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2 : 3 : 4 : 5 : 6 : ... 15 : Next »

박 진영이라고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똑똑하고 재능 많고 본업인 음악뿐만 아니라 온갖 잡학에 관심 많고 머릿속이 복잡다단한 4차원 구조인 사람 같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는 요 몇 년 전부터는 종교 쪽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중임을 공개적으로 티를 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자신의 구도(?) 과정을 긴 간증문으로 써서 공개하고 영상도 올리는 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호불호가 갈린다.

먹고 사는 분야에서는 충분히 성공했으니, 그 다음으로 신이나 내세 같은 분야의 지적 욕구가 생긴 것 같다. 하긴, 예전엔 이 병철 삼성 창업주조차도 늘그막에는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이 어째서 이 모양 …” 이런 부류의 수십 개에 달하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했던 바 있다.

나도 종교 분야를 어린 시절에 진작에 입문하지 않고 아재 꼰대 나이가 돼서야 관심이 생겼다면.. 박 진영 씨처럼 혼자 여기저기 찾아보고 기웃거리다가 왕창 마이너 특이한 델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ㄲㄲㄲㄲㄲㄲ 지금도 이미 충분히 마이너한 델 갔지만..

본인은 정작 저 사람이나 저 사람 곡을 잘 모르며, 간증문을 제대로 다 읽어 보지도 않은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힌다.
허나, 잘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생각하는 기독교 교리는 어느 교파의 관점에서 봐도 다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일부 주장은 극단적 세대주의를 띄는 게 있어서 좋은 까일거리 먹잇감이 된 듯하다. 신약 교회 신자는 바울 서신 말고 다른 성경책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걸 넘어서 아예 필요하지 않다느니.. 이 정도면 윤 석열 대통령이 앞으로 북을 선제공격할 것이고, 최저임금도 없이 주 120시간 로동 착취를 시킬 것이고 의료보험을 몽땅 민영화시킬 거라네 하는 헛소리 급이다.

심지어 구원파 영향을 받은 말도 있다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다. 난 솔직히 말해서 구원파의 교리 자체도 잘 모른다. 그냥 자기가 구원 받은 날짜에 너무 집착하고, 구원 받았으니 이제 회개할 필요 없고 마음껏 죄 짓고 살아도 된다고 설마 "정말로 그런 정신나간 주장을 하나?" 이 정도가 내가 아는 바의 전부이다.

저런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박 진영의 간증 내지 신앙관은.. 온건 세대주의 기반인 독립 침례교회 쪽 진영에서도 논란이 많다. 무작정 호의적이지 않다.
내가 파악한 게 맞다면.. 저 사람은 머리 좋고 해골 내부 구조가 복잡하고 이것저것 탐닉한 게 많다 보니, 복음까지도 너무 복잡하게 접근하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기미가 보인다. 나는 다른 낭설들 말고 바로 그게 우려된다.

내가 내 자유의지로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자발적으로 영접하고 믿어서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구원을 은혜로 믿음으로 받는다. 이렇게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될 것을..

  • "내가 억지로 힘들게 믿으려 애쓰는 게 아니라, 저절로 믿어져야 구원받는 거다.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을 받아야 한다"
  • "뭘 깨달아야 구원받는다" (회개의 선행 조건으로 내가 죄인인 걸 깨닫긴 해야 하는데, 저기서는 그 말을 하는 게 아님)

뭐랄까, 맞는 말 같으면서도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초신자를 더 갈팡질팡 헷갈리게 하는 식으로 워딩을 하는 것 같다. "주여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소서" (막 9:24) 상태인 초신자들이 이것 때문에 거의 공황 수준의 혼동을 겪었다고 한다.

난 박 진영의 글 때문에 '믿음'이라는 벡터의 방향과 출처에 대한 키배와 논쟁이 굉장히 심하게 벌어졌었다는 걸 뒤늦게야 들었다.
겨우 이 따위 게 논란거리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 했었는데..
faith가 아니라 believe여야 한다느니(둘 중 하나를 have faith 내지 belief로 바꿔야겠지... 품사부터 좀 동기화시켜야..)
faith of Jesus Christ를 받아야 한다느니 그런 말이 나돌더라.

흠정역은 우리말 성경들을 통틀어서 롬 3:22 / 갈 2:16 faith of Jesus Christ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번역한 유일한 역본이다.
"엥? of니까 원래 '의'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of는 생각보다 굉장히 중의적이며,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이다. 다른 성경들은 전부 '를'이라고 돼 있다. 차이점이 뭔지 아시겠는가?

이건 킹 제임스니 변개니 하는 내용 차이 이슈가 아니라, 단순 번역 이슈이다. 게다가 이거.. 내가 알기로 흠정역의 주 번역자인 정 동수 목사 본인의 소신보다도 다른 여러 목회자들의 강력한 권면과 건의가 받아들여져서 '를' 대신 '의'가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말보회 한킹 진영에서는 흠정역의 번역 때문에 저렇게 "믿어야 구원"이 아니라 "믿어져야 구원"이라는 오류가 생긴 거라고 비판하니.. 그저 골치 아플 따름이다. 참고로 말보회는 야고보서와 히브리서는 신약 교회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세대주의를 굉장히 강하게 지지하는 진영이다. 쟤들은 '믿어져야 구원' 이걸 오히려 칼빈 예정론과 결부시켜서 역공을 가하기도 한다.

일단 난 흠정역의 번역에는 크게 토를 달지 않을 생각이다. 예수님이 믿음의 창시자이고 예수님도 이 땅에서 뭔가를 믿는 본을 보이신 것 자체는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예수님께 믿음을 구하고 새 믿음을 공급받는 것은 구원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이건 박 진영 씨도 부디 앞뒤 순서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예수 영접을 위해서 맨 처음부터 예수님의 믿음을 받아야 된다는 논리는.. 순환논리이고 궤변처럼 들린다. 압축 유틸리티를 설치하기 위해서 압축을 풀어야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압축 유틸은 바로 실행 가능한 exe/msi 형태로 배포하는 게 상식입니다~~)

박 진영 씨가 그저 종교 지식 덕후가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해서 구원까지 받았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단지, 이 사태를 보니 인간은 같은 글에 대해서 역시나 다들 자기 관심사와 자기 진영 논리대로 남을 즐겨 판단한다는 것 절실히 느껴진다. 극단적 세대주의 탓, 흠정역 번역 탓.. 예시를 보면 명확하지 않은가?

난 그런 교리 노선을 떠나서 누구든 복음의 단순함을 왜곡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비행기가 어떻게 공중에 뜰 수 있는지.. 유체역학 항공역학 물리 법칙을 하나도 모르고 수학적으로 증명을 못 해도,
"이 비행기는 중간에 추락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잘 날아갈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믿고 비행기를 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안 믿어지면..? 옛날에 북한 김 정일이 그랬던 것처럼 외국 나갈 때도 평생 열차만 타고 육로로만 다녀야 되는 거다.

"아~ 해외여행을 5년쯤 다니니 어느날 갑자기, 이제야 믿음이 생겨서 비행기를 안심하고 편안하게 탈 수 있게 됐어!!"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개인 간증으로서는 좀 드라마틱한 일일 수 있지만, 5년 동안 불안불안하게 탔던 자기만 집착이 심한 비정상이었던 것일 뿐이다. 그런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일반적인 교리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결국은 자기가 안 믿은 걸 갖고 하나님 쪽에서 믿음을 안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탓"이 나와서는 심히 곤란하다. ㅡ,.ㅡ;;;

내 경험상, 어설프게 영어 성경 읽으려고 애쓰기 전에 국어 공부부터 해야 될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역으로 성경을 별 오류 없이 분별하면서 제대로 읽을 정도가 되면, 세상 학문을 할 지적 능력도 이미 크게 갖춰져 있게 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26 08:36 2022/05/26 08:36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024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은 제임스 1세 왕이 즉위한 지(1603)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초기인 서기 1604년에 번역 위원회가 조직되고 작업이 시작되었다. 완료되고 출간된 건 그로부터 약 7년이나 지난 1611년..

나라 모양새를 보아하니 교회 통합과 국민 단결을 위해 새 성경을 만들어야 할 필요를 시급히 느꼈던 모양이다. 조선의 한글은 1418~1450년에 달하는 세종대왕 통치 기간 중에서 비교적 말기에 만들어졌으니(144x년대..) 이와 대조적이다.

킹 제임스 성경과 비슷한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졌던 것들, 존재했던 주요 인물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은 대체로 1600년대를 전후해서 만들어졌다.
  • 돈 키호테: 1605~1615년. 작가인 세르반테스도 스페인 사람으로서 성경에 아주 능통 박식했다고 한다.
  • 두에-랭스 가톨릭 성경: 신약이 1582년에 먼저 나왔고, 구약까지 완역 전서는 1609~1610년에 출간됐다. 가톨릭의 KJV나 마찬가지인 듯..
  • 제임스타운: 1607년에 영국이 북미 대륙에 최초로 개척한 식민지이다. 이때 추장의 딸이 그 유명한 포카혼타스였다.
  • 갈릴레이 갈릴레오: 1609~1610년 사이에.. 당시 최신 문물이었던 망원경을 이용해서 목성의 위성들을 인류 최초로 발견했다.
  • 존 네이피어: 로마 교황을 왕창 싫어했던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1590년대에 이미 로그라는 것을 발견? 고안했다.
  • 동의보감: 1612년. KJV와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 영창대군: 1606년생, 1614년 사망.
  •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도 막부: 1610년대에 출범.

세상에서 다루는 세계사의 관점에서 제임스 왕은 전임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 비해 그리 훌륭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뭐, KJV의 권위가 그런 일개 군주의 인성에 좌우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사람 역시 일각에서 모함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똑똑하고 성품이 올바르고 성경적인 사고방식이 입력돼 있던 사람이었다. 일단 국비를 투입해서 성경을 만들 생각부터가 군주가 독실하지 않고서야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정치적인 행적은 다 제끼고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역사 잡학은.. 제임스 1세 왕이 담배를 개인적인 소신상 극혐해서 금연 운동을 거의 세계 최초로 추진했던 군주라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A Counterblaste to Tobacco -- 담배를 반대(극딜)하며
이건 저 왕이 1604년, 즉, 성경 번역과 같은 시기에 친히 저술했던 에세이.. 소논문 급의 글이다. 끝의 결론 부분은 다음과 같다.

"A custome lothsome to the eye, hatefull to the Nose, harmefull to the braine, dangerous to the Lungs, and in the blacke stinking fume thereof, neerest resembling the horrible Stigian smoke of the pit that is bottomelesse."
(담배는) 꼴도 보기 싫은 냄새와 광경. 뇌에 해롭다. 폐에 위험하다. 시커먼 연기는 이거 무슨 무저갱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같다.


저 글에서 위의 결론 부분은 기독교니 성경이니 하고 아무 상관 없이 그냥 세상적인 금연 운동을 하는 진영에서도 즐겨 인용하는 유명한 텍스트이다.

자, 생각을 해 보자.
전근대 왕조 시절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담배라는 값비싸고 신기한 신문물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보통은 왕과 신하들이 좋다고 서로 맞담배를 피워 댔다. 궁궐 안의 어전회의 장소가 냄새와 연기로 뒤덮여서 너구리굴처럼 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_=;;
그러다가 이건 아니다 싶으니 담배와 관련된 문화와 예절도 차차 생겨났다.

그 와중에 잉글랜드의 제임스 왕은 담배 연기를 보고는 계 9:1-2 말씀.. 대환란 재앙 때 무저갱(바닥 없는 구덩이)이 열려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떠올린 것이다..!!
1600년대 옛날 사람이니까 뭘 보든 성경 구절 묘사를 더 잘 떠올렸을 것이다. 옛날에는 담배 연기가 시꺼멓기라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술이야 인간과 함께한 내력이 담배보다 훨씬 더 길기 때문에 성경에도 대놓고 언급된다. 그리고 1700년대 조선 영조의 금주령이나 20세기 초 미국의 금주법 같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담배는.. "위대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가 즐겨 피우는 담배", "의사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담배" 이런 광고가 19~20세기 사이에 나돌 정도였다. 세계적인 금연 운동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담배는 성경에 직접적인 언급도 없다. 현대의 예수쟁이들은 "단순히 해로운 화학 물질에 중독되지 말고 하나님의 성전인 자기 몸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관리하라"라는.. 간접적이고 보편적인 2차 말씀에 근거해서 담배를 안 피울 뿐이다. 즉, 굳이 담배에만 적용되는 말씀은 아닌 셈이다.

이런 것까지 생각하면 제임스 왕의 금연 운동이 시대를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다만, 이 사람도 세금 수입 때문에 당장 제임스타운 같은 식민지에서 담배의 재배까지 다 금지한 건 아니었다. 이건 뭐 정치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면모였다. (이스라엘/유다 왕국의 선한 왕들도 산당들은 어지간해서는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니...)

그리고 성경에.. "경건치 아니한 자는 악을 캐내나니 그의 입술에는 타오르는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as a burning fire" (잠 16:27) 이런 말씀이 있긴 하다. 설마 대놓고 담배를 저격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굉장히 그럴싸해 보인다.;;

행 2:3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 as of fire"가 꼭 '낼름 이글이글 불꽃처럼 생긴 혀'를 말한다면,
잠 16:27은 '활활 타는 불'처럼 생긴 그 무언가를 가리킨다.
그 다음으로 내가 떠오르는 문구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인기 아이돌 마츠야마 아이 씨입니... 아!!
왠지 표정이 맛이 가 있습니다! 게다가 손에는 담배 같은 것이~!! 평소의 아이 씨가 아닙니다!!" --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종말편
(어이 거기 사회자, X나 시끄러워.. 날 물로 보지 마)


전부 '무엇처럼 생긴 것'이라고 대상을 비유로 가리킨다. =_=;; ㄲ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2/05/18 08:35 2022/05/18 08:35
, ,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021

화물교(cargo cult) 신앙

1940년대 태평양 전쟁 당시에 남태평양의 뉴기니, 멜라네시아 일대의 섬에서는..
비행기 타고 착륙하거나 배 타고 상륙해서 신기한 선물--스팸 통조림, 의약품 따위--을 잔뜩 뿌려 주는 미군을 무슨 UFO 타고 날아오는 외계인쯤으로 여기고 숭배하기 시작한 섬 원주민 종족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쟁이 끝나고 더는 수송기와 군함이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들은 그 비행기와 배를 기다리는 제사를 지내고, 비행기 착륙 유도원의 손짓을 종교 의식으로 승화시켜서 흉내 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종전 후에 이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는 굉장히 놀랐다. 인류학자, 종교학자, 고고학자들은 이 토속신앙에다가 cargo cult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류 역사 초창기에 종교라는 게 이런 식으로 생겨났겠구나~!"

게다가 이것도 세부 교리(?)가 지역별로 파편화까지 됐다. 어떤 곳에서는 비행기를 숭배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배를 숭배하고.. 특히 바누아투라는 섬나라에는 대놓고 미군 해군 장교의 이름을 딴 '존 프럼(John Frum)'교라는 화물교 교파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전후에 맥아더를 맥 쇼군이라고 신성시한 것과 비슷하달까..;;;

미국인 선교사들이 거기에 다시 들어가서 원주민에게 기독교 복음도 전하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다.

"비행기는 그냥 평범한 인간 기술자가 개발한 기계임. 자연의 특성을 이용해서 공중에 뜨는 것일 뿐, 주술이 아님.
그리고 결정적으로 바깥 세상은 전쟁이 끝났음. 그러니 님이 보셨던 그 비행기나 배가 여기를 다시 찾아올 일은 없습니다. (이제 아무리 종교 의식을 치르고 빌어도 소용없어요)"


그랬는데 그 원주민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네는 예수라는 신의 아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2천여 년째 기다리고 있다면서요?
2천 년도 기다리는데 우리는 겨우 20년밖에 안 지났습니다. 얼마든지 더 기다릴 수 있지요"


....;;;;;;
와 나라도 할 말이 없다.. 완벽하게 설득당함..ㅠㅠㅠㅠㅠ
정확하게는.. 저건 데이비드 애튼버러라는 영국의 유명한 인류학자가 존 프럼교 신앙을 가진 원주민을 인터뷰 하면서 받은 답변이라고 한다.

저건.. 더 옛날에 슈바이처한테 어떤 토인이 "아니, 백인들은 서로 잡아먹지도 않는다면서 전쟁에서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여요?"
이렇게 말한 거 이래로 정말 최고의 명답변인 것 같다.

내가 듣기로는 화물교 신앙이 퍼져 있던 여러 지역들도 이제는 어지간히 문명의 이기를 접했다고 한다. 미군 군용기와 군함이 무슨 종교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냥 경로의존성, 전통, 추억 보정 차원에서 CARGO CULT를 시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건 전쟁이 끝났다는 걸 수십 년째 받아들이지 않은 일본군 패잔병하고 좀 통하는 구석이 있는 극단인 것 같다.

참고로 미군은 이런 화물교 신앙이 있건 말건, 1952년 이래로 지금까지도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 때 미크로네시아, 마리아나 군도, 팔라우 등의 섬에 수송기를 날려서 생필품, 장난감, 식품 등의 선물을 뿌려 주고 있다. 단, 현대에 와서는 호주 공군 및 일본 자위대하고도 같이 수행한다고.. (☞ 보도 자료 중 하나)

세상에 이렇게 화물교도 있는데..

(1) 철도교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를 근간으로 도로 정체로부터의 구원을 믿는 모 신흥 종교이다.

(2) 라면교는.. 끓는 물에 죽으셨다가 3분 만에 부활하신 기적을 믿는 신흥 종교이다. 비빔면이나 뿌셔뿌셔 같은 부류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ㄲㄲㄲㄲㄲ

(3) 1986년에 창시되어서 현재까지 청주 모 지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불교는.. 한국학 연구원과 각종 인터넷 신문에서도 취재를 나갔을 정도였다. (☞ 보도 자료 , 보도 자료 2) 가정집에 모여서 이불 뒤집어쓰고 성경 읽고 찬송가 부른다는데 이 정도면.. 신흥 종교라기보다는 그냥 특이 교파 정도로 봐야 하지 않을지.. =_=;;

(4) 인도양 북부에 인도와 버마· 태국 사이의 망망대해에는 North Sentinel Island라고 60㎢ 남짓한 면적의 작은 섬이 있는데.. 여기에는 '센티널 족'이라고 불리는 원시 생활 원주민이 50~200명 남짓 살고 있다. 이들은 외지인의 접근에 극도로 적대적이며, 이 때문에 여기는 2022년 현재까지도 서양 문명이 전혀 닿은 적 없이 고립된 동네이다.
당연히 선교사가 들어가지도 못해 있다. 2018년경에는 어느 미국인 선교사가 어설프게 잠입을 시도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고는 다윈 상이나 받았다. -_-

Posted by 사무엘

2022/04/26 19:35 2022/04/26 19:35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013

먹튀 구원

기독교 은혜의 복음에서 굉장히 논란이 되고 트집도 많이 잡히는 낭설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평생 내 마음대로 죄 지으며 살다가 죽기 직전에만 달랑 예수인지 뭔지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소리네?? 뭐 그런 어거지가 다 있어?”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Y/N 하나로만 굳이 답한다면 흔쾌히, 단호히 Y이다.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하자면, 이건 다른 단골 드립인 “이 순신/세종대왕 드립”보다는 논파하기 훨씬 더 쉬운 주제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억을 받았습니다” 광고를 기억하시는가? 생명보험 가입해서 보험료 딱 한 번만 내고는 가입자가 다음날 바로 급사해 버렸는데.. 어쨌든 면책 기간 없고 계약 위반도 아니니 1회분 보험료의 500배에 달하는 보상금이 나온 적이 있었다.
이런 일이 성경적으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합법이니까.

누가복음엔 평생을 흉악범으로 살다가 십자가형 당한 강도가 바로 옆의 예수님께 로비(?) 잘 해서 당일 바로 구원받은 얘기가 나온다. 훗날 “죽기 직전” 드립이 많이 나올까 봐, 진짜로 죽기 직전에나 달랑 구원받은 사람 예시를 대놓고 수록해 줬다. ㅋㅋㅋ

게다가.. 이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십자가에 달렸던 바로 직후엔 그 구원받은 강도도 예수님을 같이 조롱하고 욕했었다!
마 27:44의 ‘강도’는 분명히 복수형이다. 두 명 다 욕했다는 뜻이다.
그랬는데 둘 중 한 명은.. 심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나중에 마음을 돌이키고 회개한 것이다.
예수님 면전에서 욕과 조롱까지 하다가 구원받았다고라? 세상에 이것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인생 역전이 어딨을까?

자, 그래서 원 질문에 대한 답변은 Yes임을 논증했다.
그럼 그 복음이 말도 안 되는 어거지인가? 하나님이 구원 먹튀, 모랄 해저드를 조장하고 있는 것인가?
그건 절대 아니고 답이 No.. 아니 No를 넘어서 God forbid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언제 죽을지 절대 알 수 없다. “죽기 직전에만 믿으면 되겠네?”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다음날 꽤꼬닥 급사할 수 있다. 당연히 구원 못 받은 채로.. ㅡ,.ㅡ;;

이건 학교 선생이 아무리 자비로워도 시험 문제를 대놓고 유출은 절대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국영 소방서가 없는 곳에서 민간 화재 보험(공제 조합)을 평소에 안 들었다가 자기 집에 불 나면 아무도 안 도와주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그건 보험사가 야박하고 잔인한 게 아니다. 그때 호락호락 불을 꺼 주면 평소에 아무도 보험을 안 들 테니까..

하나님은 겨우 죽기 직전 구원 먹튀 같은 알량한 잔머리로 결코 농락· 조롱당하지 않는다.
지난 대선 때는 코로나 걸려서 당일 투표 못 할까 봐 두려워서 사전투표 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우리는 그것보다는 자기 미래 대비를 좀 해야 될 것이다.

둘째, 병이나 사고로 급사하지 않고 자연사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지금도 안 믿는 사람이 더 나이 들어서 고집 세고 완강한 늙은 꼰대가 된 뒤에 복음이 과연 믿어질까..? 그런 일은 생각만치 호락호락 일어나지 않는다. 7, 80대 노인이 정치 성향이 180도 달라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보시라.

글쎄, 돈 날리고 건강 잃고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뒤에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서 종교에도 관심 생기고 성경 읽고 싶어지고 그럴 수는 있겠지만.. 이것도 누구나 그러라는 보장은 없다.

십자가의 강도는 그저 예수님께 잘 보이려고 얼굴도장 찍은 게 아니다! 갑자기 마음이 확 바뀌어서 자기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같이 예수님을 까던 십자가 동기(?)에게 버럭 하고는.. 예수님을 무려 ‘주여 Lord’라고 불렀다. 이 정도는 되니까 아무 선행 없이도 구원이 이뤄진 것이다. (킹 제임스 성경만이 눅 23:42가 ‘예수여’가 아니라 ‘주여’라고 적혀 있음!!)
이걸 죽기 직전에 쟁취해서 먹튀하는 거..??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끝으로 셋째, 위의 질문은..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는 건 아주 억압적이고 자유를 박탈당하고 손해 보고 호구처럼 사는 것이다, 그러니 믿을 거면 최대한 늦게 믿는 게 낫다”라는 프레임이 깔려 있다. 그러니 이건 엄밀히 말하면 질문의 전제조건부터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내 인생의 기원과 목적을 정확하게 알게 되고 이 세상의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게 되고.. 죄 짓는 걸 자유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죄를 자연적으로 멀리하고 싫어하게 되고, 진정한 기쁨과 평안과 감사라는 게 생기고..
이런 이익 gain을 어린 시절 젊은 시절부터 누리지 못하고 죽기 직전에야 달랑 겨우 구원받는 건 먹튀가 아니라 손해이다.

성경의 전도서는 “나도 솔로몬의 반만치라도 금수저 쥐면서 부귀영화 누리고 미녀 1000명하고 원나잇도 해 봤으면 좋겠다 -_-”가 아니라,
니들은 나처럼 헛되고 헛된 거 삽질하면서 인생 낭비하지 마라. 젊은 시절부터 하나님 찾아서 잘 섬겨라~ 그게 너한테도 이득이다”의 취지로 기록됐다는 걸 잊지 마시라! 이 점에 대해서는 재작년에 본인이 쓴 글도 참고하시길 바란다. (☞ 링크)

자기들이 보기엔 뉴비 쪼렙 ㅈ밥(?)일 뿐인 인간들이 아무 노력이나 공로 없이 구원을 너무 쉽게(?) 받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발끈하는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다. 성경에 기록된 포도원 비유(일한 시간과 관계 없이 동일한 일당이라서 발끈), 그리고 탕자의 비유에서 발끈하는 형과 정확하게 같은 심정으로 보인다. 읽어 보면 진짜 기가 막힐 정도로 일치한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라든가 보편적인(=구원받은 신자라면 누구나) 휴거도 99%의 확률로 안 믿는다.
애초에 자기 선행으로 구원을 얻는 게 아닌데,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고 납득이 안 되고 자존심 상하는 걸까?
가령, 살인자도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데, 자살한다고 구원이 취소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구원받고 나서 사람이 도로 펑펑 죄를 짓는 걸로도 모자라서, 마음에 180도 변해서 더 이상 예수 안 믿고 아예 타 종교로 개종을 할 정도로 배교해도 구원이 유지되나?”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해서 묻는 사람이 있다.

이것도 먹튀 구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답변 가능하다. 원론적인 답변은 Yes.. 인간이 설령 그런 짓까지 하더라도 구원은 유지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타 종교로 개종을 할 정도로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뀌는 사람이라면 한 90% 이상은 애초에 구원도 안/못 받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10억을 받았습니다”에 가까운 아주 극단적인 로또 급 예외일 뿐, 압도 다수의 경우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예수님께서 비참한 나를 위해서, 나의 그 끔찍한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니~~!! 엉엉엉” 이랬던 사람은.. 무슨 당장 의를 행하고 순교도 가능할 정도로 강한 용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성경 말씀이 믿어지고 죄에 대해서 민감해지고 긴가민가 고민은 하는 게 정상이다.
내 노력으로 죄 안 지으려고 불끈 노력하다가 롬 7:24의 바울처럼 현타를 느끼고 멘붕 좌절하고, 그러면서 내 육신을 죽이는 훈련을 하며 커 가는 게 정상적인 코스이다.

구원이란 정말 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머리와 가슴 사이의 어마어마한 거리를 실감케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래서 구원받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을 못 하는 사람도 많다.
한번 구원을 제대로 받긴 한 사람이라면 휴거 못 되는 것, 지옥 가는 건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 없고, 그 대신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매 1분 1초를 한 순간도 빠짐없이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분과 나의 사고방식이 동기화가 돼 있지 않았다면.. 그 심판석은 어지간한 화생방 훈련 이상으로 눈물 콧물 빼는 처절한 회한의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구원과 관련된 온갖 낭설과 오해가 바로잡히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사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04/06 19:35 2022/04/06 19:35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006

모세의 뿔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천재 예술가(화가 겸 조각가)이다.
그는 성경의 인물 중에서 다윗을 조각으로 남겼으며(1501~1504, 보통 '다비드'라고 알려져 있..), 또 모친 마리아의 품에 안긴 형태이긴 하다만 예수 상도 만들었다(피에타, 1499). 이 둘은 워낙 엄청난 명작이기 때문에 조각가의 이름만 검색해도 이미지 검색에서 곧장 걸려 나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그는 다윗과 예수뿐만 아니라 모세 상도 만들었다(1515).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에 들어가는 장식 차원에서 만든 것인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세의 머리에 뿔이 달려 있다.. 왜..?
참 놀라운 일이지만, 그 당시에 성경이 그렇게 (잘못) 번역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시내 산에 다시 올라가서 하나님을 오랫동안 독대하고 십계명 돌판을 다시 제조한 뒤에 하산했는데.. 출 34:29에 따르면 하나님 버프를 받은 덕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에서 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머리가 빛나는 게 아니라 얼굴 말이다.;;

허나, 그 중세 시절에 가톨릭 교회에서 쓰이던 제롬의 라틴어 벌게이트(불가타) 성서에서는 his face shone (= shined) 부분이 his face was horned라고 번역되었다.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성경 번역의 먼 조상뻘인 위클리프 성경도 벌게이트의 영향을 받았다 보니 그렇게 됐고, 두에 랭스 가톨릭 성서까지도 다 출 34:29에 horned가 들어가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 혼자 올라가서 하나님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머리에 졸지에 뿔이 돋아 버린 거다..;;
뿔 난 모세, 앵그리 모세스.. 괜찮은 컨셉인 거 같다.
그 앞에 금송아지 사건 때문에 빡쳐서 뿔이 돋은 거라고 하면 차라리 훨씬 더 자연스럽겠다만, 저건 도대체 뭐냐. ㄲㄲㄲㄲㄲ

뭐, 뿔이 빛보다는 조각으로 표현하기 훨씬 더 유리하긴 하다만..ㄲㄲㄲㄲㄲㄲ
그리고 뿔은 성경에서 흉물이 아니라 긍정적인 심상이 강하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오죽했으면 '구원의 뿔'(시 18:2; 눅 1:69)이라는 명칭도 있을 정도이다.

저걸 최초로 찾아내서 바로잡은 사람은 그럼 누구이며 언제쯤의 일일까...??
옛날에는 사람들이 지식·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글을 다루는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성경에도 본문 계보의 정확도와 별개로 오역이나 실수가 종종 들어갔던 모양이다.

이런 악의적이지 않은 오류는 원어를 아는 소수의 학자 집단에서 경험적으로 알려지고 알음알음 공유되었다. 그러나 그걸 바로잡아서 역본을 또 만드는 건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개정한 뒤에 오역이 또 발견되면 어떡하려고..? 게다가 이때는 컴퓨터고 인터넷이고 아무것도 없고 종이의 가격도 엄청 비쌌다는 걸 생각하자.

에라스무스의 공인 본문이 나오고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개신교 쪽에서 라틴어로도 모자라 독일어와 영어로 성경 번역을 주도하면서 오랜 번역 오류가 고쳐졌던 게 아닌가 싶다.
그 반면, 가톨릭은 이때 본격적으로 고인물 썩은물이 돼 갔던 것 같다. 자신이 파문한 이단자들이 일으키는 변화를 당연히 전혀 수용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무려 1580년대에 안티 종교 개혁 차원에서 만들어진 두에 랭스 역본까지도 모세의 뿔이 여전히 들어있었던 것이다. (☞ 링크)

물론 개신교 계열의 옛날 성경도 과도기적인 실수나 오류가 있었다.
10여 년 전에 영국에서 만들어졌던 KJB: The book that changed the world라는 다큐 영상을 보면, 제임스 왕이 성공회와 청교도를 중재하면서 새로운 끝판왕 성경을 만들 것을 지시하는 과정이 잘 묘사돼 있다.

제임스 왕은 성공회에서 사용하던 비숍 성경은 대놓고 오역이 많다고 깠고, 청교도들이 사용하던 제네바 성경은 번역 스타일이 편향되고 잡다한 난외주와 주석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꼴도 보기 싫다며 깠다. 한쪽만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는 모두까기 소신이었다.

그래서 두 진영 학자들을 한데 모아서 서로 교차검증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성경 번역을 시작했는데.. 성공회 진영의 대표 학자가 "그래도 기존 비숍 성경이 더 나으니 그거 스타일대로만 따라가면 별 문제 없겠는뎁쇼"라고 사석에서 국왕 폐하에게 은근슬쩍 자랑을 했다.
허나, 제임스 왕은 표정이 썩으면서 바로 말을 끊고 이렇게 맞받아 쳐 버렸다.

"뭐, 비숍 성경이라고?? 전 11:1 '빵을 물에다 던져 넣어라'가 '빵을 젖은 얼굴 위에다 놔 둬라'라고 황당하게 오역돼 있는 그 역본 말여?? 오 맙소사!
이번에 비숍 성경보다 더 나은 성경을 니가 책임지고 새로 만들지 못한다면.. 짐이 손수 니 얼굴을 물에 적셔서는 그 위에다 빵을 올려놓을 테니 그리 아시오"


끄응.. 요 유튜브 동영상 56:18 이후 지점을 참고하시라. 저건 창작 각색인지, 아니면 무슨 조선 왕조 실록처럼 잉글랜드 왕조 실록에 기록된 160x년대의 실제 대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를 보니 비숍 성경은 진짜로 전 11:1이 젖은 얼굴 위에다가 빵을 놔 두라고 혼자 특이하게 번역돼 있더라..! (☞ 링크)
하지만 얘는 모세가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돼 있지는 않았다. ㄲㄲㄲㄲ

이래서 옛날 성경은 그냥 역사에만 이름이 남아 있지 오늘날까지 교회 예배 때 쓰지는 않는구나. -_-
두에 랭스 역본은 내가 알기로 가톨릭의 킹 제임스 비슷한 고전 역본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나온 시기가 비슷하고 같은 고어체이기도 해서.. 하지만 유럽 역사나 교회사깨나 아는 신자들은 그 역본의 오역을 뻔히 얘기하며, 저 모세의 뿔 일화도 당연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개신교(?) 쪽의 킹 제임스 성경은 400년 넘게 묵은 옛날 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무오하다는 유일주의를 믿는 진영이 있다. 본문의 내용이 이역 수준을 넘어 완전히 다른 것도 있고, 또 성경에 대한 인식과 믿는 방식이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여담

  • '피에타'는 옷과 피부 묘사야 뭐 신의 경지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아무리 봐도 마리아가 덩치가 너무 크게 나온 것 같다..;;
  • 그림 중에서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이고.. "최후의 만찬"은 라이벌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렸다.

Posted by 사무엘

2022/03/26 19:35 2022/03/26 19:35
,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002

죄, 믿음, 순종에 대해서

1. 죄

프로토스의 유닛이 실드와 체력으로 나뉘듯, 인간이 저지르는 죄라는 것을 성경적으로 판단하는 데는 (1)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 그 자체, 그리고 (2) 사람의 입장에서 남에게 나쁜 영향이나 피해를 끼치는 것이라는 두 가지 관점을 동원할 수 있다.

(2)는 가해자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과 피해자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 둘로 또 나뉜다.
전자는 (2-1) “니가 그 상황에 처했어 봐라, 닌 더했을 거면서..”라고 뭔가 친일파의 변명이라든가 “죄 없는 자부터 돌로 치라” 같은 관점을 말한다.

반대로 후자는 (2-2) “니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어 봐라, 그래도 사형 반대하겠냐” 같은 관점을 말한다.
이것도 둘 다 법리의 측면에서 중요하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마다 둘 중 어느 것에 비중을 더 두는지가 정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성경은 크리스천들끼리 죄에 대처하는 방법(왕국 헌법 관점)과 현 세상 정부를 상대로 죄를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서로 다른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런데 프로토스 유닛 중에 아콘처럼 실드로만 가득하고 체력의 비중이 거의 없는 놈이 있듯.. 어떤 죄는 (2)의 관점만으로는 제대로 분별할 수 없는 종교적인 영역에 속한 것도 있다.
가령, 동성애가 단순히 건강에 안 좋은 것을 넘어서 왜 죄이기까지 한지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운운하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따지기 어렵다.

더 나아가 원초적으로 예수 안 믿는 것이 왜 지옥 가는 죄인지도 (2)만으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어디 그 뿐이랴, “어리석은 생각은 죄”, “기도하는 것을 쉬는 건 죄”, “탐욕도 죄”, “믿음에 나지 않은 것은 죄” 이런 것까지 가면 도저히 답이 없다.

구원받고 나서도 죄 계속 지으면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굉장히 단순무식하게 생각하는 분들의 오류가 무엇이냐 하면, 죄라는 게 (2)에 속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죄 계속 지으면 구원을 잃을 수 있다면.. 이런 구원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선행으로 구원을 얻은 게 아니기 때문에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 게 얼마나 합리적이고 다행인지 모른다.

sin은 말 그대로 원초적인 죄라는 뜻이고, evil은 죄의 결과로 인해 야기되는 나쁜 악 내지 재앙을 뜻한다. ‘벌’에 가깝다. 또는 기독교적인 심상이 담긴 단어는 아니지만 액운과도 가깝다고 볼 수 있다.

fault는 evil과는 다른 관점에서 죄의 결과로 인해 남에게 물리적으로 야기된 나쁜 결과, 민폐, 잘못, 허물 정도의 뜻이다. 또는 법을 어긴 것까지 아니어도 도의적으로 사과할 만한 잘못.. “그때 바빠서 제대로 못 챙겨 준 거 미안해” 같은 것까지도 포함된다.

행 5:4에서 베드로의 말을 보면 사람에게 잘못한 것과 하나님에게 잘못한 것을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상의 성경들 중 오로지 킹 제임스 성경만이 약 5:16에서 “너희 죄를 서로 고하고”가 아니라 “너희 잘못(fault)을 서로 고하고”라고 말한다! 죄의 관점 (1)과 (2)를 생각해 보면 (2)에 포커스를 맞춘 fault가 교리적으로 얼마나 정확한 묘사인지를 알 수 있다.

2. 아들을 믿지 않는 자, 순종하지 않는 자

요 3:36은 긍정적인 조건과 부정적인 조건이 나란히 등장하는 예수님 말씀이다.
긍정적인 조건이야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라고 이견의 여지가 없는데.. 문제는 부정적인 조건이다.
킹 제임스 성경은 "아들을 믿지(believe)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음"이다.
그러나 다른 성경은 "아들을 순종(obey)하지 않는 자는..."이라고 동사가 달라져 있다.

KJV 옹호자, 유일주의자는 이 구절이 타 성경에서 행위 구원을 암시하는 쪽으로 변개됐다고 주장한다.
그 반면, KJV 유일주의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믿는 거나 순종하는 거나 그 말이 그 말이지 뭐가 그리 대수냐고 항변한다. (실제로 접한 적 있는 반박임) 이에 대한 내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먼저, 하나님의 진노라는 개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원받은 사람, 선택받은 백성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displease시킬 수 있고(민 11:1, 삼하 11:27 같은),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신약에서 '하나님의 진노 the wrath of God'의 1차 용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언제든지 집행될 준비가 된 진노, 복음의 전제조건인 그 진노이다.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요 3:36은 요 3:16만큼이나 거리 설교 등 복음을 전할 때 쓰이는 핵심 구절 중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크리스천은 그런 원초적인 하나님의 진노에서는 완전히 열외됐기 때문에 미래의 대환란도 겪지 않는 것이 교리적으로 맞다. 대환란은 개인의 인생이 아니라 세상과 민족 차원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집행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2) "믿는 거나 순종하는 거나 그 말이 그 말"도 넓게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이것들로 인하여(앞서 언급된 온갖 나쁜 행실들)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disobedience)의 자녀들에게 임하나니..."라는 말씀도 성경에 대놓고 나온다. (엡 5:6, 골 3:6)
그런 것처럼.. 무슨 십계명이나 산상설교 말씀을 순종한 게 아니라, 그냥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동의하고 복음 선포에 '순종'해서 예수님을 믿은 것도 순종이다. 이런 관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 3장은 바울 서신서처럼 구원받은 신자의 행실, 제자의 삶을 다루는 문맥이 아니다. 그냥 사람은 거듭나야 하고 아들을 믿어야 한다고 증언하는 곳이다.
p → q 명제 다음엔 그냥 일관되게 ~p → ~q가 나오는 게 깔끔하다. 실제 의미와 범위가 뭔지 한번 더 생각을 해야 하는 '순종'보다는 '믿지 않는 자'가 ~p의 자리에 나오는 게 더 낫다. 이게 아들과 생명의 관계를 believe 대신 have로 진술하는 요일 5:12하고도 더 잘 호응한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2)

심지어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에게 임한다'라는 말조차도 KJV는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두 번 나오지만, 타 성경은 골로새서에서는 빠져서 한 번만 나온다~!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을 받았다"에서 'by his blood'도 원래 엡 1:7, 골 1:14 트윈인데.. 타 성경은 골로새서 버전은 누락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담으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반전인데.. 정작 '공동번역 성서'엔 요 3:36이 "아들을 믿지 않는"이라고 적혀 있더라~! KJV처럼 말이다.

3. 필요악 또는 모호한 영역

이 세상에는 성경적으로 볼 때 대놓고 죄는 아니지만.. 예수쟁이로서 뭔가 좀 긴가민가하고 애매해 보이는 사항이 있다.

(1) 동물 피가 묻어 있는 순대나 아예 굳은 핏덩어리인 선지를 먹어도 괜찮을까?
(2) 거짓말, 위장, "악에는 악으로",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국정원 첩보기관 같은 데에 취업해도 괜찮을까?
(3) 우주로 나가려고 연구하는 공학자, 생물 유전자 조작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돼도 괜찮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나의 소신으로는 모두 "상관없다, 괜찮다"이다.

(1) 생혈이 아니기 때문에 행 15:29와는 무관하다. 그리고 생피라 하더라도, 이 구절에서 나란히 언급된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과 마찬가지로 고전 8의 적용을 받는다.
신약 교회에서 음식의 금지 사항은 믿음이 약한 지체를 배려하는 도의적인 권고이지, 구약 유대교 급의 강제적인 교리가 아니다.

(2) 애초에 적군을 죽이는 일을 하는 군대· 군인부터가 성경적으로 매우 합법적인 조직과 직업이다. 첩보기관은 방법론이 군대와 조금 다를 뿐이다.
정치질이 아니라 진짜로 마약사범이나 산업 스파이나 빨갱이만을 악랄한 방법까지 동원해서라도 잡는 거라면 애국이고 괜찮다.

군대는 전쟁터에서 직무를 위한 살인이 허용되는 곳이며, 첩보기관은 임무를 위해 "이이제이, 악을 악으로 갚는다,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가 허용되고 더욱 고도화된 곳이다.
종교는 특정 주제에 대해 "진영 논리와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허용된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3) 실험 연구를 위해서 대놓고 연구 윤리를 위반하고 사람 생체실험이라도 하는 게 아니라면 상관없다. 그런 걸 관찰하고 탐구하고 인간 생활에 응용할 방법을 찾는 것 자체만으로는 죄가 결코 절대로 아니다.

인간은 지금 같은 인프라와 기술 하에서는 어차피 지구를 떠나서 살지 못한다. 너무나 광대한 우주를 아무리 뒤져도 인간 말고 다른 지적 생명체는 나오지 않을 것이고,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복잡정교한 DNA를 인간이 좀 건드려 봤자 신의 영역을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SETI 프로젝트 같은 것도 해 봐야 별로 나오는 거 없고 괜히 희망고문밖에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시도 자체를 종교 신념에 근거해서 무식하게 물리적으로 찍어누르지는 말아아 한다. 연구할 기회 자체는 충분히 공평하게 줘야지..
그러니 뭘 하든 "상관없다, 괜찮다"인데..

다만, 저런 것들이 개인적으로 양심상 꺼려지거나 그런 적성이 아니라면 당연히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더라도 낙하산 메고 뛰어내리는 걸 무서워서 못 하겠으면 사관학교를 가지 말아야 하며,
살아 있는 동물의 배 가르는 걸 비위 상해서 못 하겠으면 의대에 가지 말아야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이건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예수쟁이들끼리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자기만 옳다고 싸울 일은 아니라고 본다.
구원받은 신자라면 본질적이지 않은 주제에 대해 너무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말고, 약한 지체의 믿음을 세워 주고 양심 안에서 믿음과 자유를 얻으시길 바란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06 08:35 2021/12/06 08:35
, ,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61

1893~94년 사이에 조선에서는 전라도 정읍에 조 병갑이라는 이름난 악질 탐관오리가 부임해서 백성들이 학정과 착취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동학 농민 운동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미국 남부의 뉴멕시코 주 '커럼포' 마을의 농장들에서는 웬 늑대 5인조 특공대가 신출귀몰하여 양과 암소 같은 가축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잡아먹어서 주민들이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100여 년 전에 프랑스에는 사람만 물어 죽이는 제보당의 괴수가 있었다지만, 쟤들은 가축만 상대하는 늑대/이리였다. 그런데 얘들은 평범한 늑대가 아니었다.
사람과 덫은 귀신같이 잘 피해 다니면서 지독하게 잡히지 않았다. CCTV도 없던 시절이니 농장주들은 정말 속수무책으로 손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은 잡아먹는 게 아니라 그냥 유흥을 위해서 양들 수백 마리를 그냥 물어 죽이고 튀기도 했다. 한때는 독이 든 먹이 미끼들을 몽땅 거둬 가서 한데 모아다가 위에 똥을 찍 싸는 여유까지 부렸다! 이 정도면 이놈들은 늑대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늑대 패거리의 우두머리는 시튼 동물기에 나오는 대로 로보(Lobo)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는 아재력이 발동되어 옛날 H.O.T 2집의 “늑대와 양”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ㅋㅋㅋㅋㅋ (늑대 빌어먹을 짐승 같은 XX ㄲㄲㄲㄲㄲㄲ)

사람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맹수 개체가 보고되면 보통은 동물 보호 운동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놈을 잡으려 한다. 걔를 잡는다고 같은 종에 속하는 다른 맹수들까지 싸잡아 학살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동물기의 저자인 시튼이 직접 이놈을 잡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결말은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바로.. 로보가 아니라 놈의 반려자인 하얀 암컷 블랑카를 먼저 잡았다. 놈의 부하들과는 달리 마누라는 철딱서니 없이 부주의하게 행동하는 게 묵인되었고, 어디서든 더 큰 권한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글쎄, 그 당시 사람들은 블랑카를 살려 둔 채로 인질로 활용할 생각은 안 하고 얘를 바로 죽여 버렸다. 이들 패거리에 대한 적개심 복수심 때문에 바로 죽였지 싶다.

블랑카의 시체가 조리돌림 당하는 지경이 되자 우두머리 로보는 인간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평정심을 잃고 멘붕 폭주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걸리지 않았을 허술한 덫에 너무 허무하게, 거의 자살에 가까운 방식으로 걸려서 잡혔다.

로보는 잡힌 뒤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었는지, 인간이 직접 챙겨 주는 먹이를 일절 먹지 않고 버로우 타고 있다가 그대로 굶어 죽었다고 한다.;; 시튼은 당장 가축의 피해를 막은 것은 다행이지만 적을 너무 비열한 방법으로 잡았다며 자책하고 탄식했다.
하다못해 시튼 동물기를 읽은 어느 열 살배기 꼬마가 “아저씨는 나빠요~ 늑대 로보를 그런 방식으로 잡다니 너무 비열하고 치사해요!! ㅠㅠ” 라고 항의 메일... 아니, 편지를 보낼 정도였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잡힌 로보와 블랑카의 실제 사진. ㄷㄷㄷ)

이렇게 블랑카와 로보가 잡힌 과정은.. 뭐랄까 성경의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인류의 타락 과정하고도 좀 비슷해 보인다.
마귀가 에덴 동산에서 인간을 꾈 때도 여자가 혼자 있는 순간을 노렸다. 더 호기심 많고 블랑카 같은 구석이 있던 여자가 먼저 선악과를 먹었다.

남자는 저런 상황에서 뱀의 낚시 정도에는 넘어가지 않았을 사람이었다.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걸 분명 숙지하고 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사랑하는 여자와 같이 죽으려고 일부러, 고의로 신의 명령을 어겼다.
그렇기 때문에 죄의 시초가 아담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브만 먹었으면 죄가 후세에게까지 유전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냐. 특이한 개인별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저게 남자와 여자의 평균적인 종특이다.
여자가 좀 더 감성파에 가깝다. 남자는 다른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여자보다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자를 위해서 자기도 왕창 비논리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려 버린다. 여자를 위해 자기 신념을 바꾸고 삽질 자승자박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목숨도 바친다.;;
“피~ 오빠는 내가 좋아 신념이 좋아? ㅠㅠㅠ” 이런 말에 대부분 넘어간다. 이건 남자 여자 어느 쪽 탓을 할 문제가 아니다!

지존파는 여성 피해자를 매정하게 죽이지 않고 살려 줬다가 잡혔다.
이스라엘에서 여군을 전투병으로 투입하지 않는 이유도.. 단순히 성범죄 발생 때문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여군 전우가 전사하자 남군들이 통제력을 상실하여 으아아아악 폭주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라는 게 보편적으로 이런 생물인 것이다.;; 성경의 삼손은 그 중 한 예일 뿐이다.

이렇듯,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 얘기는 단순 설화 우화로 치부하기에는 굉장히 심오한 인생 원리(!)가 담겨 있다.
남자와 여자는 정말 서로 다른 존재이고 고유한 역할이 있다. 그리고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할 때가 서로가 윈윈이고 좋다!

그러니 지긋지긋한 종북들은 빨리 북한 가서 살 것이며, 꼴페미들은 진짜 여성 해방 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아프가니스탄 가서 거기서나 온몸을 바쳐 환경을 바꿔 놨으면 좋겠다. 쓸데없이 여기서 남녀 갈등 조장하는 헛소리 늘어놓지 말고 말이다. 그건 번지수 잘못 찾았다. 응? 늑대 얘기로 시작했다가 결론이.. ㄲㄲㄲㄲㄲ.

의사· 경찰· 군인 같은 직업 종사자의 그림에 남자만 묘사돼 있는 게 차별이라고 트집잡는 페미들치고 일반적으로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훨씬 더 많이 부담하는 것, 결혼할 때 남자가 으레 집 장만하는 것, 여성의 갱내 근로가 금지돼 있는 것(근로기준법 제72조), 전쟁터나 각종 사고 현장에서 아이와 여성부터 먼저 구조하는 것.. 이런 걸 불평등이라고 지적하는 년은 내가 아는 한 전혀 없다. 쟤들은 책임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따지는 전형적인 위선자들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부터 데이트 비용은 무조건 1:1로 분담한다고 해서 그렇게 정의가 구현되고 남녀 모두에게 아름다운 세상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남녀의 보편적인 차이점을 일부러 부정하고 무식하게 획일 평등만 추구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본인은 통상적인 남자 여자 특성과 차이점, 성 역할을 어느 정도 지지하는 소신이다. 그러나 이건 (1) 우열을 가리고 계급화를 하라고 있는 차이점이 절대 아니며, 또한 (2) 개인별 예외적인 특성을 무시하라는 말도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밖에서 뛰노는 걸 좋아하는 활동적인 여자나, 내성적이고 가정일 좋아하는 남자를 죄인 취급하고 무시하고 왕따 시키라는 얘기가 아니다. 동성애야 정신병이나 죄 중 하나 이상이겠지만, 단순히 성격이 저런 것은 마치 왼손잡이 정도로 가치 중립적인 아웃사이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균적인 남자보다 더 지적이고 똑똑한 여자는 얼마든지 있고, 평균적인 남자보다 신체 능력이 더 좋은 여자도 당연히 있다.
남자가 감정적으로 폭주했을 때 차분히 이성적인 조언을 해 준 현숙한 여자도 있다. 성경에는 당장 빡친 다윗의 폭주를 잘 컨트롤 해 준 아비가일이라는 여성이 나오며, 또 세상 문학에서도 시튼 동물기와는 반대 스토리인 장끼전 같은 소설이 괜히 전해지는 게 아닐 것이다. (아내 말을 안 듣다가 덫에 꽤꾸닥~) 우리나라의 박 정희 대통령도 어진 영부인을 잃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더욱 폭주가 시작되었다는 게 유력한 분석이다.

하지만 이 역시 언제나 그런 게 아니다.
그 똑똑한 솔로몬 왕도 예쁜 이방인 여자들에게 놀아나다가 그들의 우상 숭배에까지 빠져서 인생 운지했고.. 아합 왕은 희대의 악녀 왕비 이세벨 덕분에 더욱 암군 폭군으로 흑화했다.
그 반면, 욥은 재앙을 당한 뒤에 철딱서니 없는 아내가 내뱉는 잘못된 막말을 컨트롤 하고 잘 저지했다. 일반적으로는 가정과 교회에서 영적 권위는 남자에게 있는 게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그림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의 소위 여자 목사 문제는 이런 배경과 얽혀 있다.

여자라도 프로 운동 선수라면 일반적인 남자보다야 피지컬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이 프로 운동 선수를 생각한다면 여자의 보편적인 피지컬이 올림픽 종목에서 남녀 구분을 없애도 될 정도로 대등한 것 역시 절대 아닌 것이 현실이다!
(그 반면, 요즘은 남자였다가 성전환 하고 여성 종목에 출전한 여성 선수들이 진짜 여성=_= 선수보다 피지컬이 더 우월해서 밸런스를 파괴하고 있다고 난리도 아닌 지경...)

이런 와중에 "girls can do anything" 꼴페와 "어디 여자가 감히" 꼰대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라떼, 한 1990년대 중후반이 중학교에서 기술과 가정 과목을 남녀에게 모두 가르치기 시작했고, 고리타분한 성역할을 타파해야 한다고 교육과정 차원에서 한창 가르쳤었다. 요즘은 그걸로도 모자라서 학교에서도 대놓고 이상한 페미니즘까지 가르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러나 정말 일반적인 평범한 경우를 생각한다면 결국 옛날 사고방식이 더 옳은 편이다.
세상에 여성에 대해서 부당한 차별이나 유리 천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퀴리 부인이나 NASA에 들어간 최초의 여성 과학자 이런 얘기는 영화 소재가 되기도 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유리 천장뿐만 아니라 유리 바닥도 지금까지 많이 있었으며, 유리 천장이 없어지면 유리 바닥도 같이 없어지곤 한다. 그러면 그 피해는 예외적이지 않은 대다수 여성에게 돌아간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라 하겠다. 이상..;;

※ 여담

1.
본인이 예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성경이 말하는 인류 최초의 죄는 그나마 잡범급이고 낭만적인(?) 죄에 가깝다. 아예 반역을 시도했던 정치범인 루시퍼의 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니 인류에게는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길이 열린 반면, 루시퍼는 재기의 기회 없이 영원한 파멸만이 예정되었다.

2.
이 시점에서 히틀러의 여친 겸 아주 잠깐 아내 역할까지 했던 에바 브라운도 같이 떠오른다. 뭐, 이 여자는 사고를 쳐서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거나(..!!) 이적행위를 한 것은 없고.. 그냥 히틀러로부터 관심과 사랑만 받으려고 애썼던 무개념 순애보 처자였던 것 같다. 정치니 전쟁이니 그딴 건 관심 없다.
오죽했으면 히틀러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랑 너무 안 놀아 준다고 너무 상심해서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정도이니.. 뭔가 성경에서 라헬이 부렸던 앙탈과 비슷해 보인다. (창 30:1)

하지만 히틀러는 에바의 바람과 달리, 자기가 에바와 연애 중이라는 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애인을 직접 충분히 챙겨 주지 못하는 대신, 자기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서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은 보장해 줬다.
그래서 전 국민이 전쟁 때문에 배급이나 받으면서 어렵게 사는 동안에도 저 여자는 금수저 행세를 하며 떵떵거렸다. 1940년대에 휴가 가서 노는 동영상을 무려 "컬러" 필름으로 찍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바 브라운의 '컬러' 사진. 이 처자의 성깔과 현실 감각은.. 영화 Downfall에서 남들은 파티 중에 다들 폭격 피해서 도망치는데 혼자 "다들 지금 뭐 해요? 신나는 음악 틀고 같이 놀아요~~ 난 춤 좀 추고 싶다니까?" 이러는 행적으로 묘사되었다.)

참고로 히틀러와 에바의 나이 차이는 우리나라 할배와 프란체스카의 나이 차이하고 비슷한 정도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21 08:35 2021/11/21 08:35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56

성경 번역 스타일의 차이

이 글에서는 KJV 유일주의자가 주로 관심을 갖는 분야인 교리 분야의 텍스트 변개가 아니라, 그냥 번역 스타일의 차이(이역)에 더 가까운 주제들을 다루었다.

1. 비인격적(?)인 표현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은 현대에 번역된 성경들에 비해 뭔가 덜 인격적인(?) 대명사를 써서 번역된 구절이 좀 있다.

(1) 먼저 떠오르는 건 열왕기상 3장의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 장면.
영어를 잘 읽어보시면 문제의 갓난아기를 전부 it으로 가리키고 있다. 아기의 성별이 뭔지 모르는 문맥인 것도 아니고, 두 여인이 나름 아들이라고 거듭 거듭 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he/him을 쓰지 않았다.

아기 예수, 그리고 창세기에서 베레스와 세라(창38:27-29)의 출산처럼 다른 곳에서는 갓난아기에게 성별을 부여한 인칭대명사를 얼마든지 사용한 사례가 있다. 그런데도 솔로몬의 재판만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히브리어 원어가 그렇게 쓰여 있어서? 아니면 진짜 엄마가 나서기 전까지는 왕이 아기를 진짜로 물건 취급하고 divide it, slay it 이런 명령까지 내렸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2) 성령님의 기도 중보를 말하는 유명한 롬 8:26에서 the Spirit을 itself라고 가리킨 것도 유명하고 심지어 오역 논란을 빚고 있기도 하다.
성령은 물이나 불, 바람, 기름 같은 무생물로 예표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명백하게 하나님의 삼위 구성원이고 인격적인 존재이다. 그런데도 himself가 아닌 itself라고 번역된 것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원어가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3) 예수님 관련 예언인 눅 1:35에서는 다른 거의 모든 성경은 the Holy One (거룩한 이, 거룩하신 분)이지만 KJV만은 아예 the holy thing (거룩한 것)이다.
KJV를 번역했다는 흠정역조차 오래 전 초창기에는 '거룩한 이'라고 의역을 해서 출간됐었다. 그러다가 "우리 통념상 어색하더라도 KJV를 번역했다면 닥치고 KJV 단어에만 충실하게 옮겨야 합니다" 이런 설득과 권면이 받아들여져서 지금처럼 번역이 수정됐다.
그 예언은 예수님의 육신, 생물학적인 단백질 덩어리 몸만을 가리키는 문맥이기 때문에 thing이라는 것이 이쪽 진영의 입장이다.

사실, KJV는 요즘 영어처럼 하나님/예수님을 가리키는 대명사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시하는 처리조차도 돼 있지 않다. 그런 관행 자체가 후대에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2. 더대오? 렙배오?

마 10:3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 제자들 명단의 일부이다.
다른 모든 성경들은 “빌립, 바돌로메, 도마,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인 야고보, 그리고 다대오(Thaddaeus)”라고 돼 있다.
그런데 킹 제임스 성경은 다대오가 그냥 다대오가 아니라 “다대오라는 별명을 가진 렙배오(Lebbaeus)”라고 돼 있다. 이 렙배오라는 명칭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본인은 KJV 유일주의에 입문한 지 어언 20년 가까이 돼 가지만, 이런 차이가 있는 건 꿈에도 몰랐다.;; 사실은 다대오가 가룟 유다와 동명이인인 제자 유다를 가리키고, 요 14:22에서 질문을 한 그 사람이란 것도 지금까지 별로 인지를 못 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이 사실을 내가 원래 다니던 교회가 아니라 여친 교회의 설교에서 처음 들었다는 것이다. (개역개정 쓰는 일반 기성교회)
이분들도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모르시는 건 아니구나. 한 수 배웠다.

사실, KJV 유일주의 진영에 들어오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 “하나님이 육체 안에 나타나셨고” 같은 교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더 자극적이고 치명적인 차이점/변개 내역에 대해서 자주 듣지, 저런 단순 정보 전달 쪽의 성경 번역 차이에 대해 들을 기회는 생각보다 드물다. (압살롬의 반역 본문에 나오는 40년 vs 4년 같은 것도..)
렙배오인지 랩배틀인지 저것도 뭐.. 루시퍼, 갈보리, 이스터처럼 유명한 명칭은 아니니까 말이다.

야고보와 유다는 신약 성경에서 헷갈리는 동명이인이 굉장히 많은 명칭 중 하나이다. 저 다대오 유다는 가룟 유다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하고도 다른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나저나 다대오의 영어 스펠링을 보니.. 옛날에 애니매트릭스의 첫 에피소드 “오시리스의 마지막 비행”에서
Good bye, Thadeus / Good bye, Jue / Fly baby, fly!
대사가 떠오르는군..;; 매트릭스가 아예 삼위일체도 나오고 이것저것 성경에서 모티브를 딴 명칭이 여럿 있었던 걸로 내가 기억한다.

3. 한킹(말보회)과 흠정역의 차이는?

번역자의 인성과 자질 논란 같은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를 몽땅 배제하고..! 순수하게 텍스트만 따져보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 흠정역은 이집트, 페르시아, 에티오피아처럼 세속적으로 통용되는 것을 제외하면 책 이름과 고유명사 외래어를 개역성경과 동일하게 표기했다. 한킹은 그렇지 않다 '스카랴/슼, 판관기(사사기) 등'
  • KJV, 그리고 흠정역, 개역성경 등은 인용을 나타내는 여닫이 문장부호가 없다. 하지만 한킹은 어째 따옴표를 임의로 넣었다. 하나님/예수님 가라사대 같은 인용문들을 볼 것.

  • 흠정역은 번역 방침과 번역자의 신념으로 인해 KJV에서만 튀는 단어를 티 안 나게 최대한 보수적(?)으로 번역한 반면, 한킹은 튀는 쪽으로 번역했다. 창 1:28 replenish가 한킹은 '다시 채우다'이지만 흠정역은 그냥 '채우다'이다.
  • 한킹은 창 22:8 God will provde himself a lamb을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하실 것이다"라고 번역한 유일한 역본이다.
  • 흠정역은 노아의 흑역사, 잠 23의 극딜 같은 극도로 부정적인 상황이 아닌 한, wine을 몽땅 '주'가 아닌 '즙'이라고 번역했다. 그래서 요한복음 가나의 혼인 잔치에 포도주 대신 포도즙이 등장하는 유일한 역본이기도 하다. 한킹은 그렇지 않음.
  • 흠정역은 구약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 우상 숭배 장소인 grove(창 21:33)를 그대로 '작은 숲'이라고 번역했지만 한킹은 타 성경 같은 '아세라 목상'도 아니고 그냥 '아세라'라고 번역했다. 고증과 교리 특성상 그렇게 했다고 당당히 해명을 하고 있다.
  • 반대로 흠정역이 고증(?)을 이유로 달리 번역한 단어 중 하나는 candlestick이다. 한킹은 촛대, 흠정역은 등잔대임. (그 시절에 파라핀 양초가 존재했었느냐의 여부..)
  • 한킹은 신약의 경우, 영어 KJV가 아니라 TR 본문을 따라 번역한 곳도 있다. 이 점은 초판 서문에도 명시돼 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고후 13:11 잘 있으라, 바이바이(farewell)를 뜬금없이 '기뻐하라'라고 옮겼다.

  • 흠정역은 2011년에 나온 제5판 400주년 기념 에디션이 최신이고, 조만간 마지막 6판 개정이 계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킹은 2010년대 더 나중에 또 개정된 것이 있지 싶은데.. 이건 본인은 잘 모르겠다.
  • 요즘 나오는 한킹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킹은 한글 본문에서 고유명사를 고딕체로 표기하지 않아서 읽기 좀 불편한 감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1/10/21 08:36 2021/10/21 08:36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45

1. 짐승의 표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그 이름도 유명한 짐승의 표, 그리고 짐승의 수 666은..

(1) 당연히 명백히 매우 부정적인 심상이다.
계 14:9-10의 구절로 미뤄 보건대 이건 구원을 상실한 영원한 고통과 형벌을 수반한다. 또한 20:4에 따르면, 반대로 이걸 받지 않아야만 예수님의 지상 재림 때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의 표가 무엇이고 수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실체는 “아직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모른다”가 가장 가장 합리적인 해답이어 보인다.
바코드, 베리칩, 이상한 백신.. 지금까지 예상이 이만치 빗나갔으면 이젠 좀 회개하고 자기가 성경을 적용하는 방식을 좀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것 때문에 지금까지 시험 들고 성경에 대한 믿음, 종말에 대한 믿음이 파괴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3) 짐승의 표는..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짐승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고 나서 그 증표로써 받는 것이다.
영적인 가치 판단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단순 과학 기술 문명의 이기는 짐승의 표가 절대로 아니다. 이건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사실인데.. 1990년대부터 교회에서 종말 설레발 함부로 치지 말고 분간을 제대로 했어야 했다.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지불식 중에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느부갓네살 왕 시절에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지불식 중에 왕의 황금 형상에 절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침례교회에서 누군가 당사자가 모르는 사이에 침례를 주는 게 불가능한 것과도 같다. (유아세례야 뭐 애 당사자가 너무 어리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받을 수 있겠지만.. 침례는 그렇지 않다!)

(4)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구원받은 신약 교회 성도들은 이미 휴거되어 올라가고 없고 대환란을 겪지 않는다. 저런 짐승의 표 따위를 마주칠 일이 없다. 올레~!!!
신약 성도들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볼 준비만 하면 된다.

그 대환란을 겪지 않는다고 해서 생활 속에서 예수쟁이로서 일상적인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거나 환란과 고난을 겪지 않는다는 말은 절대 아닌데(행 14:22, 딤후 3:12, 벧전 4:12 따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안타깝지만 엄청나게 많다.;;

지금 우리가 "그때 짐승의 표를 절대 받지 않게 용기 주시옵소서. 고문 당하지 않고 단칼에 순교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열심히 하는 건.. 창세기 50장에서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부디 우리를 해코지를 하지 말고 변함없이 너그럽게 봐 주시옵소서" 이런 간구를 하는 것과 비슷한 짓일 것이다.
예수님과 100가지가 넘게 닮았다는 요셉이 그때 펑펑 울었듯이, 저런 웃픈 기도는 분명 예수님을 울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갸륵하고 기특해서 감동받아서 우시는 건 절대 아니다~!

2. 성경의 예언

본인은 성경의 예언들 중에 2000여 년 전의 예수님의 초림과 명백하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 것, 긴가민가 뜬구름 잡는 것 같고 너무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처럼 보이는 것들은 그냥 “아직 이뤄지지 않은 예언, 재림 때 문자적으로 이뤄질 예언”이라고 본다. 특히 계시록 4~19장 사이 말이다.
전부 다 비유 은유 묵시이고, 지난 2000여 년 교회 시대 동안 서서히 이뤄져 왔다는 식으로 보지는 않는다. 문자적으로 사실이긴 한데, 시기와 장소와 적용 대상이 다르다.. 이게 더 건전한 관점이다.

사실, 성경에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예언이 더 많이 적혀 있다. 은사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욜 2:28조차도 오순절 때 이뤄진 게 아니라 아직 이뤄지지 않은 예언이다.
그런데 당장 이해가 되지 않고 실감이 안 간다고 해서.. 성경이 문자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걸(예: 1천 년, 영과 혼의 구분 따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3. 구원의 확신

(1) 진심어린 동의 없이 영접 기도 달랑 읊고는 거짓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매우 잘못됐지만..
반대로 성경에 뻔히 기록된 약속을 근거로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 자체가 교만(!!!!)이라고 이상하게 몰아세우는 것도 매우 잘못됐다.

(2) 예수님이 언제 오시나, 내일 내게 무슨 일이 닥치나, 짐승의 표의 정체가 무엇이냐 이런 게 불가지론이지..
신이 존재 여부 자체 내지 하나님의 아들 신분으로서 신자의 구원 여부와 사후 세계가 불가지론인 건 절대 아니다.

(3) 신앙 생활이 우리 인간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는 건 믿음만으로 아무 값없이 우리의 노력이 전혀 없이도 구원을 공짜로 얻는 것, 먼저 쉬고 은혜를 누리고 나서 일을 하는 것, 구원이 영원히 탄탄히 보장되어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그 반면, 인간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는 건 개인의 미래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고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알 수 없는 것, 성경대로 경건하게 살면 당장 세상적으로 불이익을 겪고 손해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른 건 몰라도 "평생 죄 짓고 살다가 나 죽기 바로 직전에만 믿으면 되겠네?"가 호락호락 가능하게 해 놓지는 않으셨다.

(4) 비슷한 예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랑과 공의를 겸비하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계신 것,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모든 인생 내역과 마음 속 생각이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날 거라는 사실이다.
그 반면, 잘못된 두려움은 하나님보다 인간을 두려워해서 죄에 동참하는 것,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해서 "이러다 지옥 가면 어떡하나, 대환란 때 단칼에 죽지 못하면 어떡하나" 같은 자포자기 두려움이다.

  • 입문(쉬움): 중생,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 첫 성령 침례, 구원받은 죄인
  • 마스터(어려움): 성화, 죄의 권능/임재로부터 구원, 지속적인 성령 충만, 예수님의 제자

복음서에서 말하는 누구나 쉽게 값없이 은혜로 믿음으로 받는 구원에서 시작했다가.. “나보고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부자가 하나님 왕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런 오락가락 말씀을 보고는 헷갈려서 오류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구약과 신약의 관계와 공통점과 차이, 세대적 진리 같은 얘기가 통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오락가락 구절에 대한 긴 설명을 이 자리에서 하지는 않겠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는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2)를 다 완수하지 못했다고 해서 (1)마저 박탈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전부이다. (1)을 이뤘으니 (2)는 필요 없다는 둥 다른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본인의 비장의 무기인 “탈북자가 남한에 오면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남한 교도소에서 벌을 받지, 북한으로 도로 송환은 절대 되지 않는다.” 비유를 들어도 납득하는 분이 지금까지 본인의 경험상 거의 없었다.ㅠㅠㅠㅠㅠㅠ (우파인데도)

4. 이스라엘

교파에 따라서 견해가 일치하지 않기도 하는 주제를 다루게 되어 좀 조심스럽지만.. 뭐 본인의 소신을 말하라면,
본인은 교회(신자)와 이스라엘(유대인)은 서로 다른 존재이며, 이스라엘은 문자적으로 회복될 거라고 믿는다. 왜냐고..?? 그냥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고 그게 다 이상한 비유 영해 묵시라고 생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예수 믿어 구원받으면 신약 교회 신자 신분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대체로 눈이 멀었고 심판 받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신자가 유대인들 징벌/심판의 도구를 자처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반유대주의는 잘못됐다. 본인은 영적 유대인 내지 대체 신학을 지지하지 않는다.
맨날 심판 심판 하지만 궁극적으로 회복된다, 완전히 끝나고 파멸되지는 않는다는 게 구약 성경이 맨날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는 내용이다.

다만, 1948년에 건국된 지금 세속 국가 이스라엘이 성경의 타임라인과 얼마나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민족 혈통 개념이 극히 희박해진 지금 유대인이 나중에 다시 열두 지파로 나뉘어서 계시록에 기록된 미래의 환란 성도 역할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겠는지..
이런 현실적인 디테일을 생각하자면 나도 이해되지 않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면모가 있긴 한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더 엄청난 초자연적인 기적도 믿는데 겨우 저 정도는 못 믿을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옛날에 우리나라 할배 대통령은 늘그막에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교류하며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 하지만 일본하고는 특이한 과거사 때문에 우리만의 고유한 정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양자인 이 인수 박사의 회고. 난 할배가 하야하지 않았으면 한일 수교는 언제쯤 어떻게 이끌었을지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하다. 박통이 암살 당하지 않았으면 핵무기까지 기어이 정말 만들어 냈을지 궁금한 것처럼..)

그런데 그런 것처럼 하나님 역시 유대인하고는 좀 색다른 고유한 경륜이 있을 거라는 건 매우 합리적인 추론이며 실제로 그러하다. 쟤들은 선민인 한편으로, 예수님을 대놓고 거부하고 십자가에 매단 민족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서 걔들은 초대 교회 시절에 행 2:38 같은 회개의 침례가 따로 필요했으며, 그게 심지어 구원의 조건이기까지 했다. 저 침례는 우리처럼 먼저 구원받고 나서 신앙 고백 후에 받는 침례가 아니다.

요즘 유대인 중에는 뭔가 예수님을 믿긴 해 보이는데 예슈아 이러면서 이상하게 행하는 메시아닉 쥬라는 집단이 있다. 얘들이 부정적인 존재인지, 아니면 그 정도 믿는 거라도 감지덕지 여겨야 하는지 갖고 크리스천들이 다투는 건.. 마치 정치판에서 윤 석열이나 이 준석 같은 인물에 대한 견해 때문에 우파 진영 내부에서 호불호 갈리고 싸움 벌어지는 것과 쏙 빼닮은 현상으로 보인다.
정말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 어쩌면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바울과 바나바의 마가 논쟁하고 비슷한 건지도 모른다.

5. 심경의 변화

  • 마 11에서 침례인 요한이 별안간 예수님에게 자기 제자들을 보내서 당신이 정말 '그 VIP'가 맞는지 확인 질문을 함.
  • 삼상 27에서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는 생활에 지쳐서 사울의 적에게 잠시 투항하기도 함. (그래도 그 계획은 나가리 나고 고국으로 잘 돌아옴)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그리고..

  •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를 앞두고 사람을 지으신 것을 repent 하셨다.
  • 하나님이 파라오의 마음을 더 강퍅하게 하셨다.

이런 것은 하나님도 무슨 실수· 후회를 한다거나 자괴감을 느끼고 잘못을 뉘우친다거나, 혹은 사람의 마음을 무슨 로봇처럼 마인드 컨트롤이라도 하시는 듯이 읽힐 소지가 있다. 그런 게 아니다.
하나님이 repent 하신 것은 근심하고 슬퍼하고 애통해하신다 정도의 뜻이다. 그리고 후자는 이미 마음을 한쪽으로 삐딱하게 굳힌 사람이 더 치우치게 내버려 두고 부추긴다는 뜻이지, 방향 자체를 사람의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조종한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보다 자비로운 것은 자비가 아니고, 하나님보다 더 의로운 건 의로움이 아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보상을 바라는 것은 질 낮은 욕심이 전혀 아니며, 그 자체가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 보상조차 필요 없다는 건 마치 구원의 확신을 교만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지나친 의로움이며 오류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0/12 08:35 2021/10/12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42

1. 한국

구한말에 개신교가 전파되던 초창기에는 감리교가 우세했다. 서 재필, 이 승만, 김 구, 유 관순, 최 용신, 남궁 억, 이 준 이런 네임드급 독립운동가들은 다 감리교인이었다. 제암리 교회도 감리교였다.
그런데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국내에서 장로교가 감리교를 누르고 지금처럼 세력이 커지게 됐을까?? 아, 장로교 안에도 고신, 예장, 기장 온갖 브랜드들이 있어서 성향의 차이가 크다는 건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쨌든 하나로 뭉뚱그려 봤을 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진귀한 데이터는 어떤 근거로 산출되었고 믿을 만한지 모르겠다. (☞ 출처)
허나, 이 표에 따르면 장로교는 생각보다 이른 일제 시대 초기부터 감리교를 누르고 우위를 차지했던 것 같다. 1900년대 후반은 정말로 '평양 대부흥'의 버프를 받기라도 한 걸까..?

이 때문인지 일제 말기 때 한국 교회들이 신사 참배에 굴복했을 때, 개인 단위로라도 항거했던 목사들은 다 장로교 출신이었다. 선교 초기에 장로교와 감리교는 한국 땅에서 서로 나와바리(?)를 어떻게 분할했을까?
안 창호도 비슷한 성향과 연배의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달리, 장로교 출신이다. 내 직관과 달리, 의외로 감리교가 아니더라.

그 대신 감리교는 초창기에 항일 민족주의 성향을 많이 드러냈고, 이 때문에 일찍부터 탄압을 많이 받아서 교세가 주춤해진 거라는 해석도 있다.
전라도가 3· 1 운동 참가자 비율이 낮았던 이유는 그 동네가 사상이 불온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구한말 때 의병이 제일 많이 활동했었는데 일찌감치 토벌 당하고 와해되고 탄압을 제일 심하게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감리교에 대해서 아는 건 남자한테도 권사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 거 같더라, 목사가 로만 칼라 복장이더라, 알미니안주의를 좋아한다더라, 영성 훈련 이런 거 좋아하더라.. 이렇게 소문으로만 들은 게 전부이다. 직접 경험한 건 전혀 없다.
동성애 지지, 여자 목사, WCC, 정치 운동 이런 거는 특정 교파만의 문제는 아니고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일탈이니, 교파 전체의 문제로 싸잡아 침소봉대하지는 않겠다.

본인의 학창 시절에 학교 근처에 있는 교회들은 다 장로교였지, 감리교는 도통 눈에 띄지 않았다. 좀 엄한 비유이다만, 접근성과 존재감을 햄버거 가게에다 비유하자면 장로교는 롯데리아-_-이고, 감리교는 버거킹 내지 맥도날드 같다.;; ㄲㄲㄲㄲ

2. 일본

일본은 조선(한반도)보다 더 옛날, 중세 때 포루투갈과 교류하면서 가톨릭이 먼저 들어왔다. 심지어 임진왜란 때 왜군 적장 중에도 이미 독실한 신자가 있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이 몰락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집권하여 에도 막부가 시작됐을 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지독한 가톨릭 박해가 시작되고 그게 공식적으로는 먼 훗날 메이지 유신 때가 돼서야 풀렸다.

쟤들은 왜 가톨릭을 박해했는지, 거기도 황 사영 백서 같은 사건이 있었는지, 일본과 나중에 교류를 시작한 네덜란드나 영국 같은 나라들은 개신교 선교를 하지 않았는지? 일본의 개신교 선교 역사는 어떻게 되는지 뭐 그런 것들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내가 자료와 정보를 입수한 게 맞다면.. 일본에서 가톨릭은 제사 거부 같은 종교 교리 때문에 찍힌 것보다는 정치적으로 줄을 잘못 서고 밉보인 게 더 컸다. 하필 가톨릭 신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진영에 많이 있었고 그 중 일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반기를 들기도 했다. 그래서 가톨릭 전체가 역적의 종교로 싸잡아 낙인 찍혀 버렸던 것 같다.

나중엔 이웃 조선에서도 내가 추정하기로 종교 7 정치 3 정도 비율의 반감으로 인해 가톨릭 박해가 시작되긴 했다. 하지만 조선은 법대로 곱게 목을 치기만 했지, 중세 일본처럼 사람을 매달아 놓고 창으로 찌른다거나, 갯벌에다 꽁꽁 묶어서 민물 바닷물에 서서히 익사시킨다거나, 펄펄 끓는 유황 온천에다가 사람을 쳐박아 넣는 식으로 가학적인 방식을 일부러 고안해서 고문· 처형을 하지는 않았다.

에도 막부 때 일본은 왜구가 없어지고 중앙 집권 통치가 정착되고 유럽 나라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예전과는 다른 나라로 탈바꿈했다. (왜구는 이웃나라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장에서도 통제가 안 되는 골칫거리였음)
하지만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국가이던 영국이나 네덜란드와는 처음부터 종교 포교를 금지하고 물자와 기술 교류만 했다. 일본이 오늘날까지도 기독교 계열 종교가 맥을 못추고 소수에 머물러 있게 된 것에는 이런 역사 배경도 기여했다.

그때 일본에서는 '후미에'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신자를 색출했던 걸로 유명하다.
나는 지금 살아 계신 부모님 사진을 밟고 지나가라고 하면 도의적으로 못 하지만, 실제 모습을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예수· 마리아 얼굴 그림이라는 건 차라리 별다른 죄책감 없이 밟고 지나갈 것 같다..;;

물론 성화· 성물로 신자 색출이 안 된다면 쟤들도 어차피 "김 일성 개XX 해 봐" 같은 더 고차원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신앙 고백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색출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성물· 성화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개신교 사고방식에 근거한 후미에 회피는 별 영양가 없는 가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개신교 쪽이라고 해도 좀 보수적인 사람은 외형적인 경건(?)과 절도 있음을 강조하곤 한다. 꼭 예수· 마리아 얼굴 그림이 아니더라도 성경책을 다른 책보다 신줏단지 모시듯이 신성하게 취급한다거나 할 수는 있다. 이런 것까지 그 당시 주변 맥락을 무시하고서 우상 숭배라고 싸잡아 정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출애굽기에서 산파들은 자기 양심과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애들을 살려 주고는 파라오에게 거짓말을 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까지 "산파들이 이유야 어쨌든 거짓말을 했으니 쟤들은 나쁜놈" 이러는 무책임하고 융통성 없는 잔인한 분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같은 사고방식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사고방식, 공의의 판단이 어떠한지를 넓은 안목에서 입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 때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은 성화를 감히 밟고 지나가지 않는 게 최선의 신앙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알기로 가톨릭에서는 그런 사고방식의 일환으로 성찬식 때의 빵과 잔도 굉장히 신성하게 취급한다. 정작 개신교에서는 주의 만찬 때 썼다는 포도 주스나 빵이 남았으면 그냥 별 생각 없이 애들 줘 버리거나 임의 처분을 해도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게 옛날에는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교리 차이였다는 게 참 므흣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은 가톨릭이 먼저 들어오고 박해를 한바탕 겪었다가.. 19세기 중후반, 서구 열강이 제국주의 물을 먹어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군대와 선교사를 보낼 때쯤에 개신교가 들어왔다. 이때는 조선은 다 망해 가고 있었고, 일본은 반대로 서양물 먹으면서 근대화 중이었기 때문에 정부에 의한 종교 박해는 없었던 것 같다.

옛날에는 유럽의 기독교계에서도 교리에 목숨 걸면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갖고 열나게 싸웠었는데.. 19세기 말에 가서는 초교파 선교 복음주의 쪽으로 트렌드가 바뀐 듯하다. 나중에는 그게 은사주의로까지 바뀌었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9/22 19:37 2021/09/22 19:37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35

« Previous : 1 : 2 : 3 : 4 : 5 : 6 : ... 15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2/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1957818
Today:
694
Yesterday:
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