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한 사건들

지난 4월 27일 자정 시간대에는 웬 20대 아가씨가 예쁘장한 흰 원피스 차림으로 부산의 어느 상가 건물에 들어가서는.. 옷을 홀랑 벗고 알몸으로 거기 소화전 안에 들어있던 분말 소화기를 계단 복도와 상점에 뿌리면서 난동을 부렸다. 벗은 옷과 신발은 그 건물의 옥상에다 고이 남겨 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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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그녀는 잽싸게 도망쳐서 현장을 빠져나갔는데.. 그로부터 겨우 5~6시간 남짓 지난 아침에 부산이 아닌 창원에서 죽은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한다.

이 정도면 2010년 오창 맨홀 변사 사건, 그리고 2011년의 문경 십자가 시신 사건에 필적하는 엽기적이고 괴이한 사건으로 보인다. 외국으로 치면 2013년의 엘리사 람 의문사 사건 같기도 하고..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잡히지 않고 탈출이 가능했는지, 그리고 택시까지 벌거벗은 채로 탔을 리는 없을 테니 또 다른 옷과 차비는 어디서 어떻게 났는지?? 공범· 협조자가 없이 젊은 여자가 겁도 없이 한밤중에 혼자서 저러고 사라질 수는 없어 보인다.

그 뒤엔 왜 하필 창원까지 갔고 거기서는 어디서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목숨을 끊은 걸까?
게다가 나흘 동안 행방이 오리무중이다가 시신이 5월 1일에 뒤늦게 발견된 게 아니다!
알몸 소화기 난동 사건과 별개로 27일 아침에 창원에서 신원 미상의 여성 시신이 발견됐고 신고가 접수됐다. 이거 자체는 매스컴에 보도될 가치도 없는 평범한 사건일 뿐인데, 5월 1일에야 갑자기 뜬금없이 "나흘 전에 창원에서 발견됐던 그 시신은 부산 알몸 소화기 난동 당사자로 추정된다"라는 보도가 나간 것이다.

그거야말로 도대체 무슨 근거로 하는 주장인가? 보도가 나가던 당시엔 아직 국과수의 DNA 감정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 행적에 온통 아귀가 안 맞는 미심쩍은 의문점들밖에 없다.
더 자세한 사연은 고인의 유족이 공개를 원치 않는다고 하니 더 보도되는 게 없이 사건이 묻힐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참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사람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최소한 술이나 약에 취한 상태이지, 맨정신으로 알몸 소화기 난동이 가능했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 정도면 곳곳에 CCTV가 가득하고 도시의 치안이 세계 평균을 상회할 정도로 좋은 축에 든다. 어지간해서는 여자가 혼자 밤에 길거리를 다녀도 봉변 당할 걱정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이 한밤중에 갑자기 혼자 어디론가 뛰쳐 나갔다가 나중에 시신으로 발견된 안타까운 사례가 몇 건 존재한다. 특히 술 마신 뒤, and/or 누구와 말다툼 하고서 삐쳤을 때 말이다.

1. 영등포 노들길 살인 사건 (2006. 7. 4.)

피해자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취준생이었는데, 어느 고향 친구 겸 고등학교 동창을(동성임)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홍대거리 일대에서 술을 새벽 1시가 넘게까지 많이 마셨다. 문헌에 따라서는 이 날이 피해자의 생일이었던가 보다.
그 뒤 이들은 양화 한강 공원에서 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는지 한강을 건너 당산 역 쪽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피해자가 집이 한강 이남의 신림동 쪽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랬는데 그녀는 술기운에 갑자기 기분이 변했는지.. "나 좀 혼자 있고 싶어. OO야, 오늘 즐거웠다. 그럼 ㅂㅇㅂㅇ!" 하면서 목적지 부근에서 택시에서 먼저 내렸다. 그리고는 한강 공원 방향의 캄캄한 골목길로 정처 없이 뛰어가 버렸다. 저 때가 7월 3일 새벽이었다.
이것으로 그녀는 지인과의 연락이 영원히 끊겼다. 더구나 피해자는 공부에 집중하겠다는 명목으로 휴대전화를 해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폰 연락도 아예 되지 않았다.

다음 4일 아침에 그녀는 더 서쪽의 성산대교 인근의 노들로 도로 옆의 수로에 알몸 시신으로 버려진 채 발견됐다. 그것도 꽤 민망한 포즈 상태였다고 한다. 강간· 살해범이 시신을 일부러 그런 자세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녀의 옷과 소지품들은 그냥 초기의 실종 장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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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생전의 습관 증언과 정황상--(1) 옷에 타인 지문이 전혀 없음 (2) 예전에 집에서도 대뜸 옷을 홀랑 다 벗는 주사를 딱 한 번 부린 적 있음--.. 그녀는 강제로 탈의됐다기보다는 술기운에 정신줄을 놓고 먼저 자발적으로 탈의한 것으로 보인다. 한밤중에 이 얼마나 위험한 미친 짓인가? 여기가 무슨 자기 집 안방인 걸로 착각했나 보다.

심야에 헐벗은 채로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던 그녀는 음욕을 품은 어느 싸이코패스의 표적이 됐으며, 납치 당해서 최대 하루 남짓 처참한 능욕을 당한 뒤에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결박, 손등에 담배빵, 음부에 이물질..) 시신은 발바닥까지 아주 깨끗한 상태였고 사후 경직도 없었다. 체내에 음식물은 소화되고 없었고 알코올 성분 역시 다 분해되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녀는 실종 이후에 10수 시간 이상 의외로 오랫동안 생존했으며, 죽은 지 불과 수 시간 안에 시신이 신속하게 발견된 셈이다. 범인이 시신의 유기도 개인 차량까지 동원해서 매우 능숙하고 신속하게 했을 테고 말이다. 공범이 1인 정도 추가로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과 관련된 몇몇 목격자의 증언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들이 목격한 것이 피해자 당사자가 정말 맞는지는 판명되지 않았다. 그나마 시신이 발견되기 불과 두어 시간 전에, 어느 견인차 기사가 시신 유기 지점 근처에 승용차가 세워져 있고 주변에서 웬 남자 두 명이 "어, 저거 경찰차야?" "아니, 그냥 견인차인데?"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 목격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이게 제일 유력한 용의자의 행적으로 보이지만, 그 차량을 색출하지는 못했다.

이 사건은 안타깝게도 용의자를 한 명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장기 미제 사건으로 전락했다. 사건 사고·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이 사건이 불과 1년 전에 벌어졌던 다른 미제 사건인 신정동 연쇄 살인과 수법이 아주 비슷하다는 것도 이미 알 것이다.

2. 마포 여대생 실종 사건 (2016. 12. 21.)

노들길 살인 사건 이후로 거의 10년 뒤, 이번 사건의 희생자는 더 어린 여대생이었다. 그녀는 12월 14일, 종강을 앞두고 같은 과 친구 몇 명을 만나서 역시 홍대 인근에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래도 아직 버스와 지하철이 끊기지는 않은 11시 무렵이었으며, 그녀 역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만취도 아니었다. 2차를 하러 이동하던 중 그녀는 갑자기 "잠시 저쪽에 좀 다녀오겠다"란 말을 남긴 뒤 뜬금없이 자리를 이탈하여 자취를 감췄다.

피곤해서 먼저 귀가하고 싶으면 말을 그렇게 하면 됐을 텐데 그리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기 집에 가는 버스를 탄 것도 아니었으며(마포09), 혼자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는지 망원 한강 공원으로 갔다. 이마저도 버스의 종점까지 간 뒤에 내렸으면 더 가까이 도달했을 텐데, 그리하지 않고 먼저 내려서는 거기까지 터덜터털 걸어 갔다.

그녀는 자정에 가까운 으슥한 시각에 한강 공원 방면의 지하도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으며, 그 뒤로 연락이 완전히 끊어졌다.

그녀는 실종된 지 거의 1주일이 지난 21일 오전에야 한강에서 익사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인상착의가 실종 당시의 모습과 동일하고 신발도 고스란히 신고 있고, 다른 외상 없고, 금전이나 치정으로 인한 원한 관계 없고.. 부검 결과도 사후에 물에 던져진 게 아니라 순수한 익사이며 딱히 자살이라도 할 동기도 없었으니..

다소 허무하게 들리겠지만 결론은 하나.. 이건 단순 사고사· 실족사로 처리되었다.
술에 너무 취해서 땅과 물이 분간이 안 됐는지, 왜 한강 공원으로도 모자라서 굳이 물에 들어갈 생각을 했는지는 불명이다.
비록 피해자가 노들길 살인 사건 같은 급의 강력 범죄에 희생된 정황은 없지만.. 그래도 그 10년 전 사건과 분위기가 묘하게 비슷한 것도 있어 보인다. 괴이하다.

3. 목동교 무단횡단 사망 사고 (2017. 4. 27.)

이건 자살도, 실족사도, 강력 범죄도 아닌 다소 엽기적인 교통사고이다. 그래서 언론에서 통용되는 사건 명칭 같은 것도 없다.
한 여대생이 지인과 한창 술을 마신 뒤, 혼자 택시를 타고 귀가도 정상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가 양천구 목동교의 진출입로에서 서행하고 있을 때 그녀는 술기운 때문인지 갑자기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고 나가 버렸다. (돈도 안 내고?? ㄲㄲ) 이건 노들길 살인 사건의 발단과 매우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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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택시 기사가 만류할 틈도 없이, 그녀는 무려 8차선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시도했다.
다행히 한쪽은 횡단을 마쳐서 중앙선 부근에 도달했으나, 이때 버스 1에 치여서 중앙선 건너편의 반대편 차로로 튕겨 나갔다. 그 다음으로 곧장 버스 2에 치여서 뼈가 으스러지고 머리까지 다치는 치명상을 입었고, 뒤따르던 택시와도 부딪쳐서 총 3대의 차량에 치였다. 마지막 택시에 치일 때는 이미 서 있을 수조차 없었을 것 같은데 차 바퀴에 깔리지는 않았나 모르겠다.;;

여기는 어둡고 으슥한 골목길이 아니니 범죄의 표적이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차들이 쌩쌩 달리는 8차선 도로 한복판에 만취자가 혼자 내던져진 결과는 보다시피.. 그녀는 근처의 이대 목동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차에 세 번이나 치이면서 이미 사경을 헤매는 만신창이가 됐으며 28일 새벽에 끝내 숨졌다.

세 운전사들 모두 커리어가 꼬이고 운전에 트라우마가 생길 운 나쁜 사고에 휘말리긴 했다. 그나마 버스 1과 택시의 운전사는 차를 세우고 경찰 신고와 후속 조치를 취했지만, 정작 그녀를 제일 크게 다치게 한 버스 2의 운전사는 퍽 소리에 "그냥 물건에 부딪혔나 보다"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가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무거운 벌을 받게 됐다.

4. 부산 서면 여대생 실종 사건 (2015. 10. 15.)

이건 벌건 대낮에 벌어졌고 당사자도 다행히 목숨은 부지한 채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사건 전개 과정에 미심쩍은 게 많다는 점에서 알몸 소화기 난동 사건과 일면 비슷하다.
11일 오후 2시쯤에 이 여대생은 어느 음식점에서 알바 동료들과 함께 낮술(!!)을 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남친과 전화 통화를 한 뒤, 혹은 전화 통화를 하러 밖에 나간 뒤에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실종 신고는 가족들에 의해 이튿날인 12일에 접수됐다. 경찰은 수색 끝에 사흘 만에야 그 식당에서 직선 거리로 200m 남짓 떨어진 인근 빌딩의 간이 옥상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온몸에 골절· 타박상을 입은 상태로 며칠간 꼼짝달싹 못 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으니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곧장 병원에 가야 하는 심각한 상태였다. 그래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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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통화가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술기운에 의식의 흐름을 따라 아무 건물에나 들어갔다. 혼자 건물에 들어가는 모습 자체는 CCTV에 찍혔다고 한다. 알몸 소화기 난동처럼 말이다.
그리고 제일 꼭대기에서 더 낮은 간이 옥상으로 자살 시도건 실족이건 어쨌든 떨어졌는데, 이 정도는 즉사할 만한 높이는 아니었다. 그녀는 숨이 붙은 채로 며칠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것 같다. 발견이 며칠 더 늦어졌다면 그 상태로 진짜로 죽었을 수도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당사자의 가족이 당사자의 명예 보호 차원에서 필사적으로 언론 보도 내용을 부정하면서 기레기들이 고인의 행실에 대해 완전 추측성 소설을 쓴다고 무작정 욕하고 까는 글도 나온다.
그런데 그런다고 팩트가 부정되나..;; 술 취해서 뛰어내린 게 아니고 그 타박상은 추락이 아니라 다른 범죄자에게 맞아서 생긴 거라면, 그에 합당한 증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말들은 걸러가며 들을 필요가 있다.

이런 사건들을 정리해 보니.. 술이 도대체 사람을 정신줄을 놓고 겁대가리를 상실시켜서 어떤 지경으로 만드는지 경악하게 된다. 싸이코패스 범죄 가해자를 만드는가 하면, 완전 기상천외한 실종자를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글쎄, 부산에서 밤에 실종됐다가 장산 대천 공원 호수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여대생(2012. 4. 12.)은 "마포 여대생 실종 사건"과 꽤 비슷하며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저건 그래도 술은 개입하지 않은 단순 사고사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9/07/09 08:36 2019/07/0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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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의 교통수단들 중에 가장 빠르게 이동하며, 반대로 사고가 났을 때 사람이 가장 큰 위험에 빠지는 물건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비행기이다. 육상 교통수단들은 주로 여타 사람이나 차량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내는 반면, 비행기는 혼자서 추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장애물이 아니라 그냥 지면과 충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배는 침몰하면 구명보트라도 있지만, 비행기는 전투기의 사출 좌석 같은 예외를 빼면 일반적으로 그런 것도 없다.

비행기 추락 사고의 성격은 크게 다음과 같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전투기: 잊을 법하면 전투기가 어디 야산에 추락했는데 파일럿이 사출되어 나갔네, 혹은 민가에 추락하지 않으려고 계속 조종간을 잡다가 산화했네 하는 소식이 전해진다. 전투기는 교전 중에 적기에게 피격· 격추되기라도 한 게 아니라면, 다 아군이 자체적으로 기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온갖 가혹한 기동 훈련을 하다가 정비 불량이나 기체 노후화, 기능 고장의 여파로 기체가 삐끗 하는 바람에 추락하는 것이다. 전투기 조종사가 괜히 높은 G(가속도)를 견디는 가혹한 훈련을 받는 게 아니며, 무슨 민항기마냥 곱게 떴다가 사뿐히 착륙만 하는데 그 몇 백억짜리 전투기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떨어지지는 않는다.

민항기: 전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수십~수백 명씩 실어 나르는 대형 고정익 여객기들이다. 이들은 전투기와는 달리 위험한 기동을 하지 않으며, 엄격한 규정 하에 검증된 항로만 이용하여 최대한 안전하고 보수적으로 운항한다. 하지만 민항기도 정비 불량, 조종사나 관제사의 과실, 악천후 천재지변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가끔 사고가 난다. 순항 중보다 이착륙 때가 훨씬 더 위험하다. 얘들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는 점, 한번 뜨고 나면 지상에서 통제를 할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해 테러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헬리콥터: 회전익기는 고정익기보다 느리고 연비도 안 좋다. 하지만 활주로 없이 이착륙이 가능하고 공중 정지도 할 수 있는지라 군· 민을 통틀어 인명 구조나 공중 작업 같은 특수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사실은 전투기와 운용 방식은 다르겠지만, 심지어 공격/전투용 헬기도 있다.
고정익기와 헬기의 관계는 마치 일반 4바퀴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관계와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이륜차가 사륜 자동차보다 훨씬 더 위험하듯, 헬기는 고정익기보다 항공역학적으로 훨씬 더 불안정하며 위험하다. 임무의 특성상 건물이나 구조물 같은 데에 살금살금 접근하다가 잘못해서 로터가 이물질과 부딪치는 사고가 난다. 그리고 그랬다가는 곧바로 수직 낙하 + 추락 사고 + 탑승자 전원 끔살로 이어진다.

즉, 비행기의 종별로 주된 위험 상황과 사고 발생 조건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무거운 쇳덩어리를 하늘로 띄우는 건 그저 바퀴를 굴리는 것보다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는 당연한 말이지만 비슷한 덩치의 자동차보다 연료 소모도 더 많고, 그만큼 연료를 더 많이 싣고 다닌다. 어지간한 여객기(무게)나 전투기(기동)의 연비는 자동차처럼 1리터 당 km가 아니라 1km당 리터 수로 따진다. 사람이 최대 겨우 두 명밖에 안 타는 전투기도 한번 띄우면 기름값만 몇백만 원 이상으로 깨진다. 공중에서 돈을 줄줄 흘리는 거나 마찬가지.. 그나마 일단 뜨고 나면 워낙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그 정도 연비라도 나오는 거다.

그리고 이 많은 연료들은 비행기가 사고가 났을 때 필연적으로 주변을 불바다로 만드는 기폭제가 된다!
자동차도 충돌 사고가 나서 영 좋지 않은 곳이 파손되면 복불복으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연료가 새어 나오고 거기에 점화 플러그의 불꽃이 튀거나 발화점 이상의 열이 가해졌을 때 말이다. 승용차는 연료 탱크가 뒤에 있기 때문에 후방 추돌로 인해 불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자동차의 화재는 비행기의 화재보다는 훨씬 덜 발생한다. 교통사고가 나면 차들끼리 부서지고 구겨지고 말지, 어지간해서는 불까지 나지는 않는다. 액션 영화에서는 자동차들이 총 맞고 몇 번 구르기만 하면 펑펑 잘도 폭발하지만, 차들이 몽땅 유조차나 화약 수송 화물차가 아닌 이상 그건 좀 허구 과장이 섞여 있다.

이런 자동차에 비해 비행기는 추락해서 박살 났다간 자동차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로 화염에 휩싸인다. 이륙한 지 얼마 안 되어 연료가 많이 있는 상태라면 확률은 100%에 수렴한다. 이것은 사고 시에 안 그래도 낮은 탑승자의 생존률을 더욱 낮추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석유 자체가 약간의 충격만 받으면 폭발하는 무슨 니트로글리세린 같은 위험물은 아닐 텐데, 추락하겠다 싶으면 빨리 엔진과 전기 장치라도 꺼 버리면 화재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글쎄, 에어컨 실외기의 송풍기 바람으로 발전기를 돌리겠다는 식의 무의미한 발상인지도 모르지만.

항공 사건 사고들 중에 오늘은 예전에도 자주 다루는 편이던 고정익기가 아닌 헬리콥터 관련 사고들에 눈길이 갔다. 헬리콥터는 전투기 같은 성능, 화려함, 간지가 없으며 그렇다고 수송기나 민항기 같은 막대한 덩치와 수송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정익기 조종사들이 유명한 TV 드라마 배우나 영화 배우, 걸그룹이라면, 헬리콥터 조종사는 성우나 재연 배우, 얼굴 없는 가수, 연극 배우처럼 항공 업계에서 약간은 비주류이고 덜 유명하고 2류 이하 급인 것 같다. 종사자들에게는 좀 송구스러운 얘기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헬리콥터는 공중에서 그런 고정익기들이 결코 할 수 없는 궂은 일, 힘든 일, 위험한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그렇게 임무를 수행하다가 불의의 사고가 난 것이 국내에서 21세기 이래로 세 건 정도 기억에 남아 있다.

1. 올림픽대교 사고 (군인)

서울 한강의 올림픽대교는 말 그대로 1988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서 만들어진지라 중앙의 꼭대기에 올림픽 성화 모양을 본딴 조형물이 있다. 그래도 이북의 주체사상탑과는 달리, 불꽃에 빨간 칠이 돼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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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철제 금속으로 불꽃 모양을 만든 것이어서 무게가 10톤을 넘었는데, 국가에서는 군 헬기를 동원해서 조형물을 다리 위에다 올려놓게 했다. 아무래도 민간 업체에다 맡기는 것보다는 군을 투입하는 게 더 저렴해서 그랬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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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2001년 5월 29일, 민간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저 월남전스러운 모양의 CH-47 대형 군용 헬리콥터가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현장은 며칠째 바람이 많이 불어서 조형물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으며, 몇 번 허탕치기를 반복했다. 잘못하면 조형물을 깨 부수거나 헬기까지 사고가 날 수 있었다. 고정익기로 치면 착륙을 못 해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복행에 실패해서 추락 사고가 나는 것과 비슷한 격이었다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처럼..).

그러다가 드디어 조형물을 살며시 내려놓는 데 성공했다. 헬기 안에서 작업을 지휘하던 간부는 "이제 임무를 완수했다. 복귀하겠다" 이렇게 보고를 하려는 찰나였는데...
가만히 공중 정지 중일 거라 여겨졌던 헬기는 하강 기류의 영향을 받아서 고도가 서서히 낮아지고 있었다. 이걸 헬기 안에 있던 승무원들은 알아챌 수 없었던 것 같다. 실제로 비행 중엔 주변이 온통 허허벌판이기 때문에 GPS 계기판 같은 거라도 보지 않으면 조종사는 자신의 위치나 속도 변화를 직감만으로는 거의 알 수 없다.

슬금슬금 하강하던 헬기는 로터가 조형물의 윗부분과 부딪치고 말았다. 그 결과 양력을 잃은 헬리콥터는 상하로 벌렁 뒤집힌 채 곧장 수직 낙하했으며, 다리 난간 부분에 걸친 채로 착지하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헬기의 뒷부분은 다리 위에 잔류했지만, 앞부분은 더 아래의 한강으로 또 굴러 떨어졌다. 안에 있던 탑승자 세 명과 함께!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올림픽대교 근처의 어느 강변 아파트에 살던 어떤 사람이 마침 조형물 설치 작업을 캠코더로 촬영하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군용 헬기가 뜬 걸 보기가 쉽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눈앞에서 저런 사고가 났으니 촬영자도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사람이 멀쩡한 상태로 다리 위에서 한강으로 곱게 뛰어내리기만 해도 어지간해서는 어마어마한 착수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서 기절하고 곧 익사한다. (예전에 남성연대 성 재기 씨처럼) 하물며 헬기 탑승자들은 전원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잠수부들이 투입되어 거기 일대를 수색한 뒤에야 잔해와 시신을 모두 찾아내어 인양했다.

지금도 올림픽대교의 중앙 꼭대기에 놓여 있는 횃불 조형물의 뒷배경에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있다. 허나 이때 희생된 군인 세 분을 알리거나 기리는 기념비나 추모 시설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2. 삼성동 아이파크 충돌 사고 (사기업)

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아침엔 LG전자 소속의 헬리콥터가 김포 공항을 출발하여 잠실 경기장 인근의 한강 공원 헬리포트에서 높으신 임원진들을 태운 뒤, 전주 소재의 공장으로 시찰을 갈 예정이었다.
헬기는 김포 공항에서 이륙 허가를 받고 한강 수면 위로만 쭈욱 비행했으며, 10분도 채 되지 않아 목적지로부터 1km 남짓 떨어진 청담 역 근처(영동대로)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여기서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헬기는 착륙 지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항로를 이탈해서 방황하다가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의 24~26층 높이의 외벽 쪽으로 돌진해서 충돌했다. 그 뒤 곧바로 아래의 화단으로 추락. 짙은 안개 때문에 사고가 난 건 비록 성격과 규모는 다르지만 1979년의 테네리페 참사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추락 후에 기체가 폭발하거나 화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이른 주말 아침이어서 그런지 아래에서 추가적인 인명 사고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헬기 탑승자(기장+부기장 2인)들은 역시 사고 현장에서 생존할 수 없었다.

본인은 옛날에 삼성 전자 수원 사업장의 어느 건물의 옥상으로 헬리콥터가 착륙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어디 또 높으신 분이 납셨나 싶었다. 주변은 생각보다 후폭풍이 심하고 소리도 아주 컸던 걸로 기억한다.
하물며 사고 당시에 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던 주민들은, 너무 가까이에서 들리는 헬기 소리에다가 고막을 찢는 듯한 쾅 소리와 진동을 경험했으니 웬 테러나 전쟁이라도 난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헬기와 부딪친 아파트가 안전 점검을 받는 동안, 피해층의 주민들은 본의가 아니게 강남 소재의 호텔에서 며칠 투숙하기도 했다. 비행기편의 지연과 취소 때문에 뜻하지 않게 호텔행을 경험하게 된 여행객처럼 말이다. 투숙 비용은 물론 LG 전자에서 부담했다.

3. 광주 시내 추락 (소방 공무원)

삼성동 헬기 추락 사고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에 또 충격적인 헬기 사고가 발생했다. 2014년 7월 17일,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현장 지원을 마치고 강릉으로 복귀하던 '강원도 특수구조단' 소속의 소방 헬기가 광주 광산구 장덕동의 성덕 중학교 근처의 도로에 갑자기 추락했다. 광주 공항에서 이륙한 지 5분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사고 헬기는 기수를 아래로 숙인 상태로 무슨 카미카제도 아닌 게 거의 70도에 달하는 고각으로 바닥에 자유 낙하하듯 내리꽂혔으며, 그 뒤 불길에 휩싸였다. 사고 장면은 근처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자동차들의 블랙박스 화면에 고스란히 녹화됐다. 헬기에는 조종사와 구조대원 등 모두 5명이 타고 있었으나 역시 모두 숨졌다.

사고의 근본 원인은 예산 부족으로 인한 장비 노후화 내지 비전문가 직원의 투입(조종 미숙) 등이 거론되는 듯하다. 기체가 한창 상승하던 중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오른쪽으로 기울고 급강하해 버렸다고 한다. 그걸 수습하지 못하고 헬기가 저 꼴이 난 것이다. 하긴, 헬리콥터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버린 걸 수습 못 하면, 목적지에 다 와 가지고 하강하는 중에도 갑자기 벌렁 뒤집히고 사고가 얼마든지 날 수 있다. 활주로가 필요 없다고 해서 장땡이 아니며, 평평한 헬리패드가 안전을 위해 괜히 필요한 게 아니다.

떨어지고 있을 때 이미 기체에 불이 붙은 상태였다는 말도 있는데 블랙박스 영상만 봐서는 정황을 모르겠다. 올림픽대교 사고처럼 로터가 장애물에 부딪친 것도 아니고, 멀쩡히 잘 날다가 갑자기 기체가 저 지경이 돼 버렸으니, 당시 승무원들은 정말 놀랍고 무서웠겠다.

사고 현장에 불까지 났지만, 다행히 달리는 자동차 위로 헬기가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추가적인 인명 피해는 근처 버스 정류장에 있던 학생이 화상을 입는 정도로 그쳤다. 지금도 사고 현장 일대를 로드뷰로 보면 추락 지점은 아스팔트가 덧대어 다시 칠해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전에도 글을 썼지만 비행기는 고정익이건 회전익이건 한번 상태가 꼬여 버리면 아무리 액셀을(자동차로 치면) 밟고 엔진 추력을 낸다 해도 곧바로 실속이 회복되고 뜨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조종이 더 어렵고 위험해 보인다. 헬리콥터는 기체 자체를 공기 중에서 고속으로 이동해서 양력을 얻는 게 아니기 때문에 뭔가 글라이더(활강)스러운 요소도 전혀 없고 더욱 불안정하다.
물론 사고라는 건 지금도 전세계의 하늘을 누비는 수많은 비행기들의 전체 대수에 비하면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부주의하면 사고가 나고, 사고가 나면 저 꼴 난다는 건 조종사나 승객이 숙지는 하고 있어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01 19:28 2016/07/0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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