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이야기

1. 에어컨의 핵심은 압축기

본인은 몸에 열이 많고 더위에 약하다. 날씨도 더운 것보다는 추운 걸 더 좋아한다. 추위는 뭔가를 더 껴입기만 하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반면, 더위를 극복하려면 장비를 가동해야 하고 에너지 소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뭐 겨울에도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손이 시려울 때, 정전기가 생길 때, 얼굴 표면이 부르틀 때는 좀 불편하긴 하다만..)

집도 너무 덥기 때문에 여름방학 땐 개인적인 코딩이나 연구는 가능한 한 학교로 ‘피서’를 가서 진행하곤 했다. 산기슭이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학교가 집보다는 훨씬 덜 더운 것 같다. 공공장소인 도서관이나 기껏해야 동아리 방 정도만 활용할 수 있는 학부생과는 달리, 대학원생은 자체 연구실이 있는 것도 좋다.

이런 특성상, 본인에게 여러 문명의 이기들 중에 열역학과 동력 기관의 산물인 에어컨은 정말 축복 중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냉장고와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식품 보존과 더위 극복에 애로사항이 잔뜩 꽃폈을 것이다. 냉동 공학 분야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자동차 공학, 철도 차량 공학, 심지어 한글 공학만큼이나 냉동 공학도 있으며, 이건 엄연한 기계 공학의 한 분야이다. 그러니 오늘은 에어컨 이야기를 좀 집중적으로 늘어놓아 보겠다.

에어컨은 외부에 아무 영향도 안 끼치면서 혼자 곱게 주변의 온도를 낮춰 주는 요술상자가 아니다. 그 원리는 본질적으로 물이나 알코올이 증발하면서 주변을 시원하게 하는 것과 같다. 단지, 에어컨은 물보다 더 쉽게 액화나 기화가 되는 물질을 냉매로 쓰고 열전달이 순환이 가능한 구조를 갖춰 놓았다.
더운물과 찬물을 한데 섞으면 미지근한 물이 되지만, 미지근한 물이 저절로 더운물과 찬물로 바뀌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에어컨은 저절로 발생하지 않는 그 일을 인위로 발생시키는 기계이다.

C++ 가상 함수만 해도 일반 함수에 비해 많은 성능 비용이 뒤따르듯, 세상에 공짜는 없다. 에어컨은 에너지 소모가 대단히 많은 걸로 악명이 높다. 송풍기나 방열기의 팬은 에어컨이 소모하는 전체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며, 90% 이상은 냉매의 상태를 강제로 바꾸는 압축기가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송풍기의 강약만 조절하는 건 에어컨의 전력 소모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온도의 높낮이와 실질적인 가동 시간이 더 중요하다.

압축이라는 게 간단하게 그냥 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에어컨에는 실외기라는 크고 무거운 물건이 필요하다. 에어컨의 진짜 ‘엔진’은 실외기인 것이다. 한쪽이 열을 잃었으면 다른 쪽이 열을 얻었다는 뜻이므로 그 열을 방출하려면 또 다른 의미에서 어차피 외부 통로가 필요하기도 하고 말이다.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난 잘 모르지만, 공기든 냉매든 압축은 조용히 진행 가능한 작업은 아닌지라 소음과 진동이 뒤따른다. 에어컨 실외기가 마냥 조용하게 동작하지 못하는 게 이 때문이다.

에어컨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기계값과 전기료 어디로 보나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초호화 사치품이었다. 그에 비해 오늘날 가정, 차량, 공공기관, 교통수단 등에 널리고 널린 에어컨을 보면 참 경이롭기 그지없다.
지하철을 생각해 보자면, 옛날에 197, 80년대엔 객실에 에어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천장에 선풍기만 달랑), 전동차의 동력 제어도 원시적인 저항 방식이었다. 제동을 걸 때 열이 바닥에서 솟아올랐으니 여름에 지하철은 완전 찜통 지옥철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기술이 인류의 삶을 지금까지 정말 편하게 만들어 줬다.

2. 차량용 에어컨

차량용 에어컨은 송풍기는 배터리로 가동하더라도 압축기는 대놓고 엔진 힘을 끌어들여 가동한다. 내 차만 해도 에어컨을 켜거나 껐을 때 엔진룸으로부터 느껴지는 엔진음과 진동이 살짝 달라진다. 또한, 시동을 켰더라도 오랫동안 정차하고 있으면 냉기가 좀 약해지다가, 액셀을 밟아서 엔진 rpm이 증가하면 바람도 다시 차가워지는 경향이 있었다.
어디선가 언뜻 본 자료에 따르면 승용차용 에어컨만 해도 엔진 출력을 3~4마력 정도는 깎아 먹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동을 안 켠 on 상태일 때는 에어컨을 켜더라도 그냥 송풍기 바람만 나온다는 뜻인데 실제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확인을 못 해 봤다.

옛날에는 마치 자동 변속기만큼이나 아무 차에나 에어컨이 달린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저배기량 경차는 가격은 둘째치고라도 엔진 출력이 견디질 못해서 에어컨을 제대로 틀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 사람이 가득 탄 채로 에어컨 틀고 오르막을 오르면..?;; 또한 굳이 경차뿐만 아니라 대형 버스도 과거엔 엔진 출력이 충분치 못해서 에어컨을 달고 틀기가 부담스럽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공간이 넓으니 에어컨도 용량이 꽤 커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요즘 자동차는 종류를 불문하고 그렇게까지 약골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더운데 차의 엔진과 연비를 걱정해서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에어컨을 안 틀고 참을 필요까지는 없다.
20년쯤 전에 486/펜티엄급 골동품 컴퓨터에서는 128kbps짜리 평범한 MP3을 하나 재생하는 것만으로도 CPU 사용률이 10~20%대까지 치솟았으며 컴퓨터가 다른 데서 버벅댔다. MP3 디코딩은 계산량이 엄청난 연산이긴 하지만, 요즘 컴퓨터로는 그건 뭐 ‘껌’이지 않은가. 에어컨이 자동차에 끼치는 오버헤드도 그런 식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내연 기관이 없이 아예 전기로만 달리는 자동차에는 에어컨의 가동이 꽤 난관으로 작용할 것 같다.

그래도 에어컨은 사무실에서는 선풍기와 달리 서류를 흩날리지 않으며, 음료수 비용이나 땀으로 인한 의복 세탁 비용, 매번 몸을 씻는 데 드는 비용을 아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의 작업 생산성을 은근히 향상시켜 준다. 또한 자동차에서는 창문을 열 필요를 없게 해 주니 공기 저항 면에서는 오히려 연료를 아껴 주기도 한다. 에어컨은 마냥 에너지를 처먹기만 하는 하마가 아닌 것이다.
올해 초에 별세하긴 했다만, 싱가포르의 독재(?) 대통령 리콴유는 사는 곳이 사는 곳이다 보니, 에어컨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에어컨이 한여름에 생산성과 능률의 향상으로 인해 가져오는 축복을 직감했던 것이다.

자동차가 전진뿐만 아니라 후진이 가능하듯, 에어컨에서 열 전달 방향을 반대로 바꿔 주면 냉방이 아니라 난방도 할 수 있다. 즉, 실내의 에어컨 송풍기에서는 더운 바람이 나오고 실외 송풍기에서는 찬 바람이 배출되는 것이다. 단지 그건 아무 쓰잘데기가 없는 짓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겨울에 난방을 하고 싶으면 그냥 난로를 때고 히터/보일러를 틀면 된다. 그러고 보니 히터도 전기로만 하는 게 아니라 석유를 때서 가동하는 경우가 많으나, 요즘은 기름값이 너무 비싸서 그마저도 올전기로 때우는 추세로 가고 있다.
자동차는 이 점에서 좀 여유가 있다. 엔진열이 자동으로 공급되니, 히터는 에어컨과 달리 엔진에 아무런 추가 오버헤드가 없이 공짜로 가동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에어컨과 마찬가지로 시동이 켜져 있는 동안에 한정일 것이며, 전기 자동차는 아예 해당사항이 없다.

3. 습기 관리

자, 그럼 마지막으로 습기· 물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글을 맺겠다.
에어컨은 시원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굳이 저온이 아니어도 습기가 싹 빠져 보송보송한 공기를 불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땡볕만 내리쬘 때보다, 비 오기 직전의 눅눅하고 후덥지근하고 불쾌지수가 최악인 상황에서 에어컨은 더욱 놀라운 성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에어컨은 남은 건조하게 만들어 주지만 반대로 자기는 물기에 찌들려 산다.
냉매를 액화시키기 위해 냉각기 내부의 온도는 영하 몇십~수십 도까지 떨어진다. (우리가 원하는 실내 온도까지만 내려가는 게 아님) 그럼 주변의 공기는 견디지 못하고 습기가 다 이슬로 바뀐다. 겨우 5도가 될까말까인 냉수만 물병에다 가득 담아 놔도 장마철엔 병의 표면이 얼마 못 가 물기로 온통 축축해진다. 하물며 에어컨 내부는 어떻겠는지를 충분히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국정원 추리 퀴즈 시리즈에서는 이 원리를 소재로 사용한 적도 있었다. 물이 없는 상황에서 은 요일 요원은 에어컨을 가동한 뒤 냉각판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면서 1주일을 버텼다.

maintenance-free하고 청소가 필요 없이 선풍기처럼 오래 오래 쓰는 에어컨이 존재한다면 참 좋겠지만.. 현실의 에어컨은 그렇지 않다. 일단 외부 공기를 걸러 주는 필터를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하고, 또 아까 거론한 냉각기의 냉각판도 별도로 청소가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일명 '에바'(EVAporator)라고 불리는 듯. 시간이 흐르면서 먼지가 쌓이기도 하거니와, 축축한 채로 바깥 공기를 받아들이는 일만 하다 보면 냉각판이 온갖 세균과 곰팡이의 온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중에 차내에 굳이 에어컨이 아닌 송풍기만 틀 때에도 지린내와 악취의 원흉 역할을 한다.

차라리 차가 실외 땡볕 아래에 주차돼 있다면 모를까, 그 상태로 눅눅한 지하 주차장에 장시간 주차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런 공기가 사람 건강에도 좋을 리가 없다. 사실 냉방병이라고 불리는 것도 안팎의 급격한 온도 변화로 인한 피로도 증가와 면역력 감소라기보다는 호흡기 질병에 더 가깝다는 자료도 어디선가 봤었다. 코로 코렁탕...은 아니고 먼지와 세균을 꾸역꾸역 들이켰는데 몸에 탈이 안 날 리가. 어차피 급격한 실내외 온도 차이 자체는 한겨울에도 만만찮게 경험하는데 굳이 여름에만 몸이 특이하게 탈이 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찌든 악취는 필터만 교체하거나 송풍구에 소독만 한다고 없어지지 않더라.
내 경험상 자동차 공업소에서는 잘 해 주지 않고, 전문적인 자동차 에어컨 출장 청소 업체를 불러서 해야 했다. 필터는 엔진오일의 주기와 비슷하게 교환하는 반면, 냉각판은 거기 있는 상태 그대로 조수석 쪽에서 통로를 낸 뒤, 세제를 발라서 세척을 했다. 거기를 세척해 줬더니 진짜로 냄새가 싹 없어졌다. 거기에 설마 무슨 동물 배설물이나 사체 급의 끔찍한 오염원-_-이 있기라도 한 건 아니었고 그냥 정말 오랫동안 청소를 안 해 줘서 평범한 오염원들이 누적된 거랬다.

본인이 궁금했던 것은 왜 에어컨 가동 없이 송풍기만 가동했을 때 악취가 나며, 에어컨을 가동하고 나고 잠시 지나면 냄새가 없어지느냐는 것이었다. 청소 기사에게서 설명을 듣긴 했는데 이 역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1) 악취를 내는 요소들은 온도가 낮을 때는 일시적으로 냄새를 일으키지 않으며, (2)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더라도 냉각판이 송풍기에 영향을 주기는 하는 것 같다. 왜 어째서 그런지는 본인에게 묻지 마시고... ^^

그래서 인터넷이나 자동차 정비소 직원의 공통된 조언으로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n분쯤 전부터 에어컨을 끄고 송풍만 가동해서 냉각판의 습기를 좀 말리라는 것이었다. 그 n의 값은 2~3이나 5, 심지어 10 이상으로 사람마다 차이가 있었다.
실제로 고급 외제차는 시동이 꺼진 뒤에 자동으로 송풍기를 말리는 기능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게 실제로 효과가 있긴 한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15/11/19 08:37 2015/11/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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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초의 인공위성

세계에서 최초로 발사된 인공위성은 잘 알다시피 1957년 10월에 구소련이 발사한 스푸트니크 1호이다. 얘는 배터리를 이용해서 기계가 약 3주 동안 동작했으며, 약 3개월 동안 지구 궤도를 돌다가 슬슬 힘이 다하면서 지구 궤도로 떨어지고 불타 없어졌다.

그 뒤 이에 자극 받은 미국은 몇 차례 실패를 한 끝에 1958년 3월에 뱅가드 1호라는 인공위성을 간신히 띄웠다. 얘는 시기적으로 2등 콩라인에 머물렀고 당시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처럼 생명체를 태우는 실험도 못 했지만, 그래도 기술적으로 굉장한 진보를 이룬 게 있었다.

먼저, 당시로서는 굉장한 첨단 기술이던 태양 전지를 도입해서 현지에서도 전력을 공급함으로써 기계의 수명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무려 3개월간을 지상과 교신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이야 인공위성이라 하면 커다란 직사각형 집광판이 달린 모습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그게 처음부터 관행이었던 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점은.. 얘는 궤도 진입과 관리를 어떻게 고퀄로 했는지, 발사로부터 6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지구를 돌고 있다고 한다.
물론 교신이 끊어지고 아무 동작도 못 하는 고철덩어리 우주쓰레기 신세이지만, 참 가늘고 길게 가고 있다. 앞으로 최하 200년 이상은 더 그렇게 돌 수 있다고 한다.

보이저 1호/2호가 아직도 지구와 교신이 되는 것만큼이나 참 신기한 일이다. 물론 외행성 탐사선이야 태양 전지가 전혀 쓸모가 없으니 원자력 전지를 사용한다.
미국이 처음에 인공위성을 띄우느라 삽질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나로 호 생각도 난다. 단지 차이는 미국은 한국보다 그걸 50년쯤 전에 먼저 했다는 것뿐이다. 마이카 시대도 한국보다 50년 이상 전부터 시작됐고.

2. 화약의 위력

1605년 영국의 화약 음모 사건 때 지하실에 몰래 비축된 흑색화약의 양은 문헌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드럼통 30여 개 분량이었다고 한다. 화약 전체의 무게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1.x ~ 2톤을 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들 흑색화약의 TNT 대비 위력계수는 0.55 정도로 알려져 있으므로 가이 포크스가 준비한 화약의 위력은 오늘날로 치면 TNT 1톤이 약간 안 되는 정도였으리라 추정된다.

물론 그건 음모가 성공했을 경우 의회 건물을 몽땅 박살 내고 잉글랜드 수뇌부들을 모두 날려버리고도 남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영국에서는 가이 포크스가 잡힌 날을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의 부림절처럼 기념하고 있고, 그때 화약의 위력이 어땠을지를 시뮬레이션하고 분석해서 역사 교양 다큐멘터리로 방영하곤 했다. 자기네 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그 뒤.. 1995년 4월의 미국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때 가해자들이 트럭으로 운반해 터뜨린 폭발물은 TNT 약 2.3톤급의 위력이었다. 고층 건물이 1/3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으며 유리창은 모조리 박살 나서 수류탄 파편으로 변했고, 주변의 자동차들이 터지면서 2차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이 운용하고 있는 가장 큰 재래식 폭탄 MOAB은 자기 무게는 약 11톤이고 실제 위력은 TNT 약 13톤급이다. TNT보다 더 위력이 강한 폭약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 참고로 1톤 정도의 무게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전복된 승용차를 낑낑대며 들어올려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래식 폭탄이 아니라 핵무기로 가면 폭발력 수치의 뒤에 0이 몇 개 더 추가된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리틀 보이' 원자폭탄이 TNT 16,000톤급의 위력으로 분류된다. 참고로 나중에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 맨'은 위력이 더 업그레이드 되어 22,000톤 정도. 쉽게 말해 수십 킬로톤이다.
'리틀 보이'의 실제 무게는 약 4670kg 남짓으로, 5톤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폭발력이 나온다는 건 핵무기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캐사기적인 비대칭 무기인지를 짐작케 한다.

1961년에 구소련이 개발하여 터뜨린 '차르 봄바'라는 초대형 수소 폭탄은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한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폭탄 자체의 무게는 27톤이고 위력은 킬로급을 넘어서 50~58 메가톤 정도로 집계되었다. '메가'는 10의 6승이다. 핵무기로 가면 화약 음모 사건이니 MOAB 폭탄 같은 건 그냥 잊어버려야 된다.

옛날에 메가쑈킹 작가가 남긴 주옥같은 명대사 중에 "꽃피는 봄이 오니 메가톤급 외로움이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오는구나."가 있었는데.. 외로움이 메가톤급이나 되면 사람은 멘탈붕괴를 감당치 못해 머리를 쥐어뜯고 뒹굴다 자살하고 난리가 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외로움은 겨우 텍사스 소떼의 stampede 수준의 bandwidth와 throughput으로는 전송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과장을 해도 실제 수치가 뭔지는 알고 과장해야 하리라 여겨진다.

3. 마력과 토크

자동차의 엔진 성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두 잣대는 일명 마력이라고 불리는 출력과, 그리고 토크이다.
물리학적으로 따져 보면 출력은 일률(단위 시간당 일을 하는 양) 단위인지라 차의 속도와 관계가 있으며, 토크는 rpm별로 이때 엔진이 내는 회전력을 나타내는 힘의 단위이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회전축의 길이가 명시돼 있으니 일의 단위이긴 하지만 그래도 거리는 고정돼 있고 kgf의 값만 측정하니 힘의 단위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엔진의 토크는 최대 토크가 나오는 rpm을 지난 뒤부터는 감소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 출력이 나오는 rpm은 최대 토크가 나오는 rpm보다 더 큰 데서 나온 뒤, 그 이후부터 감소한다. 최대 출력 함수는 최대 토크 함수를 rpm 변수에 대해 적분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건 하루 중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은 때(정오 무렵)와 하루 중 가장 더울 때(오후 2~3시쯤)가 살짝 차이가 나는 이유와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태양의 고도는 토크이고 그래서 열이 축적돼서 더운 것은 출력에 대응하니까.

그리고 자동차 엔진의 출력은 사람의 심폐 기능에다가도 비유할 수 있다. 이건 체력, 특히 지구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마라톤 선수처럼 심장과 폐가 워낙 발달한 사람은 평상시에 분당 맥박이 겨우 4~50회만으로도 감당이 된다고 한다. 저회전에서 토크가 굉장히 높은 디젤 엔진과 구조적으로 다를 바 없다.

4. 디스크와 드럼

자동차와 컴퓨터. 서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기계에서 그래도 '디스크'와 '드럼'이라는 용어를 공통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하다. 잘 알다시피 이게 자동차에서는 브레이크를 구현하는 방식이고, 컴퓨터에서는 메모리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둘 모두 '드럼'은 거의 퇴출되고 '디스크'가 주류가 돼 있는 것도 비슷하다.

자기 드럼은 뭔가 하드디스크처럼 생기긴 했지만 크기가 더 크고 속도와 신뢰성이 우수했다(특히 자기 '테이프'보다야..). 반쯤은 RAM처럼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크기에 비해 기억 용량이 너무 적고 비싸서 196, 70년대 이후로는 증기 기관차가 퇴출되듯이 퇴출됐다. 오늘날의 하드디스크는 플로피 디스크와 마찬가지로 드럼이 아니라 '자기 디스크'의 일종이다.

자동차에서도 옛날에는 앞바퀴는 디스크 브레이크, 뒷바퀴는 드럼 브레이크 이랬던 것 같은데 요즘은 냉각이 더 유리한 디스크 브레이크가 모든 바퀴에서 대세이다. 드럼 브레이크는 버스· 트럭 같은 대형차(외부 오염에 더 강해서) 아니면 완전 반대로 경차에서나(생산 원가가 더 저렴해서) 볼 수 있다.
타이어의 휠 안쪽에 뭔가 반들반들하게 광택이 나는 커다란 금속 원판이 달려 있는 건 디스크 브레이크이고, 반대로 좀 꽹과리처럼 생긴 원형 금속 캡슐이 달려 있는 게 드럼 브레이크이다.

5. 화장실의 남녀 구분

화장실의 남녀 구분 여부는 마치 도로에서 중앙선의 존재 여부와 비슷해 보인다.
통행량이 많은 큰길엔 반드시 중앙선이 존재하지만 그냥 좁은 골목 샛길에는 통행 구분이 딱히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일방통행도 있다. 그것처럼 가정집 안의 화장실이나 비행기처럼 비좁은 교통수단의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없다. 그러나 대규모 공공장소 안의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있다.

남녀 구분이 있는 화장실의 경우, 사람들은 한 성별의 화장실을 발견하면 다른 성별의 화장실도 분명 근처에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어떤 건물은 남녀 화장실이 건물의 한쪽 끝과 다른 한쪽 끝으로 멀리 떨어진 경우가 있는데, 이건 본인이 보기에 심리적으로 좋은 디자인이 아닌 것 같다. 화장실을 찾긴 했는데 이성의 화장실이고 내가 갈 수 있는 화장실이 발견될 기미가 안 보이면... 아예 화장실이 전혀 안 보이는 것보다 실망과 박탈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으로 치면 반대편 승강장 횡단을 할 수 없는 역과 비슷하며, 운전에다 비유하면 길을 발견하긴 했는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갈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 (일방통행 내지 좌회전 불가 같은)

여느 시끄러운 음악이나 기계음과는 달리, 전화 통화 소리가 주변 사람에게 더욱 불쾌감을 유발하는 소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전화 통화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인데 대화가 전부 들리는 게 아니라 반쪽짜리만 들려서 문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반쪽짜리'를 사람들이 더욱 싫어하는 예는 이런 식으로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똑같이 목이 말라도 사막에서 목이 마른 것과 망망대해 바다 한가운데서 목이 마른 것의 차이랄까..?

그리고 화장실 얘기가 나왔으니 다른 얘기를 또 하나 덧붙이자면...
공공장소의 화장실에서 휴지는 그냥 (1) 변기에다 버릴지 아니면 반드시 따로 (2) 휴지통에다 버릴지에 대한 지침이 예상 외로 케바케이고 뒤죽박죽이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지는 모르겠다. 마치 높임법에서 압존법이 (1) 써라(과장이 사장보다 더 높냐?) 또는 (2) 쓰지 마라(과장이 니 친구냐?)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걸 보는 듯하다.

6. 기타 메모

"나비: 나방"은 음악으로 치면 마치 음악에서 "장조: 단조"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인텔 80186 CPU와 코레일 8100호대 전기 기관차: 뭔가 (1) 숫자 형태가 비슷하고, (2) 후속 버전에 밀려 존재감 없이 싹 묻힌 물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엄지손톱 모양의 그 색 프리즘(CIE-1931 색 공간)하고, 모음 삼각도를 나타낸 포먼트 그래프가 뭔가 비슷한 점이 있어 보인다. 흰색에 속하는 (1/3, 1/3) 지점은 모음 삼각도로 치면 제일 만만한 중간 모음인 schwa 정도에 대응하려나?

컴퓨터에 화면이 너무 작아서 여러 브라우저/문서 창을 alt+tab 눌러 가며 전환해야 하는 건 작업 생산성 면에서 좋지 않다.
이것은 컴퓨터 내부로 치면 메모리가 너무 부족해서 자꾸 디스크 페이징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게 늘어나면 컴퓨터의 성능은 급격히 곤두박질친다.
자동차는 최대한 부드럽게 가감속을 하고 최대한 관성에 의지하고 엔진 배기량에 맞는 경제 속도로 달릴수록 연비와 가성비가 킹왕짱이 되는 반면, 길이 막혀서 가고 서기를 반복할수록 연비는 거의 저것만치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공회전은 말할 것도 없고, 정지 상태에 있던 차가 처음 움직일 때가 연비가 제일 쥐약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육군에는 '육군 과학화 전투 훈련단'(KCTC)라는 이색적인 부대가 있다. 여기 군인들은 전투력 고취를 위해 원정 훈련을 오는 다른 육군 부대들을 상대로 위장까지 하고서 가상의 북한군 역할을 한다. 특수부대 급으로 훈련을 굉장히 혹독하게 받고 홈그라운드인 훈련장 지리에도 능통하기 때문에 얘네들을 격퇴하는 부대가 별로 없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싸움은 실탄이 아니라 정교하게 피격 판정을 해 주는 레이저 총 + 공포탄으로 한다. 예비군 페인트탄 같은 유치한 분위기는 아님.
이름하여 '전문대항군'인데, 이걸 읽으니까 쟤들은 버추어 파이터로 치면 듀랄 같은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이나 연료는 인체나 기계 내부에서 동일 질량 다른 물질로 화학적으로 변하는 것일 뿐이고 그 변하는 과정에서 힘이 발생한다. 물질 자체가 소멸하고 질량이 그대로 에너지로 바뀌는 것 아님. 쉽게 말해 넣은 연료의 무게와 동일한 무게의 배기가스가 나온다는 뜻이다.
또한, 소리는 진동이지 이동이 아니다. 이동이면 그건 바람이지 소리가 아니다. 물론 이동 과정에서도 진동이 있을 수 있으니 바람 소리도 들리는 것이다.

일사병(땡볕이 중심)과 열사병(고온 다습이 중심), 삭제(유출을 막음)와 암호화(유출되더라도 뭔 말인지 모르게), 불법체류(합법 입국 후 배째라)와 밀입국(애초에 입국 자체를..) 등 비슷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 참 많은 것 같다.
힘(찰나)과 일(힘의 축적), 열과 온도(공기 80도와 물 80도의 차이는?), 질량(??)과 무게(질량으로 인해 생긴 힘) 등.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면 직관만으로는 제대로 구분하기 힘든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원리를 알 수 있어서 좋다.

Posted by 사무엘

2015/10/12 08:24 2015/10/1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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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물건들 추억

1. 특수한 그리기 도구(?)

오래 전에 아이패드를 보고는 문득 이런 물건 생각이 났다.
저렇게 태블릿과 비슷하게 생긴 판때기 모양의 장난감이었는데, 전기를 쓰지는 않고 안에 가루 같은 게 꽉 차 있었다. 그리고 그 표면에다 펜으로 뭘 그리면 그림이 그려졌다. 흔들거나 다른 특수한 방법으로 내용을 다 지우고 화면을 초기화할 수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내부의 가루 상태를 이용해서 단색 그림을 그리는 패드가 있었는데 이 이상 더 자세한 정보가 남아 있질 않고 인터넷으로 더 검색도 할 수 없다. 이런 거 기억하시는 분의 제보를 기다린다.

2. 카세트 테이프의 주행

지금이야 음악 감상은 컴퓨터의 디지털 기술 기반으로 완전히 바뀌었지만 옛날에는 카세트 테이프라는 게 시대를 풍미하는 음성 매체였다.
카세트 테이프에는 주행용 구멍이랄까 회전축이랄까 그게 두 개가 있다. 재생을 하면 두 구멍 중 오른쪽에 있는 것 하나만 돌아간다. 되감기를 하면 왼쪽 것이 돌아가고. 즉, 한쪽의 동력이 다른 한쪽으로도 전해지는 형태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난 테이프를 재생하는 중에 두 구멍의 회전 속도가 왜 서로 차이가 나는지가 어릴 때부터 굉장히 궁금했다.
갓 재생을 시작해서 테이프들이 아직 왼쪽에 몰려 있을 때는 왼쪽 구멍의 회전이 느리고 오른쪽 구멍의 회전이 빨랐다.
그러나 한 편을 다 들어서 테이프가 오른쪽에 몰려서 오른쪽이 거대해지고 나면, 반대로 왼쪽은 빨리 돌아가고 오른쪽은 느려졌다.

지금 그 모양을 다시 생각해 보니 카세트 테이프는 직경이 다른 두 톱니바퀴의 회전으로 인한 변속이라는 개념을 설명해 주는 좋은 예였다. (테이프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감기면서 양 구멍의 직경이 서로 달라지므로..)
아니, 더 나아가 테이프는 톱니라기보다는 벨트에 더 가까운 형태이니, CVT 무단변속기를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카세트 테이프 재생기가 있으면 주행 과정에서 양 구멍/바퀴의 변속비가 얼마까지 달라지는지를 더 눈여겨보고 싶다.

3. 노래방 기계 글꼴

요즘 노래방을 가 보면 옛날에 비해 가사의 글꼴이 더 새끈한 걸로 바뀐 것만 봐도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개인적으로 딱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노래방 가사 자막용으로 쓰인 서체는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아래아한글 40*40 비트맵 명조를 떠올리게 하는 구닥다리 비트맵 명조체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에 아래아한글 1.x로 조판된 듯한 옛 영진 출판사 책들을 보는 느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다가 이 명조체를 대체한 것은 큐닉스 서체인 가을체와 으뜸체 정도. 노래방 기계에서는 요 둘이 굉장히 많이 쓰인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중에는 노래방에서도 서울남산이나 나눔(바른)고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 옛날 키보드

한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그러게, 한 30년 전쯤의 구닥다리 컴퓨터들은 키보드의 구성이 지금과는 살짝 달랐다. 미국 원판은 84키이고 한국에서는 한영/한자가 추가돼서 86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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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초딩 시절에 컴퓨터 학원에서 이 구식 키보드를 본 기억이 있다. 지금 키보드와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 일단 F1~F10 기능키는 왼쪽에 2열 종대로 늘어서 있고 F11과 F12는 존재하지 않는다.
  • 문자 키와 키패드 사이에 여분의 화살표 내지 키패드 기능 키들(pg dn/up, home, end, insert, del)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Num lock이 켜져 있는 동안은 키패드 기능 키들을 사용할 수 없다.
  • Ctrl은 지금 Caps lock이 있는 곳에 있다. 그 대신 Caps lock은 우측 하단에 있다. (그래 그랬다, 완전 추억 쩐다!)
  • ESC가 지금의 Num lock 자리에 있다.
  • 키패드에는 +가 지금의 엔터 자리에 있다. 그리고 / 는 키패드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지금 키보드의 전신인 101키 키보드가 나오고, 국내에서는 역시 한영/한자가 추가돼서 103키가 되었다. Windows 95부터는 Win키가 그것도 좌우에 하나씩 2개나 추가되고, 또 컨텍스트 메뉴키가 더해져서 10키가 되었고, 이것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나저나 키보드의 연결 단자 자체도 DIN 내지 AT 단자부터 시작했다가 PS/2 단자를 거쳐 지금은 USB가 대세가 됐으니 이것도 격세지감이다.

저런 '정식 키보드'는 규격이 전부 통일되어 있는 반면, 기계마다 살짝 차이가 있어서 혼동을 주는 건 노트북 컴퓨터 키보드에서 키패드의 기능키들이 배당된 방식들이다. 특히 pg up/dn이나 home/end 같은 것.
그리고 노트북은 부족한 키의 기능을 보충하려다 보니 자체적인 fn 키도 있는데.. 일반 노트북의 경우 좌측 하단에 Ctrl fn win alt의 순으로 키가 있었던 반면, 맥북은 fn ctrl alt win으로 순서가 미묘하게 바뀌어 있어서 이것도 적응이 몹시 힘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5/10/09 08:34 2015/10/0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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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임 바이츠만. (Chaim Weizmann; 1874-1952)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문과 계열의 만렙 박사였다면, 현대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은...;; 천재 과학자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미국을 끌어들여서 나라를 세웠다면, 저 사람은 영국을 끌어들여서 자기네 땅을 얻어 냈다. 서로 나이 차이도(1874 & 1875년생) 거의 안 나는 동시대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윈스턴 처칠과도 동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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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임 바이츠만은 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옥수수로부터 아세톤을 저렴하게 양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게 전시 군수 물자인 탄약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었던지라 그는 이것 덕분에 완전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됐다.
영국 정부에서는 그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에게 훈장을 주려 했다. 그때 그 사람이 말했다. "저는 돈과 명예는 필요 없습니다. 단지 우리 민족을 약속된 땅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서 살게 해 주세요." 성경에서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에게 자기 동족을 구해 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 대영제국의 식민지 중엔 거기보다 더 넓고 좋은 땅도 얼마든지 있는데. 가령, 아프리카에 우간다 영토 일대는 어때?"라는 제안에도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ㄴㄴ. 런던이 지금 같은 영국 수도가 되기도 전부터 예루살렘은 원래 우리 땅이었습니다. 부디 거기를 돌려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영국 내부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믿는 크리스천들이 물론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1차 세계 대전의 말에 1917년에 밸푸어 선언이 이뤄졌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면 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발효된 카이로 선언 및 포츠담 선언과 비슷하다. 일제로부터 조선의 독립이 그때 명시됐으니 말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의 귀환이 곧장 이뤄진 건 아니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유대인들이 몇백만 명씩이나 나치에 의해 처참하게 학살당하고 세계 질서가 확 바뀐 뒤에야 이스라엘이 세워질 수 있었다. 사람에겐 기본적으로 귀차니즘이 있는지라 박해를 안 받으면 잘 안 움직이니까.;;

어쨌거나 초대 대통령이 군인이나 외교관 같은 다른 직업이 아니라 과학자라니 참 멋있고 부럽다(우리나라는 박 근혜 대통령이 일단 전자공학과 출신이긴 하다만..). 바이츠만은 자기 실력을 민족의 독립과 건국을 위해 사용한 위인 애국자였다.

2.
이스라엘의 국가인 Hatikvah(희망)은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우연의 일치인지 <밝은 빛을 따라서 앞만 향해 나가자>라는 희망적인(?) 내용의 찬송가 멜로디로 쓰인다. 하지만 쟤네들 국가 가사는... 나 같은 비유대인이 보기에도 인간적인 감정상 정말 구슬프고 찡하고, 나라 없는 백성의 한이 레알 서려 있는 게 느껴진다. 1절 가사를 대충 드라마틱하게 의역하면 이런 내용이다.

“내 심장은 동방을 향해, 시온을 향해 오늘도 꿈틀댄다.
우리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으리.
약속의 땅에서 자유로운 내 조국을 세우는 날을 염원한 지가 어언 2천 년.
그곳은 시온 땅의 예루살렘이어라.”


이 글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뺏었네 나쁜 깡패네 하는 얘기는 논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 점을 양해 바란다. 원래 그런 분쟁이 얼마든지 안 생길 수 있었고 이스라엘은 합법적으로 땅을 받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는 것도 다 합의가 돼 있었는데 영국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오해가 생기면서 내력이 복잡하게 배배 꼬인 게 있다. 그런 것까지 다 설명하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다.

아 그리고, 이스라엘도 사람 사는 곳이고, 모든 이스라엘 국민들이 자기네 국가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저런 노래가 너무 국뽕스럽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인 중에도 애국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일본인 중에도 기미가요가 너무 존재감 없다고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3.
하나님이 보우하셨는지 유대인들이 참 똑똑하긴 했다. 바이츠만 말고 프리츠 하버(1868-1934)도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천재 과학자이다. 그는 공기 중의 질소로부터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인공 질소 비료를 만들어 냈다. 햇볕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핵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공기로부터 사람을 살리는 빵을 만드는 급의 엄청난 기적을 이뤘다. 기아 해소와 인류 복지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그는 응당 노벨 상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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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는 바이츠만과는 달리 줄을 치명적으로 잘못 섰다. 그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도, 시온주의자도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영국이 아닌 독일에 충성했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그래서 조국을 위해 사람을 살리는 발명만 한 게 아니라 독가스도 발명했다. 1차 세계 대전 때 전장에 처음으로 살포된 염소 가스부터 시작해, 유대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시절의 치클론 B 독가스도 다 이 사람 혼자 또는 공동 연구로 만들어졌다.

그럼 그가 그 덕분에 독일로부터라도 인정받고 떵떵거리며 살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이용 가치는 있지만 굉장히 애매한 왕따 포지션이 되어서 타지에서 무척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독일로부터는 나중에 나치 당이 집권하면서 "저런 더러운 생물(=유대인)을 고위 과학자 자리에 앉혀 둘 순 없다"라고 문전박대를 당했고, 영국 등 다른 나라로부터는 "저 자식은 머리는 비상하지만 정신이 완전 맛이 간 싸이코야."라고 단단히 찍혔다.

그래도 다행히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일찍(1934년) 죽은 덕분에 히틀러와 엮이지는 않았으며,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거나 반대로 나치 출신의 전범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관여한 발명품이 가까운 미래에 심지어 자기 동족을 학살하는 용도로까지 쓰인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역설이다. 그는 사람을 살린 엄청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위인전에는 도저히 오를 수 없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과학자의 연구 윤리를 논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씁쓸한 사례가 되었다.

4.
이스라엘 건국 얘기가 나왔으니 우리나라의 건국도 다시 좀 복습하고 글을 맺겠다.
1948년 5월 10일에 우리나라에서 남쪽만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14일에 이스라엘이 건국됐고, 같은 날 낮에 한반도에서는 북으로부터 대남 송전이 끊겼다.
그 달 말일인 31일엔 그 국회의원들을 바탕으로 제헌국회가 개최됐고, 당시 의장이던 이 승만의 요청으로 이 윤영 목사의 감사 기도가 이때 행해졌다.
이어 그 해 7월 17일엔 잘 알다시피 헌법이 제정되었고,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서 약 3년간의 미군정이 끝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전인 1948년 3월에 이북에서는 이미 자기만의 국기와 국가도 다 정하고 분단은 기정사실이 된 상태로 북조선로동당 제2차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악의 무리들은 서로 동무 동무 하면서 비판과 삿대질이나 일삼으면서 어떻게 백성들의 재산과 자유를 빼앗고 몽땅 착취하고, 서로 감시하고 통제하고 믿질 못하는 생지옥을 만들까, 어떻게 남조선까지 몽땅 집어 삼킬까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그 반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하나님께서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셔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고 ...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우리에게 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것은 개인의 종교관을 떠나서 매우 다행이고 자랑스럽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05 08:38 2015/09/0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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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허라이즌스 호, 명왕성 접근

지난 7월 14일, 인류는 드디어 "명왕성과 카론의 모습을 실제 컬러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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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세상에~!! 우주덕 천문학 덕후라면 저 사진 보고 감격에 눈물이 줄줄 흐르지 않을까 싶다.
이미 위키백과와 각종 인터넷 사이트들은 지금까지 상상도 아니면 작은 점으로만 존재하던 명왕성 그림/사진들을 죄다 레알 표면 사진으로 업데이트한 지 오래이다.

내가 대학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 병특 회사에 다니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 버전이 3.x 후반대이던 2006년 1월, 뉴 허라이즌스 호가 발사되던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게 우주 공간에서 총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무려 9년 반을 날아간 뒤에야 인제 명왕성에 그럭저럭 도착했다. 욕봤다. 몇 년 전에는 "쟤는 아직도 토성과 천왕성 사이의 방대한 허허벌판을 열나게 뺑이 치며 날아가고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더랬다.

뉴 허라이즌스 호가 있는 곳은 여기서는 빛이나 전파로도 가는 데 거의 5시간 반이나 걸린다. 그리고 지난 14일 저녁에 명왕성을 제일 가까이 통과했다.
명왕성에 무슨 착륙을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인증샷 찍고 제대로 관측과 탐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몇 시간에 불과함.

뉴 허라이즌스는 1970년대의 작품인 보이저 1, 2와 파이어니어 10, 11에 이어 21세기에 오랜만에 발사된 외행성 탐사선이다.
옛날에 보이저 2호는 때마침 외행성들이 쭉 늘어선 시기에 발사를 잘 한 덕분에, 명왕성은 말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천왕성과 해왕성의 근접 사진을 유일하게 전해 줄 수 있었다. 토성에서 천왕성, 천왕성에서 해왕성까지 가는 데 2, 3년씩 걸렸다. 그만큼 거기는 공간이 방대하다.

그 뒤, 명왕성은 나름 유일하게 미국인이 발견한 태양계 행성이라고 해서 미국에서 애착을 많이 가졌다.
하지만 해왕성 이후로 거기는 뭔가 행성다운 행성이 없고, 명왕성은 너무 작았다. 더구나 유사 궤도에 명왕성과 비슷하게 생긴 왜소행성들이 연달아 발견되면서 명왕성은 행성 지위를 잃게 됐다. 그렇게 결정된 게 하필 뉴 허라이즌스가 발사된 지 얼마 안 된 2006년 8월인 것도 참 절묘하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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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명문 사립정글고>라는 웹툰에서는 명왕성이라는 이름의 학생이 저렇게 멘붕해서 열폭· 자폭하는 장면도 나왔다. =_=;;

한편, 킹 제임스 성경 신자라면 친숙할 라킨의 <세대적 진리>라는 책에도 행성들이 늘어선 태양계 그림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해왕성까지만 있고 명왕성이 없다.
그 이유는 그 책 자체가 명왕성이 발견되기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명왕성은 1930년, 1차 세계 대전도 끝나고 대공황 이러던 시절에 클라이드 톰보라는 천문학자에 의해 발견됐다. 아마 은하의 생성 방식도 성운설이 대세이던 시절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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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모교 고등학교에는 천문 동아리가 있었는데 이름이 POP (명왕성 너머의 행성)였다. 지금도 같은 이름으로 잘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태양계에서 태양이 전체 물질들의 질량의 99%를 넘게 차지하는 중력 끝판왕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그 중력이 내는 인력은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서 급격하게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해왕성보다도 더 먼 거리에 설마 단독 궤도를 가질 정도로 충분히 무거운 행성이 또 존재할 수 있을까? 행성이 딱 8개가 있다는 건 마치 정다면체가 딱 5개 있다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그리고 끝으로.. 명왕성의 '명'은 한자가 '어두울 명'(冥)이다.
'사다'와 '팔다'가 형성자로 같은 '매'이고 '주다'와 '받다'가 역시 형성자로 같은 '수'인데 '밝다'와 '어둡다'까지 같은 '명'이라니 본인은 한자 내지 중국어가 참 이상한 문자와 언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저런 반의어의 소리가 동일해도 될 정도로 중국어는 성조가 음운 변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것 같다. 물론 한국어에서는 '어둡다'라는 한자어는 '암'(暗)이 더 많이 쓰이긴 하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7/18 08:32 2015/07/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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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를 끌어올려 분사하는 일을 하는 물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물뿌리개: 일면 주전자처럼 생겼지만 주둥이의 끝은 샤워기처럼 생긴 물통이다. 확 들이붓더라도 물이 넓은 면적에 고르게 퍼져 나오도록 만들어져 있다. 다만, 물을 내보내는 메커니즘은 중력밖에 없으니 딱히 신기할 게 없다. 이름 그대로 화단에 물을 주는 용도로 쓴다.
  • 펌프: 진공을 만들어서 압력차를 이용해 물을 끌어올리는 도구이다. 옛날에 오늘날과 같은 편리한 상수도 시설이 갖춰지기 전, 시골에서는 종종 볼 수 있었다.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끌어올리던 시절보다는 많이 발전했지만, 그래도 수동식 펌프는 펌프질을 위해 여전히 사람의 체력이 필요했다.
  • 분무기: 물이나 향수 같은 걸 펌프와 같은 원리로 끌어올린 뒤, 안개처럼 조금씩 뿌옇게 분사한다. 손으로 손잡이를 눌러서 손잡이가 끝까지 들어갈 때까지 그렇게 동작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어떻게 조작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일부 분무기는 노즐 '모드'를 바꿔서 물을 뿌옇게 분사하는 게 아니라 물총처럼 가느다란 물줄기를 찍찍 갈기게 만들 수도 있었다.
  • 스프레이: 분무기보다 기술적으로 더 발달했다. 위의 분무기는 손잡이가 끝에 닿아서 멈춘 뒤엔 더 분사가 되지 않지만, 스프레이는 버튼을 누르고 있는 동안 계속해서 액체가 분사되어 나온다. 스프링이나 태엽, 전기 동력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액체를 밀어내는 역할은? 같이 들어가는 압축 기체가 한다. 그 대신 여기에 들어가는 액체도 역시 단순한 물 같은 게 아니라 아무래도 살충제, 페인트 같은 화학 약품들이다. 아, 그러고 보니 소화기도 따지고 보면 이런 스프레이에 속한다.

총으로 치면 단순 압축 분무기는 반자동 모드이고, 에어로졸 스프레이는 연사가 되는 자동 모드에 해당한다고 봐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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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인은 액체 연료와 고체 연료의 차이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액체를 끌어올려 뿌옇게 분사하는 기술은 액체 연료를 다루는 핵심 기술이며 기계공학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나 싶다. 유체역학과 열역학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다.

난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세제, 치약, 샴푸 같은 것에 유체의 극미량 분사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찌익 짜서 쓰는 양보다 훨씬 적게 써도 씻는 데 부족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상의 이유로 과다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자동차 엔진에서 분사 기술의 중요성은 그야말로 물으면 잔소리이다.
<이연걸의 정무문> 영화의 맨 앞부분을 보면.. 주인공 진진은 설정상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내연기관이라는 신문물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게 나온다. (오오~ 기계공학..) 그때도 대사를 들어 보면, 선생이 '카뷰레터'라는 장치를 언급한다~!
서양 제국주의는 내연기관이 달린 기계와 총기를 통해서 이뤄진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 당시로서는 엔진 기술이 오늘날의 반도체나 소프트웨어 기술만큼이나 최첨단 기술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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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잘 알다시피 공기 중에 연료를 아주 희박하게 분사한 뒤 이를 폭발시켜서 그 힘으로 피스톤을 누르고 바퀴를 굴린다.
이를 수행하는 가장 원시적인 장치가 바로 '카뷰레터'이다. 얘는 말 그대로 분무기처럼 동작을 하여 가솔린+공기 혼합 기체를 엔진에다 보내 준다. 참고로 카뷰레터는 탄소 carbon에서 유래된 탄화물 carburet의 파생어이다.

어린이용 과학 실험 중에.. 빨때를 ㄱ자로 꺾어서 수면에다 꽂은 뒤, ㅡ 모양의 한쪽 끝을 입으로 세게 불면 아래에 있던 물이 빨려 올라가는 실험이 있다. 바로 그 원리이다. 유식한 표현으로는 베르누이의 정리 내지 벤트리 효과이다.
더 나아가 바다에서 사람이 배의 스크류에 빨려 들어가서 사고를 당하는 것, 열차가 빠르게 달리는 쪽으로 사람이 빨려 들어가는 것도 다 유체역학적으로 같은 원리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옛날 이야기를 하겠다.
현대 자동차에서 예전에 만들었던 승용차인 '엑셀'. 그 기원을 찾자면 포니 엑셀, 프레스토 등 더 옛날 차로 거슬러 올라가긴 하는데, 그 중 가장 엑셀스러운 첫 모델은 1989년 4월에 나온 2세대 모델이다. (그러고 보니 저 시기는 아래아한글 1.0이 나온 시기와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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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엑셀은 1300cc, 1500cc GL, 1500cc GLSi 이렇게 세 모델로 출시되었다.
창문도 최하급은 전도어가 수동이고 중간급은 앞좌석 두 개만 자동, 고급은 전좌석이 파워윈도우였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차이는 연료 분사 방식인데, 앞의 둘은 기계식 카뷰레터보다 약간 더 발전한 전자식 피드백 카뷰레터인 FBC이고, 최고급 GLSi는 그 당시로는 최첨단 기술이던 다중분사 MPI 방식이었다.

GLSi의 경우, 차 측면에 Multiple Point Injection이라고 당당히 자랑하는 글귀가 붙어 있을 정도였다. DOHC 흡기 방식이거나 자동 변속기가 달린 차는 측면에 Automatic 내지 DOHC라고 자랑을 치던 시절의 얘기다.

흐음, 기계식 카뷰레터, 전자식 카뷰레터, MPI(완전 전자식)라는 세 계층의 기술을 보니..
이듬해 봄에 발표되었던 마소 Windows 3.0의 리얼 모드, 286 표준 모드, 그리고 386 확장 모드가 같이 연상된다!
그땐 자동차와 컴퓨터 모두 기술적으로 크게 발전하던 과도기이긴 했다. 전동차로 치면 저항, 쵸퍼, VVVF와 비슷하다.

카뷰레터는 전자 제어가 없이 전적으로 밟은 만큼 밸브가 열리고, 곧이곧대로 연료가 분사되다 보니.. 구조가 단순하고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정비성이 좋았다. 변속기도 수동이었으니 반응 하나는 정말 최강이었을 것 같다.
193,40년대에 미국에서는 퍼져 버린 차를 시골 깡촌의 소녀가 간단한 공구로 뚝딱 수리하는 걸 보고 미국으로 견학을 간 어느 일본군 장교가 경악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전국민이 저렇게 기계를 잘 다루는 나라와는 전쟁을 벌여서 이길 수 없다"라고 직감을 했다고.

미국이 (1) 193,40년대에 이미 마이카 시대가 열렸을 정도로 잘사는 나라이며, (2) 인건비가 높아서 어지간한 작업은 스스로 다 알아서 해야 하는 나라인 것도 있지만, (3) 한편으로 그 시절엔 자동차의 구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단순하기도 했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은 기계식 카뷰레터만으로는 요즘 정도의 엄청나게 까다로운 연비나 배기가스 기준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 지금은 MPI에 이어 직분사라는 GDI 엔진까지 출현했고, 또 그 동작을 제어하는 것 역시 옛날보다 훨씬 더 똑똑하졌다. 컴퓨터가 이것저것 따져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기계식 카뷰레터 기반이던 포니에는 초크 밸브를 개폐하는 스위치도 운전석에 있었다니 참 신기하다. 공회전 때 엔진 회전수를 조절하는 역할도 하고, 또 추운 곳에서 오랜만에 시동을 걸 때는 이거 제어를 잘 해 줘야 했던가 보다. 지금은 그런 밸브는 오토바이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인 듯.

Posted by 사무엘

2015/05/25 08:30 2015/05/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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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 의학 관련 생각

본인은 사진, 촬영, 영상 관련 기술의 발달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깊게 잘 알지는 못하고 그냥 관심뿐이지만, 그래도 흑백 사진이 컬러로 바뀌고 영사기가 발명되고, 따로 변사가 붙을 정도이던 무성 영화가 컬러+소리가 가미된 진짜 영화로 바뀌어 간 과정이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그래서 예전에 사진술에 대해서 글을 올린 적이 있기도 하다.

옛날에 카메라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알다시피 자기 생얼 사진이 찍히는 것만으로도 자기 혼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질겁을 했다.
그런데 하물며...
아담 이래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의 뼈가 사진으로 찍혀 나온 걸 목격한 당사자는 얼마나 기절초풍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X선, 일명 뢴트겐선이라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잘 알다시피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이다.
그리고 위의 사진은 1895년, 뢴트겐이 자기 아내의 손을 찍은 사진이다. 정말 아내의 손이 맞음을 확인하기 위해 반지까지 낀 채로 사진을 찍었다.
뢴트겐 당사자조차 최초의 방사선 촬영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혹시 자기가 환각, 헛것을 본 건 아닌지 엄청 의심하면서 번뇌와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노벨 물리학상의 초대 수상자가 되었다(1901년).
이건 충분히 노벨 상 감인 업적이다. 해부를 하지 않고 신체의 내장과 뼈를 들여다보는 게 가능해졌으니 이는 의학계에 가히 혁신을 가져다 준 획기적인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 덕분에 의학에 방사선과 내지 영상의학이라는 분야가 새로 생기게 됐다. 흉부 X선 촬영은 기초 건강 검진을 받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받는 저렴한 검사 중 하나가 됐다. 놀라운 과학의 힘이다.
내과 치료 때는 아예 내시경을 집어넣어서 사진을 찍겠지만, 뼈가 부러졌는지 인대가 나갔는지 등을 판별하는 외과 치료 용도로는 X선이 가히 구세주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짐을 일일이 열어 보지 않고도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금속 탐지기 역시 세상의 보안과 인권을 크게 향상시켜 줬다.
단, 이게 20세기 초반부터 아주 일찍 상용화가 됐다면 일제 강점기 때 항일 독립운동가가 폭탄이나 총을 몰래 반입해서 의거를 일으키기도 훨씬 더 어려워졌지 싶다. X선 사진은커녕 생얼 사진조차 흔치 않은지라, 죽이고자 하는 일제 고위 관리의 얼굴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옛날이었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끝으로, 의학에 대한 원론적인 얘기를 하며 글을 맺겠다.
얼마 전엔 한의사에게도 X선 촬영을 허용하겠다는 말이 나와서 논란이 많았다.
현직 의료인들은 한의사 내지 한의학 쪽을 내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싫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본인도 큰 줄기에서는 서양 의학을 지지한다. 어설픈 친환경 대체의학, 백신 음모론, 안전한 예방접종 그런 거 미는 진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근대화 공업화 이전의 자연 환경과 위생 복지에 대해 너무 미화하고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

영아 사망률이 지금보다 넘사벽으로 높았고 어렸을 때 천연두 앓다가 목숨만 건진 곰보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으며, 죽은 형의 이름을 동생이 물려 쓰던 시절을 벌써 잊으셨는가? 그때로부터 시간이 뭐 얼마나 지났다고?
수돗물을 화학 약품으로 소독하고 너도 나도 백신을 맞은 덕분에 어렵게 퇴치한 전염병을 "이건 백신 없이도 어차피 자연스럽게 사라졌을 질병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는 무식한 주장에는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우주와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같은 걸 증명할 수는 없다. 그건 재연 가능하지 않으며 과학의 영역에 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 당장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이 가능한 의학에 관한 한은, 투명하고 객관적인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서양 의학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으며, 온갖 사이비 돌팔이와 건강 관련 미신들로부터 사람들을 바르게 깨우쳐 줬다고 본인은 굳게 믿는다.

심지어 성경에도 이 주제와 관련된 진술이 있다.

  • 아사의 통치 제삼십구년에 그의 발에 병이 생겨 마침내 그의 병이 심히 중하게 되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주}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사들에게 구하였더라. (대하 16:12. 의사를 찾은 걸 부정적으로 얘기함)
  • 더 이상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있는 병을 위하여 포도즙을 조금 쓰라. (딤전 5:23. 인위적인 의학 처방을 긍정적으로 얘기함)

성경에 왜 이 두 구절이 동시에 존재하며 둘이 무슨 문맥에서 무엇을 말하는지를 바르게 분간할 줄 안다면, 질병 내지 치유와 관련된 온갖 교리적 오류에 빠질 일이 없을 것이다. 성경에서 그 많은 기적을 행한 엘리사도 나중에 병에 걸려 죽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기도만 열심히 하면 공부 안 해도 학교 시험을 100점 맞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병에 걸리기만 하면 다 마귀 탓이고 기도만 하면 다 낫는다는 식의 생각은 매우 잘못됐다.
위의 구절들도, 지금 병에 걸린 상황과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자세와 믿음이 문제이지, 병원에 가느냐 안 가느냐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닐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3/19 08:35 2015/03/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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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국산화

1975년 12월에 현대 자동차에서 최초로 고유 모델 승용차인 포니를 만들어 낸 건 잘 알려진 사실인데,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말고 가전 분야에서 이에 필적하는 발전을 선도하던 기업은 바로 지금 LG 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였다.
라디오를 생산해 낸 노하우를 바탕으로 1966년 8월에 최초로 흑백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개발· 생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부품을 국산화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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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TV 한 대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의 물가로 6만 원이었다. 이건 자료를 찾아 보면 엥겔 지수 자체가 더 높던 그 시절에 쌀 무려 20여 가마니의 가치를 상회하는 엄청난 가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당시의 서민 경제력으로는 TV를 집집마다 장만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마을 이장님 집에서나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시청했다는 걸.. 개개인이 전화기와 DMB를 들고 다니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금성사는 그로부터 11년 뒤인 1977년에야 컬러 TV를 만들어 냈다. 그 당시에 국내 최고의 전자공학 공돌이들이 머리를 짜내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컬러 TV가 대세가 된 뒤에도 휴대용 소형 텔레비전이나 아파트 현관 인터폰 같은 CCTV는 가격이나 기술 문제 때문인지 여전히 흑백이 많이 쓰이곤 했다.

한 점에서 평면 화면을 표현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으니 초창기의 텔레비전은 아주 그냥 동그란 구면이었다. 컬러화를 이루고 채널 다이얼을 버튼으로 바꾸고 리모콘도 추가하고.. 이 모든 것 이상으로 텔레비전 관련 기술자들이 당면한 최대 과제는 당연히 이 면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1990년대 중후반엔 완전평면 슈퍼플랫 브라운관 어쩌구 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크기도 30~40인치까지 커졌다. 한편, 컴퓨터 모니터는 큰 게 20몇 인치대.

하지만 공간 복잡도가 무려 O(n^3)에 달하는 크고 무거운 브라운관으로는 그 이상 대형화는 도저히 무리였다. 아울러 재래식 아날로그 TV 규격의 해상도만으로는 화질도 대형 화면에 적합하지 않았을 테고.
오늘날의 스마트폰 같은 초소형 컴퓨터가 출현 가능해진 데엔 단순히 집적도가 높은 고성능 CPU뿐만이 아니라 얇은 디스플레이 소자도 큰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거 발전을 예상을 못 했기 때문에 옛날에 21세기를 상상했던 공상 과학 매체를 보면, 사람들이 첨단 기술이랍시고 텔레비전 전화로 상대방 얼굴을 보면서 통화를 하는데, 화면은 둥~그런 브라운관 화면인... 지금으로서는 참 웃지 못할 장면이 남아 있는 것이다. ㅎㅎ

이제 전세계에서 브라운관 모니터의 생산 중단이 임박했다.
브라운관 모니터에 떠 있는 운영체제로 어울리는 물건은 Windows XP 정도가 마지막이지, 2000년대 중반인 Vista와 그 이후부터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플로피 디스크도 새로 만들어지는 PC에서는 이때쯤부터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 말이다.

이와 더불어 한때 한창 유행했던 컴퓨터 모니터의 '보안경', 그리고 전원을 켜면 화면이 서서히 fade in으로 화면이 나타나던 장면 따위도 과거의 아련한 추억이 돼 간다.
그리고 컴퓨터에서는 VGA D-sub 단자도 점점 쓸 일이 없어지는 중이다. 한때는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영상 신호를 디지털 대신 아날로그 방식으로 보냈지만 지금은 다시 DVI 같은 디지털 규격으로 회귀한 지 오래이다. LCD는 브라운관보다 근본적으로 더 디지털 친화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2. 테스트 패턴

옛날엔 그래픽 모드로 진입하는 도스용 프로그램들은 실행 전에 비디오 모드를 묻거나 "이 글자가 잘 보이면 F5를 누르세요" 요청을 하는 게 있었다.
그리고 옛날에 아날로그 영상물에서 이것과 비슷한 역할을 하던 물건은 바로 테스트 패턴이다. 현재 텔레비전이 신호를 잘 잡았고 색상을 옳게 표시하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나타내는 색깔띠들이다. 흑백 명암과 RGB 각 축의 극단에 해당하는 고채도 색상들 조합이 쭈욱 나열돼 있다. 이것들도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게 아니라 다 규격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왼쪽과 같은 단순한 색깔띠는 텔레비전보다는 비디오 테이프를 틀었을 때 맨 앞부분에서 잠깐 보였을 것이다. SMPTE Color bar (Society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Engineers)라고 불린다.

오른쪽의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색깔띠는 필립스 전자에서 만들었는지 PM5544라는 코드명이라고 불린다. 옛날에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정규 방송을 시작하기 15~20분쯤 전부터 '화면 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송출하곤 했다. 배경 위로는 현재 시각과 금일 방송 순서 같은 것도 떴다.
화면 조정 중일 때는 BGM이 흘러나오는 편이지만, 정규 방송이 끝난 뒤에는 그냥 무음이나 단순 싸인파 소리만 들어있기도 했다.

디지털 통신에 온갖 복잡한 규격과 프로토콜이 존재하고, 아날로그 비디오 테이프에도 VHS나 베타맥스 같은 상반된 규격이 있었듯이..
아날로그 영상 신호 송신 방식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크게 NTSC와 PAL이라는 방식이 있다. 우리나라는 NTSC를 쓰지만 북한은 우리와 다른 PAL을 사용하며, 이는 아마 의도적으로 일부러 다르게 정한 게 아닌가 싶다.

처음에 흑백 TV를 기준으로 신호 체계를 만들었다가 나중에 컬러 방식이 개발되었을 때는.. 기존의 흑백 TV는 여전히 자기가 인식하는 흑백 신호만 수신이 가능하게.. 즉 하위 호환성이 유지되게 흑백 TV가 사용하지 않는 주파수대에 컬러 신호가 교묘하게 추가되었다고 한다.
컬러 TV의 입장에서는 걍 RGB가 더 직관적이겠지만, 흑백 신호의 strict superset을 구성할 수 있는 HSL 방식으로 색을 표현하기도 하고 말이다. 어, 그러고 보니 JPG 압축 과정에도 색깔을 RGB에서 HSL로 바꾸는 게 있었지 싶은데?

뭐, 본인은 전자공학 쪽은 문외한에 가까우며 지금은 구닥다리 아날로그 TV 송신이 진작에 중단됐을 정도로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이런 쪽 이야기가 은근히 흥미롭게 들린다. 디지털 고화질 TV의 등장과 함께 화면의 종횡비가 와이드로 바뀌었다. 아울러 컴퓨터 모니터도 이 추세를 따랐는지 16:9 와이드가 대세가 된 지 오래이다.

3. 옛날 방송과 지금 방송의 차이

지금은 TV 뉴스에서 볼 일이 없어진 코너가 최소한 둘 있는데, 하나는 아침 7시 뉴스를 하기 전에 나오던 편인 "세계 뉴스"이고 다른 하나는 저녁에 나오는 편이던 "주식 시세"이다. 이유는 당연히 정보의 바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에서 굳이 그걸 선별해서 틀어 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날씨처럼 범국민적인 정보라면 모를까, 그런 건 그냥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찾는 게 더 빠르다.

온갖 기업들의 주식 시세와 함께 상하 ▲▼ 삼각형들이 뜨고 있을 때는 꽤 다양한 고퀄의 BGM들이 많이 흘러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밤 9시 뉴스를 하기 전에 흘러나오던 시보도 정말 드라마틱하게 변해 왔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옛날에는 파란 배경의 추레한 아날로그 시계 CG에다가 PC 스피커 스타일의 기계음 일색이었다.
당장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 방송사고 동영상을 찾아 보시기 바란다. 그 시절에 9시 시보가 어떠했는지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다가 시계 그림은 점점 휘황찬란한 보석 CG로 바뀌었고, 광고의 비중이 커졌으며 2000년대 이후부터는 그냥 아날로그 시계 그림과 긴 차임벨 음향 자체가 삭제되었다. 영상 컨텐츠의 90% 이상은 광고이고.. 딱 정각 3초 전에 시각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형태가 됐다. 이것이 시보 영상의 변천사이다.

4. 대기업에서 옛날에 개발한 소프트웨어

이제 좀 더 보편적인 옛날 이야기를 해 보자면..
옛날에는 금성과 삼성(!!)뿐만 아니라 대우와 현대도 자동차뿐만 아니라 '전자 제품'을 생산했고 심지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도 했다.
특히 금성사의 경우 '하나'라는 텍스트 모드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어서 한때 관공서 표준으로 쓰이기도 했고 '하나 스프레드시트'를 만든 적도 있다. 나중에 Windows용으로는 '윈워드'라는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었지만 그건 망한 듯하고.

전자 제품도 함께 만드는 대기업에서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팀에서는 요즘 뭘 만드는지 모르겠다. 쟤들은 일단은 그래도 하드웨어에 같이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지, 독립적인 패키지 프로그램이나 온라인 게임 같은 걸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분야는 이미 시장이 다 포화했으며, 대기업이라고 해서 기성 IT 특화 업체들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나마 삼성 전자의 훈민정음만이 좀 오래 간 정도이다.

5. 옛날의 경제 구도

끝으로, 우리나라의 옛날 상황에 대해서 단순히 못 살고 못 먹던 시대라는 막연한 편견 이상으로 진지하게 고려할 점이 하나 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가 지금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었다. 돈 되는 건 뭐든지 닥치고 수출하고, 그렇게 어렵게 번 외화를 아끼려고 국가적으로 완전 목숨을 걸고 있었다.

자동차 산업을 육성은 해야 하지만 국내에 석유 소비(=외화 유출)가 너무 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동차의 내수 보급을 어느 정도 통제를 해야 했다. 듣보잡 신생 자동차 브랜드이다 보니 외국으로 수출은 아주 싸게 하고 반대로 손해분을 비싼 내수 가격으로 때우는 전략은 우리 같은 서민에게야 불리하지만 그 시절에 국가적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전략이었다. 국제적으로 석유 파동이 벌어지니 저걸로도 모자라서 국가에서 자동차 산업 합리화라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해야 했으니,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도 인위적인 규제가 있는 셈이었다.

또한 전에도 말했지만 겨우 신혼여행이나 배낭여행 명목으로 외국 나가는 건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런 사유로는 자기 사비가 아무리 많다 해도 나라에서 여권을 만들어 주질 않았다. 양담배 추방하고 과소비 추방하고 국산품 애용하자는 캠페인을 잔뜩 벌였으며, 기업에서의 외제품 수입은 정말로 연구 개발에 도움이 되는 것만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기업들은 자동차나 전자 기기를 만들 때 국가에서 밀어붙인 "x년 안으로 국산화율 y% 이상 진입" 같은 할당량을 반드시 달성하며 연구 개발을 해야 했다. 하물며 다른 외제품도 아니고 외제차에다가는.. 당연히 세금 왕창 때렸다.

지금이야 우리가 그렇게 폐쇄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OECD와 WTO 회원까지 된 주제에 그래서는 안 된다. 기술· 경제 방면에서 외국과 대등한 경쟁력이 있다면야 다 개방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불가피한 시장 왜곡과 보호도 해야 했다.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외국에 나가고 외래 문물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나라가 유지되는 것은 정말 우리나라가 그만큼 잘살고 세계적인 경제력을 갖춘 덕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1/08 08:32 2015/01/0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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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체 연료와 액체 연료

우리 주변에서 연료를 태워 열 내지 에너지를 만드는 도구, 기계들을 생각해 보자.
하긴, 옛날에는 불을 최초로 피우는 것조차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집집마다 한번 만들어 놓은 불씨를 잘 간수해야 했으며, 옛날까지 갈 것도 없이 무인도 같은 오지· 험지에 홀로 내던져졌다면 불을 피우는 게 매우 중요한 생존 기술 중 하나로 변모한다. 성냥, 양초 같은 물건도 주류에서 밀려난 구시대 유물일지언정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연소나 폭발을 취급하는 물건들은 어떤 형태의 연료를 쓰는지에 따라 설계 방식이나 동작의 특성이 달라진다.
연료라는 건 크게 고체 아니면 액체로 나뉜다. 고체는 나무나 석탄, 혹은 다른 고체 폭약 같은 것이고, 액체는 잘 알다시피 석유나 액화 천연가스가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액체 연료를 다루는 기계적 메커니즘이 고체 연료보다 더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러나 액체 연료가 그만큼 연료를 아주 찔끔찔끔 균일하게 공급하면서 화력을 조절하기가 더 쉽다. 그리고 연소 후의 부산물도 액체 연료가 훨씬 더 깔끔하며 처리하기가 더 편하다.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연탄/화목 보일러나 난로는 불에 탈 수만 있다면 통나무건 종이 뭉치건 아무 덩어리나 집어넣어도 되니 기계 구조가 간단하고 당장 열을 만들어 내는 건 쉽다. 하지만 그 뒤부터는 여러 모로 불편한 점과 애로사항이 꽃핀다. 매캐한 연기와 냄새가 나며, 일단 불이 붙은 연료를 통제하기가 어렵다. 점화나 소화를 스위치 하나로 간편하게 할 수가 없다.

연탄은 크기와 모양이 규격화돼 있는 고체 연료라는 점은 그나마 낫지만, 여전히 점화와 소화가 불편하며 연료를 배달하기가 매우 번거롭다. 매번 연탄재를 처리하는 것도 큰일이고 말이다.
양초는 고체 연료인 것치고는 심지를 통해 연소가 균일하게 잘 일어나는 편이지만, 역시나 강약 조절을 할 수 있지는 않다.

옛날에 증기선이나 증기 기관차에는 보일러에다 석탄을 삽으로 퍼 넣는 화부가 탑승해야 했으며 즉각적인 동력 조절이 되지 않았다. 고체 연료 화통의 화력은 공기를 불어넣는 양 정도로나 조절 가능했다. 성경의 다니엘서에서 풀무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는 건 과연 기술적으로 어떻게 실현했을까? (단 3:19)

이것은 발사체인 고체 연료 로켓도 고스란히 갖는 한계이다. 한번 점화가 된 뒤에는 연료의 연소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동력 조절을 할 수 없으며, 가능하다 해도 그 과정은 몹시 어렵다.

이런 이유로 인해 요즘은 관광용 증기 기관차도 물을 끓여서 나아갈지언정, 물을 데우는 건 석탄이 아닌 석유로 한다.
그리고 로켓에는 액체 연료 로켓이 연구되었으며, 이 바닥의 선구자는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고다드이다. 우리말 표기로는 '더'와 '다'가 공존하면서 혼란스러운 이름인데...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도 움직이는 액체 로켓은 연료 자체뿐만이 아니라 산화제까지 액체여야 하기 때문에 고체 로켓보다 만들기가 더욱 어려웠다. 증발이나 부식 같은 문제 때문에, 산화제와 연료를 주입한 채로 로켓을 장시간 발사대에 놔 둘 수 없다는 점도 대단히 번거로운 점이다. 로켓의 발사가 연기된다거나 하면 그것들을 도로 빼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체 연료 발사체 기술 덕분에 인간이 우주로 나갈 수도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통제 가능한 발사체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되었다.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을 성공한 지 30년이 채 되지 않아 미국의 학계에서는 로켓의 이론적 근간이 연구되고 “달까지 가는 진지한 방법” 같은 게 논문으로 발표되고 있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때는 그랬는데 미국이 어쩌다가 스푸트니크 멘붕을 당할 정도로 잠시 주춤했는지?)

단, 고다드의 연구는 시대를 너무 앞서 있었으며, 그 당사자 역시 언플이나 사교력이 뛰어난 공돌이는 아니었던 관계로... 그의 연구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딱히 인정을 못 받았다. 1920년대에 뉴욕 타임스 신문은 고다드가 불가능한 목표를 두고 아무 쓰잘데기 없는 황당한 뻘짓을 한다고 막 조롱하고 디스하고 망신 주는 사설을 게재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고 고다드의 연구를 토대로 새턴 로켓이 발사되고 아폴로 우주선이 달까지 간 뒤에야 뉴욕 타임스는 자기네 옛날 사설을 취소하고 고인에게 사죄를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님의 연구 덕분에 후손들이 달에 진짜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짧았습니다.”라는 요지로.

이건 20세기의 우주 개발 역사에서 매우 유명한 일화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나 독재 정권에 아부하던 메이저 언론이 나중에 자기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죄한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격인데,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찾기 힘든 모습인 것 같다. =_=;;

이것저것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여러 분야를 막론하고 액체 연료는 고체 연료에 비해 점화· 소화와 화력 제어가 용이하고 연소 결과가 깨끗하다는 많은 장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친구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러 갈 때도 고체 연료(숯)를 쓰는 식당과 액체 연료(도시 가스)를 쓰는 식당의 구조적인 공통점과 차이점을 나눠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고기를 굽는 데는 '연기와 향'이라는 변수가 추가되기 때문에 굳이 경제적으로는 더 불편한 고체 연료가 선호되기도 한다. ^^;;;

Posted by 사무엘

2014/12/17 08:35 2014/12/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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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지질학자 클레어 패터슨 (1922-1995).
굉장히 유명한 업적을 둘 남긴 것치고는 대중적으로 굉장히 덜 알려진 사람이다. 단, 과학사 내지 과학과 사회 윤리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미 이름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그는,

(1) 방사성 원소 측정법을 이용해서 지구의 나이가 45.n억 년임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정확도로 규명하였다. 이 연도는 오늘날까지 중등학교 과학 시간에도 가르쳐지고 있으며,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보다 더 정확한 값은 나오지 않았다. 쉽게 말해 이 분야에 끝판왕 급의 업적을 남겼다.

(2) 그리고, 자동차 유연휘발유에 첨가되는 테트라에틸납 성분이 대기 중의 납 농도를 증가시켜 사람의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친다는 것을 규명하였으며, 전세계적으로 유연휘발유를 퇴출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young earth creationism을 주장하는 진영(지구의 나이가 6천 년..!)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연구를 하던 중에 지구와 인류를 구한 업적을 이뤘다는 게 참 특이하다.

조금이라도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되는 실험 결과가 자꾸 어긋나는 게 이상해서 조사를 해 보니..
“공기 중의 미세한 납 성분이 실험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 이거 아무래도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인 거 같다 → 이건 사람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순의 발견까지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의 행적은 유연휘발유를 제조· 판매하던 당대의 업계 종사자들로부터는 미움도 많이 받았다. 당연히 “저건 일반적인 빈도를 벗어나지 않는 산업재해일 뿐이며 딱히 유연휘발유가 해로워서 그런 건 아니다” 식으로 실드를 치고 치부를 은폐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국제 추세에 맞춰 1987년 7월부터 무연 휘발유가 첫 도입되었으며, 1993년 1월부터는 유연 휘발유의 유통이 전면 금지되었다. 1987년 7월이면 민주화 항쟁에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 도입 같은 굵직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그 시기에 무연 휘발유까지 등장한 거구나!

그래서 그 과도기에는 주유소에 유연 휘발유/무연 휘발유 구분이 따로 있었고, 새로 생산된 차들은 반드시 무연 휘발유만 넣어야 한다는 안내문 스티커가 붙곤 했다. 본인은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다시 패터슨 아저씨 이야기로 돌아오면,
지질학에서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6500만 년 전에 공룡이 멸종했다” 같은 식으로 맨날 'n년 전'이라는 말을 쓴다.
그때 '전'의 기준이 되는 지질학적 기준 시기는 “1950년 1월 1일”이라고 학계에서 정식으로 정했다. 방사선 원소 측정법이 정착하고 지구의 나이가 저런 식으로 규명된 때가 1950년대이기도 해서 말이다.

영어로는 before present를 줄여서 65 million years BP 이런 식으로 쓰는데, 이는 1950년으로부터 6500만 년 전이라는 뜻이다. 저 때가 컴퓨터의 유닉스 연대기의 기준인 1970년만큼이나 나름 학문적인 의미가 큰 해인 셈이다.

난 예전에도 글로 썼듯이 지구와 우주의 나이는 장구히 길고, 인류와 현존하는 생명체들의 내력만 6천여 년 남짓이라고 믿는다. 간극 하나만 설정하면 과학 얘기와 문자적인 6일 창조 성경 교리가 싹 깔끔하게 풀린다. 이건 어거지가 아니라 성경 자체가 교리적으로 그런 간극을 지지하고 있다. 6일 창조가 창조의 전부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 쪽으로든 성경 쪽으로든 젊은 우주/지구를 믿지 않는 진영에서는 창조 과학회를 굉장히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야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도 모르는 사이비 유사과학이라고 까고, 후자 진영은 성경 말씀을 어줍잖은 과학으로 풀어서 교만한 짓거리를 한다고 깐다.

본인은 내 견해와 다르다고 해서 창조 과학회를 필요 이상으로 싫어하거나 매도하지는 않는다. 6천여 년 전에 6일 만에 모든 게 끝났다는 식으로 믿으면 뒤끝 없고 뭔가 기독교스럽고 깔끔해 보이긴 한다. 아담이 마치 성인 형태로 곧바로 창조되었듯이, 지구와 우주도 겉보기로만 오래 된 듯이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합리화를 해 버리면 뭐 답이 없다. 더 논쟁을 할 수가 없다.

단지 본인은 지구와 우주는 아담과 같은 부류는 아니라고 믿는다. 수많은 화석과 지층이 노아의 홍수만으로는 도저히 생겨날 수 없고, 지구 지형과 각종 천체가 수억~수십억 년이라는 장구한 기간 동안 생성되고 소멸된 증거가 명백히 존재하는데 하나님이 다른 것도 아니고 그걸 왜 훼이크를 칠 필요가 있는 걸까?

그런 직감에 근거하여 본인은 과학과 신앙의 관점에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걸 믿는다. 가령, 오래 전에 멸종하여 화석이 된 고생대 실러캔스는 옛 세상에서 있었던 놈이고, 오늘날 발견된 실러캔스들은 6일 창조 때 이미 있던 그 종류대로(after his kind) 다시 만들어진 놈이라는 식이다. 단지 인류는 아담이 최초이며, 소위 유인원들은 아예 원숭이이거나 아니면 실제로는 인간도 원숭이도 아닌 다른 생물인 것이다.

끝으로 여담이지만, 클레어 패터슨은 이름만 보고는 여자로 오인받기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여배우 클레어 데인즈의 철자하고는 글자 하나 차이이다. Clair / Claire 옛날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이 문득 떠오르는구나!

Posted by 사무엘

2014/09/22 19:37 2014/09/2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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