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 보존 학회와 한글 킹 제임스 성경

1994년, 말씀 보존 학회(이하 말보회)라는 단체가 그 이름도 유명한 “한글 킹 제임스 성경”이라는 역본을 내놓으면서, 한반도에 한국어라는 언어와 한글이라는 문자를 매개로 명목상 '없음'이 없고 변개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사실 그 전부터도 '새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신약이 먼저 나와 있었으나, 방대한 분량의 신구약 성경전서가 최초로 완역된 게 저 때이다.

한킹이 처음 나왔을 때는 한국 교회가 말보회에 대해 그렇게까지 적대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KJV라고 하면 그래도 신학깨나 했다는 사람들한테서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인지도가 있는 성경이었고, 어차피 기존 개역 성경도 허접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모 대형 교회에서는 한킹을 정식으로 받아들여 쓸 의향을 밝히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말보회는 이 좋은 기회를 얼마 못 가 스스로 차 버렸다. “개역 성경은 사탄 마귀의 성경이기 때문에 그걸 읽어서는 구원도 못 받는다 / 우리 성경 침례 교회 이전에 대한민국엔 진정한 신약 교회라는 게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식으로 심한 병크를 저질렀고, 대표의 싸이코 같은 모습이 부각되면서 한국 교회는 마음을 완전히 닫아 버렸다.

배교의 결정판 NIV
스스로 성경이기를 포기한 현대어 성경
오리겐도 울고 갈 변개 실력
현대어 성경으로 한국 교회를 뜨겁게 할 유일한 방법은 땔감으로 쓰는 것밖에 없다 (레알 불쏘시개 인증)


이런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은 당시 말보회가 광고로 퍼뜨리던 문구였다.
왠지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 짤방이 생각난다... “개역성경은 성경의 쓰레기이고 NIV는 성경이라 불릴 수 없는 저질 족속이며 공동번역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저질 성경이다. 그러나 ...” ㅋㅋㅋ

비록 말보회의 주장 중에 일리가 있는 말도 있었고 한국 기성 교계가 각종 비성경적인 관행들을 답습하고 있는 게 한둘이 아닌 건 사실이지만, 말을 저 따위로 해서는 진심이 어떻게 전달되겠나. 말보회는 1998년에는 모 교계 총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이단 판정까지 받음으로써 확인 사살을 당했다. 말씀 보존 학회가 아니라 “말썽 보존 학회”로 찍혔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변개되지 않은 올바른 성경을 통한 영적 부흥 따위는 아주 안드로메다로 가 버리고, '킹 제임스'의 '킹' 자만 꺼내도 “거기 이단 아냐?”란 반응이 나오는 영적 무지가 판을 치는 암흑기로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변개된 성경이 삭제한 게 아니라 “KJV의 구절이 후대에 근거 없이 추가된 것이다”는 식으로, 변개된 역본 및 본문을 옹호하는 신학자들의 잘못된 궤변이 교계에서 더욱 힘이 실리는 계기가 마련되어 버렸다.

2. 킹 제임스 흠정역

그러던 1990년대 중· 후반엔, 말보회 내부에서도 성경의 편집 방침에 대한 대립이 심해졌고 대표 되시는 분의 막무가내 식 독단과 횡포를 견디지 못해 내부 인원이 일부 이탈했다. 이런 식으로 말보회의 밖에 있는 국내 킹 제임스 맨들이 여럿 이를 악물고 의기투합한 끝에 자기네만의 성경 역본을 2000년 여름에 처음으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킹 제임스 흠정역”이다. KJV는 왕이 공인한 성경이라 하여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면 '흠정역'이 되는데, 그 단어를 고유명사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가 정보 올림피아드 출품용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이 완성된 것과 매우 비슷한 건 우연이다. ㄲㄲ

말보회 측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좋아할 리가 없었으니 당연히 크게 반발했다. 흠정역은 한킹을 베껴서 쉽게 만들어진 거라고 엄청 중상모략과 악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둘을 펴서 대조해 보면 이런 모함은 설득력을 잃는다. 한킹은 몇몇 센세이셔널한 구절을 제외하면 흠정역보다 품질이 훨씬 더 열악했으며, KJV가 아니라 실은 공인 본문(TR)을 번역한 이역도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킹을 베끼는 식으로는 흠정역 같은 성경이 결코 나올 수가 없음이 자명하다.

시대를 풍미하면서 좋든 싫든 대한민국 땅에 KJV를 대대적으로 이슈화했던 말보회는 21세기 이래로 어찌 지내고 있는지 난 잘 알지 못한다. 과거의 너무 지나쳤던 병크에 대해서 말보회 내부에서도 “심했다, 그땐 좀 유감이다” 같은 자정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고 난 들었다.

이제 이 글의 초점은 한킹에서 흠정역으로 바뀐다. 흠정역의 주 번역자는 잘 알다시피 정 동수 교수(인하대 기계공학과..;)인데.. 자기 입으로 민망하게 떠벌리지를 않을 뿐이지, 한국에 바른 성경을 보급하고 바른 교회를 세우려는 열망과 부담감을 주체하지 못해 몸서리쳤던 분이다. 그래서 생업을 제외하고 40대를 전후한 인생을 죄다 그 일에 바쳤다.

흠정역 초판이 완성되었을 즈음, 정 교수는 <그리스도 예수안에>라는 기독교 자료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성경 이슈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 사이트는 게시판이 없고 딱히 양방향 의사소통 기능은 없었다. 난 대전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이 시기에 그 사이트를 통해서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편, 그분은 안식년을 이용해 미국으로 건너가서 KJV를 쓰는 펜사콜라 크리스천 대학에서 신학 석사를 받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후 곧장 귀국하여 몸소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이때의 목회는 실패하고 교회가 와해되고 말았다. 2000년대 중반이던 이 시기가 정 목사의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시기였다고 그분이 스스로 증언하며, 지금의 설교 때에도 스스로 언급한다. 뭐 비윤리적인 일이나 스캔들 때문인 건 절대 아니고, 약한 성도들을 시험에 들지 않게 세세하게 어루만진다거나 하는 심리적인 일에 서툴렀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건 성경 지식만으로 되는 게 아니며, 누가 목회를 하더라도 몹시 어려운 일이다.

3. 사랑 침례 교회

말보회가 흐려 놓는 바람에 한번 부정적으로 굳어진 KJV 이미지의 여파는 꽤 컸다. 그러나 말보회의 밖에서 바른 성경을 알리려는 분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수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그 상처는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다. 흠정역 성경을 기존 기독교 매체에다 광고하고, 또 기성 기독교 출판사를 통해 시판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KJV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고 이것도 신뢰할 수 있는 어엿한 대체 한글 성경 역본임을 알리게 되었다.

2008년경, 정 동수 목사는 개인적으로 다시 인도하던 성경 공부 모임을 기반으로 지금의 사랑 침례 교회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Keep Bible이라는 후속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기존 <그리스도 예수안에>를 흡수했다. Keep Bible은 예전 사이트와는 달리 커뮤니티 기능이 크게 발달해 있으며, 각 지역 교회 홈페이지별로 찢어져 있던 커뮤니티 기능을 죄다 흡수하고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KJV 신자들의 교제 공간 겸 자료 창고가 되었다. 현재 Keep Bible에 버금가는 다른 양대 산맥 커뮤니티는 청지기 카페 정도가 고작이다.

이를 통해 흠정역 성경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고, 사랑 침례 교회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성장했다. 2012년에는 예전보다 꽤 더 큰 건물을 구해서 인천 남부로--서울에서 가기는 더 힘들어짐-- 이사를 갔으나, 거기도 이내 꽉 차서 주일 오전 예배 때 3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온다고 한다.

첫 개척했던 교회가 실패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상전벽해의 성공이다. 온라인 상으로 정 동수 목사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도 국내외에 굉장히 많으며 설교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다.

잘 생각해 보면, 지금은 시기적으로도 예전에 비해 KJV 거부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고, 기존 교계 자체도 개역 성경을 개역개정으로 바꾸려는 분위기인데 이 참에 성경 이슈에 눈을 뜬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른 성경을 기반으로 성경대로 건전하고 바르게 행하는 교회에 대한 영적 갈급함을 느끼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고무적인 현상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정 동수 목사는 전임 사역자가 아니라는 것.
대학 교수와 목사를 겸임하고 있는 엄친아라서, 머리는 듀얼코어일 수 있어도 몸이 둘이지는 않다.
주중에 수요 기도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날짜를 불금 시간대인 금요일 저녁으로 대신 잡고, 가끔은 학회 때문에 미국 출장도 가신다. 그런 상태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많은 성도들을 다 감당할 수는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정 목사는 자기는 애초에 전임도 아니니 아예 사례비를 받지 않고 목회를 했다. 그 대신 부목사를 아예 자기 사비로 사례비를 주면서 초빙하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 사랑 침례 교회는 덩치에 비해 사역자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었다.

4. 김 문수 형제님

그런 와중에.. 혜성처럼 나타난 분이 바로 김 문수 형제님이었다.
2009년, Keep Bible 사이트가 개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이분은 정 목사를 빼닮은 말투로 성경의 어려운 내용들을 풀이하고 흠정역을 적극 옹호하는 글들을 시리즈로 올려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원군이 등장한 셈이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사랑 침례 교회에서는 그분을 초청도 한번 했다.

그랬는데 알고 보니, 이분은 나하고도 더 옛날에 PC 통신 하이텔에서 종종 마주친 적이 있는 분이었다.
그때는 난 겨우 중학생-고등학생이었고 저분은 아마 서울대 박사 과정이 꺾였거나 이제 막 박사를 마치신 상황. 베이직 동호회 같은 프로그래밍 동호회에서 마주쳤었기 때문에 난 그분을 컴공 전공자 정도로 생각했다. 물론 컴퓨터 선교회(kcm) 같은 기독교 동호회에서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이 독실한 크리스천인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PC 통신 시절부터도 그분은 쓰는 글의 스타일이 굉장히 자상하고 포근하고 뭔가 권위가 있어 보였고, 박학다식함이 느껴졌었다. 질문이나 잡담을 거의 안 올리고, 올리는 글은 정보나 답변밖에 없었다. 아, 그분은 1999년에 본인이 Intel ISEF에 국내 최초로 출전하게 됐을 때, 하이텔 베이직 동호회에다 해당 신문 기사 본문을 올리면서 내 축하를 해 주시기도 했다. 우와..!

그 뒤 PC 통신이 몰락하면서 그분과의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어졌고 그분에 대한 기억은 내 머리 한쪽 구석에만 남아 있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그분을 킹 제임스 교회에서 정 동수 목사와 얽혀서 다시 상봉하게 될 줄이야. 세상에!

직접 만나고 보니 이분은 1960년대생으로, 정 목사하고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분이었다. 연세가 생각보다 많으신 셈. 그리고 컴공 전공이 아니라 언론정보학 쪽의 문과 출신이었다. 헐, 그런데도 프로그래밍에도 그 정도로 관심을 보이셨나? 전공의 특성상 연설(스피치), 정보 커뮤니케이션 쪽의 전문가였으니 이건 뭐 설교자에게 이보더 더 적절할 수 없는 전공인 듯하다.
이것저것 엉뚱한 짓을 하는 걸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그분은 첫인상만 봐도 책을 무섭게 파는 걸 즐기는 학구파, 학자 기질이 얼굴에 딱 써져 있었다.

만남이 있은 후, 이분은 정 동수 목사로부터 신학 공부 제안을 받으신 듯했고, 처자식까지 있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락하여 유학길에 올랐다. 정 동수 목사가 10여 년 전에 거쳤던 동일한 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공부를 하고, 각종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그 동안 10대 초반 나이인 두 아들에게 영어를 마스터시킨 건 덤. 2010년 가을부터 2012년 가을까지, 내가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했던 기간과 동일한 기간 동안 말이다.

5. 사랑 침례 교회 부목사로 부임

이런 과정을 거친 후, 김 문수 형제님은 귀국해서는 딴 데 갈 필요도 없이 사랑 침례 교회의 부목사로 정식 부임했다. 이미 Keep Bible에 올리는 글들을 통해 사랑 교회 성도들과도 친숙한 상태였으니, 일꾼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그 교회를 위해 완전히 준비된 최적의 인물이었다. 그래서 현재 그분은 대학 강사와 목사 직분을 겸임하고 계신다.
다음은 사랑 침례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김 목사의 가족 사진이다.

사실 내가 김 문수 목사님하고 과거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은 내가 정 동수 목사님하고 개인적으로 가까워지는 데에도 꽤-_- 기여를 했다. 친구의 친구 같은 명목으로? =_=;;; 난 사랑 침례 교회에 다니지 않으며, 그 교회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서울 소재의 다른 KJV 교회를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서울 진리 침례 교회).

김 문수 목사님이 유학 가 계시던 딱 그 기간 동안 마침 흠정역 제 5판(400주년 기념판)의 교열과 간행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나도 여차여차 하던 끝에 이것 저것 작업을 돕는 일에 연루되곤 했다. 김 목사님과의 이런 특별한 만남이나 계기가 없었으면, 다른 목사님들과 친분도 없고 나이도 한참 어린 본인이 그런 일에 개입될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졌을 것이다. 당사자 자신의 역량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이어 준 것만으로도 김 문수 목사는 정 동수 목사의 사역에 매우 큰 유익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킹 제임스 성경과 성경대로 행하는 교회들이 대한민국 땅에서 부흥하면 좋겠다. 그리고 비록 각자 섬기는 교회는 다르지만 믿음이 같은 지체들끼리 언제 또 만나서 교제할 날도 오길..

Posted by 사무엘

2013/05/16 08:21 2013/05/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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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의 메리

1539년에 크고 아름다운 그레이트 성경까지 나온 뒤에야 영국은 확실히 개신교 국가로 탈바꿈하는가 싶었으나, 헨리 8세가 죽은 후 개신교 계열의 에드워드 6세(병으로 요절)와 그 후의 9일천하 레이디 제인 그레이(지못미..;;)가 제대로 권력 승계를 못 하면서 메리 1세가 역사를 다시 뒤로 되돌려 놓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비운의 9일천하 여왕인 제인 그레이는 삶이 정말 기구했다. 왕위에 앉을 마음이 없었고 사실은 “너 여왕 됐어”란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 졸도를 할 정도였던 여인도 아니고 소녀였다.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등쌀에 떠밀려 정략 결혼을 하고, 조국의 개신교 노선을 이어 나갈 여왕 자리에까지 여차여차 올랐지만 백성들의 의식은 거기에 미치지 못했던 모양.

결국 골수 가톨릭 신자인 메리 1세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메리 1세는 제인 당사자가 권력욕이 있는 인물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제인의 부모가 정치적으로 너무 위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살려 두기도 곤란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제인더러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살려 주겠다는 카드를 제안하였으나, 그녀는 이를 거절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결국 20살도 못 된 고등학생 나이에 처형 당했다. 그땐 단두대 같은 것도 없었고, 사형 방식은 그냥 도끼로 목을 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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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그레이는 라틴· 히브리 등 5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똑똑했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외모도 아주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냥 귀족하고만 결혼해서 학자나 교사로 평범하게 살았을 사람인데 저렇게 정치· 종교적 희생양으로 전락하여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다만 겨우 고등학생 나이 때도 자기 신앙을 목숨과도 바꾸지 않았을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크리스천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최후의 순간에 시편 51편을 외웠으며, 집행을 앞두고 눈이 가려진 뒤엔 “어, 형틀이 어디 있지?” 하면서 당황하며 자신이 목을 내밀 곳을 손을 더듬어 찾았다고 한다. 이 장면은 주변 사람들의 애처로움을 더욱 자아냈으며, 이것이 그림으로 남아 전해진다.

이런 사연을 거쳐 왕위에 오른 메리 1세는 잘 알다시피 피의 메리(Bloody Mary)라고 불릴 정도로 성공회를 포함해 개신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선왕이 구축해 놓은 영국 내의 종교 개혁 인프라를 모조리 망가뜨렸다. 그래서인지 메리 1세는 초상화를 봐도 좀 표독스러운 모습의 못생긴 여자로 그려져 있고, 특히 이 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에서는 네로에 필적하는 싸이코 폭군으로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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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화형 당한 크리스천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0여 명이라고 전해지는데, 이 숫자만 보면 그래도 1000단위도 아니고 생각보다는 적은 규모인 것 같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공산당 숙청 수준은 아닌 듯. 하지만 메리 여왕이 사람만 죽인 게 아니라 성경까지 죄다 불태우라고 지시했다는 것에 주목하는 세속 역사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종교 문제를 빼면 메리는 사회· 정치적으로는 그렇게 악한 군주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그 분야에까지 막장이었으면 진작에 짤렸겠지;; 또한 메리 역시 여왕에 오르기까지 개인사나 가정사는 불운한 편이었으며, 왕위에 오른 후에도 지병으로 인해 자녀 한 명 못 낳고 중년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영국에서 갑자기 개신교 박해가 시작되자, 영국에 있던 종교 개혁 성향의 학자들은 죄다 외국으로 피신했다. 이들은 스위스에서 피신해 있는 동안 지금까지 구축된 원어 자료를 집대성하여 더욱 좋은 성경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이 제네바 성경이다. 예정론과 개신교 교황이라는 오명 때문에 종교 개혁자들 중에서는 비교적 좋지 않은 평판을 갖고 있는 존 칼빈이 그래도 이때는 영국의 종교 개혁자들을 잘 보호해 준 공로를 세웠다.

제네바 성경은 처음으로 66권 전서를 모두 원어에서 번역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장· 절 구분이 처음으로 생겼다. 그리고 무슨 스터디 성경처럼 온갖 난외주가 첨가되어 성경의 각 구절마다 편찬자들이 생각하는 해설과 강해가 성경 본문의 양보다도 많이 들어갔다.

4. 킹 제임스 성경 -- 종교 개혁 성경의 종결자

메리에 이어 엘리자베스 1세 시대가 되면서 영국은 다시 개신교 노선으로 돌아갔다. 이 시절에 영국 내부의 종교 대립은 가히 오늘날 우리나라의 좌우 이념 대립에 맞먹는 수준이었으며, 반가톨릭 진영에서는 진짜 반공 교육 수준으로 교황을 험담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아니라 “나는 교황이 싫어요” 급이었으며, 교황이 성경에서 예언된 적그리스도 바로 그놈이라고 대놓고 가르쳤다.

예전에 헨리 8세에 이어 왕위를 잠시 이었던 에드워드 6세 왕은 어릴 때부터 궁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겨우 초등학생 나이인 11살 때 “교황은 레알 마귀 자식이며, 나쁜 놈이요 적그리스도요 가증스러운 독재자 천하의 개쌍놈이라고 썼을 정도니까.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이 승복 어린이 수준이지 않은가? “교황을 죽입시다 교황은 나의 원수”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은 정치적으로도 가톨릭과 앙금이 생길 대로 생긴 게 사실이다. 또, 과거의 역대 교황들이 자신을 예수님 급으로 신성시하면서 “교황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같은 안하무인 개드립을 치는 것을 보면, 어차피 그들은 북한 김 일성· 김 정일이 하는 짓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긴 했다.

제네바 성경은 재야(?) 종교 개혁자들이 사용해 온 좋은 성경이긴 했으나 외국에서 자기네끼리 제작된 사역(私譯)이었으며, 엘리자베스 시절엔 국교회 내부에서 또 그레이트 성경의 개정판 격인 비숍 성경이라는 걸 만들어 썼다. 가톨릭-개신교뿐만이 아니라 같은 영국의 개신교 노선 내부에서도 성공회와 청교도 사이의 갈등이 깊어진 게 이 시기이다. 가톨릭으로부터의 박해가 없어진 뒤엔 영국 교회가 또 대립과 반목으로 인해 분열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이후, 후임인 제임스 1세 왕은 청교도와 성공회를 중재하는 차원에서, 이제 다시는 성경을 또 만들 필요가 없게끔 완벽한 성경을 만들기로 승인을 내려 준다. 그래서 킹 제임스 성경이 드디어 1611년에 나왔다. 장과 절 구분, 100% 원어 번역, 청교도와 성공회 모두 OK, 국내 인쇄 등 예전 성경들이 차츰차츰 확보한 좋은 속성을 모조리 물려받았다.

이 책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으며, 킹 제임스 이후 영국에서는 먼 훗날, 1881년에 부패한 웨스트코트· 호르트 본문에 기반한 RSV가 나오기 전까지는 또 새로운 성경이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역본이 나올 필요가 이제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성공회와 청교도 사이의 대립 구도로 인해, KJV가 번역될 때는 성경 번역 역사상 전무후무한 철저한 검증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며, 이것 덕분에 KJV는 유례가 없는 고품질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위기가 기회로 승화된 셈이다.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종교 개혁을 거꾸러뜨릴 목적으로, 바티칸의 일종의 비밀 결사대인 예수회라는 무지막지한 비밀 조직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KJV에 앞서 듀에이 레임스라는 판타지 짝퉁 성경을 만든 바 있으며, 엘리자베스 다음으로 영국에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왕이 즉위하자 용병을 고용하여 화약 폭발로 제임스 1세 왕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음모는 기적적으로 사전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다.

세속 역사가들은 인류가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 휴머니즘을 추구하면서 교황의 권위가 약화되고 르네상스 시대가 찾아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본인의 시각에서는 성경이 널리 보급되고 복음이 전파되면서 교황의 권위가 약화되고 세상이 암흑에서 빛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 교황이 역사적으로 인류의 발전을 가로막고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는 것에는 본인 역시 세속 역사가의 시각과 100% 일치한다만, 그것이 기독교라고 싸잡아 분류되는 것에는 본인은 동의할 수 없다.

유럽 국가들 중 영국만이 종교사가 저렇게 특이한지, 왜 영국만 국가 교회가 존재하며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어 왔는지? 왜 영어 성경만 여러 계보가 존재해 왔는지? 더 나아가 하필 킹 제임스 성경이 세계에 퍼져 나간 최종 권위 성경이 되었는지에 대해 KJV 신자라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도 역사를 잘은 모르지만 내 신앙의 정체성과 뿌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내력은 공부해 두려 한다.

오늘날 인도에 불교가 없으며 예루살렘에 기독교가 없는 것처럼, 영국도 이제 성공회의 노선은 천주교 쪽으로 다시 거의 기울었고 사람들은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잘 모른다. 발간 400주년을 맞이한 작년에 반짝 조명 정도나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야만인 바이킹들이나 뛰놀던 섬나라 영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이 되었으며,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이 전반적으로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식민지 개척을 할 정도로 강대국이 된 것에 성경과 복음이 기여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03/05 08:28 2012/03/0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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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의 중세 암흑기

천 년이라는 시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장구한 시간이다. 성경에는 앞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공의로 1000년 동안 다스릴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한편, 한국사에서는 신라가 AD 900년대까지 거의 1000년 가까이 존속하여, 도읍인 경주 역시 ‘천년고도’(千年古都)라고 불린다. 본인이 경주 출신이다만, 그 작은 도시가 천년고도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교회사가 시작되었으나 진리의 빛이 꺼졌던 중세 암흑기가 거의 1000년에 가까이 계속되었다고 여겨진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나중에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신대륙이 발견되고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유럽이 본격적으로 동양을 과학 기술로 압도하기 그 전에! 그 사이 기간에 대해서 나만 아무 정보가 없는 걸까?

그 사이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이라고는 진짜 십자군 전쟁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난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과 잔다르크는 1400년대 사건이니, 중세 중에서는 그나마 나중인 편이고.

그 기간 동안 어느 샌가 교황이 유럽을 모조리 장악했으며 성경은 금서가 되었고 종교 재판과 마녀 사냥이 횡행했다. 어떻게 해서 교황이 저런 국제적인 종교 괴물로 등극할 수 있었는지 그 메커니즘을 잘 모르겠다. 교회사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라도 여기에 대한 지식이 보충되어야 할 것 같다. (아 하긴, 우리나라만 해도 이단 교주들이 얼마나 돈 잘 버는지를 생각해 보면, 교황이 종교 장사로 큰 대박을 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은 했겠다.)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유레카 학습 만화 세계 역사 시리즈를 다시 펼쳐 보았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알고 있는 게 잘못된 게 아니었다. 제6권에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부터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나오는데, 제8권은 곧바로 메디치 가문이 어떻고 미켈란젤로, 르네상스, 콜럼버스, 루터 따위가 나온다. 시간 차이가 장난이 아닌데 중간에 그야말로 엄청난 skip을 한 것이다. (제7권은 칭기즈 칸과 오스만 튀르크 제국 같은 아시아 편이고 유럽 얘기가 아님.)

더 정확히는 6권의 뒷부분에 ‘중세 유럽’이 특집 형태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짚고 넘어가 있었다. 세심하게 여러 에피소드를 편성하고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넣은 게 아니라, 글과 벽화 소개 위주로 백화사전식으로 “그냥 이런 게 있었다. 끗”이었던 것이다. 중세는 정말 긴 기간이었는데도 이때의 유럽 역사는 이렇다 할 위인이나 큰 변화가 그다지 없었고 사료도 부족하고... 세속 역사가들로부터도 가히 흑역사로 취급받는다는 걸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판타지 게임이나 영화들의 주된 배경이 되기도 하고.. ㄲㄲ

이 글에서는 유럽이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근대로 나아가는 시기에 있었던 일을 영국의 교회사 위주로 요약해 보겠다.
중세에 교황의 권위를 거부하고 성경을 읽고 침례를 행하던 크리스천들은 알비겐시스, 왈덴시스처럼 지역이나 모임 리더의 이름을 딴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며 숨어 지내던 소수의 무리들이었다. 루터가 이신칭의를 주장하기 전부터 이 사람들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구원’ 정도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고려· 조선시대 사람들은 그럼 아무 기회도 없이 다 지옥 갔냐”라고 기독교에 트집을 잡는 분들이 많은 줄로 안다. 허나 내가 보기에는, 중세엔 서양도 복음에 대한 접근성이 동양하고 별 차이 없었을 것 같다. 그쪽에서는 어차피 교황이 성경을 다 빼앗아 불태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짓 교리로 지옥으로 보내 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동양엔 왈덴시스 같은 집단이 없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종교 재판소도 없지 않았는가? -_-;;; 피장파장이다.

도미니크 구즈만(천주교에서 성 도미니크라고 부르는 그 사람)이라는 수도승이 그런 크리스천들과 교리 논쟁(오늘날로 치면, 종교갤에서의 키배)을 종종 벌였으나, 그들을 도무지 이길 수 없었다. 가톨릭은 교리도 완전히 잘못됐을 뿐만 아니라 그 기원부터가 로마 제국 시절에 세상 권력과 결탁하여 순교자들의 피를 부르며 시작되었다고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말로 곱게 회유가 안 되는 반동분자들을 적당히 꼬투리 씌워 조지기 위해 도미니크 수도회가 만들어 낸 게 종교 재판소의 원조이다. 서기 1223년, 교황 그레고리 9세에 의해 드디어 정식 공표된 종교 재판은 마녀도 아니고, 이슬람 같은 완전히 다른 이교도도 아니라 전적으로 크리스천들을 죽이고 그들 재산을 빼앗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나머지 목적은 2순위, 3순위일 뿐이다.

2. 헨리 8세 이후 영국의 성경 번역의 역사

그러다가 존 위클리프라는 영국 사람이 처음으로 14세기에 처음으로 영어 성경이라는 걸 만들었다. 열악한 당대 상황 때문에 비록 본문이 부패한 천주교 라틴 벌게이트 기반이었지만, 영어 철자법도 아직 정립해 있지 않던 시절에 원어가 아닌 영어 성경이 나온 것만 해도 어디냐. 그 위상이 가히 영국의 개역성경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구한말에 나온 한글 개역성경도 부패한 본문 기반 + 맞춤법 비정립 시기! 1881년 RSV 할 때의 그 개역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위클리프는 성경을 번역한 덕분에 천주교로부터 극심한 미움을 받았으며, 나중에 죽고 나서 40년 가까이 지나서야 무덤에서 시신이 다시 꺼내어져 목이 잘렸다.;;; 쉽게 말해서 오늘날 국어에서 욕설로 쓰이는 육시(戮屍)를 실제로 당했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영국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겪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오래 된 영국 왕으로 헨리 8세 아니면 기껏해야 7세 정도까지만 기억을 할 것이다. 이 헨리 8세는 원래는 당시 유럽의 여느 군주들이 그랬듯이 막강한 교황의 권세 앞에서 깨갱 하고 있었다. 친가톨릭이었고 딱히 소신 있는 종교 개혁자 성향도 아니었다.

그랬는데 부인을 6명이나 둔 호색한이었던 그는 치정 문제로 인해, 더 정확히는 ‘아라곤의 캐서린’이라고 불리는 왕비와의 이혼을 교황의 승인 없이 추진하려다 보니 교황과 결별· 단절을 선언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수장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바티칸은 이 소식에 당연히 발칵 뒤집혔으며, 헨리 8세에게 험담과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천주교는 이 사람을 루터만큼이나 몸서리치게 미워하며 나쁘게 말한다. 비록 헨리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똘끼를 선한 방향으로 이끄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영국이 천주교의 손아귀에서 정치적으로 벗어날 징조가 보이던 15~16세기엔 천주교에는 악재, 기독교에는 호재가 연달아 터졌다. 에라스무스라는 학자가 바른 성경 계보인 공인 본문을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하였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에는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멸망이라는 당대 정세도 기여를 했다.

이때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시작으로 종교 개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공인 본문을 기반으로 신약 성경을 최초로 독일어로 번역했다. 마침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 인쇄술로 책을 값싸게 많이 찍어 보급할 수 있게 된 것도 지금으로 치면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에 필적하는 정보화 혁명이었다.

그리고 영국에는 윌리엄 틴데일이라는 참으로 위대한 믿음의 선배가 등장하여 그 독일어 성경을 다시 영어로 번역한 영어 성경을 만들었다(신약+모세오경+알파. 아직 전서를 만들지는 못함). 바른 원문 계보에서 번역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다.

틴데일은 “누구나 성경을 휴대하고 읽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 소 몰고 밭 가는 촌뜨기 아이라도 교황보다 성경을 많이 알게 만들어 놓겠다”라는 도발적인 공언까지 했는데, 이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발상이었고, 그런 열성 때문에 그는 결국은 나중에 순교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교수형과 화형을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에 당하면서 죽었으며, 죽기 전에 “주여, 우리나라 왕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라고 크게 외쳤다. 아직 영국은 친가톨릭과 친개신교 노선이 오락가락하는 중이었고, 영국의 고위 관료나 성직자 중에는 친가톨릭 성향에 틴데일을 미워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헨리 8세 왕이 틴데일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틴데일의 기도는 그가 죽은 지 6개월 남짓한 시간 만에 응답되어, 헨리 8세는 틴데일의 친구인 마일스 커버데일이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국 성공회가 공식 사용할 영어 성경을 만들게 했다. 커버데일은 사역(私譯)이던 틴데일의 번역물을 십분 활용하여 1535년, 커버데일 성경을 만들었다. 왕이 승인하고(公譯) 성경 66권이 모두 번역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 바로 이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존 로저스라는 사람이 매튜라는 가명을 써서 매튜 성경을 내었다. 이것은 잉글랜드라는 자국내에서 인쇄된 최초의 성경이라 한다. 틴데일과 커버데일 성경은 모두 영어 성경이지만, 각각 독일과 스위스에서 인쇄된 후 영국으로 밀반입되었기 때문이라고. 국가가 떳떳하게 대놓고 성경을 찍을 정도로 개신교 세력이 충분히 크지 못했던 걸로 보인다.

(下에서 계속)

Posted by 사무엘

2012/03/03 08:24 2012/03/0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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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날개셋> 한글 입력기 6.2가 공개된 때와 아주 비슷한 타이밍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에서는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KJV 출간 400주년 기념판’을 내놓았다. 버전으로 치면 5판이다. 4판이 나온 지 3년 만의 일이다.

2~4판 사이에서도(특히 3판에서) 한국어 문장에 revision과 breaking change가 적지 않았지만, 2011년은 아주 특별한 해이지 않던가. 영국에서 KJV 출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미국은 의회가 아예 KJV가 미국에 남긴 공적을 기리는 성명서를 냈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엄청난 공을 들여서 번역을 다시 가다듬었다. 전체적으로 예전보다 좀 더 영어 직역에 가까워졌다.

성경이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도 아닌데, 본문을 자꾸 패치한다고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모두 시간과 돈이 들고, 번거롭고 귀찮고 골치아프다. 성경은 모름지기 권위가 담긴 텍스트여야 하는데 명분이야 어떻든 자꾸 바뀌어 버리면, 그럼 예전 판은 무슨 신세가 되는지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요즘 컴퓨터 프로그램이 보안 업데이트를 귀찮더라도 자꾸 해 줘야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걸 왜 꼭 해야 하며,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프로그램 개발자는 너무 자세히 알려 줄 수 없다. (당연히, 모방범죄 같은 안 좋은 파급효과 때문)

성경 번역자도 이와 비슷한 처지인지라, 성도들에게서 안 좋은 소리와 심지어 오해까지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명감 때문에 이런 개정을 하는 것이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 법인까지 만들면서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고 이를 교계에 가장 먼저 알린 단체는 대한 항공 조종사 출신의 모 목사가 설립한 ㅁㅂㅎ라는 곳이다.
이들은 교리도 그럭저럭 건전한 편이었으나, 초창기에 세상 교회를 상대로 appeal을 굉장히 잘못하는 바람에 이곳과 더불어 킹 제임스 성경은 한국 교회에서 이상한 이단으로 완전히 낙인찍혀 버렸다. 그게 1990년대 중후반의 흑역사이다.

진리를 정말 성령 충만한 애끓는 사랑으로 호소하며 전해도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이 태반이며 열매가 맺힐까말까인데, 그걸 육신의 깡을 동원한 온갖 과격· 극단적인 표현으로 밀어붙였으니 튕겨나오는 역효과는 100배이다. 뭐, 나라도 겪었을 시행착오이니 ㅁㅂㅎ를 그렇게 욕할 생각은 없다.

둘 다 잘못했다. 비록 ㅁㅂㅎ도 잘못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경이 역본마다 다르고 변개· 삭제된 말씀이 있다고 해도 아무 경각심도 안 느끼고 최소한의 진실 규명도 안 하는 사람들 역시, 크리스천의 자질이 굉장히 의심되는 부류가 아닐 수 없다!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 보존에 대해서는 불신자 내지 개독안티와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요즘 굉장히 많다.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과 근간이 뭔지 난 정말 궁금하다. 겨우 그런 허술한 근간으로 예수쟁이 행세하고 교회 댕기기에는, 기독교계가 요즘 저지르는 병크가 너무 많고 예수쟁이들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불신자들도 너무 많으며 반기독교 정서는 너무 팽배해 있지 않은가?

아무튼,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한국의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은 안 그래도 소수이던 것이 n갈래로 더욱 소수로 쪼개지는 비극을 겪었다. 이때 모 공대 교수가 다시 동지들을 모아서 ㅁㅂㅎ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과는 별개로 성경 번역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나온 것이 <킹제임스 흠정역>이다. 초판이 나온 게 2000년 여름인데,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이 태어난 시기와 비슷하다.

성경 번역이란 건 자금과 지지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치성도 띠고 있다. 본인은 그래서 우리나라 KJV 진영의 양상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다 비유해 보곤 했다.

일제의 갑작스러운 패망 이후 우리나라는 온갖 정치 집단과 이념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고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이처럼 한국 교계도 개역성경의 권위가 무너져 내리고 ㅁㅂㅎ 진영까지 분열된 후, 어중이떠중이가 다 KJV를 번역하겠다고 나서면서 난장판이 되었다.
(단, 그렇다고 해서 개역성경이 일제 같은 존재는 절대 아니다. 오해 말길!)

이때 흠정역의 주 번역자는,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치면, 이 승만 같은 일을 해냈다. 당연히 긍정적인 면에서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를 간단히 설명하겠다.

일제 강점기 때 국내의 독립 운동가들이 무력 투쟁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반면, 이 승만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국제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직시했고, 당대의 강대국이던 미국을 일본이 아닌 한국의 친구로 만들려 애썼다. 그리고 당대의 여타 민족 지도자들과는 달리, 공산주의의 해악을 완전히 간파하고,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이념이 지켜지는 국가를 한반도에다 세우고 정부를 수립했다. 이북처럼 자기 지지자들만 잘 먹고 잘 사는 개막장 독재 국가를 세우지 않았다!

그것처럼 흠정역의 주 번역자 역시, 명색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공대 교수이다. 객관성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분야에서 학문 하는 훈련을 한 사람이다. 그는 성경 번역자라는 소영웅주의에 도취해 자신을 드러내고 appeal한 게 아니라, ㅁㅂㅎ로 인해 치명적으로 실추된 KJV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성경이, 성경 오타쿠들이나 자기 교리 노선· 자기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보는 성경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기존 성경의 컨벤션을 존중하고, 교리적으로 튀는 번역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이거 정말 대인배적인 마인드이지 않은가? 난 그 의도가 존경스럽다.

기존 개신교회들이 변개된 성경을 쓰고 잘못된 관행을 저지른다고 비판하고 까기만 하는 건 쉽다.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KJV를 읽게 하려고 노력한 끝에, 자기 출판사를 기성 기독교 인터넷 서점에 입점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과연 KJV 교계의 이 승만 같은 사람의 업적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지금까지 어느 KJV 진영도 한국 기독교회에 KJV를 이런 방식으로 알리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잘한 건 티가 별로 안 나는 반면 못하면 바로 티가 나고 온갖 괴담과 비방, 오해가 나돌기 딱 좋은 분야이다. 이 승만이 악의적인 세력들에 의해 부관참시 당해 온 것만큼이나 저 번역자도 성경 번역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이단 소리 듣고, 반대편 진영으로부터 욕도 얻어먹고 험한 꼴 꽤 많이 봤다. 평범하게 자기 연구만 계속하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벌고 교수로 아주 편하게 잘 살았을 텐데, 지금까지 인생의 어마어마하게 많은 부분을 성경 하나 때문에 희생한 것이다.

어쨌든 여러 모로 유사점이 보인다. 본인은 이런 식으로 비교한 글을 예전에 모 기독교 커뮤니티에다 올린 적이 있다. 당사자더러 보라고 쓴 글은 아니었지만, 어째 정보가 퍼져 나갔는지 그분의 사모님께서 그 글을 보고는 본인에게 따로 연락을 주셨다. “우리 쪽에서 직접 말하기 민망한 심정을 잘 이해하고 대변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이다.
뭐, 그래도 이 승만을 그저 증오하는 사람들은 그 글을 보고도 불편해하더라. ㅋㅋㅋㅋㅋ

그에 반해, 흠정역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간 모 진영이 있다. 예수스 크리스토스, 파울로, 밥티스마 같은 말을 일일이 만들면서 완전히 자기네 진영에서만 쓰는 독자적인 번역을 만들었다. 기존 개신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여타 KJV 진영과도 일체의 교제를 끊고는, 자기 말고는 전부 배도하고 타락했다고 거의 사람 취급을 안 한다. 내가 보기에는 덜 배운 친구들이 이 승만이 친일 공화국 만들었다고 욕하는 것과 쎄임쎄임이다. 머리에 든 게 부족하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보인다.

양 진영이 맺은 열매는 난 이렇게 비유하겠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81
그분은 채팅과 교제를 통해 많은 추종자를 얻었지만 저(흠정역 진영)는 성경과 교회들과 성도들을 얻었습니다.

http://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new_jee&no=2563
김 구는 아들에게 유언장을 남겼지만, 이 승만은 국민에게 대한민국과 주권을 남겨주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을 쓰신 수준의 차이이다! 킵바이블 사이트의 글과, 시스템클럽의 글을 이런 식으로 비교해서 종합한 사람은 지금까지 나밖에 없지 싶다. ㅋㅋ

말이 길어졌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그리스도 예수안에 킹제임스 흠정역 진영을 지지하며, 이 성경을 쓰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 흠정역이라는 이 우리말 성경은 만만하게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다.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을 국내에 이 정도로 정착시키기까지 성도들의 무수한 노력과 헌신, 기도가 있었다. 부디 KJV에 대한 근거 없는 이단 낭설이 하루빨리 불식되고, 이 땅에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가 굳게 서고 이를 전파하는 지역 교회들이 많이 세워지길 바랄 뿐이다.

(흠정역 홍보 동영상 클릭)

Posted by 사무엘

2011/09/19 08:13 2011/09/19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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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011년이다. 그래서 킹 제임스 성경(이하 KJV)을 최종 권위로 믿는 진영에서는 요즘 무척 들떠 있다.
올해가 그 성경이 출간된 지 만 400주년이 되기 때문이다. (1611년) 날짜로는 5월 2일이라 함.
KJV 신자들에게 1611은 아주 유명한 숫자이지만, 연도 이하의 정확한 날짜는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 날짜에 맞춰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도 400주년 기념판(5th edition)을 내려고 한창 작업 중이다.

본인에게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한 믿음이 생긴 건 2002년 무렵이다.
그 전에도 킹 제임스인지 흠정역인지 하는 고어체 성경이 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으나, “개역성경의 영문판 정도 되는 성경이겠지” 정도로 치부할 뿐이었다.
개역성경이 “하시니라, 가라사대” 같은 말투가 있듯이 영어에도 “thou, thee, ye”가 나오는 성경이 있다는 맥락. ㄲㄲㄲㄲㄲ
또한, 마치 손실 압축인 JPG 방식으로 그림을 계속 고치고 저장하면 할수록 그림의 화질이 떨어지듯이, 성경도 여느 고문서와 마찬가지로 세월이 흐르면서 내용의 일부가 소실되어 '없음'이 생긴 줄 알았다. 진짜다.

그랬는데.. 성경 이슈에 대해 알게 되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엄청나게 충격적인 지식과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고, 이것들은 본인의 내면 속에 지금까지 잠자고 있던 기독교 신앙의 고유 진동수에 딱 맞춰 나를 격렬히 진동시키고 말았다. 타코마 다리가 들썩들썩하다 와르르 무너지듯, 나의 기존 통념도 와르르...;;

사연을 다 설명하자면 복잡하다만..
내가 KJV 빌리버가 된 주 이유 중 하나는... KJV 반대자 내지 현대 역본 옹호자들의 논리랄까 사고방식이, 어쩜 저렇게 불신자 기독교 안티들의 그것과 똑같을까 그 이중적인 모습에 충격 받고 분노해서였다.

나는 나보다 성경을 많이 아는 목사, 신학자가 마땅히 내 신앙을 방어해 주는 사람인줄로 알고 있었다.
걔네들은 그걸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다. 살인· 간음을 저질러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간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개독안티가 성경을 헐뜯고 “토끼는 되새김질을 안 하는데 성경이 잘못됐다, 뭐가 모순이다”라고 시비를 걸면, 반대편 진영에 선 사람들은 “토끼는 되새김질을 하는 게 맞다. 이거는 네가 성경을 문맥을 무시하고 당시 사정을 감안 안 하고 삐딱하게 잘못 읽어서 그런 거다 ... 어쨌든 결론은 성경은 일점일획도 손실이 없이 절대무오하고 자체 모순이 없다.” 그렇게 대응하는 게 상식적으로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 팔아서 돈과 명성을 얻는다는 사람이, 자기들부터가 그 신앙의 근간인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보존돼 있지 않다고 하고, 세상에 무오류한 성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문자적인 성경 해석을 방어해도 시원찮을 판에 같이 앉아서 헐뜯고 있으니...! 그럼 그는 그런 하나님 파는 짓은 중단하고 자기 양심껏 목사질 때려치우고 안티 진영으로 가야지 왜 거기에 들러앉아 있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에 대한 물리적인 박해보다도, 성경을 조롱하는 안티들의 집요한 독설보다도 훨씬 더 무섭고 치명적인 것은
기독교가 아닌 것이 기독교로 둔갑하여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현상이었다!

성경이 완벽하지 못하니까 그 완벽하지 못한 부분은 나의 해석이, 히브리/그리스어 사전이, 신학이, 교회 전통이 보완하겠다는 소리로 들려서 본인, 매우 심히 불쾌했다. 내가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그런 의도를 파악할 눈치 정도는 있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내 신앙은 내가 지켜야겠다는 '신앙 자주국방론'(?)이 대두되었고, 작정하고 성경을 읽고 독학했다.

내 지론은 언제나 “안티는 안티답게, 신자는 신자답게”이다. 어느 것이든 모 아니면 도로 색깔과 노선만 분명하다면, 본인과 다른 신앙의 소유자라 해도 이 글 읽고서 기분 나쁘거나 불쾌해할 사람은 전혀 없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색과 공부의 결과로 본인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대안이 바른 성경에 있으며, 그 대안의 실체가 바로 킹 제임스 성경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당신이 읽고 있는 멀쩡해 보이는 성경이 실은 13구절이 삭제되고 6만 개나 되는 단어가 변개돼 있습니다”라고 그러면, 언뜻 보기엔 거의 “2011년 안으로 북괴 김 정일은 남침합니다” 수준의 미친 개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그건 무슨 루머나 음모론도 아니고 정말로 객관적인 사실인걸.

세상에, 삭제된 게 맞고, 킹 제임스 성경의 구절이 나중에 추가된 거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걸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 (막 9:44,48; 행 8:37 등등)
불순분자가 삭제한 게 아니라? 도대체 '어떤 사본'은 도대체 무슨 사본을 말하는 걸까?

본인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따위는 전혀 모르고,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런 것과는 인연이 거의 없는 인생을 살 것이다. 그래도 킹 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는다.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게 아니다. KJV 유일주의가 신앙면에서 건전하고 내 믿음을 세워 주고 안티들의 공격을 반박하는 사고방식이라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헛점(?)을 물고 늘어지는 안티들의 공격이 얼마나 집요하고 맹렬한지 본인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성경은 뜻만 통하면 되지 역본들이 다 같은 내용이라는 주장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저건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차라리 KJV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 대안으로 NIV가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최종 권위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쓰신 선한 간증이 있는 성경이라는 식의 논리라도 폈다면 나는 응당 NIV 맨이 됐을 것이다.
최소한 예수쟁이 행세하고 성경 말씀에 꺼뻑 죽으려면 저렇게 하는 게 정상이다. 사실, KJV 진영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다혈질 골수이고, 모 아니면 도 노선이다.

본인 주변의 모 목사님은 왕년의 유학 시절에 KJV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이거 자료 찾고 번역만 하다가 문학 박사 과정 졸업을 포기하고 수료만 하고 돌아왔으며,
다른 모 목사님은 부와 명예가 보장된 전문직 종사자이면서 사재를 탈탈 털어서 그것도 욕 얻어먹고 오해 사면서까지 10년째 성경 번역에 매달리고 계시기도 하다. 한국에 이런 올바른 성경을 번역해서 알리지 않으면, 내 양심상 배기질 못하겠다고...;; 이런 분들에 비하면 난 그렇게 강경한 것도, 골수도 아니다.

본인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다른 유명한 곳으로 '말씀 보존 학회'(말보회)라는 단체가 있다. 본인은 그곳과는 아무 개인적인 인연이 없다. 저곳은 한때 극렬 전투종족으로 기존 개신교로부터도 이단 판정을 받을 정도로 악명을 떨쳤었는데, 걔네들이 비록 간증을 잃을 잘못된 행동을 하긴 했으나, 본인은 심정적으로 그들에게 공감은 한다. 얼마나 답답하고 기성 교회에 대해 실망했으면!

내가 만약 말보회를 통해서 KJV를 접했다면, 아마 말보회 내부에서 만렙-_- 불화살 워리어가 됐을 것이다. ㅋㅋㅋㅋㅋ 지금보다 한 100배는 더 과격한 글 쓰면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주필 논객이라든가 거기 신학원 강사 등으로 한 자리 차지했을지도 모를 듯.
본인의 성깔을 아는 교회 사람 중에는, “용묵 형제가 말보회를 거치지 않고 KJV를 알게 된 건 정말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KJV 유일주의를 주장하면 대체로 “그래도 원어 성경이 더 낫지 않습니까? KJV 이후에도 더 나은 필사본이 발견되지 않았을까요?” 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하도 많이 들었다만... 뭐,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최초의 성경 자필 원본은 오늘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사본만이 전해지며, 그 필사본들이 오늘날의 성경처럼 완전한 66권 합본으로 전해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이 필사본이 전체 중 어느 조각에 속하는지, 그리고 의미가 그토록 다양하게 변하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의미를 단정적으로 이거라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다시 말해, KJV와 동급으로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원어 성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이다. 둘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그러니,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KJV가 하는 역할이 자기 밥줄을 뺏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KJV를 배척하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
KJV는 변개되지 않은 바른 원문에서 바르게 번역되었고, 바르게 집대성(compile)되었다. 따라서 바른 히브리/그리스 원어 성경이라면 KJV와 충돌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전통적인 고문헌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수되어 왔다. 다른 고대 문헌들은 가장 오래 된 게 원본에 가장 가까울 확률이 높겠지만 성경은 끊임없이 필사되고 사람들에게 수시로 읽히고, 그러다 닳아 없어지길 되풀이했다. 회전률이 높다는 뜻.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필사본이 존재하고 이들이 서로 일치하면 그게 곧 맞는 본문이다. (쉽죠?) 하나님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성경을 보존해 놓으셨다.

그 반면, 극소수 골동품처럼 전해내려져 온 튀는 필사본은 애초에 진작부터 버려진 가짜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마치 유다복음이라든가, 사악한 성경--'간음하지 말라'에서 not이 실수로 삭제된..;;;-- 같은 것들 말이다.

그나저나, KJV 번역을 지시한 제임스 왕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난 세속 역사를 통해 알고 있던 건

  • 엘리자베스 여왕 다음으로 즉위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왕. 하지만 선왕보다는 그리 훌륭하지 못했다는 평판을 받음
  • 왕권신수설을 내세웠고, 좀 독재자 스타일로 의회와의 대립이 심했던 듯?
  •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에 나오는 제임스타운의 어원이 된 사람. (포카혼타스는 설정상 배경이 1607년이다. KJV가 한창 번역되고 있던 시절이다.)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왕의 신분으로서 국민을 위해서 국비로 성경을 번역하라고 했을 정도이니, 제임스 1세 왕은 거의 영국의 세종대왕 급이다.
“나랏말씀이 라틴어와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무지몽매한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여도 마침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내 이를 가련히 여겨 새로 성경 역본을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읽어 구원받고 영적으로 자라게 할 따름이니라.” 정도..;;

그 외에 더 알고 싶은 정보가 있으면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자.
http://jesus-is-lord.com/kinginde.htm

물론 저 사이트의 운영자는 KJV 지지자로, 제임스 왕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실들을 나열하면서 그가 아주 훌륭한 왕이었다는 요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담배를 지독하게 싫어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경 번역 작업에 앙심을 품은 교황청 세력에 의해 암살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gunpowder 사건)
KJV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제임스 왕에 대해서도 굉장히 치졸하게 헐뜯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하고 싸우기 위해서는 영국 역사를 좀 공부해 놓는 것도 좋다.

킹 제임스 성경 이전에도 여러 성경 역본이 존재해 왔으나, 이 KJV만이 20세기 초까지 독자적으로 쓰이면서 전세계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고, 수많은 혼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KJV는 400년 전에 출간된 후, 인쇄 오류를 바로잡고 개정된 영어 철자법대로 표기를 고치는... 몇 차례 edition이 나왔다. 그래서 1611년 KJV의 1769년도 edition이 오늘날까지 우리가 쓰고 있는 그 정확한 본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글 개역성경도 번역 후 제정된 한글 맞춤법 통일안대로 새로운 edition이 나온 바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차원이다. edition은 코딩으로 치면 재컴파일이나 포팅일 뿐이지, 결코 프로그램의 로직을 바꾸는 revision이 아니었다.

영국에서 이렇게 성경의 절대 기준이 나오고 영어가 나오고 세계 표준시가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철도 표준 규격도 여기서 정해졌다. ^^;;;
영국에서는 올해에 KJV 발간 40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될 것이라고 한다. (내년에는 올림픽을 기념하여 콩코드도 다시 먼지 털고 잠시 운항할 거라고 하던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성경을 이단이라고 하고 있고 그 많고 많은 기독교 서점에서 역본 자체를 거의 찾을 수가 없다. 대단히 통탄할 노릇이다.
오늘날 KJV는 영국에서도 듣보잡이 돼 가고 있다. 인도에서 불교를 찾을 수 없고,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찾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나 할까..

아무쪼록 이 글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한 보존에 대한 믿음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블로그 말고 이곳 대문에 HTM 문서로 등재되어 있는 <음란한 성경은 가라>, <킬로그램 원기> 같은 본인의 글도 읽어 보시길.

Posted by 사무엘

2011/01/26 08:36 2011/01/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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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에 대한 고찰

오늘날처럼 세상이 급변하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게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 역시 뭔가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적은 역사상 없었지 싶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그런 트렌드 자체도 그렇게 새삼스러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아테네 사람들과 거기 있던 나그네들은 새로운 어떤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에는 자기들의 시간을 달리 쓰지 아니하였더라. (행 17:21)

성경 66권 각 책들이 모두 개성이 넘치는 책이긴 하지만, 본인은 사도행전이 문체와 표현이 굉장히 독특하다는 생각을 해 왔다. 성경은 사도행전에서, IT 시대가 도래하기 전부터 이미 얼리어답터라는 집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맨날 뭔가 새로운 트렌드, 조금이라도 더 창의적인 개똥철학에 탐닉하는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것과 관련된 언어 현상을 먼저 좀 살펴보기로 하자.
new에 대응하는 한국어는 원래 ‘새롭다’라는 형용사인데, 신기하게도 ‘새’만 써도 관형사로서 ‘새롭다’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유명한 컴퓨터 개그가 있다.

“교수님, 새에 대해서 논문이라도 쓰시나 보죠?” (레 11:13-19 같은?)
“아니. 파일을 ‘새 이름으로’ 저장해야 한다는데, 이젠 더 생각나는 새 이름이 도저히 없어서 고민일세.”


영어권의 “Press any key...” / “any라는 키가 도대체 어디 있지?” 개그와 쌍벽을 이루는 한국식 컴퓨터 개그가 아닐 수 없다. 썰렁했다면 죄송. ㄲㄲㄲㄲㄲㄲㄲㄲㄲ

사실, GUI 환경에서는 각종 메시지 박스는 반드시 ‘확인’(OK) 버튼을 클릭해야 하고, 이 버튼은 Space나 엔터로만 인식이 되니까 Press any key 같은 메시지를 볼 일은 없어졌다. 명령창(command prompt; console) 환경에서나 볼 수 있다.
요즘 소프트웨어들은 새 이름 같은 악명 높은 오해(?)를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 ‘새’ 대신 ‘다른 이름으로 저장’이라는 표현을 써 주고 있다는 것도 알아 두자. ^^;;

하나 더, 본인은 한국어에서 ‘기존’이라는 표현이 오· 남용되고 있는 게 개인적으로 굉장히 거슬린다. ‘예전’, ‘종전’이라는 표현이 싹 다 저걸로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 기존이란, 현존(현재 존재)· 실존(실제로 존재)만큼이나 ‘이미 존재’라는 뜻일 뿐이다. “기존하는 아이템”처럼 활용도 가능하다. 그런데 “기존에 있는 것은 지우세요”는 도대체 뭐란 말이냐. 역전앞, 프린터기보다 더 말이 안 되는 표현이다.

‘기존’이라는 말을 제일 널리 퍼뜨리고, 또 잘못 퍼뜨리기도 한 곳이 IT계가 아닐까 하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맨날 업그레이드, 업데이트를 밥 먹듯이 하는 분야이다 보니 늘 예전 것과 비교를 하고 뭔가 새롭다는 걸 강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굳이 IT계가 아니어도 자동차계도 차 이름 앞에다 new를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뉴 엑셀, 뉴 소나타, 뉴 프린스, 뉴 그랜저... 그러고 보니 포니는 ‘뉴 포니’가 아니고 ‘포니 2’였는데, 나중엔 네이밍 방식이 바뀌었다.

하지만 new가 붙고 화려하게 세상에 드러난 그 이름들이 세월이 흐르고는 어떻게 되었을까? 분야별로 살펴보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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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 출시된 MS-DOS 5.0의 미국 현지 CF의 한 장면이다. “It's new!!” 출처는 유튜브.
1985년에 스티브 발머가 온갖 오버액션으로 윈도우 1.0 광고 개그를 펼치던 동영상만큼이나 웃기다.

1. NE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윈도우 운영체제는 90%가 넘는 점유율로 PC 환경을 완전히 평정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5~20년 가까이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윈도우 1.0부터 3.x까지의 16비트 시절에 쓰이던 자체 실행 파일의 이름은.. New Executable이었다! 32 내지 64비트 시대가 된 오늘날에 이 실행 파일 포맷이 새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Portable Executable이라는 다른 포맷이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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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NDC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사진은 1984년에 도입되어 20년 남짓 국내에서 운행된 무궁화호 디젤 동차(기관차 견인형이 아니고)인데, 업계 종사자 내지 철도 동호인들이 부른 명칭은 NDC. 신형 디젤 동차(New Diesel Car)였다. 1984년에 철도청이 저런 CF를 찍던 당시에는 아주 새로운 차량이었으나,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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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폐차가 진행되어 지금 NDC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못미 NDC.
출처: 류 기윤(현직 코레일 기관사 겸 철도 동호인) 님의 블로그

3. NIV, NASV, NRSV, NKJV 등등..;;
드디어 KJV 크리스천들에게 아주 친숙한 이름들이 나왔다.
new라는 이름이 유난히도 자주 눈에 띄는 분야는 다름 아닌 성경 역본이다.
물론 본인 같은 사람은 그런 것들을 변개된 old lie일 뿐이라고 폄하하지만 말이다.
참고로 과거 통근열차(CDC)를 무궁화호로 개조하여 2008년부터 NDC의 후속 차량으로 뛰고 있는 열차는 RDC라고 불리고 있는데, KJV 신자들이 싫어하는 RV, RSV의 R과 같은 의미의 이니셜이다. Revised와 New는 여러 분야에서 통용되는 단어임이 틀림없다. ^^;;

이런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큰 교훈이 있다.
지금 당장은 새롭다고, 참신하다고 new라고 상업적으로 막 떠벌려진 것들도.. 세월이 흐르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게 태반이며, 결국 인간은 동일한 패턴의 쳇바퀴를 돌고 있을 뿐이라는 것. 성경의 그 유명한 말씀에 공감하게 된다.

이미 있던 것 즉 그것이 후에 있겠고 이미 행한 것을 후에 다시 행하리니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전혀 없도다. (전 1:9)

자칭 이종 예술가로 활동 중인 김 형태 씨의 칼럼을 읽어보면 글쓴이가 저런 면에서 상당한 통찰력이 있는 분임을 알 수 있다. 기타 다른 주제의 글에서 느껴지는 인본주의· 자유주의적인 견해가 성경의 사고방식에서 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옛날과 오늘날이라든가 옛 것과 새 것의 관계에 대해서는 영적으로 아주 잘 간파했다.

... 과거에 비해서 현재가 여러가지 의미로 더 좋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 문화, 예술, 철학은 오늘도 옛것을 계속 리메이크하면서 팔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누군가 저에게 반문했죠? 정말 이 시대보다 옛날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문화와 역사에 대해 조금만 지식이 있으면 당연한 소리입니다. 아무 분야나 하나 잡아서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보세요. 20년, 30년 전, 40년 전, 50년 전에 비해서 지금이 더 좋은 시절이냐고. 음악, 패션, 건축, 디자인, 가구, 자동차, 경제구조, 세계 평화, 문학, 미술, 레크리에이션, 철학, 스포츠 등등 알고 보면 좋은 시절은 다 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따끔하지만 유익한 고언, 충고, 조언이 많으니 칼럼을 진지하게 읽어보기 바란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보며 옛 행로들 곧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그 길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라. ... (렘 6:16)

굳이 이 구절과 비슷한 사상이 담긴 사자성어를 찾자면 온고지신인데...
이 말은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의 변화를 무조건 배척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수구꼴통이 돼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런 극단으로 치우치면, 문명의 이기를 다 거부하고 생체 이식 칩과 신용카드가 666이라는 논리로 빠지게 된다.

말씀이 의도하는 바는, 언뜻 보기에 구시대적이고 수구꼴통(?) 같지만 결국 인간 세상이 유지되는 데 필요한, 그 검증되고 안정화된 성경적인 길을 일단 존중하고 따라 걸으라는 뜻이다. 그런 것들이 괜히 아무 이유 없이 존재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 중에 진짜로 새로운 건 극히 드물다. 인생의 법칙은 불변이며, 결국은 하나 좋은 걸 만들었다면 이를 위해 다른 하나를 반드시 희생했다는 식으로 대가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잘 분별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상업적인 광고는 그런 이면의 그림자를 소비자에게 절대로 솔직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행간의 의미를 읽는 게 인생의 지혜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능력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여기에 대해서도 분야별로 여러 case study를 제시할 수 있으나, 시간과 분량 관계상 거기까지는 생략하겠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진짜 NEW란, 사람이 거듭나서 구원받은 후 바뀐 행적이고, 훗날 이 땅에 세워지는 새로운 왕국이며, 나중에 창조될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만 new가 아니라 저게 진짜로 객관적으로 new이다.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는 분이라면 역설적으로 성경이 제시하는 옛 길을 반드시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15 18:49 2010/12/1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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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 역에서 느껴지는 애환

* 카테고리를 뭘로 잡아야 할지 난감한 글이다. 철도 얘기, 성경 얘기, 별별 얘기가 다 들어가서... -_-

※ 철도 얘기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서쪽 종점은 잘 알다시피 방화 역이다. 그러나 서쪽 종점이라고 해서 이 역이 5호선 역 전체를 통틀어 서울 최서단에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5호선 최서단 역은 김포공항 역이며, 그 후로 5호선은 선형이 다시 살짝 동쪽으로 바뀐다. 김포 공항을 경유하기 위해 굴곡을 일부러 만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6호선의 최서단 역은 월드컵경기장 역이다. 서울 2기 지하철이 건설되던 당시에는 월드컵 경기장을 강서구 마곡 지구에 만들지, 은평구 상암동에 만들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결국 후자로 결정되면서 6호선의 노선에도 그쪽으로 급히 굴곡이 추가된 것이다. 이 때문에 건설업자들이 고생을 좀 했다고 들었다. (덧붙이자면, 당시 조 순 서울 시장의 지시로 마곡 지구의 개발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5호선 마곡 역도 10년이 넘게 미개통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방화 역은 시의 거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종착역답게, 그 인근은 좁은 4차선 도로이고 한가한 베드타운이다. 동쪽 종점인 상일동이나 마천도 비슷한 분위기이다. 본인은 2008년 6월 말, 마곡 역이 거의 12년만에 정식 개통하기로 한 바로 전날, 방화 행 막차를 타고 거기까지 간 후, 근처 PC방에서 외박을 했다. 그리고 새벽 5시 반에 하행 첫 차를 타고 5시 38분경, 갓 개통한 마곡 역의 승강장에 지하철 회사 관계자가 아닌 사람 중에서는 최초로 발을 디뎠다!

이건 완전, 달에 최초로 도착한 아폴로 11호 조종사 같았고, 또 주의 첫 날에 아침 일찍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가는 심정이었다(막 16:1). 본인은 예수님의 부활은 눈으로 못 봤지만 마곡 역의 부활을 맨 먼저 목격한 증인이다. 본인처럼 마곡 역 답사하러 인천에서 미리 찾아와 기다렸다는 어느 철도 덕후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은 그 날, 본인도 어차피 혼자 간 게 아니었고, 같은 철도 동호인 후배 친구와 함께 밤을 지새웠다.

본인에게 방화 역은 이런 오덕스러운 추억이 있다. 그런데 방화 역 인근에는 주거 구역만 있는 게 아니다. 국어학에 관심이 많고 동시에 KJV 빌리버이기도 한 본인에게 꽤 큰 의미를 지니는 기관이 두 곳이나 이 지역에 입주해 있다.
하나는 국립 국어원이고, 또 하나는 말씀 보존 학회(이하 말보회)이다. ㅎㅎ

※ 철도 말고 나머지 얘기

다만, 관심 분야가 유사할 뿐이지, 두 곳 모두 본인이 직접적인 인연을 맺은 적은 없는 곳이므로 오해 없기 바란다. 가령, 한글 학회와 국립 국어원은 민간 단체와 정부 기관이라는 차이도 있거니와 정체성도 완전히 다르고, 서로 원수지간까지는 아니어도 그렇게 친하지는 않다. 그 이유를 근본적으로 파헤치자면 서울대 이 희승 라인과 연세대 최 현배 라인까지 길고 긴 흑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므로 이 글에서 다 다루지는 않겠다. 뭐, 요즘은 어차피 옛날 같은 그런 파벌 싸움 자체가 별로 무의미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인터넷 게시판을 돌아다니다 보면, 국립 국어원에서 제정한 한글 맞춤법이나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비판을 한글 학회에다가 하는 사람의 글을 예전에 좀 보곤 했다. 이건 지하철로 비유하자면, 코레일 관할 역 내지 코레일 소속 전동차에서 생긴 불만 사항 민원을 서울 메트로에다가 넣는 것과 같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말글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문화 체육 관광부 소속 정부 기관이 방화동에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그리고 또 말보회도 아주 유명하다. 있는 위치가 하도 상징성이 크다 보니, 우리 진영에서 설교 같은 공식 석상에서 가끔 말보회를 완곡하게 언급할 때 ‘방화동 교회’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제대로 잘 아는 게 아니라 어설프게 들어 본 사람의 머리에는 “KJV = 말보회 = 이 송오 = 피터 럭크만 = 이단”이라는 다중 거부 장치가 겹겹이 설치되어 있다. 이걸 두고 어느 한 쪽만 일방적으로 탓할 수는 없다. 바른 성경에 대한 관념이 없고 성경의 보존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삐뚤어진 신앙도 잘못됐지만,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를 알면서도 진리를 사랑으로 전하지 않고 무례하게 깽판 부리면서 간증을 다 망친 진영도 잘못한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남 탓할 자격이 없는 게... KJV를 처음부터 말보회 진영을 통해서 받아들였다면, 난 과격 면에서는 아마 이 송오 목사의 후계자(?)로 지목될 정도의 전투종족이 되지 않았을지? ㅋㅋㅋㅋ 럭크만 정도의 성경 실력은 없는 주제에 그 사람의 성깔만 Ctrl+C, Ctrl+V가 돼서.. 성경을 무기로 삼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단들 욕하고 까는 글 기고하면서 말이다.
그 사람들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오버하느라 기성 교회 사람들 마음을 아주 닫아 버리게 만든 건 분명 잘못이다. 오죽했으면 “말썽 보존 학회”로 전락을.. -_-

“처음에 한국에 변개되지 않은 바른 성경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더라.”(1절) “And 한국 교회는 교리의 혼돈과 공허로 가득한데, 정작 KJV 교계는 여러 파벌들로 갈라져 있으며 기성 교회들로부터 이단으로 찍혔더라.”(2절)
이게 한국 KJV 교회 역사의 간극 이론이 아닌가 싶다. 그 간극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절을 1절 이후의 시간 순으로 해석하면 간극 이론이고, 2절을 1절이 일어나던 당시의 배경 상황 내지 부연 설명으로 풀이하면 간극을 배제한 해석이 되는 셈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기발하다 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09/02 09:10 2010/09/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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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2006년 2월, <음란한 성경은 가라>라는 글을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성경 역본 이슈에 대해서 인터넷을 돌아다녀 찾아보고 지인과 메신저로 교제하다가, 불현듯 소재가 떠올라서 서너 시간 끄적여서 완성한 글이었는데...
이 글은 자랑이 아니고 진짜로, KJV 독립 침례 교회 목사님들로부터는 가히 '형제가 지금까지 쓴 글들 중 최고로 뛰어난 명문'이라는 격찬을 아낌없이 받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4년 반만에..
어느 안티 KJV 진영이 그 글을 정면으로 난도질한 꽤 강경한 반박문을 올린 걸 우연히 발견했다.
글 올라온 날짜도 비교적 최근이다.

http://truthnlove.tistory.com/entry/%EC%9D%8C%EB%9E%80%ED%95%9C-%EC%A7%84%EC%A7%9C-%EC%84%B1%EA%B2%BD-%EC%88%AD%EB%B0%B0  (음란한-진짜-성경-숭배)

글쓴이는 김 삼(김 풍도 아니고. -_-)이라는 분인데 처음 본다.
프로필을 보니, 딱 우리나라 정통 신학 코스를 밟은 후 장로교 목사 안수를 받았고 미국에 목회 중이다. 나이도 나보다야 많겠지만, 그래도 글투를 보면 그렇게 나이 지긋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신학 공부 전혀 안 하고 히브리어· 그리스어 나부랭이는 하나도 모르는 풋 사과의 글을 현직 목사가 친히 반박을 해 주다니 감개무량하다. 체급이 서로 게임이 안 되는 수준인데... ㅋㅋㅋㅋㅋㅋ
KJV를 반대하는 대다수 목사들의 사상과 가치관을 글로써 잘 대변해 주었다.

저 사람은 프로필에 신앙 고백이 아예 대놓고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한 보존을 믿지 않는다. 그러니 <음란한 성경은 가라> 같은 글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배알이 뒤틀려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 정세나 이단 교리 판단한 다른 주제의 글은 그럭저럭 건전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성경관에 관한 한은 본인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믿음의 소유자이다.
 
  성경은 최초의 원문 그대로가 곧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자들을 활용해 기록하신 절대 완전/정확/무오한 말씀이며..현재의 원문은 여러 사본들이 합해지고 조화되고 종합된 결과로 원본에 거의 가깝다고 믿습니다.
(일부 주장자들의 말과는 달리, 절대/완전하게 보존된 사본은 없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원본만이 오직 완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본을 모두 종합/조화시킨 현재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모자란다"는 뜻은 아닙니다. 완전에 가깝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들의 해석과 번역 탓입니다.)

내가 KJV 숭배자라면 저런 사람은 아무리 봐도 원어 숭배자로밖에 안 보인다. 내가 KJV가 최종 권위인 것만큼이나 저 사람은 세속 학자들의 그리스어 히브리어 사전이 최종 권위이다.
저 사람들의 머릿속엔  "킹 제임스 성경 = 이 송오 & 럭크만 추종자 = 성경 역본의 맹신과 우상화" 밖에 없다. 본인은 이 송오 & 럭크만 추종자가 전혀 아닐 뿐더러, 예수쟁이가 신앙의 근간인 성경의 온전한 보존과 그 실체를 믿는다는데 어떻게 거기에 맹신, 우상화라는 딱지가 붙을 수 있단 말인가!
 
KJV와 외경 사이의 논란, 그리고 초창기 인쇄본의 철자법 얘기는(그리스도 예수안에 발행 흠정역의 부록에도 실려 있는 반박문)
이미 진실을 아는 사람들한텐 면역이 다 돼 있는 주제인데 언제까지 뻔한 레퍼토리를 상대해 줘야 하나 모르겠다.
 
반박문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본질적인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생략하고 넘긴 KJV 출간 당시의 교회사라든가,
중요하게 다루지 않은 원어 해석 몇몇 개만 갖고 계속 끝도 없이 꼬투리 잡고 있다. 반박하는 게 다 저런 식이다. 그 사람이 추종하는 그리스어 사전대로라면(변개된 성경에 맞춰진) KJV는 당연히 오역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일말의 반카톨릭 성향은 있는지 외경 나쁜 줄은 알아서, KJV가 1611년 초창기에 외경이 같이(본문으로 포함되어 나온 게 전혀 아니었는데도) 들어갔다고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게 통탄스럽다.

저 사람은 KJV도 어차피 온갖 카톨릭스러운 컨벤션이 잔뜩 들어있다고 KJV를 폄하하는데, 뭐 그 말이 일부 맞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 문화권 교회의 컨벤션이 원래 그랬으니까...;; The translators to the readers 같은 서문을 읽어봐도 성 어거스틴이 어떻고, 무슨 교부가 어떻고 하는 천주교스러운 문체가 물씬 풍긴다 "카더라".
그러나 저런 사람은 천주교가 KJV의 출간을 결사적으로 막고 방해했으며, 첩자를 보내 gunpowder 사건 같은 걸 꾸며서 제임스 왕과 성경 번역자들을 암살하려 한 KJV의 안티 카톨릭 역사에 대해서는 절대 침묵하고 있다.

KJV에도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몇몇 바리에이션이 생겼고 인쇄 과정에서 오탈자가 있었으며 몇 차례 에디션이 나온 것 정도는 나도 다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 갖고 "KJV의 여러 에디션 중에 어느 게 당신의 최종 권위입니까?" 같은 불순한 말장난 정도에는 다 대비가 돼 있다. 같은 크리스천끼리 그런 찌질한 짓은 좀 그만 하는 게 어떨까 싶다.

글쓴이는 본인의 글의 본질적인 주제인, 현대 역본들의 음란한 표현에 대해서는 정작 한 마디도 반론이나 해명이 없다. 하다못해, NIV처럼 "거시기를 짤라 버린다는 게 맞는 표현이고" KJV의 "끊어지기를 원하노라"는 오역이라고 떳떳하게 지적한 것도 없다. 반박문을 시리즈로 쓸 기세이니 앞으로 다루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반박을 어떻게 할지는 본인 눈에도 훤히 보이고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한 마디로 말해 일일이 상대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영양가가 없다.

본인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지금 내 방식대로 믿고 아니면 아예 때려치우고 말지,
저 사람처럼은 못 믿겠다.
아직도 성경보다 원어 사전에 더 믿음이 간다면, 김 문수 형제님의 다음 글들을 한번쯤 묵상해 보기 바란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3596 <원어 성경의 유혹>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4474 <노새 이야기는 빼 놓고 왜 온천 타령을?> -- KJV와 non-KJV가 대표적으로 다르게 번역된 구절 중 하나이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4230 <이삭이 리브가를 애무했다고?> -- 본인의 글 <음란한 성경은 가라>와 비슷한 주제이며, 본인 글을 언급도 하고 있음.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0/09/01 08:35 2010/09/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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