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내리막 길가에다 차를 평행주차로 세울 일이 있었다.

주차를 막 마쳤는데, 내 차의 앞에 세워져 있던 차가 곧 출발하여 나갔다. 그래서 나는 내 차를 앞차가 있던 자리로 옮기려고 마음먹었다.
내리막길이니까 차를 움직이기 위해 굳이 시동을 켜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키를 on으로만 옮기고, 변속기를 N으로 옮겼다. 차는 슬슬 미끄러져 내려갔으며, 어느 정도 이동했을 때 난 브레이크를 밟고 변속기를 P로 바꿨다.

그런데, 이때 무심코 핸들을 돌려 봤는데 난 굉장히 놀랐다. on 상태이니 핸들이 완전히 잠긴 건 아니지만 조향하기가 끔찍할 정도로 힘들어져 있었다. 차 핸들이 이렇게 무거울 수도 있다는 걸 난생 처음 체험했다.

우와, 이것이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파워스티어링의 위력이었던가. 원래 그게 공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게 없는 차는 무거운 핸들 조작 때문에 특히 주차가 정말 어려웠겠다. 파워스티어링은 엔진의 동력을 이용해서 핸들을 가볍게 하기 때문에, 엔진 공회전 중에 핸들을 급조작해 보면, 심지어 엔진 회전수가 살짝 올라가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에어컨만 엔진 동력을 잡아먹는 게 아니다.

또한 얘는 핸들을 가볍게만 하는 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역으로 조작을 무겁게도 바꾼다. 고속 주행 중에는 반대로 핸들 조작이 너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겪은 후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조금 더 앞으로 가게 해도 될 것 같아서 변속기를 다시 N으로 바꿔서 차를 미끄러져 내려가게 해 봤다. 이번엔 차의 다른 반응 때문에 놀랐다. 아까 전까지 동작하던 풋 브레이크가 더 밟히지 않고 동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히 주차 브레이크와 변속기 P 모드로 차를 다시 세웠다.

역시나 듣던 대로 자동차의 풋 브레이크는 무슨 자전거의 브레이크처럼 오프라인 상태에서 언제나 동작하는 게 아니다. 시동이 꺼진 뒤에는 마치 리드 오르간처럼 공기압이 남아 있는 동안만 일시적으로(한두 번 밟는 것) 작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에는 움직이는 동안 강하게 제동을 거는 풋 브레이크와, 세워진 차를 미끄러지지 않게 고정하는 역할만 하는 주차 브레이크 계통이 둘 다 존재하는 것이다. 후자는 전자보다 제동력이 약하지만 그래도 stateless하고 언제나 동작한다.

요컨대, 자동차가 엔진 시동이 꺼지면 핸들이 무거워지고 풋 브레이크가 시한부로 바뀐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느냐 하면..
차가 급발진을 하면 시동만 끄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시동이 꺼지면 급발진의 동력원만 끊어지는 게 아니라, 파워스티어링과 브레이크의 동작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도 끊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보다 강하게 핸들을 돌려서 안전한 곳으로 차를 잘 조향해야 하며, 브레이크도 유압이 남아 있을 때 기회가 한 번뿐이니 이때 필사적으로 세게 밟아서 차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내리막에서 차를 시동 안 켜고 약간만 미끄러져 내려가게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해야겠다. 덜덜~

Posted by 사무엘

2013/12/28 19:36 2013/12/2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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