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80년대엔 공룡기업 IBM이 메인프레임에만 안주하느라 개인용 컴터 PC 시장의 흐름을 못 읽었다. 그 결과 그 나와바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한테 다 내줘 버렸다. IBM은 나름 컴퓨터 아키텍처를 설계할 줄 알고 OS/2 같은 운영체제를 만들 기술도 있는 하드· 소프트 겸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나중엔 거의 같은 패턴의 역사가 또 반복되었다.
마소와 인텔도 공룡기업이 된 뒤엔, 2000년대 후반 모바일 시장의 흐름을 못 읽었다. 결국, 그 나와바리는 구글과 애플(소프트), 퀄컴과 ARM(하드) 등에게 다 내줘 버렸다.
앞으로 이런 식의 파이와 기회가 또 새로 생길지, 저 기업들조차 후발주자에게 뭔가 주도권을 빼앗기는 날이 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2.
좀 옛날 얘기를 하자면..
1940년대에 강대국 해군 장성들은 "앞으로 해전의 주인공은 항공모함이 될 것이냐 전함이 될 것이냐.."를 갖고 많이 고민했었다.
그게 삼성이니 LG 경영진이 2010년대에 "지금이라도 스마트폰을 육성할까? 아님 그냥 원래 하던 피쳐폰에나 계속 올인할까?" 고민하던 거랑 아주 비슷한 양상이었지 싶다.;;

이때 노키아, 모토로라, 블랙베리 같은 쟁쟁한 업체들이 몰락했으며, LG도 실패해서 MC사업부를 통째로 정리해 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만이 성공했다.
저 S사도 처음에 Windows Mobile 기반으로 옴니아를 밀던 시절에는 그냥 갤갤거리면서 삽질을 많이 했었는데 언제부터 무슨 계기로 안드로이드 기반의 갤럭시로 기사회생 했나 모르겠다. 그 이면에도 수많은 공밀레 비화가 있지 싶다.

3.
옛날에 코닥 사는 한때 마케팅 잘하고 연구개발 인력도 우대하는 엄청난 모범 기업이었다. 무려 1970년인가 1980년대에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까지 했었다.
그러나.. 디카의 미래를 과소평가하고 계속 필카만 고집하다가 지금처럼 몰락했다.

그 당시에는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어 봤자 이 거대한 디지털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 줄 컴퓨팅 환경이나 메모리 기술이 가성비 있게 뒷받침되지 못할 거라고 경영진들이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니 이미 잘나가고 있는 필카와 쓸데없이 팀킬만 벌일 것 같은 분야의 상품화를 접어 버렸지만.. 그건 단견이었다.

4.
전에 한번 얘기했지만 이스트소프트는 한때 알툴즈 프로그램들의 품질과(특히 '알집'과 알FTP) 유료화 정책 때문에 무진장 욕을 많이 먹었다. 컴덕들 사이에서 평판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저 회사 자체는 지금까지 뭔가 뜬다고 하는 유행 분야들만 귀신같이 공략하면서 중견기업으로 어째어째 살아 있다.

1990년대에 워드 프로세서, 2000년대 초에 유틸리티와 온라인 게임, 201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 AI 기업으로..;; 알집을 만들던 회사가 요즘은 버추얼 인플루엔서를 만들어서 운용하고 있을 정도로 체제를 싹 바꿨다.
긴 세월 동안 주력 사업 분야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바꿔 온 IT 기업은 흔치 않은데 말이다.;; 그 중에 진짜 고인물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초대박 난 게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하도 AI, AI 하니까 삼성에서는 애플 아이폰에도 없는 뭔 동작 자동 인식 AI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글쎄, 당장 신기하기는 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기능이 괜히 들어가서 폰 가격이 비싸지고 배터리가 더 두툼해지고 CPU와 전력 소모가 늘어난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5.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까지 약 20년 남짓한 기간 동안은 PC 환경에서 인스턴트 메신저 내지 인터넷 전화 솔루션이란 게 존재했다. ICQ, MSN 메신저, 스카이프, 네이트온 같은 추억의 프로그램들 말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라면 다 고유한 IP 주소가 있을 테니, 특정 IP 주소로 텍스트 메시지를 쏴 주는 원시적인 툴이야 운영체제의 기본 유틸리티 차원에서 제공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실용성이 떨어지고 보안도 심히 취약하다. 결국 회원 가입을 받아서 id로 사용자를 식별하는 중앙집중형 메신저 프로그램이 등장하게 됐다.

그랬는데.. MSN이 2010년대 초에 제일 먼저 서비스를 접고 없어졌다. 마소가 아예 스카이프를 인수해 버렸고, MSN을 이걸로 대체했다.
한때는 인터넷 전화 분야에서는 스카이프가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못 읽었는지, 기업 경영상의 삽질과 오판이 있었는지 스카이프는 비교적 최근인 지난 5월부로 완전히 섭종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스카이프가 망한 이유에 대해서 분석한 유튜브도 여럿 있다.

공교롭게도 ICQ는 작년, 2024년 6월 말이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정확히 1년 전에 섭종했다. 햐~ 30년 가까이 시대를 풍미했던 메신저인데.. 아 그러고 보니 천하의 구글에서도 2010년대에 잠깐 구글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PC+모바일+웹 복합인 구글 메신저를 선보였다가 사업 접었었다.
한때 대한민국 국민 메신저였던 네이트온은 산소호흡기 장착한 채로 살아 있기는 한가 보다. 한때는 '이야기'나 '새롬 데이타맨'처럼 PC 통신 에뮬을 개발하던 국내 업체들도 인터넷 전화 분야로 사업을 개척했었는데.. 잘나가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뭐 스마트폰 시대와 함께 카카오톡이 이 바닥을 완전히 평정해 버렸다. 애초에 2010년 그 초창기에도 카카오톡 때문에 피쳐폰을 버리고 스마트폰을 장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이제는 관공서에서 보내는 각종 고지서와 통지서 우편물조차 카카오톡으로 보내는 세상이 됐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전화 요금이나 문자 요금으로 과금되는 통신 트래픽을 훨씬 더 저렴한 인터넷 데이터로 대체해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해 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동차에다 비유하자면, 전기차를 만들어서 기름값에 부과되는 세금을 회피하고, 저렴한 산업용 전기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 말이다. 이러니 통신사들이 심기가 불편해서 한때는 아이폰이 국내에 수입돼 들어오는 것조차 이것저것 태클 놨었다.

WorksMobile 같은 업무용 메신저라든가 Zoom 같은 본격 화상 회의 프로그램은 카카오톡과는 영역이 좀 다른지 현역으로 남아 있다. 사내 인터폰은 스마트폰과 별개로 재래식 유선전화기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업무용 메신저는 B2B 솔루션이니까 고객사에다 바로 과금을 하면 될 테고, 화상 회의 앱은 동시 참석 가능자 수나 회의 가능 시간 같은 것에다 제약을 걸고 부분유료화를 하면 승산이 있어 보인다.

MSN이고 카카오톡이고 무엇이든지.. 세월이 흐를수록 무진장 무거워지고 느려져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게 보안· 암호화 관련 코드 때문에만 무거운 게 절대 아니다. 그냥 간단히 글과 그림을 주고받는 기능만 있으면 수익을 낼 수 없으니 상업 광고가 들어가고 각종 예쁘게 꾸미는 기능, 유료 써비스 관련 기능이 어떤 형태로든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변화가 아니지만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오죽하면 어떤 해커가 그 메신저 프로그램의 내부 프로토콜을 분석해서 기본 기능만 돌아가는 light weight 클론을 따로 만들기도 할 정도이다. 물론 이건 브라우저의 광고 차단 플러그인 만큼이나 일단은 개발사에서 기를 쓰고 단속하는 행위이다.;;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단속하던 게 광고 차단 단속으로 바뀌었다니.. 참 격세지감이다!

6.
아이고 메신저 얘기가 많이 길어져 버렸는데.. 다시 기업 얘기로 돌아와서 좀 어두운 사례들을 나열하도록 하겠다.

블리자드라든가 보잉, 인텔 같은 기업들은 한때 자기 분야에서 날고 기면서 초일류를 자랑하던 집단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들의 최근 행보를 보면 20년~30년 전에 펄펄 날던 그 기세가 절대 영원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넥슨의 흑역사 서든어택 2가 나왔을 때는 블리자드의 오버와치와 얼마나 비교되며 까이곤 했는데, 그 오버와치를 만들었던 모범 개발사조차도 디아블로 이모탈이니 워크래프트 3 리마스터링은 정말 처참하게 욕 먹으며 망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주요 개발진이 모두 퇴사해서 유지보수 역량조차 없다고 여겨지지 않는가.

인텔과 보잉은 공통적으로 엔지니어와 연구 개발을 우대하던 경영진이 물러나고.. 인건비 절감과 단기 흑자 실적만 강조하는 경영진 때문에 난리가 났는가 보다. 제품 품질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를 당했다.
비행기에서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허술한 결함과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하고, 인텔은 AMD 같은 후발주자와의 격차가 갈수록 줄어들고..

인텔은 자기 사정이 좋지 않았는지 2020년부터는 1997년부터 20년이 넘게 물주 역할을 했던 인텔 국제 과학기술 전람회(ISEF)의 후원을 중단했다. 이제 그 대회는 I는 떼고서 개최되고 있다~!
글쎄, 더 찾아보니 국내에서는 장학퀴즈(2024)라든가 도전 골든벨(2020)도.. 비교적 최근인 2020년대에 다들 종영했다.

스펀지 같은 단순 지식 정보 프로라든가 노래 경연대회(창작 동요 + 대학 가요) 부류는 시대의 흐름 때문에 폐지될 만하지만(넘쳐나는 유튜브+나무위키 ㅋㅋㅋㅋ).. 저렇게 공익성 있는 프로는 기업 후원이 끊긴 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제 요즘 자라나는 애들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제3악장의 의미를 알 기회가 없을 것이다. =_=

7.
우리나라 대형 메이저 게임 개발사 중에서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고, 자체 야구단이 있고 AI 기반 자연어 처리 연구에도 유난히 진심이던 좀 특이한 기업이 있었다.
직원들 연봉과 복리후생은 업계 최상이고 사내 병원과 어린이집까지 있는 꿈의 직장이었다.

웬 게임 개발사가 '한글 및 한국어 정보처리 학술대회'에도 후원을 왕창 하고 거기 소속 연구원이나 엔지니어가 논문을 꾸준히 내길래..
나도 한때는 "진짜 인간 같은 AI라도 개발해서 NPC나 GM 역할을 자동화하려나?" 이런 생각까지 했었다.

저 회사는 20년 30년 묵은 고인물 썩은물 석유 아저씨 유저들만 집중적으로 과금시켜서 먹고 사는 것 같더라만.. 그래도 모바일 게임 하나 잘 만들어서 그걸로도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았다고도 들었다.

하지만 정말 의외이고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게임 개발은 과거의 성공에만 안주하다가 많이 말아먹었고, AI나 NLP는 그쪽대로 딱히 별 성과 없이 돈만 왕창 날린 것 같다.
오히려 거길 나와서 따로 회사 차린 사람들이 더 대박 게임 출시해서 승승장구 중이랜다. 이 정도라면 정말로 이전 직장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2010년대부터 그렇게도 오래 육성을 했지만 2020년대에 LLM 기반 AI가 왕창 뜨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AI 전문 스타트업에 비해서도 차별점이 없다. 이제는 그 분야 사업 내지 연구를 접고 매몰비용 처리하려나 보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연간적자'라고 검색을 하면 나라 살림 적자랑 저 회사 적자 소식 요 둘만 주루룩 뜨네. -_-;;

특히 30여 년 전에 과학고에 카이스트 수석, MIT 박사, 30 초반에 SK 상무 출신이었다는 그 천재소녀 부사장은 미친 스펙에 비해서는 그 이후에 세상을 뒤집어엎을 연구 성과를 낸 게 없고, 행보가 정말 너무 초라하긴 했다;;
과거의 명성 대비, 연봉에 "비해서" 말이다. 결국 작년에 경질됐다.

이렇게 끝날 거였으면 사업이나 경영에 관여할 게 아니라, 그 엄청난 공부 머리를 살려서 평범하게(?) 공대 교수만 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비슷한 연배인 중국 리 페이페이 교수 같은 사람이 됐어야지.
뭐 지금이야 이미 억만장자일 테니 이제 평생 일할 필요 자체가 없겠지만.. 그 사람이 겨우 그렇게만 탱자탱자 사는 건 재능낭비이고 카이스트의 국비 장학생 제도에 대한 자괴감을 야기할 것이다.

서든어택2 삽질, 블리자드의 삽질.. 등등의 소식을 들어 왔지만 이 회사의 삽질은 그런 것과도 성격이 좀 다른 것 같다.
이제는 전통적인 메이저 게임사 3N 중에서 여전히 메이저로 대접받는 N은 사실상 하나밖에 안 남았다고 여겨진댄다. 다음으로 스마일게이트, 크래프톤 이런 신생업체가 떠오르는 강자라고..

물론 저 회사가 지금 이 정도 위기만으로 무슨 자금줄 끊긴 중소마냥 당장 오늘내일 하는 지경인 건 전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조직을 쇄신해서 새 사업 아이템으로 과거의 영광을 새로 되찾을지, 아니면 결국 과거의 영광만 껴안고 장렬히 자폭하거나 서서히 쪼그라들지.. 중대한 기로에 놓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21 19:35 2025/06/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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