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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의 추억

살다 보면 집 밖에서 숙박을 하는 건, 흔하지는 않아도 아주 없지는 않은 색다른 경험이다. 업무상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지인 집에서 자거나 지인이 머무르는 숙소에서 같이 자는 것도 외박에 속할 수 있다.

본인은 일단 두 차례의 미국 여행 때 호텔 투숙의 기억이 있다. 10년 사이에 호텔의 방 열쇠는 1회용 카드 키로--잃어버리거나 심지어 투숙객이 가져가 버려도 아무 상관 없는-- 다 바뀌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학원 생활하면서 앞으로 또 이런 데 갈 일이 생겨야 할 텐데. =_=;;

그리고 철도 여행을 떠나서 타지에서 외박을 한 적이 있다. 찜질방은 꽤 저렴한 비용으로 개운하게 목욕이 가능하고 수면까지 덩달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외박 장소이다. 그러나 찜질방 수면실은 공공장소인 만큼 개인 공간이 보장되지 않으며, 상대방의 코 고는 소리와 타인의 알람 소리 때문에 쾌적한 수면이 어렵다.

침대에서 푹신하게 제대로 자고 전자 기기를 안심하고 충전하고 컴퓨터 작업까지 하려면, 좀더 비용이 들더라도 개인 공간이 제공되는 숙박 장소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본인은 내일로 티켓 여행 같은 걸 할 때 대도시에서는 찜질방을, 중소 도시나 시골에서는 여관을 이용해 왔다.

2006년에 장항 역 인근에서, 그리고 2007년에 제천 역 인근의 여관에서 투숙한 적이 있다. 2009년 말엔 지인과 또 정동진 여행을 떠나서는 여관에서 서로 침대 위에서 노트북 코딩을 하며-_- 즐거운 밤을 보내..... 려고 했지만, 둘 다 너무 피곤해서 심하게 일찍 잠들어 버렸었다.

2008년 여름엔 카이스트를 방문해서... 이건 외박도 아니고 사실상 노숙을 한 적까지 있다. 강의동 안에서 뒹굴뒹굴 빈둥거리다가(방학이니까 사람 별로 없음) 휴게실 소파에서 누워 자기도 하고, 나중엔 아예 촉촉한 여름 가랑비를 맞으며 바깥 벤치에서 엎드려 자기도 했다. 그 당시엔 '내가 지금 무슨 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재미있는 추억이다. 그때 왜 다른 지인들 방에서 잘 생각을 안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타지에서의 외박보다 어찌 보면 더 흥미로운 것은, 지인 따라 "집 근처 외박"이다.
2005년, 본인은 아직 카이스트 기숙사에서 서식하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아는 분이 대전에 볼일이 있다고 찾아오셔서 본인 역시 그분 따라 유성 온천 일대의 모 여관에서 간만에 외박을 했다. 기숙사에서 3km 남짓밖에 안 떨어진 곳에서 그것도 여관 외박이라니? 이런? ㅋㅋ

이건 정확하게 외박이라 할 순 없지만, 학부 졸업을 앞둔 마지막 여름방학 때 어머니께서 오셔서 기숙사 방에서 본인과 같이 잔 적이 있었다. 기숙사에 외부인의 숙박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지 싶은데, 슬쩍 그렇게 했다.
방학이어서 룸메이트도 없고 캠퍼스 전체가 황량하지, 각종 물건들은 이미 다 치워서 방도 썰렁함 그 자체, 게다가 그 날 따라 밖에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정말로 어디 오지에 야영 간 느낌이었다. 외박은 아니지만 정말 외박 체험이나 다름없었는데, 참고로 말하자면 비슷한 경험을 추석 때 고향 안 가고 기숙사에 남아 있어도 할 수 있다.

서울 안에서는 어느 행사에 초대를 받아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묵은 적이 있다. 광진구 광장동에 쉐라톤 워커힐 호텔이란 게 있다는 걸 본인이 알게 된 건 겨우 1년 남짓 전. 예비군-_- 훈련 때문에 남양주까지 갔다가 하루는 지리도 좀 익힐 겸 전철 대신 버스를 타고 귀가했는데, 구리에서 서울 광진구 시내로 막 진입하는 지점에서 커다란 호텔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서 너무 멀지 않고 적당히 외곽이면서 한강도 내려다보이니, 위치가 무척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실제로 투숙할 기회를 얻다니! 호텔 침대는 심하게 푹신해서, 그냥 파묻힌 채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 아마 하루 투숙비만 해도 가히 억소리 나는 비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천 송도 신도시에 있는 송도파크 호텔에서 투숙한 적도 있다. 인천대입구 역 인근은 크고 아름다운 도로와 건물들로 가득하지만, 아직은 사람들이 많이 입주하지 않아 약간의 황량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성경이 말하는 하늘나라, 새 예루살렘에서의 생활이 대략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같은 곳에서 살면서 고통, 고생이란 게 없고, 일상 생활이 행사와 축제로 가득한 곳?
성경에는 거기에 진주로 된 문에다가 황금으로 된 도로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런 곳에 새마을호 같은 열차가 다녀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본인은 병특 시절에 내일로 티켓 내지 회사 복지 카드를 이용하여 순수하게 열차만 타고 온 적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퇴근 후 바로 서울/용산 역으로 가서 부산/광주까지 간 후(새벽 3~4시 도착), 곧바로 새벽에 출발하는 상행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도착한 후 바로 다시 출근... 당연히 그 날 하루는 피곤해서 직싸게 고생했다. -_-;;
기차를 타고 집으로 퇴근한 게 아니라, 기차라는 장소가 퇴근 목적지였던 것이다...;;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묻는다면 본인의 대답은.. "이렇게라도 새마을호 타고 싶어서.."
이것도 열차 안에서 일종의 외박을 한 셈 되겠다. 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10/22 18:20 2010/10/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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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서! (2010/6/2)

교회 친구들과 함께 모처럼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춘천으로 놀러 갔다 왔다.

닭고기로 이런 요리도 만들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준 별미 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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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 다목적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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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가는 길목에서 만난 아름다운 폭포.
물을 떠 마시다 보니, 기드온의 300 용사 생각이 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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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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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6/08 09:03 2010/06/0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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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여행 (2010/5/14)

회사 워크샵 명목으로 남이섬에 갔다 왔다.
남이섬 방문은 2004년 2월에 고등학교 동기 MT 이후로 6년만에 처음이다. 그 옛날에 처음 갔을 때는

- 얼음 폭포와 타조를 구경했다.
- KTX 개통 직전, 경춘선 통일호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용했다.

정도만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겨울에 이어 이제 초여름 날씨 때에도 가 보니 감회가 새롭다.
경춘선이 끼는 지역은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정말 아름다운 지대라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환상적인 경치였다. 마침 날씨도 어쩜 이리도 좋았는지!
이뿐만이 아니라 이번 여행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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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춘선 열차가 아닌 자동차로 간 여행.
- 외곽 순환 고속도로의 성남 IC 이북 구간을 난생 처음으로 구경하고, 더구나 미사 대교로 한강을 건너서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경춘 고속도로까지 처음으로 구경해 봤다(고속국도 60호선). 덕소로 가면서 고속도로가 철길 위로 지나는 것만 봤는데 이제는 우리 도로 아래로 중앙선 철길이 있는 걸 본 것이다.
- 빨간색 교량을 한 경춘선 구 단선 선로와, 이제 새롭게 연두색 고가로 건설되고 있는 경춘선 복선 전철 선로를 선명하게 대조할 수 있었다.
- 소위 경춘북로라고 불리는 46번 국도는 어지간한 고속도로를 뺨칠 정도로 잘 닦여 있었다. 산을 정면으로 뚫은 터널과 아파트들 위로 우뚝 솟은 고가는 마치 외곽 순환 고속도로의 의왕-과천 구간을 보는 느낌이었다. 단, 차선 수는 8차선이 아닌 4차선.

남양주와 가평 일대에는 형형색색의 인테리어를 한 펜션과 모텔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건 군부대. 지나가는 길목에서 말로만 듣던 가평의 야전 수송 교육단(운전병을 양성하는 곳)도 보고, 사격장 근처에서 총소리를 듣기도 했다.

남이섬 내부엔 '유니세프 나눔 열차'라는 웬 협궤 꼬마 열차가 다닌다. 궤간이 정말 실감나게 좁은데, 아마 과거 수인선 협궤와 동일한 궤간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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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얼마나 좋았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가?
아래는 <겨울 연가>던가.. 무슨 드라마를 찍은 장소이기도 하다는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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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선 비전철에 디젤 기관차가 달리던 경춘선이 앞으로는 장대 레일 복선 전철로 거듭난다. 이런 휴양지로 머지않아 전동차가 다닐 걸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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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5/15 21:32 2010/05/1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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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 테마 여행

재작년, 2008년 삼일절엔 ‘1인 테마 여행’으로 천안에 갔다 왔다. 여기서 테마 여행이란,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경로와 교통수단 시설이 더 중요한 여행을 말한다. ^^;;

그때 천안까지는 완행 전동차를 타고 가고, 천안 역에서 천안아산 역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한 뒤 서울까지는 KTX를 타고 돌아갔다.
서울로 가는 육상 교통이 가장 발달해 있는 천안의 두 대표역의 형태에 대해 굉장히 많은 정보를 얻어서 보람찬 시간이었다. 조용한 역에서 KTX의 천안아산 역 통과 동영상을 촬영하고 KTX의 가속 구동음을 녹음하기도 했다.

작년은 삼일절이 일요일이어서 교회에 가야 했고,
오늘의 테마는 ‘서동탄 역’이었다.
이런 여행 하나하나가 마치 보이저/파이어니어 계획 같은 철도 탐사 임무였다.
최근에 온통 누런 인테리어로 리모델링을 마친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의 승강장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첫 임무를 시작했다. (서울 지하철 상식 페이지도 업데이트함 ㄳ)

그 후, 금정 역으로 갔다. 피곤해서 4호선 전동차 안에서는 졸면서 체력을 비축했다. 과천선 구간에도 드디어 군청색 배경에 흰 글씨로 신형 코레일체 표지판이 등장했으나, 여전히 코레일 지하 구간은 스크린도어도 없고 옛날 HY울릉도 역명판 글씨가 대세였다.

공휴일이어서 그런지 경부선 전동차는 배차가 굉장히 길었다. 열차를 기다리면서는 미리 가져간 책을 읽고 지나가는 열차 촬영을 했다. 금정 역은 승강장에 바로 화장실이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최근에 개통한 당정 역은 바깥이 붉은 벽돌벽으로 완전히 막혀 있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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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탄 열차는 천안으로 가는 녀석이었기 때문에 수원 역에서 내려서 서동탄 행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열차를 기다리면서는 수원 역 승강장의 배선도와 지하도/에스컬레이터 구조를 분석했다.

그 후 드디어 도착한 서동탄 행 열차는 놀랍게도 코레일이 아닌 서울 메트로 소속 열차였다. 서동탄 역은 병점 차량 기지 내부에 지어진 임시역이다. 오히려 코레일 소속 열차는 병점에서 완전히 운행을 마친 후 자사의 기지로 정비를 받으러 들어가 버리는 반면, 지금까지 병점까지만 가던 서울 메트로 차량은 종점이 서동탄으로 연장되어 남의 회사 기지 근처에 만들어진 역에 잠깐만 들어갔다가 나오는 형태인 듯했다.

서울 메트로도 출입문을 노랗게 바꾸고 ‘행복열차’ 마케팅을 아주 열성적으로 하고 있었다. 브랜드 선전을 5~8호선 SMRT(도철)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1호선 노선도에서는 사라졌지만 자기네가 사용하는 1호선 원래 노선색은 붉은색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1호선을 운행하는 전체 열차 중에 1/6밖에 차지하지 않는 자기네 차가 걸린 고객 여러분은 행운아라나.. 이런 홍보 문구까지 적어 놨더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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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 회사 구간과 직통 운행을 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SMRT 구간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성이라 하겠다.

하행 열차가 병점 역에서 서동탄 역으로 진입할 때는 교차가 필요 없는 반면, 서동탄에서 병점으로 가는 열차는 경부선 선로를 지하로 관통하여 입체 교차한다. 서동탄 역은 경부선 선로의 동쪽에 있기 때문이다. 그 반면, 천안 역에서는 지하가 아닌 고가로 입체 교차가 일어나며, 방향별 복복선이 역에서는 일종의 선로별 복복선으로 바뀌기 때문에 상행과 하행 모두 경부 본선을 타넘게 된다.
병점 기지로 들어가는 구간은 아파트와 오솔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폐차를 기다리고 있는 구형 저항 전동차도 모셔져 있고 심지어 누리로 열차도 보였다.

서동탄까지 갔다가 병점으로 되돌아 온 뒤, 병점 역에서 내렸다. 이번 달은 설 연휴 때문에 지하철 정기권이 굉장히 많이 남은 관계로, 이걸 좀 dump하는 임무도 이번 여행에 포함돼 있었다.
그 후 여기서 바로 분당으로 버스를 타고 가려고, 미리 인터넷 지도로 봐 놓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배차 간격이 30분이 넘는 버스랬는데 한 20분 정도 기다린 듯했다. 서동탄-병점 일대에서 판교를 경유해서 정확하게 분당과 성남 시가지까지 가는 버스로 본인의 여행 목표와 정확히 일치했다.

분당선이 수원까지 연장되었다면 이 경로도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철도만으로 이동 가능했겠지만 버스 여행도 아주 가끔은 할 만했다. 낯선 화성/수원/용인 시가지로 깊숙이 들어간 버스는 딱히 고속도로 진입로를 탄 것 같지 않았는데 갑자기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용인-서울 고속도로(171)를 구경했다.

게다가 이 버스 노선은 원래 경부 고속도로를 달렸는데 얼마 전에 노선이 바뀐 거라고 한다. 교통 오지이던 삼성 반도체 일대와 판교 쪽을 경유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붉은 광역 좌석버스는 앉아서 가는 건 좋지만 인클라이닝 시트가 고장 나 있고 역겨운 차냄새 때문에 괴로운 건 여전했다.

화성 북부에서 분당 북부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이 조금 넘었다. 그 후 분당에서 볼일을 좀 본 후 분당선 전철을 타고 수서까지 가서 3호선 연장 구간을 답사했다. 그리고 오금 역에서 5호선으로 합류하는 것으로 오늘의 탐사 일정을 모두 마쳤다.

가락시장과 오금은 명목상으로는 3호선이라는 1기 지하철하고 5, 8호선이라는 2기 지하철과의 환승이지만, 건설 시기 면에서는 3기 지하철과 2기 지하철과의 환승이나 다름없다.

둘 다 L자형 환승이다. 두 노선이 동시에 건설되었다거나 미래의 환승을 염두에 두지 않고 건설되지 않다 보니, 기존 노선을 최대한 안 건드리고 역을 만들면 필연적으로 L자형이 생기게 된다. 3호선은 가락시장과 오금의 최소 환승 지점이 서로 정반대이다. 그리고 두 노선 모두 3호선이 2기 지하철들보다 아래로 지난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다.

정기권도 남아돌고 더 놀고 싶긴 한데, 노트북의 배터리와 본인의 피곤함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_=;; 그 대신 다음 주말엔 광명 역이나 공항 철도 쪽을 가 봐야겠다.
수도권은 전철이 있어서 자가용 없이도 이렇게 바깥 나들이를 재미있고 저렴하게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Posted by 사무엘

2010/03/01 19:59 2010/03/0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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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답사

2010년 새해!
1월 1일은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고 이튿날 2일은 오후에 잠시 혼자 외출을 갔다 왔다.
눈 덮인 서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답사하고, 가고 오는 길엔 지하철 전동차 구동음 분석을 했다. 횟수가 좀 남게 생긴 지하철 정기권을 쓰려는(dump) 목적도 있었다. ^^;;

그런데 왜 하필 저기를 갔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그냥 느낌이 저기로 쏠리더라.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명소에 가 보고 싶었다.
2007년 현충일엔 친인척 중에 아무도 묻힌 사람이 없는데도 서울 현충원에 혼자 갔다 오기도 했다. 반공 웅변 원고에서나 보던 ‘동작동 국립묘지’를 그때 처음으로 본 것이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있는 곳은 지하철 3호선 독립문 역 바로 옆. 아마 역사 명소 중에서 지하철역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 아닐까 한다. 정말 가깝고, 5번 출구로 나가면 언덕 위로 코앞에 보인다. 그리고 인근엔 북한산이 보이며 한성 과학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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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5), 경복궁(3), 독립문(3)처럼 종로 내지 서대문구 일대에는 아주 서울스러운 냄새를 물씬 풍기는 역명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하철 위의 도로는 4차선으로 좁은 편이며, 그래서 3호선은 좁은 도로를 따라 지나는 종축 노선인 특성상 섬식 승강장이 무척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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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와 출구가 따로 있다.
왼쪽의 허연 굴뚝처럼 생긴 초소는 순간 일부 철도역 현재까지 문화 유적으로 보존 중인 증기 기관차 급수탑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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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원수로 일컬어지는 을사오적들.
이완용의 경우 매국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길 가면서 곳곳에서 테러를 당했다. 돌에 맞고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은 가슴을 칼에 찔리기도 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이 후유증으로 그는 호흡기 쪽 지병을 평생 품은 채 살다가 죽었다. 그 후 일제에 의해 그의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묘지가 조성되었지만, 지속적으로 훼묘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보다못한 후손들이 결국 시체를 화장하고 무덤을 없앴을 정도였다.

한때는 명문 가문이었나 지금 그의 후손들은 주변으로부터의 살인적인 손가락질과 뭇매를 견디다 못해 다 이민 가고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자세한 내역이 궁금하면 인터넷 검색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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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 항일 분자 같은 제일 악랄한 죄수가 수감된 독방이다. 입구가 무슨 변소처럼 생겼는데 저 안은 변기도 없고 전깃불도 안 들어왔다고 한다. 진짜로 사람 인간성을 황폐화시키는 게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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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그 당시 감옥 공간이 부족해서 난리였다. 3.3제곱미터당 7.9명꼴이면.. 모든 인원이 눕기는커녕 제대로 앉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았다. 수감자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극심했을까? 굶주리고, 전염병 옮고...
“삼천리 강산이 다 감옥인데 나가 봤자 뭘 합니까?” (유 관순, 항고를 거부하면서)
성경은 지옥 역시 끊임없이 커지고 확장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이것도 참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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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순환 코스로, 한 건물을 들어가서 나가고 길따라 다른 건물에 또 들어가서 나가는 형태로 꾸며져 있다.
붉은 벽돌이 인상적이다. 이 벽돌들도 다 수감자들의 노역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 한다. 모세 시절에 벽돌 굽는 노역에 강제 동원되었던 이스라엘 노예가 생각난다.

넓은 공터에도 옛날에는 형무소 건물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해방 후 서대문 형무소는 한동안 대한민국 정부 하에서도 그대로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몇몇 동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철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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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이다. 일본군은 장성급이 아니어도 다 모자에 별이 달려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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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를 체포하는 건 누런 군복을 입은 헌병이고, 취조하고 고문하는 건 경찰 내지 사복형사이다.
우리나라도 80년대까지만 해도 고문이라는 게 있었고, 북한엔 지금도 저런다. 탈북 여성 학대 동영상 이런 거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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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기를 때리는 태형. 감옥에서 사고 친 수감자를 응징할 때도 쓰고, 형벌로도 태형이 있었던 모양이다. 김동인의 소설 <태형>을 같이 읽어 보면 당시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사진은 첨부하지 않지만 “고문 체험실”이라고 꾸며 놓은 게 있었다.
무슨 해병대 체험도 아닌데 관람자에게 무슨 고통을 느끼게 해 주는 건 당연히 아니고...
그냥 심의상 좀 잔인한 장면이다 보니,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머리 집어넣고 버튼 누를 때만
사람 고문 장면을 묘사한 마네킹과 비명 소리가 잠시 나오는 장치였다.

스포일링을 하자면, 대사는
“네놈이 감히 대일본제국이 대항하려 들다니. 어서 조직원을 대라!” “난 모른다! 끄아아아악!”
이런 부류이고, 나오는 장면은 손톱 뽑기, 전기 고문, 가시 상자(중세의 철갑 소녀 같은 것임) 정도이다. -_-;;;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딱히 더 비위 거슬리는 장면이 나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노약자 및 임산부는 조작을 삼가 주십시오”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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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을 거친 건지는 모르겠는데, 재판관이 일본인이 아니라 무슨 포청천 같은 중국인 복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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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으로 둘러싸인 이 건물은 바로 사형장.
윤 봉길, 안 중근 같은 의사는 총살이었고 어차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 감옥이 공식적으로 사용한 사형 방법은 교수형이다. 시체를 몰래 반출하는 통로도 있다.

저기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원혼이 서려 있는 곳이긴 하지만,
요즘은 100년 전과는 반대로, 진짜로 죽여야 싼 놈들 사형 집행을 너무 안 해서 심각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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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일제가 18세 이하 소녀 죄수를 수용하기 위해 신축한 소위 지하 감옥. 유 관순 열사가 투옥되었다 순국한 곳이며, 그래서 유관순굴이라고도 불린다.

다 보는 데 1시간이 좀 덜 걸린 것 같다.
그나마 일말의 기독교적인 배경이 있는 영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도 흑인 노예나 인도 같은 식민지를 굉장히 무자비하게 다스렸는데, 하물며 그런 것도 없이 근대화에 성공하여 아주 집요하고 치밀하게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정말 악랄하게 조선을 다스리면서 병참 기지로 삼았고, 항일 독립 운동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섬뜩한 형무소 복도를 거닐어 보니 그때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천안에 있는 독립 기념관의 축소판 정도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24 21:02 2010/01/2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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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자료실을 정리하는 중..)

다른 친구들은 다 교내 컴퓨터/음악 동아리에서 활동하거나 하다못해 취업 스펙 관리하고, 영어/경제 분야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반면..
난 갑자기 무슨 동기를 받아서인지 공대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인터넷 쪽 한글 단체들과 인연을 맺으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때를 생각하니 정말 귀중한 추억이다. 저 사진에 담긴 사람들(특히 젊은이)... 지금은 뭘 하며 지내고 있을까?

2002년 1월 26일, 부천 모임. 철도 나부랭이 쪽은 하나도 모르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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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27-28일, 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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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31일, 한글 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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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2005년 3월 7일. 대전에서 서울로 오후에 KTX 타고 올라가서 모임에 참석했음.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온 시각은 새벽 2시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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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1/14 22:59 2010/01/1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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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재, 본인의 마지막 TV 출연 경험이다.
본인뿐만이 아니라 본인의 동지들도 대거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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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한글 코드, 글자판을 비판하는 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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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병우 박사님이 살아 계시던 시절, 한글 문화원에서 발행한 각종 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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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벌식과 관련해서 TV 출현할 때마다 정말 잘 활용한, 아론 전자 세벌식 최종 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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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1/13 23:56 2010/01/1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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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집 기획 다큐멘터리 3부작 중 하나인 <세계화 시대의 우리 말글>에 잠깐 출연하여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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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1/13 23:44 2010/01/1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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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연출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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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문화 연대 회원이기도 한 황 현정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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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프로에서 기계 번역을 주제로 먼저 출연한 포항 공대 컴퓨터 공학과 이 종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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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1/13 18:02 2010/01/1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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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대전과 호남 지방을 강타한 폭설. 생전에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걸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지난 1월 4일에 서울, 수도권을 강타한 폭설도 이것과 결코 만만찮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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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3 11:01 2010/01/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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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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