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 사건 회상

본인이 초등학교 말년이던 시절, 1994년 가을엔 오로지 살인을 위해 결성된 폭력 조직이자, 그들의 야망대로였다면 거의 반국가단체 급으로 사회에 해를 끼칠 수도 있었던 '지존파' 사건 때문에 나라가 떠들썩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원래 지었던 조직명부터가 '야망'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마스칸'이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고전인지 현대인지, 성경 코이네인지 어느 그리스어에 저런 음가의 단어가 있는지는 내가 확인을 못 했다. 아무튼, '지존파'라는 이름은 이들을 검거한 경찰 간부가 새로 붙여 하사한(?) 이름이다.

이런 조직이 결성되고 1년 남짓만이라도 안 잡히면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두목이 참 똑똑하긴 했던 덕분이다. 조직원이 단 하나라도 일말의 동정심과 인간성이 남아 있다간, 언젠가 이런 흉악 범죄 행각에 회의를 느끼고 조직을 배신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 여지부터 완전히 제거했다. 몸으로는 특수부대를 방불케 하는 치밀한 자체 훈련을 거치고, 공동으로 살인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공범 의식과 팀웍을 다지고 동정심을 제거했다. 누굴 납치해서 금품을 뜯은 뒤엔 일체의 협상도 없이 피해자를 무조건 잔혹하게 죽이고, 증거를 은폐하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으로는 부자들, 부패한 윗대가리들에 대한 증오심을 강화했다. 게다가 "여자는 친어머니래도 믿지 마라"라는 강령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선견지명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저게 지켜지지 않아서 잡힌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지존파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여성은 두 명이 있었다. 둘 다 20대 나이에 성이 이씨이고 술집 종업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뒤져 보면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 것처럼 잘못 써 놓은 글이 나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먼저 등장하는 한 명은 남자친구의 차를 타고 양평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에 지존파에게 커플째로 납치당한 피해자였다. 그녀는 자기도 직업 때문에 형편보다 더 고급스럽게 입고 다닐 뿐이지 절대로 당신들이 미워하는 부자가 아니고, 살려만 준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필사적으로 읍소를 하여 동정심을 샀다.
여자의 눈물을 보니 마음이 움직였는지, 지존파 팀원 중에서는 그녀에게 반하는 사람이 생겨 버렸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그래도 여자는 안 돼 / 돼!"로 팀원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결국은 살려 주고 조직원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여인도 살인에 공범으로 가담시켰다. 당장 자기의 원래 애인인 남자--물론 맨정신은 아니고, 강제로 먹인 술에 만취해서 퍼진 상태이긴 함--를 얼굴에 봉지를 씌운 채 목졸라 죽이는 걸 거들어야 했으며, 다른 납치해 온 중소기업 사장에게는 공기총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가련한 그 여인의 입장에서는 정말 멘탈이 붕괴하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장 자기 목에 칼침이 들이대어져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옛날에 731 부대에서도 신참이 들어오면 신고식이 뭐냐 하면, 만만한 마루타를 하나 손수 때려 죽이는 것이었다. 그걸 못 하면 그 군인이 기수열외를 능가하는 끔찍한 응징을 당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부대원들이 마루타에 대한 동정심과 죄의식을 제거하고 공범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 악의 집단들이 하는 관행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지존파는 나중에 두목이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바람에 교도소에 갇히고, 또 다른 조직원은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다가 손에 큰 화상을 입었다. 그 여인은 부상당한 팀원을 병원으로 에스코트 하던 도중에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필사적으로, 정말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이판사판인데 기왕이면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다가 죽고 피해자들에게 사죄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내린 결심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용기 있는 행동 덕분에 지존파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들은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검거될 수 있었다. 예전의 각종 실종 신고와 음주운전 사망 교통사고에 대해서 그녀의 증언이 일치했으며, 덕분에 사건들 간의 끊어진 연결 고리가 발견될 수 있었다.

첫 여인이 연락이 두절된 뒤에 지존파 내부의 분위기는 어떠했으려나 모르겠다. 그 와중에 그들은 웬일로 기존 강령을 정면으로 무시하면서 다른 여인을 신규 멤버로 영입했다. 한 팀원의 애인이던 '이 경숙'. 술집에서 노예계약 상태였던 듯한데 지존파에서 1000만 원이 넘는 거액을 주고 업주와 채무 내지 계약을 청산하여 그녀를 데려 온 것이었다. 식사 준비와 잡일 등, 일종의 파출부처럼 부릴 '비전투 요원'의 필요를 느꼈던 듯하다.

이 경숙은 지존파 일당이 검거되기 겨우 나흘 전에 조직에 가입한 것이어서 따라 다니기만 할 뿐 실제로 범죄 행동에 가담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적극적인 신고와 탈출 정황이 없었으니, 범죄 단체 가입과 사체 은닉 혐의로 일단 다같이 체포되고 구속됐다. 처음에 5년형이 구형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귀착되었다.

두 이씨 여인이 지존파 아지트 내에서 같이 마주친 적은 없다. 이 경숙은 전원 사형을 당한 남자 팀원들에 비해서 존재감이 훨씬 덜하기 때문에 결말이 잘 언급되지 않는 반면, 그래도 실명은 아주 쉽게 금방 검색된다. 순수한 피해자인 첫 여인은 그 반대로 결말은 잘 검색되지만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옛날 신문· 방송을 검색해 보면 ㅅㅎ라는 이름이 나오긴 하지만, 이것도 사실은 그냥 대외적으로만 쓰인 가명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성경에서 동명이인을 헷갈리고 마태복음의 피 밭과 사도행전의 피 밭을 헷갈리듯이 저 두 여인이 동일 인물이라는 잘못된 정보도 나도는 듯하다. 파편화된 두 정보를 취합하여 피해자 여인이 이름이 이 경숙이고, 이 사람은 탈출을 했지 검거된 지존파 멤버 중에 여성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피해자인 첫 여인이 살인에 가담한 것에 대해서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불가항적인 정황이 인정됐다. 검찰은 애초에 기소도 하지 않았으며, 신변 노출 없이 탈북자마냥 모처에서 집과 직장을 마련하여 새 삶을 살 수 있게 오히려 그녀를 도와 줬다. 전쟁터에서도 정말 도저히 불가피한 상황에서 항복하고 포로로 잡혔다가 송환된 군인을 무슨 여적, 항명죄로 처벌하지 않듯이 말이다.

오늘날 지존파는 당연한 말이지만 잔당이나 공범, 추종자, 후계자 따위는 전혀 남지 않고 모조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없다. 워낙 흉악하고 죄질이 나쁘며 무고할 가능성이나 교화 가능성 따윈 0인 부류에게 대한민국의 법이 관대해야 할 이유는 추호도 없었다. 온갖 범죄자들을 상대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형사, 검사 등등도 이들의 살인 공장과 유치장, 사체 화장 아궁이, 각종 흉기와 심지어 이들의 식인 행각까지 듣고 보고는.. 충격과 공포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지방/대법원에서는 신속하게, 남자 조직원 6명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94년 9월 말 체포, 10월 말 사형 선고,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사형 확정, 그리고 1995년 11월 2일에 곧바로 집행! 1년 남짓한 시간밖에 안 걸렸다.

군사 정권 시절도 아니고 민주화 이후에 비정치 단순 흉악 범죄자에 대해 이렇게 신속하게 사형이 떨어지고 무려 6명에게 대규모로 집행된 사례는 거의 전무후무할 것이다. 집에 불을 질러 자기 친아버지를 죽인 패륜아 박 한상도 비슷한 시기에 사형이 확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집행은 차마 안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잔당이 전혀 남아 있지 않으니 피해 여인은 이제 와서 신변이 공개된다고 한들 '탈출과 신고 사실' 자체로 인해 보복 범죄나 다른 불이익 따위를 당할 가능성은 전혀, 저언~혀 없다. 오늘날 적극적인 신변 보호가 필요한 여느 증인이나 내부 고발자와는 처지가 다르다.

그래도 그녀는 악마의 집단에 끌려가서 생명의 위협과 윤간을 당하고 강제로 살인에 시늉으로라도 가담해야 했던 끔찍한 트라우마를 평생 지고 가는 가련한 사람이다. 술집 업주에게서 풀려나는가 싶었는데 졸지에 흉악 범죄에 연루되어서 쇠고랑 차고 집행유예로나마 전과자가 된 이 경숙의 처지도 딱하다면 딱하지만, 그 처지가 첫 여인에 비할 바는 못 될 것이다. 애초에 두 여인은 애인의 처지가 서로 완전히 반대였으니 말이다(지존파 가해자 vs 피해자).

앞으로 이런 지존파 사건 같은 비극이 없어야 하겠지만, 사회의 모든 부조리, 불공평을 사회 탓, 정치인 탓으로만 돌리는 사고방식으로는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없으며, 그 누구라도 멘탈이 병들고 피폐해지고 분노를 엉뚱한 곳에 표출하는 병크가 곳곳에서 터질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23 08:36 2015/09/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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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유괴 범죄 생각

* 어느 카테고리에다 넣어야 할지가 굉장히 모호한 글이 돼 버렸다.. -_-

1. 여성이 저지른 아동 유괴 범죄

세상에 수많은 흉악 범죄 중에서도 어린이 납치· 유괴 범죄의 죄질은 가히 톱클래스 급이라 할 수 있다. 피해자 부모에게 씻을 수 없는 희망고문과 상처를 안기고 그 후유증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1991년에 개구리 소년뿐만 아니라 이 형호 군 납치· 살해 사건이 유명한 영구미제 사건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이야기는 <그놈 목소리>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용의자는 애를 납치 당일에 애초에 죽여 버렸으면서 그 후에 집요하게 집으로 낚시성 금품 요구 전화를 걸었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의 분노를 더욱 이끌었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범죄는 꼭 한눈에 보기에도 양아치+싸이코패스 기질이 충만한 젊은 남자만 저지른 게 아니라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
1997년, 박 초롱초롱빛나리 양을 공범도 없이 혼자 유괴· 살해한 전 현주는 당시 겨우 20대 후반의 유부녀였고 게다가 임산부였다.

한때 경찰이 용의자가 있다는 단서를 확보한 카페를 급습해서 손님들을 검문했었다. 그러나 다른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용의자인 전 씨도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임산부지, 아픈 체하지, 이 상황에서 더 조사를 하는 건 100% 공권력 남용으로 여론을 악화시킬 지경이었으니, 이때 용의자를 놓친 것은 절대로 경찰의 무능 탓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사람은 프로 범죄자가 아니었기에 범행에 여러 허점을 드러내면서 잡히긴 했다. 범행 동기는 간단히 요약하면 그냥 거짓말+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돈 때문이었다. 그랬는데 납치한 애가 울고불고 하면서 자기가 통제를 못 할 지경이 돼 가자 살해하게 된 것.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해자의 인생도 완전히 끝났다. 그녀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복역 중이다. 남편으로부터는 당연히 이혼 당하고, 배 속에 있던 아이의 양육권도 빼앗겼다.

이 사건 이후, 아이 이름을 너무 튀거나 특이하게 짓는 관행마저 사라졌을 정도라고 한다.
마치 지존파 일당이 검거된 이후 그랜저의 판매량이 잠시 감소한 것과 비슷한 맥락..;; (그랜저급 이상을 굴리는 부유층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그랬으니)

2. 곽 재은 양 유괴· 살해 사건

그런데 박 나리 양 사건은 1990년 6월에 벌어진 곽 재은 양 유괴· 살해 사건과 거의 똑같은 판박이였다. 가해자 홍 순영은 스펙과 직장을 거짓으로 위조해서 대학생 신세를 하고 남자친구까지 사귀었던 20대 아가씨였다. 그랬는데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게 생기고 결혼에도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자, 이 상황을 돈으로 무마하려고 우연히 이름을 알게 된 어느 유치원생을 꾀어 냈다. 부모를 사칭하면서 집에 급한 일이 생겼으니 애부터 먼저 밖에 내보내 달라고 말이다.

그랬는데 공범도 없이 혼자서 애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울면서 자기를 집에 보내 달라고 요구하는 등, 상황이 위급해지자 가해자에게도 뭔가 마가 씌였다. 그녀는 아무도 없던 숙명여대 모 건물 안에서 결국 아이를 목졸라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아이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죽이기 전에 먼저 물어 본 연락처) 금품을 요구하였으나, 은행에서 그 돈을 인출하는 모습이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결국 잡혔다.

애당초 프로 범죄자들이 하는 것처럼 경찰의 추적을 피하면서 현금만을 교묘히 전달받는 꼼수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대놓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은행 거래를 할 정도로 홍 순영은 범행 수법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경찰에 잡히고 나서야 그녀는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는 듯했고, 이제 멘탈이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바로 자살을 생각했다. 지하철역에서 공범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면서 경찰에게 거짓말을 하고는 지하철역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열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러나 기관사가 필사적으로 열차를 세운 덕분에 머리를 약간 다치기만 하고 목숨을 건졌다. 이때 그녀가 죽어 버렸다면 아이의 시체도 못 찾게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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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정아처럼 횡설수설과 거짓말을 거듭하던 전 현주와는 달리, 홍 순영의 최후는 더욱 비참했다. 그녀는 이제 걷잡을 수 없는 멘붕과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교도소에서도, 재판 받으면서도 그냥 울부짖으면서 자기를 제발 사형시켜 달라는 말밖에 안 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종교인 성직자를 통한 교화 같은 것도 별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때는 그렇잖아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었던 노 태우 정권 시절이었다. 그녀의 원대로 결국 사형 선고가 내려졌고, 그녀는 이듬해인 1991년 말에 겨우 24세의 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언도, 장기 기증도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개를 저으며 울기만 하면서 정말 고통스럽고 처절하고 허무하게 최후를 마쳤다.

본인은 인간으로서 그녀의 혼에(도) 동정과 연민을 느낀다.
거짓과 허영으로 가득찬 채 빗나간 탐욕을 채우려고 한 어린이의 생명을 빼앗고, 다른 단란하던 가정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그 인생을 동정할 생각은 절대 없다. 사형은 성경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정말 정당한 인과응보이긴 했다. 성경에도 있잖은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되면 사망을 낳는다”고 말이다(약 1:15).

그러나 죄책감에 짓눌린 채 후회만 하는 건 성경이 말하는 회개가 아니고 구원을 이루지도 못한다.
저건 그냥 가룟 유다가 죽듯이 죽은 거다. 이판사판 다 끝났고 부끄러워서 세상 사람들 볼 낯이 없고 꿈이고 희망이고 없는 여건이 됐으니, 이제 살 이유가 없어서 죽겠다는 심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죽고 나서는, 그럼 하나님은 무슨 낯으로 보려고?

영적으로 좀 날카롭게 진단하자면, 내가 보기에 홍 순영은 애를 유괴하고 살해할 때뿐만 아니라, 나중에 멘붕 상태에서 징징거리는 것도 줄곧 '마'에 씌인 상태에 가까웠다. 자유가 있을 때는 마음껏 나쁜짓을 하게 하다가, 그 자유를 빼앗기고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를 때가 됐을 때는 주체 못 할 죄책감으로 사람을 재기의 여지 없이 완전히 파멸시켜 버리는 것이 마귀의 역사이다. (아니면 죄책감을 아예 안 느끼는 진짜 인면수심 마인으로 바꾸거나.)

둘 다 이성이 마비된 상태인 건 비슷하다. 난 그녀의 “그 상태”가 참 가련하고 불쌍하다는 것이다. 뭐, 가해자의 불우한 성장 배경이 어떻고, 가해자도 사회 시스템의 피해자네 하는 개 풀 뜯어먹는 차원이 아니다. 아시겠는가?
오히려, 홍 순영 같은 일부 '서툴고 여린' 범죄자를 빌미로, 무슨 현행 사법 시스템이 너무 잔인하고 비인권적이네 하면서 사형 제도를 없애네 뭐네 하는 개드립이 일게 하는 건 마귀의 또 다른 역사이다. 이게 오늘날 영적 전투의 실상인 것이다.

민감한 얘기가 또 길어졌으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이런 사건을 겪은 나라들은 어린이를 상대로 실시하는 안전 교육 매뉴얼이 바뀌었을 정도였다. 전혀 양아치처럼 생기지 않았고 험상궂은 아저씨도 전혀 아닌 여성조차도 얼마든지 어린이를 유괴· 살해할 수 있다는 게 입증됐기 때문이다.

3. 사형 집행의 부활을 꿈꾸며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김 영삼 정권의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에, 2013년 현재 대한민국 최후의 대규모 사형이 집행되었다. 다음 대통령에게 부담을 안 주기 위해 일부러 집행한 건데 아주 잘한 결정이다.

단, 남아 있던 사형수들을 다 죽인 건 아니고, 자기 정권 전부터 남아 있던 20여 명의 사형수들만 죽였다. 세상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1991년에 여의도 광장에서 칼부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승용차를 질주해서 어린이 2명을 죽게 한 김 용제도 이때 죽은 사형수 중 하나이다.

그리고 김 영삼 정권 시절에 잡힌 지존파 멤버들은 워낙 죄질이 나빠서 그 전에 이미 다 사형이 집행되어 죽었다. 오로지 살인을 목적으로 혈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똘똘 뭉쳐 전문적인 폭력 조직을 결성한 것은 세계의 범죄 역사를 통틀어서도 드문 사례라고 한다. 중국이 아편 전쟁 때문에 마약에 대한 역사적 트라우마가 있듯, 한국은 '반국가단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듯하다(북한이라든가.. 북한이라든가..).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면 사실 조폭을 결성한 것만으로도 우두머리는 최고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 시절 이후로 우리나라는 한 번도 사형이 집행되지 못하고 사법 정의는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그에 반해 전툴루, 전땅크 시절은 비록 다른 흑역사도 많았을지언정 사법 정의에 관한 한은 천국이었다.

약간 인민재판 같은 사례이긴 하지만, 이 윤상 군 유괴· 살해 사건의 경우 아직 살인인지 감금치사인지 확실히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자기 직위를 걸고 항소심을 묵살시켰으며, 재판부에다 압력을 넣어 1~3심에서 모두 피의자에게 사형을 때려서 확인사살을 해 버렸다.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않고 말이야. 사전에 “아이를 살려 보내면 너는 살고, 아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빨랑 자수해라.)”라고 진짜 전땅크스러운 대국민 담화를 대통령이 친히 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약속을 이렇게 지켰다. -_-;;;

살인인지 감금치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으며, 대통령의 경고를 씹었다는 괘씸죄 때문에 어차피 사형이 떨어졌다. 마치 군인의 탈영이 나중엔 탈영 자체의 공소시효는 소멸하더라도, 복귀 명령 불복종죄 때문에 처벌 대상이 되듯이 말이다.
피해자 유가족은 이것 덕분에 그나마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으며 전툴루에게 개인적으로 감사하게 되었을까? 이게 1983년의 일이다.

그 5공 시절에는 흔히 생각하듯 정치범이나 사상범도 아니고, 심지어 살인을 전혀 저지르지 않은 0 kill 상태에서도 사형이 떨어져서 집행된 적이 있었다.
가정집을 털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임산부· 여대생을 강간해 온 3인조 강도 상습범(황 인규, 최 윤성, 최 성훈)은 비록 살인 혐의는 없으나 10수 차례나 저지른 강도· 강간의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는 법무부의 코멘트와 함께 1985년 11월, 얄짤없이 사형을 당했다. 이 판결에 대해 잘못됐다고 이의가 제기된 경우는 지금까지 전혀 없다.

이렇듯, 군사정권 시절에 벌어진 일이 다 나쁘기만 했다는 건 큰 편견이며 오산이다.
내가 광주의 학살자(?.. 뭐 이 표현 자체에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를 옹호한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만큼 반대편 성향의 위정자들도 만만찮게 병크를 저지른 게 많으며, 세상 한켠에는 당신과 반대의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도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높으신 분들이 정말로 저출산을 걱정하신다면,
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애를 낳아서 키우는 부모의 권리를 정말 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라의 미래를 인질로 잡고 장난치고 짓밟고 가정을 파괴하는 범죄자들에게 생명은 생명으로 일벌백계를 내려 주길 간절히 바란다.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아닌 평범한 일반인들이다. 세상 정부는 무슨 구원이나 내세· 영생을 논하는 조직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시민들 생명을 지키고, 질서과 치안을 문란케 한 자에 대한 공공의 보복을 집행할 책임이 있지 않은가?
전땅크를 비판하고 욕하고 싶으면 이런 기초적인 거 하나라도 전땅크보다 잘해 달란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4/05 08:32 2013/04/0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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