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갔다 온 지 3주년

그러고 보니 논산 갔다 온 지 벌써 곧 3년이 돼 가는구나. 뭐, 4주짜리 병영 캠프이긴 했지만.
군 복무 기간이 3년이었다면 그때 들어가서 이제야 제대... 정말 ㅎㄷㄷㄷㄷㄷ
그래도 한창 봄이고 날씨가 막 더워지기 직전에.. 나름 좋은 타이밍에 고생 덜 하고 잘 갔다 왔다.

내가 간 때는 마침 “상호 존중과 배려, 정감어린 인삿말”을 정책적으로 밀어붙이던 때였다.
연병장에서 “우리 처음 만남은 너무 어색했었죠 ... 바꿔 나가요 밝은 병영을 꿈꾸며” 이런 노래를 듣던 때였다. ^^;;;
물론 <멸공의 횃불>, <육군가>, <육군 훈련소가> 같은 군가도 엄청 많이 들었다.

그리고 저 때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개정되기 거의 직전이었다. 군대에서도 의심의 여지 없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이라고 밥 먹듯이 경례를 하고 왔는데, 그 해 가을이 돼서야 글귀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엥? 이게 무슨? 내가 퇴소한 지 얼마 안 되어 그 해 여름에 개정됐다고 한다.

육군 훈련소에서 사용하는 제식 소총은 M16A1. 군대에 가서 실제로 총을 쏴 보면, 영화나 게임에서 듣는 총소리는 정말 조용하고 미화가 많이 된 소리라는 걸 알 수 있다. ‘탕’이 아니다. 유성음 받침으로 끝나는 소리가 아니다. 차라리 ‘딱!’, ‘빡!’에 가깝다. 콩 볶는 소리, 혹은 전기 충격으로 벌레 잡는 기구에 벌레가 들어갔다가 죽는 소리 정도 되겠다.

현실은 FPS 게임이 아니다. 과녁에 정말 안 맞는다. 조준도 힘들뿐더러, 총알이 정말 게임에서처럼 이상적인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것도 아니다. 소리도 정말 고막이 떨어질 정도로 크고, 격발 직후 느껴지는 반동도 무시 못 한다.

다른 훈련소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병영과 각종 훈련 교장 사이가 멀기로 악명 높다. 이동하는 시간만 1시간이 넘는 곳도 있다. 수류탄, 각개전투가 특히 엄청 멀었던 걸로 기억한다. 가는 동안 호남 고속도로? 논산-천안 고속도로를 고가 위로 횡단하기도 한다.

군대가 아무리 편해져도 역시 군대는 군대. 입대하는 애들도 예전보다 훨씬 더 편하게 살다가 갑작스레 별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에, 체감하는 어려운 정도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지 않나 싶다.
일단 행동을 내 마음대로 못 하고, 먹는 것까지 단체로 분대장의 통제를 받아서 해야 하고 이놈의 불침번 때문에 며칠 주기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런 게 엄청 스트레스 받고 힘들었다.

화장실엔 비데가 있기도 했다. 물론 그냥 생긴 건 아니고, 과거에 발생한 흑역사 때문에 생긴 것이다.

종교 활동은 아주 잘 보장되어 있고, 조교들도 1인 1종교 반드시 가지라고 권한다. 교회에서 유독 ‘실로암’만 나오면 애들이 다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한 소절만 끝나면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전투모 던지고 환호하고 난리도 아님. 실로암은 그렇게 방방 뜨는 곡도 아닌데 왜 그런 매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종교 활동은 그냥 이 때만은 긴장도 풀고 스트레스 푸는 시간이라는 데 의미가 더 있다.

본인은 야간 행군까지 다 잘 마쳤지만, 퇴소를 앞두고 긴장이 풀리면서 완전히 탈났다. 등산을 가서 산꼭대기까지 성공적으로 오른 후, 하산하다가 조난당한 것과 정확히 같은 상황이다.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야 할 마지막 퇴소식? 수료식 날에 목소리가 다 쉬고 몸살감기가 도져서 끙끙 앓아누웠고, 퇴소식에도 참석 못 했다.
수료식을 마친 훈련병들은 곧장 사복으로 갈아입었고, 혼자 나가는 인원과 부모님이 오신 인원이 분리되어 마지막 순간까지 분대장의 통제를 받다가 해산· 귀가했다. 야호!

잠시나마 병영 생활을 해 본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건국 과정, 6 25, 그리고 특히 이 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그때부터 늘었다. 그래서 그 해 현충일엔 일부러 서울 현충원에 가 보기도 했다. 그의 저서 <Japan Inside Out>이 <일본 그 가면의 실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어 나온 것도 아주 공교롭게도 2007년 그 때였으며 본인은 이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2005년이 본인이 박 정희에 대해 공부한 해였다면(2005년도 재미있는 사건이 엄청 많이 터진 해였다), 2007년은 이 승만을 공부한 해였던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4/09 12:54 2010/04/0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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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 기윤 2010/04/09 13:49 # M/D Reply Permalink

    (아직 미필자 1人)

    다른건 잘 모르겠는데, FPS나 영화 등에 나오는 총이 미화되었다는건 왠지 알 듯 합니다.

    한 예로 총의 반동이 게임에서는 조준점이 화면에서 위로 수cm 이동하는 정도지만 실제로는... 자세가 바르지 않다면 뼈가 나갈 정도라고 하던가..

  2. 땅콩맨 2010/04/09 14:19 # M/D Reply Permalink

    저도 육군훈련소 나왔습니다.
    저 역시 종교가 기독교라 매주 교회를 가곤했는데
    실로암 부를때 그 열기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실로암을 예배끝날때 부르기 때문에 부르면서 아쉬움반, 두려움반
    이 남아있었어요. (다시 복귀하는것 생각하니 ㄷㄷㄷ)

    앵콜이라도 부를라 치면 너무 좋았었어요.

  3. 다물 2010/04/09 21:30 # M/D Reply Permalink

    저도 논산 훈련소 나왔습니다. 단 전 현역이라서, 그 뒤에 상무대 갔다가 전방 부대로 갔죠(철책에서 제대)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장이 먼건 훈련소 크기가 큰 것하고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가는데만 해도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훈련소 문 바로 바깥에 있는 훈련장이라고 해도 자기 부대 반대쪽이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거죠.(물론 훈련장 자체가 먼 경우도 있지만.)

    자대 배치 후 논산 훈련소가 아닌 사단신병교육대 있던 애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나마 논산 훈련소는 훈련 시간도 잘 지키고 교육도 제대로 하는 곳입니다.

    경기도나 강원도에 있는 사단 신교대는 그보다 더 나쁜 환경이라고 생각하시는게 맞습니다.

  4. 사무엘 2010/04/09 21:56 # M/D Reply Permalink

    김 기윤: 아마 머지 않아서 실제 총의 느낌을 경험할 날이 올 겁니다. 게임하고는 상당히 다르지요. 병역 문제 원만하게 잘 해결되길 바랄게요!

    땅콩맨: 실로암의 중독성은 저만 공감하는 게 아니더군요. 예배 끝날 때의 그 느낌도 공감..=_=;;
    유일하게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이다 보니 저도 그땐 전투모 던지면서 마음껏 오와열! 외치면서 실로암 불렀습니다. ^^

    다물: 네. 논산 훈련소는 제일 크고 제일 전문적인 신병 훈련소인 만큼, 말씀하신 그런 장단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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