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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썰렁 개그

1.
"Coffee or tea?"라는 질문에 고객이 대답한다. "OR!"
이건 최 불암 시리즈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이다.
OR도 커피나 차처럼 아이템 중의 하나라면, 단어를 발음하는 억양부터가 다를 텐데 최 불암이 그걸 인지하지 못한 건 아쉽다. ㅋㅋㅋㅋ

2.
"How would you like your steak, sir?" (고객님, 스테이크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요즘이야 한국에도 서양식 스테이크를 파는 패밀리 레스토랑 문화가 발달한지라, 이 질문이 Rare, medium, well-done 같은 익힘 등급을 묻는 것인 줄 다들 안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고, 문맥을 모르던 한국인이 아주 당당하게 "Large, please." (큰놈으로! / 많이 주셈)라고 응답하여 웨이터를 폭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본인도 익힘 등급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 영어 회화 학원에서 처음으로 배웠다.

3.
"도대체 Any라는 키가 어디 있지?" (Press any key -_-)는 영어권에서 정말 그럴싸한 개그인가 보다. 심지어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의 테란 캠페인 대사에도 등장한다.
한국어는 그럴 수가 없는 게, '를'이던 목적격 조사가 '나'로 바뀌는 덕분에 any가 Any라는 키가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아무 키'라는 뜻을 더욱 분명히 해 준다.

요즘은 응용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가 바뀌어서 any key를 누를 일이 별로 없어진 것도 사실. GUI 환경에서 대화상자나 각종 에러 메시지 박스는 엔터나 ESC, space 같은 소수의 특정 키를 눌러야 없어지기 때문이다. Press any key는 다분이 도스 내지 command prompt 시절의 잔재이다.

4.
이건 영어 자체와 관련된 개그는 아니지만... 유명한 얘기이므로 소개한다.
1999년에 서강 대학교에서 있었던 실화라고 한다. 본인 역시 고등학교 시절에 PC 통신으로 처음으로 접했으니,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도.

어느 영어 회화 수업에서 교수가 깜짝 테스트를 실시하면서, 상황 설정에 따른 영어 회화 실력으로 점수를 주고 그걸로 중간고사를 대체한다고 급선언.
"다음... 김 군하고 최 군이 나와서, 미국에서 있을 법한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의 실력을 발휘해 보게. 김 군은 미국에 관광차 찾아간 한국인, 그리고 최 군은 미국에 사는 현지인. 자, 시작해 볼까? 제한 시간은 3분."

최 군과 김 군의 등은 이미 무너진 제방이었고, 머릿속에선 현기증마저 느낄 때, 김 군이 재치를 발휘했다.

김 군(한국인 관광객): Excuse me, can you speak Korean?
최 군(미국 현지인): Yes, I can.
김 군: 아 한국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자유의 여신상 가려면 어떡해요?
최 군: 네, 저기서 녹색 버스 타구 4정거장 가서 내리세요...
김 군: 감사합니다.
최 군: 별 말씀을 ... 타국에서 모국인에게 그정도는 해야죠..안녕히 가세요.

교수: -.-;;; 미국에서 있을 수 있는 상황으로 인정한다.

강의실은 뒤집어졌고...
교수님은 앞으로 저 방식을 패러디하는 학생은 F에 처한다는 저작권 보호성 경고까지 덧붙였다.

그후, 최 군과 김 군은 A와 A+를 받았다는데...
성적이 다른 이유는 현지인의 한국어 실력이 이민자치고는 너무 능숙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함. ㄲ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0/11/01 13:29 2010/11/0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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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1차 개통 시절에 대한 회상

지금으로부터 6년 반 전이던 2004년 4월, KTX가 1차 개통하던 시절의 기억이 본인에겐 아직도 생생하다.
본인은 아직 대전에 있고 학부도 졸업하기 전.
지하철 기본요금이 700원이고 서울에 아직 4색 GRYB 버스가 등장하기 전.
아직 코레일이 아닌 철도청 시절이고 바로타라는 사이트가 있던 시절. (우와!)
수도권 전철은 아직 천안이 아닌 병점까지만 가던 시절.

http://info.korail.com/ROOT/news/board_view.jsp?boardType=&bbs=bbs5&seq=94
그 당시 철도청은 정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으면서 KTX 광고를 해 댔다. 장대 레일과 관절 대차 자랑은 가히 침이 마르도록 했던 듯. 그땐 ktx.korail.go.kr 이런 사이트도 있었다.
사실, 고속철의 등장은 극도로 정체해 있던 한국 철도계에 획기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사건이긴 했다.
위의 링크는, 그때 철도청에서 제작한 홍보 동영상 중 하나인 <KTX 이젠 우리가 뜬다>로, 나름 인상적으로 봤다.
오프닝 음악이 참 역동적이지 않은가? “빰빰!”
“KTX, 이젠 우리가 뜬다. Let's speed up Korea” ㄲㄲㄲㄲㄲㄲㄲㄲ

KTX가 자기 부상 열차라는 루머가 그 당시엔 굉장히 많아 나돌았으나, 기존선을 달리는 구간이 엄청 많다는 것만 생각해 봐도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냥 재래식 바퀴식 열차이다.

그런데, 동영상의 기술 수준을 보면 KTX가 1차 개통하던 시절이 얼마나 까마득한 옛날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동영상 보기 위해 전용 ActiveX 설치해야 된다. 게다가 이 녀석은 윈도우 비스타/7의 Aero를 꺼 버린다. 이런~ ㅠ.ㅠ
참고로 저 때는 아직 유튜브도 없었고, 플래시 7이 이제 갓 flv 기술을 개발했지만 아직 그게 대중화는 못 돼 있던 시절이다.
저 동영상도 파일로 뽑아내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KTX 개통 때문에 본인은 한편으로는 심란했다.
“난 전적으로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때문에 철덕이 됐는데, 앞으로 새마을호는 몰락의 길을 가는구나.” 때문이었다.
그래도 프로게임계도 언제까지나 스타 1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듯, 우리나라 철도 역시 언제까지나 재래식으로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철도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KTX에다 사운을 걸고 일반열차들은 KTX 연계용으로 개편해야 한다. 그런데 새마을호는 KTX의 하위 열차로 굴리기에는 내장재가 비정상적으로 너무 좋아서 오히려 KTX의 경쟁 상대가 될 여지가 있는 열차이다.

KTX 개통 당시엔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2004년 4월 1일은 KTX 개통에 발맞추어 서울교외선 정기 열차가 폐지되었고 통일호가 없어졌다.
경춘선 통일호가 모두 무궁화호로 승격되었고(=비싸졌고), 특히 국내 최장시간 운행 열차이던 청량리-부전 전역정차 통일호도 없어졌다. 이로써 청량리 밤차를 제외하고는 중앙선을 전구간 직통 운행하는 열차가 없어졌다.
물론 당시 통일호 객차는 내구연한도 거의 끗발 수준이었고, 화장실 오물이 정화조 없이 곧바로 밖으로 배출될 정도로 정말 낡은 물건이었기 때문에 버릴 때가 되긴 했다.

전라선의 기관차형 새마을호에 있던 전무후무한 2:1 특실도 고속철 개통과 함께 현역에서 물러났다. 이거 기억하시는 분은 정말 철덕 인증. ㅋ (KTX 특실도 2:1이긴 하지만 KTX 특실의 좌석은 새마을호 일반실보다도 훨씬 못하다.)
또한 전객차가 특실 좌석이고 대전과 대구에만 정차하던 ‘구특전 새마을호’도 경부선에서 물러나 장항선에 대체 투입되었다. 장항선은 운행 거리가 짧아서 지금까지 카페 객차 같은 각종 일반열차 서비스들의 베타테스트가 우선적으로 적용되어 온 노선이기도 하다.

KTX 개통과 더불어 새마을호는 갑작스럽게 정차역이 무궁화호 수준으로 늘어서 서울-부산이 5시간 20분대까지 가기도 했고, 무궁화호는 과거 통일호가 정차하던 안양, 부강 같은 역까지 무차별 정차함으로써 서울-부산이 6시간대에 달했다. 게다가 일반열차의 운행 횟수 자체가 갑작스럽게 너무 줄었다. 소요시간의 증가보다도 더욱 나쁜 점이었다.
그 반면 KTX는? 내가 늘 강조하지만.. 서울-부산 무정차 직통 2시간 32분짜리 엽기 열차까지 있었다. 한국 철도 역사상 서울-부산 셔틀이 다닌 적이 2004년 저 때이다. ㅎㄷㄷㄷ;;; 서울-부산 4시간 10분 새마을호만큼이나 역사 속의 추억이며, 저 열차는 2004년 말의 1차 다이아 개편 때까지 다녔다. ㅋㅋㅋ

게다가 기술적으로 미비했던 점, 잦은 지연과 고장 때문에 KTX는 언론에 대차게 까였고, 광명 역도 3천억짜리 간이역이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2004년 가을이던가 그때쯤 열차 다이아가 1차 패치를 겪으면서 서울-부산 셔틀 KTX는 사라지고 새마을호도 서울-부산이 5시간은 안 넘게 일말의 개선이 이뤄졌다. KTX의 평균 정차역 수도 그때부터 야금야금 늘어 갔다. 그때는 아직 대전 통과 KTX는 있었으나, 2005년 11월 다이아 패치 때부터는 대전 통과도 없어져서 동대구나 대전은 무조건 정차하게 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이아는 점점 똑똑해졌다. KTX 이용객은 충분히 늘었고, 국민들 의식도 성숙했으며 열차를 ‘골라 가며 갈아 탄다’는 관념이 정착했다. 경춘선은 이제 곧 수도권 전철로 부활하고, 중앙선 전구간 직통 열차는 무궁화호 형태로 2008년쯤에 다시 생겼다.
그리고 2010년 11월, 우리나라 철도계는 다시 변혁을 겪을 예정이다. 6년 전보다는 더 스마트한 모습으로 국민을 맞이하길 기대한다.

* * * * * * *
크리스천이 아니거나 성경 교리에 관심 없는 분이라면 이 단락은 읽지 말고 skip하라.
본인의 철덕 기질 중에 Looking for you 연구와 더불어 전세계에서 거의 나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을 거라 추정되는 똘끼가 뭐냐 하면, 철도와 성경의 융합-_-이다.

2004년은 고속철의 초림, 2010년은 고속철의 재림에다가 비유를 해 봤다. 그 6년간은 교회 시대 되겠다. ㄲㄲㄲㄲㄲㄲㄲ

성경에서 사 61:1-3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초림하신 예수님도 훗날 그 구절을 읽으시면서 자기 입으로 그 예언이 드디어 성취된 거라고 선언을 하셨다(눅 4:16-19).
그런데 문제는 그 구절을 다 읽은 게 아니라 앞부분만 읽고 끊었다는 것. 보복하고 원수 갚는 건 초림 때 이루어진 일이 아니며 재림으로 미뤄졌다. 저 예언은 다 성취된 게 아니며, 사실 구약 성경에는 예수님의 초림 행적 덕분에 성취된 예언보다는 아직 안 이뤄진 예언이 더 많다.

사실, 구약 성경 시절에는 ‘주의 날(Lord's day)’이라는 개념만 있었지 그게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라는 선로 분기가 이뤄질 거라는 걸 생각할 수 없었으며, 그 과도기에 존재할 교회라는 개념도 있을 리 없었다.
콤마 하나로 쭉 나열된 예언들이 어떤 건 무려 2천 년 뒤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명되고 인간이 달에 갔다 온 뒤에야 성취될 거라는 사실이 정말 엄청나지 않은가?

성경에서 이런 간극을 아주 평이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은, 창 1:1-2 사이의 간극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재창조 간극 지지자들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에도 이용된다.

이건, 철도 예언-_-으로 치면 이렇다.
“21세기에 한국에 고속철이 건설되어 서울-대전이 50분, 대전-대구가 50분, 대구-부산이 40분 걸리는 날이 오리라.”
이렇게만 써 놨다면, 이 예언은 아직까지는 부분 성취이며, 1차와 2차 개통이라는 개념(6년간의 간극)이 들어가 있지 않은 문장이다. 1990년대에 고속철 기공식 하던 당시에는 공사 예상 기간도 실제로 걸린 것보다 훨씬 더 짧게 잡았다. 인천 공항 개항과 비슷한 시기에 서울-부산을 2시간대에 왕래하는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게 질질 끌다가 실제로 대구-부산은 아직 미완성인 채로 1차와 2차로 나누어 개통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경륜이 무슨 인간 사업의 진척처럼 이리저리 휘둘린다는 말은 아니지만, 뭔가 비슷한 맥락의 비유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상, 헛소리 끗.
* * * * * * *

Posted by 사무엘

2010/10/30 19:57 2010/10/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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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간 뒤부터 컴퓨터나 프로그래밍 쪽 글은 눈에 띄게 줄고, 확실히 언어 쪽 글이 늘었다. 물론 철도 글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빈도로.. ㅋㅋㅋ
그래도 언젠가 한 번쯤 이런 글을 올리고 싶었다.

비주얼 C++ 4.2는 본인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서 도스용 프로그램으로 정올 공모를 한 번 마친 후, 그때부터 공부하기 시작한 툴이다. 이때 윈도우 API, MFC, 심지어 C++ 객체 지향 개념까지 전부 뭉뚱그려서 동시에 공부를 시작한 셈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주얼 C++은 나의 소중한 친구이고 내 마음의 고향이다. ^^;;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이 VC++ 4.2로 개발되었다.

참고로 4.2 버전은 4.0 버전이 몇 차례 마이너 업그레이드를 거친 것이었다. 4.2가 따로 4.0처럼 별도의 패키지로 출시되지는 않았으며, MSDN 구독자에게만 비공식적인 경로로 배포되었다고 한다. 이 점에서 4.2는 윈도우 95로 치면 마치 OSR2 업그레이드 에디션과 비슷한 위상이다.
지금은 윈도우든 개발툴이든 오피스든 MS에서 나오는 제품들은 다 서비스 팩이라는 개념으로 업데이트 방식이 통일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4.2라는 버전은 굉장히 의미가 크다. 윈도우 운영체제가 시스템 차원에서 MFC 라이브러리의 하위 호환성을 보장해 주고 있는 최후 버전이 4.2이기 때문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MFC42.DLL이다. MFC40.DLL이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이 바로 윈도우 95 + 800*600 화면 + 비주얼 C++ 4.2 환경에서 개발됐다.)

그 전부터도, PC 환경에서 이제 윈도우가 대세로 넘어갔으니 윈도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려고 마음을 안 먹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는 비주얼 베이직이나 델파이, C++ 빌더처럼 RAD 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접한 비주얼 C++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이 툴로는 다른 툴과는 달리, 운영체제와 직통으로 대화하고 다른 이상한 런타임이 필요하지 않은 가볍고 빠른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주얼 C++ 4.2 자체도 요즘 최신 버전에 비하면 정말 미치도록 작고 가볍다. ^^;;; 도움말은 RTF 기반이었고, C/C++ + 윈도우 API + MFC 레퍼런스를 전부 합해서 용량이 150MB 남짓밖에 안 했다. 그 당시 왼쪽의 class view는 실시간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으며, 소스 코드를 저장해야 업데이트 됐다. ^^;;;
또한 프로그램 파일들이 압축되지 않은 형태로 CD에 그대로 들어있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고도 CD에서 곧바로 MSDEV.EXE를 실행해서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도 있었다. 물론 전기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는 없었지만.

한동안 MS 오피스와 비주얼 C++은 요즘 서울 버스 색깔처럼 빨-노-초-파가 어우러진 4색 고리 모양 아이콘을 사용해 왔다. 4.2도 그랬다. 그런데 2010 버전은 둘 다 단색 아이콘으로 돌아갔으니 이 또한 흥미로운 점. 오피스는 노랑-주황색 사각형 창 4개 모양이 됐고, 비주얼 스튜디오(C++ 포함)는 보라색 ∞ 모양이 돼 있다.

세월이 흘러, 현재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9개 모듈을 모두 비주얼 C++ 2008로 개발되는 중이다. 그러나 타자연습과 파워업은 적극적인 개발보다는 유지 보수만 하는 만큼 여전히 2003을 사용 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29 16:10 2010/10/2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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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면서 든 생각

국어학이란 게 어떤 학문인지, 말뭉치(코퍼스) 연구라는 게 어떤 건지 슬슬 적응이 돼 간다. 또 여기가 사전 연구 전문이다 보니, 평소에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국어사전이라는 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심지어 예문은 어떻게 뽑고 예문에 들어가는 철수, 영희 같은 명칭은 어떤 원칙으로 뽑는지 같은 것도 세부 사항을 그쪽 일을 하는 친구들에게서 들으니 재미있다.
코퍼스는 한글 사용 빈도 파악과 글자판 연구에도 사용 가능할 듯?

1.
본인이 생각하는 사전 표제어 기록 (이의 제기 환영)

백과사전에서 풀이가 가장 긴 단어: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역사, 지리, 분야별 현황 등이 죄다 좌르륵~)
혹은 United States (위와 비슷한 이유로), human (인간의 모든 것 ㅋㅋㅋ)

한영사전이나 국어사전에서 풀이가 가장 긴 단어: 보다 (see, seem 등~~)
영한사전에서 풀이가 가장 긴 단어: have

2.
영어에 '모르다'를 뜻하는 한 단어짜리 동사가 없다는 건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다.
'-에 무지한' 정도에 해당하는 형용사는 있지만, "어서 불어 / 난 모른다!"를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는 없다. 기껏해야 do not know.
아마 영어는, 뭔가를 모른다는 건 마치 뭔가가 '없는 것'처럼 상태일 뿐이지 '알다'처럼 정식으로 동사가 될 자격은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다못해 forget도 아니고.. 한자에서도 '모를 X' 같은 글자는 본 기억이 없다.

사실, 영어에는 '없다'라는 깔끔한 단어도 없다. 그냥 없는 주체 앞에다가 no를 붙여서 There is no X 또는 No X exists 정도로 표현되는 게 고작. 그런데 반대로 한국어는 nothing이나 void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추상적인 명사 단어가 없다. 無는 접사에 더 가깝다.

3.
한국어에서 '뛰다'가 어째서 run도 의미하고 jump도 의미하는지는 오랫동안 본인의 의문점이었다.
마치 '푸르다'가 어째서 blue도 의미하고 green도 의미하는지 의아했던 것처럼 말이다.

단군의 후손들은 파랑과 초록도 구분 못 하는 색맹이었단 말인가? 어떻게 들판도 푸르고 하늘과 바다도 동시에 푸를 수가 있을까?
'푸르다'는 관용적으로 blue와 green을 싸잡아 일컬을 수 있게 놔 둔다 치더라도, '파랗다'는 blue로 완전히 굳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움직여도 되는 신호등 색깔은 파란불이 아니라 초록불이나 차라리 푸른불로 표현을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어쨌든 '뛰다'도 그렇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단어이다. 물론, 달릴 때는 걸을 때와는 달리 두 다리가 동시에 공중에 떠 있는 타이밍이 있다. 그 점에서는 run이 jump와도 공통점을 지닌다.
이것도 '뛰다'는 무조건 jump로, run은 '달리다'로만 강제로 구별을 시켜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해 봤는데, 쉽지 않은 문제이다.
마치 '손뼉을 치다'와 '박수를 치다'는 뉘앙스가 서로 완전히 다른 단어인 것처럼, '달리다'가 어울리는 상황과 '뛰다'가 어울리는 상황이 좀 구분이 되는 것 같아서이다.

4.
결정적으로는,
"한 대 맞고 두 대 친다"
"햇볕도 안 들고 양지바른 곳"
"서양 갑옷이 묘하게 존재감 있는 이런 요가 교실은 싫어"

같은 명문장들에 대해서도 이건 부사어, 이건 관형어, 이건 서술절 등 문법 구조와 parse tree가 그려진다. 저런 대사가 예문으로 잔뜩 수록되어 있는 문법 책이 있다면, 저런 대사 패러디가 수록되어 있는 성경 만화만큼이나 행복할 것 같다. ㅋㅋㅋㅋㅋ

5.
우리말에서 '저지르다'는 뭔가 나쁜 일을 벌이고 사고를 친다는 뜻의 타동사이다. 저지른 대상을 목적으로 받는다.
영어로는 주로 commit에 대응한다. 다만, commit 자체는 '저지르다'보다 뜻이 훨씬 더 넓은 말이기 때문에 위임하는 것도 commit이고, 소스 코드를 저장소에다 반영하는 동작도 commit이라고 한다.

실수부터 시작해 살인, 간음, 반역, 폭력, -질, -짓, -죄, -악, 비리, 불효, 과오, 만행 등 거의 모든 나쁜 짓이 '저지르다'의 목적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자살'을 저질렀다고는 안 한다. 그냥 '자살'을 한다고만 하지. 정작 영어로는 정확하게 commit suicide라고 하는데도 한국어에는 그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표현이 없으니, 이는 특이한 면모가 아닐 수 없다. (뭐, 영어로도 suicide 자체만으로 '자살하다'라는 자동사가 될 수도 있긴 함)

내가 짐작하건대 한국어의 '저지르다'에는 "나쁜 짓을 하고도 당사자가 그 행위의 영향을 받지 않고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경우"라는 뉘앙스가 내포된 것 같다. 자살은 분명 나쁜 짓이지만, 당사자가 죽어 버린다는 점에서 다른 악행과는 차이가 있다.

6.
이 외에도, 한국어로는 컴퓨터 내지 인터넷에다가 바로 '하다'를 붙이지만, 영어는 do가 아닌 use가 쓰인다.
그러고 보니 한국어에는 운동 경기에다가도 '하다'를 붙이기 때문에 영어 직역투로 '축구를 논다' 이렇게 말하면 전형적인 번역투 비문이 된다. 실제로 한국어 배우는 영어권 사람이 초창기에 자주 저지르는 실수라고 함.
영어로는 산은 높다(high)고 표현하지만 건물은 마치 사람의 키처럼 tall이라고 표현한다.
open/close(열다, 닾다, 펴다, 덮다, 다물다, 감다...)라든가 wear(입다, 쓰다, 끼다, 신다...)의 표현 차이는 그야말로 판타지 수준.

같은 의미를 전달하더라도 단어와 단어가 결합하는 선호도는 언어에 따라 편차가 꽤 큼을 알 수 있다.
학부 시절엔 이런 생각은 혼자 머릿속에서나 해야 했는데, 여기 와서는 언어 현상에 대한 생각을 과 친구들이나 교수님과 마음껏 주고받을 수 있어서 참 좋다.
학부를 전산학 전공한 것도 후회 없고, 대학원으로 지금 과에 간 것도 잘 갔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28 08:52 2010/10/2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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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수 철덕후가 알기 쉽게 해설해 놓은 본격 21세기 한국 철도 동향. ㄲㄲㄲㄲㄲ

1. 대구

경부 고속 철도 2차 구간이 개통함으로써, 동대구 역을 출발한 부산 방면 KTX는 경부선 기존선을 타고 밀양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제 별도의 선로를 계속 이용해서 경주 쪽으로 가게 된다.

마치 대전이 호남· 경부고속· 경부기존선이 만나는 요지이듯, 대구는 대구· 경부고속· 경부기존선이 만나는 요지가 된다. 아래의 사진을 참고하라. 왼쪽에 보라색 선으로 표시된 도로는 고속국도 55호선의 일부인 부산-대구 민자 고속도로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속도로는 21세기가 돼서야 경주와 울산을 경유하지 않는 직통 고속도로가 뚫린 반면, 철도는 21세기가 돼서야 경주와 울산을 경유하는 고속선이 건설됐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 경주

KTX가 다니는 신경주 역은 천안아산 역과 비슷한 디자인을 한 방향별 복복선 쌍섬식 승강장으로 건설되었다. 동대구-경주 소요 시간은 20분이 채 걸리지 않으며, 이는 대전-천안아산보다도 짧다. 물론 경주-울산은 더 짧지만 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동대구 역이 생겼다고 해서 대구 역이 없어지지는 않았으며, 경부선 천안 역도 KTX 천안아산 역과는 별개로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역이다. 그러나 1910년대에 건설된 지금 경주 역의 운명은 이와는 다르며, 앞으로 없어진다. 그리고 지금 있는 경주-울산 동해남부선 구간 자체가 고속철 연계 위주로 대거 이설된다.
신경주 역이 경주의 관문 역할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신경주 역은 KTX와 여타 지선 열차와의 ‘바로타 환승’이 가능하게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경주 역의 위치이다. 건천읍 화천리에 있는데(화천 초등학교 근처) 경주 시내에서 멀어도 너무 멀다. 경부 고속도로 경주 IC보다도, 경주 대학교보다도 더 외곽이다. 국도 4호선에서 삐져나간 904번 지방도를 따라 한참을 가야 나온다. 경주는 수도권 같은 대중교통 인프라를 기대할 수도 없는 중소도시인데 철도역 연계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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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정차 KTX는 현재 편도 기준 1시간에 거의 1대꼴로 편성되었으며 울산과 비슷하다. 경주-서울 고속버스가 40분에 1대꼴임을 감안하면 아주 넉넉한 편이다.

3. 울산

경주를 통과한 경부고속선은 한동안 경부 고속도로와 함께 나란히 남하한다. 터널도 별로 없고 평지가 이어지는데, 그러다 긴 터널을 하나 지나고 나오면 밑으로 보이는 고속도로가 바로 16번 울산 고속도로이다. 여기는 울산 광역시 울주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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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고속도로를 타넘는 저 지점(지도에서 분홍색 동그라미)이 꽤 특수한 공법으로 공사되어, 기반을 닦는 첫 몇 시간만 제외하고는 고속도로를 폐쇄하지 않고 차량 통행을 허용한 채로 공사를 마친 것으로 유명한 구간이다. 거기서 좀더 내려가면 신울산 역(지도에서 파란색 동그라미)이 나온다.

울산은 굉장히 넓다. 그리고 중앙이 산으로 가로막혔고 서쪽이 울주군, 동쪽이 울산 시내로 양분된 것과 얼추 비슷한 구도이다. 오죽했으면 그래서 울산 고속도로를 따로 건설했을 정도이다.
그런데 KTX 울산 역은 경부 고속도로 언양 분기점 근처에 건설되니, 울산 시내에서 멀기로는 가히 경주를 능가하는 수준. -_-;;

그 반면, 동해남부선 울산 역은 바다 근처 완전 동쪽 끝에 있다. 이 울산 역은 울산이 너무 넓고, KTX 울산 역이 너무 극과 극으로 멀리 떨어진 덕분에 역시 없어지지 않는다. ‘새 동해남부선’은 신경주 역을 지난 후 904번 지방도와 비슷한 선형을 따라, 지금의 입실 역 인근(경주 외동읍)에서부터 기존 동해남부선과 비슷한 노선을 가게 된다.

4. 부산

경부 고속선은 울산 역까지는 경부 고속도로와 선형이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거기서부터는 길이 갈린다. 고속도로는 산을 피해서 서쪽의 양산시를 경유한 후 다시 방향을 틀어 부산의 동북쪽으로 가지만, 울산을 지난 경부 고속선은 산을 뚫고 직선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한다.

그래서 만나는 곳은 부산 북부의 노포동. 고속도로 노포 IC와 부산 지하철 1호선의 노포 차량 기지를 볼 수 있다.
자, 여기서 경부 고속철의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나온다. 고속철은 부산 북부에서 부산 남부의 부산 역까지 20km에 달하는 시내 구간을 전부 산 뚫고 지하 터널로 통과해 버린다! 부산 동서를 가로막고 있는 산 따라 수직으로 길을 내면 된다. 그 이름도 유명한 금정 터널이다.

경부 고속철의 중간 경유 도시인 대전과 대구는 시내를 지상 고가로 통과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전의 경우, 고속철의 지하 통과를 염두에 두고 지하철 대전 역의 승강장도 의도적으로 굉장히 깊게 지어졌으나, 결국 비용 문제 때문에 거기는 지하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런 반면 부산은 통째로 지하 통과이다. 흠좀;; 밖으로 나오면 이미 좌천동이고 부산 역의 바로 옆인 부산진 역이다. 즉, KTX는 부산에서 지상으로는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밖에 안 지난다는 뜻이다.

서울 역을 출발한 KTX는 광명 역까지 20km에 가까운 거리를 그냥 경부선 기존선으로 천천히 다닌다. 아니, 초창기에는 아예 광명 역을 고속철 시종착역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서울 시내 구간 지하화가 이제 와서 과연 가능할까? -_-;; 이것에 비하면 부산은 가히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게 아닐 수 없다. 사실 부산은 고속선뿐만이 아니라 기존 경부선도 시내 구간이 전부 고가로 올라가 있는데, 이것도 언제 그렇게 이설된 건지 궁금하다. 100년도 더 전에 일제가 처음에 그렇게 만들었을 리는 없잖아!

이미 경부 고속철 대전-대구 구간에도 굉장히 긴 터널이 있고, 전라선도 복선 전철화와 직선화를 하면서 5km가 넘는 꽤 긴 터널이 지어졌으며, 영동선도 스위치백 구간이 똬리굴로 바뀌면서 굉장히 긴 터널이 만들어졌지 싶다. 하지만 금정 터널만치 길지는 못하다. 이 터널은 천성산을 뚫는 과정에서 모 스님의 ‘도롱뇽 단식 투쟁’ 때문에 한동안 공사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 적이 있다.

기왕 선로가 이렇게 만들어진 김에 부산 북부의 노포동 역 일대에도 고속철 정차역을 만들면, 서쪽의 화명 역(경부 기존선), 동쪽의 기장(동해남부선) 역과 더불어 중앙에 부산 북부 3대역이 생기고 노포동 일대는 마치 동대구 역처럼 지하철과 버스와 철도가 한데 만나는 교통 허브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별로..;; -_-

이것으로 분석을 마친다. 이 주제로만 떠벌려도 입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다.
다음은 덧붙이는 말.

1. 시발역 기준으로 오전 11~12시 사이는 경부고속선의 선로 점검 시간인 관계로 KTX가 안 다닌다. 심야에만 점검하는 게 아닌 듯. 그러고 보니 2차 개통 후에 남아있는 서울-부산 새마을호 딱 두 편이 하나는 심야(1003)이고, 다른 하나는 KTX가 안 다니는 11시대에 서울을 출발하는 열차이다. KTX가 안 다니는 시간대에만 새마을호를 남겨 놓은 센스.

2. 경부선은 아마 새벽 2~5시 같은 심야 시간대에 전차선을 단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심야 열차는 전통적으로 디젤 기관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본격적으로 경부선 새마을호의 퇴출 분위기가 드리워진 이번 KTX 2차 개통 후에도 심야 새마을호는 앞서 말했듯이 건재하다. 새마을호 PP는 잘 알다시피 디젤 동차.
24시간 전차선이 돌아가는 노선은 중앙선이나 영동· 태백선 같은 곳밖에 없을 것이다.

3. 부산 일대에는 경인이나 외곽 순환 고속도로처럼 개방식 톨게이트를 쓰는 구간이 없는지 궁금하다. 서울에 이어 제2의 대도시라는 부산이 수도권형 고속도로도 없고 광역전철도 없다는 건, 아무리 이 나라가 서울 몰입 위주라고 해도 너무했다.

4. 영화 <라이터를 켜라>에서 설정상 천안과 대전 역 씬이 실제로 촬영된 곳은 경부선도 아니고 아예 울산 역이다. -_-;;
영화 첫 부분에서 허 봉구가 조폭들과 마주치는 장소인 서울 역 대합실은 실제 촬영 장소가 아예 서울 지하철 논현 역이었으니 더 말이 필요 없을 듯. ㅋ

Posted by 사무엘

2010/10/26 09:04 2010/10/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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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과 통합

요즘이야 학문간의 경계를 허물고 융합 내지 통합이 대세라고들 다들 그런다. 특히 인문계와 이공계의 통합 시도가 두드러지고 있으며, 본인도 일종의 그런 계열로 학업을 계속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학에서 학과간 협동 과정이라는 개념이 생긴 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생각보다 꽤 최근이다.

그 전엔 그럴 수가 없었다.
대학 내부의 각 학과들은 자기 과가 좀더 연구비를 많이 타 내고,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더 많은 세력을 확보하려고 서로 싸우는 구도였다.
융합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융합 뭥미? 그거 먹는겅미? 우걱우걱..." 이었다.

어디 학계뿐이었을까?
요즘도 그렇기도 하지만 종교 때문에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고,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 강대국들은 식민지를 더 차지하려고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가끔은 체력이 비슷한 국가들끼리 불가침 동맹을 맺기도 했지만, 힘의 균형이 깨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조약 그딴 거 없었다. 바로 침략.

그런 마인드로 과학 기술만 급속도로 발전하니, 그 결과는 인류의 비극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ㄷㄷㄷ;;
아마 그때 종교에 좀 심취해 있던 사람들은, 이걸 분명 요한계시록 재앙에다 갖다붙이면서 인류가 이렇게 멸망하고 말 거라고 호들갑도 떨었을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원자 폭탄의 버섯 구름을 본 사람들이 경험했을 충격과 공포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 * * * * *
독특한 사례로 일본을 들 수 있다.
그때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 중 나름 일찍 근대화에 성공하여, 한때 미국과도 맞장 뜨고 전쟁을 벌일 정도로 성장하긴 했다.
그러나 그 내막을 살펴보면, 일본의 내부 조직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막장이었다.

아마 전에도 블로그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일본군이 존재하던 시절, 일본의 육군과 해군이 서로 얼마나 사이가 나빴는지 말이다. 그냥 나쁜 게 아니라 서로 거의 적군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며, 서로 스파이를 보내서 상대편 근황을 알아볼 정도였다..!!

(르누와르와 세잔을 일본 육군과 해군으로 바꿔서 개그만화일화 만들어도 될 듯.. ㄲㄲㄲㄲㄲ)

육군과 해군이 각각 천황 직속이었던지라 육· 해군 통합 사령부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2차 세계 대전 때 나중에 하도 상황이 안 좋아져서 해군이 보다못해 "육군아, 과달카날로 보병 좀 파견해 주셈" 하자, 육군 왈, "과달카날이 어디야?" -_-;;;
서로 작전을 알려주지도 않았으며, 둘 중 하나가 싸우다 다 죽어가고 있어도 상대편은 그냥 '생깠다'.

전투기나 장비조차도 똑같은 걸 서로 중복 투자하여 따로 개발했으며, 들어가는 부품의 나사 규격조차도 서로 달랐다고 한다. =_=;;

이 정도면, 지 만원 박사의 지론대로라면, 일본은 '시스템'에서 졌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확한 표현이다.
본인이 공 병우 박사를 공부하던 시절엔, 전쟁 당시 일본의 주된 비효율 요인으로 '한자'를 비중 있게 살펴봤었다. 미군은 군함 곳곳에 영문 타자기가 비치되어 있어서 아주 빠르게 교신을 주고받았던 반면 일본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
그런데, 한자보다도 저런 막장 군대 조직이  더 큰 비효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이런 막장 시스템은 헌병과 특별 고등 경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당시 일본 헌병은 여타 군대의 헌병과는 달리, 군사 치안뿐만 아니라 민간인 치안까지 담당했다. 자기 마음대로 민간인을 상대로 사상 검문을 하고 구금, 체포, 고문이 가능했다. 우리 같은 피지배인뿐만이 아니라 일본 본토인조차도 자기네 나라 헌병을 싫어할 정도였다.

그런데 불순분자를 잡아내는 일은 어차피 일본이 만들어 낸 특별 고등 경찰과도 거의 겹치는 업무였다. 일례로,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한 건 올린 조직은 헌병이 아니라 고등 경찰이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 업무 협조나 첩보 정보 공유? 그딴 건 전혀 없었고 둘 사이도 극도로 나쁘긴 마찬가지였다.
왜냐고? 육군· 해군 사이와 마찬가지로 실적 쌓기 천황 충성 경쟁 때문이었다. ㅋㅋ
* * * * * *

그랬는데,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부터 인간 사회에 과거와는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났다.
컴퓨터가 발명되고,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전쟁으로 인해 발달한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민간 여객기가 지구촌 시대를 개막하고...
그리고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예전의 국제 연맹보다 더욱 강력한 범국가 기구인 UN이 생기고..;;

지금은 분야를 불문하고 협력과 통합이 대세이다.
서로 협력해서 파이의 크기를 키울 수만 있다면, 어제의 적국도 오늘의 친구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시 영원히 생까고 지낼 것 같던 일본하고도 문호 개방하고, 6 25의 원흉이던 북한하고도 이 정도로 개방하고, 심지어 정치 이념적 우방이던 대만 대신에 시장 크기가 더 큰 중국과 수교하고.. 북한의 친구였던 러시아하고도 수교하고...;;
좋게 말하면 실용적인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일 수도 있다. 세상에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 얼마나 지옥 같은(같을 수도 있는) 세상인지는, 겪어 보지 않고서는 잘 모를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각종 국제 규모의 올림피아드나 대회..;; 100년 전에는 상상하기 쉽지 않던 개념이었다.
자, 학문간의 융합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만한 트렌드인 것 같다.

이제는 그런 식으로 종교까지 통합 중이다. 성탄절 때 절에서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합니다" 현수막 걸어 주고(안 해 줘도 되는데! ㄲㄲㄲㄲ), 석가탄신일 때 성당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합니다" 해 주는 게 요즘 관행이라며?
물론 근본주의 크리스천들은 이런 에큐메니컬 운동을 굉장히 싫어한다. 성경에 예고된 대로 말세에 있을 큰 배도와 타락이라고 갖다붙이며, 그 의견에는 본인 역시 동의한다.

세상 정세에 더 민감한 미국 크리스천들은 UN도 굉장히 싫어한다. 하나님의 경륜은 국가와 민족을 나누는 것인데, 그걸 인간이 멋대로 힘을 합치고 통합하면 그걸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짓밖에 안 할 거라고 말이다.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다.
다만, 6 25 때 UN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 특히 반공 정신이 투철한 한국 교회 성도가 느끼는 UN 이미지와, 미국이 느끼는 UN 이미지는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해서 나쁠 것 없는 융합과, 영적으로 불순한 동기의 융합을 잘 분별하는 것도 오늘날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24 18:38 2010/10/2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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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의 추억

살다 보면 집 밖에서 숙박을 하는 건, 흔하지는 않아도 아주 없지는 않은 색다른 경험이다. 업무상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지인 집에서 자거나 지인이 머무르는 숙소에서 같이 자는 것도 외박에 속할 수 있다.

본인은 일단 두 차례의 미국 여행 때 호텔 투숙의 기억이 있다. 10년 사이에 호텔의 방 열쇠는 1회용 카드 키로--잃어버리거나 심지어 투숙객이 가져가 버려도 아무 상관 없는-- 다 바뀌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학원 생활하면서 앞으로 또 이런 데 갈 일이 생겨야 할 텐데. =_=;;

그리고 철도 여행을 떠나서 타지에서 외박을 한 적이 있다. 찜질방은 꽤 저렴한 비용으로 개운하게 목욕이 가능하고 수면까지 덩달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외박 장소이다. 그러나 찜질방 수면실은 공공장소인 만큼 개인 공간이 보장되지 않으며, 상대방의 코 고는 소리와 타인의 알람 소리 때문에 쾌적한 수면이 어렵다.

침대에서 푹신하게 제대로 자고 전자 기기를 안심하고 충전하고 컴퓨터 작업까지 하려면, 좀더 비용이 들더라도 개인 공간이 제공되는 숙박 장소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본인은 내일로 티켓 여행 같은 걸 할 때 대도시에서는 찜질방을, 중소 도시나 시골에서는 여관을 이용해 왔다.

2006년에 장항 역 인근에서, 그리고 2007년에 제천 역 인근의 여관에서 투숙한 적이 있다. 2009년 말엔 지인과 또 정동진 여행을 떠나서는 여관에서 서로 침대 위에서 노트북 코딩을 하며-_- 즐거운 밤을 보내..... 려고 했지만, 둘 다 너무 피곤해서 심하게 일찍 잠들어 버렸었다.

2008년 여름엔 카이스트를 방문해서... 이건 외박도 아니고 사실상 노숙을 한 적까지 있다. 강의동 안에서 뒹굴뒹굴 빈둥거리다가(방학이니까 사람 별로 없음) 휴게실 소파에서 누워 자기도 하고, 나중엔 아예 촉촉한 여름 가랑비를 맞으며 바깥 벤치에서 엎드려 자기도 했다. 그 당시엔 '내가 지금 무슨 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재미있는 추억이다. 그때 왜 다른 지인들 방에서 잘 생각을 안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타지에서의 외박보다 어찌 보면 더 흥미로운 것은, 지인 따라 "집 근처 외박"이다.
2005년, 본인은 아직 카이스트 기숙사에서 서식하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아는 분이 대전에 볼일이 있다고 찾아오셔서 본인 역시 그분 따라 유성 온천 일대의 모 여관에서 간만에 외박을 했다. 기숙사에서 3km 남짓밖에 안 떨어진 곳에서 그것도 여관 외박이라니? 이런? ㅋㅋ

이건 정확하게 외박이라 할 순 없지만, 학부 졸업을 앞둔 마지막 여름방학 때 어머니께서 오셔서 기숙사 방에서 본인과 같이 잔 적이 있었다. 기숙사에 외부인의 숙박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지 싶은데, 슬쩍 그렇게 했다.
방학이어서 룸메이트도 없고 캠퍼스 전체가 황량하지, 각종 물건들은 이미 다 치워서 방도 썰렁함 그 자체, 게다가 그 날 따라 밖에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정말로 어디 오지에 야영 간 느낌이었다. 외박은 아니지만 정말 외박 체험이나 다름없었는데, 참고로 말하자면 비슷한 경험을 추석 때 고향 안 가고 기숙사에 남아 있어도 할 수 있다.

서울 안에서는 어느 행사에 초대를 받아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묵은 적이 있다. 광진구 광장동에 쉐라톤 워커힐 호텔이란 게 있다는 걸 본인이 알게 된 건 겨우 1년 남짓 전. 예비군-_- 훈련 때문에 남양주까지 갔다가 하루는 지리도 좀 익힐 겸 전철 대신 버스를 타고 귀가했는데, 구리에서 서울 광진구 시내로 막 진입하는 지점에서 커다란 호텔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서 너무 멀지 않고 적당히 외곽이면서 한강도 내려다보이니, 위치가 무척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실제로 투숙할 기회를 얻다니! 호텔 침대는 심하게 푹신해서, 그냥 파묻힌 채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 아마 하루 투숙비만 해도 가히 억소리 나는 비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천 송도 신도시에 있는 송도파크 호텔에서 투숙한 적도 있다. 인천대입구 역 인근은 크고 아름다운 도로와 건물들로 가득하지만, 아직은 사람들이 많이 입주하지 않아 약간의 황량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성경이 말하는 하늘나라, 새 예루살렘에서의 생활이 대략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같은 곳에서 살면서 고통, 고생이란 게 없고, 일상 생활이 행사와 축제로 가득한 곳?
성경에는 거기에 진주로 된 문에다가 황금으로 된 도로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런 곳에 새마을호 같은 열차가 다녀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본인은 병특 시절에 내일로 티켓 내지 회사 복지 카드를 이용하여 순수하게 열차만 타고 온 적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퇴근 후 바로 서울/용산 역으로 가서 부산/광주까지 간 후(새벽 3~4시 도착), 곧바로 새벽에 출발하는 상행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도착한 후 바로 다시 출근... 당연히 그 날 하루는 피곤해서 직싸게 고생했다. -_-;;
기차를 타고 집으로 퇴근한 게 아니라, 기차라는 장소가 퇴근 목적지였던 것이다...;;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묻는다면 본인의 대답은.. "이렇게라도 새마을호 타고 싶어서.."
이것도 열차 안에서 일종의 외박을 한 셈 되겠다. 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10/22 18:20 2010/10/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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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서 남표 총장의 프로필을 읽던 중..
도대체 그의 부친이 어떤 분이기에 무려 1954년에 하버드대 교수였고,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러 미국 유학을 갔는지가 당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친 중의 한 명이 미국인이라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몰라 ㄲㄲㄲㄲㄲㄲ 이것도 자료를 찾아봤다.

서 남표의 아버지는 서 두수 박사. 그는 경성 제대와 연희 학교 시절부터 국문과 교수이다가 1949년에 국비 장학생 명목으로 도미하여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한국어학/한국학과를 개척한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1994년에 세상을 떠났다.
정말 충격과 공포이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아버지는 골수 인문계이고 아들은 골수 이공계;;
특히 아버지는 국문과 교수도 이렇게 글로벌하게 놀 수 있다는 첫 사례를 남겼음이 틀림없다.

아울러, 미국에서 맨손으로 성공하여 대학 교수에다 동양인 최초의 워싱턴 주 상원 의원까지 역임한 그 유명한 신 호범 의원이... 서 두수 박사에게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그분은 나의 은사라고 회고했다. 이때 서 박사는 하버드가 아니라 워싱턴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햐.. 인연이 또 그렇게 이어지는구나. 기가 막힌다.
게다가 워싱턴과 하버드는 이 승만 박사가 학사와 석사 코스를 거친 학교이기도 하다. (박사는 프린스턴에서;;)

본인은 2008년에 관광차 미국 갔을 때, 신 호범 의원의 간증 집회에 따라가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때는 호칭도 장로였다.
그런데 그때는 죄송하지만 저분이 그렇게 유명한 분인지 잘 몰랐다.. ㄷㄷㄷ;;
짤방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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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지금 서 남표 총장에게는 딸만 넷이라고 한다. 그 중 둘째딸은 역시 교수가 되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21 08:32 2010/10/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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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를 떠난 교수들 외

본인이 학부를 졸업한 후, 카이스트는 서 남표 총장을 주축으로 하여 내부 시스템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나 같은 학생에게 굉장히 불리하게 바뀐 제도도 꽤 되기 때문에, 병특도 휴학이 아니라 일찌감치 졸업을 해 버리고 간 것을 본인은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_- (본인은 최 덕인· 홍 창선 원장에서 시작해서 러플린 총장으로 끝난 세대이다.)

본인의 전공인 전산학과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그때 조교수였던 분이 부교수가 되고 부교수가 드디어 정교수로 진급해 있는 것을 홈페이지를 통해 보곤 했다. 또한 ICU가 진통 끝에 카이스트와 결국 합병되면서, 그쪽 인력의 유입으로 인해 예전에 못 보던 교수들 얼굴이 크게 늘었다. 정보통신부가 없어진 게 크게 작용했으리라.

200X년도에 스탠퍼드, MIT 등 굴지의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곧장 카이스트로 온 젊은 신임 교수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제는 교수가 돼도 정년 보장이 옛날만치 쉽지 않고, 주변에 온통 널린 게 천재들 뿐이니 연구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도 만만찮을 것이다. 서 총장이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엄청 쪼아대고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샌가 카이스트를 떠난 교수도 보인다.
얼마 전엔 우연히 졸업생 조회 웹사이트에서 본인의 이름을 검색해 봤다.
그랬는데, 본인의 학부 졸업 논문 지도교수였던 분이 지금은 카이스트 교수 명단에서 보이지 않았다.

뭐, 학부 졸업 논문은 진짜 형식적이었고, 교수님이 내 리포트를 읽어는 봤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얼렁뚱땅 통과가 되긴 했다. 그래서 요즘은, 학부 수준에서는 졸논을 좀더 실무 위주인 현장 실습이나 졸업 프로젝트로 대체하는 게 카이스트를 비롯한 국내 대학들의 전산과의 추세이다.
처음에 본인의 지도교수는 다른 분이었는데, 나중에 졸논을 쓸 무렵에 여차여차 하다 보니 저 교수로 바뀌었다. 어째서 하필 그분으로 배정됐는지는 그 과정에 대해서는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좀더 검색을 해 보니까, 그 교수님은 고려대로 전근을 가 계셨다. 오홋;;;
호기심에 옛날 교수들 검색을 더 해 봤는데, 굉장히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다.

성균관대에 전직 카이스트 교수가 네 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2008~09년 무렵에 한꺼번에 저기로 간 것이었다. 본인은 학부 시절에 그 교수 4인 중 3인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어이쿠, 게다가 이것도 나 혼자 뒷북이었다. 성균관 대학교는 스마트폰 열풍 속에서, (그리고 아마도 이 건희 본좌님의 입김으로) 소프트웨어학과를 신설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드웨어인 반도체에 이어서 소프트웨어까지 특성화?? 본격 IT 대학으로 거듭나려는 듯.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대는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를 한꺼번에 네 명이나 스카웃해 갔으며, 이것은 이미 그 당시에도 큰 뉴스거리로 떠올랐다고 한다.

아마 대전 생활에 신물을 느꼈거나, 서 총장의 정책이 마음에 안 들거나, 반대로 성균관대의 파격적인 처우 제안에 끌렸거나... 그런 이유로 인해서 그분들이 전근 간 게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말:

1.
본인은 군대를 현역으로 갔다 오지 않았고 병특 중에도 딱히 군대와 관련된 안 좋은 일을 겪은 적은 없기 때문에,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꿈-_-;;; 같은 건 안 꾼다.
하지만 한때는 아래와 같은 판타지 같은 꿈도 자다가 몇 번 꾸긴 했다.
- <날개셋> 한글 입력기로 ISEF에 또 출전하는 꿈 (10년 도 더 전 일을..;; ㅋㅋㅋ)
- 병특을 마친 뒤에 카이스트로 3년 만에 복학하여 졸업 이수 요건 채우느라 고민하는 꿈 (아놔 나 3년 전에 졸업했어-_-)

2.
본인은 주임 교수가 국문과 소속인 협동 과정 대학원에 갔지만 학위 논문의 지도교수는 국문과가 아닌 컴퓨터과학과(전산과의 연세대 학과 명칭) 교수가 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이곳의 교수들은 어떤 분이 있는지 틈틈이 찾아보고 있다. 본인의 코스와는 정반대로 학부는 연세대에서, 석· 박사를 카이스트에서 마친 교수가 한 분 계시는구나. 뭐 학번 차이는 본인과는 이미 까마득한 수준이지만 말이다.;;
내년부터는 국어학뿐만 아니라 컴퓨터과학과의 대학원 수업도 들을 예정이다. 본격 공학관에도 드나들게 되겠구나.

3.3.
그나저나 내 홈페이지 메인의 공개 사진을 바꿀 때가 되긴 했다. 공중파 TV에 출연한 화면이고, 분장도 아주 잘 돼 있는 데다 자막 내용-_-까지 여러 모로 아주 간지나는 모습이긴 하나.. 벌써 5년도 더 되어 너무 오래 됐고, 결정적으로 본인은 이제 카이스트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TV에 출연한 게, 2006년에 한글 관련 다큐에 출연한 게 마지막이니, 다음엔 철도 관련 다큐에서.. (ㅎㄷㄷㄷ) 자막은 당당하게 '연세대 언어정보학과'라고 말이다. 그런 화면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할 듯.

그래도 대전과 카이스트도 언제까지나 내게 제 2의 고향과 같은 곳으로 남을 것이다. 일반 대학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카이스트만의 그 학교 분위기와 프라이드(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_-)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19 09:39 2010/10/1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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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

1.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하는 OX 퀴즈 말이다. 이거 완전 퀵 정렬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지?
퀴즈는 PIVOT값이다. 정말 알쏭달쏭해서 사람들이 O와 X로 반반씩 갈려야 좋은 문제이고,
너무 쉽거나 해서 사람들이 한데 쏠리면 그건 난감하다. 퀵 정렬도 완전 똑같다. ㅋㅋ

2.
수업 시간에 각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돌리거나 과제물을 나눠 준다. 내게도 서류 뭉치가 왔는데, 이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고 내가 살펴본 뒤에 다음으로 이걸 어느 방향에다가 넘겨줘야 할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이건 C++로 치면 iterator이다. 서류 뭉치는 모든 학생들을 한 번씩 순회하는데, ++itor; 명령이 수행되려면 지금의 순회 위치로부터 다음 순회 위치를 알 수 있어야 한다. 트리 구조를 순회한다면, 각 노드마다 부모 노드 포인터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뜻.

3.
요즘 존재하는 수많은 웹사이트들 중, html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로컬 환경으로 치면 기계어로 짠 네이티브 프로그램이고, 블로그 엔진 기반은 닷넷처럼 일종의 상부 계층 위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에다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 사용자가 나모 같은 에디터로 홈페이지를 만들 일이 없어졌다는 건, 윈도우 환경에서 어셈블러 수작업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일이 없어진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Win32 API 같은 네이티브 계층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는 날은 과연 올까?

4.
외솔관에 있는 대학원생 독서실에 있다가 위당관으로 수업을 들으러 간다. 두 건물의 뒤쪽엔 높은 언덕이 있기 때문에 3층과 4층이 뒷문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경로를 이용하면 건물 사이를 왕래할 때 번거롭게 1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갈 필요가 없다.
바깥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두운 건물 복도를 걸으면서 지하철 터널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다가 잠시 밖으로 나가면, 지하철이 강을 건너거나 서울 지하철 8호선의 복정-산성 구간 같은 곳을 지나느라 잠시 지상으로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5.
교회에서 성가대 연습을 한다. 노래를 부르는데 반주자가 악보를 넘기느라 잠시 피아노 반주가 중단되었다. 그래도 노래는 박자나 음정의 어긋남이 없이 계속 잘 이어진다.
이것은 절연 구간을 지나느라 전동차에 전원 공급이 잠시 중단되더라도 차가 관성으로 계속 달리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아울러, 바닷물과 민물을 넘나드는 연어는 교류-직류 겸용 전동차의 예표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철도 패턴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6.
대학 학부까지만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한 건, 지금 생각해 보니 학업이라는 지하철이 서울 시계까지만 건설된 뒤 노선이 끊어졌던 듯한 느낌이다. 학부를 졸업한 지 5년이 지나서야 대학원에 들어가니, 그 선로를 이어서 장거리 광역전철을 건설하는 것 같다.

7.
<날개셋> 한글 입력기 5.65를 공개한 후, 소스를 대대적으로 뒤집어엎었다.
null-terminate 스트링의 write 버퍼를 받는 모든 함수에는 버퍼의 크기에 대한 정보를 추가하고, sprintf 같은 함수 호출도 버퍼 오버런을 일으키지 않게 다 손질했다.
파일을 읽고 쓰는 과정에서 에러 처리를 더욱 강화하고, 범용적인 dll 모듈은 thread-safe하도록 고쳤다.
좀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게 만들어져 있던 라이브러리 API를 뜯어고쳤다.

그래서 다음 버전으로 잠정 계획 중인 <날개셋> 한글 입력기 5.8은 5.5 시절부터 비교적 잘 유지되어 왔던 API 하위 호환성이 모두 깨질 예정이다.
타자연습도 덩달아 버전업된다. 입력기에 적용된 프로그래밍 테크닉이 그대로 적용되고, 그리고 연습글을 좀 정리할 생각이다.

6만 줄에 달하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 소스 코드를 들여다보노라면 정말 나만의 세계, 나만의 건축물, 나만의 철도 노선에 들어온 느낌이다. 의존도라고는 Win32 API와 몇몇 Ansi C 함수밖에 없으며, 나머지 코드들은 100% 자체 제작이다. 다른 프레임워크나 오픈소스 작품 같은 거 쓴 것이 전혀 없다.

누구에게 돈이나 시간 면에서 단 한 치도 얽매인 게 없이, 전적으로 개인 취미 생활로 개발하는 것이다 보니,
단순히 기능만 되게 하는 게 아니라 소스 코드의 질에도 굉장히 신경을 쓴다.
비록 한 줄에 100칼럼을 꽉꽉 채우느라 겉보기로는 코드가 좀 지저분해 보여도, 구조는 의외로 깔끔한 편. ㅋㅋㅋㅋ

코드에 무슨 공통된 패턴이 반복되는 게 발견되면 함수로 따로 떼낸다거나, 모듈 간의 공통된 기능을 한 기반 클래스로 빼낸다거나.. 이런 식으로 "리팩터링"을 수시로 진행한다는 뜻이다.
이런 거 공사 하나 잘 해서 추상적인 클래스가 하나 탄생하고 상속 계층이 한 단계 올라간다거나 하면,
어려운 버그를 잡은 것만큼이나 기쁘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17 18:08 2010/10/1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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