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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뭔가 죄를 짓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사고를 친 정도와 그 의도가 다음과 같은 잣대로 평가된다.
처벌 수위 견적=_=을 낼 때 이런 게 반영된다.

1. 경범죄

이건 위반한다고 해서 '체포'된다거나 전과가 남지는 않는 경미한 위· 범법 행위이다. 그냥 범칙금이나 유치장 구류 한 방으로 경찰 선에서 끝나고 다른 뒤끝이 없다. 판· 검사한테 가지도 않는다. 의료에다 비유하자면 병원에 가지 않고 약국이나 가정 상비약 선에서 끝나는 것과 비슷하다.

횡단보도 무단횡단이나 노상방뇨를 비롯해 일상생활에서 어지간한 새치기 민폐, 무임승차, 무전취식은 다 경범죄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짓거리가 상습적이고 악질적이고 규모가 커지면 중범죄인 사기, 업무방해, 주거침입 등으로 업글된다. 처벌도 벌금이나 징역으로 바뀐다.
음주운전, 뺑소니나 강도, 성추행범 몰카범은 잡히면 그대로 체포된다. 이런 거 현행범은 일반 시민이라도 제압해도 될 정도이다. 이게 바로 경범죄와 중범죄의 차이이다.

참고로, 과태료는 범칙금과 다르다. 법원도, 경찰도 거치지 않는 행정 계층에서의 금융치료-_- 되시겠다. 사고를 냈을 때의 벌칙이라기보다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각종 행정 조치를 어겼을 때의 제재에 가깝다. (산불을 냈을 때가 아니라 산에 화기를 반입하다가 적발됐을 때, 교통사고를 냈을 때가 아니라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게 적발됐을 때처럼..)
쓰레기 무단투기나 불법주차는 과태료 깜이지 경범죄조차도 아니다. 그 반면, 과속이나 신호위반 적발은 범칙금과 과태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특이한 사례이다.

2. 중지미수

중범죄에 가담하고 현장까지 갔지만.. 나중에 회개해서(죄책감 때문에?)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그 범죄를 수행하지 않고 때려치운 것. 이건 상식적으로 당연히 가장 관대하게 처분된다.
뒤에 나올 자수나 장애· 불능미수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형법 제52조) 이렇게 감경 면제가 옵션이다. 그 반면, 중지미수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 (형법 제26조)로, 감경 면제가 반드시 수반된다.

3. 과실

고의가 "전혀" 없이 전적으로 실수나 사고로 인명· 재산 손실이 크게 난 경우이다. 이건 감방을 가더라도 징역이 아니라 금고형으로 처분되는 편이다.

지난 2019년 말, 진주시에서는 미친 칼치기 끼어들기 때문에 시내버스가 급정거하고, 서 있던 한 여고생이 버스 안에서 뒹굴면서 목을 다치는 사고가 났었다. 결국 평생 전신마비 장애인..
이건 음주 무면허 뺑소니가 아닌 일상적인 과실 교통사고 중에서는 죄질이 엄청나게 나쁜 축에 들었다. 그러나 가해자는 금고 1년으로 모든 처벌이 끝났다.

그렇다고 모든 과실죄가 금고형인 건 아니다. 실수로 산불을 낸 건 고의성이 없었더라도 산림보호법에 의거하여 3년 이하의 징역이다. 형법에 규정된 '실화와 방화의 죄'보다 처벌이 더 무겁다.

4. 장애-불능미수

나쁜 의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가해자의 삽질이나 실수, 착오 때문에 대미지가 가지 않은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정황 하나만 참작될 뿐, 중지미수나 과실보다는 죄질이 나쁘게 평가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미수범까지 처벌한다는 조항이 있는 죄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모든 중범죄가 미수범을 처벌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음주운전은 심각한 중범죄이긴 하지만 미수범을 처벌하지는 않는다. 음주운전을 할 의도가 명백했지만 차가 고장 났다거나 다른 이유로 인해 결과적으로 음주운전이 실행되지 않았다면 그건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5. 자수

죄를 저질러서 이미 사고를 쳤지만.. 그래도 당사자가 뒤늦게라도 죄를 뉘우치고 순순히 자수하고 자백하면서 수사에 협조한다면? 그럼 형이 많이 가벼워진다.

2000년대 이전에 중국에서는 "모든 피의자는 수사관에게 사실 그대로 이실직고하면서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이게 형법에 명시돼 있었다고 전해진다.
미국에서는 사법거래라고 해서 이런 자수 자백을 유도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그 대신,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합의를 시도하는 것을 매우 금기시한다. 우리나라는 반대로 경찰이 피의자한테 "나한테 다 털어놓으면 내가 형량 가볍게 해 줄게" 이렇게 사법거래 하듯 떠보는 거는 상당수가 그냥 낚시라고 한다. ㅡ,.ㅡ;;

6. 중범죄

자, 경범죄가 아니고 미수· 자수 같은 할인 요인이 없는 범죄라면.. 일단 원칙대로 간다.
집행유예 중에 또 사고를 쳤냐, 동종 전과가 이미 있느냐, 일반인이 아니라 그 바닥 업계 종사자냐(더욱 객관적이고 청렴해야 하는..), 돈 받고 일하던 중에 사고를 쳤냐(더욱 실수하지 말아야 하는..).. 이런 것들은 가중 처벌 요인이다.

강력 흉악범죄를 무리를 짓거나 도구를 써서 저질렀으면 특수라는 이름으로 가중처벌된다. 주위에 보이는 흉기를 우발적으로 집었느냐, 아니면 흉기를 미리 계획해서 챙겨 갔느냐를 갖고도 형량이 크게 달라진다.

그 반면, 초범이거나 그놈의 심신미약이 참작되면 형이 감경된다.
극악무도한 존속살인이지만 애가 극심한 학대를 견디다 못해 부모를 죽였거나, 극악의 조현병· 치매 간병을 견디다 못해 노부모를 죽인 거면.. 이 역시 참작된다.
옛날에 안 두희 구타 살인은 정말 빼박 흉악 범죄였음에도 불구하고 열화와 같은 국민적인 지지와 공감 때문에 가해자가 징역 3년으로 최대한 감경됐다. 그나마도 특사 받아서 형기를 1년 반 정도밖에 안 살고 풀려났었다.

형사범죄의 처분 절차는 다음과 같다. 위에서 아래의 순으로 더 깊숙히 들어간다.

  • 내사종결(경찰 컷): 이때는 증인도 아니고 참고인이며, 가해자는 용의자라고 불린다.
  • 혐의/공소권 없음(검사 컷): 용의자가 죽어 버렸다거나, 알고 보니 정당방위· 긴급피난으로 퉁쳐졌다거나, 공소시효가 끝났다거니, 증거가 충분치 않다거나 등등등이다.
  • 기소유예: 혐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검사 재량으로 기소하지 않고 봐 준 경우이다. 이 범죄 용의자가 시민의 제보로 검거됐다면 이 등급까지만 가도 공로가 인정되어 포상금· 현상금이 나온다.
  • 선고유예: 여기부터는 재판이 시작된다. 증인이 동원되며, 가해자는 피의자라고 불린다.
  • 무죄판결: 판사가 이렇게 판정해 주면 제일 좋겠지만, 여기까지 가는 길이 참 험난하며 여러 사람들이 피곤하다.
  • 집행유예: 감방에 직접 가지만 않을 뿐, 다른 모든 불이익은 똑같다. 여기서부터는 빼박 범죄자-전과자이다.
  • 실형(집행정지 / 면제 / 가석방 / 사면): 이것들은 복역 중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쪽으로 겪을 수 있는 변수 이벤트이다.

내가 왜 어쩌다가 이런 걸 찾아보고 있지?? ㄲㄲㄲㄲㄲ

(1) 장교 임관이나 국정원 입사=_=처럼 신원조회가 빡세게 행해지는 직업에 입문하고 싶다면 정말 중범죄와 관련된 그 어떤 기록도 없는 게 좋을 것이다. 전과는 말할 것도 없고 기소유예조차도 말이다.
100만원 이상의 벌금부터는 국회의원에서 짤리고, 각종 고위 공직 선거에 당선됐던 것도 무효 처분을 당한다.

(2) 벌금을 넘어선 징역· 금고는 집행유예라도 넓은 의미에서의 실형에 속한다. 좁은 의미로는 정말로 감방 들어가는 것만 실형으로 치지만 말이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 사기업은 사람을 뽑을 때 저 정도로 빡센 신원 조회는 안, 아니면 못 한다. 하지만 "해외여행에 결격사유 없는 자"라고 명시해서 전과자를 우회적으로 거른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게 단순히 군 미필만 거르는 게 아니다.

(3) 30년이 넘는 징역 vs 무기징역 vs 사형..;; 물론 법적으로야 위력을 나타내는 부등호가 < 이지만, 일반인이 보기엔 그게 그거인 것 같다. 마치 사망이냐 실종이냐 전신마비냐 식물인간이냐 처럼 말이다.;;
참고로 무기금고와 무기징역을 합쳐서 종신형이라고 부른다. 천주교에서 공식적으로 신부와 주교를 합쳐서 사제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사형수는 미결수도 아니고 기결수도 아닌 므흣한 존재이다.

(4) 사회에서 엄청 끔찍한 죄를 지어서 높은 형량을 받았느냐~~ 랑, 교도소에서 너무 사고를 많이 치고 수형 성적이 개판이냐~ 는 약간 별개의 개념이다. 둘이 딱히 상관관계가 있지는 않다.
교도소 중에서도 최악 흉악범만 취급하는 제일 빡센 곳이 있는가 하면, 교도소 안에서 징벌용 독방이라는 것도 있다.

(5) 가석방은 감방에서만 내보내 주고 죄는 그대로인 반면, 사면은 아예 죄 자체를 없애서 교도소에서도 내보내 주는 조치이다.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의 차이는.. 사면 대상자의 집합을 조건제시법으로 기술하냐, 원소나열법으로 기술하냐의 차이와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사면이 행해진 건 김 영삼 시절 1995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그 뒤 광복절 특사, 삼일절 특사 같은 관행은 다들 특별사면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 '예정'도 조건제시법이지, 원소나열법인 게 아니다.

(6) 우리나라 법에서 집행유예라는 건 3년 이하의 금고나 징역형에 대해서만 존재했다. 그런데 벌금형에 대해서도 집행유예를 만들자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안 그래도 벌금을 몸으로 때우는 대체제도 비현실적으로 너무 관대해서 문제인 와중에 말이다.
한편, 외국에서는 사형에 집행유예가 있는 경우가 있댄다. 우리나라는 이건 이미 수십 년째 집행유예 상태이다. 자유형처럼 오랫동안 길게 지속되는 벌이 아니라, 벌금이나 사형처럼 한 순간에 끝나는 벌에다 집행유예를 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7) 그리고 요즘은 수형 중인 죄수에게 투표권을 주는가 보다. 처음엔 집행유예 죄수한테만 주다가 나중에는 감방 실형 죄수한테도 말이다.
선거권 박탈은 금고· 징역 복역 기간과(집행유예 기간 포함) 함께 당연히 뒤따르는 명예 몰수가 아닌가 싶었는데.. 사실은 세계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굉장히 반민주적인 폭거라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22 08:35 2024/05/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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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년쯤 전이던 2023년 4~5월 사이에 국내외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크리스천 세 분 정도가 소천하여 주님 품으로 갔다.
공교롭게도 표준역 킹 제임스 성경 2판이 출간되어서 막 시끌시끌하던 시기와 비슷하다.
다들 이 블로그에서 이전 글에 언급한 적이 있었던 분들이긴 하다만.. 그때 이후로 새로 추가된 정보도 있으니 한데 모아서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다.

1. 론 해밀턴 (1950 ~ 2023. 4. 19.)

O Rejoice in the Lord (God never moves without purpose or plan ...)라는 훌륭한 찬송가의 작사 작곡자이다. “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후렴 끝부분이 “나 주 안에 연단 받은 후 정금같이 되리”인 그 곡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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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은 질병 때문에 왼쪽 눈을 잃고 인생 대부분을 궁예처럼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눈을 하나 잃은 때도 1978년.. 저 찬송가는 작곡자가 눈을 잃은 뒤에 인생 간증을 담아서 만든 거라고 한다.

본인은 저 찬송가 가사의 안티테제(?) 격으로 An American Crime이라는 2007년도 영화가 떠오른다. 1965년에 미국 인디애나 주 깡촌에서 벌어졌던 실비아 라이컨스 양 학대치사 사건을 다룬 끔찍한 범죄 영화 말이다. 이것도 이미 이 블로그에서 옛날에 언급했던 바 있다.
영화에서는 피해자인 10대 소녀가 누적된 질병과 상처, 영양실조로 인해 결국 죽고 나서 쓸쓸히.. 이렇게 독백하는 걸로 끝난다.

Reverend Bill used to say: "In every situation, God always has a plan". (살아 생전에 다녔던 동네 교회 목사의 말)
I guess I'm still trying to figure out what that plan was. (그 계획이 뭔지 난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개인적으로 저 찬송을 부를 때면 저렇게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다 포함해서 하나님의 plan이 무엇이고 허락하시는 뜻이 어디까지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곤 한다. 찬송가 영어 가사에 따르면 하나님은 결코 실수를 하지 않으시고 내 인생 행로를 다 아신다고 했으니까.

아무튼 세월이 흘러서 그 가사를 쓴 찬송가의 작곡자도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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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실비아 라이컨스를 연기한 배우 엘렌 페이지.
현재는 남자로 성전환을 해서 ‘엘리엇 페이지’가 됐다 ㄷㄷㄷㄷㄷ)

2. 오야마 레이지 목사 (1927 ~ 2023. 5. 16.)

이 사람은 자기 나라가 이웃 민족에게 저지른 참혹한 죄악에 대해 알게 되고는 너무 멘붕해서 반세기 이상 평생을 사죄하는 일에 앞장섰던 엄청난 일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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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19년 4월, 제암리 학살 사건에 꽂혔다. 한국과 일본이 이제 막 수교를 맺었던 1965년~67년엔가 한국을 찾아와서 사죄하고.. 십시일반 모금을 해서 제암리 예배당 재건 비용을 대려 했다.
이때는 정작 제암리 학살 유족 후손들조차 더러운 왜놈의 돈 따위 받기 싫다고 차갑게 거절했는데도 말이다.

“바로 옆의 니 형제와도 화해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일본 교회의 예배를 받아 주실 리가 없다~ 일본은 대대적으로 사죄해야 한다 //
일본의 과거 침략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그만 됐다고 하실 때까지 계속 무릎 꿇고 고개 숙이고 있겠습니다” 이랬고..

제일 최근엔 2019년까지도 노구를 이끌고 한국 와서 도게자를 했다. 당연히 삼일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다.
저분은 소천했지만 그의 아들이 계속해서 사죄와 화해 운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2020년대에 와서는 새에덴교회 소 강석 목사와 접촉 중인가 보다.

무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죄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신앙의 양심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성 특유의 끈질긴 집념과 근성의 산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JR 서일본에서 2005년도 전철 탈선 사고 사과문을 홈페이지에다 현재까지 박제해 놓고 있고, JAL(일본항공)에서 신입사원들한테 1985년도 여객기 추락 사고를 세뇌 주입시키고, 일각에서 20년 전의 의사자 이 수현 씨를 계속 기억하고 추모하기도 하니 말이다.

저 정도로 진심을 다했으니 승무원들이 훈련이 워낙 투철하게 돼서 지난 1월 2일의 여객기 화재 사고 때 수백 명의 승객들이 단 1명도 사망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정 광진 변호사 (1937 ~ 2023. 5. 19.)

딸을 4명 두고 있었는데 3명을 1995년 백화점 붕괴 때문에 한꺼번에 잃은 그야말로 욥의 현실판인 분이었다. 그것도 다들 20대 꽃다운 나이였는데!!
이분은 종로학원의 설립자 정 경진의 동생이고.. 서울대 법대 나와서 사법시험 합격하고 판사로만 10여 년 재직하며 엘리트 코스를 갔다. 그런데 장녀가 초등학교 시절에 질병으로 인해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론 해밀턴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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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치료를 시도하느라 의료비도 많이 들었는데, 완전히 맹인이 된 뒤에는 특수학교로 통학을 시켜야 하니 자가용이 없으면 도저히 안 되는 지경이 됐다. 자녀 4명이나 키우는데 이런 일까지 생기니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음..;;;

그래도 장녀를 미국 유학까지 보내고 정말 잘 키웠는데.. 그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었고 시신조차 못 찾았다고 한다. 그나마 하나 남은 딸도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몇 년 뒤 병으로 죽었다.
이 정도면 이분도 아까 저 American Crime의 결말부 만만찮게 “신이란 게 있다면 도대체 지금 머릿속에 뭔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따질 만도 해 보인다.

저분은 사고 보상금에다가 사재를 보태서 '삼윤 장학재단'이라는 걸 만들어서 자기보다 형편이 더 어렵지만 '살아는 있는' 장애인들의 교육과 지원에 애썼다. 그러고 작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하긴, 이렇게 자녀를 잃은 사람이 죽은 자녀 몸값으로 억만금을 받는다 한들.. 그걸로 서울 한강뷰 아파트를 사겠는가, 세계일주 오성급 호텔 원정을 가겠는가? 자녀 이름을 딴 장학 재단 만들거나 복지와 관련된 일에 보상금을 쓰게 된다.

딸들은 살아 생전에 서울에 소재한 영화교회라는 곳을 다녔으며, 이분도 신앙이 있었고 교회 장로였다고 전해진다. 소천했을 때 빈소가 분당 서울대 병원이었고, 새에덴교회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니 노후는 분당에서 보냈던 것 같다.
어째 새에덴교회가 오야마 레이지 목사와 정 광진 변호사하고 모두 접점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14 19:35 2024/05/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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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이야기

1. 평가

국왕이건 대통령이건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군주? 국가원수는 재임 중에 그야말로 엄청난 부귀영화에다 최고의 복리후생 서비스를 공짜로 받으면서 최고 권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 사람도 죽거나 퇴임한 뒤에는 엄연히 당대 사람들로부터 평가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칭호라든가 '묫자리'의 등급이 그 평가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 교외에 초라하게 쳐박혀 있는 연산군묘와.. 정말 으리으리한 규모로 조성돼 있는 세종대왕릉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이런 사례는 성경의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 "... 그들이 그를 다윗의 도시에 묻었으나 왕들의 돌무덤에 두지는 아니하였더라" (대하 21:20, 안 좋은 왕 여호람)
  • "... 히스기야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드니 그들이 그를 다윗의 아들들의 돌무덤 중에서 가장 좋은 곳에 묻어" (대하 32:33)

역사 속의 왕 중에서 특별히 매우 탁월 훌륭했던 명군 성군은 '대왕'이라고 높여 부르곤 한다.
고구려 광개토, 조선 세종, 프로이센 제국의 프리드리히 대왕 정도가 떠오른다. the great / der Große

2. 묘호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까지는 군주의 이름이 다 '무슨무슨 왕'이었다. 그러다가 고려부터는 묘호라는 게 도입돼서 '-종' 이렇게 표기가 바뀌었다. 내가 알기로 아마 중국 시스템을 가져온 거지 싶다.

자기 임기를 못 마치고 폐위된 왕은 '-군'이라고 불리며, 묘지조차 '릉'이라고 불리지 못하게 된다는 건 잘 알려진 상식이다. 연산군· 광해군이 그 예이다.
그럼 정상적인 왕에게 부여되는 '-종'과 '-조'의 차이는 뭘까? 이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의외로 드문 것 같다.

" '조'가 '종'보다 격이 더 높다.",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위를 뺏은 왕이 '조'(세조, 태조..)다" 이런 말은 들어 본 것 같다.
글쎄, 검색을 해 보니 "공이 많은 왕은 '조', 은덕(?)이 많은 왕은 '종'"이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구분 기준이 매우 불명확하다. 공으로 치면 세종대왕이야말로 '조'가 돼야 하지 않는가? 여전히 좀 헷갈린다.

고려가 원 간섭기에 들어가서 개판오분전이 됐을 때는 왕의 이름에 '-종' 그딴 거 없고 몽땅 다 '충?왕' 내지 '공?왕'으로 물갈이됐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이름을 붙여야 했으니 말이다. ㄲㄲㄲㄲㄲㄲ
그리고 조선도 나중에 제국이니 황제를 표방했지만.. 일제에게 휘둘렸을 때는 그냥 '이왕가'라고 격하됐다. 천황 폐하의 휘하에 있는 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 왕들의 묘호는 그대로 고종 순종이 이어진 듯하다.

3. 현대의 대통령

현대 사회 시스템이 전근대 시절의 그것과 크게 다른 특성 중 하나는 고도의 세분화· 전문화, 계층 분리, 법과 규정· 매뉴얼 운용이다.
한 사람 독점이란 게 없으며, 한 사람의 실수나 폭주, 유고가 조직 전체를 순식간에 말아먹지 못한다. 서열 1위 VIP가 급사하면 이미 있던 매뉴얼에 따라 다음 서열이 그 자리를 승계할 뿐이다.

소유와 경영이 구분되고(국가뿐만 아니라 땅이나 기업, 선박, 군대 같은 것도..), 통치자의 권한도 사법 입법 행정 분야별로 분리된다. "짐이 곧 국가이니라, 짐이 곧 법이니라" 이런 게 없다.
뭐, 미국은 세계 최초로 임기제 대통령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한 나라이고,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 정치 모델을 따랐다. 두 나라 모두 초대 대통령은 자기를 3인칭화하면서 반쯤 왕 행세를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그 당시에는 충분히 파격적이었다.

대통령은 조선 시대 국왕 같은 존재가 아니다. 대통령이 죽었다고 해서 무슨 묘호를 따로 붙이거나 무덤을 왕릉 급으로 성대하게 꾸미지는 않는다. 그냥 국립 현충원의 국가원수 묘역에 모셔 주는 게 예우의 전부이다.
거기에 안장되는 자격은 단순히 무능해서 나라 말아먹은 정도로는 박탈되지 않는다. 악의적인 사고를 훨씬 더 크게 쳐서 형사 범죄 유죄가 확정됐을 때에나 박탈된다.

그런데 국립 대전 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이 생긴 이래로 40년이 다 돼 가는 와중에, 저기에 묻혀 있는 사람은 울나라 역사상 제일 존재감 없었던 대통령인 최 규하 내외밖에 없다는 게 함정이다..;; 덕분에 저 묘역 자체의 존재감도 최 대통령의 존재감처럼 돼 간다. -_-;;

(리 승만과 박 정희 대통령 묘소는 서울 현충원 안에서 어지간한 왕릉처럼 따로 조성돼 있긴 하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특례 예외가 더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4. 왕에 준하는 영어 어휘

(1) prince는 꼭 왕의 친아들뿐만 아니라 왕의 사위(부마) 내지 왕에 준하는 고위 통치자.. governor 총독과 얼추 비슷한 뜻이 되는 경우가 있다. 성경의 사 9:6 Prince of Peace가 '평화의 왕자'라고 번역되지 않음을 생각해 보자.
그러고 보니 Prince of Persia도 있구나. ㅋㅋㅋㅋㅋ 여기서도 주인공이 혈통상으로 무슨 왕의 친아들 같지는 않다. ^^

(2) 그러고 보니 여자 계열인 queen은 왕비도 되고 여왕도 된다. 영어에서 로얄 패밀리 관련 용어들이 전반적으로 중의적인 구석이 있는 것 같다.

(3) 다니엘서 6장에서는 이례적으로 총리 president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prince와 대등하게 같이 나열된다. 서로 비슷한 신분이지만 선출 방식, 영역이나 직무, 지위가 다른 듯하다.

5. 왕보다 높은 칭호

다음으로 반대로 왕보다도 높은 사람은 뭐라고 부를까?
성경에서 쓰이는 타이틀은 king of kings '왕들의 왕'이다. 우리식으로 좀 짤막하게 의역하면 '왕중왕' 정도. 사실상 예수님의 칭호로만 쓰인다는 건 성경깨나 공부한 사람이라면 아실 것이다.

그 반면, 세상에서 특히 동양 한중일 문화권에서는 '황제'가 친숙하다.
오늘날은 옛날 같은 왕정이 세계적으로 전멸하다시피했기 때문에 "테란의 황제 임 요환. 소프트웨어의 황제 빌 게이츠"처럼 그 분야의 지존 왕고, 1인자 같은 비유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오늘날 자기 국가원수에 대한 영문 공식 명칭으로 emperor를 쓰는 나라는 일본이 세계 유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야 반일 감정 때문에 '皇'자를 붙이고 싶지 않아서 '천황' 따위 생까고 '일왕'이라고 부르는 곳이 많다.
허나, 김 대중 때 저쪽에 대한 울나라의 공식 표기를 '천황'이라고 굳히기는 했었다. 노 태우 때 '중공' 대신 '중국'이라고 공식 표기를 굳힌 것과 완전히 동급으로 말이다. 왜냐하면 그때 한중 수교 내지 일본 대중문화 개방 같은 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6. 나머지 얘기들

(1) 예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성경엔 이스라엘 백성 "우리도 왕을 갖고 싶습니다" vs 사무엘 "그 왕의 간지를 유지하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하냐? 니들은 왕을 뒀다간 세금폭탄 맞고 개고생할 것이다. 그때 가서 후회해도 왕을 없앨 수도 없고 소용없을 거다" 이런 말이 나온다.
이거.. 요즘으로 치면 "우리도 빚 내서라도 차를 장만하고 싶습니다." vs "차는 안 몰고 세워 놓기만 해도 유지비가 얼마나 드는지 알기나 하냐? 나중에 빚더미에 올라서 고생해도 차를 무를 수 없을 거다" ...;; 카푸어와 싱크로율이 아주 높아 보인다.

(2) 동양에서는 역대 왕들에게 서로 다른 한자 글자를 할당해서 이름을 붙이는 반면.. 서양은 기존 선조의 이름을 계속 재활용하면서 n세 n+1세.. 이러는 관행이 있다!! 한중일에서 n세 n+1세 이런 이름이 붙은 군주는 내가 아는 한 없다. 신기한 노릇이다. =_=;;

(3) 신라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서로 다른 김, 박 왕조가 번갈아가며 왕좌에 올랐으며.. 잠깐이지만 여왕도 있었다. 왕릉이 바다에 조성된 왕도 있었고, 또 죽어서 왕으로 추존된 장군(김 유신)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사금인지 뭔지 이렇게 불리다가 진흥왕인가 그때 처음으로 중국식 표기가 도입됐다. 여러 모로 특이하다.

(4) 왕 내지 절대권력을 의미하는 색깔도 문화권마다 다른지.. 성경 시대엔 보라색?자주색? 계열이 고귀하게 여겨진다.
예수님이 왕드립 패드립을 당하실 때도 이 색깔의 겉옷이 걸쳐졌다(요 19:2).
한때 서울 지하철 5호선에서는.. "5호선 보라색의 상징은 황제입니다. 5호선을 이용하시는 승객 여러분도 황제입니다" 이런 아부성 광고가 붙기도 했는데.. 그 색의 의미가 저기서 유래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중국 청나라에서는 노랑이 황제를 의미하는 최고급 색깔이었다.

(5) 세종대왕에 대해서.. 종모법을 시행해서 노비 신분을 무슨 유전병 우성 인자마냥 퍼뜨리고 전 백성을 노비로 만든 원흉인 것처럼 얘기하는 낭설이 떠돈다.
글쎄.. 오히려 세종 이후 나중에.. "부모 중 누구라도 노비이기만 하면 자식은 모두 노비" 즉, X나 Y 둘 중 하나가 아니라 X|Y를 만들어 버린 게 진짜 노비를 폭증시킨 것 같은데 말이다. 저건 마치 "요셉에 대해서 백성의 땅을 몽땅 뺏어 버린 원흉"이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어 보인다.

(6) 왕은 저렇게 고귀한 신분이거늘,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에서 우리를 씻으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우리를 왕(경복궁!!)과 제사장(종묘!!)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계 1:5-6)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싶어진다.
진짜 왕 신분은 자주색 노선인 지하철 탄타고 부여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피를 믿어야 영적 신분으로나마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4/22 08:35 2024/04/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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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에 대해서 글을 쓰는 건 요거 이후로 무려 5년 만이다. =_=;;

1. 건반악기

세상에 피아노 말고도 여러 건반악기들이 있지만, 피아노처럼 언제 어디서든 건반만 누르면 소리가 탱~ 나는 악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페달을 밟거나 손으로 뭘 주무르거나 입으로 뭘 불어서 바람을 넣으면서 건반을 눌러야 한다. 전자 악기라면 하다못해 전원이라도 켜야 된다.;;
피아노는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아가는 반자동 이상 등급의 화기인 것 같다. 다른 악기들은 장전을 매번 새로 해야 하는 수동식이거나 아니면 심지어 머스킷 같은 전장식 화기와 비슷하다;;

지금이야 건반의 배색이 주 음계는 흰색, 반음계는 검정으로 정착해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이 색깔 배치가 반대였었다고 한다. 수가 더 많은 검정색이 제조 원가가 더 저렴하기 때문이었다나 어쨌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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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실로폰은...? 건반악기이긴 한데 건반을 손가락으로 누르는 게 아니라 채로 치는 형태라는 것.. 그리고 음별로 건반의 길이가 균일하지 않다는 게 특이하다. 하긴, 피아노는 그렇게 길이의 차이로 음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부위가 건반이 아니라 피아노 몸체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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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타악기

일명 북, 드럼이라고 불리는 타악기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초등학교 음악 교과 용어인 큰북과 작은북이 전부이다. =_=;; 전자는 세워 놓고 옆을 치고, 후자는 눕혀 놓고 윗면을 친다.
이 두 드럼은 전문 용어로는 각각 베이스드럼, 스네어드럼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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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물건 말고 '팀파니'라는 악기가 클래식에서 큰북 역할을 하는가 보다. 평범한 둥둥 단음이 아니라 나름 음역(음정) 구분도 되는가 보다. 윗면을 치는 형태인 듯?
작년 봄엔 KBS 교향악단에서 실황 공연 중에 팀파니가 찢어지는 돌발상황이 벌어졌는데.. 연주자가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서 팀파니 3개만으로 4개 같은 연주를 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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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말고 현대/실용 음악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바닥에서는 이렇게 생긴 드럼 키트? 세트가 있다.
저런 세트에는 드럼뿐만 아니라 심벌즈처럼 생긴 금속판도 달려 있어서 양손이 아니라 채로 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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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드럼 세트에서 스네어드럼 말고 툭툭 치게 되어 있는 작은북들을 '톰톰'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얘는 드르르륵 칠 때 나는 소리도 클래식이나 군악에서 나오는 진짜 작은북의 소리와는 다르다. 그러니 확실히 별개의 악기이긴 하다.

한때 '킥 드럼 베이스' 테크노(?) 댄스가 유행이고 유튜브에도 많이 올라오던데 말이다..;; '드럼' 때 나오는 동작이 톰톰을 드르르륵 치는 동작일 것이다.

타악기는 그냥 두들기기만 하면 되니, 피아노나 바이올린, 플루트 같은 통상적인 멜로디 악기들 정도로 오랫동안 전공하고 어렵게 숙달할 만한 요소가 있는지 모르겠다. =_=;; 글쎄, 실제로 드럼을 전공한 분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 무식한 소리 말라고 비웃음 당할지 모르겠지만.. 비전공자는 그쪽 세계를 전혀 알지 못하니 말이다.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 탬버린'...;;;은? 드럼 계열이 아닌 초딩 타악기 3관왕인 것 같다. 시소 그네 미끄럼틀 3S가 초딩 놀이터의 3대 구성요소인 것처럼 말이다. 얘들 정도면 악기를 제조하거나 구매하는 것도 엄청 저렴하고, 다루는 것도 워낙 가볍고 쉬우니.. 만년 유치원· 초딩용인 듯하다.
그나마 리코더는 초딩 음악 중에서는 약간 상위급이랄까? 나름 플루트처럼 전문가 괴수 연주자도 있다고 한다. ㄲㄲㄲ

3. 군악

오늘날이야 군대에서 악기를 다루는 건 열병식 퍼레이드 내지 각종 전통 행사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실전에서도 제한적이나마 악기가 동원되곤 했다.
북 같은 타악기는 (1) 으쌰으쌰 흥분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으로, 다같이 합을 맞춰야 하는 (2) 단체 행동에서 박자 맞추기 용도였다. 그리고 나팔 같은 관악기는 (3) 지시를 전달하는 신호기 용도였다.

디즈니 포카혼타스(1995) Savages 노래에 Now we sound the drums of war 가사는 절대로 비유적인 표현만이 아니었다. 1600년대에 인디언이고 유럽인이고 전투 때 실제로 북을 둥둥 쳤으며 그게 화면에서도 묘사됐다.
패트리어트(2000)에서도 독립전쟁 때 식민지 측이던가 and/or 영국 측이던가 “진격~!!” 명령과 함께 옆에서 누가 드럼을 드르르륵~ 치는 장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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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 시절을 풍미했던 고전 게임 남북전쟁에서도 교전 때.. 대포나 소총수를 움직일 때는 별 소리가 없는데, 기마병을 움직일 때는 나팔 소리를 흉내낸 듯한 빰빠빰빠~ 멜로디가 나왔다. 이거 나름 고증 반영이지 싶다.
그 뒤 비교적 근현대에 속하는 러일 전쟁.. 203 고지 영화도 보니까 일본군이 러시아 진지로 돌격할 때 옆에서 누가 저 남북전쟁 같은 나팔을 삐리리리 불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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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이 나팔은 나중에 호루라기로 바뀌었고.. 각개전투 전술이 고도화되고 무전 같은 다른 통신 수단이 발달하면서 야전에서 아날로그 음향 장비는 완전히 사라졌다. 통신이라는 병과가 군악이라는 병과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한 셈이다.
승마라든가, 빨강 파랑 원색 전투복, 총검술, 제식 등 군대의 여러 요소들이 야전 실전에서 퇴출되고 그냥 스포츠로 바뀌거나 사관생도들 가오만 내는 레거시로 바뀌었다. 허나, 군악이라는 요소는 저런 것들보다는 비교적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이솝 우화던가.. 전쟁터에서 어느 군악병이 적군에 의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히게 생기자 "살려주시오~ 나는 당신들에게 일체의 총질을 한 적 없고, 오로지 나팔밖에 불지 않다구!!" 라고 항변했는데.. 적군 왈, "허나, 당신의 나팔 소리에 당신네 병사들이 사기가 오르고 고취되고, 더 신이 나서 우리에게 총질을 해댔지" 이렇게 대꾸하고는 그 군악병을 사살 내지 사로잡았다고 한다.
군악이 전쟁터에서 쓸데없는 무용지물 병과가 절대로 아니며, 다 이유가 있어서 군대에서 저런 걸 배치했다는 것이다.;; 군종· 정훈이나 심지어 의무 병과처럼 말이다.

4. 군대 나팔

군대에서는 휴대하기 야외에서 불기 좋은 악기를 선호한다. 하모니카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전장에서 큰 인기였다. 이건 각 군인들의 심신 안정용이다.
수자폰은.. 그 큰 덩치와 무게에도 불구하고 행군용으로 워낙 최적화돼 있으니 천상 군대 악기인 것 같다. 악기가 사람 몸을 감싸고 덩굴을 튼 형태이다.

이런 것 말고 뭔가 군대에서 지휘와 권위를 상징하는 악기는 트럼펫 부류의 금관악기 나팔이라 하겠다.
오죽했으면 성경에서 신약 성도들의 부활 내지 휴거를 알리는 시그널도 나팔 소리일 거라고 말한다. (고전 15:52, 살전 4:16 등) "하나님의 나팔 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라는 찬송가를 생각해 보자.

국기에 대한 맹세, 장성 행진곡 등 각종 국민의례 BGM들과 심지어 군대의 악명 높은 기상 멜로디까지 모조리 B플랫 장조인 이유는.. 트럼펫의 기본조가 B플랫이기 때문이다.
흠..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군대 기상 멜로디라면...??? 군대 트라우마가 있는 크리스천 형제라면 처음에 좀 섬뜩하긴 할 것 같다. =_=;;;;

강원도 전방 산골짜기 어딘가에 박혀 있는 모 부대는 우리나라에서 최후까지 기상 나팔을 녹음된 음원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불었다고 한다. 이건 마치 강원도 정선에서 최후까지 통표 폐색 방식을 썼던 옛날 철도역에 대해 듣는 느낌이다.
철길 건널목도 옛날에는 진짜로 금속종을 때려서 땡땡 경보음을 냈고 옛날 초인종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은 전부 다 녹음된 멜로디로 바뀐 지 오래다. 기상 BGM도 이와 비슷한 변화를 겪은 셈이다.

군대가 아닌 싸제 학교나 경찰에서는 호루라기가 쓰이는데, 이건 엄연히 악기이다. 쓰임새는 타악기와 비슷하지만 소리 내는 원리는 명백히 관악기이다. 학교 체육 시간에 달리기 경기를 시작할 때 먼 거리에서는 신호총을, 가까운 데서는 호루라기를 쓰는 듯하다.
그에 비해 휘파람은.. 성악도 아니고 기악도 아니고 뭘까? 군대보다는 애완동물에게 신호를 할 때 종종 쓰인다.

5. 나머지 잡생각들

(1) 음악 용어에서는 코드가 code가 아니라 chord를 가리키며.. 베이스는 base가 아니라 bass를 의미한다. 흥미로운 차이점인 듯하다. -_- (화학에서는 base가 근간, 바탕, 기지, 밑 등의 뜻이 아니라 약간 뜬금없게 acid '산'의 반의어인 '염기'를 뜻하기도 하지..)

(2) 음악의 조도 key라고 하고 건반도 key라고 하다니 좀 이상한데..? 뭐 우리말은 원래 두 음고(시각)의 차가 음정(시간)인데, 음고 내지 조까지 다 음정이라고 부정확하게 싸잡아 말하는 편이다. '암호'(password / crpyto-, cypher)와 비슷한 유형의 모호한 다의어인 셈이다.

(3) 멜로디를 읽으면서 반주 코드를 쭉 넣는 거 말이다. 어느 정도는 답이 정해져 있고 컴퓨터로 자동화도 가능할 것이다. AI로 새로운 곡을 아예 작곡도 하는 세상인데 코드 넣는 걸 컴퓨터가 못 할 리는 만무하다.
다만, 멜로디에 대한 코드가 유일하게 하나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이것 자체도 일종의 편곡이며, 멜로디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일종의 창작이긴 하다. 악보라는 텍스트 본문의 주석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4) 산 꼭대기에서 "야호!" 소리가 최대한 멀리까지 들리게 하려면 소리를 어떻게 질러야 할까? 물론 음량은 최대로 잡지만 음고는 한없이 높이지 않는다. 가장 큰 소리가 나올 수 있는 적정 음고가 따로 있다.
이건 마치 자동차 엔진에서 최대 토크 내지 최대 출력이 나오는 엔진 회전수와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

(5) 여러 악기가 동원되는 오케스트라를 피아노 양손연주로 멋지게 편곡한 걸 보면.. 컴퓨터 프로그램을 더 열악한 하드웨어 플랫폼으로 포팅을 잘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왼손 빰빰빰으로 타악기 비트를 구현했다거나, 옥타브를 달리한 선율로 특이한 악기 소리를 표현했다거나.. 그런 것 말이다.

(6) 노래에서 숨소리는 철도에서 레일 이음매의 덜컹거림과 같은 개념이 아닐까 싶다. 사진만 보정 뽀샵질을 하는 게 아니라 음원도 뽀샵질(?)을 한다.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없애기 위해서.. 근데 현실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숨을 잠깐이라도 안 쉴 수는 없으니 립싱크와 라이브가 이런 데서도 차이가 나게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4/19 08:35 2024/04/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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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품 판매되는 DOS

(1) 197, 80년대에는 컴 단말기가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라는 건 이제 막 정립되고 있었고, 소프트웨어도 하드웨어와 함께 딸려 나오는 게 아니라 독립된 제품이라는 인식이 이제 막 정립되던 중이었다.
그래서.. 마소에서 만들었던 MS-DOS도 말이다. 1.0부터 4.x에 이르기까지는 다들 PC와 함께 OEM 형태로만 공급됐다. 도스 자체가 단품 패키지로 개별 소비자에게 retail 판매되기 시작한 건 1991년, 무려 5.0부터였다고 한다. himem.sys와 DOS=HIGH가 첫 도입됐던 그 역사적인 물건 말이다.

아 글쎄.. Windows 1.x 시절이던 1986년에 3.2 버전도 단품 패키지가 있긴 했다. 하지만 이때는 이 방식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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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대다수 사용자들이 패키지 판매를 기억하는 건 아무래도 끝물인 6.x버전이지 싶다. 이 무렵에 마소는 IBM과 사이가 단단히 틀어져서 PC-DOS와 MS-DOS의 격차도 벌어지고, Windows와 OS/2도 격차가 벌어졌었다.
1990년대 들어서 MS-DOS는 이렇게 독립을 했는데, 매크로 어셈블러(Macro Assembler)는 그 무렵쯤에 반대의 길을 갔다. 단독 독립 제품으로서는 단종이고, MS C/C++이나 Visual Studio 같은 더 큰 제품에서 제공되는 유틸리티로 흡수되었다.

(2) MS-DOS가 대기업의 PC와 함께 공급되던 시절, 대략 쌍팔년도 정도까지는 한글 MS-DOS에 내장돼 있던 한글 바이오스도 PC 제조사들별로 제각각이었다.

  • PC 제조사: 대우, 금성, 현대, 삼보 등
  • 제3자 써드파티: 도깨비, 한메, 태백 등
  • 마소 자체 개발: hbios, mshbios. Windows 3.1 + MS-DOS 6부터.

한글 바이오스 만드는 게 첨단 시스템 프로그래밍이던 시절이 있었다니.. 추억 돋는다. =_=;;
기능이 제일 많고 성능도 뛰어나던 건 역시 써드파티 제품들이었다. 조합형도 지원하고, 다양한 폰트와 글자판(세벌식까지)도 지원했지만.. 역시 1990년대 중후반쯤부터는 개발의 맥이 끊겼다.
현재 한글 바이오스가 돌아가는 중인지를 무슨 API를 호출해서 어떻게 판별했는지 궁금하다.

(3) MS-DOS는 버전 1부터 4까지는 OEM이었고 5~6 사이에 잠깐 독립 제품.. 그리고 마지막 7~8 버전은 Windows 9x에 포함된 채로 제공.. 이렇게 역사가 정리된다.
그 중에 OEM 끝자락이던 MS-DOS 4는 DOS shell이 처음 도입되었고 FAT16 파일 시스템의 개편으로 하드디스크 용량을 2GB까지 인식할 수 있게 하는 큰 변화가 있었다(종전에는 꼴랑 32MB까지만.. =_=) 하지만 4.0은 버그가 너무 많아서 곧 4.01로 패치가 돼야 했다.

이건 마치 버그가 너무 많아서 온갖 서비스 팩들이 덕지덕지 나와야 했던 Windows NT 4의 행로와도 비슷해 보인다.
그리고 개발툴 중엔 Visual Studio .NET 첫 버전(2002, 7.0)이 금세 묻혀 버렸던 것과도 처지가 비슷하다.

(4) 끝으로.. MS-DOS의 대체품으로 DR-DOS라는 게 있기도 했고, 그걸 한때 네트워크 솔루션으로 유명했던 어느 기업에서 인수하여 노벨 도스로 계승되었다.
한편, MS-DOS의 셸만 대체해서 강화한 제품으로 4DOS라는 게 있었다. 그걸 노턴 유틸리티에서 인수해서 더 발전시킨 게 NDOS...이다. 노벨 도스와 이니셜이 같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제품이다.

2. Rational

옛날에 Rational이라는 이름을 가진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가 둘 있었다.

(1) Rational Software는 소프트웨어공학 툴이라고 해야 하나.. 딱 정확하게 개발툴, IDE나 컴파일러는 아니지만 어쨌든 소프트웨어 설계· 개발과 관련이 있는 전문 도구를 개발해 왔다. 콕 집어 코딩, 프로그래밍이라기보다는.. 더 거시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말이다.
Rose라는 툴이 유명했다. 꽃하고는 별 관련 없고, 다른 단어들의 이니셜이 저렇게 된 거지 싶다. 내 기억으로 Visual C++ 6 시절에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에는 Rose의 데모 축소판이 번들로 제공됐던 적이 있었다.

얘의 제조사는 2003년에 IBM에 인수됐다. IBM이 PC용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든 게 지금은 망한 운영체제 OS/2, 그리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통계 패키지 SPSS 정도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Rose도 IBM 휘하로 넘어갔는가 보다.
하긴, 엑셀에 대항하여 넥셀이 있고, AutoCAD에 대항하여 캐디안이 있는 것처럼.. Rose의 저렴한 국산 대체제로 StarUML이라는 제품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직장에서 보고서 쓸 때 각종 UML 다이어그램 그리는 용도로 사용해 봤다.;; 클래스 관계 모식도라든가 각종 시퀀스 다이어그램 따위..
하긴, 그 비싼 프로그램에 겨우 다이어그램을 그리는 기능밖에 없으면 그냥 Visio 같은 벡터 드로잉 툴과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럴 리는 없고, 여기서 만든 설명대로 Java 클래스 파일을 생성하고 문서를 생성하는 기능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2) 그 다음으로 Rational Systems라는 곳이 있었다. 얘는 1980년대부터 DOS extender만 전문으로 개발해 왔다. 16비트에 640KB 메모리에 쩔어 있던 도스 환경에서 보호 모드를 구현하고, 메모리를 골치 아픈 제약 없이 32비트 그대로 접근하게 해 주는 획기적인 런타임 말이다.

사실, DOS extender라는 걸 처음으로 개척한 회사는 Phar Lap이었다. 워크스테이션에서나 돌릴 만한 거대한 업무용 프로그램을 PC용으로 포팅할 때 원래 Phar Lap의 extender가 주로 쓰였다. 옛날에 도스용 아래아한글도 전문용 내지 32비트 에디션은 얘를 사용했다.

그러나 Rational Systems에서는 DOS/4G라는 제품을 개발하고, 이걸 Watcom C/C++ 컴파일러에 DOS/4GW라는 번들 버전으로 아주 저렴하게 공급해 줬다. 1993년 말에 Doom이라는 게임이 딱 이 솔루션을 사용해서 출시되면서 DOS/4GW라는 32비트 extender는 세계적인 히트를 치게 됐다.

환상적인 그래픽을 선보였던 Doom이 어셈블리어를 거의 쓰지 않고 이식성 높은 C 코딩으로만 구현될 수 있었던 비결엔 이런 신기술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래픽을 제대로 보려면 그 당시로서는(1993~1995) 아직 가격이 부담되는 고성능 컴터이던 486급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Doom은 이 장르에서 하드웨어 가속이 없이 CPU 연산/소프트웨어만으로 동작한 마지막 게임이기도 했다. ^^ 이렇게만 동작해서는 320*200보다 더 높은 해상도에서 3D 폴리곤 그래픽이 실시간 애니메이션으로 나오기란 굉장히 무리였을 것이다. 뭐, 그래픽의 하드웨어 가속에도 더 높은 데이터 대역폭이 필요할 것이고, 32비트 버프가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 덩치 큰 도스용 게임들은 처음 실행될 때 DOS/4GW 로고가 뜨는 게 무척 많았다. 이게 무슨 흥행 보증수표처럼 느껴질 정도로..;;
PC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이 개발사는 훗날 Tenberry Software이라고 이름이 바뀌고 2000년대 초반까지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도스 시절이 끝난 뒤엔 없어졌는지 근황을 모르겠다.

요컨대, 두 Rational들은 분야는 다르지만 과거에 뭔가 비범한 소프트웨어들을 개발하곤 했다. ^^.

3. 옛날에 C++ 코딩 환경

난 왕년에 이런 시퍼런 화면에서 코딩을 해 봤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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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팔년도를 넘어서 1990년대가 되자.. 이제 막 C가 아니라 C++ 직통 컴파일러라는 게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IDE의 텍스트 에디터에 syntax coloring이라는 게 제공되기 시작했다.
코드에서 예약어는 진하게 표시하고, 전처리기는 별도의 색깔로, 상수 리터럴이나 주석도 별도의 색깔로.. 이거 말이다. 하긴, 1990년대는 이제 막 VGA와 컬러 모니터가 보급되었던 시절이고, 286이니 386이니 하던 컴터 성능도 실시간 컬러링을 구현해도 될 정도로 향상됐다.

그 당시 도스용 컴파일러의 본좌는 볼랜드...였는데, Turbo C++ 3.0 버전부터 IDE에서 컬러링이 지원되기 시작했다. 1과 2 시절엔 저런 게 아직 없었다.
오 그런데... 말로만 듣던 Turbo C++와 Borland C++가 차이가 있었나 보다. 난 Turbo C++ 것만 어린 시절에 직접 봤었다.
일반 명칭은 초록색, 문자열 상수는 빨강, 전처리기는 저렇게 청록색 바탕, 기호가 노란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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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Borland C++은 보니까 일반 명칭이 노랑, 문자열 상수는 청록, 전처리기가 초록, 기호는 하양이다.
난 도스용 볼랜드 개발툴 IDE에서 C++의 컬러링이 저렇게 되는 건 직접 본 적이 없고, 구글 검색을 통해서 난생 처음 본다. 비슷한 시기에 동일 회사에서 내놓았던 Borland Pascal과 더 비슷해졌다. 우와..

사실, Turbo와 Borland의 차이는 Visual Studio로 치면 standard 에디션(개인용)과 enterprise 에디션(기업용) 같은.. 에디션 급의 차이와 비슷하다.
아.. 옛날에.. 볼랜드 IDE를 따라 djgpp 진영에서 개발했던 rhide는.. C/C++ 코드에 대한 컬러링이 Turbo가 아니라 Borland C++ 스타일이었다. 자, 난 저런 것도 기억하는 세대다. -_-;;;;

프로그래밍, 코딩이라는 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재미있다.
참고로, 코딩 하다가 .이나 ->를 찍었을 때 멤버가 쫘르륵 나오고 명칭이 자동 완성되는 기능은..
1990년대 "말"이 돼서야 제공되기 시작했다. 그건 그만큼 구현하기 더 어려운 기능이었고, PC가 못해도 펜티엄 2 이상급으로 성능이 좋아진 뒤에나 쓸 만했다.

요즘은 이 기능이 없으면 너무 불편해서 코딩을 못 할 것이다. 옛날에 텍스트 에디터가 불편하고 컴퓨터 메모리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각종 함수 명칭을 아주 짧고 암호 같이 붙이는 게 관행이었지만..
지금은 코드 양이 너무 방대해지고 저런 자동 완성 기능도 발달하니 길게 길게 풀어서 써 주는 편이다. setmemmgr() 대신에 SetMemoryManager() 같은 식.

4. PowerBasic

198~90년대에.. BASIC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입문하기 간편한 대신, 인터프리터 방식 위주이고 실행 속도가 느리다는 게 상식 겸 통념이었다. 즉, 언제까지나 교육용이지, 실무용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러나 BASIC에 대해 그 통념을 정면으로 도전하고 반박하는 이단아 제품이 있었으니, 바로 PowerBasic(파베)이었다.

얘는 BASIC이라는 언어에다가 C/C++ 같은 이념을 접목했다. 마소처럼 느린 P-code 갖고 깨작거리거나 비주얼 RAD 툴 컨셉을 씌우는 게 아니라, 최적화되고 단독 실행 가능한 네이티브 코드 컴파일을 추구했다. 그렇다, 이 컴파일러 엔진을 만든 주 개발자는 그야말로 x86 어셈블리어에 정통한 smaller, faster 최적화 덕후 장인이었다.

PowerBasic은 마이너 비주류 제품군이지만 나름 존재의 의미는 있었다. 베이식 언어로 C/C++ 급의 작고 빠른 프로그램을 생성해 줬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덩치도 Visual Studio에 비하면 그냥 깃털 같은 수준이니 아주 실용적이었다.

얘는 16비트 도스에서 32비트 Windows까지는 잘 갈아탔다. 하지만 그 이후의 시대 변화에는 따라가지 못한 채, 2020년대에 와서는 명줄이 사실상 끝난 상태이다.
일단, 주 개발자인 Bob Zale 할아버지가 별세한 지가 이미 10년이 넘었다. 적절한 후임 개발자를 양성하지 못했는지, 파베는 x64건 arm64건 일단 64비트 버전이 못 나오고 있다.

살상가상으로.. PowerBasic 컴파일러 자체부터가 통짜 어셈블리어=_=;;;로 개발됐고, 코드가 호락호락 maintainance 가능한 구조가 아니라고 한다. 이러면 뭐 과거의 OS/2나 dBASE 같은 꼴 나면서 죽는 건 시간 문제지..
그렇게도 성능에 목숨 걸었다지만, 최신 멀티코어 프로세서나 GPU에 맞춰진 컴퓨팅을 잘 지원한다는 얘기도 난 못 들었다. 이러면 머신러닝 스크립트인 파이썬의 용도를 대체하기도 대략 곤란해진다.

지금 생각하면 PowerBasic이 뭔가 슈퍼컴 Cray 같은 물건이라는 생각도 든다. 고전적인 성능 덕후 장인이 애지중지 만들었지만 시 대에 뒤쳐지고 도태됐다는 점에서 말이다.
글쎄, 쟤는 그 성능빨에다가.. 마소에서 버린 자식인 클래식 Visual Basic 6 코드를 지원하는 후속 써드파티 개발툴을 표방하고 나섰으면.. 마르지 않는 고객 수요를 확보하고 절대로 망할 일이 없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사라지기에는 아깝고 아쉽다.

쌍팔년도 시절에 볼랜드와 마소가 PC용 베이식, C, 파스칼 컴파일러 시장을 꽉 잡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컴파일러들은 처음부터 그 회사에서 만든 게 아니었다. 다들 다른 사람이나 영세업체의 제품을 인수한 것에서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 BASIC/Z by Bob Zale --> Turbo Basic (요게 PowerBasic의 전신)
  • Wizard C by Bob Jervis --> Turbo C 1.0 in 1987
  • PolyPascal by Anders Hejlsberg --> Turbo Pascal
  • Lattice C --> Microsoft C

Posted by 사무엘

2024/03/27 08:35 2024/03/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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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식물 중에서는 호박을 제일 좋아하고, 동물 중에서는 멧돼지를 제일 좋아한다.
전반적으로 시꺼먼데 주둥이 주변만 허연 테두리가 있고, 콧구멍은 무슨 전기 콘센트 같고,
코뿔소도 아닌 것이 뭔가 큼직하고 우악스럽고 저돌적인 인상이고.. 왠지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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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포식자가 없기 때문에 개체수 조절 차원에서 가끔 포획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친다.. 하지만, 멧돼지의 위험성이 너무 과대포장돼서 그저 "저 동물은 해로운 동물이다" 급의 흉포한 맹수로만 프레임 씌워진 건 좀 안타깝게 느껴진다.
쟤들도 먹고 살려고 민가까지 내려오는 가련한 축생일 뿐이다. 괜히 흥분시키거나 도발하지 말고, 등을 쓰다듬고 긁어 주기만 해도 그리도 좋아한다는데.. ^^

남들이 멧돼지를 싫어하면 나라도 멧돼지를 사랑해 주고 싶다. 나도 깊은 산 속에서 토실토실 도야지를 한 마리 직접 만나서 먹을 거라도 직접 주고, 여건이 되면 새끼라도 한 놈 키워 보고 싶다.
고라니도 울나라에서 비슷하게 천대받는 야생동물이긴 한데, 개인적으로 걔는 이 정도까지 애정이 가지 않는다. 오로지 멧돼지만 좋다. ㅋㅋㅋㅋ

호박 덕질 얘기는 지금까지 많이 했으니 오늘은 오랜만에 멧돼지 얘기를 좀 늘어놓도록 하겠다. 어쩌다 보니 유튜브들 대부분이 출처가 KBS 애니멀포유 채널이다.

1. 짬멧돼지 (☞ 링크)

군부대 근처에서 짬밥 잔반을 잔뜩 먹으면서 살 뒤룩뒤룩 찐 고양이, 일명 '짬타이거'는 이미 유명하다.
그런데, 강원도 최전방 DMZ 부근에서는 도야지들도 짬밥 먹으면서 '짬멧돼지'가 돼 가는 모양이다. 특히 먹이가 귀한 겨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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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귀여워라~~ 저 멧돼지들은 산 속에서 도대체 뭘 먹으면서 저렇게 덩치를 키웠을까?
멧돼지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밥까지 준 경험은 저 군인들에게도 정서적으로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줬을 것이다.

돼지와 인간이 먹이가 겹친다는 건 성경의 탕자의 비유에도 나올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눅 15:16)
이는 돼지뿐만 아니라 개도 마찬가지다. 아문센 일행이 남극 탐험을 할 때 말이나 나귀 대신 개썰매를 동원한 주된 이유도 식량 보급을 단일· 단순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2. 애완용 멧돼지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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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거다~~ 그래, 이런 사례가 없을 리가 없다니까? 세상에는 멧돼지를 애완동물로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 ^^
돼지는 지능이 아주 높으며, 개보다도 냄새를 더 잘 맡는다. 하지만 성깔이 X랄맞고 고집이 세기 때문에 돼지를 개처럼 인간과 친근한 반려동물 급으로 키우는 건.. 일반적으로 안 된댄다. 덩치가 너무 커진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돼지를 무슨 마약 탐지견 같은 용도로 훈련시킬 수는 없다. 사냥개나 맹인 안내견은 두 할말 것도 없고.. 그건 개 중에서도 특정 품종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돼지는 새끼를 많이 낳아서 젖꼭지가 그렇게도 많은데도 인간이 딱히 젖을 먹지도 않는 것 같다. 정말 고기 말고는 다른 용도가 없는 듯.. ㄲㄲㄲㄲ

3. 다친 멧돼지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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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애처로운 사례이다.
어느 커다란 도야지가 먹이를 찾아 민가까지 내려왔다가 그만.. 5m 높이의 담벼락에서 떨어져서 뒷다리를 못 쓰는 장애 불구가 됐다.
얘는 이래 가지고는 앞으로 야생에서 목숨 부지하고 살 수 없으며, 인간의 노력으로 치료도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안락사로 살처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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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다쳐서 비록 제 명에 못 살았지만, 여느 멧돼지들보다는 인도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올무에 걸려서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죽지 않았고, 납탄 맞아서 피 흘리며 죽지도 않고.. 나름 수의사의 통제 하에 저렇게 마취총부터 맞고 고이 안락사 당했으니까 말이다.

4. 서울 도봉구에 멧돼지 6마리 (☞ 링크)

이건 2024년 3월 현재, 서울· 수도권에서 제일 최근에 멧돼지가 출현했다는 언론 보도이다.
북한산 산기슭에 귀여운 도야지가 6마리나 나타났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반가웠는데.. 모두 포획 당했댄다.
에휴~ 좀 먹고 살게 놔두지 왜 잡았는지 모르겠다. ㅠㅠㅠㅠ

그리고 기왕 멧돼지를 어쩔 수 없이 잡았다면 잘 해체하고 살균 처리해서 고기와 가죽을 적극 활용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어미 잃은 새끼가 주변에 있으면 애완용으로 분양이라도 적절히 하고 말이다~!!

※ 여담: 옛날 매체에서의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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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중후반, 조선 영조· 정조 시절엔 신 윤복이나 김 홍도 같은 풍속화 전문 화가가 활동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또 100년쯤 뒤, 1800년대 중후반엔 '김 준근'이라고 정체불명의 화가가 당시 자기 나라의 풍속을 엄청나게 많이 그림으로 남겼다. 백성들의 평범한 일상뿐만 아니라 형벌 집행이나 장례식 같은 것까지..

만약 카메라가 있었다면 저 사람은 화가가 아니라 사진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저 때도 이미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저 사람은 자기 그림을 외국인들에게 엄청 많이 판매했다. 그래서 세계인들에게 조선의 모습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람은 한반도에서 돼지가 가축으로서 키워지고 거래되는 모습을 그림 기록으로 남긴 거의 최초이자 유일한 화가라고 한다. (☞ 관련 링크 1, 관련 링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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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 뜬금없지만 화투짝에도 멧돼지가 그려져 있다. 화투에 급 호감이 생기는걸?? ㅋㅋㅋㅋㅋ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털 없는 분홍색 계열의 식용 최적화 집돼지는 생각보다 나중에 등장한 품종이긴 한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4/03/05 08:35 2024/03/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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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했던 말도 있지만.. 암튼 지난 30여 년에 달하는 컴퓨터의 역사를 곱씹어 보는 건 재미있다~!

1. 인텔 CPU

(1) 인텔 8086은 유구한 x86 시대의 서막을 연 기념비적인 16비트 CPU이다(1978). 나중에 출시된 8088은(1979) 거기에서 외부 데이터 버스만 8비트로 낮춰서 성능을 약간 디버프 했지만 가격도 낮췄다.
80186의 존재감은 비행기에서 보잉 717의 존재감과 아주 비슷하게 듣보잡이다. -_-;; 애초에 PC보다는 임베디드용으로 만들어진 8086의 변종이었다.

(2) 80286의 제일 큰 존재 의의는 보호 모드의 첫 지원이지만.. 이게 많이 부족하고 불완전해서 역시 듣보잡으로 묻혔다. CPU로서 80286은 그냥 클럭 속도 더 빨라진 8086이나 다름없고, 현실적으론 컴퓨터 완성품으로서 AT (286 기반)가 XT (8088 기반)보다 나아진 점이 훨씬 더 많이 와 닿곤 했다. 2HD 고밀도 디스켓, 배터리 기반 시계, 키보드 속도 조절 등..
그에 비해 101키 키보드, VGA 컬러 그래픽이나 하드디스크는 XT에도 일단 장착 가능은 했던 구성요소이다.

(3) 80386은 드디어 32비트 CPU이다. 32비트 정도는 돼야 어지간히 큰 정수라든가 부동소수점을 원활히 표현할 수 있고, 메모리 주소 공간도 넉넉히 확보해서 보호 모드 가상 메모리 같은 것도 구현할 수 있다.
오리지널 DX는 외부 데이터 버스와 메모리 주소 버스도 모두 32비트인 반면, 염가 다운그레이드 에디션으로 나중에 출시된 SX는 이게 각각 16비트, 24비트였다. 과거 8086과 8088의 관계와 거의 동일하다.

(4) 80486도 DX와 SX 구분이 있었는데, 이때는 단순히 부동소수점 코프로세서가 기본 내장된 게 DX이고, 안 그런 게 SX였다. 거기에다 486은 DX조차도 클럭 속도를 더 끌어올린 DX2, DX4 이런 구분이 있었다.
이때 'VESA 로컬 버스' 규격 갖고 많이 떠들곤 했다. 천상 486 전용 규격으로 쓰이다 말았지만..
그리고 캐시 메모리라는 게 들어가기도 하고.. 486이 386에 비해 많이 발전하긴 했었다.
1990년대 중반, 486? 펜티엄쯤부터 컴퓨터 본체의 모양이 모니터 아래에 가로로 놓는 게 아니라 모니터 옆에 세로로 놓는 형태로 슬슬 바뀌어 정착했다.

(5) 펜티엄은.. 외부 데이터 버스가 CPU의 레지스터보다도 더 큰 64비트로 확장됐다. 물론 그렇다고 펜티엄이 아키텍처 차원에서 64비트 CPU인 건 아니었다.
인텔 셀러론의 초창기 버전은 펜티엄 2에서 L2 캐시 메모리가 없는 보급 염가판이었다. 그런데 이게 아예 전혀 없으니까 성능이 너무 떨어져서 나중에는 캐시가 약간이나마 장착되기도 했다.

이렇듯, 컴퓨터의 성능에는 클럭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때는 옵션으로 주어졌던 요소들이 나중엔 다 기본으로 포함돼 들어가고 다른 새로운 기능이 옵션으로 도입된다.

2. Windows 운영체제

  • Windows 3.0은 MDI 창, VGA와 본격적인 컬러 지원을 위한 장치 독립 비트맵(DIB), WinHelp(!!!) 같은 획기적인 기능을 도입했고, 3.1에서는 OLE, 트루타입 글꼴, 공용 대화상자를 도입함으로써 현대의 Windows 근간을 닦았다.
  • 거기에다 Windows 3.0은 386 확장 모드라는 걸 도입해서 80386 이상 CPU에서 지원되는 보호 모드 멀티태스킹 기능을 일부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앱이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건 다 16비트 기반이다.
  • Windows NT는 저렇게 도스 진흙탕인 기존 Windows와는 달리, 미래를 바라보며 개발됐다. DEC Alpha라는 64비트 CPU용 에디션이 있기도 했으나.. 이때는 컴퓨터의 메모리도 4GB보다 훨씬 모자랐고 Windows 역시 그냥 32비트 모드로 동작했다고 한다. 포인터 8바이트니 INTPTR이니 그런 거 없었다는 뜻..

그렇기 때문에 Windows의 역사상 최초의 진정한 64비트 프로그래밍을 개막한 아키텍처는 IA64였다.
그 전 20세기의 NT4 시절에는 DEC Alpha뿐만 아니라 PowerPC네 MIPS네 여러 자잘한 아키텍처를 지원하다가 말았고, 2000년대부터는 x64와 ARM64가 살아남았으니 2000년대 초가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허나, 그 전환점의 중심에 서 있던 IA64는 좋은 타이밍을 날리고 장렬히 자폭했다... =_=;; 사실은 IA64가 채택했던 VLIW라는 설계 방식부터가 성능 대비 단점과 위험 부담도 너무 큰 방식었다. 마치 자동차 엔진에서 통상적인 왕복 엔진이 아니라 로터리 엔진처럼 말이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Windows 2000은 NT 계열의 개발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오로지 x86 전용으로만 출시되는 이변이 벌어졌었다. 무슨 9x처럼 말이다.

  • Windows 98은 마우스 휠과 멀티모니터를 최초로 공식 지원하기 시작했다.
  • Windows 2000/ME에서는 일부 마우스의 옆구리에 달려 있는 추가 버튼을 L, R 말고 X-button이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아마 전통적인 상하 스크롤 말고 좌우 스크롤 휠도?
  • Windows 7은 SSD와 멀티터치 디스플레이를 최초로 공식 지원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 USB 메모리를 별도의 드라이버 설치 없이 자체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2000/ME부터다.
  • XP/Vista 어느 때쯤부터 이제 와이파이도 별도의 프로그램/드라이버 설치 없이 자체적으로 잡기 시작했다.
    무슨 프로그램 띄워서 모뎀 전화를 걸어서 인터넷 접속하고, 그 뒤부터 연결 시간이 올라가던 게 1990년대 말쯤 일이었는데.. 참 격세지감이다.

3. 하드웨어의 발전 양상

성능 증가

  • 1990년대 동안은 클럭 속도가 뻥튀기 하듯 폭증했다.
  • 1990년대 후반부터는 메모리 양이 폭증했다. Windows 95~98 사이 말이다.
  • 2000년대 이후부터는 무선 인터넷 네트웍 속도가 폭증해 왔다.

64비트화

  • 워크스테이션/슈퍼컴 쪽은 모르겠고, 개인과 가정 레벨에서는 1990년대 말에 게임기부터 가장 먼저 64비트 CPU를 도입했다. 내 기억으로 닌텐도64..;;
  • PC는 2000년대 초에 IA64가 대차게 망하는 바람에 한 타이밍을 완전히 놓쳤고, 2000년대 중반쯤 램 용량이 실제로 4GB를 넘긴 뒤에야 64비트가 대중화됐다. Windows 2000/XP가 아니라 Vista/7 타이밍이다.
  • 스마트폰 업계는 2010년대 중반쯤에 슬슬 64비트로 전환이 시작돼서 2010년대 말엔 32비트 앱에 대한 지원을 끊네 마네 하는 상태가 된 것 같다.

오늘날 경전철이라고 해서 협궤를 쓰는 게 아니듯,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작은 모바일 컴퓨터라고 해서 16/32비트 따위를 쓰지는 않는다. 커다란 화면에다 현란한 천연색 3D 그래픽과 고화질 동영상을 찍으려면 64비트 고성능 CPU는 필수이다. 물론 고성능 CPU는 전기도 많이 먹으니 고성능 배터리도 필수..

4. 그래픽

(1) 그래픽 가속이라고 하니까 게임용 3차원 그래픽 렌더링이라든가 동영상 코덱 같은 것만 떠올리기 쉬운데.. 사실은 2D 기반의 통상적인 GUI 구현을 위해서도 작은 수준의 하드웨어 가속이 오래 전부터 쓰여 왔다.
마우스 포인터라든가(깜빡이지 않는 것, 마우스 포인터 자취 표시, 포인터 주변의 그림자).. 화면 스크롤도 다 가속의 결과물이다. CPU 연산 기반으로 도트를 옮기는 수작업이 아니다.

(2) Windows의 그래픽 API (GDI)는 너무 범용적이고 장치 독립적으로 만들어졌다 보니, 당장 화면에 그려지는 픽셀 도트 값을 알아 내거나 색깔 바꾸기, 메모리 내용을 그대로 비트맵으로 간주해서 뿌리기 같은 간단한 작업조차도 오버헤드가 크고 일이 쉽지 않았다.
비디오 메모리에다 숫자 하나만 쓰면 끝날 일을 뭐 펜을 만들고 브러시를 만들고 DC에다 select시키고.. 운영체제 차원에서 직통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Windows 3.0에서 DIB가 도입됐고, Windows 95 내지 NT 3.5에서 CreateDIBSection 계열 함수가 추가됨으로써.. 메모리 내용을 비트맵으로 그대로 뿌리는 일은 그럭저럭 가능해졌다. 옛날 WinG가 제공했던 기능도 다 이런 것들이었다. ‘비트맵 고속 전송’
다른 3D 가속 같은 거 전혀 없이 이거 하나만으로 Windows에서 Doom을 포팅하고 돌릴 수 있게 됐다.;;

Doom은 3D 전용 가속 기능이 없이 CPU와 초보적인 그래픽 가속만으로 만들어진 마지막 3D FPS였던 셈이다.
이거 마치 인어공주가 CG 없이 100% 셀 애니로만 만들어진 마지막 디즈니 애니인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3) 하긴, 옛날에는 그래픽 파일의 압축이라는 것도 원시적인 run-length 방식이 고작이었다. 더 빡세게 압축된 GIF나 PNG 파일 하나 열려면 386급 이상 컴퓨터가 필요했고, 디코딩도 훨씬 더 오래 걸렸었다. 하물며 JPG는 뭐 말할 것도 없고..
동영상조차도 1990년대 초중반에 Video for Windows 이러면서 나돌던 AVI는 쌩 run-length 압축인 게 많았다. 화질이나 압축률은 완전 허접 수준이었다.

WinAMP로 486/펜티엄 급 Windows 95 PC에서 128kbps짜리 mp3을 하나 재생하면 CPU 사용률이 10~20%까지 치솟았는데.. 이 역시 아련한 추억이다.
지금 우리가 전화기로도 당연하게 감상하는 디지털 멀티미디어 데이터들이 불과 2~30년 전에는 이렇게 가볍게 다뤄지던 물건이 전혀 아니었다. 그나마 가볍게 다루려면 기술 수준이 더 낮은 아날로그 매체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5. 나머지

(1) 64비트와 멀티코어는 서로 다른 별개의 분야이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태동해서 동시에 도입됐다(Core 2 Duo). plug & play와 USB하고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Win95/98 시절엔 USB 없이 직렬 포트에다가 프린터나 스캐너를 연결하고는 "새 하드웨어 발견.." 이러기도 했었다는 것 기억 나시는가? =_=;;
아울러, 모니터가 와이드 화면이 대세가 된 것도 2000년대 중반쯤으로 64비트니 멀티코어니 하던 때와 시기가 아주 비슷하다.;;

(2) 2000년대 초중반, 사운드 카드가 '인텔 사운드맥스'인지 뭔지 아무튼 메인보드에 내장돼 들어갔다. 그래픽 카드도 어지간히 까다로운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기본 기능은 그냥 메인보드 내장으로 퉁쳐졌다.

(3) 요즘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은 너무 얇아져서 뭔가를 꽂는 단자조차 너무 간소화되는 것 같다. 이건 개인적으로 좀 불편하게 느낀다.;;
가령, 구형 맥북은 큼직한 USB-A를 바로 꽂을 수 있지만 요즘 맥북은 그렇지 않고 C형만 꽂을 수 있다. 그리고 구형 갤럭시는 컴터용 이어폰을 바로 꽂을 수 있는 반면, 요즘 갤럭시는 그렇지 못하다.

(4) 범용적인 컴퓨터 말고 다른 기계들의 사정은 어떨까?
가정용 게임기, 업소용 오락기.. 이 둘도 차이가 있을 것 같고 내비게이션, 노래방 기계, 그리고 VR 게임기에 쓰이는 컴퓨터도 평범한 가정용 CPU 기반은 아닐 것 같은데.. 심지어 x86 계열이 아닐지도..??
요즘은 폰에 밀려서 디지털 카메라라는 물건이 많이 도태했지만, 그래도 부팅이 엄청 빨리 되는 것과 zoom이(= 렌즈빨) 더 뛰어난 건 디카만의 독자적인 장점이다. 그런 기기를 프로그래밍 하는 건 아무래도 임베디드 영역이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4/03/02 08:35 2024/03/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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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롬 브라우저: 가끔 멍 때리면서 URL + 엔터 때려도 페이지 로딩이 안 되고 아무 동작 안 하는 버그. 아마 어디 스레드끼리 데드락이 걸린 것 같은데.. chrome 프로세스들을 몽땅 강제 종료시키고 재시작을 해야 해결된다. 열어 놨던 브라우저 창들은 다 날아가고.. 빨랑 고쳐졌으면 좋겠다.

- Window 시작 메뉴: 가끔 검색어를 입력해도 멍때리면서 아무것도 안 나오는 버그. 이거 진짜 Windows 10 초창기부터 있었고, 고쳐진 듯하다가도 지금 win11 시국에서도 제대로 고쳐지지 않은 것 같다. 프로그램 좀 똑바로 못 만드나.. =_=

- '영화 및 TV'나 클래식 Media Player가 낫지, '미디어 플레이어' 앱은 품질이 개허접이다. 슬라이더를 움직여서 동영상을 여기저기 seek하다 보면 영상이 안 나오고 먹통 되는 버그가 있다.

- Windows 배경 그림이 일정 시간 간격으로 쫙 오버랩으로 바뀔 때: 수백만 개에 달하는 픽셀이 수십 프레임을 거쳐 바뀌는 계산량 부하가 장난이 아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컴 성능이 딸리면 오버랩 프레임 수가 떨어져야지, 돌아가는 프로그램의 실행이 느려지고 랙이 걸리지는 말아야 한다!

내 철칙은.. 사용자가 직접 실행하지 않았고 백그라운드 후방에서 저절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은 전방 프로그램의 실행의 겉보기 성능, 특히 UI 반응성에 영향을 주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CPU 팬을 쓸데없이 돌아가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 정도의 대규모 작업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면.. 작업 진행 상황을 표시하고 취소/중단 명령을 내릴 수 있는 UI가 제공돼야 한다!
무단으로 백그라운드에서 자원을 소모하는 프로그램은 비행 신고 없이 영공을 무단으로 날아가는 듣보잡 비행체와 같아서 언제든지 격추.. 아니, 강제 종료시킬 수 있어야 한다.

- 워드패드: 실행 직후 글꼴 콤보 상자를 처음 펼칠 때 딜레이가 수 초 이상 너무 길다. Windows 7 이래로 11까지도 여전하다. 수많은 글꼴들을 일일이 들여다보면서 미리보기 만드는 건 아무래도 스레드로 옮겨야 할 거 같은데?

- PowerPoint: Word, Excel은 안 그런데 얘만 인터넷 다운로드한 파일을 제대로 열지 못한다. alt+enter 눌러서 위험 태그를 없애 줘야 열린다. 도대체 왜..?? (2013 기준)

마소에서 만드는 PC용 앱들의 완성도가 20년 전, 30년 전만 하지 않은 것 같다.
일단 PC 앱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크게 감소했고, 그리고 인터넷 발달 덕분에 "일단 출시부터 하고 버그는 나중에 패치로 때우지 뭐~~~" 이런 사고방식이 만연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필름 카메라 시절에야 하나 하나 조준 사격으로 정말 신중하게 찍어야 했겠지만, 요즘 디카/폰카야 뭐.. 닥치는 대로 마구 갈기고 나서 제일 잘 나온 거 하나만 고르면 되지 않는가? 사고방식이 그런 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소프트웨어도 한번 마스터 디스크 만들고 패키지의 양산에 들어가면 뭔가 더 수정을 할 수 없었다. 책을 출판하는 것과 비슷해서 테스트와 디버깅을 아주 신중하게 진행해야 했다. 설명서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깨알같은 보충 설명은 프로그램 내의 별도의 readme.txt에다가 집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것도 다 옛날 추억 관행이 됐다. ^^

* 웹 로그인 관련 불편한 거

(1) 웹사이트마다 제각각 들쭉날쭉인 비번 최대 길이, 허용되는 문자 집합과 조합 조건들 제발 좀 표준화하고 조건을 완화했으면 좋겠다.
가령, 비번을 30자~40자씩 엄청 길게 넣었다면, 숫자 특수문자 X랄 안 넣고 알파벳 대소문자만 있어도 허용해 주는 식으로.
20여 년 전에 이거 조건을 까다롭게 하자고 제안했던 어떤 아재가 지금 와서는 이거 만든 걸 후회한다고 자책했을 정도이다.

비번이야 어차피 해시값을 저장할 텐데 길이 제한을 도대체 왜 넣냐 X신같이..?? 우리는 비번을 서버 DB에다 평문 String[20] 이렇게 저장한다고 광고하는 거냐? -_-;;

(2) 로그인을 실패했으면 아이디와 비번 중 뭐가 틀렸는지 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아이디 또는 비번이 잘못됐습니다" 이런 막연한 말은 개인적으로 좀.. -_-;;
이거 알려준다고 해서 딱히 보안이 더 취약해지고 위험해지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정보보호 보안 가이드에도 뭐가 틀렸는지 구체적으로 찝어주면 위험하다는 말은 없었다. 글쎄, 브루트 포스 방식으로 때려넣으면 실존하는 아이디는 수집이 가능해지겠지만.. 수집하는 효율도 그렇고, 아이디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은가? 오늘날 뿌려지고 있는 스팸메일의 양을 생각해 보면.. 어느 사이트든 아이디는 어차피 이미 털릴 대로 털려 있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아이디를 잘못 입력한 것만으로 "이 아이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튕기는 것까지는 과잉친절이고 바라지 않는다. 다만, 비번까지 입력하고 '로그인'을 누른 뒤에라도 비번에 앞서 아이디부터 잘못됐다면 나중에라도 그걸 좀 집어 줬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비번을 N번 연속으로 틀린 계정은 접속이 금지됩니다. 현재 X번 틀렸습니다. 잠금 해제하려면 추가 인증을 받으세요” 이런 기능을 구현하려면 아이디는 어차피 노출이 불가피하다.
무차별 접속 시도를 통한 해킹을 봉쇄하려면 아이디를 숨기는 것보다는 저렇게 로그인에 한번 실패할 때마다 몇 초씩 딜레이를 넣고, 그게 몇 회 이상 반복되면 캡챠 같은 추가 인증을 실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4/02/26 08:35 2024/02/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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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이유로 죽은 사람들

1. 의료

- 장 바티스트 륄리(1687, 50 중반): 바로크 시대에 프랑스의 왕실 전속 음악가 겸 무용가로 명성이 자자한 아재였다.
이때는 지금 같은 지휘봉이 없어서 그는 끝이 뾰족한 지팡이로 땅을 쿵쿵 치면서 박자 지시를 했는데..
하루는 오페라를 열성적으로 지휘하던 중, 그 지팡이로 자기 발등을 콱 찍어서 피가 철철 날 정도로 크게 다쳤다.ㅠㅠㅠㅠㅠㅠㅠㅠ 아이고 지팡이 끝에 무슨 칼날이라도 달려 있었나.
상처가 세균에 감염돼서 독소가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는 발을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버티다가 그대로 50일쯤 뒤에 목숨을 잃었다. 기본적인 소독이나 항생제 하나 없던 열악한 시절이었으니 사람이 이렇게 황당하게 훅 갈 수 있었다.

- 티코 브라헤(1601, 50 중반): 덴마크의 위대한 천문학자였다. 당대에 갈릴레이나 케플러 같은 다른 괴수들 때문에 존재감이 좀 묻혔지만..
이 사람은 어디 귀족들 행사에 초대받아 갔는데, 거기서 체면치레 하느라 오줌을 수 시간 이상 너무 오랫동안 참았다. 그러다 방광염에 걸려 버렸고, 그게 악화돼서 발병 11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ㅠㅠㅠㅠㅠㅠㅠ

- 앙리 2세(1559, 40세): 프랑스의 국왕이었는데 말 타고 갑옷 입고 창으로 기예를 겨루는 시합을 친히 벌이다가 다쳤다. 눈알 바로 위에 상대방('몽고메리'.. 스코틀랜드 귀족)의 창 파편이 박혀서 얼굴이 피칠갑이 됐고.. 상처가 감염돼서 거의 40일쯤 뒤에 목숨을 잃었다.

- 주 시경(1914, 37세): 젊은 나이에 급사· 돌연사해 버렸다. 정황상 급체나 심근경색이 의심된다. 천수를 누렸으면 국어학 발전에 훨씬 더 이바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한국의 소쉬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동시대 사람).

- 이 상(1937, 27세), 김 유정(1937, 29세), 닐스 헨리크 아벨(1829, 27세): 다들 우리나라의 천재 문학가, 외국의 천재 수학자였는데..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영양실조와 결핵 때문에 요절했다.. >_<

- 최 용신(1935, 26세): 역시 스트레스로 영양실조로 인해 건강을 망쳐서 요절했다. 비타민 결핍증인 각기병을 앓았고, 결정적으로 장중첩증에 걸려 꽤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 방 정환(1931, 32세): 과로와 스트레스, 골수 흡연, 비만, 고혈압, 당뇨.. 정말 그 시절로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대 성인병 돌연사의 선구자였다. 위의 다른 사람들처럼 단순히 항생제가 없어서, 소독을 못 받아서, 백신이 없어서, 잘 먹지를 못해서.. 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먼 옛날, 세종대왕도 이 사람과 비슷하게(비만 당뇨 고혈압 과로..) 승하했을 것이라고 추측은 되지만.. 저 두 사람은 신분과 처지가 서로 완전히 달랐다. ㅡ,.ㅡ;;

- 스티븐 포스터(1864, 37세): 초등 음악 감상 시간에 나오는 "스와니 강"과 "오 수재너(수잔나)"의 작곡자를 기억하시는가? 옛날 일본 만화영화 "금발의 제니"가 이 사람의 생애를 다룬 거다.
"오 수재너"는 "엘리제를 위하여"와 더불어 초인종 BGM으로 많이 쓰이기도 했다. ㄲㄲㄲㄲㄲ 다들 제목에 여자 이름이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군.
아무튼.. 이 사람은 30대 후반의 나이로 호텔 방에서 침대에서 떨어졌는지 어찌 됐는지 세면대에 머리를 너무 세게 부딪혀서 죽었다. ㅠㅠㅠㅠ 세면대 파편이 머리에 박히고 과다출혈로.. 지금 의술로는 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안타까운 일이다.

2. 교통사고

- 피에르 퀴리(1906, 47세): 퀴리 부인의 남편인 물리학자 겸 대학 교수. 비 내리는 날 아침에 연구실로 출근하던 중, 음주 마부가 몰던 마차에 치이고 차량 아래에 깔려서 현장에서 즉사했다. 단, 위험한 방사선 피폭 때문에, 그리 빠르지 않게 달려오는 마차를 피하지 못할 정도로 당사자의 체력도 노인 수준으로 약해진 상태였다고는 한다.

-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1935, 47세): "아라비아의 로렌스" 저자인데 오토바이를 맨몸으로 몰고 달리다가 사고로 사망했다. 이 유명인사의 죽음을 계기로 단순히 두건을 넘어 두툼한 오토바이 전용 헬멧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개발됐다고 한다.

- 이사도라 덩컨(1927):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에 제일 근접하는 말을 유언처럼 남긴 사람이다. 저 시절에 스카프가 자동차 뒷바퀴에 말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었을까..?? =_=;

- 조지 패튼(1945), 월튼 워커(1950): 미군 육군 장성이었던 이 두 사람 모두, 교통사고로 차 밖으로 튕겨나가고 목이 부러져서 목숨을 잃었다. 뚜껑 온전히 달린 일반 승용차는 아니고, 뚜껑 없는 군용 찦차 타다가 말이다.
이 사고를 계기로 차량용 안전벨트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개발되었다.

- 조 문정(1994), 석 광렬(1994): 20대 중반의 국내 배우였는데.. 둘 다 자기 차를 몰다가 단독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운전자가 사망할 정도의 사고까지는 절대 아니어 보여서 안타깝다. 차가 ABS가 없어서 더 잘 미끄러졌고, 다들 안전벨트를 안 맸던 것 같다.

- 지난 2018년 12월에는 화천에 있는 군부대로 아들의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던 일행 차량이 꼬불꼬불 산길(지방도 460)에서 옆길로 구르는 단독 사고가 났었다. 이때 운전자인 부친을 제외하고 동승자는 모친, 누나 둘, 그리고 당사자의 여친까지 모두 여성이었는데.. 이 4명이 단 한 명도 생존하지 못하고 모조리 차 밖으로 튕겨 나가서 사망해 버렸다.

일가족 몰살이나 다름없는 이 참극에 그 당시 국방부 장관과 육군 참모총장이 직접 조문을 왔고, 군 복무 당사자는 그야말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0순위 초특급 관심병사로 등극했다. 장례를 치르라고 12일 위로 휴가를 받았다가 복귀 후에는 얼마 못 가 결국 의가사 제대 처리됐다(2019년 2월경).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냐마는, 이 안타까운 사고 당시에도 탑승자들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것 같다.

3. 투철한 실험 정신

- 게오르크 빌헬름 리히만(1753): 천둥 번개의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려고 밖에 나갔다가 벼락을 정통으로 맞고 목숨을 잃었다. 욕이나 저주가 아니라 문자적으로 벼락 맞아 죽는 바람에 시신은 핏자국과 화상 자국으로 가득해서 온전한 형체를 유지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남극 탐험에다 비유하자면 프랭클린은 아문센이고 이 사람은 스콧..??? ㅠㅠㅠ 이 사람은 과학계의 순교자라고 대대적으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한낱 물방울 덩어리인 구름에서 천둥 번개가 어떻게 가능한지는 21세기 현대 과학으로도 완전히 규명돼 있지 못하다.

- 프란시스 베이컨(1626): "아는 것이 힘이다"와 귀납법으로 유명한 그 사람 맞다. 한겨울 눈 속에서 새파랗게 자라 있는 식물을 보고는 "눈을 사용해서 식품을 싱싱하게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한겨울에 추운 데서 너무 오랫동안 벌벌 떨면서 실험 장치를 세팅했는데.. 이 때문에 면역력이 확 떨어졌는지, 폐렴을 동반한 감기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_=;;

- 칼 패터슨 슈미트(1957): 독일의 파충류학자였는데.. '붐슬랭'이라고 신경독이 아닌 희소한 출혈독을 가진 독사에 물리자 일부러 해독 치료를 거부하고 버텼다. 이런 뱀에 물렸을 때 인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마루타를 자처하며 기록으로 남기다가... 결국은 골든타임을 놓치고 목숨을 잃었다.

일본의 노구치 히데요(1928)도 황열병을 연구하다가 자기가 그 병에 걸려서 죽기는 했지만.. 뭔가 숭고하고 안타깝다는 임팩트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
기자 중에서 종군기자가 가장 위험하게 알하는 사람이라면, 과학자 중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연구한다는 임패트가 강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저렇게 질병 내지.. 화산(!!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1994년엔 이례적으로 옛날 역사 인물에 대해서 다윈 상이 추서(!)된 적이 있었는데, 장 바티스트 륄리, 티코 브라헤, 그리고 프란시스 베이컨 세 명이 나란히 수상자의 명단에 올랐다. =_=;;

4. 불사신의 어처구니없는 최후

- 그리고리 라스푸틴 (1916): 고려 ‘신 돈’의 러시아 버전뻘 되는 제정 러시아 말기의 그 유명한, 전설적인 괴승이다. 청산가리가 들어간 음식을 먹고 총을 여러 발 맞았는데도 안 죽고.. 끝내는 강물에 던져져서 익사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두고 혹자는 과연 일산화이수소는 불사신 라스푸틴도 쳐잡은 독극물이라고 드립을 쳤었다. ㄲㄲㄲㄲㄲ

- 미린다요 (1948):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던 엄청난 영매? 차력사였다. 깨진 유리조각이나 면도날, 바늘을 잔뜩 먹어도 내장이 상하지 않고, 칼이나 창으로 자기 몸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찔러 관통시켰는데도 시뻘건 피가 나지 않고 죽지도 않았다.
그는 여느 사기꾼과는 달리, 웃통 까고 세계 각지의 의사들 앞에서 X선 촬영을 받고 검증에도 흔쾌히 임했다. 하지만 그 당시 의학 지식을 다 동원해도 신체에서 어떤 트릭도 발견되지 못해서 정말 불사신으로 인증받았다!!
그런데 하루는 먹었던 쇠붙이를 제거하는 수술을 마취 없이 받아야 하는데 담당 의사가 임의로 마취를 해 버렸고, 미린다요는 “너는 명령을 어긴 벌로 곧 죽게 될 것임” 이러는 내면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 뒤 그는 겨우 30대 중반의 나이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 사람은 굉장히 대단하긴 했지만, 최소한 마가복음 16장이 말하는 사도의 표적을 구사한 사람은 아니고.. 오히려 뭔가 라엘리안 끼가 풀풀 난다. 주변에서는 이 사람이 차력쑈로 돈을 버는 것만 허용하고, 자기 메시지가 담긴 연설이나 강연을 하는 건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2/15 08:35 2024/02/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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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종 교육 제도와 교육 시설

(1) 문과/인문계의 반의어는 무엇일까? 문맥에 따라 실업계, 이공계, 무과로 제법 다양하게 나뉘는 것 같다.

(2) 의대가 대학병원을 부설하듯이 사범대· 교육대가 자기네 임상실습(?) 명목으로 초· 중등학교를 만들면 그건 '부설 초· 중등학교'라고 불린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는 유치원을 '병설'할 수도 있다. 이건 유아교육 전공자가 설립한 여느 사립 유치원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린이집은 뭐고 영어 유치원은 뭔지.. 제도가 어찌 되는지 궁금하다.

(3) 교육대학교는 초등 교사를 양성하는 곳이지만, 교육대학원은 교직 이수를 통해 중등 교사 자격증을 주는 곳이다.

(4) 국방대학교나 국가정보대학원은 학위..;; 라기보다는 그 직종에 일단 들어간 직원들의 직무 재교육 성격이 강한 곳이다. 법조계에는 사법연수원이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런 곳들은 일반인에게 점차 문호를 개방하거나, 아니면 별 필요가 없어져서 다른 수단으로 대체되는 추세이다.

2. 초등학교 시절 추억

내 기억이 맞다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라는 건 중학교에서부터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 대신 초등 시절에는 시학력고사와 도학력고사라는 게 있었다. 요즘도 있나?
중등부터는 다른 형태의 모의고사나 학력평가가 있겠지만, 어쨌든 시· 도학력고사라는 명칭은 더 등장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차이점이 있었군.

초등 시절에는 산수/수학 시간에 곱셈· 나눗셈 연산자와 정수 나눗셈 나머지라는 걸 볼 수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과서의 글자 크기가 작아지고 글이 빽빽해지고, 말이 반말로 바뀌는 게 개인적으로 위압감이 느껴졌다. ^^ 심지어 중학교 이후부터 교과서에 컬러가 없어지고 흑백으로 바뀌기까지 하니 그것도 싫었었다.

3. 대학 이상의 고등 교육

(1) 신학 석사 vs 목회학 석사,
전문의(임상) vs 의학 석박사(기초의학),
법학 전문석사 vs 법학 석사
처럼 일부 특수한 전문 분야는 학문 연구 위주로 받는 학위와, 해당 실무와 관련된 전문성을 인정받아 받는 학위나 자격이 나뉘어 있는 것 같다. (전문학위 vs 학술학위) 마치 교사와 교육학자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대학 학부 이후에 대학원 석· 박사 가방끈의 세계도 계열이 생각보다 매우 다양하다. 꼭 논문을 쓰지 않아도 되는 코스도 있다.

(2) 명예박사는.. 실제 박사학위가 있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명예교수는.. 실제 학위에 실제 교수까지 했던 사람이 은퇴하고 나서 얻는 자리이므로 지위가 완전히 다르다. 겸임교수나 외래교수 같은 게 '명예박사'의 교수 버전에 더 가까울 것이다.

4. 의대와 로스쿨, 통번역 대학원

몇 년 전에 어떤 초딩 꼬마애가 머리가 좋아서 대학교 미적분 문제를 술술 푼다거나, 여러 외국어를 구사한다거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쓱쓱 한다거나, 어른들 이상으로 바다 낚시 입질의 천재이다거나.. 이런 게 아니라
의학 서적 암기가 취미인 게 어느 TV 프로에서 소개된 적이 있었다.

인체의 세부 부위들의 의학 명칭을 줄줄 외울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증상을 들으면 정확한 병명을 읊으면서 진단도 한다. 현직 의사들이 그거 보고 깜놀 하더라~~ 뭐 그런 내용이었다.

그 아이가 지금은 어찌 됐을지 모르겠다만, 그 의학 지식이 실제로 의대를 진학하는 데 도움이 될까..?? 아니다.
어떻게든 의대를 들어가서 본과 공부를 시작한 뒤부터는 그런 사전지식들이 약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의대 입시를 치르는 데는 의학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비슷한 맥락으로, 로스쿨도 당장 LEET를 응시하기 위해 법학이나 판례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다.

의대나 로스쿨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냥 이전 학교에서의 왕창 우수한 성적을 통해서 "이 학생이 머리가 좋아서 아무 공부든지 닥치는 대로 잘 흡입한다, 빽빽한 텍스트를 빨랑빨랑 잘 읽는다. 그러니 앞으로 그 빡센 의학· 법학 지식도 왕창 흡입할 역량이 된다"는 것만 입증해 보이면 된다.

학창 시절에 수학· 과학· 정보 등의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려면 정규 교육과정 밖의 대학교 전공 서적 선수학습이 필수이다. 가령, 수올의 핵심인 정수론 같은 건 교육과정의 심화판 정도가 아니라 정규 교육과정에 아예 포함돼 있질 않다.
그런 거 입상 실적이 자연· 이공계 대학의 진학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의대· 로스쿨의 입시가 지향하는 건 그런 쪽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원 중에서 입시가 의· 법 계열과 정반대인 곳은 아마 통· 번역 대학원이지 싶다.
학부 간판이나 성적, 자기 소개, 창의적인 학업 계획서 그딴 거 전혀에 가깝게 보지 않고, 오로지 자체적으로 치르는 통· 번역 외국어 시험 성적순으로 커트를 하기 때문이다.
닥치고 오로지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에 얼마나 가까이 많이 꽂혔는지만 측정해서 국대를 뽑는 양궁과 좀 비슷하달까? =_=;;

통번역 대학원은 입학을 위해 당장 그 어학 실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고, 입학 후엔 그걸 더 강화해야 된다. 출발어뿐만 아니라, 아니 그것보다도 도착어 내지 자기 모국어 어휘력도 왕창 뛰어나야 된다.
저기는 명색이 대학원인데 입시가 고등학교나 대학교 학부 입시와 비슷하다. 왜일까?

그만큼 모국어와 다른 언어를 새로 습득하는 건 정말 어렵고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국제기구 회의 같은 데서 활동하는 통번역 전문가를 양성하는 걸 백지 상태에서 대학원에서부터 시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학 법학 공부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빡세고 힘들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5. 제약

요즘 몇몇 엘리트 교육기관엔 일면 이해는 되지만 굉장히 인위적이고 억지스러워 보이는 제약이 걸려 있는 게 있다. 다음과 같은 딱 둘이다.

  • 과학고 다니는 애가 의대를 가려 하면 지원받은 학비를 토해내야 하고, 교사가 공식적으로 진학 지원을 끊는 등의 페널티/불이익이 부과됨.
  • 로스쿨은 졸업하고 나서 5년 안에 변호사 시험을 5번만 응시할 수 있음. 이 안에 합격 못 하면 그 사람은 앞으로 평생 영원히 그 시험에 다시 응시할 수 없으며 변호사 면허도 절대로 딸 수 없음. 이 기간은 군 복무를 제외하면 그 어떤 개인사 가정사(질병, 결혼, 출산..)로도 유예 불가능함.

예전에 수능이라는 시험을 첫 설계했던 대학 교수가 회고하기를, 자기는 이 시험이 대학교 전공 공부를 소화할 지능이 되는지를 진단하는 최소한의 자격 시험, 가벼운 IQ 테스트에 가깝게 되는 걸 의도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몽땅 달달 암기해서 하루 원큐에 결판을 내는 미친 시험이 돼 버린 건 취지가 변질된 거라고 말하던데..

하지만 저건 저 사람이 현실을 잘못 파악한 감이 있었지 않나 싶다. 오늘날 수능이 기여하는 가장 큰 역할은 고등학교마다 인플레가 너무 심한 내신, 그리고 대학교마다 편차가 너무 크고 부정의 가능성도 있는 대학별 본고사 따위를 대체하여 객관적인 국가 공인 학력 지수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니 수능은 어쩔 수 없이 과거의 본고사/학력고사의 역할도 해야 하고 상위권 애들을 변별도 해야 한다. 옛날만큼은 아니어도 배배 꼰 함정 문제, 분야 통합 문제도 내야 한다.
뭐, 그래도 중학교나 고등학교 입시와 달리, 수능은 고득점을 위해서 대놓고 대학교 내용의 선수 학습까지 할 필요는 없다.

대학교 선수 학습은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하는 애들한테나 필요하다. 그런데 이게 영재 발굴 이상으로 사교육 조장 부작용이 커서 교육의 ‘평등’ 이념과 안 맞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수능 다음으로 변호사 시험도 마찬가지다. 이 시험을 첫 설계한 교수가 말하기를, 이건 합격률 90%대의 최소한의 자격 시험을 의도한 거랜다. 그래서 이런 시험조차 5년 안에 합격을 못 할 정도이면 진짜로 법학 적성이 안 맞는 사람이니까 더 인생 낭비하지 말고 딴 2군 진로를 찾으라는 취지에서 이런 제약을 넣은 거라고 한다.

실제로 제1회 변시의 합격률은 90%대에 달했다. 하지만 그 뒤로 재수생 삼수생이 누적돼서 지금처럼 합격률이 50%대까지 뚝 떨어지게 될 것을 저 사람은 예상을 정말 못 한 것일까..?
이거 마치 하사· 소위와의 형평성을 생각은 좀 하고서 병들 월급을 팍 올린 건가, 정말 이래도 괜찮나 의문이 드는 것과 완전히 같은 느낌이다.

지금은 로스쿨 나오고도 이렇게 변호사 기회가 완전히 박탈된 ‘오탈자’가 매스컴 타고 당당히 유튜브까지 하는 세상이 됐다. ㅡ,.ㅡ;;
절대평가도 아니고 경쟁률 2:1에 가까운 상대평가에서 아주 근소한 점수 차이로 걸러진 사람들인데.. 무슨 범죄자도 아닌데 오로지 이 시험에만 영구적으로 응시 자격을 박탈하는 조치가 있는 게 좀 부자연스러워 보이긴 한다.

이런 사람은 판사 검사 변호사 정도로 소송을 직접 다루지는 않으면서 자잘하게 복잡한 생활법들만 취급하는 법무사 세무사 행정사 등의 2군 진로를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로스쿨에 들인 돈과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는 가성비 안 맞는 보상일 것이다. 마치 육사 들어갔다가 퇴교한 병· 부사관과 비슷한 처지이다.

사법시험 시절처럼 8번, 9번, 10여 번 재응시를 해서 간신히 합격한 사람이 나오는 게 좋은지, 아니면 그런 사회적 낭비 인생 낭비를 원천차단하는 게 좋은지.. 나는 딱 잘라 가치 판단을 못 하겠다.
하지만 갈수록 이럴 거면 그냥 예전처럼 사법시험 체제를 유지할 것이지, 로스쿨이라는 제도가 예전 제도보다 특별히 더 낫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끝으로 의대..
저런 무식한 제약을 억지로 부과해야만 이공계 영재를 의대로 뺏기지 않을 수 있다면 이젠 뭐 과학고의 운영 자체가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세월이 흐르니 과학고니 외고니, 경찰대니 등 뭔가 특수 목적 학교들이 전반적으로 인기와 존재감이 예전 같지 않다.
민항사로 우수수 빠져나가는 공군 파일럿은 어떡할 것이며, 밋딧릿으로 빠지는 공대 졸업생은 어떻게 붙잡을 참인가?

의대 진학을 막을 게 아니라 의학과 연계된 연구를 하는 과학자를 양성하는 쪽으로 뭔가 변화를 해야 하지 않겠는지.. 이런 생각도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24/02/12 08:35 2024/02/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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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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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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