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방 정환 선생

“앗, 저 문앞에 검은 말이 끄는 검은 마차가 날 데리러 와 있어. 난 이제 가야겠소. 어린이들을 두고 떠나니 잘 부탁합니다.” -- 1931년 7월 23일, 소파 방 정환의 임종 직전 유언


내가 ‘고혈압’이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최초로 접한 곳이 방 정환 위인전이었다.; 이분은 어린이를 사랑한 인물답게 입맛과 식성도 초딩 스타일이었던가 보다. 담배도 골초였고..
그는 비만, 고혈압 같은 성인병을 낀 채로(아마 당뇨도?) 엄청난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려다가 겨우 30대 초반의 나이로 동화 구연 중에 코피 흘리면서 쓰러지고 절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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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부실한 영양과 위생 때문에 결핵에 걸려 요절한 사람도 있었더라만(예: 날자꾸나 이 상, 수학자 닐스 아벨 등..), 방 정환은 그 시절 트렌드와 달리, 현대인과 굉장히 비슷한 방식으로 돌연사했다. 몸을 혹사시키며 자기 인생을 아이들을 위해 갈아 넣었다.

이 사람은 살아 생전에 동화 구연을 어찌나 리얼하게 잘했는지.. 감시하던 일제 헌병, 형사, 형무소 간수들조차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훌쩍거리며 울었다. 가령, 주인공이 병으로 가련하고 불쌍하게 죽는 장면 같은 데서 말이다.

요즘 관점에서 보면 그냥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신파극처럼 보이겠지만 저 때는 현대의 초딩 꼬마들이 상식 수준으로 접하는 외국 동화들도 이제 막 번역되고 국내에 소개되던 시절이었다. 유흥이고 문화 생활이고가 없던 재미없는 시절에 이런 참신한 신문물을 약간만 각색을 해 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울리고 웃기는 게 가능했다.

뭐, 그런 시대 상황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방 정환의 화술은 요즘으로 치면 어지간한 TV 코미디언을 능가하는 구석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따라 붙던 일본인 형사조차도 “이 아재는 조센징이 아니라 일본인이었으면 한낱 나 같은 일개 짭새한테 쫓기는 처지가 되지 않고 저 실력으로 훨씬 더 성공했을 텐데” 안타까워했을 정도였다.

이렇듯, 1920년대의 한반도는 방 정환처럼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해 줍시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도 나오고, 커리어우먼 신여성도 나오고, 좌익 사회주의 문학도 나올 정도로.. 일제 시대 중에서는 ‘그나마’ 자유롭고 개방되고 살기 좋던 시절이었다. 이것도 감안할 점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정말로 저 정도로 평소에 안 보이던 헛것이 보이고 헛것이 들리게 될까? 난 어린 시절에 어린이를 그렇게 사랑했다는 사람이 저런 유언을 남겼다는 걸 읽고서 꽤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수명이 다해서 눈을 감을 때쯤 철길에 놓인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눈앞에 짠~ 나타나 보이고 Looking for you가 하늘에서 어렴풋이 들려 온다면.. “아 내가 그래도 확실하게 구원은 받은 게 맞구나~!”하면서 평안하게 최후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 산 채로 들려 올라간다면, 딩동댕~ 새마을호 로고송이 들려오지 싶다. (영상음악 컴필레이션 음반인 Headline News, 6번 트랙 Outlook)

아아~! Looking for you는 정말.. 천국 음악이었다.
내 인생은 경부선 새마을호이다. 요르단 강을 건너는 게 아니라 한강을 건너는 거다. 벌써 용산, 남영을 지났고 인생의 종착역인 서울역이 얼마 안 남았다~! 이제 로고쏭과 Looking for you가 객실에 흘러나올 일만 남았다.

현장에서 더 들을 수 없는 음악을 하늘나라에서 또 듣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새마을호에서 이것도 안 들어 본 주제에 무슨 천국 갔다 온 간증..?? 체험담..?? 일고의 가치도 없다.
오늘도 철도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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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1/04/11 08:34 2021/04/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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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블로그 글은 몇 년 동안 새 글이 없이 먼지만 쌓여 가던 '철도-관련 미디어' 카테고리 소속이 되겠다. 만세~!

내가 맨날 Looking for you 타령만 죽어라고 늘어놓고 있어서 존재감이 많이 묻히긴 했지만.. 옛날(200x년대) 새마을호 열차에서는 Looking for you 음악만 흘러나온 건 아니었다.
열차가 시발역에서 운행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종착역 도착을 앞두고는 황홀하고 모던하고 미래지향적이고 하이테크스러운 분위기의 다른 BGM이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즐거운 여행 되셨습니까?" 요런 안내방송이 나왔다. (☞ 동영상 링크) 본인은 이 BGM을 일명 로고송이라고 불러 왔다. 보통명사 또는 고유명사로 말이다.

초창기에는 출발 때에 한해서 새마을호의 로고송 자체가 Looking for you이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즉, Looking for you를 배경으로 하고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랬다는 거다. 이건 각 역별 도착 시각을 일일이 그것도 4개 국어로 다 안내해 주던 시절의 추억인데, 본인은 직접 들어 보지는 못했다. 지금은 KTX에서도 그러지는 않는걸..

그러던 것이 Looking for you 이후에 별도 로고송+안내방송으로 바뀌었다. 종착 Looking for you는 그래도 06년 말 정도까지 유지됐지만 출발 Looking for you는 KTX의 개통 이후에 얼마 못 가 스티브 바라캇 Dreamers로 바뀌었기 때문에 2002년 이래로 길게 잡아도 2년 남짓밖에 유지되지 못했다.

그건 그런데.. 문제는 곡명이 다 알려져서 철덕들의 찬송가로 등극한 Looking for you 말고, 그 고유 로고송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 무궁화호에서 연주되었던 로고송은 CAGNET의 What will I do(원곡은 아닌 듯하고 C장조로 조가 올라간 리메이크)라고 출처가 곧 알려졌다. 얘도 나쁘지 않은 곡이지만 새마을호 로고송 같은 황홀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새마을호 로고송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D장조와 D단조를 오르내리는 그 황홀한 멜로디는 출처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철덕들의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로고송은 2008년 무렵부터 다른 곡으로 대체되었다.

본인은 지난 2009년 1월 6일 아침, 서울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정확히 같은 음색은 아니지만 로고송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것을 우연히 목격..은 아니고 청격했었다. (☞ 옛날 글 링크) 그걸 블로그에 공개했으며 다른 철도 동호인께서 호응하는 댓글까지 올려 주셨다. 하지만 일은 그걸로 끝나고 여전히 정확한 출처를 알아내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이 사실이 나무위키에도 등재돼 있을 정도였다. (코모넷 항목.. 코모넷은 그 당시 새마을호에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던 협력업체. 현재는 폐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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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그로부터 거의 1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2018년 12월 17일,
디씨 철갤에서 어느 갤러에 의해.. 이 음악의 출처를 근성으로 "단서를 쫓아 여러 음반 뒤져가며 듣고 또 듣고 생노가다 해가며" 찾아냈다는 소식이 타전되었다!

출처는 바로 Headline News라고, 방송국 BGM용 컴필레이션 음반.. 그것도 엄청 옛날인 1992년 5월에 발매된 음반의 6번 트랙인 Outlook이었다. 이건 우리나라 철덕 역사에 길이 남을 발견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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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나 TV 방송에서 광고나 섹션 전환, 아니면 심지어 방송사고 등 여러가지 상황에서 들려줄 만한 짤막한 BGM들 모음집이다. 이 분야의 음악만 전문적으로 작곡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심각하게 마이너한 분야의 음악인 관계로 전곡이 유튜브 같은 데에 공개돼 있지는 않으며, 인터넷 상으로는 맛보기로 중간 30초 분량밖에 못 듣는다. 하지만 곡 자체도 1분 30초 남짓으로 짧은 편이다.

안내방송 멘트에 가려져서 제대로 듣기 어렵던 구간을 이렇게 음악만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게다가 본인이 라디오에서 들었던 곡은 저 앨범의 4번 트랙(Young Blood 젊은 피??)이라는 것도 덤으로 알 수 있었다! 같은 작곡자가 같은 멜로디를 다른 악기와 다른 분위기로 리메이크 해서 연주했던 듯하다.

이 곡의 작곡자(Nicolo Bardoni & Stephen Warr)에 대해서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의 작곡자인 MALTA보다도 안 알려져 있고, 하물며 음반은 Obsession보다도 더 구하기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출처를 알게 된 것만 해도 어디냐.. 이런 듣보잡 마이너 음반까지 뒤져서 로고송의 출처를 알아낸 그 철갤러 분께 진심으로 경의와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철덕의 오랜 의문이 이렇게 풀리니 기분 좋게 올해를 마무리할 수 있겠다.

※ 그리고 이미 국내의 어느 용자께서 이 곡의 음원을 구해서 유튜브에 이미 올리셨다.

Posted by 사무엘

2018/12/29 19:33 2018/12/2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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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식 새마을호 객차의 퇴역 외

1. 새마을호 객차의 완전 퇴역

지난 2018년 4월 30일을 끝으로, 재래식 새마을호 열차가 최후의 유일한 운행 노선이던 장항선에서도 운행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사실, 5년 전 2013년 1월 4일엔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동차가 완전히 퇴역했으며, 그때 이후로 새마을호는 경부선 같은 간선에서 야금야금 퇴출되고 ITX-청춘으로 대체되어 왔다. 그러니 이번 객차형 새마을호의 은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장항선은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중간한 길이에다 비전철 단선이라는 특성 덕분에, 경부선 같은 1루에서 밀려난 새마을호의 한직 역할을 해 왔다. 모든 객차가 특실 좌석인 구특전 동차형 새마을호도 장항선에서 최후까지 남아 있었다.

그럼 장항선에 앞으로 무궁화호밖에 안 남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ITX-새마을 도색을 한 새마을호가 뒤를 잇는다. 그런데 장항선은 전철화가 돼 있지 않으니, 우리가 아는 ITX-새마을 전동차가 다니지는 않는다.
전동차가 아니라 디젤 기관차가 견인하고, 과거에 무궁화호였던 일명 '디자인리미트 신형 객차'가 새마을호 객차로 승격되고 ITX-새마을 스타일로 도색되어 다니게 된다.

즉, 일반열차 중에 무궁화호보다 상위인 새마을호라는 차급 자체는 유지된다.
그러나 과거처럼 동그란 창문에다가 64석 간격에 종아리 받침대까지 있던 그 새마을호 열차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ITX-새마을은 여전히 무궁화호와 동일한 72석 간격이다.

옛날에는 같은 객차가 새마을호에서 무궁화호로 강등되면 강등됐지 격상되는 일은 없다시피했는데.. 10여 년 전에 통일호 동차가 RDC 무궁화호로 승격됐던 것처럼 이번에는 무궁화호 객차가 ITX-새마을로 승격되었다. ITX-새마을은 이제 전동차 이름이 아니라 더 추상적인 차급의 명칭으로 등극하는 셈이다.

2. 기존의 열차 등급 체계가 모호해짐

먼 옛날에 열차가 매우 희귀하던 시절에는 마치 선박처럼 각각의 열차에다가 서로 다른 이름이 지어지고 끝에 '호'라는 접미사까지 추가되곤 했다. 1950년대에는 여객기에도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창랑호, 만송호, 우남호 같은 이름이 붙었다는 걸 생각해 보시라.

그 뒤 열차의 운행 횟수가 증가하면서 각각의 열차에다가 서로 다른 이름을 짓는 관행은 없어졌으며, 그건 그냥 차량의 번호로 대체됐다. 그래도 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각각의 기관차 종류별로 모가, 미카, 파시, 혀기, 마터 등의 고유한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그건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다. 디젤 이후부터는 종류(천· 백)와 개별 차량(십· 일)을 모두 4자리 번호만으로 식별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때는 대등한 등급의 열차도 경부선을 다니는 놈과 호남선을 다니는 놈이 다를 정도로 온갖 명칭들이 난립하고 있었지만, 이것들을 모두 정리하여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4종류의 명칭이 노선과 차량 종류를 불문하고 오로지 차급만을 나타내는 깔끔한 체계가 1984년 1월부터 정착했다.

그게 20년 가까이 잘 유지되고 있었는데 2000년 11월엔 정선선에서 비둘기호가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사라졌다.
2004년 4월부터는 KTX라는 더 높은 등급이 등장하고, 객차형 통일호가 경춘선· 중앙선 등을 마지막으로 운행하다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2010년경부터는 누리로, ITX-청춘, ITX-새마을 같은 새로운 전동차들이 자꾸 등장했다.

  • 누리로는 기존 무궁화호를 전혀 건드리지 않으면서 무궁화호와 대등한 차급을 표방하는 반면,
  • 경춘선에만 2층 열차 형태로 다니는 ITX-청춘은 새마을호보다 높고 KTX보다 낮은 새로운 차급이다.
  • 한편, ITX-새마을은 기존 새마을호를 대등하게 대체· 계승하는 차급이다.

즉, 이들의 위상은 모두 제각각 다르다.

그리고 2018년에는 재래식 새마을호가 최후의 노선이던 장항선에서 종말을 고하게 되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머지않아 경원선 통근열차도 전철에 밀려 사라질 예정이다.
그러니 재래식 차급의 관점에서 보면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중에서 남는 차급은 무궁화호밖에 없다. 무궁화호는 고속철이나 여타 새로운 차급으로 재편성되지 않은 나머지 기관차-객차형 일반열차들을 싸잡아 일컫는 명칭이 됐다. 기존 차급 체계가 굉장히 많이 문란해진 셈인데 교통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3. 전철 노선도의 배색 체계가 모호해짐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도권 전철 노선도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서울 역-청량리 구간만 빨강이고 나머지 철도청 광역전철들은 '국철'이라는 이름으로 몽땅 회색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 노선도의 디자인이 확 바뀌었다. 서울 지하철과 직통 운행하는 국철들은 애초부터 그 지하철의 일부 구간인 듯이 동일한 색깔과 노선명으로 구분 없이 표기되게 됐다. 그리고 1호선은 회색도 빨강도 아닌 군청색/남색이라는 새로운 색으로 전구간이(종로선, 경부선, 경인선, 경원선) 싹 통일되었다.

이건 열차의 운행 계통을 승객에게 직관적으로 이해시킨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바람직한 조치였다. 하지만 그 당시 서울 지하철과 직결하는 구간이 없이 전적으로 혼자 노는 국철이던 '분당선'만은 번호 없이 노선명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용산-성북 계열은 여전히 '국철'이라는 이름으로 뭔가 1호선의 어정쩡한 지선처럼 여겨지게 됐다.

그 뒤 지금은.. 코레일이 공사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공항 철도와 신분당선처럼 운영 주체가 도시의 지하철이 아니면서도 다소 이질적인 철도가 등장했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과 직결하지 않는 광역전철도 경춘선, 경의선, 경강선, 그리고 앞으로는 소사-원시(일명 서해선)에 이르기까지 등 더욱 많이 생기게 됐다. 이젠 광역전철들도 노선도에서 색깔 분배를 어찌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게 됐다.

그 와중에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경전철이다. 경전철은 노선도에서 선(edge)은 모두 회색으로 그리고, 역명(vertex)을 고유한 노선색으로 그리는 것으로 디자인 기준이 정해졌다고 한다. 우이 경전철은 종점이 북한산이어서 그런지 초록색 계열이다. 다만, 이 방식대로라면 환승역은 무슨 색으로 칠할지 좀 애매해질 것 같다.
과거에 국철을 표시하던 색깔이 이제는 경전철을 나타나는 대표색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4. 철도 차량의 특징

철도 차량은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고무 타이어 대신 쇠바퀴가 달렸고 레일 위를 달린다는 원초적인 차이점 말고도 다음과 같은 큰 차이가 있다.

(1) 좌석에 안전벨트가 없다. 자동차는 입석형 시내버스 정도나 안전벨트가 없지만, 열차는 KTX조차도 안전벨트가 없고 자리 주변이 제일 깨끗하다. 철도는 자동차와 같은 급의 정면충돌 교통사고와 급정거, 전복 상황을 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위와 비슷한 이유로 인해, 객실의 유리창이 자동차와 동급의 안전유리 재질이 아니다. 그래서 돌 같은 거 맞았을 때 생각보다 잘 깨져서 파편 때문에 인명 사고가 종종 난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비상 상황에서 유리창을 깨고 차량을 탈출해야 할 때, 자동차 창문처럼 너무 안 깨져서 "창문 어디부터 두들겨야 잘 깨지고.." 이런 걸 고민할 필요도 없다.

(3) 그리고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인데, 철도 차량은 차축에 차동 기어가 일단 일반적으로는 없다. 철도는 자동차와 같은 급의 급커브 주행을 염두에 두지 않으며, 안 그래도 바퀴와 레일의 마찰이 작은데 접지력을 약화시킬 여지가 있는 장치와도 구조상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도 차량 차축을 보면 양 바퀴 사이에 아령처럼 길다란 작대기만 끼워져 있지, 자동차 차축처럼 중앙에 동그란 공처럼 불룩 튀어나온 부위가 없다.
그 대신, 얘는 바퀴 단면이 약간 경사져 있다. 레일에 닿는 바퀴의 지름이 커브의 안쪽과 바깥쪽이 서로 차이가 나게 하는 방식으로 커브를 극복한다. 종이컵을 옆으로 눕혀서 데구르르 굴려 보면 위쪽과 아래쪽의 지름의 차이로 인해 커브를 틀며 돌지 않던가? 그걸 생각하면 된다.

물론 철도 차량에서 이를 구현하려면 레일과 바퀴 모두 커브의 곡률까지 고려해서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퀴가 종이컵처럼 두께가 무한한 게 아닌데, 이 방식만으로는 지하철처럼 반지름 100~200m대밖에 안 되는 급커브를 부드럽게 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때는 주행 중에 커브 안쪽 바퀴가 헛돌면서 끼릭끼릭 쇳소리가 나는 걸 피할 수 없다.

5. 철도의 날 날짜가 바뀌었나?

딱 위의 4번까지만 글을 쓰고 끝내려 했는데 본인은 최근에 철도와 관련하여 웬 생뚱맞고 해괴망측한 소식을 들었다.
건국 이래로 70년 가까이 시종일관 9월 18일이던 우리나라의 철도의 날 기념일이... 올해(2018)부터 별안간 6월 28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행 철도의 날은 1899년 9월 18일에 한반도에서 최초로 개통한 철도인 경인선의 개통일을 기준으로 제정돼 있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여러 나라들도 철도의 날은 그 나라의 최초의 일반열차 철도 내지(한국으로 치면 경인선), 아주 중요한 장거리 간선 철도(한국으로 치면 경부선)가 개통한 날 당일, 또는 그 날짜 근처로 제정돼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철도의 날은 아주 합리적인 날짜이다. 경인선은 오늘날까지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동차만으로 2복선 완급 분리 운행을 하는 트래픽 킹왕짱인 철도이다. 경인선이 당장 없어져 버리면 그쪽 사람들 출퇴근길이 어떻게 바뀔까?

그런데 그 날짜가 문헌상 잘못됐다거나, 경인선이 완전히 폐선되어서 사람들 기억에서 싹 잊혀졌다거나, 사실은 경인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철도가 더 옛날에 개통된 게 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일제 잔재 청산한다는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구한말에 도대체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존재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듣도 보도 못한 대한제국 철도국이 1894년 6월 28일에 창설됐대서 저 날로 전격 변경한댄다. 야 이..

내가 옛날에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까지는 개인적으로 찬성하는 소신이었고 그건 지금도 변함 없지만.. 저건 정말 너무 어거지다. 조선총독부 청사도 건물 자체보다는 그게 북악산 정면을 딱 가리는 위치가 미관에 너무 좋지 않아서 철거하는 걸 말리지 않겠다 정도이다. 무슨 일제 쇠말뚝 마냥 민족 정기, 일제 잔재 청산..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말이다.

젠장, 별 게 다 일제 잔재래. 경인선 철길을 걷어내든가, 아니면 서울역 구 역사나 철도 좌측통행도 다 일제 잔재 적폐니까 다 때려부숴 보라고, 이 미친놈들..

일자리 날아가고 경제 운지하고 있는 동안 맹 쓸데없는 것만 자꾸 바꾼다니까.. 괜히 여권 디자인이나 바꾸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근처에 있는 국군의 날은 일제하고는 정말 1도 관계 없는 날이다. 하지만 그건 저놈들이 골수 종북좌빨 성향이니까 38선을 넘은 날이 고깝고 불편해서 못 바꿔 안달인 것이다. 그러니 임팩트가 훨~씬 덜한 독립군이니 광복군이니 뭐라도 갖다붙이려고 수작이지.

쟤들은 진짜로 일제 잔재 청산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대한민국 정체성의 부정과 말소, 역사 왜곡이 목적인 아주 사악하고 나쁜놈들이다. 아유 또 괜히 성질 나네..

Posted by 사무엘

2018/05/20 08:39 2018/05/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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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철도 동향

1. 수서 고속철

작년 말엔 잘 알다시피 서울의 동남부를 지나는 수서 발 수도권 고속철이 개통했다. 얘는 지금까지 개통해 온 호남, 전라, 공항선, 동해선, 경전선 KTX와는 달리 서울 구간에서 완전히 새로운 선로를 사용하며, 운영 회사도 코레일이 아닌 다른 기업이다. 결정적으로 차량 역시 KTX가 아닌 SRT라는 다른 이니셜을 쓴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온 코레일 관할의 고속철도와는 조금 다른 고속철이 또 하나 생긴 셈이다.

서울 강남과 성남시 일대는 구한말 때부터 철도가 놓였던 서울 강북의 구시가지와는 달리 전통적으로 철도 불모지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여기도 드디어 장거리 간선 철도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열차는 수서부터 평택까지 40km가 넘는 구간을 온통 고가가 아닌 지하로 다니다가 지제 역 이남에서부터 기존 고속선과 합류하여 천안아산 방면으로 간다. 경부고속선은 천안 이북에서는 수도권 고속선과 갈라지고, 이남에서는 호남 고속선과 갈라지는 형태가 됐다.

수서 고속철은 기존 경부선을 전혀 경유하지 않는다. 얘 덕분에 경부선 금천구청 이북의 기존선에 여유가 좀 생겼으며, 호남· 전라· 장항선이 철수했던 서울 역은 KTX 개통 이후 거의 10여 년 만에 다시 경부 이외의 타 노선 열차들을 부분적으로 취급하게 될 거라고 한다.
수도권 고속철 선로는 고심도 급행 광역전철(일명 GTX)과도 공유 예정이라고 하지만 GTX는 아직까지 진척이 없다. 이매-판교 사이에, 그리고 구성 역 근처에 또 신설한다는 말이 있는 역은 GTX 역을 말한다.

뭐 그렇다고 해도 코레일과 SR (SRT 운영사)의 관계는 대한 항공과 진에어의 관계 비슷한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인다. 대한 항공 vs 아시아나 같은 거창한 걸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공항 철도는 명목상 다른 회사이긴 하지만 여전히 코레일과 더 가까이 있는 어정쩡한 관계인 걸로 안다.

2. 서울 메트로와 도철의 합병

고속철에는 경쟁사가 등장했지만, 서울 지하철은 경쟁 구도와는 정반대로 서울 메트로와 서울 도시철도 공사의 합병이 올 5월쯤에 결정되었다. 대통령 선거 다시 하는 시기와 비슷하게 됐구나. 이로써 1~8호선의 관할 기관이 하나로 합쳐지게 됐다. (9호선은 여전히 혼자 독고다이 체제)

하긴, 한 도시의 지하철 노선에 사기업도 아니고 동일 업종의 공기업이 둘씩이나 있는 건 좀 흔한 모습은 아니긴 했다. 회사가 완전히 하나가 돼 버리면 중복 투자가 줄어들고 경영 효율이 올라갈 것이다. 서울 말고 타 도시들은 '교통 공사'라는 이름으로 지하철 운영사와 시내버스 운영사까지 하나로 통합된 사례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운영사의 통합으로 인해 파업에 상대적으로 취약해지지는 않겠나 하는 약간의 우려도 있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의 지리적인 통합 본진은 서메 쪽이 아닌 도철 쪽으로 결정됐는데, 이 역시 신의 한수가 가미된 통찰이다. 어차피 도철 본사의 근처에는 도철이 아닌 서메 소속의 '군자 차량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외곽이 아닌 시내 중심부에 지하철 회사 본사가 있고 차량기지까지 있으니 최적의 입지 조건이 아닐 수 없다.

3. 부산-울산 광역전철 1차 구간(부전-일광)

파업 때문에 한 50일 정도 딜레이를 먹는 악재를 겪었지만, 그래도 2016년을 넘기지는 않고 간신히 개통했다. 부산의 북쪽 외곽인 기장군에 있는 일광 해수욕장을 전철 타고 찾아갈 수 있게 됐다.
4량 편성에 노선색은 군청색, 서울을 지나지 않는 광역전철이라는 점에서는 경강선과도 심상이 비슷해 보인다. 아니, '코레일 블루'라고 불리는 저 군청색은 전국 어디서든 코레일 관할의 광역전철을 나타내는 디폴트 대표색이 된 건지도 모른다.

서울-수도권 광역전철이 1974년 개통인데 다음으로 부산은 이거 뭐 40년을 훌쩍 넘겨서야 광역전철이 생기는구나. 그래도 지하철이나 광역전철 말고 경전철은 반대로 부산에서 국내 최초로 시작해서(4호선, 김해) 의정부와 용인, 대구 등을 거쳐 서울로 역수입되는 중이다.

4. 새마을호의 추억

과거에 비둘기호는 정선선에 최후의 열차가 다니다가 2000년 11월, 01년도 수능 바로 전날에 마지막 운행을 하고 퇴역했다.
객차형 통일호는 과거에 KTX의 개통과 함께 여러 노선에서 동시에 사라졌고(경춘선, 중앙선 등)..
동차형 통일호인 통근열차는 현재 전국에서 딱 한 군데 경원선에만 다니고 있다. 이것도 수 년 뒤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연천까지 연장되면 사라질 것이다.

무궁화호야 제일 보편적이고 흔한 등급이며 ‘누리로’가 근본적으로 무궁화호를 대체하는 컨셉도 아니기 때문에 당분간 망할 일이 없다. 하지만 새마을호는 KTX 같은 상위 열차와 대체 전동차들의 등장으로 인해 지위가 굉장히 위태로워져 있다.
경부선 같은 주요 간선은 ITX-새마을로 완전히 대체됐으며, 재래식 새마을호는 객차형만 남아서 유일하게 장항선에서 명맥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가 적당히 길고 그나마 전철화가 안 된 덕분에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다.

한 계급의 열차가 최후까지 운행되던 곳이 정선선, 경원선, 장항선의 순으로 변화한다니 흥미롭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이란에서 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45명 가까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쳤다.
이건 고장으로 멈춰 서 있는 열차를 후속열차가 발견을 못 하고 들이받은 전형적인 신호 시스템 미비 후진국형 철도 사고이다. 화재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객차를 보아하니 우리나라에서 내구연한 경과로 인해 퇴역하고 2014년에 저기로 수출된 새마을호 객차(아마도 동차형)랜다. 친근한 저 창문 모양만 딱 봐도..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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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늘과 땅은 사라져도 새마을호 객실에서 울려퍼졌던 Looking for you의 기억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shall not pass away).

5. 정태보존된 재래식 열차들

내가 철도 박물관을 마지막으로 찾아간 때가 2013년경이었는데 그때 이후로 철박에는 새로운 유물 차량이 더 추가되었는가 보다.
먼저, 지금의 경복호 이전에 대통령 전용 열차로 사용되었다고 하는 일명 ‘특별동차’이다. 경복호가 새마을호 DHC의 파생형이라면, 이 특별동차는 전신인 DEC의 파생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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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이 승만 시절의 옛날 객차형 열차도 아니고 이런 동차형 열차도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1969년에 도입했다고 하니까 시기적으로는 DEC보다 훨씬 더 일찍 도입된 것이고 차라리 옛날 관광호와 비슷한 연배이다. 철박에서 이거 전시 기념 행사는 2015년 5월 4일에 치러졌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무궁화호 디젤 동차라고 불리는 NDC도 현업에서 완전히 은퇴한 뒤 2015년 저 비슷한 시기에 철도 박물관에 하나 들어갔다. 얘 역시 아주 희귀한 차종으로, 한때는 철도청장 내지 코레일 사장 전용 열차로 쓰이는 편성도 있었다고 한다.
DEC는 새마을호로 도입됐다가 무궁화호로 강등됐고, CDC는 통일호(통근열차)에서 보기 드물게 무궁화호로 승격된 반면, NDC는 도입부터 폐차 때까지 시종일관 무궁화호로만 쓰였다는 차이가 있다.

철도 박물관에 컨텐츠가 추가되었다니 기쁘다.
그나저나 새마을호 디젤 동차는 철박에 없고 웬 경부선 청도 역 한켠에 동력차와 객차가 하나 보존되어 있다. 거기가 철도가 강세인 동네이기도 하고.
그리고 중앙선 풍기 역에 901호 증기 기관차가 정태보존 중이다. 철박에 있는 기관차는 아마 파시 형이지 싶다. 이런 정보도 어디 한데 모아 놓고 공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6. 철도 차량 주행 시험장

자동차야 개발 과정에서 테스트를(특히 고속 주행) 위해 사용되는 주행 시험장 트랙이 있다. 현대 자동차의 경우 기본적으로 울산에 있고 화성시 남양 연구소에 더 큰 시험장을 보유하고 있어서 항공 사진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심지어 미국의 모하비 사막에도 국내의 시험장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시험장이 있다.
철도 차량은 새로 개통하는 노선에서 시운전을 하는 식으로 주행 시험을 치른다. 그러나 굳이 특정 철도 노선에 구애받지 않고 개발하는 차량 자체에 대한 주행 시험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선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철도 차량을 위한 전용 시험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라남도에 원래 화물 철도로 계획했던 대불선을 시험선으로 활용해 왔다. 믿기 어렵겠지만 신분당선 전동차도 개통 전에 여기서 테스트를 받았다. (당장 떠오르는 차량이 신분당선 전동차여서..) 화물 열차가 다니라고 전철화까지 한 철도인데 정작 화물 수송용으로는 안 쓰여서 잉여로 전락했지만, 그 대신 다행히 다른 용도를 찾은 셈이다.

그러나 여기는 처음부터 시험선으로 만들어진 선로가 아니다 보니 시설이 아무래도 미흡하고 고속 주행이 어려웠다. 결정적으로 선로가 순환선 형태도 아니기 때문에 양 말단에서는 방향을 전환해야 했고 몇 바퀴 뺑뺑이를 돌며 테스트를 할 수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2018년 개통을 목표로 여객 철도도, 화물 철도도 아닌 철도 차량 전용 시험선의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데.. 위지가 어디냐 하면 오송 근처이다. 안 그래도 거기 근처에는 대전-천안 시험선이 건설되던 당시부터 쓰였던 레일 공장과 차량 기지도 있고, 경부선 기존선과 고속선, 충북선까지 다 근처에 있기 때문에 이들 내부를 선으로 연결하면 순환선을 만들기 아주 좋다.
국내의 고속선 선로 중에서 시험선 명목으로 제일 먼저 건설이 시작된 구간의 주변에, 아주 흥미로운 특수 목적 철도가 새로 만들어진다니 기대된다.

7. 안전벨트가 없는 교통수단

고속철 얘기부터 시작해서 박물관과 과거 추억의 열차 얘기까지 골고루 늘어놓게 됐다.
본인은 얼마 전엔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좌석에 앉고 나니 복부에 아무 압박이 없는 느낌이 굉장히 이상하고 어색했다.
얼마 못 가 좌석 주변을 손으로 더듬으며 안전벨트를 찾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정도 폭과 간격인 좌석은 고속버스나 비행기의 좌석과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져서 말이다.

난 택시를 타도 벨트부터 착용하는 드문 승객 중 하나다. 아니, 택시에서는 매우 높은 확률로 내가 스스로 운전할 때보다 더 아찔한 기동과 과격한 G를 경험하는 편이니, 방어 기질이 발휘되어 적극적으로 벨트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철도가 전국 방방곡곡에 깔려 있어서 평소에 열차를 많이 타고 다녔으면 나에게 이런 강박관념이 생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철도는 안전벨트를 구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가감속 하며 매우 안전하고 웰빙스러운 교통수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서 고속철을 어서 타 보고 싶다. 율현 터널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대학 시절에 신화 창조의 비밀 다큐에서 고속철 대전-천안 시험선 건설 에피소드를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비슷한 길이의 고속선이 이제 고가로도 모자라서 올지하로 뚫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수서 고속철 타고 부산 가서 부산-울산 광역전철을 시승하고 오면 즐거운 철도 답사가 되겠다. 둘은 비슷한 시기인 2016년 12월에 개통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평창 가는 철도도 가까운 미래에 완전 개통하겠지.. 이거 준비하느라 중앙선도 서울 수도권 구간은 3, 40여 년 전에 경부선이 한창 고속화하던 것처럼 이제야 선로를 개량하고 열차 주행 속도가 상승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뿐만 아니라 서쪽의 신안산선과 소시-원사선도 어서 개통해야 하지 않겠는가. 광주에 이어 시흥, 김포 같은 곳에도 어서 철도가 들어가야 한다.

이것들을 증언하는 철도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반드시 속히 개통하리라.”

Posted by 사무엘

2017/03/13 08:35 2017/03/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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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의 철도계 새소식

내 블로그에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 있기에 잠시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하겠다.

1. ITX 새마을 운행 개시

등굣길에 근처 철길에서 지금까지 못 보던 열차가 지나가는 걸 봤다.
이 빨간 열차는 바로.. 지금의 새마을호(전후동력과 기관차 견인형 모두)를 대체할 차세대 열차 ITX 새마을이다. 지난 5월 12일부터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작년 초에 퇴역하고서 1년 4개월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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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1974년에 등장한 이래로 40년째 열차 이름으로서 명맥을 이어 가는구나!
10여 년 전, 정식 개통 전에 클로즈 베타테스트 중이던 지금의 떼제베 개량 KTX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누리로, ITX 청춘 등, 2010년대부터는 여객열차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전부 전동차 기반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열차 호칭에서 등급명-차량명을 병기하는 체계도 차츰 정착해 가고 있다. KTX 산천이 원조였고 말이다.

누리로의 명칭도 이런 체계에 편입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어찌 되려나 모르겠다.
무궁화호라는 이름은 그냥 예전의 기관차 견인형 여객열차 내지 개량형 디젤 동차의 총칭으로 남을 듯. 그리고 배 이름 관행의 잔재이던 '-호' 접미사도 이제는 없어져 가는 추세다.

우리 학교는 앞에 철길이 있어서 매우 아주 굉장히 좋다.
가끔 디젤 기관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멀리서라도 들으면 마음의 기쁨과 안정과 평안이 찾아온다.

2. 평화열차 DMZ train 운행 개시

'경의선' 하면 내력과 관련하여 철덕이 할 말이 참 많다.
서울 시내 구간이 일반열차들의 기지 회송 구간으로 쓰인다는 특성상 오랫동안 수도권 광역전철 버프를 못 받고 있다가 2009년에야 전철이 개통했다.
그 전, 2006년 가을에는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의 1987년 초기 도입분이 퇴역하면서 일명 '임진강 라이너' 새마을호가 3년 남짓 운행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경의선 수도권 전철이 문산까지 뚫리면서 임진강 라이너는 자연스레 폐지되었으며, 통근열차가 다니는 단선 비전철 구간은 운천, 임진강, 도라산 같은 남북 철도 연결 버프를 받은 21세기 구간으로 확 줄어 버렸다. 운행 거리가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지선 수준이 된 것이다. 전국에서 CDC 기반의 통근열차(구 통일호)가 최후까지 다니던 구간은 이 경의· 경원선밖에 없었는데, 이 둘 사이에서도 경의선은 경원선과는 처지가 많이 달라졌다. 경원선은 동두천 이북으로도 거의 50분에 가깝게 달릴 비전철 구간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4월을 끝으로 통근열차 명목의 경의선 여객 열차의 운행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럼 오리지널 CDC를 볼 수 있는 곳은 진짜로 경원선밖에 안 남는구나.
그 대신 등장한 것은 일명 DMZ-train이라고 불리는 '평화 생명 관광 열차'이다. 어차피 경의선에서 그 짤막한 CDC 구간의 수요는 안보 관광객밖에 없었으니 적절한 조치인 것 같다. 이 열차는 운임 체계상으로 KTX, 무궁화호 같은 일반열차가 아니라 O-train, V-train 같은 관광열차의 위상이 된 것이다.

운행 횟수는 하루 두 번이고 당연히 패키지 안보 관광과 연계해서 다닌다. 차량은 새로운 건 아니고 기존 CDC를 관광용으로 개조한 물건이라 함. 물론, 운임은 과거의 통근열차보다 훨씬 더 올라갔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민통선 구간에 있는 도라산까지 갔다 오려면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하며 돌아오는 표도 반드시 같이 구입해야 한다.

모든 변화가 달갑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특히 관광열차 명목으로 비싸진 운임) 본인은 이게 철도 경영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한 변화인 것 같다.
또한 한 가지 좋아진 점은, 이 열차는 문산이 아니라 서울 역에서 도라산까지 환승 없이 직통으로 간다는 것이다. 서울과 문산 사이엔 능곡 한 곳에서만 추가 정차한다.

올여름에는 경원선에도 이런 컨셉을 반영하여, 청량리에서 백마고지까지 가는 경원선 버전의 DMZ train도 운행을 시작할 거라고 한다. 그래도 경원선에는 정규 여객 통근열차도 여전히 병행이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은 정선선, 그리고 교외선에도 안보 쪽은 아니어도 비슷한 컨셉의 관광열차가 좀 다녔으면 어떨까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4/05/17 08:26 2014/05/1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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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철도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철덕이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주제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여객 열차의 이름의 변천사이다. 열차의 이름은 그 열차의 차종을 식별하는 동시에 등급을 식별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 위상이 조금 모호하다. 철도는 고속버스나 비행기처럼 출발지와 도착지만이 중요한 point-to-point 수송 교통수단이 아니라 중간 정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며, 정차 빈도에 따라 속도의 편차가 큰 여러 열차 등급이 존재할 수 있다.

1899년에 우리나라에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하고 1905년에 경부선이 개통했을 때는 고유명사라 불릴 열차의 이름 같은 건 딱히 없었다. 그냥 빠르다는 수식어가 붙은 ‘급행열차’라는 용어만이 쓰일 뿐이었다. 프랑스의 떼제베(TGV)가 거창한 뜻이 담겨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아주 빠른 열차’가 전부이듯이 말이다. 증기 기관차로 경인선 제물포-노량진이 1시간 40분 가까이 걸렸고 지금의 서울-부산뻘인 경부선 서대문-초량이 17시간이나 걸렸지만, 그 시절엔 그것만으로도 속도 혁명이라 불리기 충분했다.

그 해 5월부터는 서울-부산이 14시간대로 단축된 특급 열차가 운행을 시작했지만, 아직 그것만을 식별하는 명칭은 없었다.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원 태우 의사에게서 짱돌을 맞아 얼굴을 크게 다친 게 1905년 11월이니, 그건 바로 이 열차의 탑승 중에 발생한 사건일 것이다. 열차의 표정 속도가 아직 시속 30km를 채 못 넘어서 지하철보다도 느리던 시절이다. (그나마 요즘 지하철은 1km를 채 못 달리고 정차를 반복하면서도 그런 표정 속도를 내는데!) 그러니 그 시절엔 열차 밖에서 돌을 던져서 열차 안의 승객을 맞히는 게 가능했다.

한국 철도에서 최초로 고유명사 이름이 붙은 열차는 1906년 4월 16일부터 경부선을 달리기 시작한 ‘융희호’이다. 이것은 망해 가던 대한제국의 연호에서 따 온 명칭이다. 서대문-초량을 11시간 만에 주파했으니 경부선 개통 직후의 열차 운행 시간인 17시간에 비하면 상당히 빨라진 것이고 사실 KTX 개통 전까지 다니던 청량리-부전 전역정차 통일호보다도 빨랐다 (12시간 반이나 걸리던 1221 열차)! 표정 속도는 30km/h를 드디어 돌파하여 지하철을 따라잡았고, 최고 속도는 60km/h 정도에 진입했다.

융희호의 중간 정차역은 KTX 개통 전에 정차를 좀 많이 하던 경부선 새마을호와 얼추 비슷한 수준(8~9개역?)이었다. 여객 취급뿐만 아니라 물과 석탄 보충을 위한 정차도 불가피했다. 그러나 가감속이 병맛인 증기 기관차로 통일호만치 정차를 많이 했다간 그 속도를 절대로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때는 ‘융희’라는 이름을 반으로 쪼개서 서울 방면 상행은 ‘융호’라고, 부산 방면 하행은 ‘희호’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때는 경인선과 경부선이 두 말할 나위가 없이 단선이고 열차 운행도 몹시 드물었기 때문에 특정 열차에 곧바로 고유한 이름이 붙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엔 물가 대비 열차 운임이 지금보다 훨씬 더 비쌌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서민들은 장거리 여행을 하려면 지금으로 치면 고속버스나 KTX가 아니라, 비행기 정도는 타는 각오를 하고 열차를 타야 했다. 박리다매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이동이 빈번한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지금도 일본은 본토의 열차 운임이 사철 위주이고 비싼 걸로 악명 높은데 그 시스템이 식민지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실제로 일제가 조선 땅에서 철도를 운영하여 벌어들인 수익은 굉장한 흑자를 냈다고 한다.

융희호가 첫 운행한 건 한강 철교가 완공되고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가는 경의선이 개통한(1906년 4월 3일) 거의 직후였다. 다만, 지금과 같은 서울 역은 없었고 공덕, 서강으로 가는 오늘날의 용산선이 그때의 경의선 본선이었으니 그 길을 통해 열차는 서울 이북의 신의주로 갔다. 융희호는 1908년부터 부산-서울이 아니라 부산-신의주를 몽땅 직통 운행하기 시작했다.

자, 그 후 조선이 망하고 일제 식민지가 되고부터는 열차 이름도 대놓고 하카리(빛), 노조미(소망) 같은 일본어가 등장했다. 그리고 스케일은 더 커져서 부산에서 아예 만주까지 열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일제는 애초에 대륙 침략의 발판을 닦으려고 철도를 놓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1936년 12월 1일부터는 ‘아까스키(여명)’ 호라는 특급 열차가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일제 강점기를 통틀어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열차였다. 경부선이 전구간 복선화되기도 전에 그것도 증기 기관차로 서울-부산 무려 6시간 45분을 달성했다는 건 사기에 가깝다. 나중엔 6시간 반으로 더 단축!

일제 강점기 때 이 정도로 인프라가 구축됐으니 그 당시엔 육지에서 철도보다 더 빠른 교통수단은 없었고, 6· 25 때도 대통령과 참모진은 열차를 타고 피난을 갔다. 자동차는 서울을 벗어나면 빠르게 달릴 만한 포장 도로가 없어서 서울-대전이 과장 좀 보태면 8시간씩 걸리는 지경이었다. (사실 지금은 북한이 평양만 벗어나면 이 지경이기도 하고. ㄲㄲ)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인 1946년 5월 27일, 시대가 시대인 만큼 ‘해방자호’라는 이름의 증기 기관차가 경부선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냥 해방호도 아니고 왜 ‘자’가 붙었나 하면 이건 者를 뜻하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Korean Liberator. 이 열차는 고급 컨셉을 표방하지 않았고 일본인 철도 경영자가 물러나서 그런지 서울-부산 운행 시간이 9시간으로 크게 늘었다.

그리고 한국 철도는 이 승만 정권의 말기인 1960년 초가 돼서야 ‘특급 무궁화호’를 통해 옛날 아까스키 호의 표정 속도를 회복하게 되었다. 동력원은 증기가 아닌 디젤이다.

자막: 특급 무궁화호 등장
경부선에 또 하나의 특별 급행열차가 등장했습니다.
새로운 특급열차는 우리 이 대통령 각하께서 '무궁화호'라고 명명해 주셨는데, 2월 21일 아침부터 운행했습니다.
종래의 통일호보다도 30분이나 빠른 무궁화호는 서울-부산간을 6시간 40분에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호’라는 접미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때까지 열차의 명명 방식은 배의 명명 방식과 비슷했다. 경부선을 다니는 열차와 호남선을 달리는 열차의 호칭이 달랐다. 이때의 무궁화호는 지금의 무궁화호와는 전혀 관계 없는 경부선 열차였고, 호남선에는 동급의 열차인 삼천리호나 태극호가 달리는 식이었다. 마치 옛날에 타이타닉 호에도 올림픽, 브리타닉 같은 동급의 자매선이 또 있었듯이 말이다.

또한 옛날에 증기 기관차는 오늘날의 디젤이나 전기 기관차와는 달리 외형적인 차륜 배치가 동력비 변환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여객용 기관차와 화물용 기관차의 구분이 더욱 분명했으며 차륜 형태를 식별하는 이름이 존재했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미카, 901호, 파시 같은 이름이 바로 그 예이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증기 기관차는 1967년 8월 31일을 끝으로 현역 운행을 완전히 종료한다.

자, 1960년대 이후로는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재건호, 맹호호, 청룡호, 백마호처럼 호가 아니라 ‘부대’를 붙여도 될 것 같은 북한/군대스러운 명칭도 열차에 부여되었는데.. 실제로 박통 시절엔 월남전 참전 부대 이름들이 전부 열차 명칭으로도 의도적으로 쓰였다. 군사 정권 아니랄까봐. 그것 외에도 배에 이름 붙이듯이 열차에도 노선별로 다양한 이름이 난립(?)하기 시작했으니, 상록호, 풍년호, 부흥호까지. 비둘기호와 통일호도 옛날부터 명칭 자체는 존재했다. 단지 이름의 용도 내지 의미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 뿐이다.

그러면서 열차의 속도는 특급열차를 위주로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고, 1969년 6월 10일에 등장한 초호화 특급 열차인 관광호가 드디어 서울-부산을 5시간대도 극복한 4시간 50분 주파를 달성했다. 경부 고속도로도 아직 없던 시절에 속도도 속도이거니와, 그 옛날에 객실에 천장 선풍기 대신 에어컨이 달려 있었을 정도면 얼마나 호화로웠을지 상상이 된다. 단지 관광호의 물가 대비 운임은 일본의 신칸센보다도 더 비쌌다는 점 역시 감안하시길. 진짜 돈지랄용이었다.

이 열차는 훗날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한 날부터 ‘새마을호’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바뀌었으며 이것이 그로부터 30년 뒤에 KTX가 개통할 때까지 대한민국 최고급 열차의 혈통을 이어 나갔다. 서울-대전-대구-부산만 찍는 그 고매한 열차 라인 말이다.

1977년 8월부터는 새마을호를 제외한 모든 열차들은 그냥 등급만으로 우등-특급-보통으로 바뀌게 정리되었다. 일일이 이름을 붙이기에는 열차의 운행 노선과 횟수가 크게 늘어서 이렇게 단순화가 이뤄진 셈이다. 우등열차가 오늘날의 무궁화호의 전신이며, 통일호가 특급이라고 불렸다니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1984년 1월 1일이 돼서야 드디어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체계가 정립되어서 열차의 이름은 오로지 등급만을 나타나게 바뀌었다. 새마을을 제외한 나머지 이름들은 국민 공모를 통해 뽑은 거라고 하지만, 결국 옛날에 한 번씩 쓰인 적이 있는 명칭들을 재사용한 셈이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새마을호는 잘 알다시피 1985년 11월 16일에 서울-부산 운행 시간이 4시간 10분으로 단축되어 표정 속도가 드디어 100km/h를 돌파하였으며, 이것이 한국 철도 역사상 기존선에서 이뤄진 최후의 표정속도 향상 기록이다. 기관차의 출력 증대를 통해 최대 시속 150km 주행 자체는 관광호 시절부터 가능했지만, 선로/선형 개량과 신호 시스템 개선을 통해서 고속 주행 가능 구간을 늘린 덕분에 가능했던 결과이다.

지금까지 과거 얘기가 길어졌으니 이제 미래 전망을 하고서 글을 맺겠다. 1984년 이래로 거의 30년간 쓰여 온 재래식 ‘-호’ 체계는 오늘날 심하게 문란해지고 의미가 퇴색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지난 2000년 말에 비둘기호가 멸종하였으며, 고속철이 개통하면서 통일호 역시 문서상으로는 사라지고 객차형은 전량 퇴역했다. 통일호 중 통근형 디젤 동차만 통근열차라고 명맥을 잠시 유지했지만, 그나마 얘도 이제 경의선/경원선의 극소수 구간에만 남아 있지 다 멸종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KTX에 밀려 콩라인이 된 새마을호마저도 사망이 임박했다. 2013년 1월에는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드디어 전량 퇴역했고 2014년 말을 끝으로 지금의 새마을호는 객차형까지 죄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럼 ‘-호’ 열차는 무궁화호 하나만 남으니 기존 ‘-호’ 체계가 다 붕괴되는 셈이다.

무궁화호도 디젤 동차(NDC)는 진작에 다 퇴역하고 없기 때문에, 무궁화호는 그냥 재래식 기관차 견인형 일반열차를 총칭하는 상징적인 명칭으로만 남을 것이다. 요컨대 오로지 통일호만이 새마을호와 무궁화호와는 달리 객차형이 동차형보다 먼저 없어졌다. 등급이 등급이다 보니까 말이다.

이런 재래식 열차를 대신하여 꿰차고 들어온 것은 KTX부터 시작해 누리로, ITX-청춘 같은 신형 전동차들이다. KTX는 워낙 특별한 물건이고 누리로는 어차피 무궁화호와 거의 같은 위상과 운임 체계를 계승했다지만, ITX 청춘은 새마을호를 꿰차고 들어와서 새로운 등급을 만들어 냈다. 거기에다 새마을호의 후속 열차로는 ‘ITX 새마을’이라는 이름이 정해졌다고 한다. 1974년 이래로 40년을 이어 가는 ‘새마을’의 명줄은 참 길기도 하다!

오늘날 철도계의 높으신 분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명명 전략은, 열차 명칭을 ‘등급-차종’으로 이원화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등급으로는 고속열차를 뜻하는 KTX, 그 다음으로 장거리 특급 간선을 뜻하는 ITX가 있으며, 이보다 낮은 등급에 대한 이름도 정해져야 할 것이다.

다음 차종으로 말할 것 같으면 ‘KTX-산천’이 있으니 재래식 떼제베 열차를 나타내는 ‘KTX-TGV’ 같은 차종명 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경춘선에 ITX-청춘이라는 2층 열차가 다니듯이 기존 경부선이나 호남선에는 ITX-새마을이 다닐 것이고 중앙선에는 틸팅 열차가 다니게 될 수 있다. ‘새마을’이 이제는 등급명이 아니라 차종명으로 쓰이는 셈이다.

그보다 더 아래의 무궁화급라면 ‘누리로’는 등급명이 될지 차종명이 될지 확실치 않으나, 아마 차종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새마을(ITX)급이든 무궁화급이든 재래식 기관차-객차형 열차는 ‘클래식’(?)이나 그에 준하는 차종명이 붙지 않을까 싶다. 선박의 명명 스타일에서 유래되었던 한국 철도의 열차 명명 방식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가 기대된다.

이렇게 열차 이름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읊어 보니 참 훈훈하고 기쁘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철도가 희망과 동경, 기쁨과 평안을 주는 존재이기를 본인은 원한다. May the railroad richly bless you!

Posted by 사무엘

2013/04/22 08:33 2013/04/2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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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호 디젤 동차의 퇴역

1987년 7월 6일.
민주화를 갈망하며 전국적으로 벌어진 6월 항쟁이 마무리되어 가던 이 날, 한국 철도계에는 일대 혁신이 시작되었다.

“철도청은 오늘부터 서울 부산간의 전후동력형 새마을호 열차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이 열차는 승차감이 좋으며 안전감이 높고 예비동력이 확보돼 고장과 사고를 줄일 수 있습니다.” (MBC 뉴스 보도)


바로, 전통적인 기관차+객차 형태를 탈피하여 전후동력형 새마을호 디젤 동차가 첫 운행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열차를 최초로 제작하여 납품한 업체는 그 이름도 유명한 대우 중공업이었다. 대우 중공업은 이 사실에 대해 무척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승차감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대우 중공업이 자체 개발한 최신 유선형의 전후 동력 새마을 열차가 뛰어난 승차감으로 더욱 쾌적하고 안락한 철도 여행을 약속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7월 1일이라니? 지금도 이렇게 전시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철도 박물관에 적혀 있는 저 날짜는 잘못되었다. 6일로 바로잡혀야 한다.

이때 새마을호는 지금의 KTX를 능가하는 초호화 귀족 열차였다.
열차의 동력차부터가 아주 특이하고 심상찮게 생겼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면서 도중에 대전과 동대구밖에 정차를 안 한다니!
나도 이 새마을호 디젤 동차를 안 봤으면 철덕이 됐을 가능성이 아주 낮아졌을 것이다.

그 당시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내세웠던 장점은 기관차보다 엔진이 작고 가볍고 조용하면서도 성능이 탁월했다는 점이다. 디젤-전기 형태가 아니라 유압 변속기로 동력비를 조절했다. 엔진이 앞뒤로 두 개 달린 대칭형이기 때문에 전차대 없이도 회차가 용이하며, 두 엔진 중 하나가 퍼지더라도 속도가 느려질지언정 그럭저럭 운행을 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예비 동력'이라는 게 그런 의미이다.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나 로켓이야 닥치고 무조건 가벼운 게 진리이겠지만, 구름 마찰력에 의존하는 육상 교통수단은 너무 가볍기만 해서는 바퀴가 헛돌기 쉽다. 이 때문에 동차형 새마을호는 빨리 잘 달릴 수 있는 평지에서는 성능이 탁월한 반면, 지형이 험준한 곳에서는 투입이 곤란했다는 특성도 존재한다.

이 계열의 차량은 1994년까지 대우, 현대, 한진 중공업 생산분이 총 세 차례에 걸쳐 도입되었다.
동력차의 말단 부분에 저렇게 날렵한 45도 경사면을 처음으로 만드는 것부터가 1980년대 후반에는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비록 그때 고속철이 다닌 건 아니었지만 새마을호의 디자인에서부터 이미 프랑스 떼제베의 외형을 벌써 참고한 거라는 썰이 나돈다.

초기 도입분은 6량 1편성이었으나, 나중에는 8량으로 늘고 엔진의 출력도 향상되었다. 차량 말고 엔진은 독일제이며, 우리나라 해군이 운용하는 잠수함에서도 동일한 엔진이 쓰이는 기체가 있다고 한다.

이 열차는 분명 매우 획기적인 열차였으나, 이 열차가 새마을호의 최초 원조는 아니다. 가령,

  • 서울-부산 4시간 10분은 이 열차보다 먼저 특대형 디젤 기관차가 견인하는 새마을호가 1985년 11월에 달성했다. 디젤 동차가 최초가 아니다.
  • 새마을호 특유의 동그란 창문 모양의 객차는 1986년 제작된 '유선형 새마을호 객차'의 디자인을 물려받은 것이다. 디젤 동차가 최초가 아니다.
  • 새마을호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완전 으리으리한 좌석이었던 건 아니다. 1991년에 우등 고속이 생긴 뒤인 1992~1994년의 후기형 객차에서야 드디어 종아리 받침대까지 갖춰진 좌석이 도입되었다.

기존의 기관차형 새마을호 객차와, 새로 개발된 동차형 새마을호의 객차는 객실 인테리어는 거의 차이가 없지만, 전기 배선 규격이 호환되지 않아서 서로 혼합 편성을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승승장구하던 새마을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정차역이 급격히 늘고 위상이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KTX가 개통한 뒤부터는 진짜 처참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KTX를 보조하는 한 수 아래 열차로 굴리기엔 내장재가 너무 좋아서 뭘 어찌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오래 된 엔진은 종종 퍼지고 고장을 일으켰다. KTX에 올인을 해야 하는 철도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진짜 계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열차로 전락했다.

1987년 초기 도입분은 20년이 지난 2007년부터 슬슬 퇴역하기 시작했다. 그 신호탄이 바로 2006년부터 잠시 다녔던 임진강 라이너 새마을호. 그리고 지난 2013년 1월 5일의 마지막 운행을 끝으로, 전후동력형 새마을호 동차가 1월 6일부로 모두 퇴역하여 자취를 감췄다. 아아..! 내 너를 어찌 잊으리!

새마을호라는 열차 등급은 2014년 말까지 유지되다 폐지될 예정이다. 고로 지금 다니는 새마을호는 모두 기관차+객차형 새마을호이다. 비둘기호, 통일호에 이어 새마을호까지 없어지면 1980년대부터 시행되었던 '-호' 열차 등급 체계는 사실상 다 무너지는 셈이다. 사실, '-호'라는 체계는 배에서 모티브를 딴 옛날 스타일 작명법에 가깝다.

* 아, 그러고 보니 여담 하나. 1987년 7월 6일은 연세대에 재학 중이던 고 이 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은 뒤 치료를 받다가 끝내 사망한 바로 다음날이기도 하다. (7월 5일)

Posted by 사무엘

2013/02/28 08:40 2013/02/2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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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호를 아십니까?

국가 원수가 사용하는 관용(官用) 교통수단 중 일부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서 친숙하다.

천조국인 미국은 Air Force One이라는 보잉 747 개조 비행기가 있는 걸로 유명하며 이걸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진 적도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2005년에 미국 부시 대통령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전투기까지 보내 에어 포스 원을 엄호하면서 서울 공항으로 안내를 해 줬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전용기가 없는 건 아니나, 덩치가 작고 한 번에 끽해야 동남아 정도까지밖에 못 간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어디 멀리 나갈 일이 있을 때는 결국 대한 항공 여객기를 그때 그때 전세 내서 쓰고 있다고 본인은 들었다.

비행기 말고 자동차도 있다. 최고급 최고 성능 승용차인 건 말할 것도 없으며, 지뢰를 밟아서 터져도 내부 승객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장갑이 바닥에 장착되어 있다. 유리는 당연히 몇 겹으로 방탄 처리가 돼 있고, 차 내부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게 특수한 도장 처리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그런 거 필요 없다며 서민적인 이미지 어필을 위해, 천장을 완전히 개방하고 신체를 노출한 채 차량 퍼레이드를 하다가, 어느 저격수의 총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고 세상을 떠났다.)

국가 원수가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이런 하드웨어적인 보안 시설뿐만이 아니라 보안을 유지한 운영도 매우 중요하다.
동일한 차체를 둘 이상 보유하고 있는 건 필수. 둘의 스케줄을 서로 다르게 유지한다. 차량의 경우, 아예 동일한 차를 다섯 대씩 연달아 지나가게 하고 그 중 대통령은 완전 random한 차에 무작위로 탑승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모 독립 운동가 중에서도 이 테크닉 때문에 일제 요인의 암살에 실패한 사례가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사이토 총독을 폭탄으로 암살하려다 실패한 강 우규 의사로 알고 있었는데, 자료를 다시 검색해 보니 내가 원하는 사건이 안 나온다. 정확히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높으신 분이 탄 차는 세워서는 안 되고 끊임없이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안전하기 때문. 그래서 이런 관용차가 한번 납시면 당연한 말이지만 주변 도로를 다 틀어막고 관용차를 최우선순위로 통과시킨다.

비행기와 자동차까지 얘기가 나왔고 이제야 철도 차량 차례이다. 열차는 어떨까?
일단, 북한 뽀글이 아저씨가 중국 갈 때 맨날 열차를 애용했다는 게 잘 알려져 있는데, 그건 그냥 고소공포증이 있고 겁이 많아서일 뿐 그가 딱히 철덕이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것도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걔네들은 먼저 경호원의 열차가 지나간 후 2~30분쯤 뒤에야 김 정일이 탄 열차가 지나가고, 또 나중에 경호원의 열차가 또 지나가는 형태라고 한다. 열차 안은 미국의 에어 포스 원과 마찬가지로 어지간한 집무 환경이 다 갖춰져 있고, 요양/의료 시설도 있다.

철도는 역까지 가야 이용할 수 있고, 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환승이 불가피하다. 국가 원수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어지간하면 그냥 자동차나 비행기를 이용하는 게 훨씬 더 낫지 굳이 열차를 타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청와대 밑으로 비밀 선로와 철도역이 놓여 있지 않은 한 말이다.

다만, 비행기를 띄울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너무 안 좋고 도로까지 마비된 상황이라면 열차도 좋은 고려 대상이 되겠다.
옛날에 6· 25가 터졌을 때 이 승만 대통령과 참모진은 열차를 타고 피난을 갔다. 그때는 고속도로도 없었고 포장 도로 자체가 거의 없던 시절이어서, 자동차로는 서울-대전만 해도 4시간~8시간씩 걸렸다. 그러니 그때는 철도가 가장 빠르고 편한 육상 교통수단이었다. 경부 고속도로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박 정희 대통령도 관용 열차를 애용했었다.

이제야 이 글의 결론이 나온다.
대한민국에는 현재 대통령을 위한 관용 열차라는 게 있다. 그 열차의 이름은 ‘경복호’이다. 김 대중 정권 시절에 2001년에 한진 중공업(로템 통합 직전이었던 듯.)에 의뢰하여 만들어진 4량짜리 열차 2편성이 있다. 그때 막 남북한 철도 연결 떡밥이 나돌기도 했으니 말이다. 경의선 도라산 역이 개통했을 때 경복호가 김 대통령을 태우고 실제로 운행된 바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출처는 기억 안 남. 내가 찍은 건 당연히 아니고, 지금 인터넷에 나도는 저 포즈의 경복호 사진은 모두 동일 인물이 찍은 것임.)

경복호는 언뜻 보기에 전후동력형 새마을호 열차처럼 생겼다. 하지만 객차의 창문 모양을 보면 국내에 여객 열차로 존재한 적이 없는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스펙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국가 기밀로 여겨지고는 있지만, 객차수가 적고 관용차 특유의 성능 튜닝을 한 덕분에, 기존 새마을호의 최고 속력이 140km/h인 반면 경복호는 선로가 좋은 곳에서 160km/h까지도 낸다고 알려져 있다.

철도 덕후라면 잘 알듯이 한국 철도 ‘로지스’ 사이트에서는 여객과 화물 공히 전국 모든 열차 운행 스케줄을 조회할 수 있다. 그래서 심지어 신규 개통 전철 노선으로 반입되고 있는 전동차까지 수송 경로를 추적해서 사진을 미리 찍는 철덕들까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복호의 운행은 로지스에 당연히 뜨지 않는다. 이 열차의 스케줄은 코레일의 진짜 극소수 고위 간부만 알고 있다.

경복호는 통행 우선순위가 최상이며, 한번 떴다 하면 동일 운행 경로에 있는 열차들은 다들 깨갱+대피이다. 노 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 귀환을 KTX로 한 걸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재임 중에 경남 지방으로 휴가도 경복호를 타고 몇 차례 떠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비슷한 구간을 달리던 여객 열차는 영문도 모른 채 괴열차를 먼저 기다렸다 보내 주느라 10~20분가량 지연을 먹어야 했다고 전해짐. 이때도 경복호 하나만 달랑 달린 게 아니라 선두와 후미에는 호송인 열차가 있었으며, 호송 열차 역시 겉모양은 PP형 새마을호이다.

어째, 경복호와 관련된 이야기는 보수 진영에서 좀 싫어하는 대통령들하고만 얽혀 있구나.
KTX만 해도, 대통령까지는 아니어도 1급 요원들이 몰래 타는 공간이 있는 KTX 모 편성 얘기가 철덕들 사이에서 나돌았는데, 아예 관용차가 있다는 얘기는 다소 생소할 것이다. 경복호는 코레일 직원들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04/05 08:39 2012/04/0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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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레일 일반열차 시각표의 경부선 하행을 보면,
아침 9시 40분에 출발하는 서울 발 포항 행 새마을호 1041 열차가 있다.
알 만한 분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이 열차의 전신은 그 유명한 울산· 포항 분리(경주에서) 복합 편성 새마을호로, KTX 개통 전에는 번호가 그냥 7x대였다. 그러던 것이 두 계열은 완전히 따로 찢어지면서 제각기 다른 운명을 맞이하였다.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동선이 괜찮은 편인 울산 행은, 부전으로 운행 거리가 연장되고 약간 증차도 되었다. 그 반면 포항 행은 하루 2회의 희귀열차 신세를 면치 못하고, 사실 포항 역을 출발하는 대부분의 서울 방면 열차는 동대구 셔틀 수준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래도 서울-포항 직통 새마을호는 예전처럼 경주 역까지 깊숙하게 들어갔다가 후진해서 나오는 삽질이 사라지고, 서경주(구 금장) 역만 거치게 동선이 약간 개선되기도 했다.

한편, KTX 2차 개통 후 서울-부전 직통 열차도 모조리 동대구-부전 셔틀로 전락했다. 그러나 포항-서울 새마을호는 포항이 KTX의 혜택을 전혀 못 받는 덕분에 아직까지 건재하다. 2012년 현재, 경주에서 서울로 한번에 가는 새마을호는 서경주 역을 찍는 이 열차 하루 두 편밖에 없다. 신경주 역에 1시간에 1대꼴로 KTX가 정차해 주고 있으니, 재래식 장거리 열차는 경영 방침상으로도 많이 남겨서는 안 될 일이다.

동해남부선의 복선 전철화 이설 공사가 모두 끝나고 현재의 경주 역이 사라지는 날이 오면(아마 2015년 전후해서), 그 새마을호도 남아나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때쯤이면 지금 새마을호 열차들의 내구연한 자체가 끝나 있을 것이다. 아마 마지막 새마을호의 퇴역식 때는 전국에서 철덕들이 바글바글 몰릴 것이다.

이렇게 경부선 경유 동해남부선 방면 새마을호 얘기를 본인이 꺼낸 이유는, 지금 1041의 스케줄이 보기에 참 안습해서이다.
과거에 새마을호는 정차를 좀 하더라도 서울-대전이 보통 1시간 40~45분대였고, 1시간 50분은 가히 마지노선이었다.

그런데 지금 1041은 서울 9:40에, 대전 도착이 무려 11:44이다! 현재 서울-대전이 2시간을 경과하는 유일한 새마을호이다.
소요 시간이 가히 무궁화호급이며, 이는 지난 2004년에 KTX 개통 직후에 일반열차가 몇 달간 최악의 막장 정차 시각표로 운행되었을 때에나 볼 수 있던 소요 시간이다. 사실은, 1041보다 정차를 더 하는 1023 같은 열차도 그만치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왜 1041만 유난히도 느린 폭탄 열차가 된 걸까? 이럴 때 철덕의 마음에서는 의문이 꽃핀다. “왜??”
아무리 악한 현 세상이고(갈 1:4) 지금이 영적으로 마지막 시대라 해도, 새마을호가 서울-대전이 2시간이 넘는다는 건 죄악에 가깝지 않은지? -_-;;

본인은 그 이유가 KTX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일단 KTX 개통 후, 서울-영등포가 10분이 넘어서 무려 13분까지 걸리는 열차가 시각표에 등장했다. 이건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영등포 역에서 후속 KTX를 기다리고 먼저 보내 주느라 늦는 열차이다. 예전에는 서울-영등포는 통상 8분이면 충분했고, 요즘은 그것도 못 지키겠는지 10분대로 현실화한 듯하다. KTX가 더욱 자주 운행될수록, 이 지점에서의 병목으로 인해 일반열차의 운행 시간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 KTX가 지연되면 그게 일반열차에까지 누적된다.

1041은 자기보다 5분 나중에 출발하여 뒤쫓아오는 KTX를 영등포 역에서 먼저 보내 주는 듯하다. 무슨 열차냐고? 서울 9:45, 부산 11:58인 서울-부산 무정차 KTX 제1열차이다.

그런데 KTX를 먼저 보내 주는 열차는 얘만 있는 게 아닌데, 1041은 수원 이남부터도 왜 이렇게 주행 속도가 느릴까?
그 이유는 이제 영등포-수원 경유 KTX의 등장 때문으로 보인다. 즉, 기존선을 달리는 KTX의 주변 열차들은 알아서 대피하고 굽신굽신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일반열차의 소요 시간이 더욱 증가한다. 귀하신 KTX님은 끽해야 영등포나 수원에서밖에 정차를 안 하니까.

서울 10:20, 수원 10:48, 대전 11:55인 KTX 353 열차가 있다. 얘는 대전에 도착할 때까지 1041을 중간에 추월을 하는 것도 아니고 1041보다 10분 남짓 뒤에 대전에 도착한다. 하지만 고속선과 기존선 사이의 열차 스레드 동기화 차원에서 부근의 1041도 진행 속도가 늦춰진 걸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새마을호의 서울-대전 1시간대 붕괴 현상은 이렇게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041이 얼마나 느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1041은 자신보다 딱 5분 먼저 서울 역을 출발하는 무궁화호 1271 열차를 대전까지 가도록 추월을 못 한다! 무궁화호급 새마을호라는 걸 웅변으로 입증하는 셈이다.

겨우 5분 간격으로 서울에서 무궁화호를 쫓아가는 새마을호는, 정차역수의 차이로 인해 예전 같았으면 평택이나 천안, 정말 못해도 조치원쯤에서 무궁화호를 진작에 추월하는 게 당연지사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1041은 대전까지 지난 옥천에서야 1271을 간신히 추월하게 된다. 이것도 안습 그 자체이다. 아무래도 KTX 때문에 일반열차들이 운행을 보수적으로 하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이상, 사무엘 님의 철도 평론이었다. 다음은 열차 관련 TRIVIA들.

1. 작년 가을엔 어느 일본인 관광객 여남은 명이, 10분 뒤에 출발하는 서울 9:55발 KTX 303열차를 타고 천안아산 역에 갔어야 했는데 실수로 서울-부산 무정차 1열차를 탄 적이 있었다(서울 9:45 발). 결국 해당 열차 기관사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열차를 그들의 목적지인 천안아산 역에다 잠깐 세워 주고 말았다. 이 때문에 열차는 15분 가까이 지연됐고... 다른 승객들 민폐는 얼마나 됐을까? -_-  게다가 후속 KTX들과 주변의 일반열차들의 연쇄 지연은? -_- 그런 분통 터지는 일이 있었다.

KTX는 이 글에서 귀가 따갑도록 언급돼 있듯, 통과 우선순위가 최상이며 KTX가 지연되면 일반열차들까지 지연이 먹이 사슬처럼 쌓이게 된다. 그런 책임감을 생각해서라도 코레일은 공과 사를 구분하고, 저러지 말았어야 했다.
하긴, 우리나라는 승객의 막장짓에 지하철까지 역주행을 한 적이 있을 정도이니, 행정에 너무 우격다짐이 잘 통하고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고 원칙이 없다. 정치와 외교까지 저러니까 북한도 우리나라를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폭력 시위대에 공권력이 굴복하고, 테러리스트에게 굴복하고, 북한의 생떼 요구에 굴복하고... 그러는 식.

2. 열차 시각표를 보면 아침 11시와 정오 사이에 KTX가 없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아마 전에도 글을 쓴 적이 있지 싶은데, 이때는 잠시 고속선 선로를 정비하느라 의도적으로 열차 운행이 없는 것이다. 주말 임시 열차도 없이 열차 운행이 진짜 하나도 없는 걸 보면, 선로 정비가 심야뿐만 아니라 낮에도 꼭 필요는 한가 보다.

KTX 2차 개통 직후에 서울-부산 새마을호가 완전 전멸하다시피한 적이 있었는데(지금은 반발로 인해 그때보다는 다시 생겨남), 그때 하루 두 편 남았던 새마을호는 하나는 딱 저 시간대에 다니는 놈이었고, 다른 하나는 밤차였다. KTX가 없는 시간대에만 딱 투입한 셈이다.

3. 그래도 아직 천안 역 무정차 통과 열차가 전멸하지는 않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게 용하긴 하다. 예전에는 밤차 새마을호가 하나 천안 통과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서울 8:43 발 동대구 행 1021열차가 천안을 무정차 통과하는 유일한 열차이다.
개인적으로는 대구 역도 좀 한두 개는 통과 열차 좀 넣어 주지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동대구 역이 있고 거리도 용산-영등포만큼이나 굉장히 가까운데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01/15 08:38 2012/01/1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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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으로 보는 옛날 열차들의 추억

오늘날 인터넷으로만 컨텐츠가 제공되고 있는 두산 동아의 <두산 세계 대백과 사전>의 전신은, 바로 동아 출판사의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이다. 무려 1982년에 총 30권 분량으로 나온 책으로, 전체의 가격은 그 시절 물가로 100여 만 원에 달했다! 오리지널의 타이틀에 ‘원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던 이유는, 당연히 그 시절에 올컬러로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이 출판된 건 가히 보통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1990년대에 서비스 팩이라고 해야 할까, 보유편이 두 권 추가로 나왔다. 내 기억이 맞다면, 마지막 보유편에 서울 지하철 5호선에 대해서 “현재 건설 중이고 개통 예정인 지하철”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현재 우리집에서 아직까지 이 책을 주기적으로 꺼내 보는 사람은 가족 중에 물론 나밖에 없다. ㅋㅋㅋ 어머니께서 그 옛날에 그 거금을 들여서 본인의 교육을 위해 투자를 하신 셈이다.
지금은 20년이 넘은 책의 표지 껍질이 우수수 떨어지고 종이가 슬슬 누렇게 변하는 중. 종이가 세월이 들어서 누렇게 변하는 건, 아예 불타서 누렇고 검게 변하는 것과 속도만 다를 뿐 화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산화 현상이라고 하니, 후덜덜하다.

1990년대 초· 중반엔 이 백과사전의 24권의 앞부분만 너덜너덜했다. ㅈ이 시작하는 부분이었고 ‘자동차’ 표제어의 풀이와 자동차 원색 화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본인의 관심사가 컴퓨터, 한국어 등으로 옮겨 갈 때마다 그쪽의 access가 순간적으로 늘곤 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백과사전에서 분량이 가장 많은 표제어는 단연 ‘대한민국’이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모든 요소가 줄줄이 소개돼 있기 때문에.;; )

그러나 지금 자주 보는 부분은 당연히 철도 쪽이다. -_-;; 한국 철도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소개하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오오옷!!
DEC와 EEC가 모두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철덕이라면 엄청난 감격과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잘 모르시는 분이라면 본인의 옛날 글 복습 요망
이 백과사전은 초판이 1982년에 나왔으며 따라서 원고는 거의 1980년 무렵에나 작성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DEC, EEC가 지금으로 치면 마치 누리로만큼이나 갓 도입되었으며, 새마을호 말고 무궁화· 통일호라는 명칭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이다.

본인이 옛날에 쓴 이 글에서 언급돼 있듯, DEC는 새마을호였고 EEC는 우등 열차(현재의 무궁화) 컨셉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때는 특대형 기관차가 여객 열차의 시속 150도 달성하기 전이었던지라, 110이 빠른 열차로 간주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때 넘사벽급 귀족 열차라던 새마을호의 좌석이 지금의 KTX하고 비슷하게 느껴지지 않은지? -_-

뉴욕 지하철 전동차는 영화에서 맨날 보던 모습이니 친근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앞부분이 마치 비행기(전투기)처럼 동그란 건 신칸센만의 전매 특허이고.
우리나라에는 2004년부터 등장한 KTX의 전신이 바로 저 주황색 떼제베 열차이다. 외형이 벌써부터 좀 친숙하다.

물론, 우리나라에 도입된 건 저 정도로 구닥다리 버전은 아니고 1996년도 버전인가 그렇다. 전동기의 출력을 더 키워서 한 편성을 무려 20량 935명 수송으로 만든 건 한국 것만 그렇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으로, 1991년판 기네스북의 국내 기록을 보자.
이제 드디어 시속 150km가 나오고, 새마을호 디젤 동차가 나온다.

하지만 내가 늘 강조하지만, 새마을호 디젤 동차가 최초로 등장한 건 1987년이고, 이 동차가 시속 150km와 서울-부산 4시간 10분을 최초로 달성한 건 아니다. 그 전에 특대형 디젤 기관차가 끄는 유선형 새마을호가 1985년 11월에 이미 시각표 개정을 통해 4시간 10분을 달성했다.

철덕이라면 경부선 열차가 특히 어느 구간에서 전속력인 시속 150km로 달리는지도 알 필요가 있다. 이 블로그를 뒤져 보면 답이 나오니 관심 있는 분은 찾아 보시길.

Posted by 사무엘

2011/10/04 19:11 2011/10/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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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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