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 고속도로의 서울 톨게이트 근처 구간은 지리적으로 흥미로운 게 많다. 일단 고속도로의 선형부터가 꽤 길게 곧은 직선인 데다, 그냥 직선이 아니라 거의 동일 경도를 지나는 수직이다. 그리고 지방도 23호선과 분당-수서 고속화도로가 양 옆으로 나란히 지난다.
여기는 행정구역상 성남시 궁내동이다. 고속도로의 동쪽은 잘 알다시피 분당 신도시이다. 그런데 서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분당이야 전철도 지나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부촌 겸 상업 업무 지역이지만 지방도 23호선의 곁에 있는 저 마을은 그린벨트이기라도 한지 뭔가 딴 세상 같았다. 아기자기한 빌라들이 놓여 있고, 건물들 뒤엔 바로 언덕 내지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데.. 본인에게는 오랫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여기를 탐험할 의향으로 드디어 태봉산을 올랐다.
궁내동 경로당에 도착했다. 거기 근처는 저렇게 아주 한적한 마을이다.
바로 옆에 있는 오르막길이 등산로의 시작이었다. 이것만 쭉 오르는 것도 생각보다 힘들었다. 무슨 급수탑 같은 상수도 시설을 지난 뒤부터 길이 비포장으로 바뀌고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됐다.
저 멀리 경부 고속도로와 네이버 본사가 보인다. 이 산에서 그나마 전망이 가장 좋은 지점이 여기였다. 등산로는 마을에서 바로 보이는 낮은 언덕이 아니라,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더 높은 산을 타는 형태였다. 그러니 아래의 마을이나 도로는 다른 언덕과 나무들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궁내동 뒷산은 무슨 북한산이나 청계산만치 막 높고 전망 좋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산은 아니다. 그냥 여기 주민들이 운동삼아 찾는 수준이었다. 가끔씩 등장하는 이정표 말고는 등산로나 쉼터 같은 게 잘 마련돼 있지도 않았다. 여러 산들을 다녀 보니 산에도 '급'이라는 게 있고 등급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이곳도 산은 산인지라, 종아리가 배김이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가파른 비탈길을 꾸준히 오르자 가장 높은 지점인 정상이 금세 나왔다.
여느 산의 정상처럼 바위나 전망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부터는 능선을 타면서 꾸준히 산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제는 등산로가 아니라 그냥 산책로이다. 길은 계속 이런 형태로 이어졌다. 상록수와 낙엽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와서 한 컷 사진으로 남겼다.
이 산을 오른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니 흰 바탕에 울릉도체의 저 평면 표지판만 있었는데, 저렇게 검은 배경의 고딕체 + 입체 표지판은 나중에 또 세워진 것 같다.
한참을 더 걷자 산불 감시 초소가 나왔다.
여기서 산책을 계속해서 쇳골마을 쪽으로 갈 수도 있으나, 별안간 방향을 틀어서 궁내동 쪽으로 돌아가는 샛길도 있어서 본인은 그 길로 하산했다.
남쪽 끝자락까지 가면 보바스 기념 병원이라든가 대장동· 미금동 쪽으로 도달 가능한 듯했는데 그건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내 구닥다리 카메라는 명도차 조절이 안 돼서.. 숲이 좀 나오게 찍으려면 푸른 하늘을 포기하고 하늘을 허옇게 만들어야 된다..;;
그리고 산불 감시 초소는 충분히 크고 공중에 노출되지 않았나 싶은데.. 나중에 인터넷 지도에서 항공 사진을 토대로 위치를 찾으려 해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침엽수 위주의 울창한 숲길이 등장한지라 이런 비탈길을 쭈욱 내려갔다. 이 사진은 뒤을 돌아보면서 오르막을 찍은 것이다. 그러자 역시 중앙 하이츠빌 빌라 "2차"의 뒤에 있는 계단형 등산로를 통해 하산을 완료했다.
여기가 어딘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고개를 하나 넘어서 출발지와는 한 단계 떨어진 다른 마을에 도착했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였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여기는 궁내동 경로당 내지 하이츠빌 "1차"로부터 몇백 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아 있었다.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본인의 등산 원칙은 "하산할 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등산을 갈 때는 차를 가져가지 않는다. 하산 후에 차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난감한 짓이니까..;;
하지만 이번에 궁내동을 방문할 때는 예외적으로 차를 가져갔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과 같은 여러 이유로 인해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 됐다.
- 주차: 반쯤 시골인 동네인지라 주차 여건이 나쁘지 않았다. 골목길은 다들 주차 가능한 흰색 실선 위주여서 적당히 아무 집 담벼락에 차를 댈 수 있었다. 길가에 무슨 경고문이 붙어 있는 건 '주차금지'가 아니라 죄다 '상수도 매설 지역. 무단 경작 금지'였다.
- 방문 동선: 이곳은 본인의 집에서는 멀지만, 판교에 소재한 본인의 직장에서는 5km 남짓으로 무척 가깝다. 그래서 회사에서 야근· 철야 근무가 있던 날에 차를 가져가서는, 퇴근과 동시에 여기로 바로 이동했다. 밤엔 차에서 한숨 잔 뒤 이른 아침에 산을 올랐다. 이렇게 하니 동선이 괜찮았다.
- 등산 동선: 태봉산은 비슷한 높이의 다른 산봉우리들과 연결되어서 산맥이 일종의 C자 모양으로 형성돼 있다. 한참을 뺑 돈 뒤에 궁내동 방면으로 하산하자, 결국은 산에서는 계속 새로운 길만 따라 갔지만 결과적으로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에 또 여기 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다음엔 내가 내려왔던 그 입구에서 산을 다시 올라가서 남쪽 끝까지 더 진행하는 걸 생각할 수 있겠다. 이쪽 동네와 산의 분위기는 이렇다는 걸 알 수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