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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이야기

지난 추석 때 산에서 벌초를 해 보니 동물과 식물의 차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이 들곤 했다.
톱과 낫으로 식물에게 하는 짓을 동물에게 그대로 했다간.. 그야말로 종류를 불문하고 처참한 광경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식물은 그렇게 베고 또 베어도 죽지 않고 끈질기게 또 자라난다.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 버리거나 약을 쳐서 화학적으로 말려 죽이지 않는 한 말이다.

식물은 동물 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개념 자체가 없으며, 한쪽에서 발생하는 질병이 다른 쪽에서는 전혀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다.
생명을 지니고 있는데 동물과 식물은 그 근원이 어쩜 이렇게 서로 다를까 싶다. 식물은 죽어서 부패하는 과정도 동물(특히 빨간 피가 흐르는 것들)보다는 훨씬 덜 역겹고 덜 징그럽지 않던가..

그리고 한편으로.. 산에서 야생 전투모기에게 수십 군데를 물려서-_- 서울 모기와는 차원이 다르게 오래 가는 가려움과 붓기를 체험해 봤다.;;
모기에게는 사람의 이산화탄소와 땀 냄새가 마치 삼겹살 굽는 냄새처럼 느껴지기라도 하는 걸까? 그리고 모기도 단백질이 그렇게 궁하지 않을 때는(;;) 그냥 평범하게 식물의 진액만 빨아먹는다는데?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모기나 거머리가 사람에게 아무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피부를 찢고 피를 쪽 빨아 가는 기술은 인류가 아직 개발하지 못한(주사기..) 신묘막측의 영역이 틀림없다..;;
이런 일이 있었던 관계로, 오늘은 특별히 식물에 대해서 그 동안 관찰하고 생각해 온 여러 썰들을 풀어 보겠다.

1. 풋사과와 풋고추

우리말에서 '풋-'이라는 접두사가 활발하게 쓰이는 식용 식물이 사과와 고추 말고 또 존재하는가 모르겠다. 둘 다 '풋' 버전은 표면이 초록색이다가, 완전히 익은 놈은 빨간색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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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의 경우, 빨간 고추는 너무 매우니 단독으로 우적우적 먹는 일은 사실상 없고, 다지고 갈아서 고춧가루나 다른 양념의 형태로 많이 먹는다. 그러나 초록색 풋고추는 복불복으로 아직 덜 맵기도 하기 때문에 얘만 단독으로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하는 것 같다.

어떤 풋고추가 매운지의 여부를 외형만 봐서는 알 수 없으며, 내 경험상으로는 그냥 복불복 운에 의존해야 하는 것 같다. 다만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속담은 신빙성이 있다. 작고 홀쭉한 놈이 더 매울 가능성이 높으며, 반대로 큼직한 풋고추는 대체로 맵지 않더라.

한편, 사과의 경우 일부 초록색 껍질의 사과를 보면 마치 한국에서 흰 껍질 계란을 보는 것처럼 희귀· 희소함이 느껴진다. 이건 대놓고 설익은 풋사과를 딴 게 아니라 초록색 상태에서 여느 익은 빨간 사과에 준하는 맛이 나는 '아오리'라는 별도의 사과 품종이라고 한다.

배는 사과 같은 껍질의 색깔 변화도 없고, 내부가 공기에 노출되면 갈색으로 변색되는 것도 없으니..
금속으로 치면 철과 구리의 이온화 경향 같은 차이가 생물학적으로 존재하는가 궁금한 생각이 든다.

2. 억새

난 어린 시절부터 억새라고 하면 그냥 길다란 잎의 단면이 날카로워서 맨살이 베이기 쉬운 귀찮은 풀 정도로만 알아 왔다.
줄기에 뾰족한 가시가 숭숭 돋은 물건은 장미를 비롯해 여럿 있지만.. 잎이 저런 구조인 물건은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게 딱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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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은 억새도 갈대처럼 꼭대기에 하얀 이삭들이 달려 있어서 언뜻 보기에 둘이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억새를 검색하면 둘의 차이점, 구분 방법이 잔뜩 걸려 나올 정도이다.
둘이 그 정도로 서로 닮았는지는 본인도 미처 몰랐다. 다만, 갈대는 물 주변과 습지에서 더 즐겨 서식하고 억새보다 키가 훨씬 더 크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는 1937년도 곡인 '짝사랑'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으악새는 그냥 억새의 방언인지, 아니면 다른 조류 동물인지 심상이 중의적이어서 영원한 논쟁거리로 남아 있는가 보다. 작사자가 오래 전에 죽고 없으니 말이다.

옛날에 "화왕산 억새 태우기"라는 행사가 경남 창영에서 3년 주기로 개최되어 왔다. 그러나 딱 10년 전의 6회 때 불을 잘못 질러서 방문객이 5명이나 숨지는 참사가 터지는 바람에 이 행사는 영원히 폐지되었다.

3. 관목(灌木 shrub)

세상의 식물 중에는 가로수 같은 아름드리 나무가 아니고, 나팔꽃처럼 덩굴 줄기밖에 없는 부류도 아니고..
굳이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나무이긴 한데 나무라는 걸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키가 왕창 작아서 몸통이 안 보이는 물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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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관목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다 자라도 키가 2미터를 안 넘고 작고, 초록색 잎만 둥그렇게 무성하면서 줄기· 몸통이 안 보이는 작은 나무(?) 말이다.
길거리나 정원 같은 데서 조경용으로 맨날 보는 식물이니 하나도 생소할 것 없다. 어떤 도로에서는 길가가 아니라 정중앙에 중앙분리대 대용으로 이런 부류의 식물이 심겨 있기도 하다.

얘들은 지면까지 차지하는 부피가 골고루 크기 때문에 조밀하게 심어서 사실상의 울타리 역할도 한다.
내가 이런 식물의 존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별로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하긴, 대나무는 잘 알다시피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과일과 야채의 경계도 많이 헷갈리는 편이다.

4. 잔디

정원을 구성하는 식물 중에서 나무, 관목보다도 더욱 키가 작고 지표면을 가장 낮게 덮고 있는 건 잔디일 것이다.;; 얘는 뿌리와 잎만 있지 줄기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허구헌날 밟히고, 초식동물에게 뜯어먹히지만 얘는 그래도 끈질기게 버티고 살아남는가 보다. 아 그러고 보니 땅뿐만 아니라 무덤 봉분을 뒤덮고 있는 것도 이런 부류의 잔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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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잔디가 심어져 있으면 미관에 더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온도와 습도 조절이 되고, 운동 경기를 할 때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 크게 줄여 준다. 또한, 돗자리를 깔 때도 밑면에 흙먼지가 덜 묻게 해 준다. 신이 창조해 주신 정말 고맙고 유용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잔디도 겨울에는 죽어서 누래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언제나 초록색이 유지되는 상록(?) 잔디 또한 있다고 한다.

5. 잡초

'잡초'라는 건 발효와 부패의 차이만큼이나 매우 인위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분류이다. 잡초라는 종이 생물학적으로 따로 있다거나, 얘들이 무슨 해충· 병원균 급으로 인간이나 자연에게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똑같은 초록색이라고 해서 모든 식물이 식용 가능한 건 아니다. 글쎄, 상추나 깻잎 같은 건 인간이 먹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모든 채소잎을 뜯어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심지어 초식동물조차도 아무 식물이나 마음대로 먹을 수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밀림· 정글은 녹색 사막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기보다 인구 부양력이 형편없다. 그냥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는 의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잡초는.. 광합성을 해서 산소를 만들고 뿌리로 흙을 붙잡아 두는 등 식물의 아주 기본적인 공통 역할을 하는 것 외에 딱히 인간에게 기여하는 게 없고, 심고 관리하지 않아도 자라기는 왕창 잘 자라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인간이 진짜로 재배하려고 하는 농작물(생산성이 더 높은)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잡초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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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무성한 뻘밭. 잔디밭과 비교하면 풀들의 키부터가 들쭉날쭉이고 미관에 좋지 않다. 마치 난개발로 스프롤 현상이 심한 도시의 건물들 모습 같다.)

아니면 농사와 무관하게.. 그냥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 불쑥불쑥 불청객처럼 자꾸 자라고 생겨나기 때문에 잡초이다. 이런 잡초는 야외에서 시야를 가리고 미관을 해친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잡초라고 불릴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식용 가능하지 않은 것은 잡초의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왜 하필 인간에게 별로 유용하지 않은 식물이 유용한 식물보다 억척같이 잘 자라는 걸까? 그 근본 이유를 성경에서 찾자면 인류의 타락과 더불어 "또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창 3:18) 말씀을 펴야 할 것이다.
농사를 짓는다거나 육군 군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이런 녹색 괴물의 강인함과 생명의 끈질김에 줄곧 경악하게 된다.;;

6. 약품

끝으로, 식물에게 치는 약품은 다음과 같은 종류로 나뉘는 듯하다.

  • 영양제 또는 병충해 치료제: 대상 식물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
  • 농약: 대상 식물의 주변에 붙어서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해충· 잡초· 세균 따위를 제거하기 위해
  • 제초제· 고엽제: 대상 식물을 죽이기 위해

1번 영양제· 치료제는 혼자 성격이 많이 다르니 논외로 하고, 어떤 약품이 농약이냐 제초제냐 하는 것은 경계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에프킬라가 모기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궁극적으로는 해롭듯이, 그 끈질긴 잡초를 말라 죽게 하는 농약이 보호 대상 식물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단지, 이로운 농작물이 죽기 전에 잡초를 먼저 죽게 해 줄 뿐이다.

골프장은 산을 깎고 많은 나무들을 베어내어야 만들 수 있지만, 내부의 깔끔한 잔디밭도 농약을 왕창 많이 쳐서 유지되는 것이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다만, 도를 넘는 정도는 아니고 나라에서 전국에 등록된 골프장들을 상대로 관리 실태를(농약 사용량 같은..) 조사도 한다고 한다.

농약은 번개탄만큼이나 자살 수단으로 하도 많이 악용된지라 미성년자의 구매, 얼굴 안 보이는 인터넷 거래를 통한 구매가 전면 금지되어 있다. 뭐, 자살이 아니라 실수로 마신 경우도 있고, 또 음식에다 고의로 몰래 타서 남을 죽이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었다. 그러라고 만든 농약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위험하고 환경에 해롭다는 이유로 농약을 아예 안 쓰면 인류는 다시 옛날처럼 잡초와 병충해와 힘겹게 싸워야 하고 농산물의 가격은 수직 상승하게 된다. 친자연, 유기농만 고집하다간 후진국형 기생충과 전염병에 다시 시달리게 될 것이다.

농약은 잡초뿐만 아니라 병충해도 상대하기 때문에 살충제하고 성분이나 용도가 뭔가 호환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가령, 그라목손은 살충제로 치면 DDT 같은 위상이랄까?? 너무 위험하고 장기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사용이 금지되긴 했지만 당장 후진국에서 사람들이 말라리아 때문에 픽픽 쓰러지는 와중에 DDT보다 가성비 더 좋은 모기 퇴치제 대안은 없는 실정이다.

농약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맨날 친자연을 외쳐도 애초에 자연이 인간에게 좋은 것만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고 쉽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23 08:34 2019/12/2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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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여름에 영화 인천 상륙 작전이 나왔는데, 이제는 그 스토리의 프리퀄 격인 장사 상륙 작전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져 나왔다. 이건 적을 혼동시키고 군사력을 분산시켜서 진짜 본론인 인천 상륙 작전이 차질 없이 수행되게 하기 위한 밑밥이었던 셈이다. 본인은 개봉 초기에 영화를 잘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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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는 팩트와 실존 인물을 표방한다는 것을 시작과 끝에서 명시하고 있다. 최소한 "대장 김 창수", "고산자 대동여지도", "자전차왕 엄 복동", "말모이" 같은 급으로.. 주 스토리 차원에서 말도 안 되는 왜곡, 주작, 창작, 각색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된다.
문산호가 좌초· 침몰한 것, 갑자기 통신이 끊겨서 상륙 후에 곧장 귀환을 못 하고 학도병 팀이 오랫동안 고립됐던 것 등등은.. 모두 팩트이다.

(2) 학생들이 보트 타고 상륙하고 총질하는 게.. 마치 배틀로얄 2 레퀴엠 장면 같았다..;; 학도병 주인공 둘은 "15소년 표류기"에 나오는 브리앙과 도니판 같아 보이기도 하고..

(3) 작중에 나오는 터널은 단면이 말발굽 모양인 게 명백하게 단선 철도 터널처럼 생겼는데..
일제 말기 때 만들다가 말았던 동해중부선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작전이 수행되었던 곳은 7번 국도 구간이라고 한다만..)
일제는 전쟁 중에 물자가 부족해서 금강산선, 경북선 같은 철도의 선로를 뜯어 가긴 했지만, 러시아 진출에 필요한 경원선은 복선화하고, 동해중부선은 오히려 새로 건설하고 있었다.

(4) "공산군 저놈도 알고 보면 한 부모의 아들이고 착한 놈이었어"라든가(북괴 기관총 사수를 죽이고 나서 보니 걍 앳된 학도병..), 오글거리는 어설픈 "태극기 휘날리며" 스타일의 신파극이 살짝 들어가 있다.
그리고 국군과 미군 수뇌부를 마냥 절대선이 아니라, 융통성 없고 학생들을 일회용품 총알받이로 쓰고 갖다버리려는 꼰대 집단 비스무리하게 묘사하긴 한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불순한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인천 상륙 작전과 달리, 적인 공산군 중에서 막 인상적인 활약을 하는 악역 주연이 딱히 없다. 그냥 떼거지로 몰려와서 아군에게 총질만 할 뿐이다.
그리고 아군도.. 스토리를 심하게 각색· 왜곡하지 않고서는 겨우 앳된 학도병이 일당백 용감무쌍 무공을 펼치는 식으로 묘사할 수도 없다. 걔네들은 일당백은커녕 총소리 듣고 혼비백산 겁 먹고 달아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너무 대단했던 10대 소년들이다. 이런 스토리 구조에서 굳이 대립· 갈등 비스무리한 걸 넣으려면 아군 수뇌부에게라도 그 역할을 약간 감당시켜야 했을 것이다.

요즘 시대에 197, 80년대 스타일의 일방적인 절대선 절대악 애국심 호소만 존재하는 반공 영화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저 영화가 오히려 더 현실적인 묘사를 한 면모도 있다.
미국도 결국은 위험을 무릅쓰고 조치원함을 보내 주고 애들을 구하려고 일말의 노력은 했다. 그리고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죽을 고생 하고 완수하고 살아 돌아온 이 명흠 대위를 국군에서는 전사자가 너무 많고 배(문산호)를 버리고 왔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하려고 했을 정도이니.. 실제로 융통성 없는 꼰대 집단인 것도 맞았다.. -_-;; (그래도 다행히 진짜 처형하지는 않음)

(5) 결말도.. 액자식 구성이 아닌 것으로 시작한 영화가 갑자기 저렇게 끝나는 건 대놓고 "태극기.."를 따라 한 억지 급조인 것 같다.
그래도 전체적인 결론은..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아무리 민족이니 뭐니 해도,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면 도저히 함께할 수 없으며, 서로 완벽하게 격리· 분리· 독립이 불가능하다면 최악의 경우 서로 죽고 죽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6) 이 영화의 모티브인 장사리 상륙 작전은 6·25 중의 여러 전투들처럼 단순히 오래되어서 인지도가 낮을 뿐이지, 무슨 실미도 급으로 존재가 부정되고 조직적으로 은폐된 작전은 결코 아니다.

이미 196, 70년대의 언론 보도와 매체에서도 버젓이 언급되어 왔다. 일반인들이나 잘 모르지 근현대사 전쟁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까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학도병들이 무슨 실미도 북파공작원이나 국정원 흑색요원 같은 존재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전투가 완전히 잊혀졌다가 뒤늦게 발굴되었네 어쩌네 유세를 떠는 것은 영화의 유니크함을 어필하기 위한 마케팅 과장이다. 걸러가며 들을 필요가 있다.

(7) 내가 이 영화 소개글을 블로그에다 올리려고 마음먹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저 실제 장사리 해변/해수욕장에 이미 철도로 접근할 수가 있게 됐다는 것을 본인도 뒤늦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도 7호선의 철도 버전으로 포항과 삼척을 잇는 동해중부선, 통합 동해선이 일단은 2022년에 전구간 개통을 목표로 공사 중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요즘 세상에 고속철이 아니고 광역전철도 아닌 생판 오지에 새로운 단선 비전철 철도가 새로 생긴다니 굉장히 이색적인데.. 포항-영덕 구간은 이미 작년 1월에 개통했다. 그 사이에 '장사'라는 역이 생겨서 여기서 내려서 몇백 m 걸어가면, 장사 해수욕장과 함께 그 이름도 장사 상륙 작전 전적지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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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정말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2018년 초 그 당시엔 평창 동계 올림픽과 함께 모든 관심이 경강선 KTX에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말에 서울-양양 고속도로(60) 춘천 동쪽 구간과 영천-상주 고속도로(301)가 거의 동시에 개통했지만, 전자의 인지도에 밀려서 후자는 묻혔던 것처럼 말이다.

장사리 영화를 안 봤으면 내가 일부러 거기 지형을 찾아보지 않았을 것이며, 세상에 "영덕 역이란 게 어딨어?"라는 무식한 소리를 2019년 가을까지도 늘어놓고 있었지 싶다.
나의 무지를 회개하며, 이를 일깨워 준 장사리 영화에 감사드리며 반성한다.
평창역에는 KTX만 서지만, 영덕역에서는 RDC 무궁화호만 탈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0/04 08:32 2019/10/0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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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우리나라에는 윤 봉춘(1902-1975)이라는 영화 배우 겸 감독을 역임한 원로급 영화인이 있었다. 역시 영화인이었던 나 운규와 고향과 나이가 동일한 완전 단짝 친구였으며, 둘 다 변절 이력이 전무한 항일 성향이었다는 것도 같이 알면 좋다.

다만, 나 운규는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7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훨씬 먼저 요절했다. 역시 1937년에 결핵으로 사망한 소설가 이 상과 비슷하다. 그 시절엔 열악한 의료· 영양· 위생 여건으로 인해 결핵이 완전 불치병까지는 아니어도 난치병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윤 봉춘은 일제 시대에는 그나마 평범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다가 1940년대 초, 어용 영화 단체의 가입을 거절하고 낙향하여 지조를 지켰다. 대동아 전쟁을 미화하는 프로파간다 영화 따위에 기여하느니 차라리 메가폰을 내려놓고 잠적한 것이다. 훌륭하다.
그러다 나라가 독립을 되찾은 1940년대 말에는 그는 감격에 벅차서 그런지 독립 운동을 소재로 삼은 영화를 잔뜩 만들었다. <윤 봉길 의사>(1947), <애국자의 아들>(1949) 같은 것 말이다.

특히 그는 완전 유 관순 덕후였던 것 같다. 3·1 운동과 유 관순을 소재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도 무려 세 편이나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기와 거의 동갑내기인 유 관순의 삶에 대해 뒤늦게 접하고는 큰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그가 만든 유 관순 영화는 1947년작, 1959년작, 1966년작이 있는데.. 유 관순 역을 맡은 주연 배우는 각각 순서대로 고 춘희, 도 금봉, 엄 앵란으로, 그 당시로서는 날고 기는 S급 A급 여배우들이었다.
또한 1966년은 <소령 강 재구> 영화가 나왔던 해이며, 엄 앵란은 그 영화에서 강 재구 역을 맡았던 미남 배우 신 성일과 1964년에 이미 결혼하기도 했다. 이 역시 당대 톱스타끼리의 결혼이기 때문에 큰 화젯거리였다고 한다.

이렇게 동일 감독이 만든 유 관순 영화가 세 편이나 있지만, 그 시절 여건상 필름이 소실되거나 딴 용도로 재사용되지 않아서 영상이 현재까지 전해지는 건 1959년작이 유일하다. 지금으로서는 실감이 안 가겠지만, 옛날엔 물자가 워낙 귀하고 부족했던지라 TV 방송이나 영화를 방송사나 국가에서 책임지고 영구 보존하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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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작 영화에서 유 관순이 재판을 받는 장면)

그런데 여기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유 관순은 무슨 안 중근· 윤 봉길처럼 혼자 개인플레이로 총 쏘거나 폭탄을 던져서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국제적으로 찬사를 받은 부류가 아니었다.

그녀는 민족 대표 33인도 아니고, 만세 시위 자체를 경성 시내 한복판에서 한 것도 아니었다. 외국인이 설립한 인서울 학교의 재학생이었고, 서울에 있는 형무소(서대문)에 갇혔을 뿐이다. 일제 시대 당대에는 무슨 3· 1 운동의 원탑 아이콘 수준이 아니었으며, 그냥 지방의 만세 시위 열성 참가자 정도의 인지도밖에 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수원의 유 관순이라 일컬어지는 이 선경 같은 여러 여학생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랬는데 나중에, 최하 1940년대 이후에 "자랑스러운 이화학당 동문", "항일· 반일의 아이콘", "위대한 크리스천 여성 독립 운동가" 컨셉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전 영택 목사 같은 분 등에 의해 뒤늦게 재조명되고 전국적으로 부각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유 관순의 유해가 소실되어서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도.. 그녀가 일제 당대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치 전국구 수준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제가 기를 쓰고 여론을 통제해서 유 관순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는 걸 막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수는 있다. 그건 별개로 생각할 문제다.

유 관순은 무슨 안 중근처럼 외국 타지에서 처형 당하고 아무렇게나 매장되는 바람에 유해가 소실된 게 아니다. 멀쩡히 접근성 좋은 인서울의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는데, 묘지 부지가 개발을 위해 불도저로 밀리는 과정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유해가 사라진 것이다.

3·1 운동 때 그녀의 집이 불타고 가족이 몽땅 죽거나 투옥되거나 고아 신세로 흩어지는(동생들) 풍비박산이 난 건 사실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녀가 정말 유명한 인물이라면 묘지가 어떻게든 관리는 되었을 것이며, 아무리 일제 치하라 해도 그런 사람이 딴 데로 이장되지도 못하고 유해가 허무하게 증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흉악범(?) 윤 봉길조차도 유해가 수습되었는데 유 관순이 왜 저리 되었겠는가? 내 짐작엔 공동묘지를 밀어버린 불도저 기사조차도 그가 조선인이었건 일본인이었건, 여기에 누구 묘지가 있는지 모르는 채로 그냥 밀었지 싶다.

뭐, 본인은 유 관순이 어떤 의도로 부각되고 칭송되었건 그녀의 행적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왜경에게 두들겨 맞고 손톱이 뽑히면서도 "주동자는 나다", "애국하는 것도 죄냐, 나는 왜놈들에게 재판받아야 할 아무 명분도 없다"라고 당당하게 외친 건 팩트이며, 그건 절대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 어린 나이에 말이다. 본인이 태어나서 '주동자', '주모자'라는 단어를 최초로 접한 곳이 유 관순 전기였다.

단지, 그녀가 뒤늦게 유명해지고 교과서에 실리고 전기가 보급되고 영화가 나왔을 무렵엔 그녀의 유해가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뒤였다. 이것이 일면 안타까운 점이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오면..
유 관순 영화는 윤 봉춘 감독이 만든 것 세 편, 그리고 김 기덕 감독의 1974년작 컬러 영화가 하나 더 있다. 여기서는 유 관순 역이 문 지현이라는 배우인데, 지금 성우로 알려진 그 사람은 아닌 다른 사람이다. 이 영화 이후로 배우 커리어를 계속 이어 나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이거 이후로 유 관순 영화가 더 만들어졌다는 얘기는 난 못 들어 봤다. 그러다가 2019년이 되니 3·1 운동 100주년이랍시고 관련 영화가 <항거>, 그리고 <1919 유 관순>이라고 두 편이 더 만들어져 나온 것이다.

서양에서 타이타닉 호 침몰을 소재로 한 영화만 해도 사건 직후와 20세기 중반, 그리고 1997년의 제임스 카메론 작까지 여러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해저에서 실제 잔해를 발견하기 전, 1986년 이전에 만들어진 옛날 흑백 영화에서는 배가 일체형으로 서서히 침몰한다. 그러나 후대의 영화는 최신 고증을 반영하여 배가 두 조각으로 쪼개진다.

그것처럼 유 관순 영화도 1980년대 이전의 옛날 영화는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유 관순에 대해 1902년이 아닌 1904년생, 징역 5년이 아닌 7년형처럼.. 현재는 기록의 발견으로 인해 업데이트되고 폐기된 옛날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더라. 기록이 발견되기 전에는 그녀에 대해서 그냥 동료 수감자의 부정확한 기억과 구전 증언만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유 관순의 최후는 만년 떡밥이었다. 겨우 고3 남짓한 나이밖에 안 되는 어린 소녀가 인간 백정 악마 일본 헌병 개xx에게 어떤 참혹한 고문과 능욕을 당하고 죽었을지 묘사하는 건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과 재량의 영역이었다. 그러니 가히 호러물 수준의 각색이 들어가곤 했다. 어린애들이 보면 트라우마 생길 정도로..;; 유튜브에서 1959년 영화와 1974년 영화를 직접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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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관순이 지하실로 끌려가고, 동료 죄수들은 그녀의 최후를 직감한 듯 다들 손을 뻗으며 울부짖는다. 지하실에서 간수들은 무슨 고문을 하려는지 그녀를 물이 든 통에다가 집어넣고 뚜껑을 닫으려 하며, 관순은 이를 맹렬히 저항하면서 뿌리친다. (왜 유 관순을 미리 결박하지 않고 저리도 힘들게 애쓰며 물통에다 집어넣는지는.. 묻지 말자.;; ㄲㄲㄲㄲ)
관순은 지하실을 뛰쳐나가 탈출하려 하지만 그때 간수가 그녀의 등에다 칼침을 놔 버린다..;;; 한눈에 봐도 현실성은 별로 없다만.. 벤허와 비슷한 1959년작 영화라는 걸 감안하자..

다음으로 1974년작 영화는 유튜브에 올라와 있긴 하지만 텔레비전을 카메라로 또 찍은 것이어서 화질이 대단히 좋지 않다. 그래서 여기에는 따로 소개하지 않겠다.
화면이 어둡고 불분명하지만.. 거기서는 유 관순이 열받은 간수들에 의해 바닥에 팽개쳐졌다가 상체가 일본도로 쓱싹.. 즉, 칼에 찔리는 게(stab) 아니라 베였다(slash). 어휴...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에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그녀의 사인은 그냥 간수들의 구타로 인한 '장살'이라고 기재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바락바락 악이 들어간 만세질(?)이 되풀이되니 간수들에게 얼마나 밉보였으면 총알에 맞거나 칼에 찔린 것도 아니고 둔기로 맞아 죽었나 싶다. 이것도 충분히 비참하게 죽은 것이지만 그래도 다른 생체 실험(!!)이나 사지절단 능지처참 급의 변태적인 짓을 당해 죽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생체 실험은 일제 말기에 윤 동주 같은 사람에게나 해당된다.

다만, 옛날에 독립 기념관에서 봤던 기억으로는 3· 1 운동 시기에 왜경에게 고문 당해서 코나 귀가 잘린 사람, 잡힌 독립군 중에 팔이 잘린 사람>_<도 있긴 했다. 기회가 된다면 일제의 잔인한 만행이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자행됐는지에 대해 기록· 증언의 진위 여부와 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해 볼 것이다.

끝으로... 유 관순이 방광 파열로 죽었다느니 하는 말부터 시작해, 심지어 그녀의 시신이 토막이 나 있었다는 얘기는 내가 알기로 객관적인 근거· 출처가 없다. 후대의 국내 위인전이나 영화에서 처음으로 던져진 떡밥 괴담 주작에 가깝다.
형무소의 동료 수감자가 그녀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을 리는 만무하고, 이화학당 담임 선생? 교장? 유 관순의 친지, 가족? 어디에도 그런 증언은 실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그들은 만에 하나 진짜로 토막 시신을 확인했더라도 고인의 명예를 생각해서 그런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더 현실적이다.

하다못해 반대편 왜놈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자. 죄수가 죽어 버렸으면 그냥 시신을 거적에다 싸서 쓰레기 버리듯이 빨랑 내보내야 하지 않았겠는가? 쟤들이 증거를 인멸해서 경찰의 추적을 피해야 하는 무슨 싸이코패스 살인마도 아닌데, 멀쩡한 시신을 굳이 토막 내고 각을 뜰 틈도 있을 정도로 그들의 근무 여건이 여유롭고 한가하지는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차라리, 아예 죄수들 다 보는 앞에서 "앞으로 또 만세질 하면서 소란 피우는 새x는 이렇게 된다!" 시범타로 공개 즉결처분이라도 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때 서대문 형무소는 유 관순만 갇혀 있던 광활한 공간이 아니며, 상황이 그와 정반대였다. 어느 영화에서나 묘사돼 있듯, 수용 가능 공간과 시설 대비 죄수들이 너무 많아서 바글바글 터져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굳이 시신을 훼손해서 피와 내장이 철철 쏟아져 나오면 걔네들 입장에서는 청소 같은 뒤치다꺼리만 더 늘어날 것이다. (형무소 지하실 고문실은 일본인 헌병과 간수 자기네들도 근무하는 공간이다!)

이상이다.
이런 얘기를 지난번에 항거 영화 감상평과 함께 늘어놨어야 했는데.. 그때는 더 옛날 영화는 미처 떠올리지 못하고 최 은희 선생 같은 다른 사람 얘기를 같이 늘어놓았다.
유 관순은.. 군인으로 치면 신라 화랑 중의 관창처럼.. 어린 나이에 너무 용맹스럽고 애국심 투철하고 존경스럽긴 하지만 좀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더 큰 일을 하지 못하고 너무 짧고 굵게 가 버린 것 같다는 아쉬운 느낌도 든다.

참고로, 옛날 유 관순 영화들에서는 일본인 배역조차(헌병, 간수, 판사, 검사..) 다 한국어만 쓴다. 최근 영화인 "항거"에서처럼 일본인은 일본어로 말하고 조선인 죄수 중의 일부가 일본어를 알아듣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없다. 이는 표면적인 이유는 물론 모든 배역을 한국인 배우가 연기했기 때문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저 때는 현실성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어 따위를 동원하는 게 국민 정서상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만 해도 SKY 중에 일어일문학과가 있는 학교는 K밖에 없으며, 그것도 한참 후대에 생긴 것이니 말이다. 그 이유는.. 본인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9/22 08:35 2019/09/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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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평균적으로 볼 때(장 미란이나 은하캠핑 님 같은 예외적인 사례를 빼고..) 사람은 남자가 여자보다 체구나 체력이 더 뛰어나고 더 활동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 작품에서도 남자 영웅이 나라를 구하고 미녀도 구출하고 쟁취(...)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곤 한다.

전근대 판타지물이라면 기사도에 충실한 주인공이 임금님의 마음에 들어서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1900년대 근대물이라면.. 예쁜 아가씨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하필 철길 위에 꽁꽁 묶여 있으며,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고 여친을 구해 낸다. prince Charming이라든가, damsel in distress라고 이런 오랜 패턴 내지 클리셰를 가리키는 용어가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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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20세기 후반에 비디오 게임이란 게 처음 등장했을 때도 소재와 스토리는 이런 전통적인 레퍼토리를 그대로 따르는 게 자연스러운 관행이었다. 페르시아의 왕자와 그 전작인 가라테카, 그리고 일본 게임 중에서도 당장 떠오르는 건 캐슬(+ 캐슬 엑설런트), 더블 드래곤 같은 거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비디오 게임은 만드는 사람이 대부분 컴공돌이 남자들이지만, 유저도 대체로 남자이다. 그래서 여성 유저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주얼 게임이 나왔으며, 이런 컨셉 하에서 이미 1980년대에 버블보블(일명 보글보글) 같은 명작도 탄생했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여 남성 유저를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여성 캐릭터도 그저 수동적인 피해자에 일방적인 구출 대상이 아니라, 주인공이나 심지어 악역으로 넣은 게임이 나오게 되었다.
레이싱걸이니 치어걸이니 하는 게 있는 이유도 다 그 장르는(자동차, 스포츠..) 남성 팬이 많기 때문이지 않은가? 컴터 게임도 그런 게 있어야 장사가 더 잘 된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여자 주인공이 차지하는 위상은 다음과 같이 "여러 팀원 중 하나인가" 아니면 "단독인가"로 크게 나눌 수 있겠다.

1. 여러 주인공들 중 하나/일부가 여자

온라인 FPS라든가 대전 액션 게임이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는 똑같은 Ctrl+C, V 잡몹 개떼라는 개념이 없이, 모든 캐릭터들이 고유한 외형과 특성을 갖고 일대일로만 싸운다. 그러니 캐릭터가 10여 종 이상으로 매우 많으며 그 중에 여성도 존재한다. 버추어 파이터에서 사라와 파이, 철권에서 아스카와 리리, 모탈 컴뱃에서 소냐 등.. 내가 기억하는 건 이 정도다.

물론 여캐는 재미를 위해 밸런스에 비현실적인 보정이 가해진 경우가 태반인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는 근육 하나 안 보이는 가녀린 쭉쭉빵빵 아가씨가 근육질 아재를 그렇게 패대기치는 게 가능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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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액션· 아케이드나 슈팅 장르는 주인공이 대전 액션 정도로 많지는 않다. 주인공 3명이 세계를 구하기 위한 팀을 이루고 있고, 그 중 한 명이 홍일점인 경우가 많다. 그 날이 오면 3이라든가 엘리베이터 액션 리턴즈, 황금도끼가 그 예이다. 이런 데서 여캐는 일반적인 체력이나 공격력은 남캐보다 약하고, 그 대신 마법 내지 스킬 쪽이 더 뛰어나게 설정되는 편이다.

황금도끼의 경우, 전반적으로 로버드 하워드라는 미국의 소설가가 쓴 '코난 사가'(Conan Saga) 같은 중세 판타지물의 세계관을 차용하고 있으며, 여캐인 '타이리스 플레어'는 레드 소냐에서 모티브를 딴 듯하다. 저 소설과 게임은 비키니를 수영할 때가 아니라 땅에서 백병전을 벌일 때=_=;; 착용하는 헐벗은 아마존 여전사의 스테레오타입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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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sundae의 발음이 '순대'가 아니듯, 저 sonja의 발음은 '손자'가 아님.. -_-)

Streets of Rage (Bare Knuckle)도 황금도끼와 동일 개발사에서 나온 동일 장르의 액션인데.. 시간 배경만 현대이다. 여기에는 블레이즈 필딩(Blaze Fielding)이라는 여캐가 유명하다. 시리즈마다 복장에 변화가 있긴 하지만 빨간 탱크탑과 미니스커트 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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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혼성 주인공인 게임 중에서 특별히 1:1 듀엣 파트너 형태인 것은 국산 게임 중엔 "85되었수다/삭제되었수다"(할 박사와 '산소'), 그리고 리크니스가 떠오른다.
일본에서 나온 좀비물 중에서 House of the dead 시리즈도 전통적으로 남캐와 여캐 이렇게 둘이서 진행하는 형태이다.

2. 여자 단독

여자 단독 주인공이 나오는 가장 오래된 게임으로 본인이 알고 있는 것은.. 무려 1983년의 8비트 시절 작품인 Tropical Angel이다. 본인이 느끼기에 꽤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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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이 장애물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돌진을 하는 '남극탐험'과 비슷한 부류이다. 이 게임에서는 좌우로 각종 장애물을 잘 피해서 수상 스키를 탄 비키니 처자를 잘 조종하는 게 목표이다. 이 게임은 쏘고 부수고 죽이는 건 없지만, 상위 레벨에서는 심지어 상어도 가끔 튀어나오기 때문에 그건 잘 피해야 된다.

여느 장애물에 부딪혀서 미스가 나면 시간만 까먹고 직전의 깃발 통과 지점에서 게임이 다시 시작된다(물론 미스가 누적되면 나중에 시간 초과로 게임오버됨.. 페르시아 왕자처럼). 하지만 상어와 접촉하면 그냥 게임오버라고 그런다. 직접 해 보지는 않아서 모르겠다.

조종에 여유가 있다 싶으면 보조 버튼을 눌러서 아가씨를 뒤 돌아보면서(= 우리 쪽으로) 더 우아한(?) 포즈를 취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그 동안 점수는 더 많이 올라가지만, 이 상태로 장애물을 즉시 피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더 불안한 상태가 된다.
게임 엔딩은 "축하해용~ 우리의 앤젤 아가씨가 당신에게 축하의 키스를 선사합니당^^ ♥"라는 요지의 메시지 한 줄 나오고 끝이다.

다음으로 '메트로이드'라는 게임의 주인공인 '사무스 아란'은 아케이드 게임에 등장하는 단독 고유 여캐인 데다, 엔젤과 달리 이름까지 분명하게 개성 있게 지어진 초창기의 사례이지 싶다. 신체가 온통 강화복으로 둘러싸여서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윤곽은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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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코 120'은 4살 꼬마로 시작해서 레벨이 올라갈수록 여캐가 성장한다~! 이런 게임은 거의 전무후무가 아닐까 싶다. 6살, 12살, 15살, 18살을 거쳐 엔딩 레벨에서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20세 처녀로 나오고 끝난다. 10대 소녀가 팔짝팔짝 뛰어다니면서 아무렇지 않게 총질을 하는 게 웃기지만.. 어차피 총도 당대의 게임들처럼 총알이 직선 운동을 하는 게 눈에 보이고 반동도 없는 등 현실적인 묘사가 전혀 아니긴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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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세 게임들은 모두 198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과연 모에의 동네답다.
저거 말고 서양에서 나온 작품 중에는.. 역시나 Jill of the jungle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분야의 끝판왕은 당연히.. 툼 레이더 시리즈이다.
처음에 기획했던 기획자? 디자이너?는 버추어 파이터에서 여캐인 사라 브라이언트를 즐겨 골라서 했는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뻔한 인디아나 존스 아류작 대신 라라 크로프트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주인공에 대한 섹스 어필이 늘어 가는 건 몹시 싫어했으며, 이 때문에 회사를 퇴사까지 했다고 한다. 옛날 시리즈 특유의 너무 과장되게 큰 가슴과 너무 잘록한 허리도 자기 의도가 아니었다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개발사가 Core Design이던 시절의 옛날 얘기이다.

결국 툼 레이더는 2010년대 이후에 설정이 리부트 되어서 아가씨의 모습이 더 동양인에 가까워지고 노출도 덜 하고, 군인· 특수요원보다는 평범한 여대생(?)에 더 가까운 외형으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고는 있지만, 그래도 서든어택 2 같은 무식 유치찬란한 성 상품화는 안 하고 있고 툼 레이더 브랜드는 지금도 건재하는 중이다.

이상이다.
옛날에 고전 게임들에 대해서 리뷰를 종종 한 적이 있었는데 여캐에 대해서만 이렇게 집중해서 생각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걸로도 글이 한 편 써지는구나!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9/09/19 08:33 2019/09/1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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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로남불 진영논리는 이제 좀 그만

입으로만 맨날 정의니 진보니 평등이니 외치던 어느 운동권 출신 법학자가 알고 보니 자기는 지력이 못 따라 주는 지 애새끼를 온갖 추악한 불법과 편법과 비리를 동원해서 신분 상승시키려 했다는 것이 만천하에 폭로되었다. 학업 성적으로나, 집안 경제력으로나 '장학금'하고는 억만 리 떨어진 애가 장학금을 뭔 빽으로 어찌 그리 많이 받아 쳐먹었는지! 지금 꼬라지를 보니, 차라리 옛날에 최 숭실· 정 유라 정도면 정말 선량하고 기특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도 결국은 답정너 법무부 장관까지 됐다. 이건 내가 보기엔 지금 대통령이 퇴임 후에 여느 전직 대통령들처럼 잡혀 들어가지 않기 위한 철저한 준비 작업으로 보인다.
게다가 저 양반은 그 와중에도 로스쿨 교수 타이틀까지 휴직 상태로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자신을 대체할 교수를 뽑지도 못하게 해 놓고 말이다. 탐욕의 끝이 어디인지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최· 정 모녀한테 그렇게까지 열받을 필요가 없었는 게..
일단 이건 우리나라에서 최고 민감한 주제인 병역하고 전혀 무관한 일이다. 그 아줌마한테 아들이 있지는 않았으니까..
또한, 난리가 났던 분야가 무슨 의전· 로스쿨이나 평범한 문과대, 공대,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따위가 아니다. 애초에 돈 왕창 깨지고 서민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예체능 쪽이다.

흙수저 서민의 신분 상승이라든가 안정된 직장하고는 전혀 무관하고, 학술적인 면모도 별로 없는 분야이다. 논문이나 시험 성적 따위가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대회 입상 실적에만 목숨 걸어야 하는 곳이다.
그런 바닥에서 뭐 기여입학 좀 하고 수업 많이 빠지고 학사관리가 파행이었던 게 그게 그렇게까지 문제이고 욕 먹을 일이고 저 사람들만 혼자 심하게 잘못한 짓이었나? 고삐리의 의학 논문 1저자에 비하면 완전 별나라 얘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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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머리가 나쁘지 않고서는 좌좀좌빨이 될 수 없겠다는 걸 실감한다. 거기에다가 양심까지 털나면(혹은 탈나면) 금상첨화다. 비슷한 게 이 외수 버전, 심지어 당사자 자신 버전도 있다. 과거에 자신이 해 놓은 말에 정확하게 걸려드는 게 어찌나 많은지, 이건 뭐 조적조 미래 예언 바이블 수준이다.
기록이 몽땅 다 남고, 쥐나 새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도청장치가 존재하는 요즘 세상에 어째 겁도 없이 저렇게 자승자박하는 말을 함부로 씨부리는 걸까?

그래서 그런지 내 주변의 좌좀들은 저 아줌마에 비해서는 일말의 염치가 있는지, 요즘은 온·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정치 얘기가 쏙~ 들어갔더라.
3~4년 전 정권 때 무슨무슨 장관이고 총리고 내정자가 저 따구였으면 단언하건대 나라가 뒤집어졌을 텐데!

심은 대로 거둔다는 걸 개돼지 좀비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냥 무조건 묻지 마 진영논리는 출 32:26처럼 신을 대상으로 행사하는 것이지, 사람을 대상으로 행사하는 건 여러 모로 추하고 보기 좋지 않다.

내가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는 거지만 우리나라 정치판은 색깔과 이념만으로 변별하고 승부해야 된다. 종교는 오로지 교리만 보고 판단해야 하듯이 말이다. 우리나라 수준에서 뭔 되도 않은 도덕 청렴 지조냐? 도대체 언제까지 내로남불 행태에나 실망할 참이냐?
그건 좌든 우든 피장파장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으니 지금 시국은 확실하게 친일친미냐, 아니면 친중종북이냐 양자택일 구도라고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저건 좌우 같은 취향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영역이라는 것도 덤으로 인지하고 말이다.

2. 경마? 승마?

아무튼.. 본인은 정 유라가 요즘 뉴스를 보면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든 한편으로..
승마라는 게 어떻게 돌아가는 스포츠인지도 문득 궁금해서 한번 찾아 봤다. 난 저 바닥은 진짜 하나도 1도 경험하거나 관람한 게 없고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무슨 육상이나 사이클 경기처럼 말 탄 기수 여러 명이 평지를 죽어라고 달리고 경쟁자를 추월해서 빨리 골인하는 순서대로 금은동메달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그건 경마이지, 승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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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승마는 혼자서 장애물 넘고 말을 갖고 묘기를 하는 기교로 승부를 낸다. 마치 군대 사격과 스포츠 사격만큼이나 서로 지향점이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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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선수의 복장이 어째 옛날 마술사 정장과 닮아서 馬術과 魔術을 모두 의도한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성경에서 약 3:3이 한국어 기준으로는 혀(=언어 말)와 동물 말이 모두 떠올라서 공감각적 심상이 형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선거 관련 용어인 출마도 한자는 馬이며, 승마에 빗대어서 의미가 확장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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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에는 전군을 통틀어 유일하게, 군견도 아니고 군마를 운용하는 군마대라는 부대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소속되어 말을 조련할 줄 아는 특수 전공 출신의 병사가 생도들에게 승마를 맛보기 수준으로 가르치는 조교 역할을 한댄다.
이건 프로그래머 양성 커리큘럼에다 비유하자면, 엄청 옛날 CPU의 어셈블리어 코딩을 맛보기 차원에서 가르치는 것과 비슷하겠다. 군인에게 승마는 총검술 같은 완전 레거시 스킬일 테니 말이다.

한편.. 말 탄 선수들이 헬멧을 쓰는 건.. 무슨 오토바이 같은 통상적인 충돌 사고가 아니라, 말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에 대비한 것이다.
큰 말의 등은 일반인이 선뜻 올라타기 어려울 정도로 꽤 높다. 그런데 무슨 말이 몸뚱이가 앞뒤로 두 동강(...;;) 나서 사람이 아래로 푹 꺼질 리는 없으니, 말에서 떨어지게 되면 절대로 다리부터 먼저 곱게 착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낙마 사고는 이륜차 교통사고와는 다른 방향으로 매우 위험하다. 뻑하면 팔· 다리 부러지는 중상을 입거나 심지어 허리나 목이 부러지고 사망까지 할 수 있다. 이건 뭐 무작정 사람 몸을 말에다 결박만 해 놓는다고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6년 12월 7일, 도하 아시안게임 때 김 형칠 선수가 경기 중에 낙마 사고로 목숨을 잃는 참극을 당한 바 있다.
평범하게 말에서 내동댕이쳐진 충격만으로 죽은 추락사가 아니었다. 말이 앞다리가 장애물에 걸리는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졌으며, 사람과 말의 상하 위치가 완전히 뒤집혔다. 그래서 그는 500kg에 달하는 말의 몸뚱이에 깔려 현장에서 즉사했다.;;

하필 경부선 전구간 전철화가 완료되기 하루 전날 저런 일이 있었다니..
마치 이 한열 열사가 새마을호 전후동력 디젤 동차가 운행되기 바로 전날 죽은 것과 비슷한 심상이 느껴졌다.

3. 복권

말 하니까 경마에 이어 복권 쪽으로도 의식이 흐르는구나. ㄲㄲㄲㄲ
세상의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들 중에는 지불한 액수만큼 성능이 무조건 발휘되는(그렇지 않다면 불량품이므로 교환· 환불 대상) 일반적인 물건만 있는 게 아니다. 아예 대놓고 모 아니면 도이고 복불복 형태여서 운에 맡겨야 하며, '꽝'이 있을 수 있는 물건도 있다. 요즘은 온라인 게임의 유료 아이템조차 랜덤박스라고 저런 형태로 나오는 게 있다고 들었다.

주식이나 투자용 금융 상품은 그 운빨이란 게 소비자에만 있는 게 아니고 경제 전반의 미래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운빨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소비자의 실력과 안목과 감도 필요하다. 또한, 경마만 해도 말과 선수에 대해서 뭘 좀 알아야 승률이 높은 말에게 베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 말고 진짜 운밖에 변수가 없는 것도 있는데, 애들을 상대로는 물건 자체에 당첨 여부가 고정적으로 담겨 있는 각종 뽑기나 과자 봉지 속 사은품 아이템이 있었다. (컴파일 타임??) 긁어 보면 당첨 여부를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복권은 나중에 당첨 번호가 추첨을 통해 따로 정해진다. (런타임??)

우리나라에서는 초창기에 나라가 워낙 가난하다 보니, 국가적으로 목돈이 필요할 때 무슨 국채도 아니고 복권을 비정기적으로 발행한 바 있다. 예를 들어 1948년 런던 올림픽 참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재민 복구를 위해, 6· 25 전쟁 피해 복구를 위해...
사람들은 당첨 대박을 꿈꾸면서 푼돈을 내서 복권을 사지만, 실제로는 이걸로 벌어들인 돈의 절반 이하 매우 소수만 당첨금 지급용으로 사용된다. 나머지 이윤은 당장 저런 일에 쓰였다. 이게 대한민국의 복권 시즌 1이었다.

그 뒤 제2기는 197, 80년대 주택 복권이고, 제3기는 1990년대에 엑스포 복권이니 체육 복권이니 하면서 온갖 은행과 공공기관, 지방 자치 단체에서 발행한 복권들이 난립하던 시기이다. 중앙 정부에서 복권을 발행하던 1기와는 양상이 확 달라진 셈이다. 그러다가 2002년 말, 스포츠토토와 로또가 전국을 평정한 시즌4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당첨금을 지급하는 은행이 국민 은행이다가 농협으로 굉장히 오래 전에 바뀌었더라. 허나, 본인은 이쪽으로 관심이 없다 보니 그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사실, 복권 몇 장 내지 몇만 원 판돈으로 카지노 몇 판 수준의 가벼운 노름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돈을 억울하게(?) 잃은 게 아니다. 약간의 즐거운 희망고문을 체험한 비용, 그리고 유흥을 즐기고 자리를 차지하고 서빙을 받은 게임비를 지불했을 뿐이라고 생각해야 된다. 내가 물리적으로 내는 돈과 저렇게 얻는 효과를 비교했을 때 가성비가 안 맞다면 안 하면 되고, 예산을 다 소모했다면 미련 없이 일어나야 된다.

저걸로 작정하고 생업을 대체하겠다? 대박 내겠다? 잃었던 돈을 되찾겠다? 세상에 그것만치 멍청한 망상이 없으니 단념해야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신병 수준으로 그런 멍청한 망상에 빠진 중독자가 적지 않은 덕분에 저런 업계가 잘 돌아가고 있다. ㅠ.ㅠ 도박의 최종 승자는 도박장 업주일 뿐이거늘 말이다. 복권도 마찬가지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최종 승자는 그냥 복권 발행사일 뿐이다.

다만, 저거랑 별개로.. 복권의 가격에 세금도 이미 포함돼 있었는데 당첨금에다가 세금을 굉장히 많이 또 떼어 가는 건 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든다. 나야 뭐 복권 고액 당첨자가 된 적이 없었고 그럴 일도 없으니 어찌 됐건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원론적으로만 생각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고위층들의 편법 비리 소식을 접하다 보면.. 평범하게 일하고 돈 버는 것에 대해 회의감과 허탈감,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이래 갖고는 집 장만이고 자녀 양육이고 노후고 미래가 안 보이니 자꾸 "인생한방" 쪽으로 관심이 늘어 간다. 바람직한 사회 분위기는 당연히 아닐 것이다. 다만, 이것도 마냥 서민들만의 탓은 아니고 인간의 욕심과 결부지어서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복잡한 문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9/16 08:36 2019/09/1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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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민 아파트

고급형으로 시작했던 한국의 원조 아파트와 달리, '시민 아파트'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아파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이건 서민· 빈민들을 좁은 서울 땅에 최대한 많이 수용하기 위해 나라에서 작정하고 건축한 저가의(언제까지나 상대적으로) 양산형 보급형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치면 경차인 셈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시골 빈민들이 아무 일자리나 구하러 무작정 닥치고 서울로 몰려드니.. 서울의 인구는 조선, 일제 시대 등을 통틀어 어느 때보다도 크게 증가하고 있었다. 이들도 발 뻗고 잘 곳이 있어야 한지라, 서울 시내엔 무슨 6· 25 피난민들이 몰렸던 부산처럼 무허가 판잣집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도시 미관을 해치기 시작했다. 당장 청계천 주변만 해도 195, 60년대 사진을 보면 판잣집들이 장난이 아니게 많이 늘어서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런 판자촌을 대체할 아파트들을 '시민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서울 곳곳에 시급히 짓게 되었다. 2천 가구에 달하는 주택을 공급할 작정이었기 때문에 과거의 고급형 아파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규모였다. 이 과업을 추진한 주역이 바로 당시 서울 시장이자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김 현옥이다.

시민 아파트라는 명목으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최초의 아파트는 1969년 4월에 최초 입주가 시작된 '금화 시민 아파트'였다. 경기 대학교 서울 캠퍼스의 바로 뒤쪽 언덕에 있다. 여기서 금화란 아파트가 자리잡은 기슭인 안산의 다른 이름이다. 무악산, 금화산 모두 같은 산을 가리킨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 서울에 이런 붕괴 직전의 폐가 흉가가 있다면서 매스컴을 탔던 그 문제의 아파트가 바로 이것이었는데.. 2015년에 다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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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2000년대 초부터 이미 안전 진단 검사에서 허구헌날 D급 E급 폐급을 받아서 오늘 내일 하고 있었지만, 입주민들은 여기가 아니면 딱히 갈 데가 없던지라 불안해하면서도 철거 직전까지 이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히 불미스러운 붕괴 사고는 안 나고 곱게 철거되긴 했다.

다른 유명한 시민 아파트로는 삼일 시민 아파트라는 게 있었다. 얘는 산기슭 위주로 만들어진 다른 시민 아파트들과 달리 평지인 청계천 근처에 지어졌으며, 유일하게 주상복합 형태이기도 했다. 1960년대 말 당시에 남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63 빌딩 이전) 지리적으로도 가깝던 삼일 빌딩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져서 이름도 똑같이 '삼일'이라고 붙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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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 고가 도로 위에서 아파트 한 동을 본 모습. 얘는 큰 그림을 찾기가 어려웠다)

삼일 시민 아파트는 2004년경에 철거되었다. 청계 고가의 철거와 비슷한 타이밍이다. 일부 상가 건물은 아직까지 현존하긴 하지만 아파트의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또 이 글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시민 아파트는 남산 기슭에 있는 회현 시민 아파트이다. 2개 동 중 2차분은 1970년 5월, 전국에서 마지막으로 건설된 시민 아파트이며 2019년 현재까지 철거되지 않고 입주민도 존재하는 유일한 시민 아파트이다. 역사적 가치를 감안하여 보존하느냐, 아니면 안전을 위해 철거하느냐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는데, 얘는 리모델링만 하고 철거까지는 하지 않는 것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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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ㄷ자 모양으로 한 동 형태이다. 두 동으로 따로 떨어진 게 아님.)

시민 아파트의 건설과 관련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흑역사가 있으니 바로 1970년 4월의 '와우 시민 아파트 붕괴 사고'이다.
서민용 양산형 보급형 아파트를 짓는다는 계획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다혈질 불도저 시장이 너무 짧은 기간과 너무 부족한 예산만 주고서 까라면 까 군대식으로 시공업체들을 쥐어짜며 밀어붙인 게 문제였다. 업자들도 물자 떼어먹기 비리와 졸속 부실 시공이 관행이었고.. 이 때문에 홍대 근처 와우산 기슭의 지반을 제대로 안 닦고 지었던 아파트 한 동이 해빙기에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같이 자빠져 버렸다.

이 사고로 30여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그나마 입주가 덜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정도 피해밖에 안 난 것이었다.
이 사고의 책임을 지고 김 현옥은 서울 시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후임인 양 택식 시장은 훗날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잘 완성했는데, 하필 개통식 때 영부인 저격 사건이 터져서 물러나게 되니 이래 저래 참 허무하다.

김 현옥 시장은 아파트로도 감당이 안 되는 판자촌 주민들을 지금의 성남 구시가지인 서울 외곽 변두리로 반강제로 이주시키기까지 했다. 거기 가면 서울시에서 주거와 교통과 각종 생활 인프라를 저렴하게 책임져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현장은 텐트 하나 달랑 쳐져 있는 허허벌판이었으며 약속이 지켜진 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광주대단지 사건 같은 병크가 터지기도 했다. 이것은 아파트 붕괴 사고와 더불어 흑역사의 양대 산맥이다.

시민 아파트들은 저렇게 시범타로 붕괴된 것을 차치하더라도 애초에 고급 프리미엄이 아니라 열악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상태가 급속히 악화됐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던 고가차도들이 2000년대 이후부터 하나 둘 철거됐듯, 시민 아파트들도 지금은 거의 다 남지 않고 주차장, 공원 등 다양한 형태로 바뀌었다. 회현 시민 아파트 제2동은 와우 아파트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그나마 더 튼튼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인왕산 수성동 계곡도 원래 거기에 옥인 시민 아파트가 있었는데 철거되고 원래 형태가 복원됐다고 들었다.

5. 그 이후

지금까지 얘기가 나왔던 게 일제 시대의 충정 아파트, 그리고 할배 때의 종암 아파트, 나중에 박통 때의 마포와 시민 아파트 시리즈들인데..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초창기 원조 아파트들과 건설 트렌드는 그럭저럭 다 다룬 것 같다.

1970년을 전후해서 너무 무리해서 지었던 시민 아파트는 아파트에 대한 대외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깎아내렸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그 인식을 개선하고자 아파트의 컨셉을 다시 고급화했으며, 그 첫 작품으로 1971년 말에 (1) '여의도 시범 아파트'를 내놓았다. 이름조차도 '시민' 대신 '시범(example!!)'이라고 바꾼 것이다. 여의도 시범 아파트는 국내에서 엘리베이터가 최초로 설치된 고층 아파트라고 한다..;;

아울러, 시민 아파트 자체는 망했지만 시민 아파트의 본래 취지이던 '서민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주택 공급'이라는 이념도 여전히 등한시할 수는 없다. 그 역할은 대한 주택 공사에서 분양하는 (2) '주공 아파트'가 담당하게 됐다. 주공 아파트 1호는 1972년에 지어진 반포 주공 아파트라고 한다. 그리고 74년에는 잠실 주공 아파트도 만들어졌다. 여의도와 강남의 이 아파트들은 아직까지 재건축되지 않고 건재하는 중이다.

1970년대에는 강남 허허벌판도 활발하게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3) 대치동 은마 아파트는 1979년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시간· 공간 배경이 그 바닥이다.
세월이 흘러 서울의 서쪽 양천구의 (4) 목동에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1985년부터 1988년에  걸쳐 입주가 진행됐다. 간선 도로가 독특한 일방통행 형태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끝으로, (5) 1988 서울 올림픽과 관련된 대규모 아파트 건설과 분양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을 방문하는 수많은 선수와 언론 기자들이 거주할 '올림픽 선수 기자촌 아파트'가 올림픽 공원 바로 옆에 동그란 방사형으로 지어졌으며, 올림픽이 끝나고 그들이 떠난 뒤엔 민간에 분양되었다. 그리고 가락시장 남쪽의 문정동에는 '올림픽 훼밀리타운 아파트'라고 해서 선수의 가족들.. 그러니 기자촌보다는 올림픽과의 관련이 약간 덜한 주변 사람들이 머물라고 역시 수천 세대 규모로 지어졌다. 세월이 흘러 이 건물들 역시 노후하여 재건축 대상에 올라 있다.

이런 식이면 요즘은 올림픽 한번 치르려면 경기장뿐만 아니라 주변에 아파트를 짓는 것도 필수인 듯하다. 그 많은 사람들을 짧지만은 않은 기간 동안(수 주 이상) 내내 호텔에 투숙시킬 수는 없으니 말이다. 서울 올림픽보다 최근인 평창 동계 올림픽도 동일하게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라는 유물을 평창군에 남겼다.
그 반면, 옛날에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에 치러졌던 1948 런던 올림픽 때는 세계가 가난하다 보니 군대 천막과 대학교 기숙사를 동원해서 선수촌을 꾸렸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서울과 수도권은 땅값이 치솟고 온통 아파트 천지가 돼 왔다. 그린벨트는 차근차근 풀리고, 논밭으로 놀고 있던 땅엔 건물이 들어서고, 군부대나 그에 준하는 엄한 시설들은 더 먼 데로 이전하고, 꾸질꾸질한 상가와 단독 주택, 낡고 낮은 아파트들은 재개발된다. 그리고 그걸로도 감당을 못 하니 서울 밖에 신도시가 개발되고 이것도 1기, 2기를 거쳐서 3기까지 만드네 마네 하는 지경이다. 일산과 분당이라는 1기 신도시 건설이 시작된 게 무려 노 태우 때였다.

원래 허허벌판이던 곳을 개발하는 거라면 차라리 나은데 재건축이라면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을 보상하고 이주시키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닐 것 같다. 원래 그 땅이나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보상에 동의하고 빠져나갔는데 거기에 세들어 살던 사람들, 애초에 그 부동산에 대해 온전한 권리를 갖고 있지 않던 사람들이 더 난리를 치는 편이라고 들었다. 뭐, 악의적인 알박기를 시전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6. 여러가지 관련 생각들

(1) 서울대나 카이스트 같은 일부 국립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교수 아파트, 그리고 예전에 천장산 근처에서 봤던 과학자 아파트는 어디서 어떻게 운영되는 걸까..?

(2) 옛날에는 아파트 이름이 그냥 지역명이나 시공사의 이름이 붙은 무미건조한 2~3음절 한자어 위주였지만, 2000년대부터는 그 이름도 브랜드화해서 온갖 외래어가 섞인 복잡한 명칭으로 바뀌고 있다. 자이, 래미안, 푸르지오, 블루밍 등등..

그래서 주택 공사조차도 주공이라는 싼티 나는 이름 대신 휴먼시아라는 그럴싸한 브랜드명을 개발했는데, 이게 웬걸 '휴거'(휴먼시아에 사는 거지 깽깽이..)라는 엽기적인 개드립 앞에서 버로우 타고 그걸 흑역사 처리한 바 있다.
쟤들은 LH라는 이니셜을 쓰는데 SH(서울 주택 도시 공사)는 또 뭔지?
옛날에는 주택 마련 복권이라고 해서 매주 TV에서 예쁘장한 아가씨들이 "쏘세요!" 소리와 함께 다트를 던지거나 공을 아무거나 꺼내는 추첨도 했는데.. 요즘도 그런 걸 하는지, 목돈 마련 절차가 어찌 되나 궁금하다. 나도 이런 건 조만간 알아야 할 텐데.. >_<

(3)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 남산 외인 아파트의 발파 해체 장면이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건물을 철거할 때나, 또 예전에 삼풍 백화점이 스스로 붕괴했을 때에나, 심지어 9· 11 테러 때 세계 무역 센터가 무너졌을 때에도.. 건물이 무너질 때는 정말 엄청난 양의 먼지 폭풍이 발생하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급격하게 주변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아주 가늘고 길게 야금야금 조용히 건물을 철거하는 것도 고급 기술이다.
일본에서 지난 2012~13년에.. 우리나라 영친왕이 머물렀던 것으로 유명한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의 신관을 천천히 철거했다. 수십~수백 배속 화면을 보면 건물이 차츰차츰 높이가 낮아지면서 땅으로 꺼져 사라지는 걸 볼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9/01 19:35 2019/09/0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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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오늘날 한국인들 대부분의 주거 형태, 또는 최소한 선호하고 지향하는 주거 형태는 아파트임이 틀림없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 수도권 중심부의 직장· 상권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집을 잡고 살려고 바둥대고 애쓴다. 하지만 결혼해서 처자식이 생기고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지면 어쩔 수 없이 더 멀고 저렴한 외곽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집이 서울 도심에서 몇 km 멀어질 때마다 주거비는 크게 감소하지만 교통비와 통근 시간이 얼마씩 증가하고 삶의 질은 그에 비례해서 떨어진다는 무슨 연구 결과가 나온 게 있다.
다만, 이공계 출신의 경우, 공장이나 연구소, 사업장이 아예 대놓고 지방에 있기 때문에 인서울에 집착하는 게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문돌이도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해서 외진 데로 발령 나면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래도 안정된 직업을 얻은 지방행이니 사정이 낫다.

이 와중에 아파트는.. 비록 층· 벽간 소음 같은 문제가 케바케로 있긴 하지만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몰려 살기 용이하게 해 주며, 행정 능률과 토지의 이용 효율을 끌어올리는 여러 장점들이 있다. 그에 비해 단독 주택은 특별히 넓은 정원 있고 차고에다 수영장 있고 개집 있고 다락방까지 있는 미국식 전원 생활이 아닌 이상, 왠지 꾸질꾸질하고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좁은 골목길에 치안 안 좋고, 주차 문제도 심각하고.. 더구나 집의 모든 관리를 주인이 일일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점은 느긋한 전원 생활형이라 해도 변함없다. 어지간해서는 그냥 월 몇만 원 관리비로 모든 걸 퉁치는 게 나아 보인다. 이런 점에서 단독 주택과 아파트의 차이는 자동차로 치면 자가용이냐 대중교통+렌트냐의 차이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뭐, 반대로 아파트도 좁고 열악하고 닭장 같은 곳은 단독 주택만도 못한 곳, 돈이 부족한 사회 초년생 신혼 부부나 잠시 세들어 사는 곳처럼 묘사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공동 주택도 급이 다 같은 게 아니기 때문이며, 사실 저게 미국에서 아파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기도 하다. 뭐, 뉴욕 같이 뽁짝뽁짝 대도시는 논외로 하고 말이다.

아파트는 여느 기숙사나 관사, 고시원 같은 곳과 달리, 화장실이 공동이 아니라 각 집마다 따로 있다. 더 좋은 곳은 안방에도 부부 욕실 같은 게 딸려 있기도 하다.
그리고 보통은 입구가 여럿 있어서 각 입구마다 층당 집이 둘만 있는 게 보통이다. 층수는 10층 이상으로 쭉쭉 잘도 올라간다.

하지만 맨션인지 빌라인지 하는 곳은 통상적인 아파트만치 높지 않다. 층수는 그냥 한 자리수이며, 입구는 하나만 있다. 그리고 한 층에서 모든 집들이 한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뭐, 아파트 중에도 이런 형태인 게 없지는 않긴 하지만, 입구별로 층당 집이 둘씩만 있는 아파트보다는 폐쇄성· 보안성이 약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초가집도 기와집도 아닌 이런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한국 땅에 언제 처음으로 등장한 걸까? 그리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주거용 아파트는 무엇일까?

2. 일제 시대

아파트라는 게 조선 내지 대한제국 시절에 존재했을 리는 만무하고.. 짐작하다시피 이건 일제 시대 때 일본인이 지은 건물이 최초이다. 1930년에 경성 미쿠니(三國)상사라는 곳에서 일본인 직원을 위한 관사를 지금의 회현동에 지었다고 한다. 그게 '미쿠니 아파트'라고 불렸다.

화장실은 공동이고 단순 기숙사· 숙소 같은 느낌을 탈피하기 어려운 구석도 있으나, 그래도 이게 한반도에서 상업· 업무가 아닌 주거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3층 이상짜리 건물이었다.
지금처럼 여러 동으로 이루어진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그냥 한 채가 전부였지만, 그 시절에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이 아파트 한 채 안에 수십 세대가 한꺼번에 입주해서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미쿠니 아파트는 1990년에 철거돼서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 뒤 1935년에, 같은 회사에서 또 지은 아파트가 바로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로 지어진 '유림 아파트'이다. 얘는 직원 관사가 아니라 일반인에게 임대· 분양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진정한 아파트였다. 뭐, 그래 봤자 그 시절에 이런 곳에서 살 만한 사람은 일본인밖에 없었다. 조선인은 부자라 해도 이런 데가 아닌 전용 한옥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얘는 '충정 아파트'라고 이름이 바뀐 뒤, 놀랍게도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고 심지어 거주민도 아직 있다! 2019년 현재 한국 땅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가 이 아파트이다.
위치도 어디 엄한 산기슭 비탈길이 아니다. 충정로 역 9번 출구로 나가면 100미터도 채 안 되는 전방에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흐음.. 녹색 도색이 참 추레해 보인다..)
이 아파트는 중간에 호텔로 용도가 바뀌었다가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1979년쯤에 충정로 도로의 확장 공사 때문에 일부가 헐리기도 했다. 그 대신 한 층 더 증축되어 5층이 됐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무허가 불법 증축이었으며, 헐린 것과 인과관계가 있는 증축도 아니었다.

충정 아파트 다음으로 1942년엔 대한 주택 공사의 전신인 '조선 주택영단'이라는 조직 명의로 한국인이 건설한 아파트도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는 게 없으며, 건물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한국인이 지은 아파트의 역사는 역시나 해방 후, 더 구체적으로는 6· 25 전쟁까지 끝난 뒤에나 제대로 시작될 수 있었다.

옛날 일본인들이 건물 하나는 튼튼하게 잘 만들어 놨나 보다. =_=;;; 구 서울 역이나 중앙청 건물처럼 말이다. 사실, 태평양 전쟁이 없었고 일제 식민지가 평화롭게 계속됐으면 아파트도 더 지어졌고 1940년대엔 경성에 아예 지하철이 들어설 수도 있었을 거라고 그런다.
일본은 아예 경기도 용인 정도에다가 일본의 수도를 옮겨서 본진으로 삼고, 조선인들은 지진 많은 자기네 섬이나 아니면 만주 벌판으로 쫓아낼 작정이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런 망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3. 해방 이후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는 1958년 11월, 고려대 근처의 야산 기슭에 지어진 종암 아파트였다(3개동). 철도나 원자로 같은 기간 시설, 공공시설이 아니라 민간 아파트 건물이 지어졌을 뿐인데 준공식 때 무려 할배 대통령이 참석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아파트의 완공이란 게 그 시절엔 보통일이 아니었다. 집집마다 편리하고 위생적인 수세식 화장실이 갖춰진 것조차도 그때는 최첨단 테크놀러지라고 언론 대서특필감이었으니 말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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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암 아파트는 37년을 존속하다가 1995년에 헐렸으며, 그 부지에는 다른 아파트가 재건축되어 들어섰다.

할배 시절은 워낙 가난하고 열악했으니 국내의 아파트 건축 기록이 이런 것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지어진 것은 역시나 그 다음 박통 때부터이다.
박통 때 최초로 지어진 아파트는 1962년과 1964년 두 차례에 걸쳐 완공된 '마포 아파트'이다. 얘는 우리나라 최초로 대규모 단지 형태를 표방하고(10개동 642세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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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동까지만 지어졌던 1962년 당시의 항공 사진. 광활한 공간이 참 인상적이다.)
이 아파트는 30년 남짓 존속하다가 종암 아파트보다도 더 이른 1991년에 철거되었다. 그 자리에는 마포 삼성 아파트(1994년, 14개동 941가구!!)가 들어섰는데, 얘는 우리나라 최초의 "재건축 아파트"(2세대!)라고 한다.

종암과 마포라는 두 원조 아파트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처음엔 상류층을 위한 고급형으로 출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중에 60년대 중· 후반에는 세운 상가, 낙원 상가 같은 주상 복합 아파트가 만들어졌으며, 미군 간부를 포함해 외국에서 모셔 온 VIP가 처자식 데리고 편히 지내라고 '외인 아파트'도 지어졌다. 이것들 역시 모두 서민과는 큰 관계가 없는 고급형이었다. 대학 교수, 정· 재계 인사, 인기 연예인 같은 계층이나 들어가 살 수 있었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9/08/30 08:33 2019/08/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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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년 말(12월)부터 국내에서는 잘 알다시피 5G 이동통신 기술이 상용화 됐다. 그런데 그런 뉴스가 전해지기 전부터 언제부턴가 집과 각종 공공장소의 와이파이 접속명은 뒤에 5G가 붙기 시작해서 iptime5G 이런 식으로 바뀌었고, 속도도 더 빨라지긴 했다.
똑같은 전자기파와 똑같은 랜선을 쓰면서 어떻게 인터넷 속도가 이렇게 계속 더 빨라질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컴퓨터 클럭 속도는 멈춘 지 15년 가까이 됐지만, 현재까지 아직도 치트키 수준으로 경이롭게 증가하고 있는 건 인터넷 속도인 것 같다.

2.
컴퓨터 키보드의 글쇠들 주변을 보면, 다른 먼지들이 쌓여서 더러워지는 건 이해가 되는데 1~2cm 남짓한 길이의 솜털들은 도대체 어디서 떨어진 건지 모르겠다.
손가락 끝이나 손바닥서 털이 나는 것도 아니고, 사람 얼굴에서 떨어진 털이 거기로 갈 리는 없을 텐데.. 알 수 없는 노릇이다.

3.
옛날에 비해 컴퓨터 장치들이 독립성이 강화되고 더 똑똑해지는 게 느껴진다.
가령, 옛날에 모니터와 이어폰은 전통적으로 자신만의 전용 단자가 있으며(직렬· 병렬 포트나 USB 따위가 아닌), 컴퓨터의 입장에서는 꽂든지 말든지 소프트웨어적으로 별 차이나 반응이 없던 물건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컴퓨터에서 각 모니터의 탈착을 감지할 뿐만 아니라 그 모니터의 종류, 적정 해상도와 주사율까지 알아서 조절하게 됐다. 그리고 사운드 쪽도 이어폰을 꽂은 상태에서 볼륨을 너무 높이면 컴퓨터가 사용자의 청력까지 걱정해 주는 경지에 다다랐다.

옛날 브라운관 모니터는 밝기 조절, 채도 조절, 상하좌우 shift/resize를 전부 별도의 다이얼을 돌려서 해야 했다. 그러나 요즘 모니터는 자체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램 UI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메뉴와 화살표, 엔터 같은 키만 있다.
아울러, 노트북의 터치패드도 단순히 마우스와 호환되는 포인팅 장비가 아니라 자체적인 옵션을 갖고 있고(각종 제스처 인식 여부) 드라이버를 잡아 줘야 하는 물건으로 탈바꿈했다.

4.
본인이 회사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는 CPU, 그래픽 카드, 메모리 등 하드웨어 전반이 전형적인 2010년대 중반급의 사양이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 그런데 화면의 반응이 왠지 굼뜨고 느리게 느껴져서 불편했다. 간단히 창을 마우스로 끌어서 이동시켜 봐도 모션이 매끄럽지 않고 미묘하게 랙이 걸려서 뚝뚝 끊기는 것 같았다.

듀얼 모니터 중 하나가 4K급 해상도여서 혹시 비디오/디스플레이 쪽으로 성능이 딸리는 병목이 존재하나 의문이 들었는데.. 그 예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쪽 문제인 건 맞지만 원인이 컴퓨터 쪽이 아닌 모니터에 있었기 때문이다.
모니터가 4K 해상도에서는 주사율이 30hz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옛날에는 그냥 평범한 모니터가 보통 50hz이고, 좀 좋은 제품은 60내지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주사율이 높으면 마우스 포인터의 이동 모습이 아주 부드러워져서 컴퓨터를 쓰는 인상, 경험, 느낌을 좋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유튜브 동영상만 해도 단순히 화질만 720~1080 HD급이 아니라 프레임 수도 60fps라고 기재된 게 있다. 그건 타 동영상에 비해 모션이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게 티가 나며, 감상할 때 심리적으로 굉장히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데 모니터에서 초고해상도를 구현하기 위해서 이런 중요한 주사율을 등가교환하다니...;; 컴퓨터가 성능이 아무리 좋아서 화면을 초당 수백 회 고치더라도 사람은 모니터 주사율보다 더 부드러운 화면을 볼 수 없게 된다.
LCD는 과거의 브라운관 CRT보다는 주사율이 낮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30hz는 너무 심한 것 같다.

과거에 영화라는 게 처음 발명됐을 때의 기본 프레임 수인 24fps는 30보다도 작은데, 사람이 끊김 없이 자연스러운 영상이라고 느끼는 가히 최소의 마지노 선으로 잡은 값이라고 한다. 이 숫자를 정하기 위해 인지과학적인 실험과 고찰이 들어갔지 싶다.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주사율은 교류 전기의 진동 주기와도 연계해서 설정되었다고 한다. 60hz이면 그와 연계해서 30hz (= 30fps) 같은 식이다. 물론 디지털 동영상에서 프레임 수나 최신 디스플레이에서 주사율은 굳이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정하기 나름이고 기계의 제조 원가나 전력 소모 대비 기술적 한계에 달려 있다.

일반 정지 영상에서 여러 안티앨리어싱 기법이 존재하듯, 영상에서도 motion blur라고 그야말로 애니메이션계의 안티앨리어싱에 해당하는 기법이 있다. 낮은 fps에서도 동영상이 뚝뚝 귾기지 않고 최대한 부드럽게 이어지듯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3D CG로 동영상을 생성하는 그래픽 소프트웨어 내지 각 프레임들을 이어서 동영상을 만드는 인코더가 그런 것까지 감안해서 넣어 주는 기능이 있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화면의 해상도와 프레임 수뿐만 아니라 종횡비 그 자체도 어쩌다가 지금처럼 바뀐 걸까? 어쩌다 보니 컴퓨터용 모니터는 가로로 더 길쭉해졌고 스마트폰은 세로로 더 길쭉해졌을까? 모든 영화들은 종횡비가 동일한 걸까? 이런 것도 알고 보면 내력과 사연이 많이 있는데 기회가 되면 차츰 더 알고 싶다.

5.
SSD는 뭐랄까.. 양날의 검 같다.
기계적인 동작이 없으니 소음 없고 전력 소모 적고, 엄청 빠르고.. 비싼 것만 빼면 하드디스크를 완전히 압도하여 조만간 주기억장치와 보조 기억장치의 경계를 허물 것 같은 신기술임이 틀림없다. 반도체 공학의 신비로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반도체 기반 보조 기억 장치들은 외형과 단자 형태에 따라 (1) USB 메모리 스틱, (2) SD 카드, 또는 (3) SSD로 나뉘는 듯하다. 그 중 SSD는 광학 디스크(CD/DVD)나 USB/SD와 달리, 하드처럼 같은 C: 고정식 디스크 역할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동작 원리는 기계식 하드와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그러니 하드/SSD만 일컫는 통합 명칭이 필요해 보인다. 고정 디스크? 하드라는 명칭이 너무 굳어졌다면 '기계식 하드/SSD 하드'라는 말이라도 쓰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어떤 로컬 디스크에 대해서 파일 시스템이야 요즘은 Windows 기준으로 NTFS가 아닌 곳이 없을 테니 별 의미가 없고.. 디스크가 기계식 하드인지 SSD인지를 되돌리는 API도 GetVolumeInformation 같은 급의 함수에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자동차가 엔진 제어 방식이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원인 불명의 급발진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처럼.. 디스크 역시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일상적으로 편리해진 대신에 뭔가 안정성이 떨어진 것이 있다. 단순 가격 차이를 떠나서 SSD는 기계식 하드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아직 5% 부족한 면모가 있다. 이 사이트의 글을 한번 읽어보자. "화 있을진저, 너희 백업 없이 SSD를 쓰는 족속들아!"

  • SSD는 한번 고장 나면 데이터를 살릴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매체이다.
  • 하드가 충격이나 자성에 약하다면 SSD는 열과 전기 충격에 매우 약하다. (불안정한 전류, 갑작스러운 정전, 컴퓨터 다운, 과열..) 취약한 분야가 서로 다름.
  • 하드는 배드 섹터를 빼고 나머지 부분이라도 읽고 복구가 가능하지만 SSD는 그런 것 없다.

하긴, 정전이 돼서 작업 중인 데이터를 날렸다고 해서 자기 컴의 RAM의 복구를 시도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SSD는 RAM과 같은 구조의 기억장치는 아니지만 SSD도 그만치 훅 가기 쉽다는 뜻이다.

본인도 새로 산 노트북을 사용한 지 불과 5개월 남짓 만에 SSD 불량으로 인한 교환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 경고가 더욱 공감이 갔다.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꼼꼼히 백업하지 않던 기록과 소스 코드를 일부 날렸기 때문이다.
하드디스크는 떨어뜨리고 물에 집어넣은 것도 국가 수사 기관 차원에서 작정하고 털면 무슨 끈질긴 생명체마냥 내용을 어느 정도 복구해 낸다고 한다. 하지만 SSD는 정말로 훅 가기 때문에 이거 뭐 정보 보호와 보안 관점에서는 더 편리할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 노트북에서 자주 발생하던 잔고장이 액정 화면의 접촉 불량, 그리고 키캡 이탈이었는데.. 2010년대에 구매한 제품에서는 그런 건 없고 하드와 SSD의 접촉 불량을 더 자주 겪었다. 그러고 보니 운영체제를 재설치하는 통과의례도 Vista 시절부터는 없어졌다. 자동차고 컴퓨터고 모두 지난 20여 년 동안 참 많이 바뀐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9/08/18 19:35 2019/08/1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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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N의 군사 활동 양상

6· 25 사변 당시의 유엔군과 지금의 유엔 평화유지군의 관계는, 구 일본군과 지금의 일본 자위대와 비슷한 관계/위상이지 않을까 싶다. 전자가 후자로 바뀌면서 뭔가가 크게 너프 됐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날의 유엔 평화유지군은 옛날처럼 그렇게 적극적으로 누구 편을 들고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옛날 유엔군이 지금처럼 파란 전투모 쓰고 흰 탱크 몰면서 위장이라고는 완전히 포기한 외형으로 북괴와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계 대전 때는 연합군, 6· 25 때는 유엔군, 그리고 걸프 전쟁 때는 다국적군이 뭔가 정의의 편에 선 진영이었다. 우리나라는 인류 역사상 거의 전무후무한 수많은 나라들의 도움을 한몸에 받았다.

2. 탄약창

육군 부대들 중에서 탄약창은 돌아가는 스타일이 공군과 가장 비슷한 곳이지 싶다. 근무 인원에 비해 엄청나게 넓으며, 행군하고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곳을 방어한다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생방 훈련을 빡세게 하는 것도 공군과 비슷하다.

그도 그럴 것이 탄약창이 보관하고 취급하는 물건들은 전투력의 원천인 총알을 날아가게 하는 폭발력을 내는 위험한 화학 물질들이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움직이게 하는 석유만큼이나 취급에 절대 주의해야 한다. 공격을 받아서 탄약들이 비좁은 곳에서 연쇄적으로 유폭이라도 한다면 Doom 2의 Barrel o' fun이 현실에서 벌어지게 된다..;;
뭐 그래도 탄약창이 비행기를 띄우는 곳은 아니니 공군 기지처럼 반드시 넓은 평지에 있다거나, 활주로 비스무리한 게 있고 새를 쫓아내는 인원을 운용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편, 군함의 경우 배 한 척이 육군으로 치면 병사들의 생활관과 전차와 자주포와 곡사포와 탄약창 역할을 몽땅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다른 곳을 많이 맞아서 부서질 경우, 항해 불가능 상태가 되고 물이 새서 침몰할 수 있다. 하지만 탄약고를 맞아서 탄약들이 폭발한다면.. 평범하게 침몰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큰 배라도 화염 버섯구름과 함께 두 동강 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박살날 수 있다. 승조원들은 거의 다 죽는다..;;

3. 지휘통제소 지하 벙커

공항이나 항공모함에는 관제탑이 있고 철도에도 모처에 종합 사령실 내지 관제 센터가 있다. 그것처럼.. 군대에도 높으신 분들이 모여서 작전 회의를 하는 비밀 지휘통제실이란 게 있다. 지난 2011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을 지휘했던 그런 장소 말이다.

공항 관제탑이야 시야 확보 때문에 눈에 잘 띄는 높은 곳에 있지만, 철도나 군대의 비밀 장소는 그런 거 없고 일반인들의 눈에 안 띄는 곳에 꽁꽁 숨겨져 있다. 폭격을 맞아도 안전한 지하 벙커 형태가 대부분일 것이다.

안 그래도 군부대는 전지역이 민간인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보안 시설인데, 이런 지휘통제실은 보안 시설 중에서도 더욱 삼엄한 보안 시설이다. 저기는 병(상황병 보직)과 간부를 막론하고 신원 조회를 통과한 인원만 출입할 수 있다. 평범한 생활관이나 연병장 정도를 사진 찍다가 걸리면 카메라를 빼앗기고 벌금이나 영창 같은 경징계를 받는 수준에 그치겠지만, 저기서 얼쩡거리다가 걸리면 아마 군사 재판에 회부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지하 벙커가 한 곳만 있지는 않다.
먼저 관악산 남태령의 수방사 부대 지하에 B1이라는 벙커가 있어서 대통령이 취임 첫 해에 관례적으로 여기를 방문한다고 한다. 대통령은 취임 첫 해에 경호처 요원들의 경호 시범을 관람한다던데 벙커 방문도 그렇게 하는가 보다.

그리고 의외로 서울대 내부 지하에도 B5라는 벙커가 있는데... 한국어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B1과 B5는 어차피 같은 관악산이기도 하고 별로 멀지도 않으니 둘이 지하 통로로 연결도 돼 있다고 한다. 또한, 용산의 국방부 청사 지하에도 B2라는 벙커가 있다. (그럼 B3, B4는??)

우리나라 정부뿐만 아니라 미군 역시 자체적인 지하 벙커를 만들어 놓은 게 있다.
일단 서울 안의 미국 영토인 용산 주한미군 부대 내부에 'CC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있다. 참고로 CC는.. 스타크래프트 테란의 건물 명칭의 이니셜과 같다.
과거 전땅크가 12· 12 사태를 일으켰던 당시에 노 재현 국방 장관은 홈그라운드인 국방부 B2 벙커는 너무 가까우니 위험하고.. 근처의 저 미군 벙커로 피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악산뿐만 아니라 청계산에도 군부대가 많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지만.. 알고 보니 본인이 예전에 오른 적이 있는 상적동 쪽에 'CP Tango'라는 이름으로 주한미군 지하 벙커가 하나 더 있다. 우와.. 2005년에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던 '콘돌리자 라이스' 여사가 성남 서울 공항을 통해 방한한 뒤 곧장 저기를 방문하여 매스컴을 탄 적이 있다.

미군 지하 벙커는 대구의 미군 기지에도 있으며, 앞으로 주한 미군 기지들이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로 통합되고 나면 거기에도 응당 생길 것이다.
CP에서 P는 GP처럼 post를 뜻한다. CC보다는 격이 낮은 듯..

북한은 6· 25 때 평양 시내가 폭격 맞아서 아주 박살이 난 경험이 있고, 미 제국주의 원쑤들의 첩보 위성도 많이 의식할 테니, 지하를 들쑤셔서 별 시설들을 다 만들어 놨지 싶다.

4. 국군 유해의 항공 송환

지난 2012년 2MB 시절에는 1950년 가을, 6· 25 전쟁 중에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군인들 유해에 대한 조사가 미국과 북한 합동으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국군으로 밝혀진 유해가 12구가 하와이를 거쳤다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레카 시절에는 추가적인 송환 실적이 없다가.. 지난 바로 작년에 7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64구의 유해가 추가로 발굴되어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해를 운구한 수송기가 우리나라 영공에 진입하자 이번에는 우리나라 전투기들이 작정하고 출동해서 수송기를 호위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수송기를 향해 거수 경례를 했으며, 에어 포스 원 명대사보다 더 멋진 말을 현실에서 남겼다. (☞ 링크)

"오랜 시간 먼 길 거쳐 오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히 호위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때는 유해 수는 훨씬 더 많지만 7년 전과 달리 신원과 유족이 완전히 확인된 유해는 없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전투기들이 멋지게 날아가는 모습을 같은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들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카메라맨이 별도의 비행기를 타고 그쪽을 보면서 촬영한 것들이다.
이런 영상물은 저렇게 언론 보도 자료로도 쓰이고 군 내부에서의 정훈 자료로도 쓰인다. 더구나 군용기는 아무 때나 원하는 대로 쉽게 띄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한번 떴을 때 NG 없이 잘 찍어야 한다.

공군에는 군용기의 공중 촬영만 전담하는 부사관 보직이 따로 존재한다고 한다. 타군의 여느 사진병보다는 훨씬 더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병이 아닌 간부가 맡는다.

5. 개념 연예인

훈훈한 이야기 하나 더 하고 글을 맺겠다.
지난 2016년 말, 배우 이 시영 씨가 MBC의 연말 연예인 시상식에서 버라이어티 신인상을 받았었다. (☞ 링크, 정지 화면 자막 나열)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 출연한 것 때문인데, 저분은 여느 꼴페와는 정반대로 마치 독립운동가 이 시영이 떠오를 정도로 소감을 정말 건전하고 개념 있게 잘 말했다.

"이 상을 제가 받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일주일도 안 되게 군대 다녀와서는 상을 받는다는 게 너무 죄송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고 계시는 국군 장병들께서 주시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고맙게 받겠습니다. (...) 지금까지 많은 군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제가 안전하고 행복한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


개인적으로 완전 감동 받았다. 영화 <언니>가 저런 훌륭한 배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쫄딱 망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8/10 08:35 2019/08/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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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ndows 명령 프롬프트에서의 UTF-8 지원

본인은 1년 남짓 전에 UTF-8 인코딩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Windows도 콘솔 환경에서 UTF-8이 지원되는 날이 올까 썰을 푼 적이 있었다.
이건 Windows 10이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현실이 됐다. chcp 65001이 가능해졌다. 명령 프롬프트와 배치 파일에서 깨지는 문자열 걱정 없이 파일 이름이나 각종 메시지를 지정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임이 틀림없다.

사실, 콘솔 자체는 문자의 특정 인코딩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임의의 바이트 나열을 주고받을 수 있는 '파일'일 뿐이다. 그러니 콘솔의 코드 페이지가 437이건 949건 65001이건 전혀 상관없이 프로그램은 모조리 생까고 아무 인코딩으로나 유니코드 문자열을 printf 같은 함수로 출력할 수 있다. 가령, chcp 949 상태이더라도 consoleapp.exe > output_in_utf8.txt 는 깨지는 문자 없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C# 같은 언어로 콘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System.Console.WriteLine을 해 보면, 닷넷 프레임워크가 현재 콘솔의 코드 페이지 번호에 따라(아마도 GetConsoleOutputCP 함수) 문자열을 1바이트 단위 기반으로 변환해서 출력한다.
그러므로 chcp 949 상태에서 듣보잡 한자를 찍으면 깨진 문자열이 아니라 완전히 정보가 소실된 ?로 바뀌어 찍히며, 이는 >를 이용해 파일로 redirect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chcp 65001을 해 줘야 이런 손실이 없어진다.

상황이 이러한데.. 현재 운영체제는 새로운 셸인 PowerShell 말고 기존 명령 프롬프트에 대해서는 chcp 65001이 그냥 가능은 하다는 선에서만 지원을 멈춘 듯하다. 하위 호환 문제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UTF-8를 디폴트로 구동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다. 새로운 콘솔 프로세스를 생성해서 거기 코드 페이지를 65001로 변경하는 작업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꽤 번거롭고 지저분하다. Windows의 콘솔 API들은 자기 자신의 코드 페이지를 변경하는 것만 직통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하긴, 437이니 949니 하는 ANSI 코드 페이지라는 건 유니코드를 지원하지 않는 레거시 앱들과의 호환 때문에 존재하는 개념이다. 그러니 시스템의 기본 코드 페이지가 65001이더라도 저런 디폴트 fallback용 코드 페이지는 계속해서 존재해야 할 것이다.
배치 파일은 @echo off로 시작하는 게 거의 관행인데, @를 거의 메타커맨드 식별자화해서 앞에 @encoding 이런 식으로 인코딩을 지정하는 것도 아주 황당한 생각은 아닐 것 같다.

더 궁극적으로는 굳이 콘솔에만 국한되지 않더라도, Windows API에서 A 함수와 W 함수는 UTF-8이냐 UTF-16이냐의 차이밖에 없어지는 날이 올까? UTF-8을 native로 지원한다는 표식이 된 프로그램에 한해서라도 말이다.
물론 요즘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이야 처음부터 W 함수만 쓰겠지만.. 타 플랫폼에서 1바이트 문자열 기반으로 유니코드를 지원해 온 프로그램을 포팅할 때는 저런 접근 방식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레거시 프로그램들과의 호환은.. 지금 마소에서 high DPI 지원을 위해서 기를 쓰고 제공하는 샌드박스 가상화 계층만 만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나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manifest 파일에 native UTF8을 지원한다고 명시해 주는 식으로 말이다.

2. 메뉴 간소화

기능이 너무 많아서 메뉴가 "파일, 편집, 보기, 도구"부터 시작해 10개를 훌쩍 넘어가고, 각 카테고리별로 항목들이 20개 가까이 주렁주렁 달린 방대한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자. 사용자에게 굉장히 위압적으로 보일 것이다.

더구나 이런 메뉴들은 static한, 고정된 기능 나열 목록일 뿐이다. 파일 내지 글꼴 같은 다이나믹한 목록이 아니며, 사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기능을 곧장 고를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아니다. 프로그램의 모든 기능을 골고루 다 쓰면서 지내는 사용자는 당연히 극소수이고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런 압박스러운 메뉴를 어찌해 보려는 노력이 먼 옛날부터 있었다.
자주 쓰는 기능과 그렇지 않은 기능을 프로그램 개발사에서 답정너 분류한 뒤.. 메뉴를 반토막 간소화해서 보여주는 옵션을 갖춘 프로그램의 예로는.. 도스 시절 MS QuickBasic IDE, 그리고 아래아한글 2.1과 그 이후 버전이었다. 메뉴에서 사라진 기능이라 해도 단축키로는 물론 상시 접근 가능하다.

아래아한글의 경우, 워디안/2002 이전의 3.x~97에도 간소화 메뉴 옵션이 있었던가 그건 잘 모르겠다.

마소에서는 딱 2000년대 초에 일명 Personalized menu라는 걸 도입했다. 사용 빈도를 동적으로 체크해서 오랫동안 안 쓰인다 싶은 메뉴는 감춰 버리고, 메뉴를 꺼낸 지 시간이 좀 오래 지나거나 맨 아래의 ▼을 눌러야만 메뉴가 마저 다 나오게 했다.
Windows 2000/ME의 시작-프로그램 메뉴, 그리고 MS Office 2000/XP/2003 정도에서 이런 메뉴를 볼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마소의 입장에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진행한 실험이었으며, 실제로 메뉴 첫인상을 좀 단순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사용자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아서 최종적으로는 FAIL 판정을 받았다. Office 길잡이 같은 급의 병맛 흑역사는 아니었지만 몇 년 못 가 없어졌으며, 결국 2000년대 후반부터는 리본 인터페이스가 도입되었다.

참고로 Visual Studio IDE는 일반인이 쓰는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그런지.. MS Office의 UI 엔진을 그대로 쓰던 시절에도 Personalized menu가 쓰인 적이 없었다. macOS에도 저런 게 도입된 적은 없지 싶다.

3. macOS

한편, macOS는..

  • 응용 프로그램 패키지(.app)는 하위 디렉터리와 그 밑의 여러 파일들로 구성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Finder에서는 단일 파일인 것처럼 취급해 준다.
  • 그 반면, zip 압축 파일은 그냥 단일 파일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에 들어있는 하위 디렉터리와 파일들을 실제 파일과 다를 바 없이 seamless하게 표시해 준다.

없는 디렉터리를 있는 것처럼 표시하고, 반대로 있는 디렉터리를 숨기는 가상화를 구현하느라 애 많이 썼을 것 같다.
app 패키지도 안드로이드 apk처럼 그냥 압축 파일 컨테이너에다 넣어 버리지 싶은 생각이 든다. 성능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은 건지?

그리고 macOS는 GUI 응용 프로그램은 app이고 콘솔 프로그램은 그런 껍데기 없이 a.out 실행 파일인 건가? 일반 실행 파일과 달리 app은 표준 C 함수 말고 NSWorkspace 소속의 코코아 API를 써서만 실행할 수 있는 거고? (내부의 하드코딩된 경로에 일반 실행 파일이 있긴 함) 그 관계를 잘 모르겠다.

내 경험상 mac은 프로세스 간 통신이 Windows보다 제약이 심하고 폐쇄적인 것 같다. 특히 훅킹 같은 게 없기 때문에 macOS용으로 Spy++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없는 듯하다.
게다가 한 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으로 키 입력을 보내는 게 요 1, 2년 전쯤 시에라에서부터 막혔다. 사용자가 제어판을 열어서 동의를 찍은 프로그램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macOS에서는 날개셋 편집기나 외부 모듈 같은 프로그램은 만들어도 날개셋 입력 패드 같은 구현체는 만들 수 없겠다. 또한 외부 모듈에서 키 입력을 보내는 날개셋문자도 구현할 수 없겠다. =_=;;

4. 맥 계열과 타 PC와의 차이

(1) 같은 파일이 컴퓨터를 옮기니까 크기가 몇십 MB씩 차이가 나 있어서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Windows는 전통적으로 1024 기반의 MiB 단위를 쓰는 반면, 맥은 그냥 깔끔하게 1000 단위로 자리수를 매겨서 발생한 차이였다.

(2) 그러고 보니 맥OS는 메시지 박스에서의 버튼 배치 방식도 Windows와 다르다. '예'에 해당하는 1순위 버튼이 색깔도 파랗게 강조된 형태로 대화상자의 맨 오른쪽 아래에 있다. 이건 뭐 그냥 디자이너의 취향 차이인 것 같다.

(3) 일반적으로 키보드의 좌측 하단에는 modifier key들이 ctrl, fn, win, alt의 순으로 배치돼 있다. 그러나 애플 제품들은 맥북/아이맥 구분 없이 다 fn, ctrl, alt, cmd(win)의 순이기 때문에 1234가 2143으로 기묘하게 바뀌어 있다.
서로 알력 싸움에 따로 노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두 종류의 컴퓨터를 드나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게 불편하기 그지없다..;;

5. 안드로이드와 iOS

요즘 전세계에 보급된 스마트폰들에서 안드로이드와 iOS의 점유율이 적게는 7:3, 많게는 4:1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 둘을 더하면 진짜 99.99%이고, Windows Phone 등 타 운영체제는 이제 유의미한 점유율을 완전히 상실한 듣보잡이라고 한다. 마소에서도 Windows 기반의 자체 모바일 운영체제는 이미 포기하고 접었고..

오픈소스 진영에다가 구글· 삼성의 막강한 지원 덕분에 안드로이드는 확실한 주류가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iOS가 무시 가능한 처지인 건 아니다.
이건 마치 전세계 도로의 우측통행 vs 좌측통행의 점유율과 비슷한 구도인 것 같다. 내 기억으로 저것도 비율이 3:1 내지 4:1쯤이지 싶다.

좌측통행이 분명 비주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극소수인 건 아니며, 영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존재감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 선진국들이 엄연히 좌측통행을 하고 있다. 그러니 완전히 없어질 수가 없다.
이런 좌측통행의 점유율과 위상이 마치 오늘날 iOS의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오래된 생각이다. (CPU 업계에서 리틀 엔디언과 빅 엔디언의 점유율 비율은 어찌 되었나 궁금해지기도 한다만..)

그러고 보니 세벌식도 여전히 1%가 채 안 되고, 내가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위가 약한 마이너이구나..;;
더구나 지금 세벌식을 쓰는 사람들도 자기 자식에게까지 차마 세벌식을 권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걸 생각하면 일면 우울해진다. 타자가 편리한 것보다 당장 생활에서 불편하고 번거로운 게 더 크게 느껴지는가 보다.
그나마 명분이 옳고 객관적으로 이론적으로 성능이 우수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8/04 08:34 2019/08/0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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