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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로의 풍경들

세월이 흘러 2019년 가을부터는 번호판의 앞자리가 세 자리(!!)인 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당장 아스팔트 길바닥에도 시각적으로 새로운 요소들이 눈에 띄고 있다.

불법 주차를 더욱 강하게 금지하고 계도하기 위해서 요 얼마 전부터는 소방차의 진입에 필요한 크리티컬한 구역 한정으로 길가에 빨간 실선이 도입됐다. 원래는 주황색 실선만으로도 주· 정차 금지인데, 여기는 불법 주차 적발시 더 강하게 처벌할 것이고 차를 세울 생각일랑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더 강한 색깔이 도입됐다.

파란색은 버스 전용 차선 또는 고속도로 하이패스 차로를 표시하기 위해 쓰인다. 요즘 초록과 분홍은 고속도로 같은 데서 상· 하행별 진출로 안내를 위해 차선이 아닌 차로에 칠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마치 지하철역 환승띠 같은 느낌이 들고 괜찮다.

자동차 전용 도로에 그런 색깔띠가 있다면, 시내 도로에는 보행자를 주의하라고 횡단보도 부근에 마름모 ◇ 표식이 종종 등장한다. 최근에는 그걸로도 모자라서 지그재그 차선도 거의 같은 용도로 등장해 있다. 어떻게든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이다.
스쿨존에서는 길바닥뿐만 아니라 자기 차 속도계의 20과 40 사이에 그어진 "빨간 눈금"도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30km/h 이하). 괜히 그어진 게 아니니 말이다.

아울러, 편도 2차로 정도의 좁은 길에서는 아예 교차로에 대각선 횡단보도까지 그려져 있어서 교차로의 모든 방향 차들이 정지하고 모든 방향 신호등이 켜지는 교차로도.. 예전에는 일방통행이나 1차로급 아주 작은 길에서나 가끔 있다가 2010년대쯤부터 더 적극적으로 눈에 띄기 시작했다. 뭐, 보행자 입장에서는 좋지만 차량 통행이 많은 곳에서는 비효율적일지도 모르겠다.

2. 제2경부, 제2 순환 고속도로

2020년 현재 철도계에 신안산선, 중부내륙선, 동해선, 수인선(아직 건설 중인 잔여 구간) 따위가 개통 예정이라면, 고속도로에는 두 가지 큰 이슈가 있다. 하나는 포천-세종 고속도로(29)이고, 다른 하나는 수도권 제2순환 고속도로(400)이다.

전자 29의 경우, 한강 이북으로 번듯한 폐쇄식 종축 고속도로가 만들어진 거의 최초의 사례이지 싶다. 기존의 서해안-경부-중부는 서울 시내로 진입하는 선형인 관계로 한강을 건너기 전에 고속도로가 끝나 버리는 반면, 쟤는 서울 시내가 아닌 외곽을 통과하고, 그렇다고 100 같은 순환선도 아니라는 차이가 있다.

지금 한강 강동대교(100 고속도로용)의 서쪽에 건설 중인 교량이 바로 이 고속도로가 사용할 예정인 다리이다. 강을 건너서 남쪽으로 간 뒤에는 서울 강동구와 남한산성을 지하로 통과하게 된다. 여러 모로 대단한 고속도로가 될 것 같다.

한편, 후자 400도 특이한 점이 여럿 있다. 현재 국내에 순환형 고속도로 자체는 서울 수도권 말고 부산 같은 다른 대도시 주변에도 존재하나.. 기존 순환선과 동일한 중심을 기준으로 지름이 더 큰 순환선이 더 생기는 사례는 이게 처음이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순환 고속도로인 100은 송파구 끄트머리에서 아주 잠깐 인서울을 경유하기라도 하지만 400은 그런 거 없다. 그리고 100은 개방식이지만 400은 더 멀리 떨어진 관계로 폐쇄식으로 운영된다. 도로의 성격과 분위기가 100과는 사뭇 다를 것 같다.
뭐, 실제로 개통된 구간은 아직은 (1) 인천과 김포의 저 서쪽 끄트머리, (2) 화성-동탄 쪽에 찔끔, 그리고 아직은 너무 짧아서 29의 지선 정도로나 간주되는 (3) 저 북쪽 의정부 근처가 전부이다.

100은 맨 처음에 구리-판교 고속도로라는 타이틀로 시작했는데, 29는 맨 처음에 구리-포천 고속도로로 시작했다는 것 역시 참고할 점이다.

3. 시외· 고속버스와 고속도로의 변화들

  • 언제부턴가 시외버스가 운임이 비정상적으로 굉장히 오른 것 같아서 내막을 살펴보니.. 고속버스에만 존재하던 일반/우등 구분이 이제 시외버스에도 적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본인이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지금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는 경계가 굉장히 모호해지고 구분이 무의미해진 지경에 갔다. 열차가 기존의 '-호'로 끝나는 등급명 구분이 굉장히 문란해진 것만큼이나 이건 피할 수 없는 변화이다. 특별히 역사· 지리적인 사연이 있지 않는 한, 새로 짓는 버스 터미널들은 시외와 고속을 구분 없이 같이 취급하는 게 추세이다.
  • 고속도로가 전국 곳곳에 깔리고 있으니 시외버스도 고속버스처럼 고속화, 직행화, 고급화로 가고 있다. 반대로 고속버스도 휴게소 환승 같은 시스템이 도입되어서 꼭 터미널에서만 타고 내리지는 않는 존재가 됐다.
  • 고속도로의 버스 정류장은 한때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어서 다들 없어지고 졸음 쉼터로 교체되었지만, 지금은 수도권과(특히 외곽순환) 일부 지역 한정으로는 다시 광역버스 환승 허브로 부활 중이기도 하다.
  • 졸음 쉼터보다는 규모가 크지만 정규 휴게소보다는 시설이 빈약해서 화장실과 편의점 정도만 달랑 있는.. '주차장 휴게소'라는 것도 생겨 있다.

가까운 미래에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는 시스템이 완전히 통합· 합병될 것으로 보인다. 마치 서울 메트로와 도철이 합병한 것처럼 말이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시외버스와 달리 고속버스는 운임에 부가세가 붙어 있다. 이건 전국에 고속도로라는 게 경부 등 극소수밖에 없고, 고속도로가 아주 특별한 도로라는 옛날 사고방식에서 유래된 관행이다. 이런 구분도 지금은 전혀 무의미히고 시대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다.

4. 안내방송의 통합

요즘(대략 2010년대 중후반부터) 고속버스와 전철에서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 트렌드 중 하나는.. 회사마다 제각각이던 안내방송들이 모조리 하나로 통합됐다는 것이다.

전철의 경우 2000년대까지만 해도 환승역 진입을 알리는 BGM이 코레일, 서울 메트로, 도철이 모두 서로 달랐다. 또한 한국어 및 영어 성우도 전부 달랐다. 그러다가 그 BGM은 언제부턴가 퓨전 국악 '얼씨구야'로 회사를 불문하고 천하 통일이 됐다. 게다가 지난 2017년부터 서울 메트로와 도철이 한데 통합되면서 차이는 더욱 없어졌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벌어졌다.

다만, 코레일의 경우 주요역에서는 영어 방송에 역의 번호까지 명시하고 있으며, 이제 매번 성우를 쓰는 게 아니라 TTS, 일명 보이스웨어를 활용하고 있다. 이런 것이 그나마 코레일 차량과 서울 메트로 차량의 차이점으로 남아 있다.
그러고 보니 시종착역에서의 BGM과 방송도 양 회사가 동일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건 잘 모르겠다. 요 근래엔 시종착역에서 전철을 타 보지를 않아서..;;; 문득 궁금해진다.

한편, 철도 다음으로 고속버스도 금호, 코오롱(과거..), 한진 등 각 회사별로 출발 직후, 휴게소 정차, 도착 직전 등의 이벤트 때 흘러나오는 BGM과 안내방송을 당연히 제각각 따로 다르게 만들었지만.. 이 역시 옛말이 됐다. 지금은 전부 동일해졌다.
다만, 열차 안내방송에서는 종착역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나오는 반면, 고속버스의 안내방송은.. 그냥 "잠시 후 목적지 터미널에 도착하겠습니다"라고.. 아무 행선지에나 적용 가능한 대명사 버전 하나만 만들어 놓고 모든 노선에다 우려먹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내 경험상 육상 교통수단이 아니라 여객기가 TTS나 성우 목소리 없이 기장과 객실 승무원의 라이브 육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들을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도착지의 시각과 날씨, 현재 고도와 비행 속도, 도착 예정 시각, 난기류 발생 따위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2/10 19:35 2020/02/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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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문자, 글꼴 쪽의 생각을 하나 올리게 됐다.
머신러닝 라이브러리로 유명한 Google의 TensorFlow는.. 자신이 하는 일의 본질(수많은 숫자들 묶음의 흐름!)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함과 동시에 아이콘/로고도 기하학적으로 꽤 기발하게 만든 것 같다.

T와 F를 3차원 공간에서 합성한 입체도형을 형상화했는데, 이걸 한 면에서 정사영 projection을 하면 T자만 보이고, 다른 면에서 그렇게 하면 F자만 보이기 때문이다. true/false 같은 느낌이 난다만.. 뭐 그 심상도 논리학이 연상되니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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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예로 Excel의 아이콘이 떠오른다.

얘는 마치 ICQ, NME(enemy)처럼.. 알파벳 XL만 늘어놓고 그대로 읽어도 같은 발음이 나오는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콘도 대놓고 그 글자를 겹쳐 놓은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단, L은 X의 획에 맞춰서 세로획을 기울였다는 것이 포인트이다. 그래서 X와 달리 바닥에 눕힌 듯한 입체 효과가 미묘하게 난다.

이렇게 평면에다가 단순히 두께나 그림자만 입혀서 3D 효과를 낸 것 말고, 글자나 획의 배치 자체를 입체적으로 해서 기발한 시각 효과를 내는 예를 개인적으로 더 찾아보고 싶다. 아, 그러고 보니 옛날에 Quake 3 Arena도 있다. Q자를 반쯤 테 모양으로 잘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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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글은.. 당장 자음 모음을 각각 서로 다른 축의 평면에다가 대응시킨 것을 표현한 실험적인 탈네모 글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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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0/02/08 19:37 2020/02/0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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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철도계 근황과 미래 전망

1. 신안산선 착공

한국 철도 역사상 최장, 최대의 기약 없는 베이퍼웨어로 악명을 떨쳤던 신안산선이 2019년 가을부로 드디어 '착공'에 들어갔다. 서울 3기 지하철 계획 중 10호선에 속했던 노선이 저런 대체 노선으로 바뀐 지가 어언 20년 가까이 전인데.. 노선과 운영 방식 등 갖가지 계획들이 원만히 확정되지 못하고 2010년대에 이르도록 질질 끌다가 이제야 건설이 시작된 것이다. 계획상의 완공 예정 시기는 2024년이라지만, 현실적으로는 거기에 최하 1, 2년은 더 추가해야 할 듯하다.

소사-원시 서해선에 이어 또 서울 서남부에 광역전철이 하나 더 생길 예정이라니 기대된다. 일단 여의도에서 광명 역이 직통으로 쭉 연결될 예정인데.. 여의도 정도 위치에서 KTX 타려면 그냥, 서울이나 용산으로 가면 되지 광명이 딱히 거리 메리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2. 객차형 열차의 종말

버스업계에서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만큼이나 21세기의 국내 철도계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이라는 기존 차급 체계가 사실상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다양한 전동차들이다. 고속철 KTX부터 시작해 누리로, ITX-청춘, ITX-새마을이 전부 전동차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EEC 아니면 통근형 차량만 있던 전동차가 어느샌가 주류로 급부상했다.

우리나라에 디젤 동차가 마지막으로 도입된 것은 1997~99년의 CDC 통근열차이다. 차급으로나 동력원으로나 시대에 맞지 않으니 오죽했으면 걔를 2008년경에 RDC라는 무궁화호로 승격해서 과거 NDC처럼 비전철 구간에서 써먹게 됐다.

그것처럼 우리나라에 기관차 피견인 객차가 도입된 것은 2002~04년이 마지막이다.
그리고 다른 차급들이 몽땅 없어졌으니 무궁화호는 다른 전동차에 속하지 않는 기관차-객차형 일반열차의 총칭처럼 됐다. 이 와중에 기관차-객차형 ITX-새마을이라는 아주 이례적이고 예외적인 열차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기관차-객차형 열차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수익성 없는 단선 비전철에서는 차라리 1량짜리 디젤 동차가 다닐 것이고, 대형 기관차는 디젤이건 전기건 화물 위주로 운행될 것이다.

이 때문에 2000년대에 한창, 특히 경부선의 전철화 완료와 맞물려서 여객용으로 잔뜩 도입됐던 8200호대 전기 기관차가 가까운 미래 2020~2030년대에는 꽤 애매한 계륵 위치로 전락할 것 같다. 내구연한은 아직 한창 남았는데 객차형 일반열차 자체가 도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잉여분은 중고차 명목으로 외국으로 수출될 듯..

3. 월미도 모노레일

한편, 오랫동안 인천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던 월미도 모노레일도 재정비해서 지난해 10월에 드디어 재개통했다.
우리나라는 용인과 의정부 경전철의 과거 선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전철 궤도 교통수단들은 정치 논리를 따라 이상한 동기로 이상하게 만들어지고, 노선 선정과 운영을 구리게 하는 바람에 적자투성이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경전철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를 나쁘게 깎아먹어 왔다.

월미도 모노레일은 도시 대중교통은 아니지만 이 역시 저런 안 좋은 사례에 속했다. 이미 만들어져 버린 것은 철거하지 않을 거면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운영을 똑바로 하고, 앞으로는 경전철들이 그렇게 대충 만들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건 영화계로 치면 왕창 구리게 만들어서 흥행 쫄딱 망하고 투자자들의 돈을 다 날리는 무능한 영화 감독과 같다.

그나저나 영종도의 자기 부상 열차도 법적으로 저런 도시 대중교통이 아니지 싶은데.. 요즘도 그냥 무료로 운행되고 있는가 모르겠다.

4. 서울 지하철들의 연장 구간

서울 지하철 6호선이 연장되어 봉화산 이후의 신내 역이 개통했다. 차량기지 안의 단선 승강장이니 뭔가 7호선 장암 역의 시즌 2를 찍은 셈이다. 얘는 경춘선과의 환승역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5호선의 하남 방면 상일동 연장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2020년 말에나 개통 예정이고..
4호선과 8호선이 모두 남양주 방면으로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4호선은 긴 터널을 파서 산을 뚫어야 하고, 8호선은 하저터널을 파야 한다. 오옷~

5호선(2개)과 분당선에 이어 제4의 하저 터널이 생기는 셈이니 기대된다. 2019년 말에 착공에 들어갔으니 앞으로 3~4년 정도 걸릴 것 같다. 29번 고속도로 구간용으로 고덕-구리 한강 공원 사이에 이미 만들고 있는 그 교량과도 아주 가까이 있다.
8호선 연장 구간이 개통할 때쯤에 복정-산성 사이의 신설역도 개통하지 않을까 싶다.

5. 서대구 역

먼 옛날 구한말에 경부선 철도가 개통했을 때 대구에는 말 그대로 대구 역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969년엔 동쪽 외곽에 오리지널 대구보다 더 큰 규모로 동대구 역이 추가로 만들어졌는데, 얘가 원래 있던 대구 역을 제치고 대구 전체를 대표하는 역으로 등극했다. 대구와 동대구 역은 마치 김포와 인천 공항 같은 관계가 됐다.

마치 SI단위들 중 킬로그램만 유일하게 접두사가 붙어 있듯, 대구는 이례적으로 대표역의 이름에 '동'이라는 접두사가 붙어 있다. 그렇다고 동대구를 대구라고 개명하고 기존 대구를 서대구 정도로 바꾸기에는 옛 대구 역의 이름값도 만만찮다. 이게 아예 고속선 vs 기존선의 관계라면 경주와 울산의 사례처럼 역명 개명이 발생할 수 있지만 대구와 동대구는 그런 관계도 아니다. (경주야 옛 경주 역은 선로까지 완전히 없어질 예정이고, 울산은 기존역이 '태화강'이라고 개명됨)

대구 역 이후로 동대구 역이 만들어지기까지 60년이 넘는 간격이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동대구 역 이후로 거의 50년이 넘게 지난 2021년경에는.. 대구의 서쪽 외곽에 진짜로 서대구라는 역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참고로 대구-동대구 거리보다 서쪽으로 더 멀리 떨어져 있다. 경주에도 신경주 말고 기존 나원과 서경주를 대체하는 이름 없는 역이 더 만들어지고 있는데 마치 그걸 보는 느낌이다.

거기는 수도권으로 치면 오봉 역처럼 물류 허브와 화물 취급 전용역을 만들려고 오래 전부터 부지를 확보해 놓았던 곳이었다. 그랬는데 화물 기지는 다른 곳에 따로 만들어지고 계획이 틀어진 채, 부지는 오랫동안 공터로 놀게 됐다. 이건 마치 옛날에 만들려다 말았던 서울 동남부의 화물 철도와도 비슷한 느낌인데.. 대구에서는 그 자리에 여객을 취급하는 역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서울에 영등포, 부산에 구포, 대전에 신탄진처럼 대구에도 역이 더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접사 파생어 형태의 역명이 더 만들어지는 건 이색적이다. 일반열차가 서-X-동이라는 3개역에 모두 정차하는 건 아니며, 장기적으로는 대구에도 경부선 선로를 기반으로 광역전철이 운행될 계획이 있다고 한다. 아무렴, 장거리 여객은 고속철 위주로 바뀌고, 기존선은 화물이나 단거리 광역전철 위주로 바뀌는 것이 추세이긴 하다.

6. 서경주 역

경북 경주에는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역이 ‘서경주’라는 간판을 걸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되풀이해 왔다.

  • 시즌 1 (과거): 1985년부터 1992년 사이에 송화산 기슭에 존재했다가 폐지된 서경주 신호장이다.
  • 시즌 2 (2020년 현재!): 1992년부터 현곡면에 새로 생긴 금장 역이 2009년 1월 1일부터 서경주라고 개명되었다. 하지만 얘는 경주 역과 마찬가지로 시한부 인생이다.
  • 시즌 3 (미래): 앞으로 몇 년 뒤엔 현곡 초등학교 근처의 동해선 KTX 선로상에 기존의 금장과 나원 역을 통합한 ‘새로운’ 서경주 역이 생길 것이다. 아직 역이 완공되지 않았지만 주변의 도로 표지판들은 역명을 ‘서경주’라고 기재하고 있다.

시즌이 올라갈수록 역이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한다는 게 흥미롭다. 시즌 1~2, 2~3의 두 역들은 직선 거리가 2.3~2.5km 정도에 불과하니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재래식 경주 역이 영업을 중단하고 없어지고 나면(건물은 보존) 신경주 역은 앞의 ‘신’자를 떼어내고 얘가 경주 역으로 간판을 바꿔 달지 않을까 싶다. 현재 신경주와 동대구는 전국에서 매우 드물게 지명 앞에 접두사가 붙어 있는 KTX 정차역이다.

한편, 서쪽의 광주도 상황이 비슷해서 광주 역은 그야말로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최악의 경우 옛 광주 역은 폐역돼 버리고 광주송정이 광주 역으로 개명될 수도 있다. 지금은 광주-광주송정 사이는 그나마 통근열차를 투입해서 연계시키고 있다고 한다.

7. 절연 구간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경의중앙선 전철이 용산-이촌 사이를 지날 때 전등이 잠시 꺼지지 않고 있다. 경강선 KTX의 개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절연 구간을 없앴다고 한다. 생각보다 오래 전 일이다.
절연 구간은 안 그래도 열차의 동력이 끊어져서 차가 힘이 약한데 상· 하 구배 내지 꽈배기굴, 급커브처럼 선형도 덩달아 불량한 경우가 많아서 더욱 아슬아슬하다.

평면교차가 없어지고 절연 구간이 없어지는 것처럼 뭔가 시설이 열악하고 취약하던 것이 개선된 것은 무엇이건 좋은 일임이 틀림없다.

8. 굴림체의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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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서울 지하철 2호선 승강장에 전광판 화면의 타이포그래피가 언제 저렇게 시각 테러에 가까운 퀄리티로 바뀌었나? 컴퓨터에 악성 코드가 걸려서 글꼴 파일이 삭제되기라도 했는지?
코레일 광역전철역의 전광판 화면에 굴림체가 쓰인 건 옛날에 본 적이 있다만, 서울 지하철까지 저러는 건 처음이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니라 2호선이 저러니, 마치 옛날에 2호선에만 최후까지 남아 있던(한 2009~10년까지) 구형 플랩식 전광판의 시즌 2를 보는 느낌이다.

9. 서울 메트로와 도철

비록 서울이 세계구급 대도시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도시에 지하철 회사가 사기업도 아닌 공기업이 둘씩 있는 건 보기 드문 형태였다. 그런데 두 회사가 따로 있는 것과 하나로 합병한 것의 차이를 일반 승객이 실감할 수 있는 타이밍은 바로.. 지하철 회사 근로자들이 파업을 할 때이다.
예전에는 서울 메트로에서만 파업을 하면 그래도 5~8호선은 멀쩡한 편이고, 반대로 도철에서 파업을 한 것은 1~4호선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 지하철 파업은 곧장 9호선을 제외한 서울 지하철 전체의 막장화로 직결되게 되었다.

사실, 서울시에서도 그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비효율을 감수하고라도 1990년대에 2기 지하철 관할용으로 도철이라는 회사를 따로 설립한 것이었다. 지금 인천의 경우 '인천 교통 공사'가 인천의 지하철로도 모자라서 시내버스까지 몽땅 관할하는 기관이 된 것과 굉장히 대조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2/05 19:37 2020/02/0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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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개셋 한글 입력기 9.9

이미 확인한 분도 계시겠지만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차기 버전인 9.9가 지난주, 지난 1월 말에 완성되고 공개되었다.

버전 9.9와 10.0 중에서 고민하던 끝에 아쉽지만 9.9를 선택했다. 비록 9.8x 이후로 많은 작업이 진행되고 많은 것이 개선되긴 했지만 외형은 지난달에 올렸던 개발 근황 이후로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버전 소식도 이렇게 소박하게(?) 전하고자 한다.
9.9라는 숫자에는 본인의 그런 아쉬운 심정이 담겨 있다. 그래도 얘는 9.x대의 마지막 버전이며, 진짜 10.0이 한 3월 말쯤으로 계획돼 있다.

(1) 9.82에서 프로그램별 수동 보정 기능이 추가됐는데, 몇몇 사용자 분들에게서 온 피드백을 들어 보면 그게 실제로 도움이 된 듯하다. 그거 설정을 바꾸는 것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에서의 오동작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예: Visual Studio Code 에디터)

(2) 한편, 크롬 브라우저가 버전 78에서는 자신이 데스크톱 앱인데도 IME에다가는 메트로 앱이라고 알려주는 버그가 있어서 9.82 당시에는 이를 임의로 보정하는 설정이 들어갔었다. 하지만 지금의 79에서는 그게 고쳐졌기 때문에 날개셋에서도 보정 설정이 제거되었다. 하지만 보정을 하더라도 딱히 다른 문제나 부작용은 없다.

그러므로 현재로서는 본인이 아는 한도에서는 “강제로 데스크톱 앱으로 동작” 보정이 필요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을 도움말에도 언급해 놓았다. 그냥 미래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보정 설정을 남겨 뒀다.

공식적으로 문서화되지 않은 변화 사항으로는 남은 메모리 양을 표시할 때 내가 직접 단위 계산을 하는 게 아니라 운영체제의 깔끔한 API를 쓰게 한 것, 변환기 대화상자가 프로그램을 실행시킨 쪽의 모니터에서 표시되게 한 것, 인코딩 목록에서 UTF-7은 이제 거의 쓰이지 않으니 맨 뒤로 밀어낸 것 등.. 아주 사소한 것 위주이다.

그런 것 말고 좀 유의미한 작업이 진행된 것도 있는데,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과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에서 각종 후보 목록은 백그라운드 스레드에서 생성될 수 있게 내부 공사를 진행해 놓았다. 전자는 타이핑에 랙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목록이 다 완성되면 한꺼번에 짠 표시하는 것만 담당하지만, 후자는 마치 웹 페이지 로딩하듯이 일단 자그마한 목록부터 띄운 뒤에 후보를 여기저기 incremental하게 실시간으로 추가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다만, 이것도 이를 실제로 활용하는 기능이 아직 없기 때문에 존재감이 없다.

입력기에 적용된 사소한 개선 사항이 타자연습에도 같이 반영된 것이 있긴 하지만.. 너무 사소하고 자잘한 것이기 때문에 타자연습은 아직 정식으로 버전업을 하지 않았다. 이번 9.9는 타자연습 3.9와도 API가 호환되니 그대로 같이 사용 가능하다.

새 버전을 유용히 사용하시기 바란다. 페이스북 플러그인은 고장난 지 한참 됐기 때문에 프로그램 다운로드 페이지에서도 완전히 제거했다. 그래서 본인의 이메일 주소만 기재해 놓았다.

2. 레거시 프로젝트 파일 정리

새해 기념으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소스에서 구닥다리 구버전 Visual C++용 솔루션/프로젝트 파일들을 드디어 완전히 삭제했다. 이를테면 *.vcproj (200x용), 그리고 심지어 *.dsp/*.dsw (6!!) 말이다.

사실, 소스 코드에 C++11 문법을 도입하던 순간부터 내 프로젝트들은 VC++ 2010 이전 버전과 연을 완전히 끊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VC++ 역시 딱 2010부터 지금과 같은 솔루션/프로젝트 파일과 버전 관리 체계가 정착했고, IDE와 컴파일러 툴킷, 플랫폼 SDK 계층이 깔끔하게 분리되기도 했다. 그러니 그 이전 버전은 이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본인의 개인적인 소신은 더 쓰이지 않는 파일이어도 요즘이 하드 공간이 부족한 시대도 아니고, "굳이 일부러 찾아서 지우는 수고까지 할 필요는 없다" 주의였다. 하지만, 그것들이 보는 사람을 괜히 헷갈리게 하고 무질서도를 높이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이건 물건 정리와도 비슷하다. 언젠가는 다시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물건이 분명 있겠지만.. 너님의 생활 습관상 그럴 일 없으니 좀 버려야 하는 물건도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되지 않는 코드도 무작정 주석이나 #if 0 처리만 해서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남겨 두는 게 장땡이 아니다. 재사용할 가능성이 정말 희박하고 남 보기에 정신 사납게 하는 역효과가 더 큰 것들은 그냥 완전히 지워 없애 버리는 미덕을 발휘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 '정도'와 경계는 개인 취향에 달린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아울러, 소스 코드들이 DB 데이터라면, 이들을 빌드하는 방식을 명시하는(각종 컴파일러· 링커 옵션들) 프로젝트 및 복잡한 빌드 스크립트는 DB 스키마 또는 아주 복잡한 쿼리와 비슷한 물건일 것이다. 이것도 날렸다가 다시 구성하는 건 소스 코드 자체를 날리는 것 만만찮게 골치아픈 일이 될 것이다.

3. 3D 그래픽 시연 프로그램

끝으로.. 최근에 이걸 만들어 봤다.
3D 컴퓨터그래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그 유명한 '유타 주전자'를 3차원 그래픽 시연 프로그램의 예제 데이터로 추가했다. 이게 지난 10여 년 동안 제공되지 않고 있었다니.. 송구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 주전자를 구성하는 3D 좌표 데이터야 이미 대외적으로 널리 공개돼 있다. 하지만 이걸 3차원 그래픽 시연 프로그램이 곧장 읽을 수 있는 무식한 직선의 나열로 변환하려면 베지어 곡선을 넘어 베지어 곡면이라는 것을 적당히 근사해서 와이어프레임 형태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3차 베지어 곡선이 4개의 점(시작점 + 끝점 + 제어점 2개)으로 구성되고 t=0..1 사이의 인자를 받는 매개변수 함수로 표현된다면..
3차 베지어 곡면은 그런 베지어 곡선을 4개나 모아서 평면을 이루며, 0..1 사이의 인자 매개변수도 하나가 아니라 2차원답게 둘을 받는다.

전자가 함수값을 구하기 위해 계수와 제어점 사이의 곱셈과 덧셈을 4회 수행한다면, 후자는 그 제곱인 16회나 수행한다. 아니, 각각의 항 자체도 계수*제어점이 아니라 계수x*계수y*제어점으로 곱셈의 횟수가 더 많다. 계산량이 정말 장난이 아니더라.

이 세상의 많고 많은 글꼴들이 모두 베지어 곡선으로 표현되듯,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인간이 디자인한 기계류의 그 '유체역학적인' 부드러운 곡면도 다 이 공식을 이용해서 기술된다. 옛날에 베지어 곡선이라는 걸 고안한 사람인 '피에르 베지어'가 직업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명확해진다.

암호 같은 베지어 곡면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공식대로 직선들로 쫙 풀어서 표현해 주니.. 내 프로그램에서 '유타 주전자'의 와이어프레임이 거짓말처럼 짠 나타났다. 정말 신기했다.
이런 유형의 계산은 양만 많지 패턴이 워낙 규칙적이니, 캐시 적중률 높고 병렬화에도 유리하다. GPU가 괜히 진작부터 만들어져 쓰인 게 아닐 것이다.

일반적인 3D 그래픽 렌더러라면 내 프로그램처럼 가냘픈 선이 아니라 폴리곤을 기본 단위로 취급할 것이고, 와이어프레임조차도 폴리곤을 기반으로 렌더링 방식만 변경해서 표시하는 것일 테니 삼각형 단위로 선들이 더 조밀하게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내 프로그램은 그냥 베지어 평면의 각 격자 단위로만 선을 그었기 때문에 기본 단위가 사각형 형태로 나타난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유타 주전자 데이터를 구성하는 선의 개수와,
기존 예제 중에서 원형 튜브(Torus)의 선의 개수가 서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2304개이다.
둘은 내부 구조나 데이터 생성 방식이 서로 완전히 다르고 관련이 없는데도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2/02 19:33 2020/02/0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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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6· 25 사변 때 육해공을 통틀어서 첫 승리를 거둔 전투는... 6월 25일 당일 밤에 북괴의 부산 해안 침투를 막아낸 대한해협 해전이다.
그럼 졸전과 패배와 후퇴만 거듭했던 본토에서 육군의 첫 승리로 기록된 전투는 무엇일까?
그건 충주-음성 일대의 동락리 전투라고 여겨진다. (7월 5~8일) 3~400명 남짓한 병력으로 2천 명에 달하는 연대급의 적군 병력을 무찌른 대승이었다.

비록 승리 후에도 얼마 못 가 후퇴하게 되긴 했지만 이건 노획물, 아군의 사기 진작, 그리고 훗날 낙동강 방어선과 인천 상륙 작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도 버는 매우 값진 승리였다. 특히 이때 노획한 소련제 무기들을 통해서 북괴가 소련의 지원을 받고 있음이 명확히 입증됐으며, 이는 우리도 유엔군의 지원을 받는 명분이 되었다. (☞ 관련 동영상 링크 1, 링크 2)

이 전투의 승리에는 동락 국민학교 교사 김 재옥 선생(1931-1963)이 피난 가지 않고 학교를 지키고 있다가.. 목숨을 걸고 국군을 찾아가서 공산군의 상황을 제보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기습을 유도한 것이 매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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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공산군이 들어와서 진을 쳐 있고, 우리 국군은 어디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채로 한밤중에 깜깜한 시골길을 몇 시간을 헤매면서 무작정 달린 끝에, 4~5km 남짓 떨어져 있던 국군 진영을 발견한 것이다. 이때 이분은 겨우 20세의 처녀였다.

큰 승전을 보고받은 할배 대통령은 입이 귀 밑까지 찢어졌지 않았을까 싶다. 덕분에 동락리 전투를 치렀던 6사단 7연대 2대대 대원들은 전원 1계급 특진했으며 해당 지휘관은 태극 무공 훈장을 받았다.

군인들뿐만 아니라 김 선생 역시 민간인으로서 태극 무공 훈장을 받았다는 말이 떠돌지만, 정확하게 검증 확인이 안 된다. 오히려 김 재옥 기념사업회 같은 단체에서는 나라에서 이런 대단한 영웅에게 훈장 하나 준 적이 없기 때문에 이제라도 줘야 한다고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탄원을 넣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말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최종적으로는 2012년에 보국훈장 삼일장이 추서되긴 했다. 그리고 이분의 근무지이던 동락 초등학교에 기념비와 기념관는 진작부터 세워져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본인은 공교롭게도 바로 지난주 설 명절 귀성길 때.. 동락 초등학교를 잠시 들러서 저 현충탑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자가용의 내비가 횡축 이동 경로로 혼잡한 영동 고속도로(50) 대신 평택-제천 고속도로(40)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서충주 IC에서 아주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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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행적은 훗날 <전장과 여교사>(1966)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필름이 소실되어 영영 사라진 줄 알았다가 뒤늦게 발견되고 복원되어서 한국 영상 자료원에서 지난 2015년 봄에 공개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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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그 위기의 순간에 마주쳤던 어느 젊은 장교(이 득주 소위)와 눈이 맞아서 그 해 10월에 결혼까지 하게 됐다! 모든 게 해피엔딩으로 귀결된 것 같았으나 하지만...

이분의 생몰년을 살펴보면 굉장히 일찍 죽은 것을 알 수 있는데, 병이나 사고나 북괴의 테러로 죽은 게 아니었다.
군 복무 중에 중에 자기 상관에 대해 앙심을 품었던 고 재봉이라는 이름의 어느 병사(상병)가그 상관을 죽여 버리려고 관사를 찾아갔는데, 정작 죽이고 싶은 간부는 전출 가고 없고, 하필 그 집에 김 재옥 선생 일가족이 입주해 있었다.

그 병사는 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인 줄 모르는 채로 흉기(도끼...)를 휘둘러서 일가족을 몰살했다. 김 재옥 선생은 이때 허무하게 참변을 당했다. 마치 1969년에 영화 배우 샤론 테이트가 찰스 맨슨 패거리에게 오인 살해당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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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딱 한 명(이 훈)만이 그 당시 친척집에 가 있어서 화를 면했고, 덕분에 대가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해자는 곧 붙잡혀서 당연히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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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신문 그림의 우측 하단에서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우는 표정인 아이가 바로 유일한 생존자이고 사건 당시에 10대 소년이었던 이 훈 군이다. 지금이야 7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어 있다. 국가 유공자의 후예인 데다 대가 끊길 수준의 일가족 몰살까지 경험한 고아 출신이니, 젊은 시절에 병역은 무조건 면제됐지 싶다.)

내 머릿속 잡학 사전에 또 거물 아이템이 하나 새로 입력됐다.
그런데 이런 엄청나고 드라마틱한 사실을 난 왜 30대 중후반의 나이가 돼서야 알게 됐을까? ㅠㅠㅠㅠ 난 6· 25 전쟁과 관련해서 조지 리비 중사, 김 재현 기관사 등 여러 마이너한 인물들에 대해 주워 들었는데, 김 재옥 선생에 대해서는 정말 난생 처음 들었다.
더구나 난 고 재봉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단지, 피해자가 저런 사람이었다는 걸 지금까지 몰랐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고 재봉이 당변병이며 상관으로부터 온갖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말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 링크) 그냥 저 병사가 처음부터 도벽도 있고 성질이 포악하고 더러운 놈이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이 글에서는 김 재옥 선생이 주제이므로 가해자의 배경에 대한 판단은 하고 싶지 않지만, 가해자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뒤에도 능숙하게 도피 생활을 하고 체포된 뒤에도 태도가 너무 당당하고 뻔뻔스러운 걸 보면.. 정말로 그냥 처음부터 성질이 더러운 놈이 맞았던 것 같다. 원래 착하던 사람이 도를 넘는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욱해서 정신줄을 놓은 것 같지는 않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31 08:35 2020/01/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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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입으로 만들어 낸 창작물 내지 정보 중에, 말은 문자를 통해서 글의 형태로 보존되곤 했다. 그러나 말은 노래라는 형태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거기서 말을 감싸던 음악, 멜로디, 선율은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것이 적지 않다.

먼 옛날(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이상 전)에는 아시다시피 물자가 몹시 비싸고 귀했으며, 종이와 필기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선율은커녕 말을 받아 적는 것조차 아무나 함부로 하기 어려웠으며 아예 글을 모르는 문맹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시절에 모든 사람이 알고 대대로 전수해야 하는 텍스트는 전수 방법이 '구전'밖에 없으니, 최대한 규칙성을 띠고 외우기 쉬운 형태로 텍스트를 마개조해야만 했다. 그래서 운율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운문이 등장했다.

그리고 운문을 넘어 아예 노래를 만들어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노래를 기억하면서 가사도 덤으로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유전자 차원에서 음악을 즐기는 본성이 새겨져 있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옛날에는 음반이란 게 없었고, 평범한 사람들이 단순히 길거리 악사 이상 수준의 프로페셔널한 음악을 접할 일이 그닥 없었다. 그러니 싸제 야메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에 대한 자괴감도 현대인보다는 적었으리라 여겨진다.
지금처럼 트루타입 윤곽선 글꼴이 널리 쓰이기 전의 도스 시절엔 싸제 야메 비트맵 글꼴들이 수십 종 이상 만들어져 쓰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옛날 사람들은 암기용이든 단순 감정 분출 한풀이용이든.. 음악이라는 걸 스스로 더 창의적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부른 노래는 역사적으로 귀한 자료가 됐을 텐데, 정작 그 귀한 자료들은 등장을 촉진했던 이유(기록 수단 부재)와 동일한 이유 때문에 소실도 많이 됐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노래들을 전수받은 마지막 세대들은 그게 그렇게도 귀한 자료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않고 있었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그런 노래를 부를 일이 없어졌고(산업화, 정권 교체 등),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전수자가 죽고 생존한 피전수자도 당시 기억을 망각하면서 음악 정보가 사라진 것이다.
문학 시간에 배울 정도인 구지가(龜旨歌), 청산별곡(!!) 등의 진짜 옛날 노래들뿐만 아니라 비교적 최근까지 다음과 같은 예가 있었다.

1.
3· 1 운동 때는 유 관순처럼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됐던 어린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는 심 명철(1896-1983)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감옥에서 동지들과 이런 노래를 숨죽여 지어서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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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아들인 문 수일 씨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적에 그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를 적어 놨다. 그러나 멜로디는 콩나물로 미처 그려 놓지도, 녹음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소실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는 이미 35년이 훌쩍 넘었고..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대한이 살았다"


이런 가사인데.. 이게 최근에 알려져셔 가수 박 정현이 그 가사에다가 곡을 자기 스타일로 새로 붙여서 노래를 불렀다. 이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돼 있다.

가사를 구성하는 어절들이 전반적으로 3글자 단위인 걸 보니 원래 멜로디도 3박자 계열이었지 싶다.
물론 이론적으로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4/4박자에다가도 ♪♪♪가 아니라 ♪♪♩ 같은 식으로 3글자 단위는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민요풍 박자들이 전반적으로 6/8 같은 3박자 계열인 것까지 감안하면 원래 멜로디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박 정현의 리메이크곡도 들어 보면 아시겠지만 응당 3박자 계열이다.

옛날에는 '대한'이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익숙하지 않아서 "대한 독립 만세"가 아니라 "조선 독립 만세"라고 외쳤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었는데.. 정말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저 가사에도 멀쩡히 '대한'이라는 단어가 쓰이긴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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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관순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징역 3년으로 형량이 유난히 무거웠으며, 매우 단명하기까지 해서 겨우 1920년에 순국한 것을 알 수 있다. 유 열사가 법정에서나 형무소에서 간수나 법조인들에게 굉장히 많이 저항하고 밉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몰년이 미상인 사람도 둘 있지만 그들은 유 관순이 죽기 전에 이미 만기 출소했을 정도로 형량이 가벼웠다.

참고로 심 명철 여사는 맹인이었다! 저 유튜브 영상에서 그 사실이 직접 언급돼 있지는 않지만, 저분은 사진에서도 검은 안경을 쓴 걸 볼 수 있다. 평생을 점자 아니면 기억에만 의지해서 의사소통을 해야 했으니 수십 년 전에 불렀던 노래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
자, 다음으로는 엄격 진지 근엄한 시절 말고 해방 이후 1955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시발 자동차라는 게 나왔을 때.. 믿기 어렵지만 이런 CM쏭까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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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시발, 우리의 시~발 자동차를 타고 삼천리를 달리자"


195, 60년대에 이런 CM쏭을 대중적으로 퍼뜨릴 매체는 텔레비전은 어림도 없고, 라디오 아니면 극장 영화 상영 전 광고에 의지해야 했을 것이다.
이거 멜로디가 전해졌다면 인터넷 시대에 병맛 개그로 재조명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리라 여겨지나..
아쉽지만 악보도, 음반도, 증언자의 기억에서도 몽땅 다 소실됐다고 한다. 아마 팬암 CM쏭의 "You can't beat the experience -- Pan Am!" 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이상이다.
수십 년 전에 본인의 외할머니께서 사용하시던 찬송가 책이 문득 떠오른다. 거기에는 가사만 세로쓰기로 쭉~ 적혀 있고 악보가 인쇄돼 있지도 않았다. 복잡한 악보는 아무래도 저렴하게 인쇄하기 어려울 테니.. 가격 문제 때문에 옛날엔 가사만 적힌 책도 쓰였던가 보다.

멜로디는? 당연히 구전이었다. 보존의 우선순위가 아무래도 가사보다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원래 조가 무엇이었는지, 혹은 4부 합창 파트 같은 건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도 북한의 지하 교회에서는 성경과 찬송가 가사를 급히 베끼고 찬송가 멜로디 정도는 그냥 외워 와서 몰래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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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만 해도 열악하던 시절엔 이런 식으로 전해졌으니, 하물며 민중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는 더 격식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만들어지고 전수되다가 잊혀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했을 것 같다.

끝으로, 성경도..
홍해 바다를 건넌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른 노래를 포함해 시편까지 전부 원래는 곡이 붙어 있는 노래였다! 허나, 하나님은 말씀을 보존해 주신다고 했지 멜로디를 보존해 주신다고 약속하시지 않은 관계로... 후손들이 접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가사뿐이다. 곡을 붙이는 건 전적으로 후대 작곡자들의 재량 영역이 됐다.

"그들이 왕좌 앞과 네 짐승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 같은 것을 부르더라. 땅에서 구속받은 십사만 사천 외에는 아무도 능히 그 노래를 배우지 못하더라." (계 14:3)


이것도 도대체 무엇을 들은 것일지 굉장히 궁금해진다. 뭔가 새마을호 로고송이나 Looking for you에 근접하는 멜로디였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무슨 마음에 드는 시, 짤막한 문구, 표어 같은 거 놓고 곡을 붙이는 연습을 스스로 해 보자. 생각보다 재미있다. 심지어 저 시발자동차 광고카피라도 말이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0/01/28 08:36 2020/01/2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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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갓 태어난 아기 내지 꼬마였던 1980년대, 레이건과 전대갈 대통령 시절 겸 히로히토 일왕의 말기는 미국· 일본· 한국 모두 경제가 호황이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잘 나가던 때였음이 틀림없다.
데모 하느라 성적이 개판이어도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대기업들에서 모셔 가려고 난리이던 시절? 방학 때 공사판에서 한두 달 노가다만 뛰면 대학 등록금이 짠 마련되던 시절? 적당히 월급 저축해서 집을 마련하고, 남자 혼자 외벌이만으로 집안을 먹여 살리는 게 가능하던 시절?

아 물론 이런 것들은 추억 보정을 받아 비현실적으로 미화된 것도 있고 걸러 가며 들어야 할 것도 있다. 그 시절에 전반적인 분위기가 저랬다고 해서 너님도 반드시 저 혜택을 입는 게 가능했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저렇게 풍요로운 시절을 보낸 세대들은 더 과거에는 우리보다 훨씬 더 험악하고 무질서하고 힘들고 어려운 나날을 겪기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6· 25 전쟁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1970년대의 악몽이던 석유 쇼크는 어떻게 극복했겠는가?

이때는 냉전의 여파로 과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기도 했다. 우주왕복선이 등장했고 이제 막 컴퓨터 '정보화 시대' 운운하고 있었다. 그래서 각종 창작물에서 로봇, 우주선, 컴퓨터에 대한 만능주의 환상이 마음껏 반영되어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음악은 만능 음향 제조기인 신시사이저가 발명된 지 얼마 안 되어 전자 음향이 세계적인 대세가 돼 있었다. 영상에서 CG는 아무래도 1990년대 이후부터 각종 영화와 CF에서 널리 퍼졌으며 1980년대엔 아직 소수의 실험적인 시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 반면, 음향은 그보다 약간 이른 아날로그 시대부터 전자화 가상화가 진행된 셈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점들을 감안하여 그 시절의 매체들 몇 가지를 회고해 보고자 한다.

1. 주찬양 2집 알렐루야

먼저 찬양 음반부터 언급하도록 하겠다.
세상에는 창세기 1장 6일 창조의 둘째 날 말고도.. 시리즈로 나온 물건들 중에 유독 둘째 넘버링이 존재감이 없거나 특이하거나 흑역사가 된 것이 좀 있다. 인텔 8086/88 다음으로 80186 CPU라든가 보잉 707 다음으로 717처럼 말이다.

옛날에.. 무려 1991년에 발매되었던 주찬양 선교단 10주년 컬렉션 음반에는 과거에 내놓았던 1집부터 7집의 곡들 중에서 명곡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유독 2집 소속인 곡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 본인은 주찬양 2집은 도대체 뭔가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게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얘는 평범하게 최 덕신의 창작곡으로 구성된 앨범이 아니었다.
미국의 빌 게이더 & 글로리아 게이더 부부의 창작곡으로 구성한 찬양 예배 앨범 Alleluia를 그대로 번역하여 수록한 음반이었다. 아무래도 1집과 3집의 사이에 나왔을 테니 발매 시기는 1986년~87년 정도로 좁혀진다.
영어 원판은 바로 이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Welcome! We've gathered together just to praise the Lord.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뭐 이렇게 시작하고..
맨 첫째 1번 트랙은.. 무슨 올림픽 개막식 같은 느낌도 든다.
사회자가 시편 150편을 인용하면서 "나팔 소리로, 비파와 하프로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이렇게 말하면 그 뒤로 오케스트라가 진짜로 그렇게 연주를 하고.. 그런다. ㅎㅎ 그래 봤자 스타일은 어쩔 수 없는 전형적인 1980년대 스타일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주찬양 2집은 주찬양 앨범들 중에 유일하게 외국 음반 번역이며 성격이 좀 특이하다.

"살아 계신 주"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예수 예수 예수 그 이름만 거기 있네"
"섬길 수록 더 귀한 주님" (주 내 맘에 오신 후에...)

요 찬송이 바로 게이더 부부의 곡이며, 저 앨범에 소개돼 있다.

7번 트랙이 "섬길 수록 더 귀한 주님"인데, (테이프에서는 B면 둘째 곡) 앞에 어떤 노년 신사의 인생 간증이 먼저 나온다. 영어 원판은 자기가 이제 70세가 됐다고 나오는데, 주찬양 2집 번역판에서는 회갑의 나이가 됐다고 약간 초월번역 됐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6· 25 사변 등의 여러 격변의 세월.." 운운하는 회고도 원판에는 없는 로컬라이징이다. 영어 원판이라고 해서 대공황이나 2차 세계 대전 같은 사건의 언급은 없다.. ^^

다만, 미국에서 어린 시절에 대공황과 2차 대전을 겪은 1910~20년대생은 정말 불굴의 Greatest Generation이라고 실제로 일컬어지긴 한다. 생존을 위해 겨우 10대 나이로 생업 전선에 내던져지고, 군 입대도 하는 개고생을 하면서.. 지금의 위대한 미국 천조국을 일궈낸 세대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처럼 나라 자체가 없어졌거나 헌정 체제가 널뛰기 하듯이 격변하는 일은 없었겠지만, 개인의 인생은 만만찮게 힘들었던 셈이다.
트럼프 성님이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고 슬로건을 만들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원조 great가 먼저 있었음)

1980년대 기준으로 나이 70이면 진짜 딱 저 세대에 맞게 떨어진다~! 다만, 검색을 더 해 보니 알렐루야 영어 원판 앨범은 1973년작으로 더 오래됐다고 한다. ㅎㅎ

2. 철도 음악

본인은 철덕으로서 Looking for you도 1988년작 음반에 수록된 1980년대 곡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글쎄, 그 정도로 오래됐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데..;;
그리고 혹시 기억하는 분이 계시나 모르겠는데, 지난 2006~07년 사이... 08년부터 Let it be 가야금과 국악풍 시그널송이 도입되기 전의 과도기에 새마을호에서는 정차역 안내방송 전에 뭔가 전자악기 풍의 경쾌한 G장조 시그널송이 연주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동일한 음악이 1988년도 롯데 월드 쇼핑몰 CF에서 쓰인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저 음악은 그보다 더 전부터 발표되었고 존재했다는 뜻이다.
저 음악의 제목과 작곡자는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것도 여러 무명의 영상 음악 아카이브/라이브러리에 수록된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롯데 월드 CF를 찾아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발견이다.

굳이 철도 BGM이 아니어도, 잊혀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불려지는 1980년대 BGM이나 팝송 따위가 있다면.. 그 음악이 만들어진 시대 배경과 맥락을 같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3. 국내 가요와 동요

우리나라가 1980년대에 영화는 3S 정책과 맞물려서 좀 침체돼 있었다고 하나, 노래는 이때 의외로 명작들이 많이 배출된 것 같다.

  •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
  • 코리아나 손에 손잡고
  • 해바라기 사랑으로
  • 이 상은 담다디
  • 혜은이 파란 나라, 피노키오
  • 신 형원 터, 개똥벌레
  • 동요 새싹들이다, 노을
  • 배따라기 아빠와 크레파스
  • 김 원중 바위섬

4. 영화 쿵 퓨리~!

아아~ 본인은 <쿵 퓨리>(Kung Fury, 2015)라는 미친 30분짜리 단편영화를 얼마 전에야 우연히 접했다.
정말 인간의 약빤 의식의 흐름과 병맛은 도대체 끝이 어딘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현웃 하면서 잘 봤다. ㅠ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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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의 마이애미, GTA 바이스 시티
    (그러고 보니 "로보캅"은 배경이 디트로이트이고, "블루스 브라더스"는 시카고가 배경이구나! LA 배경도 어딘가에 있긴 할 것이다;;)
  • 들고 다니는 커다란 붐박스 라디오
  • 그 시절 티가 빵빵 나는 테크노스러운 전자음향 음악, 어설프게 SF스러운 폰트, 아날로그 VHS 노이즈와 그 색감
  • 모탈 컴뱃과 섀도 워리어 (서양 스타일로 왜곡된 오리엔탈리즘)
  • 킬 빌 (온갖 B급 영상물들 패러디)
  • 맥가이버와 스트리트 파이터 류 (빨간 머리띠만 -_-), 듀크 뉴켐 3D
  • 자동차 키트
  • 쿵푸 팬더 (!!!)
  • 공룡, 북유럽 신화
  • 그 시절 특유의 로봇, 우주선, 컴퓨터 해킹에 대한 만능주의 환상

젠장~ 쿵 퓨리에서는 저런 것들이 몽땅 다 오마주 되어, 짬뽕 돼서 나온다. =_=;;

옛날에 텔레비전에서 사람 실물이 튀어나오는 장면 정도는 어지간한 만화에서도 나왔지만, 여기서는 악당(히틀러..;; )이 전화기에다 대고 총질을 하니까 전화를 받는 사람이 죽는다. =_=;;
Hackerman, Kung Fuhrer 자막이 뜨는 그 촌스럽고 오글거리는 장면에서는 아 ㅆㅂ 소리와 함께 경악이.. '해커맨'을 보면, 서양에도 '금요일날, 프린터기, 역전앞' 같은 겹말이 얼마든지 쓰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병맛을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이런 것인 줄 알았으면 돈 주고도 볼 의향이 있다.
만든 사람들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지.. 단, 만든 사람들 소변 도핑 검사도 시키는 조건으로 말이다.
운동 선수들 스포츠뿐만 아니라 영화도 정정당당한 상상력만 발휘해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ㅠㅠㅠㅠ

맨날 쿵푸 쿵푸 하는데 이건 功夫(우리말로 치면 '공부'에 더 가까운 소리!)에서 유래된 비격식 민간 어원이고, 위키백과에서는 '중국 권법의 총칭'이라고 분류돼 있다. 즉, 태권도나 가라테 같은 특정 무술 명칭이 아니라 일종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쿵푸의 하위 분류로 창시자별로 홍가권, 영춘권, 태극권, 절권도 등등의 파생이 있다. 마치 SVGA는 EGA, VGA 같은 특정 그래픽 모드가 아니라 여러 VGA 확장들의 총칭이듯이 말이다. 에휴.. 명작 병맛 영화 하나 덕분에 내가 이런 것까지 직접 찾아보게 됐다. ㄲㄲㄲ

철덕으로서 일말의 동질감이 느껴진 부분을 찾자면..
주인공이 번개를 맞고 코브라에 물려서 각성해서 쿵 퓨리가 된 것과 비슷하게, 본인은 새마을호를 타고 Looking for you를 들음으로써 철덕으로 각성했다.
그리고 히틀러가 쿵푸를 너무 좋아해서 자기 이름까지 쿵 퓌어러라고 지었듯이, 본인은 철도를 너무 좋아해서 영어 닉도 새뮤얼(새마을..)이라고 지었다. 이런 것도 비슷한 점이라 하겠다.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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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영화에서 컴퓨터와 관련된 부분만 코멘트를 몇 가지 더 하겠다.
이렇게 시커먼 배경의 바둑판 격자 사이버 공간(?)은 1980년대 초창기 CG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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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CG 합성 영화라고 일컬어지는 그 유명한 1982년작 트론(TRON)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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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선우 감독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때문에 쫄딱 망하기 전, 옛날에 만들었던 수작 중 하나인 <성공시대>(1988)에서도.. 컴퓨미라는(..!!) 가상의 제품과 그 광고 역시 전형적인 1980년대 상상력에 근거한 것이었다. ㅡ,.ㅡ;; 참, 그러고 보니 쿵 퓨리도 작품 중에 전화기 광고가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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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쿵 퓨리로 돌아온다.
1980년대 8비트 컴퓨터에서 Java 코드가 줄줄 흘러나오는 건.. 저 영화의 개막장 안드로메다 초월 설정과 전개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되는 비중의 아이템이니 그냥 넘어가자~ 해킹으로 시간 워프는 물론이고 주인공의 총상까지 치료하는 영화인걸 뭐.. ㅡ,.ㅡ;; 외계인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방어막을 무력화시키는 것쯤은 시간 해킹에 비하면 완전 약과였다(인디펜던스 데이;;).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8비트 컴퓨터는 기술과 성능상의 한계로 인해 화면 해상도가 오늘날의 컴퓨터보다 매우 낮다. 코딩은 닥치고 어셈블리어, 아니면 최대한 잘해 봤자 C 정도만 나오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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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심지어 화면이 맛이 갔을 때 모니터를 툭 치니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깨알같은 디테일까지 영화에 반영돼 있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ㅠㅠㅠ 요즘은 스마트폰 같은 게 맛이 갔다고 해서 툭 치지는 않는다. 참 오래된 추억의 관행이다.
비현실적인 사기 해킹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찰물은 후대에도 로보캅 3, 걸캅스 등 여럿 있지만, 이 정도는 돼야 정말 진한 병맛이 느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25 08:35 2020/01/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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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음수에 대한 생각

수학에서 다루는 수 중에는 음수라는 게 있다. 얼마를 빼는 것은 음수를 더하는 것과 동급으로 치자고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그래서 0의 양 옆으로 양수와 음수가 존재하게 됐다.

음수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이라는 기본 사칙연산 범주에서는 별로 어려울 게 없다. 곱셈과 나눗셈에서는 부호가 마치 xor 연산과 비슷하게 바뀐다는 것만 염두에 두면 된다. (둘 다 동일하면 양수, 다르면 음수) 뭐, 음수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1 곱하기 -1이 어째서 +1이 되는지도 마냥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 가능한 개념은 아닐 수 있는데..

더 나아가 실수 나눗셈 말고 '나머지'를 같이 구하는 정수 나눗셈에서는 피연산자에 음수가 섞여 있으면 연산의 정의부터가 깔끔하게 딱 떨어지지 않고 굉장히 골치 아파진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머지의 부호는 나누는 수의 부호와 동일한 것이 원칙일 텐데, 당장 컴퓨터의 정수 나머지 연산은 그렇지 않다. 걔들은 부호 불문하고 몫은 그냥 소숫점을 짤라낸 것이고, 나머지는 그 몫으로부터 파생된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bit shift 연산에서도 음수만치 shift한 결과는 그냥 undefined가 된다. a<<(-b)가 자동으로 a>>b로 되는 게 아닌 게 의외이다.

그럼 음수는 나머지나 비트 shift 같은 정수 컴퓨터 연산에서만 복병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일반적인 대수학에서 거듭제곱의 영역으로 가 봐도 음수는 난감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가장 먼저, 제곱해서 음수가 되는 수 자체가 통상적인 실수 중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수는 도대체 특성이 어떤 놈일까? 이런 개념을 처음으로 떠올리고 고안한 사람은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고 무슨 약을 빨고 이걸 생각해 낸 걸까?

지수함수의 정의역을 실수 전체로, 대수적으로 확장할 때도 음수는 애로사항이 꽃핀다. 당연히.. a^b에서 b 말고 a가 음수인 것 말이다. 음수의 거듭제곱은 횟수에 따라서 부호가 음수와 양수 사이를 널뛰기 하듯 바뀌는데, 그 횟수 자체가 자연수를 넘어 다른 이상한 수가 된다면 결과가 도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지수함수를 대수적으로 확장한 결과에 따르면, 음수에 대해 정수가 아닌 거듭제곱을 한 결과는 허수가 섞인 복잡한 복소수가 된다. (-1)^(1/2)는 당연히 그 정의상 i가 되고 말이다.
0과 1은 그 어떤 수로 거듭제곱을 시켜도 다른 정상적인 형태의 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수는 로그 함수의 base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복소수 범위에서는 0과 1만 빼고 나머지 아무 복소수라도, 음수와 심지어 -1조차도 log의 밑이 될 수 있다. -1을 삐리리 승 하면 100이 될 수 있고 1000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단지 그 수가 실수가 아닌 복소수 중에 있을 뿐이다. -1의 거듭제곱은 그냥 -1과 1 사이만 진동할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다만 정의역을 실수로만 한정하면 x에 대해서 Re((-1)^x)의 그래프.. 쉽게 말해 -1의 x승의 실수부는 cos(Pi*x)의 그래프와 같으며, 허수부를 나타내는 Im((-1)^x)의 그래프는 sin(Pi*x)의 그래프와 완전히 같다! 애초에 x^n=1의 근이 복소평면에서 정다각형의 꼭지점 형태로 나타나니, 거듭제곱과 삼각함수는 피할 수 없는 귀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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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그렇게 되는지는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그 유명한 오일러의 등식 정도만 따져 봐도 된다. 우리는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로그를 그냥 실수 범위까지만 배웠겠지만, 그것이 그림의 전부가 아니다.
또한, 정의역을 실수로만 한정했을 때 이렇다는 것이고, 다른 임의의 복소수를 주면 (-1)^x는 절대값이 1보다 더 큰 다른 수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a^x를 넘어 아예 x^x의 그래프를 복소수 범위까지 생각해서 그려 보면 더 환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얘는 양의 실수 범위에서는 x=1/e일 때 최소값을 갖는다. x=0일 때는.. 0의 0승이기 때문에 값을 구하기가 좀 아햏햏하긴 하지만 극한값이 양쪽 모두 1이기도 하고, 많은 경우에 0^0은 여느 수의 0승과 마찬가지로 1이라고 편의상 통용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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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x가 본격적으로 음수가 되면.. 이제 그래프는 실수 영역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뭐, 어차피 실수부와 허수부 모두 0으로 급격하게 쪼그라들기 때문에 생각만치 볼 건 없긴 하다만... 그래프의 모양이 꽤 예술적이어 보이지 않는가? =_=;;

수학에는 수에서 특정 부분의 정보를 떼어내고 남은 부분만 되돌리는 연산자 내지 함수가 세 가지 남짓 있다.

(1) 가장 먼저, 수에서 부호를 제거하는 ‘절대값’이 있다. 여닫는 세로줄 기호는 다들 친숙할 것이다. y=|x|는 오르내리는 사선을 만들어 낸다.
얘는 복소수를 대상으로는 복소평면에서 원점으로부터의 거리를 의미하기도 하며, 행렬에서는 행렬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2) 그리고 수에서 소수점을 떼어내고 근처의 정수를 되돌리는 floor 내지 ceiling 연산이 있다. 얘는 그래프에서 계단을 만들어 낸다.
(3) 끝으로, 복소수에서 실수부 내지 허수부만을 되돌리는 Re() 및 Im()이 있다.

이런 연산들은 다 특정 분야에서 인간에게 필요하고 특정 관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에 고안된 것이겠지만.. 미적분 같은 해석학의 관점에서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연산은 결코 아니다. 절대값 연산은 부호가 바뀌는 지점에서 미분 가능하지 않은 지점을 만들며, 소수점 자르기는 더 나아가 아예 연속이지도 않은 지점을 만든다.

멀쩡한 복소수에서 실수부나 허수부만 떼어내는 것도 저 그래프의 예쁘고 매끄러운 모양과는 달리, 만만찮게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보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x^x에서 x가 음수일 때 실수부와 허수부의 그래프 식을 따로 구해서 각각 최대값과 최소값까지 구하는 건 양수일 때와 같은 방법으로 할 수 없다. 복소함수를 취급하는 더 복잡하고 난해한 방법론을 동원해야 한다.

복소수라는 개념을 떠올리고 나니까 어째 리만 가설이라는 것도 나올 수 있고 20세기엔 수렴· 발산 여부로 만델브로트니, 줄리아니 하는 프랙탈 집합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걸 도대체 어떻게 찾아냈을지 오묘하기 그지없다. 다들 계산량이 엄청나고 빡세다는 공통점도 있다. 하긴, 프랙탈이 '차원'이라는 개념도 대수적으로 확장했다. 행렬 계산의 최적 시간 복잡도에서 거듭제곱 계수가 2도, 3도 아닌 로그함수 값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상이다.
리만-제타 함수라든가 감마 함수 같은 난해한 함수들이 양수 구간과 음수 구간이 모양이 심하게 차이가 나고, 특히 음수 구간에서는 상하로 심하게 널뛰기를 하는 근본 이유가.. 지수 함수와 관련된 음수의 기괴한 특성 때문이라고 감을 잡으면 될 듯하다.
x^x 말고 0의 x승의 경우.. 양수에 대해서는 그냥 0이 될 것이고 0^0은 사실상 1이 통용되고 있고, 음수 승은 0으로 나누는 것과 동급인 부정으로 귀착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22 19:34 2020/01/2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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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와 오피스뿐만 아니라 개발툴 분야도 세계를 석권해 있다.
걔들은 과거에 운영체제 쪽은 맥 내지 IBM OS/2와 경쟁했었고, 오피스는 로터스, 워드퍼펙, 한컴(...)과 경쟁했으며.. 개발툴 쪽은 볼랜드라는 쟁쟁한 기업과 경쟁했다.

마소와 볼랜드가 내놓았던 프로그램 개발툴은.. 먼저

1. IDE까지 있는 도스용 대중 보급형의 브랜드가 있었다.
볼랜드는 터보, 마소는 퀵.. 뭔가 스피디한 단어를 썼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볼랜드는 브랜드명-언어명 사이를 띄었지만, 마소는 둘을 붙여 썼다.;;

Turbo Basic, Turbo C, Turbo Pascal
QuickBasic, QuickC, QuickPascal

다음은 볼랜드 말고 '마소'에서 개발했던 QuickC와 QuickPascal IDE의 스크린샷이다. 보기에 참 생소하다. 출처는 유명한 고전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인 WinWorl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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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소는 QuickBasic만 건지고 나머지는 다 망했다. QuickBasic이야.. 뭐 무료 축소판 QBasic을 MS-DOS와 Windows에다 포함시키기까지 했을 정도이고 말이다. 빌 게이츠가 베이식 언어를 아주 좋아했다.
그 반면 볼랜드는 Turbo Basic만 망하고 C와 Pascal을 건졌다. Turbo Basic의 개발진은 볼랜드를 퇴사하고 따로 회사를 차려 PowerBasic을 만들게 됐다.

2. 다음으로, 본가에 속하는 최상위 플래그십 제품군에는 그냥 자기 회사명을 붙였다.

Borland Pascal, C++
Microsoft Basic, C/C++

1990년대에 C에 이어 C++ 컴파일러가 개발되면서 자기 제품의 공식 명칭을 아예 C++이라고 바꿔 붙이는 곳이 있는가 하면, C와 겸용임을 내세우면서 C/C++이라고 붙이는 곳도 있었다.

볼랜드의 경우 C++을 C와는 완전 별개로 취급했는지 버전까지 1.0으로 도로 리셋하면서 Turbo C++ 내지 Borland C++이라고 작명했지만.. 마소는 C++을 기존 C 컴파일러의 연장선으로 보고 MS C 6.0 다음으로 7.0을 MS C/C++ 7.0이라고 작명했다. 사실, 연장선이라고 보는 게 더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참고로 왓콤 역시 Watcom C 9.0의 다음 버전이 Watcom C/C++ 9.5가 돼서 마소와 비슷하게 작명과 버전 넘버링을 했다. 왓콤은 제품이 짬이 길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첫 버전을 일부러 1이 아닌 6.0부터 시작하는 기행을 벌였었다! 볼랜드의 버전 넘버링과 비교하면 극과 극 그 자체였다.

터보 C++이랑 볼랜드 C++의 차이는.. 더 덩치 큰 상업용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OWL/Turbo Vision 같은 자체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를 제공하느냐 여부 정도였지 싶다. 프로페셔널 에디션이냐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이냐의 차이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때쯤 Windows용 지원도 시작됐다.

3. 그랬는데, 1990년대 이후부터는 그 플래그십 제품군도 Windows 전용의 더 고급 브랜드로 대체됐다.

볼랜드는 90년대 중반의 Delphi와 C++Builder로,
마소는 그 이름도 유명한 비주얼 브랜드로 말이다. Visual Basic, Visual C++.
그리고 마소도 Visual C++부터는 C/C++ 대신 C++만 내걸기 시작했으며,

관계가 이렇게 된다.
Visual C++이 과거 MS C/C++을 계승한 거라는 흔적은 _MSC_VER 매크로 값이 Visual Studio 자체의 버전보다 더 크다는 점을 통해서나 유추할 수 있다.

1이 2를 거쳐 3으로 바뀌는 동안 주변에서는 C 대신 C++이 대세가 되고, 주류 운영체제가 도스에서 Windows로 완전히 넘어가고 거대한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가 등장하는 등의 큰 변화가 있었다. 개발 환경도 단순히 코딩용 텍스트 에디터와 디버거 수준을 넘어서 RAD까지 추구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또한, 이 3단계가 주류가 될 즈음부터 마소의 Visual 툴들이 볼랜드를 완전히 꺾고 제압해 버렸다.
마소가 운영체제 홈그라운드라는 이점을 갖고 있기도 했거니와, 또 근본적으로는 파스칼이라는 언어 자체가 볼랜드의 창업자인 필립 칸이 선호하거나 예상한 것만치 프로그래밍계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마이너로 밀려난 것이 크게 작용했다. 네이티브 코드 생성이 가능하면서 빌드 속도가 왕창 빠른 건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다..;;

그에 반해 마소의 베이식은 파스칼보다 그리 나은 구석이 없는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자사 운영체제의 닷넷빨 있지, 레거시 베이식도 자사 오피스의 VBA 매크로 언어가 있으니 망할 일이 없는 지위에 올라 있다.

한때(1990년대 후반??)는 파스칼이 언어 구조가 더 깔끔하고 좋다면서 정보 올림피아드 같은 데서라도 각광 받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그 바닥조차도 닥치고 그냥 C/C++이다.
델파이를 기반으로 이미 만들어진 유틸리티나 각종 DB 연계 프로그램들(상점 매출 관리 등등..), SI 쪽 솔루션을 제외하면 파스칼은 마치 아래아한글만큼이나 입지가 좁아져 있지 않나 싶다..;;.

범언어적인 통합 개발 환경이라는 개념을 내놓은 것도 마소가 더 일렀다. Visual Studio가 나온 게 무려 1997년이니까.. 개발툴계의 '오피스'인 셈이다. (Word, Excel 등 통합처럼 Basic, C++ 통합). 그에 비해 볼랜드 진영에서 Delphi와 C++Builder를 통합한 RAD Studio를 내놓은 것은 그보다는 훨씬 나중의 일이다.

Windows NT야 이미 있던 16비트 Windows와 버전을 맞추기 위해서 3.1부터 시작했는데, Visual Studio의 경우, 공교롭게도 1990년대 중반까지 Visual Basic과 Visual C++의 버전이 모두 4.x대였다.
그래서 첫 버전인 Visual Studio 97은 각각의 툴 버전과 Studio 버전이 모두 깔끔하게 5로 맞춰졌으며, 이듬해에 나온 차기 버전은 어째 98이라는 연도 대신, 버전인 6으로 맞춰질 수 있었다.

2010년대 이후로 C++이 워낙 미친 듯이 바뀌고 발전하고 있으니.. D 같은 동급 경쟁 언어들조차 기세가 꺾이고 버로우 타는 중이다. 도대체 지난 2000년대에 C++98, C++03 시절에는 C++ 진영이 export 병크 삽질이나 벌이면서 왜 그렇게 침체돼 있었나 의아할 정도이다. 그 사이에 Java나 C# 같은 가상 머신 기반 언어들이 약진하니, 뭘 모르는 사람들은 겁도 없이 "C++은 이제 죽었네" 같은 소리를 태연히 늘어놓을 지경까지 갔었다. (2000년대 중반이 Windows XP에, IE6에... PC계가 전반적으로 좀 '고인물'스러운 분위기로 흘러가던 때였음) 한때 잠시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20 08:34 2020/01/2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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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의 성립

기독교의 핵심 기본 교리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이 세상 법보다 훨씬 더 원론적이고 고차원적인 의미에서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의 알량한 노력으로는 그 무슨 수를 써서도 죄의 고리를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걸 일깨우기 위해서 복음 설교에서는 "형제를 마음 속으로 미워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살인,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간음" 등 여러가지 말씀 인용과 비유가 제시되는데.. 뭐 좋다. 세상 법과는 달리 마음의 동기와 근원 차원에서 죄가 성립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논리를 펴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개연성과 합리성은 있어야 한다. 최소한 자기끼리 모순을 일으키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얘기는 좀 조심해서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1) 인간은 당장은 티가 안 나지만 환경이 나빠지고 여건만 갖춰지면 누구라도 지금까지 착 가라앉아 있던 추악한 본성이 다시 튀어나올 거라고 한다. 이는 물론 큰 그림 차원에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쁜 환경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할까? 정당방위나 긴급피난까지 죄일까? 당장 남을 안 죽이면 내가 죽게 되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혹은 패닉에 빠져서 남을 죽인 것까지 살인죄일까?

이건 세상 법리로나 성경의 법리로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다못해 출애굽기조차도 깜깜한 데서 자기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정당방위 차원에서 때려죽인 건 무죄라고 실드 치니 말이다. (출 22:2-3)
하나님은 인간의 동기와 마음을 일일이 다 따져보시니 이런 문제를 오히려 더욱 정확하게 판결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사랑의 체벌이고 어디부터가 아동학대 폭력인지, 안락사가 어디까지가 살인이고 어디부터가 하나님이 데려가시도록 놔 주는 건지.. 이런 모호한 상황 문제에 대해서는 신앙을 가졌다는 사람들끼리도 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남에게 복음 전할 때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동원하면서 꼬드겨서는 안 된다.

(2) "당신이 어디어디에 낸 돈은 이런이런 나쁜 일을 하는 기업이나 다른 조직의 배를 불리게 됩니다. 그러니 여기 제품을 불매합시다" 이런 부류의 보이콧 권유 문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기독교계에는 어느 기업이 무슨 이단 종교 계열이라는 식이기 때문에 당신이 그 기업의 제품을 구입한다면 그 기업의 악행에 동조하게 된다는 식으로 반쯤 팩트 내지 반쯤 루머 괴담이 나도는 게 많다.

그런데 몇 년 전에는 기업 제품 구매를 넘어서, 세금을 내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들은 이미 죄에 관여하고 있다는 식의 논리 전개를 어느 설교에서 들어서 본인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아함을 느꼈었다. 이유인즉, 내가 낸 세금이 어차피 반성경적인 나쁜일을 조장하는 데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랜다.

허나, 기업 제품 구매는 생필품 독과점이 아닌 한 전적으로 자기 자유 의지인 반면, 납세는 마치 군 입대만큼이나 내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의무이다.
더구나 예수님조차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발언과 함께 로마 제국 식민지 휘하에서 납세를 사실상 몇 차례 실천해 보였다. 그럼 예수님도 죄에 관여한 것인가? 저건 비유에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켄트 호빈드 같은 사람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신념에 의한 병역..이 아닌 납세 거부 혐의로 오랫동안 감방 생활함. 꽤 극렬 강경한 젊은 우주 창조론자이기도 함)

(3) 인간은 불법 중에 수태되었고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를 짓긴 하지만(성악설),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지옥 가는 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어린아기가 죽었다고 지옥 가지는 않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할 능력이 없고 하나님 역시 걔들에게는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애는 체벌도 불사하는 양육과 훈육이 필요한 거지, 아예 죽어 버렸을 때의 구원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갓 소환돼서 잠시 동안 무적 상태인 게임 캐릭터와도 같다.

내가 늘 강조하지만 인간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건 전적으로 자신의 자유의지와 행위로 인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옥 가기로 찜해 놓고 예정했기 때문에 가는 게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점에 대해서는 칼빈주의가 전적으로 틀렸으며 알미니안주의의 통찰이 정확하다.

난 당연히 그런 걸로 알고 있고,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듣기 싫은 얘기를 하는 것도 인간의 그 자유 의지를 돌려 놓고 바꾸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아 왔는데.. 그걸 이상하게 배배 틀어서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서 놀랐었다.
다시 말하지만.. 세종대왕과 이 순신이라 해도 자기 의지에 따라서 죄 가운데 죽어서 엄한 곳에 갔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능력조차 없는 어린애들까지 죽어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2. 회개

이건 몇 년 전에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대해 논하면서 다뤘던 주제이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복습하고자 한다.

주변에 복음을 전할 때 앞서 다뤘던 저런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 공의로움, 심판과 지옥 같은 불편한 진실을 전하지 않고..
무슨 종교 영업사원마냥 “하나님은 사랑이에요, 우리 교회 나오기만 하세요, 님 인생에 나쁠 거 없어요. 이 영접 기도문 따라 읊기만 하세요” 이러기만 하는 건 복음 전파가 전혀 아니다. 그건 시간과 노력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전혀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 거짓으로 구원의 확신까지 심어 줄 수 있는 대단히 잘못되고 위험한 짓이다.

그런데 그런 관행을 까고 비판하는 건 좋은데, 거짓 evangelism을 비판하는 진영은 대단히 높은 확률로 반대편의 잘못된 극단으로 또 빠지더라. 드러난 행실의 변화가 없는 사람은 구원도 못 받은 거라고 말이다. 폴 워셔 목사라든가..

그 진영의 최대 문제점이 뭐냐 하면..
“저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이제 술 담배 끊고 모든 세상적인 생활방식을 그만두고 예수님처럼 홀리하게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러니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가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니 힘만으로 그렇게 잘도 살아지는가 한번 테스트 해 봐라)

술 담배, 음란방탕, 살인 간음만 회개의 대상인 줄 알지,
지금까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한 것,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한 것, 착한 일을 나쁜 짓보다 더 많이 하면 구원받는 걸로 생각한 것, 예수가 그냥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대성인 출신 죄수인줄로만 안 것..

이런 건 회개의 대상이 아니거나 ‘선행’(?)에 비해 굉장히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안다. 전자가 아니라 후자야말로 성경이 규정하는, 구원을 가져다 주는 진짜 회개인데도 말이다! 이 황금 만능주의 인본주의 안티개독이 횡행하는 시대에 후자처럼 믿는 또라이 별종이야말로, 당장 인간적으로 바보 같고 거칠고 서툰 구석이 많아도 하나님 눈엔 얼마나 기특하고 예쁘게 보이겠는가? 이런 믿음 체계가 아니면 성경의 기독교가 도대체 타 종교와 무슨 차이가 생기겠는가!

구원은 그냥 구원받은 죄인이라는 영적 출생이고 0차원 점이다. 그 뒤 신앙생활을 통해 영적으로 자라서 차차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고 제자의 삶을 살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용 보상을 쌓는 건 1차원 선이고 축적, 적분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라고 믿어서 갓 구원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가 선뜻 믿어지고 행할 수 있게 되는 거 아니다. 구원받았다는 게 영적으로 내부적으로는 정말 대단하고 새로워진 것이지만, 한편으로 외형적으로는 정말 별것 아니고 달라진 거 없이 그대로이다.

세상에는 교회 댕긴다는 사실상의 논크리스천들도 굉장히 많다. 그 사람들은 만약 구원을 못 받았다면, 선행 안 하고 거룩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저런 믿음 체계도 세워지지 않은 경우가 90% 이상일 거라고 본인은 단언한다.

구원의 결과, 열매(fruit)를 구원의 조건, 근간(root)과 헷갈리지 말라. 킹 제임스 이외의 성서에서 요 3:36 (아들을 믿는 자 vs 순종하는 자)과 벧전 2:2 (말씀의 젖으로 자라라 vs 신령한 젖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가 괜히 변개된 게 아니다.
그리고 행 2:38은 비록 변개 이슈는 없지만 이게 잘못 적용되면 괜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 게 아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바라바를 선택한 “당대의 유대인들”에게 특별히 처방되었던 회개 조치가 행위 구원 조건으로 둔갑해 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생각만으로는..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 지옥 갈 놈을 다 미리 갈라 놨다고 생각하는 게 더 편할지 모르고(예정론), 그렇게 컴파일 타임이 아니면 런타임으로 사람이 구원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게 자기가 싫어하는 교회 내부 사람을 정죄하는 용도로 더 적합하다! 그에 비해 "구원은 확실하게 받았는데 존나 육신적이고 이기적인 영적 아기"라는 개념은 솔~직하게 말해서 별 재미가 없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내 말 틀렸나?

영이랑 혼 구분 없이 싸잡아서 생각하는 게 더 편할 수 있으며, 구원받은 죄인이랑 레알 크리스천을 한데 싸잡아서 생각하고 멋대로 판단하는 게 더 편할지 모른다. 마치 생명 자연 발생설과 지구 평면설이 당장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더 직관적인 것처럼 말이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단 그렇게 믿어서 해로울 건 없다.

하지만 답이 맞다고 해서 계산 과정이 틀려도 되는 건 아니다. 성경이 그렇게 귀걸이 코걸이 엿가락 같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그 정도로 원칙 없고 제멋대로 성품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보다 굉장히 더 고차원적이시기 때문이다.
선행을 보태서 구원받고 악행으로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 중에 평범한 행실 말고.. 기도를 안 하면, 성경을 안 읽으면 구원을 잃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그건 성경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자기 편한 대로, 자기 직관대로만 내린 결론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교리 공부를 통해 인간이 예수님의 어떤 면모를 믿어서(죽으심, 부활), 정확하게 무엇이 거듭나고(내 영)이 무엇이(내 혼) 무엇으로부터(죄의 형벌, 권능, 임재..) 무엇을 통해(은혜와 믿음) 어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3. 믿음

믿음과 순종· 행위는 일체인 걸까 별개인 걸까? 이건 거의 모든 논쟁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의문이다.
이거 갖고 서로 용어의 정의와 범위도 모른 채 쓸데없는 논쟁이 왕창 많이 오가고, 보다시피 부분적인 면모만 왕창 강조하는 이단 파당이 왕창 많이 생겨 왔다. 여러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고서 코끼리는 뱀 같은 길쭉한 동물이다, 무슨 건물 기둥 같은 동물이다, 말 같은 안장이 달린 동물이다 등등으로 싸우는 거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반적으로 믿음이라는 건, 당장 가시적이고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어떤 정보· 이념을 받아들여서 그에 따라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이 그냥 그리스 로마 신화, 단군 설화 같은 책인 줄 알았다가 전능한 하나님의 영감으로부터 유래된 무오류한 계시라고 보기 시작한 것,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스스로 부활한 게 맞다고.. 그게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인정한 것이 '믿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건 과학으로는 증명도, 반증도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이 정도로 생각을 고쳐먹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회개· 회심이며 일종의 순종이고 행위이다. 기독교가 요구하는 구원 조건은 대외적인 선행이 아니라 이런 머릿속 소프트웨어 개조가 전부이다.

구원이라는 선물을 내 돈 지불하지 않고 받기 때문에 '행위 없이 오직 믿음'이라고 말한다. 선물을 받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 팔에 힘을 주고 손을 내밀어서 그 선물을 받는 것조차 무슨 '자기 의'가 들어간 행위라거나, 선물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 거라고는 사회 통념상으로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칼빈주의에서는 전적 타락이라든가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얘기를 하면서 이와 관련된 말장난을 좀 하는 모양이다.

그럼 행위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형이상학적인 것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이를 토대로 당장 나한테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손해가 오는 상황에서도 성경의 다른 가르침을 믿고서 절제하고 헌신을 실천하고, 예수 믿는 삶을 나타내 보이는 것을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증거를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땡볕에 기우제를 지내러 나가기 전에 우산을 미리 들고 가는 것과 같다.

믿음만 있고 행위가 없는 것은 기껏 내 자신과 집, 처자식을 지키려고 성능 좋은 총을 샀는데, 아니 자기 돈으로 산 것도 아니고 선물 받았는데.. 그 총으로 무장 강도에게 맨날 공포탄만 쏘다가 집이 털리는 것과 같다.
성능 좋은 차를 장만했는데 시동 걸어서 맨날 중립 기어에서만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과 같다.

웅웅거리는 엔진음이 들리고 엔진이 돌아가기는 하는 것 같은데 차가 차주의 일상생활에 실제로 쓰이지는 않는다. 그럼 그 차나 총을 선물해 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물리학적으로 '일'이란 힘에다가 '거리/길이'를 적분한 것으로 정의됨!)
다만, 어이없고 좀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총이나 자동차 자체가 거짓 가짜는 아닌 셈이다. 자동차 등록증이 있고 총기 사용 허가증은 있다. 물건 자체의 존재와 진품 여부는 소유자의 저 이상한 행동과는 전적으로 별개로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믿음에도 분량이 있으며, 믿으려 하지만 잘 안 믿어지는 경우가 있다. 마치 열심히 찾으려(seek) 하지만 안 찾아지는(find) 것처럼 말이다.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올 거라고 믿고 우산을 챙겨 가는 것 정도는 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우산 하나 챙긴 것쯤이야 설마 비가 안 오더라도 내 신상에 큰 타격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가 오는지 여부에 따라서 집 문서를 걸거나 내 손모가지를 건다면 선뜻 하겠는가? 갓 구원받은 초짜가 당장 순교가 가능할까?? 그리고 그걸 못 한다고 해서 "에라이 믿음이 부족한 놈"이라고 욕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초짜가 겁먹어서 순교를 못 하면 구원이 도로 취소될까?

그런 식이다. 믿음도 여러 종류와 강도가 있다. 구원으로 이르는 믿음 이후에는 또 다른 종류의 믿음이 필요하며 그 크기도 차츰 업그레이드 해 나가야 한다. 신혼 부부에게 데이트 때 씌였던 콩깍지가 길어야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바로 그것처럼 갓 영접하고 구원받았을 때의 내 감격과 감정과 믿음은 절대로 무한하지 않으니 지속적인 믿음 공급과 성장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잘 분간하면 요 3:36 "아들을 믿지 않는 자" vs "아들을 순종하지 않는 자"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으며, '믿음 따로 행위 따로' 같은 말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옳은 내용과 전체적으로 틀린 논리 전개를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구원받은 뒤에 믿음의 행위가 나오는 거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벧전 2:2)는 변개된 텍스트이다. 그리고 "구원을 일하여 이루라"(빌 2:12)는 변개는 아니지만 work out을 좀 오해의 소지가 있게 번역한 대목인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17 08:33 2020/01/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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