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메라, 애니메이션

요즘은 스마트폰의 카메라에 렌즈가 하나가 아닌 둘이 달려서 나온다고 한다. 음향은 진작부터 2채널 스테레오가 보편화되긴 했다만, 영상도 사람의 두 눈처럼 두 렌즈의 결과를 적절히 합성함으로써 시야각과 광량을 더 개선하고 더 나아가 공간 인식에도 참고하려는가 보다.

총으로 치면 총열이 두 개 달린 초강력 샷건 같다. 비록 카메라는 셔터를 누를 때 반동이 발생한다던가 하지는 않지만, 촬영도 조준 잘해서 흔들리지 않게 찍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뭔가 사격과 비슷한 면모가 있어 보인다.

총이 휴대성을 강조하느라 총구가 너무 작으면 화력이 감소하며, 총열이 짧으면 명중률도 급격히 떨어진다. 이와 비슷하게 렌즈도 너무 작으면 화각이 감소하고 화면 가장자리가 휘는 왜곡이 심해진다. 초소형 몰래 카메라로 열악하게 찍은 영상일수록 그런 현상이 더 심한 걸 볼 수 있다.

동영상을 촬영하는 카메라는 그냥 자동화기를 넘어서 기관총 정도 될 텐데..
이게 실사 영화를 만들 때만 쓰이는 건 아니다. 실사 영화 그림을 토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하는데, 한장 한장 보면서 2D 그림으로 일일이 베껴 그려 넣는 기법은 (1) 로토스코핑이다. 그리고 실사이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찰흙 인형이나 레고 구조물을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이동시키고 바꾸면서 찍는 건 (2)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다.

(1)은 애니메이션으로 실사에 준하는 자연스러운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고 (2)도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장면을 실사로 뽑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긴 하지만, 노가다 양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3D CG 기술이 발달했고 인건비 절약이 중요한 오늘날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3D CG로 오히려 2D 만화 그림체를 흉내 내고, 없는 찰흙 인형을 만들어 내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격과 카메라 얘기가 동시에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스마트폰이 아주 가끔은 오발신(?) 현상이 있는가 보다.
전화기가 평소에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는 분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아서 응답했는데 저쪽에서는 배경음만 들리고 아무 말이 없다.
나중에 그 사람에게 직접 묻거나 다시 전화를 해 보면 자기는 그때 전화를 한 적이 없댄다.

자동차가 급발진 의심 증세가 있고 총기도 오발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스마트폰도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평소에 전화기를 잠금 해 놓고 지내지 않나? 어떻게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오발신이 될 수 있지? 궁금하다.

2. 총은 살살 쏘면 맞아도 안 아파?

  • 총은 살살 쏘면 맞아도 안 아파~!
  • 하드디스크는 데이터를 엄청 많이 집어넣게 되면 무게가 늘어난다.
  • 에어컨은 살살 약하게 틀면 전기를 덜 먹는다.

이런 예가 또 뭐가 더 있을까?
으음..; 뭐랄까 "무거운 사람이 가벼운 사람보다 같은 높이에서 더 빨리 떨어진다" 같은 급의 발상 같다.
기초 과학 법칙에 극도로 무지하거나, 현대 문명의 이기들의 기본적인 동작 원리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이게 다들 그냥 요술상자 매직· 블랙박스인 줄로만 아는 기계치라면 이렇게 순진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영구기관 같은 사이비 유사 과학 데에도 낚이기 쉬울 것이다. 사실, 마찰이 아주 작아서 굉장히 오래 술술 잘 돌아가는 듯이 보이는 기계만 해도 일상적으로 보기는 쉽지 않으며, 영구기관인 걸로 착각하기 쉬우니 말이다.

에어컨이 전기를 덜 먹게 하려면 송풍기의 강도를 낮출 게 아니라 설정 온도를 높이거나, 아예 냉방을 끄고 송풍 모드로만 바꿔야 한다. 총을 살살 때리는 게 가능한 몽둥이의 연장선으로 생각한다거나, 에어컨을 뭔가 최첨단 고성능 선풍기의 연장선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비행기는 고도를 낮춰 착륙하려면, 기수를 아래로 향하게 할 게 아니라 위로 들고 엔진 출력이나 서서히 낮춰야 한다. 기수가 먼저 땅에 닿는 건 비행기가 추락하는 상황이다..;;
자동차가 피시테일에 빠져서 요동치고 있다면 오히려 가속을 해서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게 해서 불안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이렇듯, 기계를 잘 다루려면 우리의 직관과 맞지 않는 방향으로 조작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3. 90도 직사

군대에서는 총을 사용하는 훈련을 마친 뒤 복귀해서는 병사들 전원이 오와열 맞춰서 총구를 하늘로 들고 "노리쇠 후퇴 전진, 어깨 위에 총, 격발, 이상 무" 이렇게 총기에 총알이 없다는 걸 확인한다. 그런데 이때 격발이 되어서 진짜로 하늘을 향해 90도로 총을 쏴 버리면 어떻게 될까?

  • "건전지에 전선으로 양극을 연결하면 어떻게 되나요?"
  • "자동차 운전 중에 기어를 갑자기 R로 바꾸면 어떻게 되나요?"
  • "망원경으로 태양을 직접 보면 어떻게 되나요?"

꼭 destructive하고 위험한 쪽으로 비상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엔 꼭 있다.

저 경우, 물론 바람 때문에 총알이 정확하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으로 그대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공기의 저항 때문에 탄두는 처음에 격발됐을 때보다는 훨씬 더 천천히 땅에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수치를 동원해서 구체적으로 그 위력이 얼마 정도 되는지... 총알은 고도 몇백 m 정도까지 올랐다가 1기압의 지표면에서 얼마 정도의 종단 속도로 떨어질지, 머리에 맞으면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을 해 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낭설이 많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만으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뭐, 밤 하늘에 비행기를 향해 레이저 포인터를 쏘는 것도 금지고, 공중으로 총을 쏘는 것도 도대체 무슨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은 절대 금지이긴 하다.
그리고 총알도 아니고 박격포를 90도로 쐈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이다. (박격포는 그 특성상 포병이 아닌 보병에 속하는 병과이다.)
저격수나 포병이나 다 규모가 차이가 있을 뿐 보병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화력 지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4. 인간의 건강과 복지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과학 기술

  • 질소 합성: 인간은 다른 것보다도 우선 잘 먹어서 영양 상태가 좋아야 면역력도 좋아지고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공기 중의 질소를 인공적으로 농축해서 암모니아를 합성하고 비료를 만들 수 있게 됨으로써 식량 생산에 치트키를 넣을 수 있게 됐다.
  • 백신과 항생제: 인류를 무수한 세균성 질병으로부터 구한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게 없던 시절엔 야외· 야전에서 좀 크게 다쳤다 하면 환부가 세균에 감염돼서 사람이 픽픽 죽거나 사지를 통째로 절단하는 게 다반사였다. 심지어 출산이나 발치 이후에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 수돗물 염소 소독: 깨끗한 상수도를 보급하는 기본적인 인프라야말로 그 어떤 의료· 제약 기술 이상으로 인류의 건강과 복지에 큰 기여를 했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흐르는 물로 늘 손을 씻는 것 말이다.
  • 비타민의 존재 규명: 이거 존재를 모르던 시절에는 평범한 식단을 유지할 수 없는 군인이나 선원들이 전쟁 내지 항해 중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비타민 결핍증으로 픽픽 쓰러지고 죽어도 속수무책이었다.

안전 유리가 없던 19세기 말의 자동차 초창기 시절에는 시속 60이 채 안 되는 속도로 교통사고가 나도 앞유리창이 와장창~ 하면서 수류탄 파편으로 변해서 탑승자에게 사망 또는 중상을 야기했다. 뭔가 기본적인 안전 장치가 없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사람이 죽을 이유가 전무한 간단한 상황에서도 사람이 픽픽 죽거나 중상을 입어야 했다.
그리고 굳이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항생제나 백신이 없던 시절에 인류의 의료도 딱 그런 정도로 열악했었다.

세균의 존재를 모르던 불과 200년 남짓 전만 해도, 의사들이 방금 전에 시체를 부검했던 손으로 그대로 다른 환자들의 환부를 만졌다. 의사라는 사람들부터가 손 씻기의 필요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며, 이 점에서는 오히려 동양이나 유대인들보다도 더 미개했다.

양치질에서 물리적으로 구석구석 칫솔질을 잘 하는 게 치약 바르고 묻히고 가글링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듯, 손 씻는 것도 '흐르는' 깨끗한 물에 손가락 구석구석을 비비고 문지르는 게 비누를 묻히는 것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완전 기름때 위주가 아닌 이상..). 그리고 그 물을 잘 소독하여 보급하는 것의 중요성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수십 년 전에는 여객기 스튜어디스가 누적된 간접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려서 이걸 산업 재해로 인정해 달라고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위험한 힌덴부르크 수소 비행선도 객실 안에 흡연실과 라이터가 있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참 어이가 없다.

그리고 대소변은 반드시 화장실에서 처리하도록 하고 길거리에서는 함부로 침 뱉지 말고, 기침은 팔꿈치로 입을 가리면서 하고, 다같이 식사를 하는 곳에서는 국을 국자로 푸는 것.. 이런 기본적인 위생 관념이 전염병 예방에 기여를 한다. 미국도 20세기 초에는 "제발 침 뱉지 맙시다" 계몽 운동을 할 정도였다.

한 가지 더..
세균의 존재가 규명된 것까지는 좋은데, 20세기 초에 일본에서는 그 당시의 최신 첨단 학문 트렌드였던 '세균설'을 너무 맹신한 나머지, 비타민 결핍증까지 세균 탓이라고 오인해서 군인들을 필요 이상의 위생 검열로 고생시키면서 결핍증은 전혀 해결하지 못한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 바이러스까지도 세균이라고 주장했던(주작? 단순 착오?) 노구치 히데요를 배출했던 동네답다.

5. 기타 기계· 기술 분야 얘기

(1) 에어컨은 필터 청소를 안 하고 관리를 잘 안 하면.. 켠 직후에 그 특유의 더러운 냄새가 바람에 잔뜩 섞여 나온다. 하지만 그 냄새는 본격적으로 냉동이 시작되고 찬 바람이 나오면 없어지는 편이다. 처음이 문제다.

디젤 차량도 차가 적당히 속도가 붙고 엔진 회전수가 올라간 뒤에는 괜찮은데 갓 출발할 때, 혹은 급가속을 할 때가 크리티컬이다. 연료의 불완전 연소 빈도가 높고 이때 매연이 뿌뿡 뿜어져 나온다.
VVVF 전동차 중에서 초기형인 GTO(사이리스터 소자) 기반 차량은 가속할 때 특유의 시끄러운 전자음이 나는데, 정작 전동기가 최대 출력에 도달하면 윙윙 소리가 인간의 가청 대역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조용해진다. 이런 것들이 다 기계의 특성인 것 같다.

(2) 내연기관에서 반켈 엔진이 왕복 운동이 아니라 회전 운동을 직통으로 생성하는 형태라면, 전동기에서 선형 모터는 특수하게 생긴 차량과 궤도를 이용해서 회전조차 생략하고 차체의 운동을 직통으로 구현한... 그런 형태로 볼 수 있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9 19:37 2018/06/09 19:37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498

지구는 둥글다 =_=;;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해변에서 가까이서 본 광안대교와, (대략 1.2km 정도 떨어짐)
저 멀리 일본 쓰시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본 광안대교(대략 50km)는 외형상 서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 쪽에서 본 교량은 해수면 수평선의 아래로 푹 꺼지듯 내려앉아 있음이 명백하다.
굳이 이 사진 말고 어느 풍경 사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원근법 때문에 작게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건 교량 위 아래의 기둥 크기 비율을 고려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망원경으로 보더라도 아래로 꺼진 건 명백하게 꺼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다가 광안리 해수욕장 해변은 말 그대로 해수면에 거의 근접하는 낮은 고도인 반면, 쓰시마 섬에 소재한 '한국 전망대'는 해발 70m에 달하는 언덕 위의 고지대이다! 그럼 상식적으로 광안대교가 밑동까지도 잘 보여야 정상일 것이다. 참고로 광안대교의 도로는 해발 45~50m 남짓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차이가 왜 발생할까?
답은 하나, 지구는 둥글기 때문이다.
배가 저 멀리 사라질 때도 그냥 중앙의 소실점 근처에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수평선 아래로 내려앉듯이 사라지는데..
그 현상만 갖고는 flat earther들이 선뜻 수긍하질 않으니, 이럴 땐 일개 선박보다 훨씬 더 크고 확실한 증거인 광안대교 풍경을 제시해 보자.

이 문제 갖고 고민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특히 성경 믿고 신의 창조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말이다.
과학으로 검증이나 재현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세계 지도가 평면이니까 지구도 평면이다" 수준의 유체이탈이나 마찬가지인 아무말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예수님 부활이 사실인 것만큼이나 아폴로 승무원들이 달에 다녀 온 것도 사실이고, 지구가 둥근 구인 것도 사실이다. 그건 창조· 진화라든가 성경의 무오성하고는 아무 관계 없다.
"땅의 원"(circle of the earth - 사 40:22)이 지구가 둥글다는 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땅의 네 모퉁이"(four corners of the earth - 계 7:1)는 지구가 평면이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이 그 문맥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니다.

그리고.. 세상을 너무 음모론 괴담스럽게 볼 필요 없다. 세상이 영적으로 아무리 악해도 멀쩡히 눈과 귀로 관찰 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것을 호락호락 조작하고 사기를 치지는 않는다. 지구 모양을 갖고 사기를 쳐서 도대체 누가 무슨 이득을 얼마나 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늘 하는 얘기가 있는데, 세상 다른 현상은 다 음모론적으로 접근한다 해도 최소한 (1) 전기차가 망한 것과 (2) 인간이 과거에 달이 간 적이 있는지, 갔다면 지금은 왜 달에 더 안/못(?) 가고 있느냐 하는 건 음모론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현상이다.

(1)은 무슨 석유 회사의 외압 로비 같은 거 전혀에 가깝게 없으며, 있다 해도 전기차 몰락의 주 요인이 결코 아니다. 그냥 전기차가 배터리의 무게와 가격, 항속 거리와 충전 시간이라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기름차의 기술 발달을 따라가지 못해서 망했을 뿐이다. 전기차는 처음에 간단하게 만드는 게 기름차보다 쉬웠을 뿐이지 그 이후로는 실용화가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디젤 엔진 기반의 대형 버스와 트레일러가 배터리 기반 전기차로 가능할까?? 21세기에도 어림도 없는 일이다.

(2) 역시.. 천문학적인 발사 비용 대비 효과가 없으니 더 안 보내는 것일 뿐이다. 허무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 이것보다 더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우주 관련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꼭 미국 NASA만 세상 모든 정보를 움켜쥔 빅 브라더스 흑막인 것처럼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도대체 왜 소련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미국 최대의 경쟁자요 어떻게든 미국의 행보에서 약점 잡을 것 찾느라 목숨을 걸었던 소련조차 미국이 달에 사람을 보냈던 걸 빼박 다 ㅇㅈ했구만.. 설마 미국과 소련이 나란히 같이 짜고 조작극을 벌였다고 믿으시는가? 애초에 NASA 자체가 소련의 스푸트니크 쇼크에 멘붕 하고서 미국이 허겁지겁 설립한 연구 기관일 뿐인데 말이다.

지금은 그 냉전이 끝났다. 컴퓨터가 처음으로 대중화되고 정보화 시대네 뭐네 말이 나오자 이번에는 666이 어떻고 모든 것이 컴퓨터에 의해 중앙 통제되고 정보 접근성으로 인한 신분 계층 차별이 일어나고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게 될 거라는 식으로 괴담이 왕창 나돌았다.
난 그 심정은 이해한다. 198, 90년대라면 나도 그런 쪽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대의 뚜껑을 열어 보니 세상은 그렇게 막장으로 무식하고 폐쇄적이고 흉물스럽기보다는.. 훨씬 더 상업주의 자본주의적으로 돈의 논리를 따라 개방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양의 기술과 정보들이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기는커녕, 대중들에게 개방되고 무료로 내지 아주 저렴하게 풀렸다. CCTV, 블랙박스, 중앙집권 전산화 덕분에 치안, 행정과 금융이 정말 투명하고 깨끗해지고 신속· 공정해졌다.

남극과 달은 은폐는커녕 표면의 스트리트 뷰가 나도는 지경이다!
아폴로 우주선을 제어하던 컴퓨터 프로그램의 어셈블리어 소스가 github에 공개되어 있다. 설마 그게 다~~ 주작 조작이겠는가?

물론 그것들이 마냥 자선행위 차원에서 풀린 건 아니며, 그 투자 비용은 더 교묘한 방식과 다른 형태로 어떻게든 회수되긴 할 것이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던 기술과 집중되었던 자본이 나중에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쪽으로 얼마든지 악하게 쓰일 수 있으며,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가능성은 본인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언제 어떤 형태로 구체적으로 실현될지 우리로서는 선뜻 추측할 수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 그 엄청난 기술들이 대중들을 통제하여 고작 아폴로 계획 자작극이나 지구 평면이라는 엄청난 팩트(?)를 은폐하는 데 동원되어 쓰이고 있다고 믿는 건... 성경을 믿는 것보다 정말 엄청나게 더 큰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게 틀림없다.

고대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네스는 같은 날 같은 정오 시간대에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그림자 길이가 차이가 난다는 걸 발견하고는 그걸 토대로 지구의 둘레를 추측 계산해 내기까지 했다. 이 때는 성경의 구약과 신약 중간 시기이던.. 그야말로 엄청난 옛날이다. 기구 하나조차 띄울 여력이 안 되던 시절에 지구가 둥근 건 너무 당연한 귀결이고, 그 둘레를 오늘날의 측정값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정확하게 알아맞힌 것이다.

컴퓨터, 우주선, 휴대전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2천 몇 백 년 전의 사람보다도 통찰력이 뒤쳐져서야 되겠는가?
세상 자녀들이 빛의 자녀보다 더 지혜롭게 머리 잘 돌아가는 분야가 있다는 건 성경도 인정한 팩트이다(눅 16:8). 그걸 굳이 부인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7 08:33 2018/06/07 08:33
, , ,
Response
No Trackback , 3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497

바깥 나들이 2

특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그냥 본인의 일상· 근황에 가까운 가벼운 나들이를 요 근래에 했던 것들을 또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솔직히 말해 요즘 개인 연구건 직장일이건 잘 안 풀리고 있다. ㅠㅠ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가는데 답이 딱 안 나오고 개발 방향이 갈팡질팡이고 버그는 안 잡힌다. 올여름 중으로 날개셋 9.5 최종판과 후속 논문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이 와중에 날씨가 점점 더 더워지는것도 개인적으로는 악재다.

이럴 때일수록 좀 쉬고 머릿속을 초기화한 뒤, 완전히 새로워진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접근하면 해결책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 노숙

내가 이런 걸 왜 지금까지 몰랐나 싶다.
비 내리는 날 새벽과 아침에 숲 속 나무 정자 아래에서 빗소리 듣고 풀 냄새 맡으며 뒹굴거리는 건.. 가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중독성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이런 걸 가리키는 '한뎃잠'이라는 훌륭한 순우리말도 있더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가 안 올 때는 그냥 집 근처 공원의 벤치에 누워서 자 보기도 했다.
이런 짓 하지 말라고 벤치의 중간에 일부러 칸막이나 손잡이를 만들어 넣는 것 같다만, 그래도 그게 없어서 한 사람이 쭉 누울 수 있는 벤치도 있으니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한뎃잠을 여러 번 자 보면서 느낀 건데.. 사람이 자는 동안에는 (1) 체온이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고 중간에 잘 깨긴 하더라. 어지간히 더운 곳이 아닌 이상, 잘 때 덮는 이불이 괜히 필요한 게 아니다.
또한, 찬 공기뿐만 아니라 (2) 차가운 바닥으로 열을 빼앗기는 것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푹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온을 위해서 밑에 까는 이불이 필요하다.

본인은 몸에 열이 많고 더위를 많이 탄다. 여름보다 겨울을 더 좋아하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취향이다.
또한 불면증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체질이다. 피곤하면 어디서나 눈만 감으면 곧장 잠들며, 5~6시간이 워프된 후에 개운한 상태로 일어난다.
일부러 물을 1리터쯤 마시고 잠든 게 아니라면, 밤중에 오줌 마려워서 깨는 것조차도 거의 없다. 그 대신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부터 가지만..

그래서 본인은 나름 야영· 노숙에 최적화된 체질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런데도 보온을 충분히 하지 않은 생태로 밖에서 잠들면 기대했던 것보다 이른 서너 시간 남짓 후에 깨 버리더라. 충분히 못 자고 수면 리듬이 깨졌으니 그 뒤로는 편안한 하루가 보장되지 못한다. 그래도 그대로 코나 목이 가 버리고 감기에 걸린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새벽 1~2시에 잠드는 순간까지도 밖이 춥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데, 5~6시 무렵에 눈을 뜨면 밖이 상당히 춥다. 그래서 다른 부위보다도 얼굴을 잘 감싸서 호흡할 때 찬 공기가 코로 대놓고 들어가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 했다.

물론 이것도 늦어도 5월 초 정도까지의 이야기이고, 계절이 여름으로 바뀐 뒤부터는 해당되지 않는다. 집에서 자듯이 대충 이불 덮고 자도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그 대신, 이제부터는 모기 때문에 밖에서 제대로 자기 어렵다. 모기를 피해서 몸을 감싸고 덮어 버리면 밖이 시원하다는 장점이 사라지니까..
방수· 방충이 되는 1인용 텐트를 장만해서 적극 활용하고 싶어진다.

2. 남한강 이남-남한산성-서울 동남부 깜짝 드라이빙

팔당 댐에서 동쪽으로 더 가면 강북은 국도 6호선을 따라 양평으로 가는데, 강남의 광주 방면으로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오래 전부터 궁금했다. 그래서 하루는 머리를 식히고 분위기를 전환할 겸 달려가 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더 경치 좋고 쉬기 좋은 곳만 찾자면 북한강(가평 방면)이나 남한강 이북(양평 방면) 쪽으로 가는 게 더 낫지만, 더 남쪽으로는 갈 일이 잘 없으니 희소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개발되지 않은 오지 탐험은 늘 즐거운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강으로의 합류가 얼마 남지 않은 경안천의 모습이다.

그리고 남한산성을 도보 등산과 시내버스(성남)에 이어, 동남쪽의 광주시 구간을 통해 드디어 자가용으로도 가 보게 됐다. 전에 서울 남산을 도보 등산과 케이블카에 이어 시내버스로도 간 것처럼 말이다.

서쪽 성남시 구간의 도로는 경사가 굉장히 급한 반면, 동쪽 광주시 구간의 도로는 길고 경사가 완만해 보였다. 꼭대기 근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산을 타고 오른다는 느낌 자체가 별로 안 들 정도였다.

3. 북악산 한양도성 구간 산책

본인은 지금까지 북악산을 세 번 정도 서로 다른 등산로로 종단· 횡단을 해 봤는데.. 나름 남쪽으로 청와대를 가장 가까이 지나고(직접 볼 수는 없지만) 산의 정상을 지나고, 유일하게 신분증을 까고 출입 신고를 해야 입장할 수 있는 한양도성 구간을 최근에 한번 더 답사했다. 재작년 봄에 최초로 답사한 뒤 2년 만의 일이다. 사실, 여기가 제일 북악산다운 곳임이 틀림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창의문 근처에 있는 최 규식 경무관 동상이 대대적으로 때 빼고 광 내서 밝은 구리색으로 싹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1· 21 사태 당시에 같이 순직했던 정 종수 경사에 대해서도.. 참 늦은 감이 있지만 흉상이 만들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좀 덥긴 해도, 산은 잎이 초록색일 때 올라야 제일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위의 사진은 정상에서 청운대를 내려다본 모습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재작년엔 정상 표지석만 찍었고 이렇게 내가 나온 모습을 촬영하지는 않았었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북악산의 한양도성 등산로(혹은 산책로? 탐방로?)는 성 바깥쪽이 온통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다. 북악산의 다른 영역과 한양도성 등산로를 완전히 분리· 단절하여, 여기로 오려면 반드시 안내소를 거쳐서 번호표 목걸이를 받아야 하게 말이다.

이 등산로보다 더 안쪽으로 청와대를 둘러싸는 철조망도 당연히 있으며, 이건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를 이탈하여 풀숲을 헤치며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시도를 했다가는 당사자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는 단순한 동네 뒷산이나 공원이 아니라 무슨 전방 같은 군사 시설 주변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조선 시대 유물과 한데 어우러졌다는 것이 북악산 등산의 묘미이다.

대부분의 산책로는 한양도성 안쪽으로 성을 따라 나 있지만, 잠깐 성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기도 한다.

4. 용마-망우산 구간 재답사

본인이 지금까지 아차· 용마· 망우산 일대를 올랐던 내력은 다음과 같다.

  • 가장 먼저 서쪽 중곡 역 방면에서 용마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정상을 찍었다. 다음으로 능선 겸 서울 둘레길을 따라서 북상하다가, 더 동쪽의 망우산 중심부로 이탈하여 망우산 정상 표지도 봤다. 하산은 북쪽의 시립 묘지(일명 망우리 공동묘지) 방면으로 했다. 당시 산에서 비를 철철 맞았던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 2차 답사 때는 동쪽의 아차산 입구에서 산을 올라서 산 정상을 찍었다. 그 뒤 용마산 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북상하다가 구리 아치울 마을 방면으로 하산했다. 날씨는 아주 좋았다.
  • 3차로는 아예 차를 가져가서 시립 묘지에서 들어갔다가 그리로 나왔다. 차도를 따라 시민 묘지만 한 바퀴 돌면서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각종 옛날 유명인사들의 묘소도 구경할 수 있었다. 답사 당일은 아주 흐렸으며 산에 안개가 자욱했다.

그리고 이번 4차 답사 때는..
이들 산의 종축 중앙이고, 용마 터널 근처이기도 한 사가정 공원에서 용마산을 올랐다. 여기서 용마산 능선에 도달하고 나니, 망우산 방면과 아치울 마을 방면이 갈리는 교차로도 거의 곧장 나왔다.

본인은 거기서 계속 북쪽으로 가서 예전처럼 시립 묘지 구간으로 들어갔다. 다만, 계속 길만 따라 간 건 아니며, 도중에 동쪽으로 진로를 바꿔서 백교(한다리) 마을에 도달함으로써 산의 횡단을 마쳤다. 이 정도면 여기 산들도 안 간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등산로를 밟아 보게 됐다.

'사가정'이란 이 일대에서 살았던 '서 거정'(1420-1488)이라는 조선 시대 문신의 호라고 한다. 개드립을 좀 치자면, 기왕 저렇게 호를 지을 거면 왜 '사가장'이라고 지을 생각은 안 했나 모르겠다.
사가정 공원은 생각보다 이른 2005년에야 생겼다. 일자산 근처에 온통 둔촌 둔촌 하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옛날에 이 산의 기슭에 살았던 유명한 학자 내지 관료를 홍보하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원에서 등산로가 시작되다 보니 처음에는 길이 돌계단처럼 나 있고 곳곳에 벤치와 오두막, 운동 기구가 있었다.
숲이 울창한 덕분에 온통 짙은 그늘이 져 있어서 직사광선 노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 용마산 남북 능선에 진입했다. 아치울 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서 북쪽으로 쭉 가면, 망우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도 나온다. 거기도 지나치면 길이 포장된 도로로 바뀌고 망우산 묘지 구간으로 진입한다.
본인은 묘지 구간을 좀 지나다가 동원천 약수터 방면으로 이탈하여 숲 속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참을 방황하던 끝에 용마-망우산을 횡단하는 덴 성공했다. 그리고 딱 한 번 하늘이 트인 공터가 나왔다. 누군가의 묘지..
여기만 나무 베어내고 숲을 잔디밭으로 바꿔 놓아 있었다. 망우산의 항공 사진을 보면, 이렇게 혼자 외딴 곳에 자리잡은 묘지가 몇 군데 더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가 내리다 그친 뒤에 산을 오르니 날씨 맑고 하늘 푸르고, 5월이어서 잎도 온통 짙은 초록색인 데다.. 계곡마다 물이 졸졸 흐르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서울 방면과 구리 방면 어느 쪽으로든 말이다. 어떤 곳은 물이 등산로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기도 했다.
비록 산 아래의 경치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산 속의 경치가 아름다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뒤 길을 따라 내려가니 이내 차도와 함께 저수지와 마을이 나왔다. 아치울보다 더 북쪽에는 백교/한다리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늘 산기슭의 한적한 전원마을을 구경하면서 산행을 마치는 건 내 스타일 등산의 뻔한 클리셰가 돼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4 08:29 2018/06/04 08:29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496

우리나라의 도로교통법을 종합해 보면, 크기, 무게, 폭, 속도를 감안했을 때 차와 보행자가 법적으로 다음과 같은 4등급으로 나뉘는 듯하다.

1. 보행자

말 그대로 뚜벅이부터 시작해서 유모차, 리어카, 휠체어, 체인과 브레이크가 없는 느린 세발자전거는 보행자에 속한다. 인도로 다닌다.
요구르트 아줌마가 타고 다니는 전동 리어카도 약간 크긴 하지만 전동 휠체어에 준하는 보행자로 볼 수 있겠다.

2. 차

고속 주행 가능한 무동력 자전거, 전동 킥보드, 페달 보조 기능만 하는 일정 출력 이하의 전동 자전거 정도가 해당된다.
이런 것들은 자동차는 아니지만 법적으로 '차'이다. 사람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속도가 슬슬 빨라지며 부딪치면 다칠 위험도 커지는 관계로.. 원래는 도로에서 차도로만 다녀야 한다. 하지만 얘들은 자동차보다는 여전히 훨씬 느리기 때문에 차도에만 다니기에는 좀 애로사항이 있다.

그 대신 이 등급에 속하는 교통수단들은 한강 공원의 자전거 전용 도로에서 주행 가능하다.
평범한 스케이트보드나 킥보드는 잘 모르겠지만, 인라인 스케이트는 잘 타는 사람은 평지에서 정말 자전거에 준할 정도로 빨리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2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차도를 통행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
인력거는 속도를 생각하면 1에 속하겠지만 크기와 무게를 생각하면 2에 속할 듯하다.

이륜차가 인도로 주행하거나 운전자가 탑승한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일단은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인도나 횡단보도에 별도의 이륜차 주행선이 그어진 경우는 예외) 하지만 이와 반대로 차도를 다녀서는 안 되는 느린 보행자가 차도로 다니는 경우도 있다.

  • 눈이 많이 왔을 때: 길 상태가 차도가 인도보다 더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도는 눈이 쌓였거나 빙판이 됐지만 차도는 그렇지 않음)
  • 전동 휠체어: 안 그래도 바퀴도 작은데 평평한 차도가 인도보다 당장 다니기 더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 짐을 잔뜩 실은 리어카: 혼잡한 인도를 다니기에는 리어카가 차지하는 폭이 너무 커서 행인들에게 끼치는 민폐도 크기 때문이다. 주로 폐품 수집하는 노인분들이 이러시는 것 같다.

3. 준자동차

페달질을 하지 않아도 가속 가능한 전동· 엔진 자전거, 오토바이, 사륜 오토바이(일명 ATV), 소형 전기차, 고속 주행을 할 수 없는 중장비(굴삭기· 지게차), 농기계(경운기, 트랙터..)
여기서부터는 운전자는 면허가, 차량은 등록과 보험이 필요해진다. 인도 주행은 진짜로 절대 금지이며, 자전거 전용 도로에 진입할 수도 없다. 오토바이는 같은 이륜차인 자전거와 달리, 맨 구석 차선에서 차들의 틈새로 다니는 것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

옛날에 있었던 삼륜차는 엔진 성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3일 것이고,
말의 경우는 단독으로 말 타고 달리는 건 속도 때문에, 마차를 끄는 건 크기 때문에 역시 3에 속할 것이다.

4. 자동차

이제 최종 단계이다. 고속도로 같은 자동차 전용 도로에도 진입하여 고속 주행이 가능한 사륜 이상의 차량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렇게 분류를 해 보니 교통수단은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며 1과 2, 2와 3, 그리고 3과 4 사이에 어중간하게 낀 처지인 물건들도 많음을 알 수 있다. 무동력으로 인간의 이동을 보조해 주는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같은 건 무기로 치면 냉병기이고, 항공기에다 비유하면 기구· 비행선이나 글라이더 정도 된다.

자전거는 (1) 둥근 fender에 매끄러운 바퀴가 달렸고 여성분들이 탈 만한 제일 평범한 모델이 있는가 하면 (2) 바퀴 표면이 울퉁불퉁하여 산악용 자전거 비스무리하게 생긴 일명 '유사 MTB'도 있다. 그리고 (3) 바퀴가 아주 가늘고 핸들이 뭔가 산양의 뿔처럼 생긴 경주용 자전거도 있는데, 이것들은 용도와 역할이 제각기 다르다. 똑같이 성인용 자전거라 해서 다 같은 자전거가 아니라는 뜻이다.

유아· 어린이용 자전거는 세벌뿐만 아니라 이륜이지만 보조 바퀴 달렸고 여전히 느린 것도 있다.

21세기 이래로는 못 봤지만, 본인 어렸을 때만 해도 검고 커다란 일명 '쌀집 자전거'에다 초소형 가솔린 엔진을 얹어서 반쯤 스쿠터 내지 오토바이로 개조한 자전거가 가끔 보였다. 글쎄,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자그마한 엔진 출력으로 쇠로 된 무거운 자전거의 큰 바퀴를 굴리려면 변속기도 신경 써야 할 텐데 싶다. 옛날에는 영운기 트럭도 뚝딱 개조했는데 자전거를 저 정도 개조쯤이야 못 할 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오토바이 중에는 '스쿠터'라는 물건도 있다. 얘는 여느 오토바이와는 달리 바퀴가 작고 엔진 소리가 유난히 앵앵거리는 편이며, 이륜차이지만 아래에 운전자의 두 발을 한데 모을 공간이 있다는 외형상의 큰 차이가 존재한다.
오토바이나 말의 뒷자리를 일컫는 영어 단어가 pillion이라고 따로 있는 게 흥미롭다. 전투기 후방석도 그렇게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담 1: 간단한 자동차의 역사

(1) 옛날에는 나름 2000~3000cc급의 준대형 승용차로 여겨진 그랜저조차 초기 모델은 타이어의 휠너트가 4개였다. 그러다가 1992년에 나온 뉴 그랜저부터 곧장 5개로 올라갔다.
그랜저보다 더 작은 차종인 쏘나타는 한동안 4개이다가 2004년의 NF 쏘나타부터 5개가 됐다.
그보다 더 작은 준중형급 아반떼는 2006년에 나온 HD 모델부터 5개가 됐다. 그래서 이제 현대차 중에는 액센트 같은 소형차만이 4개가 유지되고 있다.

자동차의 휠너트가 4개에서 5개로 는 동안.. 대형 버스도 나는 타이어의 휠너트가 당연히 8톤 트럭에 준하는 8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10개짜리도 있는 게 케바케인 것 같다.

(2) 옛날, 1980년대 초까지는 겨우 2000cc짜리 차도 6기통으로 만들기도 했다(그라나다). 비록 휘발유 엔진이 실린더 당 최대 배기량이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겨우 그 배기량에 그런 엔진 설계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기통수가 많아서 부드러운 것보다 저출력으로 인한 저연비와 환경 오염 문제가 더 컸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차를 그런 식으로 만들지 않게 됐다.

(3) 또 무슨 예가 더 있을까? 어지간한 승용차에는 앞바퀴와 뒷바퀴에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하는 게 유행이 되면서, 옛날처럼 자동차 타이어 휠이 가장자리에만 구멍이 숭숭 난 은색 쟁반 같은 모양을 하지 않게 됐다. 그 대신 최소한(보통 휠너트 개수만큼)의 굵직한 스포크(spoke)만 있으며, 안쪽의 반들반들한 디스크 원반이 드러나 보이는 형태가 됐다. 이런 것들이 다 알게 모르게 변한 점이다.

(4) 옛날 자동차들은 자동차의 방향 지시등이 정말 곧이곧대로 주황색(amber; 호박색)이었다. 하지만 요즘 자동차들은 켜져 있지 않은 동안은 깜빡이도 전조등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의 흰색인 것이 유행이다. 황색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또한 미국 자동차의 경우, 후방은 깜빡이도 브레이크등과 동일하게 빨간색이고 그 대신 방향 애니메이션 같은 걸로 방향 지시를 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5) 옛날 자동차는 바깥 백미러가 지금처럼 운전석 앞 A 필러 근처가 아니라, 아예 엔진룸 앞의 최전방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늦어도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이런 디자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운전을 오래 한 어르신들 중에는 백미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시야 확보 측면에서 좋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그리고 현대와 미쓰비시가 제휴해서 만들었던 그랜저/데보네어 같은 차종도 일본판은 백미러가 그렇게 배치되어 출시되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미러가 어디에 있건, 운전석 자리에서 곧장 각도 조절을 할 수 없다면 참 불편할 것 같다. 특히 조수석 것까지 말이다. 우회전 내지 오른쪽으로 차로를 변경할 때 우측 바깥 백미러의 중요성은 더 말이 필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제일 불편한 건 무식하게 창문이나 문을 열고 유리를 손바닥으로 직접 만져야 하는 타입이고, 조금 발전하면 차 안에서 별도의 레버로 각도 조작이 가능하다.
제일 편리해진 건 운전석의 버튼만으로 조수석의 백미러까지 각도 조절이 가능한 전동형이다. ABS야 경차에도 다 달려 나오는 필수가 됐지만, 전동 백미러는 단순 편의 기능이다 보니 여전히 쏘나타급 중형차 이상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렌트를 해서 몰아 봤던 아반떼에도 그런 기능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담 2: 크고 아름다운 자동차

대형 버스는 여느 승용차와는 특성이 다른 게 생각보다 많다.

  • 자동문 기반인 문 여는 방법부터가 다르다. 승객은 운전사가 열어 놓은 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되지만 차에 제일 먼저 타는 운전사는 그렇지 않다.
  • 조향륜인 앞바퀴가 운전석의 앞이 아니라 뒤쪽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차(수직, 평행)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 엔진 위치의 특성상 핸들이 뉘인 각도가 승용차의 그것보다 훨씬 더 낮다. 그리고 같은 각도로 회전하려면 소형 승용차보다 핸들을 두 배쯤 더 많이 돌려야 한다.

변속

  • 이 바닥은 여전히 수동 변속기가 주류이다. 평지에서는 1단이 아니라 그냥 2단에서 출발한다.
  • 소수의 자동 변속기 모델도 P가 따로 없다. 변속기의 구동축 고정 기능만으로는 그 무거운 차 바퀴를 붙잡아 둘 수 없고 오히려 자기가 파손되기 쉽기 때문이다.
  • 대형 디젤 차량의 일상적인 엔진 회전수는 승용차의 그것보다 훨씬 더 낮다.

제동

  • 브레이크액이 아니라 압축 공기로 제동력을 전한다. 일단 제동력 하나는 정말 강한 덕분에 대형차 용도로 적합하다. 매개체가 처음부터 기체이니, 브레이크액이 열받아서 기화하는 vapor lock 현상 걱정도 전무하다.
  • 주차 브레이크도 압축 공기를 사용해서 건다. 얘는 제동을 걸고 있는 동안 공기가 소모되지는 않지만, 제동을 걸었다가 풀 때는 공기가 빠져나가는 푹~ 취익 소리가 난다. 역시 압축 공기로 평소에 문이 열리지 않게 꽉 붙잡고 있는 버스나 지하철의 자동문을 생각하면 된다.
  • 또한, 이런 차들은 엔진 브레이크에 대한 개념도 승용차와는 좀 다르다. 디젤 엔진은 워낙 고토크+저회전이기 때문에 승용차처럼 무작정 저단으로만 바꾼다고 엔진 브레이크가 강하게 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엔진 rpm도 바퀴를 따라 같이 높아져서 탈이 나기 쉽다. 이런 차들은 배기구를 틀어막는다거나 리타더/제이크 같은 다른 형태의 엔진 브레이크가 쓰인다.

예전에 브레이크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에어 브레이크는 브레이크를 사용할 때마다 공기가 조금씩 소모되고 압력이 감소한다. 이 때문에 엔진 힘으로 상시 압축기를 가동해서 무슨 에어컨 냉매도 아닌 공기를 압축해서 탱크에다 비축해 둬야 한다. 압축 공기의 비축량은 냉각수 온도나 배터리 전하량만큼이나 매우 중요하다. 아주 긴 내리막이 계속돼서 엔진 rpm은 올라갈 일이 없는데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일만 계속해서 생기면 차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물론, 브레이크액 기반인 승용차도 제동력의 '증대'를 위해 엔진 힘을 일부 사용하긴 한다.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무슨 자전거 브레이크 같은 단순한 물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얘들은 '공기압 배력'이 아니라 반대로 '진공 배력' 방식이며, 별도의 게이지나 공기 탱크 같은 물건까지 필요한 구조는 아니다.

버스의 특성은 대형 트럭과 동일한 것도 일부 있다. 그리고 1종 보통 면허로도 사람이 아니라 짐을 많이 싣는 트럭은 대형 버스만치 긴 무려 11.5톤까지 몰 수 있으며, 그 정도면 트럭은 차축이 하나 더 달려 있다. (국내에 버스가 차축이 2개보다 더 많은 건 2층, 굴절, 에버랜드 셔틀 같은 것밖에 없다.)

뭐, 트럭은 자동문이나 자동 변속기 같은 건 없을 것이고 운전대가 버스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다. 대형 트럭의 운전석에 올라타는 건 반쯤 등산 수준이지 않던가.
대형 버스는 와이퍼가 좌우+수직 형태로 2개인 반면, 대형 트럭은 와이퍼가 승용차와 동일한 수평 형태이지만 2개가 아니라 3개가 달려 있다.
버스는 운전대가 더 낮고 앞유리가 세로로 더 넓기 때문에 와이퍼가 저렇게 비치된 것 같다.

만약에 내가 뭘 잘못해서(...) 운전 면허가 취소돼 버리고 다시 따야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난 그때는 꼭 대형으로 딸 것이다.
6000, 8000cc짜리 초호화 승용차나 스포츠카를 몰면서 시속 200으로 밟는 거.. 참 좋긴 한데,
8000, 10000cc짜리 엔진이 달린 대형 버스도 만만찮게 몰아 보고 싶다.
그리고 대형 트럭이나 트레일러 몰다가 밤에 운전석 뒷좌석에서 자는 건 생각만 해도 꿀잼이어 보인다.

크고 아름다운 기계를 굴리는 건 남자의 로망이다.
그런데 이렇게 버스, 트럭, 비행기, 열차, 선박까지 교통수단들을 조금씩 다 몰아 보려면.. 특전사나 공작원 같은 군인이 되는 것밖에 방법이 없으려나..?

Posted by 사무엘

2018/06/01 08:31 2018/06/01 08:31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495

서울 시내 봄 나들이

1. 남산

본인은 옛날에 서울 남산을 가장 먼저 북서쪽에서 도보로 올라 본 뒤, 다음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봤다. 이제 올해엔 반대편 남동쪽에서 버스를 타고 오름으로써 가능한 모든 접근 수단을 이용하게 됐다. 걷는 건 너무 힘들고, 케이블카는 대기 시간이 너무 길고 비싸니.. 가성비가 제일 나은 건 버스인 것 같다.

남산 안의 차도는 노선 버스, 관광 버스, 등록된 직원이나 기자, 공무 수행 차량만 이용 가능하지 일반인이 자가용을 끌고 들어갈 수는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북악산과 마찬가지로 남산도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사람이 많이 있다. 하지만 본인은 여건상 저기까지 자전거를 몰고 갈 일은 없을 듯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는 서울시에서 전멸하다시피한 노란색 순환 버스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02, 03, 05라는 세 노선이 존재한다.
낙산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 종로구와 성북구의 마을 버스이다. 남한산성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 평범한 성남시 시내버스이다. 그 반면, 서울 남산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 전용 등급이나 마찬가지인 순환 버스이다.

참고로 순환 버스는 운행 구간이 짧지만 기본 요금이 여전히 1200원으로 타 버스와 동일하다. 요금도, 차량도 모두 대형 버스와 동급이지, 마을 버스 등급이 아니다.
남산 내부의 차도는 편도 1차선 일방통행으로만 돼 있기 때문에 올라갔던 길로 되돌아올 수도 없다. 그러므로 버스 노선들 역시 편도로만 짜여 있다.

이런 노란 버스 말고, 초록색 줄무늬 계열로 뭔가 독특하게 도색된 과거의 한국 화이바 제작 전기 버스도 정규 노선 순환 버스로 투입돼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짧은 항속 거리와 출력 부족, 고장 같은 여러 문제로 인해 이제 저것들도 내부는 다 내연 기관 기반으로 재개조된 듯하다. 산을 내려갈 때는 저런 버스를 타게 됐는데, 구동음이 전기 모터 소리가 아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산에는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봄에는 학교나 유치원에서 소풍 나온 애들, 일부 가족과 커플,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여기가 확실히 서울의 명물이긴 하다. 지금 지리적으로 서울의 남산 역할을 하는 건 관악산이나 청계산이지, 이 남산은 서울의 딱 중심부일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남산의 다른 봉우리 꼭대기에는 군사 시설이 있다. 남산을 도보 등산로 대신 차도를 이용해서 오르내리면 군부대 진입로도 잠시 마주치게 된다.

남산의 기슭에 있던 옛 중앙정보부 청사가 없어졌을 뿐이지 남산 꼭대기에 군부대는 수도 방위를 위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그런데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곳에서 남사스렇게 철조망을 치고 '군사시설 방향 촬영 금지' 이렇게 티를 낼 수도 없으니, 이 정도 노출쯤은 그냥 묵인해 주는 것일 뿐이다.

2. 배봉산

재작년에 갔던 배봉산을 그로부터 2년 뒤, 신록의 계절을 맞이하여 다시 올라가 봤다.
처음 갔을 때는 자전거를 세워 놨기 때문에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제약이 없이 남쪽에서 북쪽 편도로 산을 완전히 종단했으며, 휘경2동 주민 센터 방면으로 하산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워낙 작고 낮고 아담하니 산 전체가 공원화돼 있었다.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와는 별개로, 둘레길이 통나무 바닥과 울타리 형태로 조성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배봉산에도 남쪽의 꼭대기에 군부대가 오랫동안 자리잡아 있었으며, 그게 없어진 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배봉산이 정상까지 딱히 차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의외다.
군부대가 있던 정상 자리에는 '해맞이 생태 공원'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그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배봉산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상에 여전히 접근할 수 없고 봉인돼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등산로와 둘레길이 이렇게 서로 마주치기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봉산은 낮고 길쭉하고 공원이 꾸며져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니 서울 동쪽 끝의 일자산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자산은 배봉산보다 훨씬 더 길며, 등산로가 서울 둘레길의 일부이다. 배봉산은 그렇지 않다.
이런 곳에 종종 놀러 와서 잠도 이런 밖에서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더워지고 모기가 들끓기 전에 말이다.

3. 한글 비석 공원

본인은 작년 가을에 불암산 등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도로명 주소를 통해, 1500년대에 한글 문장을 써 넣은 무덤 비석이 여기 일대에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그 뒤 최근에 본인은 공릉동 일대를 방문한 일이 생겼는데, 이때 덤으로 짬을 내어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한글 비석을 보러 갔다.

버스을 타면 서라벌 고등학교 근처에서 내리게 된다. 길 건너편에 먼저 '한글 비석 근린 공원'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원은 넓으며 곁에 벤치도 여럿 있어서 앉아서 쉬기 좋았다.
의왕시에 있는 갈미 한글 공원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국어학자 이 희승 박사의 출생지라는 이유로 조성됨)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공원 한켠에는 한글 비석을 정교하게 복제한 '레플리카'가 전시되어 있었다. 현장에 가면 다음과 같은 소개· 안내 문구가 있다.

비명(碑名): 한글 고비(古碑)

- 이곳에 세워 놓은 비석은 노원구 하계동 산12번지에 있는 한글 고비를 동일한 형태로 제작하여 1997년 6월 20일 "한글비 근린 공원"인 이 공원에 세우게 되었다.
- 한글 고비는 국내에서는 오직 조선 시대의 유일한 국문 고비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어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다.

- 영비(靈碑)라고 부르는 한글 고비는 1536년도에 세워진 것으로 조선 중종 때의 문인 이 문건이 승문원 종9품 부정자의 벼슬을 지낸 선친 이 윤탁과 어머니 고령 신 씨를 합장한 묘 앞에서 부모 묘의 훼손을 염려하여 세웠으며 한글 30자(비석 서측)는 15세기 고어의 모습을 보여 주는 국어학의 학술 자료로서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국문 서예에 대한 연구 자료로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교육적인 측면에서 진품과 유사한 본 비석을 만들어 세우게 된 것이다.

1997. 6. 20. 노원구청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옆에 있는 서라벌 고등학교는 으리으리한 성처럼 꾸며진 사립 학교였다. 고려대 모 건물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면 정확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리지널은 한글 비석은 "공원 → 서라벌 고등학교 → 큰길" 쪽으로 나가서 길 건너 2~300m쯤 가야 나온다. 인근 도로의 확장 공사 때문에 원래 있던 자리에서 15m 남짓 옆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 길엔 노선 버스는 전혀 안 다니는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건물은 각종 조선 왕릉 옆에 있는 그 건물 같고, 사람 모양의 석상은 초안산에서 본 석상 같다. 고인의 무덤은 카메라 시점에서 오른쪽에 있으며, 문제의 한글 비석 원판은 저 건물의 안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말이야 아주 신령한 비석이다. 그러니 이걸 무너뜨리는(훼손하는) 자는 화를 입을 것이다. 다른 문구는 다 한문으로 썼지만 이 경고문만은 한문을 모르는 사람도 읽고 주의하라고 특별히 한글로 써 두는 바이다."


훈민정음 서문도 그렇고 이 문구도 그렇고.. 중세 한국어는 한편으로는 음운 구조가 더 복잡하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어보다 생략을 많이 하고 표현이 간결· 함축적이기도 했던 것 같다. 또한 '-느니라', '-노라'처럼 요즘은 성경 같은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고어체를 그 시절에는 입말로도 직접 사용했을까? 킹 제임스 성경의 영어 고어에서도 여러 모로 비슷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끝으로...
한글 비석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굉장히 참신한 한글 파괴 현장을 목격했다..;; (정확히는 한글 맞춤법 파괴)
평생 듣도 보도 못했던 용언이 하나 새로 생겼다. ㅠ.ㅠ
노이즈 마케팅을 의도하고 현수막을 일부러 저렇게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5/29 08:35 2018/05/29 08:35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494

1. 실행 파일의 자가 업데이트

내가 개인적으로 만들어서 배포하는 날개셋 프로그램들에는 서버 트래픽, IME의 갱신과 관련된 Windows 특유의 기술적 난항, 개발자의 귀차니즘(..) 등의 이유로 인해 자동 업데이트 기능이 없다. 하지만 회사에서 상업용으로 개발하는 프로그램에다가는 프로그램의 자가갱신 기능을 구현할 일이 좀 있었다. 이를 위해서 Windows에서 자기 자신을 삭제하는 실행 파일을 만들 때와 비슷한 방식의 시나리오를 설정했다.

  1. 업데이트 대상인 app.exe는 새 버전인 app_new.exe를 다운로드하여 임시 디렉터리에다 보관한다.
  2. app.exe는 별도의 updater를 실행하고 자기 프로세스 ID와 임시 파일 이름을 명령 인자로 전한다. 그 뒤 자신은 신속히 종료한다.
  3. updater는 app.exe가 종료할 때까지 기다린 뒤, 실제로 종료되면 app.exe를 삭제한다. 그리고 임시 파일을 app.exe로 옮기고 개명한다.
  4. 그 뒤 updater는 새로 받은 app.exe를 실행한다.

그렇게 본 프로그램과 업데이터까지 잘 만들었다. 업데이터는 Program Files 아래의 디렉터리에서 파일을 지우고 생성할 것이기 때문에 관리자 권한으로만 실행되게 매니페스트 설정도 물론 해 놨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개발 환경을 포함해 여러 PC에서 업데이트 기능이 동작했지만, 일부 PC나 가상 머신에서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관리자 권한을 분명히 줬는데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리고 같은 Windows 10에서 컴퓨터마다 성공 여부에 왜 차이가 발생하는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디버깅 결과 다음과 같은 복병을 발견하게 되었다.

(1) GetModuleFileNameEx는 만능이 아니다. 경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모듈이 존재하는 프로세스의 비트수(32 또는 64비트)와.. 정보를 요청하는 나 자신의 비트수가 일치해야만 경로를 얻을 수 있더라.
난 이 함수가 그런 이유로 인해 실패할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문서에 딱히 언급이 없었으니까... 비트수가 안 맞으면 ERROR_PARTIAL_COPY라는 굉장히 낯설고 기괴한 에러 코드와 함께 함수의 실행이 실패했다. (Only part of a ReadProcessMemory or WriteProcessMemory request was completed.)

(2) 그리고 더 뒷목 잡는 상황은 따로 있었다.
업데이터는 app이 종료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파일을 대체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런데 컴퓨터에 따라서는 그 반대편으로 극단적인 상황도 발생했다. 바로, app이 너무 일찍 종료되거나 업데이터가 너무 늦게 실행되는 바람에 정작 OpenProcess 요청부터가 실패하여 app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이때는 app과 업데이터가 서로 공유하는 이벤트 같은 오브젝트라도 만들어서 app과 업데이터가 공존하는 타이밍이 반드시 존재하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app이 자신의 족적을 공유 메모리나 아예 임시 파일 같은 다른 방법으로 넘겨서 업데이터에다가 전달하게 문제를 회피해야 했다. 뭐, 이런 일이 있었다.

요즘은 어지간히 대단하고 전문적인 제품이 아닌 한, 소프트웨어를 받아서 사용하는 것 자체만으로 최종 사용자에게 금전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관행은 사실상 없어졌다. 소프트웨어는 그냥 고객을 확보하고 개발사의 인지도를 올려서 더 교묘한 수단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통로일 뿐이다.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뿌리는 대신에 개발사는 사용자로부터 그 소프트웨어의 사용 형태를 최대한 미주알고주알 수집하려 하는 게 요즘 추세이다. 단순히 (1) 최신 버전 체크/업데이트라든가 프로그램이 뻗어서 (2) 메모리 덤프 같은 디버깅 정보를 제출하는 용도로 서버와 교신하는 게 아니라, 자주 사용하는 기능 같은 전반적인 행동 데이터를 종종 개발사로 보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사용자에 따라서 불쾌한 사생활 침해로 여겨질 수 있으니 사용자가 동의했을 때에만 보내게 돼 있다. MS Office, Visual Studio, Android Studio 등의 제품에 다 이런 옵션이 존재한다.

2. 경과 시간을 되돌리는 함수

자동 업데이트 기능은 마지막으로 업데이트 체크를 했던 시각을 레지스트리에다 저장해 둔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처음 실행되면 현재 시각이 레지스트리에 기록된 시각으로부터 1주 이상 경과했는지 검사한다. 조건이 만족되면 서버에 등록된 최신 버전을 지금 내 버전과 비교하고.. 이하 생략의 순서대로 구현되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다 만들고 테스트를 해 보니, 아무리 서버에 더 높은 버전 정보가 등록됐고 그로부터 1주가 넘는 시간이 경과해도 이 프로그램은 자동 업데이트가 행해지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코드를 한참을 들여다 본 뒤에야 "아차...!"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GetTickCount()는 1970년 1월 1일 같은 고정된 epoch으로부터 경과한 시간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 그냥 시스템이 부팅이 끝난 이래로 경과한 시간을 되돌리는 함수이지 않던가.
그러니 한번 컴퓨터를 켜 놓고 1주일 이상 버티지 않는 이상, 업데이트 체크가 행해질 리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뭘 잘못 먹고 착각을 했는지, 코딩 하다가 졸았는지, 왜 그 상황에서 저 함수를 쓸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3. message loop

Windows에서 MFC를 안 쓰고 응용 프로그램 GUI를 구현하다 보면 결국 (a. PeekMessage) → GetMessage → (b. TranslateMDISysAccel, TranslateAccelerator) → (c. IsDialogMessage) → TranslateMessage → DispatchMessage 등의 순으로 함수를 호출하는 message loop도 손수 만들게 된다.
괄호를 친 a~c는 필수는 아닌 함수들이다. a는 idle time processing이 필요할 때만 쓰면 되고, b는 MDI 프로그램이라거나 자체 단축키가 있을 때, 그리고 c는 혹시 modeless 대화상자가 존재할 때에만 쓰면 된다.

본인이 개발하던 문제의 프로그램은 타 프로세스로부터 받은 메시지에 반응하여 대화상자를 표시하는 기능이 있었다. 그런데 만들어 놓고 보니 당장은 동작하는 것 같지만 뭔가 미묘하게 정상이 아닌 상태 같았다.
대화상자가 떠 있는 동안에도 우리 쪽에서 정의한 custom 메시지를 처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번거롭지만 대화상자를 modal 대신 modeless 형태로 바꿨다.

그런데 tab을 눌러서 컨트롤간 포커스를 이동시켜 보면 이상한 비프음이 나면서 이동하고, Alt+Space로 시스템 메뉴를 꺼내서 창을 닫으면 제대로 동작하지 않고 프로그램 동작이 수 초간 멎는다거나..
owner(parent) 윈도우를 타 프로세스의 윈도우로 지정해서 그런가, 처음에는 쓸데없는 부분을 의심하며 한참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코드를 한참을 들여다 본 뒤에야 내가 무슨 삽질을 했는지를 깨닫고 경악하게 됐다. message loop을 이런 식으로 짰기 때문이었다.

while(GetMessage(&msg, NULL, 0, 0)>0) {
    for(HWND hDlg: m_hModelessDlgs)
        if(hDlg && ::IsDialogMessage(m_hDlg, &msg)) continue;
    ::TranslateMessage(&msg); ::DispatchMessage(&msg);
}

꺼내 놓을 수 있는 modeless 대화상자가 여러 종류가 추가되면서 나름 저렇게 for문을 넣었는데..
난 저 continue가 여전히 while문 전체를 제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대화상자로만 가야 할 메시지가 여전히 DispatchMessage로도 이중으로 전해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뭔가 동작은 하는 것 같은데 잡다한 부작용까지 덩달아 발생하고 있었다.

내가 Windows 프로그래밍 경력은 10년을 훌쩍 넘기지만.. 그래도 정신이 없을 때는 아직까지 이런 초보적인 실수도 한다.

4. 대화상자를 종료하는 법

대화상자를 하나 구현했다.
사용자는 메뉴를 거쳐서 그 대화상자를 열고 닫는데, 그걸 한번 닫은 뒤부터는 메뉴를 선택해도 그 대화상자가 다시 열리지 않는 버그가 있었다. 그것도 언제나 그러는 것도 아니고 특정 기능을 사용해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대화상자를 닫았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디버깅 끝에 밝혀진 원인은 바로.. modeless 대화상자를 EndDialog 함수를 이용해서 닫았기 때문이었다.
modal 대화상자를 훗날 modeless 형태로 개조하면서 발생한 부작용의 연장선이다. 대화상자를 닫는 부분을 그에 맞게 제대로 고치지 않았었다.

EndDialog를 호출했더니 그 대화상자는 ShowWindow(hDlg, SW_HIDE)를 한 것처럼 화면에서 사라지기만 할 뿐, 실제로 파괴되고 없어지지는 않았다. modeless 대화상자는 여느 윈도우를 없앨 때처럼 DestroyWindow 함수를 직접 호출하든가 WM_CLOSE를 날려서 없애야 한다. 오오.. 이것도 의외로 자주 할 수 있는 실수로 보인다.

그럼 반대로 modal 대화상자의 프로시저에서 자기 자신을 DestroyWindow로 날려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가 궁금해진다. EndDialog와 달리 DestroyWindow는 IDOK나 IDCANCEL 같은 리턴값을 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 DialogBox 계열 함수의 리턴값은 그냥 '취소'를 눌러 종료된 것과 동급으로 취급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5. 맺는 말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타 프로세스로부터 받은 메시지에 반응하여 대화상자를 표시하기" 이게 생각보다 더욱 기괴한 상황이란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프로세스 A가 프로세스 B로 메시지를 send로 보냈는데 B가 대화상자나 메시지 박스 같은 modal UI를 표시하고, 그게 종료된 뒤에야 return을 해 준다면.. 그 동안 프로세스 A는 자기 메시지를 처리하지 못하는 '응답 없음' block 상태가 돼 버린다. 특히 그 상태에서 B가 A로 역으로 메시지를 보내기라도 한다면 둘 다 꼼짝없이 dead lock에 빠진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주체와 객체가 다 동일 프로세스의 동일 스레드 소속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 그 modal UI를 돌리는 B쪽의 메시지 loop에서 A에 소속된 윈도우에게 WM_PAINT 같은 메시지가 온 것도 같이 처리를 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세스, 아니 스레드 소속만 달라도 이런 일이 저절로 같이 행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세스와 스레드 경계를 넘나들며 UI를 표시할 때는 대화상자는 최대한 modeless 형태로 만들고, 메시지도 post가 아니라 반드시 send로 보내야겠다면 ReplyMessage를 호출해서 "선응답 후UI" 형태로 프로그램 UI의 반응성을 보장해야 한다.

사실, 같은 프로세스이더라도 자기와 소속이 다른 스레드에 속한 윈도우로는 SetFocus를 할 수 없으며 심지어 DestroyWindow조차도 직통으로 먹히지 않는다. AttachThreadInput를 써서 입출력 연결을 한 뒤에나 포커스 지정이 가능하며, 윈도우의 파괴는 WM_CLOSE를 보내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해야 한다. WM_CLOSE는 WM_DESTROY와 달리,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해당 윈도우 프로시저가 거부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5/26 08:34 2018/05/26 08:34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493

1. 음악 연주와 자동차 운전의 관계

페르마타(늘임표)는 자동차 주행 중에 만나는 과속방지턱과 비슷한 느낌이다. 사실, 자동차 주행을 음악 연주에다 비유하는 건 심상 면에서 의외로 그럴싸하다. 그래서 음악 연주에다 빗댄 자동차 CF가 있고, 우리나라엔 아예 '쏘나타'라는 이름의 자동차도 있다.

2. 작곡과 편곡의 관계

작곡과 편곡의 관계는 군용기에서 공중전과 폭격의 차이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에서 새로운 주선율을 만들어 내는 건 가장 화려하고 창의적인 활동이며, 이는 비행기로 치면 기동력이 가장 뛰어나고 제일 뽀대 나며, 공중전을 벌여서 적군의 군용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전투기와도 같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전과를 가장 많이 세운 비행기는 우월한 기동성으로 육군과 해군을 지원하여 지상의 목표물을 없애 주는 폭격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선율을 실제로 풍성한 반주가 곁들어진 음악으로 만들어 주는 작업은 뼈대에다 살을 붙이는 편곡이다.
오늘날은 공중전과 폭격이 모두 가능한 전폭기가 대세이듯, 음악계에도 혼자 작곡· 편곡에 심지어 가사까지 직접 쓰는 만능 싱어송라이터도 있긴 하다.

3. 화음과 합창 파트

본인은 음악에서 박자보다 화음· 화성에 더 끌리는 편이다. 높이가 다른 음들에 대해서 마치 서로 다른 색깔을 보듯이 일종의 공감각적인 심상을 느낀다. 단선 악보 노래만 부르다가 화음을 넣어서 합창을 부르면.. 마치 흑백 영화를 보다가 컬러 영화로 바뀐 듯한 느낌이다. 사실, 각 파트별로 연습을 하는 게 사진 촬영으로 치면 R, G, B 각 색깔축을 제각기 현상하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교회에서 성가대 찬양 같은 거 연습할 때 파트 연습은 힘들고 어렵고 시간도 더 많이 걸린다. 하지만 제대로 부르면 훨씬 더 아름다운 노래가 나오기 때문에 힘들게 연습한 보람이 있다. 또한, 합창뿐만 아니라 돌림노래 같은 부류도 좋다.

합창은 보통 여자+고/저, 남자+고/저 이렇게 네 파트로 나뉘는데, 그 중 '남자+고'에 해당하는 테너 파트가 내 경험상 제일 어렵다.
소프라노는 그 노래의 주선율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쉽고 친숙하다. 알토는 조금 연습이 필요하지만 음역이 낮아서 부담 없으며, 소프라노의 협화음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음을 내기 쉽다. 베이스는 음역이 제일 낮으며, 그 멜로디도 굉장히 단순한 경우가 많다.

그 반면, 테너는 보통 여성 파트와 관계 없는 생소한 멜로디 위주인 데다 음역도 아주 높다. 조심해서 부르지 않으면 삑사리가 난다. 교회에서 합창 연습을 하면서 평소에 테너만 부르다가 다른 파트를 도와주기 위해서 파트를 옮겨 봤더니 거기는 부르기가 이렇게 쉬운 줄 몰랐다.

테너로도 모자라서 카운터테너는.. 뭐 높은솔 이상으로 올라가고 남자 성대로 거의 여자 음역을 내는 파트이니.. 타고난 성대나 특수한 테크닉을 구비하지 않으면 감당 불가능일 것이다. 접두사 'counter-'는 거의 'anti-, against'와 비슷한 뜻인데 테너의 반대가 아닌 테너의 강화를 나타내는 음역 이름에 붙었는지 모르겠다.

4. 음고 (또는 음정)

본인은 앞서 언급한 저런 취향과 배경으로 인해, 어떤 곡이나 노래를 배웠으면(특히 교회 찬송가) 들었던 그대로 기계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음높이로 부르는 걸 좋아한다. 악기 없이도 첫음이 정확하게 기억돼 있기 때문에 반주가 있건 없건 쌩목으로도 동일한 음고가 나온다. 이런 데에 좀 쓸데없는 집착 같은 게 있다.
화가로 치면 무슨 고전파처럼 걸어다니는 사진기를 추구하고, 음악으로 치면 걸어다니는 녹음기를 추구한다.

그런데 음반의 곡은 음역이 전문 가수에게 맞춰져서 그런지 일반인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나>(송 명희 작사, 최 덕신 작곡) 같은 경우 음반의 오리지널 C장조로 그대로 부르면 결말부에서 음이 무려 높은솔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찬양집 악보를 보면 조를 A장조 정도로 낮춰 놓곤 한다.

비록 회중의 편의를 위해서 조를 옮긴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게 마음에 안 든다. 비록 같은 곡이긴 하지만 조가 바뀌면 느낌이 싹 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흥, 감동, 여운이 C장조를 기준으로 다 형성되고 머리에 박혔는데, 곡을 다른 조로 부르면 그게 느껴지지 않는다.

조가 달라지면 같은 곡도 느낌이 확 달라지기 때문에 내가 Looking for you를 들을 때도 mp3 음원을 구한 뒤부터는 사운드 에디터를 돌려서 얘를 단2도부터 장7도에 이르기까지 반음계의 모든 음역으로 조를 달리하면서 다 들어 봤다. Looking for you를 3천 번 들으면서 조를 바꾸고, 템포를 바꾸고 가장 비슷한 악기를 찾아보고 멜로디를 채보하고..

이 음악으로부터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느낌을 그냥 뼛속까지 다, 금이빨만 빼고 모조리 씹어먹고 소화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는 모가 형 증기 기관차부터 KTX, 경인선에서부터 경부고속선에 이르기까지 철도 덕후로 머리 구조가 개조되어 갔다..
철도청이 사람을 완전히 버려 놨다. Looking for you라는 곡은 어설프게 내보내는 철도청 CF 10편, 이미지 광고 100편도 배출하지 못한 평생 매니아 고객, 철도교 신자를 만들었다.

5. 이조악기

본인은 오로지 Looking for you 때문에 팔자에도 없던 색소폰을 악기를 직접 구입해서 배워 보기까지 했다. 새마을호 음악이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내가 피아노 다음으로 접하는 제2군 악기는 플룻이나 기타 같은 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기타는 주선율 연주가 아니라 코드 반주용으로 워낙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기 때문이요, 플룻은 소리가 예쁘고 교회에서 찬송가 특송 보조용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2군을 넘어 3군으로 가면 클라리넷, 오보에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다. 철도가 아니었으면 색소폰도 3군에 속했을 것이다. 그것도 알토보다는 소프라노 색소폰 말이다.
이거 무슨 외국어 같다. 피아노는 영어 같은 악기이고, 2군 3군은 중국어나 스페인어, 일본어 같은 제2 제3 외국어에 해당되겠다. 바이올린은 좀 여성형 악기인 것 같아서 제낀다.

모든 악기들이 그렇겠지만 색소폰은 도대체 어떤 유체역학적인 원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걸까? 황동으로 된 커다란 몸체뿐만 아니라 마우스피스, 그리고 나무로 된 reed가 어떤 상호작용을 해서 소리가 나는지.. 어찌 보면 금속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만큼이나 신기하게 느껴진다. 옛날에는 이런 악기나 열쇠· 자물쇠를 만드는 장인의 기술이 요즘의 자동차 반도체 기술 같은 최첨단 하이 테크놀러지였을 것이다.

소리가 멋있긴 하지만 알토 색소폰 정도 되면 악기가 꽤 크고 무겁다. 그리고 불었을 때 소리가 피아노 이상으로 꽤 큰지라, 아파트에서 연습하기가 좀 부담되기도 한다.
저음을 제대로 내기가 어려운 건 초· 중딩 때 학교에서 배웠던 리코더와도 비슷하다. side effect 없이 옥타브를 위 아래로 오르내리는 것도 좀 어려운 축에 든다.

이 외에도, 본인은 색소폰을 처음 배우던 시절에, 얘는(알토 기준) 기준조가 C가 아니라는 걸 알고서 굉장히 놀랐었다. "아니 사람 헷갈리게 왜! 도대체 왜 악기를 그딴 식으로 만들지? 무슨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헐.. 색소폰이 이조악기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으면 내가 덥석 색소폰을 사고 배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내는 음과 실제로 악기에서 들리는 음이 서로 다르니, 굉장한 연상거부와 불편함이 야기된다. 그래서 색소폰으로는 아무 악보나 덥석 내가 원하는 조로 연주하지 못하며, 미리 전조를 머릿속이나 종이에다 해 놔야 된다. 가령, Looking for you를 들은 대로 그대로 불려면 오리지널 F조가 아니라 D조로 전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은 이조악기가 색소폰만 있는 건 아니다. 트럼펫은 기준조가 Bb(플랫)이라고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 장성 경례곡, 그리고 결정적으로 군대 기상 멜로디가 왜 전부 Bb조인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6. 아리랑 멜로디가 붙은 영어 찬송가

한국인 중에 '아리랑'이라는 민요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어느 장로교 교단에서 1990년대에 '아리랑' 멜로디에다가 가사를 써서 Christ, you are the fullness (of God)라는 찬송가를 만들어 수록했다.

이 사실이 내 기억이 맞다면 2000년대 이후에 어느 SBS 다큐멘터리의 소개를 통해서 국내에도 알려졌다. 백인 코쟁이들이 "오 아리랑이 멜로디가 너무 아름다워요(찬송가용으로)! 원더풀!" 이러는 인터뷰가 실렸다. 심지어 그 영어 가사가 한국어로 역번역되어 일명 아리랑 찬송가로 수입되기까지 했다.

뭐, 한국 민요가 외국의 찬송가에 실렸다니 좋은 일이다. 막 "한민족은 우수한 민족이라는!" 국뽕에 취할 필요도 없고, "그게 뭐 대수라고" 식으로 너무 시니컬하게만 볼 필요도 없다.
사실, 특정 민족의 민요 멜로디가 찬송가 가사에 붙는 건 흔한 일이다. 또한 극단적인 예로,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는 군가 정도가 아니라 "존 브라운의 시체"라고 찬송가와는 1도 관계 없는 노래의 멜로디에서 유래되었으며, 우리말 가사조차도 출처 불명의 창작이지 정확한 번역을 통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미국 본토에서 저 찬송 부르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으면 링크를 소개하려 했는데, 전부 국내에서 "미국에 아리랑 찬송가가 있대!"라고 소개하거나 가사를 역번역해서 부른 것밖에 안 뜬다. 그래서 링크 소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찬송가에다가 국악 스타일을 접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서양식 7음계가 좋다. =_=;;

7. 옛날 자동차 소개 테이프에 수록되었던 BGM들

1991년쯤이던가.. 본인 초딩 시절에 집의 첫 차가 현대 엑셀이었다.
차를 사니 취급설명서와 보증서 같은 책자가 따라오는데, 책자뿐만 아니라 제조사에서 차량의 전반적인 관리 요령을 BGM과 함께 남녀 나레이터가 낭송해 놓은 테이프도 같이 줬었다.
아마 이건 차종마다 다르지는 않고 모든 승용차 공통, 모든 트럭 공통..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너무 오래 전 일이지만, 난 그 테이프를 즐겨 들었다.
"반드시 무연 휘발유를 사용하셔야 하며, 납 성분이 포함된 유연 휘발유를 사용하시면 뭐 어쩌구(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팬 벨트, 휠 베어링, 디스크 드럼의 마모 상태 점검.." 뭐 이런 단어가 나왔던 것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BGM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선곡을 한 담당자가 단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1) A면

El Bimbo (Paul Mauriat) -- 맨 처음 "안녕하십니까? 저희 현대 자동차의 고객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인트로와 함께 나오던 음악이다. 제목을 한참 뒤에야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C단조)
첫 곡이 끝난 다음에는.. 뭔가 월광 소나타 스러운.. Thexder 게임에서 주인공이 죽었을 때 나오는 게임오버 음악과 비슷한 곡이 나왔다. (F단조)
(정체불명. 기억 소실)

Love is Blue (Paul Mauriat) -- 난 이 곡을 현대자동차 테이프에서 난생 처음으로 들었다. (A단조)
그 뒤로도 두 곡 정도가 더 있었는데, 제목은 모르지만 주요 구간 멜로디는 지금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모두 C단조이다.

(2) B면

뒷면 첫곡도 꽤 유명한 음악인 걸로 기억하는데, 멜로디를 기억하지만 제목 모름. (C단조)
(중간은 정체불명. 기억 소실)

Plaisir D'amour -- 끝에서 셋째. 테입 전체를 통틀어서 거의 유일하게 장조곡으로 기억한다. 여느 연주와는 달리 주선율이 팬 플룻이고, 템포가 좀 빠른 편이었다. (F장조)

저 곡은 제목을 번역하자면 "사랑의 기쁨"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같은 제목의 바이올린곡을 작곡한 게 있는데, 그것과는 다른 곡이다. "도~미솔 파미 레(도#)레파라~".. 아마 들으면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그건 원제도 독일어인 Liebesfreud이다. 자매품으로 "사랑의 슬픔"도 있다는 게 흥미로운데..
그 반면, 저 Plaisir D'amour는 출신이 프랑스 계열이다.

The Lonely Shepherd (James Last) -- 끝에서 둘째. 영화 <킬 빌>에서도 오마주 되어 흘러나온 유명한 곡이다. (D단조)
운행 중 비상 상황 발생시 대처 요령 섹션과 함께 흘러나왔다. 팬 플룻 연주곡이 두 곡 연속으로 나오는 셈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 결말부에서 덕담과 함께 빠이빠이 하며 흘러나온 곡 역시 C단조의 유명한 곡이며 멜로디가 기억 나고 주선율을 악보로 정확하게 쓸 수 있지만.. 무슨 곡인지 제목은 모르겠다.
30대 이상 나이의 방문자 분들 중에 혹시 이런 추억 있으신 분 안 계신가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8/05/23 08:31 2018/05/23 08:31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492

재래식 새마을호 객차의 퇴역 외

1. 새마을호 객차의 완전 퇴역

지난 2018년 4월 30일을 끝으로, 재래식 새마을호 열차가 최후의 유일한 운행 노선이던 장항선에서도 운행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사실, 5년 전 2013년 1월 4일엔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동차가 완전히 퇴역했으며, 그때 이후로 새마을호는 경부선 같은 간선에서 야금야금 퇴출되고 ITX-청춘으로 대체되어 왔다. 그러니 이번 객차형 새마을호의 은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장항선은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중간한 길이에다 비전철 단선이라는 특성 덕분에, 경부선 같은 1루에서 밀려난 새마을호의 한직 역할을 해 왔다. 모든 객차가 특실 좌석인 구특전 동차형 새마을호도 장항선에서 최후까지 남아 있었다.

그럼 장항선에 앞으로 무궁화호밖에 안 남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ITX-새마을 도색을 한 새마을호가 뒤를 잇는다. 그런데 장항선은 전철화가 돼 있지 않으니, 우리가 아는 ITX-새마을 전동차가 다니지는 않는다.
전동차가 아니라 디젤 기관차가 견인하고, 과거에 무궁화호였던 일명 '디자인리미트 신형 객차'가 새마을호 객차로 승격되고 ITX-새마을 스타일로 도색되어 다니게 된다.

즉, 일반열차 중에 무궁화호보다 상위인 새마을호라는 차급 자체는 유지된다.
그러나 과거처럼 동그란 창문에다가 64석 간격에 종아리 받침대까지 있던 그 새마을호 열차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ITX-새마을은 여전히 무궁화호와 동일한 72석 간격이다.

옛날에는 같은 객차가 새마을호에서 무궁화호로 강등되면 강등됐지 격상되는 일은 없다시피했는데.. 10여 년 전에 통일호 동차가 RDC 무궁화호로 승격됐던 것처럼 이번에는 무궁화호 객차가 ITX-새마을로 승격되었다. ITX-새마을은 이제 전동차 이름이 아니라 더 추상적인 차급의 명칭으로 등극하는 셈이다.

2. 기존의 열차 등급 체계가 모호해짐

먼 옛날에 열차가 매우 희귀하던 시절에는 마치 선박처럼 각각의 열차에다가 서로 다른 이름이 지어지고 끝에 '호'라는 접미사까지 추가되곤 했다. 1950년대에는 여객기에도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창랑호, 만송호, 우남호 같은 이름이 붙었다는 걸 생각해 보시라.

그 뒤 열차의 운행 횟수가 증가하면서 각각의 열차에다가 서로 다른 이름을 짓는 관행은 없어졌으며, 그건 그냥 차량의 번호로 대체됐다. 그래도 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각각의 기관차 종류별로 모가, 미카, 파시, 혀기, 마터 등의 고유한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그건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다. 디젤 이후부터는 종류(천· 백)와 개별 차량(십· 일)을 모두 4자리 번호만으로 식별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때는 대등한 등급의 열차도 경부선을 다니는 놈과 호남선을 다니는 놈이 다를 정도로 온갖 명칭들이 난립하고 있었지만, 이것들을 모두 정리하여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4종류의 명칭이 노선과 차량 종류를 불문하고 오로지 차급만을 나타내는 깔끔한 체계가 1984년 1월부터 정착했다.

그게 20년 가까이 잘 유지되고 있었는데 2000년 11월엔 정선선에서 비둘기호가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사라졌다.
2004년 4월부터는 KTX라는 더 높은 등급이 등장하고, 객차형 통일호가 경춘선· 중앙선 등을 마지막으로 운행하다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2010년경부터는 누리로, ITX-청춘, ITX-새마을 같은 새로운 전동차들이 자꾸 등장했다.

  • 누리로는 기존 무궁화호를 전혀 건드리지 않으면서 무궁화호와 대등한 차급을 표방하는 반면,
  • 경춘선에만 2층 열차 형태로 다니는 ITX-청춘은 새마을호보다 높고 KTX보다 낮은 새로운 차급이다.
  • 한편, ITX-새마을은 기존 새마을호를 대등하게 대체· 계승하는 차급이다.

즉, 이들의 위상은 모두 제각각 다르다.

그리고 2018년에는 재래식 새마을호가 최후의 노선이던 장항선에서 종말을 고하게 되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머지않아 경원선 통근열차도 전철에 밀려 사라질 예정이다.
그러니 재래식 차급의 관점에서 보면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중에서 남는 차급은 무궁화호밖에 없다. 무궁화호는 고속철이나 여타 새로운 차급으로 재편성되지 않은 나머지 기관차-객차형 일반열차들을 싸잡아 일컫는 명칭이 됐다. 기존 차급 체계가 굉장히 많이 문란해진 셈인데 교통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3. 전철 노선도의 배색 체계가 모호해짐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도권 전철 노선도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서울 역-청량리 구간만 빨강이고 나머지 철도청 광역전철들은 '국철'이라는 이름으로 몽땅 회색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 노선도의 디자인이 확 바뀌었다. 서울 지하철과 직통 운행하는 국철들은 애초부터 그 지하철의 일부 구간인 듯이 동일한 색깔과 노선명으로 구분 없이 표기되게 됐다. 그리고 1호선은 회색도 빨강도 아닌 군청색/남색이라는 새로운 색으로 전구간이(종로선, 경부선, 경인선, 경원선) 싹 통일되었다.

이건 열차의 운행 계통을 승객에게 직관적으로 이해시킨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바람직한 조치였다. 하지만 그 당시 서울 지하철과 직결하는 구간이 없이 전적으로 혼자 노는 국철이던 '분당선'만은 번호 없이 노선명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용산-성북 계열은 여전히 '국철'이라는 이름으로 뭔가 1호선의 어정쩡한 지선처럼 여겨지게 됐다.

그 뒤 지금은.. 코레일이 공사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공항 철도와 신분당선처럼 운영 주체가 도시의 지하철이 아니면서도 다소 이질적인 철도가 등장했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과 직결하지 않는 광역전철도 경춘선, 경의선, 경강선, 그리고 앞으로는 소사-원시(일명 서해선)에 이르기까지 등 더욱 많이 생기게 됐다. 이젠 광역전철들도 노선도에서 색깔 분배를 어찌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게 됐다.

그 와중에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경전철이다. 경전철은 노선도에서 선(edge)은 모두 회색으로 그리고, 역명(vertex)을 고유한 노선색으로 그리는 것으로 디자인 기준이 정해졌다고 한다. 우이 경전철은 종점이 북한산이어서 그런지 초록색 계열이다. 다만, 이 방식대로라면 환승역은 무슨 색으로 칠할지 좀 애매해질 것 같다.
과거에 국철을 표시하던 색깔이 이제는 경전철을 나타나는 대표색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4. 철도 차량의 특징

철도 차량은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고무 타이어 대신 쇠바퀴가 달렸고 레일 위를 달린다는 원초적인 차이점 말고도 다음과 같은 큰 차이가 있다.

(1) 좌석에 안전벨트가 없다. 자동차는 입석형 시내버스 정도나 안전벨트가 없지만, 열차는 KTX조차도 안전벨트가 없고 자리 주변이 제일 깨끗하다. 철도는 자동차와 같은 급의 정면충돌 교통사고와 급정거, 전복 상황을 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위와 비슷한 이유로 인해, 객실의 유리창이 자동차와 동급의 안전유리 재질이 아니다. 그래서 돌 같은 거 맞았을 때 생각보다 잘 깨져서 파편 때문에 인명 사고가 종종 난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비상 상황에서 유리창을 깨고 차량을 탈출해야 할 때, 자동차 창문처럼 너무 안 깨져서 "창문 어디부터 두들겨야 잘 깨지고.." 이런 걸 고민할 필요도 없다.

(3) 그리고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인데, 철도 차량은 차축에 차동 기어가 일단 일반적으로는 없다. 철도는 자동차와 같은 급의 급커브 주행을 염두에 두지 않으며, 안 그래도 바퀴와 레일의 마찰이 작은데 접지력을 약화시킬 여지가 있는 장치와도 구조상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도 차량 차축을 보면 양 바퀴 사이에 아령처럼 길다란 작대기만 끼워져 있지, 자동차 차축처럼 중앙에 동그란 공처럼 불룩 튀어나온 부위가 없다.
그 대신, 얘는 바퀴 단면이 약간 경사져 있다. 레일에 닿는 바퀴의 지름이 커브의 안쪽과 바깥쪽이 서로 차이가 나게 하는 방식으로 커브를 극복한다. 종이컵을 옆으로 눕혀서 데구르르 굴려 보면 위쪽과 아래쪽의 지름의 차이로 인해 커브를 틀며 돌지 않던가? 그걸 생각하면 된다.

물론 철도 차량에서 이를 구현하려면 레일과 바퀴 모두 커브의 곡률까지 고려해서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퀴가 종이컵처럼 두께가 무한한 게 아닌데, 이 방식만으로는 지하철처럼 반지름 100~200m대밖에 안 되는 급커브를 부드럽게 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때는 주행 중에 커브 안쪽 바퀴가 헛돌면서 끼릭끼릭 쇳소리가 나는 걸 피할 수 없다.

5. 철도의 날 날짜가 바뀌었나?

딱 위의 4번까지만 글을 쓰고 끝내려 했는데 본인은 최근에 철도와 관련하여 웬 생뚱맞고 해괴망측한 소식을 들었다.
건국 이래로 70년 가까이 시종일관 9월 18일이던 우리나라의 철도의 날 기념일이... 올해(2018)부터 별안간 6월 28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행 철도의 날은 1899년 9월 18일에 한반도에서 최초로 개통한 철도인 경인선의 개통일을 기준으로 제정돼 있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여러 나라들도 철도의 날은 그 나라의 최초의 일반열차 철도 내지(한국으로 치면 경인선), 아주 중요한 장거리 간선 철도(한국으로 치면 경부선)가 개통한 날 당일, 또는 그 날짜 근처로 제정돼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철도의 날은 아주 합리적인 날짜이다. 경인선은 오늘날까지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동차만으로 2복선 완급 분리 운행을 하는 트래픽 킹왕짱인 철도이다. 경인선이 당장 없어져 버리면 그쪽 사람들 출퇴근길이 어떻게 바뀔까?

그런데 그 날짜가 문헌상 잘못됐다거나, 경인선이 완전히 폐선되어서 사람들 기억에서 싹 잊혀졌다거나, 사실은 경인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철도가 더 옛날에 개통된 게 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일제 잔재 청산한다는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구한말에 도대체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존재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듣도 보도 못한 대한제국 철도국이 1894년 6월 28일에 창설됐대서 저 날로 전격 변경한댄다. 야 이..

내가 옛날에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까지는 개인적으로 찬성하는 소신이었고 그건 지금도 변함 없지만.. 저건 정말 너무 어거지다. 조선총독부 청사도 건물 자체보다는 그게 북악산 정면을 딱 가리는 위치가 미관에 너무 좋지 않아서 철거하는 걸 말리지 않겠다 정도이다. 무슨 일제 쇠말뚝 마냥 민족 정기, 일제 잔재 청산..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말이다.

젠장, 별 게 다 일제 잔재래. 경인선 철길을 걷어내든가, 아니면 서울역 구 역사나 철도 좌측통행도 다 일제 잔재 적폐니까 다 때려부숴 보라고, 이 미친놈들..

일자리 날아가고 경제 운지하고 있는 동안 맹 쓸데없는 것만 자꾸 바꾼다니까.. 괜히 여권 디자인이나 바꾸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근처에 있는 국군의 날은 일제하고는 정말 1도 관계 없는 날이다. 하지만 그건 저놈들이 골수 종북좌빨 성향이니까 38선을 넘은 날이 고깝고 불편해서 못 바꿔 안달인 것이다. 그러니 임팩트가 훨~씬 덜한 독립군이니 광복군이니 뭐라도 갖다붙이려고 수작이지.

쟤들은 진짜로 일제 잔재 청산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대한민국 정체성의 부정과 말소, 역사 왜곡이 목적인 아주 사악하고 나쁜놈들이다. 아유 또 괜히 성질 나네..

Posted by 사무엘

2018/05/20 08:39 2018/05/20 08:39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491

고래 이야기

지구상의 포유류 동물 중에는 토끼나 원숭이나 사자 같은 평범한(?) 놈만 있는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이상한 하이브리드도 몇 종 있다.

  • 박쥐: 날개가 달렸으며, 이래뵈어도 자가비행이 가능한 유일한 포유류이다. 조류가 절대로 아니다. '박쥐의 알' 같은 걸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오리너구리: 분명 새끼에게 젖을 주긴 하지만 난생이다. 그리고 이빨이 없고 부리가 달려 있다!

오리너구리의 경우 생긴 게 워낙 기괴한지라, 학계에 처음 보고되었을 때에 다른 학자들이 "어디서 합성(박제를..) 주작질이야"라는 핀잔과 함께 믿지 않을 정도였다. 현지(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포된 개체가 확인된 뒤에야 존재가 완전히 인정되었다.

박쥐는 포유류와 조류의 하이브리드인데, 색깔도 시꺼멓고 어두컴컴 음침한 동굴에서 살기 때문에 인상이 그리 좋지 못하다. 동화에서는 무슨 카멜레온처럼 비겁한 회색분자 기회주의자로 묘사되었으며, 각종 아케이드 게임에서는 닿기만 해도 주인공에게 대미지를 주는 악랄한 몬스터 역할을 한다. (고인돌, 라이온 킹, 알라딘 등..)

이 외에 날치는 어류와 조류의 하이브리드처럼 생기긴 했다. 뭐, 본격적인 비행 능력을 갖춘 건 아니기 때문에 교통수단으로 치면 비행정· 수상기라기보다는 호버크래프트에 더 가깝다.
그리고 펭귄은 시꺼먼 색깔에다 날개인지 지느러미인지 모를 팔로 헤엄과 잠수까지 가능한 것이 특이한 조류이다.
뭐, 모든 동물들을 다 합쳐도 인간의 특이함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뭐 일단은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하늘과 땅 다음으로 물 속에는 고래가 저런 특이한 하이브리드에 속한다.
지느러미 달린 바다 생물임에도 불구하고 어류와는 달리 알이 아닌 새끼를 낳고 젖을 준다. 게다가 항온이고.. 무려 허파 기반의 공기 호흡을 하니 빼도 박도 못할 포유류이다. 다른 대형 어류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런 특이한 고래 중에서 (1) 대왕고래(흰긴수염고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거대하고 무거운 동물이다. 공룡처럼 이미 멸종한 옛날 지질 시대 생물까지 '다' 포함해도 이 바닥의 원톱이다!

  • 아프리카코끼리: 몸길이 6~7.5미터, 어깨높이 약 3미터, 몸무게 최대 6톤..;;
  • 기린: 몸길이 약 3미터, 뿔 끝까지 키가 약 8~9미터, 몸무게 약 1.5톤
  •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 몸길이 약 25미터, 몸무게 약 50톤이었을 것으로 추정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왕고래는 성체의 몸길이가 25~35미터에 달해서 거의 보잉 737 여객기 초기형의 길이에 맞먹는다. 무게는 150톤을 훌쩍 넘어서 대형 디젤 기관차 한 량보다 더 무겁다. 공룡은 몸길이야 뭐 화석을 보고 비교적 쉽게 계산할 수 있지만, 몸무게는 공룡과 가장 비슷한 악어의 부피 대 몸무게 비율을 토대로 추정한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왕고래는 뭔가 제일 고래처럼 생겨 있다. 이명에 걸맞게 턱 아래로 희고 긴 수염 같은 게 보인다.)

생물은 동물보다 식물이 더 크며, 동물 중에서는 포유류보다 파충류가, 육식보다는 초식 동물이 더 큰 편이다. 덩치 말고 생존력은 포유류가 파충류보다 더 뛰어나다.
먼저 체온. 항온동물인 포유류가 변온동물보다 훨씬 더 생존력이 강한지라, 더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겨울잠 같은 거 잘 필요 없이 서식할 수 있다.

이 겨울잠을 영어로 hibernate(-ation)라고 하는데, 요즘은 컴퓨터의 최대 절전 모드를 가리킬 때도 이 말을 쓴다.
항온동물 중에도 겨울잠을 자는 놈이 일부 있긴 하나, 그래도 변온동물만치 체온이 확 떨어지고 가사(假死) 상태로 깊이 잠들지는 않는다.

파충류는 조금만 날씨가 추워져도 사람에게 저체온증이 찾아온 것처럼 동작이 둔해진다. 더구나 심장 구조도 불완전 2심실이어서 격렬하게 활동하다 보면 정맥피가 섞이고 몸이 경직되기 쉽다.
일례로 뱀을 계속 도구를 써서 긴장시키고 있으면 그 불완전한 심장 구조 때문에 피가 안 통해서 근육이 굳은 채로 삐끗거리게 된다고 한다. 땅꾼들은 뱀을 이렇게 긴장+stun 시켜서 잡는다.

그런데 체온 유지란 게 그냥 되는 게 아니어서 포유류는 털이나 땀 등 파충류보다 월등히 더 복잡한 메카니즘이 필요하다. 에너지 소비량이 많으며, 평소에 숨만 쉬고 가만히 지내더라도 많이 먹어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덩치가 한없이 커질 수가 없다. 공룡 같은 덩치가 포유류였다가는 제 몸 수습을 도저히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아프리카코끼리가 지금 여건상 육상 포유류가 가질 수 있는 덩치의 생물학적 한계치에 근접해 있다는 말을 언제 어디에선가 봤었다. 그 반면, 공룡은 제약이 덜한 파충류일 뿐만 아니라, 얘들이 활동하던 지질 시대급의 옛날에는 1년 내내 따뜻하고 환경 자체가 지금보다 더 좋기도 했으니 덩치가 더 커질 수 있었다.

조금 다른 분야의 얘기이다만, 플라나리아나 해면 같은 동물은 구조가 극도로 단순한 덕분에 몸을 여러 갈래로 쪼개도 살아남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생 능력을 자랑한다. 사람처럼 복잡한 생물은 손가락 하나만 잘려도 자동 재생은 엄두도 못 내거늘 말이다.
그 반면, 저렇게 너무 단순한 동물은 복잡한 물질대사와 상태 유지 능력도 전무한 관계로 사는 곳이 조금만 더러워지면 곧장 녹고 죽어 버린다. 파충류와 포유류 역시 생물학적 구조에 저런 식으로 일장일단이 있는 셈이다.

그리고 동물이 덩치가 더 커질 수 있는 환경을 하나 더 꼽자면 공기 중의 육지보다는 물 속이다. 외부로부터의 힘· 충격이나 온도 변화가 공기 중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디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물 자체의 부력도 있으니 고래 같이 크고 무거운 생물이 그 속에서 별 탈 없이 살 수 있다. 지구상의 교통수단들 중에 선박이 그 어떤 비행기나 육상 교통수단보다도 덩치가 훨씬 더 크고 무거울 수 있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다만, 먼 옛날 지질 시대에 육지에서는 저렇게 큰 공룡이 활보했던 반면, 바다에는 지금의 대왕고래의 덩치를 능가하고 압도하는 해룡이 있었다는 증거가.. 딱히 검증 불가능한 도시전설 말고는 없다는 게 흥미로운 점이다.

고래는 물에서 살면서도 아가미가 아닌 공기 허파 호흡을 하기 때문에, 물 속에서 숨을 못 쉰다. 심지어 수면(?) 중에도 뇌를 반반씩 재우고 깨우면서 수면(!)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해야 하는 불편한 인생을 산다. 악어가 물 마시러 온 육상 동물을 공격하여 잡아먹듯, 인간은 숨 쉬러 올라온 고래를 바다에서 손쉽게 잡는다.

고래가 물 밖에 내팽개쳐지면 얼마 못 살고 죽는 주 이유는.. 그냥 장기들이 엄청난 체중에 짓눌려서 숨을 못 쉬고 질식하기 때문이다. 엎드려 자던 신생아가 질식사하듯이 말이다.
피부 표면이 공기에 노출되고 건조해지는 것도 고래에게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고래가 무슨 양서류도 아닌데 그것 때문에 피부 호흡을 못 해서 죽는 건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래가 저런 아틀란티스인 같은 신체 구조는 아니라는 뜻... ㄲㄲㄲㄲㄲㄲ)

그런데 고래는 그 거구를 이끌고 시속 30km 이상의 고속으로 주행이 가능하며, 무엇보다도 숨을 참은 채로 잠수를 더럽게 잘한다.
모든 고래들이 전반적으로 잠수 능력이 우수하지만, 특히 (2) 향유고래는 어지간한 잠수함으로도 엄두를 못 낼 수심 2000m 아래로 잘도 내려간다. 그리고 1시간 반 가까이 숨을 참으며 잠수가 가능하다. 그 엄청난 수압을 극복하고 올라오는 과정에서도 인간 같은 잠수병 걱정 따위는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향유고래는 앞부분이 직각형으로 툭 튀어나온 모습이다.)

인간은 맨몸으로 겨우 몇십 m만 잠수했다가도 올라올 때 시간 보면서, 마치 우주왕복선이 대기권으로 재돌입할 때처럼 조심해서 천천히 올라와야 되는데.. 고래는 기관지에 혈중 질소를 처리하는 장치가 갖춰져 있다고 한다. 아무렴, 산소 보충하러 빨리 수면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저렇게 세월아 네월아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잠수함· 잠수정 같은 기계들은 산소 조달 문제로 인해 수중에서는 내연기관을 가동할 수 없다! 거기서는 마치 월면차처럼 전기로만 동작해야 한다. 본인은 이 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원자력 잠수함 급이 아닌 이상, 수중 기계는 활동 반경과 시간에 근본적으로 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미도 안 달렸으면서 고래는 육중한 체력은 어디서 나는지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또한, 산소는 그렇잖아도 물에 잘 안 녹는 기체여서 산소를 모을 때도 물 속에서 모을 정도인데, 거기에 있는 산소를 추출해 내는 어류들의 아가미도 대단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다음으로 고래 중에는.. (3) 범고래가 있다. 얘는 앞서 언급한 네임드급 고래만치 거대하지는 않지만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 사냥꾼이며 바다의 조폭 깡패이다.
정작 그 큰 대왕고래는 주 식량이 의외로 플랑크톤이나 크릴 같은 아주 작은 조무래기들이구만, 범고래는 타 물범이나 바다사자, 심지어 다른 상어나 돌고래를 사냥해서 잡아먹는다. 어떨 때는 배가 안 고픈데 별 이유 없이 재미삼아 공격하기도 하며, 먹이를 향해 육중한 덩치로 박치기도 하고 심지어 물 밖으로 던져서 죽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폭력적인 범고래가.. 사람은 이상하리만치 건드리지 않고 해친 사례가 없는 것이 아주 이색적이다. (다른 동물로 오인했거나,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거나 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범고래는 밋밋한 회색 위주인 타 고래들과 달리, 마치 펭귄처럼 흑백 구분이 명백하다. 그리고 눈 주변에 눈 흰자처럼 생긴 흰 무늬가 있는 게 특징이다.)

곰, 사자, 호랑이 같은 육지의 다른 맹수들이라든가, 어류 중의 깡패인 백상아리(죠스!!) 육상 공룡의 후신에 가장 근접한 파충류라고 여겨지는 악어 따위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차이를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애초에 어류 중에는 피 냄새만 맡고도 흥분해서 몰려오는 놈들도 있지 않던가. 범고래뿐만 아니라 다른 고래들도 전반적으로 다 사람에게는 적대감이 없다시피하다.

코끼리가 다 아프리카코끼리 같은 게 아니며, 작은 건 거의 마소 정도밖에 안 되는 것도 있다. 그것처럼 고래 중에서도 작은 돌고래는 참치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것도 있다.
고래는 전반적으로 아주 똑똑하고 집단 유대의식이 강하다. 동료와 협력해서 인간이 설치한 장애물을 치우고 먹이를 차지할 줄 알며, 연구에 따르면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의 작은 이익을 접을 줄도 안다.

거기에다 (4) 돌고래는 고래 중에서 제일 작은 축에 드는 놈이지만, 물 속에서 초음파를 이용해서 어지간한 유인원이나 앵무새 이상의 수준으로 상대방과 의사소통 능력이 있다고 여겨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돌고래는 타 고래들에 비해 덩치가 작고 주둥이가 툭 튀어나와 있다. 하지만 얘도 범고래에게만 밀릴 뿐, 체력과 공격력은 타 해양 생물들을 엄연히 능가하는 '갑'이다.)

고래가 반쯤 수면으로 나와서 물을 촤악 뿜는 건 잘 알다시피 호흡 때문이다. 그런데 주행 중에 저렇게(본문에서 범고래와 돌고래의 모습) 괜히 힘들게 도움닫기 점프까지 하는 건 나름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컴퓨터용 아케이드 게임이나 FPS에서도 점프를 하면서 가는 게 그냥 달리는 것보다 속도가 빠르지 않던가? ㅋㅋ

물론, 인간의 경우 달리기가 아니라 수영을 할 때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인간은 수영 중에 저렇게까지 높이 점프를 할 능력이 없으니, 그냥 물에 완전히 잠겨서 잠영을 하는 게 자유형 따위보다 더 빠르다. 신체가 물과 부딪치면서 잃는 에너지가 만만찮은가 보다.
그러니 수영 경기에서 최단시간 기록만 강조하다 보면 수영 대회가 잠수-_- 대회로 바뀌어 버릴 공산이 크기 때문에 공식 경기에서는 잠영을 허용하는 시간에 한계가 걸려 있다.

이렇듯, 고래는 생물학적 특성이 비범하고, 크고 아름답고, 생태계의 최상위 랭킹이고, 똑똑하기까지 한데 한편으로 여느 맹수와 달리 사람에게 호의적이라는 점으로 인해, 인간에게 느껴지는 인상이 아주 좋은 편이다. 최소한 뱀이나 악어 같지는 않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고래가 이렇게 독특한 건 다 이유가 있어 보인다.
창 1:21에서 "And God created great whales, and ..."라고 진술하면서 6일 창조 중 다섯째 날에 고래는 다른 수중 생물과는 좀 급이 다르게 따로 창조되었다고 언급하기 때문이다.
비록 문장 구조상 다르게 읽힐 여지도 있긴 하지만, 본인은 고래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6천여 년 전에 완전히 새로 등장한 종이라고 생각한다.

실러캔스야 아무래도 현 세상 이전의 지질 시대· 이전 세상에도 존재했다가 싹 멸종하고, 훗날 6천여 년 전에 6일 동안 그 종류대로 똑같이 '다시' 창조된 놈일 것이다.
하지만 고래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전 세상에는 없었다가 현 세상에서 완전히 새롭게 등장했다. 근본적으로 뭔가 좀 new, fresh한 구석이 있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특성이 기존 동물들과는 좀 다른 구석이 있는 거라고 추측해도 아귀가 맞지 않겠는가?

다만, 킹 제임스 성경 외의 다른 성경에서는 whale이라는 단어가 남아나질 못해 있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당장 저 창 1:21을 비롯해서 겔 32:2까지.. 오로지 KJV만이 요나를 잡아먹은 생물이 고래였다고 말한다(마 12:40). 이스터 '파스카'만큼이나 그리스어 '케토스'도 논란의 대상이다. 최종 권위가 없으면 신앙의 근간이 이렇게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작 킹 제임스 성경이 '바다 괴물'이라고 말하고 있는 애 4:3은 타 성경에서 전부 승냥이, jackal 같은 육상 동물로 바뀌었다. 음.. 고래도 포유류이기 때문에 새끼에게 젖 줄 수 있는데..? 어쨌든 고래의 생물학적 특징과 성경 번역에서의 혼란이 오버랩되는 현상이 무척 흥미롭다.

Posted by 사무엘

2018/05/17 08:31 2018/05/17 08:31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490

1. 계급 사회

군대라는 곳은 사회의 그 어느 조직보다도 상명하복 원칙을 따라 돌아가는 보수적인 계급 사회이다.
그런데 옛날 쌍팔년도 군대에서는 병 사이에서 단순히 고참의 갈굼과 구타· 가혹행위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군기· 기강과 반대되는 이상한 적폐도 있었다.

  • 병장들이 개기면서 초임 소위 장교를 길들인다거나.. (1994년엔 이것 때문에 무려 육사를 나온 장교가 항의의 뜻으로 무장 탈영을 벌이는 사고가 터지기도 함)
  • "나 간부다 임마" 한 마디에 초병이 어쩔 수 없이 간부들을 암구호 없이 들여보내 줬음. 그러다가 무장공비· 간첩까지 통과시켜 주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저런 것에 비하면 말년병장이 이병 동기 코스프레를 하면서 고참들 뒷담화를 유도해서 어리버리한 신병을 골탕먹인다거나.. 20대 중반의 새파란 소대장이 "자네가 행보관/주임원사인가?"라고 지껄이다가 중대장/대대장에게 까인다거나.. 하는 것은 차라리 귀여운 사례라 하겠다.
오랫동안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나돌던 아이템들이지만, 이젠 인터넷 매체를 통해 다 알려져 버린 지 오래다. 그러니 군대에 갓 입문한 병이나 소위라도 속거나 실수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국군은 경영 효율과 위계질서상의 이유로 인해, 복무 조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제약 내지 특성이 있다.

  • 여군은 어떤 형태로든 병 복무가 허용되지 않는다. 비전투 병과도 예외가 아니다. 차라리 사관학교에 들어가면 여자 생도도 남자 생도와 동급의 혹독한 전투 훈련을 받은 뒤 장교로 임관하지만, 여군 병 같은 건 없다.
  • 또한, 남자도 한번 병으로 복무해서 만기 제대했다면 절대로 병으로 현역 복무를 다시 할 수 없다. 아무리 저출산 때문에 병역 자원이 부족하다 해도, 그리고 심지어 당사자가 원한다 해도 말이다.
    병이 군대에서 지위가 제일 낮은 계급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 낮은 병이 짬만 지나치게 많이(?) 먹은 상태로 예비군도 아니고 현역병과 한데 섞여 있는 건 위계 질서상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말뚝 박으려면 최하 부사관으로 가야 한다.
  • 장교로 전역한 사람이 나중에 부사관으로 다시 군생활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장교 시절의 군번· 군적은 완전히 말소된다. 일개 중사가 "내가 소싯적에 대위였을 땐 말야" 이렇게 나대는 건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관학교(특히 육사) 퇴교자의 경우.. 비록 장교가 되려다가 짤렸거나 스스로 뛰쳐나오긴 했지만, 한때 최정예 엘리트 장교 양성 코스를 경험했던 애들이다. 그러니 이런 출신인 병이나 부사관이 자대에 오면 기존 간부들이 이미 사전에 다 파악하고 예의주시한다고 하더라. 나이답지 않게 전투복이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이고 남다른 연륜과 짬이 느껴질 테니 말이다.

원래 군대에서 병은 중졸 이상, 부사관은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정하고 운용하는 계급이다. 장교만이 대졸 이상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그토록 군국주의 전쟁광이던 나치 독일과 일제도 대학생은 재학 기간 중에 군 징집을 보류하고, 가능한 한 졸업 후 장교로 우선 선발했었다.
대학생이라는 건 학부만으로도 그 정도로 희소한 인재인데, 지금 우리나라는 징병제와 높은 교육열이 맞물리다 보니 대학생이 너무 흔해지고 병의 평균 학력이 너무 올라간 감이 있다.

2. 하이브리드형 인물들

세상에는 남들이 하나조차도 취득하거나 합격하기 어려운 면허· 자격· 학위를 둘 이상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괴수가 종종 있다.

  • 한 사람이 고시를 여러 개 붙었다거나.. (사법 시험 + 행정 + 외무)
  • 변호사 면허와 의사 면허를 동시에 소지했다거나..
  • 같은 변호사 안에서도 한국 변호사와 미국 변호사 면허를 동시에 소지..
  • 외국어를 네댓 개쯤을 모국어처럼 구사하거나..

이쯤 되면 분야를 불문하고 머리 싸움의 달인이요 공부 기계, 공부의 신이 아닌가 싶다. 평생 먹고 살 걱정 없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_=
대학교에서 학사는 부전공· 복수 전공이나 심지어 전과· 편입(일반/학사)이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사관학교는 학사일정이 굉장히 빡세며 애초에 군사학을 포함해 학위가 두 개로 나오는 구조이다.

박사는 취득이 워낙 오래 걸리고 어렵기 때문에 명예박사가 아닌 이상 복수 소지가 사실상 없다. 한 분야에서 박사 졸업을 했다면 이젠 또 다른 학위를 수집(?)할 게 아니라 그 좁고 깊은 기존 바닥에서 계속해서 연구 경력을 더 쌓으면서 학력 인플레를 극복하고, 가방끈 길이에 걸맞은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각종 연구소에는 교수를 꿈꾸는 포닥들이 드글거린다.

학사는 그냥 시험 점수와 평점이 중요한 과정이니, 졸업식 때도 성적 우수자에게 상을 주고 졸업장에 magna cum laude라고 이 사실을 기재한다.
박사는.. 이제 자기가 걸어다니는 프로 연구자이다. 시험 점수가 아니라 자기 학위논문의 제목과 주제가 스펙이요 간판 역할을 해야 한다.
저런 것에 비해 석사 학위 둘은 일부 교수나 능덕 중에 가끔 눈에 띄지만, 그렇게까지 레어한 아이템이 아닌 것 같다. 위치 자체가 좀 애매하니 말이다.

갑자기 군대와 관계 없어 보이는 얘기를 왜 길게 늘어놓았느냐 하면, 군 내부에서도 저런 짬뽕형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수륙 양용, 도로-레일 겸용 차량처럼 말이다. 병, 장교, 부사관(+군무원)을 다 경험한 것 정도만으로는 희소성이 부족하고,

  • 육군 병장, 공군 중사를 거쳐서 해군 장교(헐.. 나이에 안 걸렸나?)로.. 3군 3계급을 다 경험한 분도 있다..;;
  •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김 영옥 대령(1919-2005) 같은 분은 분명 한국인이고 6· 25 참전도 했지만.. 미군 장교 신분으로서 참전했다.
  • 하긴, 옛날에는 일본, 중공, 북한에 이어 남한으로 깃발을 바꾸면서 매번 군번을 새로 받았던 한국인 병사도 있었다. 워낙 혼란하던 시절을 살았으니..

3. 스포츠와의 비교, 그리고 실적

군인과 경찰은 하는 일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제복 입고 무력을 행사하고 때로는 순직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런데 신체 능력이 좋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군인을 운동 선수에다가도 얼추 비유할 수 있다.

물론 군대 사격과 스포츠 사격은 서로 다르며, 군대의 총검술과 스포츠에서 다루는 격투기 무술도 관점이 동일하지 않다. 그래도 공통점이 있긴 하기 때문에 체대 출신이 군생활도 더 잘하는 편이다.

이 두 업종의 종사자들은 생업을 위해 무슨 연구 개발을 하거나 세일즈 마케팅을 하지는 않는다. 그럼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세계 규모의 체육대회인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받으면..
일단 포상금 명목으로 6천만 원이 일시불로 들어온다. 그리고 평생 연금이 매월 100만원씩 들어온다.

우리나라가 스포츠 인프라가 열악하고 인재 양성을 위한 국가 투자가 인색하네 마네 말이 많지만.. 그래도 일단 실적을 낸 사람에 대한 특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후하다. 우리나라는 그깟 메달에 연연하지 않는 생활 체육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금메달에 목숨 거는 개발도상국 소수정예 엘리트 체육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금전적인 포상만 있는 게 아니다. 미필 남자의 경우 군 완전 면제는 아니지만 꿈에도 그리던 병역특례 보충역 대체복무라는 엄청난 특권이 주어진다. 아시안게임에서는 반드시 금메달만 받아야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아무 메달이나 받으면 된다. 병역을 해결하려는 절박함 때문에 올림픽 경기서 마치 약 빤 것 같은 초인적인 퍼포먼스가 나온다니, 이를 합법적인 도핑에다 비유한 '면제로이드'라는 말까지 있다.

이렇듯, 운동 선수는 대회 성적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이다. 냉정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스포츠는 그 자체가 물리적으로 뭔가를 생산하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먹고 사는 프로 선수는 국민 세금 지원이 아니면 대기업 후원이 있어야만 생계가 유지될 수 있다. 이런 프로의 세계에서 남의 돈이 헛되이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결국 성적이 유일하다.

스포츠계와 마찬가지로 군대도 그 자체는 오로지 소비만 하는 집단이다. 생산을 하는 게 없다. 그렇다면 군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군을 잡거나 저지해서 나라를 지켰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다. 옛날 전근대 시절로 치면 적군의 수급을 제출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 민간인은 수상한 걸 목격했을 때 신고만 정확하게 잘하면 된다. 이것만으로도 거물 월척을 낚는 데 성공할 경우 인생역전 급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군인은 그런 신고를 받는 입장이며, 병사가 상부에게 그걸 보고하는 것까지는 군인이 원래 당연히 맡아야 하는 업무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사가 포상금을 받는 조건은 지금까지 배운 대로 적군을 제압하고 실제로 사살 또는 생포까지 했을 때 성립한다. 적의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박혀 있었고 정황상 그 총알을 누가 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이건 뭐.. 살인 사건의 범죄자가 밝혀지고 잡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이 방면으로 제일 유명한 사례는 1980년 3월 23일, 한강 서부 전선에서 경계 근무 중에 강 건너 침투하던 무장공비를 3명이나 사살한 황 중해 일병(그 당시.. 22세)과 그 부사수이다. 그는 1980년 물가로 1천만 원, 정말 집을 살 만한 액수의 포상금을 받았다.

어디 그 뿐이랴? 보통 전사· 순직했을 때에나 받는 1계급 특진을 살아서 받았으며, 6개월 사단장 휴가와 6개월 연대장 휴가를 연달아 받아서 남은 복무 기간 중에 무려 1년을 그냥 합법적으로 탱자탱자 놀았다. 그리고 휴가 떠날 때는 별들과 함께 헬기 타고 금의환향 했다!

그러고도 남는 것이, 이 병사의 상관들은 생판 누군지도 몰랐던 부하 한 명 덕분에 자기 근무 실적과 진급길까지 확 트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굽신굽신 할 수밖에.. 자기 부대에서 탈영 사고· 자살 사고가 터져서 간부들의 인생이 덩달아 꼬이는 것과는 정반대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그 시절엔 탈북자들을 귀순 용사로 영웅시했던 것만큼이나, 반대로 적군을 사살한 아군이라면 이렇게까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상으로 띄워 줬다. "참 잘했어요"가 아니라, "참 잘 죽였어요~"다.
이런 일을 하라고 세금을 쳐묵쳐묵하고 있는 게 군대이며, 군대의 존재 의의를 제일 드라마틱하게 입증한 병사가 나왔으니 이렇게까지 넘치도록 포상을 해서 빨갱이 소탕에 대한 동기를 확실하게 부여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가 군대에서 전방 근무를 하다가 적을 실제로 마주치고 사살까지 하게 될 확률은 로또 급으로 한없이 낮다.
복권은 억대의 금액에 당첨되더라도 불로소득인 관계로 세금이 왕창 떼이기 때문에 당첨의 기쁨이 적지 않게 반감된다. 그 반면, 이런 포상금이나 현상금은 일체의 세금 공제 없이 액면가가 그대로 일시불로 입금된다! 마치 책에는 관세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다못해 대회 상금 같은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세금을 약간이나마 떼고 입금되곤 하는데 국가에서 국방· 안보· 치안과 관련하여 직통으로 주는 상금은 세금 오버헤드가 없다. 학교 시험을 빠지더라도 공결은 유일하게 아무 페널티가 없듯이 말이다. 이것도 놀라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사건 때 무장공비를 사살한 병사에 대해서도 무슨 헬기 타고 금의환향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억소리 나는 액수의 포상금과 함께, 단순히 안보관 잘 외우고 사격 잘한 형식적인 포상휴가와는 차원이 다른 긴 포상휴가가 주어졌다고는 한다.

옛날에는 잘 알다시피 온통 반공 웅변 대회에다 "때려잡자 공산당" 그랬다. "무장공비의 말로(末路) -- 이 음흉한 악당은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대가리에 납덩이가 박혔습니다~ 고소하다 쌤통이다 꼴 좋다!)"라고 사살된 공비의 시체 사진을 모자이크도 없이 그대로 교보재로 삼아서 공개 전시까지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김 영삼 문민정부는 시기도 1990년대이고 그 정도로 살벌하던 분위기는 많이 사그러들었으니, 강릉 무장공비에 대해서도 민간인 신고자의 포상 말고 군인에 대한 포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 '남파 공작원' 같은 중립적인 명칭 말고 '무장공비'라는 단어부터가 '공산 비적'-- '떼를 지어서 살인· 약탈을 일삼는, 무장한 공산당 도둑놈 패거리'의 준말이다. (공작원의 '공'과 공비의 '공'은 한자가 완전히 다르다!) '북괴'에 필적하는 굉장한 멸칭인 셈인데, 저건 단순 멸칭이 아니라 놈들이 하는 짓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뭐 어쨌든, 무장공비를 사살했던 저 황 일병은 그 뒤로 말뚝 박아서 부사관으로 30년 가까이 더 복무하다가, 지난 2012년에 50대 중년의 나이로 상사 계급으로 전역했다고 한다. (☞ 관련 링크) 아무렴, 계급 특진도 전사해서 받는 것보다는 살아서 받는 게 더 나으며, 똑같이 국가로부터 예우받더라도 보상금보다는 포상금을 받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뭐랄까, 똥군기와 명예로운 죽음을 너무 미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특진이라는 걸 전사자 말고는 아무에게도 부여하지 않고.. 항복이나 포로 체험을 금기· 죄악시해 왔다.
미국은 관행이 좀 다르다. 큰 공훈을 세운 군인(전사자 포함)에게 그야말로 천조국 스타일의 어마어마한 혜택이 뒤따르는 명예 훈장을 수여한다. 2차 세계 대전 도중에도 군인들 인권과 복지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뛰어났고 말이다.

다만, 계급 자체는 그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오히려 전시에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서 누구에게 높은 직책을 주느라 계급을 일시적으로 올렸다면, 전후에는 계급을 원래대로 되돌리기까지 했다.
본인이 보기에도 미국 스타일이 훨씬 더 합리적이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8/05/14 08:28 2018/05/14 08:28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489

« Previous : 1 : ... 92 : 93 : 94 : 95 : 96 : 97 : 98 : 99 : 100 : ... 230 : Next »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6/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4001257
Today:
1433
Yesterday:
6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