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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홈페이지 개설 10주년

본인이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한 지 이제 벌써 10년이 됐다. 2001년 5월 10일 이래로 말이다.
10년 전 그때는 본인이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인터넷 세벌식 사랑 모임을 통해 <날개셋> 한글 입력기 1.1x가 갓 공개되던 때였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그 시절 추억에 잠겨 본다.

그때는 HTML 코딩으로 개인 홈페이지 만드는 게 유행이었고, 포털 사이트들도 맞춤형 홈페이지 마법사 같은 걸 제공했었다. 사실, 무려 2001년이 돼서야 개인 홈페이지를 만든 본인도 시기적으로는 이른 게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홈페이지는 모름지기 업데이트가 홈페이지를 처음 새로 만드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법! 본인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공개 소프트웨어를 꾸준히 개발하고 있고, 또 쉴 새 없이 여타 컨텐츠-_-들도 공급해 온 덕분에, 대형 커뮤니티도 아니고 얼어붙은 듣보잡 공간도 아니면서 꽤 잘 돌아가는 개인 홈페이지를 10년째 잘 유지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 추세에는 당분간 변화가 없을 것이다.
내 홈페이지 방명록에 최초로 글을 남기신 분은 kz 님이었다.

내 홈페이지가 초창기에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곳은, 지금은 없어진 인터넷 세벌식 사랑 모임이었다. 내 홈페이지뿐만이 아니라 거기에다가도 <날개셋> 한글 입력기 1~2.x를 독점(?) 공급했으니 그쪽 바닥에서 유명해질 수밖에. 내 홈페이지는 세사모의 인지도를 등에 업고 성장한 셈인데 이것도 다 지난 추억이 되고 말았다.

잘 알다시피 내 홈페이지의 초창기 주제는 한글, 세벌식, 컴퓨터 프로그래밍 쪽이었으며 지금도 그 구도가 크게 달라져 있지는 않다. IOI 문제 번역과 정렬 알고리즘 모음집 같은 자료는 국내 검색엔진에 별도의 디렉터리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일종의 성지가 되었다.
이에 덧붙여 10년 전에 없던 커다란 topic이 추가된 게 둘 있으니 하나는 기독교와 성경 카테고리요, 다른 하나는 그 이름도 유명한 철ㅋ도ㅋ이다.

이 홈페이지는 처음에는 드림위즈 계정에서 시작하였으나, 1년 남짓 후 지금의 new21로 갈아탔다. 꾸밈이라고는 없이 진짜 생 HTML 텍스트+링크만 잔뜩 있는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다. 지금 홈페이지의 버전은 지난 2010년 1월부터 시작된 시즌 4이다. 2002년의 시즌 2때부터 new21 계정 + 제로보드가 사용되었으며, 2006년의 시즌 3은 시즌 2에서 게시판의 용도별 정리 + 앞서 언급한 신규 주제(기독교, 철도)의 추가에 따른 컨텐츠 보완이 주 목표였다. 아, ‘절대공간’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소개된 게 시즌 3부터이다.

시즌 4는 일종의 쇄신이었다. 홈페이지의 거추장스러운 컨텐츠들을 상당수 삭제하여 대문을 일종의 시즌 1처럼 다시 단순화시켰다. 그리고 무려 8년 가까이 커뮤니티 공간으로 써 온 구닥다리 제로보드 4 게시판을 없애서 과거와의 과감한 단절을 선언했다. 그 대신 설치형 블로그 엔진을 얹었다. 이 얼마나 큰 변화인가?

원래 시즌 4 작업을 홈페이지 개통 10주년에 맞춰서 지금쯤 하려고 했는데 2010년에 허겁지겁 추진한 이유는,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새로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홈페이지를 바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게 준비 작업의 일종인 셈이었다. 블로그 자체도 무려 2010년이 돼서야 정말 엄청나게 늦게 도입한 것이기도 하나-_-;;,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블로그 글이 이제 벌써 500개에 달해 있다. 이 정도면 옛날 제로보드 시절은 까맣게 잊어버리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시즌 5는 2014~2016년쯤에 내가 박사 과정이 꺾이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거의 완전체 수준에 도달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날개셋> 다음 아이템의 연구 결과가 나올 무렵쯤에나-_-;; 선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때쯤이면 나도 스마트폰을 쓰고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웍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ㅎㅎ 아예 홈페이지 계정을 new21 말고 다른 걸로 바꿀지도.

시즌 1과 2가 본인의 대학 시절을, 시즌 3이 본인의 병특과 직딩 시절을 대표했다면 시즌 4는 본인의 대학원 시절을 대표할 것이며 시즌 5는 그 후 본인의 인생에서 정말 결정적인 순간을 함께하는 홈페이지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무렵에 연애와 결혼은 가능하려나.. ㄲㄲㄲㄲㄲㄲ
아울러, 시즌 5 때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영문/일본어 소개 페이지를 만드는 것도 계획되어 있다.

나는 홈페이지의 덕을 정말 많이 봤다. 홈페이지 덕분에 맺어진 인연을 생각해 보면... 물론 이따금씩은 나도 열폭도 하고 키배도 뜨고 무진장 과격한 글도 쓰면서 친구뿐만이 아니라 적도 만들고 내 홈페이지를 떠나는 사람도 만들었다. 정치 놀이, 종교 놀이는 20대 초· 중반의 패기로 하기에는 정말 재미있었다. ㅎㅎㅎㅎ

그때 내가 조금만 분을 참고 친절한 자세를 보였으면 동지가 떠나지는 않았을 텐데 약~~간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아쉽다거나 후회되는 건 아니다. 내가 무슨 장사를 하다가 고객을 잃은 것도 아니니 뭐.. 그때는 나도 현실이 내 정신연령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기가 막힐 때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민감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쓸 때의 태도를 좀 고쳐먹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이런 사실을 깨닫고부터였다. 내가 아무리 진지하게 의분(?)을 담아서 글을 써 봤자, 일단 마음이 편견에 완전히 닫혀 버린 사람에겐 내 글의 진심이 절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

내가 남과 견해가 달라서 욕 얻어먹는 거야 전혀 두렵지 않은데, 남이 나에 대해서 나의 실제 모습과는 다르게(나쁜 쪽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건 나에게 마이너스가 아닐 수 없다. 가령, 나는 정말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에 의거해서 이 승만 전대통령을 존경스러운 애국자라고 주장하는 글을 썼는데, 남은 그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서 김 용묵은 그냥 뉴라이트 수꼴 부류라고 낙인을 찍어 버리는 것이다. ㄲㄲ

그래서 지금까지 이곳 블로그 글을 보신 분은 이미 추세를 느꼈겠지만, 시즌 4를 시작하면서 본인은 본인만의 색깔과 이념과 진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중립· 객관성을 지키고 거부반응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최대한 표방했다. 지금 같은 글투는 그런 옛날의 시행착오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뭐, 비록 옛날 근성이 완전히 죽은 건 아니기 때문에, 요즘도 사형 제도 같은 열불나는 이슈가 나오면 약간 흥분 안 하는 건 아니다만..

그리고 예전에 비해서 서브컬처 유머들의 패러디가 글중에 부쩍 늘었다는 걸 느낄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 화백 만화 대사 같은 것. ㅋㅋㅋㅋ 거기에다가 성경도 들어가고 철도도 들어가니, 이런 생뚱맞은 학문 융합은 오로지 김 용묵의 절대공간에서만 볼 수 있는 컨텐츠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 홈페이지를 지켜봐 준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을 부탁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10년이 지났고 앞으로 또 10년 뒤에는 이곳이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그때는 개근 방문자 위주로 오프라인 모임이라도 좀 추진해 볼까 싶기도 하다. ^^

Posted by 사무엘

2011/05/11 08:47 2011/05/1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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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 지대 답사

독자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본인은 지독한 철도 덕후이다.
하지만 자가용이 있다면, 철도가 닿지 않는 오지를 다녀 보고 싶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런 곳이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행정구역상 분명 서울인데도 높은 빌딩과 아파트들은 온데간데없고, 푸른 들판과 비닐하우스와 화훼 단지, 단독주택들이 즐비한 흠좀무스러운 곳이 있다. 그린벨트라고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다.

본인은 대학 시절에 인터넷 신문에서 '지하철 타고 다니는 어느 농부'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이건 '소리 없는 아우성'만큼이나 얼마나 안 어울리는 조합인가? 화제의 인물은 집이 광명시에 있어서 7호선 역세권인데, 잘 알다시피 천왕 역 일대가 허허벌판이다 보니까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산다고 한다. ㅎㄷㄷ;;
또한, 강서구의 마곡 역 일대는 아예 지하철역의 개통마저 10년이 넘게 무산시켰을 정도로 대표적인 미개발 지역이었다. 1990년대에 고 건 서울 시장이, 후세를 위해 택지 개발을 보류했기 때문.

천호대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 보면, 강동 역에서 서울 지하철 5호선은 상일동과 마천 방면으로 꺾어지지만, 가던 방향으로 하남시 쪽으로 계속 진행하면 드디어 시가지가 끝나고 별천지가 펼쳐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강남만치 금싸라기 땅과(2, 3, 7, 9호선과 분당선 지하철!) 미개발 지역의 격차가 심한 곳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서초구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동은 그린벨트로 묶여서 시간이 정지해 버린 시골 마을인데, 거기도 듣자하니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하더라. 굳이 미어 터지는 서울 도심에서 지지고 볶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신 분들. =_=;;

그런데, 미국 LA에 가 보니까 일반 서민들이 다 그런 시골 마을에서 살던데... ㅠ.ㅠ
집집마다 차고가 있고 가족 구성원이 제각기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 아파트라고 해 봤자 달랑 2~3층짜리 공동 주택인데, 좀 빈민이나 아직 경제 기반이 부족한 신혼 부부들이나 사는 곳이고.. -_-;;; LA 시내는 땅값이 너무 비싸서 다들 베드타운 위성도시에서 사는데, 외곽에서 시내로 매일 서울-대전뻘 되는 거리를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게 일상사라고 한다. 이런 게 역시 잘 사는 대륙 국가의 기상이다. -_-
그냥 대륙도 아니고(중국은 뭐.. -_-), 그냥 잘 살기만 하는 나라(일본은 국가가 잘 사는 것만치 서민이 잘 사는 나라는 아님)도 아니고, 잘 사는 대륙 국가가 말이다.

뭐 어쨌거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홀연히 답사를 다녀왔다. 세곡동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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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언제까지나 개발 제한 구역일지는 모르겠다. 서울에 녹지대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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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한적한 골목. 내가 몰고 온 차도 저 차들 중에 있다. ^^;;
내 차 남 차를 떠나서, 공공장소에서 차 번호는 남의 초상권이나 주민 등록 번호만큼이나 유출하거나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므로 모자이크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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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그런데 주차 문제는 좀 심각할 듯.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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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성남시 내부이지만, 분당과는 달리 경부 고속도로 서쪽에 있는 성남시 고등동, 신촌동은 역시나 도시 분위기와는 거리가 너무나 먼 곳이다. 군사 시설인 서울 공항까지 있다 보니 더욱 개발 제한이 심할 것 같다. 이 크고 아름다운 도로는 널널하기 그지없어서 차들이 쌩쌩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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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항은, 청와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민간 지도에 표시도 되어 있지 않은 군사 시설이다. 그래서 청와대처럼 청색 기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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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장을 지나서 양재 IC와 가까워지면서 시골이 아닌 서울 분위기가 나고, 차들이 급격히 늘어난다. 양재 IC 근처에는 현대와 기아 사옥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데, 마치 대전 역 근처에 있는 코레일· 철도 시설 공단 쌍둥이 건물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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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항과 세곡동 일대의 한적한 도로와는 달리, 경부 고속도로는 평일 낮에도 차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들은 답이 없는 지경이다.
경부 고속도로는 딱 양재 IC 이남부터가 도로 공사 관할이고, 그 이북은 서울시 관할이다.

운전을 해 보니까 참 재미있다. 생업에 종사하기 위해 차를 매일 몰아야 한다면 스트레스 받고 피곤할 거고, 차량 유지하느라 돈도 딥다 많이 깨지겠지만, 1주일에 한 번 남짓 취미로 하는 거라면 이보다 즐거울 수 없을 것이다.
틈나는 대로 이런 그린벨트라든가 철도 중앙선 구간의 간이역을 자가용으로 답사해 보고 싶다. 내가 사는 곳이 그래도 동부이다 보니 하남, 구리, 양평 같은 곳에 관심이 간다. 서울은 동남부가 철도 인프라가 유난히 열악하기도 하니..

서쪽의 김포는 전형적인 도농 복합 도시인 것 같다.
양평은 한강 상수도를 보존해야 한다는 명목 때문에 강력한 개발 제한이 걸린 곳이다. 그래서 서울과 상당히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휴양· 관광 도시 역할이나 하게 될 듯하다.

본인의 고향인 경주는 잘 알다시피 문화재 보존 떡밥 때문에 아파트나 상업용 건물의 층수 제한이 걸려 있었다. 좀 과장 보태자면, 건물 지으려고 땅만 팠다 하면 각종 유물이 줄줄이 출토될 지경이었으니 개발을 제대로 할 수 있었겠나? 그래서 소중한 문화재들이 정작 건설업자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고 한다.

박통 하면 흔히 오로지 경제 개발, 성장주의만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서울의 과포화와 지나친 팽창을 염려하고 경계도 했으며, 요즘 용어로 표현하자면 행정수도 이전도 구상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행정력을 동원해서 서울 같은 대도시의 어느 구역 이상부터는 개발을 금지하고 녹지로 남기는 그린벨트를 조성했다.

물론, 그린벨트 구역에 땅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게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며, 어떤 면에서는 그게 재산권을 침해하는 악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대단히 아이러니한 사실은, 주로 진보 진영에서(=박통을 욕하는 편인) 그린벨트 정책을 환영하고 박통의 업적이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보수 진영에서 그 정책을 비판한다고. 서로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형태라든가 처지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_-;;;

차를 굴리기 시작했으면, 여친 사귀어서 태우고 다니면서 근처 맛집이나 좋은 데이트 코스 답사를 하는 게 보통일 텐데 나는 드라이브도 완전 오덕스러운 스타일로 하는 거 같다. ㅠㅠㅠ Looking for you와 Oh Glory Korail 들으면서 차 운전하는 재미를 여러분들이 이해하시겠는가? -_-;;;

Posted by 사무엘

2011/05/09 08:54 2011/05/0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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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매년 4월 중하순에는 어지간한 개신교회들이 부활절이라고 지키는 절기가 있다. 잘 알다시피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한다고들 한다.
부활 신앙은 창조 신앙만큼이나 신자와 불신자를 가르는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기독교 교리이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절대로 성립할 수 없다고 성경에 직접 선언되어 있다(고전 15:12-19).

일단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이었다는 건 세속 역사가들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건 인정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백과사전이나 세계사 관련 서적을 보면, 예수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이렇게 살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까지만 서술하고 끝난다. 그 이상을 적으면 종교색을 띠는 민감한 영역이 되어 버리니까..;; 아니면 부활 승천 떡밥의 출처는 '카더라' 통신이라고만 얼버무린다. 이건 마치 “성경이 소설이냐, 비소설이냐?”와 비슷한 영역에 속하는 논쟁거리이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이 죽어서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고, 다시 말해 스스로 살아났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전말에 대해 좀 살펴보자.

각종 종교 성화나 영화들은 예수님을 무슨 리처드 스톨먼 같은 치렁치렁 장발의 나이 지긋한 도인, 교주, 심지어 록스타-_-처럼 그려 놓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좀 고증 오류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한국어 성경은 예수님의 언행을 다 아주 위압적인 반말 '해라체'로 기록하고 있으니, 심리적으로 느껴지는 예수님의 연령대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생애 시절의 예수님의 육신의 나이는 30대 초중반의 청년, 기껏해야 노총각이다. 그런데 벌써 제자를 뒀을 정도면 그들은 도대체 몇 살이란 말이냐?

어쨌든, '아름다운 청년'이든 도인 교주이든, 죽은 자를 살리고 물 위를 걷고 5천 명의 군중을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이던 화제의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악질 흉악범으로 몰려 그것도 민족 대명절에 너무도 무기력하게 십자가형을 당해 버렸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매수당한 사람이나, 예수가 슈퍼스타답지 않게 자신들의 정치적 육신적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않는) 것에 대해 실망한 사람들은 옳다구나 예수님을 마음껏 조롱하고 욕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히 패닉에 빠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 인맥으로 좋은 감투라도 얻으려고 제자들 내부에도 줄서기 파벌이 생길 지경이었는데(마 20:20-24 같은) 그런 꿈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난 모든 걸 버리고 오로지 그분만 따랐는데 내 주인님이 이렇게 죽어 버리시다니!”
물론 예수님은 그 전에 자신의 고난과 죽음,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수차례 예고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당시엔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들었다.

성경은 예수님이 죽으시고서 사흘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한다. 그 시간 동안 제자들은 OTL(좌절) 모드로 있으면서 패잔병의 심정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할 채비나 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 중에 너무 상심한 나머지 자살한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다. 물론 예수님을 대놓고 배반한 가룟 유다는 제외하고.

그랬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그 부활한 주님을 처음으로 알현하는 영광을 누린 사람은 제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한 여인들이었다. 무덤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어야 할 군인들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없고, 역사 기록에 따르면 황제의 봉인까지 굳게 쳐져 있었다는 무덤 입구는 뚫려서 훤히 열린 상태였다.

누가복음 24장에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이 나타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뭔 일 때문에 그렇게들 난리요?” / “헐, 요즘 예수 시체 증발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에요. 님은 소문도 못 들었어요?”
글로바라는 사람이 예수님에게(예수님인 줄 모르는 채로), 근래에 있었던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본인은 눅 24:19-24의 기록은 정말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진술이라고 생각해 왔다. 거짓· 과장이나 왜곡이 없고, 세속 신문이나 백과사전 기사, 그리고 21세기로 치면 블로그 포스트로도 손색이 없다. 성경을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의 반응은 '오, 그래. 그 괴이한 사건에 대해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알기 쉽게 참 잘 설명했구나'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가 막힌다는 심정으로 그를 크게 나무라셨다! 이 점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오 어리석고 대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함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넌 왜 그걸 남의 일인양 꼭 불신자처럼 얘기하느냐?)”

예수님께서 친히 성경(=구약)을 펼쳐서 창세기의 이건 내 예표, 레위기의 저것도 내 이야기, 이것도 내 예언, 저것도 내 예언... 풀이를 해 주자 그제서야 제자들은 마음이 열리고, 지금 시국은 겨우 가십거리 미스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이 이뤄진 것이고 그게 바로 자기를 위한 것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의심과 혼동의 구름이 걷히고 마음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눅 24:32). 그때 왜 예수님이 글로바를 책망하셨는지 하나님의 그 답답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크리스천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각종 성인군자들, 사이비 종교 교주들, 그리고 심지어 공산 독재 국가의 원수들은 다 무덤이 성대하게 꾸며져 있다. 특히 후자 같은 경우는 시신의 미라화와 방부 처리를 하느라 별 돈지랄까지 다 한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이고 굳이 말하자면 기독교의 교주인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자랑거리이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으나, 그 사망 권세가 예수님을 가둬 두지 못했으며 인간의 죄값이 2000여 년 전에 십자가에서 완전히 치러치고 청산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당당히 부활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그 어떤 조직보다도 피비린내나는 순교 행렬이 넘쳐났음에도 불구하고, 예배 때 묵념이나 추모가 없다. 그분들이 다 지금도 살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죽다'의 높임말로 '돌아가시다'(자연으로, 흙으로 완전히 돌아갔기 때문에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심)가 통용되는 반면, 예수님에 대해서는 일회적인 죽는 동작만을 높여서 '죽으시다'가 쓰인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이 얼마나 복된 소식인가? 이 기쁨을 힘차게 잘 표현한 대표적인 찬송가가 바로 <무덤에 머물러>이다.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는 느낌이다. '무덤에 머물러...'(택싱), '원수를 다 이기고...'(엔진 throttle 시작), '사셨네'(이륙 결심 속도 돌파.. 상승-_-)

예수님의 부활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었는지 모른다. 부활한 주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겁쟁이에서 불과 며칠 만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자 같은 주의 용사로 180도 돌변했다. 조금 외람된 구석은 있지만, Looking for you를 듣기 전과 들은 후 본인의 철도관의 변화 추이 정도에 비유할 수 있겠다. (엥?)

흔히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죽으신 날은 금요일이 아니다. 자세한 고증 과정은 생략한다만, 예수님은 수요일 오후에 죽으셔서 진짜 말 그대로 사흘 밤낮을 무덤에 계셨다. 그러다 딱 사흘 뒤인 토요일 오후에 깨어나서 막힌 벽을 쓱 통과하든(요 20:26처럼) 군사들을 쫓아내든 무덤을 일찌감치 탈출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인 일요일 아침에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이다. 쉽죠?

목요일은 명절인 유월절 안식일이고, 토요일은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안식일이다. 유대교 신자인 유대인들은 안식일인 토요일에 회당에서 집회를 열지만, 기독교회의 예배 시기는 예수님의 부활 시기에 초점을 두고 일요일이 전통으로 정착하게 됐다. 요 20:1, 요 20:19, 행 20:7, 고전 16:2 등. 여기서 first day of the week는 다 일요일을 뜻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서 “예수는 잠시 기절해 있다가 무덤에서 깨어났다. 나중에 도망쳐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후손까지 남겼다”-_-;; 같은 엄청난 낭설을 지어내는 사람이 있는데...;; 반박할 가치도 없는 개드립이다. 오히려 당시 문헌 기록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검토하다 보니, 예수님의 부활을 도저히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고 부인할 수 없어서 예수님을 믿게 된 무신론자 석학도 존재한다. 부활은 기독교를 여타 종교와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핵심 요소임이 틀림없다.

※ 관련 아이템 1: 예수님과 요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과 관련지어 하나 생각해 볼 주제는 예수님과 요한과의 관계이다. 다른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이 어린 요한은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십자가로 돌아왔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육신의 모친 마리아를 맡겼다(요 19:26-27).
얼마 전 최후의 만찬에서 “너희들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폭탄 선언에, 다른 제자들은 다 “그게 혹시 저입니까?”라고 반문하였으나 요한만은 예수님 품에 스스럼없이 기대어 “주님,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죠?”라고 물었다(요 13:21-25). 그는 그만큼 그분과 각별히 가까운 사이였다.

이런 요한은 본이 아니게 아마 순교하지 않고 제자들 중에 제일 장수할 거라는 복선을 얻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로부터 먼 훗날, 요한은 예수님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고 90대의 백발노인이 된 몸으로 파트모스(밧모)라는 섬에 귀양을 갔다.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상황이었을 텐데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대단원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오오~~~

예수님께서 가장 비참하고 고독하게 고난을 당하고 계실 때 요한이 십자가 곁에 있었으며, 그때 그는 비록 정확한 나이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20대 청년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완전 늙었고 홀로 외로이--자기 동료들은 거의 다 순교하고 없다-- 임종을 앞두고 있었을 때, 반대로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 주신 것이다. 이때 요한이 수십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얼마나 기뻤을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가 훗날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날 사랑하느냐?”란 질문을 세 번 받았다는 일화만큼이나, 요한과 예수님 사이의 에피소드도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분의 인상은 계 1:13-16에 묘사되어 있듯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예수님과 그토록 친밀했던 요한조차도 그 위엄에 완전히 압도되어 꼼짝없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 관련 아이템 2: 부활절과 이스터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거창한 명분과는 달리, 오늘날의 기독교 문화권에 존재하는 일명 부활절은 유감스럽지만 그리 성경적인 기원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영문 명칭부터가 이스터이고, 이는 기독교를 세상적으로 공인한 로마 제국이 이교도들의 절기를 기독교 관행에다 적당히 짬뽕하면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주 유명한 논쟁거리가 있다.
킹 제임스 성경은 현존하는 성경 역본들 중 부활절의 유래를 정확하게 알려 주는 유일한 성경이다. 바로 사도행전 12:4에서 이례적으로 '이스터'(Easter)라는 튀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성경에서 그리스어 '파스카'는 행 12:4를 포함해 약 20여 회가 쓰였으며, 다른 곳에서는 유대인들의 명절 '유월절'(passover)이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 그러나 KJV는 딱 한 군데 저기서만은 그 단어를 '이스터'라고 번역했다. 파스카는 유월절도 되고 이스터도 되는데, KJV는 그 둘을 잘 맞게 분별한 것이다.

성경 본문을 보면 악한 헤롯 왕은 기독교를 박멸하기 위해 야고보를 죽인 후, 베드로까지 잡아들였다. 성경에 따르면, 베드로가 체포된 시기는 무교절 기간이었다고 한다. 헤롯은 베드로를 감옥에 가뒀다가, 파스카라는 명절이 다 끝난 뒤에 백성들 앞에 끌어내서 그를 아마 공개 처형이라도 할 작정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무교절은 유월절이 끝난 뒤에 이어진다는 것. 레위기 23장처럼 구약 율법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에겐 이건 상식이다. 헐, 그런데 무교절 기간에 체포된 사람을 유월절이 끝난 뒤에 끌어낸다고라? 이건 21000원짜리 밥을 사 먹고 나서 돈은 20000원 내고, 포장마차 주인에게 “잔돈으로 애새끼들 과자나 사 주라”는 계산법을 구사하는 김 성모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논리이지 않은지? -_-

그래서 KJV의 번역자는 당대의 언어와 역사· 문화 배경상, 이 파스카는 유대인의 정통 성경 명절이 아니라 이교도들의 짝퉁 명절인 이스터라는 판단을 내리고 '파스카'를 정확하게 번역해 냈다.
KJV를 헐뜯는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KJV에도 오역과 오류가 많답시고 다른 수많은 궤변을 들고 덤빌지 모르나, 우리는 다른 건 몰라도 이스터 하나는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본인은 지금까지 이스터에 대한 KJV 안티들의 재반박은 전혀 접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스터 하나만 딱 보고는 '우와!' 무릎을 탁 치고 KJV 유일주의자로 전향한 크리스천은 봤다. ^^;;

※ 관련 아이템 3: 십자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아서, 지금 당장이라도 죽으면 바로 하늘로 갈 확신이 있는 크리스천이라면...
그래서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면,
현재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당신 앞에 바로 놓여 있는 십자가나 묵묵히 지면서 주님을 잘 따르면 된다. '나는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는 안 믿는다' 같은 소리 하지 마라. 그 고마운 예수님이 바로 교회의 머리이다.

예수님의 명령은 안 지키고는, 없는 십자가를 만들어서 질 필요 없다!
특히 주님의 고난을 몸소 체험하겠답시고 육체적으로 자학을 한다거나 그런 짓 하지 마라..;;
교회 성도가 대환란 겪을 준비를 하겠다고 뻘짓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 세상이 그렇잖아도 성경대로 살기가 불가능에 가깝게 얼마나 힘든 시국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무슨 고난을 더 보태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07 08:49 2011/05/0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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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id 소프트웨어는 PC 환경에서 궁극의 최적화 기술을 선보이며, 1인칭 3차원 FPS 장르를 개척한 선두주자였다. 둠(Doom)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불멸의 명작으로 기록되었고 수많은 매니아· 폐인들을 양산했다. id의 기술력은 그 후에도 Quake 시리즈로 이어지며 발전을 거듭했다. 후속작인 퀘이크는 이 장르에서 스프라이트가 아닌 100% 3D 폴리곤을 실현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음침한 던전과 곳곳에서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살벌한 울음 소리. 피떡이 된 몬스터 시체들;;
둠은 잔인성과 폭력성 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특히 SF에다가 오각형, 염소 머리 등 지극히 오컬트· 사탄주의-_-를 가미한 세계관은 기독교 진영으로부터도 풍부한 까임거리를 제공했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를 내고 자살한 어느 비행 청소년은 평소에도 Doom 중독자였으며, 게임을 하듯 사람을 죽이고 싶어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처럼. ㄲㄲㄲㄲ

그랬는데 일대일 대전 격투 게임 분야에도 Doom과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는 명작이 있다. 바로 모탈 컴뱃(Mortal Kombat).
그 장르의 게임으로는 의외로 미국산 게임이 별로 없다. 본인이 아는 건 삼국지 무장쟁패,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버추어 파이터 따위가 고작인데, 어느 것도 미국산이 아니다.

그에 반해 모탈 컴뱃은 미국산이다. 하지만 게임 로고에서부터 용의 그림이 등장하고 좀 동양스러운 느낌이 난다.
모탈 컴뱃은 1992년, 그러니까 울펜슈타인과 버추어 파이터 1하고 비슷한 시기에 첫 편이 나온 후, 오늘날까지 꾸준히 후속편이 출시되어 왔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K 발음이 나는 C에 일부러 K를 집어넣었다. 코브라도 Kobra. 그렇게 적으니까 꼭 한국스러운 느낌이 나는구나(Korea? Corea?).

모탈 컴뱃이라는 말 자체는 격투 룰을 가리킨다고 한다. 마치 배틀 로얄(Battle Royale)처럼 말이다.
본인이 중딩 꼬꼬마이던 시절에, 주인공의 그래픽이 실사처럼 아주 큼직하고 정교하고, 마지막에 Finish him/her!이 나오는 격투 게임을 잠깐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게임이 바로 저 게임이었다.

그리고 스프라이트는 '실사처럼'이 아니고 '실사'가 맞다. 모탈 컴뱃은 1995년에 출시된 3편까지는, 비록 2D 도트이지만 액션 배우의 움직임을 그대로 촬영한 스프라이트를 써서 상당히 획기적인 그래픽을 선보였다. 실사 이미지로부터 잘 편집된 256색용 스프라이트를 얻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대단하다. 그야말로 엄청난 노가다였을 것이다.
(무려 1989년에 페르시아의 왕자의 스프라이트를 만들 생각을 했던 조던 메크너만큼이나 획기적인 시도이다.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본인은 옛날에 256색 모드에서 궁극의 팔레트 최적화도 엔지니어들의 어지간한 덕력과 근성이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크래프트를 생각해 보라. 어떻게 그 그래픽에서 8종족 색깔별로 클록킹 유닛(알파 블렌딩)을 구현했으며, 퀘이크는 동적 광원을 구현했겠는가!

이 게임의 백미는 격투 말미에 다 죽고 헤롱헤롱하고 있는 상대편을 필살기로 끔살하는 일명 Fatality 기술이다.
퀘이크 3 아레나에 레일건이 있고, 카트라이더에 드리프트가 있으며, 스타크래프트에 스팀팩과 사이오닉 스톰이 있다면...
모탈 컴뱃에는 Fatality가 있다.

이게 정말 성경에 나오는 '인간의 상상하는 바가 원천적으로 악하다'(창 6:5, 8:21)는 걸 입증하는 것 같다. 사지를 각을 뜬다거나, 전기로 지지거나 산 채로 불태우거나 뭐 기타 등등...;;
주인공별로 가히 기상천외한 엽기적인 방법으로 상대편 캐릭을 작살을 낼 수 있다. 저런 현란한 비주얼을 어떻게 만들 생각을 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도 그런 거 보면 쾌감이 느껴진다. 아담의 본성이다. -_-

그 후 모탈 컴뱃 4는 당대의 게임계의 추세에 따라 드디어 주인공이 3D 폴리곤으로 바뀌었다. 비록 그때는 현란한 각도 회전을 대가로, 예전의 2D 스프라이트가 뽐내던 도트 단위의 화려한 비주얼은 어느 정도 희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3D 그래픽은 가히 실사나 다름없다. full 3D 게임이 처음으로 나오던 때는 버추어 파이터도 주인공이 가히 목각 인형에 불과했고, 퀘이크도 파티클은 그냥 사각형 픽셀로 처리될 정도로 허접했다.

동양스러운 느낌 하니까 생각나는데, 퀘이크 3 아레나도 싱글 플레이의 최종 보스인 Xaero는 사이보그 로봇이 아니고, 오크나 저그 같은 괴물도 아니다. 대머리에 중국 내지 티벳 승려 차림을 한 아저씨이다. 예전의 FPS 게임들의 최종 보스가 무식하게 높은 HP + 물량전 컨셉이었다면, 퀘3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마치 결투를 하듯 정밀도가 높은 레일건으로 플레이어와 승부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본인은 퀘3을 처음 하던 시절에 무척 놀랐었다. FPS에다가 격투 게임 비슷한 디자인을 도입한 셈이다.

모탈 컴뱃은 툼레이더나 둠처럼 영화화도 되었다. 동양을 배경으로 말이다. 퀘이크에 매니아 계층인 '퀘이커'(개신교 교파인 퀘이커 말고-_-)가 있다면, 모탈 컴뱃도 '모탈리안'이라고 불리는 매니아 계층이 서양에는 굉장히 많다고 한다.
유튜브에 스타크래프트 실사판이 나돈 적이 있었는데-_- 이 양덕후 모탈리안들은 모탈 컴뱃 실사판도 만들어서 UCC랍시고 올린다. ^^;;

대전 액션 게임의 내레이션은 톤이 극도로 낮고 좀 사악한(?) 느낌이 나는 남자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Fight one. Ready, go” / “Round one. Fight!” / “You win” 등. -_-

이렇게 본인이 갑자기 모탈 컴뱃에 대해서 글을 쓴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에 본인이 만들었던 오목 게임의 이름도 아마 모탈 컴뱃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서이다. 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5/05 09:03 2011/05/0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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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말의 역사

오늘날 PC의 GUI 환경에서 돌아가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은 F1을 누르면 도움말이 나온다.

윈도우는 운영체제 차원에서 표준 도움말 규격이 있는 것으로 예로부터 유명했다. 아예 운영체제의 API에 WinHelp 같은 함수가 정식으로 등재되어 있다. -_-
맥 OS는 모르겠고, 리눅스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고 들었다(쉘부터가 GNOME이 뭔지 KDE가 뭔지 사실 아직도 알쏭달쏭... ㄲㄲ).

그 원조는 바로 WinHelp와 그 기반의 HLP 도움말 파일이다. 20년 전의 윈도우 3.0때 처음으로 도입된 이 기능은 나름 굉장히 유용했다. 다양한 서식을 적용한 텍스트 + 이미지 + 하이퍼링크 + 팝업창은 일종의 인터넷 WWW와도 비슷한 수준의 인터페이스였다. WinHelp는 의외로 기능이 다양해서 도움말에다 색인도 넣고, 도움말 창의 버튼도 customize 가능했다.

당시 WinHelp를 설계한 엔지니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도움말이라는 간단한 주제 하나만으로 굉장한 대작을 만들어 냈다. 윈도우 3.1 때 도움말 시스템이 소폭 업그레이드되긴 했으나, 아직까지는 대동소이하고 하위 호환성 정도는 유지되었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도움말은 기본적으로 오늘날 워드패드가 사용하는 RTF(서식 있는 텍스트) 기반이었다. 문서 파일에다가 각종 도움말 메타정보를 WinHelp 스펙대로 넣어 준 후, 이들 파일과 그림들을 Help Compiler로 컴파일하고 압축하면 HLP 파일이 생성되었다. 하지만 이건 대단히 번거롭고 까다로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 절차를 간소화해 주는 위지윅 도움말 저작 도구도 응당 개발되어 나오곤 했다.
16비트 윈도우용 SDK를 보면 도움말 컴파일러가 HC30 (윈 3.0 공용), HC31 (윈 3.1 전용)이 따로 있었다.

이 WinHelp는 윈도우 95에서는 4.0으로 버전이 올라가고 기능이 훨씬 더 강화되었다. 계층 구조의 목차가 따로 추가되어서(*.CNT) 도움말의 첫 화면에다 번거롭게 목차를 본문 형태로 넣을 필요가 없어졌으며, What's this?라는 풍선 도움말이 추가되었다. 창도 더욱 아담해지고 응용 프로그램과 통신만 잘 주고받으면 거의 CBT 수준의 인터렉티브한 도움말을 만들 수도 있게 됐다.

윈도우 3.x 시절에는 매 대화상자마다 한쪽 끝에 ‘도움말’ 버튼이 있는 게 유행이었는데 그게 95부터는 다 사라졌다. 그 대신 X 버튼 왼쪽에 [?] 버튼이 생겼다.

그리고 또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도움말 시스템이 16비트(winhelp.exe)와 32비트(winhlp32.exe)로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윈도우 운영체제의 도움말은 단순히 하이퍼링크가 달린 RTF 문서 뷰어 수준을 훨씬 더 능가하는 방대한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HLP 파일은 윈도우 API를 호출하는 건 물론이고 WinHelp 규격대로 만들어진 플러그 인 DLL들을 붙여서 도움말 화면을 사실상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었다. 나만의 버튼을 추가하고, 확장 기능을 넣고... DLL이 들어간 이상 16비트와 32비트의 분리는 불가피해진 것이다. 지금 같으면 32비트와 64비트의 분리가 필요하겠지.

얼마나 customize가 가능하냐 하면, HLP 파일에다가 마치 오늘날의 HTML 도움말(CHM)처럼 목차 탭을 도움말 내부에다 보조 윈도우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도움말이 WinHelp에다가 아예 없던 기능을 추가할 수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과거 본인이 즐겨 이용하던 Paint Shop Pro 7은 Robo HelpOffice라는 저작 도구로 만들어진 HLP 도움말을 제공했는데, 정말 기능이 상상을 초월하게 화려했다.

이게 웹으로 치면 ActiveX이다. 도움말 세계의 ActiveX인 셈인 것이다. -_-;;

그랬는데, 윈도우 98 + 인터넷 익스플로러 4가 되면서 새로운 도움말 시스템이 또 등장했다. 서식 있는 텍스트+하이퍼텍스트의 진수는 바로 웹이 아니던가. RTF가 아니라 아예 IE의 엔진을 쓰는 도움말이 생긴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HTML 도움말이며, 파일의 확장자는 CHM이다. Compiled HTML.

HTML 도움말은 내부적으로 IE를 쓰는 관계로 과거의 WinHelp보다 훨씬~ 더 덩치 크고 무거웠다.
IE 4를 얹지 않은 옛날 윈도우 95 시절의 탐색기 vs 오늘날 탐색기의 덩치 및 구동 시간은
과거 WinHelp 도움말 vs 오늘날 HTML 도움말의 덩치 및 구동 시간

이건 비슷한 구도이다. -_-;;;
하지만 웹에서 쓰이는 각종 자바스크립트+다이나믹 비주얼 효과를 도움말에서도 그대로 재활용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웹 기술을 도움말에다 활용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WinHelp 기술은 윈도우 밖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테크닉이지 않은가.

개발자의 입장에서야 RTF보다야 HTML이 훨씬 더 친근하니 예전보다 도움말 만들기가 쉬워진 것도 아주 좋다. 본인도 HLP 도움말은 만들 엄두를 못 냈었는데 CHM 도움말은 나모나 프런트페이지만으로도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 있었다.
홈페이지 만드는 데 쓰이는 파일을 그대로 모아서 컴파일만 하면 끝. 그러니 CHM 파일은 웹 문서 아카이브를 만드는 데도 아주 유용했다.

일반 웹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도움말에는 필요한 기능이 있다. 가령, 팝업 메뉴를 띄운다거나 외부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기능은 소스를 보면 MS가 자체적으로 ActiveX처럼 비표준 확장 태그를 써서 구현해 놓은 걸 볼 수 있다.

CHM 도움말은 장기적으로 기존 HLP 도움말 시스템을 대체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HLP로 할 수 있는 일은 CHM으로도 다 할 수 있게 돼 있다. 가령, CHM으로도 풍선 도움말을 구현 자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쬐그만 풍선 도움말이 웹 페이지 내용이라는 건 영 안 어울린다. 실제로, 비스타부터 풍선 도움말은 윈도우 운영체제 내부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윈도우 98부터 XP까지 운영체제의 도움말은 WinHelp와 HTML 도움말이라는 양분된 구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윈도우 비스타는 과감하게 WinHelp를 없애 버렸다. HLP 도움말을 열면 ‘이 도움말은 옛날 버전으로 만들어져서 이제는 더 지원되지 않습니다’만 뜬다. (단, 16비트용 WinHelp는 남아있음)
원래 마소는 과거 호환성을 극도로 존중해 주는 집단이다. 그런데 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일까?

오늘날 과거 호환성보다 더 중요한 건 보안이기 때문이다.

HLP와 CHM 모두 단순히 read-only 하이퍼텍스트 문서만 취급하는 게 아니다. 사용자의 컴퓨터에 있는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고, DLL의 코드를 불러와서 실행할 수 있다. 따라서 잠재적 보안 위험성도 충분하다.

마소는 21세기부터 자사 소프트웨어에 있는 이스터 에그를 모두 없앴으며, 이미 짜 놓은 수많은 코드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보안 강화 리팩터링을 시작했다. 비주얼 C++ 2005부터는 잘 알다시피 비표준 오명을 감수하고라도 C 라이브러리까지 뜯어고쳐서 *_s 함수를 도입할 정도였다.

그랬는데 그렇잖아도 구닥다리 WinHelp의 코드를 보니까, 이건 기능도 카오스 그 자체이지, 앞으로 지원도 안 할 건데 리팩터링을 할 필요를 못 느낀 것이다. 그러니 철도 당국이 수익 안 나는 간이역을 폐역하듯이 지원 중단 결정을 내렸다. WinHelp 함수 지못미.

이런 보안 강화 정책으로 인해, 윈도우 비스타부터는 탐색기에 16비트 윈도우 실행 파일들이 아이콘이 그려져 나오지 않는다. 웹페이지의 파비콘을 추출하고 그리는 코드의 허점을 이용해서도 악성 코드를 주입하고 실행할 수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_-;; 비슷한 이유로, 워드패드에서 과거 wri 파일 포맷을 읽는 기능도 삭제되었다. 구닥다리 코드는 이제 와서 보안을 강화하는 작업을 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무시하기. ㄲㄲ

사실은, CHM 파일마저도 이제 MS가 더 적극적으로 개발을 안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요즘 MS가 만드는 프로그램들은 CHM 안 쓰고 또 자기만의 다른 도움말 시스템을 쓴다. 비록 내용 렌더링이 HTML 기반인 건 동일하지만, CHM은 아니라는 뜻.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HTML 도움말을 보면, 도구상자의 아이콘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직까지도 16컬러 그대로이다. ㄲㄲㄲ

아울러, CHM 역시 보안 위협을 많이 받는 관계로, 웹에서 받아서 바로 실행한 녀석은 내용이 표시되어 나오지 않는다. 반드시 로컬 환경에다 저장해서 ‘속성 -> 제한 해제’를 해 줘야 내용을 볼 수 있다.

앞으로 윈도우 운영체제의 도움말 시스템이 어떻게 변모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설마 CHM이 HLP처럼 그렇게 갑작스럽게 호락호락 없어지지는 않을 듯하다.

하긴, 예전엔 아래아한글도 언어(한국어든 영어든)와 플랫폼(3.1/95/NT)을 불문하고 동일하게 표시되는 GUI 엔진을 표방하고서, 도움말조차 자체 포맷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97까지만 해도 윈도우 3.1 도움말 스타일의 자체 도움말을 썼었는데 워디안/2002 이후부터는 싹 잊혀지고 그냥 CHM을 쓰기 시작했다.
도스용 프로그램 개발할 때 도움말 기능을 구현하던 추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

※ 잡설: 응용 프로그램의 보안 문제

유명한 국산 압축 프로그램인 빵집의 구버전에서, 악의적으로 일부 내용이 조작된 zip 파일을 열자 엉뚱하게도 내가 지정해 준 프로그램이 실행된다. 프로그램의 보안 취약점을 시연하는 동영상을 보니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프로그램의 소스로는 제각각의 이름으로 구분되는 수많은 변수와 함수의 명칭들이, 빌드 후에는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오프셋 내지 메모리 주소로 바뀐다. 그러니 이런 정교한 숫자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프로그램은 전혀 다른 동작을 하게 된다. 그런 조작은 입력 파일의 조건 검사를 허술하게 하는 프로그램의 허점을 이용해서 가능하다. 더구나 zip은 프로그램 실행과는 전혀 관계없는 데이터 파일일 뿐인데, 하물며 대놓고 프로그램 실행 기능이 있는 파일은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각종 보안 업데이트가 귀찮기 그지없다. 하지만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보안 업데이트를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너무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도 없다. 그러니 서로 답답한 노릇이다.

“모방 범죄 예방을 위하여 더욱 정확한 후레쉬 조작법... 이 아니고 더욱 정확한 악성 코드 삽입 방법은 알려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5/03 08:14 2011/05/0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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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제품들의 글꼴

1. 비주얼 C++의 글꼴

과거의 비주얼 C++ 4~6은 IDE의 글꼴 체계가 좀 특이했다.
영문 윈도우에서는 각종 UI 글꼴이 MS Sans Serif 8포인트로 나오고, 코드 에디터의 기본 글꼴은 Courier 10포인트로 나왔다. 트루타입 글꼴인 Courier New가 아님.

그 반면, 한글 윈도우에서는 코드 에디터의 기본 글꼴은 FixedSys 12포인트였고, 대화상자의 기본 글꼴은 무려 System으로 설정되었다. 글씨 크기부터가 다르다.
참고로, 비주얼 C++과 동봉된 Spy++ 유틸리티도 대화상자의 글꼴이 동일한 형태로 나왔다.
둘 다 MFC를 써서 개발된 것도 동일하니, 뭔가 동일한 UI 라이브러리를 공유라도 하지 않았나 추정된다.

이 윈도우 3.1스러운 System 폰트는, 비주얼 C++이 더욱 추레하고 꼬질꼬질하게 보이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_-;;;
사실, 윈도우 3.1 시절에도 영문판에서 원래 MS Sans Serif 8포인트로 맞춰졌던 UI가 한글 윈도우에서는 한글 때문에 글씨 크기를 더 키워서 System으로 나왔으니, 비주얼 C++도 이와 동일한 관행을 답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후 버전인 닷넷은 그 글꼴 체계가 개선된 것만으로도 외형이 훨씬 더 깔끔해 보인다.
물론 MS 오피스 97 스타일의 UI가 오피스 XP 스타일로 바뀐 것도 작용했겠지만 말이다.
그 당시 윈도우 XP와 오피스 XP의 UI 디자인은 정말 파격적이었다. XP라는 브랜드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닷넷의 IDE는 신기하게도 에디터의 기본 글꼴이 돋움체 10포인트이다.
한글 윈도우에서는 자동으로 한글 서체를 찾아 쓰는 모양인데, 그럼 한글 글꼴이 없는 영문 윈도우에서는 뭐가 설정되는지 모르겠다.

2. 운영체제의 글꼴

한글 윈도우에서는 그저 굴림 일색이지만, 영문 윈도우에서는 MS Sans Serif에서 Tahoma로 UI 글꼴이 바뀌어 왔다.
MS 오피스도 그 구닥다리 97 버전도 영문판은 대화상자의 글꼴이 Tahoma이다. 보기에 꽤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주얼 C++이나 포토샵처럼 특정 계층의 전문 종사자들이나 쓰는 소프트웨어가 영문판인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언어라는 숲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해당 프로그램이 다루는 분야의 용어라는 나무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번역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운영체제나 오피스 스위트는 워낙 불특정 다수가 쓰는 녀석인 만큼 한글판이 널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구하지 않는 이상 이런 프로그램의 영문판을 국내에서 접하기란 꽤 어렵다.

영문 윈도우 XP는 창의 제목의 글꼴이 일반 UI의 글꼴과는 달랐다. 제목 글꼴이 그 이름도 유명한 Trebuchet MS이었다. 온통 맑은 고딕이나 Segoe UI로 획일화되어 버린 윈도우 비스타/7조차도 그렇지는 않은데 말이다.
물론 한글 윈도우 XP는 제목의 글꼴이 역시나 '굴림+진하게'이기 때문에 영문판의 감흥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Trebuchet MS 글꼴이 한글 윈도우 XP에도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글판은 디스플레이 글꼴 설정에 이 글꼴이 뜨지 않으며, 사용자가 강제 지정조차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글꼴 목록에는 모든 글꼴이 나타나지 않으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마치 명령창(콘솔)의 글꼴도 왜 자유롭게 지정이 안 되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3. 트루타입 글꼴의 역사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속이 채워진(=래스터라이즈가 되는) 윤곽선 글꼴이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무려 윈도우 3.1부터이다. 멀티미디어 API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과 비슷한 시기이고, 공교롭게도 아래아한글 2.0이 출시된 것과도 비슷한 시기이다.
그 전에 존재하던 글꼴들은 몇몇 단계별로 지정된 크기 이외에서는 계단현상이 나타났다.
Script, Modern, Roman처럼 곡선이 그려지는 벡터 기반 글꼴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건 선만 그려지고 래스터라이즈 과정이 없는 원시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윤곽선 글꼴 기술의 명칭은 바로 트루타입(Truetype)이다.
Courier와 Times Roman은 영문권에서 워낙 유명한 글꼴이고 윈도우 1.0부터 있었던 잔뼈 굵은 글꼴인데, 이때 윤곽선 글꼴 버전이 새롭게 만들어졌다고 해서 Courier New와 Times New Roman이라고 new라는 단어가 중간에 붙었다. 한글 글꼴 '신명조'의 '신'과 비슷한 맥락인 건지도 모르겠다. 정리하자면 이렇게 된다.

  • Arial: 처음부터 윤곽선 글꼴로 도입되었고 예전의 Helvetica를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 Courier: Courier New와는 별개로 아직까지도 비트맵 글꼴의 형태로 공존한다. 두 글꼴은 폭이 살짝 다르고 제각기 용도가 있다.
  • Times New Roman: 이름에 new가 붙은 채, 기존 비트맵 글꼴을 윤곽선 글꼴로 대체

아울러, 한글 윈도우는 3.0부터... 영문 윈도우보다 한 발짝 일찍 트루타입 글꼴이 도입되었다. 그런데 그때 한글 글꼴들은 비표준 헤더를 썼기 때문에 정상적인 트루타입 글꼴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스템 비트맵 글꼴은 트루타입이 아닌 별도의 경로로 출력...-_- fallback 글꼴 같은 개념도 전혀 없고, 윈도우 95에 비해서 글꼴 시스템이 훨씬 더 열악하고 원시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01 08:35 2011/05/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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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셋 한글 입력기 6.0

※ 드디어 6.0 시대

5.8 이후 거의 5개월에 가까운 기간 동안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발전한 결과물을 드디어 이렇게 선보이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무려 6.0!! 5.x에서 6.0이라는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을만치 변했습니다. 5.8 이후 소스 커밋은 약 60여 회(change set 개수)가 있었군요. 9개 모듈과 공용 라이브러리의 소스 코드 총합은 현재 약 6만 1천 줄.

초· 종성 공유 낱자 결합 규칙이 추가된 덕분에, 프로그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한글 입력 오토마타 부분이 오랜만에 크게 바뀌었습니다. 아직 100% 완전체가 구현된 건 아니지만 이걸 쓰면 복잡한 두벌식 한글 입력 방식을 구현하는 게 눈물나게 수월해집니다. 그 구체적인 메카니즘은 도움말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진작부터 추가되어야 했을 기능인데 이제야 도입됐고요.

조합 자동 종료 타이머는 제어판에서 ‘입력 일반’ 항목에 수식의 형태로 깔~끔하게 추가됐습니다. 예제로 제공되는 삼성 천지인 입력 방식이 당장 이걸 사용합니다. A==3 ? 1000: 0 즉, 오토마타 상태가 3번(종성 입력)일 때 1초간 제한을 둬서 사용자가 다음 타를 입력하지 않으면 음절을 끊게 됩니다. 그냥 1000이라고만 입력하면 모든 조합 상태에서 1초 제한이 걸리겠죠.
한글 입력 상태는 A, 그리고 <날개셋> 고급 입력기의 사용자 조합 상태 번호는 B이므로 이들 변수에 대한 수식을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할 입력 항목과,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 처음으로 지정할 입력 항목을 따로 지정할 수 있게 되고, 입력 항목의 배열 순서를 숫자 직접 입력 및 up-down 컨트롤로 손쉽게 바꿀 수 있게 된 것도 개인적으로는 정말 멋진 변화 사항이라 생각합니다. 제어판 화면을 직접 보시면 압니다.

이 외에도 바뀐 것 많습니다.
외부 모듈의 안정성 관련 이슈는 MS IME의 소스를 직접 참고하지 않는 한 앞으로 6.x 시대에도 계속 나올 것 같고..

※ 타자연습

타자연습은 명목상으로는 바뀐 API 구조대로 프로그램을 재컴파일하고 연습글을 일부 고친 것 말고는 변화 사항이 없습니다. 그래서 버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능 변화가 없다고 입력기만 6.0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타자연습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타자연습 내부에서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 6.0 외부 모듈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자체 입력란 말고 일반 입력란에서는 한글을 입력할 수 없고 MS IME 같은 다른 IME를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날개셋>을 윈도우용 IME로 사용하면서 타자연습도 동시에 사용하시는 분이라면 타자연습 프로그램을 반드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가능한 한 API 수준의 바이너리 호환성을 안 깨뜨리려고 노력하지만, 6.0은 한글 입력과 타자 재현 루틴 쪽이 많이 바뀌다 보니(타자연습도 핵심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기능인데!) 어쩔 수 없이 호환성이 깨지게 됐습니다.

그래도 변화가 너무 없으면 재미없으니까..
연습글의 변화로는,
헌법 연습글에서 헌법 전문(preface)만 있던 걸 1장과 2장도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에’ 주옥같은 김 성모 어록을 단문 연습글로 추가했습니다! “미안하다. 똥 싸느라 늦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 등으로 세벌식 타자 연습을 즐겨 보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습글의 패치 정도는 정말로 자동 업데이트 시스템이라도 있으면 편하긴 하겠죠. 저도 그런 것의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습니다.

※ 몇몇 표기법 변경

프로그램의 모든 UI와 도움말, 그리고 타자연습의 경우 연습글에서 한국 인명의 1-2자 성명은 성과 이름을 붙여 쓰는 것으로 표기를 바꿨습니다. (공병우, 김용묵) 제 프로그램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서 취한 조치입니다.
하지만 여타 길이의 인명은 여전히 띄어 씁니다. (김 구, 남궁 억, 김 에스더 등~)

한 10년 동안 일부러 표준 표기법을 안 지키다가 관행을 되돌렸으나, 제 느낌상 다시 생각해 봐도 성과 이름은 일관성 있게 띄어 쓰는 게 더 합리적입니다.
제 블로그는 저의 개인 공간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둘을 여전히 띄어 쓸 것입니다.

※ 안 마태 글자판

안 마태 한글 소리글판이 업데이트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공식 홈페이지에 제대로 홍보가 안 돼 있고, 키보드 드라이버를 개발하시는 분이 블로그에 게시해 놓은 배열과 공식 홈페이지의 배열이 일치하지 않으며, 심지어 레이아웃이 일반 키보드의 모양과도 일치하지 않는 부분 등 여러 문제로 인해, 제 프로그램의 예제 데이터에는 아직 업데이트를 안 했습니다.

※ 다음 버전은?

이제 6.0 이후의 입력기의 다음 버전은 현재로서는 6.1이나 6.2 정도로 생각 중입니다. 시기는 올해 가을쯤? 이번에는 한글이 아닌 ‘한자 기능 강화판’ 컨셉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할 겁니다.
단어 단위 한자 변환 기능이 드디어 추가되고,
자료가 확보되는 대로 surrogate(확장 B 이상) 영역의 한자에 대한 독음· 부수 입력 지원 등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아주 옛날스러운-_-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 중에, 단어 단위 한자 변환 기능이 있다는 이유로 새나루 입력기를 아주 좋아하는 분이 있죠. 참고로 제 편집기는 세로쓰기도 지원한다만... -_-;;;

뭐, 제가 한자 혼용론자의 수요를 의식하는 건 아니고요. 저런 쪽의 연구는 단순히 MS IME와의 기능 격차를 줄이고 제 프로그램의 기술 데모를 만든다는 성격이 더 강합니다. 단어 단위 한자 변환은 MS IME가 그런 것처럼 TSF A급 프로그램에서만 제공될 것입니다.

지금은 옵션이 달랑 3개밖에 없는 편집기 계층에 한자를 단어 단위로 변환할지 글자 단위로 변환할 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며, surrogate 영역의 확장 한자까지 후보로 출력할지 설정하는 옵션도 추가됩니다. 솔직히 일반 사용자가 BMP 이외의 한자를 쓸 일은 거의 없고, 그런 것까지 그냥 추가해 버리면 한자 후보가 이제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죠.
부수+독음(ㄱ~ㅎ이니셜 정도) 연동 한자 검색 기능 추가도 검토 중입니다. 꽤 유용할 것입니다.
물론 한자 관련 기능만 계획되어 있는 건 아니고요.

※ 잡설

이번 6.0은 제발 잔버그가(특히 새로 추가된 기능에서) 발견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작업 완료에 앞서 도움말을 쭉 읽고 검토를 했는데, 좋은 의미로든 비아냥거리는 의미로든 이게 정녕 내가 내 머리로 만든 프로그램과 설명서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지금까지 참 어지간히도 또라이 같은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 -_-;;

맥/리눅스로의 포팅, 프로그램 아이콘, 그리고 다국어 UI 번역 등 역할 분담의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타자연습은 이미 도저히 내 혼자 개발을 할 수 없는 경지에 간 지가 오래이고..;; 저도 슬슬 개발자 마인드에서 벗어나 사장-_- 컨셉으로 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타자연습의 경우, 생각 같아서는 10년 가까이 묵은 연습글들 대부분을 이제 좀 갈아엎어 버리고 싶답니다. -_-;; 그런데 그것도 제가 할 시간과 능력이 안 되고. 게임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수준. 어쨌든 결론은 돈인데..;;
“내가 나루토를 보면서 느낀 건데, 사람을 쓰려면 돈이 존나 필요할 거 같아. 그런데 날개셋은 수익이 없잖아? 그러니까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ㅋㅋㅋㅋㅋ 뼈 있는 농담. -_-

뭐 그렇습니다.
유용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Posted by 사무엘

2011/04/28 11:24 2011/04/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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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은 어떻게 건설되는가

지하철이 건설되는 방식에 대해서 본인은 꽤 오래 전에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랬는데 오늘은 그 내용을 좀 더 보충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본격 토목 공학 탐방.

앞서 쓴 글에서 언급되어 있듯, 지하철은 크게 개착식 아니면 터널식으로 건설된다. 처음 건설되는 지하철은 대체로 큰길· 간선 따라 먼저 건설되고, 또 그리 깊지도 않기 때문에 응당 도로를 파헤치는 개착식으로 건설된다. 이게 도로 틀어막느라 민폐는 많이 끼치지만, 건설비가 더 저렴하니까.

그러나 나중에 건설되는 지하철은 좀 더 외진 곳으로, 지상에 길이 없는 곳을 만들면서 가기도 할 확률이 높으며, 기존 지하철보다 더 아래로 지나가기도 하기 때문에 터널식으로 건설되는 경향이 있다.

광산에서 갱도를 파내려가는 작업을 생각해 보자.
암반을 뚫고 길을 내려면 곡괭이나 비슷한 레벨의 연장으로 굴착을 하든가, 아니면 작은 구멍만 뚫은 뒤 거기에다 다이너마이트를 꽂고 폭파를 한다. 그리고 기껏 뚫은 구멍이 자칫 무너지지 않게 굴착면을 보호도 잘 해야 한다. 폭파를 잘못 해서 굴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시ㅋ망ㅋ.

이게 전통적인 방법이다. 경부 고속철 공사를 할 때만 해도 산을 뚫는 폭파음 때문에 주변의 가축들이 놀라서 유산을 하네 마네 하면서 민원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랬는데, 이를 약간 더 개선한 공법이 1950년대 중반에 등장했다. 이름하여 나틈(NATM) 공법인데, 전산학계에 헝가리안 메소드가 있다면, 토목학계에는 오스트리안 메소드가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니셜의 의미가 딱 저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NATM은 폭약을 써서 터널을 뚫는 건 마찬가지이나, 빨리 굳어지는 급결제를 섞은 시멘트를 압축공기로 밀어내 굴착한 표면을 재빨리 콘크리트화하는 방식이다. 그 이상의 디테일은 본인도 잘...;; 여러 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별도의 지지대를 마련해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되어 예전의 공법에 비해 건설 비용을 절감한 것이 장점이지만, 속도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수준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유럽에서는 당장 해저 터널을 뚫을 때 이 공법이 동원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 건설 역사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여의나루 사이의 하저 터널이 이 공법으로 건설되었다. 한강 밑바닥보다 거의 10~20m 밑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저 대단할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호선은 마포-여의나루뿐만 아니라 광나루-천호 사이도 똑같이 한강을 건너는 하저 터널이긴 한데, 마포-여의나루 버전보다는 존재감이 훨씬 덜한 것 같다. 또한 전자와는 달리 후자는 터널 전후의 역이 모두 섬식이 아닌 상대식 승강장인 것도 특이한 점이다. 하저 터널은 섬식 승강장에 더 유리한 단선 쌍굴 형태로 지어져 있을 텐데 말이다.

사람 눈에 보이는 교량과는 달리, 지하철이 지나는 이런 하저 터널은 일반인들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정식 이름도 없다. 아쉬운 점임. 마포 철교/터널 이런 이름이라도 있어야 할 듯하다.

NATM 공법에 이어 터널 뚫는 데 쓰이는 공법은 TBM 공법이 있다. 쉴드 공법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건 지름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하고 둥근 드릴을 빙글빙글 밀어넣어서, 애벌레가 먹이를 파먹듯 지반을 뚫는다. 본인과 비슷한 연배의 전산학도라면 1997년도 IOI의 이숑고로로 문제를 떠올릴 법도 하겠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공법은 굉장히 비싼 첨단 기계를 동원하여, 폭파를 하지 않고 둥그런 터널을 만들어 낸다. 주변 지반에 끼치는 영향이 적어서 안전하고, 터널 뚫는 속도가 비교적 빠르다는 장점까지 있다고 한다. 뭐, 빨라 봤자 하루에 1~5m 남짓이지만.

다만, 폭파를 안 하고 단단한 바위를 뚫는다는 게 쉬울 리가 없잖아..;; 장비가 정말 억소리 나게 비싸며, 터널 뚫는 과정에서 드릴의 표면이 닳고 손상되고 망가지는 일도 빈번하기 때문에(유지비), 쉽게 말해 비용이 많이 든다. 그리고 터널 뚫는 도중에 갑자기 지반 구조가 다른 곳이 발견되었을 때의 대처도 어렵다는 게 흠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개통되지 않은 분당선 한강 횡단 하저 터널이 TBM 공법으로 건설되었다. 터널이 완전히 뚫린 지 벌써 4년도 더 됐는데 아직도 노선의 개통은 오리무중..

http://blog.naver.com/ianhan/120122003473

그리고 서울 지하철 7호선의 부천 연장 구간도 일부는 시가지 아래로 TBM 공법으로 건설되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터널식 지하철은 NATM과 TBM 공법이 병행되어 건설된다고 보면 정확하다.
공항 철도는 그 깊은 서울 시내 구간이 당연히 터널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고, 역시 저런 비슷한 공법이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곳 홈페이지의 '서울 지하철 상식 -- 5호선 편'을 보면 사진이 나와 있지만, 본인은 5호선 을지로4가 역이 방화 방면으로는 둥그런 터널이고 왕십리 방면으로는 네모 터널인 것을 주목한 적이 있었다. 아마 이 역의 양 옆으로 터널의 건설 공법이 달라진 것 같다. 놀라운 발견이지 않은지? 드디어 서울 시내로 들어가니까 개착식이 아닌 터널식으로 굴을 판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지금은 스크린도어 때문에 저런 사진은 찍고 싶어도 못 찍는다.

터널은 한쪽 끝과 다른 쪽 끝에서 동시에 건설을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드디어 중앙에서 양 방향이 한데 만나면 건설이 끝나며, 그때 '관통식'을 하면서 샴페인을 터뜨린다.
그런데 개미들은 굴을 파다가 어쩌다 상대방 부족의 굴과 관통이 되어 버리면 헬게이트의 시작. 어느 한 부족이 전멸할 때까지 전쟁이 벌어진다고 한다.;;;

끝으로, 지하철을 건설하는 데 땅을 파헤치는 개착식이 있듯이, 해저 터널을 파는 데도 이와 비슷한 침매 공법이라는 게 있다. 육지에서 터널 구조물을 건설한 뒤, 바다 밑바닥을 파서 구조물을 얹고, 그걸 다시 흙으로 파묻는다고..;; 내가 보기엔 그것도 터널식 만만찮게 힘들 것 같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에 개통한 거가대교의 가덕도-대죽도 사이 구간이 최초로 이 공법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공법은 수압 때문에 너무 깊은 바다에서는 쓸 수 없다.

철도를 공부하면서 연결되는 지식의 분야는 참으로 넓다. ^^;;

Posted by 사무엘

2011/04/26 19:44 2011/04/2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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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표(*): 비교적 서울 시내에 가까이 있는 기지임을 뜻한다. (시계나 외곽이 아니라)

※ 코레일

- 구로*: 경부선과 경인선이 분기해 나가는 바로 그 지점에 있는 크고 아름다운 차량 기지이다. 구로 역에 차량 기지 입· 출고 선로가 있으며, 전동차 안에서 창문을 통해 아주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친숙하다.
외곽으로 이전한다는 떡밥이 나돌고는 있으나, 실현 가능성은 과연 글쎄다.

- 이문*: 여기는 원래 경원선 북쪽 방향에서 중앙선으로 바로 진입하는 삼각선, 일명 망우선이 시작하는 곳이고 망우선의 화물 취급역인 이문 역이 있었다. 그러나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갈수록 길어지고 그에 비례하여 운행 중인 전동차 수도 늘어나면서, 코레일은 이문 역을 폐지하고 여기에 전동차 차량 기지를 추가로 건설하게 되었다. 그게 2004~2005년의 일이다.
바로 옆에 1호선 신이문 역이 있다. 이곳은 차량 기지뿐만이 아니라 코레일 수도권 동부 지사 본부가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 병점: 중정비 기능도 없고 그다지 존재감 없는 외딴 기지였으나, 내부에 지선 형태의 서동탄 역이 생기면서 인지도가 살아났다. 수원 일대에서 회차하는 전동차들의 입체 교차를 책임지기도 하는 고마운 존재임.

- 월곶(시흥): 안산선의 종점인 오이도 역에서 북쪽으로 더 진행하면 나온다. 영동 고속도로의 인천 기점 근처인 월곶 분기점 일대에 있으나, 찾아가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오이도 역 이북으로 수인선 전철이 완공되면, 이 기지 내부에도 달월 역이 생길 예정이며 전동차 안에서 기지 주변을 구경할 수 있게 된다.

- 분당: 분당선의 종점에서 이어지는 차량 기지로, 용인에 있다. 2004년엔 보정 역이 기지 내부에 개통했다. 그러나 분당선이 남쪽으로 더욱 연장되고 나면 보정 역 역시 이설될 예정이라 한다.

문산(경의선), 용문(중앙선), 평내(경춘선) 차량 기지도 있으나, 자료가 없기 때문에 설명 생략.

한편,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광명시 소하2동 일대를 지나면, 차량 기지처럼 보이는 선로들이 근처에 보인다. 이건 광명 셔틀 전동차를 취급하는 기지이지 싶다. 광명 역이 당초 계획대로 KTX의 시종착역으로 운영되었다면 이 부지가 KTX가 주박하는 곳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서울 메트로

- 군자*: 용답 역 바로 옆에 있고 쉽게 보인다. 옛날에는 용답 역의 역명 자체가 기지 역이었으나, 이름이 너무 촌스러웠는지 용답으로 개명. 공교롭게도 근처에 도시철도 공사 본사도 있지만, 이 기지는 도철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서울 메트로의 관할이다.
다음에 설명할 신정 기지의 경우도 그렇지만,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지선은 차량 기지 입출고선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니, 2호선이 맨 처음 개통한 구간이 신설동-종합운동장이었으니, 그때는 지금의 지선이 아예 본선 노선으로 포함돼 있었다!
성수 역에서 진입한 2호선 전동차뿐만이 아니라, 동묘앞-신설동 사이의 비밀 연결 선로를 이용한 1호선 서울 메트로 소속 전동차도 이곳으로 들어와 정비를 받는다. 어차피 1호선에 다니는 서울 메트로 차량은 코레일 차량의 1/6이 채 안 되니까 말이다.

- 신정*: 용답에 이어 2호선의 또 다른 지선인 양천구청 역의 바로 옆에 있다. 하지만 저 역은 지하에 있는 관계로 전동차 안에서는 기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기지의 지붕 위로 아파트가 잔뜩 세워져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요즘은 버스 터미널도 지하화하는 게 유행인데, 그런 것처럼 전동차 차량 기지가 만들어진 부지를 나름 입체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이 지선은 까치산 역까지 이어진 덕분에, 서울 지하철 5호선의 개통 당시, 전동차의 반입 경로로도 이용되었다.

- 지축: 서울 지하철 3호선의 북쪽 지상 구간에서 전동차를 타고 쉽게 볼 수 있는 기지이다. 여기서부터 서울 메트로 구간이 끝나고 코레일 일산선이 시작된다. 3호선 전동차와 4호선 전동차를 취급한다.

- 수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의 남동쪽 외곽에 존재하고, 3호선 전동차와 분당선 전동차의 경정비만을 담당한다. 하지만 위치가 수서 역에서 좀 먼 편이고 수서 역 자체도 지하에 있기 때문에, 전동차 안에서는 이 기지를 볼 수 없다. 분당-수서 고속화도로를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어렴풋이 이곳을 볼 수 있다.

- 창동*: 4호선 창동-노원 사이에 있는 기지이고 4호선 전동차의 경정비만을 담당한다. 이곳은 4호선이 고가로 달리는 곳이다 보니, 기지의 모습을 전동차 안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4호선이 처음 생기던 당시에는, 이곳이 전철 노선을 지하로 건설할 필요도 전혀 없고 대놓고 차량 기지까지 지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허허벌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바뀌었으며, 코레일 관할의 구로 기지와 마찬가지로 창동 기지를 더 외곽으로 이전해 달라는 주민들 요구가 많다고 한다.

※ 서울 도시철도 공사

기지가 모두 상당한 외곽에 있다.
그래도 5호선이나 7호선 같은 긴 노선은 차량 기지가 양 끝에 두 개씩이라도 있지, 더 나중에 개통한 9호선과 공항 철도는 기지가 하나씩밖에 없다.

- 고덕: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최초 개통 구간인 왕십리-상일동과 더불어 영업을 시작한 역사 깊은 차량 기지로, 도철(SMRT) 관할의 차량 기지 중에서는 7호선 도봉 기지와 더불어 차량 중정비를 담당하는 양대 기지 중 하나이다. 서울 지하철을 통틀어 최고 동쪽에 있음.
이름과는 달리, 고덕-상일동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종점인 상일동 역에서도 좀 멀리 더 가야 나온다. 그래서 현재 정규 전철 노선만으로는 기지 모습을 구경할 수 없으며, 외곽 순환 고속도로의 강일 나들목 근처에서 접근 가능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지 내부에 강일 역이 신설될지도 모른다.

- 방화: 5호선의 서쪽 종점인 방화 역에서 더 나아가면 나온다. 역시 일반적인 여객용 전철 노선으로는 접근할 수 없고, 올림픽 대로의 서쪽 끝인 개화 IC 근처에서나 구경할 수 있다.

- 신내: 6호선의 동쪽 종점인 봉화산 역에서 더 나아가면 나온다. 현재 이 기지 근처로 가는 방법은 신내-남양주 도시 고속화도로 정도밖에 없으나, 앞으로 이곳에 신내 역이라고 경춘선과의 환승역이 건설되면 얘기가 또 달라질 것이다. 차량 기지 내부에 있는 시종착역이 환승역인 사례는 이게 최초가 되지 싶다?

- 도봉: 7호선의 북쪽 끝에 있다. 이 기지는 애초부터 내부에 장암 역이 건설된 덕분에, 도철 관할 차량 기지 중에서는 전철로 가장 접근하기 쉽고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이건 원래는 만들 생각이 없었지만 차량 기지를 건설할 부지를 의정부시로부터 제공받는 대가로 선심성으로 만들어 준 역에 가깝다.
차량 기지 내부(옆이나 근처가 아닌!)에 단선 승강장 형태로 지어진 역으로는 장암 역이 최초이며, 나중에 개통한 분당선 보정 역은 장암 역의 스타일을 물려받은 사례라 하겠다.

- 천왕: 7호선 담당이지만, 도봉 기지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정말 존재감이 없다. 7호선의 서쪽은 여타 2기 지하철 노선들과는 달리, 차량 기지가 있는 쪽으로 노선이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는 놔두고 경인선 온수 역 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 서동탄 역 같은 신세가 되었다는 뜻.
이 기지는 천왕이나 광명사거리 같은 인근역과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고, 주변에는 유명한 고속도로나 고속화도로도 없기 때문에 이쪽으로 찾아가기도 더욱 쉽지 않다.

- 모란: 8호선 남쪽 종점인 모란 역에서 더 나아가면 나오지만 이 기지가 있는 곳은 모란 역에서 지하철 두세 정거장 거리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오히려 성남 시청 내지 분당선 야탑 역에서 더 가깝다. 수서 기지와 마찬가지로 분당-수서 고속화도로를 달리면서 잠깐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8호선의 특이한 선형과 주변 지역의 특성상, 기지 내부에 역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차량 기지는 철도 덕후의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본인은 결혼도 저런 곳에서 하고 싶다. 공항 철도 용유 차량 기지에서 결혼식을 한 후 곧장 공항 가서 신혼여행 고고씽..;; ㅋㅋ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난 볼링장의 모습을 보고도 전동차 차량 기지가 바로 연상된다.
공이 우르릉~ 굴러가는 소리는 전동차 굴러가는 소리요,
점수가 뜨는 모니터는 열차 도착 안내 전광판이로구나.

Posted by 사무엘

2011/04/24 19:31 2011/04/2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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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C++ IDE (정확히는 비주얼 스튜디오)에는 간단하게나마 위지윅 HTML 에디터가 내장되어 있다. 다만, 입력하는 내용에 따라 프로그램이 생성해 주는 HTML 코드가 굉장히 지저분한 편이어서(여백, 정렬 상태 등~) 본인은 이를 즐겨 사용하지는 않는다.

물론, 언어별로 IDE가 따로 놀던 비주얼 C++ 6의 IDE에는 HTML 편집기가 없었으며, 웹 편집은 비주얼 InterDev라는 프로그램이 따로 담당하고 있었다. 그 대신 비주얼 C++ 6은 OLE 기술을 이용하여 심지어 MS 오피스 문서를 자기 IDE 내부에다 가져와서 편집하는 기능이 있었다! 물론 MS 오피스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에 한해서.

File-New 대화상자를 보면 맨 오른쪽 탭에 MS 오피스(워드, 엑셀 등) 문서를 만드는 항목이 있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을 것이고, 그 기능을 이용하거나 그렇게 OLE 친화적인 업무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비주얼 스튜디오에서도 이후 닷넷부터는 그런 잉여 기능이 제외됐다. 내 기억이 맞다면 딱 하나, MS 오피스에 이어 아래아한글 2002가 그렇게 문서를 만드는 기능을 지원했다.

비주얼 스튜디오 닷넷은 잘 알다시피 모든 언어들의 IDE가 Microsoft Development Environment라는 이름으로 한데 통합했으며, 그래서 한 프로그램으로 소스 코드, 텍스트, 웹 문서 등을 모두 한데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비주얼 스튜디오가 제공하는 웹 에디터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그냥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제공하는 에디팅 엔진을 그대로 차용했다.

본인은 비주얼 스튜디오가 제공하는 웹 에디터는 ‘진하게’를 왜 b가 아닌 strong 태그로 표현하고, ‘이탤릭’을 왜 I가 아닌 em으로 표현하는지 의아해했다. 200x년대에 사용하던 나모 웹에디터와 FrontPage는 b, I를 썼기 때문이다. 기능이 동일하면 더 짧은 표현이 좋기 때문에.. ㄲㄲ

물론 그 이유는 웹 표준의 개정 때문이다. HTML은 워드 프로세서 문서처럼 글자 비주얼이 아니라 문서의 논리적인 구조와 의미를 표현하는 용도로 유지하기 위해서 물리적인 비주얼을 표현하는 방식을 CSS 위주로 바꾼 것이다.

글씨체를 바꿨을 때 태그가 생성되는 방식은, 놀랍게도 비주얼 스튜디오의 버전마다 서로 다 다르다.
2003까지는 그냥 대놓고 <font face="무슨체"> 였다.
2005는 <span style="font-family:무슨체">가 되었다.
2008은? 아예 head 태그 내부에 그 서체를 지정하는 새로운 스타일이 등록되고 <span class="style1">이 생성된다.

똑같은 운영체제와 똑같은 IE 버전 하에서도 서로 다르게 동작하는 걸 보니, 이건 전적으로 비주얼 스튜디오의 버전별 차이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분석을 하고 말려고 했는데...
비주얼 스튜디오 2008은 웹 에디터가 뭔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2003과 2005가 단순히 IE 기반인 것에 비해,
2008은 위지윅 에디터(소스 편집이 아닌 디자인 모드)의 윈도우의 클래스 이름이 FrontPageEditorDocumentView. 다시 말해 MS 오피스 2003 이후로 개발이 중단된 FrontPage의 에디팅 엔진을 얹었다는 뜻 되겠다! ㄷㄷㄷ;;;

덕분에, 2008 이전의 비주얼 스튜디오(VS) 내장 웹 에디터는 디자인 모드 아니면 소스 편집 모드 이렇게 두 가지 모드만 제공하였으나, 2008은 FrontPage처럼 한 화면에서 디자인과 소스를 한꺼번에 보고 편집하는 분할 모드도 같이 지원한다. 그리고 FrontPage처럼 태그 단위로 텍스트를 한꺼번에 선택하고 속성을 지정하는 정교한 편집 기능도 지원한다. 단순한 IE 기반 엔진만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기능임.

그런데 그런 것만 바뀐 게 아니라, VS 2008의 웹 에디터는 진하게/이탤릭 태그도 과거의 FrontPage처럼 b, i로 되돌아갔다. 이런?
VS 2010은 어떤지 모르겠다. 듣기로는 소스 코드 에디터도 완전히 새로 다시 짰다고 하니 또 바뀐 게 있겠지.

그래서 지금부터는 FrontPage 얘기를 좀 하겠다.
FrontPage는 여타 회사에서 개발되던 웹 에디터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하여 90년대 후반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그래서 초창기 버전에는 윈도우의 클래스 이름이라든가 생성된 HTML 코드의 generator 메타태그에 원래 회사의 이름 이니셜 같은 걸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HTML 태그는 아무나 만지는 물건이 아니다 보니 웹 에디터 역시 워드, 엑셀 같은 전국민 필수품은 아니며, 아웃룩처럼 업무용 필수품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게 액세스라든가 비주얼 스튜디오 급의 전문 개발자 영역도 아니다 보니, 이런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위상은 무척 어중간했다.

다이어그램을 그리는 프로그램으로 윈도우 3.x 시절부터 명성을 떨쳤는데 나중에 역시 MS에게 인수된 비지오(Visio)와 비슷한 위상 같다. FrontPage는 MS 오피스 제품군의 정식 멤버는 아니었지만 어째 오피스 XP 및 2003과는 동일한 타이밍에 버전업을 거쳤다.

FrontPage는 XP와 2003의 동작 방식이 서로 굉장히 달랐다. XP는 모든 html 코드를 자기 컨벤션대로(줄당 문자 수, 들여쓰기 등) 무조건 깔끔하게 정리하는 기능이 있었고, 심지어 html 코드 최적화 기능까지 있었다. 이게 잘 동작할 때는 무척 유용하지만,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태그를 제멋대로 고쳐 버리기까지 해서 믿음직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03에 와서는 정책이 정반대로 바뀌어서, 이미 만들어진 코드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수정된 부분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변경만 가하는 방식이 되었다. 이것도 좋긴 하지만, 수정을 거듭하다 보면 앞서 말했듯이 코드가 무척 지저분해져서 싫다. 그리고 <li>, <ol>처럼 목록을 표현하는 태그에서 여닫기 처리를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이 발전하면서 기존 디지털 카메라들은 아예 DSLR 같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경쟁 구도가 바뀌었듯, 오늘날은 블로그가 발달하고 웹에서 바로 위지윅 html 에디터 내장 게시판을 쓰는 시대가 됐다. 로컬 환경에서 html 에디터를 쓸 일이 무척 줄었다.

그래서 FrontPage는 2003 버전을 끝으로, 더 전문적인 웹 디자인 솔루션인 MS Expression Studio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개발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FrontPage의 엔진이 비주얼 스튜디오의 2008에 전해져 오는 모양이다. ㅋㅋ

본인은 FrontPage를 내 홈페이지 편집과 프로그램 도움말 제작용으로 지금까지도 애용 중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Expression Studio를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나저나 요즘 드림위버는 살아 있나?

Summary:
1. 위지윅 웹 에디터로 각종 아기자기한 클립아트를 넣으면서 자기 홈페이지를 만들던 시절이 그립다. ㅋㅋ
2. 여러분은 html 편집을 무엇으로 하십니까?

Posted by 사무엘

2011/04/22 18:46 2011/04/2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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