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전에 재미 붙이다
자동차는 마치 내 신체의 일부라도 된 듯, 가속 페달만 밟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쓰윽 나아가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신기하고 대단한 물건이 아닐수 없다.
단지 사고가 났다 하면 온갖 험한 꼴 보면서 정말 인생에 애로사항이 알록달록 꽃피게 되며, 더구나 그게 나만 잘한다고 100% 예방 가능한 게 아니어서 문제일 뿐.. -_-;;
또한 돈 씀씀이의 레벨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올라간다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BMW(버스, 지하철, 도보)만 이용하던 시절엔 기름값, 주차비, 운전자 보험 같은 개념을 생각할 일 자체가 없지 않았던가.
도로 정체, 기름값, 주차라는 3대 난제를 생각하면 차를 가져가는 데 부담이 느껴지나,
날씨가 안 좋고 시간이 늦어질수록 귀가할 때 차 생각은 더욱 간절해진다.
심야에는 대중교통은 차가 뜸해지고 이용하기 어려워지며, 반대로 도로는 더욱 한산해지니 자가용의 경쟁력이 크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심야 총알 택시가 있긴 하지만 이때는 역시 재정의 압박이.. -_-;;
본인은 엄청난 옛날, 아직 철덕이 되기도 전이던 2003년 초에 면허를 땄다.
하지만 무려 2011년이 돼서야, 지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차를 몬 것보다 더욱 운전을 많이 했다.
대학원생이다 보니 이런 블랙코미디가 문득 떠오르더라.
이게 박사 학위를 따는 때(먼허)와 교수 되는 때의 간극(자가용 장만&운전)처럼 되는 건 아닌지. -_-;;;
그때까진 그럼 학위도 장롱 학위나 마찬가지인 건가. ㄲㄲㄲㄲㄲ
처음에는 차들이 쌩쌩 들어가는 도로로 들어가는 게 겁나기도 했고, 차선 바꾸거나 주차하는 게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다. 모든 게 생소하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몇 번 하고 나니까 진짜 '감'이 온다. 어려울 것 하나도 없다. 악기를 익히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 정도 배짱도 생기고, 나 역시 상황에 따라서는 앞차를 경적 누르면서 갈구기도 하는 경지에 올랐다.
도로가 한산한 밤에 혼자 차 몰고 나들이 갔다 오면서 운전 알파테스트를 하다가 이내 남까지 태워다 주게 됐다. 차키를 쥐고 있으니 정말 절대권력을 쥔 느낌이었다.
비록 지금은 내가 전철을 타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차를 갖고 나갈 수도 있는 상태에서 일부러 전철을 타는 것하고, 차가 아예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전철을 타는 것은 마음 상태가 서로 완전히 다르다.
차가 좋아서 한적한 도로에 차 세워 놓고 안에서 혼자 그냥 자기도-_-;; 했는데, 이것만으로도 마치 텐트 치고 야영 온 느낌이었다.
일요일 아침에는 도로 정체가 없기 때문에 운전하기엔 최적. 교회에는 차를 가져가는 빈도가 차츰 높아지기 시작했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운전하니까 좋다.
일각에서는, 자가용 운전에 재미 붙임으로써 본인의 철덕 기질도 상대적으로 한풀 꺾일 거라고 벌써부터 기대하는 분이 있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 아직까지는 과연 글쎄다.
내가 운전하면서 맨날 뭘 듣는지를 지켜본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ㅋㅋㅋㅋㅋ
내가 교회를 안 다녔으면, 차가 있으면 주말마다 일단 서울 교외선과 중앙선의 간이역 답사부터 하러 돌아다녔지 싶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타입이 아니고, 등산도 싫어하고, 혼자서 프로그래밍도 안 하면 그럼 뭘 하겠는가?
아무튼, 부모님이 물려주신 목숨과 자동차는 하나뿐이다. 둘 다 안 아프고 간수 잘 하는 게 효도하는 길 되겠다. ^^
2. 관련 잡설들
- 산업 혁명 시절에 다른 분야도 그랬지만, 자동차 역시 기존 마차 업계들로부터 밥그릇 빼앗는다고 미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 데다 교통사고까지 빈번하니까 영국이던가 미국이던가? 20세기 초에 쟤네들의 로비 덕분에 말도 안 되는 조항이 만들어지기도 했던 걸 아시는지? 사고 예방을 위해 자동차는 시속 10km대의 속도로만 가도록 하고, 앞에서 조수가 빨간 깃발을 흔들면서 비키라고 경고하라고..;; 자동차를 완전 고자로 만들어서 굴리는 거구만.. -_-
- 198, 90년대에는 유난히도 환경과 관련된 섬뜩한 괴담이 많이 나돌고 캠페인도 많이 벌어졌었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지금도 비록 서울 공기가 그리 맑다고 볼 수는 없지만, 수십 년 동안 그렇게도 많은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는데도 반세기 전의 영국 같은 스모그가 안 생기고 시민들이 전부 호흡기에 병 걸리고 죽지 않는 걸 보면 정부와 기업에서 환경 정화를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을 많이 하긴 했다. 시꺼먼 매연을 뿜는 시내버스들은 거의 다 천연가스 엔진으로 바뀌고, 자동차 회사들도 배기가스를 정화하는 기술을 공돌이들을 갈아넣어서 충분히 개발했다.
(얼마 전엔, 지난 2003년에 단종된 현대 갤로퍼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걸 본 적이 있었다.별로 크지도 않은 차에서 나오는 시꺼먼 매연을 보니, 갤로퍼가 환경 기준을 만족 못 하고 왜 진작에 단종됐는지를 알 것 같았다.)
- 컴퓨터 프로그래밍 세계에 memory leak가 있다면, 자동차에는 battery leak가 있다. 시동이 꺼졌는데 실내등, 계기판의 각종 불빛 따위가 켜져 있는 채로 차가 장시간 방치되면, 그 다음에 그 차는 배터리가 방전되어 시동을 걸 수가 없어진다. -_-;; 옆에 다른 차가 있고 배터리 연결이라도 가능하다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면 영락없이 보험사 콜.. -_- 자동차에도 battery leak을 감지하거나 시동 가능을 위한 최소 전력까지만 전기 사용을 허용하는 그런 장치는 없으려나 모르겠다.
- 그런데, 시동을 켜서 발전기가 계속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능사는 아닌 것이, 에어컨과 헤드라이트는 오늘날의 자동차에도 상당히 무리를 주긴 하는가 보다. 특히 둘을 모두 가동해야 하는 여름 밤의 운전은 정말 최악이라고...;; 시동을 걸고 차를 주행하고 있더라도 발전량이 전력 소비량을 못 따라갈 수 있기 때문에, 에어컨은 주기적으로 껐다가 다시 가동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시동이 꺼지면서 동작이 자동으로 멈추는 전자 기기라 하더라도, 미리 그걸 스위치를 눌러서 직접 끈 뒤에 시동을 끄는 게 여러 모로 차에 좋다고 한다. 에어컨은 두말 할 나위도 없고.
- 옛날에는 축전지가 들어가는 물건 자체가 자동차, 노트북 컴퓨터, 워크맨 외에는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랬는데 1990년대 말부터 휴대전화부터 시작해서 온갖 전자 기기들이 보급되면서 이 구도도 바뀌었다. 자동차의 부품으로는 '밧데리'라는 말도 많이 쓰였는데, 오늘날은 확실하게 배터리라고 표현이 바뀐 것 같다.
- 어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한국은 외래어의 원형 그대로 축약을 잘 안 한다.
일본은 play station도 그냥 '프레스테'라고 줄이고, shock absorber를 '쇼바'라고, 텔레비전을 '테레비'라고 뚝뚝 편한 대로 잘 줄이는데,
한국은 도이칠란트 대신 그냥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대신 호주, 에스컬레이터 대신 E/S, 텔레비전 대신 그냥 TV, 남캘리포니아 대신 남가주 등 영어 이니셜이나 차라리 한자어를 쓰고 마는가 보다.
자동차 용어 중에서도 조금만 생각하면 이런 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