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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에 대해서

우리말로는 천주교라고 하여 예배당의 이름을 '성당'이라고 부르며, 외국어 표기로는 카톨릭/캐톨릭과 얼추 비슷한데 공식 표기는 가톨릭인 종교가 있다. 심지어 아마 한국 한정으로, '개신교'의 반대 개념으로서 이 종교를 '구교'라고 표기한 게 간혹 통용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천주교와 더불어 개신교가 각각 기독교의 subset을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신을 팔고 예수 파는데, 둘이 뭐가 다른지 잘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본인의 기독교 신앙과 무엇이 얼마나 다르며, 나는 그런 통념과는 달리 둘을 왜 동일시할 수 없고 천주교의 교리에 동의하지 않는지에 대해 오랜만에 최대한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좀 써 내려가도록 하겠다.

1. 기독교는 구원관과 내세관에 관한 한 매우 극단적이다. 예수님 외에 그 어디에도 구원이 없으며, 인간의 그 어떤 선행으로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의 기준을 충족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한번 죽으면 이 세상에서의 삶은 완전히 끝이지만, 사람의 혼은 불멸이기 때문에 하늘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히 자기 의식을 갖고 산다고 가르친다.

특히 기독교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가르친다. 한번 회개하고 믿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그 뒤에 제아무리 잘못하더라도 구원을 잃지 않는다. 내 선행으로 구원을 얻은 게 아니니, 내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아멘. 이런 대인배적(?) 교리가 있는 다른 종교? 난 못 봤다. 그리고 반대로 제 2의 기회가 없이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뜨거운 지옥을 가르치는 곳도 흔치 않다. 천주교는 이 둘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종교 개혁의 빌미가 되었을 정도로 천주교의 큰 교리 차이 중 하나이고, 지옥의 경우 천주교는 연옥 교리가 있기 때문이다.

2. 기독교의 '주의 만찬'은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의식이다. 이때 같이 먹는 빵과 포도즙은 당연히 그냥 상징일 뿐이다. 그런데 천주교는 이걸 이상하게 배배 틀어서 그 빵과 포도즙 자체가 예수님의 진짜 옥체와 보혈이라고 억지를 부려 왔다. 사제가 라틴어로 주문을 외우면서 평범한 빵과 포도즙을 예수님 자체로 변신시킨다고. 화체설이라고 들어 보셨는지?

이게 도대체 뭔 궤변인가 싶지만, 이거야말로 가히 중세에 무수히 많은 크리스천들의 피를 부른 치명적인 교리이다. 김 성한의 소설 <바비도>에도 잠깐 언급돼 있다. 천주교 하면 떠오르는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동그란 빵.. 이거 굉장히 사악한 배후에서 시작된 거라 한다.

3. 또한 기독교는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유아 세례는 더욱 거부하는데... 이건 과거의 종교 개혁자들조차도 가장 청산을 못 한 분야에 속하는지라 어지간한 개신교 교파들도 천주교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더 강하게 말을 못 하겠다.

성경 구절을 편 각종 증명들과 세례의 역사적 폐해 나열은 귀찮으니까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도록 하겠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구원의 증표는 침례이다. 스스로 구원 간증을 하고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사람이 물에 잠겼다 나오는 침례만이 맞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거 뭐 침례를 주는 교회만 침례교라고 따로 부를 정도이니 현실은 얼마나 시궁창인가?

4. 마리아는 그냥 신실하고 현숙한 여인이고, 우리와 똑같은 죄인의 피를 물려받았다가 구원받은 평범한 크리스천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특히 예수님 이후에 요셉과의 부부 관계를 통해 여러 자녀들을 낳기도 한 진짜 평범한 어머니이다. 기독교는 마리아에게 기도를 한다거나 경의를 표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형상 같은 건 더욱 안 만든다.
마리아가 오늘날 자기 신분이 얼마나 날조되고 있는지를 안다면, 아마 놀라 기절초풍하고 까무러치다 못해 심장마비에 걸릴 것이다. 이 휘소 박사가 핵 물리학자로 왜곡된 것하고는 스케일이 급이 다르다.

마리아의 시점에서 천주교의 교리 오류에 대해 잘 써 놓은 전도지 <Why Is Mary Crying?> 클릭

5.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이고 유대인을 주 대상으로 사역을 하다가(바울은 이방인들 대상) 세상을 떠난 사도이다. 그는 천주교나 교황 제도 같은 건 알지도 못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돌멩이라는 뜻일 뿐이며,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 결코 아니다.

6. 기독교에 따르면 이미 죽어 버린 사람은 이미 하늘이나 지옥으로 가 버렸으니까 끝이다. 이는 제사나 추도 같은 망자에 대한 관념까지 바꿔 놓는다. 좋게 말하면 깔~끔하게 바꿔 놓는다.
허나, 죽은 사람을 갖고 고인드립을 치면서 “헌금 많이 바치면, 뭘 열심히 하면 연옥에 가 있는 사람이 연옥에서 빨리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말 골치 아파진다. 난 구원관과 사후 관념이 모 아니면 도로 깔끔한 지금의 내 신앙을 좋아한다.

7. 그리고 끝으로, 천주교는 성경을 보는 마인드부터가 기독교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창조론 같은 쪽으로 들어가면 성경을 절대로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성경을 본다고 말은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각종 교회 전통, 교회법 등을 더 우선시한다. 아니, 중세 암흑기 때는 오히려 성경을 금서로 지정하고, 라틴 벌게이트 같은 부패한 역본이나 자기네들끼리 돌려 보고 성경을 읽던 사람들을 잡아 죽이던 집단이 그들이다.
... 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기독교를 자처하는 어지간한 개신교 교회들도 성경에 그렇게까지 연연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고. -_-;;

난 차라리 아예 안 믿고 말지, 하나님 팔고 예수 팔고 성경을 판다면서 천주교처럼 믿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 전부터 했다. 천주교의 각종 성화, 성상, 특히 마리아 형상을 보면 이것들의 배후와 기원이 떠오르기 때문에 마음이 굉장히 불편하며, 어떨 때는 오싹 소름까지 돋는다만..
얘네들은 어째 세상 불신자들을 상대로는 굉장히 좋은 이미지로 appeal해 있다. 세례고 침례고 나발이고 교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일반 사람에게 천주교는 종교적인 비주얼이 아주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에서는 천주교는 아주 정의롭고 이성적이고 좋게 그려져 있는 반면(조선 명탐정처럼), 기독교 쪽은 그냥 뻘건 십자가에 개념 없는 광신자나 나약한 loser 내지 위선자 이미지이다(도가니, 파괴된 사나이, 밀양 등). ㄲㄲㄲㄲㄲ 그래서 한숨뿐.

천주교는 기독교와 이렇게도 다른데도 사람들은 십자군 전쟁이나 종교 재판, 갈릴레이 갈릴레오 재판도 다 기독교의 과오라고 싸잡아 부르고 있으며, 종교 개혁으로 인해 개신교가 생기기 전부터 명맥을 유지해 왔던 기독교 집단(천주교로부터 탄압 받고 존재가 부정되어 온)들에 대해서는 절대 무지하다. 알비겐시스, 왈덴시스 등.

난 애시당초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이 기독교에 플러스가 된 사건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건 기독교를 무력으로 박멸하는 게 불가능하고 그래 봤자 국익에 보탬이 되지도 않으니, 자기 식으로 융합· 짬뽕된 짝퉁 종교를 기독교라고 로마 황제가 공인해 준 것일 뿐이다. 싸움의 양상이 이젠 더욱 교묘해졌다. 마치 이북 평양에 있는 국영 교회라든가, 일제 강점기의 문화 통치하고 완전히 똑같다. 저게 어떻게 기독교계의 승리란 말인가? 그 로마 교회는 성경의 로마서가 기록되던 시절의 로마 교회가 절대 아니다.

천주교치고 친이스라엘· 친유대인 노선을 주장하거나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회복을 믿는 사람은 단언하건대 결코 없다. 왜 그런지 설명하자면 말이 굉장히 길어지니 이 자리에서는 생략하겠다.

천주교치고 킹 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사람은 없다. 너무 당연한 귀결이다. 천주교의 오류를 가장 잘 까발리는 성경인데 좋아할 리가. 적장은 적장을 알아보는 법이다.

천주교는 종교 개혁을 종교 분열이라고 부르고, 루터 역시 종교 분열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종교 개혁 이전의 각종 듣보잡 기독교 집단들은 다 이단 사이비들이며 자기네가 기독교 정통이라고 여전히 잡아떼는 중. 위클리프, 틴데일 같은 사람을 오늘날까지도 엄청나게 싫어한다...;;

옛날에 천주교의 성경 변개는 이 정도로 막장이었다.
예를 들어,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 (눅 13:3,5)에서 '회개'(repent)를 고해(do penance)로 바꿔서 고해성사 교리를 지지하게 해 놨다거나 (약 5:16의 잘못→죄 변개하고는 변개의 차원이 다르다),

눅 1:28에서 천사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가 될 마리아에게 “너는 정말 복이 많기도 해라. 하나님으로부터 큰 호의를 입으니 참 좋겠다”(수동)라는 뉘앙스로 말한 걸 “넌 정말 은혜가 너무 너무 충만한 사람이구나”(능동)로 바꿔서 마리아를 마치 제 스스로 은혜가 가득해서 남에게 무슨 은총을 잔뜩 베풀 수도 있는 성인으로 신격화했다.

이들의 마리아 '빠' 기질은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자의 씨, 즉 예수님이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이라는 약속(창 3:15)을 “여자가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이라고 바꾸기까지 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황당한 조작이 성경을 두고 벌어져 온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Douay-Rheims라는 옛 천주교 성경의 본문을 직접 보기 바란다. 진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천주교와 기독교가 도저히 동일선상으로 보일 수가 없다.

비록 오늘날의 변개된 성경들은 킹 제임스 성경에 비해 여전히 좀 불량 구절이 남아 있긴 하지만, 최소한 저런 짓을 하지는 않으며, 한국어 공동번역이나 영어 New American Bible 같은 오늘날의 천주교 성경들도 저건 고쳐졌다.
이것도 그나마 성경이 널리 보급되고 진리의 빛이 퍼지면서 쟤들이 중세 암흑기 같은 깽판을 대놓고 벌이지는 못하게 되어 상황이 개선된 것이다.

성경이 천주교 수뇌부의 전유물이어서 내가 구원으로 이르는 참된 길을 몰랐다면... 그래서 저런 변개된 성경에 속아서 평생 교회의 노예로 고생하다가 죽어서는 지옥 갔다면...? 이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나는 내가 믿는 이 믿음을 피로 지키면서 전해 준 믿음의 선진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글을 공개적으로 올렸다간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져서 열나게 고문 당하거나, 아예 진작에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_-;;

신앙이라는 건 인생의 본질과 영원을 다루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의 핵심을 보질 않고 왜 다들 대외 이미지라든가, 겉보기로 거~룩하고 경건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만 보는지 모르겠다. 한낱 인간이 제 깜냥에 의로우면 얼마나 의롭다고?

이 글을 읽고 심기가 불편함을 느끼는 분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나도 이런 글은 몹시 조심해서 쓴다.
제발 내 글에 악이 받쳐서 해코지하고 어떻게든 지엽적인 허점 찾아내고 반박하려고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길 바란다.

아예 무교나 기독교 안티라면 말도 안 한다. 천주교라면.. 당신은 도대체 천주교의 무엇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과 같은 종교관을 갖고 있는지, 당신에게 예수님이나 성경은 어떤 존재인지를 곰곰이 좀 생각해 본 뒤, 이 글을 다시 읽어 보기 바란다. 사실, 이런 사람치고 자기가 소속된 천주교 교리를 제대로 알기라도 하는 사람을 난 못 봤다.

겨우 인간적으로 고상하고 그럴싸한 종교 생활을 하는 게 목표라면 차라리 나처럼 철도교에 입문해라.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종교 레벨 자체가 아니다.
아무쪼록 독자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길을 발견하고 따르길 원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2/02/25 19:26 2012/02/2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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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범준 2012/02/25 21:32 # M/D Reply Permalink

    1. 성경 & 교회 관련 글이 간만에 올라왔군요. 요새 마니 기대하고 있었는뎁...;;

    글 감사합니당..

    2. 저도 저 톈쥬교-_-; 체제 밑에 있었으면 지금 같은 상황을 그대로 옮겨놓는다면 속이 부글부글 끓겠습니다.
    저정도로 악랄한 교리 체계에 사람 얽매이는 건 나도 못참아~~~!!!!!!

    3. 문제는 이걸 읽는 사람들 중에 골수 캐톨닉 신자거나 캐톨닉 옹호자인 경우는 '에이~~ 여기에 뭘 볼게 있다구 C--_-;' 이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죠. 결국 자기네 영혼 문제인데 자기네 그 신=이 세상 신이 자기네들 눈을 가리고 있는 건 알지 못하고....(고후4:4)

    결국에는 의로운 자는 더 의롭게, 악한 자는 더 악하게 된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1. 사무엘 2012/02/25 22:35 # M/D Permalink

      이 글은 “이건 맞고 저건 틀리다”를 주장하기에 앞서 “이것과 저것은 같지 않다.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둘 다 옳을 수는 없다”를 주장하는 게 목적입니다. 아무도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보고도 반발심에 연옥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마리아에게 경의를 표하는 게 더 좋고, 성찬식의 빵과 포도즙이 진짜 예수님의 실체라는 확신이 들고, 천주교가 가르치는 신이 더 마음에 들어 보이고, 골치아픈 성경 읽는 것보다 교회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고분고분 따르는 게 편하게 보이면... 그렇게 믿고 그렇게 행하면 됩니다. 아무도 강요 안 합니다. 거기에 항거하다가 순교까지 한 옛날 사람들만 완전 개죽음을 당한 것이겠죠.

      그러나.. 그렇게 믿고 행한 것에 대한 책임은 각자가 지게 될 것입니다.
      제가 진리를 사랑으로 전하라는 성경 말씀을 어긴 게 아니기를 바랍니다.

  2. 윤정호 2012/02/26 04:11 # M/D Reply Permalink

    그래도 너무 매몰차게 얘기하시는 거 아닌지;
    전 저번에 사관학교 글처럼 읽으면 재미있는 글인지 알았는데 읽다보니까 좀 그르네요
    참고로 전 불가지론자 겸 무교입니다(사실 잘 모릅니다)

    1. 사무엘 2012/02/26 08:29 # M/D Permalink

      옛날의 안 좋은 기억도 있고 해서 이런 부류의 글은 진짜 최대한 정중하게 몇 번씩 고치면서 썼습니다만..
      제가 다시 읽어봐도 중립적인 비교보다는 '한쪽 까'스러운 표현이 불가피하게 좀 들어갔군요. 양해를 구합니다. ㅎㅎ

      하지만 저도 저만의 개성과 합당한 이념이 있고 남들이 꼭 봤으면 하는 정보가 있는 만큼, 부담 없고 재미있기만(?) 한 글뿐만이 아니라 색깔 들어간 글도 아주 가끔은 올라올 겁니다.

  3. 겨울하늘 2012/03/16 02:05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사무엘 님~^^

    댓글은 잘 달지 못했어도 사무엘 님 글을 종종 와서 잘 보고 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사무엘 님께서 천주교에 대해 가진 생각은 애초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최근엔 KJV 400주년을 맞아 연작(?)으로 쓰신 글들과 더불어 이 글도 얼마 전에 한두 차례 읽었는데, 일 하던 중 오늘 밤에 다시 읽고 처음으로 저의 종교에 대하여 밝힐까 합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처음에는(벌써 몇 년 전이군요..) 사무엘 님의 시선이 조금 거북하게 다가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부턴가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사무엘 님의 종교 및 성경관련 포스트를 즐겨 읽은지는 꽤 되었습니다. 재미있지요?^^

    평신도에 불과한 저의 지식은 분명 일천하겠으나 교리와 성경에 상당한 '관심'은 가진 편이라고 얘기할 정도는 된다고 자부합니다. 또 Vulgata, Douay-Rheims처럼 사무엘 님이 좀 싫어하시는 편인^^; 역본을 교회의 전통과 역사가 담긴 역본이라고 생각하여 사랑하는 편입니다. (저는 저 역본을 한글로 적을 때 원어를 존중하여 '불가타', '두에-랭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ㅎㅎ 두에-랭스의 경우 영어성경이긴 하나 영국의 가톨릭교회 박해를 피해 프랑스에서 번역된 것이므로..)

    사무엘 님께서는 조금 안타까우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천주교를 절대무오의 진리로 받들어 믿고 살아가고 있으며, 천주교가 구원의 확실한 방주임을 믿습니다. 성경 말씀과, 연옥의 존재와,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예수께서 계심과, 예수께서 베드로와 그 후계자에게 수위권을 부여하셨음을 한치의 의심 없이 믿습니다. 그리고 분명 제 자식에게도 그 구원을 위해 천주교 유아세례를 받게 하고 천주교 교리를 가르칠 것입니다.

    사무엘 님 글에 감정이 상했다거나 하는 일은 없으니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전 사무엘 님의 종교관과 문체에 아주 익숙한! ㅎㅎ 이 블로그의 오래된 애독자이자, 날개셋을 정말 감사하게 쓰고 있는 사무엘 님의 팬이니까요.^^

    오늘밤도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무슨 끼가 발동했는지 그냥 갑작스럽게 커밍아웃을 하고 싶더군요. ㅎㅎ
    그냥 생각없이 '겉보기에 마음에 들어서' 천주교에 적을 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일교차가 심하군요. 사무엘 님 건강 유의하십시오!

    1. 사무엘 2012/03/16 08:46 # M/D Permalink

      겨울하늘 님, 오랜만에 뵙네요! :)

      지금까지 저의 경험으로는, 저의 종교색 관련 글에 불쾌감과 반감을 표시한 수많은 분들치고 천주교 교리를 제대로 알고 믿기나 하는 사람을 거의 못 봤습니다. 자기는 교리에 목숨을 거는 독실한 신자가 아니고 일반 불신자나 다를 게 없으면서, 그냥 남 종교 교리 비판하는 걸 싫어하는 케이스였죠. 그러니 말이 통한 적이 없고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상대하기가 오히려 쉬워요.

      그런데 직접 두에-랭스 역본과, 천주교의 핵심 교리들을 언급하면서 자기는 스스로 그걸 당당하게 인정하고 믿는다고 말씀하시는 분은 굉장히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며, 제가 수 년간 이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진짜 처음 뵙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역시나 제 홈페이지에 오시는 분들 중에 별의별 이력을 지닌 경우가 많고, 글은 더욱 조심해서 써야겠다는 걸 이번 일을 계기로 또 느낍니다. 신기하네요. ㄷㄷㄷ;;

      저의 신앙의 양심을 존중하고 글을 읽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만 요즘 일교차 크다고 느끼는 건 아니죠? 선생님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4. 백성 2012/04/06 12:02 # M/D Reply Permalink

    안티들이 성경(물론 개역을 공격하지만.) 외에 주로 공격하는 건, 천주교와 개신교의 비리, 잘못 등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천주교와 개신교는 기독교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예 기독교라는 집합 내에 포함시키지도 말아야 할 집합들을 합집합 시켜서 기독교 Set라고 부르니, 짚어도 뭘 잘못 짚었죠.
    물론 개신교 Set 내에도 기독교 Set와 교집합인 사람들이 있고 이게 천주교 Set와 기독교 Set의 교집합인 사람들보다 많긴 하지만, 그래도 개신교 Set가 기독교 Set의 부분집합은 아닙니다.

    (수덕 근성이 발휘되어서 집합론을 이야기했지만 무시하세요.;;;)

    KJB 진영에서 좋은 신앙의 소유자 대표자 격으로 말하고 있는 청교도 역시, 원주민 살해 병크를 저질르면서 이게 개신교 잘못이라고 하는 많은 훌리건들을 양성했습니다.

    결론은, 기독교 = 천주교 + 개신교 이렇게 나누면 필연적으로 기독교 = 악마 이것밖에 답이 도출되지 않습니다.
    루터 칼빈 병크로 인해 답이 없죠. 그런데 많은 논객들은 저 명제가 틀렸다는 걸 인식을 못하고 있습니다.

  5. 슈페리어 2012/05/09 19:40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용묵님. 용묵님 블로그의 이 글을 다시 읽다가 잘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여쭙고 싶어요.

    3. 또한 기독교는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유아 세례는 더욱 거부하는데... 이건 과거의 종교 개혁자들조차도 가장 청산을 못 한 분야에 속하는지라 어지간한 개신교 교파들도 천주교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더 강하게 말을 못 하겠다.

    라고 써주신 글에서 "기독교는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유아 세례는 더욱 거부하는데" 라는 부분은 무슨 뜻인가요?
    기독교 내의 교회에서 세례를 하고있는데 기독교가 거부하고 있다니 왜 이렇게 적어주셨는지 잘 이해가지 않아서요.

    5.베드로라는 이름은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돌멩이라는 뜻일 뿐이며,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 결코 아니다.
    라고 하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릴게요.

    제가 아직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하여 그러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 사무엘 2012/05/09 21:41 # M/D Permalink

      3. 행 8:36-38 (특히 37절도 포함!) 등 성경의 용례를 보면 성경에 세례란 없습니다.
      온몸을 담갔다가 나오는 침례만이 있구요, 게다가 그 침례도 스스로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청소년 이상에게 줘야 맞습니다.
      그것이 변질되어서 제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까지 쉽게 교회 회원으로 만들려고 세례가 되었고, 특히 성경적으로 아무 의미 없는 유아 세례까지 생긴 것입니다.

      훗날 종교 개혁 때 천주교에서 빠져나온 개신교 교파들은 '이신칭의' 하나는 건져서 기독교로 돌아왔지만, 세례까지 침례로 되돌리지는 못했다는 게 본문의 의미입니다.

      5. 요 1:42를 참고하세요. 게바 = 베드로 = 돌(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입니다.
      건물을 짓는 기반인 '반석'하고는 완전히 다른 문맥이죠.
      마 16:18은 “베드로야, 넌 이름이 돌멩이라는 뜻이지? 근데 나는 이런 커다란 반석 위에다 교회를 세울 거다”인 언어유희 뉘앙스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자리에서는 여기까지만 설명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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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김 성모 화뷁님의 만화에 있는 아래의 유명한 짤방을 알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모'를 '부친'으로 잘못 적은 게 아닐까 싶다. ㅋㅋ
그런데 어라? 성경을 보니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남편도 부친이 복수인 거 같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님이 태어나시니라. (마 1:16)
비로소 예수님 자신이 서른 살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분은 요셉의 아들이신데 요셉은 헬리의 아들이요, (눅 3:23)

물론,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부부 관계에 의해 태어난 분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다른 인물에 대해서는 '낳고 낳고' 일색이다가 예수님에 대해서만 저렇게 예외적인 진술을 해 놓았다. 요셉이 예수님을 '낳은' 게 아니므로.
누가복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이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요셉의 아들인 것처럼 보였다고 기록해 놓은 독특한 필체를 주목하기 바란다. 재미있지 않은가?

허나 이것은 그리 어려울 것 없는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계보는 마리아네 집안의 계보이다. 헬리는 요셉의 장인이다. (☞ 자세한 설명 클릭)

성경이 사위를 아들이라고 적은 것은 모순이 아니며, 부정확하고 모호한 표현을 뭉뚱그려 쓴 것도 아니다. 그 당시 사위는 법적으로 장인의 아들과 동급으로 취급되었다. 영어 표현이 괜히 son-in-law가 아니다. 삼상 26:17에서는 사울이 사위 다윗을 아들이라고 일컬었으며, 룻기를 읽어 본 분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시종일관 딸이라고 불렀음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 6:3처럼 요셉과 마리아의 부부 관계에 의해 태어난 진짜 아들딸들까지 전부 아예 사촌으로 해석하면서 마리아가 평생 동정을 지켰다고 주장하는 모 종교의 주장은 내가 보기엔 드립이다.. 사위· 며느리라면 차라리 아까처럼 성경적 근거라도 있지. -_-;;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마리아는 남에게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 그대로 따라라”(요 2:5)라는 말도 하고, 성령 강림을 위해 다른 성도들과 같이 열심히 기도도 하는 등(성경에서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인 행 1:14), 신실한 크리스천의 모습이 더 부각될 뿐, 하나님의 어머니 따위의 이미지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김 화백 만화에는 오류가 많지만,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 언뜻 보기에 자비심 없어 보이는 문체와 이해가 잘 안 되는 구절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KJV 이외의 변개된 성경들은 유감스럽게도 성경의 정확도와 신뢰성을 김 화백 만화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루시퍼를 '계명성/새벽별'로 변개하여 사탄 마귀에게 예수님의 칭호(계 22:16)를 붙였다거나,
이스터를 유월절로 바꿔서(행 12:4), 베드로의 재판(과 처형) 스케줄을 이미 지나 버린 유월절 타이밍으로 엉뚱하게 뒤섞어 버렸다.

유월절이 지나고 무교절 기간에 베드로가 체포되었는데, 그 베드로를 유월절이 지난 뒤에 끌어낸다고라?
2만 1천원짜리 밥을 사 먹고는 2만원 내던지면서 “잔돈은 애새끼들 과자나 사 주라”고 쿨하게 나가는 논리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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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2/01/17 08:44 2012/01/1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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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범준 2012/01/17 11:29 # M/D Reply Permalink

    1. ㅎㅎ 이것 역시 지난번 번개 때 예고받은 글이군요. 글 감사합니다. -> 번개 모임을 하면 이런 걸 다 알 수 있어서 좋다니깐~.

    2. 아하! 영어에서 법적 친족 관계를 나타낼 때 쓰는 'in law'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발단이 되었군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가 서로 모순이 되어있는 것 같으면서도 둘 다 사실일 수 있는 이유가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의외입니다. ㅎㅎ

    3. 2의 이유로 인해 유대인 사회에서는 아예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자녀도 유대인이 되는 관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링크된 윤성목 목사님의 글도 잘 읽어 보았습니다.

    4. 아무리 생각해도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하였으므로 요셉의 아내가 될 수 있고, 따라서 동정이 될 수 없는데 이런 수많은 진실들을 저 멀리로 보내버리고 자기 식으로 끼워맞추려고 애를 쓰는 저 RC들은 이 세상의 희대 바보-_-;죠.
    정말 저 롬완 개톨릭 집단은 아주 별꼴-_-입니다.

    5. 행12장의 '이스터' 번역의 정당성은 그 문맥 자체가 설명하고 입증해주고 있으니 두 말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2. 백성 2012/01/17 23:09 # M/D Reply Permalink

    누가복음 족보 중에, 셀라는 게난의 아들이고 게난은 아르박삿의 아들이라고 한 게 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와 력대기에 모순(인 것 같이 보)이지요. 허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쉴드가 있지요.

    그거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는 역사가

  3. 사무엘 2012/01/18 12:27 # M/D Reply Permalink

    소범준, 백성: 변개된 성경의 위상을 김 화백 만화에다가 비유한 건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함.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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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나님을 어느 정도로 알고 있으며 당신과 그분과의 관계는 현재 어떠한가?
성경의 인물들과 비교해 보면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성경에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장 친밀했다고 기록된 인물은 단연 다윗임이 틀림없다. 그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사랑하였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하나님 앞에서 심지어 어리광을 부리고 망가지는(?) 것까지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삼하 6:14, 21-22).

그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최대한 비천하고 불쌍하게 보이면 하나님도 결국 자신을 동정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다(삼하 16:12).
심지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때도 사람의 손에 떨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징계를 받는 것을 택했다(삼하 24:14).

이 정도로 하나님과 친밀했으니 그가 시편의 대부분을 기록하게 되고, 하나님 역시 그를 ‘내(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행 13:22)이라고 일컬으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2.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으로 예수님을 깜짝 놀라게 한 대단한 사람이다(마 8:6-13). 그는 병에 걸린 부하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찾아온 선한 군인일 뿐만 아니라, 군인 정신에 입각하여 놀라운 신앙관을 갖고 있었다. 자기도 부하를 거느리고 명령 권한이 있는 장교인데, 하물며 예수님이라면 말만 하면 병이 뚝 떨어질 것이니 구태여 자기 집에 감히 찾아올 필요조차 없으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거 생각해 보아라, 엄청나지 않은가? 덕분에 그는 원격 진료 즉각 완치(?)라는 기적을 그 믿음대로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능을 주시고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놀라게 할 수 있다(긍정적인 쪽, 기쁜 쪽으로!). 심지어 천장을 뜯어서 병 걸린 친구를 예수님 앞에 내려다 놓은 친구들처럼 돌발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머리를 써서 무엇이 더 합리적인지를 하나님과 reasoning을 하고(사 1:18), 그걸 끈기 있게 밀어붙여 보도록 하자. 이건 교만이나 하극상이 아니며, 가나안 여인의 명대답(마 15:27)이라든가 히스기야의 항변(왕하 20:3), 불의한 재판관 비유(눅 18:1-5) 같은 좋은 예가 있다. 기독교 신앙은 맹목적인 군대식 “까라면 까”가 아니다.

3.
욥은 의인이었다. 너무 흠잡을 데 없는 스펙이기 때문에 뭔가 특이한 계기가 없이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체험하는 기회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너무 어처구니없는 고난을 당했다.

욥은 그때도 딱히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아주 잘한 행동이다. 그는 끝까지 자기 결백을 주장하면서 자기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나타냈고, 하나님이 계신다면 많이는 안 바랄 테니 이 상황에 대해서 잘잘못이나 한번 같이 공정하게 따져 보고 싶다고 거듭 호소했다. 이것도 논리적으로는 지극히 정당한 대응이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너무 선하게 살아서 잘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진면모를 알고 그 앞에서 항복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그 어떤 일을 벌여 놓으실 수도 있고, 그 어떤 일을 벌여 놓더라도 선하고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면서 고민이 해결된 것이다.
세상의 악함을 한탄한 시편 73편 기자나 대언자 하박국도 비슷한 체험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참고: 2번의 reasoning과 3번의 reasoning은 상황과 문맥이 약간 다르므로 적용할 때 올바른 나누기가 필요하다.)

4.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일수록 자기 기도만 하는 게 아니라 남 기도에 대한 비중이 늘어나고, 더욱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바울은 남으로부터 연보를 받아서 고맙고 기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에게 연보를 함으로써 그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보상이 추가된 걸 생각하니 기쁘다고 성경에다 쓴 적이 있다(빌 4:17) 그리고 에베소서 1장에 기록된 그의 기도 제목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복 좀 달라”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풍부한 영적 복을 이미 받았는지부터 좀 깨닫게 해 달라”이다.
바둑으로 치면 수읽기의 수준이 평범한 신자들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금송아지 사건 때의 모세의 중보 기도(출 32:11-13)도 단순히 자기 동족의 영달을 구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좋은 기도였다. 이런 기도일수록 응답률은 크게 올라가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한 사람은 기도 자체도 이런 식으로만 하게 된다. 그러면서 선순환...;;

그럼, 이제부터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정적인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자.

5.
최초의 여성 이브는 남편 아담으로부터 전해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조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나 쓴뿌리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창 2:16-17과 창 3:3을 비교했을 때, '만지지도 말라' 같은 극단적인 말이 불쑥 추가되기까지 하기는 어렵다.
“에이, 기왕이면 다 먹게 해 주지 하나만 저렇게 제약을 거는 이유가 뭐야? 치사하다.” 정도?

6.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악하고 게으른 종은 자기 주인에 대해서, 아주 까칠하고 엄격하고 인색하고, 종들을 불가능· 부당한 요구로 착취만 하는 악덕 고용주로 알고 있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아들도, 눅 15:29로부터 미뤄볼 때 아버지에 대해 평소에 꽤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혹시 여러분은 악한 현 세상 안에서 신앙생활을 육신의 깡으로만 버티면서 하다가, 제풀에 지친 나머지 하나님에 대해서 저런 오해에 빠지는 경우는 있지 아니한가?

주인이 맡겨 놓은 1달란트를 있는 그대로 잘 간수해서 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종은 주인에게서 심한 꾸지람을 듣고 벌까지 받는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잘 생각해 보자.

7.
예후는 아합 왕족을 개발살내고 바알 숭배자들을 학살하는 일은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하였으며, 이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하나님을 그렇게 신실하게 잘 따랐다고 보기 힘들다. (왕하 9-10)
잘못된 것, 이단 교리를 정죄하고 파괴하는 일에만 앞장설 뿐, 그 대안인 바른 것을 세우고 보급하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성도가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8.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은 세상적으로는 정말 괜찮고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키 크고 인상 좋고, 초기엔 성격도 아주 겸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영적인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카인 같은 '적당히 자기 식'이라는 게 치명적인 문제였다. 불완전한 순종(세상적으로 보기엔 그리 큰 잘못도 아닌데!)과 변명 일색은, 기본부터 글러먹어서 하나님께서 굉장히 싫어하시는 방식이었다.

다윗 같은 급의 큼직한 살인· 간음죄도 없건만 하나님은 이런 사울에게서는 일찌감치 정이 떨어졌고 손을 떼고 말았다.
사울은 다윗과는 달리, 성경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의 사고방식이 어떠한지를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 그게 그의 가장 큰 문제였으며, 그는 말년에는 정 안 되니까 무당을 찾을 정도로 영적 상태가 막장으로 치달았다.

9.
성경에는 카인, 아합, 이세벨, 가룟 유다 등 여러 악역(?)이 등장한다. 그러나 성경 66권을 통틀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악질적인 악역은 아마 발람일 것이다. 돈을 따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 양다리 회색분자일 뿐만 아니라, 그는 영악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이용해 잔머리까지 굴린 사람이다.

민수기 24장과 25장 사이에 있었던 일을 각색하자면 이렇다.
“이스라엘 민족은 참 신인 여호와 하나님이 보호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평범한 군사력만으로는 우리가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기쁨조 미인계를 동원해서 쟤네들을 우상 숭배와 음행으로 타락시키면 하나님이 제 발로 자기 민족을 징계할 수밖에 없게 된다. OK?”

이스라엘을 직접 저주하지는 못한 대신, 발람이 요런 천기를 누설해 준 것이다.
그래서 비록 이스라엘은 이 작전에 말려서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았으나, 성경은 이 원수 발람도 결국은 제 명에 못 살고 뒈졌다고 민 31:8에서 친절히 써 놓았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까지 발람의 길, 발람의 교리 등으로 두고두고 그를 디스한다. 신약에서 나쁘게 등장하는 구약 인물은 죽어서 지옥 가 있다고 간주하면 정확하다.

※ 맺는 말

내가 느낀 건데, 영적 성장에는 영재· 천재가 없다.
초등학생 나이 때 미적분을 술술 풀고 성경 100구절 이상을 암송하고 토플 만점을 받는 애는 있어도,
초등학생 나이 때 부모님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때리면서 훈계할 필요가 없어서 잠 22:15의 예외에 해당하는 애는 없다. 이래서 성경이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이다.

자동차 운전은 그야말로 개나 소나 다 할 정도로 쉬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자동차 설명서와 도로 교통 법규를 다 외우고 있다 해도 그런 어린아이에게 운전을 맡기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 역시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가 있으니, 위에서 열거한 예에 따라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바람직한 예를 벤치마킹하고 이를 따라가도록 노력해야겠다.

한동안 미친 듯이 컴퓨터나 철도, 교통수단 쪽 글을 썼지만 성경의 사색과 묵상의 결과도 틈틈이 메모해 놓은 게 있다.
필요악에 대해서, 그리고 모세에 이어 요셉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만 적어 놨는데 본격적으로 집필을 할 시간이 없다.

아 끝으로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믿음 행사를 위한 위법 행위의 적법성 여부에 대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그냥 “case by case”이다. 위법 행위가 뭔질 물으신다면 라합 내지 이집트 산파의 거짓말 같은 걸 가리킨다. 미래에 기회가 되면 이런 경우에 대한 분석도 다루고 싶다.
여백이 부족하니 오늘은 여기까지 쓰련다.

Posted by 사무엘

2012/01/10 19:28 2012/01/1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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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범준 2012/01/10 20:00 # M/D Reply Permalink

    1. 청카페에 올라왔다가 이제 여기에도 올라오는군요. 이 글 기다렸습니다.ㅎㅎ;;

    2. 성경에는 곳곳에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서 섬겨야 화평이 임한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제 너는 스스로 그분을 제대로 알며 또 그분과 평화롭게 지내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22:21)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며 번제 헌물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였으나(호6:6)

    하나님은 신앙 생활에 앞서 먼저 자신을 제대로 알고서 신앙 생활을 시작하길 원하셨던 겁니다.
    신앙 대상인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면 자기 식대로만 나가기 십상이겠죠. 알아야 면장을 하든지 말든지 아니겠습니까.

    지혜와 지식이 내 시대의 확고함이 되고 구원의 힘이 되리라. {주}를 두려워함이 그의 보배이니라.(사33:6)

    3. 신앙 생활도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 킹제임스 진영에서 많이 보고 배웁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에는 천재.수재가 없군요. 하나님과 나 자신을 바르게 알고 성경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과 올바로 교제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는 감도 듭니다만.

    아무런 올바른 바탕 지식 없이 나가다간 이런 책망을 맞딱뜨리겠죠.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은 아니니라.(롬10:2)

    1. 사무엘 2012/01/13 13:40 # M/D Permalink

      종합 시험 마친 후에 요 며칠 좀 퍼져 있었습니다. 좀 쉬고 싶어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상· 종교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은 하나님의 정체성과 성품에 대한 오해 때문에 생긴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정확히 제대로 알아야 인생이 즐거워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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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

크리스천이라면 인간의 '탐욕'이라는 심보에 대해서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특히나 오늘날 같은 자본주의 황금 만능주의 사회에서는 말이다.
영어 성경에서는 covet-ous-ness (동-형-명사)이라는 단어가 주로 쓰이고, lust도 그 자체가 동사도 되고 명사도 되는 단어이다.

살인· 간음보다야 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종종 간과될 뿐이지, 탐욕도 살인· 간음만큼이나 십계명의 마지막 10째 계명으로 당당히 등재되어 있는 금기 사항이다.
아니, 저걸 충족하기 위해서 살인(6)· 간음(7)· 도둑질(8)이 저질러지며, 그걸 합법의 이름으로 위장하거나 은폐하기 위해 거짓 증언(9)이 저질러지는 게 태반이니, 알고 보면 탐욕은 정말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잠시 첨언하자면, 본인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이 저지르는 무수한 죄들이 죄라는 n차원의 벡터 공간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여러 점· 선· 면이라고 했을 때, 십계명의 각 계명이 커버하는(금지/정죄하는) 영역은 그 벡터 공간의 기저 벡터들이 아닐까?
물론 기저 벡터이니 각 계명들은 벡터 공간 안에서 서로 선형적으로 독립(linearly independent)일 것이다.

아놔 갑자기 웬 선형대수학 드립이냐.. 어쨌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다: 마치 삼원색의 각 색을 여타 색깔의 혼합으로 얻을 수 없듯이, 탐욕은 여타 다른 죄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원천이라는 것.
살인과 도둑질은 몸으로 짓는 죄요, 간음은 몸'에다' 짓는 죄요, 거짓 증언은 입으로 짓는 죄라면,1) 탐욕은 마음만으로 지을 수 있는 죄이다.
그럼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자.

성경은 구약 율법 시절에서부터 지도자의 요건으로 탐욕을 미워하는 성품을 제시하고 있으며(출 18:21),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고기 드립 범죄 역시 그 원인이 탐욕이었다고 거듭해서 말한다(민 11:4, 시 106:14). 아간은 또 어땠던가(수 7:21)?
성경 66권을 통틀어 최악의 양다리 회색분자요 잔머리 굴리기의 달인으로 기록된 발람을 보라. 성경은 그도 탐욕이 문제였다고 지적하면서 신약에서까지 그를 두고두고 깐다(벧후 2:15, 유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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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도 이런 사람은 '싫은 녀석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출처는 개그 만화 일화 종말편.

이 탐욕 앞에서는 그 대인배인 사도 바울마저 GG를 쳤다! (롬 7:7) 이거 내가 보기엔 꽤 심각한 사실이다. 자기는 지금까지 어지간한 기독교인들보다 의롭고 선하게 살았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며 예수 따윈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탐욕이 출동하면 어떨까? ㄲㄲㄲㄲ 타! 암! 욕!

그렇게도 육신의 스펙이 완벽한 엄친아이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가 충분했다고 생각한 바울도, 그 계명으로 인해 고꾸라지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지한 것이다.
뒤이어 유명한 골 3:5는 탐욕이 우상숭배와 같다고 선언하며, 딤전 6:10은 돈을 사랑함이 그야말로 모든 악의 축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과 세상이 원수지간(약 4:4)이며 세상에 태양이 둘일 수 없는 것만큼이나,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도 없다(마 6:24, 눅 16:13).

한국의 일부 몰지각한 '교인'들이, 돌부처 앞에서 절하고 조상신 숭배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고 각종 무례한 짓(병크라고 부르는-_-)을 저질러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난 그 친구들이 지능안티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쉴드를 치고 싶다만, 뭐 지능안티가 아니라 해도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다.

그런데 그러는 당신도 하나님을 들러리 삼아서 돈님을 더 섬기고, 예수 믿어서 삼박자 축복 받고 팔자 펴고 예수 이름으로 주식 대박이나 나고 로또가 당첨되고 벼락부자 되길 바라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 상태도 그런 돌부처 섬기는 미개한(?) 부류들과 똑같다. 동일한 목적인데 추구하는 방법만 다를 뿐, 극과 극은 통한다! 이것이 성경의 판결이다. 아시겠는가?

남과 비교하면서 나도 더 열심히 살고 분발해야겠다고 단순히 긍정적으로 다짐하는 걸 넘어...!
자신의 정당한 수입에 만족하지 못하며 자기 신세 비관하고, 남이 잘 되는 걸 배아파하고 그게 미움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은 탐욕이며 죄악이다.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말 자체가 그런 심보가 어떤 형태로든 반영된 말이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라)

“누구누구는 강남에 번듯한 아파트 장만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월세야, ㅆㅂ” 라고 한탄하는가?
당신은 '너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를 정확히 위반했다. 근거는 출 20:17을 찾아보면 다 나온다.
“누구누구는 30대 나이에 벌써 그랜저 뽑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마티즈야” 하면서 부럽고 갖고 싶고 배가 아픈가?
약간 transform을 하자면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소유 중 아무것도 탐내지 말라.' 저촉이다.
자기도 유부남인데 친구나 친인척의 배우자가 너무 예뻐 보이고 같이 자고 싶은가? 이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내가 보기엔 요즘 TV 광고, 인터넷이 전-_-부 저걸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칼 들고 강도짓 하는 걸 금지하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은 저런 것도 금지하신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교과서적으로 훈계조로 “그러니 넌 무조건 닥치고 꾹 참고, 욕심이라곤 부릴 생각도 하지 마”로만 결론을 낼 거라면 내가 이런 글을 길게 쓸 필요도 없었을 터이니, 이제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자.

어디까지가 인간의 정당한 욕구 충족이며 어디부터가 죄악인 걸까?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도 일부 아주 완전 막장 인생이 아닌 이상, 자기도 욕심 부리고 싶어서 부리는 건 아니다.
이렇게 안 하면 이 험악한 세상에 눈 뜬 채로 코 베이고 바보 신세 되고, 뒤쳐지고 도태하는 것 같으니까 치열하게(?) 산다.

게다가 사실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자식 먹여 살리고 자식을 잘 되게 해 주려고 나쁜짓 하는 사람도 많다. 성경에도 마 7:11과 눅 11:11-13에서 이런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듯이 말이다.
이런 케이스들 때문에, 직업 종교인들은 사리사욕을 안 품으려면 아무래도 가정을 아예 안 꾸리고 평생 동정-_-으로 사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천주교나 불교를 옹호하는 사람까지 있다. 음, 그럼 사랑의 열매를 허락해 준 하나님이 나빴던 것이군. -_-

인간이 말세에 자동차와 컴퓨터 같은 눈부신 기계 문명의 혜택을 입으면서 나타나고 있는 분명한 추세가 있다. 인간의 심성 내지 양심을 이젠 도저히 믿을 수 없고(그러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 대신 눈에 보이고 분명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 위주로 사회 구조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반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덕목과 심성은 눈에 절대 보이지 않고 측정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는가?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아무리 제도를 개혁해도 입시 병폐는 없어질 수가 없으며, 이렇게 땅 좁고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 낀 콩라인인 우리나라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려면, 그런 형태로라도 애들 교육을 빡세게 안 시킬 수가 없다. 정말 측정해야 하는 걸 인간의 기술로 측정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 경제와 자유 경쟁 구조에서 그나마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믿을 만한 건 돈뿐이니, 영적 조명이 없이는 세상은 결국 황금 만능주의와 양극화로 당연히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게 효율적이니까. 고삐 풀린 탐욕은 바이러스의 효과적인 매개체이다. 욕 얻어먹어도, 남들도 다 똑같이 하는데 나도 안 하면 나만 바보 되니까 어쩔 수 없다.

이제 세상은 적당히 먹고 살 만하게 지내는 중산층이라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잠 30:8의 기도 제목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의식주' 중에 주(집!)조차도 빠진 채, “생명이 붙어 있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걸로 만족하라”는 성경 말씀은 너무나 고리타분하고 비현실적이고 지킬 수 없는 명령인 것 같아 보인다. (딤전 6:8)

누구는 손 하나 안 더럽히고 돈으로 돈을 벌고 지내는 반면, 평생 뼈빠지게 일하고도 가난을 못 벗어날 것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가난 구제는 나랏님이라도 못 한다”란 속담은 신 15:11로부터 미뤄 봤을 때 굉장히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명언이다.3)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이삭 줍기 같은 복지 제도는, 부자들의 자발적인 기부를 독려함과 동시에 수혜자도 직접 나가서 활동을 함으로써 생존할 만큼만 식량을 모으는 등, 여러가지 바람직한 면모를 갖추고 있긴 한데... 지금은 그조차도 시행하지 못할 정도로 인간이 악해졌으니 문제이다.

다만,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한 구조라고 해서 그 대안이, 정부에서 부자들 재산을 강제로 빼앗아서 나눠 주는 것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 교도소 인권이 아무리 좋아지더라도 “어차피 할일도 없는데 사고 한번 치고 빵에나 갔다 와야지”가 될 정도로 좋아져서는 안 되고, 복지 제도가 아무리 좋아져도 신체 멀쩡한 인간이 “연금만 받으면 되니 이제 일할 필요가 없네”가 돼서는 절대 안 된다. 그건 정말 망조가 단단히 든 미친 사회이다.

자본주의의 온갖 병폐를 만든 것도 탐욕이지만, 사악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계를 만든 것도 탐욕이다. 난 개인적으로 그런 식으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부추기는 복지 포퓰리즘을 혐오 수준으로 굉장히 싫어한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나라를 무슨 유럽의 복지 국가들과 비교하면서 이상하게 열등감과 피해의식 조장하는 글 내지 통계도 싫어한다. 자세한 이유는 이 자리에선 언급을 생략함.

이제 슬슬 글을 맺겠다.
지금 전세계 국가들이 경제가 어렵다고 하고, 특히 막대한 빚에 허덕이고 있다.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조차도 빚이 억소리 나는 수준이라고 하니, 이 세상에 그럼 도대체 진짜 채권자는 누구인지 궁금하다. 극소수 석유· 에너지 재벌? 돈놀이를 세계적으로 잘 하는 은행? 도대체 누굴까?

결혼을 위해 집을 마련해야 한다거나, 누가 갑자기 불치병에 걸렸다거나 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어지간하면 없으면 그냥 없는 대로 분수껏 살고 싶은데 이 세상의 신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다가 돈 돌아가는 통로 어디선가 지뢰가 빵! 터지기라도 하면, 전세계 경제가 가까운 미래에 수습 불가능의 막장 패닉으로 빠지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성경을 통해, 인간의 탐욕이라는 관점에서 문제의 원인을 진단해 보았으나, 그 처방은 영적 전투를 야기하며 결국은 역시 개인의 믿음과 영적 상태에 달려 있음을 느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다고 탐욕이라는 번뇌가 극복되는 건, 만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고.. ㄲㄲㄲㄲㄲ

Notes:

1) 성경은 당연히 거짓말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며 사탄 마귀가 거짓의 아비(요 8:44)라고 말한다.
하지만 십계명의 제9계명은 쉽게 말해, 돈이나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곳에서 부당한 이익을 위해 거짓말--특히 법정에서 위증--을 하지 말라는 문맥이다. 일체의 거짓말을 무조건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가령, 좋아하는 여자를 꼬시려고-_-, 데이트 분위기를 매끄럽게 유지하려고 당장 마음에 없는 말을 좀 한 걸 갖고 나중에 하나님이 “너 임마, 그때 왜 거짓말 했어?” 라고 책망을 설마 하시겠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그렇게까지 기계적이고 융통성 없고 deterministic하기만 한 분이 아니라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ㄲㄲ

뭐 그렇다고 해서 모든 white lie가 성경적으로 다 바람직하기만 한 건 또 아닌데.. 대표적인 예로는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 그 사실을 솔직하게 알려 주는 게 좋겠냐 하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나열하자면 글이 또 길어지니 일단은 여기까지만 쓰자.

2) 발람의 길, 발람의 잘못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까지.

3) 천년왕국은 절대로 공산주의의 이상향처럼 운영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동안에도 사유 재산 제도는 건재하며, 가난한 사람과 빈부 격차는 존재한다! 사유 재산은 마치 부부간의 사생활만큼이나, 그리고 보호 모드 운영체제에서 각 프로세스의 메모리 공간만큼이나 철저하게 개인별로 보장된다.
구약 성경에 '네 포도원', '네 우물'에서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던가.

Posted by 사무엘

2011/11/10 19:21 2011/11/1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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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라크넹 2011/11/10 22:45 # M/D Reply Permalink

    하나 부연하자면, 복지 포퓰리즘은 사회주의적으로 봐도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지가 필요한데 포퓰리즘에 휩쓸려서 그 결과에는 신경쓰지 않고 다수만이 요구하는 복지를 하게 되니까요. 덕택에 마치 우파가 좌파를 "빨갱이"로 매도하고 좌파가 우파를 "수구꼴통"으로 매도하는 것 만큼이나 센세이셔널한 말이기도 합니다만(현실에서는 우파도 좌파도 한 낱말로 압축이 불가능하죠).

    뭐, 그걸 따지고 넘어 가도 사실 인간의 탐욕은 지금의 웬만한 정치·사상들이라는 것들이 돈의 종속 함수라는 것만으로도 쉽게 설명될 문제죠. 돈이 자유 변수가 되면(음... referentially transparent하다?) 소득의 공평한 분배니 자본주의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될 겁니다.

    1. 사무엘 2011/11/11 12:05 # M/D Permalink

      우리나라는 건국 당시에 이념 때문에 하도 데여서 그런 식의 몰아붙이기와 개싸움은 불가피-_-한 구도가 돼서 그렇습니다. ㄲㄲ 하지만 당대 상황을 이해하며 지금 사회 구조에 대해서 누굴 원망할 생각은 없고요.

      성경에서 공산주의(공동체에서 모든 구성원이 재산 공유)의 이상향 비스무리한 건 사도행전 2장의 초대 교회에서 딱 한 번 나오고 끝인 반면, 시장 경제+자본주의(사유재산, 빈부격차 인정)의 이상향은 그래도 계속해서 일관되게 언급됩니다. ㄲㄲ

      가능하기만 하다면 작은 정부 상태 그대로 부의 환원은 부자들이 기부 같은 방법으로 알아서 해 주면 제일 좋죠.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부자들이 썩어빠지고 부정부패한 게, 부자들의 재산을 강제로 분배하는 상위 계층이 썩어빠지고 부정부패한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게 무서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 소범준 2011/11/11 18:54 # M/D Reply Permalink

    1. 벡터니 기저벡터니 n차원 벡터공간... 흠좀무.
    여기선 정말 아리송하네요(개념을 전혀 모른다는 게 아니라 복잡해져서효)..;; 그래서 몇번씩이나 생각하며 읽었던 듯 싶습니다.

    2. 어쨌거나 탐욕은 우리 마음속에 제일 비일비재한 죄악인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규명되면 께림칙하지만 정작 자기가 거기에 걸려들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아주 지독한 냄새족(어라 이건 화학이 아닌데..) 죄악이죠 -_-;;

    3. 탐욕도 결국은 자신의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교만과 탐욕이 이기심을 일으키기도 하지만요.
    탐욕과 교만, 이건 우리 모두가 평생을 걸고 싸워야 할 진짜 적인 것 같습니다.(물론 가장 큰 대적은 마귀지만. 벧전5:8)
    탐욕..... 소름이 돋네요. 저도 어린 시절에 은밀하게 탐욕의 쓴(!)맛을 좀 겪어봤거든요.(자세한 내막은 나중에 뵙거나 천국에서 뵈었을때 허심탄회하게 하도록 하죠.)

    1. 사무엘 2011/11/12 01:00 # M/D Permalink

      약 4:3, 히 13:5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까놓고 말해서, 남이야 불의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든 말든 자기만 만족할 줄 알면 되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면 죄의 여파가 사람을 이 정도로 비참하게 만들고 사회가 헬게이트-_-로 변하지는 않을 겁니다.

    2. 소범준 2011/11/12 22:27 # M/D Permalink

      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3. 소범준 2011/11/12 16:48 # M/D Reply Permalink

    아! 가만 보니 은사주의도 또다른 형태(모습만 다르고 본질은 아주 같은)의 탐욕을 양산하는 기독교 내부의 괴물-_-(저는 앞으론 이단을 이따금 괴물이라고 하겠습니다)이라 할 수 있지 싶겠군요. 방언이나 신유가 안 나타나니 구원받지 못했다 하면서(물론 다 이렇다 할수도 없겠지만) 그 집단의 사람들 개개인의 질투심을 유발하고 헛-_-된 욕심을 유발하여 신령한 기운을 받으려고 기를 쓰게 하는 기독교식 토속 종교의 병크-_-는 두말 할 것 없겠죠.

    1. 사무엘 2011/11/12 23:06 # M/D Permalink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그런 잘못된 은사주의도 탐욕의 산물입니다.

  4. 삼각형 2011/11/12 23:27 # M/D Reply Permalink

    탐욕이란 것은 이기심에서 온 것이겠죠. 나만 잘 되고자 하는, 둘 다 죄의 본성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고요.

    어느 정도 신앙 수준에 오른 신앙인에게는 세상적 욕망보다는 영적으로 낫고자 하는 마음의 측면에서 신앙이 남보다 더 나았으면 하는 욕망으로 바뀌곤 합니다. 그것도 탐욕의 변형이겠죠. 이것 역시 때로는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1. 사무엘 2011/11/13 09:06 # M/D Permalink

      역시 좋은 지적입니다. 신앙 생활이 육신의 깡과 의욕, 남에 대한 의식과 경쟁으로 이어진다면 흠...;;
      교회가 금방 헬게이트로 바뀌겠군요. -_-;;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에서의 보상에 대한 관심이나 욕심이 전~혀 없이
      “난 그냥 구원 받았고 죽어서 천당 가는 걸로 족하니, 이 세상에서는 십자가 따위 안 지고 좀 편하게 살고 싶어요.”
      그건 겸손도 아니고 탐욕이 없는 것도 아니라 불신이고 다른 형태의 탐욕일 뿐입니다. ^^

    2. 소범준 2011/11/13 09:56 # M/D Permalink

      또 굳이 덧붙이자면, 하늘의 상급을 소망하면서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딤전6:6 - 이건 '안주'가 아님)하면 그건 그나마 바람직하죠. 뭐, 상급을 바라면서 믿음의 경주(진정한 의미의 선의의 경쟁)가 없으면 당연히 말 안되니깐.

  5. 사무엘 2011/11/14 13:50 # M/D Reply Permalink

    탐욕글에 번뇌짤을 추가할 생각을 왜 지금까지 못 하고 있었나 모르겠다. 추가함. ㅋㅋㅋ
    성경과 개그 만화 일화의 만남!! (본격 개그 성경 일화 만들 기세)

    1. 백성 2011/11/14 16:57 # M/D Permalink

      자, 잠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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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下

첫째, 하나님은 죄 자체에 대해서는 절대 자비심이 없다. 지옥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국민 정서가 좀 이상하고 사법 체계도 그런 관행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나쁜짓을 저질러도 가해자 역시 죽었다거나, 술 취해서 실수한 것이라거나, 우울증 때문이라거나,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면 굉장히 동정· 미화와 정상 참작을 잘 한다. 싸움을 중재하는데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며 시빗거리가 정당한 것인지를 보는 게 아니라 누구 처지가 더 딱한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누가 더 많이 얻어맞고 다쳤는지를 더 감안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그냥 눈에 보이는 결과로, 객관적인 증거 확보가 용이한 쪽으로만. -_-)

하나님은 이런 사고방식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지옥엔 히틀러, 유 영철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너무 착해서 구원도 못 받은 사람도 많고, 비참하게 살다 불쌍하게 죽은 사람도 엄청 많이 가 있다! 이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죄는 철저히 미워하고 회개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로 인해 민망해하고 가슴 아파하고 죄의 결과를 수습하고 그 대가를 기꺼이 치러야 한다. 죄를 무슨 치유 받아야 할 질병인 것처럼 여기고 동정하는 것, 죄 지어서 당연하게 받은 벌을 무슨 의인이 받는 시련과 영적 전쟁처럼 미화하는 것, 그 사람도 잘못된 사회 시스템의 피해자일 뿐이라고 감싸는 것...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복음에 대해 아주 잘못된 인식을 심어 놓는다. 이런 사고방식을 종교의 탈을 쓰고 부추기는 위선자들에게 절대 속지 말아야 한다. 용공 사상만 불온 사상이 아니다.

둘째, 하나님은 진심어린 회개에는 무한 관대하다.

제아무리 인간의 죄가 무겁고 심각하다 한들 하나님의 사고방식에는 명예 살인이란 건 없다. 자해나 자결로 명예를 회복하는 행위를 결코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것이 일본과 서양 문화권 사이에 죽음에 대한 인식을 서로 극과 극으로 갈라 놓기도 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 때문에 진짜로 죽어야 할 때에도 동물을 대신 죽게 하셨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다! 하나님의 보혈이 대가로 치러졌는데 그 무슨 죄인들 회개하면 사해지지 않겠으며, 과거에 어떤 나쁜짓을 한 사람이라도 자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겠는가? 죄에 대한 찔림부터 있은 후에 그 상처를 아물게 해 줄 복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법칙이다. 예수님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성도를 결코 거절하지 않으신다. "넌 그리스도인이 될 자격도 없다. 너처럼 우리 교회를 배반하고 내 명예에 먹칠을 한 녀석은, 부끄러운 줄 알면 나가서 곱게 할복해라" 그러시지 않는다!

셋째, 박해 상황만 아니라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간과의 관계와 대체로 모순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양심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양심도 믿음도 필요하지 않은 '시스템'이라는 것을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발달시키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엔 별 관심이 없다. 크리스천은 불신자가 언뜻 보기에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을 믿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 말도 안 되고 보편적인 이성과 양심에 위배되는 사항을 믿는 게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의 모습은 불신자에게 어떤 형태로 비쳐져야겠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는 보이는 사람에게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는 게 당연하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그래서 성경엔 굳이 야고보서 말씀을 차치하고라도 요 13:35, 요일 4:11-12 같은 준엄한 구절이 있다.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기 전에 사람하고부터 먼저 화해하라고 말한다(마 5:23). 하나님 따로 사람 따로가 절대 아니다. 대인 관계와 대신(對神) 관계는 별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는 하나님께 고백하더라도, 죄의 결과로 인해 야기된 잘못과 허물은 사람 간에 서로 고백하라고 성경이 명령한 것이다. (약 5:16)

- 하나님께 자백(소스 코드 차원에서): 돈을 사랑했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사람으로부터의 칭찬을 구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을 어겼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죄는 결국, 선하신 분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고 그분 말씀을 믿지 않은 잘못된 마음 상태에서 비롯됐다 등등..

- 사람에게 자백(실행 결과 차원에서): 오늘도 내 성질대로 욱하고 말았는데 이건 내 잘못이다. 미안하다, 내가 좀더 당신 입장에서 생각을 못 했다, 이 사고는 내가 잘못된 지시를 내려서 일어난 것이다, 내가 뭘 제대로 안 해서 그렇다, 내가 몰래 슬쩍 했다 등등...

명확하지 않은가? 그 후 회개의 열매는 당연히 행동으로 나타난다. 마음을 완전 정반대로 돌이키고, 과거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수습하는 것이다. 성령님이 임재하고 죄에 대해 극도로 민감해진 사람이라면, 저렇게 안 하는 게 비정상이다.

남이 받아들이든 말든 내가 사과해야 하는 일이면 사과하고, 처벌을 감수하고, 필요하다면 물질적인 배상도 하고... 영적인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불신자들이 “그럼 평생 나쁜 짓 해 놓고서 주둥이로 예수 믿고 회개만 달랑 하면 천당 가냐?” 뭐 이런 식의 비아냥거림이 나올 일이 없게 하나님은 다 배려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불신자에게라도 그런 식의 실족거리를 만들지는 않는다.

죄를 마음껏 지을 수 있던 상황에서는 온갖 나쁜 짓 다 하다가, 죄가 탄로나고 경찰에 검거된 뒤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입 싹 씻듯이, 잘못을 일단 인정하는 게 전략상으로 더 나으니까 '죄송~' 이러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회개가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런 것 말이다. ㄲㄲㄲㄲㄲㄲㄲ 개그 만화 일화 3기 4화 요가 교실 편 -_-;; 비둘기의 포즈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또한, 몇 년 전엔 우리나라에서 어느 사형수가 그저 죄책감과 불안에 사로잡혀서 안절부절 못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마치 가룟 유다의 도피성 자살을 연상케 하는 이런 행위도 회개가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며, 동정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냥 속 시원하게 사형 집행 해 주는 게 당사자와 국가와 국민 모두를 위해서 훨씬 나을 텐데!

본인은 보지는 않았지만, 수 년 전에 개봉한 영화 <밀양>에도 복음을 왜곡하는 여러 스토리 중, 이런 장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저 놈(자기 자식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 안 했는데 어떻게 신이 먼저 용서를 할 수 있어?” 정말 가슴아프기 그지없는 장면이다. 이 글의 서론에서 언급한 저 두 사람은 “피해자 여러분께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가 있길 원합니다” 같은 말이 입에 발린 위선으로 비치지 않도록, 더는 실족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어느 사역자보다도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자기를 희생하여 회개의 열매를 보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성경에는 이 주제와 관련하여 구원과는 완전 별개로, '사망에 이르는 죄'라는 개념이 있음을 첨언하고 글을 맺겠다. (요일 5:16-17) 이 사망이란 하나님께서 도저히 회개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성도를 극단적으로 데려가시는 경우라든가 사회의 형벌을 의미할 수 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연쇄 살인 흉악범이 회개하여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그는 구원 받은 사형수이다.
기독교 만화 전도지를 보면, 안티들이 그렇게도 조롱하듯이 흉악범이 감옥에서 예수 믿어서 사형 당한 뒤 천당 가고, 그 반면 자기 의에 가득차서 예수님을 거부한 형사 내지 교도관은 죽어서 지옥 가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심지어 더 극단적으로 가자면, 그 흉악범에게 살해 당한 피해자는 지옥 가고 가해자는 예수 믿어서 구원 받는 것마저도 가능하다. 교리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단 하나 최후의 보루. 성경은 사형수에게도 인격이 있네 같은 인권 드립-_-이나 치면서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사형 제도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구원받아서 천당 가더라도, 사형은 당하고서 그 뒤에 간다. 이것이 기독교 교리의 논리 체계이다. 지금도 사형 반대 외치면서 피해자 유족들의 가슴에 두 번 못을 박는 위선적인 종교인들 역시,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다시 공부하면서 자기의 오류에 대해 깊이 회개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CASE STUDY:

1980년엔 5공 시절을 떠들썩하게 한 이 윤상 군 유괴 살해 사건이 있었다.
원조 교제로 여고생을 임신시키기도 하고 도박빚에 시달리기도 하던 어느 불량한 체육 교사가,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던 제자인 이 군을 납치하여 인질극을 벌이려 했는데, 가혹한 환경에서 감금당해 있던 이 군이 그만 질식사하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이 군이 수 개월째 행방불명이고 수사가 벌어지던 동안엔 전통이 이 군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부모를 위로하고, “유괴범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살려 주면 당신도 살고(정상 참작-_-), 아이를 죽이면 당신도 죽는다”고 이례적으로 전두환스럽게 강경한 대국민 담화를 손수 발표할 정도였다.

범인은 결국 잡혔고, 전통은 약속을 지켰다. 살해범인 주 영형이 수차례 항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982년에 사형이 확정되었으며 1983년, 서울 구치소에서 교수형을 당함으로써 세상을 떠났다.
제아무리 29만원, 빛나리, 전통이라 해도, 저 순간만큼은 정말 사회 정의를 실현해 냈다. 멋있다. -_-;;;

돈 때문에 제자를 유괴· 살해한 천하의 개쌍놈인 주 영형도 옥중에서 기독교에 귀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이 군과 그의 유족에게 사죄하는 말을 남겼으며, 나름 두 눈과 콩팥을 기증하고 죽었다. 오늘날도 사회 구조가 최소한 이런 결말이라도 만들 수 있는 형태라면 유가족들에게 그나마 덜 억울할 텐데!

Posted by 사무엘

2011/10/31 08:41 2011/10/3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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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특백 2011/10/31 10:57 # M/D Reply Permalink

    좋은 글 감사합니다.

    보통 살인/간음 같은 죄는 하나님께도 짓고 사람에게도 짓는데(엄밀히 말하면 사람에게는 '허물' 이겠습니다만)
    하나님께 저지른 죄는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 주시는 것이지만 사람에게 지은 허물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아야죠.
    마치 마17:25-27에 의해 성도는 세금이 원칙적으로 면제되지만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정부에게 세금을 내야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왕 살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살인은 절대적으로 죄악시되어야 할 범죄이지만 '잔인하다' 라고는 할 수는 없겠습니다.
    '잔인하다' 라는 단어가 소위 인권단체에 의해 우려먹기 된 것도 있고 하지만 적어도 죽은 사람 입장에서는 구원을 받았으면 바로 천국행이니 신나는 일이고, 구원을 못 받았으면 gg;;이긴 하지만 애초에 자기가 안 믿었기 때문에 인과응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물론 “그러면 불신자들 다 죽여도 되는 거냐” 와 같은 태클에 대해서는 대비책은 있음.

    1. 사무엘 2011/10/31 12:36 # M/D Permalink

      하나님은 인간에게 정당하게 필요한 것은 당연히 다 적극 보장해 주십니다.
      그 관계를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죠.

      성경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나온다고 잔인하고 반인권적이라고 트집 잡는 친구들.
      트집 잡을 게 그렇게도 없는지, 아무리 좋게 봐 주려 해도 제 지각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보복을 할 때 천성적으로 딱 당한 만큼만 갚고 끝내던 동물이던가요? ㄲㄲㄲㄲ

  2. 특백 2011/11/01 01:21 # M/D Reply Permalink

    “필요 없어!”

    문자 감솨 ㄲㄲㄲㄲㄲㄲ

  3. 주의사신 2011/11/01 17:09 # M/D Reply Permalink

    지존파 일당도 구원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http://blog.naver.com/belega/50032454505

    사람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일당이었지만, 그래도 끝은 좋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1. 사무엘 2011/11/01 23:11 # M/D Permalink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지존파는 김 영삼 정권 말기에 우리나라 역사상의 마지막 사형 집행 때 죽은 게 아닌가 생각해 왔습니다만, 그보다는 일찍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군요.

      글에 기독교 간증 특유의 아전인수 해석이 있지는 않나 우려됩니다만, 내용이 사실이라면 다행입니다.
      사형 제도의 존재 여부가 사람에게 정서적으로 주는 차이는 큽니다.
      어지간한 싸이코패스라도 자기가 죽는다는 걸 직감하면 일단 두려워 떨게 됩니다.

      사형 제도가 있어야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보복(私刑)이 없어질 수 있고, 운 좋으면 저렇게 죽음 앞에서 개과천선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고,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손 양원 목사 같은 사례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걸 없앤 건 절대로 인권 향상이 아닙니다.

    2. 사무엘 2011/11/02 09:56 # M/D Permalink

      아, 리플이 있었나요? 보지도 않았는데? ㅋㅋ

      이 순신· 세종대왕이 만약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갔다면, 그 이유는 그분들이 우리가 흔히 아는 나라를 구한 성웅 내지, 한글을 창제한 천재· 성군이기 “만”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 또 무엇이을까요?
      우리가 함부로 고인드립을 치면서 판단할 수는 없으며 판단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토대로 어렴풋이 짐작은 가능하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는 오류가 없다고 믿을 뿐이지요.

    3. 특백 2011/11/02 15:57 # M/D Permalink

      아. 문장을 좀 수정해야겠군요. 그렇지 않으면 영락없는 고인드립이 된다니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세종대왕· 이순신이 지옥에 갔다”→
      “세종대왕· 이순신이 복음을 믿지 않았으면(애초에 복음을 듣지 못했다면.. 생략) 지옥에 간다”

      지적 감사합니다 ㅎ

    4. 특백 2011/11/02 16:55 # M/D Permalink

      지옥, 죄와 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안티들의 허점은 드러나죠. 그 글 리플에도 대표적으로 나와 있듯이 말이죠.

      1) “그러면 세종대왕도 이순신장군도 복음 듣지 못했으면 지옥 가냐? 나쁜 개독” -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불행하게도, 정답은 Yes 입니다.
      도저히 신을 못믿겠다면 차라리 '죽음' 이라는 더 큰 권위라도 인정해야지, 어차피 안개에 불과한 사람들을 왜 그렇게 존경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세종대왕이 지옥에 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지만, 그래도 세종대왕보다 더 큰 분이 계시기에.

      2) “니네자식이 한번 강간당하고 X가 짤리고 참혹하게 죽어나가는데 사형수 용서할 수 있나 봐라 뻔뻔한 예수잡신” - 손양원목사님께서 천당에서 주 예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슬퍼하고 계시지는 않으시나.. 생각되는군요.
      물론 그렇게 하지 못한 기독교인의 잘못도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No.
      참고로 성령이 임하시는 표적으로 (초대교회에만 국한되지만) 재산공유 시스템도 있었습니다. 공산주의는 그것이 성령의 힘(그것도 초대교회)인 줄 모르고 무력으로 하려다가 실패한 대표적인 케이스이기도 하고요.

      3. “피해자는 지옥에, 그 흉악한 살인범은 나중에 예수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이게 공평한 것인가요?” - 2번과 마찬가지로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
      나중에 이에 대한 비유 글을 올리려고 하는데, 죄수가 아무리 동료 죄수한테 잘해 봤자 왕의 말, 아니 최소한 간수 말이라도 따르지 않으면 석방될 수 없다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4. “저런놈들 있는 천국에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부처님 계신(!) 지옥에 가는 게 훨씬 현명하다” - 자기 합리화.
      욕지꺼리 한 번 하는 것만으로도 살인하는 것과 동급이기에, (애초에 간음이 왜 죄냐 하는 것도 그런 식으로 설명) 어차피 천당에 가면 그 사람하고 자신이 동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물론, 지옥 안가는 게 중요하지요.

      이런 식으로 있겠네요.
      그리고 저 글에 한 가지 옥의 티라면 현대인의 성경과 추도예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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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上

우리나라에는, 전국민이 알 정도로 시끄러운 사고를 쳐서 20세기에 교도소에 갔다가, 출소 후 기독교에 귀의하여 21세기의 여생을 이 분야의 사역에 바치겠다고 공언한 사람이 최소한 둘 있다. 이들의 발언은 매스컴에도 보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 하면......;;
하나는 삼풍 백화점 사장이던 이 한상 씨이다(회장이던 이 준 씨의 아들). 몽골 선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잘 알다시피 고문 기술자라는 말을 만들어 내며 한때 악명을 떨쳤던 이 근안 씨이다. 요 몇 년 전에 아예 목사 안수를 받았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야말로 저주의 이름으로 전락한 삼풍 백화점!
당시 경영진은 돈에 눈이 먼 나머지, 전세계의 건축 전문가들을 경악케 한 전대미문의 비리와 편법을 동원하여 백화점 건물을 혹사시켰다. 그러다 결국 1995년 6월, 거대한 백화점 한 동을 지진이나 외부 폭격도 없이 제 발로 와르르 무너뜨리는 초대형 병크를 터뜨렸다. 4층 기준으로 설계된 건물을 5층으로 무단 증축하고, 미관을 위해 기둥 수를 줄이고 있던 기둥도 굵기를 줄이고, 윗층에는 무거운 온돌을 얹고, 옥상에는 규정 하중의 몇 배나 더 무거운 에어컨까지 얹고... 전문가들은 그 상태로 건물이 어떻게 6년씩이나 버텼는지를 더 신기해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들의 죄질이 더욱 나쁜 이유는, 건물이 붕괴할 걸 알고도 자기네만 쏙 피하고 영업은 계속 강행시켰다는 점 때문이다. 귀중품을 지하로 옮기고 고위 임원들은 미리 대피하고서 말이다. 이건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때 패닉 상태에 빠져서 자기 혼자 마스터 키를 빼들고 전동차를 탈출해서 달아나 버린 기관사와는 차원이 다른 악행이다.

이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던 1천 명이 넘는 종업원과 쇼핑객은 건물과 함께 그대로 폭삭..
성수대교가 무너진 지 불과 8개월 남짓 만에,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평시에 최다 사상자를 낸 최악의 참사를 일으키고 국제 망신까지 초래했다.

한편, 이 근안의 과거 행적도 충격과 공포이다. 심문 전에 기선 제압용으로 한주먹으로 사과를 으스러뜨리는 퍼포먼스부터 시작해 물 고문, 전기 고문, 통닭 고문, 잠 안 재우기 등등.. 말이야 쉽지 당해 보면 정말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 그는 말했다. “내가 손대기만 하면 누구라도 불게 돼 있어.”

고문 출장까지 갔던 그가 돌연히 목회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흉악범이 회개하여 목사가 된 것과는 다른 차원이며, 왕년에 크리스천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회심한 것과도 성격이 다르다.

고문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반인권적이고 사악한 행위이다. 성경의 그 엄한 구약 율법조차 사형은 백 번 인정할지언정, 고문은 절대 없다.
다만, 이 근안을 까는 글은 인터넷에 이미 널리고 널렸으니 본인은 for the sake of completeness 차원에서, 일부러 좀 다른 관점에서 논리를 잠시 펴도록 하겠다. 오죽했으면 인류 역사에 고문이란 게 존재했을지도 잠시 생각해 보자.

뻔히 드러나 있는 혐의를 일단 부인부터 하고, 아무 죄책감도 없이 거짓말로 태연하게 잡아떼기만 하던--그래 봤자, 밑져야 본전이므로-- 인면수심 흉악범 김 길태를 보고 열불이 안 났을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고문이란 저런 신발샛길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는 게 본인의 육신적인 심정이었다. -_-;;

그리고 2006년 이래로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은 전북 대학교 이 윤희 씨 실종 사건을 기억하는가? 딸을 잃은 아버지는, 강력한 용의자이자--그러나 무능한 수사로 말미암아 증거 확보와 유죄 입증엔 실패-- 딸의 스토커이던 뻔뻔한 남학생으로 하여금 읽으라고 쓴 공개 성명서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이 사건을 맡은 수사관이라면 누구라도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 정도 사건은, 30년 전만 해도 물고문에 고춧가루 한방이면 일도 아니었을 거라고 말이다. 네놈 선배들이 피땀 흘려 이뤄낸 민주화의 열매를 네놈 같은 녀석이 악용하는 게 통탄스럽다.” (☞ 원문이 있는 곳 클릭)

요즘 같은 첨단 과학 수사 기법과 심리 프로파일링 같은 기술도 없던 시절에 흉악 범죄에 맞서서 치안은 유지해야겠고,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정말 누가 누군지 모르는 간첩 불순분자도 우글거리던 시절,
비열하고 부작용의 우려도 만만찮으나 저비용으로 성과를 제일 간단하게 내는 방법을 현실적으로 외면할 수 있었겠냐 말이다.

고문을 옹호나 정당화할 의도는 절대 없으므로 오해 없기 바란다.
단지 전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그의 과거 행적이 그저 아무 이유 없이 하늘에서 그저 뚝 떨어진 건 아니라는 걸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더 잃을 게 없으니 배째라 하는 악질을 다스리는 제일 쉬운 방법은, 그 녀석들에게도 “더 잃을 게 있다는 걸” 일깨우고 공포에 빠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를 다스리기 위해 인간이 이열치열로 만들어 낸 차선책 중 하나가 고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에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두 사람은 동일하게 징역 7년이라는 죄값을 치렀다. 가정 전체가 풍비박산 났고 가족들까지 밖에 얼굴을 들고 다니질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한상의 집안은 피해자 배상금 명목으로 전재산을 압류 당했으며, 이 근안의 자녀 중엔 아버지가 누군지 밝혀지자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두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몽골로 떠난 후 언론으로부터 수 년째 별다른 소식 없이 잠적해 있는 이 한상과는 달리, 이 근안은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 응하면서 국내에서 활동 중인 것 같다. 그런데 발언의 수위가 다소 우려스럽다.

그래, 만에 하나 그는 왕년에 정말로 국가 명령에만 충성한 사람일 수 있으며, 고문도 상부 기관의 명령 내지 묵인하에 실적 쌓으려고,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수행한 것일 수도 있다. 무고한 사람 잡은 것보다는 그래도 진짜 흉악범이나 간첩을 잡은 공이 더 클 수도 있다. 나라가 망하기라도 한 것도 아닌데, 당대 상황을 감안하지도 않고 어제의 충신이 무작정 오늘의 역적으로 뒤죽박죽 평가 잣대가 바뀌는 언론 플레이도 본인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말은 목사 타이틀을 갓 얻은 그의 지금 처지에서 할 말이 아니다. 그런 변명은 그가 회개의 열매부터 충분히 보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이 근안 목사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주변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옹호하는 발언을 자발적으로 한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직도 그로 인해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린 사람, 파탄 난 가정이 즐비한 현 시국에서 그의 자기방어 변명성 발언은 더욱 많은 사람을 실족시키고 복음을 비방할 빌미만을 불신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선과 악, 죄와 벌, 회개 같은 것은 민감한 주제이다. 성경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며 오늘날 사람들이 반드시 정확하게 갖추고 있어야 하는 개념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라든가 복음에 대해 요즘 나돌고 있는 무수한 오해들도 불식시킬 수 있으며, 불신자에게 복음을 정확하게 전한다든가 교회 내부에서 죄로 인해 간증을 잃은 사람을 다루는 과정도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저 두 사람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저런 개념을 재정립을 한 번쯤 할 필요를 느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기독교는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종교 중 하나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굳이 종교라고 풀이하자면, 인간의 모든 문제의 원인을 죄 때문이라고 규정하며, 그 죄를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좀더 구체적으로는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해결하고 내세의 구원까지 얻으라고 가르치는 종교이다.

그 교리는 인간의 머리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자연인들 보기에는 완전 황당무계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그거야말로 인간의 지혜와 시스템을 초월하는 기독교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 교리로 인해 복음이 초기에 비방 받고 조롱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귀결이다. 성경은 그것 자체만으로 두려워하거나 쫄 필요는 절대 없다고 거듭해서 강조한다. 하나님이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주신 간증도 무수히 많으며, 그 어리석음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게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원칙은 변함이 없다. (下에서 계속)

Posted by 사무엘

2011/10/29 08:40 2011/10/2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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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범준 2011/10/29 17:19 # M/D Reply Permalink

    1. (하)편도 기대합니다.

    2. 이근안에 대해선 끔찍할 정도로 많이 들어온 반면, 이한상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것도 없었는데 -- 듣보잡 수준 --
    소식이 뜸하다니 또다시 썰렁해지네요.

    3. 웬지 이근안 씨가 목사가 된건 지금의 발언으로 봐선 단지 과오를 가리기 위한 미봉책으로밖엔 안보이는군요.
    진짜 회개한 거라면 눈물을 쏟고서라도 정말 참회하는 마음으로 섰을텐데, 저건 뭐.. 자신의 진짜 참혹한 면모를 제대로 맛보지 않았으니 저렇겠군요.

    4. 글을 계속 읽어보고 행간의 의미를 곱씹어본 즉, 회개는 내면의 변화 - 생각과 마음의 돌이킴 - 와 행동의 변화의 동반,
    즉 전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함을 봅니다. 이근안 씨의 경우 단지 자기 신변 보호를 위해 기독교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5. 또한 인간의 진짜 근본적인 죄란 삼풍 백화점 붕괴의 경위에서 명확하게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앞뒤도 생각할 겨를 없이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게 만들고는 그 길이 파멸의 길인지조차 모르도록 눈을 감겨버리는 것이 인간의 죄의 흉측한 단면으로 보여집니다.

    지옥과 멸망도 {주} 앞에 있거늘 하물며 사람들의 자녀들의 마음은 얼마나 더 그러하리요?(잠15:11)

    1. 사무엘 2011/10/29 23:45 # M/D Permalink

      이 글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꺼내기 그리 유쾌하지는 못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고 매우 중요하며 어찌 보면 기독교의 본질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4~5번에서 형제가 고민한 내용에 대해서는 下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니, 사흘쯤 뒤에 올라올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세요. ㅎㅎ

      저도 사회관· 정치관과는 별개로 이 근안 씨는 제대로 회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한상 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블로그는 제 머릿속에 존재하는 컴퓨터, 철도, 성경 등 여러 코어-_-로부터 주제별로 완전 랜덤하게 글이 올라오고 있군요. 어제 개통한 신분당선 리뷰도 썼는데 이건 무려 12월에 올라올 예정.. ㅋㅋㅋㅋㅋㅋ
      이 댓글을 쓰는 지금, 저는 국어 통사론 논문 좀 읽다 말고, <날개셋> 다음 버전 코딩 중입니다. -_-;;

  2. 다물 2011/11/04 17:09 # M/D Reply Permalink

    주먹 좀 쓰시던 어떤분도 종교에 귀의했다고 나오던데요.
    그런데 문제는 그 뒤로도 신문에 나오는걸 보면 전혀 그런거 같지가 않더라는

  3. 백성 2012/01/16 02:15 # M/D Reply Permalink

    이근안 씨는 요즘 또 다시 회자되고 있다는군요.
    악플 보기는 뭐시기해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김길태씨를 억울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구도입니다. ㅎㅎ
    뭐 이근안씨가 잘못 군 건 사실입니다만 이게 이근안→목사→개신교→기독교 이렇게 확장되는 구조라서..

    (사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고 어둠으로 빛을 삼으며 빛으로 어둠을 삼고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1. 소범준 2012/01/16 09:36 # M/D Permalink

      수정요청

      김길태 ---> 김근태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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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찬송 몇 곡

Wonderful Grace of Jesus

가사 보기

‘세상에 이렇게 선율이 아름다운 찬양도 있구나!’ 생각이 곧장 들어서 자료를 검색해 봤다.
작사· 작곡자는 Haldor Lillenas. 사실 그는 20세기 초의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평생 수천 편의 찬송시를 지은 굉장히 유명한 분이며, 저 Wonderful Grace of Jesus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한다. 그럼 그렇지..;; 왜 우리나라의 통일 찬송가에 수록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저 곡이 발표된 때는 1918년. 유럽에서는 독가스와 탱크가 첫 등장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 가고, 우리나라는 일제의 무단 통치 하에서 신음하던 시절이었다.

이 곡을 모르는 분이라면 한번 들어 보기 바란다. 후렴을 돌림노래 비슷하게 편성한 것도 그렇고, 너무 우아하고 멋있지 않나..?
증오심으로 가득한 “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 짤과는 정반대로, 구원받아서 진심으로 기쁘다는 감격이 느껴진다.
곡 전체를 통틀어 당김음 하나 없는데도 전혀 단조롭지 않다.

Sing On, Ye Joyful Pilgr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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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ful Grace of Jesus에 필적하는 미려한 선율을 자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참 즐거운 노래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것도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불멸의 명작이지 않던가.

한국어 가사도 아름답지만, 영어 원문 가사는 크리스천이 이 세상에서 떠돌되 방랑자가 아닌 순례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심상이 더욱 잘 드러나 있다.
그 곡의 작사자는 Carrie M. Wilson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이는 필명일 뿐, 그 이름도 유명한 Fanny J. Crosby 여사의 작품이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패니 크로스비 여사에 대해 말이 나왔으니 이분 얘기를 좀 더 하겠다.
그분은 평생 9천여 편의 찬송시를 썼지만, 작품으로 인해 자기가 유명세를 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생전에 200여 개의 필명을 돌려가며 쓰면서 작품을 발표한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래 봤자 우리나라 통일 찬송가의 작사자 색인을 보면 압도적으로 작품이 제일 많이 실려 있는 분이 저분이다. 2006년에 나온 새찬송가도 아마 변함없을 것이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등 첫 몇 소절만 들으면 바로 알아챌 무수한 찬송가들을 작사했다.

그리고 저분은 평생을 맹인으로 산 분이다. 우리나라의 뇌성마비 장애인 시인인 송 명희가 흔히 한국의 패니 크로스비로 비유되곤 한다. <그 이름>의 작사자인 거 모르는 분은 아마 없을 것이고.
하지만 <그 이름>이 영어 같은 외국어로 번역되어 세계구 급으로 퍼져나가지는 않았으니, 역시 전세계에 기독교 근간을 퍼뜨린 영향력으로 얘기하자면 미국이 짱이다.

Meekness and Majesty

가사 보기

앞에서 소개한 세 곡보다는 훨씬 더 나중에 발표되었고 어찌 보면 CCM에 가깝다.
영국의 그 유명한 Graham Kendrick의 곡으로, 저분 하면 <비추소서>(Shine, Jesus, shine), <God Is Good>, <Heaven Is In My Heart> 등이 바로 떠오를 것이다.
좀 더 매니악한 분이라면, 주찬양 선교단 8집 <Hosanna! 이 땅을 고치소서>의 타이틀곡의 뒷부분에 이어지는 <Lord Have Mercy On Us>가 저분의 곡이라는 것도 아실 테고.

허나, 본인은 Meekness and Majesty을 그분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일품으로 친다.
예수님을 너무 사실적이고도 서정적으로 잘 묘사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rhyme을 봐라. -ty, -ce, -le 등을 포함해서 단어 선택을 정말 절묘하게 했다.
화음도 특히 후렴 부분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느낌을 잘 살리려면 꽤 어려운 chord를 넣어서 연주해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23 19:21 2011/10/2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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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범준 2011/10/23 23:15 # M/D Reply Permalink

    1. 한참 전에 찬양을 전부 직접 들어보고, 불러도 보고 덧글을 적습니다.
    특별히 첫번째 및 두번째 찬양은 사람의 보통 능력으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한계에서 우러나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찬송일 수 밖에 없다는 감동이 제 가슴을 강하게 스치는군요. 게다가 멜로디가 힘이 넘치면서도 정형을 이루는 게 정말 아름답습니다. 할렐루야!

    2. 저도 흠정역을 알기 전까지는 CCM에 빠져 있던 세대였습니다.(물론 지금은 분별하면서 이따금씩 부르기도 합니다.)
    근데 여태껏 들었던 곡들은 Graham Kendrick의 <Meekness and Majesty>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CCM 가수라도 이런 곡으로 주님을 찬양하기란 참 드물거든요. 이만큼 예수님의 신성을 노래한 곡은 여태껏 못 들어 봤습니다.

    3. 지금 생각하는 바론, 어떻게 가장 암울한 상황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저런 아름다운 찬양이 나올 수 있었느냐 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주님만을 드높이며 찬양하는 것이 본분인데(사43:21; 벧전2:9) 많이 부끄럽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숨이 있는 모든 것이 {주}를 찬양할지어다."(시150:6a)

    1. 사무엘 2011/10/24 01:16 # M/D Permalink

      네, 말 그대로 정말 아름다운 찬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거 즐기라고 '음악'이라는 선물을 인간에게 주신 거겠죠? 이런 것만 듣고 부르기에도 인생의 시간은 부족합니다. ^^
      Wonderful ...은 처음 한두 번 들을 때부터 팍 꽂혀서 내 스타일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더군요. 세월을 초월한 명곡입니다. 나머지 곡들도 짱이고 원츄.

      저는 철도-_- 음악의 유입 이전에는 주찬양 선교단 역대 앨범들을 줄줄 외우며 지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블로그에서 다뤄질 것입니다.

  2. 비밀방문자 2011/11/19 01:59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사무엘 2011/11/19 08:56 # M/D Permalink

      오옷~~ 자매님, 이곳에 자주 오고 계셨다니... ㅎㅎ 정말 반갑습니다~! 평안하신지요?
      저도 그 곡이 우리말 번역이 있다는 건 곧 알게 됐답니다. ^^;;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소식 전해 주시고 음원을 공유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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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교리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원색적인 문구에 잘 요약되어 있듯, 뭐니뭐니해도 내세관이 아주 분명하다는 게 특징이다.
이걸 믿지 않는 분이라면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고 본인 역시 그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다.
다만, 그 교리가 논리적으로 성립하려면, 어떤 사람이 구원받아서 하늘로 가며 하늘나라에서의 삶은 어떨지 이런 면모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 어린아이들은 무조건 하늘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내가 예전 글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너무 어려서 스스로 선이나 악을 판단할 수 없으며 아직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능력이 없는 아기, 영· 유아, 어린이, 정신박약아, 지적 장애인은 죽으면 무조건 하늘로 간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분명한 논리로 요약할 수 있다.

- 그들은 구원자 예수님을 자기 의지로 스스로 영접하지 못하지만, 거부하지도 않았으므로(못하므로)
- 그들이 태생에서부터 아무 죄가 없고 순수하고 깨끗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법적으로 그들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에

아멘!
다윗이 삼하 12:23에서 이 사실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어른들의 욕심과 잘못 때문에 이런 애들이 죽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고 죄악의 결과이다. 당장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여 태어난 첫 아이도, 다윗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명목으로 1주일을 열병을 앓다가 죽었다. 애가 무슨 잘못이 있나?

하지만 그들이 죽어서 하늘로 가는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며, 오히려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 다윗은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그 아이도 다시 보게 됐을 것이다.

심지어 2000여 년 전에 예수님이 태어나던 당시에도, 헤롯 왕이 예수님의 동갑내기 2살 이하 유아들을 대상으로 학살극을 저지른 적이 있다. 온 인류의 구원자가 태어난 덕분에 주변의 동갑내기 아기들이 다 뒈져셔 지옥으로 떨어졌을 리는 없잖아? 아이들이 죽어서 가는 곳에 대해서는 이 이상 어떤 논쟁도, 이견도 필요하지 않다.

2. 그러나 동물은 죽으면 끝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기를 쓰고 기독교의 지옥 교리를 부정한다. 그 대신 내세우는 것이 영혼 멸절이다. 즉, 죄인은 그냥 자기 인격체가 완전히 없어지고 끝난다는 것.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영혼 멸절은 사람이 아닌 다른 짐승들에 한해서만 성립한다.

발생· 유전학적으로 사람과 굉장히 비슷한 유인원 동물이 존재하여 소위 진화론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말을 하는 것, 불을 다루는 것 이상으로 사람이 짐승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영적인 위상이라고 성경은 말한다(전 3:21).

사람은 불멸이지만 짐승은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가령, 어떤 개가 아무리 충성스럽고 어지간한 인간 말종 개차반보다도 낫다 하더라도, 개는 개일 뿐이다. 짐승은 지옥에 가지 않는 것만큼이나 하늘로도 가지 않으며 완전히 없어진다.
지금 당신이 현 세상에서 보는 바로 그 동물은, 비록 지금 아무리 사랑스럽게 보일지라도 내세에서 볼 수 없다. 이 사실을 알면 사람과 짐승 사이의 우정(?)을 다룬 각종 문학 작품에도 그리 애착이 가지 않게 될 것이다.

3. 사람 식별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예수님 같은 생사람을 못 알아봐서 실수를 한 주변 사람들 얘기는 나오지만, 정작 고인을 못 알아본 경우는 없다.
예수님이 변모하시고 모세와 엘리야가 내려왔을 때,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의 생전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사진 같은 것도 없던 시절!) 그들을 바로 알아봤다(눅 9:28-34).
그리고 예수님이 미래에 지구에 재림하실 때도 세계 어디에서도 이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못 알아볼 사람은 없을 거라고 성경은 말한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지 그 디테일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하늘나라에서는.. 신참이 한 명 들어올 때마다 마치 공항 입국장처럼 지인들이 이름 적힌 피켓 들고 사람 찾는 광경은 없을 걸로 보인다. 시대를 초월한 상봉이 이뤄질 때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1번과도 연동하여, 하늘나라에 가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내가 예전 세상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지적 장애아였을 때 형제님이 나를 잘 보살펴 주셨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같은 인사를 들을 걸 생각해 보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게 이런 데서 나오는 법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왜 장애인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조차도 답을 주고 있다. 이런 게 감히 아메바· 원숭이 진화론이나 귀신 이야기 따위와 비교가 되겠는가!

4. 이 땅에서와 같은 결혼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다”라는 한 마디로 모든 논란이 끝난다.
하늘에 있는 사람들은, 육신을 입고 현 세상에서 살던 때와 같은 결혼의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배우자가 죽었을 때 재혼이 가능하다. 성경은 간음과 음행을 그토록 싫어하지만, 과부에게 평생 수절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건 무척 중요한 개념이란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다윗의 범죄처럼 간음을 재혼으로 합리화하기 위한 살인에 대해서도 이미 다 예상하고 언급하고 있고, 이 체계를 악의적으로 비비 꼰 트집성 질문에 대해서도 해답을 마 22:23-33에서 마련해 놓았다. 난 성경에서 이 논리 체계를 발견하고서는 개인적으로 무릎을 탁 치고 감탄했었다.

더 현실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소설 <상록수>의 스토리를 잘 아실 것이다. 지금 안산에 가면 상록수 공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실제 여주인공인 최 용신하고, 그분과 약혼한 사이였던 김 학준이 나란히 묻혀 있다. 김 학준에게는 훗날 실제로 결혼한 부인(길 금복 여사..)이 따로 있었는데도 말이다.

근본적으로는 김과 최가 연애 기간이나 약혼 기간을 너무 길게 잡지 말고 가능하면 어서 결혼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게 훗날 문제가 되긴 했다. 또한, 옛 약혼녀 옆에다 묻어 달라고 부탁한 김의 이런 유언 때문에 가정에 내부적으로 좀 갈등이 일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충분히 갈등이 있을 만도 하지 않은가? 이건 대놓고 저지른 불륜은 아니지만 뭔가 좀 미묘한 감정 싸움이다.

허나, 세 분 다 크리스천이었고, 세 분 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하늘에 있다. 그들이 거기서 한데 만나서 이 세상에서와 같은 질투와 갈등을 겪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시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세상 매체에서 말하는 '영혼 결혼식'이라는 건 부질없는 개념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5. 다른 건 못 가져가도 자식은 가져간다

저 하늘나라에 우리가 도대체 돈을 가져가겠는가, 집과 차를 가져가겠는가, 심지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져가겠는가?
다른 건 못 가져가도 육신의 자식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보고 지내게 된다.
아 물론, 이건 제대로 키워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식에 한해서 말이다.
아니면 차라리, 앞의 1번 항처럼 엄청 어렸을 때 불의의 사고로 잃은 자식이라면, 부모가 구원받았다면 최소한 하늘에서는 다시 만날 수 있다.

요즘 정말 결혼할 엄두를 못 내고 애 낳고 키울 엄두를 못 낼 저출산 시국인 거 나도 너무나 잘 안다.
또한 하나님은 음행을 극도로 정죄하는 것만큼이나 그와 반대로 결혼한 부부끼리의 사생활은 그 어떤 형태라도 무조건 존중해 주시며, 이는 자녀 계획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 게 정말 영원을 생각하는 투자인지 크리스천이라면 이 변수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6. 이 땅에서 갖고 있던 기억은 과연?

이건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다.
현 세상에서 습득된 개개인의 인격과 지식이 그곳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가령, 본인의 철도 덕후 기질은 하늘나라에서도 변함없을 것이기 때문에 본인은 거기서 온 우주를 누비는 철도를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는 육신의 성별이나 나이가 의미가 없을 것인데,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부활한 예수님처럼 33세 남자처럼 될까? 내 애인과 어머니까지? 거기까지 당장 여기서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세상에서 사랑하고 친하게 지내던 가족과 지인들 중 상당수가 예수 안 믿고 죄 가운데 죽어서 지옥· 불못으로 영원히 이별을 하고 말았는데 우리가 과연 하늘나라에서 기쁘게 지낼 수 있겠나?”라는 고전적인 질문이 있다.
일단,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따지기나 하지 말고 당장 가족과 지인에게 복음부터 전해야 할 것이다. -_-;; 그렇게 자기 할일부터 다하고 그것 때문에 무시와 따돌림과 핍박까지 당했는데도 그들이 끈질기게 복음을 거절한 것이면 그들이 자업자득이고 우린 덜 슬프겠지.

(그리고 당신의 신앙을 비웃고 조롱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당신이 지금까지 지나치게 잘 어울리고 아쉬울 것 없이 지내 왔다면, 당신의 영적 본분에 대해서도 어차피 다시 생각을 좀 해야 할 것이다.;;)

큰 백왕좌 심판 후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기 백성들에게서 눈물을 닦아 주실 거라는(계 21:4) 약속이 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의 죄악을 다시는 기억도 하지 않는 것처럼(할렐루야!), 그리고 반대로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기수열외'되고 단절되고 잊혀지는 것처럼, 이때 우리는 과거의 '흑역사'에 해당하는 온갖 쓰라리고 아픈 기억들이 말 그대로 '포맷'되기도 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이 세상에서의 기억은 영원히 남는 것도 있고 잊혀지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7. 고참, 말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대에다가는 1을 더해도 무한대이고 1억을 더해도 무한대이다. 하늘나라도 영원하고 지옥· 불못도 영원하다.
하나님의 사고방식에는 은퇴· 졸업 같은 게 없다. 수료만 있을 뿐이다. 나는 이 말을 어렸을 때 주일학교를 수료하고서 목사님에게서 들었다.
마치 마태복음 1장은 오로지 '낳고'만 있지, 창세기 5장처럼 '죽었더라'가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까?

군대에 고참· 말년이 있고 이등병부터 말년병장까지 계급별로 온갖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는 건 '제대'가 있기 때문이다.
군대에 영원무궁토록 갇혀 있어야 한다면 그런 관행이 생기겠는가? -_-
명심하자. 내세에서는 고참, 말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
.
.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늘나라와 지옥 구성원하고, 하나님이 실제로 생각하시는 하늘나라와 지옥 구성원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차이가 크다.
예수님을 절대적인 의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라면 절대적인 선과 악 관념이 있을 수가 없다. 그저 상대적인 권선징악 패러다임에다 “이런 사회 시스템 하에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지”, “남들만치만 하면 되지”, “이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해먹지 않을 수 없지”, “죄도 적당히 즐길 줄만 알면 되지”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다.

완전히 반성경적인 내세관을 전달하고 있는 웹툰 <신과함께> 같은 걸 보아라, 기반 사상이 딱 저것이다. (개인적으로 내용을 무척 재미있게-_- 봤으나, 안타깝긴 하다.;;) 내세를 소재로 하면서 성경을 배제한다면 솔직히 저 수준을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하늘나라(그리고 지옥)에 대해서 이 글과 비슷한 방향으로 알 레이시 목사가 디테일을 재미있게 잘 논증한 바 있다.
예전에 말씀과 만남 출판사에서 <천국은 있다>(Window of Heaven)라는 책이 나왔고, 이걸 현재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에서 <천국과 지옥 바로 알기>라고 천국편과 지옥편 합본을 내놓았으므로 관심 있으신 분은 참고하기 바란다.

끝으로, 글을 맺기 전에 한 마디 더... 하늘나라는 거룩~하고 경건한 꼴통들만 있어서 조용하고 따분하고 지겹기 그지없는 곳인 반면,
오히려 지옥이 신나고 화끈하고 다이나믹한 곳이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드립에 결코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성경이 말하는 지옥은 아버지와 함께 럭키짱 만화책이나 볼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래 대사가 '지옥'으로 알려져 있는데, 짤방을 뒤져 보니 '저승'이구나..)

Posted by 사무엘

2011/10/16 08:42 2011/10/1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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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정호 2011/10/16 09:25 # M/D Reply Permalink

    왠만한 전설은 다 사라진 21세기에도 이런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감성이라니 부럽습니다 ㅠㅠ

    1. 사무엘 2011/10/16 19:39 # M/D Permalink

      '행복한 상상'의 근간이 다른 게 아니라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

  2. 소범준 2011/10/16 19:26 # M/D Reply Permalink

    1. 유익한 글 감사드립니다.^^

    2. 아주 어린 아이들은 순수해서 그냥 죽더라도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 가는 게 아니라,
    선과 악에 대한 의지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냥 올려 주신다는 것을 새롭게 재정립합니다.
    이렇게 되면 원죄 드립마저도 들어올 틈새가 차단되는 효과가 있군요.(음~ 이런 걸 믿어야지 ㅋㅋ)

    3. 근데 밑의 짤방은 현대인들의 영적 수준을 짤막하게 보여주는 듯 하군요.
    지옥이 무슨 날라리들 놀이터도 아니고 완전.. -_-;;
    "지옥(저승)에 가서 아버지하고 '럭키 짱' 만화 실컷 봐라."?
    완전 ㅋ-드립 ㄲㄲㄲㄲ

    1. 사무엘 2011/10/16 19:39 # M/D Permalink

      인간은 불가항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나며, 죄인은 지옥으로 가지만,
      인간은 불가항적인 이유만으로 지옥으로 가지도 않습니다.

      (1) 갓난아기는 똥· 오줌 못 가리고 자기밖에 모르고 부모를 많이 속 썩이죠.
      (2) 안 가르쳐 줘도 나쁜짓부터 터득하는 것 역시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1) 그건 사람도, 하나님도, 처벌-_- 받아야 할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생명이 붙어 있는 한은 애를 때려서라도 교육을 통해 단호하게 죄로부터 떼어 놓으라고 거듭해서 명령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논리 체계입니다.

  3. 특백 2011/10/16 21:55 # M/D Reply Permalink

    ※<신과함께>는 예전에 무료신문에서 연재해서 봤는데, 완전히 쓰레기더군요. (당연한 소리지만)
    뭐 저승도 현대화되고 판사(염라대왕)가 뭐 발로 재판하고 그런 류의 내용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4. 삼각형 2011/10/16 22:30 # M/D Reply Permalink

    제가 더 코멘트 할 것 없이 깔끔하게 정리해 두셨네요.

    저 역시 <신과함께>를 즐겨 봤습니다. 맞다고 생각하고 본 건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의 도덕관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봤던 것 같네요.

  5. 사무엘 2011/10/17 06:45 # M/D Reply Permalink

    특백, 삼각형:
    크리스천의 관점에서 진짜배기 <신과함께>란, Chick 출판사의 <This was your life> 같은 만화일 텐데 말입니다..

    http://www.chick.com/reading/tracts/0001/0001_01.asp
    Chick 출판사의 상징적인 대표 전도지여서 그런지 URL도 당당히 전부 1번이군요.

    1. 소범준 2011/10/17 10:13 # M/D Permalink

      근데 칙 전도지는 다소 드립이 많은 것 같아요.
      성경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저승사자 드립.. 헐~ -_-;;

    2. 사무엘 2011/10/17 15:38 # M/D Permalink

      뭐, 그 정도로 비판적으로 보자면, Chick tracts에 단골로 등장하는 날개 달린 천사도 고증 오류이긴 하죠.
      성경 공부용이 아니라 불신자들더러 보라고 만드는 것인 만큼, 서양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내세 내지 죽음 관련 아이콘은 그대로 수용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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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약 율법과 말라기 구절을 근거로 십일조 헌금을 부과하고, 심지어 솔로몬을 따라 일천번제(?)라는 이상한 헌금 제도까지 시행하는 교회가 적지 않다.
2. 목사는 거~룩한 “주의 종”이고 구약으로 치면 레위 인이다. 교회 예배당은 거룩한 ‘성전’이다.
3. 안식일은 고증상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라며, 어떤 교회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안식일도 모자라서 유월절을 지키는 곳도 있다.
4. 오늘날 수많은 개독안티들은 모세오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트집을 잡는다. 그러면서, 기독경 바이블이 말하는 신은 반인륜적이고 잔인하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신이라고 공격한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고 행한다면 이런 것도 그대로 행하겠냐ㅋㅋ라고 막 빈정댄다.
5. 성경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위의 조롱을 좀 의식하는 사람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와 심판의 신인 반면, 신약의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의 신”이라는 식의 드립? 쉴드?를 친다. 이 사람들은 구약 성경을 근거로 제시되는 각종 ‘보수적인’ 기독교 윤리관(사형 제도, 동성애, 낙태, 옷차림과 외모 등등등)에 대해서도, 동일한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쏙 빠져나간다. -_-;;


이 모든 사례는 성경을 바르게 나누지 않아서 발생하는 촌극이다. 그 사례가 겨우 저 다섯 가지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신약과 구약 교리를 잘못 분간하여 저질러지는 병크는, 기독교회가 존재하는 한 아마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_-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든, 개독안티이든,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방향만 다를 뿐 그 누구라도 똑같이 걸려 넘어지고 오류에 빠지게 된다. 성경은 그렇게 호락호락 만만하게 쓰여진 책이 아니다.

위의 다섯 사례들에 대한 본인의 코멘트는 이러하다.

1.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 성도는 복, 믿음에 대한 구도와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말 3:10 같은 십일조에 대한 보상 자체가 오늘날의 크리스천에게는 약속되어 있지 않다. 성경 어디에도 신약 성도가 예수 잘 믿거나 교회 열심히 잘 다니거나 헌금 많이 하면 물질적인 복을 받고 부자 된다는 약속은 없다. 신약 성도들이 이미 받은 영적 복은 엡 1:3에 규정되어 있고, 헌금 원칙은 고후 8:12 같은 자발적인 규정이 전부이다. (이 관행에 대해서 통탄하는 어느 목사님의 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몸과 시간과 물질을 바치지만, 그 일을 하는 동기에다 구약의 마인드를 집어넣는 건... 정말 생뚱맞고 안 어울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받은 믿음으로 헌신할 뿐이지, 걔네들처럼 ‘십일조 바치면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보상 받는지 따져보자’ 이러는 구도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2. 구약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벧전 2:9, 엡 2:21, 고전 3:16 같은 구절과 비춰 봤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 -_-;;;
물론 본인은, 자긴 그 잘난 제사장의 의무를 다하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만 만인 제사장 운운하는 뺀질이를 아주 싫어하며, 목사와 교사 직분 자체를 부정하는 모임도 명백히 잘못됐고 비성경적이라고 여긴다.

3. 오늘날 신약 교회가 지키는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며, 그와 아무 관계가 없다. 일요일 예배는 예수님이 부활한, 더 정확히 말하면 부활이 알려진 날에서 유래되었을 뿐이다. 태양신 축제와 연관 짓는 건 성탄절, 이스터 정도로 족하다. 일요일 자체는 아무 문제될 게 없다.

4. 이런 부류들은 도대체 어디부터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환이 상한 자, 안면이 함몰된 자는 군대에 가지 못할지니라”고 하면, 얘네들은 군대가 장애인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집단이라고 드립을 칠 친구들이다. 가나안 백성들을 다 진멸하라고 명령한 하나님 탓할 줄만 알지,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명령을 100% 이행 안 하고 걔네들로부터 안 좋은 거 배워서 동화되다가, 죄에 빠져서 하나님에게서 똑같이 큰 벌 받은 건 눈에 안 들어온다.

트집 잡는 게 다 저런 식이다. 저 친구들은 성경에서 그런 의문과 이해가 안 되는 부분만 해결되면 성경을 믿겠다는 의향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알기 때문에, 나도 더 친절하게 설명 안 할 생각이다.
수학의 ‘수’짜도 모르는 초딩이 “님들아, 입실론 델타 증명부터 로피탈의 정리까지를 A4 한 장에다 내가 알기 쉽게 좀 설명해 주셈” 질문 달랑 던져 놓고는, 답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욕지거리 하는 것과 같은 꼴.

그리고 끝으로,
5. 성경 66권을 통틀어 짐승과 수간하지 말라고 명령되어 있는 곳은 구약 율법밖에 없다. 그럼, 저 논리대로라면, 신약 크리스천들은 짐승과 수간해도 괜찮겠다. ㄲㄲㄲㄲ
저 사고방식의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성품이 시대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게 절대 아니라는 데 있다. 단적인 예로,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이라는 명제는 신약과 구약에 동급으로 인용되어 있다(신 4:24, 히 12:29). 그리고 구약 율법에도 정말 가난한 자, 어려운 자를 배려하는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 구절은 얼마든지 있다.

신약과 구약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서 여러 할 말이 있지만, 요약하고 또 요약하자면 이렇다.
구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선택하셨다. 각자 자기 favorite gods들을 찾아 떠난 이방 민족들을 상대로 누구의 신이 진짜 신인지 객관적으로 맞장 뜨는 구도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신정 국가 컨셉의 특이한 규범이 많았고 당장 눈에 띄는 보상에 대한 약속도 많았다. 그러나 몇몇 얘네들의 민족적 특수성이 감안된 규범을 제외하면, 윤리와 관련된 대다수 규범들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유익한 것들이다.

그 후 신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정작 유대인들은 그분을 거부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방인을 상대로 교회를 만들고, 교회로 하여금 유대인들의 질투심을 유발해서 유대인들까지 예수님을 믿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래서 신약 규범은 비격식· 비가시적이고, 자율적이고, 영적인 것이 많다. 그런데 그게 더 수준이 높다.

다만, 이런 하나님의 경륜의 저변에 깔린 공의와 사랑이라는 두 성품은 시대를 불문하고 불변 동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사실을 전제에 깔면 신구약과 관련된 상당수의 오류를 예방할 수 있다.

불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신자? 개독?)들은 도대체 왜 너네 주장만 맞다고 생각하느냐? 맞다는 근거로 맨날 성경을 들이대는데 그건 순환논리이고 우리 같은 불신자한테는 씨알도 안 먹힌다.”
본인은 왕년에 종교 배틀을 한두 번 벌여 본 것도 아니고, 걔네들의 심리 정도는 다 꿰뚫고 있다.

그런데, 참 애석하게도... 진짜로 성경은 순수한 동기로 먼저 믿어야지 나머지 부분도 나중에 차츰 이해가 되게 된다. 나도 저것보다 더 속시원한 반격을 하고 싶어 죽겠는데, 더 할 게 없다. 성경 신자들의 신앙은 세속 논리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당연히 순환 논리도 갖고 있고,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이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겠는가.

단, 일단 먼저 믿어서 나쁠 게 절대 없는데도, 안티들은 성경을 잘못 적용한 극단적이고 이상한 부류들이나 들먹이면서, 그걸 일반화하여 종교가 사람의 정상적인 이성을 마비시키고 우민화한다고 깐다. 그건 그렇지 않다고 그 정도는 본인이 반박해 줄 수 있다. 이해나 증명이 불가능한 몇몇 핵심 명제만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이후부터 기독교 교리는 그걸 바탕으로 철저한 논리와 일관성과 질서 그 자체이다.

본인은 구약 율법과 크리스천의 관계를 군대에다 비유한 적이 있다.
율법은 군인에게 부과되는 온갖 제약과 규율들이다. 그 중에는 각종 심신 단련과 규칙적인 생활처럼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유익한 게 많다. 인간에게도 유익하고 군대가 돌아가는 데도 필요하니까 그런 게 명시된 거겠지.

마치, '10시 취침, 6시 기상'은 전세계 군대나 민간인들이 지켜서 나쁠 게 없는 규정인 반면, '우리의 주적은 북한'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대한민국이라는 민족의 특수성 하에서만 유효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개독안티들이 비판하는 건, '전시에 적진으로 도주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같은 법규를 보고는, 잔인하고 반인륜적이라고 욕하는 것과 거의 똑같다. 저 군법이 과연 잔인하고 반인륜적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약 교회의 크리스천은 민간인이다. 그걸로 끝이다. -_-;;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먹혀드는 비유는 없을 거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가 낳은 사람들 가운데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일어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그보다 크니라. (마 11:11)

위의 말씀은, 제아무리 뼛속까지 FM인 1등급, A급 병사라 해도, 제대한 민간인보다는 못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뭐가 못하다는 건지 모르는 분은 없을 테고.

오늘은 요기까지만 쓰련다.
신약 vs 구약과 더불어 자매품(?)으로는, 신구약 ‘과도기’의 교리와 신약 교리를 잘못 분간하는 오류가 있다는 걸 아울러 밝힌다.

요놈의 주된 부작용으로는 치유나 방언 같은 잘못된 은사주의 교리가 있다. 그래서 행 2:38이 교회 성도들에게 직접 적용되는 교리로 왜곡되고, 막 16:17-18을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 버린다.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구사하고, 중환자에게 안수만 하면 병이 즉시 낫고, 청산가리 같은 걸 마셔도 안 죽고..;; 우리가 시도했다가는 다윈 상 수상자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데? -_- ㄲㄲㄲㄲㄲㄲㄲㄲ

이건 다른 책보다도 마태복음과 사도행전과 히브리서를 잘못 적용했을 때 나타나기 쉬운 증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30 08:46 2011/09/3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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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1/09/30 09:49 # M/D Reply Permalink

    잘못된 것이 잘못된 것임을 모르는 세태가 참 많이 아쉽습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텐데...ㅜㅜㅜ

    1. 소범준 2011/09/30 11:40 # M/D Permalink

      마15:14 강추임다~!!

    2. 사무엘 2011/09/30 18:25 # M/D Permalink

      앞으로 그런 추세는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완전 회의주의자 안티 '아니면', 양심과 이성이 아니라 인간의 전통 자체에 몰입해서 다른 건 들은 척도 안 하는 열혈 종교인.
      그리고 그 둘끼리 벌이는 종교 병림픽도 볼 만할 것이고요. ㄲㄲㄲㄲㄲㄲ

  2. 특백 2011/09/30 09:49 # M/D Reply Permalink

    군대이야기는 패-_=;스. 성인이 되기 전에 남북이 통일하면 되니까?!! ㅋㅋㅋ

    공리 → 증명: 성경과 수학과 유사점이 많지요.(단지 성경은 영적이라는 점) 근데 안티들이 주삼는 것은 성경을 마치 유클리드 기하 제5공리 취급해서 당연하지 않아보이니까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만드는 것과 동일합니다.
    (단,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곡면상의 그래프 등 특수 케이스에서는 유클리드 기하학보다 훨씬 더 잘 적용된다는 특장점이 있기에 합리화될 수 있지만, 철학은 모든 경우에 성경보다 앞서지를 못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입실론 델타 증명과 로피탈의 정리에서 뿜었습니다.

    1. 소범준 2011/09/30 11:47 # M/D Permalink

      특별히 모든 세상 철학들은 골2:8의 떡밥에 계속 낚이죠!ㅋㅋㄲㄲㅎㅎ

    2. 특백 2011/09/30 14:07 # M/D Permalink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것 = '유치한' ! ㄳㄳ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2각형도 가능하고(평면상에선 불가) 많은 것을 '실제로' 만들어 낼 순 있지만
      철학은 '헛되고' '유치하고' '사람의 것' 등 '허무한 것' 만 끊임없이 재생산..

  3. 소범준 2011/09/30 12:26 # M/D Reply Permalink

    1. ㅋㅋㅎ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는 마치 전철의 사구간(절연 구간) 혹은 서울 지하철과 광역 전철이 연계되는 구간으로 이해할 수 있ㅋ죠ㅋ 항상 그 구간 만큼은 웬지 모를 특별한 어색감이 있다니깐.!

    2. 그리고 어제 저와 가깝게 지내는 대학교 친구와 잠깐의 논쟁을 벌였는데, 그 친구가 아주 열띠게 세상 과학의 논리로 성경, 기독교를 반박하고선 성경은 딥따 어렵다고 하길래 제가 고전2:14 와 롬3:10, 23 말씀을 성경책을 열어 주면서(단10:21a) 들이 대었죠.(잠22:20, 21) 그렇게 할 때 그친구의 반응은 ㄸ-씹은 표정?

    어차피 진화론과 세상 과학에 물들을 정도로 순수함이 없으니 당연히 성경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이 와닿네요. (딛1:15)

    순수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순수하나 더럽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순수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의 생각과 양심마저도 더럽혀져 있느니라.(딛1:15)

    어차피 그러는 것이 진리인데 뭘 더 들이댈게 있겠나.. 하고 나왔었죠.(고전14:38)

    3. 그러고보니 성경을 바르게 나누지 않고 보는 세태는 역시나 성경 문제와도 직결되는 문제임이 직감적으로 드러나보입니다. 기존 개역/개정 성경은 딤후2:15 라는 중요한 말씀이 변개되어 있다 보니 오히려 말씀을 조용히 올바로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신령한 무언가를 찾게하는 것 같은 맥락으로 이상한 골로 빠지게 만드는 느낌이 있죠. -_-;;

    1. 특백 2011/09/30 14:11 # M/D Permalink

      굳잡! 앞으로도 계속 화이팅 하시는 겁니다.
      성경에 안 나온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시면 친히 풀어 주실 테니(개인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기적 중 상당수의 기적이 예수님에 의해 현대물리학 혹은 그 이하 수준으로 해명이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성경만 제대로 알면 되고요 - 그러면서 성경을 된통 모르는 불쌍한 1魂

    2. 소범준 2011/10/08 16:04 # M/D Permalink

      (처음부터 근성체임돠.;;)
      아참? 곧 있으면 이 덧글의 2번 내용을 청카페에 간증으로 올릴 겁니다? 자꾸 밀려오다 이제 올립니다?

    3. 특븩 2011/10/08 18:57 # M/D Permalink

      (근성체는 아주 몇몇 경우 외에는 존대어법을 허용하지 않고 순화시킨다고 한다? 나도 한 번 그렇게 썼다가 근성체 링크를 보고 나서 존대어 허용은 딱 한 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기대함?

    4. 소범준 2011/10/08 21:00 # M/D Permalink

      그럼 내가 그 사례를 더 찾아봐야 되겠구나?
      알려줘서 고맙다?

  4. 사무엘 2011/09/30 18:27 # M/D Reply Permalink

    좋은 의견과 교제에 감사합니다.
    수학은 영적 안목을 배제한 그 자기네 틀 안에서는 100% 절대무오한 진리입니다.
    그 체계는 인간을 똑똑하게 하고 세상이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돌아가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또한 그 지식은 머리 잘 돌아가는 덕후들에게 지적 만족과 오르가즘-_-을 선사할 수 있으며--가령, e^(PI*i)=-1을 발견했을 때처럼 ㅋㅋ--, 하나님의 질서의 성품이 무엇인지에 대한 좋은 통찰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합니다.
    세상 자체가 결코 수학이라는 도구로 100% 모델링이 가능할 정도로 단순하게 돌아가지도 않지요.
    그렇게 되지 못하게 된 요인 중 하나가 죄의 결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 돌아가는 게 100% 수학적으로 딱딱 맞아떨어져야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 또한 결코 아닙니다. ^^;;

    수학 자체는 철저하게 가치중립적인 학문입니다만,
    먼 옛날에 수학이 크게 발전했던 곳은 성경 변개의 온실이었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였죠. 오리겐이라고 유명한 사람 들어 보셨는지? ㅋㅋ
    그리고 당시에 수학· 과학 깨나 하던 천재· 덕후들의 종교관이 어땠는지는... 말이 더 필요하지 않죠?

    1. 특백 2011/09/30 18:58 # M/D Permalink

      1. 지식.. 이라고 하니 개역에서 오역을 해 놓은 딤후3:15가 생각나는군요. 어떤 목사는 설교를 할 때도 앞뒤문맥 다 생략,“구원에 이르는 지혜”만 강조를 했죠. (그분이 공포의 N학교 - 제가 다녔었었던 - 의 교목이셨죠 ㄷㄷ)

      2. 아 이런, 그토록 나오지 않기만을 바랐던 알렉산드리아가 수면 위에 떠올랐네요. 그래도 적어도 근대에는 데카르트 파스칼 같은 좋은 크리스천 수학자 많다고요 ㅠㅠ
      1~5세기경 수학자 종교관이라 함은 뭐 히파티아라는 (역사상) 최초 여성 수학자만 봐도 알 수 있죠. 물론 그녀를 학대한 과톨릭의 잘못도 크지만.

      P. S. 단어사용에 자제점.. 엡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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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날개셋> 한글 입력기 6.2가 공개된 때와 아주 비슷한 타이밍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에서는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KJV 출간 400주년 기념판’을 내놓았다. 버전으로 치면 5판이다. 4판이 나온 지 3년 만의 일이다.

2~4판 사이에서도(특히 3판에서) 한국어 문장에 revision과 breaking change가 적지 않았지만, 2011년은 아주 특별한 해이지 않던가. 영국에서 KJV 출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미국은 의회가 아예 KJV가 미국에 남긴 공적을 기리는 성명서를 냈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엄청난 공을 들여서 번역을 다시 가다듬었다. 전체적으로 예전보다 좀 더 영어 직역에 가까워졌다.

성경이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도 아닌데, 본문을 자꾸 패치한다고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모두 시간과 돈이 들고, 번거롭고 귀찮고 골치아프다. 성경은 모름지기 권위가 담긴 텍스트여야 하는데 명분이야 어떻든 자꾸 바뀌어 버리면, 그럼 예전 판은 무슨 신세가 되는지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요즘 컴퓨터 프로그램이 보안 업데이트를 귀찮더라도 자꾸 해 줘야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걸 왜 꼭 해야 하며,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프로그램 개발자는 너무 자세히 알려 줄 수 없다. (당연히, 모방범죄 같은 안 좋은 파급효과 때문)

성경 번역자도 이와 비슷한 처지인지라, 성도들에게서 안 좋은 소리와 심지어 오해까지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명감 때문에 이런 개정을 하는 것이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 법인까지 만들면서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고 이를 교계에 가장 먼저 알린 단체는 대한 항공 조종사 출신의 모 목사가 설립한 ㅁㅂㅎ라는 곳이다.
이들은 교리도 그럭저럭 건전한 편이었으나, 초창기에 세상 교회를 상대로 appeal을 굉장히 잘못하는 바람에 이곳과 더불어 킹 제임스 성경은 한국 교회에서 이상한 이단으로 완전히 낙인찍혀 버렸다. 그게 1990년대 중후반의 흑역사이다.

진리를 정말 성령 충만한 애끓는 사랑으로 호소하며 전해도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이 태반이며 열매가 맺힐까말까인데, 그걸 육신의 깡을 동원한 온갖 과격· 극단적인 표현으로 밀어붙였으니 튕겨나오는 역효과는 100배이다. 뭐, 나라도 겪었을 시행착오이니 ㅁㅂㅎ를 그렇게 욕할 생각은 없다.

둘 다 잘못했다. 비록 ㅁㅂㅎ도 잘못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경이 역본마다 다르고 변개· 삭제된 말씀이 있다고 해도 아무 경각심도 안 느끼고 최소한의 진실 규명도 안 하는 사람들 역시, 크리스천의 자질이 굉장히 의심되는 부류가 아닐 수 없다!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 보존에 대해서는 불신자 내지 개독안티와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요즘 굉장히 많다.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과 근간이 뭔지 난 정말 궁금하다. 겨우 그런 허술한 근간으로 예수쟁이 행세하고 교회 댕기기에는, 기독교계가 요즘 저지르는 병크가 너무 많고 예수쟁이들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불신자들도 너무 많으며 반기독교 정서는 너무 팽배해 있지 않은가?

아무튼,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한국의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은 안 그래도 소수이던 것이 n갈래로 더욱 소수로 쪼개지는 비극을 겪었다. 이때 모 공대 교수가 다시 동지들을 모아서 ㅁㅂㅎ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과는 별개로 성경 번역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나온 것이 <킹제임스 흠정역>이다. 초판이 나온 게 2000년 여름인데,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이 태어난 시기와 비슷하다.

성경 번역이란 건 자금과 지지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치성도 띠고 있다. 본인은 그래서 우리나라 KJV 진영의 양상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다 비유해 보곤 했다.

일제의 갑작스러운 패망 이후 우리나라는 온갖 정치 집단과 이념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고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이처럼 한국 교계도 개역성경의 권위가 무너져 내리고 ㅁㅂㅎ 진영까지 분열된 후, 어중이떠중이가 다 KJV를 번역하겠다고 나서면서 난장판이 되었다.
(단, 그렇다고 해서 개역성경이 일제 같은 존재는 절대 아니다. 오해 말길!)

이때 흠정역의 주 번역자는,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치면, 이 승만 같은 일을 해냈다. 당연히 긍정적인 면에서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를 간단히 설명하겠다.

일제 강점기 때 국내의 독립 운동가들이 무력 투쟁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반면, 이 승만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국제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직시했고, 당대의 강대국이던 미국을 일본이 아닌 한국의 친구로 만들려 애썼다. 그리고 당대의 여타 민족 지도자들과는 달리, 공산주의의 해악을 완전히 간파하고,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이념이 지켜지는 국가를 한반도에다 세우고 정부를 수립했다. 이북처럼 자기 지지자들만 잘 먹고 잘 사는 개막장 독재 국가를 세우지 않았다!

그것처럼 흠정역의 주 번역자 역시, 명색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공대 교수이다. 객관성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분야에서 학문 하는 훈련을 한 사람이다. 그는 성경 번역자라는 소영웅주의에 도취해 자신을 드러내고 appeal한 게 아니라, ㅁㅂㅎ로 인해 치명적으로 실추된 KJV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성경이, 성경 오타쿠들이나 자기 교리 노선· 자기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보는 성경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기존 성경의 컨벤션을 존중하고, 교리적으로 튀는 번역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이거 정말 대인배적인 마인드이지 않은가? 난 그 의도가 존경스럽다.

기존 개신교회들이 변개된 성경을 쓰고 잘못된 관행을 저지른다고 비판하고 까기만 하는 건 쉽다.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KJV를 읽게 하려고 노력한 끝에, 자기 출판사를 기성 기독교 인터넷 서점에 입점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과연 KJV 교계의 이 승만 같은 사람의 업적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지금까지 어느 KJV 진영도 한국 기독교회에 KJV를 이런 방식으로 알리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잘한 건 티가 별로 안 나는 반면 못하면 바로 티가 나고 온갖 괴담과 비방, 오해가 나돌기 딱 좋은 분야이다. 이 승만이 악의적인 세력들에 의해 부관참시 당해 온 것만큼이나 저 번역자도 성경 번역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이단 소리 듣고, 반대편 진영으로부터 욕도 얻어먹고 험한 꼴 꽤 많이 봤다. 평범하게 자기 연구만 계속하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벌고 교수로 아주 편하게 잘 살았을 텐데, 지금까지 인생의 어마어마하게 많은 부분을 성경 하나 때문에 희생한 것이다.

어쨌든 여러 모로 유사점이 보인다. 본인은 이런 식으로 비교한 글을 예전에 모 기독교 커뮤니티에다 올린 적이 있다. 당사자더러 보라고 쓴 글은 아니었지만, 어째 정보가 퍼져 나갔는지 그분의 사모님께서 그 글을 보고는 본인에게 따로 연락을 주셨다. “우리 쪽에서 직접 말하기 민망한 심정을 잘 이해하고 대변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이다.
뭐, 그래도 이 승만을 그저 증오하는 사람들은 그 글을 보고도 불편해하더라. ㅋㅋㅋㅋㅋ

그에 반해, 흠정역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간 모 진영이 있다. 예수스 크리스토스, 파울로, 밥티스마 같은 말을 일일이 만들면서 완전히 자기네 진영에서만 쓰는 독자적인 번역을 만들었다. 기존 개신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여타 KJV 진영과도 일체의 교제를 끊고는, 자기 말고는 전부 배도하고 타락했다고 거의 사람 취급을 안 한다. 내가 보기에는 덜 배운 친구들이 이 승만이 친일 공화국 만들었다고 욕하는 것과 쎄임쎄임이다. 머리에 든 게 부족하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보인다.

양 진영이 맺은 열매는 난 이렇게 비유하겠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81
그분은 채팅과 교제를 통해 많은 추종자를 얻었지만 저(흠정역 진영)는 성경과 교회들과 성도들을 얻었습니다.

http://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new_jee&no=2563
김 구는 아들에게 유언장을 남겼지만, 이 승만은 국민에게 대한민국과 주권을 남겨주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을 쓰신 수준의 차이이다! 킵바이블 사이트의 글과, 시스템클럽의 글을 이런 식으로 비교해서 종합한 사람은 지금까지 나밖에 없지 싶다. ㅋㅋ

말이 길어졌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그리스도 예수안에 킹제임스 흠정역 진영을 지지하며, 이 성경을 쓰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 흠정역이라는 이 우리말 성경은 만만하게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다.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을 국내에 이 정도로 정착시키기까지 성도들의 무수한 노력과 헌신, 기도가 있었다. 부디 KJV에 대한 근거 없는 이단 낭설이 하루빨리 불식되고, 이 땅에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가 굳게 서고 이를 전파하는 지역 교회들이 많이 세워지길 바랄 뿐이다.

(흠정역 홍보 동영상 클릭)

Posted by 사무엘

2011/09/19 08:13 2011/09/19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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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범준 2011/09/19 10:05 # M/D Reply Permalink

    1. 아~ 이제 기다렸던 글이 왔네요. 김구 - 이송오 박사/이승만 - 정동수 목사 ㅋㅎㅎ

    2. 정말로 정 목사님은 말보회로 인한 이단 논란을 어떻게 하면 불식시키면서 기존 교계에도 아무런 마찰 없이 바른 성경을 전할까에 집중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댓가도 치르셔야 했구요. 그래도 흠정역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가히 '에벤에셀 사건'에 필적할 만한 감지덕지죠.(삼상7:12)

    3. 정말로 말보회가 왕성하게 활동할 무렵엔 저는 아직 젖먹이-_-;; 어린아이여서 그 때 어른들의 사정은 아주 감감했죠...
    그런데 한국에도 이런 흑역사가 있었다니... 흠정역이 참 많은 댓가로 바로 섰던 거죠.

    4. 이젠 저도 흠정역을 쫘악~~ 전파할 때가 되었군요.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을까..
    이젠 거의 그 욕구가 솟구치는 듯 싶습니다.

    1. 사무엘 2011/09/19 16:18 # M/D Permalink

      저도 1990년대에는 KJV라든가, ㅁㅂㅎ 논란 같은 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21세기가 돼서야 그쪽과의 교제나 접촉은 전혀 없이, 처음부터 흠정역을 접했지요.
      ㅁㅂㅎ를 설립한 목사님은 박사 학위 소지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Y대에 들어갔고 조종사를 거쳤으니, 나름 화려한 프로필이긴 하죠.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록 신약 성경을 믿지 않지만, 어쨌든 인용을 위해서든 비판을 위해서든 신약 성경의 영어 텍스트가 필요하다면 그때 KJV를 쓴다고 합니다. 그게 객관적으로 번역이 가장 잘 돼 있기 때문에.
      그와 마찬가지로 굳이 독립 침례 교회 + 세대주의 같은 교리 노선이 아니더라도, 일단 KJV를 논한다면 가장 인지도 높고 신뢰할 만한 우리말 번역본으로 흠정역이 끝까지 살아남게 될 겁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축적된 짬밥을 능가할 역본은 한국에 없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

  2. 최호윤 2011/09/19 16:52 # M/D Reply Permalink

    KJV을 오롯이 번역한 흠정역을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씩 선물해야지~. 그리고 흠정역이 정말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

    1. 사무엘 2011/09/20 00:35 # M/D Permalink

      오랜만이구나! 잘 지내고 있지??

  3. 삼각형 2011/09/19 22:57 # M/D Reply Permalink

    (1) 안티오크던가 하는 단체의 용어에 대한 집착은 과연 대단하더군요. KJV를 신약까지 번역했다고 하던데 그 사이트 몇분 보다 시간 낭비 같아 나와버렸습니다.

    (2) 계속 판이 바뀌고 있는데 제가 다니는 교회는 3판을 일종의 표준으로 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공예배 같은 곳에 3판이 쓰이죠.

    전 개인적으로 아무리 번역해도 어색한 곳은 억지로 한국어에 끼워 맞추기 보다는 뜻을 어짜피 어색한 거 직역투로 뜻이나마 명확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판 변경에 대해서는 KJV의 인쇄 오류 정정에 비유할 수 있겠네요.

    흠정역을 사용하는 교인과 교회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요구에 맞춘 성경 형태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판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번역자 분께서 고정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니 그렇게 알고 가야죠.

    (3) 말보회가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는 듣보잡 단체는 아닌 모양이네요. 엣날에 꽤 영향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4) KJV가 나온 이유가 모든 영국인이 볼 수 있는 표준 성경을 만들자는 취지에서인 만큼(그때는 없어서 문제, 지금은 많아서 문제) 장동수 역 흠정역은 그 취지를 잘 살렸다고 봐야 겠습니다. 그분의 업적 덕분에 흠정역을 공예배에서 사용할 수 있었죠. 아니었다면 공예배 참석자들이 영어를 열심히 배워서 KJV를 봐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 소범준 2011/09/19 23:38 # M/D Permalink

      1. 안티오크 같은 단체들은 완전 '자신들'이란 섬에 같혀 있는 듯 싶네요. ㅎㅎ; 그런 사람들하고는 말도 거의 먹통 수준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

      2. 저는 우연찮게도 흠정역 3판의 하드커버 한글 성경을 샀습니다. 3판의 경우 번역할 때 우리말식 표현이 많이 나와서 다소 말씀을 공부하는 데에 도움이 안될 수도 있었던 점이 있었지요.(이 문제는 사실 논외의 문제이지만요.)

      3. 우리말로는 어색한 부분들이 몇군데 있죠. 특별히 느헤미야기에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 느8:8의 경우는 정말 제가 처음 접할 땐 떡밥이었던 듯.. 근데 더 구절들을 살펴보고 나선 그리 이상하게 볼 문제도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바로 그 뒤의 18절 말씀 때문이죠.(고전2:13) 그 나머지는 기억이 잘 안나니 넘어가도록 하죠.

    2. 사무엘 2011/09/20 00:42 # M/D Permalink

      1. 아, 그러고 보니 안티오크는 언제부턴가 극렬 교회 환란 통과 교리로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습니다-_-;;. 그리고 우리 쪽 교회 성도 중에서도 일부는 거기에 현혹되어 그리로 떠나 버린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그쪽 진영에 대해서는 여러 흑역사를 얘기할 게 있지만 이 자리에서는 생략하고.. 어쨌든 거기로 간 분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 말보회는 성경을 포함한 각종 책을 판매해서 세력을 꽤 키웠습니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 아닙니까) 듣자하니 목사님이 십일조 강조 설교도 막 하면서 불도저 식으로 자본-_-을 확보하기도 했고요.
      말보회를, 터무니없는 거짓 교리를 퍼뜨리면서 신문 전면 광고를 팍팍 때릴 정도로 돈은 딥다 많은 그런 이단 교파/종교에다 비유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거기가 안티오크 같은 극소수 마이너 집단인 것도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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