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새해!
1월 1일은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고 이튿날 2일은 오후에 잠시 혼자 외출을 갔다 왔다.
눈 덮인 서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답사하고, 가고 오는 길엔 지하철 전동차 구동음 분석을 했다. 횟수가 좀 남게 생긴 지하철 정기권을 쓰려는(dump) 목적도 있었다. ^^;;
그런데 왜 하필 저기를 갔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그냥 느낌이 저기로 쏠리더라.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명소에 가 보고 싶었다.
2007년 현충일엔 친인척 중에 아무도 묻힌 사람이 없는데도 서울 현충원에 혼자 갔다 오기도 했다. 반공 웅변 원고에서나 보던 ‘동작동 국립묘지’를 그때 처음으로 본 것이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있는 곳은 지하철 3호선 독립문 역 바로 옆. 아마 역사 명소 중에서 지하철역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 아닐까 한다. 정말 가깝고, 5번 출구로 나가면 언덕 위로 코앞에 보인다. 그리고 인근엔 북한산이 보이며 한성 과학고도 있다.
서대문(5), 경복궁(3), 독립문(3)처럼 종로 내지 서대문구 일대에는 아주 서울스러운 냄새를 물씬 풍기는 역명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하철 위의 도로는 4차선으로 좁은 편이며, 그래서 3호선은 좁은 도로를 따라 지나는 종축 노선인 특성상 섬식 승강장이 무척 많다.
입구와 출구가 따로 있다.
왼쪽의 허연 굴뚝처럼 생긴 초소는 순간 일부 철도역 현재까지 문화 유적으로 보존 중인 증기 기관차 급수탑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민족의 원수로 일컬어지는 을사오적들.
이완용의 경우 매국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길 가면서 곳곳에서 테러를 당했다. 돌에 맞고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은 가슴을 칼에 찔리기도 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이 후유증으로 그는 호흡기 쪽 지병을 평생 품은 채 살다가 죽었다. 그 후 일제에 의해 그의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묘지가 조성되었지만, 지속적으로 훼묘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보다못한 후손들이 결국 시체를 화장하고 무덤을 없앴을 정도였다.
한때는 명문 가문이었나 지금 그의 후손들은 주변으로부터의 살인적인 손가락질과 뭇매를 견디다 못해 다 이민 가고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자세한 내역이 궁금하면 인터넷 검색해 보시길.)
골수 항일 분자 같은 제일 악랄한 죄수가 수감된 독방이다. 입구가 무슨 변소처럼 생겼는데 저 안은 변기도 없고 전깃불도 안 들어왔다고 한다. 진짜로 사람 인간성을 황폐화시키는 게 목적.
일제는 그 당시 감옥 공간이 부족해서 난리였다. 3.3제곱미터당 7.9명꼴이면.. 모든 인원이 눕기는커녕 제대로 앉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았다. 수감자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극심했을까? 굶주리고, 전염병 옮고...
“삼천리 강산이 다 감옥인데 나가 봤자 뭘 합니까?” (유 관순, 항고를 거부하면서)
성경은 지옥 역시 끊임없이 커지고 확장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이것도 참 묘하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순환 코스로, 한 건물을 들어가서 나가고 길따라 다른 건물에 또 들어가서 나가는 형태로 꾸며져 있다.
붉은 벽돌이 인상적이다. 이 벽돌들도 다 수감자들의 노역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 한다. 모세 시절에 벽돌 굽는 노역에 강제 동원되었던 이스라엘 노예가 생각난다.
넓은 공터에도 옛날에는 형무소 건물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해방 후 서대문 형무소는 한동안 대한민국 정부 하에서도 그대로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몇몇 동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철거한 것이다.
마네킹이다. 일본군은 장성급이 아니어도 다 모자에 별이 달려 있는지?
죄수를 체포하는 건 누런 군복을 입은 헌병이고, 취조하고 고문하는 건 경찰 내지 사복형사이다.
우리나라도 80년대까지만 해도 고문이라는 게 있었고, 북한엔 지금도 저런다. 탈북 여성 학대 동영상 이런 거 있지 않은가.
볼기를 때리는 태형. 감옥에서 사고 친 수감자를 응징할 때도 쓰고, 형벌로도 태형이 있었던 모양이다. 김동인의 소설 <태형>을 같이 읽어 보면 당시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사진은 첨부하지 않지만 “고문 체험실”이라고 꾸며 놓은 게 있었다.
무슨 해병대 체험도 아닌데 관람자에게 무슨 고통을 느끼게 해 주는 건 당연히 아니고...
그냥 심의상 좀 잔인한 장면이다 보니,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머리 집어넣고 버튼 누를 때만
사람 고문 장면을 묘사한 마네킹과 비명 소리가 잠시 나오는 장치였다.
스포일링을 하자면, 대사는
“네놈이 감히 대일본제국이 대항하려 들다니. 어서 조직원을 대라!” “난 모른다! 끄아아아악!”
이런 부류이고, 나오는 장면은 손톱 뽑기, 전기 고문, 가시 상자(중세의 철갑 소녀 같은 것임) 정도이다. -_-;;;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딱히 더 비위 거슬리는 장면이 나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노약자 및 임산부는 조작을 삼가 주십시오”라고 적혀 있다.
고증을 거친 건지는 모르겠는데, 재판관이 일본인이 아니라 무슨 포청천 같은 중국인 복장 같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이 건물은 바로 사형장.
윤 봉길, 안 중근 같은 의사는 총살이었고 어차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 감옥이 공식적으로 사용한 사형 방법은 교수형이다. 시체를 몰래 반출하는 통로도 있다.
저기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원혼이 서려 있는 곳이긴 하지만,
요즘은 100년 전과는 반대로, 진짜로 죽여야 싼 놈들 사형 집행을 너무 안 해서 심각한 문제이다.
끝으로, 일제가 18세 이하 소녀 죄수를 수용하기 위해 신축한 소위 지하 감옥. 유 관순 열사가 투옥되었다 순국한 곳이며, 그래서 유관순굴이라고도 불린다.
다 보는 데 1시간이 좀 덜 걸린 것 같다.
그나마 일말의 기독교적인 배경이 있는 영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도 흑인 노예나 인도 같은 식민지를 굉장히 무자비하게 다스렸는데, 하물며 그런 것도 없이 근대화에 성공하여 아주 집요하고 치밀하게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정말 악랄하게 조선을 다스리면서 병참 기지로 삼았고, 항일 독립 운동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섬뜩한 형무소 복도를 거닐어 보니 그때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천안에 있는 독립 기념관의 축소판 정도 된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