹여서 금속을 뽑아 내는 일을 말한다. 석유로 치면 원유를 분별 증류하여 휘발유, 경유, 등유 따위를 얻는 일이다.
그 반면 재련은 일단 주성분이 결정된 쇠붙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또 시뻘겋게 달군 채로 두들기고 찬물에 확 담그는 작업을 말한다.

딱히 칼이나 낫 같은 물건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면, 일상적으로 제철소에서 하는 일, 특히 금속의 순도와 관계가 있는 일은 전부 ‘제련’이다. 재련의 용례는 거의 대부분이 제련의 잘못이다. 금속 냉병기를 아이템으로 다루는 국내 온라인 게임들은 이거 용어가 제대로 사용돼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시 12:6이 말하는 것처럼 제련도 반복 작업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닥치고 용광로에서 다 녹여 버리는 제련과는 달리, 재련은 정말 말 그대로 두들기고 달구고 식히는 등 마치 사우나를 하는 것 같은 ‘연단/단련’의 느낌이 더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련을 받은 뒤에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같은 구절에서는 재련을 연상하기가 더 쉽다.

그러나 여기서도 표현이 ‘강철같이 나오리라’가 아니라 ‘금같이 나오리라’이고, 불순물이 없는 pure gold/fine gold를 지향하는 것이므로 일단은 재련이 아니라 제련을 말하는 것이 맞다. 성경에는 용광로도 지옥뿐만이 아니라 고난이나 연단의 의미가 있다. (잠 17:3, 렘 11:4 등)

Posted by 사무엘

2015/10/21 08:24 2015/10/2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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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차원 적분

※ 이 글의 내용은 예전에 썼던 <확률과 조합에서 발견한 자연대수 e>와 <원에 대한 적분 외>의 연장선상에 있다.

1차원 선에서 0부터 1까지의 선분의 길이는 두 말할 나위 없이 1이다.
2차원 공간에서 원점, (1,0), (0,1)을 지나는 이등변삼각형의 넓이는 1의 절반인 1/2이다.
이를 더 확장해서 3차원 공간에서 원점과 (1,0,0), (0,1,0), (0,0,1)을 꼭지점으로 갖는 사면체의 부피는 1/6이다.
이를 일반화해서 n차원 적분을 생각해 보면, 차원이 하나 올라갈 때마다 n차원 축을 한 칸씩만 점유하는 초입방체의 부피는 1/(n!)로 팩토리얼의 역수가 되고,  전체 초면체와의 비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한다는 걸 알 수 있다. x^n의 부정적분은 (x^(n+1)) / (n+1) + C이다.

한편, 한 변의 길이가 2인 정사각형의 넓이는 4이고, 그 안에 들어가는 반지름이 1인 원의 넓이는 잘 알다시피 pi이다. 원과 사각형의 넓의 비는 pi/4, 즉 78.5% 정도 된다.
이를 공간으로 확장하면 한 변의 길이가 2인 정육면체의 부피는 8이고, 그 안에 들어가는 반지름이 1인 구의 부피는 4*pi/3이다. 구와 정육면체의 부피 비율은 pi/6 (약 52.3%)으로, 넓이일 때보다 비율이 더 작아진다. 이 비율 역시 차원이 증가할수록 더욱 작아진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럼 혹시 4차원, 5차원, n차원 초구의 부피를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몰론 있다.
원의 방정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f(x) = sqrt( r^2 - x^2 ) 라는 함수를 먼저 정의하자. 얘는 x가 0에서 r로 갈 때 임의의 구간에서 원의 높이를 나타내는, 즉 '둥긂'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함수이니까 말이다.

반지름이 r인 원의 넓이는 잘 알다시피 int( 2*f(x), x=-r..r) 로 나타내어지며 pi*r^2이라는 유명한 공식이 나온다.

그럼 반지름이 r인 구의 부피는 pi*r^2에서 r 대신 f(x)를 다시 집어넣어서 적분을 하면 된다.
int(pi*f(x)^2, x=-r..r) 가 (4/3)*pi*r^3이 된다.

4차원부터도 동일한 방식으로 적분을 계속하면 된다. 수많은 구들이 4차원에 있는 원 표면의 높이 변화량만치 연속적으로 쌓여 있는 것이므로.. 저 r 대신에 또 f(x)를 집어넣으면
int(4*pi*f(x)^3/3, x=-r..r) 은 드디어 파이까지도 제곱이 되어 4차원 초구의 부피는 (1/2)* pi^2 * r^4가 나온다. 한 변의 길이가 2인 4차원 초정육면체와의 부피 비율은 약 30.8%대로 곤두박질친다.

5차원 초구는? int( pi^2 * f(x)^4 / 2, x=-r..r)의 결과는 (8/15) * pi^2 * r^5 (약 16.4%)
6차원 초구는 pi^3 * r^6 / 6 (약 8%)가 된다. 사면체의 부피만큼이나 이것도 비율이 갈수록 곤두박질친다.
요렇게 비율이 한데 수렴하고 특히 짝수차일 때와 홀수차일 때 번갈아가며 무슨 특성이 발견되는 건 리만 제타 함수의 값하고도 비슷해 보인다. 게다가 리만 제타 함수도 n이 짝수일 때는 나름 pi^n의 유리수배가 되기도 하니, 반지름 길이가 1인 n차원 초구의 부피하고도 비록 수학적 의미는 딴판일지언정 좀 비슷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수학 전공자 중에는 위의 적분들을 직접 손으로 푸는 용자도 있다. 그나마 짝수 승일 때는 루트가 없어지기 때문에 계산이 더 쉬워지는 편. 난 차마 손으로 풀어 볼 시간이나 자신은 없어서 그냥 수학 패키지를 돌려서 답을 구했다.
딱 보면 알겠지만 식에는 규칙성이 있다. 홀수승일 때와 짝수승일 때를 따로 생각해서 각각 차수가 2씩 증가할 때마다 pi에 붙는 제곱도 1씩 증가하고 계수는 2/n씩 증가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짝수승일 때는 1/2 (4차원), 1/24 (6차원)처럼 상수 계수가 1/n!으로 깔끔하게 증가하는 반면, 홀수승일 때는 계수가 좀 복잡하게 올라간다.

울트라 초천재가 아니고서야 4차원이 넘어가는 초구의 존재를 인간의 머리로 제대로 상상하고 실감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넘사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눈과 귀로 직감할 수 없는 차원이라는 게 신앙의 영역에 있다면, 이해가 안 되더라도 말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학은 그런 게 아니라 고도의 논리와 이성의 영역에 있다.

아쉬운 대로 고차원 공간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방법은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이다. 다음 코드는 n차원 공간을 -1부터 1까지 점을 순서대로 마구 찍은 뒤, 원점으로부터 거리가 1 이내인 점의 개수를 세서 부피 비율을 구한다. 깔끔한 재귀호출 대신 사용자 정의 스택으로 구현했다.

double GetVolume(int dim, double delta)
{
    double buf[8], vl; int pos=0, i;
    double initv=-1.0-delta;
    __int64 x=0,y=0; buf[0]=initv;
    while(pos>=0) {
        if(pos==dim) {
            for(vl=0, i=0; i<dim; i++) {
                vl+=buf[i]*buf[i]; if(vl>1.0) break;
            }
            if(i==dim) ++x; ++y; --pos; //1 이내에 들면.
        }
        else {
            buf[pos+1]=initv;
            if( (buf[pos]+=delta) > 1.0) --pos; else pos++;
        }
    }
    return (double)x/y;
}

그래서 이렇게 찍으면 결과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printf("%f\n", GetVolume(2, 0.01)); //0.785075
printf("%f\n", GetVolume(3, 0.01)); //0.523467
printf("%f\n", GetVolume(4, 0.03)); //0.302340
printf("%f\n", GetVolume(5, 0.05)); //0.164649

처음엔 -1부터 1까지 0.01씩 움직이니까 200등분을 했지만 4차원과 5차원으로 갈수록 66등분, 40등분으로 간격을 늘린 이유는.. 당연히 4승, 5승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계산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2차원과 3차원은 값이 상당히 정확히 나온 반면, 4차원과 5차원은 오차가 좀 큰 편이다.
그래도 계산이 워낙 단순무식하고 간단하므로 OpenMP 지시자를 집어넣거나 직접 손으로 코드 차원에서 스레드를 강제 분배하든가 해서 멀티코어+병렬화 최적화로 계산 속도를 몇 배 정도 끌어올릴 여지는 존재한다.

사실은 4차원 이상으로 갈 필요도 없이, 3차원 공간에 구가 여러 개 포개어져 있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학교 수학 시간에 집합 사이의 bool 관계를 구하는 문제에서 집합의 개수는 3개를 넘어간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2차원 평면에서 집합들의 모든 소속 가짓수를 벤 다이어그램으로 그릴 수 있는 한계가 3개이고 2^3, 총 8가지 가짓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3차원 공간에서 구를 4개 포개어서 입체 벤 다이어그램을 그리면 16가지 가능성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구 3개가 8가지 가짓수를 만들고, 거기에 위에다 4개의 구를 적당히 겹쳐 놓으면 8개에다가 넷째 구와 겹치는 놈 8가지가 또 추가되어서 16개가 되니까 말이다. 이 역시 코드로 작성해서 무식하게 확인하면 다음과 같다.

struct SPHERE { double x,y,z; };
const SPHERE fp[4]={
    {0,0,0},
    {0.4,0,0},
    {0.2,0.4,0},
    {0.2,0.2,1.5}
};
auto Square = [](double x) { return x*x; };
SPHERE d;
bool bitfl[16]={false,};
for(d.x=-1; d.x<=1.5; d.x+=0.02)
    for(d.y=-1; d.y<=1.5; d.y+=0.02)
        for(d.z=-1; d.z<=1.5; d.z+=0.02) {
            int bt=0;
            for(int i=0; i<4; i++)
                if( Square(fp[i].x-d.x)+Square(fp[i].y-d.y)+Square(fp[i].z-d.z) <=1) bt|=(1<<i);
            bitfl[bt] = true;
        }
for each(int n in bitfl)
    printf("%d ", n);

반지름은 모두 1이고, (0,0,0), (0.4,0,0), (0.2,0.4,0), (0.2,0.2,1.5)인 4개의 구를 설정한다. 그리고 -1부터 1.5까지 0.02 간격으로 뺑뺑이를 돌려서.. 각 점별로 자기가 속하는 구의 번호에 해당하는 2진수 비트들(8+4+2+1)의 합을 구한다. 그 뒤 그 합에 해당하는 플래그를 켠다.

나중에 플래그의 값을 출력해 보면 모든 비트들이 1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어느 구에도 속하지 않은 놈, 모든 구에 속한 놈, 1, 3, 4번 구에만 속한 놈, 2, 3번 구에만 속한 놈 등등 16가지 가능성이 실제로 모두 존재한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이다. 그 반면 구가 5개를 넘어가면 그 32, 64가지 가능성을 한꺼번에 3차원에서 표현할 수는 없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지름이 수십~수백 정도에 달하는 충분히 큰 구의 복셀의 표면을 보는 느낌은 어떨까 문득 궁금해진다.
수학 패키지 소프트웨어들은 3차원 음함수의 그래프를 아무래도 폴리곤+와이어프레임 형태로 근사해서 보여 줄 것이다. 하지만 곡선/곡면을 폴리곤이 아니라 아예 계단현상을 볼 수 있는 복셀로 근사해서 보면 또 느낌이 굉장히 이색적일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표면에는 역시나 원들 무늬가 그러져 있구나!
앞서 보다시피 5차원~6차원 이상으로 가면 단순무식하게 점을 때려박는 것도 계산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이럴 때 정확한 초구의 부피를 구할 수 있는 건 역시나 수학 해석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분 내지 역함수인 부정적분을 할 때 변수의 차수와 계수가 왜 저렇게 변하는지는 다항함수의 차이 극한값을 구해 보면 알 수 있다. 극한부터 시작해서 미분· 적분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낸 건 정말 위대한 발견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5/10/15 08:39 2015/10/1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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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초의 인공위성

세계에서 최초로 발사된 인공위성은 잘 알다시피 1957년 10월에 구소련이 발사한 스푸트니크 1호이다. 얘는 배터리를 이용해서 기계가 약 3주 동안 동작했으며, 약 3개월 동안 지구 궤도를 돌다가 슬슬 힘이 다하면서 지구 궤도로 떨어지고 불타 없어졌다.

그 뒤 이에 자극 받은 미국은 몇 차례 실패를 한 끝에 1958년 3월에 뱅가드 1호라는 인공위성을 간신히 띄웠다. 얘는 시기적으로 2등 콩라인에 머물렀고 당시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처럼 생명체를 태우는 실험도 못 했지만, 그래도 기술적으로 굉장한 진보를 이룬 게 있었다.

먼저, 당시로서는 굉장한 첨단 기술이던 태양 전지를 도입해서 현지에서도 전력을 공급함으로써 기계의 수명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무려 3개월간을 지상과 교신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이야 인공위성이라 하면 커다란 직사각형 집광판이 달린 모습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그게 처음부터 관행이었던 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점은.. 얘는 궤도 진입과 관리를 어떻게 고퀄로 했는지, 발사로부터 6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지구를 돌고 있다고 한다.
물론 교신이 끊어지고 아무 동작도 못 하는 고철덩어리 우주쓰레기 신세이지만, 참 가늘고 길게 가고 있다. 앞으로 최하 200년 이상은 더 그렇게 돌 수 있다고 한다.

보이저 1호/2호가 아직도 지구와 교신이 되는 것만큼이나 참 신기한 일이다. 물론 외행성 탐사선이야 태양 전지가 전혀 쓸모가 없으니 원자력 전지를 사용한다.
미국이 처음에 인공위성을 띄우느라 삽질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나로 호 생각도 난다. 단지 차이는 미국은 한국보다 그걸 50년쯤 전에 먼저 했다는 것뿐이다. 마이카 시대도 한국보다 50년 이상 전부터 시작됐고.

2. 화약의 위력

1605년 영국의 화약 음모 사건 때 지하실에 몰래 비축된 흑색화약의 양은 문헌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드럼통 30여 개 분량이었다고 한다. 화약 전체의 무게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1.x ~ 2톤을 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들 흑색화약의 TNT 대비 위력계수는 0.55 정도로 알려져 있으므로 가이 포크스가 준비한 화약의 위력은 오늘날로 치면 TNT 1톤이 약간 안 되는 정도였으리라 추정된다.

물론 그건 음모가 성공했을 경우 의회 건물을 몽땅 박살 내고 잉글랜드 수뇌부들을 모두 날려버리고도 남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영국에서는 가이 포크스가 잡힌 날을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의 부림절처럼 기념하고 있고, 그때 화약의 위력이 어땠을지를 시뮬레이션하고 분석해서 역사 교양 다큐멘터리로 방영하곤 했다. 자기네 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그 뒤.. 1995년 4월의 미국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때 가해자들이 트럭으로 운반해 터뜨린 폭발물은 TNT 약 2.3톤급의 위력이었다. 고층 건물이 1/3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으며 유리창은 모조리 박살 나서 수류탄 파편으로 변했고, 주변의 자동차들이 터지면서 2차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이 운용하고 있는 가장 큰 재래식 폭탄 MOAB은 자기 무게는 약 11톤이고 실제 위력은 TNT 약 13톤급이다. TNT보다 더 위력이 강한 폭약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 참고로 1톤 정도의 무게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전복된 승용차를 낑낑대며 들어올려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래식 폭탄이 아니라 핵무기로 가면 폭발력 수치의 뒤에 0이 몇 개 더 추가된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리틀 보이' 원자폭탄이 TNT 16,000톤급의 위력으로 분류된다. 참고로 나중에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 맨'은 위력이 더 업그레이드 되어 22,000톤 정도. 쉽게 말해 수십 킬로톤이다.
'리틀 보이'의 실제 무게는 약 4670kg 남짓으로, 5톤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폭발력이 나온다는 건 핵무기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캐사기적인 비대칭 무기인지를 짐작케 한다.

1961년에 구소련이 개발하여 터뜨린 '차르 봄바'라는 초대형 수소 폭탄은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한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폭탄 자체의 무게는 27톤이고 위력은 킬로급을 넘어서 50~58 메가톤 정도로 집계되었다. '메가'는 10의 6승이다. 핵무기로 가면 화약 음모 사건이니 MOAB 폭탄 같은 건 그냥 잊어버려야 된다.

옛날에 메가쑈킹 작가가 남긴 주옥같은 명대사 중에 "꽃피는 봄이 오니 메가톤급 외로움이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오는구나."가 있었는데.. 외로움이 메가톤급이나 되면 사람은 멘탈붕괴를 감당치 못해 머리를 쥐어뜯고 뒹굴다 자살하고 난리가 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외로움은 겨우 텍사스 소떼의 stampede 수준의 bandwidth와 throughput으로는 전송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과장을 해도 실제 수치가 뭔지는 알고 과장해야 하리라 여겨진다.

3. 마력과 토크

자동차의 엔진 성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두 잣대는 일명 마력이라고 불리는 출력과, 그리고 토크이다.
물리학적으로 따져 보면 출력은 일률(단위 시간당 일을 하는 양) 단위인지라 차의 속도와 관계가 있으며, 토크는 rpm별로 이때 엔진이 내는 회전력을 나타내는 힘의 단위이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회전축의 길이가 명시돼 있으니 일의 단위이긴 하지만 그래도 거리는 고정돼 있고 kgf의 값만 측정하니 힘의 단위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엔진의 토크는 최대 토크가 나오는 rpm을 지난 뒤부터는 감소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 출력이 나오는 rpm은 최대 토크가 나오는 rpm보다 더 큰 데서 나온 뒤, 그 이후부터 감소한다. 최대 출력 함수는 최대 토크 함수를 rpm 변수에 대해 적분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건 하루 중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은 때(정오 무렵)와 하루 중 가장 더울 때(오후 2~3시쯤)가 살짝 차이가 나는 이유와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태양의 고도는 토크이고 그래서 열이 축적돼서 더운 것은 출력에 대응하니까.

그리고 자동차 엔진의 출력은 사람의 심폐 기능에다가도 비유할 수 있다. 이건 체력, 특히 지구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마라톤 선수처럼 심장과 폐가 워낙 발달한 사람은 평상시에 분당 맥박이 겨우 4~50회만으로도 감당이 된다고 한다. 저회전에서 토크가 굉장히 높은 디젤 엔진과 구조적으로 다를 바 없다.

4. 디스크와 드럼

자동차와 컴퓨터. 서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기계에서 그래도 '디스크'와 '드럼'이라는 용어를 공통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하다. 잘 알다시피 이게 자동차에서는 브레이크를 구현하는 방식이고, 컴퓨터에서는 메모리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둘 모두 '드럼'은 거의 퇴출되고 '디스크'가 주류가 돼 있는 것도 비슷하다.

자기 드럼은 뭔가 하드디스크처럼 생기긴 했지만 크기가 더 크고 속도와 신뢰성이 우수했다(특히 자기 '테이프'보다야..). 반쯤은 RAM처럼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크기에 비해 기억 용량이 너무 적고 비싸서 196, 70년대 이후로는 증기 기관차가 퇴출되듯이 퇴출됐다. 오늘날의 하드디스크는 플로피 디스크와 마찬가지로 드럼이 아니라 '자기 디스크'의 일종이다.

자동차에서도 옛날에는 앞바퀴는 디스크 브레이크, 뒷바퀴는 드럼 브레이크 이랬던 것 같은데 요즘은 냉각이 더 유리한 디스크 브레이크가 모든 바퀴에서 대세이다. 드럼 브레이크는 버스· 트럭 같은 대형차(외부 오염에 더 강해서) 아니면 완전 반대로 경차에서나(생산 원가가 더 저렴해서) 볼 수 있다.
타이어의 휠 안쪽에 뭔가 반들반들하게 광택이 나는 커다란 금속 원판이 달려 있는 건 디스크 브레이크이고, 반대로 좀 꽹과리처럼 생긴 원형 금속 캡슐이 달려 있는 게 드럼 브레이크이다.

5. 화장실의 남녀 구분

화장실의 남녀 구분 여부는 마치 도로에서 중앙선의 존재 여부와 비슷해 보인다.
통행량이 많은 큰길엔 반드시 중앙선이 존재하지만 그냥 좁은 골목 샛길에는 통행 구분이 딱히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일방통행도 있다. 그것처럼 가정집 안의 화장실이나 비행기처럼 비좁은 교통수단의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없다. 그러나 대규모 공공장소 안의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있다.

남녀 구분이 있는 화장실의 경우, 사람들은 한 성별의 화장실을 발견하면 다른 성별의 화장실도 분명 근처에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어떤 건물은 남녀 화장실이 건물의 한쪽 끝과 다른 한쪽 끝으로 멀리 떨어진 경우가 있는데, 이건 본인이 보기에 심리적으로 좋은 디자인이 아닌 것 같다. 화장실을 찾긴 했는데 이성의 화장실이고 내가 갈 수 있는 화장실이 발견될 기미가 안 보이면... 아예 화장실이 전혀 안 보이는 것보다 실망과 박탈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으로 치면 반대편 승강장 횡단을 할 수 없는 역과 비슷하며, 운전에다 비유하면 길을 발견하긴 했는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갈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 (일방통행 내지 좌회전 불가 같은)

여느 시끄러운 음악이나 기계음과는 달리, 전화 통화 소리가 주변 사람에게 더욱 불쾌감을 유발하는 소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전화 통화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인데 대화가 전부 들리는 게 아니라 반쪽짜리만 들려서 문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반쪽짜리'를 사람들이 더욱 싫어하는 예는 이런 식으로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똑같이 목이 말라도 사막에서 목이 마른 것과 망망대해 바다 한가운데서 목이 마른 것의 차이랄까..?

그리고 화장실 얘기가 나왔으니 다른 얘기를 또 하나 덧붙이자면...
공공장소의 화장실에서 휴지는 그냥 (1) 변기에다 버릴지 아니면 반드시 따로 (2) 휴지통에다 버릴지에 대한 지침이 예상 외로 케바케이고 뒤죽박죽이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지는 모르겠다. 마치 높임법에서 압존법이 (1) 써라(과장이 사장보다 더 높냐?) 또는 (2) 쓰지 마라(과장이 니 친구냐?)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걸 보는 듯하다.

6. 기타 메모

"나비: 나방"은 음악으로 치면 마치 음악에서 "장조: 단조"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인텔 80186 CPU와 코레일 8100호대 전기 기관차: 뭔가 (1) 숫자 형태가 비슷하고, (2) 후속 버전에 밀려 존재감 없이 싹 묻힌 물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엄지손톱 모양의 그 색 프리즘(CIE-1931 색 공간)하고, 모음 삼각도를 나타낸 포먼트 그래프가 뭔가 비슷한 점이 있어 보인다. 흰색에 속하는 (1/3, 1/3) 지점은 모음 삼각도로 치면 제일 만만한 중간 모음인 schwa 정도에 대응하려나?

컴퓨터에 화면이 너무 작아서 여러 브라우저/문서 창을 alt+tab 눌러 가며 전환해야 하는 건 작업 생산성 면에서 좋지 않다.
이것은 컴퓨터 내부로 치면 메모리가 너무 부족해서 자꾸 디스크 페이징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게 늘어나면 컴퓨터의 성능은 급격히 곤두박질친다.
자동차는 최대한 부드럽게 가감속을 하고 최대한 관성에 의지하고 엔진 배기량에 맞는 경제 속도로 달릴수록 연비와 가성비가 킹왕짱이 되는 반면, 길이 막혀서 가고 서기를 반복할수록 연비는 거의 저것만치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공회전은 말할 것도 없고, 정지 상태에 있던 차가 처음 움직일 때가 연비가 제일 쥐약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육군에는 '육군 과학화 전투 훈련단'(KCTC)라는 이색적인 부대가 있다. 여기 군인들은 전투력 고취를 위해 원정 훈련을 오는 다른 육군 부대들을 상대로 위장까지 하고서 가상의 북한군 역할을 한다. 특수부대 급으로 훈련을 굉장히 혹독하게 받고 홈그라운드인 훈련장 지리에도 능통하기 때문에 얘네들을 격퇴하는 부대가 별로 없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싸움은 실탄이 아니라 정교하게 피격 판정을 해 주는 레이저 총 + 공포탄으로 한다. 예비군 페인트탄 같은 유치한 분위기는 아님.
이름하여 '전문대항군'인데, 이걸 읽으니까 쟤들은 버추어 파이터로 치면 듀랄 같은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이나 연료는 인체나 기계 내부에서 동일 질량 다른 물질로 화학적으로 변하는 것일 뿐이고 그 변하는 과정에서 힘이 발생한다. 물질 자체가 소멸하고 질량이 그대로 에너지로 바뀌는 것 아님. 쉽게 말해 넣은 연료의 무게와 동일한 무게의 배기가스가 나온다는 뜻이다.
또한, 소리는 진동이지 이동이 아니다. 이동이면 그건 바람이지 소리가 아니다. 물론 이동 과정에서도 진동이 있을 수 있으니 바람 소리도 들리는 것이다.

일사병(땡볕이 중심)과 열사병(고온 다습이 중심), 삭제(유출을 막음)와 암호화(유출되더라도 뭔 말인지 모르게), 불법체류(합법 입국 후 배째라)와 밀입국(애초에 입국 자체를..) 등 비슷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 참 많은 것 같다.
힘(찰나)과 일(힘의 축적), 열과 온도(공기 80도와 물 80도의 차이는?), 질량(??)과 무게(질량으로 인해 생긴 힘) 등.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면 직관만으로는 제대로 구분하기 힘든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원리를 알 수 있어서 좋다.

Posted by 사무엘

2015/10/12 08:24 2015/10/1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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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물건들 추억

1. 특수한 그리기 도구(?)

오래 전에 아이패드를 보고는 문득 이런 물건 생각이 났다.
저렇게 태블릿과 비슷하게 생긴 판때기 모양의 장난감이었는데, 전기를 쓰지는 않고 안에 가루 같은 게 꽉 차 있었다. 그리고 그 표면에다 펜으로 뭘 그리면 그림이 그려졌다. 흔들거나 다른 특수한 방법으로 내용을 다 지우고 화면을 초기화할 수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내부의 가루 상태를 이용해서 단색 그림을 그리는 패드가 있었는데 이 이상 더 자세한 정보가 남아 있질 않고 인터넷으로 더 검색도 할 수 없다. 이런 거 기억하시는 분의 제보를 기다린다.

2. 카세트 테이프의 주행

지금이야 음악 감상은 컴퓨터의 디지털 기술 기반으로 완전히 바뀌었지만 옛날에는 카세트 테이프라는 게 시대를 풍미하는 음성 매체였다.
카세트 테이프에는 주행용 구멍이랄까 회전축이랄까 그게 두 개가 있다. 재생을 하면 두 구멍 중 오른쪽에 있는 것 하나만 돌아간다. 되감기를 하면 왼쪽 것이 돌아가고. 즉, 한쪽의 동력이 다른 한쪽으로도 전해지는 형태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난 테이프를 재생하는 중에 두 구멍의 회전 속도가 왜 서로 차이가 나는지가 어릴 때부터 굉장히 궁금했다.
갓 재생을 시작해서 테이프들이 아직 왼쪽에 몰려 있을 때는 왼쪽 구멍의 회전이 느리고 오른쪽 구멍의 회전이 빨랐다.
그러나 한 편을 다 들어서 테이프가 오른쪽에 몰려서 오른쪽이 거대해지고 나면, 반대로 왼쪽은 빨리 돌아가고 오른쪽은 느려졌다.

지금 그 모양을 다시 생각해 보니 카세트 테이프는 직경이 다른 두 톱니바퀴의 회전으로 인한 변속이라는 개념을 설명해 주는 좋은 예였다. (테이프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감기면서 양 구멍의 직경이 서로 달라지므로..)
아니, 더 나아가 테이프는 톱니라기보다는 벨트에 더 가까운 형태이니, CVT 무단변속기를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카세트 테이프 재생기가 있으면 주행 과정에서 양 구멍/바퀴의 변속비가 얼마까지 달라지는지를 더 눈여겨보고 싶다.

3. 노래방 기계 글꼴

요즘 노래방을 가 보면 옛날에 비해 가사의 글꼴이 더 새끈한 걸로 바뀐 것만 봐도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개인적으로 딱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노래방 가사 자막용으로 쓰인 서체는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아래아한글 40*40 비트맵 명조를 떠올리게 하는 구닥다리 비트맵 명조체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에 아래아한글 1.x로 조판된 듯한 옛 영진 출판사 책들을 보는 느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다가 이 명조체를 대체한 것은 큐닉스 서체인 가을체와 으뜸체 정도. 노래방 기계에서는 요 둘이 굉장히 많이 쓰인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중에는 노래방에서도 서울남산이나 나눔(바른)고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 옛날 키보드

한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그러게, 한 30년 전쯤의 구닥다리 컴퓨터들은 키보드의 구성이 지금과는 살짝 달랐다. 미국 원판은 84키이고 한국에서는 한영/한자가 추가돼서 86키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난 초딩 시절에 컴퓨터 학원에서 이 구식 키보드를 본 기억이 있다. 지금 키보드와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 일단 F1~F10 기능키는 왼쪽에 2열 종대로 늘어서 있고 F11과 F12는 존재하지 않는다.
  • 문자 키와 키패드 사이에 여분의 화살표 내지 키패드 기능 키들(pg dn/up, home, end, insert, del)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Num lock이 켜져 있는 동안은 키패드 기능 키들을 사용할 수 없다.
  • Ctrl은 지금 Caps lock이 있는 곳에 있다. 그 대신 Caps lock은 우측 하단에 있다. (그래 그랬다, 완전 추억 쩐다!)
  • ESC가 지금의 Num lock 자리에 있다.
  • 키패드에는 +가 지금의 엔터 자리에 있다. 그리고 / 는 키패드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지금 키보드의 전신인 101키 키보드가 나오고, 국내에서는 역시 한영/한자가 추가돼서 103키가 되었다. Windows 95부터는 Win키가 그것도 좌우에 하나씩 2개나 추가되고, 또 컨텍스트 메뉴키가 더해져서 10키가 되었고, 이것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나저나 키보드의 연결 단자 자체도 DIN 내지 AT 단자부터 시작했다가 PS/2 단자를 거쳐 지금은 USB가 대세가 됐으니 이것도 격세지감이다.

저런 '정식 키보드'는 규격이 전부 통일되어 있는 반면, 기계마다 살짝 차이가 있어서 혼동을 주는 건 노트북 컴퓨터 키보드에서 키패드의 기능키들이 배당된 방식들이다. 특히 pg up/dn이나 home/end 같은 것.
그리고 노트북은 부족한 키의 기능을 보충하려다 보니 자체적인 fn 키도 있는데.. 일반 노트북의 경우 좌측 하단에 Ctrl fn win alt의 순으로 키가 있었던 반면, 맥북은 fn ctrl alt win으로 순서가 미묘하게 바뀌어 있어서 이것도 적응이 몹시 힘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5/10/09 08:34 2015/10/0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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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순교자 기념관 이야기 계속..)
유명한 순교자 중에 손 양원 목사는 신사 참배 거부로 인한 투옥(일제)에다 빨갱이들에 의한 순교라는 박해와 순교 2관왕을 달성했다. 게다가 그는 자기 아들을 죽인 폭도를 양자로 입양했으며, 미국으로 유학 보내려던 친아들에 대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보내 주신 것을 감사, 이 미천한 가문에서 감히 순교자가 배출하게 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 이렇게 간증했던 정말 넘사벽급의 크리스천이었다.

저분 말고도 몰년이 1950년 가을/겨울인 분들이 너무 많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 원 성덕 목사: 공산 치하의 의주 영산 교회를 시무하던 1950년 12월, 공산군에게 연행되어 살해당했다.
  • 이 창현 영수(領袖. 장로교의 직분 이름): 1950년 11월 18일 공산군에게 체포. 평원리 뒷산에서 "죽어도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다"라는 신앙 고백과 동시에 총살 당하고 구덩이에 매장됨.

북괴 공산 빨갱이 집단의 만행을 잊지 말아야겠다. 빨갱이의 만행을 용서하는 것과, 빨갱이를 빨갱이라고 인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여기는 반공 정신 함양을 위해서도 방문할 가치가 있는 좋은 곳이었다.
기념관의 밖에도 야외 예배 공간과 산책로가 있는지라, 반쯤은 기독교 수양관이나 기도원 같은 분위기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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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갖다 놓고는 "나도 순교자가 될 수 있다???" 엥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ㅜㅜㅜ 그런데 비록 대한민국이 지금 신앙의 자유가 마음껏 보장된 고마운 나라라고 해도, 이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볼 때 마냥 웃을 일은 아니다.

첫째, 우리는 비록 옛날처럼 성경을 대놓고 불태우거나 성경 소지자를 국가에서 나서서 죽이는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경이 변개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자꾸 그 믿음을 고집하면 죽는다"라는 위협은 없지만, "그 고집을 조금만 꺾으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벌고 인생이 참 편해질 텐데?" 같은 유혹은 곳곳에 상존해 있다. 옛날에는 가야 할 길이 참 물리적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이었겠지만, 지금은 가야 할 길이 뭔지조차 엄청 혼란스러워지고 전투 양상이 교묘해져 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좁은 길을 가고 진리를 수호하고 살면, 그게 곧 사육신에 준하는 생육신이 될 수 있다. "죽기까지 신실하라"(계 2:10)라는 말은 정말 피할 수 없는 경우 죽음까지 불사할 정도로 신실하라는 말이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100% 죽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실제로 죽이지는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둘째로..
아직까지는 매우 극단적이고 비관적인 상상으로 비쳐질지 모르나, 대한민국 땅이라 해도 가까운 미래에 그야말로 물리적인 박해가 시작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전세계적인 반성경 반기독교 감정이 횡행한다면 다른 모든 정치 집회나 폭력 시위는 허용되면서 공개적인 거리 설교나 선교 행위만은 금지될 것이다. 동성애가 죄라고 공석에서 말하는 게 금지되고, 이걸 어기면 잡혀 가고 전과자가 되고 재산을 몰수당하고 공직에서 쫓겨날지 모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진보의 탈을 쓴 안티 대한민국 종북 성향의 흉악한 정치인· 국회의원· 법조인이 권력을 장악한다면, 저런 날이 훨씬 더 빨리 찾아오게 될 것이다.

비록 신약 크리스천들은 적그리스도 통치와 엄청난 자연 재해를 직접 경험하는 대환란까지는 겪지 않고 그 전에 휴거되겠지만, 대환란의 전이라 해도 어느 정도까지 세상이 맛이 가는 걸 보고 휴거될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세상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직전까지 절~대로 성경 친화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니 영적으로 정신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 이것만 생각해도 끔찍한데 아예 교회가 대환란을 직접 겪는다는 말은 꿈에서도 생각하기 싫다.

...
자, 이렇게 경건한 곳을 들른 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용인에 있는 삼성화재 교통 박물관이었다. 마침 이 타이밍에 맞춰서 흐리던 날씨도 아주 맑아진지라, 분위기 전환용으로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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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는 백 남준의 작품이라는데 흰색 칠을 씌운 옛날 자동차들이 쭉 세워져 있었다.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건 마치 패션 유행처럼 변해 온 것 같다. 마차와 별 차이 없던 빈약하던 시절, 저렇게 동글동글 두툼하던 시절 등등~ 나도 차 모양만 보고는 이건 대략 몇 년대 디자인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스페어 타이어도 한때는 차 뒤에 있다가 나중엔 측면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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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교통 박물관인데 이 물건이 없어서는 곤란하겠지. 1886년에 벤츠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4행정 휘발유 엔진 자동차이다. 오늘날의 어지간한 경차에 맞먹는 984cc 배기량으로 엔진 출력은 겨우 1마력이 채 되지 않았다.
컴퓨터 회로의 집적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자동차 엔진도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엄청나게 발전해 왔다. 그런데 전자식 컴퓨터의 역사는 아직 100년이 채 안 됐다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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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실물 전시는 자동차 위주이고, 거기에 철도와 선박 이야기가 약간 겉절이로 낀 정도였다. 비행기는 딱히 소개가 없고 야외에 옛날 소형 프로펠러기 두 대가 전시된 게 전부이다.
철도에 대해서는 증기, 디젤, 전기 기관차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옛날 열차 승차권 컬렉션도 있었는데.. 이런 물건만 전문적으로 구경하려면 의왕에 있는 철도 박물관을 가는 게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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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언어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자동차인 '시발'. 미군 지프 부품을 이용해서 최초로 한반도에서 밑바닥부터 '생산'된 자동차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옛날엔 삼륜차가 있어서 지금의 다마스· 라보 같은 생계형 용달차 역할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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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름 아주 어렸을 때(초딩~) 포니 2 말고 포니 1이 돌아다니는 걸 아주 가끔 본 적도 있는데.. 실물을 얼마 만에 다시 보는지 모르겠다. 반가워서 사진을 두 장 찍었다. 포니는 알다시피 우리나라에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올드카가 전시된 건 포니, 시발, 코로나, 기아 삼륜차 정도가 전부였다. 여기가 무슨 <금호상사>처럼 올드카 전문 전시관은 아니니까. 그래도 브리사나 봉고를 보지 못한 건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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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풍미했던 영국과 미국의 대형 고급 승용차가 전시되어 있다. 롤스로이스 팬텀(검정)이야 유명하고, 캐딜락 엘도라도는 미국식의 각진 디자인이 참 인상적이다. 자기네 본토가 독보적으로 땅 넓고 자원 풍부하고 내수 수요도 많다 보니, 차를 엄청 크게 만들곤 했다.

딴 얘기이다만, 역사상 최초로 전륜구동 승용차를 만든 곳은 프랑스의 시트로엥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복잡한 엔진 부품에 끼여 있고 조향 역할도 하는 앞바퀴에다가 구동축까지 집어넣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 포니는 현실적으로 만들기가 더 쉬운 후륜구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포니 택시를 탔을 때 뒷좌석의 중앙 하부를 관통하던 커다란 구동축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나 전륜구동이 개발되면서 중소형 승용차는 효율이 더 좋아지고 뒷좌석 공간도 더 확보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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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 전시된 '혀기형 증기 기관차'.
얘는 수인선과 수려선에 투입될 목적으로 생산된 협궤용 증기 기관차이다. 아까 보고 온 그 오천 역 일대를 실제로 지나며 달렸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두 개념이 이렇게 서로 연결이 된다. 이 증기 기관차는 디젤 동차의 등장과 함께 퇴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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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바깥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어서 돗자리 깔고 텐트 치고 놀거나 쉴 수 있었다. 가족 단위로 애들을 데리고 오기도 좋고, 학교에서 단체 관광을 오더라도 끄떡없을 듯했다.
그런데 토요일에 이렇게 날씨가 좋으면 이런 박물관보다는 근처의 에버랜드가 사람들로 터져 나갔을 것 같다. ^^

이상으로 이천· 용인 테마 여행을 아주 즐겁게 마쳤다.
여기 말고도 우리나라의 서쪽 끝, 남쪽 끝, 동쪽 끝, 중부 등 몇 군데 가 보려고 찜해 둔 곳이 있다.
거기도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주요 기능 개발이 끝나고 박사 과정도 연구 학기로 들어갔을 때쯤 1년에 한 번씩 가 볼 생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10/06 19:23 2015/10/0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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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작년 5월에 철원에 성공적으로 다녀 온 것에 고무되어 이번에는 토요일 개천절에 경기도로 테마 여행을 떠났다.
날씨는 한창 맑고 좋고, 학교는 입시생들 논술고사 때문에 폐쇄이고, 공휴일이라 교회 신학원도 안 하니 이런 날은 잠시 짬을 내어 어디 갔다 올 가치가 충분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2가 아직 갈 길이 멀며 회사일과 학교 과제가 날 압박해 오고 있지만, 일단은 잠시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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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를 한 직후에 고속도로를 좀 뛰었더니, 역시나 시내 구간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엄청난 연비가 나왔다.
사람에게 힘든 건 기계에도 동일하게 힘든 법. 경제 속도 + 최대한 관성으로 쭉쭉 달려 주는 게 답이다.
(주유를 하고 나면 차내 컴퓨터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던 연비 정보가 싹 없어지고 초기화된다.)

그리고 아침 일찍 중부 고속도로를 타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바로..
옛 수려선에 있던 오천 역 건물이었다. 이것은 현재까지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협궤 철도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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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선(수원-여주)은 일제 강점기이던 1930년에 부설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거의 반세기에 가깝게 전인 1972년에 이미 폐선되어 없어진 철도이다.
선로와 노반은 다 사라졌지만, 이천에 있던 오천 역 건물만은 민가로 바뀌어서 유일하게 원형이 잘 보존되었다. 붉은 벽돌 외형이 그 대표적인 예. 요즘 지어지는 철도역들은 유리궁전 스타일이 대세이지만 그때는 저게 주된 건축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와서는 이 건물은 거주민이 없이 흉가처럼 방치됐고, 부지 일대는 재개발이 확정되었다. 그래서 저 건물도 언제 불도저로 싹 밀려 쥐도 새도 모르게 철거될지 알 수 없다.
철덕으로서 나도 어서 가 봐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갖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드디어 성지순례를 마쳤다. 역사 주변의 여러 지점에서 사진을 찍은 뒤, 마지막으로 옆 건물에 올라가서 역사를 내려다보며 한 컷을 더 찍었다.

아무쪼록 저 건물은 사라지지 않고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이 됐으면 좋겠다. 경의선 신촌 역 옛 역사가 보존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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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역 건물을 답사한 뒤에는 '진짜' 성지순례를 하러 갔다. 인근에 있는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을 방문한 것이다. 오천 역에서 거의 7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본인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두 곳을 동시에 답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순교자 기념관은 어느 성도가 산 속 사유지를 기증해서 건립되었으며, 지금 서울 합정동에 있는 선교 100주년 기념 교회던가? 거기서 걷히는 헌금으로 운영된대서 입장료조차도 안 받는 대인배 기념관이었다.

가는 길부터가 포스가 넘쳤다. 몇몇 주택과 회사· 공장을 지나서 산을 계속 오르자, 산상설교부터 시작해서 성경 구절 팻말들이 방문자를 반겨 주었다. 나중에는 한국에서 순교한 목사· 전도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들이 옆에 쭈욱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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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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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안에는 이런 그림체로 순교를 묘사한 그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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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셔먼 호 사건 때 목숨을 잃은 토머스 목사/선교사는 '순직'인 건 명백하겠지만 '순교'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치 지난 2004년에 김 선일 씨도 이라크에서 업무상 '순직'을 한 것이지 '순교'는.. 글쎄? 인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요나에 대해서도 순교자로 묘사해 놓은 그림이 있었다. 요나가 요나서를 기록하고 나서 나중에 다른 일을 하다가 순교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나서의 그 사건에서만은 그는 성경적으로 볼 때 절대로 순교자 모드가 아니었다. 이런 건 좀 분별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거시적으로는 정말 선교의 빚을 지고 있는 게 맞다. 그 옛날에 미국에서 (헬)조선으로 선교사를 보낸 건 지금으로 치면 우리나라에서 무슨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따위로 선교사를 보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본인 당사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처자식까지 얼마나 고생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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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2층에는 예배실이 있어서 교회에서 단체 관람을 온 사람들이 모여서 간단히 예배 집회를 열 수 있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벽에는 우리나라 교회사와 관련된 여러 글과 사진 자료들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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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성경 번역의 변천사. 스캔 하나는 참 깨끗하게 잘 했다.
다만, 우리나라에 처음부터 킹 제임스 성경 계열의 역본이 전해지지 못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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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3층에는 '순교자' 믿음의 선배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기독교(개신교 포함)는 천주교와 달리 조선 정부에 의한 박해는 그리 많지 않다. 기독교는 프랑스인이 아닌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었고, 공권력에 의한 박해보다는 제사 거부 같은 걸로 인한 민간 차원에서의 박해가 더 많았다.
그나마 구한말 때의 거의 유일한 순교자로는 백 홍준 장로만이 소개되어 있다. 이것도 직접적으로 사형을 당한 건 아니고 옥사다.

일제 강점기 때도, 독립 운동과 무관하게 기독교 신앙 자체만으로 인한 박해는 말기의 신사 참배 강요 이전까지는 딱히 심한 지경이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정말로 엄청난 수의 순교자가 발생한 건 오히려 해방 이후부터였다. 공산주의자, 일명 빨갱이들은 양심의 자유를 추구하면서 일당독재 우상화를 거부하는 기독교를 지독하게 박해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기념관에 적혀 있는 소개 문구이다.

* 북한의 교회 재건
"38선이 놓이면서 북한에서는 교회의 탄압이 계속되었고, 이를 피하여 많은 신도들이 남한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북한의 공산당들은 교회가 새롭게 재건되는 강한 힘을 느끼게 되자 1946년 11월 3일이 일요일인데도 이 날을 북괴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의 날로 정했다(참고로 1948년 5월 10일 남한의 총선거일은 월요일!). 이에 교회들은 즉시 반발하고 결의문을 채택하여 북한 당국에 보냈다. 이러한 항거에 부딪치자 공산당들은 이들을 투옥하고 강제 노동을 시키면서 박해를 가했다.
드디어 1946년 11월 28일에는 그들의 어용 단체로 기독교 연맹을 조직하여 교회를 공산주의 선전에 이용하고, 김 일성을 절대 지지하며 선거에 솔선수범한다는 결의문까지 발표하게 했다. 이에 따라 이 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목사들은 투옥되거나 추방 당했다."


옛날 로마 제국 시절에 대음모자 콘스탄틴이 부패한 국가 어용 교회(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신)를 만들고는, 거기에 가담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은 더 악랄하게 괴롭히고 박해한 것과 완전히 똑같다. 평양이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우리 남한, 대한민국은..

* 남한의 교회 재건
"해방 후 남한은 미군이 진주함으로써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만세!) 일제 말엽에 강제로 모든 교파의 통합이 이뤄졌고 해방 후에도 그 합동 교단을 그대로 존속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945년 9월 8일에 새문안 교회에서 장로교와 감리교 목사들이 모여 교회의 통합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나 각 교파 교회로의 환원에 대한 집념이 더 강한지라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구세군 등 각 교파는 각자 활발히 선교하여 교세를 확장하여 갔다."


이래서 남한과 북한의 운명이 극과 극으로 갈린 것이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한없이 타락하던 북이스라엘과, 그나마 좋은 왕과 나쁜 왕이 번갈아가며 나오던 남유다 왕국처럼!
난 개인적으로 교파가 저렇게 찢어진 것을 그렇게 나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제 강점기 때처럼 사람의 신앙의 자유를 거슬러서 강제로 통합을 하고 그 통합을 주도한 주체가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게 훨~씬 더 나쁘고 악한 현상이다.

대한민국은 크리스천 초대 대통령 덕분에.. 한중일 나라들 중 유일하게 건국/정부 수립 거의 직후부터 성탄절이 빨간날로 지정되었으며, 군대 내부에 군목을 비롯한 군종 병과가 가장 앞장서서 제정되었다. 정교일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헌 국회 기도문 같은 건 본인은 아주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5/10/04 08:38 2015/10/0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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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이야기

성경은 민족주의, 애국심 같은 걸 지지하고 나라 지키는 전쟁에 대해서도 아주 긍정적인 반면, 한편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구원에 관한 문맥에서는 그런 이념을 초월하기도 한다. 요나서가 그에 대한 좋은 예이다. 지금까지 내 홈페이지에서 요나를 직접 심층취재를 한 적이 없었으니 오늘은 이 사람에 대해 썰을 좀 풀어 보겠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는 19세기쯤에 한 조선의 대언자가 이웃 열도의 악명 높은 성진국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고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요나는 미래에 우리나라를 멸망시킬 적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심정이었다. 박해받고 순교하는 게 두렵다는 차원이 전혀 아니고, 그 원수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게 싫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래서 도망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못했다. 본의가 아니게 남의 배의 화물을 몽땅 말아먹는 민폐를 끼치고, 큰 고래에게 잡아 먹혀서 죽다 살아나는 체험을 한 뒤에야 더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어서 어쨌든 니느웨로 갔다. 그리고 영혼이 없는 “까라면 까” 식의 억지 선포를 시작했다.

완전 흉측한 몰골에 영락없는 거지꼴의 꼰대 한 명이 물고기 입에서 내던져져 나왔다. 이걸 실제로 목격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봤다면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이 아저씨는 뭐가 불만인지 입은 도널드덕처럼 쑥 튀어나와서 외친다는 말이.. 하나님이고 죄고 회개고 그딴 거 없었다. 오늘날의 거리설교 퀄리티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그냥 “이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무너질 것이다!”였다(욘 3:4).
무슨 꼴이냐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어느 이상한 교회에서 아저씨 두 명이 발가벗고서 트럭 위에 올라타서 “xx년 xx월에 북괴 김 정일은 남침한다”라고 써 붙이고 다닌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김 정일이 살아 있던 시절의 일임)

그런데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런 엽기 퍼포먼스에 니느웨 전체가 멘붕해 버렸다. 그들은 물고기 배 속에서 살아서 나온 어느 초사이언의 외침을 신이 주는 심각한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완전히 겁을 먹고 찔림을 받았다. 그의 외침을 어느 정신병자 미친놈의 저주· 헛소리· 악담쯤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들이, 심지어 왕까지 다 금식을 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초유의 부흥이 일어났다(욘 3:5-9). 요나의 입장에서는 머피의 법칙이 최악의 방향으로만 골라서 적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요나는 적국의 영적 부흥을 목격하고는 빡돌았다. 그는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성품을 지닌 분인지 잘 알았다. 그래서 “내가 완전 개쪽을 감수하면서 니느웨 멸망 예언을 했는데, 이게 이뤄지지 않게 됐으니 난 도대체 뭐가 됩니까..? 배 째세요~ 난 살기 싫소” 하면서 하나님께 앙탈을 부렸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런 골수 민족주의자 요나를 차근차근 일깨워 주는 내용으로 요나서가 끝난다.

저런 요나의 빡침과 앙탈은 어찌 보면 제 발로 삽질을 자초한 면도 있었다.
툴툴 뺀질거리지 않고 처음부터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이행해서 니느웨를 향해서 불편한 진리/진실을 사랑으로 정중하게 전했으면, 니느웨 사람들이 회심할 때 자기도 체통이 당연히 섰을 것이니 말이다.
마치 누가복음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지 않고 그물을 하나만 대충 던졌다가,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히는 바람에 배가 되집히고 그물이 찢어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고래 배 속에서 요나서 2장의 기도가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드려졌는지는 난 아직 100% 단정을 못 짓겠다. 1~9절과 10절이 And로 시간 순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듯이 보여서. 특히 and 시간 순 병렬은 재창조 주장하는 진영에서 아주 좋아하지 않는가?

단, 요나는 거기서 문자적으로 완전히 끔살당했다가 부활한 것만은 절대 확실하다. 숨도 못 쉬고 독한 소화액이 분비돼 나오는 내장 안에서 도대체 어떻게 며칠을 생존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기괴한 체험 덕분에 요나는 예수님에 의해 인용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고(눅 11:29), 니느웨는 세상에 너보다도 못한 놈들도 있다는 까임방지권(눅 11:32)을 획득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이 친히 인증을 했다는 것은 요나는 100% 확실한 실존 인물이고 그의 행적 역시 100% 역사적 팩트임을 의미한다.

* 성경에서 요나를 잡아먹은 큰 물고기(욘 1:17)의 정체는?

킹 제임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 물고기가 고래였다고 풀이를 하셨다(마 12:40). 마치 1945년 8월에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폭탄이 처음엔 그냥 무시무시한 폭탄인줄로만 알았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아예 원자폭탄이었다고 계시가 발전한 것처럼 말이다.

고래는 포유류라는 점에서 다른 물고기들과는 차원이 다르며, 창세기에서도 다른 동물들과는 별도로 유니크하게 창조되었다고 나온다(창 1:21). 그 창조의 주역이신 예수님이 고래라고 말씀하셨으니 이거 뭐 더 논쟁의 여지가 없다.
허나 non-KJV 역본들은 그리스어 '케토스'의 의미 운운하면서 다들 '큰 물고기' 내지 '바다 괴물'(공동번역, NASV, NRSV)로 표현을 바꿨다.

KJV도 구약의 애 4:3에서는 sea monster가 나온다. 그런데 거기서는 또 non-KJV들은 들개, 여우, jackal 같은 다른 육상 동물로 말을 바꿨다. KJV와는 더 큰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애 4:3에서는 이 생물체가 자기 새끼들로 하여금 젖을 빨게 한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즉, 포유류라는 얘기이며, 포유류라 하면 아무래도 육상 동물이 더 금방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래도 포유류인데? 바다 속에서 알이 아니라 새끼를 출산하고 새끼한테 젖을 주는데?
KJV는 신약에서는 대놓고 '고래'라고 했고, 구약에서는 최소한 바다에 사는 포유류라는 고래의 단서를 던지는 반면, non-KJV들은 두 곳 모두 '고래'의 특성이 훨씬 덜 드러난다는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론 재칼(jackal)이라는 단어도 참 오랜만에 듣는다. 내가 난생 처음으로 접한 곳은 알라딘 2의 I'm looking out for me 노래 직후에 나오는 대사에서. 어렸을 때는 "... dinner for the jackals!"밖에 못 들었지만 지금은 앞부분의 "Steal from us again and your scrawny body will be..."까지도 들린다. 시장터에서 깽판 치던 앵무새 이아고에게 어떤 상인이 협박하는 말이다. "한 번만 더 여기 물건 손댔다가는 네놈 몸뚱아리를 고기로 만들어서 들개들에게 줘 버리겠다!" -_-;;

Posted by 사무엘

2015/09/28 08:34 2015/09/2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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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뭐 모세 다얀 장군의 영도력, 하나님의 기적, 국민들의 근성과 애국심, 미국의 지원 버프 등등 여러 얘기가 나도는데, 그 승리의 비결 중에는 첩보 활동도 있었다.
‘엘리 코헨’(1924-1965)은 이스라엘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급의 스파이였다. 아마 국정원 공채 같은 걸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일 게다. 우리나라 군대에서 정훈 시간에 강 재구 소령이나 연평해전 영웅을 가르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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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코헨은 유창한 외국어와 수려한 외모, 그리고 모사드가 지원해 준 자금빨을 총동원해 인심 후한 사업가로 위장해서 적국 시리아의 고위 공직자들과 인맥을 맺었다. 그러면서 전장인 골란 고원을 관광 가는 척 방문해서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몽땅 비상한 기억력으로 암기하거나 도촬해서 이스라엘군에게 보내 줬다. 우리로 치면 북한으로 침투해서 북한의 고위 간부들을 교묘히 속인 후, DMZ 안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거기 있는 북한군 GP 등의 군사 시설 위치와 상황을 고스란히 알려 준 것과 같다. 1960년대 초엔 구글어스 같은 게 없었으니까. 그야말로 스타크래프트 맵핵의 실사판이다?

“여기서 근무하는 장병들은 땡볕에 고생이 참 심할 텐데, 빨리 자라는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어서 그늘을 만들어 놓는 게 어떨까요?”라고 제안까지 슬쩍 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졌다. 덕분에 이스라엘군은 나중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있는 쪽에다가만 포를 쏘면 되게 됐다. Oh shit;;

그는 무전기로 정보를 너무 오랫동안 많이 보내다가 “꼬리가 길면 밟힌다”와 같은 과정으로 결국 정체가 탄로나고 체포됐다. 기가 막힌 연전연패에 이거 아무래도 우리 내부에 첩자가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시리아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체 불명의 전파가 송신되는 것으로 의심되는 지역의 건물들을 일부러 강제 정전시켜 봤는데, 하필 혼자 배터리를 이용한 기기로 전파가 발사되고 있는 지점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소련으로부터 기술과 장비 원조를 받고서야 잡아 낼 수 있었다.

범인이 잡히자 시리아 당국은 충격에 빠졌다. 그 인심 좋게 생긴 사업가가 자국의 고위직 인사들을 몽땅 농락한 골수 간첩이었다니! 그는 숱한 고문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협력자를 더 불지 않았으며, 자국에다 교란용 역정보를 송신하라는 강요에 응하지 않았다. 그 대신 교묘한 테크닉으로 모스 부호를 만들어서, 어째 자기가 체포 당했다는 사실을 자국으로 알렸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애국자 엘리 코헨을 “우린 저런 요원 보낸 적 없는데?”라고 외면하지 않았다. “우리가 체포해 있는 시리아 간첩/포로 10명과 교환하자, 그걸로 모자라면 현금박치기에 트럭 등 원하는 거 다 주겠다!”고 제안했으며, 국제 여론까지 동원해서 그의 석방 내지 감형을 촉구했다.

그러나 시리아는 자기네 약점과 기밀을 너무 많이 알아 버린 엘리 코헨을 도저히 살려 둘 수 없었다. 시민들이 지켜보는 데서 그를 교수대에 매달고, 처형 과정을 동네방네 생중계했다. 사실, 생각 같아서는 그들은 그를 아예 각을 뜨고 능지처참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처형 당시 그의 몸에는 아랍어로 온갖 문구가 써진 커다란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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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이스라엘은 시신이라도 돌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역시 단칼에 씹혔다. 그것조차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리아의 분노와 증오심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는 돼지의 오물이 뒤섞인 채(유대교 율법에서 돼지란..) 대충 아무렇게나 매장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제 와서는 유해를 찾을 수도 없다.

국익을 위해서라지만 거짓말과 위장을 능수능란하게 해야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한다”에 따라야 하는 국정원 요원 같은 업종에 크리스천이 종사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건 크리스천이 정치인이 되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의 문제 같다.

세상 사람들이야 믿음이 아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 대 국가끼리는 개인 대 개인과는 달리, 힘에는 더 큰 힘으로 대응하고 악에는 악으로 맞서야 할 때가 있다. 성경에서 간첩은 창세기의 요셉도 알고 경계할 정도의 직업이었다(창 42:9). 곧이어 출애굽기의 히브리 산파는 비록 첩보는 아니지만 일단 거짓말을 했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경우가 있고, 이스라엘 역시 전쟁 과정에서 당연히 정탐꾼을 운용했다. 거짓말을 동원해서 정탐꾼을 숨겨 준 창녀 라합은 완전 의인으로 칭찬받기까지 했다. 물론 그건 하나님이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 급의 철학에 입각해서 인정하신 건 아니며, 믿음의 행위에다 정당방위· 긴급피난 같은 정황이 인정된 것에 가깝다.

시간과 분량 관계상 이 글에서 모든 디테일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예수 믿는다고 해서 국정원 요원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여겨진다. 애초에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군인부터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든지 인정받는 직업이고 병역 거부는 잘못된 행동인데, 그걸 대놓고 하나 좀 자기 정체를 숨기고 하나 무슨 차이이겠는가? 상관의 명령대로 나라 지키는 궂은일만 하는 거라면 말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런 일이 자기 양심에 걸리고 적성상 도저히 못 하겠으면 절대로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너무 비위가 약해서 해부 실습을 못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 해도 의대에 가지 말아야 하듯이. 양심에 거리낀다면 그건 죄가 된다.
적성국가에서의 첩보 임무는 실패하면 자기만 죽는 게 아니라 동료 요원까지 다 죽게 만드는 경우가 태반이니 말이다. 국정원 요원은 존재감이 있어서는 안 되는 관계로, 순직해도 전사 군인과는 달리 현충원에도 못 간다. 저렇게 대대적으로 알려진 엘리 코헨이 오히려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따지고 보면 엘리 코헨이 한 일은 엘리사가 한 일의 정확한 판박이였다. (비록 엘리사는 본업이 대언자이지 전문적인 간첩· 공작원은 아니었지만..;;) 열왕기하 6장을 쭉 읽어 보시라. 게다가 이 시절에도 이스라엘의 적국은 시리아였다!

이러므로 이 일로 인해 시리아 왕의 마음이 매우 괴롭게 되어 그가 자기 신하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을 돕는지 너희가 내게 알려 주려 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오 내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에 있는 대언자 엘리사가 왕께서 왕의 침실에서 하시는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니라. (왕하 6:11-12)

Posted by 사무엘

2015/09/25 19:35 2015/09/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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