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제임스 맥콜리 James D. McCawley (1938~1999)
는 시카고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였다.
흔히 언어학자 하면 노암 촘스키가 본좌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맥콜리는 그 촘스키의 제자이며 스승 만만찮은 덕후 천재 언어학자였다. 박사 학위를 주고받은 촘스키와 맥콜리의 나이 차는 겨우 10살에 불과했다.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학창 시절에 여러 학년을 월반한 끝에 만 16세의 나이로 시카고 대학에 진학했다. 아는 분도 있겠지만 시카고 대학은 과거에 석유왕 록펠러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자선 사업 차원에서 설립한 학교로, 미국에서 인문· 사회 계열이 강세인 상당한 명문 사학이다.
맥콜리는 어릴 적부터 수학, 논리학, 언어학 이런 쪽으로 완전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으며, 덕분에 나중에 대학원은 촘스키가 있는 MIT로 가게 된다.

그 후 그는 1964년,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로 모교인 시카고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생성 문법(generative grammar)의 확립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이 천재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은 게 있었으니 바로 한글이었다. 한글이 얼마나 대단한지가 그 좋은 머리로 바로 실감이 갔던 모양이다.

대충 영어를 해석하자면, “한글은 킹왕짱이고 세계의 문자들 중에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정교한 음소문자가 1440년대에 발명됐다는 건 정말 놀라운 언어학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정도.

그래서 그는 한글 덕후가 됐다.
동영상에서 1분 10초 이후부터가 유명한 대사이다. “전세계 언어학계는 이 한글의 창제일을 마땅히 경축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매해 10월 9일엔 내 강의를 쉬고 동료 교수와 학생들을 우리집에 초청하여 한글날 잔치를 벌여 왔다.” (정작 한글을 쓰는 나라에서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 버렸는데 말이다! ㄲㄲㄲㄲ)

참고로 저 인터뷰는 1995~1996년에 행해졌다. 그러니 저분의 한글날 잔치도 대략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얘기.
지난 1996년, 국어 정보학회에서는 한일 은행(지금 우리 은행의 전신)의 후원으로 한글 반포 550주년을 기념하여(since 1446) <세계로 한글로>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한글 관련 논술 공모를 했다. 인터뷰 동영상은 거기에 나오는 영상의 일부이다.

그 당시 국어 정보학회 회장이던 한양대 국문과 서 정수 교수가 직접 미국까지 날아가서 맥콜리 교수와 저렇게 인터뷰를 했다. 서 교수님 모습은 저기 화면에도 잠깐 나온다. 지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맥콜리 교수 관련 한글날 루머(?)는 루머가 아니라 사실이며, 그 정확한 출처가 바로 저 영상물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아, 그리고 본인은 그 당시 저 한글 논술에서 중등부 격려상을 받았다. 그때 이미 세벌식이 어떻고 조합형이 어떻고 하는 허접 논설문을 썼던 것이다... ㅋㅋㅋ 지금 본인은 그 당시 저 다큐멘터리의 연출 감독을 맡은 분하고도 잘 아는 사이이다.

맥콜리 교수와 덩달아 나오는 대표적인 한글 예찬론자 외국 석학으로 영국의 제프리 샘슨 교수가 있다. 한글이 ‘자질문자’라고 칭송한 바 있다.

맥콜리 교수는 그 후 1999년 4월, 환갑을 갓 넘긴 나이에 돌연사로 생을 마감했다. 스승인 촘스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울러 서 정수 교수도 이미 2007년에 고인이 되었다. 그런데 국문학과 교수이고 한양대 인문대 학장을 역임한 이분도 실은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이라는 충공깽 이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 후 대학원을 연세대 국문과로 가셨으니 어? 지금 본인의 진로와 비슷하나?? ㄲㄲ

한글이 지금과 같은 형태 그대로 무슨 IPA를 대체할 만한 음성 부호라거나, 로마자를 대체 가능한 만능 도깨비 방망이 문자라는 말은 아니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이네 하는 식의 부정확하고 안일하고 막연한 찬사도 피해야 한다.
한글이 무슨 쇼비니즘의 표상이 돼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한글은 객관적으로 얼마나 대단하고 고마운 문자인지 모른다. 우리는 한글에 대해 자부심을 품을 권리가 있으며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것도 머리가 어지간히 좋지 않아서는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을 못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09 09:03 2010/09/0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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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맑아릿다 2010/09/09 18:47 # M/D Reply Permalink

    정말 훈민정음은 보면 볼수록 논리적이고 빈틈이 없어요ㅠ_ㅠ

    촘스키가 학부에 있을 때 해리스 선생님에게는 수제자 후보가 둘 있었는데 그건 촘스키와, 르코프라는 듣보였습니다. 촘스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기 선생님을 넘어설 때쯤 르코프는 느닷없이 한글에 홀딱 반해서 무작정 한국행을 택하게 되는데...

    뭐냐 이 삼류 영화의 예고편 같은 댓글은!

    1. 사무엘 2010/09/10 01:50 # M/D Permalink

      훈민정음에 대해서 저도 학부 시절에 몇몇 교양 수업에서 배운 적은 있습니다만, 대학원에서 더 자세하게 다시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음~ 이 영화 예고편(같은 스토리)은 실화인가요?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 봐도 별로 걸리는 얘기가 없는데?
      영화 상영은 나중에 만나면 해 주세요. ㅋㅋ

  2. 김 기윤 2010/09/10 10:46 # M/D Reply Permalink

    이상적인 문자라고 한다면 한글이 그것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능은 아니지만, 배우기 쉽고, 읽기도 쉽고. 기계에 강하고 ㄲㄲ

    1. 사무엘 2010/09/17 01:07 # M/D Permalink

      단순히 기능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우수하냐를 떠나서 체계가 뭔가 오묘하고, 시쳇말로 ‘덕후’가 될 거리가 풍부합니다. 한글이 풀어쓰기 형태의 문자라면 기계화 오버헤드는 약간 줄어들지 모르나, 그런 매력을 상당수 잃게 될 거예요.
      물론, 오묘함은 전세계 문자들 중 유일하게 ‘열린 집합’이고 총 몇 자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대책없는 문자인 한-_-자에도 없지는 않다는 점을 저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한글과 한자의 본질적인 차이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될 겁니다. ㅋ

  3. 김재주 2010/09/10 14:10 # M/D Reply Permalink

    세종대왕님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때의 말과 현대 한국어는 정말 많이 다를 텐데도 신기하리만치 현대 한국어랑 잘 맞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갔다고밖에 할 수 없죠. 아니면 문자에 맞춰서 언어가 진화했다고 볼 수도 있을려나... 주시경 선생이 없었다면 또 어땠을지 모르겠네요.


    한국어를 제외한 다른 언어를 표기하기에는... 많은 경우에 그리 좋은 대안이 되지 않겠죠. 쩝.

    그래도 우리는 사용하는 말과 이 정도로 톱니가 잘 맞아 들어가는 문자를 가졌다는 점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뭔가 글이 횡설수설한데... 끌끌

    1. 다물 2010/09/10 16:49 # M/D Permalink

      세종대왕님이 만든 훈민정음은 종성부용초성에 연서, 합용병서, 각자병서 등 여러가지 활용이 모두 쓰였습니다.
      (거기에 중국에서 쓰는 성조까지)

      그걸 다 응용하면 외국어도 다 될 것 같은데요.

      지금 남아있는 현대한글은 지금 우리나라 말에 맞는 부분이 남아있는거라고 봐야겠죠.

      지금도 "ㅢ"를 비롯한 여러가지 발음이 없어지고 있으니 나중에는 더 단순해 질지도 모르겠네요.

    2. 사무엘 2010/09/10 23:24 # M/D Permalink

      김 재주, 다물 님께서 좋은 부연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한글의 활용 가능성은 표의성을 가미한 한국어의 형태주의 표기와, 외래어 표음 능력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균형 있게 조명해야겠지요.

  4. 김재주 2010/09/10 20:51 # M/D Reply Permalink

    다물 // 외국어 표기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그게 해당 언어에서도 효율적인 표기 방법이 될 것인가가 중요한 거죠. 훈민정음에 더해서 몇가지 규칙을 추가하면 IPA와 같은 수준의 표음성도 지니게 될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1. 다물 2010/09/13 10:11 # M/D Permalink

      훈민정음에 더해서 몇 가지 규칙을 추가하자는게 아닙니다. 훈민정음을 그대로 활용하자는거죠. 지금 쓰는 현대 한글이 세종대왕이 만드신 훈민정음에서 온 것이긴 하지만 훈민정음과 현대 한글은 서로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순경음(ㅂ아래에 ㅇ이 있는 모양 등) 같은 경우 현대 국어에서는 잘못된 사용이고 훈민정음에서는 맞는 사용입니다.

      물론 초기 훈민정음을 다 이용한다고 해도 지구상에 있는 모든 언어에서 사용하는 발음을 다 표현할 수 있다는 증명은 되어 있지 않지만 지금 현대 국어에서 사용하는 것 보다는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겠죠.

  5. 인민 2011/05/28 04:18 # M/D Reply Permalink



    초기 훈민정음을 사용하는 것은 이점도 되고 불이점도 될 수 있겠죠.
    저는 초기 훈민정음을 애용하는 사람입니다만(영어시간에 할짓없으면 Three를 ㄴ스리 이렇게 적어놓고 놉니다. ㄲㄲ) 기계화라는 방면에서는 약간 문제가 있을 수 있겠네요.

    일단은 공 병우 박사님이 나오시려면

    반치음, 여린히읗, 아래아는 역사속으로 사라져야 했고 (옛이응은 잘 모르겠다는)
    또한 빨랫줄 3벌식 글씨체에서 초,종성 자음 3개 연속도 없어져야 했고
    ㅢㅜ, ㅗㅜ, ㅗㅗㅣ, ㅠㅣ 등의 이, 삼중모음도 많았는데 '타자기'라는 것이 가능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기계화(여기서는 타자기화 만을 나타냄)를 한다면 외국어 적기도 그렇고 자유로운 소리 표현이 불가능할 겁니다. 어쨌든 딜레마죠.

    P. S. ㅿ, ㆆ, ㆁ, ㆍ(아래아) 가 생존했다면, 지금쯤 현대 한글에 너무 초점을 맞추어 있는 '두벌식 옛한글, 세벌식 옛한글' 등을 과연 쓰고 있을런지 해서 옛한글 자판배열을 만들어 둔 게 있습니다. 원하시면 공개<<퍽

    1. 사무엘 2011/05/28 09:38 # M/D Permalink

      맞습니다. 현대 한글의 자모 개수가 타자기 글쇠 mapping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 덕분에 공 병우 식 기계식 타자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한글 기계화에도 애로사항이 꽃피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대 한국어에 형태· 음운론적으로 아무런 변별 자질이 없는 자모를 정리해야 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이걸 오해하시는 분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한글을 제한했다거나 뭔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얘기를 하는데, 그건 아니지요. 한글을 풀어써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별 영양가 없는 말입니다.)
      기존 옛한글 글자판은 또 무슨 부족한 점이 있어서 새로운 옛한글 글자판을 만드셨는지는 문득 궁금해지네요. ^^

    2. 인민 2011/06/24 21:39 # M/D Permalink

      아, 별거 아니고
      반치음이라든지 여린히읗 같은걸 입력하려면 운지거리가 너무 길다든지 쉬프트를 눌러야 한다든지 ㅏ+ㅏ=아래아 등의 별 희한한 오토마타가 필요하다든지 해서 말이죠.

      게다가 현재 쓰는 ㅇ은 받침일 때는 그저 한자음 표기할 때 예의상 붙여 주는 것에다가 실제 ng 발음은 ㄱ 계열의 ㆁ을 붙인단 말입니다. 근데 세벌식 옛한글에서 ㆁ을 누르려면 쿼티의 ~키를 눌러야죠.

      그밖에 두벌식은 옛한글에서 골때리는 내용이다 / 세벌식에선 아라비아 숫자를 입력할 수 없다 / ㅐ, ㅔ 등은 옛한글에선 이중모음 처리되기 때문에 이런 오토마타도 있어야 한다 등의 이유로 세벌식 노쉬프트를 베이스로 끄적였습니다. 누리집에 있으니 찾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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