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1592-98)과 6 25 사변(1950-53).

1. 공통점

  •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국제 전쟁이다. 대리전 같은 양상도 띠었다.
  • 적국으로부터 전쟁 준비 정황이 여럿 포착됐지만 그에 대비를 제대로 못 했다.
  • 초기에는 신무기 때문에 맥을 못추고 털렸었다. (조총, 땅끄)
  • 우리나라가 멸망할 뻔했지만 어쨌든 기적적인 계기로 방어에 성공했다. (이순신, 맥아더 / 한산도 대첩, 인천 상륙작전 등) 그래도 나라가 멸망만 당하지 않았지, 몽땅 쑥대밭이 되고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 우리나라 쪽 대표가 없이 남들끼리 종전(정전) 협정이 진행됐고 오랫동안 질질 끌었다. (일본 vs 명, 북괴 vs UN)
  • 저 전쟁 기간의 대부분은 종전(정전) 협상이 오랫동안 질질 끌리는 동안 벌어졌던 소모전 기간이다.
  • 저 전쟁의 말기 때 적국 진영의 수장이 죽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스탈린)

2. 비슷한 점

(1) 임진왜란은 그 전까지 수시로 한반도를 집적대던 왜구들 국지전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이었다.
6 25는 그 전까지 38선 부근에서 수시로 툭탁툭탁 벌어지던 국지전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이었다.

(2) 임진왜란 때 왜군은 자기들이 성읍을 점령하던 방식처럼 조선의 왕만 빨랑 사로잡으면 전쟁이 바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왕은 잽싸게 피난 가고 없었고, 왕이 부재 중인데도 동네 곳곳에서 의병들이 일어나서 왜군을 당황케 했다. 조선과 일본은 사회관과 국민 정서가 서로 많이 달랐다.
6· 25 때 북괴 측에서는 자기들이 쳐들어오면 20만 빨치산들이 자기를 반겨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쳐들어가 보니 그런 거 없었고 남조선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3)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왕이던 선조는 사람 보는 안목이 거의 트롤러 수준이었다.
원 균과 이순신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든가.. 한국 역사상 최악의 개망나니 미친놈이던 아들 순화군을 기를 쓰고 감싸던 걸 생각하면 말이다.
순화군이 함경도에서 깽판 치고 있자, 도저히 견디다 못한 거기 백성들이 서로 짜고 순화군을 왜군에다 넘겨 줬을 정도였다.
6 25때는? 뭐 리 승만 할배의 정치적 과오 중 상당수가 인사와 관련이 있었다는 거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 차이점

(1) 6 25 때 전황이 제일 안 좋았을 때는 경상도 동남부만 빼고 남한 땅이 다 함락당하고 북괴에게 넘어갔었다.
임진왜란 때는 반대로 전라도 빼고 다 함락당한... 정도는 아니었다. 부산 일대, 그리고 부산에서 한양으로 가는 영남대로 길목 좌우를 제외하면 왜군이 조선 땅을 몽땅 다 점령할 재간은 없었다.

(2)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 자체가 완전히 망하고 멸절당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는 자기는 전대 정권과 전혀 무관하다면서 고개를 숙였고, 조선과 일본은 다시 수교를 맺었다.
그 반면, 6 25가 휴전으로 끝난 뒤, 남한과 북괴는 완전히 단절되고 최악의 적대 관계로 전락했다.

(3) 6 25 때 월북한 남한 지식인들은 다들 좋은 최후를 맞이하지 못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은.. 끝까지 잘 대접받고 잘 살았다.

※ 나머지 이야기들

(1)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과 일본(왜)이 벌였던 해전의 양상을 공부해 보면 흥미로운 게 많다. 가령, 조선의 판옥선은 단면이 U자형이어서 평평한 바닥이 있는 반면, 일본의 전투함은 V자형이었다고..
일본 배는 더 빠르게 이동이 가능한 반면, 조선 배는 안정적이며 제자리에서 변침(조향, 회전)까지 가능할 정도로 최대속도 말고 다른 기동성이 좋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군함의 설계 이념부터가 조선은 방어 지향이고 일본은 공격 지향이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배는 닥치고 상대방에게 달려들어서 다리를 놓은 뒤, 자기 수병들이 그리로 건너가서 백병전을 벌이고 상대방 배를 점령하는 것에 최적화돼 있었다. 옛날에 해전이 진행되는 게 이런 식이긴 했다.

그러나 이 순신은 일본 배의 이런 장점 내지 특성을 봉쇄하는 쪽으로 기가 막히게 작전을 짰다.
지형 특성과 조수 간만 물때를 잘 활용한 건 말할 것도 없고, 판옥선의 강화판이던 거북선은 저렇게 남의 배로 건너와서 백병전 벌이는 걸 봉쇄하려고 등짝을 온통 고슴도치처럼 만들었다.

(2) 임진왜란 당시에 왜군들은 자기 전술이 통하지 않는 거북선을 ‘장님배’(메쿠라부네)라고 부르면서 두려워했다고 한다. 눈에 뵈는 게 없이 달려드는 깡패 같은 배라는 뜻에서 장님이라는 별명을 붙인 듯..

그 다음으로 1850년대에 일본은 서양의 시꺼먼 철갑선 ‘쿠로후네’를 보고는 단단히 쫄게 된다. 이때는 얘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화를 잘 했다.
그래서 임진왜란으로부터 300년쯤 뒤엔 지들도 군함 끌고 조선을 상대로 똑같은 짓을 했다. 운요 호 사건 이후로 조선을 겁 주고 차근차근 무장해제 시키고 이것 빼앗고 저것 빼앗은 뒤, 외교적으로도 고립시키고 끝내는 자기 식민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이런 내력이 있고, 또 러시아를 기적적으로 명목상으로는 승리도 했다 보니 큰 군함을 만드는 일에 진심이 됐다. 그래서 결국은 야마토까지 온갖 삽질 끝에 만들었지만.. 결국 그들에게 20세기 쿠로후네 같은 존재는 바로 미주리 전함이 됐다.
21세기엔 일본이 크고 아름다운 군함과 관련하여 또 무슨 일을 겪게 될지 궁금해진다.

(3) 일제 시대 독립군의 전과 같은 이야기 중엔 과장 주작이 들어가거나 잘못 알려진 것도 적지 않았다. 허나, 일제 이후에 북괴와 싸웠다는 이야기 중에도 그런 예가 있는가 보다.

6 25가 터지기도 전, 육탄 10용사야 한참 전부터 자잘한 논란이 많이 불거졌기 때문에 요즘은 무용담을 신격화하고 띄워 주는 트렌드가 많이 줄었다.
철도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김 재현 기관사는? 전시에 열차 운행을 하다가 피격 당해 전사한 것은 팩트이지만, 일반적인 보급 수송 임무였지 무슨 윌리엄 딘 소장 구출 임무는 아니었다고 하네..;; 이게 왜 지금까지 오랫동안 잘못 알려졌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6 25 개전 초기의 대한해협 해전도.. 뭔가 정체불명 괴선박을 격침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진짜로 북괴 공작원들을 수송한 배였는지는 오리무중이라고 한다. 정확한 전과 보고를 위해서라도 우리측에서 사건 현장 주변을 정밀 수색했지만, 북괴군 시신 같은 거라도 도무지 발견된 게 없었다고 하니..

오히려 6 25보다 수백 년 전의 일을 기록한 난중일기가 단순 일기를 넘어서 정확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 일기에서 언급하는 인물이나 사건이 당대의 외국 사료와 일치하고 교차검증이 됐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난중일기가 백범일지보다 더 신뢰할 만한 사료라는 게 놀랍기 그지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23 19:35 2025/07/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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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세카이 2025/09/19 21:26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역사에서 섬나라랑 연안국이 같이 있으면
    연악국은 섬나라한테 시달리게 된다고 해요

    그 이유가 섬나라는 자신들의 전력을 해군에 집중할 수도 있고 또 불리하면 도망 갈 수도 있죠
    연안국은 육군에도 투자를 해야하고 해군에는 전력에 일부분만을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군대의 양이나 질에서 섬나라에게 밀릴 수 밖에 없거든요

    유럽에서 보면 프랑스랑 영국이 대표적인데
    영국과 프랑스는 100년 전쟁도 했었고 또 프랑스가 가장 강했던 나폴레옹 시대에도 영국 해군이 프랑스보다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영국은 어떻게 하지 못했죠
    대륙 봉쇄령 했다가 러시아가 어기자 러시아 처들어갔다가 망했죠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탄금대에서 일본의 조총부대에게 몰살당했던
    그때 조선의 기마병들이 조선 최강의 부대였겠죠

    연안국은 섬나라에 비해서 불리한 환경인데다가
    그때 조선은 200년간 평화가 지속되었고 일본은 100년 동안 전국시대가 있었기 때문에 또 조총이라는 신무기도 있었기에
    군대의 질적인 면에서도 상대가 안 되었고
    영토도 일본이 더 크고 인구도 더 많기에
    당시 조선은 당할 수 밖에 없었겠죠

    근데 섬나라가 원래 해군이 더 강해야 되는데 이순신의 지휘능력이 탈인간급이어서 그때 이순신 없었으면 일제시대가 400년 더 일찍 왔을지도 모르겠네요

    강력한 적을 상대할 때 약자가 하는 방법이
    정면 대결을 피하고 상대 보급을 차단하고 지연전으로 가는 거죠

    러시아가 나폴레옹을 상대할 때도 그랬고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로마가 상대할 때도
    로마가 칸나에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로 그랬죠
    고구려가 수나라 당나라를 상대할 때도 그렇게 했었죠

    적이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은 다 태우고 우물 매우고

    625 전쟁에서 중공군도 국공 내전에서 단련된 강한 부대였죠
    그냥 머릿수로만 밀어붙인 인해전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밤에 은닉해서 기동하고 유엔연합군을 포위 섬멸하고
    매우 지능적이었어요

    대한민국에 주한미군만 잘 붙잡아두면
    한반도 땅에서 전쟁이 나지는 않겠죠
    우리민족 반만년 역사에서 이렇게 평화로웠던 적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반미 정권이 좌파 정권이 계속 들어서면 그것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1. 사무엘 2025/09/21 08:38 # M/D Permalink

      반갑습니다.
      연안국은 섬나라에게 시달린다... 오 그럴싸해 보이네요. ㅎㅎ
      물론 내륙· 연안국이 약소한 섬나라를 정벌해서 자국으로 편입시킨 경우도 없는 건 아니지만
      섬나라가 생각보다 쉽게 고립되거나 호락호락 정복당하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정면 대결을 피하고 상대 보급을 차단하고 지연전으로 ==>>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 강화도에서 존버한 것도 이런 경우??
      아 이건 상대방 보급 차단을 제대로 하지 않고 존버만 한 것 같군요.;;

      6 25 때 중공군이 오합지졸이 아니었다는 것 역시 팩트이구요.
      걔들이 무장도 제대로 안 한 오합지졸이었으면 전부 미군의 기관총에 갈려나갔지, 1· 4 후퇴와 서울 재함락이라는 이변이 발생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쭝궈 덕분에 오죽했으면 제 개인적으로는 반일 감정조차 많이 희석되고 상쇄됐지요.
      일본이 1차 대전 때는 연합국 승전국 말석이었지만 2차 대전 때 빌런이 되었듯..
      중국은 2차 대전 때 연합국 승전국 말석이었고 나중에는....???? 아마 가해자가 된 피해자로 역사에 남겨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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