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 43 : Next »

1. 대한민국의 역대급 흑역사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전국 곳곳에서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참사· 재해를 겪곤 했다. 그런데 사고 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만들어졌던 김 영삼 말고, 김 대중 시절에 특별히 정말 가슴 아픈 비극이 벌어진 게 있었다. 바로 1999년 6월 30일,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이다.

이건 본인이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그때 현장에서 구조됐던 유치원생이 지금은 20대 후반의 성인 사회인이 됐을 정도이니, 세월이 많이 지났다.
작년 12월 9일엔 SBS 꼬꼬무에서 이 사건을 다뤘었다. (☞ 링크)
이야기꾼이던 장 도연 씨는.. 그 당시에 새까맣게 타고 녹은 숯덩이 시신만으로도 부모가 자기 아이를 바로 알아봤다는 말을 하다가, 자기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모습이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방송을 탔다..)

씨랜드 참사는 보면 볼수록 어쩜 이렇게 최악에 최악의 상황만 골라서 일이 터진 건지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 소망 유치원에서는 하필 며칠 전에 서울 강동 교육청 주관의 "여름방학 생활 지도를 위한 원장 회의"에서 유아 숙박 수련 활동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놓고 무시하고 캠핑을 보냈다.
  • 그런데 캠핑 보낸 곳은 하필 온갖 불법과 비리를 감행해서 용도 변경하고, 싸구려로 허술하게 지어지고 화재에도 엄청 취약한 수련원이었다.
  • 그 많고 많은 방 중에서 하필 그 유치원생들이 자고 있던 3층 방 301호에서 화재가 났다.
  • 그리고 하필 그 방에만 화재 발생 당시에 인솔 교사가 전혀 없었다.
  • 하필 그때 화재경보기도, 소화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초기 진화가 안 됐다.
  • 하필 그 수련원은 교통도 엄청 불편한 곳에 있어서 소방차가 오는 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다.

그 (가)건물은 온통 가연성 단열재로 둘러져 있었기 때문에 화재는 기름에 불 붙은 듯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건물은 어지간한 목조건물 이상으로 정말 활활 잘 타서 깡그리 잿더미로 변했다. 목조건물보다 훨씬 더 짙은 유독가스를 내뿜으면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때 씨랜드 수련원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인솔 교사들이 무려 544명이나 있었다. 그 중 소망 유치원은 방 두 개를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인 301호에서 자던 유치원생 18명은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하고 울부짖다가 전원 몰살 당했다.
거기에다 2층에서는 부천에 소재한 어느 유치원 여자애 한 명만 유일하게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했고, 애들을 구조하다가 순직한 교사와 강사가 4명까지 추가로 총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2. 화재의 원인

그런데 정작 이 처참한 화재가 최초로 발생한 원인은 의외로 썩 명확하게 규명돼 있지 않다. CCTV 기록이나 목격자 같은 것도 없다.
국과수의 공식적인 조사 결과는 모기향 불이 실수로 번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피해자 유족을 비롯해 씨랜드 건물의 구조를 불신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며, 아마 누전 합선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모기향설은 화재 책임 면피를 위한 구실일 뿐이라고 말이다.

불이 복도 같은 엄한 데가 아니라 애들이 자던 301호 안에서 시작됐다는 건 명백한 팩트이다. 이게 성립하는 한, 본인은 전기설도 무작정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 거기서 추워서 전열기라도 가동했거나 더워서 에어컨을 틀었거나 뭔가 전기를 써야 누전 화재가 발생할 수 있지 않겠느냐 말이다.

그런 저렴한 가건물에 에어컨이 있었을 리는 없고, 전등이나 선풍기 하나 남김없이 다 끄고 잤을 테고.. 요즘처럼 개인 스마트폰을 충전할 것도 없던 시절에 그 방에서 전기 화재가 발생할 껀덕지가 내가 보기엔 별로 없다.
실제로 그 애들은 갯벌 체험에 물놀이 등 하루 종일 노느라 정신없었고, 숙소에 들어가서는 덥네 춥네 따질 것도 없이 곧장 몽땅 기절했다고 한다. 쟤들은 중고딩이나 초딩도 아니고 겨우 6~7살짜리 유치원생임을 기억하자. 야영 캠프 수련회 같은 건 아무리 못해도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는 된 뒤에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 반면, 촛불이나 모기향이 재수 없어서 밤중에 곁의 가연성 물질에다 엎어지기라도 하면 대형 화재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씨랜드의 경우도 불이 난 것 자체보다는 건물 자체가 가연성 자재로 뒤덮여 있었던 게 더 문제였을 뿐이다.
그러니 국과수나 법원에서 있지도 않던 모기향을 대놓고 주작한 게 아니라면, 이건 국가 기관의 공신력 있는 기록을 심하게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것도 무슨 한강 의대생이 실족사 했냐, 아니면 타살 당했냐 같은 문제처럼 보인다...

………라고 썼는데, 사진을 다시 찾아보니 저 수련원의 방마다 에어컨 실외기처럼 보이는 물건이 있긴 하다. 평양 아파트에도 없다는 물건이 그래도 저 씨랜드 수련원 컨테이너 가건물에는 있었던가 보다. 그걸 가동하고 있었다면 진짜 전기 화재였을 수도 있고.. ㅡ,.ㅡ;;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작동하지 않은 소화기

그리고 그 당시 뉴스 보도 영상을 보니..
씨랜드 수련원 현장에서 나뒹굴던 소화기는 그래도 압력 게이지가 달려 있는 신형 축압식 소화기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구형 가압식 소화기는 폭발 위험 문제로 인해 1997년 무렵부터 국내에서 판매와 유통이 금지됐다. 축압식 소화기는 더 안전하고, 스프레이처럼 손잡이를 쥐고 있는 동안만 소화액을 끊어서 분사할 수 있으며, 분출력이 고갈되어 고장 났으니 교환해야 된다는 걸 게이지를 통해 바로 알 수 있어서 여러 모로 좋다.

씨랜드 수련원은 1998년에 개업했다고 한다. 그러니 쟤들도 나름 폐급이 아니라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신형 소화기를 갖추긴 했던 것이다. 무슨 10년 묵은 쌍팔년도 폐급 가압식 소화기도 아닌데 왜 저것마저 불량이어서 동작하지 않았는지는 개인적으로 좀 이해가 안 된다.
설마 실제로 동작하는 소화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인테리어 가짜 소품을 갖다놨던 걸까..??

즉, 이 건물은 용도 변경 부실 시공이 문제이지, 시설의 노후화가 문제일 여지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소화기도 그렇고 전기 시설도 그렇고.. 그래서 본인은 화재의 원인에 대해서도 무슨 피복 벗겨진 전선이 떠오르는 전기설을 선뜻 공감하지 않는 것이다.
관례적으로는 원인 불명의 화재는 몽땅 전기 때문으로 적당히 얼렁뚱땅 때우고 조사를 끝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긴가민가한 원인을 조사하느라 미관에 좋지도 않은 현장을 마냥 세월아 네월아 보존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모기향이라는 다른 원인을 굳이 찾아낸 게 조사를 더 꼼꼼히 한 것에 가깝다.
이 시체가 소사· 익사를 한 건지, 아니면 먼저 죽고 나서 물불에 던져진 건지를 판별할 수 있듯, 전선도 여기서 직접 불이 난 건지 아니면 다른 화염에 휩싸여서 불탄 건지 정도는 육안 판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진짜로 누전 때문에 발생한 화재는 통계 수치보다 드물다.

4. 관련 인물의 처분과 근황

소망 유치원은 사고가 매스컴을 탄 당일 곧바로 허가가 취소되고 폐쇄됐다. 30대 중반이던 유치원 원장은 1심에서 금고 5년이 선고됐지만, 훗날 감형되어 2년 반만 복역하고 2001년 말에 출소했다.
이 사람의 잘못은 교육청의 지침을 무시하고 수련원 입소를 강행한 게 작고, 화재 때 애들을 제대로 구조하지 않고 먼저 대피한 게 크다고 하겠다. (직무상 긴급피난 불허)

사고 10주기인 2009년경엔 이 사람의 근황 인터뷰가 월간조선에 실렸다. 유아교육 쪽 일은 완전히 연을 끊은 채, 딸 키우는 주부로 잠적하며 살고 있댄다. (☞ 링크)

그 사건에 대해서는 지금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차라리 그때 자기도 화재 현장에서 죽거나 화상이라도 입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때 교사들은 301호의 바로 맞은편 314호에 있었고 불이 났다는 걸 정말로 몰랐을 뿐이라며.. 특히 밖에서 삼겹살과 쏘주 회식 중이었던 건 절대 아니라고 여전히 강하게 부인했다. 본인 포함 교사들은 다 교회 다니는 신자여서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면서..

물론 건물을 이탈하지 않았다고 해도 애들을 구조하지 않고 혼자 빠져나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형사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저 주장은 본인이 보기에도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그냥 "이디 아민이 개싸이코 망나니 폭군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식인까지 한 건 절대 아니다~"(요리사의 증언) / "내가 보기로 타이타닉 호는 침몰 후 두 동강이 난 건 절대 아니었다"(사고 후 청문회에 불려간 모 승무원의 증언) 이런 부류의 실드처럼 들린다.

다음으로, 이 따위 건물을 갖고 영업을 한 씨랜드 수련원 사장은 죄가 당연히 더 무거우니 더 큰 벌을 받았는데.. 보도 자료에 따르면 처음엔 금고 5년에다 징역 2년 6월.. 도합 7년 6월이 선고되긴 했다. 금고와 징역을 조합할 수도 있는 건가?
기간으로만 따지면 삼풍 백화점 이 준 회장의 형량과 동일하지만, 이것도 나중에는 5년 정도로 감형됐다.

삼풍 그룹 회장이야 만기 출소 후에 얼마 못 가 죽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출소 후에도 같은 부지를 갖고 어떻게든 편법으로 돈 벌려고 난리를 치다가 지금은 거기 바로 근처에다 제주도 컨셉의 '야자수 카페'를 만든 것 같다. 이거 경영자가 씨랜드 사장과 동일 인물이라는 게 정황상 거의 확실해 보여서 뒤늦게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동일 이름, 동일 나이, 동일 지역!!

하긴, 그 사람이 씨랜드와 무관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씨랜드와 전혀 무관합니다. 악의적인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엄정 대응하겠습니다"라고 공지를 진작에 당당히 했을 것이다.
전재산을 피해자 보상금으로 뜯겨서 파산· 몰락하고 타지에서 조용히 찌그러져 귀양살이를 하는 게 아니라.. 멀쩡히 재기해서 같은 곳에서 희생자 위령비 하나 없이 다른 장사나 하고 있는 건.. 파렴치가 선을 넘는 것 같다. 이 사실이 꼬꼬무의 보도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버렸으니 이제는 저기도 사업에 애로사항이 꽃피지 싶다.

5. 씁쓸한 결말

요컨대 씨랜드 참사의 주범은 (1) 건물주, (2) 건물주와 결탁하고 뇌물 받아서 건축과 사업 허가를 내 준 부패 공무원, (3) 구조 조치 제대로 안 한 교사 정도의 세 그룹으로 나뉜다. 1과 3의 처벌도 너무 가볍거니와 2는 처벌이 없다시피했던 게 울화통이 터진다. 그나마 2를 구속이라도 시키는 데 일조한 어느 양심선언 공익제보 공무원은 눈총을 견디다 못해 이듬해에 퇴직을 하게 됐다. 이게 암담한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열나게 노력해서 보릿고개는 탈출했어도 사회 관행은 8, 90년대가 되도록 여전히 미개했다. 법과 원칙과 안전 의식이 없고 온갖 적당히 편법이 만연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게 아니라, 공무원들을 접대하고 기름칠 하면 되게 만들 수 있다. 남들은 다 그렇게 하는데 혼자 안 하고 있으면 자기만 바보가 된다. 법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는데, 보안 취약점을 이용해서 해킹해서 악성 코드를 주입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합숙 캠프에 보내지 말라는 교육청 지침도 딱히 교통사고나 화재 가능성까지 내다보는 선견지명 차원에서 만들어진 건 아니었을 것이고, 그 정도는 꼬우면 생깔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 차가 전혀 없는데 빨간불 신호 기다리는 게 귀찮아서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죽은 애들을 화장해서 서해안의 씨(sea)랜드 수련원과는 정반대 방향의 강원도 동해 바다에다 뼛가루를 뿌리고, "OO야, 하늘나라에서 꼭 만나자~~"라고 부모가 울부짖는 걸 보니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고 보니 301호는 제일 끝이고 탈출 계단도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어서 탈출하기 제일 쉬운 위치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저렇게 됐던 걸까! 이걸 생각하니 나도 괜히 또 열받는다.. >_<

서울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시절에 메달을 땄던 유명 아이스하키 선수 아주머니가 이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그 뒤의 조치로 인해 더 상처를 입고 나라에 대한 애정이 싹 사라져 버렸으며, 이 때문에 메달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 간 게 매스컴을 탔다.
미개한 관행은 집권 여당이 누군지하고는 별 관계 없는 총체적인 문화, 의식, 분위기, 풍조 문제였다. 긴 시간 동안 많은 수업료와 진통을 치르면서 차차 개선되었을 뿐이다. 그동안 달라진 게 없는 건 아니다.

확실히.. 옛날엔 세월호보다 더 처절하고 더 큰 사건 사고가 벌어졌어도 2010년대 같은 미친 유언비어 정치 선동과 반정부 시위 폭동 따위는 없었던 것 같다. 이건 지금이 옛날보다 더 퇴보한 게 명백한 사항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20 08:35 2022/01/20 08:35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77

6. 대한국 국제

작년 가을엔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국내외로 대히트를 쳤었다.
거기에는 끝부분에 김 희원 같은 방탄-_-유리 전문가를 떠올리게 하는 유리 전문가 출신의 게임 참가자가 나온다.
그런데 이 사람 프로필이 "1987년부터 모 유리 공장 재직"이어야 하는데, 1897년으로 잘못 기재되어 나가서 구설수에 올랐었다.

1897년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었던 해이다. 그만치 엄청난 옛날이다.
이건 이제 중국 눈치 볼 필요 없이 "우리나라의 군주도 '왕-전하'가 아니라 '황제-폐하'이다~"
우리도 단순히 독립국을 넘어서 '제국'이기도 하다고 자뻑에 가까운 대외 선포만 한 것에 가깝다.
서 재필의 독립문이 완공된 때도 얼추 1897년 저 때였다.

중국, 일본보다도 영토가 작은 주제에 국호에 大짜를 붙였으며,
거느리는 식민지 하나 없지만 그냥 어감이 간지 나 보이니까 제국인 거다.
왕조가 바뀌었다거나 나라의 정체성이 바뀌었다거나 한 것도 전무하고, 자동차로 치면 그냥 외형만 바뀐 페이스리프트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대한제국은 보통은 그냥 조선의 역사의 연장선으로 뭉뚱그려져서 취급된다.

1899년 8월 17일엔 '대한국 국제(國制)'라고.. 흔히 한국 최초의 근대식 헌법이라고 불리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건 내용을 볼 때 근대적인 민주 헌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한국 대황제'에다가 북괴 최고존엄을 집어넣으면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다.

1조부터 9조까지 내용을 요약하면.. 대한국 대황제(= 고종!!)께옵서는 입법 사법 행정 군사 뭐든지 자기 꼴리는 대로 할 수 있다는 말밖에 없다. 궁금하신 분은 검색 앙망..
게다가 글을 적을 때 '대황제'라는 단어는 무조건 엔터를 눌러서 줄을 바꿔서 맨 첫 단어로 나오게 써 놨다~!!!! ㄷㄷㄷㄷ

북괴에서 최고존엄 돼지 이름에다가 고유한 문자 코드를 집어넣은 것과 거의 똑같은 짓이 아닐 수 없다. -_-;;
신민에게 보장되는 권리 따위는 한 마디도 없고, 제4조에 왕권에 도전하는 신민 나부랭이는 신민의 도리를 어긴 죄인이라는 위협만 있을 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제정됐던 일본이나 러시아 등의 제국주의 헌법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게 바로 옛날 조선 구한말의 실체였다. 이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에 조선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체제가 바뀐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축복인지를 알 수 있다.
솔직히 개천절과 한글날 대체공휴일을 줄 바에야, 그건 집어치우고 제헌절이나 다시 빨간날로 되돌렸으면 좋겠다.

남한은 대한민국으로 진화했고 아직 국민 의식이 옛날 선각자들을 못 따라가서 큰일인 반면,
북한은 옛날 조선에 가까운 형태로 유턴해서 되돌아갔고 상황이 일제 시대보다 더 나빠졌다는 거다.

제대로 된 국민 의식 교육을 하려면 각종 시설의 창립일은 제발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 이후를 기점으로 잡도록 하고, 조선이나 북한 따위와는 달라진 것, 차별화하면서 더 좋아진 것을 부각시키고 강조해야 할 것이다.

7. 보복

우리나라의 역사상 매우 잔혹하고 야만적인 법이 존재했던 사례를 꼽자면 6· 25 사변의 초기에 군대에서 시행됐던 (1) '즉결처분'.. 그리고 먼 옛날 고려 시대 초기(5대 경종)에 잠깐 전국적으로 시행됐던 (2) '복수법'을 들 수 있겠다.

(1)은.. 개전 초기에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니 "군기가 빠져 가지고 명령 없이 무단 후퇴하는 놈은 재판 없이 바로 총살이다"를 의도한 것이었다. 10대 고등학생들까지 쥐어 짜내서 겨우 사흘 동안 극악의 야메 날림 훈련만 시킨 뒤에 총 쥐어 줘야 했던 시절이니 더 말을 말자..
(2)는.. 호족들 민심을 달래려 했나 정확히는 모르겠다. 말 그대로 revenge 복수라는 뜻이다~!

(1)과 (2) 모두, 사소한 이유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놈을 제멋대로 죽여도 되는 살인 면허로 변질됐다. 그러니 둘 다 거의 1년 만에 허겁지겁 전면 금지되고 폐지됐다.
무분별한 사적 보복은 금지하고 막아야겠지만, 그래도 반대로 우리나라 공권력의 형벌은 죄질에 비해 너무 약하긴 해 보인다. 특히 음주운전 인명 사고 같은 거.. 최소한 생명은 생명으로 갚도록 해야 한다.

성경에도 나오는 "눈은 눈으로, 입은 입으로"는 그 자체는 전근대 시절의 야만적인 법이 절대 아니다. 자기가 당했던 것 '이상'으로는 절대로 더 보복하지 말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8. 일본 -- 전쟁 금지, 고문 금지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벌였다가 완전히 박살 나고 무조건 항복한 이력으로 인해, 향후에도 군사력이 싹 봉인 당해 버렸다. 최상위 법인 헌법에서 제9조에 “국력을 동원하는 적극적인 전쟁과 무력 행사를 영원히 포기한다”라고 명시되었다. 일본과 한국은 20세기 전반에는 식민 지배를 하느냐 당하느냐로 행로가 갈렸다면, 후반에는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와 군대에 안 가면 안 되는 나라로 계속해서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

다음으로 일본 헌법의 제36조는 저 9조 “침략 전쟁”만치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것도 제국 시절의 악행을 금지하고 청산한다는 뉘앙스가 적극적으로 들어간 흔적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공무원에 의한 고문 및 잔학한 형벌은 절대로 금지한다”

과거에 쟤들이 식민지 조선인뿐만 아니라 자국민을 상대로도 저런 짓을 적극적으로 했었기 때문에 ‘절대로’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았으면 말이 우리나라 헌법 제12조처럼 평범하게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정도로 평범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일제도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에게 내려지는 형벌 자체는 특별히 심하게 잔인하거나 야만적이지 않았다. 사형 집행도 평범하게 교수형이나 총살형이었지, 나치 독일처럼 이동식 단두대로 목을 뎅겅 짜른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100인 참수 경쟁 같은 건 별개로 생각해야 할 전쟁 범죄인 거고..)

단지, 죄를 묻는 수사를 위한 고문이 악랄했으며, 그런 관행이 전체주의 군국주의 분위기 하에서 묵인되었을 뿐이다.

고문이 행해지는 목적은 딱 둘이다. (1) 혐의를 인정하라, 이게 아니고 혐의 자체는 분명한 경우라면 (2) 누가 시켜서 한 짓인지 배후를 불어라..;;
이렇듯, 한국과 일본의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vs "천황은 국가와 국민의 상징이다"만큼이나 제정된 배경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는? 출입국관리법 제11조 제7항에 근거하여, 일제 시대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사람을 학살· 학대하는 일에 관여한 사람의 입국을 금지하고 있다.
후손까지 몽땅 금지하는 게 아닌 이상, 지금이야 세월이 워낙 많이 지나서 저건 사문이나 다름없는 규정이 됐을 텐데.. 일제 강점기의 트라우마가 법에 이런 식으로 반영돼 있다. 이런 정서는 반대로 일본의 법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형법에 특정 중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넘어 ‘처단’한다고.. 뭔가 법을 제정한 사람의 감정적인 빡침(?)까지 느껴지게 하는 단어가 몇 군데 남아 있었다. 그 죄는 다른 죄보다 특별히 심각하고 죄질이 나쁘다고 여겨졌던 것 같다.

하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이 단어는 삭제되거나 그냥 평범한 처벌이라고 순화되었다. 제일 마지막에는 제87조 내란죄에만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의하여 처단한다”라고 남아 있었지만 이 역시 조만간 사라질 예정.. 프로그래밍 언어 API로 치면 deprecated된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14 19:34 2022/01/14 19:34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75

1. 절도와 강도

남의 물건을 몰래 슬쩍 하는 절도(도둑)하고, 남을 폭력으로 위협해서 물건을 빼앗는 강도 중에 어느 게 더 나쁜 범죄일까? 오늘날의 관점에서야 후자라는 것에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옛날에 특히 중세 서양 말이다. 결투와 린치라는 게 관습상 허용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근성과 깡 의지드립", "이기든지 죽든지" 기사 내지 무사의 사고방식이 훨씬 더 강했던 살벌한 시절엔 관점이 좀 다르기도 했다.

강도는 당당하게 남을 대면하는 수고라도 감내해서 물건을 빼앗은 것이지만 절도는 남이 안 보는 데서 물건을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더 비열하고 치사하다..;; 그러니 절도가 더 나쁘다. 엥..??
물론 피해자가 저항하다가 죽거나 다치기까지 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고 가정할 때 말이다.

오죽했으면 서양, 특히 영국에서는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전쟁터에서 잠수함이나 저격수조차 신사답지 못한 치사한 전술이라고 깠다. 그 심정이 이해된다.
옛날에 스파르타에서는 애들한테 일체의 보급을 안 줘서 도둑질까지 조장하는 극한의 생존 훈련을 시켰는데.. 훈련생이 배가 고파서 민가에 침입해 음식을 훔쳐 먹다가 걸리면 물론 벌을 받았다. 그런데 벌을 받는 이유가 도둑질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능하게 걸리고 잡혔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들도 다 "강도가 절도보다 차라리 더 정정당당하고 남자답다"=_= 사고방식의 일환인 것 같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살(단순 비관)은 여느 살인 이상의 매우 큰 죄로 간주되어 왔다. 여기에는 "자살까지 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악바리 있게 노오오오력하고 버티면 무슨 일인들 못 해? 나약해 빠져갖고 어디 부모님이 주신 생명을 감히.." 이런 괘씸죄라는 가치 판단이 가미되어 있다.

그런데 관점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세상을 비관하다가 나 혼자 죽을 수는 없다면서 옛날에는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칼부림을 한 미친놈도 있었고, 차를 몰고 여의도 광장을 질주해서 사람들을 치여 죽인 아재도 있었으며.. 지하철 열차에다 확 불을 질러서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만든 싸이코도 있었다. 그런 놈(강도)들에 비하면 혼자만 곱게 자살한 사람(도둑)은 오히려 선량한 게 아닌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악바리 있게 노오오오력을 삐딱하게 하면 어디서 또 무슨 사건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설마 이것마저도 도둑보다 강도가 더 낫다는 식의 논리로 실드가 가능하겠느냐 말이다.

그러니 오늘날은 범죄나 인권에 대한 관점이 과거하고는 달라졌다. 무분별한 똥군기 근성 의지드립은 심리 치료나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잘못되고 부적절한 짓으로 간주되어 지양의 대상이 됐다. 그건 욥기에 나오는 욥의 친구들의 조언처럼..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면서 잔인하고 사람 인성만 파괴하는 뻘소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강도와 도둑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살펴보는 게 문득 흥미롭게 느껴진다.

2. 묵비권

2000년대 이후에 개정됐다고는 한다만..
과거에 중공의 형사소송법은 묵비권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93조에 “범죄 혐의자는 수사관의 질문에 사실 그대로 이실직고해야 한다. 꽝~”이라고 쓰여 있었다. ㄷㄷㄷㄷ

위반 시의 처벌 규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정말 대륙의 기상이 느껴진다.
이런 사고방식에 미란다의 원칙이라든가 “형사소송에서 자백만이 피고인에게 유일하게 불리한 증거일 때는 그건 유죄 증거가 될 수 없다” 같은 사고방식이 딱히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냥 “네 이놈, 니 죄를 니가 알렷다~! / 죄를 불 때까지 죄인을 매우 쳐라”이다. =_=;;

3. 무고, 위증 등..

본인은 살인· 강간 같은 물리적인 흉악 범죄에 대해서만 사형 제도를 지지하고 "심은 대로 거둔다" 원칙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입만 뻥긋해서 짓는 죄에 대해서도 절대로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희롱 예방과 피해자의 권리 교육을 그렇게도 세뇌에 가깝게 시켰으면, 반대급부로 무고· 위증죄나 장난전화 같은 죄의 심각성과 해악을 가르치는 교육도 응당 시키고 처벌도 엄하게 해야 한다.

무고죄는 무고가 들키지 않을 경우에 억울한 피해자가 받을 형량에 비례한 벌을 받게 해야 한다.
강간을 무고한 자는 강간범에 준한 벌을 받아야 한다. 형사 처벌이 아니면 민사로라도 징벌적인 위자료를 부과해서 가해자를 쫄딱 망하게 하고 참교육 시켜야 한다. "아님 말고" 식으로 남을 무고는 절대로 못 하게 해야 한다.

이건 너무 너무 너무 너무*100 당연한 소리 아닌가..?? 요즘 성범죄자 누명은 50여 년 전의 빨갱이 누명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참 공교롭게도 중국이 사이다 같이 법을 집행한다. 무고를 당한 사람이 받아야 할 형벌을 무고를 한 사람에게 그대로 선고한댄다.;;

4. 탈옥

한편으로 독일인가 일부 외국의 법은 탈옥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이 자유를 찾아 최대한 노력하는 것 자체는 마치 전쟁터에서 군인이 적군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정당한 권리로 본다는 발상이다. 도로 잡히더라도 탈옥 기간 동안 정지됐던 나머지 형기만 살면 된다.

피고인 당사자의 자백 여부와 무관하게 검사가 먼저 증거를 찾아내고 유죄를 입증해야 하듯, 죄수가 탈옥해 버리는 것 자체는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죄수의 관리를 제대로 못 한 국가의 책임일 뿐이다. 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
단지 탈옥 과정에서 공공물자를 부수거나 교도관을 해코지 했다면 그에 대한 처벌만이 추가된다.

5. 자살, 안락사 관련

사형 제도라든가 동성애, 낙태 같은 것은 성경의 관점에서는 비교적 명확하게 답이 나와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현실 세상의 법에는 안락사라든가 자살 방조 같은 좀 미묘한 상황에 대해서 범죄의 성립 기준도 다루고 있으며, 이 기준은 각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뇌사자의 연명 치료만 중단하는 정도인 소극적인 안락사는 마취와 보험조차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아닌 한, 종교적으로도 거의 문제가 없다고 여겨진다. 그 정도면 살인이 아니라 그냥 신이 그 생명을 데려가도록 놔 주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노인은 "나는 나중에 혹시 의식을 잃더라도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하지 말고 죽게 내버려 두세요. 자식들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각서를 미리 유언처럼 써 놓고 평소에 지니고 다니기도 한다.
사실, 성경이 쓰여지던 옛날에는 애초에 그런 연명 치료 의술 자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게 법적으로 긴가민가 문제될 여지도 없었다.

그런데... 스위스인가 유럽의 어떤 나라는 "자기가 살고 싶지 않을 때, 더 추해지기 전에 존엄하게 죽는 것도 인간의 권리이다"를 확대 해석해서 굉장히 적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한다. 자살하려 하는 사람에게 방법을 추천해 주고 독약을 건네주는 것 정도는 아예 죄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안락사 시술(?)을 많이 한 모 유명 의사는 죽음의 장사꾼이라는 악명을 얻었으며, 주변 외국에서도 그리로 원정 자살(!!!)을 하러 가는 막장 사례까지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자살을 억제하려고 언어 차원에서 불필요하게 '死, 殺'자가 들어가는 단어들까지 몽땅 없애는 중이다. 자살골 대신 자책골, 사구간 대신 절연 구간, 심지어 언론에서는 자살이라는 말도 일체 안 쓰고 죄다 '극단적 선택'이라고 한다. 마포대교 같은 곳에는 몽땅 CCTV로 도배를 해 놓고 감시하며, 다리 난간에서 오랫동안 서성거리는 사람만 있으면 곧장 경고 방송을 내보내고 119 요원을 출동시킨다.

북한은 그런 거 없이 누가 자살하면 그냥 유가족에게 연대 책임을 물어 해코지를 할 뿐이다. 경애로운 장군님이 다스리는 지상락원에서 감히 자살이라니, 불경죄 괘씸죄를 유가족에게 부과시키는 셈이다. 뭐, 일본은 누가 전철에서 투신 자살을 하면 철도 회사에서 열차 지연으로 인한 손해 위자료를 유가족에게 청구하긴 하는데.. 이건 형사상의 괘씸죄는 당연히 아니고 그냥 민사상의 피해 보상일 뿐이다.
이런 것도 나라마다 법률적인 관점이 제각각인 것을 알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12 08:35 2022/01/12 08:35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74

호박 이야기

1. 늙은 호박의 모양 분류

하루는 퇴근길에 집 근처 채소 가게를 보니, 호박이 좀 있었다.
단호박들이 상자에 담겨서 여러 개 진열돼 있고, 그 옆에 농구공만 하게 생긴 큼직한 늙은 호박도 '딱 하나' 외로이 놓여 있었다. "날 데려가 주세요~" 같은 눈길...

그렇잖아도 그 당시엔 호박죽이 없이 한 주를 보낸 상태였으니 이 아이를 사서 집에서 곧장 쪼개고 동지와 크리스마스용 호박죽을 쑤었다.

표면에 상처 같은 게 보여서 혹시 속에 썩은 부위가 있지 않나 염려도 했지만.. 분해해 보니 내부엔 그런 조짐이 다행히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이전의 호박들과 달리, 속에는 여전히 초록색 껍질층이 있었다. 하지만 완성된 죽의 색깔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는 내가 지금까지 실물을 봤던 늙은 호박들 중에는 제일 공처럼 둥글고 주름이 별로 없고, 별로 납작하지 않고 종횡비(?)가 괜찮았다. 무게는 3.7kg 정도 나가더이다. 모양이 저러니 속을 파내서 잭꼴랜턴 만들기에도 적합할 것이다.

(1) 저렇게 동글동글하고 주름도 별로 안 보이는 놈
(2) 그리고 적당히 납작하면서 주름도 적당히 보이는 놈
(3) 거의 약과나 타이어 모양이 떠오를 정도로 제일 납작하면서 주름도 아주 깊게 패여 있는 놈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래도 뭔가 (3)이 통상적인 맷돌호박의 범주에 가장 정확히 부합하는 놈일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인터넷으로 주문한 걸로는 대체로 (2)만 접했다. 그리고 (1)은 이번에 처음 봤다.
(1)을 조선호박이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잭꼴랜턴을 만드는 데 쓰고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에 모티브도 제공한 호박도 (1)형이며, 얘 역시 서양식 호박이다. 종류가 좀 헷갈린다.

늙은 호박은 여느 작은 채소· 과일들과 달리, 상표 붙이고 포장하거나 수박처럼 손잡이 달린 그물줄로 싸서 팔지 않는 것 같다. 수박조차도 1인 가구 증가에 맞춰서 반 통씩 팔거나, 더 작게 개량된 애플수박 같은 품종으로 개량되어 팔리는 형국인데, 늙은 호박은 혼자 취급하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고 취급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니 작은 단호박이 더 각광받고 있고, 늙은 호박은 end user 대상뿐만 아니라 즙이나 죽 형태의 가공용으로도 많이 팔리기는 것 같다.

2. 호박의 품종과 상태 분류

호박의 명칭은 품종 명칭과 상태 명칭이 섞여 쓰이는 게 개인적으로 좀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보통 애호박 아니면 늙은 호박으로 구분하는 편인데, 이건 품종이 아니라 상태(색깔)에 따른 분류이다. 품종으로 분류하는 게 더 정확하다.

앞서 1에서 언급했던 둥글둥글 커다란 전통적인 호박은 '맷돌호박'이라고 불리는 편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1)~(3)을 모두 통틀어서 '일반호박'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얘는 열매가 커다랗게 맺힌 뒤에도 밭에서 여름과 가을 햇볕 쬐며 오래오래 누렇게 삭혀서.. 단풍 들듯 '늙은 호박'이 된 뒤에 수확하곤 한다. 그러면 단맛도 느껴지고 영양가도 많다. 얘는 죽을 쑤어 먹는 게 제일 일반적이다.

어지간히 잘 자라서 늙은 호박은 무게가 수 kg 이상이 넘어간다. 몹시 단단해서 잘 잘리지 않을 뿐 아니라, 수박처럼 자르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상태로 사과처럼 껍질을 도려내고 속의 내용물을 긁어내야 하니.. 해체하는 난이도를 과장 좀 보태 표현하면 무슨 가축 도축에 맞먹는다. 뭔가 느리고 시골스럽고 억척같은 느낌이 난다.

그래도 늙은 호박은 그런 단단한 껍질 덕분에 상온에서 수 개월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어둡고 통풍 잘 되는 곳, 5~15도대의 서늘한 온도에서 땅이나 다른 호박에 직접 닿지 않게 보관하는 게 제일 이상적이다. 너무 온도가 낮아도 좋지 않으니, 냉장고에 넣을 필요가 없다.

맷돌호박 말고, 오이나 가지처럼 길쭉하게 생긴 호박은 서양호박 내지 주키니 호박이라고 불린다. 늙은 호박 중에도 서양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서양호박이라는 명칭도 좀 부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얘는 그냥 초록색일 때, 즉 '애호박/풋호박' 상태일 때 얼른 수확해서 해체 따위 없이 몽땅 통째로 먹는다. (껍질이나 씨가 제대로 형성되기 전이어서 몽땅 꿀꺽 가능~)

탁탁 썰어서 조림· 볶음을 만들기도 하고, 된장국에 넣거나 국수 고명으로 쓴다. 얘를 주 재료로 삼아서 호박국을 만들기도 한다.
걸쭉한 죽으로 바뀌는 늙은 호박보다는.. 애호박이 자기 원형을 더 유지하는 형태로 먹히는 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의 통념과 반대로 맷돌호박이 시푸르딩딩한 풋호박인 모양은 평소에 매체에서 구경하기가 극히 어렵다. "그 상태로는 상품으로 나오질 않기 때문"이다. 직접 개인 텃밭에다 호박을 심어서 가꿨는데, 심기를 너무 늦게 심어서 누렇게 익기 전에 부득이하게 호박을 따 버렸을 때에나 볼 수 있다.

얘도 애호박의 일종이기 때문에 먹는 덴 아무 문제 없다. 단지, 늙은 호박만치 비싸게 팔 수 없고, 결정적으로 덩치는 큰 주제에 늙은 호박처럼 간편하게 "오래 보관할 수가 없다." 즉, 식품으로서가 아니라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문제될 뿐이다.

또한, 주키니 호박도 오래 놔두면 저렇게 누렇게 변한다.
하지만 기왕 제일 오래 삭힐 거면.. 덩치가 왕창 커지고 양이 많아지는 맷돌호박이 더 수지맞으니 '늙은 주키니'는 보기가 힘든 게 아닐까 싶다. 이런 건 말 그대로 외국에서나 볼 수 있다.

* 단호박은 시간과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이 글에서 언급을 생략하였다.;;

3. 자이언트 호박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 아프리카코끼리(육상)와 대왕고래(해상)라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열매를 맺는 게 가능한 식물은 호박이다. 수박만 해도 호박 같은 급의 슈퍼/자이언트(..) 에디션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호박은 식용으로 키운 일반적인 열매만 해도 저런데, 품종과 재배 환경 마개조를 통해 닥치고 제일 크고 무거운 호박을 만드는 게 신기록 분야로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는 경남 의령에서 호박 농사를 짓는 양 재명이라는 분이다.
보도 자료를 검색해 보면 2010년에 113kg짜리 호박을 키웠고(☞ 링크), 그로부터 10년 뒤인 2020년엔 465kg짜리 호박을 만들었는가 보다(☞ 링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호박을 만들려면 좀 특수한 방법으로 심고 물과 영양 공급과 온도 조절을 아주 세밀하게 최적화해 줘야 된다.
그리고 얘는 크기만 엄청 클 뿐, 맛이나 영양은 별로 없고 그냥 수분뿐이기 때문에 사람이 먹을 물건은 못 된다고 한다. 그냥 장식· 관상용인 셈이다. 보면 색깔부터가 빠져서 허옇다..;;

F1 경주용 자동차는 시동 걸고 운전하는 방법이 워낙 특수하기 때문에 정작 일반 공도는 제대로 주행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주 특수한 용도에 너무 맞춰져 버려서 범용성이 떨어진 셈이다.

4. 멧돼지에 의한 피해

멧돼지가 밭에 침입해서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사건이야 전국적으로 한두 번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보통은 고구마나 옥수수의 피해가 많은 것 같으나.. 보도자료를 검색해 보면 나무에서 열리는 사과, 여름 과일인 수박, 심지어 벼나 콩까지도 당하는가 보다.

그래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혹시 호박은..??? 멧돼지가 호박도 먹을까?
유의미하게 검색돼 나오는 건 아마추어 개인용 텃밭에서 발생한 다음 두 건인 것 같다. (☞ 2020년, 2021년) 호박밭이 멧돼지한테 털리면 대략 이런 꼴이 나는가 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라니는 그 단단한 늙은 호박을 저렇게 깨 부숴서 먹지 못한다. 그러니 저건 빼박 멧돼지의 소행이라고 한다.
2021년자 블로그의 경우, 근처의 다른 글을 보면 심지어 진흙 목욕을 한 흔적까지 있다고 하네.. ㄲㄲㄲㄲ

애호박도 아니고 그 껍질 단단한 늙은 호박을 주둥이의 엄니로 부숴서 잘 쳐먹었는가 보다. 변두리의 과육 부위보다는 중심부의 씨앗과 펄프 면발을 먹은 건지..?

5. 호박 내부 발아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호박 열매는 시퍼런 풋호박 애호박 상태일 때 따면 열매를 몽땅 다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잘 익은 늙은 호박은 껍질이 단단해지고 중심부에 딱딱한 씨앗들도 형성됐기 때문에 통째로 먹을 수 없다. 요리하려면 껍질을 벗기고(가죽) 속을 긁어내서(내장) 가장자리의 과육 부분만 추출해야 한다.

호박 열매가 익으면 중심부는 과육이 아니라 뭔가 펄프(?), 촉수 같은 축축한 재질로 바뀌면서 그 공간에 씨앗이 들어선다.
호박을 잘라서 단면을 보면.. 씨가 들어있는 중심부는 생각보다 징그럽게 생겼다. 뭔가 저그 건물의 입구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수박과 달리, 씨가 있는 구획과 과육이 있는 구획이 구분되어 있으니 인간의 입장에서 먹기는 더 편하다.

3kg 남짓한 늙은 호박 한 덩이 안에 씨앗은 거의 200개에서 500개 가까이 들어있다고 한다. 어쨌든 수십 개는 절대 아니고, 수백 개 단위이다. 세포 분열의 위력이 이런 것이군..

늙은 호박은 단단한 껍질 덕분에 상온에서도 몇 달 정도 보관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오래 보관 가능한 건 아니다. 겉의 과육이 아니라 축축한 중심부부터 곰팡이 피고 상하고 썩을 수 있다고 한다. 내부가 썩는 주된 징조 중 하나로는 열매의 내부와 연결되어 있는 꼭지-줄기의 연결이 갑자기 끊어지는 거라고 한다. 마치 낙과될 때처럼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심지어는.. 호박 안에서 호박씨가 스스로 싹이 터 버리는 경우도 있다! 적당히 수분과 영양소가 있으니 여기가 땅 속이라고 판단했는가 보다.
하지만 싹을 틔워 봐도 호박 안은 어두컴컴 암흑천지일 뿐이니, 천상 콩나물 수준으로밖에 자라지 못하고 그걸로 아웃이다. 뭐, 그래도 이런 일은 매스컴을 탈 정도로 극히 드물게 발생한다.

그 가녀린 호박 덩굴 줄기의 말단에서 벌어지는 일은 참 오묘하기 그지없다. 식물은.. 씨앗도 그렇고 수확된 열매도 그렇고 산 거랑 죽은 것 경계가 참 애매한 거 같다...;;
그리고 호박은 영양과 온도 같은 환경적인 한계가 없으면 이론적으로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으며, 덩굴이 몇 미터 길이까지 뻗을 수 있을까..?? 이것도 노무노무 궁금하다.

이상이다.
호박은 꼬불꼬불 덩굴과 노란 꽃, 둥글둥글 꿀단지처럼 생긴 열매가 참 매력적인 채소이다. 겨울 동안 다들 호박 많이 드시기 바란다. ^^ 본인은 무슨 호박 농가의 이익을 위해서 이런 말 하는 게 아니다.
검증된 실험까지는 아니지만.. 요 한 달간 체중이 약간 줄고 살이 빠진 게.. 아침과 저녁에 호박죽을 먹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

Posted by 사무엘

2022/01/09 08:34 2022/01/09 08:34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73

1. 귀여운 새끼 사자

동물과 관련하여 혼자 보기 너무 아까운 유튜브 영상이 있으니 이것부터 같이 보도록 하자. (☞ 링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사자 새끼가 너무 귀엽지 않은가? =_=;;
꺄옹~ 꺄옹~ 이렇게 울면서 혼자 돌아다니다가.. 엄마인지 누나인지가 쓰다듬어 주니 좋아서 꺄르르~ 웃는다. 말 못 하는 짐승한테도 이런 지능과 감성이 있는가 보다.

하지만 (1) 변온동물 내지 (2) 표정 변화나 발성 능력이 없는 동물, (3) 심지어 헤모글로빈 기반의 빨간 피가 흐르지 않는 동물 정도 되면 딱히 이런 면모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인간이 잡아먹거나 죽이는 것에도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갖게 되는 듯하다. 어류나 곤충 같은 것 말이다.

2. 개고기와 돼지고기

본인은 잔인한 동물 학대에는 물론 반대 소신이지만, 그렇다고 개가 애완견 금수저와 식용 흙수저 품종이 따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식용으로 도축되고 있는 수많은 소, 돼지, 닭들을 두고서 개를 잡아먹는 것만 특별히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령, 소조차도 자기가 도살장으로 끌려간다는 걸 인지하고 스트레스 받고 울부짖을 정도의 지능이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소의 두뇌가 진짜로 소대가리(?) 수준인 게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heaven vs hell이라고 일컬어지는 어느 짤방.. ㄲㄲㄲㄲ)

개고기는 역사적으로 보신탕, 영양탕, 사철탕 같은 다양한 위장 명칭으로 불려 왔다. 하지만 2010년대를 넘긴 이 시점에는 개고기는 명백히 사양 산업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애완견으로도 모자라서 반려견 이러는 추세와 역행하는 대외 이미지, 마이너한 수요로 인한 높은 단가, 다른 수많은 대체 보양식들의 증가 등의 이유로 인해.. 굳이 개고기 반대 운동이나 강제적인 금지 조치가 없이도 대세가 저절로 이렇게 흘러간 것이다. 개고기를 팔던 기존 식당들은 폐업하거나 감자탕, 삼계탕, 흑염소 같은 다른 메뉴로 전환하게 됐다.

글쎄, 동서고금을 통틀어 우리나라만 유독 개를 즐겨 잡아먹었던 걸까?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 개고기는 합법화된 적도 없고, 반대로 법으로 금지된 적도 결코 없다. 합법화를 하면 개고기를 제조, 유통, 조리하는 절차에 법적 기준이 생겨서 개고기를 더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면 "대한민국은 개 잡아먹는 나라라고 법에도 당당히 명시돼 있소"라고 동네방네 광고(?)하는 민망한 효과도 같이 난다. 이거 무슨 공창이나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개고기가 엄청 대중화되고 수요가 늘어서 대량 생산으로 단가를 낮추지 않는 한, 업계에서 법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느라 개고기의 가격이 더 상승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편, 이런 개고기와 달리 고래고기는 애완동물과 무관한 영역이기 때문에 잔인하다는(?) 논란은 없다. 단지, 멸종 위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사냥 금지 조약이 맺어졌을 뿐이다. (개는 반대로 멸종 걱정은 없고..)
오늘날 고래 사냥이 많이 없어지고 고래가 이 정도라도 살아난 건 환경 보호 운동 때문이 아니라 산업용 고래고기의 저렴한 대체제가 많이 개발되어 굳이 고래를 잡을 필요가 없어진 덕분이다. 이 역시 과학 기술의 힘이다.

기름 말고 고래고기도.. 개고기와 비슷하게 요즘은 인기가 시들고 한물 가고 있는 것 같다.
국내에서는 포획이 아니라 우연히 자연사· 사고사한 고래의 사체를 득템한 것만 발견자의 임의 처분이 허용된다. 이 고래가 포획된 게 아닌지 검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중에 합법적으로 유통된 고래고기라면 애초에 막 신선한 상태일 수가 없다. 그렇잖아도 고래고기가 무슨 참치회 급의 별미인 건 아닌데 이런 시간 오버헤드가 추가되기 때문에 맛이 더 없어진다.

내 경험상 고래고기와 개고기는 모두 그냥 그럭저럭 먹을 만은 했다. 일부러 찾아가며 먹을 정도의 가성비는 아니고..

3. 덩치와 신체 구조

사자의 수명이 겨우 10~15년 남짓밖에 안 된다니 무척 의외이다. 30년 가까이도 사는 초식 동물에 비해 수명이 턱없이 너무 짧아 보인다.
초식 동물은 한가롭게 풀이나 뜯다가 가끔 맹수에게 쫓길 때에만 잠시 죽어라 도망치면 된다. 그러나 이런 육식 맹수들은 사냥이 일상인 게 포식자의 입장에서도 극도의 스트레스와 체력 소모를 유발하며, 그게 명도 더 재촉한다고 한다.

하긴, 초식 동물 중에는 코끼리처럼 1톤이 넘는 체중과 체구를 자랑하는 놈도 있다. 하지만 육식은 사자 같은 대형의 성체라도 200~300kg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날렵하게 사냥을 해야 하는 육식 동물이 코끼리처럼 크고 무거웠다간.. 필요한 식사량 대비 사낭 능력이나 생태계의 먹이 제공 능력이 도저히 감당이 못 됐을 것이다. 더구나 공룡 같은 파충류보다 대사량이 훨씬 많은 포유류가 말이다.

고래만 해도 살육을 즐기는 깡패 범고래는 고래들 중에 작은 축에 속한다. 진짜 초월적인 덩치를 자랑하는 대왕고래 같은 건 플랑크톤만 흡입한다는 걸 생각해 보자.

현실의 동물은 지능이 인간보다야 부족하기 때문에, 인간처럼 불과 도구를 활용하거나 주변의 돌멩이를 집어 던지지도 못한다. 이건 신이 짐승이 인간보다 더 크고 무겁고 힘 세고 빨리 달리고 날카로운 이빨과 털가죽을 가졌을지언정, 인간의 특정 능력은 절대로 따라 하지 못하게 전투력 밸런스 조정을 한 것 같다.

동물 내지 이에 준하는 각종 괴물이 입을 다문 상태에서도 평소에 툭 튀어나와 있는 공격용 이빨을 '엄니'라고 부른다. 어금니와는 전혀 다른 개념.. 코끼리의 엄니는 워낙 독특하기 때문에 '상아'라고 따로 부르는 편이다.
코끼리는 상아가 있고 코뿔소는 말 그대로 뿔이 달려 있다. 코끼리의 상아는 윗니이지만 멧돼지의 엄니는 아랫니이다.

4. 바퀴와 다리

바퀴는 인류의 육상 수송 효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여겨진다. 그 바퀴가 효율이 완전 극대화될 수 있도록 더욱 고도화된 육상 교통 시스템이 바로 철도이기도 하다.
바퀴 내지 차축은 본체와 분리되어 혼자 무한히 뱅글뱅글 돌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건 생체로는 구현할 수 없고 기계로만 가능하다. 단적인 예로 인간, 아니 그 어떤 동물이라도 모가지가 360도나 심지어 두 바퀴(!!)씩 뱅글뱅글 돌 수는 없다는 걸 생각해 보자..;;;

그렇기 때문에 바퀴는 자연 현상이나 생물 생태를 전혀 참조하지 않고 철저하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바퀴, 그리고 볼트와 너트(나사) 이런 게 뭔가 생체와 기계의 구조적인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게 무척 신기하다.
다만, 바퀴도 만능은 아닌지라, 지형이 조금이라도 메롱인 곳 내지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신이 창조한 동물의 다리에 비해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무한궤도는 험지에서 바퀴의 약점을 좀 보완해 주긴 하지만.. 걔도 다른 단점과 한계가 있음)

우리나라에서는 6 25 사변 당시에 전쟁 물자를 나르기 위해 자동차나 수레가 아니라 다리 달린 인간 지게꾼이 여전히 동원돼야 했다. 산길의 상태가 워낙 개판이었기 때문이다.
다리 달린 사람이나 동물은 길이 아스팔트 포장이건, 비포장 돌밭이건 진행 속도에 차이가 거의 없지만 바퀴는 그렇지 않다.

특히 울퉁불퉁하고 장애물투성이인 산 속 숲속에서는... 인간이 아예 헬리콥터라도 타고 날아간다면 모를까 육상 교통수단으로는 네 발 달린 산짐승보다 더 빨리 달리는 게 오늘날의 기술로도 불가능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포장되지 않은 험한 모래밭 자갈밭 사막에서 낙타의 수송 효율을 능가하는 육상 교통수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다리라는 건 반대로 기계로 구현하기가 생각보다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물건이다. 특히 이족 보행은 더욱 말이다. 다리 달린 로보트라는 게 괜히 쌍팔년도 SF물 소재로만 반짝 부각됐다가 사라져 버린 게 아니다.

이 지구에 존재했거나 현존하는 척추동물 이상 등급의 육상 동물들은 아무리 덩치가 크고 무거워도 다리가 4개보다 더 많지는 않다. 자동차 트럭만 해도 초대형은 축(바퀴)이 더 장착되곤 하는데, 신이 다리를 대책 없이 마구 추가로 장착하지는 않으신 셈이다.
다리가 6개 이상으로 왕창 많은 건 곤충이나 그에 준하는 장르로 한정된다(거미, 지네..). 얘네들은 징그럽게 생겼지만 그래도 덩치가 크지 않고 인간이 밟아서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체급이다.

그러고 보니 조류들은 앞발이 날개 역할을 하다 보니 이족보행을 한다. 하지만 인간 같은 직립보행까지 만족하는 놈은 펭귄이 거의 유일하다. 그 대신 얘는 헤엄만 가능할 뿐, 날지는 못한다.
그리고 다리가 아예 없는 뱀은 꽤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오해하기 쉬운데 뱀도 엄연한 척추동물이다.

5. 병거와 기병

바퀴와 다리라고 하니까 이것도 생각나는구나.
고대 이집트니 로마 제국이니 하던 엄청 먼 옛날에는 군용 무기 중에 병거(chariot)라는 게 있었다. 공격 무기를 든 병사와, 말을 조종하는 마부 2인조가 큼직한 마차가 아니라 손수레 비슷하게 생긴 물건에 탑승하고, 그걸 2마리 이상의 말이 끌고 열나게 달리는 것이다.

이게 요즘으로 치면 탱크나 마찬가지인 엄청 비싸고 위압적인 병기였다. 그래서 좀 옛스러운 용어를 동원하자면, 탱크와 병거가 모두 '전차'라고 불릴 정도이다. 병거는 성경에도 엄청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교회 다니는 사람한테는 친숙하다.

하지만 수송용 장갑차처럼 마차에다가 병력을 실어 나르는 것도 아니고, 냉병기 전투를 말이 끄는 수레에 탄 채로 하는 건.. 기병 한 명이 말에 직접 타고 싸우는 것에 비해 효율적이지 못했다. 병거가 현대의 탱크처럼 탑승자를 완전히 보호라도 해 주는 것도 아니니 나은 구석이 전무하다.

병거가 완전히 도태한 건 인간을 태우고 달릴 수 있을 정도로 큰 말이 품종 개량을 통해 개발되고, 안장과 등자처럼 간단하면서도 안전한 말 탑승을 보장해 주는 획기적인 도구가 발명된 덕분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모세와 엘리야 시절에는 병거가 나오는 반면, 미래를 다루는 계시록에는 '말 탄 자 4명'으로 묘사가 바뀐다.
병거 탑승과 말 직접 탑승의 차이는 트럭과 트레일러의 차이와도 비슷해 보인다.

6. 나머지

(1)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대체로 누가 이기냐? 누가 더 강하냐?" 이건 "캐리어와 배틀크루저가 붙으면 누가 이기냐(스타), 사이버데몬과 스마마가 붙으면 누가 이기냐(둠;;)"와 비슷한 문제인 것 같다. 생산 비용과 시간, 컨트롤 여부, 개체수 같은 정말 다양한 조건과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편적인 비교가 몹시 난감하다.
사자와 호랑이도 비슷한 상황이지 싶다. 현실에서는 둘은 서식지가 일치하지 않아서(초원 사바나 vs 산악 지대) 서로 한데 마주칠 일 자체가 별로 없다.

(2) 심해어가 거의 외계 생명체 급으로 정말 생뚱맞고 기괴하게 생긴 것은 달 탐사선이 통상적인 비행기· 대기권 로켓과 전혀 다르고 기괴하게 생긴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항공역학적인 면모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심해어 역시 햇볕을 쬐며 사는 통상적인 동물의 특성을 지녀야 할 여지가 없으니 그런 모양인 것이다.

지구 안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할 극한 환경에도 저런 생물이 존재하는 반면, 지구 바깥 우주에는 지금까지 엄청난 설레발들이 난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존재하는 것으로 검증된 사례는 아직까지 전무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06 08:36 2022/01/06 08:36
,
Response
No Trackback , 3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72

1. 사후 사진

19세기에 카메라와 사진이라는 물건은 정말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비록 흑백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인물이나 풍경을 보이는 그대로 화가보다 훨씬 더 신속 정확하게 종이에 담아서 영구적인 기록으로 남겨 줬으니 말이다.

사진을 번쩍 찍히면 자기 혼이 빠져나가는 줄로 알고 무서워한 사람도 있었다.
자기 원래 모습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데 하물며 X선을 발견해서 자기 손의 생뼈 사진을 인류 최초로 관찰한 물리학자 뢴트겐은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런 생각도 같이 하게 된다.

그리고 혼이 빠져나갈까 봐 두렵다면.. 발상을 전환하여 이미 혼이 빠져나가 있는 사람, 다시 말해 시체의 사진을 찍는 건 어떨까?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거나 수긍하기 어렵지만,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 사이.. 유식한 용어로 '빅토리아 여왕' 시절 / 벨 에포크 시절엔 유럽과 미국 일대에서 가족의 ‘사후 사진’이라는 걸 찍어서 남기는 게 유행이었다.

천수를 누리고 죽은 사람 말고, 병이나 사건· 사고로 일찍 죽은 가족의 모습을 사진으로라도 찍어서 남기는 것이다. 특히 아기 말이다. 이거 무슨 영정 사진도 아니고 참..;;
그나마도 예전에는 화가를 불러서 초상화를 그리던 것이 사진으로 더 간편하게 바뀐 것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은 시신이 부패하기 전에 최대한 어서 찍어야 했다.
시신에다가는 최대한 멋지고 근사한 옷을 입혔으며, 곤히 잠들었거나 의자에 앉아 쉬는 포즈를 만들었다. 아니면 시신의 사지를 붙드는 장치를 연결해서 억지로라도 기립해 있는 모습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찰칵..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눈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자는 포즈가 아닌 사진이라면 사진사나 화가가 사진에다가 떠진 눈을 인위로 그려 넣었다.;; 그 시절엔 컴퓨터나 포토샵 같은 도구가 없었으니, 이건 물감과 붓을 동원한 수작업이었다. 그나마 사진이 흑백이니까 이런 장난질이 그리 어렵지 않게 가능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좀 너무 노골적으로 시체 느낌이 나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줄의 맨 뒤(왼쪽), 선 채로 눈을 감고 있는 저 막내 꼬마 여자아이는 귀신...이 아니라 죽은 상태이다. 언니 오빠들은 시체와 나란히 줄 서서 몇 분간 부동자세로 가족 사진을 찍었다. (☞ 더 많은 사례들)

2. 시체 공시소

역시 비슷한 시기인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프랑스에서는 ‘시체 공시소’라는 걸 운영했다.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시신을 공개적으로 진열해 놓고, 이 사람의 연고자 내지 유족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니 이건 행방불명자의 유족에게 시신이라도 찾아 준다는 좋은 목적과 선한 의도로 만들어진 시설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아무나 드나들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의 시체들을 열람할 수 있다 보니, 여기는 엄근진한 곳이 아니라 무슨 ‘인체의 신비전’ 같은 엽기 관광 명소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친인척 중에 실종자가 딱히 없는 사람들도 어중이떠중이가 다 저기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시신에게 이상한 옷을 입혀 분장도 시켜서 구경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누구나 무료 관람 가능하던 곳이 나중에는 입장료까지 징수하게 됐다.

1900년대 초는 아직 제국주의에 인종 차별주의와(백인 우월, 인종 박람회..) 우생학까지 쩔던 시절이지 않았던가.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중국 같은 동양인의 시체까지 수입해서 일부러 전시했다고 하는데.. 그때는 지금 같은 냉동 기술도 없었을 텐데 시체를 장시간· 장거리 운송하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은 했나 모르겠다... (검색을 해 보니 기초적인 냉장 기술은 개발됐었다고 함 ㄷㄷㄷ)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다가 시체 공시소가 의외의 기여를 한 분야는 범죄 수사이기도 했다고 한다.
범죄 용의자를 여기 데리고 와서 밝은 전등 아래의 피해자의 시체를 직접 대면시키고는 "이 사람 정말 니가 죽인 거 아니야?"라고 취조하면.. 어지간한 범죄자는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죄를 자백했다고 한다. 오~~ 고문이나 가혹행위도 아니고.. 꽤 괜찮은데??

이런 사례들을 보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먼저, 기술적인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시절 카메라는 노출 시간이 수 분대로 길어서 피사체는 그동안 꼼짝없이 부동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흔들려서 망가진 사진을 보지 않으려면 말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오랫동안 가만히 있기가 몹시 어려운 반면, 시체는 그런 제약이 없다. 그러니 사후 사진이라는 발상을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옛날 시대상을 떠올려 보자. 전쟁, 기근, 질병, 높은 유아 사망률, 지금보다 더 잔인한 형벌(공개 처형, 부관참시 시체 훼손, 능지형), 더 폭력적인 사회 관행(툭하면 싸움질, 결투, 석전, 주취 가정 폭력, 애들한테 가혹한 체벌..)..

그러니 옛날에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흔했으며, 길거리에서 사람 시체를 구경하는 것도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무연고 거지나 '행려병자' 같은 것도 훨씬 더 쉽게 볼 수 있지 않았던가?
(행려병자라고 하니 말이 좀 어려운데, '행려'를 순서를 뒤집어서 '여행'으로 바꾸면 뜻이 바로 와 닿을 것이다.)

옛날엔 사람들이 멘탈이나 비위 같은 것도 지금 현대인보다 더 억세고 강해야만 했다. 분위기가 그랬으니 저런 관행도 존재 가능했던 것이지 싶다. 비록 후대에 전시의 특수한 상황이긴 했지만, 일본군 두개골을 군 복무 중인 남친이 여친에게 선물로 보냈던 사례도 있었음을 생각해 보자.

아울러, 그 시절에는 지금 같은 인터넷이 없고 컴퓨터 게임이 없고 여가나 유흥 시설, 볼거리들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빈약했다.
오죽했으면 19세기 말에 미국 어딘가에서는 사막 벌판에서 육중한 증기 기관차 두 대를 마주보고 정면충돌시키는 캐막장 잉여 쑈를 기획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ㄲㄲㄲㄲ (그랬는데 보일러가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금속 파편이 저 멀리 관중석까지 날아가는 바람에 인명 사고가 발생하고.. 이 쑈는 흑역사로 묻혀 버림)

이런 시대 정황까지 추가로 고려해 보면, 옛날에는 공개 사형 집행이 얼마나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을지도 수긍이 간다. 하물며 능지형 정도 되면 초특급 쑈 그 자체라 하겠다.
그 시절에 컬러 카메라나 유튜브 같은 게 없었던 게 다행이다. 그런 게 있었다면 사람 공개 처형 장면 동영상은 ISIL이니 탈레반이니 하는 또라이들이나 올리는 게 아니라 영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 문명국에서도 올라오게 됐을 테니 말이다.

이 사람들은 무슨 사후 세계를 믿지 않고 시체를 아무렇게나 다루는 티베트인이 아니며, 시체 갖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변태 야만인이 아니었다. 엄연히 기독교 배경이 있는 열강 강대국에서도 이런 관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후 사진이나 공개 시체 공시소 같은 게 민망한 짓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1차 세계 대전을 겪은 뒤부터였다고 한다. 미개인이 아니라 유럽 백인 자기들까지 기관총 대량 학살 시체 더미의 쓴맛을 제대로 봤으니까.. 전간기와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이런 관행은 완전히 사라졌다.

뭐,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07년에 수원 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에서 이례적으로 피해자 시신의 얼굴을 공개했던 적이 있다. 피해자의 신원을 도저히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핏기없고 섬뜩한 인상인데.. 그래도 실제 피해자의 부모가 그 얼굴을 알아본 덕분에 연고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사건의 경우, 기껏 잡았던 가해자는 답정너 강압 수사로 인한 거짓 자백 정황이 드러났다. 결국은 이전 판결이 무죄로 뒤집히고 리셋돼 버렸지만 진범은 끝내 잡히지 않은 채로 수사가 씁쓸하게 종결돼 버렸다.
애초에 피해자는 껌 씹는 날라리 일진 양아치 가출 소녀가 아니었다. 정신장애가 있고 채팅에서 만난 다른 양아치들한테 낚여서 따라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는데.. 처음에 수사 방향을 잘못 잡은 채로 삽질하다 시간을 날리는 바람에 진범 잡을 기회도 놓친 것으로 보인다.

그 뒤로 이렇게 실종자 시신의 얼굴 공개 사례가 국내에서 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 옛날에 1997년 언젠가 <경찰청 사람들> 다큐에서도 실종된 범죄 피해자를 찾는다고 무려 토막 살해 시신의 얼굴을 그대로 내보낸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이건 좀 무리수였다.

뭐 피투성이였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끔찍한 몰골은 시청자들을 OME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결정적으로 죽은 시체의 인상은 살아 생전의 모습과 차이가 커서 사람을 찾는 데 별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이 시신도 훗날 다행히 신원이 확인되긴 했지만.. 이 비주얼 단서가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서 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옛날 사람들과 달리 생사람의 시체를 전혀에 가깝게 볼 일 없이 평화롭게 지내는 것은 여러 요인들 덕분이라 하겠다. 과학 기술의 발전, 그에 걸맞게 발달한 의료 보건 위생 여건과 치안 복지, 정치적 안정, 그리고 인권 의식의 향상까지 말이다. 일상 생활에서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의 교통사고나 대형 안전 사고를 목격하게 될 수는 있지만 그건 뭐.. 평범한 일반인에게는 로또급 확률의 이벤트일 것이다.

그러니 현대인들은 현실이 아니라 영화와 게임에서나 사람이 죽는 장면과 각종 시체들을 실컷 보며 지낸다. 이런 건 실제 사람이 죽거나 죽은 장면이 아니니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이런 건 비주얼이 현실의 그것만치 흉측하지도 않다.

끝으로, 미국에는 통상적인 의대 해부 실습 용도가 아니라.. 법의학 연구 목적으로 기증받은 시신들을 잔뜩 모은 ‘시체 농장’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언급하며 글을 맺겠다. 대표적으로 테네시 대학교 인류학 연구소 말이다. 이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잘 돌아가고 있는 시설이다.

여기서는 다양한 여건 하에서 시체가 부패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시간대별로 시체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부풀어오름, 벌레 꼬임, 무슨 무슨 색깔로 변함..) 정말 꼼꼼히 기록해서 수십 년 동안 데이터로 축적했다. 그냥 벌판에 널부러진 시신, 물에 던져진 시신, 여행 가방에 밀봉된 시신, 콘크리트로 공구리 쳐진 시신 같은 이런 상태 차이도 있고, 여름과 겨울, 눈과 비 같은 날씨 차이도 있고.. 토막(;;)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까지.. 변수가 한둘이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충 이런 곳... 부지가 넓으니 시체를 꽁꽁 숨겨 놓고는 경찰견의 탐지 훈련을 실시하기도 한다.

여기서 축적된 방대한 실험 데이터 덕분에, 범죄 현장에서 피해자의 사망 시각과 사망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 맞혀서 단서를 얻고 해결한 사건이 지금까지 적지 않았다.
단, 시체라는 민감하고 특수한 기자재를 잔뜩 다루는 시설인 만큼, 여기도 의대 해부 실습에 준하는 군기와 보안, 윤리 정책이 적용된다. 근무자는 시신 기증자와 당사자에 대해 감사의 묵념을 빠뜨리지 않으며, 보안 서약을 한 정직원이나 허가 받은 기자 말고 일반인은 절대로 출입 금지, 내부 사진 유출 절대 금지 정도는 기본이다.

더구나 여기는 사망 원인이 밝혀진 고인에 대해서 유족이 명시적으로 기증 의사를 밝힌 시신만을 접수한다. 그러니 신원 미상 시신을 대중에게 아무렇게나 전시하고 분장(!!)까지 시켰던 옛날 프랑스 시체 공시소와는 분위기가 180도 극과 극으로 다르다고 보면 된다.

다만, 장례 비용마저 부담되는 가난한 사람들이 무작정 여기로 시신을 보내 버리는 사례가 많아져서 여기도 시신 접수 조건을 좀 더 강화했다고 전해진다. 흠.. 그럼 그냥 의대 해부 실습용으로 시신을 기증해도 될 텐데? 거기는 시신이 언제나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시체 관련 추가적인 이야기들

(1) 오늘날 지구를 누비는 여객기에도 죽은 사람을 실은 관이 수하물로 알음알음 몰래 같이 운구되는 게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2) 1993년 서해훼리 호 침몰 당시엔 언론에서 해저에서 인양 중인 시신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내보낸 적이 있었다. (의도적인 노출보다는 별 생각 없이 카메라를 잠깐 비췄던 게 전파를 탔..)
그것도 그렇고 위의 저 사진도 그렇고, 노숙 소녀 시신 얼굴도 그렇고, 등산가 조지 맬러리의 오래된 시신 같은 것도 보면.. 시신은 부패해서 본격적으로 보기 흉해지기 전에는 핏기가 빠져서 공통적으로 정말 하얗게 변하기는 하는 것 같다.

(3) 사람이건 동물이건 시체가 생기면 시체를 뜯어먹는 동물과 곤충, 아니면 부패· 분해시키는 미생물과 세균이 앞다퉈서 그 시체를 접수해 버린다. 그런데 송장벌레는 비록 시체를 파먹을 목적이긴 하지만 그걸 땅에 파묻어서 보이지 않게 해 주기도 한다니 참 오묘한 노릇이다.
뭐, 일개 곤충이 중장비나 삽질 같은 속도와 효율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얘들은 신이 자연에다 마련해 준 시체 처리반 장의사나 다름없다.;;

(4) 죽은 시체에 옷을 인위로 입히거나 벗기는 건 생각보다 꽤 힘든 일이다~! 특히 크고 무거운 성인 남성의 시신이라면 더욱 말이다. 범죄 현장에서 정황상 사망자가 원래부터 이 옷을 입고 있었는지, 아니면 사후에 옷이 벗겨지거나 바뀌었는지도 어지간하면 판별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집어넣기 전에 샤워 드립을 괜히 쳤던 게 아니다.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기 옷을 벗고 개어 놓음으로써 일 처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28 08:33 2021/12/28 08:33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69

국내엔.. "조선/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망하지 않고 왕정인지 입헌군주제인지가 20세기 후반까지 유지됐다면?" 같은 낭만적인 상상을 배경으로 소설이나 드라마가 만들어진 게 좀 있다.

뭐, 현실에서는 조선이 그때 일제한테 안 먹혔으면 러시안스키들한테 먹혔겠지.. 이게 훨씬 더 가능성이 높았고 상황이 여전히 암울했겠지만 말이다. 러시아 제국은 한반도에 그렇게까지 큰 욕심이 없었던 것 같지만 후신인 소련 공산당은 자비심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됐으면 이 위종이나 홍 범도 같은 애국자 독립투사가 소련으로 귀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친일 성향의 구한말 개화파들의 노선이 1900년대 이후까지 더 오래 지속됐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솔직히 "만약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기고 일본이 졌다면?" 이건 현실적으로도 굉~~장히 설득력 있고 그럴싸한 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재로 한 대체역사물이 있다는 얘기는 난 딱히 못 들었다.

주 타겟이던 한반도가 세계적으로 별로 존재감이 없고 별로 장사가 안 되는 소재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리고 그 당시엔 러시아가 이기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일본이 이기는 게 훨씬 더 극적이고 이례적인 일이었다. 즉, 현실이 픽션보다 더 픽션 같았으니 굳이 대체역사물이 또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2차 세계 대전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에서 워낙 드라마틱한 전투 승리 내지 초인적인 인간 승리 스토리가 많이 만들어졌다. 덕분에 스토리에 창작 각색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전기/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전쟁 영화도 지금까지 한두 편 만들어진 게 아니다. 가령, 미드웨이 해전이나 진주만 같은 건, 진작에 영화가 만들어졌다가 후대에 각종 CG를 곁들여서 리메이크작이 또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뻔히 다 아는 스토리만 곧이곧대로 차용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은 밀덕 역덕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가 워낙 많기 때문에 "만약 역사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면? 조금만 핀트가 어긋났다면?" 이렇게 생각할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자면 "만약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때 전땅크 대통령이 제 시각에 도착하는 바람에 그때 현장에 있었다면? 그때 폭발에 휘말려 순직해 버렸다면 세상이 지금과는 어떻게 달라지게 됐을까..??" 이런 것 말이다.

그래서.. 발상을 달리하여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대신 추축국 진영이 승리했다면? 혹은 추축국이 일부라도 그렇게 흑화하지 않고 연합국과 잘 지냈다면?"을 상상한 대체역사물이 좀 있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것 일부만을 소개한다.

1. 비명(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찾아서 (1987) 복 거일 .. 독일만 망함

영어 공용화 논란 및 우파 진영 논객으로 유명세를 탔던 복 거일 씨가 소싯적에 발표한 소설이다. 나름 국내에서 만들어진 고퀄의 대체역사물이다. 얘랑 비슷한 스토리 전개로 예전에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대체역사물 영화가 한일 공동 제작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이 작품에서는 안 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실패"해서.. 이토 상은 부상만 입을 뿐, 1920년대까지 생존하며 장기 집권한다. 덕분에 일제 식민 통치나 대외 외교가 좀 더 젠틀하게 나간다.
정말 상상이 안 되지만 일본은 미국·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북 아시아를 무난히 접수한다. 2차 세계대전은 유럽 서부 전선 위주로만 벌어졌으며, 핵폭탄은 일본이 아니라 독일에 떨어진다. =_=;; (브레멘 & 드레스덴 ㄷㄷㄷㄷㄷ)

이로 인해 무려 국제연맹이 20세기 후반까지 존속하며, 한반도 역시 영원히 독립되지 못하고 대만이나 류쿠, 오키나와 같은 일본 식민지로 남는다.
일본은 미국, 소련에 이은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한반도에서 태어난 어느 2등 신민 조선인이 출생의 비밀을 뒤늦게 알게 되고서 어찌어찌 한다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2. 높은 성의 사나이 (1962) 필립 K. 딕 .. 추축국이 몽땅 승리 (☞ 영화 소개)

이 장르의 거의 원조인 것 같은데.. 얘는 제일 비관적인 설정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프랭크 루스벨트 대통령이 암살 당해서 대통령이 못 되고, 뉴딜 정책이 시행되지 않고, 무기 대여법이 시행되지 않아서 2차 대전 유럽 연합국들이 빌빌대고.. 진주만 공습 때 미국의 함대가 몽땅 박살 난다.
결국 영국이 항복하고 미국도 독일· 일본의 합동 공격을 버티다 못해 조건부로 항복한다. 소련도 미국의 지원을 제대로 못 받으면서 독소 전쟁에서 패배해서 중세 시대로 되돌아간다.

유럽은 나치 독일 천지가 되고, 미국조차 서부는 일본, 동부는 독일이 접수하고 중부는 무법천지인 막장 상태로 전락한다.
전세계에 종교는 금지되고 히틀러 숭배만 허용된다. 독일의 과학력은 세계 제이이이이이이이이일!!! 이 현실이 된다.
독일과 일본이 세계를 지배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둘도 사이가 마냥 좋지는 않은 견제 관계가 된다. 마치 현실에서 중공 VS 소련처럼..??

3. 당신들의 조국 (1992) 로버트 해리스 .. 일본만 망함 (☞ 영화 소개)

이 작품에서는 나치 독일이 우연한 계기로 에니그마 암호의 해독 체계를 바꿔 버리며, 이 때문에 연합국이 더는 맵핵을 쓰지 못하게 된다. 독일은 유보트로 세계의 제해권을 장악한 뒤 영국과 소련을 봉쇄시키고, 미국에 V2니 V3이니 로켓까지 날려보낸다.

결국 미국이 독일과는 강화 조약을 맺고, 독일은 세계 최강 패권국이 된다. 이 세계관에서는 일본만 핵폭탄을 맞고 그대로 항복한다.
뭐 이런 설정 말고는 얘는 30년 전 전의 "높은 성의 사나이"와의 변별성을 잘 모르겠다.

아, 참고로, 2번 "높은 성의 사나이"의 경우 굉장히 참신한 게.. 이 소설 내부에 또 가상의 소설이 있다고 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세상이 이렇게 되지 않고 만약 연합국이 승리했다면..??" 이렇게 뇌피셜을 펼치는데,

여기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무사히 집권한 뒤 3선 이상 연임을 하지 않고 물러나며, 히틀러는 패전 후 자살에 실패하고 체포되어 전범 재판을 받고 처형된다.
그 뒤,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벌여서 소련이 작살나고 영· 미에 의해 분할된다. 그런데 그 뒤엔 영국과 미국도 서로 대립하게 된다. 흠..

흥미롭지 않은가? 대체역사물도 이런 식으로 상상하고 만들기 나름인 것 같다.
옛날 독일 영화인 '롤라 런'을 보면, 주인공이 집을 뛰쳐나갈 때 누구랑 부딪히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이 나비 효과마냥 완전 극과 극으로 달라진다.

하물며 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전쟁터라면 그런 간발의 타이밍 차이로 전황이 달라진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지 싶다. 그러니 이미 다 지난 일이긴 하지만 그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다면..?? 이런 걸 소재로 영화나 소설을 만드는 건 충분히 흥미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현실에서 벌어졌던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과 한반도 광복은.. 그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이고 굳이 또 픽션으로 각색할 필요가 없는 기적적인 사건에 가깝다.
옛날에 어지간한 지식인들이 괜히 변절했던 게 아니다. 이제 항일 독립 운동이란 씨가 말라 버렸으며 일체의 희망이란 없고, 이놈의 일제가 망할 가능성이란 없다고 다들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 상태로 세대가 바뀌게 생겼으니 신세대들은 태극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지경이고.. "일제가 이렇게 갑자기 망할 줄 몰랐으니까"는 절대로 궁색한 변명이 아니었다. 이렇게 일제 시대가 1950년대 이후까지 계속됐으면, 독립 운동 대신 그냥 2등 신민 조선인의 차별 철폐, 인권 개선, 참정권 보장 따위를 요구하는 투쟁이나 벌어지게 됐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한테는 정서적으로 참 꺼림칙하겠지만, "조선이 영원히 해방되지 못했다면?" 이런 대체역사물이 "조선이 일제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에 왕정이 계속 유지됐다면?"보다는 당연히 훨씬 더 더 현실적인 대체역사물인 셈이다.
심 훈의 "그날이 오면"은 우리 민족의 염원을 표현한 시일 뿐, 무슨 대체역사 소설은 아니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17 08:34 2021/12/17 08:34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65

무기수 김 신혜 사건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에서 다리의 장애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어느 50대 남성이 차도에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처음엔 흔한 뺑소니 교통사고로 여겨졌으나, 약간의 수사 끝에 그의 딸인 김 신혜가 보험금을 노리고 부친을 사고로 위장 살해한 용의자로 검거되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죄를 순순히 자백하는 듯했으며 모든 정황도 착착 맞아떨어졌다. 그녀는 존속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그런데 2심 이후부터는 그녀는 갑자기 말을 바꿔서 자기는 범인이 아니라며 결백을 지금까지 줄곧 주장해 왔다. 이전의 자백은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고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여 년 전에 경찰이 매우 유리한 정황 속에서도 증거를 제대로 보전 못 하고 강압 수사를 한 건 명백한 병크이다. 이 때문에 지금 재심을 하면.. 저 사람은 법적으로는 증거불충분으로 진짜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저 여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다 동의하기에는 그 전의 행적들이 의심스러운 게 너무 많다. 직업, 이성관계, 사건 당일의 동선과 알리바이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석연찮다.
개인적으로 이 블로그 글이 제법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서 링크를 소개하고자 한다. (☞ 링크)

그녀의 주장을 곰곰이 따져 보면, 제일 기본적인 자백의 동기부터도 말이 이랬다 저랬다 바뀌는 것 같다. 동생의 죄를 대신 좀 뒤집어쓰라는 친인척의 권유로 자백한 걸까, 아니면 전적으로 경찰의 강압 때문에 허위 자백한 걸까?

전자라면 가족을 감싸 주려는 갸륵한(?) 마음이 중간에 왜 바뀐 것이며, 동생이 애비를 죽인 동기는 무엇인가? 그건 어떻게 입증 가능한가? 그리고 후자라면 애초에 동생을 끌어들일 이유가 전무하다.
설마 둘 다 합쳐서 동생 실드 자체가 경찰의 강압으로 인한 허위 자백이라면 이건 뭐.. 현실성과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는 소설이 된다.

안 그래도 사건 발생 당시의 동선과 알리바이가 불분명한데, 하필 비슷한 시기에 생명 보험들을 잔뜩 들어 놓은 건 도저히 우연이라고 볼 수 없고 변명들이 말이 안 된다. (보험들을 비교해 보려고 일일이 보험에 직접 가입했다는 게 헐..??) 한쪽에서는 자기가 보험잘알이라고 진술했는데 실제 행적은 보험알못이다.;;
정황이 자기에게 불리해지니 보험 가입 서류가 경찰에 의해 조작된 거라는 주장도 제기하나 본데.. 그런 주장은 좀 일찍 했어야 통하지 10수 년을 감방에 있다가 인제 들고 나오면 어떡하냐..

고인은 자살한 것도(혼자서 그 멀리까지 나갈 수 없..), 교통사고 뺑소니를 당한 것도(외상이 없음) 전혀 아니며 음독에 의한 타살 100%이다(독극물 검출).
그 상태로 시체가 차로 멀리 옮겨지기까지 했으니.. 면식이 없는 묻지 마 범죄가 이런 식으로 저질러질 가능성은 전무하다. 범인은 근처의 가까운 인물이어야 한다.

허나, 남동생이나 고모부, 숙부 등 다른 가족· 친척 중에 애비를 굳이 이런 식으로 죽일 만한 사람이 없다. 집이 잘 사는 것도 전혀 아니고 알리바이도 다 있고.. 이 사람을 통한 금전적인 이득은 정말 보험금 수령밖에 없다.

이건 무슨 외계인이 UFO를 타고 날아와서 애비를 약 먹여서 죽이고 시체를 도로에다 내팽개치고 뿅 사라진 게 아닌 한.. 현실적으로 진범은 미안하지만 저 여자일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인다.
애비가 술 마시면 개가 되어서 주변 가족이 피할 정도였다는 말도 자기 입으로 나왔구만..

2018년쯤엔가 재심이 결정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죄수복이 아닌 사복 차림으로 당당히 매스컴도 몇 차례 탔다.
허나, 그 뒤엔 당사자는 또 석연찮은 핑계를 대며 재판을 계속 거부하고 있으며,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한 2019년말 이후로 근황이 더 검색되는 게 없다. 이 정도면 마냥 저 여자 편만 들기가 좀 곤란한 지경이다. 애초부터 우리나라 법조계의 판단이 그렇게 무리수 억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튜브 동영상을 보니 그녀는 국가에서 자기를 감옥에 쳐넣고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놓고는 자기더러 뭘 더 거창하게 증명하라는 거냐며 매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회의론자 역시 그녀에게 뭘 거창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앞서 제기되었던 의문들은.. 자기 언행에 거짓이 없다면 아주 기본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으며 해명하는 게 어렵지 않다.

비슷한 느낌이 드는 관련 사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 1995년의 치과 의사 살인 사건: 결국 무죄 판결은 받았지만 범인도 없는 사건이 돼 버림. 남편의 비디오 대여 이력은 너무 너무 의심스럽긴 한데(동일한 살인 수법 묘사, 허위 진술 들통), 이것도 심증에 불과하니 원..
  • 2005년 530GP 사건: 대공 용의점 따윈 없고 그냥 김 일병인가 그 사람이 범인 맞음. 이 사람은 무기수가 아니라 사형수..
  • 옛날 영국의 A6 도로 살인 사건: 범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결백과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DNA를 통해 진범으로 밝혀짐. 감성팔이 인권팔이 호소의 위험성을 일깨워 준다.

많은 사람들이 김 신혜가 국가에 의해 엔자이를 당한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고 본인도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만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허나, 이런 회의적인 관점도 "흠 그럴 수도 있겠네, 일리가 있네.. 양쪽 말을 다 들어 봐야.." 라는 범주에 드는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고 이의 제기이다.

그런데 원문에 왜 이렇게 이상한 악플들이 많이 달리고 글쓴이가 욕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이의 제기가 논리적으로 마음에 안 들면 그것도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될 것을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12 08:35 2021/12/12 08:35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63

1. 디지털 카메라

요즘은 아시다시피 스마트폰에 카메라 렌즈도 하나로 모자라서 둘 이상이 달리며, 이걸로 사람 눈과 뇌가 하는 것처럼 원근감까지 기계가 인지하는 지경에 도달했다.
하긴, 모니터와 TV는 종횡비가 진작에 다 와이드로 바뀌었는데 카메라로 찍는 사진의 종횡비는 여전히 4:3이 기본인 게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카메라 렌즈의 화각이 커지고 렌즈가 여러 개 달리기까지 한다면 한번에 더 넓은 풍경을 길쭉하게 사진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화소 수나 후보정 기능뿐만 아니라 본인이 정말 신기하게 생각하는 기능은.. 사진의 흔들리는 걸 걱정할 일이 예전에 비해 매우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건 소프트웨어적인 흔들림 보정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옛날에 덜 스마트하던 디카는 사진이 흔들려서 망치는 일이 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그마한 화면으로는 찍었던 사진이 흔들렸다는 걸 인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사진을 찍은 현장에서 흔들림을 감지했으면 곧장 다시 찍기라도 했을 텐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사진을 PC로 옮겨서 큰 모니터 화면으로 본 뒤에야 흔들리는 걸 알게 됐다면 허탈함 그 자체이다. 위조지폐를 현장에서 바로 적발하지 못하고 은행에 입금할 때에야 뒤늦게 알아챈 것과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나마 재래식 디카가 스마트폰보다 나은 점은 배터리 용량이 더 많고, 안 쓸 때는 꺼 놨다가 나중에 켤 때 부팅이 필요 없이 즉시 켜져서 ready 상태가 된다는 점, 비슷한 체급일 때 zoom 성능이 더 뛰어나다는 점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앞으로 영상뿐만 아니라 음성도.. PC에서 마이크 꽂아서 2채널 스테레오 음향을 한번에 입력해 넣는 방법은 생길 기미가 없는지 궁금하다.

2. 휴대전화

라떼는 말이야..

  • 체크카드: 신용카드 = 피처폰: 스마트폰 과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특히 둘 다 왼쪽에 비해 오른쪽(신용, 스마트..)은 영업사원들이 기를 쓰고 팔려고 안달 나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 인류 역사상 전화기가 크기가 가장 작던 때는 폴더폰 시절일 것이다. 그러다가 요즘 스마트폰은 화면과 배터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좀 커져 있다.
  • 폴더폰 시절에는 전화기를 통째로 거치대에 꽂아서 배터리 충전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ㄷㄷㄷ 기억하시는가? 그리고 2000년대엔 충전 단자를 통일한답시고 한때 24핀짜리 표준 단자가 제정되기도 했었다.
  • 그렇게 전화기가 자그맣고 별 기능이 없던 시절에는 배터리를 한번 충전해서 2~3일은 기본으로 썼다. 통화를 안 하고 있으면 무려 1주일 가까이 가는 물건도 있었다.

먼 옛날에 사람들이 뭔가 자원이 남은 비율 퍼센티지를 신경 쓰던 것이 30여 년 전엔 Windows 3.x/9x의 시스템 리소스 퍼센티지였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는 폰의 배터리 퍼센티지일 것이다.;;
그 밖에..

(1) 전화기에서 스피커폰은 귀를 송수화기에다 대지 않아도 통화를 들을 수 있게 하는 무척 편리한 기능이다. 하지만 이때 기기에서 내는 수신음이 또 마이크를 통해서 송신되고, 그게 또 수신되어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현상이 무한 반복되면서 소리가 울리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건 통신 기기에서 굉장히 고전적으로 유명한 문제이다. 자기가 받은 소리가 중복 송신되어서 울리지 않게 하는 건 echo 제거(echo cancelling) 기술이라고 따로 있다. 보통은 받는 쪽에서 echo 제거를 적용해야 보내는 쪽에서 echo를 듣지 않게된다.
뭔가.. 헬리콥터에서 로터가 돌면서 동체까지 돌아가는 현상을 상쇄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꼬리날개, 반대 방향 로터 등..)

(2) 내가 말하지 않고 듣고 있을 때는 내 쪽의 불필요한 소음이 상대방에게 전혀 송신되지 않게 하는 일종의 mute(마이크 끄기)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내 쪽에도 상대방에게 들리기를 원하지 않는 배경 소리 같은 게 있기 때문이다. 뭔가 전화기를 무전기에 가깝게 사용하게 되는 듯하네..

(3) 자동차 번호판이 공간이 부족해서 자릿수가 하나 확장됐고, 인터넷 주소도 공간이 부족해서 IPv6가 등장했는데.. 휴대전화 번호도 마찬가지다. 010 다음의 8자리는 좀 간당간당해 보이는데 이건 어째 공간을 확장한다는 말이 없는 것 같다.

(4) 스마트폰은 앞서 언급했던 디지털 카메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휴대용 전자기기들의 역할을 흡수하고 대체했다. mp3 플레이어, 전자 사전, 계산기 따위는 얄짤없지만, 그나마 독자적인 역할이 있어서 완전한 상위 호환 대체가 어려운 건 손목시계이다.
스마트폰은 이것저것 기능이 많아지다 보니 보다시피 옛날 폴더폰이나 어설픈 피처폰 시절에 비해 덩치가 꽤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얘는 과거의 회중시계의 대체제이지, 이대로 손목시계를 대체하기는 난감하다. 그 분야는 스마트워치라는 물건이 따로 만들어져 나오게 됐다.

3. 소프트웨어

  • 지난 2009년은 코드소프트와 티맥스 윈도우,
    2016년은 서든어택 2 (온라인 게임), 그리고 갤럭시 노트 7 (스마트폰)이 업계 최악의 굴욕 흑역사로 기록됐다.
  • 2021년은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완전히 접고 철수한 해, 인텔에서 비운의 IA64 프로세서를 드디어 20여 년 만에 완전히 단종시킨 해, 그리고 30여 년을 존속했던 경상용차 다마스와 라보가 단종된 해가 되었다.
  • 또한, 2020년대가 되니 애플에서는 PowerPC, x86에 이어 CPU 이주를 또 시도하고 있고.. Windows와 macOS 모두 메이저 버전이 10에서 11로 올라갔다.;;

2010년대 중후반에 컴터 소프트웨어 세계에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깊게 느낀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플래시가 순식간에 웹에서 싹 퇴출되고 사라짐. 브라우저들에서 지원도 끊김.
  2. 왕년에 스타와 워3, 디아블로를 만들었던 그 천하무적 제작사가 정말 급속히 몰락하고 망조가 듦.
  3.  IE 브라우저가 이제 완전 퇴출 직전임. 얘 없어진 뒤에도 공인인증서 로그인과 은행 돈거래가 가능하려나..??

(1) 플래시 액션스크립트는 전부 천하무적 html5 자바스크립트로 바뀌어서 오늘날까지 건재한다. 이젠 웹브라우저가 그 자체만으로 가상 머신에 반쯤 운영체제처럼 돼 버렸다.
플래시에서 원래 주전공이던 벡터 애니메이션 대신 웬 동영상(flv)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유튜브가 플래시 없이 html5 기반으로 바뀐 것, 인터넷 지도와 구글 어쓰가 아무런 플러그인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구동되기 시작한 것.. 모두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플래시는 vb6에 대응하고, html5는 vb.net에 대응하는 것 같다.

(2) 게임 업계는 정말 영원한 강자란 없는 것 같다. 이드 소프트, 세가의 스즈키 유, 오리진의 울티마 만들었던 그 우주먹튀 뭐시기.. (아! 리처드 개리엇) 등등.. 한때의 스타 개발자가 언제까지나 계속 스타이지는 못한 것 같다.
지금은 FPS고 RTS고 나올 거 다 나오고 나서 새로운 게 뭐가 있을까? 이젠 현질 아이템 장사 말고 다른 돈 버는 방법이 남아 있을까..?? 궁금하다.
뭐 몇 년 전에 리니지 M은 돈을 빗자루로 긁어모으면서 그렇게도 성공했다고는 하더라;;

(3) 20여 년 전엔 마소 IE의 독점 불공정 끼워넣기 때문에.. 수장인 빌 아저씨는 평생 먹을 욕을 이 시기에 다 쳐먹었다. 카피레프트 안티 마소 진영으로부터는 완전 뿔 달린 악마 취급까지 받았다.
사실 더 옛날에, 1994~95년경엔 빌 아저씨가 msn으로 세계를 정복할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어림없는 얘기. 인터넷의 물결을 막을 수 없으니 다음으로 브라우저 독점을 생각했었으나 그 계획은 2004년 파이어폭스 0.8, 2008년 크롬과 함께 완전히 물 건너갔다. 넷스케이프가 이루지 못한 일을 쟤들이 대신 해냈다.

그리고 지금이야.. 웹브라우저 점유율을 제일 많이 떼어간 건 모바일이다. 마소가 범접하지 못한 완전히 다른 플랫폼..

Posted by 사무엘

2021/12/03 08:34 2021/12/03 08:34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60

1. 명예 vs 실리

(1) 롤스로이스: 한때는 구매자에게 차값뿐만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엄근진한 사회 지위 등, 엄청나게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다. 심지어 엘비스 프레슬리한테도 "당신 같은 딴따라는 이런 고매한 차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퇴짜 놨을 정도였다. 이런 사람이 굳이 롤스로이스를 몰려면 중고차를 알아봐야 했다.
==> 지금은 그딴 거 없고 아무나 돈만 내면 살 수 있다. "돈만 내면"...;;

(2) 스위스 은행: 그 어떤 국제기구나 공권력이나 수사기관에게도 예금자의 개인 정보를 절대로 넘겨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구린일을 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출처가 떳떳하지 못한 돈을 여기에다 예치해 두곤 했다.
==> 스위스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국제 추세를 거스르면서 혼자 독고다이는 못 하며, 은행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수사에 협조해 주고 있다.

(3) 남성상: 과거에는 영국 신사, 조선 양반/선비 같은 이미지가 좋은 이미지였다.
==> 오늘날은 그런 거 없고 나쁜 남자 마초 상남자가 좋은 편이다. (절대적인지는 모르겠지만)

(4) 기네스북: 과거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연속살인범 우 범곤, 세계에서 가장 오래 강제로 잠을 안 잔 기록(266시간??) 같은 것도 실려 있었다.
==> 이제는 범죄 행위 내지 사람 건강을 망치거나 동물 학대를 조장하는 기행의 기록은 받아 주지 않는다.

(5) 복싱: 과거에는 선수가 바닥에 대짜로 완전히 뻗어서 기절하지 않은 한 무조건 경기 진행이었다. 그래서 "제 발로 링을 내려오거나 들것에 실려 내려오너라" 급으로.. 선수들이 승부욕 때문에 선뜻 gg를 치지 않고 벽에 기대어 있다가 계속 얻어터져서 사망· 중상 같은 사고가 나기도 했다.
==> 사고가 몇 번 난 뒤, 지금은 경기 시간 단축되고 라운드 수가 더 줄고 휴식 시간 늘고, '스탠딩 다운' 판정에다가 선수 주치의의 재량으로 경기를 임의로 종료시킬 수도 있게 하는 등.. 온갖 안전장치들이 추가됐다.

요컨대 과거에는 지금보다 체면, 위신, 명예를 따지는 성향이 더 컸고 "안 되면 되게 하라, 이기든가 죽어라" 근성과 의지드립을 더 강조했다.
오늘날은 그때보다 실리, 인권을 더 따지는 편이다. "이길 수 없으면 살아서 돌아오기라도 해서 후일을 기약하자" 같은 관점이 된 것이다.
"죽음으로 책임지고 속죄하자" vs "그런다고 상황이 더 나아지는 건 없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살 사람은 살자"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2. 폭력

옛날은 사람들의 사는 방식이 지금보다 더 살벌하고 전투적이었다. 법을 어겼을 때의 형벌이 지금보다 더 엄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면모도 컸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애들이 일찍부터 깍듯이 예의를 지키고 철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 그러고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깝죽댔다가는 바로 쳐맞았으며, 심하면 자기 밥과 목까지 날아갔기 때문이다.

학교에는 꼭 일진 양아치들이 있었다. 그때는 체벌이 훨씬 더 심했고 교사가 학생을 폭행하는 데도 아무 제약이 없었건만.. 그런 강력한 교권을 동원해서 진짜로 섬멸해야 할 교내 불량배들을 제대로 단속하지는 않았는가(혹은, 못했는가) 보다.
군대에서는 좀 만만하고 약점 잡기 쉬운 애들이나 고문관한테 구타와 가혹행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하게 행해졌으며.. 그게 군기 잡는다는 명목으로 간부들에 의해 묵인되기까지 했다.

동네의 체육관? 무술 업계(?)에서는 무협지에서나 보던 ‘도장 깨기’ 관행이 진짜 존재했다. 관장이라는 양반이 동네 양아치한테 두들겨 맞았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 사람은 쪽팔려서라도 밤에 짐 싸서 딴 동네로 몰래 이사를 가야 했다.

바로 이런 풍조의 강화 심화 버전을 상상해 보면, 과거에 서양에는 결투가 있었고 조선에는 석전(!!)이란 게 있었던 배경을 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자가 참관하는 정식 결투에서 상대방을 죽인 것은 살인이 아니라 합법 무죄였다.

석전에서 남에게 돌 던져서 대가리 깨뜨리고 죽인 것 역시 합법이었고, 이때는 심지어 상대편 진영 집을 터는 것까지도 허용됐다. 군인이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인 것과 동급이라는 것이다!
그런 시절에 지금 같은 과학 기술이 있고 여건만 갖춰졌다면 심지어 오징어 게임 같은 것도 합법으로 운영됐을 수도 있다.

3. 인권

옛날은 “인생은 실전이야 이 존만아” 관념이 훨씬 더 강했다. 그리고 ‘갑’과 ‘을’의 권익이 상충하고 둘 다 챙길 수 없었을 때는 명백하게 을이 일방적으로 희생됐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은 진짜 말 그대로 죽어야 했다. 사람을 고의로 죽인 흉악범은 자기도 목이 날아갔다.
  • 실수로 불을 내서 마을 전체를 태워먹은 사람은 처형 당하거나 평생 노예로 일하며 죄값을 갚아야 했다. 신분도 대물림되는 마당에 빚이야 당연히 대물림됐다.
  • 노예들을 배로 수송할 때는 전부 꽁꽁 결박을 했다. 사고가 나서 배가 침몰이라도 하면 그들은 그대로 같이 익사해야 했다.;; 정말 비인도적이고 잔인하지만 그렇다고 노예를 일일이 구조할 수 없으며, 탈출하게 내버려둘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죄수가 탈출하면 죄수 관리를 제대로 못 한 간수가 자기 목숨을 대신해야 했다. 이건 성경에도 나오는 관행이다(행12:19, 행16:27, 행27:47).
  • 우리나라도 6 25 때 전국의 형무소 죄수들을 제대로 이감 수용할 수가 없으니.. 죄질이 가벼운 죄수는 그냥 가석방하고, 중범죄자나 좌익사범 같은 위험한 죄수는 그대로 다 총 갈겨서 죽여 버렸다. 군대에서 즉결처분뿐만 아니라 이런 잔혹한 일도 벌어졌었다.

하지만 요즘은 인권 의식(?)이 워낙 발달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사형 집행을 안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채무도 말이다. 상속을 포기하거나 파산 선언을 하면 된다.
경제적으로 여러 불이익이 뒤따르며 현재의 자기 재산이야 다 공개되고 압류당하고 탈탈 털리지만.. 그래도 자기 능력이 되는 한도까지만 갚으면 되며, 무슨 신체 부위를 판다던가 본인 및 처자식을 노예로 팔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면 세상이 야만에서 문명으로 바뀐 것 같고 인권이 향상된 것 같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 “제로썸 게임”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사형 집행을 안 해서 가해자의 인권을 챙겨 주면, 결국 가해자의 엄벌을 원하는 피해자 내지 유족의 인권이 처절하게 유린당하고 말살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인권팔이 위선자들이 한 마디도 입도 뻥긋 안 한다.

채무자 인권만 챙기느라 걸핏하면 채무를 탕감해 주고 배째가 가능하게 해 놓으면.. 결국 성실하게 빚 갚는 사람만 바보 되고 경제 모랄빵이 벌어진다. 그리고 예전과는 반대로 채권자가 돈을 못 받아서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채권자나 땅 주인 집 주인 기업주가 몽땅 다 샤일록 같은 놈일 거라는 인식도 프레임이고 거짓 선동일 뿐이다.

비정규직을 없애겠답시고 법을 무시하고 얼치기로 그 애들을 정규직으로 승격시키면.. 그럼 피똥 싸게 공부해서 공채 뚫고 정규직 입사한 애들이나 임용 합격해서 정교사가 된 애들은 뭐가 되는가? 이런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노예나 죄수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먹고 살 만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나라 체제가 안정되고 사회 안전망 복지 인프라가 잘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인권을 챙길 여유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다시 옛날 같은 열악하고 처절한 위기 상황이 닥치면.. 아무리 인권 인권 거리더라도 범죄자의 인권과 선량한 일반 시민의 인권을 다같이 챙길 수 없어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회 시스템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윤리관 사회관 같은 게 달라졌더라도 인간이 겪고 있는 문제나 딜레마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건 아니라는 걸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 문제를 해결한 듯하지만 그 문제가 형태만 바뀌어서 다른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게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통찰이 없이, 절대악은 그대로 놔 두고 필요악만 나쁘다고 없애자고 선동하는 애들은 절~~대로 선한 결과를 산출한 적이 없었다. 이런 것에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4. FPS 게임에 비유

FPS 게임에는 time to kill TTK라고..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데 걸리는 시간 내지 필요한 히트수라는 개념이 있다.
단칼에, 총 한 방 잘못 맞으면 바로 훅가는 건 TTK가 짧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 여러 발 때려야 되는 건 반대로 TTK가 긴 것이다.

TTK가 너무 짧으면 대부분의 뉴비들은 그냥 맵에 spawn되자마자 누가 쏜지도 모르는 총에 맞아서 바로 뒤지고 흥미를 잃기 쉽다. 그러나 고수도 재수 없으면 실수로 언제든지 훅갈 수 있으니 처신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초반에 살아남은 소수의 초보가 드물게나마 뽀록으로 선빵을 날려서 고수를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TTK가 길어지면.. 그 누구라도 한 방 맞는다고 바로 죽지는 않고 반격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게임을 시작하는 여건과 기회가 비교적 공평해지고 안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여건에서는 기습 뽀록이 안 통하며, 초보가 고수를 이기는 건 확실하게 거의 불가능해진다.
극단적인 예로, 성경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일격에 바로 쓰러뜨리지 못해서 골리앗의 반격을 허용했다면 그 다음 스토리가 어찌 됐을까? 바로 이런 이치이다.

이제 FPS를 현실 인생에다가 투영해 보자. 초보/고수를 흙수저 금수저에다 비유하고, 킬 올리는 걸 각종 성공이나 출세, 신분 상승 따위에다 비유해 보자면..
세상의 사회 시스템이라는 FPS는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갈수록 TTK가 짧았다가 더 길어지고 있는 것 같다. 여~~러 정황상 말이다. TTK 값이 바뀜으로서 발생하는 장단점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라떼는 말이야 더 가난하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다 버티고 성공했어" 이런 부류의 아재스러운 조언은..
TTK가 짧은 게임에서 살아남아서 고수를 여차여차 끝에 잡았다는 유형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사람도 노력을 안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만의 운도 있었고, 지금 TTK가 긴 시스템에서 적용 가능하지는 않은 면모도 있다는 것이다.

(현실의 전장이야.. 눈부시게 발전한 무기들 덕분에 TTK가 엄청나게 짧다. 총이건 폭탄 포탄이건 한 방 맞으면 그냥 죽는 게 아니라 시체도 못 찾는 처참한 꼴로 죽는 게 태반이다. 군함을 수리하는 정비함이라든가 갑옷 같은 게 괜히 없어진 게 아니다.
TTK가 짧을수록 현실 군대 반영 FPS이고, 길수록 과거 Doom 스타일의 비현실적이거나 캐주얼한 영웅 원맨쑈 FPS 장르가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18 08:35 2021/11/18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55

« Previous : 1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 43 : Next »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2678889
Today:
973
Yesterday:
2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