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인간을 달에 보냈다가 성공적으로 귀환시킨 새턴 V(5호) 로켓은 일체형이 아니라 세 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얘는 높이? 길이?가 110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며, 인간이 역사상 개발한 가장 고출력 고성능 유인 이동 수단이었다.

이 로켓은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발사되었으며, 사령 본부는 거기서 좀 떨어진 텍사스 주의 휴스턴에 있었다. 둘 다 적도에 최대한 가까운 미국 남부인 것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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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단 로켓: 발사 직후 딱 2분 반 동안 2천 톤의 연료를 몽땅 태우고 뿜으면서 기체를 고도 68km, 시속 9921km까지 도달시켰다. 발사 카운트다운이 0으로 떨어질 때까지 가만히 있는 건 아니며, 그보다 수 초 전부터 미리 점화된다.
  • 2단 로켓: 1단의 뒤를 이어 6분 동안 기체를 고도 176km, 시속 25182(초속 7)km로 가속시켰다.

참고로 우주왕복선의 고체 연료 부스터가 분리되는 때가 마하 4 + 고도 46km정도이고, 다음으로 액체 연료 탱크가 분리되는 때가 마하 23 + 고도 110km쯤이다. 지구 저고도까지만 가는 우주왕복선보다야, 새턴 로켓이 스케일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 정도 크기의 로켓이 발사되면 그야말로 반경 수 km 이내에서 지축이 흔들리는 게 느껴지며, 전쟁이 나거나 유전이 폭발했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화염과 연기가 발사대 주변을 뒤덮는다. 그 거대한 폭발이 철저하게 제어되고 통제된 방향으로만 발생하기 때문에 로켓이 우주로 날아가는 거지, 안 그랬으면 그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그저 불바다+폭죽밖에 남는 게 없을 것이다.

자동차든, 비행기든, 로켓이든.. 모든 교통수단들은 처음 출발하기가 제일 어려우며 이때 연료 소모도 많다.
로켓은 자동차처럼 구르면서 정지 마찰력을 극복하는 것은 없지만, 기체가 제일 무거운 상태에서 지구의 중력뿐만 아니라 공기 저항까지 극복해야 하니 고충이 크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연료가 줄어들면서 기체가 가벼워지고, 공기압도 줄어들기 때문에 로켓은 점점 더 힘이 붙는다.

이런 이유로 인해 1단 로켓이 출력이 압도적으로 가장 강하다. 1단 로켓으로 제일 강하게 가속을 받을 때는 조종사가 거의 4G까지 경험한다고 한다. 1단만 등유(케로신)를 사용하고, 2단과 3단은 수소(액체) 기반이니 모두 액체 연료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1단이 부피 대비 연료가 훨씬 더 무겁다

물론 산화제로는 모두 액체 산소를 사용한다. 연료를 많이 태워서 큰 힘을 내려면 연료를 많이 주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산소를 충분히 공급해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자동차만 해도 공기를 꾸역꾸역 많이 주입해서 엔진 성능을 향상시키려고 터보차저를 달며, 대형 여객기는 10km 남짓한 순항 고도보다 높이 올라가면 공기가 부족해서 헥헥거리기 시작한다. 하물며 우주를 날아가는 로켓은 산소를 직접 조달해야 한다.

액체 수소에 액체 산소.. 액체 연료 로켓은 내용물이 굉장히 차갑다(...). 한여름에 차가운 음료를 꺼내 놓으면 컵 주변에 이슬이 맺히듯.. 이 로켓도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고 나면 표면에 서리와 얼음덩이 같은 게 송글송글 맺히곤 했다.

2단 로켓이 분리되어 떨어질 때, 지금까지 로켓의 맨 꼭대기에 달려 있던 자그마한 비상 탈출용 로켓(launch escape system)도 같이 떨어져 나간다. 이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얘는 이건 전투기의 사출좌석처럼 비상 상황에서 자기 아래에 승무원이 탄 캡슐(사령선)만 따로 로켓 본체로부터 분리하고 탈출과 낙하를 시켜 준다. (그래도 다행히도 역대 아폴로 계획에서 이 탈출용 로켓이 실제로 승무원들을 구조하는 데 쓰인 적은 전무했다.)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안정된 궤도를 유지하며 날아가기 위해서 스스로 뱅글뱅글 돈다. 그리고 총의 총열은 단순히 총알의 진로만 유지해 주는 게 아니라, 총알이 그렇게 회전하면서 나아가게 하려고 안쪽 표면에 나선 모양의 홈이 파져 있다. 이걸 강선이라고 하는데, 그 좁고 긴 총열에 강선을 새겨 넣는 게 엄청난 기술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로켓은 그렇게 돌면서 나아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발사 중에 진로가 어긋나지 않도록 자세를 제어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처음에 발사될 때는 비교적 느리게 수직 상승하기 때문에 우리가 실감을 잘 못 하지만, 로켓은 육지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오른 뒤부터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정말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그리고 나중에는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기울어지기도 한다.

달에 가는 로켓이라고 해서 무작정 눈에 보이는 저 달을 향하여 앞? 위?만 보고 직선 지름길(?)로 나아가는 게 아니다. 지구는 자전을 하고 있고 달도 지구를 공전하니, 달이 있는 쪽만 보고 나아가는 건 애초에 직선 운동이 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무데뽀로 지구를 빠져나가는 데에는 연료가 너무 많이 소모된다.

달로 가는 로켓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지구 궤도에 진입하여 지구를 1.5~2바퀴 돈 뒤(3단 로켓의 엔진도 끄고), 거기서 적절한 타이밍에 엔진을 재점화한다. 원 궤도가 긴 타원 궤도가 되게 살짝 가속을 함으로써 지구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러다가 달에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달의 인력에 끌려가는 것이다.

이 과업을 위한 추진력을 공급하는 것이 바로 마지막 3단 로켓이다. 기체는 2단 로켓이 올려 준 고도보다 약간만 더 올라가서 188km 남짓, 일명 parking orbit에 해당하는 고도에서 이제는 수평으로 가속하는 데 힘쓴다. 200km가 채 되지 않고 우주 정거장보다도 낮은 고도이니 여기서 지구를 한없이 많이 돌고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고작 한두 바퀴 남짓만 돌다가 더 가속해서 달로 가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1단과 2단 로켓은 연료를 다 소모한 뒤에 지구로 추락하지만, 3단 로켓은 다 쓰고 나면 우주 공간에 버려진다. 태양을 도는 궤도로 끌려 가거나, 아니면 달에 충돌하는 등 알아서 잘 사라져 줬으면 좋겠지만, 모든 3단 로켓이 그렇게 처분되지는 않은 듯하다.

2002년에는 지름 수십 m 남짓한 정체불명의 물체가 지구를 도는 것이 어느 아마추어 천문가에 의해 관측되어 J00E2E이라는 이름이 붙기까지 했는데, 이건 알고 보니 1969년에 발사된 아폴로 12호에서 떨어져 나온 3단 로켓 몸체였다. 태양 궤도로 끌려가는가 싶다가 도로 지구의 인력에 이끌려 와서 우주 쓰레기로 전락한 것이다.

아무튼 3단 로켓이 분리됨으로써 로켓은 이제 아무것도 없고 아폴로 우주선만 남게 된다. 로켓이 1~3단 세 파트로 나뉘었던 것처럼 우주선도 역시 사령선, 기계선, 착륙선(달 착륙선)이라는 세 파트로 나뉜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이들 우주선도 추진력이 있으니 소형 로켓이다.

로켓의 진행 방향이 →라고 가정할 때 사령선은 ▷ 요런 원뿔 모양이며, 기계선도 대충 요렇게 분출 노즐이 끝에 달린 원통 ▶□ 모양이다. 문맥에 따라서는 기계선도 사령선의 일부라고 보기도 한다. ▶□▷처럼..

로켓의 발사 당시에 파트들은 "3단 로켓 → 착륙선(◎) → 기계선(▶□) → 사령선(▷) → (2단 로켓과 함께 떨어져 나가고 없는 탈출 로켓)"의 순으로 배열돼 있다. 달 탐사선은 처음에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로켓의 내부에 감춰져 있다.
그런데 3단 로켓이 분리되고 아폴로 우주선이 활동을 시작할 때는 기계선과 사령선이 앞으로 나가서 180도 "유턴"을 한 뒤.. 달 착륙선과 사령선을 ◎◁□◀ 이렇게 전방에다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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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태로 아폴로 우주선은 달을 뱅뱅 돌다가 달 착륙선을 다시 분리시켜서 말 그대로 달에다 착륙시켰다. 승무원 3명 중 2명은 그렇게 달에 발을 디디고, 1명은 사령선에 남았다. 사령선에 남은 사람은 비록 달의 땅을 밟지는 못하지만 혼자서 달 뒷면을 구경하면서, 그 동안(뭐 한 번에 50분 남짓이었다고는 하는데)은 지구와도 통신이 끊기고 세상에서 제일 철저한 고독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달이야 대기가 없으니 지구 같은 대기권 진입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달 표면으로 자유 낙하하다가 연료 역추진으로 추락 속도를 낮춰서 땅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달 착륙선은 또 하부와 상부로 나뉘는데, 하부는 다리가 네 개 달려 있고 다시 달에서 출발할 때의 발사대 역할을 했다. 달을 떠날 때는 착륙선의 상부만이 이륙해서 달을 한두 바퀴 돌다가, 대략 110km 고도에 있는 사령선과 합체(도킹)했다. 달을 떠나서 사령선이 있는 상공까지만 가는 건 아예 모든 준비를 갖추고 지구를 떠나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마지막으로 달에 다녀 왔던 아폴로 17호에서는, 달에다 두고 온 월면차에다가 카메라를 설치한 덕분에 달 착륙선이 이륙하는 모습을 3인칭 시점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17호는 유일하게 밤에 발사된 달 탐사 미션이며, 아프리카 대륙 모습이 나온 '푸른 구슬' 사진을 찍은 그 미션이기도 하다.

달 착륙선이 사령선과 다시 합체하는 건 아폴로 계획 전체를 통틀어서 매우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도박이었다. 이걸 실패하면 달에 갔던 승무원 2명은 달에서 질식하고 굶어 죽게 되고, 사령선에 남았던 1명만 혼자 지구로 돌아오는 상상도 하기 끔찍한 비극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승무원을 사령선에 무사히 진입시키고 나면, 달 착륙선은 연료도 떨어졌고 더 쓸 일이 없기 때문에 다시 버려져서 달 표면으로 서서히 추락했다. 사령선은 지구 방향으로 가속을 해서 달의 궤도를 이탈하고, 지구의 인력에 이끌려서 지구로 돌아가게 된다.

아폴로 미션들 중 13호의 경우, 기계선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 때문에 달 착륙은 못 했지만 그래도 달을 멀리서 한 바퀴 돌기만 하고 모든 승무원이 지구로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다. 얘는 달 착륙선을 버리지 못하고 부득이하게 지구에 도로 갖고 오게 됐다. 허나, 달에 무사히 다녀오고 착륙선을 버리기까지 한 뒤에 그런 사고가 나서 기계선이 무용지물이 됐다면.. 승무원들은 착륙선의 기능을 이용할 수(추력, 산소 공급..) 없었을 것이며 지구로 살아서 돌아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끝으로, 이제 우주 여행의 최종 관문인 지구 대기권 재진입이 남아 있다. 아폴로 우주선은 초속 1.2km로 비행하면서 그야말로 쇠가 녹는 2000도 이상의 마찰열을 견뎌야 했다. 비록 각도는 매우 완만하지만 그야말로 총알보다 더 빠른 속도이다.
그리고 재진입 타이밍 때 사령선은 드디어 기계선과도 빠이빠이 한다. 기계선은 사령선과 같은 열차폐막의 보호 없이 대기권에서 불타 없어진다.

재돌입을 무사히 마친 사령선은 낙하산을 펴고 바다에 떨어진다. 얘는 우주왕복선과 달리 딱딱한 육지에 착륙할 수 없다. 달에 착륙할 때와는 달리 충격 완화를 위한 역추진 장치 같은 게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계선이 없이 사령선은 단독으로 아무 동력이 없으며, 활강 능력도 없다.

사령선이 망망대해의 어디쯤에 떨어질 걸로 예상되는지는 사령선의 모든 궤적을 추적 중인 본부에서 컴퓨터로 다 계산해서 파악해 놓는다. 그래서 그 지점에 군함과 헬기를 대기시켜 놨다가 승무원들을 구조하고 데리고 온다.

이상.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수천 톤에 달하는 로켓을 쏴서 사람 세 명을 달에 보냈는데 이것저것 다 떼어내고 최종적으로 돌아오는 건 저 사령선 캡슐 하나뿐이다. 아래 사진에서 꼭대기의 비상 탈출용 로켓 바로 아래의 흰 원뿔 말이다.
총알만 해도 화약과 탄피를 빼고 실제로 목표물에 박히는 탄두는 총알 전체의 크기에 비해 아주 작긴 하다. 하지만 비율이 저 로켓만치 터무니없이 작지는 않다...;;

참고로 저 높은 로켓의 꼭대기 사령선에 승무원들이 처음 탑승할 때는.. 옆의 발사대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간 뒤, 발사대와 로켓 사이에 설치된 탑승교를 건너서 안으로 들어간다. 누워 있던 길다란 로켓을 기립시키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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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구 중력을 탈출했다가 돌아오는 게 얼마나 끔찍하게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오로지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그 모든 난간을 뚫고 1960년대의 과학 기술만으로 그 일을 이뤄 낸 미국의 공돌이들이 그저 경이롭게 보일 따름이다.

새턴 로켓과 아폴로 우주선이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이것저것 부품을 많이 떼내서 버리는데, 3단 로켓과 달 착륙선은 폐기 장소가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초기에는 그냥 해당 궤도(주로 달)에 방치한 뒤에 스스로 서서히 추락하게 했지만, 나중에는 우주 쓰레기를 만들 여지를 없애기 위해 잔여 연료로 확실하게 궤도를 벗어나고 달 표면에 신속하게 추락시키는 쪽으로 처분 방식을 바꿨다.

새턴 V 로켓의 1단 엔진은 미국 내부에서도 기술자의 명맥이 끊기는 바람에, 전해지는 설계도 도면만으로는 후대의 엔지니어들이 동일한 물건을 만들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한다. 21세기에 눈부시게 발달한 반도체 내지 전자 공학 기술만으로는 커버가 안 되는 고유한 노하우가 또 있는가 보다. 그래서 자기네 선배 직원(또는 협력업체 직원)이 옛날에 만들었던 부품을 정밀 촬영을 하고 reverse engineering을 해서 기술을 재현해 내려고 애쓰는가 보다.

우주에서는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산소, 물 같은 물질을 지속적으로 보급받을 길이 전무하니.. 인간은 지구에서 챙겨 온 보급 물자에만 의존해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뭐, 물이야 수소 연료를 산화시킨 부산물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그리고 전세계 최고의 엘리트 공돌이들이 만들어 낸 치밀한 계획이 우주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들어맞지 않거나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틀어졌다면.. 우주에 나갔던 그 사람들은 그대로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우주는 인간에게 친화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달 여행 방법을 그 옛날에 처음으로 생각해 내고 실행에 옮긴 사람도 있는데.. 잘 알지도 못하고서 이게 자작극이고 주작이라고 무식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미국의 적국이요 막강한 경쟁자였고, 대등한 우주 개발 기술이 있던 소련이 tolerant, weak, helpless해서 미국의 달 착륙을 인정하고 축하한 게 아니었다. NASA의 음모론 이러는 사람들치고 소련을 계산에 같이 넣어서 생각하는 사람을 난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1995년에 영화 <아폴로 13>이 개봉했던 시절, 미국 본토 내부에서도 영화를 실컷 잘 봐 놓고는 이게 현실과는 전혀 무관한 흔한 SF물인 줄로만 안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 이 링크에서 Silly comments on Apollo 13 검색..) "저게 현실에서 일어났으면 사람들 다 죽었겠지? / 우주에서 저런 일이 일어났으면 우주왕복선을 날려서 승무원들을 구출하지 그래?" 이랬다나 어쨌다나.. orz

Posted by 사무엘

2018/07/06 08:30 2018/07/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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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빌 보면서 든 생각들

이미 수 년 전부터 B급 병맛 명품 액션 영화인 <킬 빌>에 대해서 종종 언급하고 한두 마디 잡생각을 던진 적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서 아이템 몇 가지를 별도의 글로 더 늘어놓고자 한다.

1.
킬 빌 2부에는 베아트릭스 키도가 암염탄을 맞고 생매장을 당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관을 정권지르기로 뚫고 무덤을 탈출해 버린다.
누님은 완전 흙투성이가 된 몰골로 지상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근처의 어느 카페에 불쑥 들어가서 점원에게 물 한 잔 좀 달라고 부탁한다.

거기 점원은 혼자 커피 맛을 보면서 빈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뽀얀 흙먼지를 날리면서 다가오는 누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엥, 저게 뭐야?" 하며 표정이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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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라이터를 켜라>에서, 허 봉구가 열차 옆문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본 식당칸 직원이 어리둥절해하는 것과 굉장히 유사한 장면 같다. 뭔가 음식 서빙을 하는 직원이 단역으로 잠시 출연하고, 시간대가 밤이고, 뭔가 위급한 상황인 주인공을 독대한다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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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시 2부를 보면 왕년에 베아트릭스 키도가 위치가 노출되는 바람에 호텔 방에서 '카렌'이라는 다른 여성 킬러와 대치했던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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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서 누님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Well, guess what, bitch?
I'm better than Annie Oakley. And I got you right in my sight.
"근데 말야.. 난 애니 오클리보다도 명사수이고 넌 이미 내 사정거리에 들어있어.
손만 까딱하면 곧바로 네년 이마에 납덩이가 박힐 거야. 그러니 곱게 내 말 들으라고.."


엥? 애니 오클리? 저 사람은 누구지? 그래서 찾아봤다.
그녀는 미국에서 거의 전설을 넘어 레전드 급이던 여성 총잡이(1860-192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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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이 바닥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는지, 자기보다 나이 더 많고 경력 많은 남성 총잡이 라이벌들까지 모조리 쳐바르면서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길고 두툼한 치마 차림의 아가씨가 저 멀리 사람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동전을 총을 쏴서 명중시켰다.. 총기도 권총, 라이플, 샷건을 가리지 않았다.

하긴, 1800년대 후반이 딱 마침 백색화약과 탄피 같은 게 막 도입되어서 총기가 우리가 아는 형태로 발전한 그 시기였다.
애니 오클리보다도 총 잘 쏜다는 말은 박 태환보다 수영 더 잘하고 김 연아보다 얼음판 스케이트를 더 잘 탄다는 얘기와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옛날 사람인 관계로 스포츠 사격으로 가서 우리가 아는 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거나 하지는 않았다. 전쟁터에서 수백 명을 장거리 저격해서 전공을 세운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리즈 시절이 세계 대전이나 남북 전쟁, 서부 개척 같은 격변의 시기를 묘하게 비껴 가서 그런가 보다. 그 놀라운 사격 실력이 주로 수렵 내지 서커스 묘기로나 선보여졌다는 게 아쉽다.

저분은 19세기 말에 북미 대륙에서 총 쏘며 살았으니 여행비둘기도 많이 잡았으려나 모르겠다.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을 정도로 많던 놈들이 1914년에 결국 멸종..)
저격수 '스나이퍼'라는 단어도.. 날아다니는 도도새를 쏴서 맞힐 정도로 총 잘 쏘는 사람, 즉 수렵에서 유래되긴 했다.

아무튼 킬 빌 덕분에 이런 역사 상식을 하나 주워 담았다. ^^
물론, 한국 사람이 애니 오클리가 누군지 알 리가 없으니, 한국어 자막은 당연히 영어 곧이곧대로 번역되지 않았다.
'블랙 맘바'조차도 생소하다고 그냥 코브라로 번역됐을 정도인걸..

3.
한편, 앞의 저 장면에서 상대편 암살자인 카렌 김을 연기한 배우(헬렌 김)은 한국계라고 한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성인 윤막순을 연기했던 한국계 배우 스텔라 최와 비슷한 캐스팅 같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국제시장에서 이산가족 상봉 씬을 보고 있으면.. 처음엔 통역사가 영어를 통역해 주는데, 상봉이 성공한 뒤부터는 영어가 갑자기 자막으로 동시 통역되어 나온다.
이건 실제 생방송에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처리이다. 하지만 울고불고 하는 장면에서 통역사가 말을 일일이 통역하는 게 어색하니 마치 '시적 허용'처럼 영화적 각색이 들어간 셈이다.

킬 빌에서는..?? 키도 누님이 시퍼런 일본도를 수하물도 아니고 버젓이 기내에 반입한 채로 비행기 타고 오키나와에서 도쿄로 가는 것만 해도 완전 비현실적인 각색이다.

4.
2편에서는 엘 드라이버가 돈가방에다가 블랙 맘바 독사를 몰래 숨겨서는 버드를 교묘하게 죽여 버리는 장면이 있다.
버드가 독사에게 물려서 의식을 잃고 죽어 가는 동안, 엘은 아주 태연하게 인터넷에서 찾아 본 블랙 맘바의 독의 위력을 설명해 주는데..
그때 사용하는 표현들이 정말 가관이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연출만 한 게 아니라 각본도 썼다는데, 문학 조예가 굉장히 뛰어난 것 같다.

The amount of venom that can be delivered from a single bite can be gargantuan.
You know, I've always liked that word, "gargantuan."
I so rarely have an opportunity to use it in a sentence.
단 한 방만 물려도 주입되는 독의 양은 gargantuan(무진장 많은.. 거대한, 크고 아름다운)이래.
이거 알아? 난 gargantuan이란 단어를 완전 좋아하거든.
지금까지 이 단어를 사용할 기회가 좀체 없었는데 말야.


저 생소한 단어는 또 어디서 찾아 와서 써먹었는지 원..;;
그리고 엘은 끝에 가서야 자기가 너(버드)를 죽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 준다.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실력만은 개인적으로 인정했던 베아트릭스 키도가.. 자기와 결투라도 벌인 끝에 장렬하게 죽은 게 아니라 겨우 너 같은 찌질한 놈팽이에게 어이없이 제압 당하고 죽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랜다.

Now in these last agonizing minutes of life you have left,
let me answer that question you asked earlier more thoroughly.
Right at this moment, the biggest "R" I feel is regret.
Regret that maybe the greatest warrior I have ever met, met her end at the hands of a bushwhackin', scrub, alkie, piece of shit like you. That woman deserved better.


여기서 갑자기 biggest "R"이 왜 나오느냐 하면.. 이 부분 대사는 원래 다음과 같이 더 길게 쓰여졌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상영 시간 등 모종의 이유로 인해 편집됐다.

Now in these last agonizing minutes of life you have left,
let me answer the question you asked earlier more thoroughly.
When it comes to that bitch, I gotta lotta "R's" in me.
Revenge is one. Retribution is another. Rivalry is definitely one.
But I got another "R" for that bitch you might be surprised to find out. Respect.

But right at this moment, the biggest "R" I feel, is Regret.
Regret that maybe the greatest warrior I have ever met, met her end at the hands of a bushwhackin, scrub, alacky piece of shit like you. That woman deserved better.


복수, 응징, 경쟁.. 거기에다 존경심. 하지만 지금 제일 강하게 느끼는 건 유감스러움.
이것들이 전부 R로 시작하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천재적이지 않은가?

5.
1부에서 오키나와에 있는 핫토리 한조 아저씨의 가게 장면을 보니 갑자기 그게 너무 땡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혼밥을 이렇게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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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el이 단순히 강철 자체가 아니라 sword처럼 검을 가리킬 때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어떤 분은 킬 빌을 많이 보고 나니 KB 국민은행을 보고도 KB가 영화 제목 이니셜인가.. 생각하고 순간 뿜었다고 그런다..;;
킬 빌 1에서는 그야말로 수십 명 이상이 죽어 나가지만 2에서는 단 세 명밖에 안 죽는다. 버드, 파이 메이, 빌.
그리고 전부 남자가 여자에게 죽임 당한다.

1편에서는 일본 사무라이가 나오더니만, 2편에서는 중국 쿵푸와 총질까지.. 뭔가 만화적인 무술 잡탕이다. 최종 병기는 오지심장파열술이라는 궁극의 기술이 아니던가..;;
정말.. 어지간한 평범한 창의력으로 만들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거 같다... ^__^

Posted by 사무엘

2018/07/04 08:37 2018/07/0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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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길이 한데 만나는 지점을 우리는 교차로라고 부른다. 이런 곳에서 차들이 부딪치지 않고 아무 곳으로나 통과하려면 신호등을 설치해서 한 번에 한 방향으로 가는 차들에게만 통행을 허용해야 한다.
혹은, 신호등을 설치하는 대신 교차로를 입체화해 버리면 신호 대기 없이 차들이 제각기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입체 교차로는 건설 비용이 많이 들며 진출입로(ramp)가 주변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자동차 전용 도로의 진출입로 내지 분기점 정도에서만 사용되는 편이다.

그런데 신호등을 설치하지 않고, 굳이 애써 고저 차이를 만들지 않고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온 차들을 제법 유도리도 있고 안전하게 통과시키는 방법이 있다. 바로, 교차로를 십자형이 아니라 원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뭔가 x-y 직교좌표 대신, 각도와 길이 위주의 극좌표가 떠오른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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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90도 우회전을 하든, 직진을 하든, 좌회전을 하든, 이 교차로에 진입하는 모든 차들은 방향을 불문하고 일단 저 둥근 궤도에 진입해야 한다. 모두 동일 방향이라는 게 포인트이다. 우측통행 체계에서는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좌측통행 체계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돌게 된다. 그렇게 궤도를 돌다가 자기가 가야 하는 진출로가 나타나면 그리로 나가면 된다.

여기서는 비록 내가 원하는 방향을 최단 경로 지름길로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진행 방향이 완전히 다른 차량끼리 정면· 측면 충돌 사고가 날 일은 없다. 차들이 무조건 속도를 낮춰야 하는 게 보장되며, 사고가 나 봤자 원 안으로 끼어들다가 접촉사고가 나는 것 정도로 국한된다. 리스크가 적은 우회전만으로 원하는 모든 방향으로 갈 수 있으며, 신호등이 필요하지 않고 차량이 드물 때 뻘짓 삽질스러운 신호 대기가 없다는 것도 아주 좋은 점이다.

이렇게 살펴보면 원형 교차로는 나름 굉장히 참신한 아이디어인 것 같다. 하지만 얘도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동그란 원을 만들고 중심부는 교통섬으로 비워 둬야 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직교 신호등 교차로보다야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원의 반경이 너무 작으면 초보 운전자가 교차로를 만만하게 보고 역주행을 할 우려가 있으며, 버스· 트레일러 같은 대형차들은 통과에 애로사항이 꽃필 수도 있다.

그리고 감속과 우회를 강요하고 신호등 없이 자발적인 양보에 의존해서 돌아간다는 특성상, 이런 교차로는 차량 통행량이 너무 많아지면 서로 우물쭈물 하다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어진다. 차라리 신호등이 있어서 각 방향별로 일정 주기로 통행 허용 시간이 강제로 보장되는 일반 평면 교차로만도 못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원형 교차로는 직교 신호등 교차로를 완전히 흡수하고 대체할 수는 없다. 단지, 황색 점멸 신호 상태인 교차로보다야 더 안전한 대안이 될 수 있어 보인다. 통행량이 적고 한산한데 오거리 육거리 형태로 길이 많이 분기돼 있는 곳일수록 원형 교차로의 가성비가 더 올라간다.
그런데 현대에는 도시를 이런 모양으로 건설하지 않으니 원형 교차로는 교차로의 주류에서 밀려나 있다. 유럽처럼 역사가 긴 도시, 아니면 신호등이 무의미할 정도로 차량 통행이 적은 지방에서나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회전 교차로는 회전문과도 구조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회전 로터리가 독특한 장점이 있는 것처럼 회전문은 외부와 내부를 그럭저럭 단절시킨 상태에서 사람을 출입시킬 수 있다는 독특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회전문 역시 단위 시간 동안 처리 가능한 교통량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 출입문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건축법상으로는 출입구에 오로지 회전문만 있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옆에 비상용 일반 출입문도 반드시 갖춰 놔야 한다.)

다시 교차로 얘기로 돌아오면...
길이 동그란 모양이라고 해서 다 같은 원형 교차로가 아니다. 그 원의 크기(지름), 궤도 내부의 차로 수, 그리고 원과 접하는 도로의 진출입 형태에 따라 운영 방식이 차이가 있다.
우리가 평소에 원형 교차로를 자주 볼 일이 없어서 선뜻 떠올리지 못할 뿐이지, 얘는 아주 아담한 것부터 왕창 크고 아름다운 것까지 규모의 편차가 꽤 크다. 궤도의 차로 수가 2 이상인 것만으로도 일단 작다는 소리는 안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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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궤도를 드나드는 도로도 형태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곧이곧대로 원과 수직으로 ―○― 이런 식으로 접하는 형태가 있는가 하면(수직형), 원의 접선 수준으로 더 완만하게 접하는 것도 있다(평행형).

원형 교차로를 나타내는 용어로는 traffic circle, roundabout, rotray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한국어로도 회전 교차로와 로터리의 구분이 있다. 현실에서는 본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별 구분 없이 섞어서 사용하며 그냥 로터리의 순화 용어가 회전 교차로인 줄 안다. 일반 어학 사전 수준에서도 이런 용어들은 그냥 interchangeable한 유의어라고 나온다. 하지만 교통 공학을 공부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들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회전 교차로(roundabout)는 원으로 진입하는 지점에 정지선이 있으며, 이미 원을 돌고 있는 차량이 여기로 들어오려는 차보다 통행 우선순위가 더 높다.
하지만 로터리(rotary)는 원 내부에 정지선이 있으며, 들어오려는 차에 우선권이 있다. 이런 곳에서 마냥 회전 차량에게만 우선권을 주면 새로운 차들이 원 내부로 도저히 진입을 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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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는 통상적인 회전 교차로보다 더 크고 차량 통행량이 많은 대규모 버전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뭔가 아담한 원형 교차로는 다 회전 교차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서울에 있는 영등포 로터리와 혜화동 로터리는 회전 교차로가 아니라 진짜로 로터리이다. 거기는 원 내부에 아예 신호등까지 있어서 반쯤은 일반적인 오거리 육거리 교차로처럼 바뀌었다.

물론 앞서 보았다시피 회전 교차로 중에서도 왕창 크고 아름다운 게 있다. 하지만 회전 교차로는 반드시 크지는 않아도 되는 반면, 원 안에 정지선(+ 경우에 따라서는 신호등까지)이 있는 로터리는 규모가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검색을 해 보니 외국에서는 roundabout과 rotary를 이렇게도 구분해 놓았는가 보다. 우리나라처럼 정지선의 위치와 우선순위 기준이 아니라, 궤도 합류 방식의 차이를 두고 둘을 구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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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ary는 90도 우회전만 하는 경우 궤도에 영향을 주지 않고 진출입로만 따라가면 된다.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IC를 드나들듯이 궤도에 합류하거나 밖으로 나가면 된다. roundabout은 이와 달리, 진출입로와 궤도가 겹치는 지점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에 양보가 필요하다.
우리와 관점은 좀 다르지만 그래도 여기서도 rotary는 최소한 roundabout 같은 일시정지(빨강)까지는 하지 않고도, 서행으로 조심만 하면(노랑) 궤도 합류가 가능하니 진입 차량에게 더 유리한 형태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형태건 원형 교차로는 덩치가 커지면.. 수용 가능한 차량은 많아지겠지만 그만큼 우회해야 하는 거리도 길어지고,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해지고, 어차피 신호등 같은 통제 수단도 필요해지니 고유한 장점이 감소하겠다. 그 원 안의 공간을 놀리기가 아까워서 다른 건물이나 광장 같은 게 들어설 수도 있는데, 그럼 원 안에 정지선 정도가 아니라 횡단보도까지 필요해지며 로터리의 교통 사정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7/01 08:31 2018/07/0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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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록으로서 성경의 완전성에 대한 믿음

'성(城)'이라고 하면 서양에서는 월트 디즈니 영화 인트로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주변에 moat라고 불리는 도랑도 있고 거대한 저택이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아무래도 만리장성 같은 긴 성벽이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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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남한산성과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돼 있다. 그러나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한양도성은 세계 유산에까지 등재될 정도의 유니크함은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아 등재가 거절됐다.

수원화성은 남한산성만치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 없고 한양도성만치 오래되지도 않은 데다, 일제 시대와 6· 25 전쟁을 거치며 왕창 훼손됐던 것을 어차피 후대에 재건· 복원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어째 세계 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을까?
'화성 성역 의궤(儀軌)'라는 기록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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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짓는 데 동원된 기자재와 구체적인 공사 기법, 건설 당시의 꼼꼼한 일지, 건설 과정에서 중앙 정부와 주고받았던 공문들, 건설에 참여했던 석공과 목수들 명단... 이런 게 미주알고주알 몽땅 적혀 있다.

성이 돌 위에 돌 하나 안 남기고 다 파괴됐다 해도 이 FM대로만 다시 이행하면 정말 1700년대 고증을 100% 반영해서 성을 똑같은 절차를 동원해서 똑같은 형태로 고스란히 다시 만들 수 있다. 쉽게 말해 프로그램 소스 코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 당시에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지 현대 고고학 지식을 동원해서 재추적해야 하는 이집트 피라미드나 이스터 섬 모아이 같은 물건과는 처지가 정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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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그 유명한 오사카 성만 해도, 저 정도의 상세한 기록이 전해지는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재건된 건물은 그냥 외형만 얼추 닮았을 뿐, 내부는 그냥 엘리베이터까지 달린 현대식 철근 콘크리트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재현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조선이 말기에 망한 과정이 워낙 추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많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실록을 포함해 기록 하나는 타 왕조나 국가들보다 신경 써서 잘 남겼다. 이런 기록 덕후 왕조에서 한글 같은 문자를 새로 창제했으니, 문자의 창제 시기와 설계 컨셉 같은 것도 꼼꼼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이런 점이 큰 메리트로 작용했으며, 지금의 재건 레플리카가 1700년대 초기 원형 건물과 동급의 권위와 정통성이 있다는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세계 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다.

"원형 건물과 동등한 권위"... 아마 킹 제임스 성경 빌리버들에게 귀가 솔깃하게 들릴 텐데..
그렇다. 성경도 이런 정도의 퀄리티로 전수되고 번역됐다. 그렇기 때문에 자필 원본이 진작에 소실되고 없어도 지금 읽는 역본이 자필 원본과 동등한 영감을 담고 있을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오래되고 낡은 채로 짱박혀 있는 소수 사본이 아니라, 끊임없이 필사되고 읽히고 닳아 없어지길 반복했으며 교차 검증도 되는 다수 사본이 진품이다.

또한 수원화성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구약 성경에 기록돼 있는 온갖 쓸데없이(?) 디테일해 보이는 사람 명단이나 숫자 목록, 물건들의 구체적인 치수들에 대해서도 관점을 달리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성경 기록이 각종 초자연적인 기적까지 포함해서 모두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는 근거이다.

2. long S

1611년도 킹 제임스 성경 원판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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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를 오늘날보다 더 많이 쓰고 있고 (booke, fowle, forme, grasse, selfe, sunne, starres)
u와 v가 헷갈리는 등.. (heauen??)
완전히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단어 스펠링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겨우 thou, thy, -eth 이런 건 그냥 약과다.

심지어 KJV의 고유한 특징이라 불리는 '이탤릭체'조차도 오리지날에서는 이탤릭이 아니었다.
보다시피 본문은 뉴욕 타임스 같은 '고딕체'이고, 이탤릭은 그 안에 작은 크기의 '로만체'로 적혀 있다. (정작 난외주에서는 이탤릭체가 쓰였는데도!)
첨가된 단어에 대한 표기는 차라리 한글 개역성경과 더 가까운 형태인 셈이다.

그런데 I와 J, U와 V, W 이런 게 오락가락 하는 건 제쳐놓고라도.. s가 f처럼 적혀 있는 건 굉장히 적응이 어렵다.
graffe, beafts, felfe, feafons, leffer, faid, firft, alfo (???)
게다가 모든 s가 저렇게 쓰인 것도 아니고 s 자체 역시 따로 있다. s와 f모두 각각 음절초와 음절말에 다 등장하기 때문에 정확한 등장 조건이나 규칙을 찾을 수 없다. 도대체 이건 어찌 된 영문일까?

독일어 철자법에 ß가 있는 것처럼 저 시절에는 long S라는 게 따로 있었다.
내 생각에, 한글로 치면 아래아와 비슷한 존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처음엔 발음이 미묘하게 달랐지만 한쪽의 음가가 오래 전에 소멸하고, 영어의 철자법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결국 long S는 짤린 것이다. 그게 무려 1700년대의 일이다.
아래아가 음가를 상실한 뒤, 20세기에 와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짤린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 하겠다.

킹 제임스 성경이 원체 archaic한 단어와 문체로 유명하긴 하지만, 글자 자체도 archaic한 놈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수학에서 일명 '인테그랄'이라고 불리는 적분 기호 ∫가 바로 길게 늘어뜨린 long S의 후신이다. sum을 나타낸다.

3.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본인은 개인적인 신앙 노선을 여러 번 밝힌 바와 같이,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자이다.
구원의 길이 예수 유일이듯이, 그런 독단 배타적인 교리를 텍스트 형태로 명시하고 있는 성경도 특정 역본 유일이라는 개념은 이상하거나 어색할 것이 전혀 없다고 본다.

성경만은 번역되는 과정에서 여느 텍스트가 번역될 때와는 달리 예외적이고 특례적인 섭리와 보존이 있었다고 믿는다. 설령 KJV라는 성경의 번역을 지시한 왕이나 번역자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몰랐을지라도 말이다. 그래야만 기독교계가 원어 원문 운운하는 온갖 지적 사기와 말장난, 혼돈을 벗어나서 뭔가 절대 기준을 가질 수 있다. 교리의 근간과 믿음의 대상이 존속할 수 있으며 기독교가 최소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다른 고전 텍스트들은 잘난 학자들이 점점 더 원래의 의미를 복원해 나가는지 모르겠지만, 성경은 이미 정확하게 잘 완성됐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성경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트렌드가 반대로 타락하고 퇴화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솔로몬 왕이 아기를 둘로 쪼개서 반반씩 나눠 가지라고 명령을 내렸을 때 아이의 진짜 엄마는 완전 화들짝 멘붕했지 않던가? 성경을 사랑하고 믿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읽는 성경이 변개되고 파편화돼 있다는 말을 절대로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JV 유일주의는 기독교계에서도 소수설로 취급되고 있으며,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아주 많다.
이런 사람들은 KJV에 '없음' 구절이 없는 게 정상이 아니라, 반대로 '없음'이 원래 맞고 KJV가 후대에 추가(!!)돼서 사본학 근거가 부족한 구절까지 덤으로 갖고 있는 거라고 주장한다.

또한, '없음'이 있긴 하지만 동일한 내용이 성경의 다른 부분에도 있기 때문에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도 해명한다. 예를 들어 마 17:21에서 "기도와 금식"이 삭제되긴 했지만 막 9:29에는 동일 내용이 남아 있다.
골 1:14에서 '그분의 피를 통해'가 삭제되긴 했지만 엡 1:7에는 동일 내용이 남아 있다. 이런 식이다.

행 12:4의 '이스터'(파스카)와 마 12:40의 '고래'(케토스)는 단골로 오르내리는 번역 이슈이다. 이건 KJV 옹호 진영에서도 다 반박이 돼 있다.
요일 5:7은 일명 '요한의 콤마'라 하여 킹 제임스 성경에서만(동일 계열의 바른 사본도 포함)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온전히 입증하는 구절인데... 이것도 원래 성경에는 없던 말이 후대에 추가된 거라고 말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성경은 나쁜놈들이 변개하고 삭제하는 게 훨씬 더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과잉 충성분자가 첨가하는 것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시나리오라고 본다. 계 22:18을 뻔히 믿는 사람이 설마 감히 첨가를 하겠는가?

그리고 원어· 원문뿐만 아니라 해석에 대해서도 대립하는 구절이 있다. KJV 빌리버들은 시 12:6-7이 하나님 말씀 보존에 관한 약속이라고 본다. 7절에 나오는 preserve them은 당연히 바로 앞의 words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자들은 이마저도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을 보존한다는 말일 뿐이라고 말한다.

성경에 이런 말을 하다가 뜬금없이 갑자기 다중적용 예언이 나오는 게 한두 군데가 아닌데..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을 불편해하고 굳이 가리려고 애쓰는 건, 마치 창 22:8에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하실 것임"이라는 의미가 절대로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고 창 1:2와 렘 4:23을 같이 연결하여 심판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이단시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렇게 KJV 유일주의를 기를 쓰고 공격하고 반박하는 사람들은 저런 유명한 구절들을 끄집어내서 KJV가 오역을 했거나 원래 원문에 없는 문구를 추가한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벧전 2:2까지 거론하면서 "말씀의 젖을 사모하고 자라라"가 아니라,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라는 잘못된 교리가 맞다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하는 것은 본인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이런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성경과 관련하여 어차피 어딘가에 권위를 둬야 한다면, 현대 역본 번역자나 원어학자를 믿을 바에야 차라리 400여 년 짬밥의 안정화 내력이 있는 영어 성경에 권위를 두는 것이 훨씬 더 건전하고 현실성 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지엽적으로 약간 오류(흑역사, 아쉬운 점, 단점, 나쁜 점, 부정적인 것)가 있지만 그래도 큰 그림을 보면 좋은 게(선한 것, 감사할 것, 유익한 것 등..) (훨씬) 더 많고 괜찮다."
이런 사고방식은 통계를 동원하여 공학 연구나 과학 실험 결과를 평가할 때, 혹은 우리나라 현대사 같은 걸 논할 때, 이· 박 대통령 같은 사람의 행적을 평가할 때는 적절하고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경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성경은 적당히 오역이나 오류도 좀 있지만 대충 요점만 들어맞으면 되는 부류의 책이 아니다. 만약 성경이 그런 부류의 책이라면 자기가 성경의 오류 감별사라고 설치면서 궤변 말장난을 늘어놓는 사기꾼들, 성경에 기록된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내용들을 제멋대로 영해하는 미친놈 이단 교주 등.. 그로부터 야기될 혼돈· 무질서와 오류, 부작용, 폐단이 가히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내가 저런 사고방식을 몰라서 KJV 유일주의를 고수하는 게 아니다. 성경이 기독교 정체성의 유지에 어떤 기여를 하는 존재이며 나에게 성경이 어떤 책인지를 제대로 알기 때문에 이런 지론을 갖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28 08:29 2018/06/2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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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버전 개발 근황 2

2018년 여름 현재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차기 버전인 9.5가 개발 중이다. 지금까지 수 차례 연기와 번복을 거듭해 왔지만, 9.5는 정말로 완전체 파이널 버전이 될 것이 명확해지고 있다. 작업해 놓은 것을 정리해 보니 분량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9.5 이후로는 버전업을 하더라도 그 주기가 지금보다 더 길어질 것이며, 지금 같은 장기적인 개발 계획 없이 그때 그때 생긴 아이디어 반영이나 문제점 개선 위주로만 가볍게 새 버전이 나올 것이다. 2000년에 나왔던 1.0 이래로 18년이 지나서야 이제 좀 한글 입력기가 물건다운 물건이 완성된 것 같다.

1.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의 변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차기 버전에서는 9.3에서 첫 도입되었던 입력 도구의 모습이 이렇게 미묘하게 바뀌었다.

  • 후보 목록이 언제나 입력란의 왼쪽 끝에 표시되는 게 아니라("한국어"), 실제로 삽입되는 위치("처리") 근처에 표시되게 했다.
  • '한글 단어를 한자로' 변환 기능의 경우, 낱글자에 대해서는 한자의 훈도 표시되게 했다. (곳, 아내, 슬퍼할.. 등)
  • 지금 변환 가능한 영역("처리")과 그렇지 않은 영역(그 이후 "학술대회")을 검정 vs 회색으로 구분해서 표시하게 했다.

눈에 띄지 않는 개선 사항은 다음과 같다. 한글 조합 상태와 관련해서 여러 미묘한 버그들을 발견해서 잡았다.

  • 이미 한자로 변환되어 있는 곳으로 cursor를 옮기면 무조건 모든 한자들이 도로 한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예전에 변환했던 단위로만 역순으로 복귀되게 했다. 예를 들어, 위의 그림과 같은 상태에서 마지막 한자인 '보(報)'를 건드리면 '정보'만 한글로 돌아가고 '한국어'는 아직 한자로 유지되어 있다.
  • 평범한 왼쪽 화살표나 backspace 말고 특수글쇠(앞 글자 달라붙기 같은)의 기능으로 cursor를 움직여서 앞의 한자를 건드렸을 때는 한글 복귀가 제대로 되지 않던 버그를 잡았다.
  • 저런 특수글쇠로 비한글 문자 사이를 왕래할 때 cursor가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던 버그를 잡았다.
  • 한글을 조합하던 중에 글자판을 변경했을 때 조합이 종료되지 않던 버그, 맨 마지막 글자가 아니라 중간에서 한글을 조합하고 있다가 한자를 선택했을 때(예: '훈(민)정' 조합 중에 訓民) 변환이 제대로 되지 않던 버그를 잡았다.

2. '고급 입력 스키마 - 고급 글쇠 인식' 기능의 변화

지난 7.4에서 첫 도입되고 나서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고급 입력 스키마'에 간단한 modifier key 필터링 기능이 추가됐다.
지금까지는 얘를 이용해서 D 같은 문자 글쇠에다가 입력 기능을 배당하고 나면, Shift+D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Alt+D 같은 걸 눌러도 글쇠가 아무 구분 없이 인식하고 동작해 왔다. (Alt 인식이 불가능한 외부 모듈 구현체는 제외)

얘는 말 그대로 저수준 고급 글쇠 인식 기능이기 때문에, modifier의 인식 여부는 modifier 글쇠 자체가 눌렸을 때 변수와 수식을 이용해서 사용자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게 취지이긴 하다. 하지만 저건 너무 고지식하다고 여겨져서 Shift, Ctrl, Alt에 대해서 인식 여부를 사용자가 지정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이건 단축글쇠 규칙만치 세밀하지는 않기 때문에 modifier 글쇠의 좌우까지 구분하는 기능은 없다. 고급 입력 스키마는 A, S, D 같은 인접한 글쇠가 동시에 눌린 것, B를 길게 누른 것, C를 눌렀다가 뗀 것 같은 이벤트를 감지하는 것이 목적이지, 단축글쇠처럼 왼쪽 Shift+L, Ctrl+Win+X 이런 combination을 세밀하게 감지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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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r key 필터링 여부를 지정하는 체크 박스는 on/off뿐만 아니라 indeterminate라는 제3의 상태도 있는데(위의 그림에서 Ctrl), 이게 바로 예전처럼 modifier가 눌렸든 안 눌렸든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D와 Shift+D에 대해서 동작을 구분하고 싶다면 Shift는 indeterminate로 맞춰 놓고 별도의 변수로 상황을 구분하면 된다.

Shift는 몰라도 Ctrl과 Alt는 단축글쇠와 충돌하지 않으려면 사실상 언제나 off로 지정해 놓는 게 좋을 것이다. 단축글쇠 옵션에는 좌우 중 무엇을 눌렀는지 구분하지 않는다는 옵션이 있을 뿐, 아예 on/off 여부를 구분하지 않는 옵션이 있지는 않다. 이 역시 대조적이다.

modifier key 필터링은 key down에 대해서만 동작한다. key up은 key down 이벤트에 걸렸던 글쇠가 떼졌다면 그 당시의 modifier와 관계 없이 언제나 동작한다. 키보드가 무슨 마우스 버튼도 아닌데.. A키를 그냥 뗐을 때는 이렇게 동작하고, Shift가 눌러진 상태에서 뗐을 때는 이렇게 동작하는.. 그런 상황은 고려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 기능을 굳이 구현해야겠다면 역시 변수와 수식을 이용해서 사용자가 직접 구현하면 된다.

3. '고급 입력 스키마' 기능의 변화

오랫동안 빈 공간이 많아 황량하고, 별로 자주 쓰이지도 않는 옵션밖에 없던 '고급 스키마 옵션' 탭에 유의미한 옵션이 하나 추가되었다. 바로 '비한글 문자가 입력되어도 기존 한글 조합을 일시적으로 보존'해 주는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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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빠르게 하다 보면, 한글을 조합하고 있고 한글 입력과 관련된 글쇠들이 미처 다 떼어지기 전에 space나 쉼표 마침표 같은 문자 글쇠가 먼저 눌러질 수 있다. 이 경우 "ㄷ.ㅏ", "르 ㄹ" 같은 오타가 생기기 쉽다.

허나, 이 옵션이 지정되면 입력 스키마가 이런 비한글 문자를 문자 생성기(한글 입력 오토마타)로 곧장 보내지 않고, 한글의 옆에다가 임시로 붙여 준다. 즉, "다."처럼 된 상태에서 "당. "으로 한글 조합을 계속할 수 있다.
그렇게 있다가 모든 글쇠에서 손이 떼어지고 나면 조합이 종료된다.

이거 간단한 발상이지만 생각보다 꽤 유용하다. 오동작 부작용도 거의 없고 말이다. (물론 공백까지 저렇게 보정이 되게 하려면 '글쇠 및 변수 옵션'의 '추가로 인식할 글쇠'에다가 space도 0x20으로 추가해 줘야 한다.)
스크린샷에서 보다시피, 여는 괄호 계열에 속하는 (<[{ 이런 것은 같이 눌러졌을 때 한글의 뒤가 아니라 '앞'에 붙도록 별도의 옵션을 줄 수도 있다.

이미 옆에 붙은 글자가 있는 상태에서 또 비한글 문자가 입력되면, 이 기능은 그것까지 추가로 붙여 주지는 않는다.
단지, 이미 붙었던 글자를 없애고 새로 들어온 문자로 대체하도록 할 수는 있다. '중복 입력 허용' 옵션은 그렇게 동작 방식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이 기능은 여러 글쇠의 keydown과 keyup을 감지해서 동작하기 때문에 고급 스키마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한글과 비한글이 섞인 가변 길이의 조합을 표시하기 때문에 문자 생성기도 '고급 입력기'와 연계해서 동작한다. 정말 말 그대로 고급스러운 기능인 셈이다. 기본 입력기만 사용하고 있을 때는 이 옵션이 사용 불가 상태로 표시된다.

4. 한글 입력 엔진 쪽의 변화

(1) 오토마타 중에서 'xxx 처리 후 조합 중단'을 의미하는 -6, -9 같은 마이너한 기능들이.. 조합이 완료된 한글 뒤에 쓰레기 문자를 삽입하기도 하던 버그를 고쳤다.
그리고 마지막 두 타의 입력 순서를 교환하는 꽤 어려운 -11도 복잡한 상황에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던 버그를 고쳤으며, 이 기능은 더 전문적인 특수글쇠에다가도 구현해 넣었다.

(2) 오토마타의 O 변수는 지금까지 입력 글쇠 또는 현재 조합 중인 한글의 종류가 두벌식인지 여부를 비트 1|2 플래그 형태로 갖고 있는데, 이 뿐만이 아니라 지금 한글 조합이 처음부터 사용자의 타자로 입력된 건지 아니면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 재현되었는지(4)에 대한 정보도 추가했다.

달라붙었거나 특수글쇠 같은 걸로 재구성된 조합에는 O 변수에 4라는 비트값도 추가되어서 나온다. 그래서 사용자가 처음 한글을 입력할 때는 모아치기 오토마타를 사용하는데, 달라붙은 한글에 대해서는 더 세밀하게 무한 낱자 수정을 사용한다거나 식으로 오토마타를 구성할 수 있다.

(3) C0|0x23이라고 직전 두 글쇠의 입력 순서를 교환하는 특수글쇠를 추가했다.
이건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ㄷ.ㅏ'를 '다.'로, 특히 두벌식 자판에서는 '뭥미'를 '뭐임'으로, '생리'를 '새일'로, 'ㅇ버'를 '업'으로 바꿔 준다. 물론 앞 글자의 조합 상태를 마음대로 넘나들고 바꾸기 위해서는 날개셋 편집기나 MS Word 같은 환경이 필요하다.

두벌식 자판은 구조적으로 동시치기를 구현하기 힘들다 보니, 순서가 뒤바뀐 오타는 이런 식으로 강제 보정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내가 테스트를 해 보니.. 순서가 뒤바뀌는 오타가 날 정도이면 그 오타 이후에도 타자가 여러 타가 진행되어 버리는 편이기 때문에 이런 보정 특수글쇠를 적절한 타이밍에 누르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기능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나으리라고 본다.

이전에 추가되었던 C0|0x22도 원래는 이걸 의도했었으나, 기술적인 난이도 때문에 기능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글쇠의 교환이 아니라 글자 전체의 위치 교환 수준에 그쳤었다.

5. 편집기의 미세한 버그 수정

이제 더 고칠 게 없을 거라 여겨지는 편집기에서 의외로 버그가 몇 개 발견되어 고쳐졌다. 그것도 직전 버전에만 있던 게 아니라 꽤 오래된 버그들이다.

  • 이전 글에서 언급한 대로, 24픽셀 글꼴을 사용하고 있는데 일본어· 중국어 IME의 조합을 나타내는 밑줄(점선이나 실선..)이 여전히 16픽셀 기준 높이로 취소선처럼 잘못 표시되던 문제를 해결했다.
  • 아주 미묘하고 발견하기 어려운 버그이긴 한데, 도구모음줄의 세로 폭이 실제보다 더 크게 잘못 계산되어서 아랫부분이 제대로 갱신되지 않고 가로줄 모양의 잔상이 생기는 걸 보신 분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런 현상이 절대로 발생하지 않게 조치를 취했다.
  • 이건 사용자의 데이터를 파괴할 수 있는 치명적인 버그이다. UTF-16LE가 아닌 다른 인코딩으로 파일을 저장할 때 크기가 수MB(대략 2MB) 정도를 넘어가면 그 2MB 정도의 경계에 속하는 줄이 낮은 확률로 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언제나 발생하는 건 아니고 좀 복잡한 조건이 우연히 충족됐을 때만 발생하기 때문에 문제가 이제야 발견되었다.

6. 사소한 UI 개선 사항

(1) 날개셋 제어판에서 어떤 글자판(입력 항목)에 어떤 입력 스키마와 어떤 문자 생성기를 배당할지--빈/기본/고급-- 지정하는 부분의 명칭은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이 입력 항목의 기반 루틴"이었다.

허나, '루틴'이라는 말이 엔지니어가 아닌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색하고 생뚱맞아 보여서 이걸 '기능 수준'이라고 바꿨다. '빈/기본/고급'이 기능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 '기술 기반', '기술 수준' 등의 용어도 고려하다가 최종적으로는 "기능 수준"이라고 말을 정했다.

또한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제공하는 날개셋문자의 종류로는 일반 문자, 세벌식/두벌식 한글 등이 있는데.. 특수글쇠의 명칭이 '특수 코드'라고도 혼용되고 있어서 이를 없앴다. 그냥 '특수글쇠'로 통일했다.

(2) 굉장히 사소한 변화이다만.. 날개셋 편집기에서 다수의 블록을 잡은 뒤 날개셋 외부 모듈로 텍스트 필터를 사용할 때, 블록이 4개까지만 인식되고 5개째 이상부터는 필터 변형이 되지 않던 문제를 해결했다.
이것도 거의 10년 가까이 전부터 변함없이 존재하던 문제였지만, 여파가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방치돼 있었다. 애초에 외부 모듈에서 텍스트 필터는 TSF A급 프로그램이 아닌 곳에서는 사용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존재감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날개셋 편집기가 바뀌어야 할지, 아니면 외부 모듈이 바뀌어야 할지는 난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Windows의 TSF 스펙이란 게 한 치의 모호성 없이 명확하게 정의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 모듈이 문제를 피해 가는 것이 당장 더 간단하기 때문에 그것부터 조치를 취했다.

일단 내가 주변에서 보는 텍스트 에디터나 워드 프로세서 중에서 불연속적인 다수의 블록을 잡을 수 있는 프로그램 자체가 날개셋 편집기와 MS Word밖에 없다. 하지만 Word는 여전히 외부 모듈에다가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블록의 내용을 넘겨주지 않기 때문에 이 기능이 직통으로 동작하는 프로그램은 같은 계열의 날개셋 편집기밖에 없다. 레퍼런스로 삼을 프로그램이 이것밖에 없으니 편집기와 외부 모듈 중 무엇을 고쳐야 할지를 판단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3) 이것도 아주 사소한 변화이긴 하다만,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모든 대화상자들을 꼼꼼히 검토했다. 그래서 버튼들만 쭉 나열돼 있는 곳에서 좌우 화살표를 누르면 성격이 같은 것들끼리 포커스가 순환되게 했다. 여기서 버튼이라는 건 '확인/취소' 같은 누르는 버튼뿐만 아니라 라디오· 체크 버튼까지 포함이다.
옛날에 이걸 한번 정비한 적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규칙이 깨진 부분이 다시 많이 생겨 있었다.

(4) 편집기의 '삽입-기타 가져오기' 대화상자도 해당 기능이 처음으로 도입됐던 3.0 이래로 변화가 없다시피했을 텐데..
콘솔 프로그램을 골랐을 때는 파일 경로와 인자, URL일 때는 주소.. 이렇게 각 방식에 필요한 추가 정보만 그때 그때 화면에 표시되게 외형을 바꿨다. 그 결과 대화상자의 크기도 약간 더 작아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7. 날개셋문자의 0문자 처리

끝으로.. 말이 나온 김에 이번 기회에 규약을 확실하게 정했다.
한글, 일반 문자, 특수글쇠 등.. 각 종류별로.. 종류만 그렇게 정하고 내부 코드값은 아무것도 없는 0인 날개셋문자를 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뭔가 크게 대단한 일이 발생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한글을 조합 중인 상태에서 0번 일반 문자가 입력되면 조합만 종료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문자는 그 정의상 한글 조합을 무조건 종료시키고, 0번 문자는 '문자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조합만 종료되는 효과가 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글 기반이면서 초중종 세 성분이 모두 0인 날개셋문자는 한글 조합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시킨다. 다만, 조합 중이던 한글의 타입은 바뀔 수 있다. 가령, 두벌식으로 '각'을 입력하고 나서 세벌식 기반의 0문자를 입력하면 조합 중이던 문자의 외형은 동일하지만 내부적인 속성이 두벌이 아닌 세벌로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두벌식 모음 'ㅏ' 같은 걸 입력하더라도 도깨비불 현상이 일어나서 '가가'가 되지 않고 그냥 '각ㅏ'가 된다.

이런 경우와 달리, 특수글쇠 0문자는 그 어떤 side effect 없이 언제나 현행 조합 유지인 것이 반드시 보장되게 했다.
글쇠 수식에서 조건부로만 무언가가 입력되고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는 지금 입력을 그대로 놔두고 싶으면 특수글쇠 0문자를 의미하는 C0|0을 배당하면 된다. 단, 텍스트 에디터의 입장에서는 아무 동작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조합 문자열을 덮어쓰는 동작이 발생하기 때문에.. 외형상 텍스트가 바뀐 게 없더라도 텍스트가 변경됐다는(modified) 판정을 받을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25 08:31 2018/06/2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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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엔 철도에서는 KTX가 최초로 개통했으며(4월 1일), 서울 시내에서는 버스 전면 개편(7월 1일)이 시행되어서 우리나라 대중교통에 굉장히 큰 변화가 생겼다.

먼 옛날에 서울 시내버스가 분홍색 도색이었던 것은 본인의 기억에도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실시간 위치 안내가 있나, 한눈에 보이는 노선도가 있나, 앱이 있나, 환승 할인이 되나, 도대체 뭐가 뭔질 모르겠으니, 서울에서 살지 않는 초행자에게 지하철 말고 버스는 도저히 쉽게 범접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던 와중에 버스 개편은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여러 마리의 토끼들을 한번에 잡으면서 가히 혁명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1) 운임 결제 수단

  • 선· 후불 교통카드(티머니!)가 도입되어 기존의 현금, 토큰(버스), 마분지(지하철) 승차권을 모두 대체했다.
  • 이 통합 결제 수단을 기반으로, 교통수단간 최대 5회까지 무료 환승과 거리 비례 요금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 지하철은 종전의 권역별 요금제에서 탈피하여, 최단거리 추정 원칙 하의 거리 비례 요금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분지 승차권 기반의 정액권이 없어진 대신, 카드 기반의 지하철 전용 정기권이 등장했다.

(2) 버스의 용도 세분화와 경쟁력 강화

  • 버스들은 부도심 구간 순환, 지선, 간선, 광역이라는 성격별로 선명한 빨노초파 4색으로 바뀌었다. 흰 바탕에 색깔 줄무늬 그런 거 없고 차체 전체가 같은 색으로 칠해졌다.
  • 그리고 버스들의 노선 번호도 서울을 7등분한 권역 번호를 기반으로 예전보다 훨씬 더 일관성 있게 바뀌었다.
  • 큰 간선 도로에는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생겨서 간선 및 광역 버스들의 주행 속도가 크게 향상되었다. 법적으로 고속버스가 전체 구간의 몇 % 이상을 고속도로로 다니는 버스이듯, 간선 버스는 노선 중 몇 % 이상을 반드시 여기로 다니는 버스로 정의시켰다.
  • 버스 회사들이 장사 잘 되는 노선에만 편중되어 양극화+치킨 게임 공멸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준공영제가 시행되었으며, 기존 여러 회사들을 통합한 컨소시엄 업체도 등장했다. 사기업 일색인 버스 업계에 '한국 BRT, 서울 교통 네트웍'처럼 뭔가 공기업 같은 이름의 회사가 이때 생겼다.

2004년 버스 개편 이전에도 대도시에는 초록색 차선으로 구분된 버스 전용 차로라는 게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중앙의 1차로가 아니라 제일 마지막 n차로에 있었다. 정차나 우회전 하는 차들 때문에 차로를 온전히 버스만을 위해 분리할 수가 없었으며, 24시간 내내 시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 비해서 중앙 버스 전용 차로는 굉장히 큰 변화였다.

그리고 덤으로..
마침 버스· 지하철의 요금도 올릴 때가 됐던지라-_-;; 버스 개편과 함께 그 당시 700원이던 기본 요금이 800으로 올랐다. 더구나 현금을 사용하면 100원이 또 추가되니 사실상 200원이 오른 셈이었다. 하지만 카드로는 환승 할인이 되니 체감 대미지가 많이 상쇄됐다.

1. 요금 관련

버스는 원래 한 번만 돈을 내면 끝인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환승 할인이란 게 도입되면서 내릴 때도 뭔가를 대고 찍는 형태로 바뀌었다. 찍고 내린 뒤에 후속 교통수단을 30분 이내에만 탑승하면 된다. 그것도 심야와 러시 아워에는 1시간으로 term이 더욱 관대해진다.

단, 지하철은 원래 자기 내부에서 환승 통로가 제공되고 있으니, 소프트 환승 예외가 인정되는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찍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 환승 할인이 인정되지 않는다. 옛날에 노량진 역이 1-9호선간 환승 통로가 없던 시절에는 소프트 환승이 됐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오로지 경의선 서울 역만이 남아 있다.

심지어 공항 철도 서울 역도 과거에는 소프트 환승이 됐다가 환승 통로가 개통한 뒤부터는 규정이 폐지됐다. 지하철 사이의 소프트 환승은 정말 불가피한 경우에만 인정한다는 것이 일관된 정책인 듯하다. 그러니 용산-신용산 같은 경우도 인정되지 않고 있다.
버스도 같은 번호의 버스를 내렸다가 다시 타는 것은 환승으로 인정되지 않고 재승차(= 기본요금 재부과)로 처리된다. 같은 번호의 반대편 방향이더라도 말이다.

버스는 지하철과 달리 한 카드로 여러 명이 함께 타는 '다인승'이 가능하다. 그리고 처음에 탈 때 한 번만 찍고 끝이던 과거 관행을 존중(?)하여, 비환승 1회만 탑승일 때는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도 언제나 기본 요금이다. 그리고 내릴 때 카드를 찍지 않아도 된다. 찍고 내렸다 하더라도 버스 1회 탑승은 기본 요금 거리를 초과해서 탔다 하더라도 거리 비례 요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교통수단을 2개 이상 이용하여 일단 환승 할인을 받았다면, 더 이용하는 교통수단 없이 버스에서 최종 하차를 앞두고 있을 때 카드를 반드시 찍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번 교통수단 이용은 끝을 알 수 없으니 최장거리를 뛴 것으로 간주되며, 기본요금의 두 배가량의 페널티를 받는다. 이게 거리 비례 요금제의 1회 탑승에서 이론적으로 산정하는 최대 액수이다.
그리고 경기도 시내버스들은 서울 버스 같은 유도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비환승 1회 탑승이더라도 내릴 때 카드를 반드시 찍어야 한다.

초기에는 빨간 광역 버스들은 환승 할인 대상조차 아니었던 것 기억하시는가? 2010년대가 돼서야 환승 할인이 적용되기 시작했으며 더 나아가 인천· 경기 소속의 광역 버스들도 여기에 동참했다.
철도계에서는 공항 철도와 각종 경전철(의정부, 용인)들도 처음에는 환승 할인을 해 주지 않고 버텼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 독불장군은 소탐대실을 초래한다는 것을 운영사들도 인정하였으며, 차라리 기본 요금을 추가로 걷을지언정 환승 연계는 다 되도록 시스템이 바뀌었다.

한편, 버스가 그렇게 바뀌는 동안 지하철에서는 지난 2009년, 지하철 9호선의 개통과 함께 서울· 수도권 지하철 전체에서 마분지 1회용 승차권이 완전히 폐지되어 사라졌다. 9호선은 처음부터 마분지 승차권 투입구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1회용 승차권도 반영구적으로 재활용 가능한 카드 형태로 바뀌었는데, 이건 하차 과정에서 집표를 동시에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집표를 유도하기 위해 승차권 구입 시에 부득이하게 보증금 500원을 추가로 걷게 되었다. 그래도 보증금이 카드의 제조 원가보다는 여전히 저렴하다.

모든 지하철역에서 돈거래를 하는(= 교통 카드 충전과 승차권 판매) 유인 창구가 사라진 것도 이와 비슷한 시기이지 싶다. 지금이야 최저임금 상승 때문에 주유소와 패스트푸드점들이 온통 무인으로 바뀌는 추세이나, 지하철역은 훨씬 더 전부터 단순한 업무는 모두 무인화되었다. 서울 지하철이 처음 개통했을 때는 지하철을 탈 때도 역무원이 승차권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서 개찰을 했는데 그와 비교하면 참 드라마틱한 변화이다.

2. 그때와 지금의 비교

버스 개편이 시행됐던 첫날에는.. 그냥 바뀐 것 자체 때문에 혼란스러워한 사람, 정치 성향 때문에 이 명박 서울 시장을 괜히 싫어했던 사람들까지 몽땅 난리를 쳤다. 쓸데없이 크게 적은 알파벳 기호 때문에 'X랄염병 버스', 그리고 버스들을 몽땅 중앙 버스 전용 차로에 집어넣었다가 생겨난 '버스철' 등 욕도 많이 먹었다.
하지만 미흡했던 점은 차차 개선되었으며, 버스 개편은 결과적으로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외국에서도 이 버스 개편 사례를 배우러 올 지경이 됐다.

지금은 버스 개편 초기 내지 당시 노선 설계자들이 의도했던 것만치 색깔별로 버스들의 성격과 용도가 분명하게 나뉘지는 못한 듯하다.
일단 노란 버스들은 전멸하다시피해서 남산 인근에 극소수 노선밖에 없으며, 탑승은커녕 구경조차 한 번도 못 해 본 사람들이 많다. 강남이나 여의도에 있었다고 하는데 난 직접 본 적이 없다. 이젠 차라리 마을 버스들에 노란색을 부여하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이다. 단, 노란 버스는 의외로 기본 요금이 초록· 파랑 버스와 같고 마을 버스보다 비싸다.

그리고 초록과 파랑 버스들의 구분도 굉장히 모호해졌다.
초록 버스 중에도 어정쩡한 장거리 노선이 있고, 파랑 버스 중에도 간선 도로를 막 많이 달리지 않는 게 있다. 원래 파랑 버스는 같은 구간 안에서도 정류장을 덜 서고 기본 요금도 더 비싸게 책정할 생각이었지만.. 거기까지는 맹렬한 반대 민원 앞에서 버로우를 탔다. 초록 버스와의 차별화를 포기하는 쪽으로 갔다.

버스 개편이 처음 시행됐을 때는 간선 버스에 굴절(일명 아코디언) 버스도 잠시 등장했다. 하지만 외제차는 아무래도 유지 보수가 불편하다 보니 곧 없어졌다. 서울 지하철에서는 반대로 국산 인버터를 장착한 차량을 도입했다가 잔고장이 너무 잦아서 도로 없앴는데 흥미로운 점이다.

2010년대에 와서는 굴절 대신 2층 버스가 서울시는 아니고 경기도 광역/급행/좌석버스 위주로 등장해 있다. x축을 늘리려다 말고 그 대신 y축을 선택한 모양이다. 하지만 얘도 외제차이고 잔고장에 취약해서 버스 회사들이 애로사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한번 수리를 맡기면 부품 구하는 동안 그냥 세월아 네월아여서..

버스의 노선 번호들은 자릿수도 서로 제각각 다르도록 굉장히 기발하게 정해져 있다.

  • 노랑 순환은 한 권역을 벗어날 일이 없고(한 자리) 종류도 다양하지 않으니(한 자리) 번호가 총 두 자리..
  • 초록 지선은 한두 권역을 다닐 수 있고(두 자리) 종류가 다양한 편이기 때문에(두 자리) 총 네 자리..
  • 파랑 간선은 서로 다른 권역을 누빌 수 있고(두 자리) 종류가 지선만치 많지는 않기 때문에(한 자리) 총 세 자리.
  • 빨강 광역은 총 네 자리이지만 첫 자리가 9로 시작..

서울 권역 번호는 1~7까지 있으며 0은 도심이다. 9는 광역 버스를 나타내는 접두사로 예약돼 있으니 결국 8이 하나 남는데.. 8xxx로 시작하는 번호들은 각종 맞춤형 지선 버스들을 가리키는 특수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N으로 시작하는 심야 전용 간선 버스는 2004년 버스 개편 당시에는 없다가 나중에 등장했는데, 심야에 귀가하는 직장인들의 교통비 절감에 큰 기여를 하고 있으며 반응이 좋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이 자정에서 새벽 1시로 운행 시간이 연장된 것도 2000년대 중반 비슷한 시기였지 싶다.

20세기에는 시내버스가 디젤 대신 천연가스 기반으로 바뀌고, 엔진이 차체의 앞이 아닌 뒤로 옮겨지고, 그것도 모자라서 저상 차량까지 등장한 것이 변화였다. 더 옛날에는 안내양이 없어지고 하차벨이 생긴 것, 시내버스에서 감히 에어컨 바람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큰 변화였다.

그랬는데 21세기에는 저런 어마어마한 변화가 생겼고 버스 위치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조회하면서 지루하게 기다릴 필요도 없어졌다. 버스 정류장에서 "xx번 버스 yy분 후 도착 예정, 현재 이 차의 내부 혼잡도는 zz" 이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

단순히 저 버스가 현재 어느 정거장에 있고 여기까지 몇 정거장 남았는지가 나오는 게 아니다. 그건 신경 쓸 필요 없고 아마 지금으로부터 몇 분 뒤에 도착 예정이라고 더 직관적인 정보가 제공되는데, 버스는 지하철보다 정시성이 훨씬 더 떨어지는 교통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이 예상 시각이 생각보다는 꽤 정확하다. 이건 그 버스의 이 구간 이 시간대에서의 평소 운행 통계 데이터를 토대로 아주 정교하게 산출된 값이기 때문이다.

또한, 운전석 주변이 온통 투명 플라스틱 차단막으로 둘러진 것도 내 기억이 맞다면 2010년대부터.. 버스 기사 폭행 사건이 몇 건 터진 뒤에 관련법이 강화됨과 동시에 시행되었지 싶다. 그 이전에는 그런 게 없었던 것 기억 나시려나 모르겠다.

버스 요금은 1970년대와 비교했을 때 평균 물가 상승률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많이 오른 요금에 속한다. 물론 처음에 워낙 저렴하게 시작하기도 했고, 또 그때에 비해 지금은 승용차와 지하철 때문에 버스의 수송 분담 비율 자체도 많이 내려가서 1인당 단가가 올랐으며, 지금은 비싼 대신에 과거에 누릴 수 없었던 여러 편리한 인프라를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앞서 얘기했듯이 버스 도착 예정 시각 안내만 해도 우리 생각보다 굉장히 대단한 기술을 동원하여 돌아가는 물건이다. 승객이 마냥 바가지만 쓰고 있는 건 아닌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통했던 KTX도 초기에는 욕을 많이 먹었다. 그래도 교통수단 시스템이 선진적으로 바뀌면서 공통적으로 '환승'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대중교통이 적절히 갈아타면서 spoke-to-spoke (거점 중심)가 아니라 일일이 point-to-point (문에서 문까지..)를 추구하다가는 속도와 접근성 어느 것 하나도 못 잡으면서 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고속철이야 1990년대부터 대놓고 벌어졌던 국책사업이다만, 서울 버스 개편이라는 엄청난 과업을 처음에 생각해 내고 추진한 관료와 학자와 엔지니어들의 노고를 치하해 주고 싶다. 참 큰일을 해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22 08:33 2018/06/2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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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라는 그룹이 부른 <칵테일 사랑>은 1994년 즈음에 국내 가요계에서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쳤던 명곡이다.
그때 본인은 초딩이었다. 신세대 X세대 이러고 있었고 PC 통신이 아직 활발하게 돌아갔으며, 개인용 PC는 486이다 펜티엄이다 멀티미디어다 이러던 시절이었다.

칵테일 사랑은 몽환적인 반주와 적당히 아름다운 멜로디, 서정적인 가사, 그리고 뭔가 하늘의 목소리 같은 노랫소리가 어우러져서 가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 당시 음반에는 동일곡의 아카펠라 버전도 수록돼 있었다. 마치 붉은국과 맑은국, 후라이드와 양념 차이 같은데, 반주를 뺀 노래 음원에서는 '~팝 ~팝 ~드드드 두두' 이러는 비트박스(?)도 더 실감나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명곡을 만들어 냈으니 음반이 몇 장 팔리고 요즘 같으면 유튜브 조횟수가 얼마가 나오고, 작사· 작곡자와 가수는 떼돈을 벌기라도 했을 것 같은데 의외로 그런 소식은 별로 들리는 게 없다. 그룹 마로니에와 가요 칵테일 사랑은 관계자들이 얽힌 내력이 참 복잡하기 그지없다.

마로니에는 멤버들의 세대 교체가 잦았다. 칵테일 사랑은 초창기 창립 멤버들의 작품으로, 김 선민 작사· 작곡이고 최 선원· 신 윤미 노래이다. 우리가 아는 원곡의 녹음은 1993년 초에 행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곡이 훗날 이 정도로 대히트를 칠 줄은 노래를 만든 사람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녹음을 마친 뒤 가수 구성원이 공중분해돼 버렸다. 최 선원은 소속사를 변경하고 떠났으며, 신 윤미는 더 큰 물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며 미국으로 유학도 아니고 아예 이민을 떠났다.

그러니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인 김 선민은 다른 멤버를 뽑아서 칵테일 사랑의 얼굴마담 역할을 시켰다. 백 종우(남성)와 김 민경· 김 정은(여성). 이 트리오가 TV 출연도 하고 뮤직비디오 녹화도 했다.
곡의 퀄리티에 비해 굉장히 뜬금없고 촌스러운 티가 나는 그 동해 바닷가 뮤비 말이다. 그냥 가사 내용대로 그대로 길거리와 카페를 배경으로 넣기만 해도 저것보다는 나은 작품이 나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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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영상에서 유난히 예쁜 미인이다 싶은 사람이 김 민경이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CF 모델 출신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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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람이 바뀌었는데, 여기서 마로니에는 도덕적으로 좀 지탄 받을 짓을 했다.
립싱크야 아직 그때까지는 관행이었고 신규 대체 멤버들 역시 실력이 전혀 없는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음반의 노래와 얼굴마담들 라이브가 퀄리티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리고 출처 명시 없이 기존 신 윤미의 결말부 코러스 부분까지도 막 도용해서 내보냈다. 조가 G에서 Ab로 올라가고 "마음~ 울적할 때에~~ 거리를 걸어 보고 취해도 보고~~ 우우우~ 으아아아~~" 그 클라이막스 말이다.
그러니 진짜 가수인 최 선원· 신 윤미가 자기 정체를 다시 밝히고 저작권 소송을 걸어서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룹 마로니에는 '칵테일 사랑'만을 남긴 채, 큰 주목을 못 받으면서 대중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6~07년쯤엔.. 마로니에의 초창기 멤버들은 어찌 됐는지 모르겠고, 백 종우(마로)가 한 타이밍 더 나중에 들어왔던 여성 멤버인 김 지영(파라)를 주축으로 해서 '마로니에 걸즈'라는 여성 듀엣 그룹을 결성했다. 백 종우는 기획· 프로듀싱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다른 여성 가수를 하나 더 충원해서 말이다.

그리고 2011년, 마로와 파라는 오랜 교제 끝에 결혼했다. 칵테일 사랑을 리메이크 해서는 부부가 같이 종종 매스컴에 출연해서 불렀는가 보다. 보기 좋은 커플이긴 하지만 이와 별개로, 리메이크한 곡이 원곡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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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 윤미 씨도 미국 간 지 10수 년 만이던 2005년,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해서 자기가 직접 칵테일 사랑을 다시 부른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도 원판 목소리가 어딜 가지는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결말부의 힘찬 코러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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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여곡절로 인해, 칵테일 사랑은 처음 노래를 부른 여자, 원곡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여자, 그리고 지금 마로니에의 후예를 자처하는 그룹의 여자 멤버가 모두 다른 인물인 노래가 됐다. 근본적으로는 오리지날 가수가 노래에 대한 권리를 확실하게 챙기지 않고 일찍 잠적해 버려서 벌어진 해프닝이라 하겠다. 그랬는데 곡이 너무 대박을 쳐 버리고, 이게 아직 국내 가요계의 후진적인 관행이던 저작권 의식이나 립싱크하고도 얽혀서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칵테일 사랑과 비슷한 시기에(1993~94) 히트 쳤던 국산 명작 게임인 미리내 소프트 "그 날이 오면 3"이 20년 뒤에 "드래곤 포스"라는 모바일 게임으로 리메이크된 걸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아울러, 드라마 모래시계라든가 더 클래식 '마법의 성'도 비슷한 시기에 히트 쳤던 작품들이며 추억거리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19 19:35 2018/06/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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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

1970년대 중반, MS-DOS의 전신격인 CP/M 때부터 있었던 완전 초창기 실행 파일 포맷이다. 고안자는 개리 킬달.
엄밀히 말해, 얘는 파일 포맷이라 할 것도 없는 쌩 메모리 이미지 덤프였다. 그 어떤 고유한 헤더나 메타데이터도 없이 그냥 곧장 기계어 코드와 데이터가 쭉 이어질 뿐이었다. 코드와 데이터는 모두 64KB 단일 세그먼트에 묶여 있었고, 메모리 주소의 첫 256바이트는 시스템 용도로 예약되어 있어서 프로그램이 사용할 수 없었다.

확장자가 com인 실행 파일은 그냥 명령 프롬프트에서 돌아가는 간단한 유틸밖에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겨우 몇만 바이트 남짓한 com 형태로 그래픽 모드에서 실행되는 게임도 많이 나왔었다. 그래픽이라고 해 봤자 320*200 4색 CGA 수준이긴 했지만.. Alley Cat처럼 말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컴퓨터의 대세가 8비트에서 16비트로 넘어가고 성능과 메모리 용량이 향상되자, 이 형식은 큰 프로그램을 만들기에는 너무 비좁아졌다. 그래서 확장할 필요가 생겼다.

2. MZ EXE

1983년, MS-DOS 2.0에서 최초로 도입됐다. 그 전의 1.0은 파일 시스템에 서브디렉터리라는 게 지원되지 않았으며 실행 파일도 아직 COM밖에 없었다.
EXE는 단일이 아닌 다중 세그먼트(특히 코드 영역과 데이터 영역의 분리)를 도입하여 64KB 공간 한계를 얼추 극복했다. 메모리 모델이니, far near 포인터니 뭐니 하면서 일이 굉장히 복잡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또한, 멀티태스킹 환경에 대비해서 재배치 정보도 도입했다. 이제 좀 운영체제에서 파일을 있는 그대로 메모리에 올리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가공과 상대 주소 보정을 하는 loader가 필요해졌다.

오늘날 모든 EXE들은 앞부분에 MZ라는 문자로 시작하는 간단한 헤더를 갖추고 있다. MZ는 EXE 파일 포맷의 설계자인 당시 마소의 프로그래머 Mark Zbikowski의 이니셜이다! zip 압축 파일의 식별자인 PK (개발자 필립 카츠)만큼이나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파일 포맷 식별자 이니셜일 것이다. MZ 저분은 미국 토박이라고 하지만, 이름으로 보아하니 러시아 계열 이민자의 후손인 듯하다.

비록 도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Windows용 실행 파일들은 지금까지도 과거 호환을 위해서 앞부분에 최소한의 MZ EXE 헤더 껍데기는 넣어 놓는 게 관행이 돼 있다.
한편, 32비트 이후부터는 프로그램들이 옛날처럼 다시 단일 세그먼트 기반 flat 모델로 돌아갔다. 단지, 그 세그먼트의 이론적 최대 크기가 꼴랑 64KB이던 것이 4GB로 왕창 커졌을 뿐이다.

3. NE (new)

1985년에 발표된 Windows 1.0과 함께 등장한 포맷이다. 도스와는 다른 방식의 API 호출, exe와 dll의 구분, 표준화된 리소스와 버전 정보 데이터, 함수의 import와 export 내역처럼 도스용 exe에는 없던 추가적인 정보가 많이 필요해진 관계로 새로운 실행 파일 포맷을 또 제정한 것으로 보인다. 단, 맨 앞부분은 그냥 도스 EXE처럼 시작하고, 새로운 방식은 다른 오프셋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NE 다음의 PE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NE는 Windows뿐만 아니라 마소에서 1986년경에 잠시 만들다 말았던 일명 '멀티태스킹 MS-DOS 4.0'(일반적인 그 MS-DOS 4.0 말고)용 실행 파일 포맷으로도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스는 텍스트 기반 환경이지만 Windows는 GUI 환경이고, 16비트 Windows에는 딱히 콘솔(명령 프롬프트)이라는 서브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바이너리 수준에서의 파일 포맷만 일치할 뿐, 양 플랫폼의 실행 파일을 딴 데서 원활하게 실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Windows 1.x부터 3.x까지 16비트 시절에 실행 파일 포맷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단, 2에서 3으로 넘어가던 시절에는 Windows에 386 확장 모드라는 게 도입되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종전의 리얼(real) 모드뿐만 아니라 보호(protected) 모드에서도 잘 실행된다는 보증 플래그가 추가되었다. 평범한 Windows API만 쓴 프로그램이 여기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말이다.

1980년대 왕창 옛날에 만들어졌던 일부 Windows용 프로그램들은 95뿐만 아니라 3.x에서 실행해도 "구버전용임. 여기서도 일단 실행은 되지만 케바케이기 때문에 온전하고 정상적인 동작을 기대할 수 없음. 최신 버전을 구해서 쓰셈.." 이런 주의 메시지가 뜨는 게 있었는데, 바로 이 플래그가 없이 옛날 방식대로 빌드된 프로그램이어서 그렇다.
특히 대화상자가 캡션(제목 표시줄)이 없이 표시되는 프로그램을 보면 옛날 냄새가 풀풀 난다. 캡션은 popup 윈도우가 아닌 overlapped 윈도우의 전유물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NE 방식의 실행 파일에는 각종 코드와 데이터, 리소스들이 resident, non-resident, discardable 이런 식으로 속성 구분이 있었다. 컴퓨터에 메모리는 왕창 부족한데, CPU와 운영체제 차원에서의 가상 메모리 지원이 없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 멀티태스킹을 구현하려다 보니, 돌아가는 방식이 가난함과 처절함 그 자체였다.
읽어들인 데이터는 언제든지 주소가 재배치되거나(단편화를 막고 연속된 많은 영역의 메모리를 확보할 수 있게), 삭제되어서 디스크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반드시 메모리에 언제나 불러들여 놓는 데이터는 성능 차원에서 정말 중요한 것에만 한해서 지정해야 했다.

4. PE (portable)

1993년에 등장한 Windows NT 3.1에서 첫 도입된 또 다른 새로운 실행 파일이다. AT&T에서 오래 전에 개발한 COFF라는 오브젝트/라이브러리 파일 포맷의 연장선상에 있다. 아마 Windows NT 개발진의 출신 배경이 그쪽 계열 연구소여서 이런 포맷에 친숙하지 않았나 싶다. 덕분에 마소에서 개발하는 개발툴들은 16비트 시절에는 obj/lib의 포맷으로 인텔에서 개발한 OMF 방식을 썼지만 32비트부터 COFF로 갈아탔다. 그리고 exe/dll을 로딩하는 방식도 쿨하게 memory mapped file 방식으로 바꿨다.

PE는 현대적인 32비트 가상 메모리 환경에 맞춰졌기 때문에, 16비트 NE처럼 수동 메모리 관리를 염두에 둔 지저분한 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그먼트 대신에 코드, 데이터, 리소스 등의 용도별 섹션이 있고, 이들 섹션은 간단한 문자열 태그로 구분하기 때문에 섹션의 추후 확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헤더에 CPU 식별자도 넣어서 굳이 x86뿐만 아니라 다른 CPU 아키텍처의 실행 파일도 이 방식으로 기술 가능하게 했다.

훗날 64비트 CPU가 등장하면서, 아니 정확히는 1990년대 말에 IA64의 출시를 염두에 두고 PE의 기본 틀은 동일한데 메모리 주소나 몇몇 size 필드만 4바이트에서 8바이트로 확장된 일명 PE+ 규격이 나왔다. 그래도 기존 32비트에서도 얘를 알아보고 최소한 "에러 메시지+실행 거부" 정도의 대처는 할 수 있다.
리소스는 64비트도 32비트와 바이너리 차원에서 포맷이 완전히 동일하다. 이게 무슨 기계어 코드도 아닌데 필드 크기가 굳이 64비트 크기로 확장됐다거나 한 건 없다. 문자열이 유니코드 기반으로 바뀌었으니 16비트 방식과는 호환되지 않지만 32와 64비트끼리는 호환된다.

오늘날은 재래식 네이티브 코드뿐만 아니라 닷넷 기반(가상 머신), 그리고 UWP용(일명 metro) 앱 같은 것도 나왔지만, 이들도 실행 파일들의 기본 골격은 PE로 동일하다. 그 안에서 읽어들이는 시스템 DLL과 구동 방식이 서로 차이가 날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17 08:36 2018/06/1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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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강의 성수대교는 지금이야 빨강 도색의 8차선 교량이지만 20세기에는 하늘색 도색의 4차선 교량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1994년 10월 21일, '경찰의 날' 기념일 당일 아침에 상판 하나가 그냥 뚝 무너져서 아래로 떨어지는 초유의 붕괴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똑같이 상판과 함께 밑으로 떨어진 피해자라도 추락 타이밍이 어떤지에 따라 운명이 너무, 완전히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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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경들이 타고 있던 소형 승합차는 상판과 같이 거의 동시에 꽤 자연스럽게(?) 떨어진 덕분에 전경들 전원이 착지 타이밍 때 경상 정도밖에 입지 않았고 전원 무사했다. 심지어 외관상 차량의 손상도 별로 없었다.
아무리 같이 떨어졌다고 해도 차량 자세만 전방으로 유지됐을 뿐 엄연히 자유낙하이고, 엘리베이터가 수십 미터 높이에서 줄 끊어져서 추락한 것과 동일한데.. 그래도 차의 모든 타이어, 서스펜션, 시트 등이 충격을 고르게 흡수해 준 덕분에 탑승자들이 살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2) 그 반면, 같이 나란히 추락했던 옆의 승용차는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강물로 돌진해서 침수됐다.
다른 어떤 승용차는 상판의 붕괴 직후에 다리에서 수직으로 추락해서 물에 빠졌다. 이건 차량 전방의 엔진룸이 수면 아래를 바라보는 자세이니 일종의 정면충돌 교통사고와 같은 양상이 됐다. 차량과 탑승자가 온전할 수 없었다.

(3) 최악의 경우는 잘 알다시피 16번(오늘날 145번의 전신?) 시내버스였다. 붕괴 부위와 다리 쪽으로 반반씩 걸쳐 있다가 결국은 무게 중심이 앞으로 기울면서 전복된 채로.. 천장이 아래를 향하는 자세로 추락해 버렸다.
차량은 가히 성냥갑처럼 구겨졌고, 승객 대부분이 저 높이에서 머리 부분부터 땅에 부딪혔으니 몰살을 면치 못했다. 전체 사망자 32명 중 2/3인가 3/4가 이 버스 승객이었다.

이것 때문에 성수대교 붕괴가 더욱 비극적인 참사가 되었다. 훗날 2010년 7월, 인천대교 마티즈 김 여사 사고 때도 공항 리무진 버스가 뒤집힌 채로 다리 아래로 추락해서 승객이 12명이나 사망한 것이 위의 사고 형태를 재현했다.
이렇게 차량들의 추락 타이밍이 엇갈리는 편인데.. 그래도 다리 아래의 수심이 얕아서 상판이 침수되지 않고 마치 섬처럼 육지를 만든 것, 그리고 차량과 차량끼리 부딪쳤거나 심지어 저 시내버스가 아래의 다른 차량 위로 떨어졌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성수대교보다 더 옛날 1986년 1월,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가 폭발했을 때에도 승무원들은 그 폭발과 화재에 휘말려서 공중에서 전원 즉사한 게 아니었다. 승무원 탑승 구역은 그 와중에도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들은 성층권에 진입한 15km에 달하는 높이에서 거의 2분 30초 동안 자유 낙하하다 해수면에 부딪힘으로써 추락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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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아냐고? "이 아줌마 콧구멍에서 반점이 나왔어..."는 아니고, 일부 승무원(2명? 3명?)이 착용한 헬멧에서 비상용 산소 마스크가 사용된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심장이 뛰는데, 시퍼렇게 산 채로" 우주선의 잔해와 함께 지상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이었다..;;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물이라 해도 그냥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거나 별 차이 없는 지경이었다.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낙하산 같은 게 아닌 이상, 그 어떤 어설픈 보호 장비로도 이들의 생명을 구할 수 없었다.
다만, 아까 성수대교처럼 어지간한 한강 다리 높이에서 사람이 뛰어내리면 추락 자체의 충격보다는 그냥 "입수 후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로 인한 기절 + 익사"의 수순으로 죽는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하고 있을 때는 이론적으로는 바닥에 누운 채로 한 손은 이마를, 한 손은 뒤통수를 받치고 있는 게 제일 안전하다.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누울 공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게 현실적인 문제이긴 하겠지만... 추락 순간에 점프 같은 건 가능하지 않으며, 그러다 더 다치니 시도도 하지 말 것.

Posted by 사무엘

2018/06/15 08:36 2018/06/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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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본인도 좀 흔치 않은 협동과정 대학원에 소속돼 있긴 하다만..
서울대에 있는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은 더 독특한 곳인 것 같다.

박사 졸업생 중에.. 문 중양 교수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학부이지만 이쪽으로 전공을 완전히 바꿔서 현재는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물론 조선 및 한국의 과학사 쪽에 특화돼 있다. 국사 연구에도 이공계들이 좀 많이 와야 한다고 호소하던 허 성도 전 서울대 중문과 교수 같은 분이 좋아할 듯하다.

장 대익 교수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학부인데 대학원을 가서는 진화생물학, 인지과학 이런 걸 쭉 파다가 어쨌든 역시 서울대 교수가 됐다. 다만 여느 교수들과는 달리 전공의 스펙트럼이 막 깊고 좁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분은 열렬한 다윈 매니아이고 창조과학의 맹렬 안티 저격수이기도 하다.;;

김 태호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 학부 졸업 후에 이 분야로 진로를 옮겼고, 현재는 전북대 교수 겸 '한국 과학 문명학 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세벌식 자판 사용자이고, 작년 가을엔 연세대에서 무려 한글 기계화의 역사에 대해 강연도 했다.
강연 중 화면을 보니 직결식 글꼴도 잠시 나오던데.. 청중 중에 그 직결식 글꼴을 만든 사람도 있었다는 걸 과연 알았을지 궁금하다.

2. 멋있는 법조인

  • 한 문철: "예상할 수도 없었고 피할 수도 없었던 사고. 100대 0입니다!" (이 판정을 보험사 직원들이 싫어합니다)
  • 천 종호: "안 돼 안 바꿔 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 그럼 니 돈 주면 되지 왜 남의 돈을 뺏어 주...나!!! 공부만 잘하면 되나?"
  • 박 준영: 명대사 때문은 아니고.. 그야말로 한국판 엔자이 사건들을 전부 들춰 내서 피고인들의 누명을 벗겨 줬거나 그러려고 애쓰고 있구나.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2007년의 수원 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그리고 무기수 김 신혜 사건까지 다 동일 인물인 줄은 몰랐다.

그런데 글쎄, 아무리 사회 약자를 위해서 발벗고 일한다 해도, 변호사까지 돼서는 사무실 월세도 못 내고 파산에 스토리펀딩 운운하는 건 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좀 언플 오바 같다. 선장이 자기 할 일 다했고 다른 선원과 승객들 다 대피시켰고, 자기도 충분히 구조되고 탈출할 수 있는데도.. 선장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고 객기 부리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데..
뭐 종합적인 평은 지켜봐야 할 일이고.

다만, 머리는 좋아서 사시까지 붙었는데 그 뒤로 사상은 이상해지고 맛이 가서 6· 25가 무슨 침인지 모른다거나, 자기 나라 정체성 부정과 적화 부역에 앞장서고 있는 이상한 법조인들과 그거 출신 정치인들은 하나도 멋있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징그러운 괴물처럼 보인다.

3. 우주 개발 관련 멋진 말들

  • 세상에 불가능한 게 무엇인지를 말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요, 내일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 로버트 고다드
  •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1960년대 안에 달에 갈 것이고,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 케네디 대통령

케네디는 그렇다 치더라도, 옛날에 로버트 고다드도 이렇게 멋진 말을 남겼는 줄은 지금까지 몰랐다. 나이키 광고 카피보다 훨씬 더 고퀄이다.
게다가 저 말은 고다드가 액체 연료 로켓을 개발해서 유명인사 되고 떼돈 번 뒤,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면서.. 밥 로스 화가가 "참 쉽죠?" 이러듯이, 기자들이나 후학 앞에서 덕담이랍시고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 말은 고다드가 1904년, 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덕분에 그 당시 관행이었던 졸업생 대표 고별 연설 때 나왔다..;; 질병 때문에 학교를 늦게 들어가서 동기들보다 나이가 두 살 정도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말 후덜덜이다.
참고로 서 재필도 1889년에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식 때 고별 연설을 한 바 있다. 공부 하나는 정말 겁나게 잘했는가 보다. 그리고 같은 고졸이어도 100년 전의 고졸과 지금의 학력 인플레 하에서의 고졸은 같은 레벨이 아니었을 거라는 게 실감이 간다.

물론 세상에는 엄연히 인간의 힘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도 있으며,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까라면 까"가 많은 폐단과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만으로 신 앞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인간의 정상적인 지적 활동과 노력이 몽땅 쓸데없는 바보짓인 것도 절대 아니다. 최소한의 상식적인 분별력과 판단력이 있으면 21세기가 다 돼 가지고서 달 착륙 자작극이네 NASA 음모론 그딴 소리는 절대 나올 수 없다.

  • 아폴로 13 (1995): Hello, Houston. This is Odyssey. It's good to see you again.
  • 에어 포스 원 (1997): Liberty 2-4 is changing call signs. Liberty 2-4 is now Air Force One!
  • 라이터를 켜라 (2002): "열차가 부산역에 멈춰 섰다. 다시 반복한다. 열차가 부산역에 안전하게 멈춰 섰다."

다들 비슷한 형태의 결말부이긴 한데,
1이 제일 스케일 크고 감격스럽고 멋있고.. 2는 그냥 통쾌하고 정의 실현을 대리 만족한 정도이고, 3은... 좀 병맛스럽다.

4. 경찰에 대한 뻔한 이미지

법조인 다음으로 경찰을 살펴보면.. 영화에서 경찰이 묘사되는 모습을 보면 뭔가 판에 박힌 패턴이 있는 것 같다.
먼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꼭 나온다. <아저씨>에서는 차 태식에게 "이 아줌마 콧구멍에서 반점이 나왔어. 뭔 얘긴지 알아?"라고 열과 성의를 다해 심문을 하던 박 형사가 있으며,
<범죄도시>에서 '진실의 방'을 빤히 쳐다보던 피의자에게 "뭐 보노, 새꺄? xx 터쟈뿔라.."라고 일침을 놓는 오 동균 형사가 있다. 주연 못지않게 아주 웃겼다.

그리고 미국물의 경우, 경찰은 근무 중에 끼니를 때우기 위해 꼭 도넛을 먹고 있다. 주토피아에서 아주 잘 묘사돼 있지만 꼭 주토피아만 그런 건 아니다.
일본의 경우 도넛 역할을 하는 게 컵라면이라고 한다. 옛날에 강력 사건이 벌어져서 단체로 수색 작업에 나선 경찰들 모습이 매스컴을 탔는데.. "어, 그런데 저 경찰들이 먹고 있는 건 뭐야?" 이런 식으로 마케팅이 돼서 컵라면이 대박을 쳤다고 한다.

옛날에는 설거지를 해도 서양에서는 동물인 해면을, 동양에서는 식물인 수세미를 썼다고 하는데 문화권별로 재미있는 차이점이 보인다.

5. 한국, 일본, 미국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 군대를 일정 기간 강제로 의무적으로 다녀와야 하는 나라 vs
  • 국제법상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 (침략 전쟁, 해외 파병, 무기 수출 같은 거 할 수 없는 자위대만으로..)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 이 좁아 터진 땅덩어리 하나 겨우 지켜 내느라(그것도.. 같은 언어 쓰는 명목상의 동족으로부터) 천신만고 겪은 나라, 육군이 비대한 나라 vs
  • 2차 대전, 6·25,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 등등 세계 방방곡곡 남의 나라의 평화를 지키느라 애쓴 자국 군인의 노고를 치하하는 나라, 해군이 비대한 나라

완전 극과 극이다.

6. 괴담과 도시전설

그러고 보니.. 내가 초딩 정도로 어렸던 시절엔 도대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이상한 괴담, 도시전설 같은 게 그리도 많이 나돌았다.
밤이 되면 학교 안의 무슨 동상· 석상이 살아 움직여서 책을 읽는다네, 눈에서 빛이 난다네 하는 거,
옛날에 조폐공사 사장의 딸 '김 민지' 양이 끔찍하게 유괴 살해 당해서 현행 동전 디자인에 그 아이의 족적이 곳곳에 들어갔네 어쩌네 하고.. ㅠㅠ

공포의 삐에로 인형의 섬뜩한 한 마디 "또 둘이네."라든가..
그러니 <공포특급>, <오싹오싹 공포체험> 이런 책도 인기가 많았다. 요즘은 국내에 암약 중인 "조선족 장기 적출단의 실체" 같은 게 괴담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옛날에 관련 중국· 홍콩 영화가 인기를 끌기라도 했는지, '강시'라고 팔· 다리의 관절이 굽지를 않는 청나라 복장의 좀비? 드라큘라?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이놈한테 당하지 않으려면 숨을 쉬지 않고 꾹 참아야 된댄다. 쟤는 모기처럼 이산화탄소를 감지하는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끝으로, 초딩 시절에는 정말 몸서리칠 정도로 무서웠던 의료 통과의례가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포경수술이요, 다른 하나는 주사의 끝판왕 일명 '불주사'라고 불리는 결핵 예방 접종이다.
세월이 흘러 포경수술은 굳이 모든 애들이 반드시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대세가 굳어져 가고 있다.

이거 원조는 유대인의 표적으로서 성경에서 당당히 언급되는 할례이다. 그런데 어느 미개한 곳에서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를 대상으로 소중한 부위에다가 무슨 짓을 하길래 거기에다가도 할례라는 말을 붙이고, 그러다 애 잡거나 성 불구로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불주사라는 용어 그 자체는 옛날에 물자가 부족해서 주사 바늘을 일회용으로 못 쓰고 알코올 램프 불꽃으로 소독해서 재활용하던 관행에서 유래되었다(흐음, 알코올 자체도 소독제인데..??). 하지만 주사 바늘은 사용 과정에서 바늘 끝이 미세하게 손상되고 뭉툭해져서 관통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굳이 위생과 감염 문제가 아니더라도 재사용해서 좋을 것은 전무하다. 마치 아날로그 신호나 JPG 그림이 열화되는 것처럼 성능이 떨어지게 된다.

내 기억으로 결핵 예방 접종(BCG)은 처음에 어깨가 아닌 팔뚝에 준비 주사를 놔 보고 며칠 뒤에 거기가 부풀어올랐는지의 여부에 따라 후속 접종을 하거나 안 했지 싶다.

엄청 옛날에 행해졌다고 전해지는 천연두 예방접종은 더 뜨겁고 따갑고 아팠는지 모르겠다만, 그 시절 얘기가 와전되고 과장되어.. 결핵 예방 접종까지도 무슨 담배빵을 지지기라도 하는 듯이 '불주사'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선사했던가 보다.

지금도 흉터가 남는 주사식 결핵 예방 접종 자체는 시행되고 있는가 보다. 그리고 옛날에 초등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씰도 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자는 취지로 판매? 강매되었던 것인데 요즘은 옛날 이야기가 돼 간다. 차라리 카톡 이모티콘 같은 걸 이런 형태로 판매하는 게 더 나을지도..?

7. 흔한 오류

내 경험상, 가방끈 길고 머리에 든 게 많은 사람이 특별히 빠지기 쉬운 위험, 오류 내지 함정이란 별 거 아니다.

(1) 자기가 배우고 아는 지식이나 이론이 실제로 유효하게 적용되는 조건, 문맥, 한계, 범위를 분간하지 못하고 아무 데서나 나대는 것.
(2) 자기가 이 분야에서 전문가이니까 딴 분야에서도 전문가일 거라고 착각하는 것. 위의 1번이랑 비슷하지만 좀 더 고의적이고 적극적인 맥락에서다.


이 함정에 빠지면 그 누구라도 헛똑똑이 바보가 될 수 있다. "세상에 나보다 더 겸손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내지 "저는 평생에 거짓말이라고는 전혀 한 적 없습니다"처럼 되고 "난 오로지 완벽한 사람들로만 구성돼 있는 교회에 다니고 싶어" 같은 망상에 빠지게 된다.
마음 상태 문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능도 전혀 개입하지 않는 건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12 08:33 2018/06/1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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