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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0년쯤 전에 도스용으로 만들어졌던 프로그래밍 툴 중에는 자기 언어로 만들어진 예제 프로그램으로 그럴싸한 게임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었다.
QBasic의 경우, 포트리스 내지 Scorched Earth와 비슷한 형태의 턴 기반 슈팅인 '고릴라'가 유명했으며.. 길다란 뱀을 사방으로 적절히 조종하면서 아이템(?)을 먹는 퍼즐인 nibbles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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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을 먹을수록 뱀은 길이가 더 길어지며, 머리가 벽은 물론이고 자기 몸통과도 부딪치지 않도록 조종을 잘 해야 한다. 그리고 레벨이 올라갈수록 뱀의 이동 속도가 더 올라가고 장애물도 더 많아져서 게임 진행이 더 어려워진다.
영문판 원판은 80*25 텍스트 화면에서도 아스키 그래픽 문자를 적절히 이용해서 글자 한 칸을 상하로 쪼개어 세로 공간을 두 배로 늘리는 편법을 구현했다. 하지만 한글판에서 제공된 nibbles는 문자 코드의 한계로 인해 그런 게 다 삭제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소 말고 볼랜드 개발툴에서 제공한 예제 프로그램 중에는 가히 이 분야의 끝판왕이 있었다. 번듯한 체스 게임이 컴퓨터 AI까지 포함해서 소스가 통째로 제공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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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기억하는 분 계신가..?
그런데 이게 bgidemo보다 훨씬 덜 유명하고, 본인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얘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아무 버전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예제는 아니었기 때문이지 싶다.
즉, 보급형인 Turbo가 아니라 기함급인 Borland라는 브랜드가 붙은 C++ 내지 Pascal을 설치하고, Windows 개발 환경에다 자체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까지 다 선택해야 얘를 구경하고 돌려볼 수 있다.

이 예제 프로그램의 이름은 볼랜드에서 개발한 C++용 Windows API 프레임워크의 이름을 딴 OWL Chess였다.
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Turbo Vision 기반의 도스용 체스 예제도 있었다. 체스판과 말을 그래픽 모드가 아니라 텍스트 모드에서 꽤 기괴한 색과 특수문자를 동원해서 표현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내역은 너무 오래돼서 잘 모르겠다.

Windows용 OWL Chess는 이런 식으로 동작했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 16비트 전용이다. 32비트 에디션에도 포함됐다거나, Delphi 및 C++ Builder 같은 후대의 컴포넌트 기반 RAD툴로 리메이크 됐다는 소식은 내가 아는 한 없다. 그러니 얘는 Windows XP에서 실행됐을 때도, 저 스크린샷에서 보다시피 프로그램의 제목 표시줄에 테마가 적용돼 있지 않다.
  • 역시 저 스크린샷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창 크기는 고정 불변이다. 요즘처럼 모니터가 크고 화면 해상도가 높은 시대엔 크기 조절이 안 되는 프로그램은 사용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 키보드 포커스가 딴데로 넘어가서 프로그램이 비활성화 되면 즉시 게임판이 가려지고 pause 모드로 바뀐다.
  • 컴퓨터 AI는 1990년대의 바둑 같은 보드 게임 AI들이 그랬던 것처럼 규칙 기반으로 move를 평가하고, 재귀적으로 수읽기를 하면서 알파-베타 가지치기로 복잡도를 제어하는 식으로 구현됐다. 생각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지만, 멀티스레드라는 것도 없던 시절에 이 동작이 찔끔찔끔 idle time processing만으로 잘 만들어져 있다. 컴퓨터의 생각이 현재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는지가 수시로 현란하게 시각적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지겹지 않다.

하긴, 1990년대 초중반에는 프로그래밍깨나 공부 좀 한 사람들이 도스의 그래픽 모드에서 아기자기한 오목· 장기 게임을 구현해서 PC 통신 자료실에 무료로 공개한 게 많았다. 아, 심지어 화투 치는 고도리...도 그 시절부터 있었다.
또한 그 시절에 유명한 프로그래밍 기술 간행물이던 '비트 프로젝트' 시리즈에도 초창기엔 Borland C++로 개발한 Windows용 장기 게임이 있었다.

지금이야 국내에서 유료 판매까지 되고 있는 장기 게임 프로그램으로는 '장기도사'가 있다. 하지만 그 전에는 '바다장기'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얘가 내 기억이 맞다면 저 원조 OWL Chess의 소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프로그램의 외형과 동작이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또한 바다장기도 검색을 해 보면 16비트스러운 스크린샷밖에 안 나오는 게 더욱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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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서양의 체스와 동양의 장기가 완전히 동일한 게임은 아닐 텐데, 체스 AI를 장기 AI로 룰을 개조하는 건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원판 AI 코드도 move를 기술하고 평가하는 룰 계층만 바꿔 주면 어지간한 보드 게임의 AI에 모두 대응 가능하도록 상당히 추상적이고 깔끔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바다장기는 AI를 '추론 엔진'이라는 용어를 써서 표현했다.

일개 예제 프로그램의 체스 AI가 전문 상업용 AI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어디인가? 지금 저 프로그램의 소스를 다시 볼 수 있으면 보드 게임 AI의 구현과 관련해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얘의 소스만 어디 github에 따로 올라와도 될 텐데 말이다.
본인은 체스는 룰조차도 모르지만.. 그래도 학창 시절에 오목과 스크래블이라는 보드 게임 AI를 연구했던 이력이 있는 사람이어서 이런 쪽에 더욱 흥미를 느낀다.

Posted by 사무엘

2021/03/17 19:35 2021/03/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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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년부터 1767년 사이에 프랑스의 Gevaudan이라고 불리던 지역에서는 정체 모를 시커먼 괴물 맹수가 출현하여 사람을 죽이고 잡아먹어서 주민들이 극심한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총 희생자 수는 피격 210명에 사망자가 무려 113명에 달했다. 단시간에 여러 지역에서 한꺼번에 피해가 보고된 적이 있는 걸 보면, 한 마리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18세기이면 막 황당무계할 정도의 옛날이 아니다. 더구나 유럽에서 나름 수학과 과학이 발달하고 선진국 축에 들던 프랑스에서 저런 괴수가 나타났다는 것은 비록 사진이나 박제 현물이 없어서 아쉽지만, 문헌과 그림이 있고 외국의 동시대 기록을 통해 교차 검증까지 되는 100% 팩트이다. 단순 괴담 도시전설이 절대 아니다.

그럼 그 맹수의 정체는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지금으로서는 그냥 커다란 늑대, 아니면 그냥 하이에나 같은 평범한 개과 부류가 아니었을까 추정되지만.. 당대 사람들은 단순 늑대가 아니라 beast라고 적었다.
덩치가 꽤 컸으며(특히 머리와 입과 이빨) 시커먼(검붉은?) 털에 온몸이 악취로 가득했다고 한다. 박제가 보존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지독한 악취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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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맹수라면 사냥감을 목을 물어 죽였을 텐데, 이놈은 강력한 턱과 이빨로 목이 아니라 말 그대로 대가리를 물어서 깨뜨리는 식으로 공격했으며.. 가축보다도 사람을 일부러 더 공격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정말 평범하지는 않아 보인다.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몬스터에 근접한 건지도..??
그나마 인간이 아닌 짐승인 덕분에, 도구를 쓰거나 뭘 던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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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와서 놈의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 군대까지 동원하여 의심 개체를 모조리 사살하고 토벌한 뒤부터는 다행히 이런 피해가 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건 마치 15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먹다가 결국은 발각되어 처형된 식인귀 소이 빈 패밀리..;;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수많은 양과 소들을 지능적으로 학살하면서 농장주들을 치를 떨게 만들었던 시튼 동물기 이리 왕 로보..
이런 얘기처럼 들린다.

인간이 기관총을 발명해서 자연 먹이 사슬의 최강자로 군림하기 전까지는 동양 서양 할 것 없이 산에서 호랑이나 늑대에게 물려 죽거나 심지어 잡아먹히는 사람도 매년  장난 아니게 많았다. 옛날 어린이들의 3대 재앙 중에 "호환"이 괜히 포함된 게 아니었다. 이를 생각하면 '제보당의 괴수'가 창궐하던 시절과 지금 사이에 참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괴짐승에 대한 온갖 묘사가 적혀 있고 독자가 그걸 읽으면서 짐승의 정체를 추론하는 게.. 무슨 성경에 묘사된 짐승의 묘사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한, 프랑스는 안 그래도 "미녀와 야수" 스토리의 원산지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데, 그 동네에서 정체불명의 야수 괴수에 의한 끔찍한 인명 피해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도 매우 놀랍다.
이 스토리는 이미 2001년에 <늑대의 후예들>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영화화도 됐다. 영화로 만들기 좋은 소재인 것 같다. 한국 영화 <대호>의 프랑스 버전과 비슷하게 대응될까? ㄲㄲ 공포에 질린 주민들, 괴수 잡으러 파견된 사냥꾼, 그리고 괴수를 잡았다고 거짓 보고를 올리면서 비리를 저지르는 부패 정치인 등.. 뭔가 프랑스 식으로 정의를 추구한다는 냄새가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옛날에 아동용 반공물 내지 각종 반공 포스터에서 북괴 공산당을 딱 저런 괴물로 묘사하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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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제보당의 괴수의 이미지와 좀 오버랩 되는 것 같다.;; 물론 저 괴수보다는 작고 귀엽게(?) 그려졌지만.. (1950년대 어느 고딩들의 멸공 북진통일 퍼레이드 모습)

Posted by 사무엘

2021/03/15 19:33 2021/03/1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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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식

(1) 간장이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듯이 기름도 마찬가지이다. 기름은 액체이지만 마신다고(...)는 안 하고 그냥 먹는다고 표현한다.

  • 생으로: 참기름이나 들기름이 여기에 속한다. 음식이 다 완성된 뒤 제일 나중에 소량 넣는다. 생산 단가가 높은 비싼 기름이 쓰인다.
  • 열을 가해서 굽거나 부치기: 계란 프라이, 스팸 구이, 전, 부침개처럼 납작한 냄비에다가 기름을 살짝 두르고 열을 가하는 요리들이다.
  • 열을 가해서 튀기기: 동그랗고 깊은 냄비에다가 기름을 물 붓듯이 쏟아붓는다. 감자 튀김, 통닭, 돈가스 등...

생으로 먹는 기름은 참기름, 들기름 등 각각의 재료가 명칭으로 쓰이지만, 열을 가하는 요리에 다량으로 쓰이는 기름은 그냥 '식용유'라고 퉁쳐져서 불리는 경향이 있다.

(2) 비슷한 음식들

  • 빵 vs 과자: 케이크는 법적으로 빵이 아니라 과자이다. 제빵이 아니라 제과에서 다룬다.
  • 곰탕 vs 설렁탕: 곰탕은 요리법에 따라서 덜 허옇고 맑은 형태인 것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차이점을 정말 잘 모르겠다.
  • 과일 vs 채소(야채): 구분이 의외로 불분명한 구석이 있다. 원래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만이 과일이기 때문에 수박, 토마토 같은 건 과일이 아니다.
  • 국? 찌개? 전골? 스튜?: 수분과 건더기의 밀도로 구분하는 것 같던데.. 럭비와 미식 축구의 차이만큼이나 잘 모르겠다..;;

2. 명칭

(1) 나도 지금까지 생각을 진지하게 안 하고 있었는데.. GMT와 UTC는 마치 서울말 vs 표준어, 유니코드 vs ISO 10646과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후자는 표준으로서의 명칭이고, 전자는 그 자체의 고유한 명칭이라는 차이가 있다.

(2) 어떤 물체가 회전하는 방향을 말할 때 '시계 반향 또는 반시계 방향'이라고 말하는 것이 관례가 돼 있다.
그런데 원탁에서 차례가 돌아가는 방향을 말할 때는 '고스톱 방향'-_-이라는 것도 좀 웃기긴 하지만 준 관례인 것 같다.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반시계 방향인 것이다. 수건돌리기, 육상 경기 등에서 사람이 뭔가 자연스럽다고 인지하고 도는 방향도 다 고스톱 방향이다.

(3) 우리나라의 헌정 체제는 1988년 이래로 지금까지 제6공화국이 30년이 훌쩍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 6공화국은 최초의 민주화 정권인 노 태우 시절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Windows NT라는 명칭도 이와 비슷한 사례인 것 같다. XP, Vista, 7, 8, 그리고 10까지 전부 다 NT 커널 기반이지만.. 좁은 의미만 볼 때는 얘는 초창기 버전인 NT 3 내지 4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4) 엑셀: 자동차 이름이다가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 이름으로..
드론: 저그 일꾼 이름이다가 경량 무인 항공기의 명칭으로..
신천지: PC 통신 기반의 유명 사설BBS의 이름으로 유명하다가 이제는 유명 이단 종파 이름으로..

신천지는 대외적으로 자기 정체를 밝히지 않고 활동을 비밀스럽게 하며, 다른 교회에 침투도 몰래 교묘하게 해 온 편이다. 하지만 한때 코로나 대처를 병신같이 해서 나라를 뒤집어엎어 놓으니 이제는 자기들의 동선과 행적과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스타로 치면 다크 템플러나 클록킹 고스트가 플레이그를 맞아서 드러나 보이는 것과 비슷한 신세가 된 것 같다.

3. 수학 용어

(1) 평균 다음에 기하평균, 조화평균, 코시 슈바르츠 부등식이 나오는 건 일반적인(?) 대수학이고..
평균 다음에 분산과 표준편차 따위가 나오는 건 통계학이다.;;

(2) 유리수와 무리수는 rational에 대한 번역이 좀 이상하게 된 용어이니 ‘리’ 대신 ‘비’를 쓰는 게 더 낫다는 제안이 있다. 부동소수점보다 차라리 유동소수점이 더 나아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양함수와 음함수는 처음에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유리수/무리수보다 더 이상한 번역인 것 같다. explicit/implicit가 아니라 positive/negative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차라리 명함수/암함수가 더 낫다는 제안이 있을 정도로.. 수학 용어에도 이런 식의 우여곡절이 있다.

4. 대중교통 탑승 시의 휴대품

요즘 버스와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에서는 다음과 같이 반드시 소지해야 하는 물건, 휴대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 몇 가지 존재한다.

  • 음식(X): (1) 이대로 당장 먹는 목적이 아닌 단순 식재료 또는, (2) 충분히 포장· 밀봉된 상태가 아닌 음식은 버스에 갖고 탈 수 없다. 전철에서도 일일이 단속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묵인하는 것이고 심지어 일부 역은 승강장에도 음식을 파는 가게까지 있긴 하다만.. 음식을 갖고 열차 안에 들어가는 건 권장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런 코로나 시국에는 더욱 말이다.
  • 마스크(O): 안 쓰면 이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
  • 접지 않은 자전거(△): 이건 버스에서는 무조건 불가능이니 전철에만 해당되는데, 차내에 반입 가능한 시기와 시간대가 노선별로 대동소이한 차이가 있어서 상황이 약간 복잡하다.

5. 사물, 기계

(1) 망원경과 현미경은 뭔가를 확대해서 보여주는 물건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확대하는 대상과 방식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작게 보이는 놈 vs 크기 자체가 절대적으로 너무 작은 놈의 차이이다.
전자 현미경이 있듯이 전파 망원경도 있다. 그리고 망원경에 쌍안경 형태인 것도 있듯이 현미경도 광축이 하나인 놈과 둘인 놈이 모두 존재한다.

(2) 담배를 피우는 형태 내지 매체가 긴 파이프였다가 20세기 후반부터 간단한 종이 궐련으로 바뀐 것을 보면 총의 격발 형태가 후장식에 탄피로 간편하게 바뀐 내력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3) 텐트와 넥타이는 원래 형태도 있고, 더 쉽게 매거나 설치할 수 있는 원터치/자동 버전도 나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4) 처음 가 보려는 식당이 지금 영업 중인지 확인하러 전화를 거는 게.. 서버에다 ping 날리는 것과 무척 비슷하게 느껴진다.

(5) 자동차에 유턴 버튼이 있다면, 컴퓨터에는 컵 받침대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컵 받침대는 2010년대 이후부터는 차차 사라지는 추세이지만 말이다.

6. 교통수단

(1) 풍매화와 충매화, 산란(난생)과 배란(태생) 같은 생물 원리를 보면 기계로 치면 외연기관과 내연기관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회와 구이는 전기 vs 열기관 정도? 민물과 바다는 직류와 교류에 대응하고 말이다.
동력기관이란 게 "왕복엔진 - 터빈 - 제트 엔진 - 로켓 엔진"의 순으로 스케일이 커져 있고, 전기 모터는 왕복엔진에서 가지를 뻗어 나가는 다른 계보 정도 되겠다.

(2) 가스 레인지와 전기 레인지의 관계는 마치 디젤 기관차와 전기 기관차의 관계를 보는 것 같다. 다만, 전기차가 배터리 문제 때문에 실용화가 어렵고 철도 차량에만 머물러 있는 것처럼.. 전기 레인지를 휴대용으로 만드는 건 좀 어려울 듯하다. 전기 전자 공학의 다른 모든 분야가 미친 듯이 발전해 왔지만 유독 전원· 전지 분야가 그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3) 우주의 항성과 행성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기관차와 객차가 같이 떠오르는 건..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궤도만 해도 orbit과 railway가 모두 대응하는 게 굉장히 절묘하다.

(4) 스포츠계에서 돔구장과, 교통에서 해저 터널(제주도 같은..)은 서로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위상의 떡밥인 것 같다. 날씨로 인한 단절--우천 취소, 결항-- 없이 안정된 서비스를 가능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건설과 유지 비용이 살인적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5) 해수욕장 바다에는 이안류, 겨울철 도로에는 블랙아이스, 공중에는 윈드시어(난기류)가 각각 거기 있는 사람이나 교통수단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6) 고정익 비행기가 엔진이 갑자기 꺼져서 활강과 함께 서서히 추락하는 것, 배가 물이 새면서 서서히 침몰하는 것, 전화기가 충전이 안 되는 채로 시한부 인생이 돼 있는 것.. 다들 참 비슷한 심상이 느껴진다.

(7) 난 지금까지 연애는 휴스 H-4 허큘리스가 하늘을 날았던 것만치,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나는 것만치, 한국인 노벨 상 수상자의 존재감만치 해 봤다.

Posted by 사무엘

2021/01/26 19:34 2021/01/2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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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경주

‘달리기’라는 동작으로 대표되는 육상 경주는 공이나 다른 도구 같은 게 일체 필요하지 않고 그냥 몸으로 달리기만 하면 되는 매우 단순하고 원초적인 스포츠이다.
성경에 등장하며(전 9:11) 심지어 신앙 생활에 직접 비유되기도 한 유일한 스포츠이다(고전 9:24, 히 12:1).

이 바닥은 축구처럼 태생적인 피지컬에 의존하는 면모가 강하다. 특히 순발력이 생명인 단거리로 갈수록 말이다.
그만큼 선수의 은퇴 연령도 낮은 편이다. 그리고 농구와 더불어 왠지 흑형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100 내지 200m짜리 단거리에서는 크라우칭(엎드린) 자세로 출발을 하며, 뒷바람이 2m/s 이상으로 불 때 수립된 기록은 인정되지 않는다. 일반 여객기가 제트 기류를 탄 덕분에 잠시 음속을 넘은 것 갖고 초음속 비행이라고 인정되는 게 아니듯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은 굉장한 고지대에서 열렸는데, 이것조차도 육상의 기록에 영향을 끼쳤다. 공기 저항이 작아져서 단거리에서는 호재였지만 장거리에서는 산소 부족 때문에 악재였다고 한다.

400m 이상 장거리 내지 마라톤으로 가면 지구력이 중요하지 스타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선수들이 그냥 선 채로 떼거지로(?) 설렁설렁 출발한다. 특히 마라톤은 길이가 너무 길고 개최지마다 코스의 지형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대회의 기록을 비교하는 게 원래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비교하자면 마라톤 세계 기록은 2시간 1분~2분대로 좁혀졌고 2시간대가 간당간당하다.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는 공식 기록이 2018년 2시간 1분 39초였는데(독일 베를린 마라톤),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2019년 1시간 59분 40초를 수립했다고 한다.
참고로 마라톤 코스는 높이 변화가 1km당 1m를 넘지 않는 평지여야 한다는 조건이 국제 육상 연맹에 의해 규정돼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생 동갑내기 마라토너인 황 영조와 이 봉주 이후로 21세기부터는 토종 육상의 명맥이 끊긴 상황이다. 그런데 어째 공교롭게도 옛날 손 기정과 남 승룡도 1912년생 동갑이다.

얼마나 재능이 뛰어나고 거기에다 살인적인 노력이 더해졌으면.. 일제조차도 내키지는 않지만 자국민 대신 조선인을 국대로 선발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이들이 어째 그 어렵고 힘든 마라톤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나란히 따 버렸을까? 너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손 기정은 나름 히틀러를 가까이에서 대면하고 악수도 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 참고: 단거리 세계 기록

마라톤의 반대편 극단이라 할 수 있는 100미터와 200미터 달리기의 세계 최고 기록은.. 2010년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육상의 천재.. 자메이카 출신의 ‘우사인 볼트’(1986-)가 수립한 9.58초(2009)와 19.19초(2009)이다.

그럼 남자가 아닌 여자는..?
역시 흑인이지만 국적은 미국 토박이인 ‘플로렌스 조이너’(1959-1998)가 수립한 10.49초(1988)와 21.34초(1988)이다.
이 사람의 100m 신기록은 미국 내부의 올림픽 국대 선발전에서 나왔으며, 200m 신기록은 서울 올림픽에서 나왔다.

먼저 남자 얘기부터 하자면, 우사인 볼트는 뭐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세나 식사나 의상을 별로 튜닝 하지도 않고 설렁설렁 대충 뛰어도 금메달에 신기록이 그냥 제조되어 나왔다. 이건 다른 선수들이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격차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거 약의 힘이 아닌지 수상하다고 심판진이 눈에 불을 켜고 소변 검사 피 검사 별별 검사를 다 했지만.. 우사인 볼트에게서는 그 어떤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남자쪽과 달리.. 여자 쪽은 비록 공식적으로 약물이 적발되지는 않았지만 약의 힘이 아니었나 의심을 받고 있다.
일단 기록이 30년이 넘게 깨지지 못했으며, 시간이 무려 서울 올림픽 시절에서 멈춰 있다.

저 선수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정도까지 활동할 법도 했지만 88년을 끝으로 석연찮게 은퇴했으며, 40을 못 넘긴 젊은 나이에 석연찮은 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도 약물 후유증 때문이 아니었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 때 짙은 화장과 치장을 하고 나온 건 약물로 인한 신체 변화를 감추려는 게 아니었나 싶고.. 그 당시 같이 뛰었던 외국의 경쟁자 선수들은 이 정도면 쟤는 약을 빤 게 틀림없다고 증언했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호르몬의 왜곡으로 인해 수염이 나려는 것까지 감지됐다는데..;;

그런데 우리나라는 서울 올림픽 당시, 남자 육상에서 벤 존슨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복용을 적발해서 크게 한 건 터뜨렸던 반면, 여자 육상 쪽은 별 말 없이 넘어갔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26 08:33 2020/12/2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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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여 년쯤 전엔 당시 우리나라 국방부 장관이었던 분이 간담회를 하던 중에 “(...) 지금 아프리카를 보세요. 거기는 그냥 밀림 자연뿐이고 무식한 흑인들이나 뛰어다니는 곳입니다”라는 말을 내뱉는 바람에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다.
아 물론, 저 사람은 군인과 공직자로서는 아주 유능하고 훌륭하고 청렴하기까지 한 분이었다. 그리고 저게 솔직히 말하면 우리 같은 사람이 흔히 갖기 쉬운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기도 하다.

심지어 소싯절에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해서 1950년대에 노벨 상까지 받았던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도.. 2007년경엔 “흑인은 유전자 차원에서 백인보다 지능이 떨어짐” 이런 말을 버젓이 해서 세계적으로 물의를 빚었으며, 늘그막의 이미지를 다 구긴 바 있다.

지능까지는 모르겠지만 아프리카 흑인들이 예나 지금이나 처지가 대체로 기구한 건 사실이어 보인다. 노예로 유난히 많이 팔려간 내력이 있으며, 2차 대전 이후에 그나마 유럽 강대국들로부터 해방되고 독립한 뒤에도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내전 벌이면서 여전히 못 사는 경우가 많다.

저 동네는 딱히 이슬람· 공산주의· 파시즘 따위가 적극 유입되지 않았는데도 과거에 이디 아민 같은 미친 독재자가 떡하니 나왔다. 쟤가 무슨 폴 포트나 히틀러나 김 일성, 마오처럼 무슨 이념에 사로잡혀서 맛이 가서 똘끼 학살극을 벌인 것 같지는 않다.

소말리아니 르완다니 하는 곳이야 오늘날까지도 상황이 어떤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다. 모잠비크와 짐바브웨는 완전히 경제 파탄 상태이며, 지금 우간다는 대통령이 동성애 반대하는 기독교인이라고는 하지만 뭔가 다른 방면으로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사실, 아프리카 국가들은 토속 신앙을 제외하면 이슬람이나 가톨릭이 아니라 의외로 기독교가 강세이다. 정확히 무슨 교파인지는 모르겠지만..)

19~20세기에는 유럽인들이 제국주의 기류에 편승해서 흑인을 미개하고 열등한 인종으로 취급하고 식민지 착취를 자행하긴 했다. 유럽에서 한편으로는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고 학교와 병원을 세웠으면서, 한편으로는 정치인· 기업인과 군인들이 저런 짓을 한 게 참 아이러니이다. 인간이 하는 일이 100% 다 선하거나 100% 다 악한 건 아니었을 테니..
그 중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는 고무 채취 할당량을 못 채우면 콩고 원주민들의 손목을 자르는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다. 손목 다음엔 당연히 목을 쳤으며, 급기야는 마을 주민을 몽땅 몰살했다.

영국 같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조차 그건 너무하다고 국제적으로 규탄하고 뜯어말렸을 정도였다. 도둑질 하다가 잡힌 죄인의 손목을 자르는 것쯤은 아주 양반으로 보일 지경이니... 벨기에나 일본처럼 제국주의 대열에 뒤늦게 뛰어든 나라들이 식민 통치 노하우가 없기도 하고 의욕만 넘쳐서 피지배 주민들을 더 잔혹하게 다스린 편이었다.

다만, 유럽 백인들이 처음부터 아프리카에서 저런 깽판을 쳤던 것은 아니다. 저건 항생제와 기관총이 발명된 뒤부터 가능해진 일이다.
그 전 18~19세기의 흑인 노예는 나름 거래를 해서 ‘사 온’ 것이었다. 그때는 총칼을 앞세워서 아프리카 땅 자체를 식민지화한 게 아니라, 노예를 사서 아프리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 노예들은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무슨 테이큰 찍듯이 악마 백인들에게 납치 인신매매 당해서 노예로 팔린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본토에서도 이미 노예 신세이다가 유럽인에게 팔렸을 뿐이다. 마치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켰지만.. 쟤들도 주변의 이웃 부족들을 식민지로 부려먹고 심지어 인신공양까지 시켜 온 것처럼 말이다. 오로지 유럽 백인 한 놈만 절대악인 게 아니다.

아프리카 대륙 내부의 흑인 부족들끼리도 아웅다웅 싸움이 있었으며, 진 부족은 이긴 부족의 노예로 전락했다. 이긴 부족은 그 노예를 유럽의 무역상들에게 팔고 백인들로부터 총이나 다른 물건을 샀다. 노예들은 유럽으로도 팔려가고 미국으로도 끌려갔다.

물론 처음부터 신분이 그랬다고 해서 유럽 백인이 노예들에게 저지른 가혹한 인권 유린이 정당화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 노예들을 배에다가 싣고 수송한 방식부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끔찍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의 작사자 존 뉴턴이 바로 이런 노예 무역선의 선장으로 재직하다가 본업을 때려치우고 노예 제도 반대  소신을 지닌 성공회 성직자로 전향했다. 저 찬송시가 써진 게 1770년대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 과거의 나치 유대인 수용소 vs 노예선)

한편, 조선은 흑인이 아니라 자국민 노비가 말기로 갈수록 좀 많아졌던 것 같다.;; 도대체 그냥 쌍놈 천민이랑 노비의 경계와 차이는 무엇인지, 단순 종이나 머슴은 무엇인지 이 시점에서 용어를 좀 정리하고 싶어진다.
뭐, 이웃 일본도 근대화 이전에 영주나 무사 같은 높으신 분들 말고 쌍것들의 생활이 참혹한 것은 변함없었다. 세금 부담이 너무 심해서 오죽했으면 낳았던 아이를 도로 죽여 버릴 정도였다(마비키).

훗날 일제가 조선의 주권을 빼앗은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물론 나쁜짓이었지만, 최소한 일제가 고종 휘하에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던 조선인들의 평안과 안녕을 파괴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더 빼앗을 평안과 안녕 자체가 별로 없던 지경이었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그리고 현대로 와서 일본군 위안부의 경우.. 일본놈들이 알바니아 트로포야 출신의 마르코라도 된 듯이 여자들을 마구잡이로 일방적으로 강제 납치한 게 아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당장 조선인들끼리도 여자 인권은 가히 헬이었으며, 같은 동족 포주가 그 소녀들에게 일자리니 학업이니 알선해 주겠다고 꼬드기면서 사람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 놓곤 했다. 서양의 흑인 노예 무역이 돌아간 것과 비슷하게 돌아갔다는 뜻이다.

이 쯤에서 본질적인 의문을 하나 던져 본다. 인류 역사상 노예라는 건 어쩌다가 왜 존재하게 된 것일까?
단순히 사회 조직에서 하는 일의 지위가 갑이 아니라 을인 것만으로 노예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노예는 거주지 이동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가 현저히 침해받고 사생활과 사유 재산이 심각하게 제약받으며, 인생의 대부분을 남이 시키는 일만(그것도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 위주로) 해야 하면서 시세 대비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보수를 받는 비참한 사람을 일컫는다.

게다가 자기 신분이 자녀에게 세습까지 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다. 이런...

그 반면, 오늘날은 세상에 그 어떤 막장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그 일을 언제라도 때려치우고 나갈 수는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금지돼 있고 목숨을 걸고 탈출해야 할 정도라면 노예 지수는 수직 상승한다. 북한 주민들이 비참한 노예 상태에 있으며 해방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기본적인 자유마저 박탈당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목숨 부지하기 위해 다른 인간에게 무조건적으로 굴종하게 된 것은 먼 옛날부터 있었던 일이다. 학교 안에 불량 학생 양아치와 호구 뺭셔틀이 있는 것만큼이나..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또한, 지금처럼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물자가 풍부해지고 선조들의 많은 시행착오 역사 자료가 쌓이기 전.. 옛날엔 집안을 다 말아먹는 사고를 쳐서 나가 죽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답이 없을 때.. "목숨만은 살려 준다. 하지만 너는 이제 평생 내 밑에서 일하며 죄값을 갚아라" 이것만으로도 주종 관계는 아주 간단하게 형성됐다. 전쟁에서 졌다거나, 실수로 불을 내서 마을 전체를 태워먹었거나..

예수님이 사시던 로마 제국 시절에야 당연히 노예가 있었다. 일부 용감한 노예가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다 붙잡히고 주동자는 예수님처럼 십자가형을 당해 죽었다. 먼 옛날에 한국사에서도 '만적의 난'이라는 미수 사건이 있었고 말이다.
중세 봉건 시절에는 '농노'라고 전통적인 노예보다는 약간 권한이 생겼지만, 여전히 지주에게 속박된 반쯤 노예이면서 국가에 대한 의무도 져야 하는 이상한 중간 신분도 있었다.

물론 세상일이 무작정 노예만 총칼로 위협하면서 억지로 갈아넣는다고 다 이뤄지는 건 아니다. 벤허 시절의 갤리선 노 젓기는 일자무식 노예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어렵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전문적인 자유민 노꾼이 담당했다고 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도 노예가 아니라 자유 평민이 고대치고는 꽤 후한 보수와 권한을 약속받고서 참여한 거라고 한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집트에 노예 운용이 아예 없었다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피라미드가 다 지어졌으니 피라미드의 내부 구조를 아는 너희 일꾼들은 이제 죽어 줘야겠다" 괴담도 내가 알기로 괴담이 아니라 사실이었다고 함)

노예· 죄수를 무작정 선원이나 군인이나 공작원으로 양성하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로 인해 영화적 과장이 아주 많이 들어가며 현실성이 별로 없다. 우리야 조선의 청년들을 강제 징용한 일제를 나쁜놈이라고 욕하겠지만, 놈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상황이 다급해도 조선인들에게 안심하고 믿고 총을 쥐어 주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백인들이 신대륙 식민지를 개척하고 거기 원주민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만든 것은 앞서 언급했던 아프리카 개척보다 훨씬 전의 일이다. 그때는 기관총이 아닌 대포와 화승총만으로 원주민들의 냉병기를 꺾었던 때였다.
아프리카는 뭐랄까 유라시아 같은 구대륙도 아니고, 아메리카나 오세아니아 같은 신대륙도 아니면서 딱히 세계사에 등장하는 일도 별로 없고 존재감이 참 거시기하다.

어디까지가 단순한 종이다가 어디부터가 노비, 노예의 범주에 드는지는 판단 기준이 다소 주관적인 구석이 있다.
다만, 성경은 고대 사회에 존재하는 종(servant)이라는 신분 자체는 인정한다. slave 노예가 아니라 servant이다. 넓게 보면 현대 사회에서 월급 받는 피고용자 직원도 종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신약에서 말하는 "너희 주인에게 순종하라" 하는 문맥에서 말이다. 노예는 계 18:13 같은 데서나 극히 드물게 등장한다.

아프리카부터 시작해서 노예라는 주제로 여러 시대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다루게 됐다.
사람의 신분과 계층의 차이는 결국 죄 때문에(일진 양아치), 혹은 반대로 죄를 방지하고 막기 위해(공권력), 또 죄값을 갚기 위해 같은 여러 이유 때문에 존재하게 됐다. 물론 그 지위를 이용해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유린하는 경우도 당연히 왕창 많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렇게 인간 사회에서 보편적인 현상을 근거로 인종의 우열을 논한다거나, 한쪽만 절대적인 선 내지 절대적인 악이라고 몰아세우는 건 부질없는 짓이라 하겠다. 현대 사회는 과거의 선조들이 겪은 시행착오들을 많이 개선해서 사회 구조와 삶의 양상을 많이 바꿔 놓긴 했지만, 양상만 바뀌었지 또 다른 형태의 노예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 갈다.
그리고 글을 맺으면서 생각해 봐도 아프리카는 그 잠재성에 비해 상황이 너무 안습한 지경인 건 틀림없다. =_=;;

Posted by 사무엘

2020/12/16 08:35 2020/12/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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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처럼 컴퓨터의 문자 인코딩이 유니코드로 천하통일이 되기 전엔 국내에서는 2바이트 완성형과 조합형 한글 코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완성형은 94*94 격자 모양의 단순하고 국제 규격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인코딩돼 있었지만 한글의 구성 원리를 무시하고 한글을 난도질했다는 비판을 떠안고 있었다.

완성형은 “한글 vs 비한글”을 구분하고 처리하는 데 유리했다.
그에 비해 민간에서는 “한글 글자 vs 낱자”의 처리가 더 용이한 조합형이 훨씬 더 대중적으로 쓰였다. 그도 그럴 것이 640KB 기본 메모리를 1KB라도 더 확보하려고 목숨 걸던 시절, 메모리 모델이 어떻고 far 포인터가 어떻고 이러던 시절에.. 한글 처리를 위해서 2350자 테이블을 내장하고 다닌다는 건 성능과 효율로나 민족 정서(?)로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명목상 국가 표준은 완성형이었기 때문에 마소 역시 도스와 Windows의 한글판을 전적으로 완성형 기반으로 만들었다. 완성형은 두벌식과 마찬가지로 그 시절에 소프트웨의 한글판을 필요 이상으로 더 무겁게 만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다만, 이건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표준을 이상하게 만든 게 잘못이지 마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Windows 3.1이야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글 IME로 똠, 펲 같은 글자가 입력되지 않았으며, 또ㅁ, 페ㅍ이라고 글자가 풀어졌다. ‘썅’은 2350자에 속해 있는데 중간의 ‘쌰’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썅’까지 덩달아 입력할 수 없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쌰’를 입력하면 ‘ㅆㅑ’라고 잘 갈라지는데, 두벌식에서 ‘있’ 다음에 ㅑ를 입력하면 ‘이ㅆㅑ’가  되지 않고 뭔가 올바른 동작이 나오지 않았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이런 것들이 한글 입력기, 특히 특정 문자 입력 제한이 걸린 두벌식 입력 방식을 구현할 때 고려해야 하는 복병이다. 날개셋이야 이 분야 전문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도 다 정상적으로 처리해 준다.

그럼 차기 버전인 Windows 95는 상황이 어땠을까?
Windows 95는 오늘날 세계 표준 문자 집합 겸 인코딩인 유니코드, 특히 유니코드 중에서도 버전 2.0이 한창 제정되고 있던 와중에 개발되고 먼저 출시되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 년 전 유니코드 1.x 시절에는 완성형 2350자만 그대로 제출하는 삽질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유니코드 2.0에서 문자 체계를 싹 재정비하는 인류 역사상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을 때.. 한글을 11172자 모두 순서대로 등록하려는 과감한, 역사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래야 글자 코드값으로 자모 정보를 쉽게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스타에다 비유하자면 종족 밸런스를 앞으로 다시는 바꾸지 않는 1.08 패치와 비슷한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세계를 설득해야 했다.
다른 나라들은(특히 일본과 중국도) BMP 영역의 1/5 가까이를.. 그것도 사용자가 1억도 채 안 되는 언어의 고유 문자로 싹 도배하려는 한국을 고깝게 보고 이의를 제기했다.
유니코드 회의에서 누가 발언권을 얻으려면 한화로 억대에 달하는 회원 등록비도 많이 내야 하는데, 이런 비용을 한컴 같은 기업에서 많이 후원해 줬다. 저 때는 삼성전자도 훈민정음 워드 같은 프로그램이나 간간이 만들었지, 지금 정도로 IT계에 세계구급 영향을 행사하는 기업이 아니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이런 우여곡절 끝에 한글 11172자는 1996년 7월, 유니코드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서 성공적으로 등재되었다. 이거 내막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도 1981년 서울 올림픽 바덴바덴의 기적에 맞먹는 외교 승리라고 여기고 칭송한다. 올림픽은 52:27의 압승이라도 했지만 11172자 등재는 찬성이 반대를 한 표 차이로 정말 간신히 꺾은 거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Windows 95는 유니코드 2.0이 정식으로 발표되기 미묘하게 약간 전에 출시되었다는 것이다. 한글판도 1995년 11월 말에 출시됐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글꼴과 코드 변환 테이블은 이미 유니코드 2.0을 기준으로 맞춰져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유니코드 2.0에다가 한글을 2350자가 아니라 11172자를 몽땅 집어넣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했다. 유니코드가 아닌 기존 2바이트 인코딩 중에도 한글 11172자 표현이 가능한 놈이 있어야 했다.
그럼 Windows가 처음부터 조합형 코드로 개발됐으면 좋았겠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그리 되지 못했고.. 결국은 기존 완성형에다가 지저분한 독자적인 편법을 동원해서 비완성형 한글을 끼워넣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그 이름도 유명한 확장완성형, 일명 CP949 인코딩이다.
KS X 1001은 한글 2350자, 한자 4888자 등을 포함하는 그 2바이트 완성형 문자 집합/코드이고, KS X 1003은 역슬래시를 원화로 대체한 그 한국 특유의 1바이트 영문/숫자 아스키 문자 집합이다. 이 둘을 합쳐서 EUC-KR이라고 부르고, 여기에다가 확장완성형까지 추가하면 CP949가 된다. 집합 관계를 정리하자면 (KS X 1001 ∪ KS X 1003) = EUC-KR ⊂ CP949이다.

(참고: KS X 1002는 완성형 형태로 현대 한글, 옛한글, 한자를 추가로 정의하는 규격이다. 하지만 KS X 1001과 병용하는 인코딩 규칙이 제정되지 않아서 컴퓨터에서 실제로 쓰인 적은 없는 캐잉여이다. 얘는 애초에 유니코드 1.1에다가 글자를 추가로 등록할 근거를 마련하려고 어거지로 만든 문자 집합에 지나지 않는데, 이제는 유니코드 1.1 자체도 오래 전에 흑역사가 됐으니 더욱 의미와 존재감이 없다.)

이렇듯, 확장완성형이라는 건.. 비록 처음에 첫단추를 잘못 끼우긴 했지만 뒤늦게 유니코드 2.0에라도 한글을 11172자를 순서대로 다 집어넣기 위해서 도입한 2바이트용 타협 절충안이었다. 마소에서는 한국 편을 들면서 도와 주면 도와 줬지, 최소한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 건 절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당시에는 마소에서 완성형에다가 그보다 더한 확장완성형까지 집어넣어서 한글을 난도질한다고 엄청난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한컴에서도 아래아한글 도움말 및 제품 광고에서 이 괴담을 어느 정도 활용하고 부추겼다.

왜 한글을 난도질 하느냐 하면, 확장완성형은 이미 2350가 조밀하게 순서대로 배치된 건 그대로 유지하면서 나머지 틈새에다가 비완성형 8822자를 집어넣는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겉보기로는 11172자가 모두 배당되지만 문자의 코드값 순서가 그 문자의 사전상의 배열 순서와 일치하지 않게 된다. 사전 순 정렬을 하려면 코드값을 별도로 보정을 해야 한다.

물론 코드값만으로 문자를 정렬할 수 있는 게 가능하지 않은 것보다는 더 직관적이고 깔끔하고 낫다. 하지만 오늘날 유니코드는 시간 차를 두고 뜬금없이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추가된 문자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특히 한자~!!), 거시적으로 봤을 때 코드값만으로 문자들을 정렬하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고 무의미해져 있다.

뭐, 이것도 논란이 다 끝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니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 2바이트 한글 코드만 단독으로 생각하던 시절에 확장완성형이 답답하고 지저분하게 보이는 것도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그리고 마소는 훗날 IMF 때 경영난에 빠진 한컴에다가 돈줄을 대 주는 대신 아래아한글의 개발을 중단시키려 했던 바 있다. 그러니 확장완성형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 실드를 감안하더라도 마소에 대한 국민 감정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 시절 Windows 95는 유니코드 2.0의 정식 도입을 선도하면서 온전한 한글 11172자의 입출력이 가능해지려는 과도기에 연결 고리 역할을 했다.
참고로 95 말고 Windows NT는 도스 짬뽕이던 기존 Windows와 달리, 1993년 첫 버전부터 2바이트 wide char 유니코드 기반이었다. 얘도 유니코드 2.0이 정착할 무렵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정식 한글판이 나올 수 있었다. 3.51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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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 NT 3.5 한글판의 ‘베타 버전’ 평가판. 이건 Windows NT의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한글판으로, 정말 엄청난 희귀 레어템이다. 마치 Windows 2.x의 듣보잡 한글판처럼 말이다.

저 화면에서 한글 글꼴은 기존 Windows 3.1의 돋움체(큐닉스 제작) 8포인트이다. 하지만 영문은 정체를 모르겠다. W와 i의 폭이 다른 가변폭인 걸 보니 같은 돋움체의 영문은 아닌데, Arial은 물론이고 심지어 후대에 등장한 Tahoma나 Verdana까지 그 어떤 영문 글꼴도 저 크기에서 9나 5의 획이 저렇게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저 영문 모양이 내가 보기에 전혀 낯설지는 않다.
마소에서 개발한 1990년대 옛날 프로그램의 스플래시 화면 내지 About 대화상자에서 Copyright 문구가 저런 스타일의 글꼴로 표시된 걸 본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한 정체는 모르겠다.

내 기억이 맞다면 Windows NT 3.51의 정식 한글판은 3.51의 특성상 Windows 3.1과 같은 구형 UI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한글 글꼴은 이미 Windows 95 한글판과 동일한 한양 시스템 글꼴로 갈아탔다.
Windows NT의 역사에서 유니코드 1.1 방식 한글이 존재했던 적은 내가 아는 한 없다. 만에 하나 있다면 그건 조합형 코드를 잠깐 썼었다고 전해지는 MS-DOS의 초창기 한글판만큼이나 완전 전설 속에나 존재하지 싶다.

이렇게 95건 NT건 온전한 11172자짜리 유니코드 2.0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95의 한글 IME를 써 보면.. 구버전인 Windows 3.1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2350자밖에 입력할 수 없었다. 다만, “있+ㅑ”일 때는 ㅆ이 뒷글자로 넘어가지 않도록 로직이 약간 개선돼 있었다.;; ㅎㅎ

사실, Windows 95의 한글 IME는 확장완성형을 기반으로 11172자를 모두 입력하는 기능도 구현은 돼 있었다. 하지만 그걸 기본적으로는 봉인해 놓았으며, 사용 여부를 별도의 유틸리티를 통해 따로 지정할 수 있었다!
바로, C:\Windows 디렉터리에 있는 iso10646.exe라는 30KB짜리 자그마한 프로그램이다. 역시 괜히 과도기였던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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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UI에는 유니코드니 완성형이니 같은 말은 없고 그냥 "ISO 10646 사용 여부"가 전부였다. 유니코드의 문자 집합을 가리키는 표준 규격 명칭이 ISO 10646이기 때문이다.
전체 사용 아니면 특정 프로그램에서만 사용.. 이런 걸 지정해 주면 타 프로그램에서 똠쌰 등등의 글자를 입력할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Windows용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도스용 mshbios의 한글 입력기까지 이 설정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설정값을 레지스트리가 아니라 파일에다 저장했던가 보다. 아니면 도스에서도 레지스트리 파일에 저수준으로 접근을 했던지..

확장 한자의 사용 여부를 옵션으로 지정하는 것처럼 2350/11172자 입력 범위도 그냥 IME의 옵션으로 지정하면 됐을 것 같은데 굳이 별도로.. 제대로 문서화되지도 않은 프로그램에다 저렇게 꽁꽁 숨겨 놨다.
부작용을 어지간히도 의식했는지 각종 프로그램별로 입력 범위를 달리 지정할 수 있게 신경을 썼다. 즉, 여느 평범한 IME 옵션이 아니라.. 날개셋으로 치면 응용 프로그램별 동작 보정 옵션과 비슷한 걸로 취급한 것이다.

훗날 MS Office 97이 나왔고.. 그 중 Word는 단품으로 따로 팔기도 했다.
마소 역시 한컴 진영의 조합형 한글 마케팅을 많이 의식했는지, 신문 광고에서 조그맣게.. "우리 마소 제품에서도 똠방각하 펩시콜라 찦차를 입력할 수 있습니다." 문구와 함께, iso10646 프로그램 사용법을 소개해 놓기도 했었다.

본인은 학창 시절에 그 광고를 직접 본 기억이 있다.
지금도 구글에서 iso10646.exe 라고 검색해 보면 옛날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마소의 전략은.. 요런 프로그램을 몰래 집어넣은 뒤, 확장완성형이 계속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Windows 95는 그딴 거 지원한 적 없다고 발뺌 하면서 2350자 기존 완성형에만 머무르면 될 것이고,
한글을 2350자밖에 입력 못 한다고 욕먹는 게 더 크면, 저 비장의 프로그램을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내려는 속셈이었던 것 같다. 쉽게 말해 간보기 전략이다.

그러다가 Windows 98부터는 이런 간보기가 없어지고 그냥 모든 프로그램에서 확장완성형까지 활용한 11172자 한글 입력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 Office 2000과 함께 옛한글 입력기가 도입됐을 때는 이제 마소의 제품이 옛한글의 표현 능력도 아래아한글 97과 한컴 2바이트 코드를 추월하게 됐다.

이상이다. “라떼는 말이야” 같은 얘기가 좀 길어졌다.. ^^
25년 전, Windows 3.1에서 95로 넘어간 것은 정말 엄청난 격변이었다. 하지만 Windows 95와 98 사이에도 컴퓨터 환경은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가정용 PC의 평균 램 용량이 4~16MB대이던 것이 그 짧은 기간 동안 32~128MB로 순식간에 뻥튀기 됐다. PC 규격도 이것저것 많이 바뀌고.. 또 무엇보다도 이 사이에 유니코드 2.0이 제정되었다. 운영체제 차원에서 UTF-8 인코딩이 직접 지원되기 시작한 최초의 Windows가 바로 98이다.

Windows에서 완성형 2350자에 구애받지 않고 한글 입력이 가능해지기까지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다.
Windows 98은 현대 한글이 완전히 해금됐고, 지난 Windows 8 (2012)부터는 옛한글까지 해금됐으니 참 격세지감이다. 그 사이의 XP는 입력 프로토콜이 IME에서 TSF로 넘어간 과도기였고 말이다.

그런데 정작 옛한글 말뭉치를 엄청나게 많이 구축한 21세기 세종 계획은 이것보다 미묘하게 일찍 진행된 바람에 비표준 한양PUA 방식으로 결과물을 산출해 버렸으니 타이밍이 안습했던 구석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11/09 08:35 2020/11/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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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에게 30여 년 전의 어린 시절부터 친숙했던 비디오 게임 장르는 액션/아케이드 계열이다. 사람 주인공을 화살표 키로 움직이고, 장애물을 직접 뛰어넘고 적을 공격하는 형태 말이다.
그것 말고 다른 장르는 생소했다. 그나마 전략 시뮬은 듄, 워크래프트, 스타 때문에 알게 됐다. 그 전에 삼국지 같은 건 실시간이 아니라 턴 기반 전략 시뮬이었던가 보다.

롤플레잉은 내가 즐겨 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친구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알음알음 접했다. “RPG 쯔꾸르” 같은 툴로 자기가 직접 시나리오를 짜서 게임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툴은 정교한 트리거 편집 기능을 갖춘 스타 캠페인 에디터보다도 customize의 자유도가 더 높고, 그렇다고 아예 코딩을 직접 해야 하는 게임 엔진 SDK보다는 폭이 좁은 수준인 것 같다.

그럼.. ‘어드벤처’라는 장르는? 잘 모르겠다. 남이 하는 것도 거의 못 봤다. 그 이름도 유명한 “인디아나 존스”, “원숭이 섬의 비밀”이 이 장르라고 하나.. 본인은 1990년대 컴퓨터 잡지를 통해 이름만 들어 봤지 해당 작품을 당대에 직접 구경해 보지 못했다.
다만, 본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건 1992년 말, 초딩 시절 모 컴퓨터 잡지에서 봤던 “어둠의 씨앗”(Dark Seed)라고 640*350 EGA에서 실행됐던 독특한 게임이다.

요런 게임은 주인공을 화살표 키를 누르는 게 아니라 마우스로 화면에 표시된 목적지를 찍어서 이동시킨다. 실시간 3D 그래픽이란 게 없던 관계로, 화면은 그냥 방 단위로 바뀌며, 모든 그래픽은 그냥 도트 스프라이트이다.
하지만 방 안에서 원근법이 구현돼 있기 때문에 카메라에서 멀어지면 주인공의 겉보기 크기도 작아진다. 게임이 실제로 돌아가는 모습은 먼 훗날 유튜브를 통해서나 구경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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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그로부터 3년쯤 뒤인 1995년에는 ‘시에라 온라인’이라는 게임 개발사에서 Phantasmagoria(판타즈마고리아)라고.. 읽기도 힘들어 보이는 대작 어드벤처 게임을 내놓았다. 장르는 호러..;;

귀신 나오는 haunted house에 주인공이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한 화면에서 주인공을 클릭 해서 이동시키는 것 등 전반적인 UI와 느낌은 어둠의 씨앗과 아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얘는 온통 인게임 시네마틱으로 가득하며, 주인공 이동도 전~부 블루스크린 치고 영화 스튜디오에서 실사 촬영한 스프라이트로 구현했다..;; BGM 중에는 합창단 코러스도 있고.. 그야말로 반쯤 영화, 반쯤 게임을 표방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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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인게임 컷씬쯤은 몽땅 3D 엔진으로 처리했겠지만 저 때는 그게 가능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록 실사 추출 스프라이트라고는 하지만 겨우 256색 저해상도 비디오에서 많은 걸 바랄 수는 없다. 그저 그런 화질에다 배경과 스프라이트가 제대로 융합되지 못하고 붕 뜬다. ㅎㅎ

압축도 빡세게 하기 어려웠는지 저 게임은 7개 챕터(레벨)에 서너 시간 남짓한 플레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CD 7장..;; 분량이었다. 디스켓을 갈아 끼우듯이 CD를 갈아 끼워야 했다.
25년 전의 가정용 PC 환경이 그만치 열악했다. 그리고 실사 영상을 후처리해서 깔끔하게 256색용 스프라이트로 만드는 건 굉장히 노동집약적이며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기술 얘기가 좀 길어졌다만, 이 게임은 주인공이 나름 미녀이다(단, 유부녀). 나중에는 남편이 악마가 빙의하여 맛이 가 버리고, 주인공을 형틀에 묶어서 죽이려 한다. 우리의 주인공은 양손이 몽땅 결박당하기 전에 기지를 발휘해서 정당방위 차원에서 그 남편을 죽이고 초췌한 모습으로 집을 빠져나가게 된다. 이게 게임의 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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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기술적으로 꽤 근성어린 시도를 했지만, 스토리는 꽤 허접 빈약하고 남는 건 잔혹한 호러 컨텐츠밖에 없다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똘끼어린 문제작 취급을 받긴 했어도 그래도 당시에는 유명세를 타서 물건이 많이 팔리기도 했다고 한다. 수지가 맞았으니 후속작까지 나올 수 있었다.

작중 주인공의 이름은 에이드리언(Adrienne)이다. 같은 발음이 스펠링을 저렇게 쓰면 여자 이름이 되고, Adrian이라고 쓰면 남자 이름이 되는 것 같다(에이드리언 카맥.. 남자). 실제 배우는 Victoria Morsell인데.. 그냥 무명 배우이고 현재까지 이쪽 일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Dark seed의 경우, Mike Dawson이라는 주인공 이름과 정체성을 개발자 자신에게서 그대로 따 온 반면, 저 작품은 그리하지 않았다.
Beyond: Two Souls (2013)이라는 게임에서는 유명 배우 엘렌 페이지의 얼굴을 차용한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3D 폴리곤 모델이지 옛날 같은 실사 스프라이트는 아니라는 차이가 있다.

이런 엄청난 게임을 기획한 사람은 시에라 온라인의 공동 창업자인 윌리엄스 ‘부부’ 중.. 남편 말고 부인인 Roberta Williams였다. 이 사람이 정말 여장부였던 것 같다. 평범한 주부이다가 갑자기 게임 기획 쪽으로 각성해서 90년대 어드벤처 장르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판타즈마고리아 게임의 잔혹한 고어 묘사에 대해서도.. 우리 게임은 동시대의 Doom이나 Mortal Kombat 시리즈에 비해 그렇게 심할 것 없다면서 쿨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 부부는 결혼을 일찍 했고 소싯적에 게임 개발로 성공해서 돈도 많이 번 덕분에.. 2010년대에는 은퇴해서 여기 저기 크루즈 여행을 다니며 풍족한 노후를 보내고 있댄다. 누구처럼 아예 우주로 나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디 어설픈 사업이나 투자하다가 먹튀 하고 몰락하는 것보다는 나은 모습인 것 같다.

판타즈마고리아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구나.. 이걸 근성으로 플레이 하고 컷씬들의 대사와 스토리 진행을 리스닝만으로 친절하게 요약해 놓은 블로그 글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저 게임 자체는 불친절하게도 자막이 나오는 게 없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소개하고 싶은 게임은 왕년에 페르시아의 왕자로 스타 개발자에 등극했던 조던 메크너가 기획하여 1997년 초에 내놓은 또 다른 문제작 Last Expres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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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3인칭이 아니라 1인칭 구도이다. 물론 3D 엔진 기반인 건 아니지만 시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경은 1914년 7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파리-이스탄불 오리엔트 급행 열차이다. 메크너 아재가 그 시절의 열차 인테리어와 운행 시각표까지 찾아가며 고증을 꼼꼼히 신경 써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특징으로, 얘는 페르시아의 왕자 시절부터 로토스코핑 덕후였던 제작자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위에 보다시피 모든 그래픽이 만화영화풍의 그림인데.. 전부 실사 영상을 본따서 디자이너들이 별도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 때문에 실사 사진을 보정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시간과 제작비가 소모되었을 것이다. 얘는 CD 3장 분량이었다.

얘는 전무후무하게 참신한 실험 시도로 인해 작품성과 비평 쪽으로 수작.. 혹은 긍정적인 의미로의 문제작 칭호를 받았다. 팔리기도 10만 카피 정도 팔렸다. 하지만 이건 수 년 동안 너무 많이 소모되었던 제작비를 건지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는 흥행에 실패했다. 다만, 이렇게 된 것에는 제작사가 상황이 안 좋아서 제품의 홍보와 마케팅을 제대로 못 한 잘못도 있었다고 한다.

이상이다.
요약하자면, (1) 3D 없이 재래식 기술만으로 (2) 통상적인 액션/아케이드/롤플레잉 장르가 아니면서 (3) 영화 같은 서사와 스토리텔링을 집어넣은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주제로 몇 가지 대작 작품을 살펴보게 됐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소설인데 1부터 N까지 수십 개의 짤막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섹션의 끝에는 “이 사람의 제안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예’는 x번으로 가시오. ‘아니요’는 n번으로 가시오” 분기로 가득한 멀티엔딩 형태의 책도 있었던 것 같다. 이건 반쯤 게임, 반쯤 소설인 건지?
작가가 이런 거 만드는 게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웠을 텐데 나름 참신한 구성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0/10/10 08:35 2020/10/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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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텍스트 에디터

macOS의 워드 프로세서 겸 에디터인 TextEdit은 신기하게도 '자동 줄 바꿈'을 끄는 기능이 없다...! 개인적으로 굉장한 문화 충격을 느꼈다. 줄 바꿈을 창이 아닌 용지를 기준으로 하게 하고 용지의 폭을 9999로 지정하는 간접적인 방법만 동원할 수 있다.

하긴 macOS는 터미널 창도 창 크기에 맞춰 줄 정렬을 꼬박꼬박 다시 해 주고 xcode의 코드 에디터에서도 자동 줄 바꿈이 지원되니.. 그쪽 바닥은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wrap에 친화적인 것 같다.

2. 텍스트 뷰어

에디터처럼 파일을 linked list 형태로 재구성하지 말고 수백 MB~수 GB의 파일이라도 O(1) 상수 시간으로 즉시 읽어들이는 텍스트 뷰어가 좀 있으면 좋겠다. 당장 화면에 표시해야 하는 맨 앞이나 맨 뒷부분만 줄 바꿈과 탭 적용을 한 뒤, 나머지 화면에 안 보이는 부분에 대한 줄 수 계산, 글자 폭 계산 같은 건 그때 그때 백그라운드로 진행한다.
파일의 앞부분이나 맨 뒷부분만 신속하게 조회 가능하되, 필요하면 다른 부분으로 스크롤이나 텍스트 검색도 가능해야 한다. 텍스트 수정은..?? 파일의 크기를 변경하지 않는(= 삽입, 삭제) 변경만 있어도 좋다.

유닉스의 tail 명령은 뒷부분 조회는 가능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든 기능이 들어있지는 않다.
워드 프로세서가 아니라 텍스트 에디터도 전문적인 개발 분야이듯.. 텍스트 뷰어만으로도 별개의 개발 분야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방대한 로그 파일 같은 건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열람해야 할 것이다.

3. 그래픽 에디터

(1) 요즘 세상에 2, 16, 256색 팔레트 기반의 이미지를 전문적으로 처리 가능한 그래픽 에디터가 살아 있기는 한가 모르겠다. 수요가 매우 드물어졌지만 그래도 전혀 없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런 일이 생기면 닥치고 Paint Shop Pro 구버전으로 고고씽 한다..;;

(2) 한편, 세상이 하도 많이 바뀌어서 손실 압축 코덱 기반의 통상적인 동영상이 gif 움짤보다도 더 가볍고 효율이 좋아지는 지경이 됐다. 전자는 jpg처럼 양자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고, 후자는 디더링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한다.
무손실 압축 기반으로 트루컬러가 지원되는 깔끔한 소규모 동영상 포맷이 등장하고 그게 Windows의 애니메이션 컨트롤 같은 데서도 지원됐으면 좋겠다. 일반적인 그래픽 툴로도 쉽게 만들 수 있고 말이다.

4. 파일 관리 셸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는 개발자 내지 파워 유저들은 갓 설치한 운영체제의 GUI 기반 파일 관리 셸에서 거의 공통으로 제일 먼저 설정을 변경하는 것이 있다. 바로 (1) 파일 목록에서 확장자까지 표시하도록 하고, (2) 숨김 파일도 나오게 하는 것이다.

  • Windows의 탐색기(Explorer): 예전에는 보기 옵션 대화상자를 꺼내고 번거로운 단계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Windows 8인가 10쯤부터는 '보기' 탭에 체크 옵션이 바로 표시되기 때문에 접근하기 편해졌다.
  • macOS의 Finder: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어디 설정 파일을 텍스트 에디터로 열어서 고쳐야 하지 싶다. GUI에서 이런 설정을 변경할 수 있지는 않다. 구체적인 방법은 검색해 보면 나올 것이다.
  • 리눅스: 셸 엔진이 무엇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GNOME, KDE??).. 리눅스는 역시 GUI 셸이라도 기본적으로 파일의 확장자가 꼬박꼬박 표시되고 있지 싶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도 세 운영체제의 정책이 서로 차이가 있는 셈이다.
컴퓨터의 내부 디테일을 모조리 파악하고 싶어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파일 확장자를 도대체 왜 숨기는지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아이콘은 확장자의 기능을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인이나 컴맹의 입장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쓸데없이 자세한 정보를 가능한 한 숨기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니 확장자나 숨김 파일을 취급하는 방식은 앞으로도 이렇게 옵션과 재량의 영역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5. 웹브라우저

요즘은 웹페이지 내부에서도 지도나 하드카피 문서(구글 도서 검색 같은..)를 조회하고 영역을 Ctrl+휠로 확대/축소할 수 있다.
그런데 똑같이 키보드 포커스를 주고 Ctrl+휠을 굴렸을 때 그 영역만이 확대/축소될 때가 있고, 아니면 웹페이지 전체가 확대/축소되어 버릴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정확한 패턴이나 조건은 아직 모르겠다. 사용하는 브라우저와 이용하는 사이트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케바케인 것 같다.

확대/축소에 이렇게 중의성이 발생한 게 참 웃긴데..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는 대부분의 경우 전자, 즉 그 영역만 확대/축소되는 것이다. 웹브라우저 내지 웹사이트를 개발할 때 이런 동작과 사용자 경험 쪽도 고려가 됐으면 좋겠다.

6. 요즘 Windows 10 근황

  • 언제부턴가 시작 메뉴와 작업 표시줄의 배경색이 Windows 10 특유의 검정이 아니라 밝은 회색으로 바뀐 컴퓨터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싸제 테마로 customize를 한 건지 궁금했는데.. 그건 아니고 버전 1903부터 밝은 색 테마가 정식으로 추가된 거라고 한다.
  • 집과 회사 컴퓨터를 몇 대 살펴보니.. xps/oxps 확장자가 자체 viewer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곳이 좀 눈에 띈다. 정작 xps/oxps 파일을 생성해 주는 가상 프린터 드라이버는 다들 기본으로 설치돼 있는데, viewer가 없거나 연결돼 있지 않은 게 말이 되는지..?? 어디 좀 착오가 있는 것 같다.
  • Windows 10이 나온 지 벌써 5년이 돼 간다. 대부분의 운영체제 설정 기능들이 데스크톱 UI인 제어판(Control Panel)에서 메트로 UI인 Settings로 갈아탔지만, 키보드의 반복 속도를 설정하는 기능은 아무리 눈 씻고 검색해도 없는 것 같다.
    Settings에는 키보드 설정과 입력 언어 설정이 별 구분 없이 뒤섞여 있으며, 제어판 한구석에 처박힌 구닥다리 제어판 애플릿을 꺼내야 변경 가능하다.
  • 그리고 내 경험상, 처음 사용하는 컴퓨터들은 마우스 포인터 뒷배경에 그림자 효과가 적용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왜 뺐는지..?? 이걸 지정하는 것도 Settings에는 없고, 제어판 애플릿을 따로 열어야 한다.

7. 스플래시 화면

덩치와 규모가 좀 있는 소프트웨어라면 실행되어 로딩 중일 때 일명 스플래시 화면이라는 게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얘는 표시하는 내용이 About 대화상자와 좀 겹치는 구석이 있지만(제품 명칭, 버전, 저작권자..), 그 대화상자보다는 화려한 그림의 비중이 더 크다.

뭐, 요즘은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방대 거대해서 로딩 시간이 긴 프로그램이라든지, 10년 20년 전부터 화려한 스플래시 화면이 컨셉이요 전통이었던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굳이 스플래시 화면을 넣지는 않는 편이다. 그냥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자기 화면만 띄운다.
컴퓨터의 성능이 갈수록 좋아지면서 프로그램이 구동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충분히 짧아졌고, 또 요즘은 추세도 새 프로그램의 구동을 요란하게 알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치 프로그램만 해도 화면 전체를 자기 창으로 꽉 채우고 파랑-검정 그러데이션을 띄우던 유행은 이미 20년도 더 전, 2000년대 초반쯤부터 없어졌고 간단한 마법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Windows 8쯤부터는 tada.wav 이래로 오랜 전통이던 운영체제의 시작 음향도 없어졌다. 이런 식이다.

옛날에 Windows 95 시절에는 딱 한 번, 워드패드도 실행될 때 스플래시 화면이 잠깐 나타나던 적이 있었다. 그 자그마한 프로그램에도 말이다.;; 물론 98과 그 이후부터는 싹 없어졌고 다시는 부활하지 않았다.
오늘날 마소 제품들 중에 Office나 Visual Studio 같은 건 실행될 때 스플래시 화면이 뜬다. 그런데 과거에 비해 중요한 변화가 생긴 게 있다.

옛날 버전들은 스플래시 화면에다가 마우스 포인터를 가져가면 모래시계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Office는 2010부터, VS는 2012부터.. 마우스 포인터를 가져가도 모래시계가 아니라 일반 화살표 모양이 유지되며, 스플래시 화면을 마우스로 드래그 하면 그 화면을 딴 데로 이동시킬 수도 있다.

즉, 스플래시 화면에 대한 사용자 반응성을 더 개선한 것이다. 스플래시 화면이 들어갈 정도로 방대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분이라면 이런 면모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뭐, 본인이 개발하고 있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스플래시 화면이 필요할 정도로 방대한 프로그램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다.

8. ESC 또는 Alt+F4

Visual Studio는 '닷넷'으로 바뀌었던 200x 버전 시절부터 '시작 페이지'라는 것을 제공해 왔는데, 2019부터 이걸 그냥 대화상자로 대체했다. 그런데 이거 동작 방식이 꽤 재미있다.
대화상자를 ESC를 눌러서 닫으면 프로그램 실행이 계속 진행되어 정식 IDE 창이 뜬다. 하지만 대화상자를 Alt+F4 또는  [X] 버튼 클릭으로 종료하면.. 프로그램이 통째로 종료된다. 이 차이점을 눈치 챈 분 혹시 계시는가?

Windows에서 ESC와 Alt+F4는 차이점이 매우 미미하다. 대화상자를 '취소'로 닫을 수 있는 건 공통인데 후자는 전자의 상위 호환으로, 프로그램 main 창을 종료하고 시스템 종료까지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대화상자는 자신이 ESC로 닫혔는지 Alt+F4로 닫혔는지 같은 걸 일반적으로 분간할 수 없다. WM_CLOSE 내지 IDCANCEL 메시지가 오는 건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둘을 구분해서 동작한다니.. by design인 걸까?
지금 메모장에서 파일을 저장하지 않고 종료했을 때 나타나는 "....를 저장할까요?" 메시지 대화상자를 Alt+F4로 닫으면 ESC로 닫았을 때와 달리 저장 대화상자가 뜬다. 이는 메시지 대화상자가 MessageBox가 아닌 TaskDialog 기반으로 바뀐 10여 년 전 Windows Vista 때부터 생긴 버그인데, 아직까지도 여전하고 고쳐지지 않았다..;;

ESC와 Alt+F4의 동작이 다른 프로그램을 메모장 이후로 처음으로 하나 더 발견하게 됐다.

9. 버전 넘버링

마소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Windows, Office, Visual Studio 같은 제품을 버전업할 때마다 외형 비주얼도 그야말로 널뛰기 하듯이 바꾸는 게 유행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이제 어지간히 만들 것들은 다 만들었는지 그런 유행이 사실상 끝났다.

그리고 버전 번호도 옛날처럼 과감하게 성큼성큼 올라가지 않고 있다. 글쎄, 웹브라우저들은 크롬의 주도 하에 버전이 자비심 없이 막 올라가는 중이지만 마소 제품들은 그렇지 않다. 다음 사례들을 생각해 보라.

  • Windows: 잘 아시다시피 지난 2015년부터 주 버전 및 브랜드는 Windows 10으로 고정돼 버렸으며, 이제는 연도/월이 기재된 별도의 하위 버전만 올리고 있다. (그래도 서버 제품군의 경우, 2016에 이어 2019를 따로 내놓은 듯하던데.. 연도 기반 네이밍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 Office: 2016과 2019, 그리고 365까지 모두 16.x 버전으로 동일하다.
  • Visual Studio: 최신 2019는 버전 번호가 Office와 마찬가지로 16.x이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통용되는 _MSC_VER 값은 2015까지는 100씩 증가해서 1900에 도달했지만, 다음 2017은 1910, 2019는 1920이 되어서 10씩만 증가하고 있다.
  • .NET Framework: 10년 전인 2010년에 4.5가 나왔지만 10년째 4.x 버전을 졸업하지 않고 있다. Windows 10과 함께 4.6이 나왔고 최신 버전에서도 그냥 4.8대이다.
  • DirectX: Windows 10과 함께 버전 12.x가 나왔으며, 12라는 숫자가 앞으로 더 올라갈 것 같지는 않다.
  • Internet Explorer, Media Player: 얘들은 최소한의 보안 패치만 하지 후속 개발 자체가 중단된 레거시이다. 버전 역시 각각 11, 12에서 멈추고 봉인됐다.

지난 2~30년 동안 PC용 소프트웨어들은 기술이 하도 많이 발전하고 상향평준화하다 보니.. 그냥 무료 서비스 아니면 기간제 구독형으로 바뀌는 추세인 것 같다. 그래서 MS Office도 이제 20xx 같은 연도가 붙은 정규 릴리스 대신 슬슬 구독형을 밀고 있으며, Adobe의 비싼 그래픽 툴들도 진작에 구독형으로 바뀌었다.
Visual Studio는 기본적인 IDE와 컴파일러의 경우, 인디 개발자를 대상으로는 사실상 완전히 무료로 풀렸고, 일정 규모 이상의 인원을 갖춘 기업을 대상으로만 유료이다.

소프트웨어가 구독형으로 바뀌었으니 새 버전 출시와 업데이트도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부담 없이 수시로 행해진다. 거창하게 서비스 팩이니 뭐니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다. Visual Studio만 해도 예전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업데이트를 하라고 뜬다. 16.5.0 다음으로 16.5.1 같은 식..
이런 추세와 달리, 한 카피당 사용권 얼마 같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유료 소프트웨어를 end-user에게 판매하는 개발자· 개발사와 제품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아 있을지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14 08:35 2020/08/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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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은행 이야기

1. 경제, 금융에 대해서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본인이 이 나이가 되도록 제일 관심이 없고 모르는 분야들 중 하나는 경제, 경영, 금융 쪽이다. 20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빚이 있는 건 무조건 나쁜 것이고 샤일록 같은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는 무조건 나쁜놈이며, 돈이 돈을 버는 것도 다 잘못됐다는 식으로 꽤 고지식하게 생각해 왔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세상 물정을 알게 되면서, 약간 더 자본주의(?) 친화적으로 관점이 바뀌었다. 특히 정치 성향이 우파 쪽으로 가면서 경제 관점도 덩달아 우파 쪽으로 더 기운 것도 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국가 차원에서 그렇게도 저축을 강조했던 이유가 단순히 근검절약(?) 때문이 아니라, 자잘한 돈을 한데 모아서 국가 차원에서 기업에다가 투자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됐다.

세상에 모든 고가 귀중품은 돈을 주고 보관을 맡겨야 하지만, 돈만은 받아서 맡은 사람이 맡긴 사람에게 오히려 이자 명목으로 돈을 주는 신기한 물건이다.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므나 비유에도 이런 원리가 담겨 있으며, 예수님도 이자를 받는 것 자체는 정당한 경제 활동이라고 인정하지 않으셨는가?

또한, 컴퓨터에 가상 메모리라는 게 존재하듯, 인간의 금융도 신용을 바탕으로, 지금 당장 실체가 없는 돈이라도 지금 여건이라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마련될 수 있다는 신용을 바탕으로 돌아가는 것의 비중이 크다. 물론 컴퓨터에 페이지 폴트와 프로세스 강제 종료라는 게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금융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 각 프로세스별 private 공간: 사유재산
  • 실제 메모리보다 더 많은 가상 메모리: 대출
  • 수표나 어음 거래: 현금에 대한 포인터. 함수에 call by value 대신 call by reference
  • 페이지 폴트: 부도
  • 무한 재귀호출로 인한 stack overflow: 빚을 빚으로 막는 돌려막기 신공, 일명 폰지(Ponzi) 사기

금융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건 단순 수학 실력하고도 영역이 좀 다를 것이다. 그게 동일하다면 수학의 무슨 난제를 풀어내고 필즈 상은 받은 천재들은 어디 투자도 왕창 잘하고 경제 흐름 예측도 잘해서 몽땅 억만장자이기도 할 테니까.. 물론 실제로 그것까지 잘하는 수학 괴수도 있지만 모든 수학 괴수가 그런 건 아니다.
또한, 금융은 돈을 다룬다는 점에서 회계와 비슷하지만 이와도 영역이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 바닥으로 취업하면 일단 어지간한 대기업 이상으로 돈 자체는 왕창 많이 잘 벌 수 있다. 특히 말단 은행원 이상으로 전문직으로 들어가면 억대 연봉도 순식간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까지는 아니어도 인간의 돈을 취급하고 더 나아가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일이 절대로 재미있지는 않다. 정말 꼼꼼해야 하고 실수가 없어야 한다.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일의 예를 들자면 올해의 금리나 환율을 정하고 화폐를 얼마나 찍어낼지 결정하는 것 따위이다. 아 이건 통화 정책에 더 가까운 건가?

모든 전문직들이 그렇듯이, 직원에게 아무 이유 없이 많은 연봉을 주는 게 아니다. 죽어라고 일 시키면서 뽕을 뽑으며, 월급값에 걸맞은 영업 실적도 요구한다. 은행의 경우, 초등학교 교사 정도면 퇴근할 만한 시간대가(4시~4시 반?) 이제 창구 셔터를 내리고 자기 업무를 보기 시작하는 시간대이다.

그리고 은행원은 자동차를 파는 게 아니라 자기네 금융 상품을 고객에게 팔아야 한다. 이것도 아마 말단 은행원의 통과의례인 것 같은데, 전화기 돌리면서 무슨 예금이나 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멀쩡한 카드를 새 카드로 교체해 주겠다고 설득하는 거.. 난 돈을 아무리 많이 준대도 그런 일은 내 적성이 아니다..;; 못 하겠다.

2. 은행의 종류

병원이 동네 의원(3차), 그보다 더 큰 2차 병원, 그리고 제일 크고 비싼 1차 대학 병원으로 나뉘고 법원도 그와 유사한 지방· 대법원으로 구분되듯.. 은행도 몇 가지 종류와 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중앙 은행(0차..??)은 일반 end user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앞서 말했던 거시적인 경제·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은행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 은행'이 유일하다.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얘들은 다른 금융 기관이 망했을 때 필요하다면 돈줄을 수혈해서 살려주기도 한다.

얘는 도서관에다 비유하면 국영 중앙 도서관과 같으며(도서 대출이나 일반적인 열람실 기능은 없음), 법조계에다 비유하자면 그냥 큰 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가깝다. 일반 민간인을 재판하는 게 아니라 다른 법이 헌법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험 업계에다 비유하자면 end user가 아니라 보험사가 또 자체적으로 가입하는 재보험 전문 회사하고도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그 뒤 일반적인 예금· 적금과 대출을 담당하는 상업 은행은 제1금융권이라고 불린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같은 은행은 전국구의 민간 사립(?) 은행이다. 옛날에 외환 은행은 외국어 대학교의 은행 버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 은행과 합쳐졌구나..
기업 은행은 좀 국공립 같은 냄새가 나며, 심지어 국립 관공서인 우체국도 반쯤 예금과 대출 기능이 있다. 요즘 PC방은 식당처럼 바뀌어 가고 있고, 우체국은 전통적인 편지 배달만으로는 장사가 안 되니 택배와 은행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 같다.

민간 은행 중에는 저런 전국구뿐만 아니라 대구, 부산, 광주 같은 지역구도 있다. 전국구 은행보다 금리가 높다거나 해당 지역 주민에게 혜택이 더 큰 식으로 메리트가 있으니까 살아남는 게 아닐까?
물론 현실적으로 대다수 일반인들은 은행별로 개성과 장단점이 뚜렷해서 자기 취향에 맞는 은행을 고른다기보다는.. 그냥 회사에서 월급 지급용으로 거래하는 은행을 따라 선택의 여지 없이 계좌를 개설하는 비중이 더 클 것이다.

은행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은 계층으로 나뉜다.

  • 집에서 인터넷뱅킹으로: 일상적인 계좌이체, 금융거래
  • ATM 기기로: 현금 입출금, 인뱅보다 더 큰 규모의 돈거래, 통장 정리
  • 은행 입출금 창구에서: 얼굴 대면이 필요할 정도로 초고액의 돈거래
  • 은행 종합 상담 창구에서: 통장 계좌 자체의 개설과 관리, 한도 변경, 금융상품 가입, 대출 상담 등 위의 계층에서 처리되지 않은 나머지 모든 복잡한 것들

그리고 은행은 대략 이런 식으로 시스템이 발전해 온 것 같다.

  • 198-90년대: 운영 시스템 전산화, ATM
  • 1990년대: 금융실명제, 신용카드, 대기 번호표
  • 2000년대: 인터넷 뱅킹
  • 2010년대: 모바일 뱅킹, 전자문서 (이 때문에 대규모 문서를 관리하던 인력이 많이 감축됐다고 함)

1루에서 한 계단 내려가면 제2금융권이 나오는데.. 얘들은 1루보다는 대출 조건이 덜 까다롭고 예금과 대출 모두 금리가 더 높다. 하지만 전반적인 자금 사정이 1루만치 좋지는 못하며, 낮은 확률로나마 망할 가능성도 더 높다.
새마을 금고, 상호 저축은행, 농-수-축협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단, '-협'들은 자체적으로 지역구와 전국구로 나뉘어 있는데, 이들 간판을 건 전국구 은행은 오늘날 1금융권이다.

3. 은행 계좌의 익명성

스위스라는 나라는 오랫동안 세계 어느 진영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국' 지위로 유명했는데, 고객의 익명성을 절대 보장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다가도 심지어 범죄 수사 협조 목적으로도 예금주에 대한 신상을 제공하지 않는 정책으로도 유명했다. 이 때문에 스위스 은행은 세계 각국의 악질 독재자와 범죄 조직이 검은 돈을 보관하는 은신처로 명성이 자자했다.

스위스 은행이라고 해서 물리적인 보안 시스템이 더 철저하다거나, 금리가 더 높다거나 한 건 절대 아니고 그냥 저 정치적 중립에다 가미된 익명성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어떤 경우에도 사용자의 대화 내용을 세계 각국 공권력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익명 인스턴트 메신저--라인? 텔레그램?--와 비슷한 지위이다.

물론 스위스의 이런 정책은 세계 다른 나라들로부터 원성을 샀으며, 스위스 역시 이제는 무작정 혼자 독고다이로 놀지 않는다. 적어도 2010년대부터는 스위스 은행도 익명 보장 정책을 버렸으며, 검은 돈, 피 묻은 돈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국제적인 범죄 수사에 협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옛날에는 롤스로이스가 사회 평판이 좋지 않은 졸부나 독재자에게는 돈이 아무리 많다 해도 차를 팔지 않았고 심지어 엘비스 프리슬리 같은 자국의 스타 연예인에게조차도 '천박한 딴따라'라는 이유로 판매를 거부했을 정도였다. 한때는 그 정도로 콧대가 높았는데... 이 역시 지금은 옛말이고 이제 차값만 지불하면 아무에게나 군소리 없이 차를 판다. 스위스 은행의 태도 변화도 이런 양상인 것 같다.

뭐 아무튼, 우리나라는 저런 지하 경제 검은 돈을 뿌리뽑기 위해 지난 1993년부터 잘 알다시피 금융실명제가 시행되어서 잘 정착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출도 아니고 신규 계좌 개설이 너무 까다롭고 어려워져 있다고 원성이 자자하다.

물론 특별한 대외 활동을 하는 게 아닌 이상(어디 모임에서 총무가 돼서 곗돈· 회비 관리 같은?) 한 사람이 불필요하게 은행 계좌를 너무 많이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각각의 계좌는 은행 전산망의 메모리를 차지하고 미약하게나마 작업 오버헤드를 늘린다. 하지만 저게 무슨 오· 남용이나 범죄 가능성이 있어서 계좌 생성에 제약을 거는 것인지 난 잘 모르겠다.

은행 계좌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치면 마치 heap 핸들처럼 느껴진다. 어지간해서는 한 프로세스가 default heap만 갖고 놀아도 충분하지만, 적절한 작업 단위별로 새로운 heap을 생성하면 자잘한 메모리 할당을 많이 하더라도 메모리의 단편화를 방지할 수 있고 성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4. 투자 은행

은행에는 지금까지 거론했던 중앙 은행, 상업 은행 말고 투자 은행이라는 것도 있다. 얘네들은 이름이 투자증권, 금융투자, 증권 등등으로 끝난다. 외국계 투자 은행으로는 모건 스탠리, 골드만 삭스 같은 이름이 유명하다. 얘들은 통상적인 은행들이 돈을 불리는 것보다 더 과격한 high risk high return인 투자를 하면서 예금주의 돈을 불려 주고 자기도 그걸로 이윤을 챙기지만.. 반대로 말하면 투자를 잘못하면 원금을 까먹을 수도 있다.

이 정도면 반쯤 도박이나 마찬가지 같은데.. 그래도 요즘은 세계가 옛날처럼 경제가 폭발적으로 쭉쭉 성장하는 타이밍이 아니고, 일반 상업 은행에서의 일반적인 예금· 적금만으로는 금리가 너무 낮다. 그러니 이런 투기를 하는 금융기관이 존재하며, 사실 이런 것도 있어야 돈이 크게 돌아가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건 내 적성은 아니다. 그런 곳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그런 기관을 이용하는 고객이나, 다 보통 인물은 아닌 것 같다.

투자 은행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게 거의 없어서 더 쓸 게 없다. 지난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도 이쪽에서 뭔가 삐끗해서 발생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더 나아가 1930년대의 미국 대공황은 어쩌다가 발생했는지, 무슨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발생했는지에 대해 관련 학자들마저 의견이 하나로 일치하지 않고 각자 성향별로 견해가 엇갈리는가 보다.

5. 사채

끝으로.. 소득 별로 없고 신용 등급이 낮아서 제2루, 제2금융권마저도 접근하지 못하는데 바닷물이라도 마시는 심정으로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그들은 엄청나게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고라도 일명 사채라고 부르는 3루로 가게 된다. 하지만 사채를 끌어다 써서 급한 불을 끄고 빚도 갚아서 해피엔딩을 이룬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보증 서서 잘 되거나 도박으로 돈 따서 성공한 사람의 비율만큼만 있지 싶다.

정상적인 경제 관념을 지니고 분수껏 쓰는 사람이 제3금융권을 이용할 일이란 없는 게 정상이다. 집이나 차를 살 때처럼 통상적인 거금이 필요할 때 사채를 끌어들이는 건 난 상상이 잘 안 된다. 특히 자동차는 한 대라도 더 팔기 위해서 지금 당장은 돈을 아주 조금만 내고 빚을 가늘고 길게 찔끔찔끔 갚아 나가는 할부 제도가 자체적으로 굉장히 발달해 있다. 구매자가 굳이 사채를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허나, 가족이 갑자기 큰 사고를 당하거나 큰 병에 걸렸을 때.. 그리고 좀 나이가 있는 사람은 자기 사업 하다가 당장 어음을 막아야 하고 직원 월급을 줘야 할 때처럼 일반인 정상인이라도 급전에 대한 수요 내지 유혹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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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양지에서 돈 좀 못 냈다고 해서 본인이나 자녀를 노예로 팔아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니 그냥 그 시점에서 파산 선언, 상속 포기 등의 다른 방법으로 욕심을 내려놓고 작은 불이익을 감수하는 게 나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사채를 썼을 때야말로 본인이나 자녀가 신체적으로 해코지를 당할 확률이 수직 상승한다.

사채는 금리가 살인적으로 높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제때에 돈을 갚으려고 찾아가면 걔네들이 잠적해 버려서 채무자를 어떻게든 빚과 이자의 수렁으로 밀어넣었다고 한다.
글쎄, 요즘은 사채도 법의 통제를 받아서 일정 수준 이상의 이자는 못 받고 일정 수준 이상의 빚 독촉은 못 하게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뒤끝이 있다.

한때 제3금융권을 이용했던 것만으로도 당사자의 신용 등급이 하락해서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과 동등한 경제력으로도 1~2금융권 대출을 못 받고 계속 제3루만 맴돌게 된다는 것이다. 자동차 보험으로 치면 제3금융권 이용 이력이 무슨 대형 사고 이력처럼 취급되는가 보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어떤 사람이 만화를 그려서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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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나라가 전반적으로 가난하던 시절에는 이렇게 횡행하는 사채가 정상적인 기업 활동도 못 하게 만들고 나라를 말아먹을 지경이었다. 과거에 박 정희 대통령의 유신 독재 목적에도 이런 사채를 강제로 손 보는 게 포함돼 있을 정도였다.

하다못해 어떤 연예인이 사채 광고에 얼굴을 비추는 것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저 연예인 어지간히도 몰락했나 보군. 저런 데에까지 출연할 정도이면.." (환상의 똥꼬쑈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급으로..) 대외적으로 딱 이런 생각을 심어 주게 된다.

뭐 요즘은 사채업자만이 절대악인 건 물론 아니다. 채무자들 역시 마냥 불쌍하게 당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채권자를 역관광 태우고 해코지 하는 경우도 있다. ㄲㄲㄲ
그러니 이런 사람들과는 어떤 형태로든 돈 문제로 지저분하게 얽히지 않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역시 답이 없고 쉽지 않은 문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11 08:36 2020/08/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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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세계 대다수 나라들과 달리 일상생활에서 미터법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거기에서 정착해서 살려면 인치, 마일, 화씨 같은 생소한 단위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런데 거기는 용지의 표준 크기도 A4가 아니다. 이런 것도 차이가 있을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냥 나의 단견이었다. 애초에 길이 단위계가 일치하지 않는 나라인데 용지의 표준 길이 역시 얼마든지 덩달아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미국에서 표준으로 쓰이는 용지 크기는 '레터'라고 해서 가로 21.59cm, 27.94cm이다. 인치로 환산하면 8.5 * 11로 딱 떨어진다. 210 * 297인 A4보다 가로는 약간 더 길고, 세로는 약간 더 짧다. 그 동네엔 레터의 자매품으로 '리갈 legal'이라고 폭은 동일한데 세로로 훨씬 더 긴 용지도 있다.
으음, 그러고 보니 본인은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도 대중적으로 쓰이는 종이 규격이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먼 옛날에는 전지부터 시작해서 'n절지'라는 명칭의 종이가 보편적이었다.
제일 큰 전지는 학교 미술 과제나 교회 수련회 과제로 뭔가 가족이나 조 단위의 글· 그림 컨텐츠를 만들 때 썼다. 2나 4절지는 프레젠테이션 프로젝터라는 게 없던 시절에 괘도라는 교보재를 만들 때 쓰이는 크기였다. 즉, 걔들은 개인이 휴대하는 인쇄· 출판물이 아니라 대중을 향한 전시· 게시용이었다.

8절지와 16절지 정도로 작은 게 휴대용 책이나 유인물 크기이다.
그런데 N절지라는 말은 '전지'라는 제일 큰 종이를 반반씩 접어서 N등분했다는 뜻일 뿐, 기준인 전지의 절대적인 크기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저때 8절지를 반으로 접은 16절지는 내 기억으로 지금의 A4 용지보다는 작았다. 저 규격의 정체는 무엇일까..??
1부터 16까지 2의 승수 단위로 쓰이는 게 많은 것이 마치 음악에서 음표· 쉼표의 크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옛날에 공책, 연습장, 혹은 아무 제본도 안 돼 있는 쌩종이 갱지(?)는 오늘날의 A4용지만치 새하얗거나 두껍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 시험지나 신문지 급으로 누런색 회색이 대놓고 느껴질 정도의 저질인 것 역시 아니지만.. 어쨌든 낙서나 필기를 하는 용도로 그런 종이가 쓰였다. 거기에다 미술 활동을 위해서는 좀 더 두꺼운 도화지가 쓰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컴퓨터와 프린터라는 걸 접하게 됐는데.. 그 시절에 프린터의 주류는 '찌이익~~' 시끄러운 소리로 악명 높던 도트 프린터였다.
이 도트 프린터는 동작 원리가 타자기의 연장선이나 다름없었다.
동작 전에 초기화 같은 건 일체 필요하지 않고(수력 발전과 비슷..??), 페이지라는 개념이 전혀 없이 오로지 줄(line)이라는 개념만 있을 뿐이었다.

그때 도트 프린터에는 80칼럼짜리 또는 132/136칼럼짜리라는 두 종류의 전용 용지가 쓰였다.
80칼럼은 그야말로 20세기 중반, IBM의 펀치 카드의 줄당 문자 수에서 유래되어서 TTY(전신 타자기)와 컴퓨터의 텍스트 모드에까지 계승된 매우 유서 깊은 규격이다.

80칼럼 용지는 폭이 24cm로 A4의 가로폭보다 더 크고, 양 옆에 세로로 일정 간격으로 원형의 구멍이 숭숭 뚫려서 프린터의 급지 트랙터에 걸리게 돼 있다.
그리고 용지가 세로로 길다랗게 이어진 형태이며, 사용자가 필요하면 구간 구분을 위해 주욱 뜯을 수 있다. 이 정도면 나름 실용적인 디자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80칼럼보다 폭이 더 큰 13x칼럼 용지도 세로의 구획 간격은 11인치(28cm)로, 80칼럼과 동일하며 미국 표준인 레터와도 동일하다.
라인 피드(다음 줄), 폼 피드(다음 페이지) 같은 명령이 제어 문자로 존재하며, 과거에 인쇄용 비트맵 폰트는 화면용과 달리 90도 transpose되어 있는 게 다 이런 기술 배경 때문이었다.
화면용 폰트는 각 글자를 상에서 하로 찍는 것을 좌에서 우로 진행해야 해서 좀 번거롭지만, 전치시킨 인쇄용 폰트는 한 방향으로만 쭈욱 찍으면 되기 때문이다.

본인은 이런 도트 프린터 용지 실물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영수증 인쇄용으로도 도트 프린터 방식이 퇴출된 걸 보면 참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아직도 도트가 쓰이는 곳은 은행 ATM기의 통장 정리 기능밖에 없지 싶은데 이제는 종이 통장도 거의 퇴출 단계이니...
그렇게 도트가 한물 가고 1990년대 이후 잉크젯 프린터라는 걸 구경하면서부터 본인도 A4 용지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 같다.

그럼 다시 전지 얘기로 돌아온다.
A계열의 전지, 즉 A0은 종횡비가 sqrt(2):1이면서 넓이가 1제곱미터에 대응하는 크기라고 정의된다. 종횡비가 저렇게 잡힌 이유는 반으로 접어도 가로· 세로 축만 바뀐 채 종횡비가 재귀적으로 동일하게 유지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음악으로 치면 평균율처럼..??
숫자로 표현하면 841 * 1189밀리미터이며, A1~n은 저걸 반으로 쭉쭉 접은 물건들이다. 이게 국제 표준이며, 한국 역시 이를 따른다.

그에 비해 B계열 전지는 종횡비는 동일하게 sqrt(2):1이면서 넓이가 1.5제곱미터인 놈이다. 그래서 1030 * 1456에서 시작한다. B4는 257 * 364, B5는 182 * 257이 되며, B4가 시험지에 얼추 대응하는 크기이다.
요게 정석이지만.. 일각에는 폭을 1m, 길이를 1414로 맞춘.. 바리에이션 B도 있는 것 같다. 넓이가 아닌 길이에서 미터를 맞춘 셈이다. 톤이라는 무게 단위에 여러 바리에이션이 있고, 정보량 단위에도 1000/1024 바리에이션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끝으로, 크기가 A와 B의 얼추 중간인 C계열도 있다. 하지만 얘는 정확한 sqrt(2)라고 보기엔 오차가 좀 큰 것 같고, 길이나 넓이가 정확하게 둘의 중간이지도 않은 것 같고.. 존재의 목적과 의미가 뭔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실물로나, 용지 종류 목록에서나 한 번도 본 적 없다. 일단 C0의 크기는 917 * 1297이라는 것만 적어 둔다.

오늘날은 가정용으로도 컬러 레이저 프린터가 쓰일 정도로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기술이 많이 발전되고 대중화됐다. 하지만 A4보다 더 큰 B4 내지 A3 용지를 뽑는 프린터는 여전히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전문 인쇄소에 의지해야 한다. 이건 기술 문제가 아니라 그냥 수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도트 프린터 전용지를 포함해 국제 표준 ABC 용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맨 먼저 언급했던 컴퓨터 이전의 전통적인(?) 종이는 일명 "4*6판 전지"라고 불리는 788 * 1090 크기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얘는 sqrt(2) 종횡비가 아니며 그렇다고 6/4도 아니다. 어디서 무슨 근거에서 유래된 크기인지, 한국 말고 통용되는 곳이 더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스케치북이나 도화지 등 미술 쪽에 쓰이는 종이는 이 전지의 8절지이며, 이 규격은 책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작은 "국판"이라는 것도 있어서 국판 전지는 636 * 939이다. 종횡비는 그 어느 기존 규격과도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것 같은데, 얘 역시 출처와 유래를 알 길이 없다. 얘 역시 "4*6판"과 더불어 책 만드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종이들의 크기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sqrt(2) 종횡비인 국제 표준 ABC를 나열하였다.

구분 A B C
0 841 * 1189 1030 * 1456 917 * 1298
1 594 * 841 728 * 1030 648 * 917
2 420 * 594 515 * 728 458 * 648
3 208 * 420 364 * 515 324 * 458
4 210 * 297 257 * 364 229 * 324
5 148 * 210 182 * 257 162 * 229
6 105 * 148 128 * 182 114 * 162

다음은 한국 재래식(?) 규격이다.

구분 4*6전지 국판
전지 788 * 1090 636 * 939
2절지 545 * 788 468 * 636
4절지 394 * 545 318 * 468
8절지 272 * 394 234 * 318
16절지 197 * 272 159 * 234
32절지 136 * 197 117 * 159

다음은 세로 길이가 11인치로 동일한 도트 프린터 및 미국 표준 규격이다..

종류 크기
도트 80 240 * 280
도트 132 380 * 280
레터 216 * 280

수많은 종이들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가로와 세로로 정확하게 잘라서 직사각형을 만드는 건 궤간을 정확하게 유지하면서 긴 철길 레일을 깔거나 차선을 그리는 것과 비슷한 일일 것 같다.

요즘이야 책 출판 시장은 인터넷에 밀려 많이 위축되고 침체된 게 사실이다. 특히 사전류는 치명타를 맞은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부류의 종이책은 모니터 화면이 대체할 수 없는 독서 접근성을 제공하며, 휘발성이 너무 강한 인터넷 텍스트보다 권위와 공신력이 훨씬 더 높다. ISBN 코드가 기재된 책은 인류 역사상 이런 저자와 이런 문헌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이책이 무슨 우체통이나 공중전화와 비슷한 급으로 명맥만 유지하는 레거시로 전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책의 외형이 필요 이상으로 사치스럽다는 비판이 있었다. 내용에 비해 쓸데없이 크고, 종이는 너무 크고 재질이 고급스럽고.. 재질이 고급스러워서 나쁠 것은 없지만 그게 다 책값의 불필요한 상승으로 이어지니 문제이다.

특히 옛날과 달리 '문고판'이라고 A5도 아닌 무려 A6.. 주머니에도 쏙 들어갈 정도의 작고 아담하고 저렴한 책이 전멸했다고 한다. 아무 이유 없이 없어진 건 아니고 아마 경제성이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자들이 내용이 아니라 비주얼을 보고 책을 고르는가 보다.

그에 반해 작은 걸 좋아하는 일본은 1980년대에 수많은 문고판 교양 서적들이 쏟아져나왔으며 내가 알기로 지금도 그러하다. 특히 과학 분야 말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양서를 접한 뒤에 나중에 위대한 과학자가 된 사람도 당연히 적지 않았을 테고..
한국의 출판인들은 그런 일본을 부러워하면서 그런 책들 판권을 사서 번역해서 비슷한 형태로 출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혹은 일각에서는 교통· 통신이 불편하던 시절이니 안 걸릴 거라고 믿고 무단 표절도 했다.

한자 때문에 글자 크기를 무작정 깨알같이 작게 줄이기도 어려웠을 텐데 어째 책을 그렇게 작게 만들 생각을 했나 모르겠다. 그나마 세로쓰기를 해서 공간을 확보한 거라는 의견도 있지만, 세로쓰기는 다른 단점도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종이의 크기 얘기를 하다가 책과 독서 문화.. 뭐 이런 사회 이슈 얘기까지 잠깐 논하게 됐는데.. 선진국 강대국은 출판 문화와 국민들의 독서 문화부터가 좀 남다르긴 해 보인다.

글이 좀 길어졌는데.. 우리는 종이의 크기와 종횡비, 텔레비전이나 모니터의 종횡비, 그리고 극장 스크린의 종횡비에는 다양한 역사적· 기술적 배경과 사연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다음으로, 종이의 종횡비의 연장선 차원에서.. 나라별 국기들의 종횡비에 대해 논하고서 글을 맺도록 하겠다.

지구에는 200여 개의 나라가 있고 나라에는 나라의 상징인 국기가 있다. 그런데 국기의 도안뿐만 아니라 화면의 가로 세로 종횡비도 생각보다 제각각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종횡비는 3:2이다. 태극기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국기도 이와 동일하다.
그 다음으로 흔한 건 2:1로, 당장 북한 인공기부터가 공식적으로는 저 비율이다.

이것들 말고 마이너한 종횡비로는..
4:3이 있고 완전 정사각형 1:1도 있다. 심지어 토고의 국기는 이런 데에서까지 쓸데없이 수학적인 걸 추구했는지 종횡비가 황금비(1.618..)이다..;; 지갑 속 신용카드의 종횡비와 같다는 뜻이다.
네팔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기 모양이 사각형 자체가 아니며,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기까지 하다. 다만, A4 용지라든가(루트2 :1) 와이드 화면 16:9 종횡비인 국기는 내가 들어 보지 못했다.

이런 국기 종횡비를 보고도 철도가 떠오르는 게 있다. 마치 국가별 철도 궤간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3:2가 이 바닥의 표준궤 1435mm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국기의 종횡비쯤이야 철도 궤간이나 통행 방향, 전압처럼 산업 차원에서의 표준화가 필요한 분야는 전혀 아니니, 뭐 제각각 따로 놀아도 할 말은 없다. 자국 내에서 자기 국기만 게양할 때에야 자기 마음대로 아무 비율과 도안으로 게양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 나라 국기들을 획일적인 종횡비로 한데 진열할 때도 있다.
그러니 보편적인 3:2나 2:1 정도의 종횡비에다 공간을 맞출 때는 내부 도안을 이런 식으로 보정· 재배치한다는 식의 통일 규격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0/07/29 08:35 2020/07/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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