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답사기: 불암산

산 세 군데를 연거푸 오른 뒤 본인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서울 불암산이었다. 2016년 초에도 여기를 정상까지 오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때와는 세부 등산 경로와 당일 날씨 같은 게 모두 달랐기 때문에 느낌이 새로웠다.
이번에는 하산할 때 주 능선을 타면서 작년에 들르지 못했던 불암산성 부근을 구경했으며, 남양주가 아닌 서울 중계본동 쪽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더 남쪽 끝까지 진행했으면 2017년초에 들렀던 태릉과 한전 연수원, 삼육 대학교 근처까지 도달하게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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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4호선 상계 역에서 내려서 정암사 방면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는 국립공원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지만 나름 등산로 안내가 잘 돼 있었다. 본인이 선택한 경로는 거기 안내도 상으로는 제5 등산로라고 기재돼 있었다.
여기는 지하철 선로가 개천을 복개한 형태이더니만, 등산로를 따라 자그마한 계곡이 있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물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계곡 따라 물 구경은 내 등산 패턴의 특성상 보통은 하산 과정에서 하는 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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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까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포장된 비탈길은 정암사까지만 나 있었고, 그 뒤부터는 좁은 등산로가 이어졌다. 사실, 완전히 정암사 부지까지 가는 게 아니라 도중에 등산로로 진로를 바꿔야 한다.
등산로는 대부분 온통 돌계단 형태로 닦여 있었으며, 이 상태로 산의 종축 능선인 깔딱고개까지 올라갔다. 산길은 깔딱고개가 가까워질수록 가팔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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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을 한참을 낑낑대며 오른 뒤에야 깔딱고개에 도착했다. 여기는 자동차 교차로처럼 길이 사방으로 뚫려 있었다. 본인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올라온 셈인데, 더 동쪽으로 진행하면 남양주로 빠져 버린다.
북쪽으로 더 가면 산의 정상 방향이며, 남쪽으로 가면 불암산성, 공릉동, 중· 하계동이 나온다. 본인은 정상에 갔다가 여기로 되돌아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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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딱고개에서 정상 방면을 향하자 산의 최종 보스인 암반이 곧장 나타났다. 이정표 상으로는 정상까지 몇백 미터밖에 안 남았다고 나오지만, 지금까지 설렁설렁 걷던 오솔길로 몇백 미터가 아니다. 그러니 저 거리는 북한산 정상 근처의 이정표만큼이나 낚시이다.
일부 정말로 길이 없고 위험한 암반에는 계단이 설치돼 있었지만 일부 구간은 발뿐만 아니라 손도 써서 로프를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올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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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정상의 암반을 오를 때가 돼서야 산 아래의 경치가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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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은 확실히 돌산이긴 하다.
예전에 갔을 때는 국기와 지리 표시 마크를 보고 사진을 찍었지만, 정상 표지석은 못 보고 지나쳤다. 산을 올라온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지 싶다.

그나저나 성남에 있는 산(영장, 망덕, 청계, 인릉 등~)들은 위치를 막론하고 딱히 돌산이 없었던 것 같다. 산이 많긴 하지만 높이도 막 높지 않고 그저 그런 흙산일 뿐이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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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개 역, 그리고 불암산의 정상보다는 낮지만 또 다른 산봉우리가 내려다보인다.
사실, 수락산과 불암산 사이로 지하철 4호선 선로를 가로막고 있는 저 산봉우리를 타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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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서울이 아닌 남양주 쪽도 내려다본다. 아파트들이 빽빽히 들어선 서울과 달리 저기는 훨씬 한적해 보였다.
단, 아직 아침 시간대였던 관계로, 동쪽인 남양주는 역광이 심해서 좋은 풍경 사진을 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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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구경은 이 정도로 한 뒤, 본인은 다시 깔딱고개 쪽으로 내려가서 남쪽으로 능선을 타고 걷기 시작했다. 길이 전반적으로 이렇게 곱게 난 편이었지만, 이정표 없이 갈림길도 종종 나와서 헷갈렸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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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불암산에서 아마 정상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라 여겨지는 장소가 나왔다.
아까 같은 오솔길이 아니라 꽤 넓고 큰 광장이 펼쳐졌으며, 그 광장의 위에는 아마 불암산 유일의 헬리패드가 놓여 있었다.
인릉산은 정상이 이렇게 공터+헬리패드로 꾸며져 있는 반면, 불암산은 제일 높은 정상은 암반에 따로 있고 헬리패드가 이렇게 딴 곳에 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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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에 아차산성이 있다면 불암산은 불암산성이 있다.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불암산성의 일부 성벽은 알고 보니 이 광장 등산로의 아래를 받치고 있었다. 그러니 가까이 접근해서 살펴보기가 곤란했다.
형태가 좀 더 온전히 남아 있으면 더 급이 높은 문화재로 승격됐을 것이고, 기록이라도 더 상세히 남아 있으면 복원 재건하네 마네 했겠지만 달랑 저 황량한 돌무더기 폐허만으로는 뭔가 거창한 유적지 관광지를 조성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황룡사처럼 아예 흔적도 없이 부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지(址)'자가 붙을 정도는 아니다.
아차산과 불암산 모두 서울에서 너무 흔해 빠진 조선이 아니라 그 이전 시대의 흔적을 아쉬운 대로 간직하고 있는 흥미로운 산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위치도 서울의 동북부로 비슷한 편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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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가는 길은 무작정 평지밖에 없는 게 아니라 작게나마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부분도 있었다.
학도암까지 지나자 역시 이 산에서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은 커다란 팔각정이 나타났는데, 여기는 방문 당시 웬 단체 등산객들이 잔뜩 점령해 있어서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본인은 중계본동과 공릉동의 경계에 있는 백사 마을 쪽으로 하산하려 마음먹었다. 위의 사진은 착륙 예정지를 내려다본 모습이다. 이름은 뱀이나 모래가 아니라, 유래는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숫자 104를 뜻한다고 한다. 마치 시인 '이 육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쪽으로 가까워질수록 등산로는 아주 좁고 험해지고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제대로 추적할 수가 없어졌다. 지난번에 인릉산에 다녀왔을 때도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에 거의 다 내려와 놓고는 길을 못 찾아서 한참 헤맸는데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백사 마을로 진입하지는 못하고, 거기서 북쪽으로 몇백 m 정도 비껴서 중계 현대 5차 아파트 부근에 착륙하게 됐다. 남쪽으로는 도저히 더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기서 약간만 더 걸어가면 백사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할 수는 있었다. 참고로 저기는 서울 강남의 '구룡 마을'처럼 서울 강북에 거의 최후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달동네라고 한다. 몇 년 안으로 주민들을 다 이주시키고 철거· 재개발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평소의 내 등산 스타일과는 달리, 서울 시내를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등산을 마쳤다.
그런데, 귀갓길 버스 차창 밖으로 '한글비석로'라는 도로명 주소가 보여서 "저건 뜬금없이 뭐야?" 생각이 들어 폰을 꺼내 검색을 해 봤다.

오오.. '서울 이 영탁 한글 영비'라고 무려 1500년대에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쓴 묘비가 여기 근처에 있다고 한다.
내용 자체는 "이 비석을 훼손하면 방법 한다. 방법 하면 손발리 오그라진다. 이 사실을 한문을 모르는 후세에게도 분명하게 알리는 바이다"급의 아주 단순무식 원초적..(!) 경고문에 불과하지만, 그야말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순한글 묘비문이기 때문에 국어사와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얘는 '보물'로 지정돼 있으며, 남한산성보다 당연히 격이 더 높다.

아이고, 나도 이런 게 있는 걸 진작에 알았으면 여기까지 온 김에 당장 찾아가서 구경하는 건데... 지금 당장 그러지는 못했다. 그래도 불암산 등산 덕분에 이제라도 덤으로 알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08 08:31 2018/02/0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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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재홍 2018/02/10 13:29 # M/D Reply Permalink

    생각보다 경치가 아름답네요

    1. 사무엘 2018/02/10 14:41 # M/D Permalink

      네, 산을 올랐던 저 날이 날씨도 유난히 맑고 하늘이 파랗고 좋았답니다.
      등산은 경치 감상이 매력적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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