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와 우주발사체의 관계

1. 비행기와 우주선의 하이브리드 가능성

본인은 예전에 자동차 겸 열차, 자동차 겸 비행기, 비행기 겸 선박처럼 하이브리드 교통수단에 대해 열거해 본 적이 있다. 심지어 같은 열차라도 가변 궤간이 가능한 놈, 같은 비행기라도 고정익과 회전익이 같이 가능한 놈이 있으니 이 분야도 창의적인 활용 가능성이 생각보다 넓다.
그런데 그때 본인이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조합이 있다. 바로 비행기와 우주선의 하이브리드이다.

잠시 이런 상상을 해 보자.
인천 공항에서 대한 항공 비행기(+ 겸 우주선)를 타고, 발사대가 아닌 활주로에서 사뿐히 이륙한다. 며칠 동안의 비행(??) 끝에 비행기는 아폴로 11호의 착륙을 기념하는 달 "고요의 바다 공항"에 우아하게 착륙한다. 비행하는 동안 객실에는 바깥 온도나 현지 시각뿐만 아니라 주변의 G값도 표시된다.

귀환할 때는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지구 대기권에 재진입하게 됩니다. 약 5분간 지구와의 통신이 두절되며 진동이 발생할 수 있으니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셈.." 방송도 응당 나온다.
안개가 너무 짙으면 비행기가 결항되는 것처럼, 지구 밖에 태양풍 같은 게 너무 강해져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우주 행 비행기는 결항된다.

이건 참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간편하게 우주에 다녀오는 건 현실 내지 가까운 미래에는 요원한 일이다.
우주 발사체 내지 비행체를 단 분리 없이 일반 비행기의 역할까지 겸할 수 있게 만드는 건 현재의 인간의 기술로는 가능하지 않다. 둘은 엔진 구조가 엄청나게 다르고 비행 원리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우주선을 비행기처럼 운용했다간 연료를 감당할 수가 없다. 핵 미사일을 쏠 때 무슨 활주로 이륙을 시켜서 띄우던가? 우주선의 기술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 기술과 본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 미사일 기술과 동일하기 때문에 냉전 시절에 우주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우주선은 미사일을 쏘는 기술에다가 발사체와 엔진 크기를 더 키우고 연료를 출력 조절이 용이한 액체 기반으로 바꾸고, 안에 사람이 타는 공간과 각종 안전 장치를 넣었을 뿐이다.

그에 비해 항공역학적인 기체 설계는 어차피 공기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는 전혀 유용하지 않다. 한쪽에 특화된 기술이 다른 한쪽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
사실은 지구처럼 양력을 이용한 대기권 비행이 가능한 행성 자체도 태양계에서 지구 말고는 없다.

전쟁이 스타크래프트 인게임이 아닌 것만큼이나 우주 비행 역시 스타크래프트 시네마틱 같은 게 아니다.
터보 팬/제트부터 램 제트, 로켓까지 다양한 엔진의 종류와 구분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임에서는 종이비행기 레이쓰조차 대기권과 우주를 모두 잘만 드나들지만, 현실은.. -_-)

그렇게 SF물을 너무 많이 본 사람들은 실제 아폴로 우주선 사령선과 달 착륙선이 통상적인 비행기와 너무 동떨어지게 생긴 것을 보고 이질감을 느기께 된다. 날개 따위 없는 그냥 지상 구조물 캡슐처럼 생겼을 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나마 역대 우주선 중에 비행기와 가장 비슷하게 생겼고, 지구 귀환 후에 바다가 아닌 육지 활주로 착륙이 가능했던 유일한 물건은 우주왕복선인데.. 얘도 지구 대기권만 벗어난 우주에 가는 용도이지, 지구 중력을 벗어난 우주까지 간 건 아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듯, 비행기나 심지어 비행선처럼 우아하게 우주로 나가는 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1980년대에 나돌던 공상 과학 아이디어 중에서 정보 통신 분야는 오늘날 예상을 초월하여 달성되었지만 항공 우주 분야는 대부분 빗나갔다. 달과 화성에 기지는커녕, 이미 있던 우주왕복선과 초음속 여객기마저 대가 끊겼지 않은가?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 달 착륙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으며, 공교롭게도 이 날에 맞춰 개통했던 경인 고속도로 연장 구간은 '아폴로 고속도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람들도 개나 소나 아폴로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미래의 과학 꿈나무 똑똑한 우리 아이는 아폴로 학원에 보내세요" 그랬다.

그랬는데 지금은 아폴로는 눈병 이름으로나 기억되고 있고.. 2010~20년대에 사람들에게 그만 한 충격을 주며 각인된 이름은 아폴로가 아니라 인공지능 '알파고'인 게 참 흥미롭다.
사실은 저 눈병(급성 출혈성 결막염)의 별명조차도 발견된 시기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타이밍과 일치하여 붙은 것이었다.

2. 철도 차량과 비행기의 국내 생산 업체

테란의 레이쓰, 발키리, 배틀크루저를 생산하는 미래의 업체는 기술력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만.. 다음으로 현실 얘기를 잠깐 해 보겠다.

1999년 7월 1일, 현대· 대우· 한진 중공업의 철도 차량 생산 부문을 통합해서 '한국 철도차량'이라는 합작업체가 출범하고 그게 훗날 '현대로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철도 차량뿐만 아니라 비행기를 만드는 업계도 비슷한 사정을 겪었나 보다. 1999년 10월 1일 국군의 날을 기해 현대 우주항공, 대우 중공업, 삼성 항공우주산업(업종 분리 이후 현재의 삼성/한화 테크윈)을 합병하여 '한국 항공우주산업'이라는 합작업체가 출범했다.

물론 보잉 같은 급의 대형 민항기까지 만드는 건 아니지만 경비행기, 훈련기, 헬리콥터, 무인기 정도는 뚝딱 만들고, 메이커급 전투기도 조립 면허생산 정도는 한다.

로템의 경우 본사는 철도 허브 도시인 의왕에 있고 공장 중 하나가 경남 창원에 있다.
항우산? KAI?는 본사와 공장 모두 경남 사천에 있다. 사천 공항이며, 인근의 공군 기지며, KAI 모두 비슷한 동네인 것 같다. 민간 지도에는 다 가려져서 나오지 않는다.
저기가 나름 우리나라의 항공 허브라고 봐도 될 듯하다. 철도 박물관이 의왕에 있다면, 우리나라 항공우주 박물관은 사천에 있다.

3. 지구 외의 행성에서의 비행 가능성

행성과 행성을 오가는 우주 비행이라는 건 로켓을 이용해 지구 대기권을 탈출하여 공전 궤도에 진입한 뒤, 그 다음에는 다른 천체의 중력에 끌려가거나 튕겨 나가는 고전역학을 예술적으로 조절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잠깐씩 몇 분 동안 또 연료를 분사해서 가속하는 것도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연료 없이 그냥 관성 비행이다.
이것 말고 그냥 한 천체 안에서 비행기를 띄우고 날아다니는 건 사정이 어떨까? 엔진 가동을 위해 필요한 산소 문제는 일단 빼고 생각하기로 한다.

  • 일단 진행 속도가 왕창 빨라야 양력이 생긴다. 그런데 한편으로 고속 주행과는 상극인 공기의 저항도 날개로(받음각) 잘 받아야 된다.
  • 날개의 받음각이 커지면 양력이 커진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걸 무작정 키워 버리면 항력도 도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기체는 실속에 빠져서 추락의 위험에 빠진다.

비행기 조종이란 건 이렇듯 서로 모순되는 듯한 여러 변수들을 적당히 조절해서 최적의 값이 나오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니 날개에 달린 플랩이라는 물건도 비행기를 빨리 뜨게 할 때 쓰이지만(양력 증가), 착륙 후에 비행기를 빨리 감속시켜서 세울 때도 쓰이는 것이다(항력 증가). 그런데 플랩을 잘못 쓰면 착륙 직후에 비행기를 못 세우고 도로 띄워 버려서(양력 증가..) 기체에 대한 제동· 제어력을 상실하기도 한다. 이런 양날의 검 같은 면모는 열차나 선박 같은 타 교통수단의 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흔히 지구가 여러 복잡한 조건을 기적적으로 만족하여 생명이 탄생 가능했던 유일한 행성이라고 여겨지는데.. 이와 비슷한 급으로 지구만이 유체· 항공역학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비행기를 띄우고 날리는 게 가능한 유일한 행성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태양계에서는 말이다.

달이나 수성은 대기가 없으니 날개고 양력이고 활강이고가 아무 의미가 없다. 굳이 공중으로 이동하려면 언제나 달 착륙선 같은 로켓을 띄워야 하며, 착륙할 때는 역시나 연료 역분사로 낙하 속도를 줄여서 내려앉아야 한다. 그리고 로켓은 연료 소모가 너무 극심해서 경제성이 떨어진다.

그 다음으로 금성과 지구와 화성은 공교롭게도 뒤의 행성이 앞의 행성보다 공기압이 거의 95~100배 더 옅다.
화성은 대기가 너무 옅기 때문에, 계산에 따르면 지상에서 초음속 자동차 급으로 달리며 공기를 받아야 양력이 생길까 말까라고 한다. 물론 고속 주행 자체에 공기 저항으로 인한 어려움은 지구보다 덜하겠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하게 긴 직선 활주로가 필요하고 그만큼 사고 위험도 클 것이다.

반대로 금성은 공기가 워낙 뻑뻑한 덕분에 그냥 자전거 속도 정도로 달리면서 날개로 바람을 받으면 곧장 하늘로 뜰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양력이 아주 잘 생긴다. 다만, 어지간한 잠수함도 못 버틸 엄청난 압력인 95기압(거의 해저 수심 800m가량) 하에서 자전거 속도만치라도 달리는 게 선뜻 가능하겠는지는 별도로 생각할 문제다.;;
거기에다 고열 문제는 덤이다. 금성의 그 온도에서는 비행기 엔진이 전부 과열돼서 타 버릴 것이다.

참고로 금성은 중력가속도는 지구(9.8m/s^2)의 90% 정도이니(8.87m/s^2)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화성은 대기의 '비율'만 따지자면 거의 96%가 이산화탄소이며, 이는 의외로 금성과 동일하다. 농도만 훨씬 옅을 뿐..

목성 이후의 행성들은 그냥 설명을 생략하겠다.
목성은 중력가속도가 지구의 2배를 넘기 때문에(거의 22m/s^2) 거기서는 사람들이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들 것이고 비행기가 뜨기도 그만치 더 힘들다. 물론, 거기는 아예 땅이 없고 거기 근접만 해도 그냥 초고압 유독가스와 방사선에 다 끔살 당할 것이다. (Quake 3의 fog of death 실사판)

나머지 행성들은 중력가속도가 그렇게 강하지는 않지만 극도의 저온과 악천후 때문에 여전히 지구 같은 낭만적인 비행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공기가 적절한 배합과 양으로 구성돼 있고 순항 고도에 '제트 기류'라는 것까지 존재하는 지구가 그야말로 인류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08 08:35 2020/08/08 08:35
, , , ,
Response
No Trackback , 9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82

Trackback URL : http://moogi.new21.org/tc/trackback/1782

Comments List

  1. 신세카이 2020/08/16 03:43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제가 의문시 여기는 점이 있는데
    누구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면 충분히 의문을 가질만한 점이라고 판단되서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데요

    얼마전에 중국에서 달의 뒷면에 갔다왔다고 하잖아요

    우주선이 사람을 태우고
    달에 갈 때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기 위해서
    탈출속도가 초속 11.2 km 라고 하거든요
    시속 4만320 km인데

    지구를 벗어나서 마찰이 없는 우주 공간에
    또 지구의 6분의 1정도 되는 달의 인력의 영향 안에서
    어떻게 사람이 안 다치고 우주선이 충격을 받지 않게
    감속해서 달에 착지할 수 있을까요?

  2. 신세카이 2020/08/16 04:16 # M/D Reply Permalink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엄밀히 조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의견을 들어보고 싶네요

    1. 사무엘 2020/08/16 06:09 # M/D Permalink

      저도 무슨 항공우주 쪽 전공이 아닌 건 마찬가지입니다만..
      달에서는 대기가 없고 낙하산을 펴서 감속할 수도 없으니 선택의 여지 없이 로켓 엔진 역분사로 감속을 해서 착륙하지요.
      trans-lunar injection 때도 감속을 하고(감속을 안 하면 달을 반 바퀴 뺑 돌고는 다시 지구로 돌아와 버림), 달 착륙선은 사령선과 분리되어서 더 감속을 하게 됩니다.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 딱히 더 의심스럽거나 이상한 점이 있는가요?

  3. 신세카이 2020/08/16 13:17 # M/D Reply Permalink

    감속에 대하여
    공기의 저항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서
    대기권 안에서는 이걸 이용하면 되는데
    진공 상태에서는 역추진으로는 효율이 너무 떨어질 거 같은데

    우주선 전체가 이동하는 운동량을 상쇄시킬려면
    우주선 전체 질량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연료의 질량을
    우주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분출시켜야 될 텐데

    질량이 적음으로 속도를 높여야 하는데
    가스 분출 속도를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
    또 우주선 전체 질량에서 몇 프로나 연료 질량으로 채워서
    지구에서 출발할 때 가속에 얼마나 쓰고
    달에서 도착할 때 감속에 얼마나 쓰고
    달에서 지구로 귀환하기 위한 출발할 때 가속에 얼마나 쓰고
    지구에서는 미리 연료를 태워버리고 공기 저항을 이용하니까
    연료를 쓰는 비율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ㅎㅎ

  4. 신세카이 2020/08/16 14:45 # M/D Reply Permalink

    감속을 안 하면
    달을 반바퀴 돌고 돌아올까요
    직관적으로 보면
    달보다 6배 강한 인력인 지구를 탈출한 속력에
    원심력은 속력의 제곱에 비례하는데
    달과 거리가 가까우면 될려나
    저는 이 분야에 별 관심은 없어서요ㅎㅎ

    1. 사무엘 2020/08/17 09:39 # M/D Permalink

      로켓 엔진의 필요 연료량 같은 공학적인 디테일이야 해당 분야의 종사자가 아니면 알기 어렵죠.
      단지, 지구에서 우주로 나가는 게 우주에서 달로 가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렵다는 건 직관만으로 납득 가능할 것이고, 아폴로 계획은 그 당시 쓰였던 모든 기계류의 규격과 디테일이 의혹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게 다 투명하게 공개돼 있습니다. 최소한 4 15 부정선거보다는 훨씬 더 개방적입니다. 그러니 정 궁금하시면 자료를 직접 찾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동력원과 무관한 두 천체 사이의 운동 궤적 같은 것이야.. 이과 나왔고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간단히 프로그램 짜거나 스크립트 돌리면, 하다못해 웹상으로 공개된 시뮬레이터를 돌려 보면 답이 딱 나올 텐데요. 굳이 직관에만 의존하면서 긴가민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5. 신세카이 2020/08/17 19:28 # M/D Reply Permalink

    아폴로계획이 투명하게 공개됐냐와
    천문 우주에 대하여 저는 그리 별 관심이 없습니다만
    님께서 관심이 많으신 거 같아서요
    유인우주선이 달에 착륙하는 과정에서의
    제가 언급한 부분들의 역학적인 측면을
    혹시나 수식적으로 계산해서 미리 알고 계신가 해서요
    나중에 여유가 되면 한 번 조사해보죠

  6. 발사체 2020/10/06 09:17 # M/D Reply Permalink

    http://naver.me/GJ3oTYro

    우리나라 발사체모형 판매도 하네요. ㅎㅎ

    1. 사무엘 2020/10/06 09:57 # M/D Permalink

      오, 열차나 비행기 모형이 아니라 나로 로켓 모형을.. 신기하네요~!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570 : 571 : 572 : 573 : 574 : 575 : 576 : 577 : 578 : ... 2204 : Next »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3046075
Today:
1295
Yesterday:
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