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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의 폐선, 폐역, 임시 승강장 개념

철도는 궤도를 따라 앞 아니면 뒤로만 다닐 수 있는 1차원 교통수단이라는 특성상, 다른 교통수단에는 없는 재미있는 특성을 몇 가지 지닌다.
조향이 필요하지 않은 덕분에 비행기 다음으로 빠르게 주행할 수 있지만, 길 위에 차 한 대가 뻗어 버리면 그로 인한 타격을 가장 크게 받는 교통수단도 철도이다.

또한 철도는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노선 설정의 제약이 무척 크다.
다른 교통수단들은 '폐선'이라고 하면 그냥 운영자 마음대로 교통수단을 그 노선대로 굴리지 않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교통수단이 평소에 다니던 그 주변 환경이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나 철도 노선이 하나 폐선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프로 치면 정류장이라는 vertex뿐만이 아니라 선로라는 edge까지 이제 관리를 포기하고 선로를 걷어내고 부지를 매각하는 일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철도는 edge 차원에서의 변화는 쉽지 않다. 21세기 들어서 장항선, 경춘선, 전라선 등이 일제 강점기 시절의 구닥다리 티를 벗고 복선 전철 + 고가 직선(선형 개량) + 장대 레일화 등으로 변신 중이지만, 이제 이렇게 한번 집중적인 투자를 받고 변화를 겪은 철도는 또 앞으로 100년 이상은 변화 없이 그대로 갈지도 모른다. ^^;;;

그러나 철도에 vertex 차원의 변화는 이따금씩 있어 왔다.
지금 사라지고 있는 수많은 간이역들은--교행 내지 신호장 말고 순수하게 여객용--, 옛날에 철도가 구불구불 느리고 개인 교통수단이라고는 없던 시절의 유물이다.
그나마 인구가 워낙 많은 대도시 주변에 있는 작은 역들은 전철역으로 탈바꿈이라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역들은 전적으로 자가용이나 버스에 승객을 빼앗기고 폐역크리를 먹었다.

신호나 교행, 기관차 교체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임시역은 선로가 아예 복선화하거나, 기관차 교체 이유가 사라지거나(전철화 구간 확장, 스위치백 이설 등...), 입체 교차로가 신설되는 등 철도 시설이 더 좋아지면서 존재 목적을 상실하여 없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번거로운 관행은 오늘날은 다 없어지는 추세이다. 열차를 중간에 번거로운 조치 없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달리게 해야 도로에 비해 경쟁력을 얻을 테니까 말이다. 요즘은 중련 편성 열차의 중간 합체· 분리도 다 없어졌다.

선형 개량으로 인해 역 자체가 이설되는 경우가 있다. 이 역이 원래부터 수요가 있었다면 '이설'로 명맥을 유지하겠지만, 그렇잖아도 퇴출 0순위 역이었는데 어차피 선로 이설로 인해서 옮겨질 운명이라면 새 선로에다 옛 역의 자취를 남겨 놓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 말고, 철도 내부 사정이 아닌 외부적인 특수한 이유로 인해 정규 여객역 외의 임시 승강장이 만들어졌다가, 그 이유가 없어진 후에 없어지기도 한 사례가 있다. 그런 요인으로는 첫째 대규모 행사가 있을 수 있고, 둘째로 유명 장소가 있을 수 있다.

경부선에는 1968년 9월 9일부터 10월 20일까지, 40일 남짓한 기간 동안 '박람회'라는 역이 있었다.
이건 지금의 가산디지털단지 역 근처에 있었는데(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음), 당시 구로공단에서 개최된 '제 1회 한국 무역 박람회'의 참관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임시로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거기 근처에 경부선 철길을 타넘는 자동차 다리의 이름은 무려 ‘수출의 다리’! 딱 저 시절에 박정희스러운 이름으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ㄲㄲ

1968년이면 한국 철도사의 관점에서는 가히 상상도 못 할 까마득한 옛날임을 알아야 한다. 서울에 아직 지하철이 없으며 경부선 영등포-시흥(현 금천구청) 사이에 역이 하나도 없던 시절이었다! 선로도 2복선이 아닌 그냥 복선. 승객들은 시끄러운 디젤 기관차나 털털거리는 디젤 동차를 타고 박람회 역을 이용했을 것이다.

저렇게 행사를 목적으로 만든 임시역 중에 유명한 예는 역시 '엑스포' 역이다. 이건 맨땅에 승강장을 설치한 건 아니고, 여객 열차를 취급하지 않으면서 엑스포 장소와 가까이 있던 대전조차장 역 내부에다 여객 시설을 임시로 설치하여 역을 만들었다.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8월까지 살아있던 역이었다. ^^;;

지금은 서울과 수도권에 워낙 도로 교통편과 전철망이 발달한 덕분에 특정 행사를 위해서 임시 철도역이 생길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우리나라에 간선 철도망이 강남으로도 잘 발달해 있었다면 '올림픽' 역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었을 것이다. 올림픽이 개최되던 당시에 서울 지하철 9호선 전구간 같은 간선 철도나 지하철이 있었다면, 공항, 고속버스 터미널, 종합운동장이 철도로 한데 연결되어서 가히 금상첨화였을 텐데!

박람회와 엑스포(어 그러고 보니 둘이 어차피 비슷한 의미이다.-_-)가 일시적인 행사를 위해 만든 역이라면,
인근 장소로의 접근성을 위해 철도 당국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임시역을 만들어 준 경우가 있다.
본인이 당장 생각나는 예로는 충북선의 청주공항 역, 그리고 경전선의 진주수목원 역.
이런 역은 존재 가치가 일회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해당 시설이 안 없어지고 이용객을 많이 이끌어 준다면 정규역으로 승격되기도 한다. 뭔가 철도역도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_-;;

즉, 이 글의 결론은.. 비록 철도가 선로를 따라 원천적으로 무척 경직된 영업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 선로 위에서 어떤 역을 살리거나 죽이는 일은 생각보다 나름 유동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차량 기지 내부에 시종착역 명의로 작은 역을 만드는 테크닉은 이미 2기 지하철 무렵부터 일종의 트렌드가 되어서 7호선 장암, 분당선 보정뿐만 아니라 9호선 개화와 심지어 공항 철도 용유까지 물려받아 있으나, 중간에 이런 임시역이 생기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 하겠다.

그나저나 가산디지털단지(구 가리봉) 역은 서울 지하철 1호선, 즉 경부선 서울-수원 구간이 2복선으로 확장되기 전에 생긴 역이라는데 어째 양 승강장 사이로 선로 네 가닥이 있는지 궁금하다. 승강장 시설 자체가 대대적으로 확장된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1/02/04 21:17 2011/02/0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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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및

우리말 순화 운동가 중에는 ‘및’을 싫어하는 분이 계신다.
우리말답지 못하고 어원이 또 무슨 번역투이고 등등~ 근거가 여럿 있는 걸로 본인은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및’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역할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만하게 없앨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및’을 안 쓰고 이 성경 구절을 번역해 보라.

And the king, and all Israel with him, offered sacrifice before the LORD. (왕상 8:62)

뭔가 느껴지는 게 없는가?
그렇다. 우리말의 조사 ‘-와/과’라든가 어미 ‘-고’는 and라는 뜻만 있는 게 아니라 with라는 뜻까지 교묘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거 구분이 안 되는 게, 번역할 때 의외로 굉장히 불편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적잖게 발생한다! (한국어 말고도 이런 특성을 지닌 언어가 좀 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접속부사 ‘및’은 정확하게 and의 뜻만 지니기 때문에 중의성의 해소에 도움이 된다.

물론 한국어는 부사를 무척 좋아한다는 특성상, 공동번역처럼 “왕은 온 백성과 함께 .... 했다”라고 문장 구조를 완전히 바꿔 번역하는 방법도 없지는 않다.

2. 어법에 어긋난 축약

알아듣는 데는 아무 지장 없는데 여기서는 쓰이고 저기서는 통용되지 않고.. 음운이나 형태론적으로 온전한 근거를 갖추지 못해 어법상 허용되지 않는 축약이 있다. 한국어에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스러운'(O), '-스런'(X): 국기에 대한 경례마저 '자랑스런'에서 '자랑스러운'으로 고쳐졌다. 그냥 축약을 허용해도 되지 않겠나 생각을 했었는데... '아름다운'을 '아름단'이라고 적지는 않잖아..! ㅂ이 탈락하는 것도 모자라서 음절 전체가 탈락하는 건 대략 보기 좋지 않다.

- '밤을 새우다, 담배를 피우다'(O), '밤을 새다, 담배를 피다'(X): '우'도 만만하게 보이는지 자꾸 탈락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는 명백한 변별 요소로, 이게 빠지면 '물이 새다', '꽃이 피다' 같은 완전히 다른 단어가 되고 만다. 그러고 보니 타동사와 자동사로 각 용언이 격이 다르다 보니, 경계가 마음놓고 문란해지는 건가? -_-;;

- '바뀌었다'(O), '바꼈다'(X): 이런 식으로.. 현대 한글이 규정하는 한글 모음의 범위를 벗어나는 축약을 시도하다 보니, 음운 탈락을 감수하면서 말을 줄이는 경우가 있다. 물론 구어체에서나 통용될 뿐 표기를 이렇게 하는 건 물론 잘못이다.

이런 축약은 꼭 음절수를 맞춰야 하는 노래 가사나 시 같은 데서나 제한적으로 묵인되는 듯하다. 이름하여 시적 허용. 그런 건 영어에도 있으니까..;; 만약 한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고 있었다면 이런 축약 사이에는 분명 어퍼스트로피가 들어갔을 것이다.

3. 아리까리한 영단어

영어도 만능이 아니다. 중의적인 어휘가 생각해 보니 꽤 있다. 비슷하지만, 그래도 구분 가능한 게 더 좋겠다 싶은 것들 말이다.

- good: 좋다 vs 선하다. 웬지 '선한 사마리아인'과 '좋은 사마리아인'은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 free: 자유 vs 공짜. 이게 영어권에서 은근히 혼동이 심해서인지, 오픈소스 진영의 문서에는 “자유 소프트웨어란 무료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친절한 부연 설명이 들어가 있다.
- life: 생명 vs 삶(인생/생애/한살이). 그래서 한국어로는 life after death를 좀 더 깔끔하게 번역 가능하다. 내세에 대해 설명할 때 나오는 단어임.

- little: 작은, 어린, 거의 없는...;; 이거 은근히 중의성이 짙어서 헷갈릴 때가 있다. 이게 빈도부사의 역할까지 하니, 마치 more이 다중 품사 역할을 해서 헷갈리는 것과 비슷한 차원이 된다.
- great: 거대하다, 위대하다. 뭔가 크고 아름답다는 뜻인데, 어떻게 아름다운지가 중의적이다.
- child: 그냥 어린이 vs 계통상의 자녀
- mind: 생각 vs 마음

- egg, milk: 영어는 참 특이한 게 이런 단어들이 각각 달걀과 우유라는 특정 동물의 알과 젖을 뜻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이것 자체가 범용적인 알과 젖을 뜻하기도 한다. 마치 기름이 석유도 뜻하고 그냥 물과 섞이지 않는 가연성 액체의 총칭이기도 하듯이 말이다.

- day: 낮 vs 날. 문맥에 night가 대조되면 전자의 의미가 되고, month나 year 같은 단어가 오면 후자의 의미가 된다.
- earth: 육지(land), 흙 (dust), 태양계의 행성 지구(the earth)...;; 의 의미를 두루 지닌다.

- man: '사람, 사나이(남자), 성인'의 의미를 두루 지닌다. 성경에서도 고전 13:11에 나오는 “but when I became a man”은.. 무슨 단군 신화처럼 동물이 인간으로 변했다거나, 성전환을 해서 여자가 남자로 바뀌었다는 게 아니라.. 자라서 어른이 됐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

영어는 잘 알다시피, 혈통상 2촌 관계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나이 서열대로 부르는 호칭이 없다. 가령, brother이라고만 하면 형인지 남동생인지 알 수 없다. 그 문화권은 근본적으로 '나이가 깡패' 같은 사고방식이 없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 그 반면 한국어에는 형제 자매들을 싸잡아 부르는 명칭이 없는 듯하다. 쉽게 말해 성별에 구애되지 않고 sibling에 대응하는 한 단어가 없다는 뜻. 그래서 맨날 가족 관계를 물을때 “형(언니)이나 동생 있어요?”라고 번거롭게 말을 풀어서 한다.

4. '들'이 의존명사라니!

나는 '들'이 field를 뜻하는 명사, 그리고 복수형을 의미하는 접미사 정도로나 알고 있었다. 특히 후자 용법은 단복수를 무진장 엄격하게 따지는 영어의 여파 때문에 한국인들 머리에 뼛속까지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건 뭔가?

【의존명사】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벌여 말할 때 맨 끝에 쓰이어, 그 여러 사물을 모두 가리키거나 또 그 밖에 같은 종류의 사물이 더 있음을 뜻하는 말. 등.
¶ 전차·버스·택시 ∼.

쉽게 말해서 '들'이 '등'(and so on; et cetra)과 완전히 같은 용법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뭐병...;;
한컴 사전, 네이버 사전 등을 다 찾아봐도 그런 풀이가 있다.
본인은 태어나서 '들'이 그렇게 쓰이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근처의 국문과 학생으로부터도 “뭐 이런 게 다 있어” 동의를 받았다. -_-;; 이제 교수에게서 인증받는 것만 남았다는..;;

5. 내일의 순우리말, 한자어 번역어

한국어에 어제, 모레와는 달리 'tomorrow'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없는 것을 본인은 굉장히 특이하게 여겨 왔다. '한국어 순우리말은 왜 blue와 green을 구분하지 않을까?'만큼이나 왜 내일이 없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소문에 따르면 '내일'의 순우리말은 '하제'라고 한다. 문헌상의 근거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게 언제부터 왜 '내일'로 대체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카이스트 학생이라면 '하제'가 아주 친숙할 것이다. 교내의 유명한 컴퓨터 동아리(게임 개발 분야)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어제와 오늘, 모레, 글피 등의 서열에서 혼자 한자어인 어중간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워낙 친근한 단어여서 중국이나 일본어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코레일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팔고 있는 내일로 티켓은 'rail-로'가 두음법칙에 의해 바뀐 것...이라고 한다. ㅋㅋㅋㅋ 그래도 싫어요-좋아요보다는 그럴싸한 설명.

'내일'도 이미 한자어인데 동일한 의미를 지니면서 더 탁한 느낌이 나는 한자어가 또 있다. 명일이나 익일... 이 서열대로라면 어제와 오늘도 작일, 금일로 바뀐다. 내일은 바꿀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내일조차 다른 한자어로 바뀐다니, '내일'은 순우리말도 존재하고 더 어려운 한자어 버전도 존재하는 이상한 단어라 하겠다.. 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1/02/02 21:32 2011/02/0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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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개의 분야 이야기들이 또 한데 컬렉션 형태가 됐다.

1. Personalization of Windows

이건 아무나 쉽게 할 만한 건 아니지만, 아마 윈도우 파워 유저들은 한번쯤 시도해 봤지 싶다.

콘솔(명령창)의 글꼴 바꾸기
솔직히 나도 Terminal 기본 서체는 이제 지긋지긋해서.. 똥 묻은 파르페 다음으로 싫다.. -_- 과거 윈 9x는 도스 프롬프트의 코드 페이지를 영문 437로 바꾸면 Courier New나 Lucida Console이라도 나와서 괜찮았으나, 2000/XP의 콘솔 글꼴은 너무 단조롭기 그지없다.
특정 레지스트리 부위에다 00이라는 키를 추가해서 원하는 글꼴을 지정한 뒤 재부팅을 하면 된다고 하는데, 난 여러 사이트들에서 시키는 대로 해도 안 되더라...;; 잘 모르겠다.

XP의 경우, uxtheme 패치
자세한 배경 설명은 생략하고. 요지는.. XP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Luna 테마 대신 다른 시각 테마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테마를 바꾼다는 건 단순히 색깔이나 이미지 같은 데이터뿐만이 아니라 각종 화면 요소를 그리는 실행 코드 자체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운영체제의 안정성 및 보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래서 운영체제는 기본적으로 디지털 서명이 존재하는 테마만 고를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개인 테마 제작자가 일일이 자기 작품에 대해서 $를 지불하고 번거롭게 디지털 서명 인증을 받는 건 쉽지 않은 노릇이고.. 결국 디지털 서명이 없는 테마도 지정 가능하게 아예 운영체제 자체를 크랙하는 테크닉이 나돌게 됐다. 아이폰으로 치면 탈옥 정도 되겠다.

난 XP의 파란 Luna가 예뻐서 거기에다 custom 글꼴 & 그림만 붙여서 잘 썼다. 테마를 바꿀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비스타로 갈아탄 지 3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XP Luna가 그리울 때가 있다. 하긴, 비스타에서 Luna 커스텀 테마를 일부러 구해다 쓰는.. 흠좀무스러운 사람도 있다고는 하더라...

2. Phone number as the hyperlink

남이 내게 문자 메시지로 다른 전화번호를 알려 줬다. 이렇게, 발신자 그 자체가 아니라 본문에 포함돼 있는 전화번호를 번거롭게 암기하거나 수첩에 적지 않고 그대로 저장하거나 전화를 걸 수는 없을까?
마치 http로 시작하는 문자열이 인터넷 주소이고 "@ ." 같은 패턴이 이메일 주소이듯, 전화번호를 나타내는 정규 표현식이 통용되어 이런 건 전화기가 마치 클릭 가능한 하이퍼링크처럼 본문에다 표시해 주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자동으로 링크를 못 만든다면 최소한 번호를 마우스로 긁어서 복붙 정도는 되어야겠지.
간단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에는 이미 구비되어 있는 기능일지도 모르겠다?
아래아한글 도스용에 있던 전화번호부와 팩시밀리 기능이 불현듯 떠오른다. COM 포트를 통해 컴퓨터가 모뎀으로 전화를 걸어 주던 시절이었다.. ^^;;

3. 디렉터리 생성을 좀 더 똑똑하게

컴퓨터의 파일 시스템에서 지우기 명령에 하위 디렉터리를 재귀적으로 몽땅 다 지우는 기능이 있다면,
디렉터리 생성 명령에도 중간의 다단계 디렉터리를 한꺼번에 생성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또한, 디렉터리를 생성한 후 바로 거기로 가는(change directory) 기능 내지 옵션도 있으면 편하지 않을까?
이건 114로 치면 전화번호를 물은 후 그 전화번호로 바로 거는 기능에 해당한다.

다단계 디렉터리를 한꺼번에 생성하는 기능은 있지만 생성한 디렉터리로 바로 가는 기능은 프로그래밍 API라든가, 각종 유틸리티 프로그램이나 명령으로도 내가 본 기억이 없는 듯하다.
요즘은 옛날에 비해 디스크/파일을 다루는 유틸리티에 대한 필요성이 훨씬 덜해지긴 했지만.. 특정 디렉터리나 드라이브로 곧바로 이동 가능하고 특정 프로그램을 단축키 하나로 바로 실행해 주고 한 화면에서 압축 파일이라든가 FTP 연동이 바로 되는 유틸리티가 있으면 컴퓨터 생활이 정말 편해진다.

토탈 커맨더, NexusFile 같은 프로그램이 유명하긴 한데 본인은 단축키가 완전히 손에 익어 버려서.. 개발이 중단된 구닥다리 WinM을 못 버리고 있다.

4. DR만 들어가면 다 박사?

DR이라는 약어가 하도 '닥터'라고 통용되니까, 과거에는 이로 인해 재미있는 오해가 발생한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MS-DOS의 경쟁자 중 하나이던 DR-DOS는 그래도 다 대문자로 쓰고 MS-DOS도 '엠에스'라고 읽다 보니, '디알'이라고 통용되었던 것 같다. MS-DOS를 설마 '미스 도스'이라고 하지는 않잖아? 도스의 모에화ㄲㄲㄲㄲㄲ 훗날 나온 노벨 도스의 전신이 DR-DOS인 줄은 모르고 있었네..;;

그러나 그래픽 소프트웨어인 '닥터할로'는 답이 없다..;; Dr. Halo라고 쓰면.. 누구에게라도 영락없이 '할로 박사님'처럼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설마 개발자가 박사 학위 소지자이기라도... 한지는 모르겠지만 Dr은 그냥 '드로잉'을 줄인 말이라고 한다.

5. 스마트폰 OS 에뮬레이터

PC에서 안드로이드 에뮬레이터가 실행되는 속도는 실제 기계에 비해서... "꽤", 훨씬 더 느리다. 난 약간 느릴 줄 알았는데 이 정도까지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하긴, 도스박스조차 200x년대의 컴에서 같은 x86 아키텍처용 도스용 프로그램을 펜티엄급으로밖에 실행을 못 하는데, x86와 ARM은 인스트럭션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요즘 스마트폰은 CPU와 메모리로만 치면 이미 최하 윈도우 98/2000 정도는 너끈히 돌리는 성능이다. 무슨 고전 게임도 아니고, PC와의 격차가 의외로 높지 않으니 PC에서 에뮬레이팅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애플리케이션들은 그나마 네이티브 코드도 아니고 잘 알다시피 자바 기반.

그리고 마지막 복병이 있는데 바로 그래픽 가속이다. OpenGL 같은 통일된 인터페이스가 있다지만 그래픽 가속은 워낙 민감한 부위여서 그런지 가상화가 더디다. 가상 머신에서 돌아가는 윈도우 비스타/7이 Aero 효과를 내지는 못하며, 에뮬레이터에서 돌아가는 스마트폰 OS는 실물만치 현란한 비주얼을 선보이지는 못한다.

그러나 PC+에뮬레이터가 디스크 I/O만은 실물보다 훨씬 더 빠르게 수행한다.
이런 식으로 스마트폰 앱은 에뮬레이터에서 돌릴 때와 실물에서 돌릴 때의 성능 편차가 의외로 크며, PC에서 개발하더라도 수시로 실물에서 올려서 확인이 필요하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31 22:28 2011/01/3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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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맥콜리 교수에 이어 한글을 사랑한 해외 석학 시리즈의 둘째 시간을 마련하게 됐다.
이번에 소개하는 사람은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 1937년생으로, 제임스 맥콜리와는 나이 차이가 1년밖에 안 난다. 2010년 현재 생존 인물이다.
‘재레드’라는 이름을 보고 성경 인물을 떠올릴 수 있겠는지? 창세기 5장을 보면, 무척 기이한 이름인 마할랄레엘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아들이 야렛(Jared)이다. 야렛은 962세까지 산 인물이며 그 이름도 유명한 에녹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 사람에 대해서 프로필을 조사해 보면, 프로필마다 그의 종사 분야가 제각각이라는 것에 놀라게 된다. UCLA의 교수이긴 한데, 어디서는 생리학과 교수라고 나와 있는 반면 이거 웬걸, 연구 분야가 역사학, ‘지리학’, 조류학 등등등...;;
그렇다. 그는 학문에 대한 관심과 열정, 집중도가 상상을 초월하며 뼛속까지 학자 타입이다.
학계에서 큰 명성을 쌓은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도 그 공부 오덕질 하나만으로 성공한 불세출의 천재이다.

처음엔 의사가 될 목적으로 의학을 공부했으나, 어렸을 때부터 ‘새(bird) 덕후’였던지라 분야를 살짝 바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조류학자 행세를 하고, 그러다 비슷한 시기에 언어학에도 깊이 심취했다. 이 사람이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를 다 구사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ㅎㄷㄷㄷ;;;

그의 덕질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의학과 생리학, 조류학, 진화 생물학에서 시작된 이과 기질은 언어학을 거치면서 점차 인문학적 기질로 바뀌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이번엔 역사학, 문화인류학까지 섭렵하기 시작했는데, 필력이 좋았던지라 <네이처>, <디스커버> 같은 잡지에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한 각종 글을 쓰며 본격 과학 작가 반열에도 올랐다.

그리고 <제 3의 침팬지>,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같은 책을 쓰면서 생리학자로서의 다이아몬드 교수 이미지는 완전히 묻히고 말았다....;;; 이공계 천재이기도 하지만 인문계 천재 기질이 그걸 능가해 버린 셈. 퓰리처 상도 한번 받았다.

그런데, 이 천재도--그렇잖아도 언어학 덕후이기도 했음-- 제임스 맥콜리 교수와 동일한 어느 문자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한글이다. 관심 분야가 ‘진화론 → 생물의 진화 → 인간 세상 → 문자의 진화 → 한글’의 순으로 뻗쳤다고 하는데...;;

첫눈에 반한 그는 저렇게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한 각종 글을 권위 있는 학술지에다 실을 때, 한글 얘기를 했다!
바로 Discover지 1994년 6월호에 Writing Right(흠 언어유희를 의식한 제목인가?)라는 글을 실어서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하였고, 이에 비하면 언문일치가 개떡인 영문 내지 온갖 난잡한 문자를 섞어 쓰는 일본의 글자 생활은 매우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로 한글로>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하여 한글이 왜 우수하고 대단한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지로 증언했다. 라틴 알파벳밖에 안 써 본 서양인의 관점에서, 또 자기 특유의 덕후 관점에서 한글을 요모조모 뜯어보니까 이런 특징이 발견되더라는 것이다.
귀찮아서 동영상은 생략.. -_- 아래 사진에서 왼쪽의 인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소리와 글자가 딱 잘 대응한다. 영문은 그렇지 못하다.
2. 자음과 모음이 시각적 변별되고, ㄷㄴㅌ, ㅅㅈㅊ 같은 그룹화가 가능하다.
3. 입모양을 본뜬 모양 자체도 경이롭다.
4. 모아쓰기를 하는 음절문자여서 글자의 식별이 용이하고 시각성이 더욱 향상된다.

그런데 다이아몬드 교수에게 질문을 하는 한국인 인터뷰어가 “why do you think so ...” 이렇게 묻는 건 좀 압박스럽다. 뭔가 피의자를 취조하는 듯한 느낌이 드니까. what makes you think so가 훨씬 더 정중하고 좋았을 텐데 말이다. (인터뷰어는 국문과 교수임.)

그는 워낙 관심 분야가 다양한 덕후이다 보니,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은 한글 역시 그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많은 장난감 중 하나로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는 딱히 맥콜리 교수처럼 한글날을 20년째 기념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일상적으로 쓰는 한글이라는 이 문자가, 알고 보면 저 천재마저 감탄시킬 정도로 정말 엄청난 문자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다.

과학과 철학을 겸비하고 대중적인 인기도 많은 석학 중엔, 웬지 무신론자 내지 개독안티가 많은 경향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나 칼 세이건처럼. 저 사람도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또 진화론을 연구한 사람이기까지 하지만, 딱히 자기 종교색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는 것 같다. 어쨌거나 학자로서 여러 모로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분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본인, 언젠가 창조와 진화에 대해서도 글을 쓸 일이 있을 것이다. 무진장 재미있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30 08:45 2011/01/3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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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 철도

시베리아 횡단 철도. (Trans-Siberian Rilway)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이 철도는, 단일 정부가 건설한 단일 노선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규모를 자랑하는 철도이다. (아래 그림에서 빨간 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선 길이는 무려 9334km로, 지구를 1/3바퀴 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 지 얼마 안 된 서울 행 비행기에 ‘도착지까지의 거리’가 9058km라고 찍혀 있는 사진을 첨부한다.
미국에서 한국까지 비행기가 아니라 철도를 이용해서 간다고 생각해 보라. ㅎㄷㄷㄷ;;
미국 갔다 오면서 별 의미 없이 찍어 놓은 사진이, 이럴 때 유용한 삽화 자료로 쓰인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딱히 철덕이 아닌 사람에게도 시베리아 횡단 철도 시승은 유럽 여행의 성배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실제로 타고 나서는 너무 지겹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이 철도는 이미 19세기 중반에 건설의 필요성이 논의되었으며 19세기 말에 건설이 시작되어 전구간은 1916년에 개통했다고 한다. 문헌에 따라서는 1905년에 이미 주요 구간이 완공됐다고도 나온다.
지금은 9000km가 넘는 전구간이 복선 전철이다. 복선화는 1937년에 완료되었으며, 전철화 공사는 1929년에 시작되어 무려 2002년에야 100% 끝났다고 한다.

그 긴 구간에 일일이 전차선과 전신주를 설치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겨울에 시베리아가 좀 춥나..(영하 5, 60도까지!)? 그래도 한 열차가 중간 급유를 할 필요 없이 빛의 속도로 나아가는 전기만 받아서 달리면 쭉 달리면 되니까 운영면에서는 매우 편해졌다고 볼 수 있겠다.
20세기 초에 개통, 1930~40년대에 복선화, 21세기 초에 전철화 완료라는 점에서는 어째 한국의 경부선과 시기적으로 연혁이 비슷한 셈이다.

종점에서 종점까지 주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꼬박 1주일. 비행기가 비슷한 거리를 15시간 만에 주파하는 것과 비교된다만, 시베리아 철도는 고속철이지도 않고, 운임 역시 비행기보다야 1/n 이하로 훨씬 싸기 때문에 이용객이 많다. (비록 외국인 관광객은 자국민만치 싸게 탈 수는 없지만 말이다.)
객실은 식당, 세면대가 갖춰졌으며 4인 1실처럼 일종의 움직이는 여관 컨셉으로 마련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옛날에는 침대차가 있었지만 지금은 열차의 속도 향상으로 인해 없어져 있다.

시베리아는 워낙 불모지이다 보니, 그 엄청나게 긴 영업 거리에 비해서 역은 60여 개로 적은 편이다. 참고로 서울 지하철 2~5호선 같은 메이저 지하철 노선이 역 수가 이미 4~50개이다.

이 철도의 유명하고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는 선로가 광궤라는 것이다.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그 당시에는 광궤로 건설되었지만 이것이 오늘날은 국가간 철도 직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 있다. 옛날에는 서로 싸우고 식민지를 쟁탈하느라 바빴지, 오늘날만치 국가간의 협력을 중요시하는 구도가 아니었으니까.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의 경원선 철도와의 직결 떡밥이 나돌고 있으나, 결국은 상이한 궤간으로 인해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러시아는 광궤, 북한 포함 한국은 표준궤, 그리고 일본은 협궤.. 흠좀.
열차의 직결이 이뤄지려면 궤간뿐만이 아니라, 요즘 그렇게도 친환경적이라고 찬사를 받고 있는 전철의 경우, 전기 규격과 집전 방식까지 통일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국제 열차 직결 운행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철도역 안에 CIQ 구역과 세관, 면세점, 출입국 심사대가 생기고 열차 승객이 차내에서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도로는 남한의 경부 고속도로를 포함해서 ‘아시안 하이웨이 n호선’ 같은 게 국제적으로 제안돼 있기도 하다(비록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철도라고 그런 걸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Oh Glory Korail 노래에도 3절 가사가 “대륙 넘어 세계로 달려간다, 내일의 꿈을 여는 희망의 철도”이다. ^^;;

그나저나,
- 중국이나 미국에도 비슷한 대륙 횡단 철도가 있을 텐데.
- 칠레는 최대 폭이 200km 남짓밖에 안 되는 반면 길이가 4300km에 달하는 길쭉한 1차원 국가이다 보니;; 그 모양 따라 간선 철도만 하나 놓으면 국가 기간망 완성이겠다. ㄲㄲㄲㄲ 아마 전구간 최하 2복선으로, 수도권엔 3복선으로 만들어야 할 듯.

끝으로, 궤간 하니까 생각나는 얘기.
커다란 기계류를 만드는데, 부품을 철도로 운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크기· 폭이나 무게가 어쩔 수 없이 제약이 가해지는 경우가 역사적으로 있었다. 미국에서 우주 왕복선을 공장에서 발사할 때도 그랬고, 아예 협궤를 쓰는 일본은 이 제약 때문에 90식 전차 같은 자위대 무기는 아주 ㅂㅅ같이 만들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철도가 최초로 발명된 영국과 철도 얼리어답터 국가인 일본은 궤간 때문에 19세기 중· 후반에 골치를 많이 썩었던 게 사실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28 07:45 2011/01/2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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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011년이다. 그래서 킹 제임스 성경(이하 KJV)을 최종 권위로 믿는 진영에서는 요즘 무척 들떠 있다.
올해가 그 성경이 출간된 지 만 400주년이 되기 때문이다. (1611년) 날짜로는 5월 2일이라 함.
KJV 신자들에게 1611은 아주 유명한 숫자이지만, 연도 이하의 정확한 날짜는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 날짜에 맞춰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도 400주년 기념판(5th edition)을 내려고 한창 작업 중이다.

본인에게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한 믿음이 생긴 건 2002년 무렵이다.
그 전에도 킹 제임스인지 흠정역인지 하는 고어체 성경이 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으나, “개역성경의 영문판 정도 되는 성경이겠지” 정도로 치부할 뿐이었다.
개역성경이 “하시니라, 가라사대” 같은 말투가 있듯이 영어에도 “thou, thee, ye”가 나오는 성경이 있다는 맥락. ㄲㄲㄲㄲㄲ
또한, 마치 손실 압축인 JPG 방식으로 그림을 계속 고치고 저장하면 할수록 그림의 화질이 떨어지듯이, 성경도 여느 고문서와 마찬가지로 세월이 흐르면서 내용의 일부가 소실되어 '없음'이 생긴 줄 알았다. 진짜다.

그랬는데.. 성경 이슈에 대해 알게 되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엄청나게 충격적인 지식과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고, 이것들은 본인의 내면 속에 지금까지 잠자고 있던 기독교 신앙의 고유 진동수에 딱 맞춰 나를 격렬히 진동시키고 말았다. 타코마 다리가 들썩들썩하다 와르르 무너지듯, 나의 기존 통념도 와르르...;;

사연을 다 설명하자면 복잡하다만..
내가 KJV 빌리버가 된 주 이유 중 하나는... KJV 반대자 내지 현대 역본 옹호자들의 논리랄까 사고방식이, 어쩜 저렇게 불신자 기독교 안티들의 그것과 똑같을까 그 이중적인 모습에 충격 받고 분노해서였다.

나는 나보다 성경을 많이 아는 목사, 신학자가 마땅히 내 신앙을 방어해 주는 사람인줄로 알고 있었다.
걔네들은 그걸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다. 살인· 간음을 저질러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간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개독안티가 성경을 헐뜯고 “토끼는 되새김질을 안 하는데 성경이 잘못됐다, 뭐가 모순이다”라고 시비를 걸면, 반대편 진영에 선 사람들은 “토끼는 되새김질을 하는 게 맞다. 이거는 네가 성경을 문맥을 무시하고 당시 사정을 감안 안 하고 삐딱하게 잘못 읽어서 그런 거다 ... 어쨌든 결론은 성경은 일점일획도 손실이 없이 절대무오하고 자체 모순이 없다.” 그렇게 대응하는 게 상식적으로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 팔아서 돈과 명성을 얻는다는 사람이, 자기들부터가 그 신앙의 근간인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보존돼 있지 않다고 하고, 세상에 무오류한 성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문자적인 성경 해석을 방어해도 시원찮을 판에 같이 앉아서 헐뜯고 있으니...! 그럼 그는 그런 하나님 파는 짓은 중단하고 자기 양심껏 목사질 때려치우고 안티 진영으로 가야지 왜 거기에 들러앉아 있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에 대한 물리적인 박해보다도, 성경을 조롱하는 안티들의 집요한 독설보다도 훨씬 더 무섭고 치명적인 것은
기독교가 아닌 것이 기독교로 둔갑하여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현상이었다!

성경이 완벽하지 못하니까 그 완벽하지 못한 부분은 나의 해석이, 히브리/그리스어 사전이, 신학이, 교회 전통이 보완하겠다는 소리로 들려서 본인, 매우 심히 불쾌했다. 내가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그런 의도를 파악할 눈치 정도는 있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내 신앙은 내가 지켜야겠다는 '신앙 자주국방론'(?)이 대두되었고, 작정하고 성경을 읽고 독학했다.

내 지론은 언제나 “안티는 안티답게, 신자는 신자답게”이다. 어느 것이든 모 아니면 도로 색깔과 노선만 분명하다면, 본인과 다른 신앙의 소유자라 해도 이 글 읽고서 기분 나쁘거나 불쾌해할 사람은 전혀 없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색과 공부의 결과로 본인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대안이 바른 성경에 있으며, 그 대안의 실체가 바로 킹 제임스 성경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당신이 읽고 있는 멀쩡해 보이는 성경이 실은 13구절이 삭제되고 6만 개나 되는 단어가 변개돼 있습니다”라고 그러면, 언뜻 보기엔 거의 “2011년 안으로 북괴 김 정일은 남침합니다” 수준의 미친 개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그건 무슨 루머나 음모론도 아니고 정말로 객관적인 사실인걸.

세상에, 삭제된 게 맞고, 킹 제임스 성경의 구절이 나중에 추가된 거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걸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 (막 9:44,48; 행 8:37 등등)
불순분자가 삭제한 게 아니라? 도대체 '어떤 사본'은 도대체 무슨 사본을 말하는 걸까?

본인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따위는 전혀 모르고,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런 것과는 인연이 거의 없는 인생을 살 것이다. 그래도 킹 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는다.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게 아니다. KJV 유일주의가 신앙면에서 건전하고 내 믿음을 세워 주고 안티들의 공격을 반박하는 사고방식이라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헛점(?)을 물고 늘어지는 안티들의 공격이 얼마나 집요하고 맹렬한지 본인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성경은 뜻만 통하면 되지 역본들이 다 같은 내용이라는 주장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저건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차라리 KJV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 대안으로 NIV가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최종 권위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쓰신 선한 간증이 있는 성경이라는 식의 논리라도 폈다면 나는 응당 NIV 맨이 됐을 것이다.
최소한 예수쟁이 행세하고 성경 말씀에 꺼뻑 죽으려면 저렇게 하는 게 정상이다. 사실, KJV 진영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다혈질 골수이고, 모 아니면 도 노선이다.

본인 주변의 모 목사님은 왕년의 유학 시절에 KJV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이거 자료 찾고 번역만 하다가 문학 박사 과정 졸업을 포기하고 수료만 하고 돌아왔으며,
다른 모 목사님은 부와 명예가 보장된 전문직 종사자이면서 사재를 탈탈 털어서 그것도 욕 얻어먹고 오해 사면서까지 10년째 성경 번역에 매달리고 계시기도 하다. 한국에 이런 올바른 성경을 번역해서 알리지 않으면, 내 양심상 배기질 못하겠다고...;; 이런 분들에 비하면 난 그렇게 강경한 것도, 골수도 아니다.

본인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다른 유명한 곳으로 '말씀 보존 학회'(말보회)라는 단체가 있다. 본인은 그곳과는 아무 개인적인 인연이 없다. 저곳은 한때 극렬 전투종족으로 기존 개신교로부터도 이단 판정을 받을 정도로 악명을 떨쳤었는데, 걔네들이 비록 간증을 잃을 잘못된 행동을 하긴 했으나, 본인은 심정적으로 그들에게 공감은 한다. 얼마나 답답하고 기성 교회에 대해 실망했으면!

내가 만약 말보회를 통해서 KJV를 접했다면, 아마 말보회 내부에서 만렙-_- 불화살 워리어가 됐을 것이다. ㅋㅋㅋㅋㅋ 지금보다 한 100배는 더 과격한 글 쓰면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주필 논객이라든가 거기 신학원 강사 등으로 한 자리 차지했을지도 모를 듯.
본인의 성깔을 아는 교회 사람 중에는, “용묵 형제가 말보회를 거치지 않고 KJV를 알게 된 건 정말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KJV 유일주의를 주장하면 대체로 “그래도 원어 성경이 더 낫지 않습니까? KJV 이후에도 더 나은 필사본이 발견되지 않았을까요?” 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하도 많이 들었다만... 뭐,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최초의 성경 자필 원본은 오늘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사본만이 전해지며, 그 필사본들이 오늘날의 성경처럼 완전한 66권 합본으로 전해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이 필사본이 전체 중 어느 조각에 속하는지, 그리고 의미가 그토록 다양하게 변하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의미를 단정적으로 이거라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다시 말해, KJV와 동급으로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원어 성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이다. 둘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그러니,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KJV가 하는 역할이 자기 밥줄을 뺏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KJV를 배척하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
KJV는 변개되지 않은 바른 원문에서 바르게 번역되었고, 바르게 집대성(compile)되었다. 따라서 바른 히브리/그리스 원어 성경이라면 KJV와 충돌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전통적인 고문헌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수되어 왔다. 다른 고대 문헌들은 가장 오래 된 게 원본에 가장 가까울 확률이 높겠지만 성경은 끊임없이 필사되고 사람들에게 수시로 읽히고, 그러다 닳아 없어지길 되풀이했다. 회전률이 높다는 뜻.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필사본이 존재하고 이들이 서로 일치하면 그게 곧 맞는 본문이다. (쉽죠?) 하나님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성경을 보존해 놓으셨다.

그 반면, 극소수 골동품처럼 전해내려져 온 튀는 필사본은 애초에 진작부터 버려진 가짜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마치 유다복음이라든가, 사악한 성경--'간음하지 말라'에서 not이 실수로 삭제된..;;;-- 같은 것들 말이다.

그나저나, KJV 번역을 지시한 제임스 왕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난 세속 역사를 통해 알고 있던 건

  • 엘리자베스 여왕 다음으로 즉위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왕. 하지만 선왕보다는 그리 훌륭하지 못했다는 평판을 받음
  • 왕권신수설을 내세웠고, 좀 독재자 스타일로 의회와의 대립이 심했던 듯?
  •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에 나오는 제임스타운의 어원이 된 사람. (포카혼타스는 설정상 배경이 1607년이다. KJV가 한창 번역되고 있던 시절이다.)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왕의 신분으로서 국민을 위해서 국비로 성경을 번역하라고 했을 정도이니, 제임스 1세 왕은 거의 영국의 세종대왕 급이다.
“나랏말씀이 라틴어와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무지몽매한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여도 마침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내 이를 가련히 여겨 새로 성경 역본을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읽어 구원받고 영적으로 자라게 할 따름이니라.” 정도..;;

그 외에 더 알고 싶은 정보가 있으면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자.
http://jesus-is-lord.com/kinginde.htm

물론 저 사이트의 운영자는 KJV 지지자로, 제임스 왕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실들을 나열하면서 그가 아주 훌륭한 왕이었다는 요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담배를 지독하게 싫어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경 번역 작업에 앙심을 품은 교황청 세력에 의해 암살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gunpowder 사건)
KJV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제임스 왕에 대해서도 굉장히 치졸하게 헐뜯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하고 싸우기 위해서는 영국 역사를 좀 공부해 놓는 것도 좋다.

킹 제임스 성경 이전에도 여러 성경 역본이 존재해 왔으나, 이 KJV만이 20세기 초까지 독자적으로 쓰이면서 전세계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고, 수많은 혼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KJV는 400년 전에 출간된 후, 인쇄 오류를 바로잡고 개정된 영어 철자법대로 표기를 고치는... 몇 차례 edition이 나왔다. 그래서 1611년 KJV의 1769년도 edition이 오늘날까지 우리가 쓰고 있는 그 정확한 본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글 개역성경도 번역 후 제정된 한글 맞춤법 통일안대로 새로운 edition이 나온 바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차원이다. edition은 코딩으로 치면 재컴파일이나 포팅일 뿐이지, 결코 프로그램의 로직을 바꾸는 revision이 아니었다.

영국에서 이렇게 성경의 절대 기준이 나오고 영어가 나오고 세계 표준시가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철도 표준 규격도 여기서 정해졌다. ^^;;;
영국에서는 올해에 KJV 발간 40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될 것이라고 한다. (내년에는 올림픽을 기념하여 콩코드도 다시 먼지 털고 잠시 운항할 거라고 하던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성경을 이단이라고 하고 있고 그 많고 많은 기독교 서점에서 역본 자체를 거의 찾을 수가 없다. 대단히 통탄할 노릇이다.
오늘날 KJV는 영국에서도 듣보잡이 돼 가고 있다. 인도에서 불교를 찾을 수 없고,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찾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나 할까..

아무쪼록 이 글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한 보존에 대한 믿음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블로그 말고 이곳 대문에 HTM 문서로 등재되어 있는 <음란한 성경은 가라>, <킬로그램 원기> 같은 본인의 글도 읽어 보시길.

Posted by 사무엘

2011/01/26 08:36 2011/01/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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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배열로 표현된 직사각형 형태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걸 좋아하며, 이는 그래픽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생각하는 개념을 그래픽 개체의 형태로 표현하다 보면 직사각형이 아닌 임의의 모양의 그래픽을 찍어야 할 일이 생긴다.
게임에서는 스프라이트가 좋은 예이고, 굳이 게임이 아니더라도 GUI 환경에서는 아이콘이라든가 심지어 customized 마우스 포인터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그래픽이다.

이런 그래픽은 결국 큰 직사각형 안에서 투명색을 제외한 나머지 색상을 찍는 방법으로 처리하는데, 그 구체적인 테크닉은 역사적으로 아래와 같은 세 양상을 거치며 바뀌어 왔다.

1. 모노크롬이나 그에 준하는 저색상: 비트 연산

그림을 두 장 준비한다. 그리고 그 두 장을 화면에다 그냥 copy만 하는 게 아니라, 화면에 이미 있는 픽셀과 비트 연산을 하여 그 결과를 찍는다. 이것을 raster operation이라고 하는데, 비트 연산은 CPU-friendly한 작업이기 때문에 컴퓨터가 나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다.

준비해야 하는 그림은,
찍어야 할 내용이 그려져 있고 배경은 '검은색'(0)으로 처리되어 있는 '원래 비트맵'과,
원래 비트맵하고는 정반대로 배경은 무조건 '흰색'(1)이고 내가 차지하는 스프라이트 영역은 '검은색'(0)으로 처리되어 있는 '마스크 비트맵' 이렇게 둘이다. 마스크 비트맵은 1 아니면 0만 있는 모노크롬이다.
(따라서 '원래 비트맵'만으로는 검은색이 배경인지 아니면 스프라이트가 실제로 차지하는 검은색인지 알 수 없다.)

화면에다가는 먼저 마스크 비트맵을 AND 연산으로 그린다. 원래 화면에 있던 픽셀이 X라면, 마스크에서 배경으로 처리된 픽셀은 X AND 1이므로 X가 그대로 남고, 0이면 0이 되어 검은색이 된다.
즉, 마스크 비트맵에 대한 AND 연산은, 스프라이트가 칠해져야 할 영역만 시꺼멓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 자리에다가 원래 비트맵을 XOR 연산으로 그린다.
0 XOR X = X이므로, 이 연산을 수행해 주면 화면이 0으로(특히 마스크 비트맵 AND 연산으로 인해 0이 된) 시꺼먼 곳은 원래 비트맵이 그대로 그려지고, 원래 비트맵이 0인 배경은 아무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의 출처는 위키백과.
이로써 스프라이트가 멋있게 그려졌다.
도스용 게임 중에 <위험한 데이브>는 이런 초보적인 XOR 방식으로 스프라이트를 찍었기 때문에, 검은 배경이 아니라 두 스프라이트가 겹치면 화면에 잔상이 남곤 했다.

옛날 윈도우 9x 시절에.. 컴퓨터 메모리가 많이 부족해서 하드디스크 스와핑/thrashing이 일어나고 프로그램의 각종 아이콘들이 그려지는 게 눈에 보일 때는... 아이콘이 차지하는 영역이 먼저 시꺼매지거나 반대로 잠깐 하얗게 번쩍이는 걸 볼 수 있었다. 흠, 프로토스 건물도 소환이 끝났을 때 실루엣이 허옇게 번쩍이다가 원래 형태가 드러나는데...;; raster 연산을 더블버퍼링 없이 화면에다 바로 그리다 보니, 컴퓨터 속도가 느려졌을 때 그 중간 과정이 눈에 띄는 것이다.

검정에다가 원래 비트맵의 색을 합성할 때는 이론적으로 OR을 써도 되는데 XOR이 의도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는 XOR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XOR 1은 비트를 반전시켜 준다는 특성상, XOR 연산으로 그린 그림은 거기에다 XOR을 한번 더 해 주면, 다른 곳에 영향을 주지 않고 자기가 차지하고 있던 영역에서만 완전히 지워진다.

XOR 연산은 컴퓨터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이 가볍기 때문에, 마우스 선택 영역을 나타내는 점선 사각형이라든가 창 크기를 조절하는 작대기처럼 수시로 업데이트를 해 줘야 하는 비주얼 효과를 나타낼 때 즐겨 쓰인다.
아니, 텍스트 블록이라든가 깜빡이는 커서(캐럿)조차도 반전 사각형이니까 XOR이다.

마우스 포인터도 XOR 연산이다. 텍스트 입력란을 뜻하는 I자(beam) 모양의 마우스 포인터는 검은색이 아니라 배경색에 대한 반전색이다. 마스크 비트맵 값을 0이 아닌 1로 둬서 배경을 지우지 않은 상태에서 XOR 비트맵도 1로 해 주면 배경색이 반전되는 효과가 난다. ^^;;

XOR 연산은 디지털 컴퓨터가 존재하는 한 그래픽에서 언제까지나 없어지지 않고 쓰일 방식이긴 하지만... 오늘날은 다소 촌스러운(?) 것으로 간주되고 있기도 한다. GPU님이 계시니 화면 비주얼을 굳이 CPU 친화적인 방법만 고집할 필요는 없는 듯. 그래서 요즘은 뭔가 선택 영역을 나타낼 때 알파 블렌딩을 동원하여 다 옅은 파란 배경 + 더블버퍼링으로 대체되는 추세이다. 화면 전체의 DC를 얻어와서 XOR 연산을 시키는 건 Aero 환경에서는 오히려 성능을 더욱 떨어뜨리는 짓이기도 하니 말이다.

2. 모노크롬 이상 16~256색 사이: 컬러 키(color key)

그 후 컴퓨터의 그래픽 카드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256색 시대가 열렸다. 256색은 팔레트 조작이라는 과도기적인 괴악한 개념을 도입한 걸로도 유명하다.
색깔이 적당히 많아졌기 때문에, 비트맵에서 256색 중 하나만 투명색으로 예약하여 쓰지 않고 나머지 색은 그대로 찍게 하는 방식이 유리하다. 마스크 비트맵 따위를 번거롭게 구비할 필요가 없다. 또한 256색은 RGB 값이 아니라 인덱스 기반 컬러를 쓰기 때문에, xor 반전 연산이 어차피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지도 않는다. (실제 색깔값이 반전되는 게 아니라 팔레트 인덱스 번호가 반전되기 때문)

256색 전용으로 유명한 gif 그래픽 파일이 이런 컬러 키를 지정하여 투명색을 지정할 수 있다.
윈도우 API에도 비트맵이나 아이콘의 (0, 0) 위치 픽셀을 투명색으로 간주하고 그려 주는 함수가 있으며, SetLayeredWindowAttributes 함수는 컬러 키를 지정하여 해당색을 투명하게 처리함으로써 non-rectangular 윈도우를 만드는 효과를 내어 준다. region을 만들지 않고도 동일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3. 트루컬러: 알파 채널

투명색 처리의 최종 완전체는 바로 알파 채널이다. 이건 과거의 픽셀 raster operation과는 차원이 다르며, 컴퓨터가 빨라진 정도를 넘어 그래픽 가속을 위한 별도의 GPU까지 등장하면서 가능해진 궁극의 기술이다.
매 픽셀에다가 이분법적인 투명 여부가 아니라, 이 픽셀이 배경과 얼마나 짙게 오버랩될지 반투명 등급 자체가 추가로 들어간다. RGB에 이어 A까지, 가히 색깔의 4차원화인데, 기계 입장에서는 한 픽셀당 딱 정확히 32비트이니 처리하기에는 다행히 좋다.

256색을 초월한 천연색 그래픽에는 워낙 많은 개수의 색상이 쓰이기 때문에.. 그 중 딱 한 색깔에다가만 컬러 키를 부여하는 게 무의미하다. 그리고 마치 글꼴에도 안티앨리어싱을 하듯, 스프라이트도 경계가 배경색과 부드럽게 융합해야 트루컬러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난다. 그래서 알파 채널이 필요한 것이다.

윈도우 98에서 알파 채널을 적용한 비트맵 찍기라든가 그러데이션을 한번에 처리하는 API가 처음으로 추가됐다. 프로그램의 제목 표시줄에 그러데이션 효과가 윈도우 98에서 처음 추가되었는데, 바로 이 API를 쓴 것이다.
그리고 윈도우 XP에서는 알파 채널이 적용된 확장 아이콘이 처음으로 도입되었고, GDI+는 그리기 기능에 전반적으로 알파 채널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하지만 GDI의 기본적인 벡터 드로잉 함수는 그런 새로운 기술로부터 소외되어 있으니 안타까울 뿐.

윈도우 비스타는 48*48도 모자라서 아예 256*256 크기의 아이콘을 지원한다. XP 때부터 이제 아이콘 하나가 2~3만 바이트에 달하는 시대가 됐는데(윈도우 3.1 시절에는 1~2천 바이트.. -_-), 전통적인 ico는 bmp와 같은 '무압축 포맷'인지라 256*256 크기의 32비트 픽셀을 저장했다간 크기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ico 포맷은 내부적으로 png 파일도 포함할 수 있게 구조가 확장되었다.
gif를 대체하는 새로운 이미지 포맷인 png는 알파 채널을 지원한다. 그 자그마한 아이콘 하나도 전문 그래픽 디자이너가 포토샵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이다.

윈도우 내부적으로는 아이콘과 마우스 포인터 파일은 거의 동일한 포맷으로 간주된다. 아이콘은 이미지 이미지 비트맵과 마스크 비트맵 이렇게 둘 들어있는 형태이며, 마우스 커서는 거기에다 센터 위치가 추가되고.. 애니메이션 포인터는 gif스럽게 프레임이 더 추가되겠구나.
알파 채널이 등장하면서 마스크 비트맵은 존재 가치가 상당수 퇴색하긴 했으나, 오늘날에도 고전 테마(XP의 Luna, 비스타의 Aero 따위가 없는)에서 아이콘을 찍을 때라든가 disabled 상태 같은 변형 상태를 찍을 때 참고 정보로 쓰이기 때문에, 완전히 필요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요컨대 오늘날은 기술 발전의 정도에 따라 최소한 세 가지 형태의 투명색 표현 기법이 쓰이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사실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24 07:35 2011/01/2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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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의 모세 이야기 -- 上에서 계속된다.
이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지식과 더불어 김 성모 화백 명대사에 대한 지식이 동시에 필요함을 밝힌다. ㅋㅋㅋㅋㅋ)

모세가 파라오 앞에서 막대기를 뱀으로 만들고, 물을 피로 만들고 각종 재앙을 행할 때,
“폐하, 저거 다~ 사기입니다. 우리 마술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라고 훼방을 놓은 이집트 마술사의 실명이, 웬 생뚱맞은 바울 서신에 거론되어 있다. (딤후 3:8) 그러나 이들도 재앙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결국은 GG 치고 “이건 마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리에 제임스 랜디 같은 마술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_=;; (가짜 초능력자 잡아내는 걸 업으로 삼던 양반.)

보라, 주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들에게 임하여 매우 심한 전염병이 있으리라. (출 9:3)

이건 구제역, AI 같은 것들일까...?? 이건 정말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답이 없어서 닥치고 가축들을 매몰 도살 처분하는 수밖에 없는데.
재앙이 하나씩 지날 때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던 이집트가 거덜날 지경이 되었다.
이건 그야말로 생명과 무생물의 경계를 넘나들고 기상 현상이 마음대로 바뀌는 말 그대로 초자연적인 이적이었다.
경제적으로 손해를 입는 건 둘째치고라도, 이런 재앙을 겪으면서 이집트 국민들은 자기 왕에 대해서, 또 자기들이 믿던 신에 대해서 분명 심각하게 다시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모세 자신도 점차 믿음이 생기고 담대해졌다.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나중에 그는 파라오를 상대로 “아~ 그러셨어요? 님 저한테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졸라 무섭군요” 같은 식으로 농을 치거나 말을 비꼴 정도로 간이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오는 칠전팔기 불굴의 의지로 모세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파라오는 결코 남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는다. 누가 이기나 보자!” 파라오는 정말로 김 화백이 롤모델로 삼기에 손색이 없을 근성가이였다. 마치 돈을 계속 잃으면서도 도박을 그만두질 못하는 것처럼.

아홉째 재앙은 말 그대로 어둠의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를 느끼는 재앙이었고, -_-;;
결국 마지막 열째 재앙인 모든 장자가 몰살 당하는 재앙으로 인해, 파라오는 자기 맏아들을 잃고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 줬다. 앞의 재앙들이 이집트의 각종 동물· 자연 잡신들을 무력화하는 심판이라면, 마지막 재앙은 이집트가 과거에 저지른 이스라엘 유아 학살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 심판에 앞서 하나님은 이집트 탈출을 염두에 두고 유월절을 제정했다. 양을 잡아서 급하게 먹는 건 좋은데 왜 하필 피를 문설주에다 발라 놔야 할까?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묻어 있는 가정은 일명 죽음의 천사가 들어가지 않고 휙 돌아서서 열외(passover!)한 반면, 그렇지 않은 집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집트의 왕자>(이하 '이왕')에서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죽음의 천사가 여러 스레드로 갈라져서 길거리 그래프를 DFS 탐색하는 듯하다.

'이왕' OST인 When You Believe가 흘러나오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변덕 한번 심한 파라오는, 군대를 보내서 이들을 죽이거나 도로 잡아 오기로 작정한다.
마침 유대인들이 모인 곳은 하필 막다른 홍해 바닷가였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오병이어만큼이나 불신자들도 다 아는 성경의 그 유명하고 위대한 기적이 행해진다.

홍해 바닷물이 둘로 갈라져서 경부 고속도로가 중앙에 생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출 14:21을 보면, 하나님께서 강한 동풍으로 바닷물을 뒤로 밀어냄으로써 길을 만들었다고 하신다. 동풍이라 함은 동쪽에서 불어오는 방향이다. 동쪽으로 부는 바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경로는 서쪽에서 동쪽 방면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바다는 모세가 있는 곳에서부터 바다 건너편으로 쭉 전진을 하면서 폼나게 밀려난 게 아니라...
바다 건너편에서부터 물 밀려나기 시작해 그 흐름이 모세가 있는 쪽으로 왔을 거라는 뜻이다. 이해하시겠는가?

그러므로, 위의 영화 장면도 엄밀히 말하면 고증 오류라는 뜻이 되겠다.. -_-;;;

백성들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홍해를 건넌다.
그런데
http://www.youtube.com/watch?v=6ZjgH0H7DkE&feature=related
의 3:44-46 지점. 낙타가 입 헤 벌리고 '오오욱' 하는 소리가... 둠에서 좀비 몬스터가 죽을 때 나는 소리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ㄲㄲㄲㄲ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홍해가 갈라져서 생긴 길의 폭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살림 가득 싣고 노약자와 어린이까지 다 싣고 가는 수십, 백수십만 명의 행렬의 진행 속도가 빠를 수가 없을 것이다(창 33:13-14 참고).
이들이 모두 홍해를 건널 때까지 하나님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집트 군대의 진입을 차단하고 시야도 가리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 동안 이집트 군대는 근처에서 진을 치고 한없이 기다리다가, 유대인들을 추격하러 멋도 모르고 갈라진 홍해 밑바닥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갈라져 있던 바닷물이 원상복귀되면서 시ㅋ망ㅋ.

이때 파라오 자신도 죽었을까? 아들에 이어 아버지까지??
'이왕'에서는 파라오 혼자 살아남는 설정으로 나오고, 모세는 홍해 건너편에서 “형. 이제 영원히 굿바이.”라고 한 마디 한다.
성경에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지만, 출 14의 정황으로 볼 때 파라오도 추격 작전의 선두에 나섰고 그 인원들이 한 명도 남김 없이 몰살당했다고 했으므로, 이집트는 이제 왕까지 잃고 군대도 잃고 국가가 존폐의 위기에 몰렸을지도 모르겠다.

천지창조 이래 전무후무한 기적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쁨과 자신감으로 용기백배 했다. 정말 얼마나 기뻤겠는가? 출애굽기 15장의 대부분이 그 감격을 못이겨 불러진 찬송시이다. 이 엄청난 소식은 사실 해당 지역 주변의 민족들에게도 퍼져서 흠좀무와 충공깽을 선사했다. (수 2:9-10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을 통해 홍해를 직접 건너지 않았다면, 이집트 군대의 몰살 같은 다른 수많은 관련 에피소드들은 어떻게 설명할 거란 말인가? 그런데 이걸 무슨 얘네들은 홍해가 아닌 갈대밭을 건넌 거라고 심지어 성경 지도의 출애굽 경로도 영 엉뚱하게 설명해 놓은 책도 있다. 원어상 홍해가 아니라 갈대밭이라고 설명하는 신학자까지 있는 모양인데, 이건 거의 '싫어요'가 두음법칙 상 '좋아요'로 바뀐 개드립 급이다.
믿기 싫으면 자기가 안 믿는 거야 개인 자유이고 내가 절대로 뭐라 안 하는데, 남이 믿는 것에 대해서 엉뚱하게 해석이나 하지 마셈..;;

역사를 보면, 성경 구절을 자기의 이념적인 일에다 영적으로 적용한 사람이 있다. 몇 가지 유명한 예를 소개한다.

A father of the fatherless, and a judge of the widows, is God in his holy habitation. (시 68:5) -- 고아원을 기도만으로 운영한 조지 뮬러
Stand fast therefore in the liberty (...) and be not entangled again with the yoke of bondage. (갈 5:1) -- 평생을 조국 독립을 갈망하고, 광복 후에도 자유 민주주의를 추구한 이 승만
...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롬 1:17 등) -- 종교 개혁자 루터


이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영적으로 적용하여 우리나라 개신교의 성시 교독을 보면, 광복절 편에 “내가 주께 노래하리니 그분께서 영화롭게 승리하셨도다. 그분께서 말과 거기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도다.” (출 15:1) 같은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이집트 군대의 패배를 일제의 패망에다가 비유한 모양이다.

맹렬한 김 정일 안티로 유명한 북한 인권 운동가 남 신우 씨는 “Let my people go”를 아주 즐겨 인용한다. 성경에서는 66권 전체를 통틀어 출애굽기 5장~10장 사이에서밖에 등장하지 않는 문장이다. 그가 사용하는 문맥은 물론 파라오로부터가 아니라 “인간개백정 김 정일로부터 가게 하라”이다.

이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은 상징적인 의미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래봤자 모세를 포함해 홍해를 건넌 이 세대들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뺑이 치다 다 죽었으니 그저 안습.
아니, 홍해를 건너면서 이제 뭘 해도 하나님 앞에서 꺼뻑 죽을 정도로 자신만만하던 그들도... 겨우 며칠 못 가 광야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그만치 연약하고 어떤 면에서는 간사하다.

모세는 120세에 약속의 땅을 몸소 밟지는 못하고, 대신 산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면서 감격에 찬 채로 쓱~ 쓰러져 죽었다. 성경에 따르면 그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려하셔서 죽는 순간까지 몸이 노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죽은 후에 아마도 몰래 부활, 승천하지 않았나 추정된다(유 9).

그 위대한 모세가 출애굽 2세대들을 교육하면서 예수님이 오실 것임을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예언을 남겼으며(신 18:15),
신약 성경은 사도행전에서 두 번이나 그 예언을 인용하면서 그게 바로 예수님이 맞다고 입증했다(행 3:22, 행 7:37).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모세를 그렇게도 추종하면서 정작 예수님을 모른다. 다른 엉뚱한 메시야 기다린다고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고 하루빨리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여야 할 텐데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21 15:29 2011/01/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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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2009년 말에 성경을 7독까지 했다. 그러나 그 후 한동안 개인적인 게으름, 바쁜 스케줄 등의 이유로 인해 성경을 읽지 않고 지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다시 각성하여, 석사 과정에 있는 동안 최소한 한 번은 더 완독해서 8독까지 달성할 계획이다.
성경을 꼬박꼬박 읽다 보면 블로그에도 성경 관련 글을 더욱 자주 쓰게 될 것이다.

최근엔 출애굽기를 읽었는데, 이번 기회에 모세에 대해서 심층 논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또 직업병이 발동하여 장문의 글을 쓰게 됐다. 특별히 성경 본문뿐만이 아니라 유명한 관련 영화인 <이집트의 왕자>(1998. 애니메이션)와 <십계>(1956)도 끼워넣었다.

영한사전을 보면 중학교 수준의 매우 중요한 단어는 별이 세 개, 고등학교 수준은 투스타 이런 식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성경의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 중요도 랭크를 매긴다면 모세는 단연 별 세 개짜리일 것임이 틀림없다.

★★★: 불신자들도 상식적으로 다 알고 관용적으로 인용하는 인물. 예수, 마리아, 모세, 아담, 이브, 솔로몬, 베드로, 유다, 아브라함, 다윗, 골리앗
★★: 위보다는 좀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유명하고 성경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 여호수아, 바울, 사울, 누가, 요한, 이삭, 이스라엘과 12지파
★: 일단 성경의 책이름에 등장하는 마이너 인물들, 그리고 덜 유명하지만 그래도 성경에서 두 번 이상 언급되는 인물. 요엘, 요나, 호세아, 스가랴, 히스기야, 스바냐. 이세벨, 발람..
(-): 이 정도까지 알면 꽤 '골수'이며, 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사람임. 아히도벨, 아비멜렉, 아사헬, 고라, 데메드리오, 맛디야, 아가보, 나봇 ...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학정으로부터 구한 민족 지도자이며, 하나님과 직통으로 대화하고 그분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온 위대한 대언자이다(신 34:10-12). 골수 유대교 신자들은 '모세' 하면 정말로 꺼뻑 죽는다.

그런데 그런 모세는 그 누구보다도 출생이 위태로웠다. 이집트가 유대인들을 노예로 삼고, 심지어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강제로 죽여 버리던 시절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때는 태아 성감별이라든가 강제 낙태 기술은 없었던 듯-_-;;;
대피라미드는 불가사의가 아니며 강제 노역이나, 외계인(?)의 힘으로 만든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집트가 강제 노역으로 거대한 건축 사업을 벌인 것 자체는 사실이다. (출 1:11-14)

이때 모세의 어머니는 3개월째 애를 숨겨서 키웠는데, 나중에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애엄마는 아이의 최후를 차마 자기 눈으로 못 보겠다며 아기 모세를 바구니에다 넣고 강물에 띄워 보낸다. 누나인 미리암은 바구니가 어디까지 떠내려가나 하염없이 강을 쳐다만 볼 뿐. <이집트의 왕자>(이하 '이왕')가 이 장면을 뮤지컬 형태로 잘 묘사하고 있다.

Brother, you’re safe now
And safe may you stay
For I have a prayer just for you:
Grow baby brother
Come back someday
Come and deliver us too
(자장가의 일부)

그런데 그 모세를 이집트의 공주가 발견했다. “흠. 어느 유대인 가정에서 (우리나라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린 애새끼군?” 이렇게 넘길 수도 있었는데 마침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공주는 모성애가 발동하고, 아기를 입양하기로 마음먹는다. 이건 에스더기 만만찮게 드라마틱한 스토리이다.

이때 미리암은 “공주님, 혹시 젖 먹일 유모를 찾으세요?”라고 제안했다. 덕분에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자기 친아들의 유모 노릇을 하면서, 국가로부터 삯을 받고 애를 젖을 뗄 떼까지 키웠다. 그 후 애는 국가에 반납. -_-;; .. 이 성경의 스토리이나,

'이왕'에서는 저 장면이 안 나온다, 모세는 그냥 닥치고 바로 왕궁 행이다. 공주도 아니고 왕비가 입양한다.
그러나 '이왕'에서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자기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모세의 모습이 더욱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성경에 없는 내용을 나름 각색했다.

모세가 왕궁을 나섰는데 미리암· 아론 남매와 극적으로 마주친다. 미리암은 '앗, 왕자님께서 웬일로 이런 누추한 곳에...' 하다가 수십 년 전 모세의 얼굴을 곧바로 알아보고는 “아, 드디어 네가 커서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주러 왔구나!” 하면서 잔뜩 설레발을 친다.

그러나, '이왕'의 설정상 자기 가족 얼굴도 모르는 모세는 “너 미쳤니?”라는 식으로 응수한다. 미리암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나 필사적으로 “넌 지금이라도 알아야 돼. 넌 이집트 사람이 아니라구! 친어머니가 널 강물에다 띄워 보낸 후 이집트 왕궁으로 입양된 거야! 잘 모르겠으면 아버지 되는 사람에게 물어 봐!” 라고 소리친다.
아론은 그저 데꿀멍 하면서 “왕자님, 제 여동생이 사람을 못 알아보고 헛소리를 하는가 봅니다.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만 할 뿐.

굉장히 불쾌해진 모세는 미리암 네년을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내리고 돌아선다. 그러나 이때 미리암이 흐느끼면서 부르는 자장가 한 소절이 모세의 옛날 기억을 깨운다.

잠시 후에 나오는 1분 30초 남짓한 벽화 CG 애니메이션은(모세의 악몽) 본인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히 경이로움과 충격 그 자체였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성경은 성경이고 영화는 영화. 성경에서 모세가 정체성 때문에 저렇게 고뇌한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성경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때 유모(=친엄마 ㄲㄲ)에게서 철저하게 정체성과 사상 교육을 받은 채 궁궐로 들어갔으며, 훗날 장성해서는 애국 애족 정신이 충만하여 자발적으로 왕자 자격을 포기하기까지 했다고 나온다. (히 11:24-25; 행 7:23)

모세는 의협심이 너무 충만한 나머지, 동족을 때리는 이집트 노예 감독을 암살해 버렸는데... 정작 동족들은 그 선한 뜻을 못 알아보고 “당신은 우리도 그렇게 죽일 작정이냐?”하고 되물었다. 그렇다. 모세는 배척받은 민족주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모세에게 민족주의자적인 이념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쌍것들 피지배민이라 해도, 사내아이를 죄다 죽여 버리는 건 이집트의 왕자가 보기에도 너무 불쌍하다는 식으로, 꼭 그렇게 해야만 했냐는 그냥 인도적인 차원에서 동정한다. 그가 이집트 노예 감독을 죽이는 것도 계획적인 살인이라기보다는 동작을 단순히 stop 시키려 했는데 과실치사가 발생한 것처럼 묘사된다.

이런 뉘앙스의 차이를 잘 분별하도록 하자. 마치 실존 인물인 최 용신이 얼마나 억세고 강인한 분이었는데, <상록수>의 채 영신은 상사병이나 앓는 식으로 너무 유약하게 그려져 있어서 샘골 학원 당사자들이 심 훈 소설을 싫어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모세는 그렇게 이집트에서 사고를 친 후 광야로 도피한다. 그리고 거기서 양치기 일을 한다. 십보라와 만나서 결혼하는 장면에다 저 정도 각색 애드립을 넣은 건 애교로 봐 줄 만한 수준.
영화 <십계>를 보면, 모세와 관련된 모든 역사 기록이 이집트 왕조 실록에서 말소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가히 이집트의 흑역사가 된 셈이다.

모세가 목자가 되었다는 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그의 신변에 훨씬 더 심각한 변화였다.
양치기는 이집트에서 3D 중의 캐 3D로 취급받는 천한 직종이었다. (창 46:34) 한국으로 치면 백정급? 그런데 이집트의 왕자가 이전의 모든 지위를 잃고 양치기로 전락한 것이다..
양치기는 야곱이 삼촌 라반에게 그 고충을 토로하듯이(창 31:38-40) 정말 힘들고 고달픈 일이지, 절대로 낭만적이고 전원적인 직업이 아니었다.

이집트의 왕자로 40년, 목자로 40년을 산 뒤에야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집트로 돌아온다.
성경은 이때 모세의 가정이 귀환하는 도중에 겪었던, 잘 알려지지 않은 깜짝쇼 해프닝에 대해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자기 둘째 아들에게 할례를 안 베풀고 있다가, 여관에서 하나님에게 끔살 당할 뻔한 것이다. (출 4:24-26)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은 이 사건이 기록된 출애굽기 4장 뒷부분을 읽다가 이 에피소드 때문에 어리둥절해하고 깜짝 놀라곤 한다.

시간과 분량 관계상 지금 그 문맥에 대해서 모든 설명을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대략 이런 상황을 상상하면 된다.

모세: 여보, (켁켁 숨막혀..) 그러게 둘째 아들에게도 (크허헉~) 할례를 해야 된다고 전에 내가 말했잖아! (나 죽겠어..) 그러니 제발 군소리 말고 지금 어서..;; (으윽~)
십보라: ㄲㄲㄲㄲㄲ 어휴 이런 야만적인 짓을 왜 하는지 몰라... (할례를 행하고 아들의 포피를 베어 던지면서) 이제 됐어요? 당신은 참 피비린내나는(bloody) 남편이군요.


십보라의 말은 기가 찬 듯한 비아냥거림에 가깝다. 모 성경 역본처럼 “당신은 피로써 맺어진 나의 달링님이에요” 같은 사랑 고백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본문으로 미뤄 볼 때, 모세는 이방신의 제사장의 딸인 십보라와 결혼한 후, 저런 할례를 포함하여 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가정 불화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왕'에서 묘사된 것처럼 십보라가 이스라엘 백성하고 같이 홍해를 건너고 미리암과 함께 얼싸안고 기뻐하다가 “Look at your people. They are free!” 같은 멋진 말로 엔딩을 장식했을 가능성은.. 유감스럽지만 대단히 희박하다. 오히려 십보라는 모세를 따라다니는 데 염증을 느끼고, 도로 친정으로 돌아갔다가 출애굽기 18장에서야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에서는 모세-십보라 부부가 파라오 앞에 나아가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 역시 완벽한 허구이다. 성경에 따르면 오히려 영화에서 믿음을 저버리고 모세에게 야유를 퍼붓는 사람으로 나오는 아론이 모세와 함께했으며, 그가 처음부터 모세의 대변인 노릇을 했다.
모세와 아론은 이집트에 재앙을 퍼붓기에 앞서 먼저 동족들 앞에서 표적을 행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민족을 구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인정을 받았다. “파라오님, 우리 민족 대표가 이집트를 향해 할 말이 있답니다. 잠시 좀 들어 보시죠.”

그러나 모세는 사실 파라오 앞에 서는 걸 극도로 꺼리고 두려워했다. 광야에서 하나님과 대면했을 때도, 자기는 그 일 못 하겠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하나님을 불쾌하게 할 정도로 얼마나 뒤로 내뺐던가? 예전에 이집트에서 사고 친 것도 있고, 또 한때 내 집이었던 이집트를 상대로 적대적인 행위를...
나라도 하기 싫었겠다. 나이도 80이나 되고 나니, 젊었을 때의 그 혈기와 깡은 찾을 수 없었다. 모세는 그냥 목자로 살면서 손자 보면서 잔돈으로 애새끼들 과자나 사 주고 조용하게 살다 가고 싶었을 것이다.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세는 파라오 앞에서 대놓고 당당하게 “우리 백성을 종살이에서 풀어 주시오!”라고 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이집트 담화는 벌벌 떨면서 쥐꼬리 만하게...

“광야에서 종교 의식을 행하고 오게, 우리 민족에게 한 며칠간만 휴가를 주면 안 될까염? 안 그러면 우리 민족이(이집트가 아님!) 신님에게서 천벌을 받거든요. 유대인들이 죽으면 노예 노동력도 감소하니까 이집트의 국익에도 어차피 안 좋지..... 않겠습니까요?”


이런 애원, 탄원, 아니면 협상급이 되고 말았다.
'이왕'에서는 모세하고 형 람세스(현재의 파라오)가 극적으로 상봉해서 얼싸안는 장면도 나오지만, 성경에 그런 설정은 없으며,
파라오가 모세의 저런 연약함에 호소하는 간청에 귀를 기울였을 리도 없었다.
노예 주제에 웬 자기네 듣보잡 루저 민족신에게 종교 의식을 행하겠다니.. (이집트의 종교는 다신교적이다)
이것들이 군기 빠지고 살 만하니까 종교 타령이나 한다는 식으로 파라오는 알아들었다.

결국 제 1라운드에서 모세는 처절한 참패를 당했다. 자유가 찾아오기는커녕 파라오는 끄떡도 안 했고 오히려 노동 강도만 더욱 늘었다.
모세는 동족을 볼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손발리 오그라들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출 5:22-23)
그런데 이때 영화에서 또 등장하는 누나 미리암. 그녀는 특히 아론과 대비되어 완전 눈물나게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믿음의 여인으로 묘사된다. 이 점에 관해서는 모세의 누나가 아니라 거의 어머니 수준이다. 비록 성경에는 없는 대사이지만, 이런 캐릭터가 좀 있어야 영화의 감동이 살아나겠지. ㅎㅎ

Moses. Hear what I say. I have been a slave--all my life. And God has never answered my prayers until now.
God saved you from the river, he saved you in all your wanderings. Even now he saves you from the wrath of Pharaoh.
God will not abandon you. So don’t you abandon us.

“하나님은 너를 결코 버리지 않으셔. 그러니 너도 우릴 버리지 말아 줘!”

그리고 본격적으로 파라오를 굴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재앙이 시작된다. 영화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The Plagues라는 뮤지컬이 나온다.

(글이 길어지니 이후 내용은 下에서 계속하겠다. 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1/19 15:14 2011/01/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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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번씩 언급은 했을 아이템들이나, 이렇게 한번 쭉 재정리해 보는 것도 맛이다. 철도는 써도 써도 글 쓸 게 계속 생각난다. ㅋㅋㅋ

서울 1기 지하철은 광역전철과의 직결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
1호선은 어차피 노선의 내부분이 광역전철이니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지하철까지 좌측통행으로 건설되었다.
2호선은 1호선과는 정반대로 100% 지하철 순환선이어서 광역전철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국내에서 최초로 건설된 우측통행 복선 철도이기도 하다.
3호선은 북쪽이 일산선으로, 4호선은 남쪽이 과천선과 안산선으로 이어진다. 뭐, 북쪽도 창동 역에서 환승하면 경원선을 탈 수 있긴 하다.

그런데 3호선은 한때 남쪽이 분당선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분당선은 선릉· 왕십리 방면의 별도의 노선으로 계획이 잡히고 3호선도 오금 방면으로 연장되면서 서로 확실하게 별개의 노선이 됐다. 사실 운영 구간부터가 완전히 다르기도 했고.. 3호선은 나중에 건설된 일산선이 지하철을 따라 직류+우측통행으로 맞춰 건설되었다.

그 반면 4호선은 광역전철과 지하철의 스펙이 서로 제대로 충돌을 일으키고 말았다. 남태령-선바위의 꽈배기굴 교차는 아주 유명하며, 선견지명 없는 건설이라고 까이는 레퍼토리이다.

2기 지하철은 비록 직결 운행하는 광역전철 노선은 없으며 비용 문제상 건설 당시부터 광역전철 직결을 고려하지 않고 건설되었다. 그러나 말단 구간에서 환승이 가능한 노선이 있다.
7호선의 양 끝이 경인선(온수)과 경원선(도봉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6호선의 양 끝은 흥미롭게도 최근에 경의선(DMC)과 연결되었고, 다른 쪽 끝은 경춘선(신내.. 앞으로 개통 예정)과 연결될 것이다.
좀 특이한 위상으로 설계된 8호선은 논외로 하더라도, 서울의 동서를 관통하는 횡축 간선인 5호선이 동서로 김포나 하남으로 이어지는 철도가 없는 건 의외이고 좀 아쉬운 감이 있다.

9호선은 그 이름도 유명한 공항 철도와 애초부터 짝이 지어진 채 건설되어 있다.
그런데 직결 운행이 실현된다면 영락없이 4호선 꼴이 날 게 우려되나, 어차피 복잡한 입체 교차는 김포공항 역의 평면 환승 구현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기 때문에 그 여파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 듯하다.
1기 지하철 시절 이래로 교· 직류 겸용 차량이 최초로, 아주 오랜만에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대구· 대전 시내 구간에도 KTX 전용 선로가 건설되고 나면 경부 고속선은 기존 경부선과 완전히 분리되며, 경부선은 선로 용량이 꽤 남게 된다. 이걸 이용해서 기존선을 중심으로 부산· 대구· 대전에도 광역전철이 잘 운행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러면 경부선도 마치 일본의 도카이도 기존선과 도카이도 신칸센의 관계처럼 위상이 바뀌게 될 것이다.

다음은 관련 추가 정보들.

1. 차량 기지 내부에 있는 2기 지하철 종착역의 위상

2기 지하철은 1기 지하철과는 달리, 차량 기지 내부나 근처에 추가로 만들어지거나 만들어질 종착역들이 유난히도 눈에 띈다.
노선 차원에서 광역전철과 직결된 게 없어서 시· 종점이 분명한 것도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했지 싶다.

5호선 강일(예정): 근처에 택지가 개발되면서 역이 신설된다. 9호선 개화라든가 분당선 보정과 비슷한 위상이다. 설마 단선은 아니겠지.
6호선 신내(예정): 주민들로부터 역 개설 요구가 없었지만, 오로지 타 노선 환승을 위해서 건설되었다는 점에서 인천 지하철 1호선 계양이라든가 7호선 온수와 비슷한 위상이다.
7호선 장암: 차량 기지 공간을 내 주는 대신 역도 만들어 달라는 의정부시의 요구로 꽤 억지로 만든 티가 줄줄 흐르는 역이다. 분당선 보정이나 경원선 소요산과 비슷한 위상. 단, 소요산은 단선 구간이긴 하지만 차량 기지 내부에 만들어진 역은 아니다.

그 반면 방화(5)나 모란(8)은 차량 기지까지 거리가 꽤 있는 종착역임에도 불구하고 차량 기지 쪽으로 노선이 연장될 가능성이 당분간 없다.

2. 용어 정리

헷갈리지 말자.

꽈배기굴: 나란히 달리던 두 종류의 선로가 잠시 X자 모양으로 입체 교차하여 좌우 배치가 바뀌는 걸 말한다. 4호선 남태령-선바위 사이의 지하 구간에 존재하고, 또 경부선도 노량진-대방 사이에도 일반열차 선로와 전동차 선로가 이렇게 위치가 뒤바뀐다.

똬리굴: 한 선로가 O내지 Q자 모양으로 한 바퀴 빙 돌면서 경사를 오르는 걸 말한다. 빗면을 떠올리면 된다. 철도는 일반 자동차보다 등판능력이 무척 취약하기 때문에 이런 게 존재한다. 한국에는 중앙선에 두 곳 존재하며, 지금 영동선의 명물인 스위치백도 앞으로 똬리굴로 바뀔 예정이다. 스위치백은 열차를 완전히 세워서 전진· 후진을 하고, 매번 선로 분기기도 조작하면서 불편하고 번거로우니까..

교통수단의 등판능력은? 비행기(멍..!) > 자동차(뛰어남) > 철도(아주 취약) > 선박(0! 해수면 고도를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음 ㅋㅋㅋ)의 순.

3. 시간이 정지해 있는 부산 지하철?

서울·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최초로 개통한 지하철은 부산 지하철 1호선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순환선으로 전구간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1985년에 첫선을 보였는데, 지금은 1호선과 2호선 모두 굉장히 길고 아름다운 노선으로 발전해 있다. 부산은 산을 피해서 지리적으로 길쭉한 형태가 되다 보니, 지하철을 건설할 만한 선형이 딱 정해져 있으며 그 선형을 따라 건설된 부산 지하철은 승객도 꽤 많고 장사 잘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서울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은 25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노반도 자갈에서 콘크리트로 다 바뀌고, 레일도 장대 레일로 바뀌고 전동차도 신형으로 교체되고, 무엇보다도 스크린도어까지 모든 역에 죄다 설치된 반면, 부산 지하철은 가히 시간이 정지해 있다.

아직까지 선로에 자갈이 깔려 있고 특히 부산 지하철 1호선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VVVF 차량이 전무한 지하철 노선이다. 일단 3도어 차량 스펙 자체가 전국 유일의 특이한 놈이기도 하고, 지금 있는 차량도 교체할 여력이 없어서 법정 내구연한을 25년에서 40년으로 그대로 늘려 잡은 실정이다. 서울은 그래도 1990년대 이후에 도입된 2기 지하철 차량의 내구연한이 40년이지, 구형 저항/쵸퍼 차량을 그렇게 오래 굴리고 있지는 않다. ^^

부산은 1호선 북쪽 종점인 노포동에 차량 기지 겸 버스 터미널이 들어서 있다. 남쪽은 철도가, 북쪽은 버스가 수송을 담당하는 듯. 2호선은 일부 경부선과 선형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경부선 쪽으로 가지 않고 양산으로 연장되어 일종의 광역전철 역할까지 겸하는 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17 18:43 2011/01/1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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