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자동차

요즘 교통수단이라는 건 사람이 단순히 말 타듯이 위에 타는 형태가 아니라, 안에 들어가서 조종하는 형태를 가정하고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큼직하고 안에 공간도 제법 있으며, 이걸 또 다른 교통수단에다 싣는 건 거대한 화물선이나 트레일러급이 아니면 일반적으로 가능치 않다. (자전거는 엔진이 달린 '자동차'는 아니니까) 그러니 배는 말할 것도 없고 승용차 정도만 돼도 법적으로 준부동산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컴퓨터도 들고 다니고, 전화기도 들고 다니는 세상에 휴대 가능한 1인용 초소형 교통수단에 대한 연구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제트팩도 있는데 하물며 더 저렴한 자동차가 휴대용 버전이 없겠나?
쉽게 생각해 보시라. 막히는 곳에서는 사람이 그냥 차를 들고 성큼성큼 걷다가, 도로가 나오면 다시 차를 펼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면,
주차를 따로 하는 게 아니라 차를 접어서 같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게 가능하다면 이 또한 매력적일 것이다.

내가 아는 휴대용 교통수단은 크게 두 가지이다.

1. 일본 마쓰다 자동차에서 여행용 캐리어 정도 크기에 쌀 한 가마니 남짓한 무게의 1인용 휴대용 자동차를 만든 게 있다. 초소형 1기통 2행정 가솔린 엔진으로 최고 시속 30km 남짓을 낸다고. 기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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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난 저거 굉장히 옛날에, 20년도 더 전에 봤었다. 1990년대, 초등학교 시절에 월간 자동차생활 잡지에서 처음 본 거니까..
내연기관 대신 그냥 전기 모터를 썼으면 더 작고 가볍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전동 휠체어랑 뭐가 다르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아무래도 환자가 타는 용도가 아니니까 탑승자가 더 꾸부정하게 불편한 자세로 앉아도 되고, 그만큼 차지 면적과 기계의 크기를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2. 그리고 최근에 개발된 물건으로는 외륜 오토바이가 있다. 얘는 전기로 달린다.
타이어 폭이 크고 손잡이도 있기 때문에 외발자전거보다야 타거나 중심 잡기는 쉬울 것 같다. 외발자전거 타는 게 취미인 분에게는 무척 흥미로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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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 모습이 좀 스카이 콩콩처럼 생겨 보인다만, 그건 그냥 착시다. ^^

여타 장거리 교통수단에 휴대가 가능하면서 한편으로 자전거보다 오르막을 더 잘 오르고 빠르게 갈 수 있는 편리한 소형 교통수단이 있다면 분명 유용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3/30 08:27 2014/03/3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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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제관

내 주변의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들은 의학이나 공학 쪽의 천재가 아닌 이상은 다들 경제, 금융, 법, 행정 쪽으로 몰리고 있다. 거기가 아무래도 잘 나가고 돈 많이 버는 업종이어서 그런 것 같다.
난 그런 골치아픈 학문은 완전 무관심하고 문외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제관에 관한 한은 다음과 같이 확고한 maxim / principle이 머리에 박혀 있다.

1.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공짜로 뭔가를 얻어 쓰고 있다면 그건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남보다 더 노력해서 잉여분을 제공해 준 덕분이거나 남의 것을 희생하거나 빼앗았기 때문이다.

2. 정부(또는 국가)는 먼저 국민의 재산을 빼앗지 않고는 국민에게 그 어떤 편의나 복지도 제공할 수 없다. 그것도 빼앗은 총량보다 훨씬 적은 양만큼만 되돌려 줄 수 있다. 열심히 일해 봤자 다 세금으로 뜯기는 시스템에서는 어느 누구도 먼저 사업을 벌리고 열심히 일하려 나설 수 없다.

3. 복지 제도는 마치 보험과도 같아서 오· 남· 악용되는 일이 없게 나일롱 수혜자를 정확히 걸러내는 시스템이라는 전제조건이 갖춰져야만 실현 가능하다. 가난 구제는 왜 나랏님도 못 하는지를 잘 생각할 필요가 있다. 탈세나 보험 사기에는 아주 민감한 사람들이, 그것과 거의 똑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복지에 대해서는 보편적 복지를 왜 그리도 너무 쉽게 얘기하는가?

4. 부패한 정부의 폐해는 부패한 기업의 폐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더 크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나라가 아무리 나쁘다 해도, 국가가 개인을 착취하는 나라보다 나쁠 수는 없다. 기업은 최소한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얼마든지 입사 안 할 수 있고 사표 쓰고 나올 수 있고, 극소수의 독과점 상황만 아니라면 제품 불매 운동이라도 벌여서 응징할 수 있다.

5. 성장을 좋아하든 분배를 좋아하든, 어떤 경제관을 갖든, 이상적인 부의 분배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개인 자유이다. 그러나 그 경제관은 당신이 월급쟁이일 뿐만 아니라 직접 사업을 하고 남을 고용하고 월급을 "주는" 처지가 됐을 때도 똑같이 유지할 수 있는 관점이겠는지를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6. 사유재산과 자유 시장은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을 그나마 빵의 크기를 키우고 다같이 잘 살게 하는 쪽으로 발산되게 하는 좋은 경제 제도이다. 빈부 격차도 없을 수가 없으며, 때로는 돈으로 돈을 버는 것도 필요하다. 돈으로 돈을 불려서 부자를 훨씬 더 부자로 만드는 걸 허용하지 않고서는 가난한 사람을 작은 부자로라도 만들 수가 없다. 또한 산업 인프라가 대량 생산 위주로 중앙 집중이 돼야 제품의 생산 단가가 내려가고, 덕분에 공산품은 싸고 인건비는 비싼 바람직한 경제 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 이게 그냥 공짜로 되는 게 아니다.

물론 개인의 local maximum을 추구하는 이기주의가 언제나 집단 전체의 이익을 키우지는 않으며, 시장이 아무 통제가 없으면 치킨 게임, 눈치 보기, 담합, 독점 같은 부작용이나 데드락도 생긴다. 당장 이익이 안 나더라도 국가에서 먼 미래를 보고 비효율적인 아이템을 밀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정부만이 마냥 해결책이고 뭐든지 국가가 나서서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은 상당히 조심하고 제한적으로 걸러서 들어야 한다.

간부가 아무리 미워도 간부 없이 군대가 돌아갈 수는 없으며 정치인들이 아무리 미워도 이 악한 세상이 정치 없이 돌아갈 수는 없다.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같은 건 영구 기관만큼이나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 인간의 죄성상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속이는 선동에 속지 말아야 한다. 또한 사유재산과 시장 경쟁의 혜택은 실컷 입었으면서 정작 자기는 이상한 음모론 제기하고 비방만 하는 '헛똑똑이'들을 우리는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정부의 비효율은 한번 놔 두면 정말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시장을 왜곡하고 민생을 헬게이트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관념을 애들에게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난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4/03/27 08:39 2014/03/2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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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 문명에 대한 짧은 생각

나는 내 신앙관과는 별개로 현대의 눈부신 과학 기술과 물질 문명, 문명의 이기, 제도권 의학을 매우 사랑하며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본다.
그에 대해 되도 않은 방식으로 부작용· 폐해만 부각시키며 폄훼하는 음모론, 그리고 대안이랍시고 무작정 자연으로 돌아가네, 이상한 유사과학 끄집어내는 것들을 기본적으로 경멸하며 부정적으로 본다. 역사적으로 다 검증된 시행착오로 왜 또 복귀하려 하냐?

우리나라가 해방 이래로 이 정도로 인권이 발달하고 자유 민주주의 지수가 오른 건..
일단 나라가 올바른 이념으로 건립되었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국민 개인이 등 따시고 배부르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덕분이다.
거기서 민중 항쟁? 데모질, 시위가 기여한 건 아예 0은 아니겠지만 비중이 굉장히 낮다고 본다.
북한이 인민들의 민주 의식 저항 의식이 부족해서 저 지경이 된 게 절대 아니란 말이다. 닥치고 총칼 폭력 위협과 굶주림 앞에서 장사 있냐?

내가 예전에도 여러 번 언급한 비유이다만.. 솔로몬의 재판을 생각해 보자.
세상 정부가 무슨 예수님이나 솔로몬 같은 완벽한 통치나 재판을 할 수는 없다. 세상 정부로부터 종교적인 면모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걸 바랄 수 없다면, CCTV나 유전자 감식으로라도 진짜 애엄마를 가려내는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마땅히 칭송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의 양심을 믿을 수 없다면 양심이 필요하지 않은 시스템을 개발한 학자라도 칭송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나 정교분리 이념에 목숨 거는 사람들은 이 점을 더욱 명심해야 한다.

과학 기술 덕분에 농산물과 공산품의 가격이 인건비에 비해 크게 내려가고 인간의 복지가 향상되고 인간은 생존 이외의 다른 창의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이 인간에게 자유를 선사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죄 짓는 일도 덩달아 증가한 건 전적으로 별개로 생각해야 할 문제다.

과학 기술 덕분에 세상이 더욱 공정하고 질서정연해졌으며, 한 사람의 실수가 집단 전체로 파급될 일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각 개인을 더 선하게 믿어도 되고 군기라든가 끔찍한 일벌백계 같은 게 덜 필요해졌으며, 세상이 덜 각박해져도 되게 되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 피의자를 고문해서 자백을 강요하는 관행을 없앤 것은 뭔 민주화 인권 시위 같은 게 아니라 첨단 과학 수사 기법이다!
  • 옛날에 자연이 지금보다 훨씬 더 깨끗하던(?) 시절엔 오히려 인구와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더 짧았다. 옛날엔 전염병 때문에 인구가 이렇게 밀집한 대도시가 아예 존재할 수가 없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4/03/22 08:38 2014/03/2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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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로 발을 코에 대고

'봉은사 땅밟기'....는 아니고 '남극점 땅밟기'를 세계 최초로 성공한 사람은 알다시피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 일행이다. 이건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인 1911년의 일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예전에 이 사람에 대해 한번 다룬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0년쯤 전인 1994년엔 산악인 허 영호 대장이 이끄는 팀이 한국인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썰매를 안 타고 끌면서, 무려 1000km가 넘는 거리--'리'도 아니고 '킬로미터'!--를 도보만으로 이동하여 남극점을 정복한 것은 영국, 이탈리아, 일본에 이어 넷째였다고 한다. 아문센 팀은 알다시피 개가 끄는 썰매를 탄 것이기 때문에 제끼고.

물론 정확하게 같은 거리를 이동한 건 아니겠지만, 아문센은 55일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나라 팀은 44일 만에 갔다. 그리고 아문센/스콧 시절에는 탐사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미리 길을 개척하고 보급 물자 기지도 일정 간격으로 준비해 놔야 했지만, 요즘은 GPS가 발달하고 다른 장비와 물자도 좋아진 덕분인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요컨대 100년 전과는 달리, (1) 중간 보급 없이 (2) 순수 도보만으로 남극점까지 간 것이다.

그러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날짜다. 모든 탐험대들이 남극점에 도달하는 날짜는 한 치의 예외 없이 12월~1월로 맞춰져 있다. 그때가 남반구에서는 한여름이기 때문이다. 계절상으로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탐험대는 현장에서 영하 30도를 밑도는 극심한 추위 때문에 고생한다. 하물며 겨울에는 남극 중심부에 절대로 못 들어간다.

다음 글을 읽어 보자.
1994년 당시 기록은 아니고, 2004년에 남극점을 정복한 박 영석 대장에 대한 보도 자료이다. 하필 공교롭게도 남극 연구소에서 전 재규 대원이 순직(2003년 12월)한 그 기간에 탐험 중이었구나.

남극점으로 가는 동안 이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대원들끼리 대화 내용이 줄곧 “아.. 난 막걸리 한 사발과 홍어회나 좀 먹고 싶다 / 난 딸기우유 3리터 plz”였댄다.
그리고 수능 출제 위원의 감금 기간보다도 더 긴 6주 남짓한 기간 동안... 저 사람들은 세수, 빨래를 전혀 못 하고 머리도 한 번도 못 감았다고. 으악~~

그 상태로 밤엔 3인용 텐트 하나에 5명의 사람이 뽁짝뽁짝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공간을 아끼려고 “서로 엇갈려 머리를 두고” 잤다고 한다.
“서로 발을 코에 대고 얼마나 괴로웠을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북한 정치범 수용소 그림에 묘사된 것처럼 잤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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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상헌 북한 인권 정보 센터 이사장이 탈북자의 증언을 토대로 그려서 잘 알려진 바로 이 그림.)

탐사 대원 5명 전체의 한 끼 식량의 무게가 800g에 불과했다고 한다. 5를 나누고 3을 곱하면 그래도 500g 정도는 되겠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호모 사피엔스의 신체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 오늘날 무보급 남극 탐사가 가능해진 건 아무래도 현대 과학 기술이 접목된 고열량 보존 식품이 개발된 덕분일 것이다. 비록, 이건 일상적인 음식에 비해 맛은 보장을 못 하겠지만 말이다.

한편, 북한의 저 생지옥에서는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하는 죄수들에게 1인당 하루 식량 배급이 강냉이 200~300g 남짓이라고 그런다. 그러니 배급받는 것만 먹었다간 영양실조 걸리고 굶어 죽으니, 쥐도 잡아먹고 쇠똥에 파묻힌 곡식 알갱이까지 끄집어 먹는 거다. 그저 묵념.

극지 탐험 관련 글을 읽으면서도 북한 인권 생각이 날 정도로 내가 우익 성향이 강해지긴 했다.
저 사람들은 그래도 미지의 지대를 개척한다는 자부심으로 고생을 견디며, 무사히 귀환하고 나면 심신이 달련되고 명예라도 따른다. 하지만 이북 동네는 도대체 뭐냐.. 가슴아프다.

2. 비둘기 자세

'비둘기 자세'라고 하면 본인은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3기 4화 요가 교실 편의 병맛 대사를 바로 떠올리면서 낄낄대곤 했다.
“비둘기의 포즈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너 임마 그거 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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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러분 이거 아시는가?

‘비둘기 자세’란 게 있다. 남북한의 비둘기 생김새가 정녕 다르지 않을진대, 그 자세의 의미는 남북이 천양지차다.

남쪽 것은 요가의 한 동작이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 등 뒤로 팔을 넘겨 뒤쪽 발을 잡아 끌어올린다. 앞가슴을 쭉 내민 비둘기 모습과 닮았대서 붙은 이름이다. 팔과 다리 선을 가꿔주고 옆구리 군살을 빼는 효과가 있단다. 늘씬한 연예인이 이 자세를 취한 사진이 퍼져 너도나도 따라 하는 동작이 됐다.

북녘 것은 고문의 한 방법이다. 양손을 등 뒤로 돌려 벽의 고리에 묶는다. 고리 높이가 바닥에서 60㎝ 정도밖에 안 돼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된다. 먹이를 쪼며 걷는 비둘기 모습이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배 속에 든 걸 모두 토해낼 정도로 고통스럽다. 실제로 북한인권을 다룬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이 자세로 촬영했다가 몸에 마비가 왔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남북의 거리가 이만큼 멀다. 맞붙어 한반도고, 한 뿌리 한 겨렌데 이웃나라보다 더 멀고 더 새 뜬다. 한쪽은 못해서 안달이고 다른 쪽은 할까 봐 섬뜩한 비둘기 자세처럼, 말 쓰임새가 다른 건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 남쪽이 청년실업과 업무스트레스, 노후불안에 떨 때, 북쪽은 굶주림과 질병, 처형의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목숨과 바꾸지 않고는, 최소한 목숨을 걸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원초적 공포다. (중앙일보 이 훈범 국제부장)


난 비둘기의 포즈 북한 버전을, 역시 탈북자들이 그린 정치범 수용소 그림을 통해 본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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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런 자세로 있는다고 해서 어떻게 구토까지 할 정도로 고통을 당하는지 그 역학· 생리학적 원리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굳이 상상하거나 체험하고 싶지도 않고.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토하는 장면 묘사는 절대로 안 빠진다!

<신이 보낸 사람>의 주연 배우 김 인권 씨는 저걸 체험해 봤더니 정말 작-_-살나게 괴롭고 사지 마비 증세가 오더라고 증언한 바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4/03/19 08:25 2014/03/1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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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해 버렸으니 허접한 게 아니라, 오히려 500년이나 버틴 대단한 왕조이다”라는 요지로 조선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서울대 중문과 허 성도 교수가 했다는 강연을 보신 분이 있는가 모르겠다. 본인 역시 오래 전에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조선이 그저 말기에 막장으로 치달아서 망할 만하니까 망했고 먹힐 만하니까 일제에게 먹혔다고만 생각하기에 앞서,
조선 역시 리즈 시절에는 기강과 체계가 굉장히 잘 갖춰진 좋은 나라였다는 걸 알 수 있다. 환단고기 식의 황당한 얘기가 아니라 그럴싸하게 들린다.

다른 제도는 몰라도 특히 조선왕조 실록은 훈민정음에 버금가는 위대한 문화 자산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뭔가... "성경에 과학적으로 아주 정확한 진술이 있다.." 그런 예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

본인에게는 그분의 성함이 낯설지 않게 들린다.
저 강연을 한 허 성도 교수는 '한국사 사료 연구소'에 재직하였으며,
유니코드가 정식 제정되기 전에 아래아한글이 제공하던 '제2수준 확장 한자'를 제정하고 글자를 직접 그리기까지 했던 분 중 하나이다. 아래아한글의 도움말 credits에도 이름이 당당히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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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로 우리나라 문화와 관련해서 공적이 뚜렷한 분임이 틀림없다.흔히 한글 전용론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한문 고전을 통해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소수의 전문가를 양성해서 고전을 번역을 해야지, 그걸 빌미로 전국민에게 어려운 한자· 한문을 원어 그대로 가르치기에는 국가적인 손실과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허 교수는 그 주장이 가리키는 '소수의 전문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대단한 분이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올해에 갓 정년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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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4/03/16 08:16 2014/03/1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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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6월 30일, 5공 시절에 KBS 텔레비전에서는 6·25가 발발한 지 33주년과 휴전 30주년을 기념하여 소박한(?) 이벤트를 하나 편성했다.
남북 이산가족까지는 못 하더라도 같은 대한민국 안에서라도(domestic) 원치 않게 헤어지고 연락이 끊어진 이산가족을 매스컴의 힘을 동원해서 찾아 보자는 1시간 반 남짓한 길이의 생방송 이벤트 프로그램이었다.

그랬는데..
이 프로가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영된 이후,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상상도 못 한 이변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막혀 있던 봇물이 터졌다.

KBS 사무국은 전화통이 불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일 밤과 새벽까지, 출연 신청도 없이 수천 명의 이산가족이 여의도로 찾아왔으며, 1회로 기획되었던 생방송은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무려 138일 동안 연달아 방영되는 기염을 토했다.
쉽게 말해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고(그 해 9월)와 아웅산 폭탄 테러(그 해 10월)가 벌어진 동안에도 저 프로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여기에라도 내 모습을 내보내서 어떻게든 가족을 찾으려고 여의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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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은 외신으로도 특종을 타고 보도됐으며 기네스북에 당당히 등재되었다.
TV에서 사람을 공개적으로 찾는 건 십중팔구 범죄자 수배밖에 없을 텐데 TV가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을 찾는 역할을 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내가 태어난 해에 있었던 옛날 일이다. 그러니 난 당연히 직접 체험한 적은 없고,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편린 정도만 머릿속에 지니고 있다.
인터넷, 휴대전화, SNS 없고 전화 보급률도 더딘데 마침 5공 시절에 컬러 텔레비전은 딱 집집마다 보급되던 시절이었으니 기술적으로 시기가 적절했다.

어느 중년의 남매가 서로 다른 지방에서 전화로 연결이 됐다. 혈육 인증을 위해 이름과 가족, 가족사, 신체 특징 같은 걸 물었는데 그게 일치하자..
그냥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두 사람 모두 자지러지게 펑펑 울음을 터뜨린 장면이 내 기억에 남는다. 이건 그 어떤 연기로도 제대로 재연할 수 없을 것이다. 방청객도, 아나운서도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이 스튜디오에서 만나게 됐을 때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성경을 아는 분이라면 이쯤에서 요셉 이야기를 떠올려도 좋을 것 같다. (창 43:30, 45:1-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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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천도 울어 버린 인간 드라마, 1983년 KBS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그때 TV 출연 신청이 총 10만 건 정도가 들어와서 그 중 절반인 5만 건 정도가 실제 접수되어 방송을 탔으며, 거기서 또 20% 정도 되는 1만여 가족이 상봉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혈육을 끝끝내 찾지 못한 이산가족도 굉장히 많았다는 뜻이다. 6·25가 가져온 분단의 비극은 이렇게 처참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 프로가 방영된 때로부터 또 무려 30년이 지나 있다.
참고로 국내 이산가족이 아니라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행사는 대한 적십자사가 민간 차원에서 1971년에 실태를 조사하고 1985년에 한번 추진했던 것 이후로는, 김 대중· 노 무현 정권이 돼서야 성사되었다. 규모는 아무래도 저 국내 이산가족 상봉에 비할 바가 못 되며, 상봉 후 재결합은 당연히 안 되고 이 사람들은 잠깐 만났다가 도로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만 했다. =_=;;.

그 당시 북한에서는 남한 사람과 만나는 이산가족들을 행사 몇 달 전부터 평양으로 불러서 밥 잘 먹이고 잘 재워서 굶주린 티, 험하게 산 티를 최대한 감추고 내보냈다. 또한 남한 사람과 만났을 때는 “우리는 수령님, 장군님의 은혜로 잘 지내고 있다”라고 기계적으로 대답하라고 세뇌 교육도 당연히 시켰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런데 님 달러 좀”이라고 뒷돈까지 삥뜯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만...

이런 궁색한 이벤트도 이산가족의 입장에서는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은지 모르겠다만, 겨우 저런 식의 상봉은 바람직한 통일을 정말로 염두에 둔 조치라고는 볼 수 없다. 남과 북이 정말로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개방과 평화 통일을 할 의향이 있다면 상식적으로 그 전에 서신 왕래와 관광 여행부터라도 성사시켜야 하지 않겠나?

구원받은 지체들은 이 세상에서 헤어지더라도 다시 부활하고 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복된 소망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4/03/13 08:26 2014/03/1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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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삼일절엔 두 가지 볼일이 있어서 합정 역 일대를 방문했다.

먼저, 서울여대 시각디자인과 1, 2학년 학생들이 주최한 “서울여자, 취미는 한글” 전시회를 관람했다.
한 재준 교수님의 한글 타이포그래피· 레터링 수업을 듣고 결과물로 만든 작품을 전시한 듯하다.
장소는 <벼레별씨>라는 카페 건물인데, 합정 역 7번 출구로 나온 뒤 뒤돌아서 우리 은행 건물이 있는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쭉 300미터가량 직진하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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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작품에 대한 설명은 땅바닥에 쓰여져 있는 게 인상적임.
한글은 앞으로는 가변폭 글꼴이 대세가 돼야 하며, 영문 글꼴처럼 다양한 metric을 지닌 들쭉날쭉 창의적이고 기상천외한 글꼴이 많이 나와야 하리라 여겨진다.

원래 3월 2일까지 하기로 예정됐던 전시가 3월 8일까지로 연장돼서 아직 시간이 며칠 더 남아 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가 보시길 바란다.

혹시나 해서 독자 여러분께 당부하는데... 내가 북한 비판하고 종북들 까는 글, 철도 찬양하는 글을 블로그나 SNS에 올리는 빈도가 지나치게(?) 잦아진다고 해서, 내가 내 본업을 잊어버린 건 절대로 아니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길.
오히려 내 진짜 본업과 생업은 입이 아닌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잠수 탄 상태에서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자, 합정동까지 온 김에 이거 다음으로는.. 근처의 유명한 기독교 유적지를 들렀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와 선교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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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서울이 강북 4대문 안으로 완전 코딱지만 하게 작던 시절엔, 강변은 완전 외곽 변두리였다. 군사 요새가 있고 사형장, 묘지 같은 거나 있을 정도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양화진은 바로 그런 곳이었으며, 그래서 묘지도 있고 바로 근처엔 절두산 같은 종교 성지도 존재한다(난 거기까지는 안 갔음).

우리나라는 천주교가 먼저 전래된 뒤에 흔히 개신교라고 불리는 기독교 교파들이 구한말에 들어왔다.
자국 정부에 의한 박해와 순교는 천주교에 더 많이 남아 있는 반면, 기독교는 민간 차원에서의 정서적 왕따 말고 딱히 공권력에 의한 박해는 없었던 듯하다. 워낙 나라가 망해 가는 막장 시기에 들어와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다만, 성경 번역 역사는 천주교가 아닌 기독교 쪽이 확실한 우위를 쥐고 있다. 그리고 일제와 북한 공산당에 의한 박해 역사도 기독교의 비중이 더 높다. 이것이 내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한반도 교회사이다.

단군의 후손들은 기독교를 전파받은 여러 민족들 중, 일찍부터 자국어 성경이 잘 완역된 좋은 경우에 속한다. 그리고 조선인들은 일찍부터 성경의 중요성을 알았으며, 선교사들이 놀랄 정도로 성경 공부에 완전 목숨을 걸기도 했다고 함.

“성경 번역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사라질 뻔했던 한글을 구원하셨고, 그 한글은 복음에 봉사하도록 부름받아 태어났다.” (전시관 안의 동영상 끝에 나오던 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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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자화자찬 아전인수식 해석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심지어 1907년의 평양 대부흥조차도 제대로 된 회개와 부흥이 아니라 은사주의 난장판이었을 뿐이라는 의혹도 있는 마당에...;;
다만, 이왕 이런 성경적인 배경이 있었는데 처음부터 '없음'이 없고 변개되지 않은 성경이 한반도에 들어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매우 큰 안타까움도 느껴진다.

묘지나 기념관은 일단은 기독교 색깔이 80%이나, 가끔 천주교 쪽 얘기도 나오더라. 묘지에도 천주교 특유의 그 P와 X를 겹쳐 놓은 심벌이 묘비에 새겨진 무덤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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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니, 일부 묘비엔 아예 프리메이슨 컴퍼스와 G 표식까지 있기도 했다. 이 불모지에 와서 복음 전하고 병원과 학교 세우는 등 좋은 일을 하고 간 사람이긴 하나, 저건 정체가 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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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말로만 듣던 호머 헐버트 박사의 묘지를 드디어 처음으로 봤다. 감개무량했다. (프로필을 보면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박사 학위가 있는 거 같지는 않은데, 국내에서는 으레 박사 호칭이 붙더라)
한국과 한글을 워낙 사랑했던 분인지라 한글 학회에서도 완전 띄워 주고 존경하고 추모하는 바로 그분이다.

석 호필 박사--저 사람은 정말로 수의학 박사 맞음--가 대한민국 독립 유공자로서 서울 현충원에 묻혔는데 헐버트가 그보다는 격이 낮아(?) 보이는 이곳에 묻힌 이유는...
6·25가 발발하기도 전에, 그 서울 현충원이 만들어지기 전에 세상을 떠나서 그냥 여기에 묻혔고, 굳이 이장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외국인 중에 대한민국의 영원한 은인 1호인 분이다.

이렇게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용인 산골짜기에 소재한 총신대 신학 대학원 근처에 있는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도 언젠가 한번 가 보고 싶어졌다.
양화진이 순교하고는 상관없이 그냥 외국인 선교사 위주라면, 저기는 실제로 박해를 받은 자국인 크리스천들의 일대기를 다루는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4/03/04 08:32 2014/03/0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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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음모론

2004년 1월 31일 이래로 벌써 10주년이 됐다.
1월 31일은 내가 생일, 침례 받은 날, 정보 올림피아드 대상 받은 날과 더불어 기념하는 4대 인생 축일 중 하나이다.

대학 시절, 난 새마을호를 몇 번 타 보면서 2003년 하반기 무렵쯤부터, 새마을호를 타면 시종착역에서 뭔가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걸 경험적으로 어렴풋이 체득했다. 그 음악이 왠지 인상이 좋아서 인터넷 검색을 했고, 그게 Looking for you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난 서울에 갈 일이 있었고, 바로 저 날 아침 10시 38분에 대전을 출발하여 12시 10분에 무정차로 서울에 도착하는 새마을호 #2(당시)열차를 탔다. 이젠 Looking for you를 들을 준비를 하고 탔는데... 도착 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그 어떤 마약보다도 더한 극한의 엑스터시와 함께 뿅~~~!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Looking for you를 그의 귀에 틀어 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철덕이 되니라. (창 2:7 패러디)

Looking for you는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니라. (히 13:8 패러디)

새로 태어난 철덕으로서 철도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2:2 패러디)

Looking for you는 정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희열과 흥분을 주고 내게 한없는 철덕 정신을 불어넣는다. 기독교의 근간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면, 나의 철덕 정신의 근간은 바로 여느 평범한 여행 경험 같은 게 아니라 Looking for you 음악이다.
한글이 목적을 갖고 따로 인위적으로 창제된 문자인 것만큼이나 내가 철도에 언제 왜 빠져들었는지는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명시가 되어 있다..

철도는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지만 못할 뿐이지 나의 삶에 모든 의욕과 원동력을 불어넣고 어지간한 인간적· 육신적인 종교들보다 더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나에게 철도는 거의 '준종교' 수준이다.

그래서 이 날 주변엔 난 운전을 할 때도 차에서 Looking for you는 말할 것도 없고 Oh Glory Korail을 비롯해 서울 메트로와 서울 도시철도 공사의 사가, 그리고 각종 열차 안내방송을 들으며 지냈다.

갓 철덕이 되었다면 먼저 우리나라 철도 영업거리표와 수도권 전철 노선도를 큰 윤곽이라도 암기하고 열차 시각표, 철도 차량 계보, 주요 철도 정보 사이트(한 우진, MEIS 등)들을 쭈욱 독파해야 할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비관하는 사람들이 자조하는 논조로 에디슨,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 같은 사람이 한국에서 태어나면 무슨 과외 선생, 중국집 알바 등등이 됐을 거라고 얘기를 한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토머스 에디슨이 만약 20세기 말의 대한민국 서울에서 자랐고 열차를 탈 기회가 있었다면 철덕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에는 희망이 없지만 철도에서 희망을 찾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악기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교통수단이 존재할 수 있을까? 자동차, 비행기, 배와는 너무 다르다. 궁금하다.” (서울 지하철 VVVF 구동음)
“어떻게 Looking for you가 흘러나오는 교통수단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게 왜 하필 철도일까?”

라는 의문에서 “왜? 왜? 왜?”를 남발하면서 넘사벽 급의 오덕력과 똘끼와 탐구 정신이 발산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발견해 낸 걸 에디슨이 놓쳤을 리는 없다!!
역사적으로 에디슨은 직류 전기를 좋아했으니, 교류를 쓰는 광역전철보다는 직류를 쓰는 지하철 쪽으로 제 갈 길 잘 찾아갔을 것이다.

뭐 아무튼..
세상이 무슨 그림자 정부에 유대인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예수회의 음모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철도청이 자기 말기 시절에 새마을호 객실에다 시종착 음악으로 Looking for you를 선곡해 넣었던 것에는 분명..

승객을 철도에 중독시켜서 철도의 노예로 만들려는 매우 교묘하고 치밀한 음모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나중에 코레일이 수익 내려고 백 날 철도 이미지 광고 때리고 마케팅 해댄 것보다도, 철도청이 슬그머니 선곡해 넣은 마약 같은 음악 한 곡이 더 폭발적인 효과가 있었다.

세상에 아폴로 계획 음모론이나 백신 음모론, 유대인 세계 정복 음모론, 9·11 테러 자작극 음모론 같은 건 아예 거짓이거나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철도청의 Looking for you 철도 중독 음모론은.. 이렇게 증인이 팔팔하게 살아 있는 이상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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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난 그 음모의 희생자였을 뿐이다...!!
음모론 좋아하는 분들은 그 개연성을 연구해 보는 게 어떨까 싶다.
그러나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그 음모를 통해서도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셨다. 철도사랑 나라사랑, 성경 노선도처럼!

* 결론: 음모론이라는 건 자기 꼴리는 대로 해석하기 나름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상당수 걸러 가며 들어야 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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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4/03/01 19:21 2014/03/0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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