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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철 경원선(중앙선)의 모든 것

서울 강북에는 예전부터 '국철'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전철 노선이 있었다.
경인선이나 경부선과는 달리, 이 전철은 나름 서울 중심부 구간에서 한강을 따라 미려한 경치를 선사하면서 지상으로 달렸다. 딱히 이름도 없이 그냥 국철이었고, 배차 간격이 12~15분대로 다른 지하철보다 꽤 길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 국철의 명목상 노선색은 군청색으로, 마치 1호선의 지선처럼 취급되었다. 그런데 지선은 본선에서 뻗어나가서 제 갈 길을 가는 형태가 보통인 반면, 얘는 용산에서 분기하여 한남, 옥수 따위를 지난 뒤에 다시 청량리에서 합류하여 일종의 고리를 형성했다. 여러 모로 특이한 노선이 아닐 수 없었다. 정식 명칭도 없는 이 국철의 정체에 대해 본인은 어릴 때부터 굉장한 호기심을 품어 왔다.

이것은 오늘날 '수도권 전철 중앙선'이라고 불리는 코레일 광역전철 노선의 옛날 모습이었다.
물론 용산-한남-옥수-청량리 구간 자체는 원래 경원선이라고 하여 일제 강점기 초창기인 무려 1911년부터 있던 철도이다. 그 경원선이 청량리와 성북과 그 이북으로 올라가서 신탄리까지 가고 북한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되면서 경원선은 경의선과 더불어 반쪽짜리 노선이 되었다.

수도권 전철이 개통하기 전에 경인선과 경부선(수원 이북)이 그랬던 것처럼, 경원선에는 용산에서 신탄리까지 디젤 동차가 다녔다(아마 비둘기호급?). 1974년의 광복절에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고 경부선· 경인선과 심지어 경원선의 일부 구간이(성북까지) 1호선에 편입되어 전동차가 직결 운행하기 시작했지만, 그때 경원선에는 아직 변화가 없었다. 다시 말해 회기-성북은 1호선 전동차와 기존 경원선 디젤 동차가 선로를 공용했다.

오히려 경원선은 철거당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1969년, 박통 시절에 서울의 유명한 자동차 도로인 강변북로가 건설되었는데, 경원선을 그냥 철거해 버리고 그 부지를 이용해 도로를 손쉽게 건설하자는 제안이 채택될 뻔했던 것이다. 그렇잖아도 경원선 서울 시내 구간은 도시 개발에 방해가 되고 잉여력만 펄펄 넘쳐 보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엔 용산과 청량리 사이에 어차피 역도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러나 이때 사명감 있는 철도 관계자들은 경원선을 절대로 철거해서는 안 된다고 그 의견에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우리나라 철도 건설사의 산 증인인 정 진우 박사의 저서 <평생 인연 철도 건설>을 보면 그 일화에 대해 잘 소개돼 있다. 저분은 경원선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경부 고속철 건설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고 우리나라에 고속철의 필요성을 적극 역설한 고속철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 책은 철덕들에게 강추인 아주 유익하고 귀한 문헌이니, 일독을 권한다.

저런 분들 덕분에 경원선은 철거와는 반대의 운명을 갔으며, 1978년 12월, 서울 지하철 1호선에 이어 별도의 복선 전철 노선으로 거듭났다.
비록 1974년 8월만치 유명한 날짜는 아니지만 철덕이라면 저 날짜도 잊지 말자. 이를 계기로 성북 역은 지하철 1호선과 국철의 동시 종점이 되었으며, 그 이남은 두 노선이 공히 디젤 동차가 완전히 퇴출되었다. 그리고 강변북로는 철길을 건드리지 않고 강변과 더 가까이로 건설되었다.

경원선 용산-이촌 사이에는 절연 구간(사구간; dead section)이 있다. 직류· 교류가 바뀐다거나 변전소가 바뀌어서 그런 건 아니다. 철길 위로 지나는 어느 노후한 교량의 높이가 너무 낮아서 전차선을 설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잠시 전력 공급이 중단된다. 그런데 거기는 그렇잖아도 급커브 때문에 열차가 굉장히 천천히 달려야 하는데, 관성으로 무동력 운행까지 해야 하니 좀 불안하다.

서빙고 역 근처에는 아예 평면교차 건널목이 있고 열차가 지나가기 전에 차단기가 내려온다. 덜덜~ 전동차가 지나는 길목에 건널목이라니. 1호선도 북쪽 어느 구간에 딱 하나 아직 입체화가 되지 않은 건널목이 있다. 건널목 있지, 일반열차도 가끔씩 취급하지, 1호선과 공용하는 선로가 있지...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국철 경원선은 지하철 수준의 증차가 곤란하다.

게다가 경원선 국철은 옛날엔 사람과의 평면교차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용산 이남으로는 어차피 운행을 안 하니까 별 문제될 게 없는 반면, 청량리-회기에서는 1호선과 합류해서 같이 성북으로까지 가야 하는데 여기에도 평면교차가 존재했다. 용산에서 출발한 경원선 전동차가 1호선의 상행(=원래 경원선인) 선로로 합류하기 위해서는 1호선 하행의 선로를 필연적으로 침범해야 했다.

예전에 성북,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1호선 상행 전동차들이 청량리-회기 구간에서 심심하면 정체· 서행을 반복했던 주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말이다.
과거엔 1호선의 남쪽 끝인 수원 역에도 전동차가 아예 일반열차 선로를 침범하여 회차하느라 평면교차 장애가 있기도 했으니... 1호선은 이렇듯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병목 지점들이 존재했다. 덧붙이자면, 인천 역은 평면교차 지장은 없지만 인상선도 없는 열악한 두단식 승강장이어서 회차 성능이 영 안습이었고.

그러다 국철 경원선에 봄이 찾아온 것은 2005년, 덕소 역까지 수도권 전철 중앙선이 개통하고부터이다. 이 국철은 운행 계통상 경원선이 아닌 중앙선으로 편입되었고, 청량리-성북 구간에 더부살이를 하지 않는 별개의 노선으로 독립해 나갔다. 평면교차 장애가 없어진 것은 보너스. 과거에 안산선이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경부선 지선처럼 운행되기도 하다가 결국은 4호선으로 운행 계통이 완전히 분리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중앙선은 고유 노선색(옥색)까지 부여받았다! 더는 이름 없는 국철이 아니다.
옛날에는 이 노선에 이름도 없어서 안내방송조차 “옥수· 청량리 행 열차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였는데 이제는 다 지나간 얘기. 이미 수 년 전부터 '중앙선'이라는 당당한 이름이 생겼다.

2000년도에 서울시에서 기존 지하철과 직통 운행을 하는 국철들은 다 지하철 호선 번호로 노선명을 통합했다. 그런데 용산-성북 국철은 지하철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면서 1호선에 또 붙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분당선만치 독립적인 노선도 아니다 보니, 꽤 오랫동안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중앙선부터 시작해 경의선, 경춘선 등 워낙 국철들이 많이 개통하다 보니 국철이라는 말은 조용히 사라지고 각 노선명을 따로따로 부르는 게 대세가 되어 있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2009년에 드디어 수도권 전철로 탈바꿈한 경의선도 옥색 노선색을 쓰고 있고,
경의선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수도권 전철로 탈바꿈한 경춘선은 마치 중앙선에서 분기하는 지선 같은 위상으로 동일한 옥색을 쓰고 있다.
옛날에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선은 빨강, 국철들은 다 회색을 쓰던 노선 배색이, 회색이 옥색으로만 탈바꿈하여 되돌아온 게 아닌가 모르겠다.

다만, 경의선과 경원선은 궁극적으로 상호 직통 운행을 하여 파주에서 양평까지 한큐에 가게 하겠다는 계획이 잡혀 있으니, 지금부터 동일한 노선색을 쓰는 게 합리적인 정책이긴 하다. 오오~ 40년 전에 철거 위기까지 맞았던 경원선이 이 정도면 가히 장족의 발전을 한 게 아닌지?

이들에 이어 다른 국철인 분당선은 왕십리까지 올라가고 수원까지 내려가서 수인선하고까지 직결이 계획되어 있다! 노랑 국철과 옥색 국철의 거대한 발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경의선과 경원선이 만날 때쯤엔 건널목도 입체화하고, 특히 용산-이촌 사이의 절연 구간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경원선상에 있는 용산과 회기 역이 6, 7년 전에 비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변했는지가 아직까지 기억에 선하다. 특히 용산은 KTX 정차역으로까지 지정되었으니, 비록 광장은 서울 역보다 좁지만 건물 덩치는 서울 역보다 더 커졌다.
왕십리와 청량리 역은 크고 아름다운 민자역사로 바뀌었고 청량리의 경우 역시나 거의 30년 만에 지하철과 국철역 사이의 환승 통로도 드디어 생겼다.

왕십리 역은 민자역사가 생기기 전에는 마치 신도림 역처럼 코레일 관할의 역사 자체가 없어서 이것도 2호선과 동시 개통한 최신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그렇지는 않다. 경원선의 이 지점에 역 자체는 이미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었기 때문에 역사가 아주 길다.
저런 메이저 역들과는 달리 응봉, 한남 같은 역은 서울 도심의 시골 간이역 같은 정취가 여전히 물씬 풍긴다. 직접 가 보면 안다. 응봉과 옥수 역은 굉장한 곡선 승강장역으로도 유명하다.

성북 역은, 경원선 국철이 없어지고 최근엔 경춘선 무궁화호도 없어지면서, 역의 규모에 비해 이제 1호선 전철만 탈 수 있는 평범한 역이 되어 버렸다. 경원선이 북한으로까지 뻗어나갔으면 가히 강북의 영등포 같은 역이 됐을 텐데 아쉬울 뿐. 그래도 국철과 경춘선으로 인해 야기되던 고질적인 평면교차는 완전히 사라졌으니 앞으로는 1호선 하나만이라도 쌩쌩 운행 잘 해 주길 기대하겠다.

중앙선이 이렇게 발전하고 있는 동안 1호선이 접수하고 있는 경원선 북쪽 구간도 전철의 세력이 커져서 지금은 무려 소요산까지 가 있다. 디젤 동차인 CDC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짤막한 단선 비전철 구간을 생각하면 그저 안습뿐. 거기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1시간에 한 대꼴 열차보다는 차라리 20분에 한 대꼴 셔틀버스를 굴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경원선을 접수하고 있는 용산 역하고, 우리나라 킹왕짱 역인 서울 역과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서울 역은 지금의 민자역사 말고 옛날 건물 시절부터 거의 공항 수준으로 크고 아름다웠고, 이름에 걸맞게 경부· 호남· 전라· 장항선에 심지어 경의선과 교외선까지 혼자 다 취급하던 역이었다.
그랬는데 고속철이 개통하면서 뭔가 서남쪽으로 가는 호남· 전라· 장항선 노선은 용산 역으로 이사를 갔다. 이것 때문에 지역 차별이라고 굉장히 불만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행선지별로 역이 이원화하는 것은 결코 나쁜 현상이 아니다. 청량리 역이 중앙· 경춘· 영동· 태백선 열차를 취급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강원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아무 불만 없었는데. -_-
역을 이원화하는 주 이유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이 회차 용량과 취급 가능한 열차수를 늘리기 위해서이다. 거의 10분 간격으로 운행 가능한 그 많은 KTX 열차들을 서울 역 부지에다가만 세워 두기엔 공간이 부족하잖아? -_-;;

더구나 용산 역은 앞으로 경의선까지 뺏어 와서 경의· 경원· 중앙선 횡축에다 1호선 종축의 연계 전철망까지 구축하게 된다. 서울 역에서 출발하는 경의선은 회송 열차 트래픽도 있고, 또 신촌 같은 역도 있다 보니 아주 없애지는 못하지만 여객 전철은 여전히 1시간에 1대꼴로 아주 뜸하게 운행된다. 경의선이 비주류인 대신 서울 역은 잘 알다시피 공항 철도를 확보해 있다.
이렇듯, 서로 일장일단이 있으니
서울· 용산 구분이 무슨 지역 차별이라는 식의 말은 없었으면 한다. 용산구도 의심의 여지 없이 서울의 중심부이다.

생각해 볼 문제:
국철을 탈 때와 지하철 1호선을 탈 때 용산-회기까지 소요 시간의 차이는 어느 정도 날까?
비슷한 문제로 공덕-청구(5, 6), 영등포구청-왕십리(2, 5), 도봉산-온수(1, 7)의 경우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03 08:43 2011/06/0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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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윈도우 3.1 시절이던 1990년대 초중반에, PC에 최초로 CD-ROM과 사운드카드 같은 멀티미디어 열풍이 불었다.
그 후 얼마 안 가 온통 인터넷 열풍이 불었다. 요즘 스마트폰 열풍인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초기에는 인터넷도 모뎀으로 접속을 하느라 인터넷을 쓰는 동안에 별도의 접속 유틸리티를 띄워야만 했지만, 이내 전용선이 깔리고 전용선으로도 모자라 오늘날엔 무선 인터넷이 등장했다. 2010년대의 무선 인터넷이 10년 전의 유선 인터넷보다 더 빠른 시대가 됐다. 흠좀;;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메일이라는 게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그 이름도 유명한 ‘한메일넷’은 이미 1990년대 중후반부터 전국민에게 무료 이메일 계정을 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포털 사이트로 발전했다. 포털 사이트의 이름은 ‘다음’이 된 지 오래이지만 과거 호환성을 위해 이메일 계정의 도메인은 여전히 hanmail.net을 쓰고 있다.

그런데 본인은 드물게도 드림위즈 이메일을 쓰고 있다. 1999년, 한창 신문 광고를 연달아 내면서 자기 사이트를 홍보하던 이 찬진 사장의 모습에 영향을 받아서 가입한 것 같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직접 돈은 한 푼도 낸 것 없이 이메일과 파일 보관함을 잘 쓰고 있고, 심지어 내 홈페이지조차도 처음엔 이곳 계정에서 시작했으니 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싼 게 비지떡인 건 사실이다. 드림위즈는 처음에는 이메일 계정의 용량이 15MB, 홈페이지 계정의 용량은 5MB밖에 안 되었다. ㄲㄲㄲ
한때는 SMTP/POP3을 지원해서 아웃룩으로도 수월하게 메일 확인이 가능하였으나 2002년 무렵에 금세 그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그런데 1999~2000년대엔 내가 메일 확인을 며칠에 한 번도 아니고 몇 주에 한 번 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숙사에서 사는 한낱 고삐리가 뭐 중요한 연락을 주고받을 일도 없고 지금처럼 자주 인터넷에 들어갈 일도 없었고 여건도 안 됐으니까. 이메일이 없던 시절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나마 고3 때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 후에 방송국 관계자와 연락 주고받느라 이메일 확인 빈도가 잠깐 늘었던 것 같다.

그 후 지금은? 하루에도 몇 시간 간격으로 메일을 확인한다. -_-;;; 가히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생각하면 마치 한때 뻘밭, 논밭이던 땅이 지하철까지 다니는 최대의 번화가로 개발된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온라인 공간도 오프라인 부동산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비유할 수 있겠다.

본인은 카페에 가입하기 위해 다음 ID도 갖고는 있지만, 거기 이메일 주소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공개한 적이 없고 로그인도 며칠에 한 번꼴로 한다. 직장 생활만 하던 시절에는 진짜로 로그인을 몇 달에 한 번 한 적도 있다. 거기도 가입한 지 최하 5년은 넘었지만 그 ‘땅’은 아직까지 전혀 개발되지 않고 있다.

초창기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다모임이나 아이러브스쿨 같은 커뮤니티가 유행처럼 번졌었고 세이클럽도 있었다. 싸이월드는.. 2000년대 초에 떠오르는 스타였으나, 지금은 블로그라든가 다른 social network들에 밀려서 완전히 망한 상태.

메신저로는 대학 입학과 함께 가입한 MSN을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다. hotmail은 메신저에 가입하기 전부터 이용은 해 왔지만 드림위즈 같은 주류가 되지는 못해 있다. 그리고 메신저 자체도 오늘날은 MSN이 급속도로 몰락하고 네이트온로 물갈이된 듯하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는데, 카이스트 메일 주소가 아직까지 살아 있고 로그인 가능하다! ㅜㅜ 졸업 후로 몇 년째 돌보지 않고 지냈는데, 편지함의 용량도 생각보다 많아서 스팸 메일이 수천 통 쌓여 있었다. ㄷㄷㄷㄷ;;

요즘 이메일의 종결자는 단연 gmail이라 하겠다. 본인은 이건 5년쯤 전에 지인으로부터 추천장을 받은 덕분에 가입했다. 드림위즈보다 용량도 많고 훨씬 더 편리한데도 불구하고 그냥 10년도 더 전부터 써 온 드림위즈를 아직까지도 주요(가장 자주 확인하는) 메일 계정으로 사용 중이다. 그냥 관성 때문이다. 이미 인지도가 압도적이니까..;;

드림위즈 외의 본인의 이메일 계정을 아는 분이 독자 여러분 중에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계정은 확인 주기가 최하 며칠에서 몇 주에 달하기도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드림위즈를 사용하기 바란다. 아울러 본인은 포털 사이트의 쪽지 역시 거의 확인하지 않음을 알린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01 08:25 2011/06/0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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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하면 철도 매니아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철 차량을 납품한 국가(알스톰)를 바로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는 철도뿐만이 아니라 항공 분야에서도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다. 그 내막을 들어 보면 놀랄 것이다(이미 상식 차원에서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과거에 지구를 누비는 민간 여객기(특히 대형)를 만드는 회사는 오로지 미국 보잉 사밖에 없었다. 독점이었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물건을 만들어 낼 기술과 자본력을 갖춘 곳이 지구상에 흔할 수가 없으니까.
실제로,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단일 건축물(위에 천장과 지붕이 있는-_-)은 바로 보잉 사의 비행기 생산 공장이라고 한다. 뭐, 미국 국방성도 무지하게 크고 아름답다고 하고, 또 미국 모처에 있는 퇴역 전투기 야적장도 가히 억소리 나는 규모라고는 하던데. 아무튼..;;

1970년대가 되자 이 민간 여객기 시장에 프랑스, 영국, 독일이 연합하여 끼어들었다. 그들이 세운 회사는 그 이름도 유명한 에어버스. 독일과 영국에서 부품을 만들어서 이들을 프랑스가 최종 조립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연구해서 콩코드만 만든 게 아니라, 독일까지 끌어들인 후 더 실용성이 높은 아음속 여객기도 개발해 낸 셈이다. 비행기 하나 개발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이 들었을까?

허나, 비행기는 잘 알다시피 가히 상상을 초월하게 비싼 물건이며, 다른 어느 교통수단보다도 주행 중의 risk가 크고 안정성과 신뢰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에어버스 여객기가 개발된 뒤에도, 보수적인 기존 항공사들은 지금까지 무난하게 안정성이 검증되어 온 보잉 비행기를 그냥 이용하지, 역사 짧은 파릇파릇한 회사에서 갓 만든 비행기의 도입을 꺼려 왔다.

우리나라만 해도, 최근에 도철(SMRT)에서 음 사장의 주도하에 야심차게 지하철 전동차를 자체 개발했지만, 수출은 고사하고 정작 근처의 서울과 인천시에서조차도 품질을 못 믿겠다고 회의적인 반응이었던 걸 기억하라.
지하철이 가다가 선로 위에서 좀 멈춘다고 해서 승객이 다칠 리도 없겠건만, 그 안전한 철도 차량 도입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닌데 하물며 여객기는?
그래서 에어버스 여객기는 '홈그라운드'인 영국, 프랑스, 독일 국적의 항공사에서밖에 이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이윤은커녕 언제쯤 개발비나 제대로 뽑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상황이었는데 1979년, 우리나라의 대한 항공이 꽤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변화를 꾀한다는 명목으로 에어버스 항공기를 대량 도입하여 이를 국내선과 아시아권에서 무사고로 성공적으로 잘 운영한 것이다. 그래서 에어버스가 세계에 널리 보급되고 민항기 시장에서 보잉 사와 대등한 양분 구도를 차지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프랑스로서는 한국이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없었다. 당시의 대한 항공의 회장(겸 한진 그룹 회장)이던 故 조 중훈 씨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프랑스에서 굉장히 높은 등급의 훈장을 받았으며, 그 뒤에도 프랑스를 방문이라도 한다치면 거기서 완전 국빈급 예우를 받았다고 한다. 보통은 자국의 고위 정치인 또는 군 장성이나 받을 법한 등급의 훈장을 외국의 민간 기업인이 받은 것이다. 덧붙이자면 그의 아들도 나중에 프랑스에서, 아버지의 것보다는 등급이 낮지만, 훈장을 받았다.

뭐, 그가 매국 행위라도 해서 외국에서 훈장을 받은 것도 아니고, 국내 기업을 외면하고 외국 기업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으니, 어쨌든 한국과 프랑스에서 모두 해피엔딩 스토리를 만든 것이고 잘 하긴 한 셈이다. 한때는 대한 항공이 사고를 많이 내서 특히 1997~99년 사이엔 1년 간격으로 비행기를 한 대씩 깨먹은 흑역사가 있는데, 그건 다 보잉 기종이었고 에어버스 기종은 아니었다. =_=;;;

이런 와중에 미국과 유럽에 이어, 잘 알다시피 중국까지도 항공· 우주 산업에 본격 뛰어들었으니 무서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이공계 육성 다시 좀 하려나. ㄲㄲㄲㄲㄲㄲㄲㄲ
심지어 나로 호도 차라리 러시아가 아닌 중국과 공동 연구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돌 정도이다.

유럽 국가 중에서 프랑스는 상술했듯이 우리나라의 철도와 항공하고 이런 깊은 인연이 있고,
관련 국가로 또 이탈리아가 생각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차라는 현대 포니를 디자인한 사람은 쥬지아로라는 이탈리아 디자이너이고,
아시아 음반으로서 세계를 석권한 88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작곡한 사람도 이탈리아 사람
이다.
뭔가 한국적인 정체성이 느껴지는 작품에 이런 외국인의 손길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30 08:21 2011/05/3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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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여러 잡설

※ 서울 3대 전철 회사들의 전동차에서 방영되는 동영상의 주된 테마

서울 메트로: 2005년부터 도입된 2호선 신형 차량을 주축으로 하여, 차내 동영상 방송 트렌드를 가장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자기네가 전국에서 역사가 제일 긴 지하철 회사라는 걸 강조하면서 옛날 흑백 사진도 보여주고, 지금까지 수송 거리 n억 킬로미터, 수송 인원 n백억 명.. 같은 걸 자랑한다.
그리고 대국민 캠페인을 제일 열심히 한다. 무리해서 승차하지 말라, 내릴 사람은 전역에서 미리 내릴 준비를 하라, 두 줄로 서라 등.. 테러· 화재 시의 대처 요령 같은 걸 계속해서 방영한다. 이런 분위기는 오로지 서울 메트로 구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코레일: KTX를 운행하는 전국구 회사인 만큼, 철도 자체가 친환경 녹색 교통수단이라는 걸 귀가 따갑도록 강조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이용하면 나무 n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습니다' 드립. 그러면서 가끔 철도 안전 캠페인도 틀어 준다. 컬러 모니터는 1호선 같은 주류 노선에서는 보기 힘든 편이며, 중앙선· 경춘선· 경의선· 광명 셔틀 같은 곳에서 더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철(SMRT): 역사가 가장 짧고 구세대 LED 전광판을 가장 먼저 도입한(당대엔 이게 롤지나 플랩 표지판에 비해서 최신형이었음) 회사인 만큼, 컬러 모니터의 도입은 가장 늦다. 하지만 요즘 심심찮게 컬러 모니터로 시설이 교체되고 있는 중이다. 도철이 보여주는 건 맨날 자기네 기술력 자랑뿐이다. 자체 전동차 SR-001은 절대 빠지지 않으며, 음 사장님이 인건비 절감 고효율 경영을 위해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걸 홍보하느라 바쁘다.
도철은 과거에 지하철 벽 프로젝션 광고를 가장 먼저 시도했고, 심지어 주행 중 터널 홀로그램 광고라는 엽기적인 시스템도 도입했으며, 서울 3대 전철 회사 중 스크린도어를 가장 먼저 전구간 완성한 회사이기도 하다.

Excercise: 서울 1기 지하철(1~4호선)과 비교했을 때, 2기 지하철(5~8호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시스템을 모두 고르시오.
(1) ATC 신호 시스템
(2) LED 전광판
(3) VVVF 인버터
(4) 1인 승무
(5) 직· 교류 겸용 전동차
(6) 콘크리트 노반
(7) 장대 레일

※ ABB? ABBA?

잘 알다시피 서울 지하철 5호선 전동차의 VVVF 인버터는 ABB라는 유럽계 회사(스웨덴)의 제품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1970년대의 유명 팝송인 Dancing Queen을 부른 가수 그룹의 이름은 ABBA이고 이들의 국적은 스웨덴!
Dancing Queen과 서울 지하철과의 묘한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ㄲㄲㄲㄲㄲㄲ

※ 아래아한글 2007

아래아한글 2007은 2006년 한글날에 출시된 후 2010년 3월에 차기작인 2010이 출시될 때까지 3년 반 가까이 지냈던 메이저 버전이다. 그렇다 보니, 두 버전 사이의 간극은 MS 오피스 2003과 2007의 간극에 맞먹는다(2003년 가을 ~ 2007년 초).
그 동안 2007은 업데이트가 굉장히 많이 뿌려졌으며, 2007 RTM과 지금의 2007은 가히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하게 되었다.

단순히 보안 패치 같은 보이지 않는 안정성 차이뿐만이 아니라..
F4 구역을 잡은 상태에서 Ctrl+Home/End가 동작하냐 안 하냐
키매크로와 스크립트 매크로가 동작하냐 안 하냐 같은 당장 눈에 띄는 기능 차이도 적지 않다
.
그렇기 때문에 아래아한글 2007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님, 버전 번호가 뭔가요? 최신 패치는 설치하셨나요?”부터 물어 봐야 할 지경이다.
About 화면에 아직도 (c) 2006이라고 적혀 있는 아래아한글 2007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 원격 터미널 클라이언트

컴퓨터 프로그램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
1. CPU 사용량의 편차가 크지만, 어쨌든 오랫동안 끊임없이 켜져 있고 돌아가야 하는 프로그램: 서버
2. 끊임없이 CPU를 혹사하면서 실시간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 게임, 시뮬레이션
3. 사용자에게 클라이언트 상으로 뭔가를 오랫동안 표시하고 보여주는 게 목적인 프로그램: 프레젠테이션, 동영상
4. 로컬 환경에서 사용자의 응답에만 그때 그때 반응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의 GUI 기반 애플리케이션

일반적으로 개인이 PC에서 다루는 프로그램의 유형은 4가 대부분이다 보니, 컴퓨터는 사용자가 오랫동안 키보드나 마우스를 건드리지 않으면 화면 보호기를 돌리고, 더 시간이 흐르면 컴퓨터의 전원을 부분적으로 차단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쁘지 않은 전략이며, 절전과 환경 보호까지 달성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전세계에서 동작 중인 수많은 컴퓨터들이 잡아먹는 전기는 가히 엄청난 양이며, 이래서 IT 산업이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1~3이 돌아가고 있다면 사용자가 건드리지 않더라도 컴퓨터가 꺼져서는 안 된다. 특히 3은 CPU 부하는 그리 크지 않은 것에 비해 모니터가 절대로 꺼져서는 안 된다는 특이점이 존재한다.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3과 같은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WM_SYSCOMMAND의 SC_MONITORPOWER와 SC_SCREENSAVE 메시지에 별도로 응답하여, 내가 실행되고 있는 동안은 화면 보호기나 절전 모드가 동작하지 않도록 운영체제에다 요청을 해야 한다.

FTP나 웹브라우저 같은 프로그램은 다운로드가 진행 중일 때는 모니터는 끄더라도 컴퓨터는 안 꺼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PuTTY 같은 원격 터미널은 어떨까? 통신 기능은 있지만 딱히 대용량 파일 전송에 최적화돼 있지는 않다. 그냥 프롬프트에서 놀고 있을 때는 장시간 무응답 시 접속을 끄고 컴퓨터도 끄게 할 수 있지만, 서버 접속하여 명령줄로 한창 긴 빌드를 걸어 놓은 상태인데 컴퓨터가 그렇게 정신줄을 놓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두 상태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 미묘한 개념 차이

퍼센트는 비율을 나타내는 매우 유용한 단위이다.
그런데 60%라는 수치가 30% 증가하면 78%가 될까, 90%가 될까?
퍼센트에도 퍼센트가 적용된다고 보면 60%의 30%에 해당하는 18% 증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퍼센트 수치가 문자 그대로 덧셈으로 증가했다는 차이를 나타낼 때는 '퍼센트 포인트'라는 단위를 쓴다. 속도로 치면 가속도에 해당하는 개념 되겠다.

따라서 2%이던 실업률이 3%가 되었다면, 실업률은 겨우 1% 포인트 증가한 것이지만,
무려 50%나 증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통계는 수학적이고 객관적이지만, 이를 이용한 말장난 숫자놀음에 놀아나지는 말아야겠다.
'흉악 범죄자 싸이코패스들은 100% DHMO라는 위험한 약물에 중독되어 있으며 이걸 매일 마시지 않으면 못 산다' 같은 루머조차도 과학의 이름으로 퍼뜨릴 수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 비슷한 예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경을 많이 찍어낸다고 들었는데, 성경뿐만 아니라 외국의 화폐도 굉장히 많이 찍어서 수출한다.
우리나라가 6· 25 당시에는 일본에서 임시로 돈을 찍어서 쓰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우리나라의 조폐 기술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듣자하니 EU 유로화 화폐를 거의 전량 한국에서 만든다고 함.

그런데, 돈을 얼마짜리만치 만들어서 수출했다고 하면, 이건 우리나라가 챙긴 액수(제조 원가+이윤)를 말하는 걸까, 찍어낸 돈 자체의 액면가를 말하는 걸까?
이것도 마치 퍼센트와 퍼센트 포인트의 차이 같은 미묘한 개념 차이가 발생하는 영역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27 19:48 2011/05/2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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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썬 언어

요즘 개인적으로 파이썬을 틈틈이 공부하고 있는데, 나름 재미있다. 대략 20세기 말쯤에 우리나라에 파이썬이 얼리어답터 선구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대대적으로 소개됐을 때는, Python의 한글 표기조차도 통일이 안 돼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본인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파이썬이라고만 들었다.

파이썬이라는 언어가 있다는 걸 본인이 안 건 굉장히 오래 됐다. 거의 2001~2002년 사이인데, 당시 세벌식 사랑 모임에서 '컴바치'라는 필명을 쓰던 송 시중 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파이썬에 대해 처음으로 들었다. 이분, 연락이 끊어진 지는 굉장히 오래 됐는데, 지금은 뭘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그 후 본인은 학교 후배로부터도 파이썬을 좀 공부하는 게 어떻냐는 권유를 몇 차례 받았다. 하지만 오로지 C++ 만능주의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개발에만 정신이 팔려 있던 본인은, “난 비주얼 C++만 있으면 컴퓨터를 내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부려 쓸 수 있는데, 그거 또 배워서 뭐 함?” 식으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난 전산학 전공자치고는 컴퓨터 다루는 형태가 아주 기괴하다. -_-;;

그로부터도 또 수 년이 지나고, 무려 대학원에 가서야 본인은 드디어 파이썬을 다시 대면하게 됐다. 파이썬이 말뭉치 같은 대용량 텍스트 데이터를 다루는 도구로서, 전산 비전공자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로 즐겨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문과 기반이 부족하니 그런 걸 주변 선배들로부터 보충받고, 반대로 전산학 기반이 아주 탄탄하기 때문에 그런 걸 전수해 주는 쪽으로 협업 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파이썬 좀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있기도 했으니, 본인은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 내 자신부터 파이썬을 공부하게 됐다.

한동안 공부해 본 소감은... 파이썬은 꽤 재미있는 언어이다!
type이 runtime 때 동적으로 결정되고 무척 유동적이라는 것은 C++ 특유의 그 경직된 사고방식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게 해 줬다.

{ } 일색인 C/C++, 자바, C# 같은 언어하고만 놀다가...
들여쓰기가 필수 조건이고 for/while/def :로 끝난다는 언어를 접하니 느낌이 새롭다. 좀 베이직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렇다고 행번호+GOTO 스파게티 같은 건 전혀 없지만.

다중 대입 기능이라든가 리스트의 slicing 연산은 무척 편리하고 좋았다.
여타 언어였다면 또 임시 변수를 동원한다거나, 번거로운 개체 생성과 반복문이 필요했을 것이다.
C/C++, 자바, C#의 for문은 while문을 형태만 바꾼 것과 완전히 동치이지만, 파이썬의 for 문은 철저하게 복합 자료형의 각 원소를 순회하는 기능에 맞춰져 있다. for문의 설계 철학은 C스타일 언어와 베이직/파스칼 스타일 언어, 그리고 파이썬도 살짝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언어와 내 사고방식이 완전히 일심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 리스트 같은 복합 자료형이 내부적으로 구현되는 실제 자료 구조는 무엇이며 시간 복잡도가 얼마나 되는가? 메모리 재할당 비용이 얼마나 되는가?
- 대용량의 복합 자료형을 만들어서 복제하거나 함수 인자로 전달했을 때 shallow copy가 일어나는가, deep copy가 일어나는가?

이런 식의 디테일을 알 필요가 있다.
이것도 몇 번 튜토리얼을 읽고 예제 코드를 짜면서 시행 착오를 겪어 보니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됐다.
문자열과 튜플은 새로운 값의 생성과 대입/재대입만 가능하지, 이미 만들어진 값의 변경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아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뭐, 문자열도 필요한 경우엔 mutable array 형태로 내부 조작을 할 수도 있다.

파이썬으로 윈도우 API도 호출하고 온갖 희한한 라이브러리를 동원해서 각종 컴퓨터 자동화 작업을 수행하고 별 걸 다 하는 친구도 있는데, 본인은 그 정도 수준은 안 된다. 그래도 이 정도만으로도 좋은 경험이다.

내게 파이썬을 권하던 후배 녀석이 이제는 HTML 공부도 좀 하라고 권한다. 이제는 플래시나 ActiveX 없이도 웹 표준 자체만으로도 별 걸 다 만드니, 훅킹을 한다거나 컴퓨터의 임의의 파일이나 레지스트리를 건드려야 하지 않는 이상 ActiveX의 필요성은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 웹이 처음에는 그림+글+하이퍼텍스트로 된 문서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그 자체가 거의 플랫폼처럼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25 08:18 2011/05/2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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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아Q정전>(阿Q正傳)이라는 이름도 참 괴상한 소설을 본인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 접했다.
주인공인 아Q는... 그야말로 정신과 가치관이 병들 대로 병들었으면서 자기가 병들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그는 빈곤층 하층민에다 요즘 시쳇말로 잉여인간 빵셔틀-_- 동네 북인데.. 아예 대놓고 백치 아다다 같은 타입이라거나 불쌍하고 착해 빠진 인물이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뭔가 오타쿠 내지 찌질이 같은 이미지가 느껴지는 한편으로, 자기 자신도 기회주의적이고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는 잔인한, 비열함 그 자체인 인간 쓰레기 타입이다.

아Q에게는 자기만의 인생 테크닉이 있었다. 일명 '정신 승리법'.
말만 들어 보면 무슨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요령이라든가, 공부 비결, 정신 무장 같은 게 연상되지만... 그런 것과는 전-_-혀 거리가 멀다.
현실에서 무슨 짓을 당하든, 알량한 자존심 하나만으로 “내가 지금 육신은 쳐 맞고 있어도 정신으로는 너를 이긴 것이다”.. 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고 상대방을 멸시한다. 이게 정신 승리법이다. -_-;; 헐~ 이 똥배짱의 원천은 대체 뭐냐?

이건 어찌 보면, 오늘날 인터넷 공간의 암적 존재인 키배 워리어들의 난독증 내지 병신 논리하고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ㅜㅜ
작가인 루쉰이 설마 21세기 트롤· 찌질이의 존재까지도 예견한 건 아니겠지. -_-;;

루쉰은,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만을 간직한 채 막장 테크를 타고 있던 청나라와, 이 분위기에 편승하여 눈깔이 완전히 썩어 있던(= 맛이 간) 주변 백성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시국이 어느 정도로 막장이었냐 하면, 일본군이 중국인들을 누명을 씌워 학살하고 있는데도 같은 중국인 구경꾼들이 “와 재미있다, ㅋㅋㅋㅋ 어서 죽여라 죽여!” 할 정도였으니까...

자기 조국이 서구 열강에게 캐관광 당하든 어찌 되든 말든, 우리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승리해 있는 것이고 나만 잘 살면 되고 피아 식별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생각이 팽배해 있었다. 루쉰은 이런 현실을 몸서리치게 혐오했으며, 이를 아Q라는 인물의 막장 인생을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풍자했다. 실제로, 당시 소설이 출간되자 독자들은 아Q의 행적을 보고 “이거, 완전 내 얘기잖아!!” 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루쉰은 사상가 겸 사회 개혁가였고, 중국스러운 유교· 봉건 사회 시스템을 굉장히 싫어했다. 일종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같은 생각? 또한, 중국의 문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굉장한 한자 안티로도 이름을 날렸다. “이놈의 빌어먹을 한자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중국 인민은 진짜로 망한다” 정도의 극언까지 남겼으며,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한창 한글· 한자 논쟁이 뜨겁던 시절에 한글 진영이 즐겨 인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컴퓨터 성능이 워낙 좋아져서 한자의 구조적인 단점이 그나마 많이 가려졌으니 망정이지, 그가 살던 시절은 컴퓨터도 없었고, 간체자도 없던 때였다.
한국에서처럼 가~끔씩 유식한 티 낼 때나 한자 한두 자 인용해 주는 것하고, 아예 100% 그 복잡한 한자만으로 모든 생활을 해야 하는 건 서로 가히 차원이 다르다. 루쉰의 눈에는 한자는 정말 높은 문맹률의 주범이요, 그렇잖아도 무지한 국민들을 진짜 우민화하고 암흑 속에 가두는 주범으로 충분히 보일 만도 했을 것이다.

그가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1만여 명에 달하는 조문객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그는 조국과 동포를 향해 신랄한 비판과 독설을 퍼부었으나 조국과 동포를 한 순간도 저버리거나 잊은 적이 없던 애국자였다. 그 시절에 중국에서 루쉰 같은 선각자가 살았던 건 국가적인 축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정신 승리법'은 아무리 다시 봐도 그 의미가 21세기에 위와 같이 재조명되어 정말 웃긴다.. -_-;;;

Posted by 사무엘

2011/05/23 08:40 2011/05/2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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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설교 외

* 스포일러: 이 글은 잘 나가다가 뒷부분부터 삼천포로 빠지는 구조이다.

본인은 정확하게 언제 구원받았는지 모르는 예수쟁이이다. 고등학생이던 1998년 가을에 처음으로 성경을 한 번 완독했으며, 2002년 무렵에 KJV believer가 되고 세례 대신 침례를 다시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엔,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거리 설교 때 난생 처음으로 preaching을 해서 지금까지도 이를 계속하고 있다. 본인은 길거리에서 직접 설교를 하는 교회 형제들 중에서는 최연소자이다.

주변의 불신자, 개독안티, 무신론자와 얘기를 나눠 보면, 그들은 교회 댕기는 주변 사람들의 행실 때문에 실망하고 기독교에 대한 호감을 잃은 경우가 많다. 도대체 어디서 접했는지 별 희한한 교회, 예수 사칭하고 다니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사람에 의한 온갖 나쁜 기억과 응어리는 꼭 하나씩 갖고 있는 듯했다. 저런 놈들 때문에 예수 못 믿겠다고.

물론, “크리스천들의 행실은 불신자들이 보는 성경”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크리스천들은 세상을 상대로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고 본인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 점에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 예외가 아니다-_-. 그런 못난 것들이, 자기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고상하게 산 사람들도 다 예수 안 믿었기 때문에 죽어서 지옥 간다고 말하면 그것만치 기분 나쁘고 정 떨어지는 소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기독교는 애시당초 선행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교회란, 열심히 도 닦고 인격 수련해서 구원을 받으려 애쓰는 고매한 사람들의 모임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다니는 일종의 병원 같은 곳이다. 병원에 완벽한 사람, 성한 사람이 다닐 리가 없잖아..;; 100% 완벽한 교회에 당신이 가입하고 나면 그 교회의 100% 완벽 무결성은 깨진다. -_-;;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 초청에 차별이 있던가?? 신앙생활이란 그런 마인드로 하는 거다.

그리고 기독교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불신자들의 안목이 늘 객관적이고 정확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대형 교회에 대해서는 부패하고 비리 많고 돈만 밝힌다고 욕하면서, 한편으로 진짜 성경대로 좁은 길을 고집하는 마이너 교회에 대해서는 자기밖에 모르고 편협하고 옹고집 교조주의라는 식으로 응수한다면?
교회는 어떤 노선을 가든 어차피 욕을 하게 돼 있는 불신자의 취향까지 만족시켜 줄 의무는 결코 없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마 11:18-19 같은 부류들.

난 지금까지 살면서 참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기는 점이 하나 있는데, 신앙생활에 관한 한 사람 때문에 시험 들고 실족한 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또라이-_- 짓과 괴팍한 성격 때문에, 남들로 하여금 예수 믿는 사람이 원래 다 저렇나 식으로(ㄲㄲㄲㄲㄲㄲㄲㄲ) 시험 들게 하고 간증 망친 게 더 많을 것이며, 기독교계 전체의 관점에서는 내가 빚진 게 더 많을 것이다. -_-;;; 죄인을 받아준다는데 내가 왜 마다하며, 다른 죄인으로부터 끼친 여파에 그렇게까지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 사후 심판이 있다는 것, 인간은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으며 인간의 의는 몹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거나 그에 반감을 품어 본 적이 없다. 신이 인간을 지옥에 보낸다는 말에 불쾌해하기에는 인간의 죄악이 너무 극심하다는 현실에 훨씬 더 공감이 갔다. 이런 발상의 차이가 불신자의 사고방식과 신자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만들어 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누구 만만찮게 나만의 인생 개똥철학에 빠져서 하나님에 대해서 굉장히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히고, 죄의 결과와 여파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열폭하고 인생이... 으, 생각도 하기 싫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고전 15:10)

길거리에서 복음을 설교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자기만의 패턴이 있다. 그리고 나도 나만의 패턴이 있다. 나는 내가 깨달은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성경이 어떤 책인지 먼저 얘기한 뒤, 인생은 유한하고 언젠가 죽음과 심판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얘기하고 예수님은 우리의 경제· 교육· 정치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고 그게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살인· 간음을 저질러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간다.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던 것,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던 것, 절대적인 선과 악이란 없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 ... 이걸 전하려고 한다.

거리 설교라는 게 처음에 입을 떼기가 힘들다. 본인도 초창기에는 원고를 미리 써 보기도 하고 여러 방법을 찾아 봤는데, 결국은 여러 번 하고 나니까 요즘은 원고 없이도 한번 말을 하면 최하 15분은 금방 지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복음과 구원 메카니즘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를 조리 있게 얘기도 곧장 할 수 있다.
내가 평소에 다른 곳에서 공개적으로 얘기를 하다가 말 더듬고 혀 꼬이고 실수하는 것에 비하면, 내가 생각해도 거리 설교는 꽤 유창하게 잘 하는 것이다. -_-

오히려 나는 인터넷 공간도 그렇고 길거리도 그렇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메시지 전파가 차라리 속 편하다.
단적인 예로, 이곳 인터넷에서는 내 인격-_-보다 내가 쓰는 글의 메시지 자체만이 비교적 쉽게 전달되기 때문에 신앙의 동지도 여럿 만나고 이끌어 올 수 있었다. ㅋㅋ 하지만, 나와는 반대 방면으로 재능이 있는 분도 있겠지.

또박또박 길거리에서 설교를 하고 나면 굉장히 기쁘고 후련한 마음이 든다. 내 신앙 노선을 이미 잘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난 체험이나 경험 같은 데에 가중치를 덜 두고 그런 것 판단은 아주 보수적이고 신중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 설교를 하고 나면 감회가 새롭다. 이런 육신의 체험은 나도 보증 가능하다. 이걸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내 안에 거주하는 성령님이 주는 기쁨”이라고 한다.

“네가 드디어 나에 대해서 공개 석상에서 당당히 증언을 할 정도로 성장했구나! 아이고 기특해라!” 정도? ㄲㄲㄲㄲ
거리 설교가 주는 유익: http://biblebaptistpublications.org/streetpreaching.html 클릭. (영어)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난 어차피 좀 덕후에 남 눈치 볼 줄 모르는 철면피 기질이 있어서.. -_-;;
하루는 거리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문득 이런 선포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여러분은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나라 철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전해 드리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어쩌구저쩌구... 중략)

이처럼 철도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습니다. 철도는 21세기의 트렌드에 어울리는 친환경 고효율 교통수단입니다. 우리나라 철도를 알면 역사와 지식을 보는 눈이 바뀝니다. 철도는 정서 수양과 교양 함양에 좋습니다. 철도를 알면 국토 사랑 정신이 생깁니다. 이렇듯 철도 덕질(?)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선한 간증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앞으로 철도에 관심을 갖고, 여행 갈 때 철도를 적극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본색이 드러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설마 진짜로 길거리에서 이렇게 외치고 왔다면, 여기 계시는 크리스천들께서 “용묵 형제가 부디 철도를 끊고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도라도 하셔야 할 배도(背道)-_- 단계이겠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철도를 전하는 데는 영적 전투가 필요하지 않다. 철도를 전하다가 순교? 순직?했다는 사람 얘기는 못 들었다. -_-
철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죄, 죽음, 심판, 지옥 같은 유쾌하지 못한 주제를 꺼낼 필요가 없다.
“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해 줘야지 왜 너만 독단적으로 구냐?” 이런 말을 들을 일도 없다.

요즘은 철도역, 시외버스 터미널, 고속버스 터미널을 통합해서 교통 허브로 건설하는 게 유행이라지만, 그게 무슨 교통수단간의 에큐메니컬 운동이랍시고 경계라도 해야 할 대상이지는 않다.

허나, 철도에는 불행히도 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없다. 하늘로부터의 보상이 있다고 약속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 인센티브가 없으니 철도 전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을 해야지 뭐, 별 수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내 안에 거주하는 성령님도 철도를 좋아한다고 굳게 믿는다. (뭐, 주변에서는 용묵 형제가 철도 덕질을 할 때마다 성령님은 탄식할 거라고 악담을 하는데... ㄲㄲㄲㄲㄲ) 새마을호 객실에서 Looking for you가 내 귀에 울려 퍼지던 그 날은 내게 정말 오순절 성령 강림절이나 마찬가지인 날이었다. 철도와 본인과의 만남은 가히 운명적이고 필연이었다.

본인은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 밑으로 지하철이 깔리는 날을 꿈꾼다. 누가복음의 므나 비유에서 “열 도시를 다스리라”(눅 19:17)가 ‘10개 철도 노선(사철 ㄲㄲ)을 다스리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make straight in the desert a highway for our God.”(사 40:3)는 사막에서 철도가 건설되는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어디 가서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나, 지하철 시스템에 대해서 강연이라도 실컷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철도 얘기를 담대하게 늘어놓고 싶다. ^^;;

나는 한때는, 요즘 같은 영악하고 험악한 세상에 나 같은 별종, 괴짜, 덕후가 아니면 누가 성경 따위를 믿겠는지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다. 세상의 유행 풍조하고 성경의 사고방식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다시 말해, 철도 덕후나 KJV believer나 비슷한 수준의 geek라고 생각했....는데, 후자에 속한 분에 따르면 그건 절대로 그렇지 않으며, 그 둘을 상호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그러네.. ㅋㅋㅋㅋㅋ 정말인지?? ㅠㅠ

Posted by 사무엘

2011/05/21 08:41 2011/05/2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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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대로

한강을 따라 서울 강남 구간을 동서로 쫙 관통하는 이 도로의 상징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대로’라는 타이틀까지!
서쪽으로는 공항 고속도로(130)와 연결되고 동쪽으로는 외곽 순환 고속도로(100)와 경춘 고속도로(60)로 이어진다. 청담 분기점에서는 분당-수서 고속화도로가 뻗어 나간다. 서울 지하철 9호선의 노선이 이와 비슷하다.
88 올림픽 고속도로-_-와 마찬가지로, 올림픽을 강조한 5공 시절의 산물이다.

※ 강변북로

강남에 올림픽대로가 있다면 강북엔 한강을 따라 이 도로가 있다. 서쪽으로는 일산으로 가는 자유로가 연결되고 동쪽으로는 구리시에서 끝난다. 경원선(운행 계통상으로는 중앙선) 이촌-옥수 구간과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올림픽대로와 마찬가지로 8~10차선급의 크고 아름다운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능가하는 차량들 때문에 정체로 몸살을 앓곤 한다.

※ 내부 순환로

마포구청 근처에서 시작하여, 북한산 기슭의 서울 북부 외곽을 둥글게 감싼다. 그래서 홍제 역(3호선), 국민대, 길음 역(4호선), 월곡 역(6호선) 근처를 지나고, 상명대도 근처까지는 간다. 중간에 산을 뚫은 정릉 터널도 지나고 어지간한 서울 지하철 노선에 비해서는 외곽이지만, 그래도 외곽 순환 고속도로나 교외선에 비해서는 훨씬 더 서울 안쪽이다. 걔들은 아예 북한산 맞은편 쪽까지 가니까..;;

이 도로는 경우에 따라서는 강변북로가 너무 혼잡할 때의 우회 경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월곡 역 근처에서는 북쪽으로 뻗어 구리로 가는 북부 간선 도로가 분기해 나가며, 얘는 청계천이 있는 곳으로까지 남하하다가 중랑천 합류 지점에서 동부 간선 도로와 합류하며 끝난다.

※ 동부 간선 도로

외곽 순환 고속도로(100)의 의정부 IC 근처에서 시작하여 진짜로 중랑천만 따라 쫙 내려간다. 그리고 중랑천이 한강과 합류하는 동호대교와 성수대교 사이 구간에서 이 도로도 강변북로와 합류하면서 끝난다. 말 그대로 서울 동부의 간선 도로이며, 서울 지하철 7호선의 노선도 수락산 역에서 군자 역까지 이것과 비슷하다.

이 도로는 한강 본류를 따라 달리는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보다는 좁다. 하천 이편은 하행만 있고 건너편은 상행만 있는 독특한 형태가 인상적이다. 다만 경원선(운행 계통상으로는 서울 지하철 1호선) 월계-녹천 구간은 철길도 중랑천과 매우 인접해 있기 때문에 동부 간선 도로의 확장을 위해서 선로 이설이 예정되어 있다.

※ 서부 간선 도로

성산대교를 통해 어찌 보면 내부순환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거기서 안양천을 따라 쭉 내려가면서 신목동 역(9호선), 양평 역(5호선), 도림천 역(2호선), 구일 역(1호선) 등을 경유하다가 이내 경부선 철길도 만나고, 금천 IC에서 서해안 고속도로(15)로 이어진다. 여타 고속화도로들이 시도(市道)인 것과는 달리, 이 도로는 국도 1호선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외에도..

남부 순환로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남쪽 구간과 비슷한 선형으로 사당 역에다 우면산 근처의 예술의 전당까지 끼는 도로인데, 전구간 자동차 전용은 아니어서 그런지 여타 도로들에 비해 존재감은 덜하다.

북부 간선 도로는 너무 짧고 서울 동북부와 구리 사이의 셔틀에 불과하니 패스.
남부 간선 도로라는 건 없다. -_-
분당은 내곡으로 가는 놈, 수서로 가는 놈 이렇게 고속화도로가 두 군데나 있다. 철도로 치면 분당선과 신분당선과 비슷한 관계라고나 할까?

전철 노선도를 외우듯이, 자동차 도로도 이 정도만 알면 서울 지리에 물미가 트게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19 08:45 2011/05/1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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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력 분산식과 동력 집중식

철도 차량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면 동력 집중식· 동력 분산식 같은 용어에 대해서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근성 있는 철덕이라면 그게 뭘 의미하는지도 이미 다 알 것이다.
그러나 이곳 본인의 블로그는 철덕만 오는 곳도 아니고 만인을 위한 보편적인 공간인 만큼, 그게 무슨 용어인지 또 친절하게 소개하도록 하겠다.

동력차를 편성하는 방식에 대한 논쟁은 4종 교통수단 중 오로지 철도 차량에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여타 교통수단과는 달리 여러 차량을 한없이 길게 줄줄이 엮어서 다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도 열차이다.

먼저 동력 집중식이란, 쉽게 말해서 동력을 내는 역할만 하는 한 개의 전용 동력차가 나머지 객차들을 전부 끌어 다니는 차량 편성 형태이다. 그 동력차는 흔히 기관차라고 불린다. 육중한 기관차는 당연히 괴력을 낸다. 가정으로 치면 가장 한 명이 혼자 돈 벌어서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형태라고나 할까?

기관차를 앞뒤로 혹은 앞-중간, 앞-앞으로 중련 편성하고 심지어 뒤에서 미는 형태로 편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동력 집중식에서 중요한 것은, 기관차는 오로지 기관차 역할만 하고 그 뒤에 객차를 끌든 화차를 끌든 뭘 엮든 상관없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철도 동력차는 증기 기관차이니 당연히 동력 집중식이었다. 증기 기관 자체가 덩치가 크고 물탱크에 석탄 화차까지 필요하다 보니, 구조적으로 동력 집중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력 분산식은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한 차량에 동력 기관과 접객 시설이 모두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여러 차량이 작은 힘을 동시에 낸다는 것. 동력 분산식을 설명하기 위해 동차에 대해서 먼저 소개할 필요가 있다.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동차라든가 KTX는 동력차 안에도 일부 좌석이 편성되어 있으며, 그 뒤에 이어지는 객차도 아무 차량이나 편성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인테리어가 동일한 새마을호 객차라도 동차형 새마을호의 객차와 기관차형 새마을호의 객차는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이들은 위의 두 조건 중 첫째만 만족하는 차량이다. 이런 차량은 동차라고 불린다. 하지만 동력차가 겨우 앞뒤로 두 군데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동력 집중식 동차라고 불린다.
요컨대 동력 분산식 차량은 반드시 동차이다. 그러나 모든 동차형 열차가 동력 분산식은 아니다.

그럼 둘째 조건에 대해 살펴보자.
미국의 길고 아름다운 화물 열차처럼 기관차를 중간중간에 여럿 편성하여 움직이는 것은 둘째 조건을 만족하지만, 이걸 동력 분산식이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첫째 조건과 복합하여, 동력 기관과 접객 시설이 모두 있는 차량이 여럿이서 같이 움직이려면.. 결국 동력 기관이 객실 밑바닥에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추가된다.

이런 조건을 정확하게 만족하는 철도 차량은 역시 지하철이다.
사실 지하철뿐만이 아니라 일본 신칸센도 동력 분산식 고속철이며, 동력 집중식 고속철인 KTX와는 다르다.

철도 차량은 왜 이런 식으로 구성의 차이가 발생하며, 동력 분산식과 동력 집중식의 장단점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글을 계속 읽어내려가기 전에 여러분도 생각을 해 보기 바란다.
이런 사색을 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철도 시스템을 이해하고 철덕이 되는 법이다.

동력 분산식은 작은 엔진이 여럿 동시에 힘을 낸다는 특성상 가감속력이 뛰어나다.
밥 먹듯이 정차를 자주 하고도 표정 속도를 높게 유지하려면 빠른 가감속력이 필수이므로, 동력 분산식은 민첩해야 하는 여객 열차에 매우 유리하다. 특히 지하철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최고 속력이 그리 높지 않더라도 가감속력이 뛰어나면 지연 만회에도 유리하다.
차량으로 치면 지프 같은 사륜구동 차량이 일반 승용차보다 등판능력 같은 성능이 더 좋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하겠다.

지하철이 보통 초당 2~3km/s 가속이 가능하며, KTX는 2km/h/s가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정지 상태에서 전속력을 내려면 거의 4분 가까이 걸린다고 한다. 시속 100km까지 10초가 안 걸리는 스포츠카와는 다르다. =_=
부산 지하철 1호선 전동차는 8량 1편성 중 앞뒤 차량을 제외한 6량이 모두 동력차...;;여서 전국의 지하철 중 가감속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기관차+객차형 차량의 경우, 객차는 별로 안 무거운 반면 열차의 머리에 해당하는 기관차만 100수십 톤에 달하며 엄청나게 무겁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과적 단속을 하는 게 다 이유가 있어서이듯, 무거운 차량은 선로에 무리를 많이 준다. 철도 교량 역시, 통과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열차의 하중을 기준으로 건설된다.

그 반면 동력 분산식 차량은 작은 동력 기관이 여럿인 형태이므로 개개의 차량이 기관차만치 많은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 여러 엔진 중 한두 개가 좀 뻗는다고 해서 열차가 바로 서 버리지도 않는다. 아직까지도 국산 고속철인 KTX 산천이 자주 뻗는 모양이던데, 산천이 동력 분산식 차량이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끝으로, 이건 굳이 동력 분산식이라기보다는 동차형 차량 전체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차량은 기관차+객차형 차량과는 달리 전후 내지 좌우 대칭형으로 편성된다. 그래서 굳이 차량의 방향을 돌리지 않아도 지금 있는 상태 그대로 자연스럽게 전진이나 후진으로 나아갈 수 있다. 회차가 불편한 노선에서는 동차형 차량이 약방의 감초가 된다.

자, 지금까지는 동차형 차량의 장점 위주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도 단점이 있으며, 기관차형 열차가 유리한 분야도 있다.
일단 동력 분산식 차량은 객실 바로 아래에 동력원이 있는 만큼,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증기 기관으로는 동차는 아예 만들 수가 없고, 기름으로 달리는 동력 분산식 열차는 소음과 진동이 가히 버스· 트럭 수준이 된다. CDC, NDC가 딱 그 예이다.
그러나 전동차의 소음은 기술의 발전 덕분에 그나마 요즘 굉장히 많이 줄어든 것이다. 누리로는 정말 조용하던데!

그리고 동력 분산식 차량은 차량 편성이 기관차형보다 경직된다.
앞뒤로 모두 동력 차량이 있고 동력차와 객차가 일심동체이다 보니, 뒤에 객차나 화차를 자유롭게 추가로 넣었다 끊었다 하기가 어렵다. 기껏해야 이미 해 놓은 편성의 배수 단위 중련 편성이나 가능하다. 이는 화물 수송에서는 꽤 불리한 점이다.

차량의 개수가 n이라 할 때 기관차형 열차의 cost는 15+n쯤 되는 반면, 동력 분산식 동차형 열차의 cost는 3n 정도 되겠다.
기관차는 초기 비용이 크다. 그러니 달랑 1량짜리 열차를 기관차+발전차까지 엮어서 끌고 다니는 건 대단한 낭비이다. 그러나 그 기관차의 출력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객차는 얼마든지 저렴하게 추가로 끌고 다닐 수 있다.

그 반면, 동차는 동력차와 객차가 일심동체이다 보니 한 차량의 비용이 일반 객차보다 비싸며, 길게 편성하면 할수록 그 비용도 커져서 결국은 기관차형 객차만 길게 편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앞지르게 된다.
또한 특별히 1량 동차로 설계된 동차가 아닌 이상, 동차는 어차피 1~2량 편성을 하지도 못한다.

이 정도면 동력 집중식과 동력 분산식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이 되었을 것이다.
글의 논조에서 느끼셨겠지만, 동력 분산식은 결국 속도가 중요한 여객에 유리하며, 동력 집중식은 편성의 유동성이 더 중요한 화물에 유리하다. 철도 선진국인 일본은 진작부터 가히 동차 천국인데, 우리나라도 이 추세를 이어받아 이제 공항 철도나 누리로처럼 동차형 열차가 대세로 각광받고 있다. 물론 옛날에 DEC, EEC 같은 동차의 추억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일본에는 아예 화물 열차도 동차형 열차가 존재하며, 이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그런 일본도 아예 바닥에 누워서 편히 자야 하는 침대차는 기관차+객차형 열차로 운행한다고 함. 어차피 빨리 갈 필요도 없고 높은 가감속력이 필요하지도 않으니까.
이를 응용하자면, 시베리아 대륙 횡단 열차에 동차형 열차가 투입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비행기와 경쟁하는 시속 500km짜리 자기 부상형 고속철이 아닌 이상 말이다.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청년부에 있는 모 형제는 혼자 있을 때 Oh Glory Korail을 절로 흥얼거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섬식 승강장· 상대식 승강장의 차이에 대해 얘기하고 서울 지하철을 관할하는 회사가 둘로 나뉘어 있다고(서울 메트로 vs 도철) 얘기하더니만 주변으로부터 철덕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이게 다 내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여러분도 어디 가서 동력 집중식, 동력 분산식 같은 용어를 구사하고 그 차이점까지 설명할 줄 안다면 주변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5/15 08:32 2011/05/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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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잡설

오랜만에 전공 관련 잡설을 끄적인다.

1. 요즘 나오는 옥편이라면 각 한자들마다 글자의 유니코드 번호는 꼭 수록해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컴퓨터 시대에 저 정보는 하다못해 필순보다도 훨씬 더 필요하고 유용할 것이다.

2. 한자는 입력하고 다루는 데는 굉장히 불편하지만, 뜻글자라는 특성상 한자가 적당히만 쓰이면 형태소 분석과 의미 파악에는 굉장히 유리하다. 한-일 번역과 일-한 번역의 난이도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명백하다. 일본어는 처음에 입력하기가 느리고 불편하지만, 나중에 자연어 처리에는 다소 편할 수 있다는 뜻.
그와 반대로 한국어는 한글로 입력은 전광석화처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소리만으로 기계가 힘들게 유추해야 하는 정보가 많으며, 언어 자체도 구조가 미치도록 판타지 다이나믹 귀걸이 코걸이 식이다 보니 자연어 처리 입장에서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3. 카이스트에서는 100% '재수강'이라는 용어만 쓰이지만, '재이수'라는 말도 있다는 건 연세대에 가서 처음 알았다.
카이스트에서는 봄학기, 가을학기라고 학기를 구분하지만 연세대는 그냥 고등학교 이전처럼 1학기, 2학기를 쓴다.
인문계 대학원에서는 교수가 다른 교수를 일컬을 때나 강의실에서 학생이 교수를 부를 때 '선생님'이라는 말을 쓴다. 심지어는 나이 많은 학생끼리도 친해지기 전에는 서로 선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공계 대학원에서는 여전히 '교수님'이 주도적인 것 같다.
이런 일련의 차이를 혹자는 '학교 방언'이라고 풀이하더라.

4. 이기다, 지다, 틀리다, 맞다, 모르다 같은 용언은 영어와 비교했을 때 용도에 따라 시제가 조금씩 일치하지 않는 면모가 있다.
격투 게임 같은 데서 흘러나오는 You win 같은 멘트를 '네가 이긴다'라고 번역하지는 않으며,
You are wrong도 '네가 틀리다'라고는 절대로 번역되지 않는다. wrong, incorrect를 언제나 과거 시제로 번역하다 보니 정작 현재 시제인 '틀리다'는 자꾸 '다르다'라는 뜻으로 이상하게 꼬이고 있는 것 같다.

5. 학교에서 구수한 옛한글들이 잔뜩 찍혀 있는 어느 옛날 한글 성경을 봤는데... '밥팀례'라는 희한한 단어가 있더이다. 밥티슴(baptism)과 침례의 합성어인지? 우리 선조들의 작명 겸 번역 센스에 감탄했다.
아울러, 개역성경도 '사단'이라고 적어 놓은 Satan을, 훨씬 더 옛날 성경이 '사탄'이라고 더 정확하게 표기하고 있었다.

6. 폐사: 가축이 폐사하는 것 말고 弊社 또는 ?社는 자기 회사를 겸손하게 낮춰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비즈니스 메일이나 광고에서 자주 볼 법도 한 단어 같은데.. 본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폐사라는 단어를 본 곳은 자동차 취급 설명서가 전부이다. -_-;;; 그 업계만의 방언이기라도 한 걸까? '폐사가 보증하는 순정 부품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주행 중 이 경고등이 갑자기 켜진다면 폐사 서비스 센터에서 정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IT 업계에서도 쓰지 말라는 법이 없을 텐데. '모 제품에 이런 버그 내지 보안 취약점이 발견되었으므로 사용자께서는 폐사가 제공하는 업데이트를 반드시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겸손한 비하라지만 졸(졸고, 졸저)도 아니고 '폐'가 들어가니까 부정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7. 또 자동차 취급 설명서 이야기.
요즘 차 취급 설명서에 '핸들'이 '스티어링 휠'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놀랐다. 호치키스가 스태플러로 바뀌듯, 국민들의 평균적인 영어 실력이 증가하면서 콩글리시도 점차 바로잡혀 가는 것 같다. ^^;;;
하지만 백미러는 그냥 실외 미러라고 표기했고, 진짜배기 영어인 리어뷰 미러라고 하지는 않은 듯하다.

8. 세월이 흐르면서 아래아한글 97이 이제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구닥다리 한컴 2바이트 코드에 대한 지원을 차츰 줄여서 지금은 이게 변환기 유틸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가 돼 있다.
그런데 맨날 옛한글 말뭉치 자료를 다루는 이 바닥 사정을 들여다 보니까, 한컴 2바이트 코드가 그렇게까지 죽은 포맷은 아닌 것 같다. 한컴 2바이트 코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형태소 분석기 같은 툴들이 아직까지 쓰이고 있어서 말이다. 현실이 그만큼 낙후해 있다는 뜻 되겠다.

본인이 다니는 이 대학원에 있으면서 좋은 점을 꼽자면 이러하다. 국어학 쪽의 진짜 전공자, 현업 종사자들의 언어학적 소견과 역사 증언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글 쪽으로는 '운동꾼'이기만 할 뿐 비전문가의 편협한 주장만을 접한 것과는 다르다. 비록 자기 전공 분야에서는 공학 박사이고 뭐 별별 업적을 남긴 분이라 하더라도 국어학 계열로는 이상한 지론에 빠져 이상한 주장을 밀어붙이는 분이 안타깝지만 꽤 있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13 08:39 2011/05/1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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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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