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 자정 시간대에는 웬 20대 아가씨가 예쁘장한 흰 원피스 차림으로 부산의 어느 상가 건물에 들어가서는.. 옷을 홀랑 벗고 알몸으로 거기 소화전 안에 들어있던 분말 소화기를 계단 복도와 상점에 뿌리면서 난동을 부렸다. 벗은 옷과 신발은 그 건물의 옥상에다 고이 남겨 두고 말이다.
그 뒤 그녀는 잽싸게 도망쳐서 현장을 빠져나갔는데.. 그로부터 겨우 5~6시간 남짓 지난 아침에 부산이 아닌 창원에서 죽은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한다.
이 정도면 2010년 오창 맨홀 변사 사건, 그리고 2011년의 문경 십자가 시신 사건에 필적하는 엽기적이고 괴이한 사건으로 보인다. 외국으로 치면 2013년의 엘리사 람 의문사 사건 같기도 하고..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잡히지 않고 탈출이 가능했는지, 그리고 택시까지 벌거벗은 채로 탔을 리는 없을 테니 또 다른 옷과 차비는 어디서 어떻게 났는지?? 공범· 협조자가 없이 젊은 여자가 겁도 없이 한밤중에 혼자서 저러고 사라질 수는 없어 보인다.
그 뒤엔 왜 하필 창원까지 갔고 거기서는 어디서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목숨을 끊은 걸까?
게다가 나흘 동안 행방이 오리무중이다가 시신이 5월 1일에 뒤늦게 발견된 게 아니다!
알몸 소화기 난동 사건과 별개로 27일 아침에 창원에서 신원 미상의 여성 시신이 발견됐고 신고가 접수됐다. 이거 자체는 매스컴에 보도될 가치도 없는 평범한 사건일 뿐인데, 5월 1일에야 갑자기 뜬금없이 "나흘 전에 창원에서 발견됐던 그 시신은 부산 알몸 소화기 난동 당사자로 추정된다"라는 보도가 나간 것이다.
그거야말로 도대체 무슨 근거로 하는 주장인가? 보도가 나가던 당시엔 아직 국과수의 DNA 감정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 행적에 온통 아귀가 안 맞는 미심쩍은 의문점들밖에 없다.
더 자세한 사연은 고인의 유족이 공개를 원치 않는다고 하니 더 보도되는 게 없이 사건이 묻힐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참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사람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최소한 술이나 약에 취한 상태이지, 맨정신으로 알몸 소화기 난동이 가능했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 정도면 곳곳에 CCTV가 가득하고 도시의 치안이 세계 평균을 상회할 정도로 좋은 축에 든다. 어지간해서는 여자가 혼자 밤에 길거리를 다녀도 봉변 당할 걱정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이 한밤중에 갑자기 혼자 어디론가 뛰쳐 나갔다가 나중에 시신으로 발견된 안타까운 사례가 몇 건 존재한다. 특히 술 마신 뒤, and/or 누구와 말다툼 하고서 삐쳤을 때 말이다.
1. 영등포 노들길 살인 사건 (2006. 7. 4.)
피해자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취준생이었는데, 어느 고향 친구 겸 고등학교 동창을(동성임)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홍대거리 일대에서 술을 새벽 1시가 넘게까지 많이 마셨다. 문헌에 따라서는 이 날이 피해자의 생일이었던가 보다.
그 뒤 이들은 양화 한강 공원에서 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는지 한강을 건너 당산 역 쪽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피해자가 집이 한강 이남의 신림동 쪽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랬는데 그녀는 술기운에 갑자기 기분이 변했는지.. "나 좀 혼자 있고 싶어. OO야, 오늘 즐거웠다. 그럼 ㅂㅇㅂㅇ!" 하면서 목적지 부근에서 택시에서 먼저 내렸다. 그리고는 한강 공원 방향의 캄캄한 골목길로 정처 없이 뛰어가 버렸다. 저 때가 7월 3일 새벽이었다.
이것으로 그녀는 지인과의 연락이 영원히 끊겼다. 더구나 피해자는 공부에 집중하겠다는 명목으로 휴대전화를 해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폰 연락도 아예 되지 않았다.
다음 4일 아침에 그녀는 더 서쪽의 성산대교 인근의 노들로 도로 옆의 수로에 알몸 시신으로 버려진 채 발견됐다. 그것도 꽤 민망한 포즈 상태였다고 한다. 강간· 살해범이 시신을 일부러 그런 자세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녀의 옷과 소지품들은 그냥 초기의 실종 장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됐다.
살아 생전의 습관 증언과 정황상--(1) 옷에 타인 지문이 전혀 없음 (2) 예전에 집에서도 대뜸 옷을 홀랑 다 벗는 주사를 딱 한 번 부린 적 있음--.. 그녀는 강제로 탈의됐다기보다는 술기운에 정신줄을 놓고 먼저 자발적으로 탈의한 것으로 보인다. 한밤중에 이 얼마나 위험한 미친 짓인가? 여기가 무슨 자기 집 안방인 걸로 착각했나 보다.
심야에 헐벗은 채로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던 그녀는 음욕을 품은 어느 싸이코패스의 표적이 됐으며, 납치 당해서 최대 하루 남짓 처참한 능욕을 당한 뒤에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결박, 손등에 담배빵, 음부에 이물질..) 시신은 발바닥까지 아주 깨끗한 상태였고 사후 경직도 없었다. 체내에 음식물은 소화되고 없었고 알코올 성분 역시 다 분해되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녀는 실종 이후에 10수 시간 이상 의외로 오랫동안 생존했으며, 죽은 지 불과 수 시간 안에 시신이 신속하게 발견된 셈이다. 범인이 시신의 유기도 개인 차량까지 동원해서 매우 능숙하고 신속하게 했을 테고 말이다. 공범이 1인 정도 추가로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과 관련된 몇몇 목격자의 증언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들이 목격한 것이 피해자 당사자가 정말 맞는지는 판명되지 않았다. 그나마 시신이 발견되기 불과 두어 시간 전에, 어느 견인차 기사가 시신 유기 지점 근처에 승용차가 세워져 있고 주변에서 웬 남자 두 명이 "어, 저거 경찰차야?" "아니, 그냥 견인차인데?"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 목격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이게 제일 유력한 용의자의 행적으로 보이지만, 그 차량을 색출하지는 못했다.
이 사건은 안타깝게도 용의자를 한 명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장기 미제 사건으로 전락했다. 사건 사고·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이 사건이 불과 1년 전에 벌어졌던 다른 미제 사건인 신정동 연쇄 살인과 수법이 아주 비슷하다는 것도 이미 알 것이다.
2. 마포 여대생 실종 사건 (2016. 12. 21.)
노들길 살인 사건 이후로 거의 10년 뒤, 이번 사건의 희생자는 더 어린 여대생이었다. 그녀는 12월 14일, 종강을 앞두고 같은 과 친구 몇 명을 만나서 역시 홍대 인근에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래도 아직 버스와 지하철이 끊기지는 않은 11시 무렵이었으며, 그녀 역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만취도 아니었다. 2차를 하러 이동하던 중 그녀는 갑자기 "잠시 저쪽에 좀 다녀오겠다"란 말을 남긴 뒤 뜬금없이 자리를 이탈하여 자취를 감췄다.
피곤해서 먼저 귀가하고 싶으면 말을 그렇게 하면 됐을 텐데 그리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기 집에 가는 버스를 탄 것도 아니었으며(마포09), 혼자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는지 망원 한강 공원으로 갔다. 이마저도 버스의 종점까지 간 뒤에 내렸으면 더 가까이 도달했을 텐데, 그리하지 않고 먼저 내려서는 거기까지 터덜터털 걸어 갔다.
그녀는 자정에 가까운 으슥한 시각에 한강 공원 방면의 지하도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으며, 그 뒤로 연락이 완전히 끊어졌다.
그녀는 실종된 지 거의 1주일이 지난 21일 오전에야 한강에서 익사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인상착의가 실종 당시의 모습과 동일하고 신발도 고스란히 신고 있고, 다른 외상 없고, 금전이나 치정으로 인한 원한 관계 없고.. 부검 결과도 사후에 물에 던져진 게 아니라 순수한 익사이며 딱히 자살이라도 할 동기도 없었으니..
다소 허무하게 들리겠지만 결론은 하나.. 이건 단순 사고사· 실족사로 처리되었다.
술에 너무 취해서 땅과 물이 분간이 안 됐는지, 왜 한강 공원으로도 모자라서 굳이 물에 들어갈 생각을 했는지는 불명이다.
비록 피해자가 노들길 살인 사건 같은 급의 강력 범죄에 희생된 정황은 없지만.. 그래도 그 10년 전 사건과 분위기가 묘하게 비슷한 것도 있어 보인다. 괴이하다.
3. 목동교 무단횡단 사망 사고 (2017. 4. 27.)
이건 자살도, 실족사도, 강력 범죄도 아닌 다소 엽기적인 교통사고이다. 그래서 언론에서 통용되는 사건 명칭 같은 것도 없다.
한 여대생이 지인과 한창 술을 마신 뒤, 혼자 택시를 타고 귀가도 정상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가 양천구 목동교의 진출입로에서 서행하고 있을 때 그녀는 술기운 때문인지 갑자기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고 나가 버렸다. (돈도 안 내고?? ㄲㄲ) 이건 노들길 살인 사건의 발단과 매우 비슷하다.
놀란 택시 기사가 만류할 틈도 없이, 그녀는 무려 8차선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시도했다.
다행히 한쪽은 횡단을 마쳐서 중앙선 부근에 도달했으나, 이때 버스 1에 치여서 중앙선 건너편의 반대편 차로로 튕겨 나갔다. 그 다음으로 곧장 버스 2에 치여서 뼈가 으스러지고 머리까지 다치는 치명상을 입었고, 뒤따르던 택시와도 부딪쳐서 총 3대의 차량에 치였다. 마지막 택시에 치일 때는 이미 서 있을 수조차 없었을 것 같은데 차 바퀴에 깔리지는 않았나 모르겠다.;;
여기는 어둡고 으슥한 골목길이 아니니 범죄의 표적이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차들이 쌩쌩 달리는 8차선 도로 한복판에 만취자가 혼자 내던져진 결과는 보다시피.. 그녀는 근처의 이대 목동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차에 세 번이나 치이면서 이미 사경을 헤매는 만신창이가 됐으며 28일 새벽에 끝내 숨졌다.
세 운전사들 모두 커리어가 꼬이고 운전에 트라우마가 생길 운 나쁜 사고에 휘말리긴 했다. 그나마 버스 1과 택시의 운전사는 차를 세우고 경찰 신고와 후속 조치를 취했지만, 정작 그녀를 제일 크게 다치게 한 버스 2의 운전사는 퍽 소리에 "그냥 물건에 부딪혔나 보다"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가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무거운 벌을 받게 됐다.
4. 부산 서면 여대생 실종 사건 (2015. 10. 15.)
이건 벌건 대낮에 벌어졌고 당사자도 다행히 목숨은 부지한 채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사건 전개 과정에 미심쩍은 게 많다는 점에서 알몸 소화기 난동 사건과 일면 비슷하다.
11일 오후 2시쯤에 이 여대생은 어느 음식점에서 알바 동료들과 함께 낮술(!!)을 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남친과 전화 통화를 한 뒤, 혹은 전화 통화를 하러 밖에 나간 뒤에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실종 신고는 가족들에 의해 이튿날인 12일에 접수됐다. 경찰은 수색 끝에 사흘 만에야 그 식당에서 직선 거리로 200m 남짓 떨어진 인근 빌딩의 간이 옥상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온몸에 골절· 타박상을 입은 상태로 며칠간 꼼짝달싹 못 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으니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곧장 병원에 가야 하는 심각한 상태였다. 그래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전화 통화가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술기운에 의식의 흐름을 따라 아무 건물에나 들어갔다. 혼자 건물에 들어가는 모습 자체는 CCTV에 찍혔다고 한다. 알몸 소화기 난동처럼 말이다.
그리고 제일 꼭대기에서 더 낮은 간이 옥상으로 자살 시도건 실족이건 어쨌든 떨어졌는데, 이 정도는 즉사할 만한 높이는 아니었다. 그녀는 숨이 붙은 채로 며칠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것 같다. 발견이 며칠 더 늦어졌다면 그 상태로 진짜로 죽었을 수도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당사자의 가족이 당사자의 명예 보호 차원에서 필사적으로 언론 보도 내용을 부정하면서 기레기들이 고인의 행실에 대해 완전 추측성 소설을 쓴다고 무작정 욕하고 까는 글도 나온다.
그런데 그런다고 팩트가 부정되나..;; 술 취해서 뛰어내린 게 아니고 그 타박상은 추락이 아니라 다른 범죄자에게 맞아서 생긴 거라면, 그에 합당한 증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말들은 걸러가며 들을 필요가 있다.
이런 사건들을 정리해 보니.. 술이 도대체 사람을 정신줄을 놓고 겁대가리를 상실시켜서 어떤 지경으로 만드는지 경악하게 된다. 싸이코패스 범죄 가해자를 만드는가 하면, 완전 기상천외한 실종자를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글쎄, 부산에서 밤에 실종됐다가 장산 대천 공원 호수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여대생(2012. 4. 12.)은 "마포 여대생 실종 사건"과 꽤 비슷하며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저건 그래도 술은 개입하지 않은 단순 사고사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